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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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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3일 17시 13분 등록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 주경철

바다의 이미지

바다의 제일 위의 표면에는 끊임없이 찰랑대는 파도가 있다. 그 밑에는 해류의 흐름이 있어서 비교적 느린 속도로 자기 길을 따라 흘러간다; 다시 이보다 더 밑의 층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깊은 물이 있다. 우리의 눈에는 찰랑대는 파도나 해류 정도가 보일지 모르나 사실 바닷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몇 백 미터, 심지어는 몇 천 미터나 되는 거대한 심해의 물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일반 역사의 흐름에서는 전쟁, 혁명과 같은 정치적대사건만이 눈에 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민중들이 영위하는 삶에서는 그런 대사건들이 생각만큼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적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농사짓고 언제나 비슷한 의복을 지어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땅에 발붙이고 살아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민중들이 생활해오면서 쌓아올린 그 '문명'은 그런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나치의 잔혹한 억압은 단지 한번의 폭풍우에 불과하다. 폭풍우가 저 심해까지 뒤집어 엎을 수는 없고 그래서 폭풍우가 그치면 바다가 원래의 고요로 되돌아가듯 문명은 오랜 시간동안 인간 활동의 성과를 잘 보존하고 있다가 인간의 삶을 복원시켜준다. 현실이 숨가쁘게 돌아가며 사람을 옭아매는 시대에 긴 호흡의 유장한 '문명'은 분명 희망으로 작용하였으리라.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적어도 세 개의 차원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전개시킨다.
그 각각의 서술들은 제 각기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계서제 (階序制 - bierarchy)속에서 상하 관계를 이루며 모여 있다. 광범한 '물질 문명'이 제일 아래에 깔려 있어서 인간 생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시장 경제가 이 광범한 하층의 위에 자리잡고 다소간 넓은 지리적 공간속에서 인간의 삶을 연결해준다 ; 그리고 최상층에 '자본주의'가 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있다...... 위층의 것이 아래층의 것에 얹혀 있고 그 제약을 주어진 조건으로 삼아 살아간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각각의 층위(層位)는 자기 나름대로의 시간성 내지는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질 문명의 차원에서는 수세기동안 지속되는 장구한 시간성이, 그보다 상층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짧은 시간의 리듬이 지배하며, 최상층에서는 숨가쁘게 돌아가는 아주 급박한 리듬이 지배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하나의 차원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여러 시간성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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