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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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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3일 04시 29분 등록
추천사

오늘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경제정책 쟁점들, 예컨대 통상정책, 인플레이션, 정부의 적정역할, 빈곤의 추방, 경제성장률 촉진방법 등은 사실 지난 200여 년 간 경제학자들 사이에 꾸준히 논의되었던 문제들이다. 좋든 나쁘든 오늘날 경제정책들 가운데 대다수는 옛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들을 반영한다. 오늘날 경제정책 논쟁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옛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에 어느 정도
정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8세기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였던 애덤 스미스는 정부의 개입이나 간섭은 대체로 유해(有害)하고, 소비자들과 상인들간의 사적(私的) 경쟁을 통해서만 국민들의 복리증진이 가능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당시의 통설을 무너뜨렸었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 각국의 정부는 사기업에 기초한 시장경제가 중앙계획경제나 공유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의 세율인하, 영국과 프랑스의 국유기업체 사유화, 중국의 가족농장 부활, 페레스트로이카라 부르는 소련의 경제개혁 등 일련의 변화들은 모두 애덤 스미스의 아이디어에 그 궁극적 뿌리를 두고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위대한 경제학 이론들도 적용하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1930년대 대공항의 와중에서 영국에서 나온 케인스의 이론은 당시 대량실업사태의 재발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저축증가를 반대하고 소비증가를 주장하는 케인스 학설은 오늘날의 경제실정에는 부적절하다 하여 점차 호소력을 잃고 있다. 저축의 증가는 대체로 새로운 공장건설이나 기계도입과 같은 투자증가 효과를 가져오고, 이는 곧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으로 직결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주지하는 바이다.


머릿말

모든 경제학도들이 수업 첫날 배우다시피 경제학은 자원의 희소성과 그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에 관한 것이다.

1. 곤경에 처한 경제학자들

기업 이사진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해 내지 못한다고 공격한다. 박애주의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너무 꼼꼼하게 따진다고 비난한다. 정치가들에게 있어 경제학자들은 희생 없는 번영이라는 공약을 좌절시키는 걸림돌이다. 가장 재치 있느 몇몇 문필가들마저 경제학자들을 모욕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으니 쇼와 칼라일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칼라일이 경제학을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 명명한 이래 경제학자들은 수난의 세월을 살아왔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경제사상사는 정부와 경제학자들 간의 벌어진 충돌과 협력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스미스가 유럽 왕실들과 상인들 사이의 정경유착을 매도했을 때 근대 경제학은 태동했다. 스미스, 마르크스(K. Marx), 베블런(T.B. Veblen) 등의 경제학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상인들이 정치를 도구삼아 실리를 취한다는 사실을 셋 다 일찌감치 감지한 점이다.

구약성서에는 동족끼리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있지만, 중세 신학자들은 이자를 위험부담, 기회비용, 인플레이션, 불편 등의 세부 품목들로 분리하여 정당화시키는 등 금지규범에 구멍을 뚤어 빠져나갈 곳들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여기서 신학자들은 괴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만일 상행위에 부정적인 정통파 경전해석을 주장했다가는 그들의 말은 효력을 상실할 것이다. 대다수 신도들은 천벌 받을 각오로 고리대금 행위를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각종 상행위들을 모두 눈감아 주었다가는 교회 지도자로서의 신용은 여지없이 실추되고 말 판이었다.
결국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필요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은 경제학 원리들을 연구했다. 신학자들은 단순한 의무의 일환으로서 그들의 어린 양들에게 경제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의무란 그 어린 양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지 더 나은 생활수준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으로 그 양떼들마저 나뉘어졌을 때 그 의무는 한층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 버렸다.


2. 애덤 스미스이 재림(再臨) (1723-1790)

갈릴레이(G. Galilei)는 "신(神)은 인간에게 '성서'와 '자연'이라는 단 두 권의 책만을 주셨다."라는 종교적 상투어의 의미를 공격했다. '자연'이라는 책의 언어는 신의 계율이 아니라 바로 수학이라고 주장하면서 갈릴레이는 성서와는 전혀 무관하게 수학과 실험의 힘만을 빌려 '낙체의 법칙(Law of Falling Bodies)'을 발견하였다.

뉴턴은 갈릴레이의 과학탐구 방식을 이어받아 성서에 나와 있지 않는 진리를 추구했는데 중력법칙, 물리운동의 법칙, 미적분 등이 바로 그것이다.
뉴턴은 신이 태초에나 세상사에 관여했지 오늘날에는 마치 전당포 주인이 전당 잡힐 시계 보듯 세상일을 대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G.W. von Leibnitz)는 뉴턴이 신을 솜씨가 엉망인 시계공으로 묘사함으로써 신성 모독죄를 보태었다고 생각했었다.

스미스는 일생 동안 한 번도 경제학을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20세기 전가지 학자들은 경제학을 철학의 한 분야로 간주했다. 1903년에야 비로소 케임브리지 대학이 경제학과를 윤리학(moral science)으로부터 독립, 개설했다.

결국 1776년에 발간된 [국부론]은 경제학자들에게 있어서 최초의 독립선언이 되는 셈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공익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비지하는지조차 모르는 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는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 결실도 얻게 된다." 이 구절에 처음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표현은 스미스 경제이론의 한 뚜렷한 상징이 되어 버렸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적 조화를 담당하는 전정한 지휘자와도 같은 '자유방임시장(free market)' 체제를 의미한다. 20세기 자유방임시장 체제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 중의 하나였던 하이에크(F.A. Hayek :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철학자)는 만약 자유방임시장 체제가 저절로 생겨나지만 않았다면 인류역사 최대의 발명품으로 꼽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업 (division of labor) '핀(pin) 공장' 사례
세상 거의 모든 제품들이 서너 명 단위의 소규모 수공업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던 시절, 공장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절에 쓰인 것이다.

스미스의 자유방임시장론은 "인간은 가능한 가장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팡로스 박사 (옮긴이 :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Candide)에 등장하는 인물)의 순진한 낙천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스미스는 그의 시장론에 따르는 정책적 문제들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그 해결법들을 제시했다.

분명 그는 시장을 발명하지도, 경제학을 창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시장이 어떤 것인지, 경제학이 무엇인지를 세상사람들에 보여주었다. 발간 후 75년 동안 [국부론]은 세상 경제학자들의 지식의 전부였다. 그리고 2백여 년이 지난 후 [국부론]의 아이디어들은 부활되어 절찬을 받았다.

3. 인구폭발과 멸망의 예언자 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

나라 전체가 그가 울린 경종으로 떠들썩하게 되자 맬서스는 은근히 겁이 나기 시작했다. 논문의 과학적 신뢰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이 화끈한 결론도 결국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자료에 바탕한 것이 아닌가? 더욱이 맬서스는 자신의 주장에 깔려 있는 숙명적 비관주의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이리하여 맬서스는 다시 철저한 연구에 몰두하였고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는 물론 심지어 영국과 적대관계에 있던 프랑스와 스위스까지 답사를 했다. 각 나라의 법과 공공 기록들을 조사연구한 맬서스는, 극빈자들의 혼인을 금지하는 17세기와 18세기의 법 조항들이 오스트리아와 바바리아에서는 여전히 준수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801년 영국은 최초로 광범한 인구조사 결과를 책으로 발간하였다.

1803년 맬서스는 [인구론]의 개정판을 출판했다. 새 제목은 [인구의 원리론, 또는 인구증가가 인류의 과거와 현재 행복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전망-인구증가가 수반하는 갖가지 해악(害惡)의 경감과 제거에 대한 고찰을 겸하여]였다.
맬서스는 아프리카, 시베리아, 터키, 페르시아, 티베트, 중국은 물론 미국 인디언들의 사례까지 들어가며 이론의 요점들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자원과 기술에 관한 장기적 전망은 경제학 박사 학위만 가지고 손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경제학자들은 모두 멍청하게 웃으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둬야 할까? 아니다. 공해는 마땅히 기업 생산비용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한다. 인건비라든가 자본설비 비용, 지대(地代) 등과 같은 생산비용은 기업의 운영에 있어 본질적인 것들이어서 기업은 마다않고 지불한다. 하지만 기업은 공해에 따르는 비용을 좀처럼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전체가 오염된 공기를 호흡함으로써 이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공해가 생산비용 산출에서 누락되었기에 생산비는 실제보다 낮게 책정되어 기업은 적정생산량을 초과생산하게 된다. 적정량의 생산을 위해서는 기업이 공해에 따르는 비용까지 흡수하도록 규제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종종 '공해세(pollution tax)'를 기업이 부과할 것을 당국에 촉구한다.

4. 데이비드 리카도와 자유무역론 David Ricardo (1772-1823)

갖은 혹평과 비난에 시다리던 맬서스는 리카도의 사려깊은 공격을 오히려 반겼다. 리카도와 맬서스의 우정은 책 출판을 통해 싹텄다. 1823년 죽기 전 리카도는 맬서스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만약 자네가 내 의견 모두에 찬성했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자네를 더 좋아할 순 없었을 걸세" 리카도의 유산상속인은 세 명이었는데 그 중 맬서스도 포함되었다. 나중 맬서스는 리카도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내 가족을 제외하고 일생을 통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인간은 없었다."

기회비용이 적은 분야를 생산해야 하는데 그 분야를 비교우위를 지닌 분야라고 한다.
각국은 비교우위 산업에 주력해서 세계가 분업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리카도의 주장이었다. "프랑스인들이 곡물의 비교우위를 지녔더라도 수입해야 할 판국인데 하물며 절대우위를 지녔음에야, 어서 프랑스산 빵을 먹고 우리는 뭐 다른 일에 손대자."

케인즈와 슘페터는 리카도를 공격했지만 마르크스, 왈라스, 마셜, 빅셀(J.G.K Wicksell) 등은 리카도의 위대함을 찬양했다.

리카도의 이론은 세계만방에 전파되었지만, 그 이론의 가장 확실한 테스트는 1990년대의 유럽국가들에 의해 행해질 것이다. 만약 유럽 국가들이 1992년까지 공동체 내의 모든 무역국경을 없애기로 한 서약을 이행한다면 리카도는 부분적 승리를 거두게 된다. 만일 공동체 국가들이 미국이나 일본에 대한 무역장벽도 철폐하겠다는 두 번째 서약도 이행할 경우, 리카도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5. 존 스튜어트 밀의 격정적 일생 (1806-1873)

아이작 뉴턴 이래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과학에 끼어들어 그들의 의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얻으려 했다. 스미스, 리카도, 맬서스 등은 모두 자연의 섭리를 발견하여 경제학의 뉴턴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비교우위의 법칙, 세이의 법칙, 인구법칙 등은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 졌다.

낙관론자들은 내일이 낙원이다. 비관론자들은 어제가 낙원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오늘을 위해 투쟁하면 내일 이후 그 어느 날엔가 이상향이 찾아오리라 소망했다.

밀은 소득세에서 풀어 주었던 부자들을 상속세에서 붙잡았다. 철학과 경제학 저서들을 통해 그는 항상 '결과의 균등(equality of results)'보다 '기회균등(equal opportunity)'를 강조했었다.
밀이 생각하는 소득세와 상속세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소득세는 노동의욕을 저하시키지만 상속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 벌지 않은 재산이야말로 공공의 복리증진을 위해 제한되어야 한다."라고 밀은 말한다.

에드먼드 버크(E. Burke : 영국의 정치가, 사상가)는 언젠가 이렇게 탄식한 적이 있다. "기사도의 시대는 지나갔다. 궤변학자, 경제학자, 타산가 (打算家)들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유럽의 영광은 영원히 소멸 되었다." 그러나 기사도는 밀을 고무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용맹스럽게 쓰러뜨린 상대는 스스로에 내재한 가상의 적, 바로 지성과 관념의 적들이었다.


6. 격분한 현자(賢者) 카를 마르크스 Kal Marx (1818-1883)

반란은 생산과정에서 기술혁신이 생길 때 일어난다. 신기술은 토지, 노동, 자본의 물량과 품질을 바꿔 놓는다. 물질생산력이란 신발명, 신발견, 교육, 인구성장 등의 영향을 받는 동적인 힘이다. 생산과정에 새로운 물질적 힘이 가해지면 종래의 생산과정은 순식간에 폐품이 된다. 노예제도는 트랙터와 자동수확기가 없고 노동인구의 비율이 낮았던 시절에나 이윤을 낳았다. 미래는 신생산과정에 의존한다.

그러나 정치, 윤리, 법과 같은 사회제도는 기술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신기술이 나온 후에도 상부구조는 여전히 옛 형태를 유지한다. 기계가 발명되고 대량생산이 시작된 후에도 종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농노제도야말로 하느님의 왕국으로 가는 첩경이라고 설교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신도들의 마음과 중세성당의 대리석에 새겨진 영원불멸의 진리였다. 이처럼 상부구조는 정적(靜的 static)이다.
지배계급이 종래의 관념을 움켜쥐고 새로운 경제적 발전을 배격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저지하려 들 때 투쟁의 불길은 일어난다. 수동맷돌은 중세영주들을 탄생시켰고, 증기정미소는 자본주의자들을 탄생시켰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자들이라고 하는 신지배계급은 기술의 혁신과 더불어 저절로 실권을 쥐게 된 것이 아니라 구지배계급인 영주들과의 힘겨운 투쟁 끝에 쟁취하게 된 것이다. 상공업자들은 길드(guild) 회원들과 생사를 건 싸움을 치러야만 했다. 가장 날카로운 창들의 마상시합은 기사들 간이 아니라 영주들과 상공업자들 간에 벌어졌다.

불행하게도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이윤 증대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이나 경영법과 같은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간과한다.

이윤이란 자본가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욕망을 지연시키며 참을성 있게 기다린 데 대한 보상이다. 따라서 이윤은 정당할 뿐 아니라 사회발전에 있어 필수적이다. 누구든지 가지고 있는 돈을 당장 소비한다면 사회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에 집착함으로써 너무나 많은 역동적, 관념적 요인들을 무시해 버렸다. 리카도는 노동가치설을 추정(推定)의 한 도구로 보았지 가치의 절대적 원인으로 인식하지 않았기에 이 함정을 피해갈 수 있었다. 노동가치설의 수학적 증명에 나선 마르크스는 곧바로 가시덤불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으니 벨크로가 마르크스에 의해 발명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정도이다.

결국 마르크스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어떤 것들일까? 경제변화는 극도의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 권력은 탄압으로 쉽사리 변한다는 것, 피지배계급은 착취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 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들은 오히려 공산국가들에게 더 해당사항이 많을 것 같다.

마르크스의 숭배자들은 젊고 비과학적이던 시절의 마르크스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현묘한 경제이론가나 카리스마적 정치지도자로서보다 사회정의 구현을 외쳤던 한 인간적 호소자로서 기억되어지고 있다.

- 6년전에 구입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란 책을 보면 물론 본인의 저작은 아닐지라도 철저하게 종교를 배격한 그가 유태혈족이란 점과 유물사관속에서 그가 화폐의 가치와 재화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가 내게 너무도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까뮈의 [이방인]을 읽었을 때의 충격과 거의 흡사했다.


7. 앨프레드 마셜의 한계적 시야 Alfred Marshall (1842-1924)

"네가 어디에 가든 너는 거기에 있지 No matter where you go - there you go " "무엇과 비교해서요 compare to what?"
어느 정도까지는요 Up to a point" 의 세 가지는 19세기 후반에 출현한, 경제사상의 획기적 변화인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한계이론은 미시경제학 발전의 터전을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이윤이 비용을 초과할 경우 개개인은 자신의 위치를 검토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마셜은 개개의 기업들이 어떻게 환경변화에 대처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이것이 미시경제학의 핵심이다. 이윤과 비용이 일정할 경우에만 우리는 뉴턴식의 불변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성지(聖地)는 경제생물학(economic biology)이다."라고 마셜은 선언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려는 인간의 본성이야말로 경제학의 주요 관심사다. 단편적이고 정적인 가설들이 동적인 혹은 생물학적이라 할 개념들을 가끔 보조할 때도 있다. 그러나 경제학의 핵심적 아이디어는 역시 생동하는 힘과 운동일 수밖에 없다. 이는 경제학의 기초만을 두고 본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

마셜은 일생을 점진(漸進)의 철학으로 살았다. 그는 매사에 신중할 줄 알았다.

회사 측이 원료나 노동자 확충에 대처할 여유가 약간 있는 기간을 마셜은 단기라 부른다.

장기란 한정된 생산설비.. 공장을 짓고 기계설비를 늘릴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단기와 장기는 보통 얼마 동안이 기간을 뜻할까? 산업분야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자본과 생산량의 변동에 따라 정의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오늘날의 장기는 과거의 단기만큼이나 짧아질지도 모른다.

탄력성의 결정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체물(substitue)이 얼마나 많은지의 여부이다. 선택의 여지가 많은 상품의 수요는 탄력적이다.

탄력성의 두 번째 결정요인은 대체물을 찾을 시간적 여유가 얼마나 많은지의 여부이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상품의 수요는 탄력적이다.

탄력성의 세 번째 결정요인은 그 물품이 소비자의 예산에서 차지는 비중의 정도이다. 탄력성이란 개념을 통해 마셜은 이론과 실제의 조화를 강조했다.

케인스는 대 경제학자라면 마셜처럼 수학자이자 사학자이며 정치가에다 철학자이여야 한다고 그의 놀라운 재능을 격찬했다. '과거의 경험 아래 미래를 목표로 현재를 연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고전학파와 한계학파 경제학을 결합시키려 했다. 비탈길을과 평원, 변화와 균형, 진화와 안정을 조화시키려 했다. 결국 그는 꿈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8. 구제도학파와 신제도학파 Thorstein Bunde Veblen (1857-1929)

제도학파는 사회의 법, 기풍(ethos), 제도와 같은 것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베블런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악당은 비즈니스맨이요 영웅은 엔지니어이다.

가격, 이윤, 지대, 비용이 경제학의 전부는 아니다. 법, 도덕, 패션, 철학 등도 경제학의 일부이다. 베블런과 갤브레이스는 경제학의 정의를 확장시켰다.
동료 경제학자들은 더 넓은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마셜은 경제학을 너무 쉬운 학문처럼 만들어 우리를 속였다. 신제도학파들은 경제학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마셜의 도구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보여 주었다. 그들은 한계분석 도구를 온갖 복잡한 사회현상들에 적용시켰다.


9. 구원에 나선 풍류도락가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1883-1946

케인즈주의자란 대체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다음의 두 가지를 믿는 사람을 만한다.

1. 민간 경제가 완전고용에 으리지 못할 수도 있다.
2. 정부의 지출은 경제를 활성화시켜 불완전고용의 틈을 메울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종교인들에게 대항했던 케인스는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인간은 종종 목표의 획득보다 목표의 추구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10. 케인스 학파와 통화주의자들의 대결 Milton Friedman (1912~)

구두쇠가 불경기를 몰고 온다고 보았던 케인스는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의 가장 보편적인 단위라 할 수 있는 M1은 (1)은행 바깥에서 유통되는 모든 현금과 (2) 민간(가계+기업)이 시중의 예금은행에 에치한 당좌예금, 보통예금 등 언제라도 현금화할 수 있는 요구불예금(deman deposits)의 합을 뜻한다.

부란 숫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재화나 용역의 양으로 측정된다던 스미스의 가르침을 기억하는지?

얼마만큼의 최적의 통화량일까?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용역을 살 수 있으면서도 남지는 않는 양이다. 즉 완전고용을 달성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는 양이다. 대답이야 쉽다. 그러나 도대체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는 통화량을 어떻게 산출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케인스가 불신한 것은 화폐의 유통속도였다. 어째서 이 유통속도가 일정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결국 통화주의 정책은 민간의 유동성과 승부하는 게임이다.

많은 신세대 경제학자들은 총 수요를 조절해 보려는 정책에서 총공급을 조절해 보려는 정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방정부가 국가의 생산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생산력의 증대는, 곧 생활수준의 향상을 뜻한다. 혼란한 세상 덕분에 우리는 모두 절충주의자가 되었다.

11. 공공선택학파 : 정치는 곧 비지니스 James M. Buchanan (1919~)

정치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야 말로 통화주의자들의 그 어떤 통께자료보다도 더 확실하게 케인주의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정치가들이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동물들이라는 것이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정치를 그저 성가시고 이해할 수 없고 비경제적인 장애물 정도로 여기는 반면 공공선택학파는 정치를 경제학적 도구로서 연구 분석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주장한 정치란 결국 경제활동이다.

올슨은 말한다. "특수 이익집단으로 가득찬 사회란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레슬링 선수들로 가득찬 유리그릇 상점과도 같다. 가져가는 것보다 깨어지는 것이 훨씬 많다."

정부의 규모확대는 곧 정치가들이 국민들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뜻한다. 정부관리들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국민들이 모르게 할 수 있다. 그들은 '정치적'보이지 않는 손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 버린다.

정부의 규모가 커지면 정치체제를 감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증가하지만 정치체제를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절감된다.

거시경제학적 측면에서 볼 때도 결과는 비슷하다. 국민들이 간접적 혜택을 경시하고 직접적 혜택을 선호함에 따라 재정은 세금인하와 정부지출 증가 쪽으로 기울어 재정적자가 발생된다. 어쩌면 미시경제학적 문제는 거시경제학적 문제보다 더 중대할지도 모르는데, 이는 미시경제학적 문제들이 합리적 무시의 영향을 더 쉽게 받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분명 정책담당자들에게 물을 날라 주었다. 그러나 케인스는 그들이 불을 끄리라고 너무 쉽게 신뢰해 버렸다.


12. 합리적 기대가 지배하는 기상천외의 세상

우리는 처음에 중상주의자들에 대해 배웠다. 그들은 정부가 경제를 돕는다고 했다. 그 다음 스미스가 나와서 정부는 경제를 해칠 뿐이라고 해싿. 케인스가 등장해서는 정부가 경제를 도울 수 있다고 했다. 통화주의자들은 정부가 경제를 도울 때도 있지만 해칠 때가 더 많다고 했다. 공공선택학파는 정부가 보통 경제를 해친다고 했다.

이제 합리적 기대이론학파는 선언하다. 정부의 개입이란 요술쟁이의 장난처럼 환상에 불과한 것, 그것은 현실을 바꿔 놓을 수 없다.!

존 무스 (J. Muth)의 1961년 논문과 함께 합리적 기대이론은 태어났다.

거시경제학 시장에서 '계약'은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계약은 노동, 자본, 기계 등의 명목가격을 결정함에 있어 확실성을 높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약은 한편으로는 시장의 유동성 (liquidity)과 유연성(flexibility)을 감소시킨다. 경영자들은 합리적 기대를 한다 하더라도 계약이 이들을 적응적 행동으로 제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 기대이론의 비판자들은 사실상 두 개의 질문을 던진다. (1)사람들은 묵은 버릇에서 벗어나 합리적 기대를 하는가? (2)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가? 둘 중 어느 하나의 대답이 '아니오'라면 합리적 기대이론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할 수 있다.


13. 먹구름, 그리고 한줄기 햇빛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가 말했듯 역사책을 펼치면 평화로운 시기는 여기저기에 흩어진 공백기로 나타나고 전쟁과 혁명만이 페이지를 뒤덮고 있다. 베카리아 (Beccaria :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법학자)가 말했던가. "행복한 국가는 역사가 없는 국가로다."

분명 우리에게는 희망을 품을 만한 이유가 있다. 보장도 없고 큰 승산도 없지만 이유는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정치적, 문화적, 심리적, 제도적 요인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과학기술은 이러한 각종 의식요인들에 의해 발목을 잡힐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고대인들처럼 모래를 신성시해 왔더라면 유리나 반도체를 발명하기는커녕 마이애미 해변가에 별장 하나 짓지도 못했을 것이다. 고대와 중세의 대부(貸付)금지는 경제 성장을 크게 저해했다. 노벨경제학자 로버트 솔로도 지적했듯 경제 성장에는 잘 교육된 대중이 필요하다. 또한 슘페터가 지적했듯 기업가의 의욕 역시 필요하다. 무수한 정신적 변수들이 앞으로 우리를 발전으로 이끌지 아먄으로 이끌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들의 생물학적 시계는 더이상 우리들의 인생철학과 일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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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학자라면 의례 근엄하고 무엇인가 방해하면 절대로 안 될 사람들이라는
좁고 비뚤어진 시각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고 홀가분해졌다. 경제학자들의 학문외의 삶이
조금씩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은 나에게 또 다른 책에게로 데려갔다.
바로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 좀 엉뚱하지만 짝궁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책을 보다보면 책은 한 권에서 몇 권으로 늘어날지 모를 일이지만.
재미있다.

그 이름이 거론되는 경제학자들의 책들을 본격적으로 찾아 볼 수 있도록 다리역할을 한다.

경제라는 것도 한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 신념을 붙들어야 하고 그 신념을 살아가는 일에 실현시키기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윤리, 수학, 역사, 철학, 정치, 예술, 문화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증명하려는 수 많은 시도에 놀라기도, 때로는 박수를 치기도 한다.

그리고 거시경제를 유지하면서도 미시경제를 간과하지 않으려는 다양한 탐색과 연구가 마음에 남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 손 끝이 추구하는 바는?

작년에 어느 책에서 본 자본은 노동의 축적물이다라는 문장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오늘날 과연 자본이 그렇게 지어진다고 되새기는 자본가들이나 노동자들이 얼마나 될까. 그것은 지나간 철학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경제를 모르는 나는 더 이상 생각이 되어지지 않는다.
나로서는 공부를 한다해도 알 길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어느새 내가 구입하는 모든 서비스와 재화들에서 소리없이 작동하고 있는 것.. 그것이 경제고 경영에 면면히 흐르는 시대사상임을 느낄 수 있다.

죽은 경제학자들이 그랬듯이 현대를 살아가는 경제학자들도
생명력 있는 아이디어들을 후대에 건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려운 학문이라는 두꺼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차림의 문자로 세상속으로 걸어나온 이런 책들이 한국에서도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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