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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3일 19시 06분 등록
"똘레랑스 눈으로 본 한국의 이미지"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지음 | 이향, 김정연 옮김 | 청년사


1. 책이 내게로 왔다.(감상)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일전에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우리나라의 개고기 먹는 풍습에 대해 야만적이라는 발언을 했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다. 문화상대주의의 개념을 떠나서 인종차별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낸 그녀의 무식함을 통해 새삼 프랑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착한 서양의 현자, 프랑스인 불레스텍스가 제 3자의 시각에서 한국의 역사를 조명하고 한국의 정체성을 탐색한 이 책을 보면 한국에 대한 저자의 순수하면서 애정 어린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지난 13세기부터 800년 동안 한국을 거쳐간 프랑스인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 동안 한국은 어떤 이미지로 국제사회에 각인되었는지를 탐색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실타래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가 결론지은 한국의 이미지는 책 제목처럼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는 17세기 제주도에 난파한 네덜란드의 탐험가 하멜의 ‘조선왕국기’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적대적인 분단 한국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 한국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들은 비교적 단순하고 남을 쉽게 믿는 편이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믿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한국민족은 여성적이어서 단호함이나 용기를 발휘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P39). “이들은 손으로 쓰거나 인쇄된 고서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너무도 소중하게 보관하기 때문에 왕의 동생이라도 와야 내줄 것 같다.”(P41). 하멜은 한국인을 단순하고 여성적인 ‘착한 미개인’으로 파악하면서도, 책과 학문을 숭상하는 ‘동양의 현자’로도 보았던 것이다.

한국의 정체성 이미지 변화에 따라 저자는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하는데, 첫 단계는 13세기 기욤 드 루브룩의 최초의 기록에서 시작되어 17세기 하멜에 이르기까지의 고립되고 미개한 ‘먼 한국’의 이미지다. 두 번째 단계는 18세기와 19세기 초의 ‘접근할 수 없는 한국’으로 변하고, 세 번째 단계는 1880년도부터의 시대로 한국이 외교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심연의 한국’으로 달라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지은이는 쟁기가 밭을 갈아 엎듯 한국을 완전히 변화시킨 한국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서의 이미지는 퇴색되었지만 1980년대를 거치면서(내 생각에는 소위 먹고 살만해 지기 시작하면서), 문화적 뿌리를 고민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조용한 아침’의 이미지가 부활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북한에 대해 ‘은둔의 왕국’으로 평가한 점이다. ‘은둔의 왕국’은 유교적 사고방식에 의해 재구성된다. 절대 왕조를 연상시키는 북한의 통치체계나, 남한의 군대문화, 패거리 문화 등 극단적 유교화의 모습은 그들만의 왕국을 연상시킨다.

한편으로 책을 통해 산과 여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 한국 우화에 소개된 ‘산’은 한국인의 무의식의 닫힌 공간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가족의 질서 유지를 집약하는 공간인 ‘논’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산에 오르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라는 해석은 매우 매력적이다. “뭔가를 찾아 떠난 주인공들은 산을 통해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산은 단순한 배경으로 머무는 대신 한국 우화에서 비중 있는 요소가 된다. 산을 넘어가는 것은 주인공들이 느끼는 결핍을 채워줄 본원적 자기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산에 오르려 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조금 알 것 같다.

바야흐로 여행의 계절,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여행은 낯선 곳,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속한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드는 데에 있다. “이제 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자 하는 목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행이란 개인적인 현실과 그가 속해 있는 문화적 현실을 가상의, 상상의 공간, 시간 속에서 더욱 돋보이게 하고, 타자를 지배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너무 멋진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산으로 여행을 간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인상적인 점이 있는데 먼저 그 중의 하나는 생동감 있는 사진의 모습이다. 소박하면서도 암울한 구한말의 생활상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감 넘치는 풍경에 애처로움이 솟아난다. 앵거스 해밀턴의 일상생활의 묘사도 참으로 인상적이다. 일상의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하루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산의 계곡 물로 몸을 상쾌하게 씻고,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캠프의 침대 위에 누워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위의 어두운 하늘의 깊이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이 조용하고 기나긴 밤에는 무언가 깊은 휴식을 주는 것이 있었다. 인근의 산에서 오는 고요함과 밤의 미풍, 흐르는 물의 속삭임과 우리 육체의 피로가 맞물려 달콤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귀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별이 나타나고 달이 뜨는 것을 바라보는 것, 숲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와 산꼭대기 멀리서 들려오는 높낮이가 구성진 농부의 가락 소리를 듣는 것은 상쾌한 일이었다. 우리 주변, 우리 아래, 우리 위의 모든 사람은 평화롭게 잠들고 있었다.”

또 하나, 뮈텔 신부가 흰색 옷을 입고 장옷을 뒤집어쓴 여성들의 모습에서 유대인들과의 공통점을 발견한 점도 흥미롭다. 한국인을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옷차림에서 그것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조용한 아침의 나라’, ‘은둔의 왕국’이라는 클리셰만을 보여준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서구의 우월한 시각이 아닌 타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국을 서술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에 분칠된 야만적인 관점이 아닌 비교적 반제국주의적 시각에서 프랑스 자신을 반성한 소중한 책이다. 저자의 똘레랑스 정신이 느껴지며 이 같은 작가가 더욱 많이 나오길 고대해본다.


2. 역지사지(易之思之)-내가 저자라면

불레스텍스는 왜 중국보다 더 먼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저자는 서문에서 1986년 한불외교 수립 100주년 기념으로 <르 몽드>에 실린 한 글에서 `한국학을 하는 프랑스인들 중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에서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로 저자는 무려 15년 동안 센 강변의 고서점, 런던과 로마 도서관, 파리 국립 도서관 등에서 수많은 철학자, 여행가, 지리학자, 인류학자를 만나며 `한국의 냄새'를 찾아내었다. 저자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책은 역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연도순으로 기술하는 편년체로 정리한 통사(通史)라 할 수 있다. 연대순 기록 방식의 문제는 시간의 흐름 순으로 기술하다 보니 다소 산만하고 주제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저자는 책을 전체적으로는 6단계로 구분하여 시간의 흐름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각 단계에는 사건과 주제 중심의 단락제목을 부여함으로써 산만한 구성을 극복하고 일관된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이 연구(이 책은 원래 박사학위 논문을 간추려 만든 것이다.)의 방법론은 생소하지만 비교문학의 ‘이미지학(imagology)’이다. “이미지학은 특정 문화권이 타 문화권에 대해 어떤 표상들을 제안하고 형성하고 변화시켜가는지를 그 고유의 방향성에 의거해 분석하는 것이다.”(P318) 여기서 방향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지’를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정체성이라는 본질은 필연적으로 형식을 통해 발현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미지로 대표되는 표상을 정체성의 끈을 놓치지 않고 본다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연구 방법론이라 할 수 있겠다.

한가지 더 방법론에 대해 언급하자면 저자가 취하고 있는 실증주의적 접근 태도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책 곳곳에 다양한 자료의 출처와 사진 등을 인용한다. 자료의 대부분은 프랑스 것이지만 자료를 통해 있는 그대로, 낱낱이 드러내 보이는 방식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 지배방식을 비판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불레스텍스는 비판적인 시각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객관적으로 숨은 의도 없이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은유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시각을 반성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다소 아쉬운 점은, 솔직히 말해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 ‘은둔의 왕국’ 등의 표상들이 한국의 이미지라는 결론 밖에 머리 속에 남는 게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 책이 더욱 기다려진다. 저자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보다 장기적인 연구과제를 위한 출발점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눈에 비쳐온 '한국의 표상'에서 출발하여, '한국성(Koreanity)' 개념을 이루는 요소들을 탐험하는 2단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사뭇 궁금하지만 근시일 내에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살짝 더 욕심을 부린다면, 요즘 근자에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원들이 연구하고 있는 한국의 정체성과 맞물려 불레스텍스의 그것이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공유되길 기대해본다.


3. 책에서 끌어다 쓰기(인용)

정체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개인이나 집단의 변하지 않는 특징으로서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고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개인의 경우는 그의 일생을 통해서, 그리고 집단의 경우는 그것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행동의 패턴에서이다. 그리고 그 패턴은 그 행동에 전제된 목적, 더 나아가서는 그 목적형성의 배경에 있는 세계관, 즉 물리적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 문학적 속성으로서만 규정할 수 있다. (P5)

그렇다면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본질’ ‘한국성’이 정말 있으며, 만약 있다면 그것은 어떤 요소로 어떤 방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지형적으로 ‘극동의 대륙적 반도’, 혈통적으로 ‘유라시아 기마민족’, 정치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끼인 약소국’, 종교적으로 ‘샤머니즘 불교 유교’, 문화적으로 ‘한(恨)’, 정서적으로 ‘은근과 끈기’, 미학적으로 ‘멋’ 등 우리 스스로 여러 가지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규정들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 하나도 반만년 한국의 특성을 총체적으로 만족스럽게 규정한다고 믿기 어렵다는 사실과 위의 모든 규정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직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성’을 규정하는 문제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P6)


Ⅰ 첫 만남(13~17세기)

1. 선(善)의 땅, 극동으로의 여행
여행은 우리의 뇌를 다른 이들의 뇌에 문질러 다듬는 것 - 몽테뉴 (P24)

2. 한국에 대한 최초의 기록
<드 루브북의 몽골제국 여행기>
드 루브룩은 한국이 몽골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한국은 몽골에 엄청난 조공을 바치면서까지 독립성을 지키고 조용함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폐쇄된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P28)

또한 한국은 ‘고립’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섬이라는 지리적 위치, 산과 숲, 혹한의 겨울로 인한 자연적 고립뿐 아니라 문화적 고립은 외적으로 속국의 수모를 겪어가면서까지 정치적 평화를 지키려는 한국의 태도, 내적으로는 외국 사절들을 고립시키고 항시 감시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P29)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러한 첫인상과 대조되면서 또 다른 측면, 즉 문화의 측면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도시가 존재한다는 언급, 갖가지 숭배의식의 존재, 그리고 허황된 이야기들이나 지속적 외교관계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오랜 전통을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한국은 오랜 문명국이며 도시와 전원의 문명이 동시에 있는 나라로 제시된다.
문화와 자연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19세기 유럽에서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의 주요 특징이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은둔자’이다. 은둔자는 자연적 요소와 문화적 요소의 긍정적 측면을 종합한 산물이다. 이것은 18세기에 이르러 ‘자연인’의 이미지와 ‘동양의 현자’의 이미지로 구체화되어 한국이라는 ‘타자’인식에서 양대 기둥의 역할을 하게 된다. (P30)

3. 한국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
이리하여 하멜이 그린 한국은 이후 구체화할 주요 표상들의 출발점이 된다. 이는 18세기에 이르러 두 개의 커다란 범주, 즉 착한 미개인의 이미지와 동양의 현자의 이미지로 나뉘어 전개된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면 ‘은둔의 나라’ 혹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여기서도 한국 사회는 서로 상반되는 양 극단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된다.(폐쇄와 개방, 폭력과 온순함, 성스러움과 세속성, 미개인과 문명인 등) 이렇게 쌍을 이루는 대립적 이미지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으며 이는 지정학적으로 적대적인 두 개의 한국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P42)


Ⅱ 동양의 끝, 한국에의 접근(18세기)

1. 중국 속에서 발견한 한국
<프레보의 여행의 역사>
한국인들은 대체로 온순한 천성이다. 이들은 학문에 대해 관심이 깊고 춤과 무용도 즐긴다. 북쪽지방은 한국에서 가장 강한 남자들과 최고의 병사들을 길러낸다. 기체는 여기에 너무도 훌륭한 법을 세워서 이곳에서는 간통과 도둑질이 무엇인지 모른다. 여기서도 밤에도 대문을 닫지 않는다. 통치조직상의 변화가 많이 일어나면서 이러한 오랜 순수성이 다소 퇴색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아직도 다른 나라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방탕한 여자들이 많고 젊은 남녀들은 지나치게 자유분방하다. (P59)

2. 계몽주의 시대의 한국 이미지
라페루즈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유토피아적으로 동방을 바라보던 방식, 수치들만 나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그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시도했다. 이는 훗날 대지와 자연의 연구를, 풍경을 보는 즐거움과 연계시키는 낭만주의 사조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은 동양의 현자와 착한 미개인의 나라만이 아닌 ‘아름다운 풍경의 나라’로 묘사된다. (P84)

우선 볼테르가 본 한국의 특징은 첫째 중국에 대한 종속관계 그리고 역사적 연대기적 측면에서의 한국의 가치 둘째 시간적 공간적으로 극단에 위치한 한국, 셋째 한반도의 ‘깊숙한 곳’이라는 개념, 심오하고 멀고 내면적인 가치 등이다. 볼테르의 한국은 멀고 깊고 동떨어지고 어두운 것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야성적 성격과 종주국을 도우려는 전사들의 숭고함이 동시에 있는 양면적인 한국임을 알 수 있다. (P85)


Ⅲ 고요한 나라로의 방문(19세기)

1. 제국주의, 선교사 그리고 한국
<샤를르 달레의 한국교회사>
한국의 귀족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오만한 계층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군주나 법관, 그외 다양한 기관이 귀족들을 다스리고 그들의 권력을 견제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귀족들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내분이 잦아도 자신들의 특권을 옹호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놀라운 단결력을 보인다. (P110)

그들의 민첩함은 실로 놀랍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산에서 뛰어다니고 종종 산의 정상에서 모임을 하면서 얻어진 능력인 듯하다. – 앙리 주베르 (P115)

2. 문호개방과 한국학의 성립
<한국 우화의 한국적 특징>
한국의 산은 따라서 대부분의 이야기 속에서 입문의 역할을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뭔가를 찾아 떠난’ 주인공들은 산을 통해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산은 단순한 배경으로 머무는 대신 한국 우화에서 비중 있는 요소가 된다. 산을 넘어가는 것은 주인공들이 느끼는 결핍을 채워줄 본원적 자기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야생의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모든 성숙에 수반되게 마련인 시련을 겪는 곳이다. (P143)

한국 우화의 또 다른 특징은 한국적 정서에 있다. 단순한 구조 속에서 이 우화들은 유교적 원칙을 통해 전통사회의 사회적 일체감을 재확인하고 있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운명만을 다루는 프랑스 동화들에 비해, 한국의 우화는 사회의 공동체적 균형유지에 참여함으로써 신화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P143)


Ⅳ 세기 전환기의 한국 체험(20세기 전후)

1. 한국에 대한 본격적인 기행문
이제 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자 하는 목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행이란 개인적인 현실과 그가 속해 있는 문화적 현실을 가상의, 상상의 공간, 시간 속에서 더욱 돋보이게 하고, 타자를 지배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여행이란 낯선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며, 멀고도 먼 타지의 가장 극단적인 상황(미지, 추위, 밤, 두려움, 폭력, 과거)을 견디어내는 시도인 것이다. (P150-151)

하루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산의 계곡 물로 몸을 상쾌하게 씻고,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캠프의 침대 위에 누워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위의 어두운 하늘의 깊이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이 조용하고 기나긴 밤에는 무언가 깊은 휴식을 주는 것이 있었다. 인근의 산에서 오는 고요함과 밤의 미풍, 흐르는 물의 속삭임과 우리 육체의 피로가 맞물려 달콤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귀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별이 나타나고 달이 뜨는 것을 바라보는 것, 숲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와 산꼭대기 멀리서 들려오는 높낮이가 구성진 농부의 가락 소리를 듣는 것은 상쾌한 일이었다. 우리 주변, 우리 아래, 우리 위의 모든 사람은 평화롭게 잠들고 있었다. – 앵거스 해밀턴 (P180)


Ⅴ 동양의 신비와 근대적 현실(20세기)

1. 한국 안에서 들여다 본 한국
헤브라인들은 농경생활을 하는 동시에 유목민이었죠. 한국인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한국인들은 중앙아시아의 고원과 초원을 넘어 민족 대이동을 한 후, 어딘가에 정착하게 되는데, 바로 한국인들의 가나안이 한국이 된 것이지요. 이것이 일부 인유학자와 동양학자가 주장하는 학설입니다. 논리적이고도 있을 법한 가설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추운 나라인 한국에서 흰색 옷을 입고, 유대인들이 입던 장옷을 여자들이 쓰고 다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 뮈텔 신부 (P200)

피에를 로티의 글에서 나타난 한국의 이미지는 긴 잠의 마지막 순간들, 첫 새벽의 요란함에 당황해 갑자기 깨어난 한국의 그것이다. 불안정성, 향연속의 무력함, 죽음이라는 주제가 내포되어 있는 ‘은둔의 왕국’의 부동성과 고립이라는 이미지는 큰 곤충과도 같은 모습을 한, 쓰러져가는 구제국의 시대에 뒤떨어진 고관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P205)

<조르주 뒤크로의 애처롭고 부드러운 한국>
제1장 : 남산을 통해 서울로 입성하는 자는 나무 사이로 거대한 초가지붕의 마을을 볼 수 있다.
제2장 : 한국의 가옥에서는 무엇보다도 골조가 가장 중요하다.
제3장 : 한국인들은 황인종 특유의 찡그린 인상이 아니다.
제4장 : 한국인의 의상에서 주류를 이루는 색상은 흰색이다.
제5장 : 가진 것은 없어도 한국인들은 행복하다.
제6장 : 한국의 거리는 아주 상업적이다. 거리에는 작은 가게와 상점이 즐비하며, 직업은 중세 때처럼 구역별로 분업화되어 있다.
제7장 : 해가 지면 가게는 문을 닫는다.
제8장 : 장례식이 치러지는 것도 밤이다. (한국의 장례식은) 눈에 띄게 화려하고, 연극적이지만, 강력한 힘이 묻어난다. 어둠속에서 지렁이처럼 빛나는 횃불을 밝히고, 야밤에 묻으러 가는 사자(死者)와 울부짖는 소리는 서민의 심금을 울리는 장대한 볼거리이다.
제9장 : 긴 결혼식 행렬은 한낮 서울거리를 지나간다. 한 줄기 빛처럼.
제 10장 : 비 오는 날이나 겨울날, 시골의 풍경을 만끽할 수 없을 때, 한국인들은 병풍 그림을 보고 꿈에 젖는다.
제11장 : 한국의 선비들은 한자를 배우고, 한자로 시를 짓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중국적 취향은 일반서민을 감동시키지는 않는다.
제12장 : 일본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자, 고종황제는 북한산 아래의 궁궐을 떠나 외국 공관이 밀집하고 있는 시내 중심으로 거처를 옮겼다.
제13장 : 황제는 밤에 알현할 수 있다.
제14장 : 가벼운 겨울날 아침, 어린아이들은 발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학교에 간다.
제15장 : 맑은 공기를 타고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프랑스 마을의 종소리처럼 장엄하게.
제16장 : 북한산은 서울 북쪽에 우뚝 솟은 산으로서 서울을 굽어보고 있다.
제17장 : 남산은 북한산보다는 접근하기 쉽다.

조르주 뒤크로는 서울의 초가지붕을 보고 ‘밀짚모자를 눌러쓴 행복한 시골아낙’이라고 표현하면서 가난하지만 결코 슬픔이 배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P210)

이별이란 마음에 붙은 불
눈물은 상처받은 마음을 적셔주는 단비
내 영혼에 술을 부어
님이 취할 수 있다면……
술은 강력한 음료
은빛 달, 저녁, 새벽녘은
이제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붕 위를 나는 고독한 외기러기여,
하늘을 날다가
나의 님을 만나거든
전해다오,
우리의 이별은 곧 죽음이라고.
- 실연당한 여인의 시 (P217-218)

여기서 제시된 속담들은 자신의 한계와 애로사항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오랜 문화의 특징을 제시한다. 특히 가난한 나라(배를 주고 씨를 달라한다), 운이 없는 나라(소금을 팔면 비가 오고, 밀가루를 팔면 바람이 분다), 재앙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나라(초가삼간 다 태우고 벼룩 잡았다고 좋아한다)의 이미지를 전달해준다. 속담은 욕심 많은 자, 시샘하는 자, 잘난 척하는 자, 거드름을 피우는 양반을 비웃고, 힘있는 자에게 경고한다(왕도 농사일은 못한다). 또 어떤 속담에서는 당시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을 암시해주기도 한다(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P222)

이 세련되고, 꿈을 꾸는 듯하고, 가난한 민족에게서는 사악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운명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한국인들은 ‘웃는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는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는 속담에서처럼 스스로 위로한다. 옛 선조들의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만을 바랄 뿐인 이들의 튀어나온 이마 위로 먹구름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P230)

2. 프랑스 현지의 눈으로 본 한국
여성들의 삶과 역할이 한국보다 더 가려져 있는 나라는 없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 외부세계에서 고립되어 살았던 것처럼, 한국 여성들도 외부세계에서 고립되어 살아왔다. (P232)

3. 예술가의 눈에 비친 한국
새벽의 속삭임을 주의 깊게 들어보니, 방망이질을 하며 흰 속옷과 겉옷들을 빠는 여자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옷을 펴기 위해 다림질을 대신해 다듬이질을 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빨고 다리고 있는 것은 하얀 새벽 그 자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 기욤 아폴리네르 (P251)

달의 왕은 ‘은둔의 나라’라고 했지만 화자는 ‘슬픈 은둔의 왕국’으로, 왕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지만 화자는 ‘흰옷의 땅’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강화된 둥 이미지는 ‘은둔의 왕국’에서 슬픔을 연상하고, ‘조용한 아침’에 백색의 청결함을 연결하면서 그 범위를 확대시킨다. (P252)

백색은 우리의 영혼에 절대 침묵과 같은 역할을 한다……침묵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솟아오르는 기쁨으로 가득 찬 무이여, 더 잘 표현하자면 탄생 이전의 무, 시작 이전의 무이다. 빙하기의 대지는 차가운 백색의 모습으로 그렇게 메아리쳤을 것이다. – 바실리 칸딘스키 (P254)

양과 음은 각각 그 안에 상대방의 싹을 품고 있으며, 돌출된 부분에서는 반대 색깔로 모양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 폴 클로델 (P269)

기욤 아폴리네르는 한국과 관련된 소재들을 사용해 입체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 콜라주 기법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폴 클로델은 이 소재들을 아시아에 대한 좀 더 전반적인 표상을 구성하는 데 사용하고, 이를 통해 그는 두 대륙간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더욱더 기독교적이고 영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P271)


Ⅵ 두 개의 한국(현대)

1. 타국으로서의 한국
(한국은) 자신의 민족문화의 핵을 중심으로 ‘중국적 성격’의 갑옷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만들었다. 중국 영향권에 완전히 녹아 있는 듯한 환경에서 오히려 고유의 공동체 조직력과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개발했고, 이로 인해 매우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 자크 페조 마사뷔오 (P281)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관찰자는 한국인들이 매우 양심적이고 근면하다고 평가해왔다. 한국인들은 분명한 표현방식으로 논쟁하기를 좋아하고, 일본의 복잡한 사고방식이나 중국인들의 섬세함과는 거리가 있는 직설적인 생기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유럽인들의 태도에 근접한 것으로 보여진다. (P281)

2. 두 개의 다른 나라 : 남과 북
한국 땅은 이렇듯 잃어버린 천국이다. 이미 20세기 초반의 저자들에게서도 이 주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유년시절의 땅, 산속의 마을,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고향’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일제 식민치하,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으로 인해 멀어져야 했던 고향, 가족과 흩어져 살아남은 이들이 느끼는 향수와 일종의 ‘결핍’의 느낌, 바로 ‘한’이라고 불리는 회한의 감정 말이다. (P290)

3. 다른 시간 속에 놓인 두 개의 한국 : 전통과 현대
한국의 급성장 뒤에는 달러 세례말고 다른 것이 있었다. 문화적인 과거가 있었기에 한국인은 오늘날 그토록 놀라운 도약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문명적 현상인 것이다. – 다니엘 부셰즈 (P300)

김일성의 영향력은 유교의 덕목 가운데 하나인 효 사상을 통해 살펴보아야 한다. 김일성의 영향력은 인간성의 극단적 유교화의 최종적 완성이다.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유교의 영향력이 남한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교회의 제단에 앉아 있는 근본주의적 성향의 목사들은 효의 위대한 상징들의 스펙트럼일 뿐이다. 한국에서의 현대성은, 결국 전통적 덕목과 가치의 연장선상에서 찾아야 한다. – 김용옥 ‘주기 철학 및 한국의 현대성 추구에 대한 고찰 (P309)

한국에서의 사고방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행동은 공자로부터 전해 내려온 극도로 경직된 일련의 규범을 따르고 있다. 겉모습이나 생각이나 절대로 남들과 달라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은 불손함의 극치로 간주된다. 이렇게 자신을 감추다 보니 한국인들은 창의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상관에 대한 복종은 동구 국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관료체계를 낳았다. – 파스칼 와티에 ‘노동의 챔피언’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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