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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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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2일 10시 28분 등록

즐거운 지식

*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지음, 곽복록 옮김, 동서문화사, 1976.07.01

 

1. ‘신을 죽인 인간(저자에 대하여)

 17세니체.JPG

17,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그는 그 어떤 철학자보다 젊음을 사랑했다.

 

17세 사진을 게시한 이유는 니체가 가장 자신감에 넘쳐 보이는 사진이라 생각해서다.

우주를 조롱하고 인간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철학적 사념은 아마 이때 움트지 않았겠는가.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인간을 흥미롭게 알아본다.

 

젊은 날의 니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중의 하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었다. 그는 본(Bonn)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 문헌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한 학기를 보내면서 신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어머니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는 본대학에서 만난 저명한 문헌학자인 리츨(F. W. Ritschl)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학교를 옮긴다. 1865 8 17일에 본을 떠난 니체는 라이프치히에 도착해서 여전히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리츨 교수를 따라 문헌학자의 꿈을 키우게도 되었지만, 20대의 니체가 진정한 스승을 발견한 것은 어느 헌 책방에서였다.

 

“나는 그때 근본적인 원칙도, 희망도, 단 하나의 즐거운 기억도 없이 고통스러운 경험이나 실망스러운 일들만을 겪으면서 절망하여 갈팡질팡하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상상해 보라. 어느 날 나는 그의 책을 발견했다. 헌 책방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그 책을 집어 몇 쪽을 넘겨 보았다. 도대체 어떤 악령이 내게 ‘이 책을 집으로 가지고 가라’고 속삭였는지 모르겠다. 이런 행동은 평소 책을 살 때 망설이던 버릇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집에 있던 나는 새로 획득한 보물을 가지고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그 정력적이고 우울한 천재가 뿜어내는 마력에 나를 맡겨 보았다. …… 여기에서 나는 세계와 인생, 그리고 나 자신의 본성이 소름 끼치도록 웅장하게 비치고 있는 하나의 거울을 보았다. …… 여기에서 나는 병과 건강, 유배와 피난처, 지옥과 천국을 보았다.(니체, <라이프치히에서 보낸 2년에 대한 회고>)

 

그리고 얼마 뒤에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랑게의 저서를 읽고 영향을 받게 된다. 1866년의 여름 기간 동안 니체는 랑게의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를 탐독한 후 일 년 반 뒤인 1868 2 16일에 게르스도르프에게 편지를 보내 랑게의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니체의 권유에 의해 게르스도르프는 이미 쇼펜하우어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니체는 이번에는 랑게주의자가 되기를 권유한다. 니체 자신이 랑게주의자가 돼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 책은 제목이 약속하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무한히 담고 있으며, 반복해서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진정한 저장고네.” 그리고 니체는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유물론 운동, 다윈 이론을 포함한 자연과학 …… 윤리적 유물론, 맨체스터 학설”에 대해 언급한다. 니체는 랑게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887년에 개정판이 나왔을 때는 한 권을 다시 통독할 정도였다. 이처럼 매번 새로운 ‘주의자’가 되기를 권유하는 것은 니체 철학의 핵심인 ‘생성’(혹은 되기)의 실천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젊은 날의 니체에게 또 다른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바그너였다. 1868년의 10 28,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을 들은 후 니체는 바그너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된다. 여성편력이 화려했던 바그너는 당시 라이프치히에서 은신 중이었다. 긴밀하게 주선된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은 식사와 대화를 나누며 교감하게 된다. 이후 니체의 행보는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1869 4. 스물네 살의 니체는 바젤 대학의 고전어와 고전문학의 촉탁교수로 위촉된다. 리츨의 강력한 천거 덕분이기도 했고, 미망인이었던 어머니의 생활을 돕기 위해서라도 니체가 이 자리를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니체가 선생으로서 보인 재능에 대해 몇 가지 일화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방패 이야기다. 니체는 여름방학 동안 호머의 <일리아드(Iliad)>에 등장하는 방패에 대한 묘사를 읽어오라는 숙제를 냈다. 방학이 끝난 첫 수업 시간에 니체는 한 학생에게 아킬레스의 방패에 대한 묘사를 읽었는지 물었다. 그 학생은 읽지 않았으면서도 읽었다고 대답했다. “좋아. 그러면 우리에게 아킬레스의 방패에 대해 한번 묘사해 주게나.” 곧 바로 침묵이 이어졌고, 니체는 10분 동안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으로 교실을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니체는 말했다. “아주 잘했네. OO군이 우리에게 아킬레스의 방패를 설명해 주었으니, 이제 계속 수업을 하도록 하지.

 

바젤에서의 생활은 니체에게 다양한 교류의 장이었다. 바그너와 깊은 유대를 나누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 신학자인 프란츠 오버베크, 종교사학자이자 법사학자인 바흐호펜, 동물학 교수인 뤼티마이어 등의 학자와 교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니체는 문헌학 교수의 자리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쓴 <비극의 탄생>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자 이러한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훗날의 니체는 “스물네 살에 대학 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글을 남길 정도였다

 

심리적인 것도 있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교직 생활을 하기 힘들어진 니체는 1879년에 적은 연금을 받기로 하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십 년간의 교직 생활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긴 투병 생활과 함께 니체의 다양한 저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도덕에 객관적인 기초가 있다는 생각을 비판한 <아침놀>(1880), 처음으로 신의 죽음을 선언한 <즐거운 학문>(1882), 위버멘쉬(국내에서는 흔히 초인이라고 번역되어 왔다.)라는 개념을 도입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 니체의 철학적 윤곽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선악을 넘어서>(1886)가 이 시기의 주요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책으로 출간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기에 쓴 수많은 메모들 역시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니체가 죽은 후에 나온 <힘에의 의지>는 니체의 유고 관리를 맡은 여동생 엘리자베트 자의적으로 유고를 편집하여 만든 책이었다. 유고의 자의적인 추출과 고의적인 삭제를 통해 완성된 책은 한때 나치의 사상에 맞춰진 것처럼 해석되면서 니체를 둘러싼 정치적 스캔들을 제공했다. 엘리자베트가 전쟁을 찬양하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독일군에게 보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녀는 니체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는데, 훗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된 거짓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니체의 할아버지는 카톨릭교의 주교에 해당하는 루터 교회의 감독관이었으며, 아버지 칼 루드비히 니체는 작은 마을의 목사였다. 어머니 프란치스카 윌러는 루터 교회 목사의 딸이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이 일종의 반항처럼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또 다른 전기적 해설은 니체가 가풍에 충실한 아이였으며, 아버지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보였다고 진술한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은 어린 니체에게 충격을 주었고, 니체의 여정이 유사아버지를 찾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가령, 니체와 바그너의 기묘한 관계가 상징적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은 죽었다.”라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공격이나 논박이 아니라 서구의 지성사를 꿰뚫는 선언인 동시에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즐거운 지식에서 신의 죽음을 설명하는 한 대목을 음미해 보자. “사람들은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그의 그림자를 동굴에서 보여주었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이 지금 상태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신의 그림자가 떠도는 동굴들은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자 역시 정복해야만 한다. 니체의 이 말은 그가 특정한 종교를 공격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니체의 개인사적 스캔들로 가장 유명한 것은 바젤 대학의 동료였던 철학자 파울 레와 그가 소개한 루 살로메와의 삼각관계이다. 레는 살로메에게 청혼을 했지만 거절 당하고, 플라토닉한 삼각관계를 형성하자는 살로메의 요청에 따라 니체를 끌어들이게 된다. 그런데, 니체가 살로메에게 청혼을 하면서 이들의 삼각관계는 종결이 된다. 이들의 사연은 호사가들의 재밋거리로 자주 거론되면서, 여러 작품과 상상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스탠포드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인 어빈 얄롬이 쓴 소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살로메가 니체를 위해 프로이트의 스승인 브로이어 박사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실제로 만난 적이 없지만, 이 소설은 허구를 통해 니체를 정신 분석해 보는 흥미로운 상상의 소설이다)

 

20세기의 뛰어난 철학자인 들뢰즈는 니체에 관한 저작 <니체와 철학>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니체가 원했던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20세기 니체의 영향력은 철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이들에 의해 전유되었다개인적으로 니체를 다룬 흥미로운 책들로는, 영국의 소설가로 잘 알려진 아이리스 머독이 쓴 니체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조르주 바타유가 쓴 니체에 관하여’, 피에르 클로소프스키가 쓴 니체와 악순환등을 들 수 있다. 이 저자들은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라 소설을 비롯해서 다양하게 글을 썼던 인물들이었다

 

그는 그의 생을 전체를 관통하는 생철학을 일구었고 실존주의의 선구자, 또 파시즘의 사상적 선구자로 말해지기도 한다. 스위스의 바젤 대학 교수직(1869~1879)을 그만두면서부터 고독한 생활을 하다가 정신이상으로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쳤다.

 

참고) (구글, 네이버) 인물검색, 네이버캐스트

 

2. ‘즐거운 지식(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동서문화사판 즐거운 지식은 앞부분에 비극의 탄생과 같이 편찬되었다.

따라서 즐거운 지식 145page부터 455page까지다.

 

2판을 위한 머리말

 

□ 이 책은 얼음과 눈을 녹이는 봄바람의 언어로 쓰였음이 분명하다. 즉 신념과 긍지, 방황, 모순 그리고 변덕스러운 봄 날씨가 이 책 속에 뒤섞여 있다. (p. 147)

 

□ 갑자기 생겨난 미래, 임박한 모험, 다시 펼쳐진 바다와 다시 허락되고 믿게 된 삶의 목표들. 이러한 것들을 느끼고 예감한 기쁨 (p. 147)

 

Ü 가슴이 뛰는 순간의 영상 포착

 

□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완전한 고독, 부주의한 정신적 금욕과 탐식 -사람들이 낭만주의라 부르는 것- 에서 생기는 부작용을 다 받아 주는 영혼의 식이요법, 생각해 보면 잔인하고 모질고 가슴 아픈 것들에 대한 이 주의로서의 원칙적 태도 (p. 148)

 

□ 생동하는 영혼이란 곧 건강할 때는 자존심 때문에 허용이 안 되는 허약함, 회개, 포기, 실망, 경직된 상태 등 영혼의 온갖 병리학적인 상태의 다른 이름들이다. (p. 149)

 

□ 나는 넓은 안목으로 봐서 지금까지의 철학은 고작 육체에 대한 해설, 더 정확히는 육체에 대한 오해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해 본다. 지금까지 사상의 흐름을 장악해 온 최고의 가치판단 뒤에는 개인의 계급의 또는 종족 전체의 육체 구성에 대한 오해가 숨겨져 있었다. (p. 149)

 

Ü 우리의 앙드레 보나르는 그의 책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육체에 대한 한계를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전쟁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혁명이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육체와 육체가 품는 정념에서 온다. 모든 전쟁은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 부를 축적해야만 하지 않는가. 그 때문에 우리는 육체의 노예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철학을 생각할 시간이 없는 이유다. (그리스인 이야기 3, p. 186)’

 

□ 나는 아직도 단어의 예외적인 의미에서 철학적인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주 예리한 의사를. 국민, 시대, 인종, 인류 등의 총체적인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 (p. 150)

 

Ü 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쳐지고 연구되는 일들은 이를 진단할 수는 있겠으나 치유할 순 없겠다. 결국 이를 치유하는 이들은 가슴이 따뜻한 정치가이거나 아니면 시인이다.

 

□ 삶-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빛과 화염으로 바꾸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것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p. 150)

 

□ 오직 거대한 고통만이 영혼의 최종적인 해방자이다.

마치 생나무 장작불 위에서 불태워지는 것과 같은 고통, 오직 이러한 고통만이 우리 철학자들로 하여금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게 강요할 것이다. (p. 151)

 

Ü 더 높은 곳을 향하고 더 험한 곳을 향하는 등반가는 산과 함께 생노병사하고 오욕칠정을 같이 한다. 사유와 관념으로 파생된 철학적 사상들이 글에서, 입에서 인간과 우주를 능멸하며 널뛰기를 할때, 등반가는 죽음과 맞서는 두려움을 ''으로 느끼며 온갖 철학적 사유를 체화 한다

우주적 관념들이 그들의 몸, 얼기설기한 실낮같은 근섬유에 살아 꿈틀댐을 느낀다. 초모랑마를 오르는 등반가여신은 당신의 친견을 허락할 것이다.  (내 블로그의 글을 인용함)

 

□ 정열을 부르짖는 연극과도 같은 비명이 이제는 얼마나 우리의 귀를 아프게 하는가! (p. 152)

 

Ü 그래서 우리는 온갖 일에 정열을 강요하는 사회에 burn out 되어 있다.

 

어쩌면 진리란 자신의 바닥을 보여 주지 않을 만한 이유를 숨기고 있는 여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의 이름은 희랍어를 쓰자면- 바우보가 아닐까?

 

Ü 바우보, 여성의 생식기를 인격화한 것. 원시적이고 음란한 여자 귀신.

 

□ 아, 그리스인들! 그들은 정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겉으로든 속으로든 피상적 수준에 머무르는 것, 가상 숭배와 형식, 음조, 단어, 가상의 올림푸스에 대한 믿음을 과감하게 품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피상적이었지만 그것은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와야 할 곳이 아닌가- 현재 사상의 가장 높고 가장 위험한 고지에 올라 그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그 밑을 내려다본 우리 영혼의 곡예사들이 말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도 그리스인들이 아닌가? 형식과 음조와 단어의 숭배자들? 그러므로 또한 예술인들? (p. 153)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

(독일 식 압운의 서곡)

Ü 독일어 지식에 대한 배경이 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나의 행복

추구하는 일에 지치게 된 나는

발견하는 일을 배우게 되었다.

역풍을 만난 이후로 나는

어떤 바람과도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 (p. 155)

 

Ü 행복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지는 삶 속에 있는 순간이다. 그래야 살아낼 수 있다.

 

두려움 없이

네가 서 있는 곳을 깊이 파라!

그 밑에 샘이 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외치게 놔두어라.

아래로 가면 오직 지옥뿐이다! 라고 해도 (p. 155)

 

Ü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근원은 아마도 내면의 가장 밑바닥이 아니겠는가. 남들이 보면 밑바닥 삶은 지옥으로 보일 지 모르나 어디 그 삶만 지옥인가.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란 모두 똥파리를 유인하는 똥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처세술

평지에서 머물지 마라!

너무 높이 오르지도 마라!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중간 높이이다. (p. 156)

 

Ü 이런 처세술이 사회에 만연되면 위정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펼치기가 아주 쉬워진다.

 

나의 장미

그렇다! 나의 행복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

모든 행복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리라.

너희는 나의 장미를 따고 싶으냐?

 

바위와 가시덤불 산울타리 사이에

너희는 웅크리고 몸을 감추고

자주 손가락을 찔릴 것이다.

 

나의 행복은 조롱을 즐기기 때문에

나의 행복은 음모를 즐기기 때문에

너희는 나의 장미를 따고 싶으냐? (p. 157)

 

Ü 행복에도 대가가 있는가.

 

빛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과 마음이 시들기를 원치 않는다면

태양을 향해도 그늘 속을 걸어라! (p. 158)

 

Ü 사랑한다고 그 사랑에 파묻혀 살 순 없다. 살 수도 없다. 거리가 필요하다.

 

용감한 사람

아교로 붙인 우정보다는

차라리 완벽한 적의가 낫다! (p. 158)

 

녹도 필요하다. 예리함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언제고 말할 것이다. – ‘너는 너무 어리다!’ (p. 158)

 

Ü 지적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어른보다 아둔한 아이가 낮다.

 

위로

산을 오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그저 오르기만 하라! (p. 158)

 

Ü 위로 향하는 자를 위로하는 말인가.

 

권력자의 말

구걸하지 마라! 왜 우는 소리를 내느냐!

빼앗아라! 부탁하노니, 자 뺏어 가라! (p. 158)

 

Ü 권력자의 내면과 외면을 단 두 줄로 나타내었나

 

옹졸한 넋

옹졸한 넋에는 머물 수가 없다.

거기는 선도 악도 서있을 곳이 못 된다. (p. 158)

 

Ü 용도가 어떻든 그릇은 크고 보자.

 

남과 여

내 마음을 사로잡는 여성이 있으면 빼앗겠다 고 남자들은 생각한다.

여자들은 빼앗지 않고 훔친다. (p. 159)

 

해석

나를 해석하려면 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해석자는 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나의 모습도 밝은 빛 속으로 높여 주리라. (p. 159)

 

Ü 나의 문제로 스스로 풀 줄 아는 자. 나의 오지로 스스로 들어가는 자.

 

방랑자

더 이상 길은 없다. 주위는 심연, 그리고 죽음의 정적뿐!

너는 그것을 원했고 너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길을 버렸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방랑자여! 이제야말로 냉정하고 똑똑하게 바라보라!

위험의 존재를 믿는다면 너에게 남는 것은 파멸뿐.

 

초심자를 위한 위안

돼지들 사이에 들러싸인 어린아이를 보라.

어쩔 줄 몰라 말조차 못한다.

아이는 계속 울기만 그저 울기만 할 뿐이다.

언젠가 서서 걸을 날이 올까?

절망하지 마라! 곧 너희는

그 아이가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

일단 두 발로 설 수만 있다면

곧 물구나무도 설 수 있으리라. (p. 161)

 

별들의 에고이즘

둥근 회전통 주위를 스스로

끊임없이 돌고 또 돌았나니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불타는 태양 뒤를 따르면서

불타지 않고 견뎌 낼 수 있겠는가? (p. 161)

 

Ü 변방이 변방의 의젓함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상은 변두리가 없으면 중심이 없는데 변두리는 중심에 다가서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주류 욕망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고독한 자

추종하는 것도 앞장서는 것도 싫다.

복종, 아니! 지배, 그것도 아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남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만이 타인을 지도할 수 있다.

자신을 이끄는 것 조차 나는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숲이나 바다의 동물처럼

한동안 나를 잊는 것.

외딴섬에서 행복한 망상에 잠겨 앉아 있는 것.

이윽고 멀리서부터 나를 불러들여

나 자신을 나 자신에게로 유혹하는 것. (p. 162)

 

신앙심 깊은 자는 말한다.

신은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를 창조했기 때문에!

하지만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 고 너희 현명한 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창조한 것을 인간이 사랑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스스로 창조했는데 그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악마의 발굽을 지닌 절름발이의 논리이다. (p. 163)

 

Ü 理神論, 人類神

 

헤라클레이토스주의

친구가 되기 위한 삼위일체는

힘들 때는 우정

적 앞에서는 평등

죽음에 임박해서는 자유! (P. 164)

 

지나치게 고상한 자의 원칙

네발로 기어 다니기보다는

발끝으로 서는 게 낫다.

열린 문틈으로 기어들어 가기보다는

차라리 열쇠구멍으로 훔쳐보는 게 낫다. (p. 164)

 

권고

네가 원하는 것이 명성이냐?

그렇다면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라.

적당한 때에 스스로 체념하라.

명예를!

 

영원한 방문자

나는 오늘 왔다. 오늘이야말로 적절한 날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오는 자는 누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의 독설이 그를 괴롭힌다.

너는 너무 일찍 왔다. 너는 너무 늦게 왔다. (p. 165)

 

Ü 오늘이 아닌 날이 어디 있는가. 죽는 날도, 태어난 날도 모두 오늘이다.

 

피곤한 자의 판단

모든 지친 자는 태양을 저주한다.

그들에게 나무의 가치는 그림자뿐! (p. 165)

 

법칙에 반대하여

오늘부터 나의 목에는

튼튼한 가죽끈으로 된 시계가 걸려 있다.

오늘부터 별들의 운행,

태양, 닭 울음소리, 그림자, 모두가 그 힘을 잃었다.

전에는 내게 시간을 알려 주던 것들이

이제는 벙어리요, 귀머거리요, 장님이 되었다.

나는 모든 자연이 바위처럼 침묵하는 것을 발견했다.

법칙이라는 이름의 시계가 똑딱거리는 곳에서는. (p. 165)

 

Ü ‘~은 언제나 나를 거슬리게 한다. 누군가 ~법을 이야기하면, 아깝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실천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분별을 잃다.

그녀는 방금 현명함을 손에 넣었다 어디서 얻었는가?

조금 전 그녀에게 매혹되어 한 남자가 정신을 잃었다.

이 혼란 전에 그는 상당히 분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지는 악마의 손아귀 속으로 사라져 버린 건가?

아니, 아니다! 틀림없이 그녀에게로 간 것이다! (p. 166)

 

Ü 정신을 잃을 때 잃어버린 정신이 가는 곳, 다시 주워오든 되찾든 잘 모르겠지만.

 

나의 독자에게

튼튼한 치아와 튼튼한 위장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이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내 책을 소화하면

나와도 사이가 좋아질 터! (p. 167)

 

시인의 허영심

내게 아교만 다오, 나무는 내가 가까운 아무 데서나

찾을 수 있으니까!

4개의 무의미한 시구를 모아 의미 깊게 만든다.

그것은 꽤 자랑할 만하다! (p. 167)

 

Ü 왠지 뜨끔해 지는 이유는 뭐지

 

□ 별의 도덕

별이여 가라, 예정된 네 궤도를

너에게 암흑이 무슨 상관인가?

기쁨에 차서 구르며 이 세상 이 시대를 초탈해 가라!

지상의 비참은 너에게 낯설고 먼 것이다.

너의 광휘는 먼 세계를 위한 것.

연민은 악덕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네게 필요한 단 하나의 계명은 순수하라!(p. 169)

 

Ü 순수하게 반짝이기만 해라. 그 외엔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느니

 

□ 인간은 전체로서나 특히 개인으로서나 종족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사명을 늘 지니고 있단 사실이다. (p. 173)

 

□ 증오, 악의 어린 희열, 약탈욕, 지배욕, 기타 모든 악이라 불리는 것, 그런 본능들은 종족 보존을 위한 놀랄 만한 경제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p. 173)

 

Ü 이럴 때는 꼭 신이 있는 듯 하다. 눈물 겨운 DNA 전달자로써의 운명,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그런 생각이 드는 때

 

종족이 전부이며 개인은 언제나 무나 다름없다. 라는 명제, 이것이 인간성 그 자체에 결합되어 각자에게 늘 이 최종적인 해방과 무책임을 향한 길이 열릴 때, 분명 그때에는 즐거운 지식만이 남게 될 것이다. (p. 174)

 

□ 결국 종족을 위해서 일해 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도 또한 삶에 대한 믿음을 촉진함으로써 종족의 삶을 촉진한다. 산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 또는 이 삶에는 의미가 있다. 삶은 그 배후에 아니면 그 밑바닥에 중요한 뭔가를 감추고 있다. 명심해라. 라고 그들은 외치고 있다. (p. 174)

 

Ü 생각해보면 사회 공동체에 굉장한 배신감으로 잠을 잘 수가 없다. 왜 교육을 그딴 식으로 받아야만 했고 학교에서, 회사, 가정에서 한 인간을 복속시켜 그렇게 살기를 강요했는가. 나는 나인데 말이다.

 

□ 인간은 점점 다른 모든 동물들과는 달리, 추가로 또 하나의 존재조건을 충족해야만 하는 일종의 공상적인 동물이 되어 버렸다. (p. 176)

 

□ 삶에 내재하는 이성 (p. 176)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것을 믿으며 그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것을. 게다가 그에 대해 찬반을 논할 궁극적이고도 확실한 이유를 미리 깨닫지도 못하고 더구나 그러한 이유를 구할 노력조차 하려 하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p. 176)

 

Ü 그래서 철학자 김용규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선택의 삶을 살아야 스스로에게 자유가 주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용한다. 그는 말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라는 신조로 사는 그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스스로 갖지 못하며 따라서 그에게는 자유가 없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양자택일을 통해 윤리적으로 사는 사람은 일체를 자신의 선택에 의존하지요. 그는 국토 있는 국왕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뉘우침, 심미적 단계에서 윤리적 단계로 이르게 함.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범주 아래 처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가 아니라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양자택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지요

 

그러나 이러한 부조화의 조화 상태, 현존재의 놀라운 불확실성과 애매함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 의문의 욕구와 즐거움으로 전율하지 않는다는 것, 질문하는 자를 미워하지도 않고 심지어 노리개 삼아 실컷 웃고 떠든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경멸하는 것이다. (p. 177)

 

□ 그들은 고귀한 인간이 샛길 어딘가에서 이익이나 챙기고 있는 듯 나쁘게 생각한다. (p. 177)

 

□ 그들은 마치 미친 사람의 즐거움을 경멸하듯 고귀한 사람의 열정을 과소평가한다. 비속한 인간의 특징은 자신의 이익이 위협당하지 않을까 늘 주시한다는 점, 그리고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충동보다도 강하다는 점이다. 여러 충동 때문에 목적에 맞지 않는 불리한 행동으로 이끌리지 않으려는 것, 이것이 비속한 인간의 지혜이자 자존심이다.

 

그들과 비교하면 고귀한 인간은 훨씬 비이성적이다. 고귀하고 관용적이고 희생적인 인간은 진실로 자신의 충동에 따르며 그 최상의 순간에 이성을 멈추기 때문이다. (p. 178)

 

Ü 이성이 인간을 궁극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점에서 니체는 유신론자다. 적어도 이 문장에서는

 

□ 정열의 역전 (p. 178)

 

□ 비속한 인간은 뱃속의 정열에 굴복하는 인간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폭군으로 군림하는 그 충동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인식의 정열 때문에 자기 건강과 명예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p. 178)

 

종족 보존

가장 강하고 악랄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인류를 가장 진보시켜 왔다. 그들은 잠들어 있는 정열 - 모든 질서 정연한 사회는 정열을 잠재운다 - 에 거듭해서 불을 붙여 왔다. (p. 179)

 

Ü 그래서 우리는 뒤엎지 못하고 있다. 우리를 두고 서로를 손가락질 하지만 상대는 우리가 서로가 아니다.

 

그러나 실은 악한 충동도 선한 충동과 마찬가지로 고도로 합목적적이며 종족을 보존하는 데 필요불가결하다. 단지 그 기능이 다를 뿐이다. (p. 179)

 

Ü 크게 보면 굉장히 크게 보면 악은 선의 한 부분이며 선은 신의 한 부분이다. 선과 악을 상황이 아니고서야 어찌 구분하겠는가. 성적 자기권리를 행사하기 힘든 장애인이 집장촌에 가서 성적 욕구를 해소할 때 성사업에 종사하는 그 여인은 성스러운 성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선악은 매우 구분하기 힘들다.

 

□ 그들은 모두 의무에 대하여 말할 때면 그것에 무조건성을 부여한다. (p. 179)

 

□ 명성이나 명예의 힘은 굴종을 허락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이익의 힘이 굴종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p. 180)

 

□ 그들은 생각하기 위해 기도할 때처럼 얼굴을 굳힌 채 걸음을 멈췄다. 아니, 심지어 사상이 찾아왔을 한 발로든 두 발로든 때에는 길 위에라도 멈춰 서 몇 시간이고 생각에 잠겼다. 이것이 그 일에 어울리는 품위 있는 태도였다. (p. 181)

 

□ 과학은 행동의 목표를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앞서 과학이 행동의 목표를 제거하고 파괴할 수 있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p. 182)

 

아버지는 자식을 얻은 뒤에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비밀 정원이나 밭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분출할 때를 기다리며 성장해 가는 활화산과 같다. 다만 이 분출의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조차도 (p. 183)

 

□ 인류는 잘못된 판단과 환상, 그 피상적인 성격과 경솔한 믿음, 요컨대 틀림없이 그 의식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본능의 유대가 없었다면 인류는 벌써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p. 184)

 

Ü 인류를 살렸던 것은 만물의 영장의 윗자리에 있게 한 것은 고도로 발달된 본능이다.

 

지혜를 자기 몸에 동화시켜 본능으로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새로운 점진적으로 인간의 눈에 들어온 것으로서 아직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은 과제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의 착오만이 우리에게 동화되어 왔다는 사실 우리의 모든 의식은 착오와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들에게만 인식되는 과제인 것이다! (p. 185)

 

Ü 본능의 신비는 아직도 우리를 떨리게 하는 것이니.

 

기쁨이나 고통을 줌으로써 우리는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p. 186)

 

소유물은 소유됨으로써 대개 시시해진다.

우리가 자신에게서 느끼는 쾌락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우리 자신 속에 흡수해 변형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다. – 소유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p. 187~188)

 

Ü 그랬다. 소유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끊임 없이 스스로를 굴려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멈출 수 없는 불을 품은 화차다.

 

□ 결국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하고 무가치하게 여겨져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고 모든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슨 이익도 무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p. 188)

 

멀리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위대함은 선과 아름다움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욱이 절대로 위로부터가 아니라 밑에서 바라볼 때만 감화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그대들의 주변에도 자기를 일정하게 먼 거리에서 조망했을 때 비로소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을 매력적이며 쾌활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기인식은 그들에게는 금물이다. (p. 189)

 

약한 천성의 인간을 쓰러뜨리는 독은 강자에게는 강장제이며 강자는 또한 그것을 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p.191)

 

어리석음의 가치

현명함의 전횡이 새로운 종류의 고상한 취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때 고상하다는 것, 그것은 아마 두뇌 속에 어리석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하리라. (p. 191)

 

사심 없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은 일련의 자극과 이익을 통해서 개인을 특정 행위나 사고 방식 그것이 습관, 충동, 정열로  변하자마자 자신의 궁극적 이익에 반하여 일반적인 이익을 위해 개인의 내부에 개인의 위에 군림하는 행위나 사고방식 에 묶어 두려고 한다. 얼마나 자주 보아 왔던가. 무조건적 근면이 확실히 부나 명예를 가져다 주지만, 그와 동시에 그 부와 명예를 누리게 하는 유일한 통로인 감각의 예민성을 앗아가는 예를 (인간 역사상 가장 근면한 시대인 현대는 그 엄청난 근면과 돈으로써 보다 많은 재능이 돈과 근면을 생산해 낼 뿐이다. 돈을 벌기보다는 쓰기에 더 많은 재능이 필요한 시대다. 하지만 이 일은 우리의 자손에게 기대하도록 하자!) (p. 193)

 

Ü 기대에 부응하고 있음이 보이는가. 지구의 자손이 미치지 못해 살아가는 것이 보이시는가 니체여.

 

부패의 징후

도덕이 땅에 떨어지며 저 폭군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출현한다. 이러한 자들은 개체의 선구자들로서 이른바 개체의 조숙한 첫아이.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 열매 중의 열매는 노랗게 익어 민족이라는 나무에 붙어 늘어진다. (p. 196)

 

□ 나폴레옹이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는 것 일체에 대하여 나는 언제라도 변함없이 그것이 나다라고 대답할 권리가 있다. (p. 197)

 

속세를 떠난 사람

그는 긍정의 인간이다. 그것은 그가 세상을 체념하더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긍정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p. 199)

 

상업과 귀족

팔고 사는 일이 없는 사회, 이러한 매매 기술의 필요성이 점점 사라져 버리는 사회를 생각해 보자. 어쩌면 이곳에선 일반 사회의 법칙에 복종하지 않는 소수자가, 감각의 사치로서 매매하는 일을 멋대로 할지도 모른다. 그때 비로소 상업은 고귀성을 획득하는데 그러면 귀족은 마치 과거에 전쟁이나 정치에 즐겨 매달렸던 것처럼 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정치에 대한 평가는 그때 완전히 일변해 버릴 것이다. 지금은 이미 정치가 귀족의 전업이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람들이 정치를 모든 당파문학이나 통속문학에 그랬듯이 정신적 매음이란 꼬리표를 붙여도 될 만큼 비속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p. 201)

 

Ü 이거 굉장히 창의적인 말이다.

 

, 그것은 완만한 죽음이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나는 그토록 많은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나는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어야 했다. 그러면 그들이 영원토록 죽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나의 눈은 그럴 수 있을 만큼 실로 훌륭하지 않은가. 이토록 뛰어난 관찰자가 나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다니 (p. 203)

 

산업문화는 그 현재 형태로 볼 때, 지금까지 있었던 것들 중 가장 비속한 생활양식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짐승 같은 궁핍의 법칙에 좌우된다. 살고 싶은 인간은 자기를 팔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이 궁핍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을 사들이는 자를 경멸한다. (p. 205)

 

Ü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에 찬동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캠벨이 그랬고 정민이 그랬고 앙드레 보나르가 그랬고 융이 그랬다. 말로 다하랴

 

인간의 기품이라는 것이 즉각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 기품은 오랜 세월에 걸친 과실로서 존중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러나 고상한 풍채 없이 손만 불게 살찐 악명 높은 공장주의 속물근성은 단순한 우연과 행운이 한 사람을 다른 사람 위로 밀어 올린다는 느낌을 비속한 자들에게 안겨 준다. 그래, 그렇다면 그들은 진심으로 생각한다.- 우리도 우연과 행운을 시험해 보자! 우리도 주사위를 던져 보자. – 이리하여 사회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p. 206)

 

Ü , 인류의 진보여

 

일과 권태

그런데 일의 기쁨 없이 노동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특이한 사람도 있다.

독특한 인종에 속하는 이가 여러 부류의 예술가와 명상가이다. 또한 일생을 사냥, 여행, 연애, 모험에 소비하는 한가로운 사람들도 그러하다. 이들 모두는 그것이 쾌락과 관계될 때만 그리고 필요할 때만 육체적 고통이나 힘들고 가혹한 일을 감당하려고 한다.

 

권태를 여러 방법으로 우리 몸에서 내쫓는 일은 즐거움 없는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천박하다. (p. 206~207)

 

Ü 지금 우리에게는 권태가 필요하다.

 

법률이 말하는 것

와하비파에서 죽을 죄는 다만 두 가지뿐이다. 와하비파의 신이 아닌 다른 신을 믿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 그러면 살인이나 간통은 어떻습니까? 라고 이런 법률을 발견한 영국인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신은 인정이 많아 관대하시네!’ 라고 늙은 추장은 대답했다. (p. 207)

 

Ü 추장의 개인적인 유머가 아니라면 이 부족은 전형적인 토테미즘 기반의 신치주의라 할만 하다.

 

에피쿠로스

나는 에피쿠로스에 관하여 무엇을 듣고 읽는 데에서 고대 오후의 행복을 음미하게 된다. 햇볕을 흠뻑 쬐는 바닷가의 절벽 위에서 에피쿠로스의 눈은 그 너머에 광대하게 펼쳐져 희게 빛나는 바다를 보고 있다. (p. 208)

 

Ü 멋진 표현이다. 니체는 에피쿠로스를 사모하는 모양이다.

 

우리의 경탄

기적적인 것은 가끔 규칙과 영원성에 진저리 난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었다. 지반을 잃어 버리는 것! 둥둥 떠돌아다니는 것! 헤매는 것! 미치는 것! 그것은 과거 시대의 낙원이며 건전하지 못한 쾌락의 일부분이었다. 반면 우리의 행복은 물에 빠진 자가 뭍에 올라가 반갑고 든든한 땅 위에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데 경탄하며 두 다리로 서 있는 행복과 유사하다. (p. 209)

 

Ü 경탄할 만한 통찰이다. 억압에서 자유롭고 싶은 개인, 억압이 필요한 사회. 또는 vice versa 그 만큼 약한 개인이고 의존적인 인간이 즐비하다.

 

□ 고통의 지식

아마도 인간이나 시대는 다름 아닌 고통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가장 잘 구분될 것이다. 즉 정신의 고통에 따라서 또한 육체의 고통에 따라서. (p. 210)

 

그 시대에 인간은 끊임없는 육체적 고통과 결핍으로써 충분히 단련되었다. 인간은 자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잔혹이나 더 나아가 스스로 부과한 고통의 훈련을 통해 필요한 자기보존의 수단을 얻었다. (p. 210)

 

Ü 동의 한다.

 

□ 염세철학과 극심한 민감함 그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진정한 현재의 고통으로 생각되지만 에 대한 처방은 당연히 있다. 고통에 대한 처방은 고통이다.’ (p. 211)

 

우울한 사람의 유머 (p. 211)

 

Ü 오 이런 훌륭한 표현, 블랙코미디, 씁쓸함의 적절한 표현

 

고독화의 논거

이러이러한 것은 네가 속한 사회의 미풍양속에 어긋난다는 감정. 그들 아래에서 교육받고 또 그 사람들을 위해 교육되었는데 그런 그들에게서 냉대를 받고 험한 말을 듣는다면 아주 강한 사람이라도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를 무섭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독해지는 것, 개인이나 여러 가지 일을 위한 최선의 논거마저 파괴해 버릴 논거로서의 고독화! 우리 내부에 있는 군집본능은 그렇게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p. 212)

 

Ü 집단 따돌림으로 자살하는 사람의 내면이 약하다거나 못났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자. 그들은 인간 본성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고 이를 잃지 않으려는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겠다.

 

사람들은 나쁜 평판보다도 양심의 가책을 훨씬 쉽게 처리한다 (p. 212)

 

Ü 그렇다. 그러나 처리된 양심은 자신에게 앙금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언젠가 제 자신을 갉아먹게 될 것

 

선이 시작되는 곳

눈이 침침해질수록 선의 범위는 광대해진다. 거기에서부터 민중이나 아이들의 한결 같은 명랑함이 생겨난다. 거기에서부터 위대한 사상가들의 암울함과 양심의 가책과 비슷한 우울도 생겨난다. (p. 213)

 

Ü 춤추자. 더 늙기 전에

 

최후의 고귀함

고귀함의 비밀은 고귀한 사람을 엄습하는 열정이 특수하다는 사실이다. 고귀한 사람은 이 특수성을 모르지만 이런 기이하고도 특수한 척도에 따라 거의 광기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P. 214)

 

Ü 그래서 평범함은 죄악이 될 수 있다. 단테는 그들을 지옥을 잡아 쳐 넣지 않았는가.

 

2

 

리얼리스트들에게

모든 감정에, 모든 감각적 인상에 이 오래된 사랑의 한 조각이 있다. 마찬가지로 얼마간의 환상 선입관, 부조리, 무지, 공포, 그 밖의 모두가 그것에 섞이고 엮여 있다. 저편의 저 산, 저 하늘의 저 구름, 도대체 그 어디가 현실적인가?

 

우리에게는 현실적인 것이 없다. 역시 너희에게도 없다. 냉철한 인간들아, 우리는 너희가 생각하듯이 서로 그렇게 무관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P. 221)

 

Ü 니체는 緣起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로지 창조자로서!

처음엔 가상이었던 것이 결국에는 언제나 본질이 되어 본질로서 작용한다! 여기서 본질로서 인정되는 세계, 이른바 현실을 멸망시키기 위해 그 기원과 모호한 망상의 덮개를 지적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는 오직 창조자로서만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 (p. 222)

 

Ü 이데아를 전면 비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글인가. 신으로부터 본질을 가져와라는 특명.

 

우리 예술가

아직도 너무나 잘 꿈꾸는 법을 알고 잇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열망하기만 하면 즉 느끼기만 하면 갑자기 꿈꾸는 정신과 힘이 우리를 덮친다. (p. 223)

 

여성들과 원격 작용

가장 아름다운 범선에서도 많은 잡음이 있으며 또한 유감스럽게도 온갖 잡다하고 가련한 소음이 있다. 여성들의 매력과 그 가장 강력한 작용은 철학자의 말을 빌려 말하면 원격작용인 것이다. 그러나 그 작용에는 우선 필요한 것이 있다. 거리라는 것이! (p. 224)

 

Ü 여성이라는 빛에 탈 수도 있다. 거리를 유지하라. 태양을 도는 별의 궤도처럼, 유피테르의 번개를 보는 셀레나?의 우를 범하지 말라.

 

사랑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정욕조차도 허락한다. (p. 225)

 

약자의 강함

모든 여성은 자신의 약함을 과장하는 데는 교묘하다. (p. 225)

 

의지와 승낙

여자의 모든 결함을 남자가 보상하고 고쳐야만 한다. 왜냐하면 남자는 멋대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여성은 그 이미지를 흉내 내어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p. 226)

 

Ü 시대가 만들어낸 여성이라는 관념과 이상은 여성이 책임질 이유는 없는 것. 벗어라! 그 뾰족한 신발부터!

 

여성의 정결에 대하여

아내들은 남편을 자기들 명예의 의문부호로 느끼고 자식들을 이에 대한 변명 또는 속죄로 여긴다. 그녀들은 남편이 자식을 원하는 것과도 전혀 다른 의미에서 아이가 필요하다. 요컨대 우리는 여성들에게 아무리 상냥히 대해줘도 지나침이 없다. (p. 228)

 

Ü 맞다. 되돌아 본다. 내가 그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장본인이었구나.

 

최대의 위험

광기의 폭풍우는 결코 느끼고 보고 듣는 일에서 발생하는 자유분방한 정신의 돌발이며 두뇌의 방탕한 향락이며 인간의 무분별을 즐기는 처사이다. (p. 230)

 

Ü ! 자유 정신은 광기를 동반한다.

 

양심을 아프게 하지 않는 동물

동물도 인간에 뒤지는 일 없이 그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동물도 자유롭게 뛰어다녀도 좋다. 그리고 친애하는 인간이여, 그대도 결국 동물이다. 어떻게 표현해도 그렇다. 나는 이것이 당면한 문제의 도덕이며 남국적인 인간성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p. 231)

 

Ü 아이들과 손잡고 즐겁게 다녀온 동물원에는 동물이 있었다. 거긴 웃고 떠들 곳이 아니다. 네가 거기에 웅크리고 주는 밥 먹으며 갇혀 있다면 어떻겠는가.

 

예술과 자연

본디 정열이라는 것은 지극히 말 수가 적은 것이다. 침묵하여 낭패하는 것이다. 또는 그것이 말이 되어 나올 때는 더없이 혼란하여 그 부조리 대문에 스스로도 수치를 느끼는 것이다! (p. 233)

 

번역

로마는 또 얼마나 고대적인 그리스의 훌륭하고 고귀한 모든 것에 난폭하고도 단순한 방식으로 손을 댔던가. 그것을 얼마나 제멋대로 로마의 현재로 해석했는가. (p. 236)

 

Ü 도대체 배려가 없는문화에도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로마의 방식을 나는 좋아한다. 그냥 멋지다. 이것 저것 재지 않고 생긴 대로 사는 로마가 나는 좋다.

 

시의 기원에 관하여

만약 우리가 어떤 시대에든 이익이라고 하는 것을 가장 신성한 것으로 존중해 왔다면 대체 시는 어디에서 유래되었단 말인가 (p. 237)

 

Ü 시는 이익이 지배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영역이다. 성역화.

 

어원상 선율 melos 은 진정제를 의미한다. 그 자체가 평온한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p. 238)

 

Ü 그래서 좋은 음악을 들으면 뽕 맞는 기분이 드는구나.

 

극장에 관하여

그것이 도취를 낳는 수단이다. 유럽인이 대마초를 피우고 빈랑자 (마약의 일종)를 씹는 것과 같은 극장과 음악이여. 누가 우리에게 마취제의 모든 역사를 이야기할 것인가. 그것은 거의가 교양의 역사, 이른바 고등 교육의 역사인 것이다. (p. 241)

 

빛과 그림자

책이나 기록 같은 것들은 사상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상가는 책 속에 빛을 모은다. 그의 마음 속에 번쩍였던 인식의 광선으로부터 재빨리 훔쳐 낸 빛을.

다른 사상가는 우리에게 그림자만을 줄 뿐이다. 낮 동안 그의 마음속에 쌓아 놓았던 것의 검은색이나 회색 잔상을 재현하는 것이다. (p. 243)

 

Ü , 멋진 표현. 재빨리 훔쳐 낸 빛, 도망가기 전에

 

조심

그는 마침내 숭고함의 엄격한 형식을 발견해 내고 그 속에 그의 삶과 기억을 강제로 짜 맞추었다. 이 모든 일에는 심한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나는 플라톤 자신이 쓴 자서전도 전혀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루소의 자서전이나 단테의 신생도 마찬가지다. (p. 243)

 

산문과 시

산문의 대가들은 거의 항상 시인들이었다 공공연하게는 은연중에는 또는 단지 침실에서만든 간에 는 사실을 주목하라. 실제로 사람들은 좋은 시를 마주 대했을 때에만 좋은 산문을 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산문은 시에 대한 끊임없는 우아한 전쟁이기에 (p. 244)

 

그렇다면 도대체 당신은 왜 쓰는가?

B : 아니, 그렇다면 당신은 왜 쓰는가?

A : 그런데 나의 친구여, 솔직히 말한다면 여태까지 나의 생각들을 털어버릴 다른 어떤 방식도 발견해 내지 못했다.

B : 왜 당신은 생각들을 털어 버리고자 하는가?

A : …나는 어쩔 수 없기에…. (P. 245)

 

작가의 수다스러움에 대하여

분노에서 나오는 수다스러움이 있다. 이것은 쇼펜하우어나 루터다. 칸트처럼 개념적 공식들의 풍부한 저장량 때문에 수다스럽게 되는 사람도 있다. 좋은 말과 언어형식에 대한 쾌락으로부터 나오는 수다스러움, 이것은 괴테의 산문. (P. 247)

 

쇼펜하우어의 제자들

하나의 의지에 관한 증명 불가능한 설 : 모든 원인은 단지 그 시기 그 장소에서 의지 표상의 기회원인에 불과하다. 삶에 대한 의지는 가장 미미한 존재물 속에 이르기까지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게 완벽히 존재하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존재하는 모든 것의 내면을 총괄하는 완벽함으로 (P. 250)

 

□ 정열은 스토아주의나 위선보다 낫다. 악에 대해서도 진솔한 것은 전통적인 도덕에 열중해 스스로를 잃는 것보다 아직은 낫다. 자유로운 인간은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잇다. 그러나 부자유한 인간은 자연에 대해 수치이며 천상 또는 지상의 위안을 공유하지 못한다. 결국 자유로워지고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의 노력으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자유는 기적적인 선물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P. 252)

 

Ü 자유를 위한 길은 자기 노력의 길과 다름없다. 그 사람이 자유로워 보이거든 그 노력에 박수를 쳐 주어야만 한다. 자유로운 거지는 부자유한 부자보다 낫다.

 

독일어의 음향에 관하여

외국인의 귀에 반감과 혐오감을 주는 악센트가 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그것을 참아 낸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참아 내는 것이다. (P. 257)

 

예술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인 감사

우리의 이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저 사물을 초월하는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화려하고 가볍고 춤추고 조롱하는 어린애 같고 기쁨에 찬 예술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도덕을 초월해야만 한다. 또한 당장이라도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의 염려스러운 긴장을 느끼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을 초월하여 춤추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광대 없이는 못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술 없이 살 수 있겠는가? 그대들이 아직 얼마간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동안은 아직 우리의 동지가 아니다. (P. 259)

 

Ü 니체와 동지가 되기 위하여 춤춘다. 즐긴다. 도덕을 초월하여!

 

3

 

새로운 투쟁

붓다가 죽은 뒤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수 세기 동안 동굴 안에 그의 그림자를 안치했다. 거대하고 섬뜩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세상이기에 분명 앞으로도 수천 년에 걸쳐 신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온갖 동굴이 존재하리라. 그리고 우리는 계속 신의 그림자를 정복해야만 한다. (P. 269)

 

Ü 이것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내 안에서 소화되지 못했다. 공부하자.

 

경계하자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이 별의 질서는 하나의 예외다. 그리고 이 질서와 그에 따라 제약된 상당 기간의 지속이 예외 중의 예외인 유기체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 반하여 세계의 전체적 성격은 영원한 카오스 다. 그것도 필연성의 결여라는 뜻에서의 혼돈이 아니라. 질서, 조직, 형식, , 지혜, 기타 모든 우리의 미적 인간성의 형용사, 즉 미적 신인동형론의 결여라고 하는 의미에서 혼돈이다. 우리의 이성으로 판단하건대 법칙이란 어떻게 보든지 실패한 시도들이며 예외가 숨겨진 목적은 아니다. (P. 270)

 

우주는 어떠한 법칙도 준수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그곳에는 단지 필연성만이 있을 뿐이다. 명령하는 자는 없다. 복종하는 자도 없다. 위반하는 자도 없다. 일단 그대가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연 또한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이라는 말은 목적의 세계와 비교할 때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삶과 반대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삶은 죽음의 한 형태, 그것도 매우 드문 한 형태이다. (P. 270)

 

Ü 듣던 대로 니체는 무신론자다.

 

□ 오늘날 사색가는 진리에 대한 충동과 생의 보존을 위한 오류들이 그 첫번째 투쟁을 벌이는 전쟁터와 같은 존재이다. (p. 272)

 

논리적인 것의 기원

따라서 그렇게 자세하게 사물을 보지 않았던 존재들은 유동속에서 모든 것을 보았던 사람들보다 유리했다. 사실 추론에서 고도의 주의와 모든 회의적 경향은 삶에 대해 큰 위험을 형성한다. 만약 반대의 경향 판결을 보류하기보다는 차라리 확정하는 것, 기다리기보다는 정도에서 벗어나 사물을 형성하는 것, 부정하기보다는 찬성하는 것, 공정함을 유지하기보다는 판결을 내리는 것 이 특별히 강하게 양육되지 않았더라면 생명체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p. 273)

 

Ü 다소 정확하지 않고 어눌한 결단이라도 결단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좋고 실행하는 것이 실행하지 않는 것보다 좋다. 결단하고 실행하는 자, 그 사람이 갑이다.

 

□ 우리는 상을 넘어서거나 상 뒤에 도달하진 못한 채 단지 만들어진 상을 완성해 오고 있다. (p. 274)

 

□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빌려서 조작하고 있다. , , 평면, 물체, 원자, 나눌 수 있는 시간들, 나눌 수 있는 공간들 따위가 그것이다. 우리가 먼저 모든 것을 하나의 상, 우리의 관념적인 상으로 바꿔 버리는데 어떻게 해명이 가능하겠는가!

과학은 되도록 충실하게 사물들을 인간답게 하려는 시도로만 여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p. 274)

 

Ü 관념에 의지하면 이 책을 지금 당장 우주로 올릴 수도 있다. 실체 없는 관념으로 뭔들 못하리.

 

군집본능

도덕성은 개인을 대중의 한 기능이 되도록 그리고 오직 그 기능으로서만 자신의 가치를 정하도록 훈련한다. 도덕성은 개인들 속의 군집본능이다. (p. 276)

 

Ü 집단에 의해 자행된 폭력 앞에서 개인은 없었다. 발을 맞추어야 했고 구호가 같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적극적인 제재를 받거나 소극적으로 차가운 외면을 받아야만 했다. 눈치의 문화를 만연시켰고 나의 표면이 거친가를 항상 자문하게 했다. 남들과 보폭을 맞추려 자신의 안구를 항상 돌려야 했고 쓸데없이 남과 비교했다. 그러나 이것은 꽤나 효율적이다. 그리고 강력하다. 개인을 잊고 조직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집단의 양심적 가책

인간이 자기 혼자서 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혼자라는 것, 복종하지도 지배하지도 않는 것, 자기 힘으로 사물들을 경험하는 것, 개인이 되는 것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형벌이었다.

어떤 개인적 의향보다 군집본능이 더 많이 표현되면 될수록, 인간은 더욱더 자신을 도덕적이라고 느꼈다. (p. 276)

 

□ 삶은 결코 논거가 될 수 없다. 삶의 조건은 오류를 포함하는지도 모른다. (p. 278)

 

Ü 존재 자체가 우주 그리고 신의 오류일 수 있다. 대양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거품 중에 조금 특이한 그래서 오류일 수 있는 거품일 수 있다.

 

무한의 수평선에서

그러나 바다는 무한하다. 그리고 무한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 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아아, 자유를 느꼈던 불쌍한 새여, 지금은 무한이라는 새장의 벽에 부딪히고 있구나. 아아, 마치 대지가 더 많은 자유를 제공했던 것처럼 네가 대지에 대한 향수를 느낄 때, 더는 어떠한 대지도 없다. (p. 281)

 

광인

신이 어디로 가셨느냐고? 그는 소리쳤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마! 우리가 신을 죽였다. 너희와 내가 말이다. 우리 모두가 그의 살해자다.

우리는 끊임없이 돌진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뒤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어떤 위아래가 있는가? 우리는 마치 무한한 속을 헤매듯이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p. 281)

 

Ü 밤낮없이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지만 조금 위에서 보는 이 광경은 뻘짓일 수도

 

□ 이 교회들이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p. 282)

 

기도의 가치

기도는 본디 자신의 사상이 전혀 없는 사람들, 영혼의 고양을 알지 못하거나 적어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들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크고 작은 모든 종교의 시조들은 지혜를 짜서 기도문을 처방했다. 기도는 오랜 시간 입술을 놀리는 기계적 움직임을 통해 손이나 발, 심지어 눈까지 고정된 자세로 있게 하며 기억을 위한 노력 역시 획일적으로 만든다. (p. 284)

 

Ü 니체에 따르자면 기도도 결국 군집본능을 건드리는 위정자의 방편이다.

 

신의 조건

신은 현명한 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루터는 말하였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신은 어리석은 인간 없이는 더더욱 존재할 수 없다. – 우리의 훌륭한 루터는 이 점을 말하지 않았다. (p. 285)

 

위험한 결심

세상을 추하고 악한 것으로 보려는 그리스도교적 결심이, 세상을 추하고 악하게 만들고 있다. (p. 285)

 

그리스도교와 자살

이 두 가지 자살은 최고의 존엄과 최고의 희망으로 꾸며졌고 나머지 자살은 놀라운 방식으로 금지되었다. 그리하여 오직 순교와 고행자의 완만한 자살인 금욕만이 허용되었다. (p. 285)

 

그리스도교에 반대하여

지금 우리를 그리스도교에 반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것은 우리의 취향이지 더 이상 우리의 이성이 아니다. (p. 285)

 

죄의 기원

비극은 하나의 예술이요 쾌락이다.

 

Ü 무대 위의 흥건한 피는 그것을 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화끈하게 정화시켜준다.

 

선택된 민족

이 비참함을 느끼지 않고 잊어버리기 위해 비할 데 없는 국왕의 영광과 권위와 권세- 오직 귀족만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 를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특권으로 그들은 궁정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 그 위치에서 모든 것을 자신의 발 밑으로 내려다 보았다. 모든 것을 경멸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양심의 가책을 넘어서 버렸다. (p. 287)

 

비유로 이야기하자면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려 준 하늘에 이르는 사다리의 꿈을 꿀 수가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좋은 날씨든 햇빛이든 매우 평범한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질 뿐 (p.288)

 

그리스도의 착각

그리스도교의 창시자가 말하기를 인간만큼 자신의 죄에 고통 받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착각이다. 스스로 죄가 없다고 느끼는 자, 죄의 최초 경험을 하지 못한 자의 착각이다. (p. 288)

 

너무나 유대적인

심판자는 비록 자비로운 심판자라 할지라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는 이 점에서 충분히 섬세하지 못했다.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P. 289)

 

너무나 동양적인

내가 너를 사랑한들 거기에 네가 주의를 기울일 일이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전체에 대한 충분한 비판이다. (P. 289)

 

종교전쟁

종교전쟁이란 각 종파간의 정교히 다듬어진 논쟁들이 일반 사람들의 이성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 때 생겨난다. (p. 290)

 

독일의 희망

루터는 말하였다. 여기에 내가 서 있다. 나에게는 이렇게 있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p. 291)

 

질문과 대답

오늘날 야만족들이 유럽인으로부터 무엇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가? 유럽의 마취제인 독한 술과 그리스도교이다. (p. 291)

 

종교개혁의 실패

개인 또는 개인의 사상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으로 작용하면 할수록 영향 받는 대중은 더욱더 동질적이고 저급한 존재로 하락함이 분명하다. (p. 293)

 

시인으로서의 인간

나는 와전한 자력으로 이 비극 중의 비극을 지금까지 만들어 왔으며 도덕적 갈등의 매듭을 처음으로 현존재에 결부시켜 오직 신만이 그것을 풀 수 있도록 단단히 잡아매었다.

그리고 이런 내가 지금 제4막에서 모든 신들을 살해했다. 도덕을 위하여. 이제 제5막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디서부터 비극적 결말을 끌어낼 수 있을까? 머지않아 희극적 결말을 생각해야만 하는가? (p. 294)

 

우리에게 결여된 것

우리는 위대한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발견해 왔다. 우리 머릿속에 위대한 인간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은 그 반대였다. 자연에 대한 그들의 느낌은 우리와는 다르다. (p. 295)

 

위대한 승리 뒤에

위대한 승리의 가장 좋은 점은 그 승리자에게서 패배의 두려움을 없애 준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져도 괜찮지 않을까? 나에게는 지금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있다. (p. 296)

 

□ 어떤 병자

뭐가 됐든 이 몸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인간 따위는 사양하겠다. (p. 297)

 

깊이 있는 것과 깊이 있게 보이는 것

자신을 깊이 있게 알고 있는 사람은 명석함을 얻기 위해 힘쓴다. 대중에게 자신을 깊이 있게 보이려는 사람은 애매함을 얻으려 애쓴다. 대중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깊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 많아서 물 속으로 들어가기를 꺼린다. (p. 298)

 

웅변에 대하여

지금까지 누가 가장 설득력 있는 웅변을 했는가? 바로 북 치는 사람이다. (p. 299)

 

Ü 그 북소리를 따라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죽었든 살았든 상관없이.

 

교육제도에 대하여

독일에는 상류층 사람들을 이한 중요한 교육수단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상류층 사람들의 웃음이다. 독일에서는 이들은 웃지 않는다. (p. 299)

 

Ü 우리도 그와 같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멋진 생머리 날리며 가는 처녀에게 미소는 흘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고

사고는 우리 감각의 그림자이다. 사고는 감각보다 항상 더 애매하고 공허하며 단순하다. (p. 299)

 

내 주위에 허수아비를 세워 두느니 차라리 도둑질을 당하겠다. 이것이 나의 취향이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취향의 문제이지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p. 300)

 

Ü 멋지다. 내 취향! 앞으로 내가 사수할 것은 이것이다. 나의 취향.

 

가난

그가 모든 것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자발적 가난을 오해하는 자야말로 가난한 자이다. (p. 301)

 

Ü 정상적이지 않은 류의 사람들이 인류와 공동체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이런 자발적 가난을 택한 사람을 보며 비정상적이라 한다. 나는 아직 그리로 갈 용기는 나지 않지만 동지를 얻은 듯 하다.

 

솔직한 사람

그 사람은 항상 숨겨진 이유에 따라 행동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항상 제시 할 수 있는 이유를 입에 달고 다닐 뿐 아니라, 그 이유를 손바닥 위에 펼쳐 놓고 여봐란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p. 302)

 

칭찬

칭찬에는 항상 하나의 잡음이 따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칭찬할 때조차. (p. 303)

 

원인과 결과

우리는 결과 이전에는 결과가 나온 이후와 다른 원인을 믿는다. (p. 306)

 

Ü 경영 컨설턴트가 이야기하는 화려한 분석은 결과를 인위적으로 확정 짓지 못한다. 맞지 않는 원인과 그 해결책을 고심하는데 정력을 쏟고 있다는 말이겠다. 노력은 가상하다만

 

형벌의 목적

형벌의 목적은 형벌을 가하는 사람들을 선하게 만드는 데 있다. 이것이 형벌을 변호하는 자들의 마지막 도피처이다. (p. 306)

 

시인과 거짓말쟁이

시인은 거짓말쟁이를 젖형제로 생각한다. (p. 306)

 

Ü , 멋진 표현.

 

동물의 비판

동물은 인간을 정신이상을 일으킨 동물로서, 웃는 동물로서, 우는 동물로서 불행한 동물로서 여기지나 않을까. (p. 307)

 

Ü 맞다. 맞다.

 

중재자에 반대하여

두 명의 확고한 사상가를 중재하고자 하는 자는 평범이란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다. 그는 단 하나뿐인 독특한 것을 보는 안목이 없다. 모든 사물을 비슷한 것인 양보는 것. 똑 같은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 이러한 것은 허약한 눈의 특징이다. (p. 307)

 

침묵의 결여

그의 인격은 전체적으로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 자기가 한 선행에 대해 전혀 침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 308)

 

Ü 대놓고 기부한 것을 광고하고 다니는 그 뻘쭘하고 낯뜨거움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꿈꾸는 것

꿈을 전혀 꾸지 말든가 아니면 재미있게 꿈을 꾸든가 해야 한다. 깨어 있을 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아예 깨지 말든가. 아니면 재미있게 깨어 있든가. (p. 308)

 

Ü 니체는 재미있다. 흥미롭다. 시원하다. 통쾌하다.

 

바다에서

만일 집을 가져야만 한다면 많은 로마인들이 그랬듯이 바다 가운데로 뚫고 들어가 집을 세울 것이다. 나는 바다라는 이 아름다운 괴물과 몇 가지 비밀을 함께 나누고 싶다. (p. 309)

 

Ü 이 멋지고 호기로운 생각. 바다와 마주보며 맞짱 뜰 생각을 하다니

 

선과 악의 기원

이것은 좋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개선이라는 것을 고안해 낸다. (p. 310)

 

항상 집에 있다.

어느 날 우리는 목적지에 이르러 자부심을 느끼며 우리가 거쳐 온 기나긴 여행길을 가리킨다. 사실상 우리는 자신이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먼 곳까지 도착한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집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 312)

 

Ü 그래서 우리 삶은 여행의 시선이 필요하다.

 

낙원으로부터

선악은 신의 편견이다. – 뱀은 이렇게 말했다. (p. 313)

 

Ü 와우, 맞다. 융이 그랬던가. 뱀 또한 신이 창조하지 않았던가. 피조물에 대한 그런 편견을 가져도 된다는 말인가. 신이 뱀에게 일러 인간을 유혹하라 하지 않았나. 뱀이 자의적으로 유혹하지는 않았을 터. 신이 없거나.

 

독창성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의 눈앞에 있지만 아직 이름이 없으므로 불릴 수 없는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있는 평범한 것, 그것은 이름이 없어 비로소 사물로서 보이는 것이다. – 독창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명명자 들이기도 했다. (p. 313)

 

Ü 그렇다. 대부분의 신격의 논쟁과 교리 논쟁이 우연히 발견된 단어 하나에 모두 일단락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잠세태, 칸트는 명제에 대한 종합분석, 쇼펜하우어는 의지기회

 

영원에 관한 견해

A: 너는 살아 있는 사람들로부터 매우 빨리 멀어져 가고 있다. 그들은 곧 네 이름을 자기들의 명부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B: 그것이 죽은 자의 특권에 참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A: 무슨 특권?

B: 더 이상 죽지 않을 특권 (p. 313)

 

Ü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세계들로 즐비하다. 바다의 거품 중에 하나가 지구면의 산 사람들의 세상일지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더 큰 죽은 자들의 세상이 따로 있을지.

 

네게 가장 인간적인 행위란 무엇인가

누구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 (p. 315)

 

무엇이 자유의 징표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p. 315)

 

Ü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4부 성 자누아리우스

 

새해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아직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야만 하고 나는 아직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사물의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범을 배우고자 한다. 그리하여 나는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될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이것이 앞으로 나의 사랑이 될지어다.

 

요컨대 언젠가 나는 긍정만 표시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p. 323)

 

Ü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하긴 처음이나 니체와 잘 어울리기도 하다.

 

인격적 섭리

가장 현명한 신도 이때 우리의 바보스런 손이 만들고 있는 음악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을 고안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p. 324)

 

Ü 음악이 없는 삶은 그래서 신들의 삶에 그들의 의도에 우리를 내팽겨치는 것과 다름없다.

 

죽음에 대한 사상

오직 죽음과 죽음의 침묵만이 이러한 미래에 모두에게 확실하고 공통적인 것이다. 이 유일하게 확실하고 공통적인 것이 인간들에게 인상적이지 못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자기를 죽음의 형제로서 털끝만큼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인간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들의 삶에 대한 생각을 백배로 생각할 만한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기꺼이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다. (p. 325)

 

별들의 우정

우리는 저마다 목표와 진로가 있는 두 척의 배다.

우리가 서로 서먹서먹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법칙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위해 더욱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로써 더욱 신성해질 지난날 우정의 추억을 위해서도. (p. 325)

 

지식 추구자를 위한 건물

교회가 사색의 독점권을 쥐고 있던 시대. (p. 326)

 

걸음걸이

길고 무거운 의상과 같은 문장들을 정력적으로 중첩해 쓰기를 즐기는 작가들을 볼 때면 나는 웃음이 난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발을 감추려고 애쓴다. (p. 327)

 

Ü 뜨끔해진다. 니체가 말한 대로 유려함보다는 직선으로

 

보다 높이 excelsior

그대는 머리 위에 만년설이 있고 가슴에 불길을 짊어진 산악에 대한 조망도 없이 살아가리라 (p. 328)

 

도덕의 설교자에게

도덕을 설교하는 인간에게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 싶다. 만일 그대가 최상의 사물과 상태로부터 그 모든 명예와 가치를 빼앗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것들에 관해 계속 설교하라.

나는 나에게서 신을 없애게 해 줄 것을 신에게 간청한다. (p. 333)

 

Ü 설교하고 말하여 지는 순간 모든 것은 아닌게 되리라. 금은 납으로 변하고 도덕은 없던게 될 것이다.

 

자연의 비방자에게 반대하여

날고 싶은 곳을 향하여 망설임 없이 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고귀함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주위에는 항상 자유와 햇빛이 있을 것이다. (p. 335)

 

단기적 습관

지속적인 습관이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사태에서 나는 내 신변의 공기가 나를 짓눌러 오는 것처럼 느낀다. 예컨대 관직이나 또 같은 인간들과 늘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것, 고정된 주거, 변함없는 건강 등이 그런 것들이다. (p. 336)

 

Ü 니체의 입장에서는 예측가능한 인간 만큼 갑갑한 인간은 없는 것이다.

 

고정된 평판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난 몇 천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정신의 역사 속에서는 인식 추구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움을 당했을 것이며 수많은 자기 경멸과 남모를 비참함이 그 안에 포함되었음이 틀림없으리라 (p. 337)

 

Ü 살아가야만 하는 피와 살의 인간은 누구나 이 평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행동함으로써 내버려 둔다.

그의 눈은 단호하게 그의 목표에 고정되어 옆도 뒤도 아래로도 향하지 않고 앞만 바라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가 내버려 두는 것을 결정한다. 우리는 행동함으로써 내버려 둔다. (p. 342)

 

극기

입을 열 때마다 무조건 자신을 통제하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저 도덕 교사들은 그로 인해 인간들을 특수한 병에 걸리게 한다. 곧 모든 자연스러운 흥분이나 애정에 대한 끊임없는 신경질과 하나의 간지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어떤 본능이나 자유로운 날개짓에 맡기지 않는다. (p. 342)

 

Ü 인간 본능을 죽이는 도덕, 군집 본능만을 확대해서 키우고 개인이 아니라 전체로 살아가라는 전체주의적 교육, 도덕교육.

 

비판을 위하여

우리가 어떤 것을 비판할 때 이것은 자의적이거나 비개인적인 일이 아닌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 안에서 생생히 활동하며 피막을 찢는 활기찬 힘의 증거이다. 우리는 부정하고 부정해야만 한다. (p. 343)

 

Ü 세상에 대하여! 맞다. 부조리에 가득한 세상을 부정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의지와 파도

흡사 누군가를 앞지르기라도 하려는 듯이 마치 가치 있는 가장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 거기에 숨겨져 있기나 한 듯 보인다. 그리고 이제 파도는 다소 천천히 그래도 아직 흥분하여 하얀 거품을 내며 되돌아오고 있다. 실망했는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는가? 실망한 척을 하고 있는가? – 그러나 이미 또 다른 파도가 처음 것보다 더 탐욕스럽고 야만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파도는 산다. (p. 345)

 

Ü 내가 알고 있는 파도에 대한 거의 완벽한 표현이다. 멋진 표현이다. 니체 답다. 

 

비유

모든 별이 순환궤도 위에서 움직인다고 보는 사상가들은 가장 심오한 사상가가 아니다. 자기 내면을 마치 끝없는 우주 공간을 보듯이 들여다보며 그 내면에 은하수를 간직한 자는 누구든지 또한 모든 은하수가 얼마나 불규칙한지를 알고 있다. 이들은 현존재의 혼돈과 미궁 속 깊숙한 곳으로 인간을 안내한다. (p. 350)

 

Ü 그래서 신은 존재하고 그래서 신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 신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운명이 주는 행복

운명이 우리에게 가장 큰 경의를 표하는 경우는 우리를 잠시 적의 편에 들어가서 싸우게 만들 때이다. 그로써 우리는 위대한 승리에 이르도록 이미 예정된 것이다. (p. 350)

 

Ü 그런가. 적에 의해 만신창이가 될 경우에도 맞는 말인가. 맞는 말일게다. 그럼으로써 맷집이 세지니까.

 

위대함에 속하는 것

인간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하는 힘과 의지를 자기 내면에서 발견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대한 것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p. 351)

 

Ü 위대함은 내면에서, 고통에서 내면의 고통에서 온다 하겠다.

 

어리석음을 공격하다

이기주의는 비난할 만한 것이다라는 끈질기게 주장된 믿음이 크게 보아 이기주의를 공격해 온 것은 사실이다. (군집본능을 위해)

네 이기심은 네 삶의 재난이다.’ 이것이 몇 천 년 동안 설파돼 온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 설교는 이기심을 공격하고 그것으로부터 많은 재능, 많은 명랑, 많은 독창력, 그리고 많은 아름다움을 빼앗아 갔다. 그것은 이기심을 어리석은 것, 추한 것, 해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p. 353)

 

Ü 이기주의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한다만 이기심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닐 터. 나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내 주위가 바로 서지 않으니.

 

한가함과 여가

사람들은 마치 언제나 무엇을 놓치지는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하라. 이 원칙이 모든 문화와 고상한 취미의 맨 마지막 숨을 끊어 버렸다. (p. 353)

 

Ü 쉬지 않으면 죽는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은 편히 쉬는 사람을 위해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봉사하는 아우성의 구조다.

 

□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여유를 위한 시간과 능력이 더는 없다. 왜냐하면 이익을 좇는 삶이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기만하고 계략을 짜내고 남을 앞지르는 일에 언제나 정신을 기진맥진하도록 소모해 버릴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정한 미덕은 어떤 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해치워 버리는 것, 그것이다. (p. 354)

 

Ü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 과거에는 사정이 달랐다. 고귀함과 명예는 오직 여가와 전투에만 있었다. (p. 354)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결국 생소한 것에 대해서 우리의 선의와 인내, 공정함, 부드러움을 베푼 보상을 받는다. 우리는 사랑도 배워야만 한다. (p. 357)

 

고뇌에 대한 의지와 동정자들

다른 사람의 고뇌로부터 개인 고유의 특징적인 요소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 동정이라고 하는 감정의 본질이다.

 

그는 나 또는 너의 그 고통스러운 불행의 내적 경위와 착잡함의 전모를 전혀 모른다. 내 영혼 전체의 경제 economy 와 불행으로 말미암은 그 결산, 새로운 원천과 요구의 분출, 오랜 상처의 유착, 모든 과거의 거부 이러한 불행과 연관되어 있는 전체를 동정자들은 마음에 담지 않는다. (p. 362)

 

□ 삶은 아름다운 가능성의 황금실로 짜인 베일 약속하고 거부하고 수줍어하며, 냉소적이고 동정적인 또 유혹적인 로 싸여 있다. 그렇다. 삶은 여성이다. (p. 365)

 

5부 우리 두려움 모르는 존재들

 

□ 진리를 향한 의지 그것은 죽음에 대한 의지일지도 모른다.

, 자연, 역사가 비도덕적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도덕은 존재하는가?

신 자체도 우리가 꾸며 낸 가장 오래된 허위임이 입증된다면? (p. 378)

 

□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누구냐? 우리는 자신을 단순히 진부하게 그저 무신론자, 불신자 또는 비도덕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그런 호칭이 알맞은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말기 단계에 이른 위의 세 가지 (무신론자, 불신자, 비도덕주의자)를 결합한 자이다. (p. 380)

 

□ 불신이 많으면 그만큼 철학도 많다. (p. 381)

 

Ü 의심의 학문인가.

 

□ 신앙은 의지가 결여된 곳에서는 항상 가장 심하게 기대되고 긴급히 요구된다.

이 두 종교는 의지가 닳아 없어진 시기에 열광주의의 선생이 되었다. 왜냐하면 열광주의는 약하고 불안정한 자조차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의지력이기 때문이다. (p. 383)

 

Ü 쇼펜하우어의 모습이 짙게 깔려 있다.

 

종교의 기원에 관하여

종교 창시자들이 본디 창안한 것은 생활에 하나의 해석을 부여하는 것. 그 해석으로 생활에 최고의 후광이 비치게 하고 그 결과 바야흐로 그 생활을 인간이 그것을 위해 싸우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까지 포기하는 귀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p. 388)

 

Ü 그것이 사실이라면 종교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된다.

 

□ 부처는 그러한 종류의 인간들이 불가피하게 그야말로 타성의 힘 때문에 지상의 노고의 반복을 방지하겠다고 약속해 주는 신앙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야말로 부처의 천재성이었다. (p. 389)

 

□ 의식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생각건대 의식의 정밀함과 강함은 항상 인간 또는 동물의 전달능력에 비례하며 그 전달능력은 또한 전달의 필요성에 비례한다.

의식 일반은 오로지 전달의 필요에서 오는 압력 때문에 발전된 것이다. (p. 390)

 

□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을 되도록 개인으로서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하는 최선의 의지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비개인적인 것, 평균적인 것만을 인식하는 데 그칠 뿐이다. (p. 391)

 

인식이라는 개념의 기원

사람들은 대체 인식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는가?

곧 어떤 낯선 것을 친숙한 것으로 환원하는 일.

모든 낯선 것, 익숙하지 않은 것, 의심스러운 것 속에서 이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 않을 어떤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가 아닐까? 우리에게 인식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사실 두려움의 본능이 아닐까?

 

그런데 습관적인 것은 인식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낯익지 않은 것으로서 멀리 있는 것으로서 우리 밖에 있는 것으로서 바라보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다. (p. 392~393)

 

Ü 인식조차 인식하는 철학자.

 

유럽은 어느 정도까지 예술적이 될 것인가?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사회를 이루는 재료가 아니다. 이것이 이 시절의 진리다. (p. 395)

 

□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이 세 명의 철학자가 제시한 세 개의 명제는 독일적 자기인식, 자기경험, 자기 파악에 나타나는 깊이 있는 사고의 한 조각이다. (p. 396)

 

Ü 니체는 민족주의자일까. 전에 없는 어두움이 지나간다. 우생학적 우월함이 느껴진다.

 

□ 도대체 인간의 실존에는 의미가 있는가? 그것의 가장 깊은 의미까지 완전히 듣는 데만도 몇 세기가 필요한 문제이다. (p. 398)

 

Ü 쇼펜아우어의 질문이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에 지적 적자 수준의 인용을 하고 있다.

 

□ 정신의 농민혁명

오랜 세월 세워져 온 그리스도교와 같은 작품, 물론 한번에 모두 파괴될 수는 없었다. 지진이 그 유형물을 흔들어 대고 모든 유형의 정신이 거기에 구멍을 뚫으며 파고 그것을 갉아먹으며 축축하게 적시며 파괴에 힘을 빌려 주어야만 했다. (p. 400)

 

Ü 고대 그리스와 동시대인이 된 느낌을 가져 본 적 없는가. 아직 그 흔적이 있고 그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시계를 확장했을 때 동시대에 살았던 인간의 흔적이 아닌가.

 

정신의 천민주의 (p. 402)

 

정신에 대한 복수 그리고 도덕의 여러 다른 배경들

정신적인 인간을 뛰어넘을 만큼 우월해 보이는 외관을 만들어 내며 적어도 그의 상상 속에서 성취된 복수의 즐거움에 이르는 데 필요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그대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언제나 도덕성이다. (p. 403)

 

배우 문제에 대하여

몸을 맡길 때조차 그녀들은 무언가를 상연한다는 것, 여성들은 그토록 예술적인 것이다. (p. 406)

 

양성은 사랑에 대해 저마다 어떤 선입견이 있는가

조건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녀의 사랑은 믿음이다.

여자처럼 사랑하는 남자는 노예가 된다. 반면 여자처럼 사랑하는 여자는 더욱더 온전한 여성이 된다.

 

여성은 소유물로서 여겨지고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소유물과 소유된다는 개념으로 변해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주거나 포기하는 남자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남자를 원한다. (p. 407)

 

Ü 잘 새겨두자.

 

길조차 생각에 잠긴 것 같은 길가를 걸으면서 생각한다. (p. 409)

 

Ü 이것은 나에게 필요한 글이다.

 

냉소주의자들은 말한다.

극장에서 사람들은 모두 민중이며 청중이며 무리 부녀자, 바리세인, 위선자, 민주주의자, 이웃, 동포 등 보통사람이 된다. 그곳에서는 가장 개별적인 양심도 최대 다수의 평준화하는 마력에 굴복하게 된다. (p. 413)

 

낭만주의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창조 작용을 하는 것은 굶주림이냐 풍요로움이냐? 즉 창조 원인은 고정되고 불변하고자 하는 욕망,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인가? 아니면 파괴, 변화, 새롭고 기이함, 미래, 생성하고자 하는 욕망인가 하는 문제에 주목하는 것이다. (p. 416)

 

편견으로서의 과학

본질적으로 기계론적 세계는 필연적으로 무의미한 세계다. 한 음악이 얼마만큼 계산될 수 있는가, 세어질 수 있는가,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평가된다고 가정하자. 그러한 음악의 과학적 평가는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대체 음악의 무엇을 파악하고 무엇을 이해하고 인식했다는 것인가. 하나도 여기에 진짜 음악은 실제로 하나도 없다. (p. 420)

 

우리는 왜 에피쿠로스파로 보이는가

우리는 아직도 난폭한 미친 짐승에 타고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주저의 빛을 보인다 해도 이때 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것은 결코 위험한 것이 아닐 터이다. (p. 421)

 

□ 소국으로 분열된 유럽을 영구화하려고 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p. 424)

 

Ü 각주) 니체가 파시즘의 선두 주자였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문맥을 무시하고 이 항을 부분적으로 인용하기는 쉬우리라. 그러나 민족주의와 인종 증오에 대한 그의 표명이나 심장의 격분과 패혈증과 같은 표현을 본다면 니체는 확실히 궁극적으로 국가사회주의를 실현했던 이러한 경향들과 그 자신을 나눠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해 문제에 대하여

그들은 또 확실히 이해되지 않을 것도 바라고 있다. 누군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도 그것은 책에 대한 항의는 전혀 아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지은이 의도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p. 427)

 

포겔프라이 왕자의 노래들

 

□ 시인의 소명 중에서

 

나는 이 숲 속에서 무엇을 기다리는가

강도처럼 매복하고서 누구를 기다리는가

격언을? 비유를? 갑자기

내 시의 운율이 그 뒤에서 덮쳐 온다.

몸부림치는 그 운율을

시인은 시구로 요리하지.

- 물론, 친구여, 그대는 시인이랍니다.

딱따구리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 남쪽에서 중에서

 

이성이라고! 그것은 불쾌한 것 하나의 홍수다.

그것은 우리를 너무 빨리 목적지에 데려간다.

나는 하늘을 날며 나를 우롱하고 있던 것들을 깨달았다.

벌써 새로운 삶, 새로운 놀이를 위한

용기와 피와 활력을 느낀다. (p. 441)

 

신앙심 깊은 베파 중에서

 

내가 아름다워 보이는 한

신앙심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우리는 알고 있지. 신은 젊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특히 그녀가 아름답다면 더더욱.

나의 가련한 작은 수도사여,

신은 그대에게 기꺼이 허락하실 것이다.

 

기꺼이 용서하시는 신께.

내가 아름다워 보이는 한

신앙심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

내가 늙어 비칠거리는 노파가 되면

악마가 나를 사랑해 주리라! (p. 443)

 

사랑고백 중에서

 

오 놀라워라! 그는 아직도 날고 있는가?

그는 높이 높이 올라간다. 그의 날개는 움직이지 않는데도~

무엇이 그를 그토록 높이 띄워 올리는가

무엇이 그의 목표이면 진로이며 의지인가

 

별처럼 영원처럼

이제 그는 생명마저 뛰어넘는 높은 곳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의 질투조차 동정하면서

그저 떠도는 듯 보이지만 그는 사실 높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p. 444)

 

북서풍에게 바친다 중에서

 

우리는 끝없이 변화하며 춤을 추리라.

자유로워라 우리의 예술이여

즐거워라 우리의 지식이여

 

모든 꽃들로부터

한 송이 정화를 피워 내라. 우리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화관을 휘감는 두 개의 잎을 피워 내자.

마치 음유시인처럼

성자와 매춘부 사이에서

신과 세상 사이에서 춤을 추자!

 

바람과 같이 춤추지 못하는 자들

기저귀나 차야 할 허약한 인간들

불구자, 늙고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들

얌전한 척하는 자들

허영에 찬 녀석에 수다스런 도덕가들,

너희는 우리 천국에서 썩 꺼져라! (p. 452)

Ü 세상을 향한 외침이라면 적어도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통렬하고 멋진 말에 내 마음이 정화된다.

 

3. ‘철학자의 철학자(내가 저자라면)

우선 이 책 냄새 너무 좋다. 재생지를 사용했는가. 나는 가볍고 책의 물성을 느낄 수 있는 이 책 냄새가 좋다. 어쨌든 내가 드디어 니체와 조우했다. 신은 죽었다는 말을 한 최초의 인간을 말이다. 들뢰즈가 평가한 니체를 인용해 보자.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니체가 원했던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니체의 파편적 글쓰기는 이 책에서 돋보인다. 들뢰즈가 말하는 가치의 개념은 이런 파편적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된 듯 하다. 각각의 개념, 가치, 상황 등을 일갈하거나 촌철살인하며 핵심을 꿰뚫어 버리는 본질의 언어는 니체가 가진 큰 장점이다. 그는 애둘러가지 않는다. 직선으로 파고들의 사물의 핵심을 정확히 찌른다. 우리는 그렇게 찔려 피 흘리는 모든 가치와 사물에 대해 우리 자신을 정화하고 있는 지 모른다. 비극을 보는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말이다.

 

니체는 우리나라에서 철학자로서 유일하게 히트 상품에 올라도 손색없을 유명세를 탔다. 왜 그런가를 따지는 것은 학자들에게 넘겨두고 그는 어찌 되었든 한국의 독자들을 매혹시켰다. 니체가 일언지하에 토막 내 버리는 권위와 권력 앞에 억압된 한국의 인민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철학자 사변은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맹신주의에 빠져 있던 사람,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신봉하고 전체주의에 봉사하던 사람들에게는 니체가 주적으로 간주될 수 있을 만큼 미웠겠으나 그 외의 보편적 인민들에게는 종교와 국가 권력을 다시 볼 수 있는 개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니체가 없었다면 신의 섭리대로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니체는 인민의 구원자이고 동시에 교회를 신의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 이단자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왠지 니체가 마음에 든다. 범신론은 물론이거니와 이신론, 무신론도 아닌 회색에 회색을 덧칠한 나 같은 합목적적 상황 신을 믿는 철학적 기반 없는 사람에게는 니체는 어느 순간 나타나 어느 구절의 어떤 파편적인 글을 끌고 와 나를 정당화 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멋진 사람이다.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그런데 니체는 왜 이렇게 많은 개념과 가치들을 잘게 잘게 부수어 사유했을까. 그 사유의 근거가 이 책의 편집근거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어느 정도 맞을 수 있다고도 본다. 구성은 읽기에 편하지 않다. 아마도 니체의 자의적 구성이거나 구술의 단순 시간적 편집이라고도 생각되는데 1~5부까지 나누어진 구분의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읽기 어려웠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는 주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쪼개진 글의 매력은 단순화된 개념을 둘러가지 않고 곧 바로 이야기하는 자신감이다. 니체는 그런 자신감으로 세상에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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