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2012년 10월 22일 11시 16분 등록

즐거운 지식

프리드리히 니체 / 관복록 옮김

 

 

I. 저자에 대하여 / 프리니리히 니체

 

 [출처] 프리드리히 니체|작성자 휘참

 니체1.jpg

 

출생 : 1844 10 15

프로이센 작센 뢰켄

사망 : 1900 8 25 (향년 55)

독일 제국 바이마르

1864  본대학 입학  

1868  바그너와 처음 만남  

1870  바젤대학 고전 언어학 교수  

1879  바젤대학 사임  

1888  진행성 마비증상 발작   

1889  이탈리아 튜린에서 발작. 바젤의 정신병원으로 후송

분야 : 철학(실존주의), 정신분석

관심분야 : 미학, 윤리학, 존재론, 심리학

사상 :아폴론 기질과 디오니소스 기질(Apollinisch-dionysisch)

신은 죽었다(Gott ist tot)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초인(超人:Übermensch)

말인(末人:der letzte Mensch)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독일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 IPA: [ˈfʁiːdʁɪç ˈvɪlhəlm ˈniːtʃə], 1844 10 15 ~ 1900 8 25)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고, 특유의 문체를 사용했으며 경구(aphorism)에 대한 자신의 기호(嗜好)를 드러내었다. 니체의 영향력은 철학과 철학을 넘어서는 다른 영역에도 실질적으로 남아있는데, 특히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그러하다.

니체의 문체와 진리의 대상 및 가치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질문은, 중요한 해석의 문제를 제기했고, 대륙철학(현상학)과 분석철학 모두에서 방대한 이차 문헌이 생겨나게 했다. 그의 주요한 사상이 생()의 긍정으로서의 해석의 비극을 포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는 셀 수 없는 해석으로 빠져드는 것이며, 플라톤 철학에 대한 뒤집기이다.

니체는 철학으로 자신의 분야를 바꾸기 전에 이미 철학자로서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24세에 그는 바젤 대학에서 고전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지만, 살아있는 동안 계속 그를 괴롭혔던 건강상의 문제로 1879년에 그만두었다. 1889년 그는 심각한 정신질환의 증세를 보였으며, 1900년에 사망할 때까지 어머니와 여동생의 돌봄을 받으며 살았다.

5세 때 목사인 아버지와 사별하고 할머니의 가정에서 어머니에 의해 양육되었다. 1864년 본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신학·철학을 배우고, 후에 리첼의 지도로 문헌학을 연구하였다. 1865년 스승 리첼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에 전학한 후, 주로 그리스 문헌학을 연구하고 몇몇 논문을 발표하는 한편, 이때부터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읽는 동시에 바그너의 음악에도 심취하였다. 1869년 리첼의 소개로 바젤 대학에서 고전 문헌학을 강의하였고,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위생병으로 종군하였으나 병으로 바젤로 귀환하였다. 이후에 계속하여 병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1872년 처녀작 <비극의 탄생>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쌓아 올렸다. 그 후 주로 북이탈리아와 남프랑스에 머물면서 저술에 전념하여 사색의 심화와 함께 가장 독창적인 저서를 냈다. <여명> <환희의 지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선악의 피안> 등에서 그는 크리스트교와 이상주의의 도덕을 '약자의 도덕', '노예의 도덕', '데카당스'라고 배격하고, '초인' '영원 회귀'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일종의 형이상학을 수립하여 뒤에 생의 철학이나 실존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1889년 정신병의 발병으로 어둡고 괴로운 말년을 보내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저작에만 몰두하였다. 특히 <즐거운 지식>에서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였다. 그가 크리스트교를 비판한 것은 유럽을 비판한 것으로, 키르케고르와 더불어 실존주의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영향 받은 인물

 

아리스토텔레스, 부르크하르트, 도스토예프스키, 에머슨,

에피쿠로스, 괴테, 헤겔, 하이네, 헤라클레이토스, 칸트,

몽테뉴, 파스칼, 플라톤, 라로슈푸코, 루소, 쇼펜하우어,

소크라테스, 스피노자, 스피르, 스탕달, 볼테르, 바그너

 

책방의 쇼펜하우어 책에서 세계와인생, 자아를 만나다

 

젊은 날의 니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중의 하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었다. 그는 본(Bonn)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 문헌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한 학기를 보내면서 신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어머니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는 본대학에서 만난 저명한 문헌학자인 리츨(F. W. Ritschl)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학교를 옮긴다. 1865 8 17일에 본을 떠난 니체는 라이프치히에 도착해서 여전히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리츨 교수를 따라 문헌학자의 꿈을 키우게도 되었지만, 20대의 니체가 진정한 스승을 발견한 것은 어느 헌 책방에서였다.

 “나는 그때 근본적인 원칙도, 희망도, 단 하나의 즐거운 기억도 없이 고통스러운 경험이나 실망스러운 일들만을 겪으면서 절망하여 갈팡질팡하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상상해 보라. 어느 날 나는 그의 책을 발견했다. 헌 책방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그 책을 집어 몇 쪽을 넘겨 보았다. 도대체 어떤 악령이 내게이 책을 집으로 가지고 가라고 속삭였는지 모르겠다. 이런 행동은 평소 책을 살 때 망설이던 버릇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집에 있던 나는 새로 획득한 보물을 가지고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그 정력적이고 우울한 천재가 뿜어내는 마력에 나를 맡겨 보았다. …… 여기에서 나는 세계와 인생, 그리고 나 자신의 본성이 소름 끼치도록 웅장하게 비치고 있는 하나의 거울을 보았다. …… 여기에서 나는 병과 건강, 유배와 피난처, 지옥과 천국을 보았다.”

 (니체, <라이프치히에서 보낸 2년에 대한 회고>)

 

사회학자 랑게의 책에 완전히 빠져 랑게주의자가 되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랑게의 저서를 읽고 영향을 받게 된다. 1866년의 여름 기간 동안 니체는 랑게의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를 탐독한 후 일 년 반 뒤인 1868 2 16일에 게르스도르프에게 편지를 보내 랑게의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니체의 권유에 의해 게르스도르프는 이미 쇼펜하우어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니체는 이번에는 랑게주의자가 되기를 권유한다. 니체 자신이 랑게주의자가 돼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 책은 제목이 약속하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무한히 담고 있으며, 반복해서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진정한 저장고네.” 그리고 니체는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우리 시대의 유물론 운동, 다윈 이론을 포함한 자연과학 …… 윤리적 유물론, 맨체스터 학설에 대해 언급한다. 니체는 랑게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887년에 개정판이 나왔을 때는 한 권을 다시 통독할 정도였다. 이처럼 매번 새로운주의자가 되기를 권유하는 것은 니체 철학의 핵심인생성’(혹은 되기)의 실천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니체가 선생으로서 보인 재능에 대해 몇 가지 일화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방패 이야기다. 니체는 여름방학 동안 호머의 <일리아드(Iliad)>에 등장하는 방패에 대한 묘사를 읽어오라는 숙제를 냈다. 방학이 끝난 첫 수업 시간에 니체는 한 학생에게 아킬레스의 방패에 대한 묘사를 읽었는지 물었다. 그 학생은 읽지 않았으면서도 읽었다고 대답했다. “좋아. 그러면 우리에게 아킬레스의 방패에 대해 한번 묘사해 주게나.” 곧 바로 침묵이 이어졌고, 니체는 10분 동안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으로 교실을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니체는 말했다. “아주 잘했네. OO군이 우리에게 아킬레스의 방패를 설명해 주었으니, 이제 계속 수업을 하도록 하지.”

바젤에서의 생활은 니체에게 다양한 교류의 장이었다. 바그너와 깊은 유대를 나누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 신학자인 프란츠 오버베크, 종교사학자이자 법사학자인 바흐호펜, 동물학 교수인 뤼티마이어 등의 학자와 교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니체는 문헌학 교수의 자리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쓴 <비극의 탄생>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자 이러한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훗날의 니체는스물네 살에 대학 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글을 남길 정도였다

 

영향 준 인물

 

무질, 베버, , 런던, 바티유, 프로이트, 가타리, 지드

하이데거, , 슈타이너, 스트린드베리, , 브란데스

러브크래프트, 카뮈, 모리슨, 멩켄, 골드먼, 켐벨, 지브란

쿤데라, 사바토, 크레인, 위그먼, 바르트, 푸코, 사르트르

로스코, 헤세, 들뢰즈, 말러, 아들러, 오닐, 키지, 팔리아

로티, 데리다, 함순, 랜드, 윌리엄스, 로저스, 아르망

마리아테기, 카우프만, 아도르노, 보드리야드, 베냐민

피츠제럴드, 하버마스, 스펭글러, 블룸, 카프카, 슈트라우스

부버, 슬로터디예크, 버틀러, 드라이퍼스, 셰스토프,

노바토레, 이크발, 야스퍼스, 보르에스, 코제브, 말로

마르쿠제, 에볼라, 세간티니, 옹프레, 로바키제, 스트라우스

로커, 자프페, 치오란, 그로스, 브라치

 

생애

 

-출생과 학업 (1844 – 1869)

 

니체는 1844 10 15일 프로이센의 작센 지방의 소읍인 뢰켄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프로이센의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빌헬름 4세는 니체가 태어나던 날에 나이가 49세를 넘었었다(니체는 훗날 그의 이름에서 가운데에 있던 "빌헬름"을 빼 버렸다.) 니체의 아버지인 카를 루트비히 니체(1813 ~ 1849)는 루터교 목회자이자 전직 교사이었고, 프란치스카 욀러(1826 ~ 1897) 1843년에 결혼하였다. 그의 여동생인 엘리자베스는 1846년에 태어났고, 뒤를 이어 남동생인 루드비히 요제프가 1848년에 태어났다. 니체의 아버지는 뇌질환으로 1849년에 사망했다. 그의 어린 남동생은 1850년에 사망했다. 그 후 가족은 나움부르크로 이사를 갔고, 그 곳에서 니체의 할머니와 아버지의 결혼하지 않은 두 자매들과 함께 살았다. 니체의 할머니가 1856년에 사망하자, 가족은 그들의 집으로 이사했다.

 

1861년 니체는 소년학교에 출석했고 그 다음에는 그가 구스타프 크루크와 빌헬름 핀터와 친구가 되었던 곳인 사립학교에 다녔다. 두 친구는 모두 명망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1854년 그는 나움부르크에 있는 돔 김나지움에 다니기 시작했으나, 그의 특출난 재능은 음악과 언어에서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 후 국제적으로 유명한 슐포르타에 동료들처럼 입학했으며, 그 곳에서 그는 그의 학업을 1858년 부터 1864년까지 계속했다. 그는 파울 도이센, 카를 폰 게르도르프와 친구가 되었다. 또한 그는 시를 짓고 음악을 작곡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슐포르타에서, 니체는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에 대해서 중요한 입문 과정을 이수 할 수 있었다. 그 동안에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조그만 시골 마을의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가족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다.

1864년 졸업을 한 후에, 니체는 신학과 고대 철학을 본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동안, 그는 도이센과 함께 대학생 학우회(독일어: Burschenschaft Frankonia)의 구성원이 되었다. 한 학기 후에 어머니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학 공부를 중단했고, 자신의 신앙도 상실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1835~1836년에 다비트 슈트라우스가 쓴 《예수의 생애》(Das Leben Jesu)란 책에서 그가 담당한 부분을 읽어나가던 중에, 그 책의 내용이 젊은 니체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을 것이다. 그 후 니체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 교수 밑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데 집중하였고, 이듬해에 그는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다. 거기서 그는 고전문학자 에르빈 로데와 친구가 되었다. 이 무렵 니체의 첫 철학 저서의 출판이 곧 이루어지게 된다.

1865년에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글들을 알게 되었고, 그는 1866년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의 책,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에 대한 비판》(Geschichte des Materialismus und Kritik seiner Bedeutung in der Gegenwart)을 읽었다. 그는 두 사람의 저서 모두와 자극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저서는 니체가 그의 지평을, 철학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확장하도록 격려했으며, 그의 학업을 지속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1867년 니체는 자원하여 나움부르크에서 프로이센 포병으로 한해동안 복무하였다. 그러나 1868 3월에 그는 말을 타다가 사고를 당해 가슴을 다쳐 군복무를 지속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니체는 그의 관심을 다시 그의 학업에 둘 수 있었고, 학업을 끝낸 후 그 다음 해에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났다.

 

-바젤 대학교에서의 교수 생활 (1869–1879)

[출처] 프리드리히 니체|작성자 휘참

 

24살에 리츨의 도움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문헌학 교수에 취임하였다. 바젤 대학교에 들어선 이후, 그는 프로이센의 국적을 포기했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공식적인 시민권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870년에서 1871년까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했는데, 카우프만은 그가 군의관 활동 당시 매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어떤 이들은 니체가 미친 까닭이 매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바젤 대학교로 돌아오면서 그는 독일제국의 성립과 비스마르크의 등장을 보았다.

그는 대학교에서 취임 강의로호메로스와 고전문헌학”(Homer und die klassische Philologie) 을 연설했다. 그는 신학과 교수인 프란츠 오버베크와 어울렸으며, 그와 평생동안 친구로 지냈다. 당시 러시아 철학자였던 아프리칸 스피르, 니체가 자주 강의를 들었던 동료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등도 니체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니체는 이미 1868년부터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만나기 시작했었는데, 그의 부인과 그에 매우 감탄하곤 했다. 또한 바그너는 니체와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 초대하기도 했다. 니체는 1872년에 《비극의 탄생》을 썼다. 하지만 리츨과 같은 니체의 동료들은 이 책에 대해 별로 열정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프리드리히 니체|작성자 휘참

 

1873년과 1876년 사이에는 《반시대적 고찰》을 썼는데, 4편으로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로 나뉘어 진다. 네 편의 에세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가 주장하는 대로, 독일 문화의 발전 노선에 도전하는, 문화 비평의 방향을 공유하고 있다. 1873년이 시작할 무렵, 니체는 또한 고대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철학 같이 사후에 출간된 기록을 점차로 모으고 있었다. 이 시기 동안 바그너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니체는 말비다 폰 메이센부르크와 한스 폰 뷔로우를 만났고, 1876년에 그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초기 저작에 나타난 비관주의를 해소시킨, 파울 리와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는 1876년에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진부한 공연과 대중의 천박함에 혐오감을 느끼고 실망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바그너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1878년 니체는 그 특유의 경구가 가득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출판하였다. 또한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철학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즈음에 혼인을 하려 애쓰기도 했다. 1879, 건강이 더욱 악화되면서 니체는 바젤 대학교이 교수직을 사임했다(사실 그는 어릴 적부터 병치레가 잦았는데, 가끔 두통이나 복통을 겪기도 했다. 1868년에 낙마사고와, 1870년에 걸린 병 때문에 니체의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 바젤 대학교에서 휴가를 많이 갖기도 했다.).

 

독립 철학자 생활 (1879–1888)

 

바젤 대학교에서 나온 이후 병든 몸이 적응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집필생활에 몰두하였다. 1881, 프랑스가 튀니지를 점령했을 때, 튀니지로 여행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이내 그 계획을 접고 만다.(건강에 대한 문제로 여행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1889 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졸도한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보냈다.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그를 간병해 주었다. 하지만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 였던 그녀는 니체의 철학을 조작했다.

니체의 초기 저작은 《비극의 탄생》, 중기저작으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광》,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으며, 정신병 발병 직전인 1888년에는 《우상의 황혼》, 《반그리스도》,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생전에는 학계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으나, 사망 이후 유럽의 철학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말년의 니체(1899).

 

오해

 

니체의 이름이 아돌프 히틀러 및 파시즘과 연결된 것은 주로 그의 누이 때문이었다. 그녀는 대표적인 국수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인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결혼했는데, 1889년 푀르스터가 자살한 뒤 니체를 푀르스터의 이미지로 개조했다. 그녀는 니체의 작품들을 무자비하게 통제했고 탐욕에 사로잡혀 니체의 버려진 글들을 모아 〈권력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1901) 등을 출판했다. 히틀러에 대한 그녀의 열렬한 지지 때문에 대중은 니체를 독재자 히틀러와 연결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도덕가치 비평

 

니체는 주인과 노예의 도덕성을 구분하였는데, 전자는 강자로서 인생의 축복에서 기원되었으며 후자는 약자로서 주인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은 주인의 도덕성은 '선함' '악함'의 차이로 요약되며 노예의 도덕성은 '선함' '악함'으로 나아간다. 강자의 선은 강한 의지가 기준이 되며 '선함'은 강하고 힘이 넘치며 고상한 것이고 '악함'은 나약하고 소심하며 미약한 것이다.

반면 약자의 선은 약한자의 처지가 기준이 되며 '선함'은 약한 처지를 견딜 수 있거나 개량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며 '악함'은 약한 처지의 집단을 불안하게 만드는 강한 의지, 도전, 힘 등이다. , 주인의 도덕성에서의 '선함'과 노예의 도덕성에서의 '악함'은 도덕적 동등성을 지닌다.

 

권력()에의 의지와 초인 사상(Wille zur Macht und Übermensch)

니체는 의지가 자신의 존립을 위해 힘을 얻기를 의지하는 것을 힘에의 의지라고 하였다. 여기서 니체는 인간의 힘에의 의지는 일종의 '가식'으로 보았는데, 상황에 따라 일관적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숨기는 것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힘에의 의지로 보았다. 또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도 힘에의 의지로 보았는데, 이는 인간은 진리를 통해 변화무쌍한 자연을 예측가능하게 만들어 변화무쌍한 자연에 대응하고자 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니체는 노예의 도덕에 허우적대지 말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모을 것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런 이상적인 사람을 '초인(Übermensch)'이라고 불렀는데, 이 초인이 인류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다르게 해석하여,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허무주의(Nihilism)

 

사회는 나날이 안정적으로 변하고 문명은 더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권태로워 진다. 점점더 말초적인 쾌락을 원하고 문화는 타락해간다. 니체는 이러한 현상이 허무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미 수명이 다한 낡은 가치관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목표를 잃고 방황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허무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초인 중심의 사회였다.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니체 철학에서 볼 수 있는 근본사상의 하나로 "똑같은 것이 그대로의 형태로 영원에 돌아가는 것(回歸)이 삶의 실상(實相)이다"라는 생각이다. 모든 생성(生成)을 한 원환(円環) 안에서의 되풀이로 보는 이 사상에서는 모든 점이 바로 중심점(中心點)이 되기 때문에 현재의 이 순간이 영원한 과거와 미래를 응축(凝縮)시킨 영원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되며, 이리하여 현재의 모든 순간, 현실의 이 대지(大地) 위의 삶 자체가 그대로 영원한 가치로 이어져 힘차게 긍정되어 간다는 것이다.

 

-신의 부정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니체가 보기에 기독교가 힘찬 강한 자(주인)의 도덕을 망치고 순종, 겸손 등 소극적인 것을 미덕으로 하는 약한 자(노예)의 도덕을 강조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몸이 병들고 약한 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기독교는 그의 철학에 있어 적대적이었다. 게다가 그가 보기에 기독교는 약하고 저열한 것들의 기준에 맞추어 인류를 타락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기독교를 비판했으며, 강한 자의 도덕을 갖춘 초인이 인류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보았다.

 

평가

 

니체의 사상은 매우 파격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엄청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실제 그를 평하는데 있어서도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때도 많은데,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맹령한 비판을 하며, 어떤 철학자들은 니체를 천재적인 철학자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현대 철학사(특히 포스트모더니즘)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였다는 것이다. 니체는 프로이트나 마르크스 등과 함께 현대 철학을 뒤흔든 철학자로 인정받는다.

흔히 니체를 나치즘과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의 시초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니체의 저서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또한 엘리자베스는 흩어졌던 그의 저서들을 모아 일종의 보관서까지 열었으며, 미쳐 있던 니체에게 흰 사제복을 입혀 전시하기도 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히틀러에게 '니체의 초인이란 당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1961년 《니체》를 출간한 이후 새롭게 해석되었으며 오늘날 니체에 대한 오해는 거의 해결되었다. 그리고 실제 니체는 오히려 자국인 독일을 매우 싫어했고 민족주의 또한 매우 혐오했다고 한다.

 

영향

 

니체는 어떤 사람은 죽은 뒤 다시 태어난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니체 없이는 20세기의 철학·신학·심리학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독일의 철학자 막스 셸러, 카를 야스퍼스,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도 마찬가지이다. 철학과 문학비평에서 일어난 실존주의와 해체주의는 그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 신학자 파울 틸리히, 레프 셰스토프는 "신은 죽었다"의 신학자인 토머스 조너선 잭슨 앨타이저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위대한 유대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니체가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지적하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1부를 폴란드어로 옮겼다. 니체가 자기를 그 누구보다도 더 철저하게 이해했다고 말한 지크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아들러, 카를 융 등 심리학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앙드레 말로, 앙드레 지드, 존 가드너 등의 소설가와 조지 버나드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슈테판 게오르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의 시인·극작가도 그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그에 관해 글을 썼다. 분명히 니체는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출처] 프리드리히 니체|작성자 휘참

 

철학

 

니체의 저서들은 뚜렷하게 3가지로 구분된다. 초기작품 〈음악의 정신에서 비극의 탄생〉과 〈시대와 맞지 않는 생각 Unzeitgemässe Betrachtungen(1873)에서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낭만주의적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중기 작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즐거운 과학 Die fröh-liche Wissenschaft(1882)까지는 이성, 과학, 문학 장르의 실험 등을 찬양했고 초기 낭만주의, 바그너, 쇼펜하우어 등에게서 벗어났음을 보여주었다.

원숙기 철학은 〈즐거운 과학〉 이후에 나타난다. 원숙기 저작에서는 주로 가치의 기원과 기능을 다루었다. 생에 내재적 가치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면서 항상 생이 평가되고 있다면 그러한 가치평가는 평가자의 조건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특히 서구의 철학·종교·도덕의 기본적인 문화적 가치들을 금욕주의적 이상(理想)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금욕주의적 이상은 고통이 궁극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니체에 따르면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은 고통을 신의 의도이자 죄갚음의 기회로 해석함으로써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승리는 개인의 불멸성이라는 교리와 개인의 삶과 죽음은 우주적 의의를 갖는다는 기만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통철학은 신체에 비해 영혼, 감각에 비해 정신, 욕망에 비해 의무, 현상에 비해 실재, 시간적인 것(일시적인 것)에 비해 무시간적인 것(영원한 것)에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금욕주의적 이상을 표현했다. 그리스도교가 죄지은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한 반면, 철학은 현자들에게 세속적인 것이긴 하지만 구원의 희망을 제시했다. 전통적인 종교와 철학의 공통점은 존재는 설명·정당화·속죄 등을 필요로 한다는 가정을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양자는 경험을 다른 세계, 이른바 '참된' 세계를 빌려 훼손한다. 양자는 몰락하는 생이나 비탄에 빠진 생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전통도덕에 대한 니체의 비판의 초점은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의 유형학이다. 니체는 독일어 어휘 'gut'(좋은, 선한)·'schlecht'(나쁜)·'böse'(악한) 등을 검토하면서 선악의 구별은 원래 비도덕적인 기술(記述)에 쓰인 것으로 선은 우월한 주인, 악은 열등하고 천한 노예를 가리켰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노예가 주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배의 속성들을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선과 악의 대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월함은 악덕이 되었고, 자애·겸손·복종이 경쟁·자존심·자율성으로 대체되었다. 노예도덕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것은 노예도덕만이 참된 도덕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절대성에 대한 주장은 종교적 윤리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윤리에도 중요하다. 니체는 주인·노예 도덕의 역사적 계통학을 제시했으면서도, 이 계통학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성에 대한 비역사적 유형학이라고 주장했다.

니체는 금욕주의적 이상에 의해 최고의 가치로 정립된 것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허무주의'란 용어를 썼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수동적 허무주의 시대, 19세기에 실증주의가 출현함으로써 종교적·철학적 절대성이 이미 해체되었음을 아직 모르고 있는 시대라고 보았다.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기초와 전통적인 도덕이 허물어짐으로써 이제는 무목적·무의미 등의 느낌만이 남았다. 무의미의 승리는 곧 허무주의의 승리이며, 따라서 "신은 죽었다". 그러나 니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욕주의적 이상의 쇠퇴와 존재의 본래적 무의미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삶에 의미를 주는 대리 절대자를 찾으리라고 보았다. 당시 등장하던 민족주의가 그러한 불길한 대리 신이고 민족국가는 초월적 가치와 목적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철학과 종교가 교의의 절대성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듯이, 절대성은 사명감과 정열을 지닌 민족국가에도 나타난다고 보았다. 경쟁자에 대한 살육과 영토의 정복은 보편적 형제애와 민주주의·사회주의의 깃발 아래 진행된다. 니체의 이러한 선견지명은 날카로운 것이었다.

니체는 자신의 저작들을 허무주의와의 투쟁으로 보았다. 종교·철학·도덕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퍼스펙티브주의(perspectivism),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 영원한 회귀, 초인(超人)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켰다.

퍼스펙티브주의는 지식이 항상 특정한 퍼스펙티브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태도이다. 즉 순수한 지각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점없는 지식이란 특정한 관점없이 본다는 것만큼이나 모순적이다. 퍼스펙티브주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퍼스펙티브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퍼스펙티브란 대상을 가능한 모든 관점에서 동시에 본다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니체의 퍼스펙티브주의는 때로는 상대주의나 회의주의로 오해받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퍼스펙티브주의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퍼스펙티브주의는 니체의 주장, 이를테면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가치는 금욕주의적인 이상에 따른 것이었다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주장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퍼스펙티브에서만 옳은 것인가? 퍼스펙티브주의는 퍼스펙티브주의 자체가 절대적 참이라고 가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는 자기모순이 아닐까?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인식론에서 유용한 작업과 풍부한 주석서가 많이 나왔다.

니체는 종종 생을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 즉 성장과 영속을 위한 본능과 동일시했다. 이러한 개념은 금욕주의적 이상을 해석하는 또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이 점은 그가 "이 의지가 '결여'된 인류의 모든 최고 가치는 쇠퇴와 '허무주의적' 가치의 징후이면서도 신성한 이름을 내걸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서 나타난다. 따라서 전통적인 철학·종교·도덕은 불충분한 권력의지의 옷으로 치장하고 있다. 서구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가치들은 퇴폐의 승화된 산물이었다. 몇몇 주석가는 니체가 말하는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라는 개념을 인간의 삶만이 아니라 유기적·무기적 영역에까지 확대 적용함으로써 니체를 권력의지의 형이상학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지지하기 어렵다.

영원회귀의 원리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기본사상이다. 영원회귀란 서로 다른 삶이 무한히 반복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순간과 모든 순간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무한히 되풀이되는 것을 뜻한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초인일 것이고 초인과 보통사람의 거리는 인간과 원숭이 사이의 거리보다 더 멀다고 말하고 있다. 주석가들은 아직도 영원회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인간을 규정하는 특수한 속성들이 있는가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저작

 

1872 :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1873~6 : 《반시대적 고찰》(Unzeitgemässe Betrachtungen)

1873 : 1부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David Strauss: der Bekenner und der Schriftsteller)

1874 : 2부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Vom Nutzen und Nachtheil der Historie für das Leben)

1874 : 3부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Schopenhauer als Erzieher)

1876 : 4부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in Bayreuth)

1878~9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1881 : 《아침놀》(Morgenröte)

1882 : 《즐거운 학문》(Die fröhliche Wissenschaft)

1883~5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1883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2

1884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

1885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 (비공개 출판)

1886 : 《선악의 저편》(Jenseits von Gut und Böse); 《비극의 탄생》,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개정판 서문

1887 : 《즐거운 학문》 개정판 서문;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

1888 : 《바그너의 경우》(Der Fall Wagner), 《우상의 황혼》(Götzen-Dämmerung), 《안티크리스트》(Der Antichrist),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디오니소스 송가》(Dionysos-Dithyramben), 《니체 대 바그너》(Nietzsche contra Wagner)

 

-니체가 쓰러진 뒤

 

니체는 1888 ~ 89년 해가 바뀔 무렵 정신적 암흑에 빠졌다. 그의 저작들은 정본이라 할 만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부분적으로 예전 저작들은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판본으로 나와 있었으나, 두 저작은니체가 잘못된 곳들을 지적한 가운데인쇄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아울러 인쇄되지 않은 자료들이 다양한 마무리 수준 상태로 존재했다. 이 인쇄되지 않은 자료는 프란츠 오버베크가 하인리히 쾨젤리츠(페터 가스트)와 협의하여 처음으로 수집했다. 이들은 또한 니체의 최종 출판업자인 콘스탄틴 게오르크 나우만과 함께 계속적인 출판작업을 두고 논의했다. 그리고 1890년 말에 처음으로 파라과이에서 귀향한 니체의 누이 엘리자베트 니체가 가족을 대표하여 논의에 참견했다. 그간에 니체 저술의 판매고가 올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1892년 초에 처음으로 전집판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이 전집판은 나우만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으며, 쾨젤리츠가 이를 담당했다.

[출처] 프리드리히 니체|작성자 휘참

 

 

I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즐거운 지식

 

2판을 위한 머리말

 

P149 객관적인 것, 관념적인 것, 윤 순수하게 영적인 것이라는 이름 아래 무의식적으로 숨겨진 생리적인 욕 구의 변장술은 놀랍도록 다양하다. 그래서 나는 넓은 안목으로 봐서 지금까지의 철학은 고작 육체에 대한 해설, 더 정확히는 육체에 대한 오해가 아닌 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해 본다.

 

P150 나는 아직도 단어의 예외적인 의미에서 철학적인 의At를 기다리고 있다. 아주 예리한 의사를. 국민, 시대, 인종, 인류 동의 총체적인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 나의 의혹을 끝까지 파헤쳐 대담하게도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하기 위하여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 명제 란 이렇다.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철학의 목표는진리가 아닌 다른 것- , 미래, 성장, , 생명-이었다.

 

P105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빛과 화염으꾸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것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병에 대해서는, 우리는 오히려 병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은가? 오직 거대한 고통만 영혼의 최종적인 해방자이다.

 

P152 우리는 낡은 껍질을 벗고 좀더 민감해지고, 더 심술궂은 사람이 되고, 기쁨에 대해 더 섬세한 취미를 갖고 좋은 것들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감사할 줄 아는, 좀더 명랑한 감각을 지니고 기쁨 속에서 두 번째의 좀더 위험한 순진함을 지난, 좀더 어린애 같으면서도 그전보다도 백 배나 더 섬세해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

 

P160 26 나의 냉혹함 / 나는 백 계단을 뛰어 올라가야 한다. / 위로 올라가야만 하는데 너희가 소리지르는 것을 들었다. / ‘너는 냉혹하구나! 우리가 돌로 만들어진 줄 아느냐?’/ 나는 백 계단을 뛰어 올라가야 한다. / 그러나 누구도 계단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P163 38 신앙심은 깊은 자는 말한다 / 신을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를 창조 했기 때문에! / ‘ 하지만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너희 현명한 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창조한 것을 인간이 사랑하지 않겠는가? / 하물며 스스로 창조했는데 그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 그것은 악마으 발굽을 지난 절름발이의 놀리이다.

 

P163 43 권고 네가 원하는 것이 명성이냐? / 그렇다면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라./ 적당한 때에 스스로 체념하라./ 명예를

 

1

 

 

p175 삶을 사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와 이웃의 삶을 촉진시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해야만 한다왜냐하면이라는 것이 뭐라고 불리든, 또 앞으로 뭐라 불리게 되는 상관없다. 어쨌든 필연적, 자발적으로 아무런 목적 없이 일어나던 일이 앞으로는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듯, 도리와 궁극의 규정인 듯 보이게 된다. 그것이생존 목적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가 등장하는 까닭이다

 

P179 ‘선’은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며, ‘온 종족을 해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실은 악한 충동도 선한 충동과 마찬가지로 합목 적적이며, 족족을 보존하는데 필요불가결하다. 단지 그 기능이 다를 뿐이다.

 

P183 우리는 모두 비밀 정원이나 밭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다. 말리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분출할 때를 기다리면 성장해 가는 활화산과 같다. 다만이 분출의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차도.

 

P185 실제로 우리는 학문을 통해 한쪽 목적과 함께 다른 쪽 목적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학문은 인간으로부터 기쁨을 박탈하고, 인간을 차갑고 인간을 차갑고 기계적이고 스토아적으로 만드는 그러한 힘으로서 많은 사람들에 더 알려졌을 것이다.

 

P187 우리는 낡은 것, 확실히 소유하고 있는 것에 점차 권태를 느끼며 다시 다른 것에 손길을 뻐친다.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그곳에서 3개월 정도 생활한 뒤에는 더 이상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의 먼 해변이 우리의 소유욕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소유물은 소유됨으로써 대개 시시해진다.

 

P188 결국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하고 무가치하게 여겨져 어떠한 희생도 치를 수 있고, 모든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슨 이익도 무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성애의 이런 난폭한 소유욕이나 부정이 모든 시대에 걸쳐 그토록 찬미되고 신성화되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사람들이 이러한 성애로부터 에고이즘의 반대라고 생각되는 사랑의 개념을 끌어낸다. – 사랑은 분명 에고이즘의 가장 솔직한 표현일 텐데 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P191 () 최고의 풍요로운 인간이나 만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자문해 보라. 하늘 높이 자라려는 나무가 과연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겪지 않고 그렇게 될 수 있는가.

 

P191 약한 천성의 인간을 쓰러뜨리는 독은 강자에게는 강장제이며, 강자는 또한 그것을 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P193 ‘주위 사람들은은 자신들이 이익을 얻기 때문에 사심 없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들이 만약 사심 없는입장에서 생각했다면, ‘자신들을 위해 투여된힘의 소모나 손해를 거절하고 그런 경향에 저항하면서, 무엇보다 먼저그것을 선이라 부르지 않음으로써자신의 사심을 없음을 알릴 것이다.

 

P199 하루를 나를 위해 계획해서 어떻든 보낼 작정으로 매일매일 시작하는 게 나의 습관이다. 그래서 나는 지나치리만치 형식적으로 또 지나치리만치 귀한 신분인 체했던 것이다.

                                   

2

 

P222 내가 이제까지 가장 노력했고 지금도 가장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물이 무엇인가 하는 점보다 사물이 무엇이라 불리는가 하는 점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통찰하는 일이다.

 

P223 그들은 이러한 자연과 그 메커니즘을 되도록 감추고 꿈속에서 생활했다. 아아, 이들 과거의 인간들은 꿈꾸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꿈을 꿀 때 꼭 잠자리 들 필요는 없었다! 또한 우리 오늘날의 인간 역시 깨어 있는 낮 시간을 요구하는 좋은 의지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아직도 너무나 잘 꿈꾸는 법을 알고 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열망하기만 하면, 즉 느끼기만 하면 갑자기 꿈꾸는 정신과 힘이 우리를 덮친다.

 

P226 그녀는 지금까지 성격으로 위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랑에 냉담한 듯 위장하는 것이? 사랑? 희국이여 영원하라!

 

P230‘덕망 있는 어리석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공유된 신념의 신봉자들을 같은 장소에 모여 계속 춤추게 할 수 있는, ‘완만한정신을 지닌 둔감한 메트로놈이 필요하다. 그것이 여기서 요구되고 또 청구되는 가장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 타자는 예외이며, 위험 인물이다. 우리는 어떠한 세상에서도 변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예외를 위해 약간 변명할 수 있는 것은, 예외가 규칙이 되려고 하지 않는 안에서이다.

 

P233 자연으로부터 일탈은 아마도 인간의 긍지를 북돋우는 가장 기분 좋은 만찬이 될 것이다.

 

P234 아테네인은 아름다운 이야기 쪽에 귀 기울이기 위해 극장에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소포클레스가 노렸던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 쪽이었다! 나의 이러한 이단적인 견해를 관대하게 용서해 달라!

 

P237 인간의 사상을 보다 어둡고 이상하고 희미하게III드는 새로운 색깔을 부여하는 힘-을 문체의 한가운데에 끌어들였던 그 시대에 말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미신적인 이익성이었다!

 

P240 오늘 낮에 오랜만에 강력하고 고귀한 감정을 맛보게 되었다. 만약 내가 오늘 저녁에 음악과 예술을 접했더라면, 내가 싫어하는 음악과 예술은 어떤 종류인지 잘 알았을 것이다. 즉 그것은 청중을 도취시키며, 청중을 강하고 고양된 느낌의 순간까지 강제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오든 음악과 예술이다.

 

P242 ·그는 그런 거장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그의 성격은 오히려 커다란 벽과 대답한 프레스코 벽화들을 선호한다! 그는 자기의 정신이 그것과는 별도의 취미와 영향을 보이며, 무너져 가는 집의 구석진 곳에 조용히 앉아 있기를 무엇보다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다.

 

P245 ‘하다못해 장소라도 분별한다면 그 변덕스러움도 용서해 주련만 ...... 이 광대여, 냐가라! ’라고 브루투스는 소리 지른다.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 글을쓴 시인의 영혼 속으로 되돌아가 해석해야만 한다

 

P257 독일인도 아름다워진다! ()가 그 매혹적인 영향 'I융 독일인들에게까지 미치는 것 같은 그러한 절정의 예감이, 독일 예술가들을 고양하고 지고의 고귀함과 분방한 정열로 몰고 간다. 다시 말해 추함과 어색함을 넘어로 - 보다 좋고, 보다 가볍고, 보다 남국적이고, 보다 햇빛 비치는 세계 저편으로 까고자 핸, 아니면 하다못해 그쪽을 엿보기라도 하고자 하는 실로 깊은 바람이 그들을 내모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경련은 종종 단지 그들이 춤추고 싶다는 징후에 불과하다. 그 내부에서는 숨겨진 님프들과 숲의 신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 때로는 보다 높은 신들도!

 

3

 

P275 우리는 본 것을 과거의 모든 경험에 의존하여 새로운 상으로 구성해 낸다. 우리의 정직과 정의의 수준에 따라 했던 경험에 의존해서. 모든 경험들은 감각적 인식의 영역에서조차 도덕적 경험들이다.

 

P281 광인은 그들 가운데로 뛰어들어가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신이 어디로 가셨느냐고?’ 그는 소리쳤다. ‘내가 너희에)11 말해 주마! 우리가 신을 죽였다. 너희와 내가 말이다. 우리 모두가 그의 살해 자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 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지평선 전체를 깨끗이 닦아 없애버리도록 우리에게 해면(海線)을 준 자는 누구인가?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 놓게끔 우리는 무엇을 하였던가. 지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모든 태양들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끊임없이 돌진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뒤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어떤 위아래가 있는가? 우리는 마치 무한한 무() 속을 헤매듯이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7r. 적막한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파가 몰려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연이어 밤이, 더욱 깊은 밤이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밝힐 필요는 없을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이 소란 피우는 소리가 아직 틀리지 않는가? 신의 사체가 부패되는 냄새가 냐고 있지 않은가? 신도 역시 부패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우리가 그를 죽인 것이다!

 

P304 질투심많은자 / 그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아이를 갖지 않기를 바라자. 그는 아이 에게도 질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아이가 될 수 없으므로.

 

P305 행복으로 가는 길 / 어떤 현자가 어떤 바보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 바보는 가장/싸운 도시로 가는 길이라도 가르쳐 주듯 바로 대답하였다. ‘너 자신을 찬!빠는 것, 그리고 번화가에서 사는 것이다.’ ‘기다려!’ 현자가 외쳤다. ‘너무 많을 것을 요구하는구나. 자신을 찬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느냐?’ 바보는 반격했다. ‘하지만 어떻게 끊임없이 경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찬미할 수 있겠는가?’

 

P305 믿음이 축복을 내린다 / 덕은 오직 그 덕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행복과 축복을 내린다. 그러나 자기에 대하여, 또 모든 덕에 대하여 깊이 불신하는 데에서 자신의 덕성을 발견하는 보다 총명한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내리지 않는다· 결국축복을 내리는 것은 신앙이지 덕이 아니다!

 

P310 각자에게 자기 몫을/ 나의 지식에 대한 욕망이 아무리 클지라도, 나는 이미 나에게 속해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물로부터 얻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속해 있는 것은 그 상태 그대로 사물 가운데 남아 있다. 한 인간이 도둑이나 강도가 되는 것 따위가 애초에 가능하기나 하겠는가!

 

P311 고통의 대한 오해 / 위대한 인물들은 그들의 숭배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고통을 11눈다. 그들은 사명에 따르는 희생이나 헌신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 견딜 수 없는 몇몇 순간에 나타나는 천하고 쓸모 없는 격앙 때문에, 요컨 자신의 위대함에 대한 회의 때문에 가장 격렬하게 고통받는다. 프로메테스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느끼며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은, 사하고 위대하다. 그러나 제우스를 시기할 때, 그리고 인간들이 제우스에게 바치는 존경을 질투할 때 그는 고통당한다!

 

4부 성 자누아리우스

 

P321 그대가 불꽃의 창을 휘둘러 / 내 영혼의 얼름을 깨드리니, /  내 영혼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 지고한 희망의 바다로 서둘러 간다. / 더 밝고, 더 건강하게 / 사랑으로 충만한 운명 속에서 자유롭게. / 그대의 기적을 내 영혼은 찬양하노라. / 더 없이 아름다운 1월이여! –제노바엣, 18821

 

P327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다시 용기를 존중하게 될, 보다 남성적이며 투쟁적 인 시대가 다가옴을 가르쳐 주는 모든 징후를 나는 환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다 높은 시대를 위해 길을 닦아 줄 것이며, 그런 시대가 언젠가는 필하게 될 힘을 결집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주의를 인식하고 그 사상과 결과를 위해 전투를 벌일 그런 시대.

 

P329 아마도 인간은 더 이상 신에게로 흘러 나가지 않을 때부터 점차 높아져 가리라.

 

P333 나는 도덕을 설교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러나 도덕을 설교하는 인간에 게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 싶다. 만일 그대가 최상의 사물과 상태로부터 그 모든 명예와 가치를 빼앗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것들에 관해 계속 설교하라! 그 최상의 사물과 상태를 그대 도덕의 정점에 올려놓고, 부터 밤까지 미덕의 행복에 관해서, 영혼의 안식에 관해서, 정의나 내적으 반드시 뒤따르는 보복에 관해 설교하라. 그대가 그렇게 한다면 이들 모든 선한 사물들은 결국 통속성과 항간의 풍문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 입혀졌던 모든 금박은 그렇게 많이 다뤄지면서 벗겨져 버릴 것이며, 내부의 금마저 전부 납으로 변할 것이다. 진실로 그대는 거꾸로 된 연금 , 곧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데 통달해 있다. 따라서 그대 소망과 정반대의 효과만을 낳았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과에 이르기 위, 다른 처방을 한번 시도해 보라! 저 선한 것들을 부정하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군중의 갈채와 손쉬운 유통을 빼앗아 보라. 이것들을 다시 고독 힘 영혼들의 숨겨진 수치로 만들어라. 도덕성은 금지된 어떤 것이라고 말한 여라! 그러면 너희는 이것들을 참으로 어울리는 종류의 인간들, 곧 영웅적 11깐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거기에 무언가 공포 일으킬 만한 것이 있어야만 한다. 종래처럼 구토를 일으킬 만한 것 말 ll 오늘날 우리는 도덕에 관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처럼해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나에게서 선을 없애게 해 줄 것을 신에게 간 청한다.’

 

P365 소크라테스, 그는 삶을 고통스럽게 견뎌 왔다! 게다가 그는 이에 복수를 했던 것이다-이 완곡하며 무시무시하고, 종교적으로 경건하며 동시에 모독적인 말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물조차 그러한 복수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 지나칠 만큼 넘치는 그의 덕목들 안에서도 조금의 관대함이 부족했던 것인가? - ! 친구여, 우리는 그리스인도 극복해야만 한다.

 

P367 나 또한 너처럼 몰락해야만 한다! 나는 내가 이제 내려가고자 하는 곳의 인간들이 말하는 대로 몰락하지 않을 수 없다.

 

5부 우리들 두려움 모르는 존재들

 

P373 유체여! 떨고 있느냐? / 내가 너를 어디로 가는가를 안다면 / 더욱 떨게 되리라. / 튀렌

 

P375~376 태어나면서부터 수수께끼를 푸는 일에 타고난 능력을 지닌 우리, 오늘과 내일 사이에 놓여 오늘과 내일 사이의 모순에 마음 졸이며 산 위에서 상황을 l피는 우리, 오는 세기의 첫아이이자 조산아인 우리에게는, 마침내 유럽을 에워쌀 그림자가 빨리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이러한 우리, 우리조차 이런 사태를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위 한 걱정이나 공포도 없이 다가오는 어둠을 눈여겨보는 것은 어째서인가? 우리는 어쩌면 이 사건의 맨 처음 결과들에 대한 인상에 너무 짓눌려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맨 처음 결과들, 우리에 대한 작용들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바와는 정반대일 것이다. 그것은 전혀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으며, 오히려 새롭고 표현하기 어려운 빛, 행복, 안심 유쾌한, 격려, 새벽빛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P377  지리를 향한 의지나는 속고 싶지 않다아니라 오히려-선택의 여지 없이-‘나는 속이고 싶지 않다. 나 자신조차도,를 뜻한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도덕의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다.

 

P378 ‘왜 학문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도덕 문제로 되돌아간다. ‘, 자연, 역사가 비도덕적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도덕은 존재하는가?’ 성실한 인간-학문에 대한 신앙이 전제로 하는 것처럼 저 과감한 의미에서 성실한 인간-은 분명히 그 신앙을 통해 삶 자연 역사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긍정한다.

 

P386~387 민중 현자의 이상형을 세울 때, 그들은 인식자와는 전혀 다른 형의 인간을 현자로 만들어 존경한다. 이런 형의 인간에게 민중이 가장 좋은 찬사와 존경과 공경을 바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인물은 이를 테면 온화 하면 진지하고 소박하고 순결한 사제의 천성 및 그와 관련된 무언가를 지니있다-이러한 인물에게야 말로 지혜에 대한 민중적 외경심이 솟아나는 것 '~1. 이들보다 민중의 감사를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닌 자가 있는가? 이들 인물은 민중에 속해 있고 그들 가운데서 탄생했으며, 민중의 행복을 위해 봉헌되고 선택되고 희생으로 바쳐졌다-그들은 신에게 자신을 바쳤다고 믿겠지만. 이들 인물 앞에서만 민중은 책망 받을 걱정도 없이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 즉 자신의 비밀, 근심 또는 그 이상의 나쁜 일들을 내쫒아 버릴 수 있다.

 

P425 온전한 사랑으로 증오하려면, 우리는 경멸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나 우리는 그 경멸로부터 얼마나 많은 정교한 기 , 인내, 선의를 구해 왔던가! 이를 통해 우리는신에게 선택된 자가 된 . 섬세한 경멸은 우리의 취향이자 특권이며, 우리 근대인 중에서도 가장 근대적인 인간에게는 예술이요 미덕이리라.

 

 

III. 내가 저자라면

 

즐거운 지식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얼음과 눈을 녹이는 봄바람의 언어로 쓰였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즉 신념과 긍지, 방황, 모순 그리고 변덕스러운 봄날씨가 이 책 속에 뒤섞여 있다. 겨울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음을 경고 하는가 하면 동시에 겨울을 이겨 내고 다가올, 아니 어쩌면 이미 와 있는 승리를 일깨워 준다. <즐거운 지식>은 길고 무서운 억압을 끈질기게, 준엄하게, 냉정하게, 굴하지 않고 희망조차 없이 저항해 온 영혼의 사투르날리아 축제를 의미한다.

 

이 책을 통틀어 말하면, 오랜기간의 궁핍과 무기력 뒤에 벌어지는 축하 잔치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되돌아온 활력과 내일과 모레에 대해 새롭게 피어나는 믿음의 환희이다.

갑자기 생겨난 미래, 임박한 모험, 다시 펼쳐진 바다와 다시 허락되고 믿게 된 삶의 목표들.

이러한 것들을 느끼고 예감한 기쁨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비극이 시작되다라고 쓰인 거슬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도자들이여, 조심하라!

사악하고 고약한 것이 발표됐음을 경고 한다. 이제 페러디가 시작된다. 의심할 바 없이.

 

저자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하여 끝을 낸다. 이 책은 구성이라 할 별다른 특징이 있다면 1

5부로 구성을 나눠 놓은 것이다.

1 : 1. 생존의 목적을 일깨우는 교사.

     2. 지적 양심.

     3. 고귀함과 비속

     4. 종족 보존

     5. 무조건적 의무 ~ 56. 고뇌를 향한 욕망.

2 : 57. 리얼리스트들에게

     58. 오로지 창조자로서!

     59. 우리 예술가

     60. 여성들과 원격작용

     61. 우정의 영예를 위해 ~ 107. 예술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인 감사

3 : 108. 새로운 투쟁

     109. 경계하자!

     110. 인식의 기원

     111. 논리적인 것의 기원

     112. 원인의 결과 ~ 275. 무엇이 자유의 징표인가?

4 : 276. 새해에

     277. 인격적 섭리

     278. 죽음에 대한 사상

     279. 별들의 우정

     280. 지식 추구자를 위한 건물 ~ 342. 비극이 시작되다.

5 : 343. 우리의 쾌활함이 의미하는 것.

     344. 우리는 아직도 얼마나 경건한가

     345. 문제로서의 도덕

     346. 우리의 의문 부호

     347. 독실한 신자들과 그들의 신앙에 대한 요구 ~ 383. 에필로그.

로 끝을 맺는다. 지금까지 읽어온 다른 고전과는 다른 장르이다.

마치 자신의 관심 사항을 나름데로 규정하고, 정의하여 슨 산문이나 에세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추구하는 맥락은 거의 모든 거장들을 비평하면서 옳고, 그름을 나름데로 의견을 말한 것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가치 이기도 하다.

IP *.41.190.19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12 #24.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김용규)_Review 한젤리타 2012.10.16 2825
1611 #24.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김용규)_Review file [1] 샐리올리브 2012.10.16 2772
1610 신,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김용규- file [15] 장재용 2012.10.16 3301
1609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 김용규 [2] 세린 2012.10.16 3562
1608 #24_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1] 서연 2012.10.16 2921
1607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 김용규 file [4] 학이시습 2012.10.16 3282
1606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김용규 [2] id: 깔리여신 2012.10.16 3168
1605 신 - 김용규 file [1] 콩두 2012.10.16 3850
1604 [고전읽기] 허클베리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1] [2] 미옥 2012.10.18 5799
1603 즐거운 지식 gay science - NIETZSCHE [3] 레몬 2012.10.21 3506
1602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 김용규 [1] 레몬 2012.10.21 2925
1601 #25. 즐거운 지식_프리드리히 니체_Review 한젤리타 2012.10.22 2796
1600 즐거운 지식-니체 id: 깔리여신 2012.10.22 4341
1599 즐거운 지식 - 프리드리히 니체 file [7] 세린 2012.10.22 4520
1598 #25 니체 - 즐거운 지식 file [1] [1] 샐리올리브 2012.10.22 2980
1597 즐거운 지식 -니체- file 장재용 2012.10.22 3216
» 즐거운 지식 - 니체 file [10] 학이시습 2012.10.22 8216
1595 #25_즐거운 지식 프리드리히 니체 서연 2012.10.22 2970
1594 즐거운 지식 - 니체 file 콩두 2012.10.22 3815
1593 서양의 지혜 -버트런드 러셀- file [1] 장재용 2012.10.27 3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