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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2일 06시 43분 등록
 

즐거운 지식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권영숙번역

 

니체연보

1844년 10월 15일 목사 카를 루트비히 니체와목사의 달 프란치스카 욀러 사이의 첫아들로          뢰켄에서 프리드리히 니체가 태어났다.

1846년 여동생 엘리지베트가 태어난다.

1848년 혁명이 발발한다. 아버지가 뇌질환을 앓기 시작한다.

1849년 아버지가 사망한다.

1850년 1월 9일 아버지가 무덤에서 걸어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가는 꿈을 군 날 남동생이          사망한다. 가족과 함게 나움부르크로 이사한다. 엄마, 할머니, 두 분의 이모, 여동생          이렇게 다섯 명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생활이 시작된다. 그를 평범한 소년으로 교           육시키려는 할머니의 뜻에 따라 소년 시민학교에 입학하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           하고 곧 그만둔다.

1851년 칸디다텐 베버라는 사설 교육 기고나에 들어가 종교, 라틴어, 그리스어 수업을 받는          다. 친구 크루크의 집에서 처음으로 음악을 알게 되고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선물          받아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1853년 1월 성홍열을 앓는다. 할머니가 사망한다.

1858년 14세 때 엘리트 김나지움 슐포르타에 입학해 철저한 인문계 교육을 받는다, 고전어와 독일문학에서 탁우러한 재능을 나타내며 시도 쓰고 음악 동아리를 만들어 교회음악을 작곡할 정도로 음악적 관심과 재능도 보인다. 두통이 시작된다.

1862년 <운명과 역사>라는 글을 쓴다.

1864년 본대학에서 1864/65년 가을 학기에 신학과 고전문헌학 공부를 시작한다.

1865년 1865/66년 겨울 학기에 리츨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로 학교를 옮긴다. 고서점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의 철학에 매료된다. 소년시절에 나타났던 병증들이 악화되어 류머티즘과 격렬한 구토에 시달리고 매독치료를 받기도 한다.

1866년 디오게네스에 대한 연구와 니체에 대한 리츨의 높은 평가로 문헌학자로서의 니체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1867년 1월에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의 전통에 대한 강연을 한다. 호메로스와 데모크리토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칸트철학을 접하게 된다. 나움부르크 포병부대에서 군대생활을 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출간된다.

1868년 3월, 말에서 떨어져 가슴에 심한 부상을 입는다. 10월에 재다한 후 라이프치히로 돌아온다. 동양학자인 브로크하우스의 집에서 바그너를 처음 만난다.

1870년 박사 학위도 없이 4월에 바젤대학의 고전어와 고전 문학원외 교수로 위촉된다. 5월 17일에 트립센에 머물던 바그너를 처음 방문하고 이때부터 자주 트립셴에 간다.

1872년 <비극의 탄생>이 출판된다. 바그너가 바이로이트로 이사한다. 니체는 바이로이트축제를 기획하고 5월에는 준비를 위해 바이로이트로 간다.

1873년 이때부터 구토를 동반하며 편두통이 심해지는 병이 계속된다. 눈이 극도로 나빠진다. 다비트 슈트라우스에 대한 첫 번째 저작 <반시대적 고찰>이 출간된다.

1874년 <반시대적 고찰>2, 3권이 출간된다.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가에 대한 니체의 1873년 강의를 들은 파울레와의 친교가 시작된다.

1875년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된 니체는 10월 초에 1년간의 휴가를 얻어 레와 함께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난다.

1876년 바이로이트에서 제 1회 바그너 축제가 열린다.니체는 축제와 청중에 실망하여 바그너와 내면적으로 결별한다. 10월부터 소렌토에 있는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의 집에서 머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집필한다.

1877년 9월에 바젤로 돌아와 강의를 다시 시작한다.

1878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부, 바그너가 5월에 이 책을 읽으면서 니체와 바그너 사이의 열정, 갈등, 좌절로 점철된 관계는 실망으로 끝난다.

1879년 건강이 악화되어 3월 19일에 강의를 중단하고 제네바로 휴양을 떠난다. 5월에는 바젤대학에 퇴직의사를 밝힌다.

1880년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를 출간한다. 베네치아, 마리엔바트, 나움부르크, 스트레사, 제노바를 여행한다.

1881년 <아침놀> 출간된다. 11월 27일 처음으로 비제의 <카르멘>을 보고 감격한다.

1882년 <즐거운 학문>을 출간한다. 친구 레가 제노바를 방문하다는 소식에 기뻐 졸도한다. 로마에서 살로메를 소개받는다. 살로메와 함께 오르타 호수, 루체른, 타우텐부르크를 여행한다.

1883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부를 쓴 후 매우 바른 속도로 3부까지 슨다. 2월 13일에 베네치아에서 바그너가 사망한다. 친구 레와 결별한다.

1885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4부를 출판할 출판업자를 찾지 못해 자비로 출판한다. <권력에의 의지>라는 책을 쓸 것을 구상한다.

1886년 <선악의 저편>을 자비로 8월 초에 출판한다.

1887년 <도덕의 계보>를 집필하고 11월에 자비로 출판한다. 루 살로메가 안드레아스와 결호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1888년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를 쓴다. <디오니소스 송가> 등

1889년 1월 3일 토리노에 있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마부에게 채찍질 당하는 말을 끌어안고 울다가 졸도하면서 심각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다. 오버베크는 니체를 바젤로 데려가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1월 17일 어머니가 니체를 예나대학 정신병원으로 옮긴다.

<우상의 황혼>, <니체 대 바그너>, <이 사람을 보라>가 출판된다.

 1890년 병원을 떠나 나움부르크의 어머니 집으로 돌아온다.

1893년 여동생이 완전히 귀국해 어머니와 함께 니체를 간호한다.

1894년 여동생에 의해 어머니집에 최초의 니체문서보관소가 설립된다.

1897년 4월20일에 어머니가 71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여동생은 니체를 바이마르로 옮긴다. 그녀는 바이마르의 빌라 질버블리크에 새로운 니체 문서 보관소를 설립하고 니체전집 편찬을 계획한다.

1900년 8월 25일 정오경에 니체가 사망한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문장들


카우프만의 초판 서문

***니체의 시가 갖는 운율을 포기한다면 이 책이 나타내는 정신에 위배될 것이다. (11P)

***에머슨은 니체가 학창시절에 그의 글을 읽은 후 니체으 주용한 연인 중 하나가 되었다. (14P9

***니체가 에머슨에게 깊이 심취하여 <쾌락학>을 집필하던 기간과 <짜라투스트라>를 집필하기 직전 에머슨을 여러 번 되풀이 읽고 주석을 달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불가능한 일로 보일 것이다. (17P)

***니체가 처음부터 끝가지 에머슨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18P)

***에머슨이 개발한 용어 <초超영혼>(에세이의 제목 중 하나이다)은 틀림없이 니체에게 영향을 미쳐서 니체로 하여금 <초인>이란 말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18P)

**우리는 니체가 17세기의 풍경화가 클로드 로랭을 숭배하며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아달베르트 스티프터를 숭배했음을 고려해야 한다. 이점은 니체에 있어서 에피쿠로스를 위치지음에 있어도 동일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3인이 가졌던 엄숙한 즐거움과 평화롭고 조화로운 인간성이 항상 니체를 매료시켰으리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니체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18P)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

-독일적 압운의 서곡-


2. 나의 행복

<추구하는> 일에 지침으로 해서

나는 <발견하는>것을 이해하여 갔다.

바람이 나의 얼굴을, 나의 거추장스러움을 스치고 갔기 때문에

나는 어떤 바람과도 동승할 수 있게 되었다.(43P)


7. 나를 따르다-너 자신을 따르다

나의 주의(主義)와 나의 언어에 유혹되어

너는 나를 따르고 나를 추종하는가.

오직 너 자신의 것을 충실히 따르라. (44P)


11. 잠언(箴言)에서 말하길

예리하고 유연하며, 조잡하고 정교하며

낯설고 친숙하며, 더럽고, 깨끗하고,

바로와 현자와의 대면,

나는 이 모든 것이다. 또 모든 것이고 싶다.

돼지나 뱀뿐만 아니라 비둘기이고 싶다. (46P)


18. 좁은 넋

좁은 영혼에 나는 머물 수가 없다.

선도 악도 서 있을 만한 여울이 못 된다.(47P)


33. 고독자

나는 따르는 것도 앞장서는 것도 싫다.

복종, 아니! 지배, 그것도 아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또,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만이 타인을 지도할 수 있다.

자신을 이끄는 것, 그것이 이미 나에게는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숲이나 바다의 동물처럼

자주 자기를 잊는 것,

외딴 섬에서 생각에 잠겨 앉아 있으면

이윽고 유혹이 멀리서부터 나를 불러 맞는다.

내 자신을 내 자신에게로 -유혹하는 곳. (52P)


48. 법칙에 반대하여

그날부터 나의 목에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시계가 걸려 있다.

그날로부터 별의 운형,

태양, 닭의 울음소리, 그림자, 모두가 그 힘을 잃엇다.

내게 시간을 알려주지만

이제는 벙어리요, 귀머거리요, 장님이 되엇다. 나는,

자연이 바위처럼 침묵하는 것을 발견했다.

법칙이라는 이름의 시게가 똑딱거리면서. (56p)


53.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어떤 책

과거를 회고하는 동안은 우울하고 부끄럽지만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미래에 대한 신뢰도 있다.

너는 축하는 데 있어 독수리의 일종인가?

아니면 미네르바의 사랑하는 부엉이인가? (57P)


제 1부

****존재의 목적을 일깨우는 교사(敎師)-인간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든 악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든 내가 늘 발견하는 것은 한결같이 인간은 하나의 사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63P)

***<힘>이라는 느낌에 대한 이론을 위하여-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든가 고통을 준다든가 함으로써 우리들은 자기의 힘을 타인에게 미친다. 우리들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뿐이다! 그 경우, 우리들의 힘을 느끼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들은 고통을 준다. 왜냐하면 고통은 쾌락보다, 힘을 느끼게 하는 데 더욱 효과적인 수단익 때문이다. 고통은 항상 원인을 묻는다. 그러나 쾌락은 자기만족에 그칠 뿐, 뒤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뭔가의 의미로 우리들에게 이미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기븜과 호의를 더해준다. (77~78P)


****사랑이라 불리우는 모든 것-소유욕과 사랑, 이 두 단어는 우리들에게는 뭔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것들은 동일한 충동에 지나지 않고 단지 부르는 이름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쪽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자-그 소유의 충동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잇고 이제는 그 <소유물>을 보살피는 입장에 있는 자- 측에서 사용하는 비방적인 호칭이며 다른 한쪽은 불만족스럽고 갈망하는 자의 입장에서 당연히 <선한 것>으로 찬양되는 명칭일지도 모른다. (79P)


***어떤 소유에 권태를 느끼는 것은, 즉 우리들 자신에게 권태를 느낀다는 것이다. (80P)

***이성간의 사랑이야말로 소유에의 충동이 가장 확실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사랑하는 자는 상대방을 무조건 독점하고자 한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과 육체에 대한 절대권을 요구한다. (80P)



******19. 악(惡)- 최선의, 가장 생산적인 인간들의 사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다. 하늘 높이 자라려는 나무들이 과연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겪지 않고 제대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인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불이익과 반대, 증오, 질투, 의심, 냉혹, 탐욕, 횡포 등등 이러한 것들이 없으면 오히려 덕을 위해서는 불리한 환경이라는 것을-약한 천성을 쓰러뜨리려 하는 독은 강자에게는 강장제이며, 강자는 또한 그것을 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83~84P)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서먹서먹한 그 무엇인가를 우리 몸으로부터 떼어놓는 일을 의미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도한 단순히 우리들의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약하고 늙은 것들에 대하여는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 대문에 죽음에 이르는 것, 비참한 것, 늙은 것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갖지 않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93P)

*****삶, 그것은 오랜 죽음이다. (99P)


***에피쿠로스- 나는 에피쿠로스라는 인물을 아마도 누구보다도 달리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에피쿠로스에 관하여 무엇을 듣고, 무엇을 읽어도, 나는 거기에서 고대의 오후의 행복을 음미하게 된다. 에피쿠로스의 눈은 햇볕을 흠뻑 쬐는 바닷가의 암군 한가운데에서 광대하게 퍼지는 희게 빛나는 바다를 보고 있다. 크고 작은 금수는 이 햇빛 속에서 놀며 즐거워하고, 그 햇빛처럼 또한 저 눈과 똑같이, 유유자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을 고안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있는 자 뿐이다. (104~105P)


****52.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에 관하여 알고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도로 우리들 인생의 행복에 있어서 그렇게 결정적이지는 않다.

타인이 우리들에 관하여 아는 바의 것-그리고 그때 우리들은 그것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쁜 평판에 대처하는 것보다도, 양심의 가책에 대처하는 것이 훨씬 쉽다. (110P)


2부

****58. 오로지 창조자로서!- 내가 가장 노력했고, 지금도 가장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물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보다 사물이 무엇이라고 불리우고 있는가 라는 점이 무한히 중요하다는 사실의 이해이다. 한 사물의 평판, 명칭, 외관, 타당성, 평소 통용되는 척도와 무게-그것은 그 기원에서 보면 십중팔구 사물에 의복처럼 입혀져 그 본체, 아니 그 피부와도 전혀 무관한 한낱 오류이며 자의적인 것이다. (118P)


***시구 또한 신탁으로 작용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육각운은 델포이에서 발명되엇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도 리듬은 강제력을 발휘할만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예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원래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그리스어의 어원에 따르면)결정되어진 어떤 것을 얻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은 초기에 예견하는 신, 그 이상으로 여겨졌던 아폴로를 자기편으로 함으로써 미래를 강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공식이 문자상, 운율상 상세히 제창되어지면 그 공식은 장래를 구속한다. 그러나 공식은 리듬의 신이며 운명의 여신들조차 구속할 수 없는 아폴로의 발명인 것이다. (138~139P)


***산문과 시-산문의 대가들은 거의 항상 시인들이었다. 공공연하게든, 은연중이든 단지 <침실>용이었든지 간에-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으리라. 실제로 사람들은 좋은 시를 마주 대했을 때 좋은 산문을 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산문은 시에 대한 끊임없는 우아한 전쟁이기에 산문의 모든 매력은 끊임없이 시를 피하고 거기에 반대한다는 점에 있다. (144P)


****니체가 본 금세기 산문의 대가 네 사람(145P)

지아코모 레오파르디

프로스페르메리메

랄프왈도 에머슨

월터 사베지 랜더


*****93. 그렇다면 대관절 당신은 왜 쓰는가?

A : 나는 잉크 묻은 펜을 손에 들고 생각하는 인간에 속해 잇지 않다. 더군다나 의자에 앉아 종이를 응시하면서 열린 잉크병 앞에서 열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은 더욱 아니다. 나는 스는 것이 개탄스럽고 수치스럽다. 쓴다는 것은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유해서 그것을 말하는 것조차 혐오스럽다.

B : 그러나 그렇다면 당신은 왜 쓰는가?

A : 그런ㄷ 나의 친구여 솔직히 말한다면 -여태까지 나는 나의 생각들을 제거시키는  다른 어떤 방식도 발견해 내지 못하고 있다.

B : 그리고 왜 당신은 생각들을 제거하고자 하는가?

A : 왜 나는 그렇게 하고자 원하느냐고?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아아, 나는 어쩔 수 없기에_.

B : 충분하다! 충분하다!


**** 자유로운 인간은 악할 뿐 아니라 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유한 인간은 자유에 대해 수치이며 천상 또는 지상의 위안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자유롭게 되고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자신의 노력으로 자유롭게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자우는 조자연적인 선물로서 인간 마음대로 되어 가지는 않고 있다. (157P)


***100. 경의를 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경멸을 배우는 것 못지않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새로운 길을 걷고, 많은 인간을 새로운 길로 인도했던 사람들은 전부 다음과 같은 발견을 하고 놀란다. 이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감사를 표하는 능력에 있어 얼마나 서투르고 얼마나 형편없는가 하는 것을 아니 일반적으로 감사라고 하는 것을 거의 표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마치 감사를 표시하고자 할 때마다 막히기 시작하고 헛기침을 하며 감사가 말로 되어 나오기 전에 침묵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157P)


****107. 예술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인 감사-우리의 이사이 우리로부터 요구하는바, 어떤 사물을 초월하는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하여 모든 화려하고, 회오리바람이 길으며 춤추고, 조롱하는 어린애 같고, 기쁨에 찬 예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의 민감한 진실 자체를 위해 도덕 속에 온통 몰입하기도 하고, 이 점에서 우리에게 가해진 가혹한 요구들을 위해 고결한 괴물이나 허수아비가 되어 버리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병이 도진다고 하는 거이리라. 우리는 도덕을 초월해  서 있지 않으면 안된다.(도덕을 넘어서를 암시) 또한 곧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의 염려스러운 긴장을 가지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을 초월하여 춤추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165P)


제 3부

**** 108. 새로운 투쟁- 붓다가 죽은 후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수세기 동안 한 동굴 속에 그의 그림자를 안치시켰다. 거대하고 섬뜩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세상이기에 필시 수 천년에 걸쳐 신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동굴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들 신의 그림자를 정복해야만 한다.(169P)


***** 109. 경계하자- 우리는 생명체이다라고 생각함을 경계하자. 그것은 어디로 확대되고 있는가? 무엇으로부터 자기의 양분을 취하며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번식할 수 있는가? 우리는 유기체의 본질에 대한 몇 가지 관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이 별의 질서는 하나의 예외이다. 이 질서와 거기에 의해 조건지워지고 있는 상당한 지속이 도한 예외 중의 예외인 유기체의 형성을 가능케 했다. 우주의 전체적 성격은 이에 반해 영원동안 계속되는 혼돈이다.

어떻게 우리가 우주를 비난하거나 칭찬할 수 있는가? 냉혹함이나 부조리, 혹은 그 반대를 우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경계하자. 우주는 완전하지도 아름답지도 고귀하지도 않다. 도한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아무리해도 인간을 모방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떠한 미학적 그리고 도덕적 판단도 우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주는 지기보존본능을 비롯하여 어떤 다른 본능도 갖고 있지 않다. 우주는 어떠한 법칙도 준수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단지 필요성만이 있을 뿐이다. 명령하는 자는 없다. 복정하는 자도 없다. 위반하는 자도 없다. 일단 네가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또한 우연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이라는 말이 의미를 가질 때에는 목적의 세계와 비교할 때 만인 것이다. 죽음이 삶과 반대된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살아있다는 것은 죽음의 한 형태, 매우 드문 한 형태이다.

세계가 영원히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경계하자. 영속적인 실체는 없다. 문제는 엘레아학파의 신과 같은 잘못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주의와 염려로서 일을 마치는 것이 대체 언제일까? 이 모든 신의 그림자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을 멈출 날이 언제인가. (170~171P)


****112. 원인과 결과- 모든 운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도 그 처음의 추진력을 <해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무언가를 해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선(線), 비행기, 몸, 우너자, 나눌 수 있는 짧은 순간들. 나눌 수 있는 공간들 등. 우리가 먼저 모든 것을 하나의 영상, 우리의 상으로 변화시킬 때 도대체 해명이 가능한지!

과학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사물들을 인간답게 하려는 시도로서 여기면 충분하다. 우리가 사물과 그 사물의 연속성을 묘사함에 따라 우리는 원인우리 자신을 더욱 자세히 묘사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원인과 결과, 그러한 이원성은 아마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175P)


****116. 무리 지으려는 본능-도덕성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무리 지으려는 본능이다. (178P)


****117. 군축의 양심적 가책- 과거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양심의 바늘은 현재의 그것과 전혀 같지 않았다. 오늘날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행동에 대해서만 책임을 느끼고 있다. 아울러 자신 속에서 자기의 자존심을 발견한다. 모든 법률교사들은 개인 속에서의 이러한 자존심과 즐거움으로부터 시작한다. 마치 이것이 항상 법률의 원천이엇던 것처럼. 그러나 인간 역사의 가장 오랜 과거에도 인간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서 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끔직한 일은 없었다.

혼자라는 것, 복종하거나 규율하는 것이 아닌 자기 힘으로 사물들을 경험하는 것, 하나의 개인이 되는 것-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형벌이엇다. 인간은 <개체성>을 선고받았다. 사고의 자유는 불안 그 자체로 여겨졌다. 우리가 법과 복종을 강제와 손실로서 경험하는 동안 원래 고통스러운 어떤 것, 정말로 불행한 것으로 경험되었던 것은 이기주의였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스스로를 자신의 무게와 정도에 따라 존종 되는 것-그것이 당시에는 감정을 상하게 했다. 이렇게 하려는 경향은 광기로 여겨지곤 했었다. 왜냐하면 홀로 있는 존재라는 것은 모든 불행과 고통에 연결되어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자유의지>가 악한 양심과 고통에 연결되어지기 때문이다. (178P)


***118. 자비심- 하나의 세포가 자신을 보다 강한 세포의 기능으로 변형시킬 때 그것은 미덕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 강한 세포가 약한 것과 동화한다고 그것이 악인가? 이것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세포는 필요성에 따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다 풍부한 대체물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 자신을 쇄신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비심 속에서 소유하려는 충동이나 복종하려는 충동을 구별해야만 하며 자비심을 느끼는 것이 강자인가 약자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기쁨과 욕망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를 한 기능으로 변형시키려고 하는 강자에게 있어서는 기쁨과 욕망이 함께 나타난다. 반면 하나의 기능으로 되고자 원하는 약자에게는 기쁨과 욕망되어지고자 하는 바램이 함께 나타난다. (179P)

***영혼의 건강-아리스톤(스토아주의 창시자인 재논의 제자)의 말 <덕(德)은 영혼의 건강이다>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쓸모 있도록 변화되어져야 한다. 적어도 다름처럼 “너의 덕은 너의 영혼의 건강이다.” 왜냐하면 건강 그 자체는 없으며 그런 방식으로 한 사물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비참한 실패를 맛보아 왔기 때문이다. 무엇이 너의 <몸>을 위한 것이냐의 결정조차도 너의 목표, 너의 시야, 너의 에너지,  너의 충동 너의 실수,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의 영혼의 이상이나 환상들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몸의 무수히 많은 건강들이 있는 것이다. (180P)

***121. 논쟁 없는 삶-우리는 스스로 세계를 우리가 살 수 있도록 배열해 왔다. -몸이나 선(線), 면(面), 원인과 결과, 움직임과 휴식, 형식과 내용을 자리 매김으로써 이러한 신앙개조가 없었다면 아무도 인생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매김이 위의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논쟁이 아니다. 삶의 조건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81P)


***125. 광인- 밝은 대낮 등불을 켜들고 광장에 나와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고 계속 고함쳤다는 저 광인의 이야기를 그대들은 들은 적이 없는가-마침 광장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어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참고) 이 문항은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항이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에 대한 해석이다.


***기도의 가치- 기도는 실제로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또한 영혼의 고양을 알지 못하거나 적어도 그러한 앙양이 일어날 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되어진 것이다.

신성한 장소에서, 삶의 모든 의미 있는 상황들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숙과 일종의 존경이 요구되어지는 것은 어디에서인가? 적어도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크고 작은 모든 종교의 시조들의 지혜는 기도문을 그들에게  처방했다.

정신이 빈곤한 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아울러 만약 어떤 이에게서 그가 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금지시킨다면 그들로부터 그 종교를 박탈함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종교가 대중들로부터 요구하는 바는 그들이 손과 발, 눈 그리고 다른 기관들을 가지고 조용하게 정숙하게 있어야만 한다는 것, 그것에 불과하다. 잠시동안 더욱 아름답게 되는 것 같은, 더욱 인간답게 보이는 방식! (189P)


***129. 신의 조건-“신 그 자신은 현명한 인간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합리적 이성을 가진 루터는 말하엿다. 그러나 “신은 우매한 인간 없이는 더더우기 존재할 수 없다”-우리들의 훌륭한 루터는 이점을 말하지 않았다. (189P)


***135. 죄의 기원-기독교가 지배하고있는 곳 혹은 지배했던 어디에서 경험되어질 수 있는 죄, 이 죄는 유대인의 감정이며 유대인 특유의 발명이다. 모든 기독교적 도덕의 이러한 배경을 고찰해보면 기독교 세계를 <유대화하려는>목적을 가지고 있엇다.

죄는 인간성에 반한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모욕이다. 신의 은총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죄의 자연적 결과들에 관한 이러한 부주의함도 또한 부여받앗다. 신과 인간성은 너무 철저히 분리되어져서 인간성에 대한 고려 없이 그의 초자연적인 결과들에 관해서만 오로지 주목하고 있다.  (191~192P)

****142. 유향(幽香)-붓다는 말한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기독교 교회 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반복하라. 즉시 기독교적인 모든 것의 공기가 맑게 될 것이다. (195P)


***152. 가장 커다란 변화- 모든 잘못은 인간의 감정에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단순한 시민적 처벌이나 불명예보다도 신의 처벌을 두려워햇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유혹자와 악령을 믿엇던 때 과연 어떤 즐거움이 있엇던가, 악마가 옆에서 안색을 살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생길 수 있는 인간의 정열은 어떤 것일까? (201)


***154. 인생의 여러 가지 위험성-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체험하며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는 술에 취해 그때그때마다 계단에 떨어지는 것처럼 인생을 질주하고 잇다. 그러나 너는 취한 덕분에 갈비뼈를 부러뜨리지 않았다. 계단의 돌들을 우리 인간 수준에서 딱딱한 것으로 느끼기엔는 너희들의 근육들은 너무 이완되어 있고 너희의 두뇌는 너무 어리석다. 우리에게 잇어 인생은 더욱더 위험하다. 우리는 우리로 만들어졋다. 단지 쿵하고 부딪히기만 해도 우리의 고통이란 만일 떨어진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읽는다. (283항 참조)(202~203P)


****158. 곤란한 특성-모든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그것은 곤란한 특성이다. 그것은 내내 사람들의 눈을 크게 뜨도록 만들고 있으며, 결국 인간은 그가 바랐던 것보다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어 버린다. (203P)


***167. 인간 혐오와 사랑- 인간 혐오는 인간에 대한 모든 지나친 사랑과 인식(人食)의 결과이다. 그러나 누가 너에게 굴처럼 사람들을 삼키기를 명령했는가, 햄릿왕자? (205P)


***206. 비가 내릴 때-비가 오고 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의 많은 근심을 껴안고 그리고 그 근심들을 숨기려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으면서 함께 떼지어 있다. 각자는 다른 사람을 해치고 그들 스스로 날씨가 나쁜 때조차 비참한 종류의 쾌락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잇고 기꺼이 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가난한 자들의 가난함이다. (213P)


***213. 행복에의 길- 어떤 현자가 어떤 바보에게 행복에의 길을 물었다. 그 바보는 단순히 가장 가까운 도시로 가는 길을 묻는 것처럼 즉각 대답하엿다. “너 자신을 찬미하는 것, 그리고 거리에서 사는 것이다.”

“기다려!”현자는 대답했다. “너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을 찬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바보는 반격했다. “하지만 어떻게 모욕을 느낌없이 계속적으로 찬미할 수 있는가?” (215P)


****253. 항상 집에 잇다- 어느 날인가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만만하게 그곳에 도착할 것을 장담하는 긴 여행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는 여행에 대해서는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기까지에는 도착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항상 집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22P)


***258. 우연의 부정- 승리자는 누구도 우연을 믿지 않는다. (258P)


***267-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커다란 목표를 가진 사람은 단지 자기의 행위나 판단들에서뿐만 아니라 정의에서도 우월하다. (225P)


****270- 너의 양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너는 그 자체가 되어라 (226P)


****271-너에게 무엇이 가장 인간적인가?- 누군가에게서 부끄러움을 덜어주는 것. (226P)


제 4부 성(聖) 자누아리우스


그대 타오르는 창을 휘둘러

내 영혼의 얼음을 부숴뜨린다면

지금 당장 내 영혼은 굉음이 울려 퍼져

그 지고한 희망에의 바다로 서둘러 간다.

더욱 밝고 더욱 건강하게

사랑으로 충만했던 필연 속에서 자유롭게:

그러므로 그대의 기적을 내 영혼은 칭찬하노라.

지극히 아름다운 1월이여!

-제노아, 1882년 1월


****276. 새해에-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직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자기의 희망과 가장 소중한 생각을 감히 그 자신에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나 역시 내가 오늘날 자신에게 원하는 것 올해 나의 머리에 스치는 첫 번째 생각-즉 어떤 사랑이 나의 생활에 토대가 되며, 보증이 되며 달콤함이 될 것인가를 말하려고 한다. 나는 사물에 잇어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더욱더 배우고자 한다. 때문에 나는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될 것이다. 운명애,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되게 하라. 나는 추한 것과 싸우지 않는다. 나는 비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229P)


******278-죽음의 사상- 좁은 갈림길들이 만들어 내는 어지러움, 여러 가지 욕구와 목소리들이 섞여 내는 이러한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산다는 것이 나에게 우울한 행복을 주고 잇다. 얼마나 많은 향락과 초조, 그리고 열망, 얼마나 많은 목마른 인생과 삶의 도취가 매순간 빛나고 있는가! 게다가 침묵은 이 모든 시끄럽고 살아있으며 삶에 목마른 자들에게 곧 내려올 것이다. (231P)


****287- 맹목의 기쁨- <나의 사상은> 방랑자는 그의 그림자에게 말햇다. “나의 사상은 내가 서 있는 곳을 나타내 보여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곳을 나에게 누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미래에 관한 나의 무지를 사랑한다. 나는 초조나 약속되어져 있는 일을 몰래 훔쳐보는 식으로 몸의 파멸을 손짓해 부르고 싶지는 않다.” (238P)


****289. 출항하라_ 각자의 삶과 사고방식을 그 나름대로의 것으로 시인하는 일체의 철학적 정당화의 방식이 이런 각 개인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 생각해 보라. 그는 특히 자신만을 위해 빛나는 태양으로서, 따뜻함과 은총, 비옥함을 그에게 수여하는 태양으로서 철학적 정당화를 경험한다.

악인도, 불행한 자도, 예외적 인간도 모두 자신의 철학, 정당한 권리, 햇빛을 가져야만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인류가 이러한 교만한 환상, 즉 동정(同情)을 배우고 실해해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를 포기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238~239P)


***293-우리의 공기- 우리가 거기에서 살기는 너무 어렵다. 우리가 공기, 깨긋한 공기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 우리가 빛의 경쟁자로 태어났다는 것, 도한 우리가 이들 빛들처럼 에테르의 미립자를 타고 태양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태양을 향해서 가고자 하는 것이 왜 우리의 잘못인가!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지구에 불 밝혀라. <지구의 빛>이어라! 그 빛이 되자. 그를 위해서일지언정 우리는 날개와 속도의 엄격함을 갖는다. 그를 위해서일지언정 우리는 불과 같이 남성적이며 외경을 주기까지 한다. 우리 곁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몸을 밝히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자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자. (243P)

****295. 간결한 습관- 나는 간결한 습관을 사랑한다. 아울러 이 간결한 습관들이 많은 사물과 그 상태, 그들의 달콤함과 쓰라림의 저 밑바닥까지-를 알게 해주는 더없이 귀중한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다. 나의 본능은 전적으로 간결한 습관들을 위해 고안되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싶다는 욕망에서까지도 또한 내가 볼 수 있는 한 가장 하잖은 것에서부터 최고로 높은 사항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이 간결한 습관은 밤낮으로 나에게 자양분을 부며 주위의 모든 것에 깊은 만족을 나누어 주고 있다. 또한 내 속 깊이 스며들어 있음으로 해서 나는 비교할 것도, 경멸할 것도, 증오할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현명함과 어리석음의 이 끊임없는 되풀이, 나의 생사, 사상, 인간들, 도시들, 시(詩), 음악이론들, 일과를 정리하는 방법들, 이 모두가 그러한 방식들이다. (244~245P)


******299. 예술가로부터 배워야만 하는 것- 사물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바람직하지 않을 때, 어떻게 그것을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바람직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사물은 본래 그러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나에게는 생각되어지지만! 이럴 때는 에를 들면 쓴맛을 희석시키거나 포도주와 설탕을 더해 혼합물을 만드는 의사가 참고로 될지도 모른다.

우리들에게는 원근법적 시각만 주는 것, 또는 햇빛에 비추거나 색유리를 통해서 보는 것, 사물에게 충분히 투명성을 지니지 않은 표면과 피부를 주는 것-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예술가로부터 배워야만 하며, 그뿐만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그들보다 현명하게 행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우 통상 이러한 정묘한 능력도 예술이 그치고 생활이 시작되는 곳에서 끝이 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몸소 생활의 시인(詩人)이고자 한다.-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작은 것 속에서의 많은 일상생활에 관해. (247~248P)


****300 과학의 전주곡-어쩌면 종교는 소수의 인간들이 신과 같이 완전한 자기만족과 자기구제의 힘을 듬뿍 향유하기 위한 기묘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로메테우스는 아마도 빛을 훔쳤다고 망상하여 그 죄갚음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아닌가? (248P)


****302- 가장 행복한 인간의 위험- 예민한 감각과 세련된 취미를 갖는 것, 영혼의 최고로 선택된 것, 제일 좋은 것에 의해서 마치 가깝고 그리고 적절한 자양분인 것처럼 익숙해지는 것, 강하고 대담하고 과감한 영혼을 향유하는 것: 조용한 눈과 확고한 걸음으로 모든 최악의 사태를 마치 축제와도 같이 준비를 다하고 기다리는 것, 발견되지 않은 세계들과 바다, 인간, 신들에의 갈망에 가득 차서 인생을 걸어가는 것, 모든 쾌활한 음악에 귀 기울이는 것-아마도 대담한 사람들, 군인, 뱃사람들이 그들의 간단한 휴식과 즐거움을 거기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는 표식이었던 것처럼 또한 이 찰나의 심오한 즐거움 가운데서 눈물과 행복한 자의 진홍빛 우울에 의해 압도당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누가 이 모든 것의 그의 소유 그의 상태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 호머의 행복이었다니! 그리스인들에게 그들의 신을 발견하게 해주었던 -아니 자기자신에게서 자신의 신을 발견했던 인간의 상태였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이러한 호머식의 행복함으로 인해 인간은 또한 태양 아래 있는 어떤 다른 창조물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할 수 있다. 이것이 생존의 파도가 지금까지 해안에 들이닥쳤던 중에 최고의 귀중한 조개껍질을 인간이 살 수 있다는 유일한 가격의 지불인 것이다. (250~251P)

****304- 행하는 것에 의해 방기(放棄)한다- 실제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모든 모랄을 나는 혐오한다. “이것을 하지마라! 단념해라! 너 자신을 극복하라!”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모랄은, 어떤 일이든지 행하도록 촉진시키고, 반복해서 행하도로고 촉진시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하고 밤은 밤대로 그것을 꿈꿀 수 있도록 재촉하며, 그리고 이것을 잘하도록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나를 선동하는 그러한 모랄이다.

사람이 그처럼 살 때 그러한 생활에 속하지 않는 것들은 게속해서 사라져 간다. 증오나 반감도 없이 오늘은 이것이, 내일은 저것이 대기의 어떤 가벼운 흔들림으로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노란잎들처럼 자신에게 이별을 고해 가는 것을 그는 본다.

“우리의 행하는 바를 행하고, 우리가 방기할 것을 결정하자. 우리는 행하는 것에 의해 방기하는 것이다.”


****307. 비평을 위하여- 우리가 어떤 것을 비평할 때 이것은 임의적이고 비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적어도 아주 가끔 그것은 우리 안에서 자라고 피부를 벗기는 활기있는 에네르기의 증거이다. 우리는 부정하고 부정하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는 자아가 생동하고 자기를 긍정하고자 바라기 때문에 -우리가 아마도 알지 못하고 아직까지 보지 않은 어떤 것! -이것이 비평을 위해 말해지고 있다.(254~255P)


****308. 매일매일의 역사-그대의 경우 무엇이 매일매일의 역사인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너의 습관들을 보라. 너의 습관들은 셀 수 없이 작은 비겁과 게으름의 산물인가? 아니면 용기와 창의적인 이성의 산물인가? 이 둘은 매우 다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에게 똑같이 칭찬으 보내는 것도 있을 법하지만 사실상 네가 그 사람들에게 어느 경우에든 똑같이 이익을 끼친다고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칭찬과 이익과 명성은 단지 양심의 만족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만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 <심장을 정탐해 알려는 >자, 양심까지도 과학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자에게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255P)


****309- 제 7의 고독으로부터-어느 날 방랑자는 자기 뒤의 문을 쾅 닫고 있는 곳에 멈추어 서서 울었다. 그는 말햇다. ‘진실한 것, 실재하는 것, 가상이 아닌 것, 확실한 것에로 향하는 이 집착과 충동- 이것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왜 이런 우울하고 휴식없는 친구가 계속 나를 따라다니며 몰고 있는가? 나는 쉬고 싶다. 그러나 그는 그성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256P)


****310-의지와 파도- 욕망에 타오르는 것처럼 그저 밀려오는 저 파도! 기어이 무엇엔가에 도달하려는 듯이! 두려운 초조를 갖고 바위틈의 오지로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기어가고 있는지! 마치 가치있는, 가장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 거기에 숨겨져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또다른 파도가 처음 것보다 더 탐욕스럽고 야만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혼 역시 비밀과 보물을 파려는 욕망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이와같이 파도는 산다. 이와같이 우리 의지하는 자들은 산다!- 더 이상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256P)


****313-수난의 그림을 그리지 말라-나는 라파엘이 했던 것처럼 하려고 한다. 숭고함은 무엇이라도 그것이 잔인과 결합해 있는 곳에서는 구해서는 안된다. 허나 세상에는 많이 잇다. 그리고 나의 야망 역시 에컨대 자기 자신을 숭고한 수난자로 양성하는 한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259P)


***321- 새로운 주의 -타인을 벌하고 비난하고, 좋게 인도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자. 한 개인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좀처럼 가능하지 않다. (264P)


****324. 인생의 길 한가운데에서- 아니다! 인생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해마다 그것이 더욱 진실되고 바람직하며 신비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인생은 인식자의 한 개의 실험이 될 수 있다. -의무가 아닌 숙명이 아닌, 기만이 아닌 것이라는 이 위대한 사상, 이 위대한 <해방자>가 나를 갑자기 찾아온 그날 이래로 그리고 인식 그 자체, 그것이 타인들에게는 어긋난 그 밖의 어떤 것이 되게 하라.

인식 자체가 내게 있어서는 영웅적인 정서감이요 또한 춤추고 서로 싸우는 위험과 승리의 세계다.  (265P)


***325. 위대함에 속하는 것- 자신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하는 힘과 의지를 내면에서 발견하지 않는다면 누가 위대한 것에 도달할 것인가? 고통을 겪을 수 잇다는 것은 최소한의 것이다. 우리가 큰 고통을 인간에게 갛고, 이 고통의 절규를 듣는데도 불구하고 내심의 곤혹과 불안 때문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위대함이요 위대함에 속하는 것이다. (265P)


***어리석음을 공격한다-“너의 이기심은 너의 삶의 불행이다.” 이것이 수 천년동안 설교되어진 것이다. 그것은 재차 말하지만 이기심을 공격하고 아욕으로부터 많은 재능, 많은 명랑, 많은 감성을 그리고 많은 아름다움을 박탈해 갔다. 그것은 아욕(我慾)을 어리석은 것, 추한 것, 유독한 것으로 만들었다.(268P)


***329-한가와 나태-사람들은 시계를 손에 들고 생각을 한다. 마치 정오에 주식신문을 주시한 채 식사를 하듯이. 사람들은 마치 언제나 무엇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산다. “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하라”이 우너칙 역시 모든 문화와 고귀한 취미의 최후의 숨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분명히 모든 양식이 이 일하는 인간이 조급성 때문에 파괴되어진 것과 같이 양식에 대한 감각 자체도 움직임의 멜로디에 대한 이목 역시도 파괴되었다. (269P)


****334-사랑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이것이 음악을 듣는 순간 나의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첫째 우리는 전체적으로 음의 주제와 선율을 듣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간파하여 구분하고 독립된 생명으로 그것을 분리하여 범위를 정해 주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우리가 음악에 길들여진 순간 그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예감하고 그것이 없으면 적막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세상으로부터 원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것만을 원하는 겸손하고 진심으로 감동한 연인들이 될 때까지 그것은 우리를 강제하며 냉혹하게 매료시키기를 계속한다.

우리는 사랑조차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273P)


***337- 미래의 인간성- 인간의 역사 전체를 자기자신이 역사로 느낄 수 있는 자는 무섭게 보편화되어 버린 방식으로 저 건강할 때를 상상하는 병약자의 슬픔을, 청춘을 꿈꾸는 노인의 비애를 연인을 잃어버린 자의 참담함을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순교자의 아픔을 , 아무런 결실도 보지 못한 채 다만 상처 입고 친구를 잃은 싸움터의 저녁에 서 있는 영웅의 비애를 온 몸으로 느낄 것이다. (279P)


****339. 삶은 여성이다- 한 작품의 구극의 미(美)에 도달하기 위해선 지식 또는 선한 이지로는 충분치 않다.

그리스인들은 “두 번 그리고 세 번까지 아름다운 것‘이라고 기도했다. 그들은 신에게 호소할 정당한 이유를 가졋던 것이다. 왜냐하면 신적이지 않은 현실은 우리에게 전혀 또는 한번만의 아름다움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세게는 아름다우으로 가득 차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물들의 아름다운 순간이 드러날 때 너무 빈곤한 것이라고 그러나 필시 이것이 생의 가장 강력한 매력이리라. 생의 위에는 아름다운 가능성의 황금 실로 짜여진 베일-  약속하고 수줍어하며 냉소적이고 동정적인 또 유혹적인-로 사여 있다. 그렇다. 생은 한 여인이다. (282P0


****최대의 무게-어느 날 혹은 어느 밤, 한 악마가 가장 적적한 고독 속에 잠겨있는 네 뒤로 살그머니 다가와 다음과 같이 네게 말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다시 한 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되살아야만 한다. 거기에는 무엇하나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일일이 열거키 어려운 크고 작은 일들이 다시금 되풀이 되어야 한다. 모조리 그대로의 순서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 거미도 나무 사이의 월광도, 지금의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나 자신도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언제까지나 다시 회전하며 그것과 함께 미세한 모래알에 불과한 너 자신 역시 같이 회전될 것이다. ”

너는 땅에 엎드려 이를 악물고서 그렇게 말한 그 악마를 저주치 않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악마에게 “너는 신이다. 이보다 더 신적인 것을 나는 듣지 못했노라!”고 대답할 그런 기괴한 순간을 체험한 적이 있었던가? 이러한 사상이 너를 지배한다면 그는 현재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변화시킬 것이며 아마도 분쇄해 버릴 것이다.

“너는 이것이 다시 한 번 또는 수없이 계속 반복되기를 원하느냐?”라는 질문은 가장 무거운 무게로 너의 행위 위에 가로놓일 것이다.

아니면 이 최종적이요 영원한 확인과 보인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기위해  너는 얼마만큼 너 자신과 인생을 사랑해야 할 것인가? (284~285)


제 5부 우리 두려움 없는 존재들


****343-우리의 쾌활함이 의미하는 것-근대의 최대의 사건 <신이 죽었다>는 것, 기독교의 신에 대한 믿음이 힘을 잃어간다는 것은 이미 유럽에 최초의 그림자를 던지기 시작햇다. 실제 우리 철학자들 그리고 자유로운 정신인 우리는 낡은 신이 죽엇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새로운 서광이 비춰지는 것처럼 느낀다. 우리 가슴은 감사, 놀라움, 예감, 기대로 흘러 남치고 있다. (289P)


***347- 독실한 신자와 그 신앙의 요구-신앙은 의지가 결핍되어 있는 곳에서 항상 가장 턱없이 탐내어지며 긴급히 요구된다. 왜냐하면 의지는 명령의 정열로서 자주성과 힘의 결정적 특징이기 때문에 환언하면 사람은 명령하는 능력을 결핍하면 할수록 명령하는 자를, 준엄한 명령을 하는 자를, 신을, 왕후를, 신분을, 의사를, 고해사를, 교의를, 또는 당파적 양심을 더욱 시급히 갈망하게 도니다.

아마 이것으로부터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두 개의 세계적 종파 즉 불교와 기독교는 그 성립 원인이나 급속한 전파가 확대된 의지의 병약화에 근거해 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이 두 종교는 의작 고갈 된 시기에 광신의 선생이 되었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의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의지하는 것에의 기쁨을 제공햇다. (300P)


****363. 사랑에 대해 양성은 각자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는가-나는 일부일처제의 선입견에 대해서는 모든 양보를 할 수 있지만, 결코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있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승인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대하여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쪽 성이 타성에서 똑같은 감정, <사랑>이라고 하는 똑같은 개념을 전재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양성에 있어 사랑의 조건들 중의 하나이다.

여성이 이해하고 있는 사랑의 의미는 분명하다. 몸과 마음의 완전한 헌신(단순한 복종이 아니다), 아무런 고려 없이 아무런 유보 없이 오히려 특별한 제한이나 조건이 따르는 헌신에 대해 수치와 공포를 느끼는 헌신인 것이다.  이렇듯 무조건적이라는 의미에서 그녀의 사랑은 하나의 신앙이다. 여자는 이 외에 다른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

남자는 한 여성을 사랑하는 순간 그녀에게 바로 이러한 사랑을 바라게 되며 따라서 자기 자신은 여성적인 사랑의 전제로부터 가장 멀리 있게 된다. 만약 완전한 헌신이라는 바램을 조금이라도 스스로 품고 있는 남자가 있다면 그는 결국 남자가 아니다. 여자처럼 사랑하는 남자는 노예가 된다.

여자는 하나의 소유물로서 얻어지고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소유>, <소유된다>라는 개념으로 성립되어 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취하는 누군가를 원하며 자기 자신을 주어 포기할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한다. 반면에 그는 <그 자신>안에서 더욱 부유하게 될 것이다. -여성이 그에게 준 힘, 행복, 신앙의 증대에 의해, 여자는 자기를 버리고 남자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자연적 대립을 우리는 어떠한 사회계약에 의해서도 정의에의 최선의 의지에 의해서도 극복할 수 없으리라고.


***365. 은둔자는 다시 말한다- 우리 또한 인간과 교제한다. 우리 역시 에의바른 의상을 몸에 걸친다. 옷을 입는다는 것에 의해서 ( 그 옷에 어울리는 사람으로서)우리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존경되어지고 기대되어진다. 인간적 교제 속에서 즉 가장하는 사람으로 불리울만한 격은 못되는 가장자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334P0


***370. 낭만주의란 무엇인가?- 모든 예술, 모든 철학은 성장하고 투쟁하는 생에 봉사하는 약제요 구제수단으로 간주되어질 것이다. 그것들은 늘 고통과 고토에 번민하는 자들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두 종류의 고통자들이 있다.

첫째 생의 과잉 때문에 고통받는 자들이다. 이들은 디오니소스적 예술을 원하며 똑같이 생에 대한 비관적 견해, 비관적 통찰력을 구한다. 두 번째로는 생의 빈약함 대문에 생의 불모성 때문에 고통받는 자들이다. 이들은 안식, 정적, 고요한 바다, 에술과 인식에 의해 자기로부터의 구제를 구하든가 혹은 도취, 경련, 마비, 광란을 구한다. 예술과 인식의 모든 낭만주의는 후자와 같은 유형의 이중적 요구에 호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요구에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도 호응햇다.

  파괴, 변화, 생성에의 욕망은 미래를 잉태한 과도한 힘의 표현일 수 있다. 이에 대한 나의 용어는 이미 아는 바대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그런 그것은 또한 악하게 구성되고 상속권이 박탈당햇으며 혜택받지 못한 자들의 증오일 수 잇는데 그것들은 파괴해야 하고 파괴를 억압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 실재로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잇어서는 화나고 자극받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느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무정부주의자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불멸하고자 하는 의지(영원에의 의지) 또한 이중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우선 첫째로 그것은 감사와 사랑으로부터 추진될 수 있다. 이러한 기원에 의한 에술은 늘 신화(神話)의 예술이리라. 아마도 루벤스처럼 주신 찬가적이거나 하파즈처럼 기쁨에 찬 조소적이거나 또는 괴테처럼 밝고 선의에 가득 차서 호메로스적인 광휘와 영광을 모든 사물 위로 펼칠 것이다.  (341P)


***380. 방랑자는 말한다- 지순한 하늘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의 몸은 지극히 가벼워야 한다. 우리들은 억압하고 금지하며 억누르는 오늘날 우리 유럽인들을 괴롭히는 많은 것들로부터 그 자신을 해방시켜야만 한다. 시대의 최고의 가치표준을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이 피안의 인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시대 자체를 자신 속에서 극복해야만 한다. 이것이 그의 힘의 시험이다. (357~358P


프린스 보켈프라이의 노래들



***괴테

영원, 

그것은 오직 너의 발명품!

형사의 신,

그것은 시인의 자부.


구르는 세계의 축(軸)은

과녁을 찾아 헤맨다.

운명을 일러 음울한 무엇이라 말하고

어릿광대는 그것을 유희라 한다....


세계의 유희, 이 지배적인 힘이

실제와 가상을 뒤섞어 놓는다.

끝없는 어릿광대의 힘이 우리를 역시 뒤섞어 놓는다. (367P)



****남국에서 

굽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내 지친 몸을 흔든다.

새가 불러 그의 손님이 되어

나는 그의 둥우리 안에서 휴식한다.

여기는 어디안가, 아 아득히 먼 곳!


하얀바다는 뻗어, 빠르게 잠든다

바다 위에 진홍빛 돛배는 목가적 냄새로 떠 있다.

바위, 무화과나무, 해안의 선,

나를 감싸는 전원시 속에 양떼의 울음.

남국의 무구(無垢)여 나를 맞아다오!


한 발 한 발 나가는 것- 이 무거운 걸음은

독일지 삶이 아니다-하나의 병:

바람에게 말햇지, 나를 치켜 올려 달라고.

새들과 어울려 나는 나는 것을 배웠다.

남녘을 향해, 바다를 건너 나는 비상하였다.

이성은 사업 같은 것-하나의 홍수다.

그것은 너무 빨리 우리의 목적지에 데려간다.

하늘을 날며 나는 나를 놀리던 것을 익힌다.

새로운 삶, 새로운 놀이의

힘과 피와 땀을 벌써 나는 느낀다.


홀로 사색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외롭게 노래하는 것은-어리석지 않을까.

조용히 내 주위에 둘러앉아

너희의 찬양을 노래하리라.

너희들, 몹쓸 새들아, 둘러앉아라!


그렇게 젊고 어리석으며 그토록 계획으로 가득 찬 새들아,

너희는 사랑의 꿈 속에 사는 듯 보인다.

모든 젊음의 유희와 가락을 맞추는구나.

북국에서 망설이며 고백하지만,

나는 몸서리치게 늙은 여인을 사랑했었다.

그 늙은 여인의 이름은 <진리>.........(370P)


***** 테오크리트스식 양치기 노래


여기 창자가 마르는 병을 가지고 나는 누워잇다.

빈대들이 기어다닌다:

여기저기서, 여전히 시끄럽고 불을 켜면서

나는 그들이 춤추는 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약속햇다-그녀는 지금 늦고 있다.

그녀는 나의 것이 되겠지.

그러나 나는 마치 충견처럼 기다리고 있다.

아무런 신호도 없는데.


그녀는 계속 계속 맹세햇다

그것은 기계적인 것인가?

그녀는 모든 남성들을 추구하는가?

마치 한 마리 양처럼?

너는 네자신에게 그같은 교만을 준다

누가 너에게 비단을 주었느냐?

어떻게 내가 알겠느냐? 누가

너의 양족들과 함께 했는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사랑에 의해 망쳐지게 된다.

그것은 우릴ㄹ 거칠게 만든다.

장마으 밤엔 게다가 독초가

마구마구 생겨나리라.


사랑은 마치 해충처럼 나를 먹어들어 간다.

그것은 일곱 번째 지옥과 같다.

나는 식욕을 잃엇다.

양파여, 안녕!


달은 바다로 잠기고,

별은 하늘 속으로 사라져 간다.

아침이 밝아져 오면

아아, 차라리 죽고 싶다.(374P)


**** 나의 행복

언제나 그대로 성 마르코성당의 비둘기는 떼지어

오전의 광장의 고요함인 것! 상쾌한 바람 속에

제멋대로 퍼지는 나의 노래가 푸른 창공에

비둘기떼가 되어 떠돌고 있다.

나는 그들을 부른다.

이제는 가능한 운을 하나 더 날개에 달아주기 위해,

-나의 행복이여, 나의 행운이여!


너 비단같이 고요한 하늘의 푸른 지붕이여,

너는 온갖 색의 구조물 위를 떠다닌다.

그 모습- 무어라 말할까? -질투심, 사랑, 그리고 두려움.

나는 그 정수를 입맞춤 속에서처럼 마셔버리고 싶다.

언젠가 그것을 되돌려 주어야 할까?

아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 너는 끝없는 기쁨만을 보아라!

나의 행복이여! 나의 행운이여!


너 장엄한 탑아, 사자같은 안목으로

여기 지칠줄 모르고 영광되게 서 있는구나.

당당한 종소리를 너는 광장 저 너머로

보내고 있다.

프랑스어에서 너는 악상떼귀이리라.

만일 내가 마치 너처럼 나서지 않는다면

비단천처럼 부드러운 덫에 걸렸기 때문이리라.

나의 행복이여! 나의 행운이ㅕ!


가거라, 가락이여, 그림자 짙어진ㄴ 시간이 오고

갈색의 부드러운 밤이 자란다. 종을 울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호아금장식이 장미로 아직 물들지 않았고

날은 아직도 남아있다.

시를 짓고 산책하며 혼자 소곤대는 때가 올 때까지는.

나의 행복이여! 나의 행운이여! (378)



내가 저자라면

내가 니체가 될 수 없고 니체는 더더욱 내가 될 수 없다. 이 작품은 니체가 썼고 니체만이 쓸 수 있는 글들이다.

읽는 데만도 너무 힘이 들어 이 책에 대한 어떤 평도 하기가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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