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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5일 09시 47분 등록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1. 저자에 대하여

 

(지난 레이스 때 조사했던 것을 토대로 고쳤습니다. )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의 저자 정민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1961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최근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이라는 책을 냈다. 레이스를 할 때만 해도 『삶을 바꾼 만남』에서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이야기를 ㅆ 냈었는데, 그 안에 3권의 책을 더 냈다. 다작 저자가 맞다.

정민 교수는 18세기 자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번역해주는 작가다. 지난 『삶을 바꾼 만남』강연을 들으면서 역사적인 자료들을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하는 정민 교수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느꼈다. 옛 사람들이 한자로 주고 받은 편지나, 쓴 책의 내용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짚으면서 쉽게 풀이해주는 강연은 매우 흥미로웠다. 정민 교수는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를 탐사하며 살아있는 유용한 정보를 발굴하며 현대어로 쉽게 풀어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정민 교수를 처음 안 것은 이번에 읽은 책이 7기 연구원들의 필독서 중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연구원 활동을 따라해 볼 생각으로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사서 읽었었는데 50페이지 정도에 그쳤었다. 올해는 다 읽었다. 좋다. 내용도 좋고, 1년 사이 두꺼운 책을 읽어내는 능력이 길러진 것 같아. 뿌듯하다.  

 정민 교수는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다산의 재발견』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또 청언소품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옛글 속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를 썼다. 아울러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등을 썼다.

 작년 여름 정민 교수 인터뷰 기사 내용을 보니 그는 최근 5년여간 집요하게 다산을 쫓아다녔다고 한다. 정약용의 친필이라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갔단다. 새 자료를 수소문해서 찾고, 정리하고, 번역해서 논문을 펴냈단다. 그는 자료 앞에선 비굴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았다고 이야기 한다. 다산 친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그곳으로 카메라를 들고 간다고 한다. 또 자료를 얻기 위해 소장자를 일년씩 설득해본 적도 있단다. 끝끝내 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삶을 바꾼 만남』강연회에서도 찾은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정약용의 글을 찾을 때마다 아주 즐거웠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정약용의 한 권의 책이 여러장으로 나눠져 이곳 저곳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도 그날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는 다산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서 원래 관심을 뒀던 연암 박지원에 대해서도 연구할 것이라고 했다. 다산이 체계적이고 교과서적인 인물이었다면 연암의 콘텐츠는 파워풀 하다고 이야기 하면서 말이다. 그의 관심사는 ‘18세기 지식인 사회의 변동’이다. 그가 18세기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정보의 홍수 속이었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의 말을 빌려본다. 

 “당시 중국에는 별별 책이 다 나왔어요. 고금도서집성은 한질에 5000권이나 됐지요. 조선의 지식인으로서는 충격일 수밖에요. 요즘 시대의 인터넷 충격과 같았나봐요. 수많은 정보 중 원하는 정보를 뽑아내 편집하는 게 중요했는데 다산이 가장 완벽하게 했던 사람 중 하나였죠.” (2011년 8월 26일 한국경제 신문)

 정민 교수는 대중의 언어로 고전을 해설하는 것이 국학자의 역할이라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다.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외우고 있다는 소동파의 ‘적벽부’의 일부분을 소개해본다.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신간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는 조물주의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그는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옛 우리 문인들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는 ‘다함이 없는 보물’ 같은 한문한 문헌들을 자기만의 것으로 가두지 않고 공유하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는 700쪽이 넘는 책들을 1년 사이에 세권씩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럴 수 있는 비결이 있다. 그는 하나가 끝나면 다음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가지 작업을 병행한다고 한다. 이 방법은 대학원을 다닐 때 조교로 일하면서 교수님께 배운 방법이라고 했다. 그 교수님은 다정다감한 교수님은 아니셨지만 조교에게 자료를 잘 정리할 수 있는 훈련을 많이 시켜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정민 교수는 지금도 새로운 자료가 발견 되면 논문으로 발표하거나 잡지에 연재하고 그것들을 주제별로 묶어서 책으로 낸다고 한다. 

 인터뷰 기사 중에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었다. 그는 글을 쓴 후 두 번 내지 세 번 원고를 소리내어 읽고 마지막으로 가능하면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부탁한다고 한다. 소리내서 읽다보면 꼭 걸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글은 글의 리듬이 읽는 것을 간섭하지 않는다.”며 “소리를 내어 읽을 때 자연스러워야 그 리듬이 살아있고 내용도 전달이 잘 된다.”고 했다. 스스로를 고전의 ‘트랜스레이터’라고 정의내렸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아주 깊이 공감한다. 그는 현재 ‘정민의 세설신어’라는 사설을 조선일보에 기재하고 있다. 

 나는 정민 교수가 계속해서 지금의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를 통해 관심 없었던 18세기 문학을 쉽게 접하게 되고 흥미까지 갖게 됐으니 말이다.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쓰고 그는 그가 연구하고 책에 쓴대로 지식을 경영하고 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으니 그가 존경스럽다.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읽으면서 든 생각은 정민교수도 정약용의 글쓰는 방법을 활용해서 글을 썼다는 것이다. 도움이 많이 되는 글이었다. 논문을 써야 하는 것 때문에 석사 공부 하는 것을 꺼려했었는데 자신감을 좀 얻은 것 같다. 물론 어렵겠지만 방법은 알았다. 정약용의 고지식함과 꼼꼼함을 발굴해 21세기 언어로 재 번역해준 정민교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서설

p19 한 사람이 뜻을 세워 몰두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실천해 보였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방바닥에서 떼지 않았던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 이와 머리카락도 다 빠졌다. 20년에 가까운 오랜 귀양살이는 다산 개인에게는 절망이었으되, 조선 학술계를 위해서는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었다.

그는 냉철한 학자이기 전에 유머를 아는 따뜻한 인간이었다.

 

p20 전체 목차를 먼저 세우고 갈래를 나눠 카드작업을 했다. 원고를 작성하는 동안 『다산시문집』을 수십 번도 더 되풀이해 읽고 또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가 내 속으로 걸어들어와 내 사고를 지배하고 자기 생각을 나를 시켜 말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작업과정내내, 다산식 지식경영법이 오늘날에도 얼마나 위력적일 수 있는가를 실감했다. 비슷비슷한 화제임에도 전체에 걸쳐 같은 지문을 중복 인용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그의 학문은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었다.

 

p21 그의 글을 거듭 읽는 동안 나는 또 다른 한 세상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1강 단계별로 학습하라 (바른 길을 찾아서 지름길로 만들어라.)

 

1. 파 껍질을 벗겨내듯 문제를 드러내라_여박총피법(如剝蔥皮法)

p27 파의 껍질을 계속해서 한 겹 한 겹 벗겨나가는 것은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다. 실마리를 잡아야 얽힌 실꾸리가 풀린다. 실마리를 잡지 않고서 실타래만 들쑤셔놓으면 나중에는 완전히 뒤엉켜서 수습할 수조차 없게 된다. 먼저 핵심개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갈라낼 수 있다. 핵심을 잡으려면 안목과 식견이 서야 한다. 안목과 식견은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 일단 옥석을 가리지 말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아야 한다. 일견 순환어법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p27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해결법을 제시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연구성과를 꼼꼼히 검토해보라고 권하고 연구의 큰 방향을 대강 일러준다. 그러고는 그가 제대로 된 문제를 들고 나타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내가 중학생을 위해 쓰는 수학책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중학생을 위해 나온 책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p29 정존(靜存)은 조용히 따지고 살펴 그 깨달음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다. 동찰(動察)은 이를 실제에 적용하여 맞는지 맞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면밀히 따져 관점을 세운 후, 비로소 실제에 적용한다. 이때 주경과 궁리의 태도가 요구된다. 주경(主敬)이란 성심을 다해 주제에 몰입하는 것이다. 궁리(窮理)는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탐색의 과정이다. 문제는 항상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라야 한다. 구름 잡는 이야기는 안 된다. 정존의 과정이 잘못되면 항상 동찰의 적용단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항상 정존에서 동찰로 이어지고, 동찰이 다시 정존으로 환원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 두 가지가 따로 놀면 안 된다.

 

p30 글을 지으려는 사람은 먼저 독서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물을 파는 사람은 먼저 석 자의 흙을 파서 축축한 기운을 만나게 되면, 또 더 파서 여섯 자 깊이에 이르러 그 탁한 물을 펴낸다. 또 파서 아홉 자의 샘물에 이르러서야 달고 맑은 물을 길어낸다. 마침내 물을 끌어올려 천천히 음미해보면, 그 자연의 맛이 그저 물이라 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다시 배불리 마셔 그 정기가 오장육부와 피부에 젖어듦을 느낀다. 그런 뒤에 이를 펴서 글로 짓는다.

 

p30~31 바른 독서는 그저 글의 껍질만을 읽어 축축한 흙을 얻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되고,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달고 찬 샘물을 길어 올리는 데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p31 (이덕수) 만약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성대히 교감하고 거세게 장맛비를 내려, 부슬부슬 어지러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리게 되면, 땅속 깊은 데까지 다 적시고 온갖 사물을 두루 윤택하게 한다. 이것이 이른바 푹 젖는다는 것이다.

책 읽는 것 또한 그러하다. 서로 맞춰보고 꿰어보아 따져 살피는 공부를 쌓고, 그치지 않는 뜻을 지녀, 푹 빠져 스스로 얻음에 이르도록 힘써야 한다. 이와 반대로 오로지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만을 급선무로 한다면, 비록 책 읽는 소리가 아침저녁 끊이지 않아 남보다 훨씬 많이 읽더라도 그 마음속에는 얻은 바가 없게 된다. 이는 조금만 땅을 파면 오히려 마른 흙인 것과 한가지 이치다. 깊이 경계로 삼을 만하다. (이덕수, 「유척기에게 준 글」, 『서당사재』)

 

p32 공부는 내 삶을 가치 있게 향상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목적과 수단을 착각한다. 논문을 써서 학문을 받는 것은 목적이 될 수 없다. 교수가 되는 것도 목적은 아니다. 떼돈을 벌어 출세하는 것도 목적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좀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또는 과정 끝에 주어지는 결과일 뿐이다.

 

p34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면 안 된다. 실마리를 잡는 일은 이것을 옳게 분별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 분간을 잘못하면 귀가 엷어진다. 쉽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는데 왜 그 고생을 하느냐고 하면 금방 솔깃해진다. 그래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건너뛰어버린다. 당장에는 남보다 빨라 보여도 결국은 더 늦는다. 분명히 될 것 같았는데 끝내 안 된다.

 

p34 다산 같은 큰 학자도 처음에는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껍질과 속살을 분간을 못해 헛수고를 했다. 처음에 인용한 편지글에서 다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난번 내가 네게 목청을 돋워 이야기했던 것은 이제 와 생각해보니 본질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파 껍질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내가 헛다리를 짚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난번 네게 힘주어 말한 것이 잘못되었던 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그러니 그때보다는 진전이 있는 셈이다. 실마리가 곧 잡힐 것 같기는 한데 될 듯 될 듯 안 된다. 되기만 하면 네게 보내 너와 토론하고 싶다.”

 

p35 다산은 말한다. 문제를 회피하지 마라. 정면으로 돌파하라.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탐구해 들어가라. 처음에 우열을 분간할 수 없던 정보들은 이 과정에서 점차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서 실마리를 잡아라. 얽힌 실타래도 실마리를 잘 잡으면 술술 풀리게 마련이다. 더 이상 파 껍질을 붙들고 씨름하지 않게 된다.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자꾸 들쑤석거리기만 하면 나중엔 아예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손쓸 수 없게 된다. 핵심을 놓치지 마라. 실마리를 잡아라.

 

2.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라 _ 촉류방통법(觸類旁通法)

p43 글자 하나하나가 모여 계통적 지식을 만들고 연쇄적 확산을 낳듯,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정보들도 갈래별로 나누고 성질에 따라 분류하지 않으면 안 된다.

 

p44 논문을 쓰거나 데이터 분석하는 것도 이 구슬꿰기와 다를 것이 없다. 대개 이 과정은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게 뭘까? 왜 그럴까? 어떻게 이해할까?

수학이 뭘까? 수학을 왜 배울까? 수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내가 분석해야 하는 현상은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는 현상이다.

 

p46 자료를 수집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막상 논문은 며칠 만에 탈고 했다. 자료를 수집하고 생각의 갈래를 나누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생각이 정돈되면 글 쓰는 일은 대개 손가락 아래의 일이다. 하지만 생각이 정돈되지 않으면 자료를 다 모아놓고 몇 년이 지나도 전혀 손을 대지 못한다. 생각이 익기만을 기다리는 자료파일이 내게도 적지 않다.

 

p47 다산은 말한다. 갈래를 나누고 종류별로 구분하라. 그렇게 해야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드러난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라. 그저 그러려니 해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질서를 찾아내야 한다. 계통을 확립해야 한다. 산만해서는 안 되고 집중해야 한다. 흩어져서는 안 되고 집약해야 한다. 지리멸렬, 각개격파로는 적을 물리칠 수가 없다. 일사불란하고 명약관화해야 한다.

 

3. 기초를 확립하고 바탕을 다져라 _ 축기견초법(築基堅礎法)

p48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다. 이 기본기가 잘못되면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아도 그 이상은 안 된다. 뒤늦게 깨달아 다시 기본부터 닦으려 하면 그때까지의 잘못된 습관이 방해해서 상태가 전보다 더 나빠진다.

 

p49 터를 다지는 데만 꼬박 석 달이 걸렸다. 막상 공사를 마치기까지는 반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터 다지는 데 석 달, 짓는 데 석 달이 걸린 것이다.

 

p49 공부보다 먼저 인간이 되라는 얘기다. 공부의 바탕이 되는 근기는 효제의 덕성을 바탕으로 갖추어진다. 인간은 인간성에 바탕한 근기를 갖출 때 비로소 목표가 생긴다. 내가 이 일을 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시겠지 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날 때 갈 길의 방향이 정해진다. 형제들이 저렇게 잘하니 나는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을 지닐 때 잡념 없이 더 정진할 수가 있다. 이럴 때 경전의 말씀은 하나하나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내 안으로 스며든다.

 

p50 젊은 사람은 혈기가 안정되지 않아 늘 낯설고 신기한 것에 눈을 판다. 그들은 종종 오래된 것과 낡은 것을 착각하고, 새로움과 괴상함을 혼동한다. 남들이 많이 간 길은 거들떠보지 않고, 생전 처음 보는 길로 모험떠나기를 즐긴다. 새로운 길을 가더라도 괴상한 것과 혼동하면 안 된다. 주체가 흔들릴 때 모험은 대개 용기이기보다 만용이 된다.

 

p51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해서는 안 될 것도 있다. 동서남북은 내가 어디에 있든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상하좌우는 내가 선 위치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가변적이다. 동서남북을 상하좌우로 알 때 문제가 생긴다. 상하좌우를 동서남북으로 착각해도 비극이다.

 

p54 바탕공부는 그러니까 맛난 음식의 영양분이고 향기로운 술의 더운 기운이다. 문장은 그것이 얼굴 위로 드러난 윤기요 홍조일 뿐이다.

 

p56 굳건한 바탕공부의 힘이 위기를 만나 오히려 위력적으로 발휘된 것이다.

 

p57 한 사람은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귀양살이의 시간을 하늘이 준 축복으로 알고 학문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학술사에 경이로운 금자탑을 세웠다. 그의 오랜 귀양살이는 그 개인엥게는 절망이었지만, 조선 학술계를 위해서는 큰 축복이었다.

다른 한 살마은 진장에게 글씨를 팔아 벽장을 값나가는 물건으로 채워놓고 배부르게 지냈다. 그러고도 모자라 박에다 제 글을 담아 세상을 향해 띄워보내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했다. 그는 결국 섬에서 나오지 못하고 거기서 쓸쓸히 죽고 또 잊혀졌다.

두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말미암은 것인가? 근기, 즉 바탕공부의 차이 때문이다. 역경에 쉽게 좌절하는 사람은 순경에서 금방 교만해지게 마련이다.

비수를 꽂는 말이다.

 

p58 다산은 말한다. 기둥을 세우기 전에 터를 굳게 다져라. 주추를 놓기 전에 터를 굳게 다져라. 진도를 빨리 나가려 들지 말고 터를 굳게 다져라. 단청이 마르기도 전에 기울고 벽이 갈라지는 집은 아예 짓지도 마라.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터를 굳게 다져라. 달구질을 오래 할수록 터가 단단해진다. 그 굳건한 토대 위에 주추를 놓고 기둥을 세워 들보를 얹어라. 천년 세월에도 기울지 않을 그런 집을 지어라.

 

4. 길을 두고 뫼로 가랴 지름길을 찾아가라_당구첩경법(當求捷徑法)

p61 서양 속담 중에 “사람이 빵만 구하면 빵도 얻지 못하지만, 빵 이상의 것을 추구하면 빵은 저절로 얻어진다”는 말이 있다. 주자는 “사람이 이익을 추구하면 이익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장차 그 몸을 해치고, 의리를 추구하면 이익은 따로 구하지 않아도 절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말했다. 다산의 논법도 이와 흡사하다.

 

p62 다산이 말하는 지름길이란 남들이 보기에는 돌아가는 길이다. 목표가 과문에 있는데, 과문은 버려두고 고문만 하라니 아무도 귀 기울려 들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결과로 보면 다산이 옳다.

 

p63 부지런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 엉뚱한 데다 노력을 쏟아부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는 하나도 없게 된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고, 처음에는 그럴싸해도 나중에는 한참 뒤떨어지게 된다.

 

p64 뿌리가 든든해야 양분을 끌어올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뿌리가 도덕이라면, 문장이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꽃에 불과하다. 꽃이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의 근원은 뿌리에서 왔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되는데, 사람들은 거름을 주어 뿌리의 힘을 돋울 생각은 않고, 꽃만 피우겠다고 난리다.

 

p67 수학은 하학상달하는 공부다. 덧셈과 뺄셈을 배운 뒤 곱셈과 나눗셈을 배운다. 방정식을 배우고 인수분해를 배워야 미분과 적분으로 올라간다. 의욕만 가지고 대뜸 윗단계로 건널 뛸 수 없다. 다음 단계를 소화하려면 이전 단계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p68 다산은 말한다. 지름길을 찾아라. 더뎌 보이는 길이 지름길이다. 무슨 답답한 말이냐고 하지 마라. 해보면 그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맨땅에 헤딩하듯 하는 공부는 백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단계를 밟아 차근차근 규모를 세워라. 갈림길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덤불 속에서 방황하지 않으려면, 돌밭에서 목마르지 않으려면 지름길을 찾아라.

 

5. 종합하고 분석하여 꼼꼼히 정리하라 _ 종핵파즐법(綜覈爬櫛法)

p69 종핵파즐은 복잡한 것을 종합하여 하나하나 살피고,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고 헝클어진 머릿칼을 빗질하듯 깔끔하게 정리해낸다는 뜻이다.

 

p70 공부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이하는 절차다. 심입천출이라 했다. 공부는 깊게 들어가서 얕게 나와야 한다. 세게 공부해서 쉽게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수들의 말은 쉬워 못 알아들을 것이 없다. 하수들은 말은 현란한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읽을 때는 뭔가 있는 것 같다가도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

 

p75 그저 읽기만 하면 비록 하루에 천 번 백 번을 읽는다 해도 안 읽은 것과 같다. 무릇 독서란 매번 한 글자라도 뜻이 분명치 않은 곳과 만나면 모름지기 널리 고증하고 자세히 살펴 그 근원을 얻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차례차례 설명하여 글로 짓는 것을 날마다 일과로 삼아라. 이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어도 곁으로는 백 종류의 책을 함께 들여다보게 될 뿐 아니라, 본래 읽던 책의 의미도 분명하게 꿰뚫어 알 수가 있으니 이 점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p76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말과 만나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완전히 알때까지 끝장을 보라는 이야기다.

 

p78 모르던 것을 하나씩 깨쳐나가는 동안 앎이 내 안에 축적되고, 그 앎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지혜가 된다. 다산에 따르면 격물치지란 무엇을 먼저 하고 나중 할지를 아는 것이다. 바깥 사물을 격물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치를 따져 내 삶 속에 깃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을 일러 궁리진성이라 한다. 격물치지와 궁리진성,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완성된 인격을 추구한다.

 

다산은 말한다. 복잡하다고 기죽지 마라. 갈래를 나누고 무리를 지어 한눈에 바랍로 수 있도록 종합해야 한다. 그 다음은 옥석을 가릴 순서다.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차례짓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며, 먼저와 나중을 자리매겨라. 그러고 나서 누가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오도록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헝클어진 것을 빗질해주어라.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는 것이 공부다. 남들은 못봐도 나는 보는 것이 공부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이를 통해 내 삶이 송두리째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공부다. 마지못해 쥐어짜며 하는 공부 말고, 생룡활호처럼 펄펄 살아 날뛰는 그런 공부가 공부다.

 

2강 정보를 조직하라 (큰 흐름을 짚어내는 계통적 지식경영)

공부는 가닥을 잡는 데서 시작되고 끝난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 있는 것을 참작해서 새것을 만들어라. 틀을 만들고 골격을 세워라. 새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기존의 성과를 면밀히 점검하라. 다 보여주려 들지 말고 핵심을 찔러라. 자료를 널리 모아 갈래를 나눠라.

 

6. 목차를 세우고 체재를 선정하라_선정문목법(先定門目法)

p81 선정문목은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문목, 즉 목차를 먼저 정하라는 말이다. 논문을 쓰든 저술을 하든 아니면 어떤 과제를 정리하든, 가장 먼저 할 일은 목차와 개요를 세우는 것이다. 목차를 세우려면 우선 머릿속에 전체 얼개가 짜여야 한다. 내 앞에 놓인 자료를 장악하지 않고 목차를 짜기란 불가능하다.

이 작업은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목차를 세우는 것이 어렵다. 전체 얼개가 짜여져 있지 않기 때문일까? 내 앞에 놓인 자료를 아직 장악하지 못해서 인 것 같다. 목차구성이 정말 어렵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오래 걸리더라도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 목차구성!!!!

 

p87 이렇듯 다산은 어떤 작업을 하든지 우선 목차와 범례를 확정하여 책의 목적과 목표, 전체 골격을 완전히 구성한 뒤에 착수했다. 이것은 완벽한 설계도면을 그린 후 건축에 들어가는 이치와 같다.

 

p90 다산은 말한다. 무슨 일이든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전체 그림을 그려라. 생각의 뼈대를 세우고, 정보를 교통정리하라. 뼈대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작업을 진행해나갈 수가 없다. 목차가 정연하지 않으면 생각도 덩달아 왔다갔다한다. 범례를 꼼꼼히 검토해서, 혹시 작업중에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라. 목차는 생각의 지도다. 범례는 생각의 나침반이다. 지도와 나침반 없이 먼 항해를 떠날 수 없듯이, 제대로 된 목차와 범례 없이 큰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는 법이다. 먼저 목차를 세워라. 범례를 확정하라.

 

7. 전례를 참고하여 새것을 만들어라 _ 변례창신법(變例倉新法)

p95 이렇듯 다산은 언제나 관련 참고서적을 수집하는 일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목차를 검토하고 범례를 비교하여, 그 많은 정보를 당면과제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재배열했다. 타당성과 현실성에 대한 검토 없이 남의 것을 그저 가져다 쓰는 법은 결코 없었다.

 

p100 어쨌든 우리는 이를 통해 다산이 어떤 작업을 하든 전례를 그대로 묵수(墨守)하지 않고, 실정에 맞게 바꾸고 조정하면서 작업을 진해간 과정을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p101 다산은 말한다. 전에 없던 새것은 없다. 모든 것은 옛것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다. 좋은 모범을 찾아라. 훌륭한 선례를 본받아라. 하지만 그대로는 안 된다. 바꿔야 한다. 현실에 맞게 고쳐라. 실정에 맞게 변경해라.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고, 안 맞는 것은 버리고, 없는 것은 보태고, 부족한 것은 채워라. 내가 옛것에서 배울 것은 생각하는 방법 뿐. 내용 그 자체는 아니다. 옛사람의 발상을 배울 것은 생각하는 방법 뿐. 내용 그 자체는 아니다. 옛사람의 발상을 빌려와 지금에 맞게 환골탈태하라. 점철성금, 쇠를 두드려 황금을 만들어라. 옛길을 따라가지 마라. 나만의 색깔로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나다.

 

8. 좋은 것을 가려뽑아 남김없이 검토하라_취선논단법(取善論斷法)

p103 고금의 학설을 두루 살펴보매 온통 불합리한 것들만 보이니 어찌하겠습니까? 이럴 때는 하는 수 없이 책을 덮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밥 먹는 것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새로운 뜻과 이치가 시원스레 떠오르게 되지요.

하늘이 만약 내게 세월을 더 주어서 이 작업을 마칠 수만 있다면 그 책은 자못 볼만 할 듯합니다.

말 그대로 발분망식하여, 밥 먹고 잠자는 것도 잊은 채 몰두하였다. 전혀 새롭게 뜻을 깨달은 것도 적지 않았다. 또 팽팽하게 논쟁이 붙어 오래도록 결판나지 않은 사안을 전혀 다른 제3의 근거를 찾아내 마무리지어버린 것도 많았다. 다산은 자신의 좋지 않은 건강을 염려했던 듯, 이 작업을 과연 끝마칠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고나철해서 『논어』의 주석을 모두 취선논단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논어고금주』40권이다.

 

p108 벗이 찾아왔다가도 책에 정신이 팔려 건성건성 대하는 것을 보고 그냥 돌아갔을 만큼 그는 이 작업에 있는 정성을 모두 쏟았다.

 

p111 다산은 말한다. 많은 정보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 유용한 자료를 취하고, 쓸모없는 자료를 버릴 수 있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 반대로 하여 유용한 자료를 버리고 쓸모없는 자료를 취하게 되면 차라리 손대지 않는 것만 못하다.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려면 객관적인 분석과 명석한 판단이 필요하다. 자료가 혼란스러워 갈피를 못 잡겠다고 투덜대지 마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레 겁먹지도 마라. 하나하나 따져서 진위를 헤아리고 정보의 값을 매겨라. 문제는 나에게 있다. 자료에 있지 않다.

지금 내 마음을 딱 표현했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자료에 있지 않다!!

 

9. 부분을 들어서 전체를 장악하라 _ 거일반삼법(擧一反三法)

p113 거일반삼이란 한 모서리를 들어 나머지 세 모서리를 뒤집는 것이다. 툭 건드려 오성을 활짝 열어주는 방식이다. 혼자서도 한 모서리를 들어 탁자 하나를 쉽게 뒤집을 수가 있다.

 

p114 4분의 1의 노력으로 전체를 장악하는 방법이 바로 겅리반삼법이다.

 

p115 사물은 절로 괴이함이 없건만 공연히 제가 성을 내고, 한 가지만 자기가 아는 것과 달라도 만물을 온통 의심한다.

 

연암은 달사와 속인으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달사는 ㅌ오달한 선비다. 지혜의 샘이 활짝 열려서 식견이 툭 터진 사람이다. ‘천만가지 괴이한 것이 도로 사물에 부쳐진다’는 말이 재미있다. 이것을 보면 문득 저것이 떠올라 저것을 통해 이것을 이해한다. 그러니 처음 보는 사물도 하나 낯설지가 않아 그때그때 대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달사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그 열을 통해 백을 이해하는, 증폭되고 확산되는 효율성 높은 공부를 한다. 속인은 반대다. 하나를 들으면 그 하나만 고집해서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을 배우면 그 둘 때문에 붙드는 고집이 하나 더 늘어난다. 달사는 배울 때마다 툭툭 터지고 활짝 열리는데, 속인은 배울수록 꽉 막히고 굳게 닫힌다.

 

p119 다산은 끊임없이 자식과 제자들에게 읽고 공부한 것을 간추려서 정리해둘 것을 요구했다. 정리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하고 핵심을 파악하는 역량을 기르며, 한 분야의 지식이 다른 부분으로까지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자신도 초록하고 정리하고 메모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p123 큰 학자는 우연히 얻은 반 권짜리 책의 한 귀퉁이에서도 정신이 번쩍 드는 깨달음을 건져올린다. 도는 어디 먼 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 있다. 공연히 아득한 곳에서 있지도 않은 도리를 숭상하면서, 제가 딛고 선 자리는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결코 이런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없다. 다산은 자식들에게 할아버지의 편지를 정리하게 하고, 스스로 퇴계의 편지를 발췌하여 초록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는 공부의 시범을 보여주었다. 아내가 보내준 빛바랜 치마폭조차 오려서 공책으로 만들어 자식에게 주는 당부를 적었다. 이렇게 거일반삼하는 활법공부의 생생한 예를 직접 보여주었다.

 

다산은 말한다. 시시콜콜히 다 배우려 하지 마라. 한 모서리를 들어 전체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를 들어 열을 아는 공부를 해라. 하나를 배워 하나만 아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큰 공부를 하려면 안목이 열려야 한다. 식견이 툭 터져야 한다. 앞뒤가 꽉 막힌 채 책만 붙들고 있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통째로 보고 핵심을 잡아야 한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붙들어라. 삼라만상이 모두 책이다. 네 오성(悟性)을 활짝 열어라.

 

10. 모아서 나누고 분류하여 모아라 _ 휘분류취법(彙分類聚法)

p124 논문을 쓸 때도 그렇고 시장의 타당성을 조사할 때도 그렇고, 작업은 방대한 자료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p127 작업에 앞서 작업의 핵심가치를 먼저 생각한다. 정조는 다산에게 산번취약, 즉 번잡한 것을 잘라내고 간략하게 정리하라고 했다.

 

p127 <경험을 누적하라>

네가 양계를 한다고 들었다. 닭을 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닭을 기르는 데도 우아한 것과 속된 것, 맑은 것과 탁한 것의 차이가 있다. 진실로 농서를 숙독해서,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보도록 해라. 빛깔에 따라 구분해보기도 하고 횃대를 달리해보기도 해서, 닭이 살지고 번드르르하며 다른 집보다 번식도 더 낫게 해야 할 것이다.

또, 간혹 시를 지어 닭의 정경을 묘사해보도록 해라. 사물로 사물에 얹는 것, 이것이 글 읽는 사람의 양계니라. 만약 이익만 따지고 의리는 거들떠보지 않거나 기를 줄만 알고 운치는 몰라, 부지런히 애써 이웃채마밭의 늙은이와 더불어 밤낮 다투는 것은 바로 세 집 사는 작은 마을의 못난 사내의 양계인 게다.

너는 어떤 식으로 하려는지 모르겠구나. 기왕 닭을 기른닫면 모름지기 백가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육우의 『가경』이나 유득공의 『연경』처럼 말이다. 속된 일을 하더라도 맑은 운치를 얻는 것은 모름지기 언제나 이것을 예로 삼도록 해라.

 

p134 내 나이 스무살 때는 우주 사이의 일을 모두 가져다가 한꺼번에 펼쳐놓고 일제히 정돈하고 싶었다. 나이가 30, 40이 되어서도 이 같은 뜻은 시들해지지 않았다. 풍상을 겪은 이래로 무릇 백성과 나라에 관계된 일로 토지나 관리 및 군사제도 또는 조세 같은 것은 마침내 생각을 줄였다. 오직 경전과 주석의 사이에서 논란이 있는 것들을 평정하여 바른 데로 돌리려는 바람만은 오히려 있었다. 지금은 중풍으로 쓰러져 이런 마음이 점차 시들해졌다. 하지만 정신이 조금만 맑아지면 여러 가지 눌러두었던 생각이 또다시 불끈불끈 일어나곤 한다.

p135 다산은 말한다. 복잡한 문제 앞에 기죽을 것 없다. 정보를 정돈해서 정보가 제 스스로 말하게 하라. 효율적으로 정보를 장악할 수 있는 아킬레스건을 잡아라. 먼저 모으고, 그 다음에 나눠라. 그런 뒤에 그룹별로 엮어 다시 하나로 묶어라. 공부는 복잡한 것을 갈래지어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다. 갈팡질팡하지 말고 갈피를 잡아야 한다. 교통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 서랍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

3강 메모하고 따져보라 _생각을 장악하는 효율적 지식경영

11. 읽은 것을 초록하여 가늠하고 따져보라 _ 초서권형법

p140 무엇 때문에 이 책을 읽는가? 이 책 가운데서 어떤 정보가 유용한가? 왜 그 정보를 필요로 하는가? 이런 물음들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마련한 뒤라야 카드작업의 효과가 나타난다. 주견이 서야 권형, 즉 저울질이 가능해진다. 취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 이 판단의 근거가 바로 주견이다. 무조건 책 읽다가 좋은 구절에 밑줄만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p141 무릇 한 권의 책을 얻더라도 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은 채록하여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p146 일체의 권위를 의심한다

p147 이 언급은 필자체게, 책에 좀 더 일관된 질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내용도 좀더 세분하여 항목화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했다.

p148 역사와 각종 문집의 사례뿐 아니라 직접 듣고 본 실례까지 그때그때 초록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책에 포함시켰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은 말한다. 주견을 먼저 세워라. 생각을 붙들어세워라. 그런 뒤에 책을 읽어라. 눈으로 입으로만 읽지 말고 손으로 읽어라. 부지런히 초록하고 쉴새없이 기록해라. 초록이 쌓여야 생각이 튼실해진다. 주견이 확립된다.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당시에는 요긴하다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게 된다. 열심히 적어라. 무조건 적어라.

12.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메모하라 _수사차록법(

p152 어린이를 가르치는 방법은 지식을 계발하는 데 달려 있다. 지식이 미치면 한 글자 한 구절이라도 모두 문심혜두를 여느 열쇠가 되기에 충분하다. 지식이 미치지 못한다면 비록 다섯 수레로 실어 내 만 권의 책을 독파한다 해도 안 읽은 것과 같다.

하나하나 알아서 깨쳐갈 때, 문심혜두, 즉 지혜의 구멍이 열린다.

p153 그저 해오던 방식만을 추수하여 잘못된 길로 이끄는 교육의 폐단을 비판했다. 다산은 맹목적이고 무모한 독서를 배격하고, 끊임없이 중요한 부분을 베껴쓰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는 방식의 독서를 되풀이해 강조했다.

<<고려사>>를 공부하는 일은 여태도 손대지 않았느냐? 젊은 사람이 긴 안목과 툭 터진 생각이 없으니 답답하구나.

p154 수많은 비슷비슷한 학설과 주장에 치여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고 침잠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면서 마음에서 의심이 가시는 순간과 만나게 되는데,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메모했따.

p159 다산은 말한다. 부지런히 메모해라. 쉬지 말고 적어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메모는 생각의 실마리다. 메모가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으로 기록해라.

13. 되풀이해 검토하고 따져서 점검하라_반복참정법

p160 반복참정은 되풀이해서 따져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p169 다산은 말한다. 공부는 따지는 데서 시작해서 따지는 것으로 끝난다. 자료가 아무리 많아도 이를 꿸 끈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꼼꼼히 따지고 낱낱이 따져라. 그저 보아넘기거나 대충 넘어가지 마라. 비교해보고 대조해보고 견주어보고 흔들어보아라. 선명한 길이 뚜렷이 드러날 때까지 따지고 또 따져라.

14. 생각을 정돈하여 끊임없이 살펴보라_잠심완색법

p170 앞에다 자료를 산처럼 쌓아놓는다고 당면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본떠 해봐도 풀리지 않는다. 독한 마음을 품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해결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아직 일의 가닥을 잡지 못할ㄴ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어찌하는가? 다산이 내놓는 처방은 잠심완색이다. 이럴 때는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는 몰두와 침잠의 시간이 필요하다.

p173 잠심완색의 목적은 융횐관흡에 있따. 전에는 하나도 모르던 것이 어느 것 하나 모를 것 없는 상태로 올라서는 것이 융회이고, 한 꿰미로 꿰어 속속들이 무젖어드는 것이 관흡이다.

p174 이러한 잠심완색 끝에 다산은 마침내 통통쾌쾌하여 아무 걸림 없는 회통의 단계롤 들어설 수 있었다. 그 느낌은 다산은 파죽지세라는 말로 표현했다.

p177 밤이 이미 깊었다.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웠다. 서창에 달빛이 대낮 같았다. 내가 그를 당기며 말했다.

“장공, 자는가?”

“아닙니다.”

“건괘에서 초구는 무얼 말한 게요?”

“구라는 것은 양수의 끝이지요.”

“음수의 끝은 무엇인가?”

“십에서 그칩니다.”

“그렇구려. 그렇다면 어째서 곤초십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암은 한참 동안 깊이 생각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옷깃을 바로 하며 내게 호소했다.

“산승의 20년 <<주역>>공부가 모두 헛된 물거품입니다. 감히 묻습니다. 곤초육은 무슨 말입니까?”

“알 수 없지. 기수로 돌아가는 법은 무릇 최후의 수가 4거나 2일세. 모두 기수라고 여기지만, 2와 4는 우수가 아닌가?”

아암이 구슬피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와 초파리는 잘난 척할 수가 없는 것을! 더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암 장공의 탑명>

p178 학해무변, 즉 배움의 바다는 가없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p180 다산은 말한다. 공부에 끝이 있는가? 공부에는 끝이 없다. 마음을 푹 담가 한 우물을 들이파라. 살펴보고 따져보고 또 살펴보고 따져보라. 이쯤하면 되겠지, 그런 말은 하지 마라.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런 것도 없다. 장벽을 만나거든 네 마음속으로 걸어들어가라. 잠시도 놓지 말고 석연하게 투득하라. 그래야 네가 하는 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15. 기미를 분별하고 미루어 헤아려라_지기췌마법

p181 지기췌마는 기미를 미리 알아 미루어 헤아려 준비하는 것이다. 일이 닥친 뒤에 대처하면 너무 늦다. 미루어 짐작하고 헤아려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평소의 공부는 지기췌마를 위한 수련과정일 뿐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허둥지둥하지 않으려면 달사의 안목을 길러야 한다.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안 보이는 것까지 보아야 한다. 공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도 마찬가지다. 공부와 삶은 별개의 무엇이 아니다. 따로 놀면 안 된다.

p184 다산은 늘 문제를 근원에서부터 파헤쳐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취했다. 순발력의 기지나 미봉책은 취하지 않았다.

p185 다산은 이렇게 합리적이고 명확한 일처리로 목민관의 바른 본을 보였다. 과정을 손금 보듯 장악하고, 허실을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것이 경세제민으로 드러난 다산식 지기췌마법이다.

p192 다산은 말한다. 한번 지나간 버스는 세울 수가 없다. 기회는 불시에 찾아온다. 두 번 오지 않는다. 소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지 말고, 미리 헤아려 대비하라. 변죽만 울리지 말고 핵심을 찔러라. 맥락을 읽고 행간을 읽어라. 글을 읽지 말고 마음을 읽어라. 껍데기만 쫓지 말고 알맹이를 캐내라.

4강 토로하고 논쟁하라 _ 문제점을 발견하는 쟁점적 지식경영

16. 질문하고 대답하며 논의를 수렴하라 _ 질정수렴법

p195 질정수렴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가운데 논란이 있던 문제에 대해 의견을 수렴해가는 것이다.

p200 나는 늘 편지에 세 가지 유익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의문점을 정확히 짚어내어 깊은 뜻을 점차 깨닫게 해주는 것이 첫 번째 유익함이다. 질문에 답하는 사람 또한 감히 쉽게 주장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 두 번째 유익함이다. 글상자에 남겨두어 뒷날에도 잊지 않게 해주는 것이 세 번째 유익함이다.

p204 다산은 말한다. 메모하고 정리하라. 그리고 그 내용을 글로 써서 질문하고 토론하라. 공부는 토론을 통해 발전한다. 남김없이 질문하고 가차없이 비판하라. 토론의 자리에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체면을 갖추는 것은 토론이 아니다. 한쪽이 꺾일 때까지도 토론하라. 승복할 때까지 논란하라.

17. 끝까지 논란하여 시비를 판별하라_대부상송법(大夫相訟法)

p205 대부상송이란 춘추시대 대부들이 서로 시비가 엇갈려 이를 가릴 수 없을 때 소송을 걸어, 증거로 따지고 논란하여 제3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다.

p206 서로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본 바가 참으로 희기에 희다고 하는 것이지, 속으로는 검은 줄 알면서 억지로 희게 하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음의 일이 이러하다면 이는 저와 마음이 같은 것입니다. 이미 마음이 같은데 말이 어긋나는 것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 일은 학문의 핵심과 관계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감히 한 차례 되풀이하여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래도 합치되지 않는다면, 마땅히 입을 닫고 혀를 묶어 남은 봄날을 보낼 뿐입니다. 반드시 감히 옛사람이 했던 것처럼 두 번 세 번 편지하지는 않으렵니다. 대게 뒤끝이 좋지 않을까 염려해서입니다. <이여홍에게 답함>

p209 일련의 편지를 읽으면서 감탄스러운 것은, 상대를 납득시키려는 다산의 끈질기고 집요한 태도만은 아니다. 이렇게 격렬한 논쟁을 주고받으면서도 두 사람은 만년까지 아름다운 우정을 지켜갔다. 이 사실이 내게는 더 감동적이다. (이재의와 정약용)

p214 다산은 말한다. 한번 칼을 빼들었거든 끝장을 봐라. 중간에 어정쩡하게 물러서려면 시작도 하지 마라. 잘못은 변명 없이 깨끗이 수긍하라. 비판은 겸허히 받되,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은 절대로 양보하지 말고 증거를 들이대 반박하라.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과 토론하여 객관성을 높여라. 매도 미리 맞는 것이 낫다. 여러 사람의 안목을 거치는 것이 안전하다.

18. 생각을 일깨워서 각성을 유도하라_제시경발법(提시警發法)

p215 제시경발은 이끌어 일깨우고 경계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다. 제시는 붙들고 하나하나 일깨워줌을 말한다. 경발은 깨우처 오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앞서 두 절에 걸쳐 다산의 서면토론에 대해 살펴보았다.(16,17절) 이 절에서는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면토론에 대해 살펴보자.

p219 진실로 함장축언, 즉 말을 아껴 머금어 괄낭 곧 주머니를 닫고 말하지 말라는 옛사람의 경계를 지킴이 마땅하리라 봅니다. 하지만 또 혼자 생각해보니 풍으로 마비가 오고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 죽는 날이 머지않은데 끝내 입을 다물고 펴지 않은 채 땅에 묻힌다면 성인을 저버림이 심한 일일 듯싶습니다. 온 세상을 두루 살펴보아도 오직 그대만이 능히 나를 비루하다 하지 않고 저버리지 않을 듯하여, 이에 곁에 있는 종이를 써서 대략 침울한 정을 펴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p220 제시경발과 제시유액. 의미는 같다. 강아지 풀이 무성하게 돋아나는 것이 겁나 파종을 포기하는 농부는 없다. 구더기가 무서워도 장은 담근다. 토론중에 시비가 붙어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공부의 자리에서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그게 겁난다고 공부하는 사람이 토론을 꺼리거나 자기 의견을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것은 학자의 바른 자세일 수 없다. 더욱이 아직 자기 주견이 확립되지 않은 후생의 경우 제시경발의 가르침을 더더욱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욕 안 먹고 마음 편히 지내겠따고 마음의 문을 닫고 저 혼자 올바르기만 추구하는 것은 결코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

p221 옛날에 느닷없는 큰 망치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병이 된 사람이 있었답니다. 작은 소리조차 온통 꺼려, 약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군요. 한 의원이 병자를 밖에 앉아 있게 하고는 별안간 큰 망치소리를 내서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게 해놓고서, 연거푸 백번 천번 그 소리를 냈더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합니다.

한 끼 밥에 살이 찌고, 한 끼 밥에 비쩍 마른다면 사람들이 이를 천히 여기는 법이지요. 사군자가 서로 모여 강학하는데, 우연히 한 미친 간사한 자가 말을 꾸며 헐뜯었다 하여 마치 땅이 꺼질 듯 마음이 허물어진다면 어찌 진보하여 큰 그릇이 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대저 일이란 스스로 돌이켜 허물을 물리칠 것도 있고, 뜻을 다잡아 굽히지 않을 것도 있는 법입니다.

p222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 돌아보아 과감히 고칠 일이요, 떳떳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굳세게 지켜 밀고나갈 뿐이다.

다산은 병자의 비유를 들어, 유언비어를 듣고 전전긍긍하던 만계의 불안감을 단숨에 풀어주었다. 한 마디의 말로 미혹을 걷어내고, 한 차례의 일깨움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다산의 제시경발법이다.

p222 군자는 도를 근심할 뿐 가난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대체 즉 마음을 기르는 것을 도라하고, 소체 즉 몸뚱이조차 능히 기르지 못하는 것을 가난이라 한다.

p224 다산은 말한다. 공부를 잘하려면 식견이 열려야 한다. 깨달음이 없으면 여기서 이 말 듣고 저기서 저 말 들을 때마다 우왕좌왕하게 된다. 귀가 얇아 드는 대로 의심이 나고, 배우는 대로 의혹만 커진다. 정신을 바짝 차려라. 입과 배를 위해 애쓰지 말고, 네 영혼의 각성을 위해 힘써라. 누구나 처음에는 안 된다. 차근차근 따지고 살피고, 곁에서 일깨워주어 깨달아가는 것이다.

19. 단호하고 굳세게 잘못을 지적하라_절시마탁법(切시磨濯法)

p225 절시마탁은 잘못을 바로잡고 책선해서 역량을 갈고닦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서로에게 칭찬하는 법이 없다. 날카롭게 비판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서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그가 잘못한 것을 드러내서 더 향상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비판에 대해서도 마음을 비워,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내세울 것은 더 확고히 내세워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반대로 한다. 남의 부족한 점은 그저 듣기 좋은 말로 칭찬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간다. 남의 비판에 대해서는 얼굴이 벌게져서 불쾌하게 생각한다. 남이 입에 발린 말로 칭찬해주면 그제야 흡족해서 ‘그러면 그렇지’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비수를 꽂는 말 투성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을 싫어하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비판 받는 게 싫어서 남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칭찬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칭찬한다. 아부는 아닌데, 어느새 칭찬 또는 빈말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우선 고치려면 말을 안하는 쪽을 선택해야겠다. 특히 공부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의 역할에 있어서 만큼은 칭찬의 잘 사용해야 한다. 비판 또한 그렇다.

p226 갑이 말끝마다 칭찬하면 을은 몸을 받들어 사양합니다. 이번엔 을이 배나 더 칭송합니다. 그러면 갑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겸양하지요. 마침내 몇 년 뒤에는 둘 다 벼슬길로 나아가 우뚝하게 수립한 자가 없습니다. 이는 깊이 경계로 삼아야 할 바입니다.

대저 벗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절시마탁하는 유익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마치 돌침으로 뼈에 침놓듯이 어리석고 게으름을 경계하고, 쇠칼로 눈동자의 백태를 깎아내듯 허물과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설령 큰 재주와 높은 덕이 있다 해도 내가 무엇 때문에 그를 향해 이를 말하겠습니까? 하물며 속되고 비루한 무리에게 과도하게 칭찬을 더하는 것은 장차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니, 주는 자나 받는 자나 그 잘못이 똑같을 뿐입니다.

p227 서로 덕담이나 주고받자는 태도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남을 칭찬하는 것이야 나쁠 게 없지만, 공부의 자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겸손이 미덕이긴 해도 토론의 자리에서는 안 된다. 학문의 문제로 토론하는 자리에서는 돌바늘로 뼈를 찌르고, 쇠칼로 각막의 백태를 긁어내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비판이 있을 뿐이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불퇴전의 기상이 있을 따름이다. 서로 칭찬이나 하고 덕담이나 주고받으려면 토론은 무엇 때문에 하는가?

p229 다산은 먼저 사기종인(舍己從人)할 것을 그에게 권했다. 자기의 고집을 버리고 남의 비판을 따르라는 말이다. 그 반대가 택선고집(擇善固執)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끝까지 밀어붙여 굳게 붙드는 것이다. 비판하는 사람의 사기종인과 듣는 사람의 택선고집이 팽팽하게 맞서면 토론에 진전이 없게 되므로 토론의 보람이 없다.

p230 공부하는 사람의 바람직한 태도로 다산은 다시 개과불린(改過不吝)을 꼽았다. 잘못되었다 싶을 때 즉각 그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 자존심 때문에 고집을 부린다면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남의 지적을 덮어놓고 수긍하려 드는 태도는 더 잘못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이 사이를 잘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p234 다산은 말한다. 중간에 그만둘 토론은 시작도 하지 마라. 쟁점은 쌍방이 온전히 승복할 때까지 물고늘어져라.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덕담이나 주고받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해서는 학문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송두리째 의심하고, 남김없이 파헤쳐서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마라.

20. 근거에 바탕하여 논거를 확립하라_무징불신법(無徵不信法)

p235 무징불신은 증거가 없으면 믿지 않는다는 뜻으로, <<예기>>에 나오는 말이다. 토론과 논쟁에서 가치판단의 최종근거는 확실한 논거나 증거다.

p239 쟁점이 되는 주제에 대한 토론은 자칫 비판과 비방이 뒤섞이기 쉽다. 이때 논거를 가지고 비판해야지 감정으로 비방해서는 안 된다.

p246 박지원은 <창애에게 답함>에서, 글이란 소송을 거는 사람이 증거를 들이대고, 장사치가 물건을 직접 보여주며 사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리 명백하고 분명한 일이라도 달리 증거가 없으면 재판에서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경전의 근거를 들이대고, 하나로는 부족해 이곳저곳에서 전거를 끌어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 나무를 지고 다니면서 “소금 사려!”하고 외친다면, 하루종일 다녀봤자 장작 단 한단도 팔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즉, 글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확실한 증거에 바탕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다산은 말한다. 주장을 함부로 내세우지 마라. 증거 없이 말하지 마라. 논거가 없으면 논리도 없다. 학문의 일은 가설을 세우고 논거를 찾아 이를 입증하는 과정일 뿐이다. 재판에서는 증거가 없으면 꼼짝없이 진다. 학문도 다를 것이 없다. 상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증거를 들이대라. 막연한 추정이나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은 공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주장을 입증하려거든 증거를 찾아라. 논쟁에서 이기려거든 논거를 제시해라.

5강 설득력을 강화하라 _ 설득력을 갖춘 논리적 지식경영

21. 유용한 정보들을 비교하고 대조하라 _ 피차비대법(彼此比對法)

p249 피차비대는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고 대조한다는 뜻이다. 의미가 모호하여 잘 드러나지 않을 때, 다른 것을 끌어와 비교하고 대조하여 논지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의 문장수사학으로 치면 비교와 대조의 방식이다.

다산은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경증경, 즉 경전의 내용을 다른 경전과 대비하여 밝히는 방식을 제시했다.

p250 그러나 마음으로 옳게 여겨지는 것이야 옳게 여긴다 해도, 마음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장차 힘써 이를 따라야 한단 말인가?

p252 재여가 낮잠을 잤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새길 수가 없고, 썩은 흙의 담장은 바를 수가 없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다는 말은 한마디로 구제불능이라는 뜻이다. 재여는 낮잠 한번 잤다가 이렇게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이 문제에 대해 후대 주석가들이 온갖 해석을 내 놓음.)

이런 문제를 다산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p254~255 다산은 재여주침을 재여가 낮잠을 잔 것이 아니라, “재여가 흐트러진 자세로 누워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p259 다산은 말한다. 억지를 부려서는 상대를 설득할 수 없다. 견강부회로는 남이 수긍하지 않는다. 이것을 말할 때 저것을 증거로 끌어와 옆구리를 찔러서 절을 받아라. 증거가 없다고 투덜대지 마라. 논거를 못 찾겠다고 답답해하지 마라. 보는 방법만 바꾸면 널린 것이 증거요 논거다. 억지부리지 말고 근거로 말하라. 증거로 설득력을 강화하라. 증거가 스스로 말하게 하라.

내가 찾아야 하는 증거는 무엇이 있을까? 증거가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은 강력한 방법이다. 수학을 배워야 하는 것이 학생들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증거가 있다면 좋겠다. 수학 공부가 사회를 살기좋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수학이 중학생들에게 꼭 필요하고, 그들의 삶에 유익함을 가져다 준다는 증거를 찾고 싶다.

22. 갈래를 나눠서 논의를 전개하라 _ 속사비사법(屬詞比事法)

p260 속사비사는 글을 엮을 때 적절한 예시를 함께 얹는 것이다. 주로 인물의 전기나 행장 등을 쓸 때 요긴한 방법이다. 오늘로 치면 인용법과 예시법에 해당한다.

p268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비문이나 전기를 엮어 일생을 기록할 때는, 앞서 보았던 것처럼 유사나 행장을 정리하는 일이 선행된다. 고인이 남긴 행적을 다양한 일화별로 나열한 것이 유사요 행장이다. 그러고나서 이 행적을 갈래별로 묶는다. 갈래별로 묶을 때는 글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핵심개념이 있어야 한다. 이 사람의 일생에서 이것만은 밝히지 않을 수 없다는 가치를 결정해야 한다. 그 가치는 행적에서 나온다.

p270 다산은 말한다. 글을 쓸 때는 가닥을 잘 잡아야 한다. 적절한 예시와 알맞은 인용은 글의 설득력을 강화한다. 무작정 늘어놓아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글 쓰는 사람이 흥분하면 독자들은 외면한다. 쓰는 사람이 말이 많으면 글에 힘이 빠진다. 조목을 갖춰 실례를 얹어야 글에 힘이 붙는다. 글을 쓰기 전에 먼저 핵심개념을 잡아라. 덮어놓고 가지 말고 갈 길을 알고 가라.

23. 선입견을 배제하고 주장을 펼쳐라_공심공안법(公心公眼法)

p271 공심공안은 공정한 태도로 선입견을 배제한 채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말한다. 잘못된 선입견은 일을 쉬이 그르친다. 억지로 꿰어맞추는 견강부회와 조금도 바꾸려 들지 않는 인순고식이 여기서 생겨난다. 선입견은 잘못된 권위를 맹종하게 하여 비판의식을 말살한다. 왜곡된 편견을 조장하여 오류를 답습하게 한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냉정한 비판정신과 합리적인 판단력이다. 순수하게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p273 경학을 공부하는 까닭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덕을 이루기 위함이다. 경전의 말씀을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아 내 삶 속에 녹아들게 하는 것이 공부다.

p274 공부는 다들 죽어라고 하는데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현 학생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공부를 다들 죽어라고 하는데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어보면 좋은대학 가야 취업이 잘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단다.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교육은 교육이라 이름 불릴만한 자격이 있나?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교육의 의미에 대해 재정의가 필요하다.

p276 다산은 철저히 경전중심주의를 고수함으로써 시비를 비껴갔다.

p277 다산의 이러한 태도는 선배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더 높이 내세운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다산은 자신의 작업이 어떤 선입견도 배제한 공심공안에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따. 오히려 선입견에 붙들려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p280 하지만 수십 년을 궁벽하게 지내면서 장구에만 침잠하여, 오랫동안 상고하고 징험해보니, 옛 주석이라 해서 다 옳은 것이 아니고, 후대의 학자가 새롭게 논한 것이라 하여 다 그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마땅히 허심공관, 즉 마음을 비워 공정하게 살펴 시비의 참됨을 따져야지, 세대의 섢와 연대만을 살펴 따를지 말지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김덕수에게 답함>

p281 다산은 말한다. 선입견을 버려라. 편견은 학문의 독이다. 옳다고 확신하는 것을 객관적인 논거에 바탕해 주장해야지, 막무가내로 우기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 선입견을 버리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거울처럼 비고 저울처럼 공평해야 한다. 권위에 편승하지 마라. 나이로 누르고 서열로 누르면 안 된다. 아랫사람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여라. 패거리지어서 짓밟으면 안 된다.

24. 단계별로 차곡차곡 판단하고 분석하라 _ 층체판석법(層遞判析法)

p282 천하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시비(是非) 즉 옳고 그름의 저울이고, 하나는 이해(利害) 곧 이로움과 해로움의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 가지 큰 등급이 생겨난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이 으뜸이다.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로움을 입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학연에게 답함>

생각에도 단계가 있다. 단도직입도 좋지만 공부에서는 안 된다. 증거를 아끼고 논리를 절제해서 꼭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써먹을 데 써먹어야 한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은 꼭 반대로 한다. 논문을 쓰라고 하면 자기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다 늘어놓는다. 꼭 필요한 말만 하지 않고 저 할 말을 다 한다. 글이 길어질수록 논리는 엉기고, 말이 많아지면서 생각도 뒤죽박죽이 된다. 저만 알고 남을 모르게 된다. 잔뜩 말했는데 하나도 남는 것이 없다.

p286 이렇듯 다산의 저작은 그 목차만 보더라도 생각의 길과 방향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단계를 뒤섞는 법이 절대로 없다. 다루려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먼저 밝히고, 이것이 ‘왜’ 중요한가를 검토한 뒤에,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점검했다. 그러고 나서도 예상외의 상황을 상정하여 만일의 경우까지 대비했다.

p287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것은 의리요 지혜다. 남의 큰 악을 보고 죽일 만한데도 자꾸 살리기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인의예지 네 덕 가운데 의와 지 두 가지를 잃은 것이다. 그러니 어찌 덕이 되겠는가?

나는 한 명이라도 죄 없는 자를 죽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p289 골경신이라는 말이 있다. 고기를 먹다가 입에 걸리는 뼈나 목에 걸리는 생선가시같이, 무슨 일이건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바른 말을 하는 까슬까슬한 신하를 일컫는 말이다.

다산은 골경신이란 말을 ‘충직한 신하’와 동의어로 쓸 수 없다는 전제를 먼저 펼쳤다. 그러고 나서 다산은 그의 전매특허인 이경증경, 피차비대의 방식을 동원해 ‘골경’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세 예문을 제시하고 판석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말했다.

p290 다산의 주장은 이렇다. “골경신은 충신과 동의어가 아니다. 다른 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 목엣가시나 씹히는 뼈쳐럼 께름칙한 적국의 신하를 일컫는 말이다. ‘저자만 없으면 우리가 적국을 뼈 없는 연한 살코기나 가시 없는 생선살처럼 한입에 꿀꺽 집어삼킬 수 있을 텐데’하는, 그런 가시 같은 존재를 가리켜 쓰는 말이 골경신이다. 그러니 자기 나라의 충직한 신하를 두고 골경신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타당한 용법이 아니다.”

p291 다산은 말한다. 덮어놓고 말해서는 안 된다. 통째로는 안 된다. 단계별로 분석해서 낱낱이 파헤쳐라. 층위를 따져 말을 섞지 마라. 목청만 높인다고 설득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많이만 쓴다고 납득되는 것도 아니다. 핵심을 찔러라.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라. 생각의 지도를 정확하게 제시하라.

25. 핵심을 건드려 전체를 움직여라 _ 본의본령법(本意本領法)

p292 본의본령은 작업을 함에 있어 핵심가치를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작업에 바탕이 되는 뜻이 본의이고, 작업의 의미와 의의를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 본령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본의와 본령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애만 쓰고 보람은 없는 헛수고가 되기 쉽다. 아킬레스건을 꽉 잡아야 한다. 핵심가치를 잊으면 안된다.

나의 본의와 본령 : 중학생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행복한 삶이란 생각할 줄 아는 삶이자, 스스로 설계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다. 나라의 미래이자, 인류의 미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다. (이런 것들이 본령이 될 수 있을까?)

p293 본의와 본령은 작업의 이유이자 목적에 해당한다. 이 일을 왜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여기에 따라 작업의 방향이 결정되고, 목표가 정해진다.

p297 본의와 본령이은 무엇인가? 어떤 책 또는 작업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핵심가치다. 그것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내 글과 남의 글을 명확히 갈라 구분하여 표시를 나누고, 조례 또는 의례를 분명히 세우면 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작업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내 첫 책의 핵심가치는 수학을 통해 생각하는 인간이 될 수 있게 도와주주는 것이다. 지금 방금 든 생각이다. 메모중!)

p301 다산은 말한다. 아는 것을 다 자랑하려 들면 본의를 세울 수 없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본령이 드러나지 않는다. 내 글과 남의 글을 뒤섞어도 안 된다. 계통을 세워 알맹이로 채워라. 잡화상처럼 늘어놓기만 하면 못쓴다.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감 없이는 절제할 수 없다. 목표를 정확하게 세워라. 눈높이를 맞춰라.

6강 적용하고 실천하라 _ 실용성을 갖춘 현장적 지식경영

26. 쓸모를 따지고 실용에 바탕하라 _ 강구실용법(講究實用法)

p305 강구실용은 실제에 유용한 공부를 하라는 말이다. 공리공론은 하나마나한 공부다. 세상에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부는 없다. 쓰임새가 없는 공부라면 그런 공부를 해서 무엇하겠는가? 실용을 강구한다는 말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아무리 저 좋아하는 일이라도 목표 없이는 안 된다. 어떤 문제를 밝히거나 해결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디딤돌이 된다. 그 자체로 합목적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p306 인간의 기본도리를 벗어난 공부는 이 세상에 없다. 공부는 왜 하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한다. 무엇이 사람다운 것인가? 인간의 근본도리에 충실한 것이 사람다운 것이다.

p307 나에게서 말미암은 공부가 미루어 남에게까지 확산될 때 비로소 그 학문이 보람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p314 다산은 말한다. 쓸모를 따지는 일에서 공부를 시작하라. 나의 이 공부가 무엇에 소용될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이 공부를 하는지, 이 일을 무엇 때문에 하는지 자주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저 학위를 받기 위해 하는 공부는 해서는 안 된다. 돈만 벌자고 하는 장사로는 돈도 벌지 못한다. 잿밥은 염불을 열심히 외울 때 저절로 생긴다. 잿밥에만 신경쓰면 염불도 안 되고 잿밥도 없다. 끊임없이 본령을 떠올려라. 쓸모를 강구해라.

27. 실제에 적용하여 의미를 밝혀라_채적명리법(採適明理法)

p315 채적명리는 적합한 방법이나 적절한 예시를 채택하여 의미 또는 의의를 밝히는 것이다. 이치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실제에 적용할 수 없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p322 다산은 중국을 여행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다산이 한번 중국에 다녀왔다면 학문이나 사고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나는 이 점을 늘 궁금하게 생각한다. 벽돌 굽는 것에 대한 다산의 생각도 틀림없이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작업은 정조의 절대적인 신뢰 아래 다산이 올린 안에 따라 변동없이 진행되었다.

p326 다산은 여러 글에서 반복하여 합리성과 실용성에 입각한 실사구시의 정신을 강조했다. 공리공담을 내던지고 주어진 상황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역량을 갖추라고 주문했다.

다산은 말한다. 관념만으로는 안 된다. 겉보기에 제아무리 번지르르하고 고상해 보여도 실제에 쓸모가 없으면 쓸 데가 없다. 탁상공론, 공리공담은 우리 모두의 적이요 국가의 해충이다. 상황에 따라 이치를 따져 가장 적절한 것을 가려라. 합리적으로 분별하고, 실용의 잣대로 판단하라.

28. 자료를 참작하여 핵심을 뽑아내라_참작득수법(參酌得髓法)

p327 참작득수는 다양한 자료를 참작하여 정수만을 가려뽑는다는 뜻이다.

모래를 체로 쳐서 정금을 가려내듯, 쇠를 두드려 황금으로 변화시키듯, 있는 것 가운데서 새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p330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곱 가지 정해진 빛깔 외에 다른 색의 염료를 만들어 시험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산은 이를 ‘안동답답’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융통성 없이 변할 줄 모르고 고지식한 안동 양반들의 답답함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p338 다산은 말한다. 꼼꼼히 따지고 폭넓게 검토하라. 실용에 기초하여 문제에 접근하라. 아이디어를 모으고 발상을 바꿔라. 하던 대로 하지 말고 나름대로 하고, 되는 대로 하지 말고 제대로 해라. 무슨 일을 하든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해결책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해결책은 이미 있는 것들 속에 숨어 있다. 엉뚱한 데 가서 기웃거리지 마라.

29. 좋은 것은 가리잖고 취해와서 배워라 _ 득당이취법(得當移取法)

p339 득당이취는 남에게서 좋은 것을 얻어다가 내게로 옮겨오는 것이다. 남의 좋은 점을 가져다가 적용함으로써 나를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남에게 좋다고 내게도 꼭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장보단, 즉 너무 긴 것은 자르고 아주 짧은 것은 보태어 알맞게 가져다 쓰면 내게 큰 유익이 된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남의 장점을 금방 포착하여 내 것으로 만들 줄 안다는 말과 같다.

p340 1년이면 닳아 없어질 비단을 구하느라 100년에도 줄지 않는 은을 저들에게 내주는 것이다.

p343 좋은 것은 무조건 배워올 뿐 자존심을 필요가 없다. 나보다 나은 것은 꼼꼼히 살펴 옳겨와야지, 허세가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우리는 늘 반대로 하니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것이다.

p344 사람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그 기예는 더욱더 정밀하게 된다. 세대가 내려오면 올수록 기예는 점점 더 공교해지기 마련이다. 이는 형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시골사람은 현읍의 기술자만 못하고, 현읍사람은 이름난 성이나 큰 도시의 기교를 따라갈 수가 없다. 성이나 도시의 사람은 또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신식의 절묘한 제도에 미칠 수가 없다.

p349 다산은 말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 뿐 네 것과 내 것은 없다. 부족한 것은 익히고 필요한 것을 배워라. 배우는 자리에서 체면을 따져서는 안 된다. 남의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의 나쁜 것은 과감히 버려라. 남의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그대로는 안 된다.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실상에 맞게 바꿔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있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30. 단계별로 다듬어 최선을 이룩하라_수정윤색법(修正潤色法)

p350 초본이라 한 것은 어째서인가? 초를 잡는다는 것은 수정하고 윤색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식견이 얕고 지혜가 부족하며 경력은 적고 문견은 고루하다. 거처는 궁벽하고 서적은 부족하다. 그러니 비록 성인이 가려뽑는다 해도 잘하는 자를 시켜 수정하고 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수정하고 윤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찌 초가 아니겠는가?

수정윤색은 부족한 것을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어서 완성된 상태로 끌어올리는 것을 말한다. 모든 일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처음 단계에서는 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고, 빼고 보태야 할 내용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이때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서슴없이 고치고 기꺼이 바꾸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번 내 손을 떠나면 많은 사람이 이 정보를 사실로 믿고 활용할 것이 아닌가?

p351 잘 정비한 수레를 훈련된 말에 멍에를 메워, 멍에를 살피고 균형을 맞춘 뒤에도 오히려 왼편에서 붙들고 오른편에서 바입하여 수백 보 앞으로 나가게 하여, 그 조정이 잘 됐는지 시험한 뒤에야 동여매고 내달린다. 임금이 법을 세워 세상을 몰고 가는 것도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이 초본이라고 이름을 붙이 까닭이다. <방례초본서>

p352~353 외로운 천지 사이에 다만 우리 손암(정약전의 호)선생이 있어 나의 지기였는데, 이제 잃고 말았다. (중략)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죽은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다. 아내아 자식도 내 지기가 못 되고, 형제와 집안도 모두 지기가 아니다. 지기가 세상을 떴으니 또한 슬프지 않겠느냐?

p360 다산은 한번 제기된 문제는 절대로 한 차례 논의로 그치는 법이 없었다. 총론을 제시하면 반드시 각론으로 나아갔고, 설명이 미진하면 형식을 바꿔서라도 재론했다. 직설법으로 주장하다가 미진하면 비유를 써서 풀이했다. 실례를 들어 보이고, 예외까지 상정해서 철저하게 논했다. 그래도 앞에서 한 논의가 되풀이되는 법 없이 보완관계를 이루며 하나로 종합되었다. 이 논문을 쓰다가 저 논문의 아이디어를 얻고, 이것이 묶이고 보태져서 하나의 저서로 확대되는 경우라 하겠다.

다산은 말한다. 첫술에 배부른 법은 없다. 작은 문제를 키워서 큰 문제로 발전시켜라. 내게 들어오는 정보를 그냥 흘리면 안 된다. 갈래를 나눠 저장고에 비축하라. 씨앗 하나가 자라서 풍성한 이삭을 맺는다. 스쳐지나가는 생각 하나가 책 한 권으로 자란다. 작은 메모 하나가 수정과 윤색을 반복하는 동안 큰 프로젝트로 변한다 되새김질하며 거듭 음미하라. 실용에 기초해 생각에 날개를 달아라. 그 처음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7강 권위를 딛고 서라 _ 독창성을 추구하는 창의적 지식경영

31. 발상을 뒤집어 깨달음에 도달하라 _ 일반지도법(一反至道法)

p363 선배 가운데 율곡 이이 같은 분은 어버이의 사랑을 받지 못해 여러 해 동안 괴로워했다. 하지만 마침내 한 번 돌이켜 도에 이르렀다. 우리 우담 정시한 선생께서도 세상에서 물리친 바가 되었으나 그 덕이 더욱 발전했다. 성호 이익 선생은 집안에 화를 당하고 나서 이름난 선비가 되었다. 모두를 우뚝하게 수립하여 벼슬길에 있는 고관의 자제들이 능히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너는 또한 일찍이 이를 들어보았느냐?

일반지도는 한 차례 생각을 돌이켜 깨달음에 이른다는 말이다. 자극 없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 창의적인 역량은 발휘되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만 해서는 새로운 성취를 이룰 수가 없다. 생각을 바꾸고 방법을 바꾸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환하게 드러난다. 평범한 것에서 비범한 의미를 이끌어내고, 늘 보던 것에서 처음 보는 것을 끄집어낸다. 역경과 위기에 쉽게 침몰하는 대신 이를 기회로 돌릴 줄 알아야 한다.

p365 동쪽에서 소리치다가 서쪽을 치는 성동격서격으로, 앞에서 뚱딴지같은 말을 잔뜩 늘어놓아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켜놓고, 느닷없이 본질로 찔러들어가는 수법이다. 다산은 기문에서 주로 이런 방식의 글쓰기를 즐겨했다. 상식의 허를 찌르는 의외의 도입으로 독자를 흡입하는 것이다.

p366 정말 취한 사람, 진짜 잠든 사람, 완전히 미친 사람은 취한 것도 잠든 줄도 미친 사실도 알지 못한다. 가짜로 미치고 짐짓 취한 체하는 사람이 자기 입으로 미쳤다고 하고 취했다고 하는 법이다. 이런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그래도 아직은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

p367 장자는 이미 깬 사람이다. 능히 오래 사는 것과 요절하는 것을 같게 보았으니, 이는 환하게 깨달은 자다. 그래서 “꿈꾸는 중에 또 꿈을 꾼다”고 했따.

그럴진대 스스로 돌이켜 본 것을 살펴 ‘또렷하다’고 하고 ‘깨었다’고 하며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모두 술에 절고 깊이 잠들었다는 증거일 뿐이다. 능히 스스로 취몽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혹 맨정신으로 깨달을 기미가 있는 자인 셈이다.

p368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온다. 그러니 괴로움이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온다. 따라서 즐거움이란 괴로움의 씨앗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낳는 것은 동정이나 음양이 서로 뿌리가 되는 것과 같다. 통달한 사람은 그러한 까닭을 아는지라. 깃들어 숨어 있는 것을 살피고 성하고 쇠하는 이치를 헤아려, 내 마음이 상황에 응하는 것을 항상 뭇사람이 하는 것과 반대로 한다. 그런 까닭에 두 가지가 그 취향을 나누고 그 기세를 죽이게 된다. 이는 마치 경수창의 상평범이 값이 싸면 비싸게 사들이고, 비싸면 싸게 팔아서 언제나 값이 일정하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이 괴로움과 즐거움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우후 이중협을 증별하는 시첩의 서문>

p369 곡물의 가격을 고르게 하는 상평법에 견주어, 괴로움과 즐거움의 평균치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의 처신이라고 했다.

p371 다산은 김매순에게 준 편지에서 명철보신의 본래 의미를 문맥에 따라 정확히 분석했따. ‘명(明)’ 즉 현명하다는 말은, 이 일이 내게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를 잘 판단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잘 판단한다는 뜻이다. ‘철(哲)’ 곧 밝다는 말은,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한다는 뜻이지, 눈치를 잘 봐 손해날 것 같으면 입을 다물고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말한다는 뜻이 아니다. ‘보(保)’ 또한 뛰어난 인재를 발탁해서 내 부족한 점을 붙들어세운다는 뜻이지, 내 한 몸 온전히 보전한다는 의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p372~373 다산은 말한다. 상식과 타성을 걷어내라. 나만의 눈으로 보아라. 하던 대로 하지 말고 새롭게 하라. 관습에 전 타성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생각의 각질을 걷어내고 나만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인순고식을 버려라. 듣고 나면 당연한데 듣기 전에는 미처 그런 줄 몰랐던 것이 차으이적인 것이다. 들을 때는 그럴듯한데 듣고 나면 더 혼란스러운 것은 괴상한 것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깨달음은 평범한 것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안목을 길러라.

 

32. 권위를 극복하여 주체를 확립하라_불포견발법(不抛堅拔法)

p374 불포견발은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나아가는 것이다. 옳다는 확신이 서면 어떤 권위에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힘있게 주장하고 강단 있게 밀어붙여 자신의 입장을 세운다.

턱도 없이 목청만 높여서도 안 되겠지만, 공부의 길에서 끝내 제 목소리 한번 낼 수 없다면 공부하는 보람이 없게 된다.

p382 공부는 의문에서 시작되고, 의문이 있어야 질문이 생긴다. 질문을 위한 질문을 억지로 만드는 것은 문제지만, 자기 생각 없이 그저 경전의 가르침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러자면 용기가 필요하다. 다산은 공부하는 사람이 반드시 지녀야 할 미덕으로 ‘용(勇)’을 꼽았다.

p383 용(勇)이란 삼덕(三德)의 하나다. 성인이 개물성무하고 천지를 두루 다스림은 모두 용이 하는 바다. “순(舜)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바가 또한 이와 같으면 된다”는 것이 용이다. 경제의 학문을 하고자 하면 “주공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바가 또한 이와 같으면 된다”고 하고, 뛰어난 문장가가 되고자 하면 “유향과 한유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바가 이와 같으면 된다”고 한다. 서예의 명가가 되고 싶으면 “왕희지와 왕헌지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하고,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도주공과 의돈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한다. 무릇 한 가지 소원이 있으면 한 사람을 목표로 정해 반드시 그와 나란해지는 것을 기약한 뒤에 그만두어야 하니, 이것이 용의 덕이 하는 바다.

지(智) 인(仁) 용(勇) 삼덕 가운데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그는 용(勇)을 꼽았다. 목표를 정해 그와 꼭 같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몰두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고 적당히 현실논리에 타협하고 남들 하는 대로 답습해서는 결국 큰 성취를 이룰 수 없게 된다.

다산은 말한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라. 권위에 압도되어 위축되어서도 안 된다. 굳게 붙들어 뿌리를 뽑아라. 그저 주저 물러 앉아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시키는 대로 하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만 해서는 끝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마음이 굳세어야 외물에 휘둘리지 않는다. 들은 것만 고집하여 바꾸지 않아서는 발전이 없다. 입장을 세우고 견해를 가져라. 목표를 정해서 그를 뛰어넘을 때까지 정진하고 정진하라.

33. 도탑고도 엄정하게 관점을 정립하라_독후엄정법(篤厚嚴正法)

p385 군자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높이 두며, 묵묵히 바로 앉아 공손하기가 마치 흙으로 빚은 사람 같고, 언론은 도탑고도 엄정해야 한다. 이와 같은 뒤에야 능히 뭇사람을 위엄으로 복종시킬 수 있고, 풍성이 퍼져 마침내 오래 멀리까지 이르게 된다.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

독후엄정은 도탑고도 엄정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말의 힘은 화려한 수사나 능수능란한 임기응변에서 나오지 않는다. 재치만으로 한두 번 통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힘있는 제 목소리를 내려면 바탕공부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말의 무게는 겉꾸밈만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듣는 이를 압도하는 묵중함은 평소에 쌓아온 온축의 힘에서 비롯된다.

p386 천하에는 어리석은 자는 많고 통달한 사람은 적다. 누가 보기 쉬운 위의(威儀)를 버려두고 별도로 알기 어려운 의리를 구하려 들겠느냐? 높고 오묘한 학문은 알아주는 사람이 더더욱 적다. 비록 다시 그 도가 주공과 공자를 잇고, 문장이 양웅과 유향을 능가한다고 해도 또한 알아줌을 입지 못할 것이다.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

다산은 독후엄정의 체득을 위해 자식들에게 정좌(靜坐)공부를 통해 근기를 수립하라고 당부했다. 제 한 몸도 옳게 추스르지 못하면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날뛰는 무리를 다산은 깊이 경멸했다. 한편 엄정한 자기 기준을 세운 뒤에는 이러쿵저러쿵하는 세상의 뜬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갈 것을 요구했다.

p387 걸핏하면 남을 걸고넘어지고, 바른 행동을 보고도 본받으려 하기는커녕 색안경을 끼고 삐닥하게 본다. 이런 세상에서 학문을 닦아 제 길을 가는 것은 쉽게 비방을 부를 뿐 보람은 적다.

하지만 군자는 바탕을 다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남의 이목을 꺼리지 말고 그 길을 걸어야 옳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겠지?’ ‘이 일이 옳은 일임은 확실하지만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싫다. 그러니 그저 튀지 말고 가만있는 것이 좋겠다.’ 이런 것은 선비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독후엄정과는 거리가 멀다. 저 소인배들의 이목을 꺼려 그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바른 길을 버리고 악한 길을 뒤따른대서야 어찌 사람의 구실을 할 수 있겠는가?

p388 조선 후기의 사회는 효자와 열녀 신드롬에 집착했다. 효자와 열녀가 강조되는 세상은 실은 효와 열이 땅에 떨어진 세상이다. 충신을 표창하는 세상에는 충신이 없다. 효자비를 받기 위해 가문이 총출동해서 가짜 효자를 만들고, 열녀문을 받자고 과부가 된 며느리의 죽음을 강요하는 일이 당시에는 비일비재했다.

공익 광고.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는 어떤 현상이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이미 이 시대에 땅에 떨어진 가치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생각난다. 현대는 어떤 신드롬에 집착하고 있는가? 우리는 성공, 돈에 대해 집착했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요즘은 기여, 행복, 가치 등을 내세우며 새로운 신드롬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시대적 필요가 좋은 가치 있을수록 인간의 삶의 질도 높아지는 것 같다.

p389 왜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어야 하는가? 아내가 죽었을 때 슬픔을 못 이겨 따라 죽은 남편은 어째서 하나도 없는가? 아내가 죽으면 무덤에 풀이 마르기도 전에 옷 갈아입듯 새 아내를 얻으면서, 남편을 잃은 아내는 왜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반강제로 죽음의 길로 내몰려야 하는가? 어느 누구도 이런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p396 다산은 말한다. 공부의 길에서는 옳고 그름이 있을 뿐, 좋고 나쁨은 없다. 도탑게 살피고 엄정하게 따져서 옳으면 행하고 그르면 내칠 뿐이다.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못 본 듯이 지나치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잣대를 똑바로 들이대서 내 목소리를 올바로 내야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 이리저리 눈치보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 좋다는 소리나 들으려거든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34. 다른 것에 비추어 시비를 판별하라_대조변백법(對照辨白法)

p397 대조변백은 이것과 저것을 대조하고 꼼꼼히 살펴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개념이 엉기고 논리가 복잡해지면 의미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은 언제나 이것과 저것의 사이에 있다. 얻고 잃음은 여기와 저기의 중간에 있다. 세상에는 완전히 옳은 것도 없고 다 틀린 것도 없다. 옳은 것 같지만 틀린것이 있고, 틀린 것 같은데 맞는 것도 있다. 누가 봐도 옳고, 언제 봐도 틀린 것은 별로 없다. 항상 ‘사이’와 ‘중간’이 문제다. 눈앞의 사물은 자꾸만 우리 눈을 현혹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한다. 겉만 보아서는 모른다. 현상의 안쪽에 숨은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이 필요하다.

p398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 같은 병이라도 증세는 같지가 않다. 이 사람에게 약이 되지만 저 사람에게는 독이 되는 약재도 있고, 이 병에는 특효가 있어도 비슷한 다른 증세에 쓰면 큰일나는 약재도 있다. 그러니 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어느 병에는 어떤 약방을 써야 한다는 지식이 아니라, 약재 하나하나의 성질과 효능을 익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병자의 체질이나 병세의 완급에 맞춰 강약을 조절할 수가 있다. 누구에게나 잘 듣는 약방은 없다. 어떤 병이든 다 통하는 처방도 없다.

이 부분! 나는 선생님. 학생들마다 체질이 다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뭘까? 선생님으로써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뭘까? 약재 하나하나의 성질과 효능을 익히는 것. 내게 약재는 무엇일까? 상담법? 수학 잘하는 방법? 고민해볼 문제!!

p400 문제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유용한 방법은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사물을 끌어들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다산은 논설적인 글쓰기에서 종종 이 방법을 활용했다.

p408 다산은 말한다. 주장을 세우려거든 근거를 찾아라. 모든 사실이 다 진실은 아니다. 덮어놓고 앞선 기록을 믿어서는 안 된다. 행간을 살펴 현상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독창성과 창의성은 객관성의 바탕 위에서만 빛난다. 앞뒤를 따지고 진위를 가려서 객관적인 진실을 밝혀라. 의미는 이것과 저것의 ‘사이’, 여기와 저기의 ‘중간’에 있다. 갈래를 나누고 견주고 가늠해서, 현상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고, 문제의 핵심을 장악하라

35. 속셈 없이 공평하게 진실을 추구하라_허명공평범(虛明公平法)

p409 허명공평은 마음을 텅 비워 다른 속셈이나 전제를 깔지 않고 과제를 탐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가설을 세워 논거로 입증하는 것은 공부의 당연한 절차요 과정이다.

p409~410 다산은 학문에 신성불가침은 없다고 생각했다. 경전의 기본 텍스트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검토하고 재단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당대의 학자들에게 대단히 거북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다산이 중시한 것은 텍스트의 진실일 뿐, 선학의 견해에 다시 주석을 다는 것이 아니었다. 텍스트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읽어서 선명하게 납득되지 않을 때 누가 보더라도 억지스럽지 않게 맥락을 소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p411 여기저기서 다 사람 좋다는 말을 들으면서 세울 수 있는 큰 뜻은 없다. 세상이 다 박잡하다고 내가 박잡한 것의 변명을 삼을 수는 없다. 세상이 한통속으로 작당해서 박잡함으로 나아간대도 덩달아 휩쓸릴 것이 아니라 더 연찬하고 더 노력해서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부는 맹목적인 추종과 타협을 거부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p413 다산은 퇴계와 율곡이 사용하고 있는 이기(理氣)의 원관념이 애초에 달랐기 때문에 생긴 오해일 뿐, 두 분의 견해가 본질에서 다른 것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즉 퇴계의 이기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가리키는 협의의 개념이었고, 율곡의 이기는 사물의 근본법칙인 형이상과 사물의 형질인 형이하를 가리키는 광의의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p418~419 군자의 용맹은 오히려 수약(守約)에 있다. 마음을 비우고 입을 다물고 고요 속에 침잠하면 눈이 밝아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리하여 외물이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역경이 내 정신을 침식하지 못한다. 맑은 정신으로 바라보니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의 분간이 선명해진다. 바꿔야 할 것을 지키려 들거나 지켜야 할 것을 바꾸려 드는 일도 없게 된다.

다산은 말한다. 허명공평의 공부는 간결함에서 나온다. 마음을 텅 비워야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집착을 버려야 객관적인 시선을 얻을 수 있다. 소리지르지 마라. 목청만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편견을 버리고, 선입견을 버리고, 추종과 타협을 거부하라. 텅 빈 마음을 돌아 나와 긴 울림을 주는 진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8강 과정을 단축하라 _ 효율성을 강화하는 집체적 지식경영

36. 역할을 분답하여 효율성을 확대하라_분수득의법(分授得宜法)

p423 분수득의는 작업을 진행할 때 역량에 따라 역할을 나누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p425 팀워크의 힘은 리더가 없을 때 단박에 드러난다. 위기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리더가 없을 때 비틀거리는 조직은 큰 일을 해낼 수가 없다. 작은 위기에도 갈팡질팡해서는 큰 시련을 견디지 못한다. 효율적인 협동을 통해 능률을 극대화해야 한다. 리더 없이도 저절로 굴러갈 수 있도록 팀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그 과정에서 리더십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

p425 훌륭한 리더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들의 최대치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개성을 무시하고 평준화시키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부분의 합이 늘 전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이 되려면 역량에 따라 안배해 협동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p426~427 요컨대 이것저것 다 잘하려 들지 말고 한 우물을 파는 전문가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이것저것 다 잘할 수는 없다. 어느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여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공연히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해서는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다.

p431 제자들은 역량에 따라 카드작업하는 사람, 베껴쓰는 사람, 교정보는 사람, 제본하는 사람 등으로 역할을 나눠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작업목표가 정해지면 가장 먼저 관련정보를 수집했다. 정보가 모이면 각각의 정보를 하나하나 교차대조했다. 정보의 우열과 정오를 판단하고, 스승이 내려준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지침에 따라 분량을 나눠 작업했다 일단 이들의 1차 작업이 끝나면 다산이 이를 총괄하여 전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잘못된 곳을 수정,검토했다.

p432 다산은 말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혼자 다 하려 들지 마라. 능률은 오르지 않고 힘만 빠진다. 다만 집체작업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구성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저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골라 믿고 맡겨라. 중간중간 점검하고 체크하면서 부족한 점을 채우고 넘치는 것을 덜어내라. 그렇게 해서 한 번 갖춰진 팀워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확대재생산된다. 가속도가 붙는다.

37. 목표량을 정해놓고 그대로 실천하라 _ 정과실천법(定課實踐法)

p433 정과실천은 매일 일정한 목표를 세워놓고 계획에 따라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안일을 기뻐한다. 공부도 규칙적인 리듬을 갖지 못하면 제풀에 나가떨어지기 쉽다. 전체의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소용되는 날짜를 계산한 후, 하루에 할 수 있는 작업량을 결정하는 것까지가 정과다. 문제는 실천인데, 아이들의 방학중 생활계획표처럼 세워만 놓고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p435 옛 선비들은 이렇게 한겨울에는 산사나 궁벽한 암자로 찾아들어가 독서로 삼동을 났다. 동접의 벗들과 짝을 지어 서로 독려하며 공부하기도 했다.

p440 다산의 방대호한한 저술은 하루하루 정과를 실천하고, 제자들의 집체작업에 의한 성실한 뒷받침이 있었던 결과이지, 다산 자신의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p441 “서각 위에서 매일 새벽 맨머리로 고문 몇 쪽을 베껴씁니다. 참으로 즐거움은 쓴 열매에서 나오는 법이지요”라고 적었다.

물레방아가 빻을 곡식이 있건 없건 계속 돌아가며 방아질을 하듯이, 교서관에서 일할 때나 집에서 수리 때나 끊임없이 책을 펼쳐 필요한 대목을 카드작업하는 다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p444 다산은 말한다. 목표를 세워 전체 규모를 장악해야 한다. 목표는 하루단위로 쪼개 확실하게 실천해라. 달성하지 못할 목표는 세워서는 안 된다. 작업의 방향을 정하고, 전체 작업량을 예상한 후, 가능한 일자를 가늠하면 하루에 해야 할 일의 분량이 나온다. 이것을 흔들림 없이 밀고나가야 한다. 차질 없이 밀어붙여야 한다.

38. 생각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단련하라_포름부절법(庖廩不絶法)

p445 포름부절은 계속되는 토른을 통해 문제를 심화하고 성과를 함꼐 나누는 것이다. 포름은 고기와 쌀을 가리킨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양분을 여기서 얻는다. 밥과 고기를 끊이지 않고 먹어야 신체가 건강해진다. 학문의 길에서 훌륭한 토론자의 지적과 일깨움은 정신의 고기요 쌀이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거듭하는 동안 문제가 더욱 선명해지고, 정리가 요령을 얻으며, 논리에 힘이 붙는다.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소통을 거부하는 것은 학문의 일과는 관련이 없다. 귀를 막고 제소리만 들어서는 곤란하다.

p452 다산이 큰 학문을 이룩할 수 있었던 데는 이렇게 열린 생각으로 함께 토론하고 기꺼이 비판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p454 다산의 위대성은 주변의 이런 숨은 조력자나 비판자들에 의해 더욱 굳건해질 수 있었다. 다산의 이런 충고는 또 어떤가?

세상의 문인이나 학자들은 혹 한 글자나 한 구절이라도 남에게 지적을 당하면 속으로 그 잘못을 알면서도 잘못을 꾸미고 그릇된 것을 수식하여 굽히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는 얼굴일 벌게지고 사납게 마음속에 품어두었다가 마침내 해치거나 보복하는 자까지 있다. 어찌 여기에서 보고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어찌 문자만 그러리요. 말하고 의논하고 일을 베푸는 사이에서도 더욱 이와 같이 근심이 있으니, 마땅히 생각하고 살펴서 이 같은 병통을 제거하기에 힘써야 한다. 진실로 바른 것을 깨달으면 그 자리에서 돌이켜 고쳐 기쁘게 선을 따라야만 꼴불견의 소인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바람을 따라 잘못을 기꺼이 고치는 데서 비로소 발전과 성장의 기틀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다산은 말한다.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남에게 비판을 요구하라. 작업의 효율을 높이려면 중간중간 방향을 점검하라. 다른 사람의 의견에 비춰볼 때 안 보이던 문제들이 드러나고, 토론의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분명해진다. 정당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고, 확신이 서면 끝까지 물러서서는 안 된다. 매섭게 비판해도 인간에 대한 애정마저 망각하면 안 된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여럿이 낫다. 남의 말에 귀를 막고 있으면 발전은 없다.

39. 동시에 몇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하라_어망득홍법(魚網得鴻法)

p455 만약 규모와 절목 외에 뽑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따로 한 책을 갖추어 놓고 얻는 대로 적어나가야 바야흐로 힘을 얻을 곳이 있게 된다. 물고기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리면, 어찌 버리겠느냐? <학유에게 부침>

어망득홍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쳐둔 그물에 기러기가 걸린다는 말이다. 공부를 하다 보면 생각의 촉수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마련이다. 나중에는, 다산식으로 말하면 추수 끝난 들판에 여기저기 이삭이 떨어져 있어, 이루 다 주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이때 하고 있던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새로운 생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별도의 공책에다가 끊임없이 초록하고 메모해야 한다. 내 눈을 거쳐간 정보들을 얼마나 잘 갈무리해두었다가 어떻게 적재적소에 요긴하게 활용하느냐가 학문의 길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관건이다.

p457 다산은 <<상례사전>>을 엮으면서 고대 예법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번번이 난관에 부딪혔다. 마땅히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기>>를 꼼꼼히 연구했ㄷ. 잘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다른 문헌을 뒤져 관련자료를 채집했다. 경전으로 경전의 내용을 증명하는 이경증경, 이것과 저것을 비교, 대조하는 이차비대의 방식으로 하나하나 샅샅이 검토해나갔다.

비유컨대 기기(奇器)나 법기(法器)가 기아(機牙)를 한번 치면 온갖 기묘한 것이 일제히 드러나지만, 바꿀 수 없는 진실한 이치는 그 속에 깃들어 있는 것과 같아서 진실로 즐거워할 만하였다 .

기아(機牙)가 맞물린 기기(奇器)의 손잡이를 돌리면 동력이 차례로 전해져서 눈앞에 펼쳐지는 갑작스러운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처음에는 별 의미 없이 메모해둔 단편적인 카드였는데, 이것이 다른 언급과 맞물리면서 갑자기 막혔던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기막힌 실마리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이런 멋진 비유로 설명했다.

p460 공부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에 대해 앞선 연구가 많으면 많다고 투덜대고, 없으면 없다고 한숨 쉰다. 많으면 더는 새로 연구할 것이 없을 것만 같고, 없으면 막상 어이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할 수 있는 연구가 없고 돈 벌 만한 장사가 없다. 모든 자료는 방향과 시각을 바꿔 보면 모두 새롭다. 어느 것이고 전인미답의 경지 아닌 것이 없다. 남들이 추수하고 간 논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고, 별것 아니라고 내버려둔 자료에서 가공하지 않은 원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빈틈을 헤집어 새로운 시각을 찾아내고, 남들이 보고도 못 본 사실을 탐색해낼 수 있어야 한다. 남들하는 대로 하고, 남이 가는 길로만 가서는 큰 성취를 이룰 수 없다.

p461 열흘쯤에 한 번씩 집안에 쌓여 있는 서찰을 점검하여 번잡스럽거나 남의 눈에 걸릴만한 것이 있거든 하나하나 가려내어, 심한 것은 불에 태워버리고, 덜한 것은 노를 꼬고, 그 다음 것은 찢어진 벽을 바르거나 책표지로 만들어, 정신을 산뜻하게 해야 한다. <학유에게 노자 삼아 준 가계>

p462 궁리에는 실마리가 많습니다. 궁리하는 일이 간혹 얽히고설키고 단단히 뭉쳐, 힘으로 찾아 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나, 혹 내 성품이 우연히 이에 대해 어두워 억지로 밝혀서 타파하기 어려울 경우가 있지요. 이럴 때는 마땅히 이 한 가지 일을 놓아두고 따로 다른 일에 나아가 궁구하십시오. 이처럼 이리저리 궁구하고 오래도록 깊이 살피면 마음이 저절로 밝아져서 의리의 실지가 점차 눈앞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때 다시 지난번에 궁구하다가 얻지 못한 것을 향해 생각을 일으켜 꼼꼼히 생각하고 미루어 살펴보아, 이미 궁구하여 얻은 이치와 더불어 맞춰보고 비추어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앞서 궁구하지 못했던 것까지 한꺼번에 서로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궁리의 활법입니다. (이황, <이숙헌에게 답한별지>)

퇴계는 어떤 문제에 대해 궁리하다가 생각이 막히면 그 자리에서 끝장 볼 생각을 하지 말고, 그 문제를 잠시 옆으로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문제에 집중하여 잊어버리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살펴보면 어느새 문제가 해결되어 있기 쉬운데, 이것이 바로 궁리의 활법이라고 했다.

p465 다산은 말한다. 정리는 체계적으로, 작업은 능률적으로 하라. 시스템만 갖추어지면 동시다발적인 작업도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초서하고 쉬지 말고 정리하라. 작업의 목표를 수시로 점검하고, 계속해서 효율성을 제고하라.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정보를 장악해야 한다. 자료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료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 한다.

40. 조례를 먼저 정해 성격을 규정하라 _ 조례최중법(條例最重法)

p466 조례최중은 일을 진행할 때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의 성격과 특성을 명확히 파악해 거기에 맞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중략) 조례에는 이 작업을 어떤 쓰임을 염두에 두고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포함되어야 한다.

p467 학문의 종지(宗旨)는 먼저 큰 줄거리를 결정한 뒤에 저술해야 쓸모가 있게 됩니다.

<중씨께 올림>

p474 다산은 독서든 저술이든 전체를 장악하는 힘을 강조했다. 부분이나 지엽말단에 얽매여 큰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곡산부사로 부임하자마자 침기부 종횡표를 작성해 고을의 전체 실정을 한 손아귀에 장악한 것이 그 좋은 예다.

p475 한편 큰 개념의 얼개가 완성되면 세부의 지침을 작성했다.

p477 다산은 말한다. 작업에 앞서 반드시 밑그림을 그려라. 전체 설계도면을 갖고 얼개를 짠 후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지금하는 작업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 하는 것인지 꼼꼼히 점검하라. 이때 질문은 단순할수록 좋다. 그래야 공격목표가 명확해진다. 그 다음은 이 목표를 공략하기 위한 세부의 구성단계다. 이것은 작업 때마다 달라지므로 일괄해서 적용하면 안 된다. 통변과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처음에 터를 잘 다져놓고 출발하면 진행이 빠르다.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하면 중반 이후에 뒤죽박죽되어 마침내는 엉망진창이 된다.

9강 정취를 깃들여라 _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인간적 지식경영

41. 정성을 뜻으로 세워 마음을 다잡아라 _ 성의병심법(誠意秉心法)

p481 성의병심은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다잡아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정성이 없이는 안 된다. 요행으로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성의가 없으면 그 성공은 곧 그를 교만에 빠뜨려 좌절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정성만 가지고도 안 된다. 마음을 확고하게 붙들어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설렁설렁 건들건들 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오로지 마음을 다잡아 매진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p482 내가 황상에게 문사를 공부하라고 했따. 그는 쭈뼛쭈뼛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꽉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진단다.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당시 나는 동천여사에 머물고 있었다.

다산의 문집에는 없고, 황상의 문집인 <<치원유고>>에만 실려 있다.

p484 인생에서 귀하기는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일세.

p491 열다섯 살 소년으로 처음 만난 스승을 쉰을 눈앞에 둔 중늙은이가 되어 다시 만났다. 삭정이처럼 여윈 채 목숨이 사위어가는 스승에게 절을 올리는데 굵은 회한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스승도 반가워서 그 투박한 손을 잡고 같이 울었다. 며칠간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 작별을 고할 때 스승은 혼미한 중에도 제자의 손에 접부채와 피리와 먹을 선물로 들려주었다. 새로 구한 운서도 주었다. 시공부에 참고하라는 뜻이었다. 사제가 서로 애타게 그리다가 만나고 영결하는 이 장면은 생각맨 해도 눈물이 난다.

p492 내가 이때 열다섯살이었다. 당시는 어려서 관례도 치르지 않았었다. 스승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겨, 감히 잃을까 염려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61년 동안 독서를 그만두고 쟁기를 잡고 있을 때에도 마음에 늘 품고 있었다. 지금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글 속에서 노닐고 있다. 비록 이룩한 것은 없다 하나, 구멍을 뚫고 막힌 것을 툭 터지게 함을 삼가 지켰다고 말할 만하니, 또한 능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라는 세 글자를 받들어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나이가 일흔다섯이 넘었으니 주어진 날이 많지 않다. 어찌 제멋대로 내달려 도를 어지럽힐 수 있으랴. 지금 이후로도 스승께서 주신 가르침을 잊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고, 자식들에게도 저버림 없이 행하게 할 것이다. 이에 임술기를 적는다. (황상, <임술기> <<치원유고>>)

p495 다산은 말한다. 부지런히 노력해라. 성심으로 노력해라. 복사뼈가 세 번 구멍나고 벼루가 여러 개 밑창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라. 공부해서 무엇에 쓰겠느냐고 묻지 마라. 공부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 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책을 안 읽고 무슨 일을 하겠느냐? 백 년도 못 되는 인생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다 간 보람을 어디서 찾겠느냐?

42. 아름다운 경관 속에 성품을 길러라 _ 득승양성법(得勝養性法)

p496 득승양성은 아름다운 풍광 속에 노닐며 성품을 기르는 것이다. 긴장이 있으면 이완도 있어야 한다. 뻣뻣하게 굳어만 있으면 부러진다. 부드럽게 풀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경치 속에 뜻 맞는 사람들과 노닐며 성품을 기른다. 퍼내기만 한 마음속 샘물이 다시 차오르도록.

p499 멍청한 인간들은 기차가 떠난 다음에야 그것이 기회였던 줄을 깨닫는다. 빗방울에 옷을 적실 각오 없이는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볼 수가 없다. 비가 그친 뒤에 출발하면 늦는다. 비가 오기 전에, 혹은 비를 맞으며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최고의 세검정을 만끽할 수 있다 .

“깨어 있어라. 맥락을 넘겨짚는 안목을 길러라. 떠난 기차는 붙들 수가 없고, 가버린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뒤늦게 헐레벌떡 달려오면 좋은 구경도 못하고 웃음거리만 된다.”

p503 가다가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면 함께 탄 세악에게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뱃사공이 밥을 짓는 틈에는 작은 배에 악공들을 태우고 섬사이를 주유했다. 화전을 갈던 백성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잠시 일손을 놓고 구경했다. 마을의 부로들이 어진 원님을 위해 절벽 위에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참으로 여민동락의 아름답고 흐뭇한 광경이었다.

p504 ‘문리가 터진다’는 말은 어려운 글을 줄줄 읽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사물의 행간을 읽고 맥락을 소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천지 만물이 모두 책이다. 이 살아 생동하는 텍스트를 읽지 못하고, 고작 벌레먹은 옛 책을 외우는 것만 독서로 여긴대서야 공부의 보람이 참 무색하다.

하늘은 1년을 한 악장으로 삼는다. 처음에는 싹트고 번성하며 곱고도 어여뻐 온갖 꽃이 향기롭다. 마칠 때가 되면 곱게 물들이고 단장한 듯 색칠하여 붉은색과 노란색, 자줏빛과 초록빛을 띤다. 너울너울 어지러운 빛이 사람의 눈에 환하게 비친다. 그러고 나서는 거둬들여 이를 간직한다. 그 능함을 드러내고 그 묘함을 빛내려는 까닭이다. 만약 가을바람이 한 차례 불어오자 쓸쓸해져서 다시 떨쳐 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텅 비어 떨어진다면, 그래도 이것을 악장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백련사에서 노닐면서 단풍잎을 구경하고 지은 시의 서>

p507 다산은 말한다.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성품을 기르고, 자연과 마주해서 마음을 닦아라. 조이기만 하고 풀 줄 모르면 마침내는 부러진다. 이완이 있어야 긴장할 수 있다. 늘 눌려만 있으면 용수철은 튀오오를 힘을 잃는다. 책만 책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다 책이다. 툭 트인 생각, 걸림 없는 마음은 자연 속에만 얻을 수 있다.

43. 나날의 일상 속에 운치를 깃들여라 _ 일상득취법(日常得趣法)

p508 가버린 것은 쫓을 수가 없고, 장차 올 것은 기약할 수가 없다. 그러니 천하에 지금 누리고 있는 지경보다 즐거운 것은 없는 법이다. <어사재기>

p508 일상득취는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운치를 찾아 누린다는 말이다. 의미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고 만드는 것이다. 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내 곁에 있다. 탐욕과 운치는 서로 인연이 없다. 재물이 많다고 운치가 따르지도 않는다.

p516 산살림 일이 없어 번잡하지 않으니

주리고 병들어도 시냇가 지켜 산다.

소옹의 역 평을 내다 혼자 가만 웃어보고

높은 소리 노래 대신 도연명 시 낭독한다.

뜨락에 달이 떠서 밤 깊어 산보하니

바람 일자 저 멀리 바다물결 보이누나.

부끄럽다. 저서가 300권이라 하니

너무 많다, 군자는 많아서는 안 되느니.

p520 다산은 말한다. 일상의 공간에 마음을 쏟아라. 굳이 먼 데를 기웃거리지 마라. 명승지를 찾아다닐 것도 없다. 내가 사는 공간에 정성을 쏟아 그곳에서 일상의 기쁨을 만끽해라. 생활 속에 운치를 깃들이는 일, 그를 통해 삶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은, 몸은 비록 티끌세상에 묶여 있어도 마음은 훨훨 자유로운 경계 속에 노닐게 하는 일이다.

44. 한 마디 말에도 깨달음을 드러내라 _ 담화시기법(談話視機法)

p521 담화시기는 일상의 대화나 주고받는 글 속에서 번쩍이는 깨달음을 드러내 보인다는 말이다. 깨달음은 먼 데 있지 않다. 바로 내 곁에 가까이 있다. 듣고 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데 막상 찾으려 하면 숨어버린다. 문심혜두가 꽉 막힌 까닭이다. 툭 트인 정신은 아무 걸림이 없다. 듣고 보고 말하는 것 모두가 도 아닌 것이 없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촌철살인이다.

p522 한 차례 배물러 살이 찌고, 한 번 굶어 수척한 것을 일러 천한 짐승이라 한다. 안목이 짧은 사람은 오늘 뜻 같지 않은 일이 있으면 낙담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고, 내일 뜻에 맞는 일이 있게 되면 생글거리며 얼굴을 편다. 일체의 근심과 기쁨, 즐거움과 분노,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모두 아침저녁으로 변한다. 달관한 사람이 이를 보면 비웃지 않겠느냐? <학유에게 노자 삼아 준 가계>

아침에 일찍 볕을 받는 곳은 저녁때 그늘이 먼저 든다. 일찍 피는 꽃은 빨리 지는 법이 아니냐. 풍자처럼 돌고 도는 것이 운명이다. 현재의 상황에 너무 낙담하지 마라. 사내는 큰마음을 지녀야 한다. 가을 매가 창공을 박차고 나는 듯한 기상을 품어야 한다.

p523 맹자는 “대체를 기르는 사람은 대인이 되지만, 소체를 기르는 사람은 소인이 되어 금수에 가깝게 된다”고 했다. 만약 생각이 온통 등 따습고 배부른 데만 가 있어 편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친다면 몸뚱이가 식기도 전에 잉름이 먼저 스러질 것이다. 이는 짐승일 뿐이다. 짐승이 되고 싶은가? <윤혜관을 위해 준 말>

p527 땅에 묻혀 흙밥이 되고 나면 그뿐인 인생이 무엇을 그리 영위하고 작위하느라 숨돌릴 새 없이 바쁘게만 살았던가? 무덤 속 주인과의 독백체 대화는 잔잔하면서도 긴 울림을 남긴다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에서는 재물을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을 알려준다. 도둑에게 빼앗길 염려도, 불에 타버릴 걱정도, 소와 말을 이용해 운반하는 수고도 필요없는 기막힌 방법이다. 그런데도 천년 뒤까지 아름다운 명성이 남는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단단히 잡으려 들면 들수록 더 미끄럽게 빠져나가니, 재물이란 미꾸라지다.”

p529 어느 날 문득 앉았다가 한참 꼬인 인생길을 돌아보았던 모양이다. 뜻 같기만 한 삶이 어디 있을까 싶어 하나하나 꼽아보다가 혼자 픽 웃고 말았다. 전화위복이 되기도 하고, 차면 기울기도 하며, 새옹지마 같기도 하고 일장춘몽 같기도 한 인생은 저마다 그렇게 공평하게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p531 다산은 말한다. 그저 보아넘기지 말고 이치로 따져 음미하라. 가슴속에 금강석보다 비차는 보석을 품어라. 금세 스러질 그깟 재물 말고, 변치 않을 등불이 될 말씀을 세워라. 문심혜두를 활짝 열어 촌철살인의 정신을 길러라. 흐물흐물 녹고 말 육신의 쾌락 말고, 하얗게 정신의 뼈대를 세워라.

45. 속된 일을 하더라도 의미를 부여하라_속중득운법(俗中得韻法)

p532 속된 일을 하더라도 맑은 운치를 얻는 것은 모름지기 언제나 이것을 예로 삼도록 해라 <학유에게 부침>

p532 속중득운은 학문 외적인 일에 있어서도 공부의 방법을 미루어 속되지 않은 격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p533 부모봉양도 도외시하고 온 집안 식구를 괴롭히며,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도 갖추지 못하면서 저만 좋자고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p534 클래식음악이 좋지만 유행가도 필요하다. 장중한 아악도 필요하지만 경쾌한 속악도 없을 수 없다. 경학공부가 바탕이 되기는 해도 경제이 공부 또한 요긴하다. 학자가 재물에 눈이 머는 것처럼 민망한 노릇이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를 외면하는 것도 바른 자세는 아니다. 매일 배우는 것이 아학이다 보니 아학을 속학 대하듯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 이 글에서 다산이 전하고자 한 본뜻이다. 하지만 공부하는 사람이 아학만으로는 생활의 근거를 마련할 수가 없으니 속학도 아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p538 다산은 폐족이 되었다고 서울을 등지고 깊은 산골로 숨어들어가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그럴수록 서울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도성과 시골의 문화수준차가 너무 심해, 도성에서 몇십리만 벗어나도 태고의 원시사회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멀고 먼 외딴 곳으로 숨어드는 것은 결국 자손을 노루나 토끼처럼 만들어버리는 길’이라고 다산은 생각했다.

p539 서울을 벗어나지 말라는 당부는 문화의 안목을 유지하라는 뜻에서였다. 세상에 환멸을 느낀다고 무작정 궁벽한 시골로 찾아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집안을 망치는 무모한 해우이로 보았다. 근교에서 원포를 경영하여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다가, 경제기반이 좀더 갖춰질 때를 기다려 도성 안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p542 다산은 말한다. 마음속에서 속된 기운을 걷어내라. 하지만 생활을 외면하는 것을 고고한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무능에서 나온 적빈과 군자의 맑은 청빈은 전혀 같지가 않다. 청빈을 즐길 뿐 적빈을 자랑하지 마라. 작은 시련 앞에 주눅들어 무작정 서울을 떠나는 것은 자손을 망치고 집안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몸은 진창에 떨어져도 꿈은 하늘에 심어라. 처지에 따라 변하는 것은 군자의 마음가짐이 아니다. 경제를 생각하되, 운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

10강 핵심가치를 잊지 말라 _ 본질을 놓치지 않는 실천적 지식경영

46. 위국애민 그 마음을 한시도 놓지 말라_비민보세법(裨民補世法)

p545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시대를 상심하고 시속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찬미하고 풍자하며 권면하고 징계하는 뜻이 없다면 시가 아니다. 뜻이 서지 않고 배움이 순수하지 않으며 큰 도를 듣지 못하여, 임금에게 미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할 마음을 지니지 못한 자는 능히 시를 지을 수가 없다. 너는 힘쓰도록 해라. <학연에게 부침>

비민보세는 백성의 삶에 도움을 주고 세상을 바로잡는데 보탬이 된다는 말이다. 고작 제 한 몸의 영달과 부귀를 위해 학문을 하고 사업을 한다면 마침내 그 뜻과 노력이 너무 슬프다. 무엇 때문에 학문을 하는가? 무엇을 얻으려 사업을 하는가?

다산의 삶과 학문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나는 핵심가치의 첫 번째 지향은 바로 비민보세에 놓인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은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나아가 무엇에 보탬이 되는가? 이 물음에 마땅히 돌아오는 대답이 없으면 그는 어떤 작업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p546 그 매운 시련 속에서도 그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위하는 길을 찾아 모색을 거듭했다.

자기과시의 현학 취미, 자기만족을 위한 공부, 상아탑의 엄숙주의, 이런 것들을 다산은 깊이 혐오했다.

p549 끝부분의 “성정의 바름으로 천지의 조화로운 기운을 잃지 않으려했다.”는 말은 인상적이다. 성정의 바름이란 무엇인가? 차마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백성들은 기근이 들어 다 굶어죽고 있는데, 위정자들이 이를 외면하고 폭압과 수탈만 일삼는 것은 천지의 화기를 해치는 일이다. 이에 다산은 자신이 직접 목도한 사실을 가을 쓰르라미의 안타까운 울음소리로 함께 울었다.

p555 다산은 말한다.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라. 이 마음이 없이는 학문도 문학도 아무 의미가 없다. 아롱아롱 무지개가 문학의 본령이라 말하지 마라. 세상과 상관없는 고고한 상아탑을 학문으로 착각하지 마라. 뜨거운 붉은 마음 없이는 소용이 없다. 제 몸만 아끼고 제 식솔만 챙기는 공부는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다.

47. 좌절과 역경에도 근본을 잊지 말라_간난불최법(艱難不催法)

p556 간난불최는 어떤 역경과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의 그릇은 역경에 처했을 때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다. 시련 앞에 쉬이 좌절하는 사람은 대부분 작은 성취에 금세 교만해진다. 군자는 태산처럼 늠연한 기상을 길러야 한다. 역경 앞에 담대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를 거듭해서는 큰 일을 성취할 수가 없다.

p561 “오래도록 고요하고 적막하게 지내다 보니 정신이 응축되어 한데 모여 옛 성인의 책에 마음을 오로지 하여 뜻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울타리 밖으로 새어나오는 빛을 엿볼 수 있게 되었지요.”

p562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있고, 위기 앞에 그냥 주저앉고 마는 사람이 있다. 평상시에는 비슷비슷해 보여도 위기 앞에 섰을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다산의 위기관리 능력은 탁월했다. 남 탓을 하는 대신 자신을 성찰했다. 백척간두, 건곤일척의 위기상황을 그는 오히려 자기발전의 계기로 역전시켰다.

나는 잘못 간직하여 나를 잃을 사람이다. <수오재기>

p565 가난해도 굶어죽는 법은 없다. 근심한다고 가난이 제 발로 물러가지도 않는다. 제비새끼가 알을 까고 나오면 벌레가 들판에 가득하다. 하늘은 만물을 낳을 때 그가 먹을 양식도 함께 준다. 작위하고 영위하여 지나치게 염려하고, 아등바등 욕심을 부려 노심초사할 일이 아니다. 뜻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몸을 망치기 쉽다. 항상된 마음으로 뜻을 세우고, 근검으로 가난을 물리치는 것만 못하다.

p566 “하늘은 게으름을 미워하니 반드시 복을 주지 않고, 하늘은 사치하는 것을 싫어하니 반드시 복을 내리지 않는다.”

다산은 말한다. 역경 앞에 담대하라.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야 진짜 군자다. 오히려 그것을 밑바대로 삼아 견인불발의 정신으로 위기를 기회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가난에 주눅들어 뜻을 잃지 말고, 근검의 정신으로 마음을 다잡아라. 위기상황에 놓인 뒤에 그 사람이 보인다. 감춰져 있던 본바탕이 낱낱이 드러난다.

48. 사실을 추구하고 실용을 지향하라_실사구시법(實事求是法)

p567 실사구시란 일을 실답게 하고 바름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겉보기만 번드르르하고 실제에 적용해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러자면 작업의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쓸모에 맞게 바른 방향을 설정해나가 알찬 결과를 얻는 것이 실사구시다.

p570 남의 떡이 아무리 커 보여도 내게 맞지 않으면 아무 쓸 데가 없음을 다산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이 다산의 실사구시법이다.

p578 다산은 말한다. 작업에 앞서 쓰임새를 생각하라. 왜 이 작업을 하는지,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먼저 점검하라. 현장에서의 활용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작정 하고 본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 하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도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거둘 성과가 없다. 처음엔 비슷해도 중반 이후에는 정보가 뒤얽혀서 손댈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또 그 알맹이는 속이 꽉 찬 것이라야 한다.

49.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에 몰두하라_오득천조법(吾得天助法)

p579 <<주역사전>>은 내가 하늘의 도움을 얻어서 쓴 글이니, 절대로 사람의 힘으로 통하거나 지혜로운 생각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능히 이 책에 잠심하여 그 오묘한 뜻을 다 통하는 자가 있다면 바로 자손이나 벗일 것이니, 천 년에 한 번 만난다 해도 애지중지함이 마땅히 보통정리의 배가 될 것이다.

오득천조는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일을 이룬다는 뜻이다. 하늘이 나를 도와 나를 통해서 이루고자 한 일이니,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슨 작업을 하든지 무턱대고 닥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잘 파악해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핵심역량을 집중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p580 다산 자신은 사변과 궁리보다는 정리와 분석에 탁월한 역량이 있었다.

p582 어떤 일을 하든 실제에 바탕을 두지 않는 경우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는 늘 꼼꼼하고 깐깐하게 따져가며 작업했다. 정약전도 다산의 꼼꼼한 성격에 대해 “내 아우가 달리 흠잡을 데가 없지만 그릇이 작은 게 흠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p584 다산은 제자를 기르는 데서도 각자의 특징을 살펴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워주었다.

p587 이렇듯 다산은 제자들의 특징을 파악하여, 그들의 역량에 맞는 작업에 집중시킴으로써 균형을 이뤄냈다. 전체 조직을 장악하는 다산의 용인술의 돋보이는 대목이다.

p590 다산은 이렇듯 제자들에게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중심으로 과제를 부여하여 그들의 성취를 고무했따. 앞으로 다산학단과 관련된 자료들은 계속 발굴되어 학계에 풍성한 자료를 제공해줄 것으로 보인다.

다산은 말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해서 기쁘고, 안 할 수 없고, 내가 다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라. 자신의 장점을 파악해서 개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일 저 일 기웃거리지 말고, 핵심역량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라. 그러자면 평소에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안목을 갈고닦아야 한다.

50. ‘지금 여기’의 가치를 다른 것에 우선하라_조선중화법(朝鮮中華法)

p591 나는야 누군가, 조선의 사람/ 즐거이 조선의 시를 지으리.

조선중화란 조선을 문화적 선진인 중화로 여긴다는 뜻이다. 우리 것에 대한 자존심을 지녀 남을 추종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우리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지, 맹목적으로 추수해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해야지, 덩달아 하면 안 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 것을 제대로 아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p596 차라리 형식을 버릴 망정 눈앞의 진실을 노래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배와 귤은 각기 맛이 다르다. 중국과 조선도 각각의 맛을 지니는 것이 옳다. 옛날과 지금, 저기와 여기는 취향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괜스레 형식에 맞추느라 끙끙대지 말고, 가슴으로 시원한 소리를 토해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이다.

p601 다산은 말한다. 우리 것이 소중하되 우리 것만으로는 안 된다. 속도 없이 덩달아 해서는 안 되지만, 내 것만 좋다고 우기는 것은 더 나쁘다. 정신의 주체를 굳건히 세워라. 그 바탕 위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이용후생을 강구하라.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하지만 변해서는 안 될 것까지 바꾸려 들면 주체가 무너진다. 주체가 무너지면 흉내만 남게 된다.

 

 

3. 내가 저자라면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은 책의 내용을 따라 책을 만들었다. 그래서 더 독자에게 와닿는 것 같다. 정약용 선생님이 글을 짓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한데로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이 이루어졌음을 책의 뼈대를 보면 알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각 장이 길지 않고, 각각의 장 끝에 정리를 해준다. ‘다산은 말한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문단은 책을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게 만들어 준다.

 

제목 -> 5자 한문 -> 짧은 이야기 -> 5자 한문 풀이 -> 정약용이 썼던 편지나 글에서 발췌하여 각 장에 맞는 예시 제시 -> (그림 또는 시) -> 다산은 말한다로 정리

 

이 뼈대는 내용 정리를 아주 깔끔하게 보이게 하며, 핵심도 놓치지 않고, 풍부한 예시도 들어줬다. 독자가 더 영민하다면 문맥 속에서 깨달음을 많이 얻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도 최소한의 지혜는 다 공개해준다. 그래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다. 정약용은 하나하나 떠 먹여주는 식의 교육을 했기에 주입식 교육이 익숙한 나에게 이 책은 아주 실용적이면서,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내 책에 이 형식을 적용해 본다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알려주고 싶은 수학 내용 -> 핵심 공식 -> 그 수학 내용이 나오게 된 배경(역사) -> 그 분야의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 내용, 재미있는 문제, 각 장에 맞는 예시 제시 -> (도형 또는 그래프 등) -> 수학 내용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 정리

 

오, 이렇게 할 수 있겠다. 꽤 괜찮은 구조다. 따라해볼만 하다.

 

단점은 전체적인 일관성을 주는 것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겹치는 부분이나 또는 모순되어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가 읽는 시간에 좀 더 투자해야 이해할 수 있다. 지루함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각 장의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으며, 독자의 흥미를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장치를 넣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은 나의 흥미를 계속 유지시켜줬지만 자칫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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