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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3일 11시 41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박지원(1737~1805) 위는 지원 자는 중미 호는 연암.

 

음력25일 반남 박씨 박사유와 함평 이씨 사이 22여중 막내로 태어남

 

16세에 동갑인 유안재 이보천의 딸과 혼인, 장인 유안재에게 <맹자>를 배우고 처숙인 이양천에게 문장 짓는 법을 배움.

 

18세 우울증증세. 사람들을 청해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병세를 고쳐보고자 함.

 

19세 연암의 학문을 지도했던 이양천(처숙)이 별세함. 그의 죽음을 애도한 제영목당이공문을 지음. 이덕무 백동수등과 송도 평양 천마산 묘향산 속리산 가야산 단양등 명승지를 유람했고 황해도 금천 연암골을 좋아함. 후에 서울생활을 정리하고(42) 연암골에 은둔하기도 함

 

36세 식솔들을 처가로 보내고 서울 전의감동에서 혼자 살기 시작함. 홍대용 정철조 이서구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등 벗들과 친하게 사귐

 

41세 이보천(장인) 64세로 돌아가심. 장인을 추모하는 제외구처사유안재이공문을 지음

 

44세 연암골에서 서울로 돌아와 처남(이재성)의 집에 머물렀다. 이때 삼종형인 금성도위 박명원을 따라 북경으로 감. 압록강을 건너 북경 열하를 들러 다시 북경으로 오는 여정을 돌아와서 일기로 쓰기 시작함.

 

50세 첫 관직 선공감역에 임명됨

 

51세 부인 전주 이씨가 51세로 죽음. 그 뒤 혼자 지냄.

 

54세 열하여행시 동행했던 삼종형(박명원) 66세로 죽음. 연암의 재질을 아끼고 사랑하던 형이었음. 삼종형금성위증시충희충희공묘지명을 지음.

 

60세 안의현감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옴. 종로구 계동에 벽돌을 사용하여 계산초당을 지음. 아들 종채가 머물렀고 손자 규수가 이곳에서 태어남.

 

66세 겨울 아버지의 묘를 포천으로 이장하려 했으나 한준이 방해하여 좌절됨. 유한준은 연암에게 유감을 갖고 있어 <열하일기>에 대해 오랑캐의 연호를 쓴 책이라며 비방을 하던 사람.

 

69 1020일 가회방 재동 집의 사랑에서 죽음. 반함하지 말고, 깨끗하게 씻어 달라고 유언을 남김

 

*박지원의 작품을 연구해온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김명호선생의 도움으로 정리된 것. 참조<열하일기 연구> [창비]를 참조한 것임.

 

<여행 일정에 관하여>

 

1780 525일에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길을 떠남. 열하일기는 6.24일 압록강을 건너는 날부터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820일까지 여정을 쓴 글이다. 그는 그 뒤917일까지 북경에서 머물렀고 1027일에 한양에 도착했다. 한양에서 압록강, 북경에서 한양까지 여정에 대한 기록은 적지않음. 세부내용은, 압록강을 건너서 6.24~7.9 성경풍경 7.10~7.14 일신수필 7.15~7.23 관네에서 본 이야기 7.24~8.4 북방여행기 8.5~8.9

태학관에 머물면서 8.9~8.14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8.15~8.20

 

<겨레고전문학선집을 펴내며>

 

[조선고전문학선집]은 가요, 가사, 한시, 패설, 소설, 기행문. 민간극. 개인 문집등 100권으로 묶어낸 북녘이 이루어 놓은 학문연구와 출판의 성과이다. 홍기문, 리상호, 김하명, 김찬순, 오희복, 김상훈, 권택무등 뛰어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성과를 1983년부터 펴내기 시작함. 보리출판사가 위(겨레고전문학선집)의 이름으로 다시 펴내내면서 남과 북의 표기법정도만 손질함.

 

나의 의견

 

69년을 살다간 한 남자로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16살에 동갑내기 여자와 결혼을 했고 우울증에 고생을 한 남자다. 물보다는 산을 좋아한 사람으로 보인다. 자연을 벗삼는 유희를 좋아했으며 식솔을 처가로 보내고 서울에서 홀로 지낸 시절에 대하여는 어떤 이유인지 아직 조사하지 못했다. 다만 그런 삶을 택한 후에 친구들과 더욱 친하게 지냈다고 하는 글을 읽으면서 살고 싶은 삶을 살다간 사람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젊은 시절 관직에서 마음이 떠난 후 50이 되어서야 말단벼슬을 시작하는 부분도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은퇴를 할 나이가 훨씬 넘어선 나이이다. 들고 나는 것이 자유로운 조선왕조의 시스템이 좋은 듯하다. 연암과 같이 개나리봇짐을 지고 글을 읽는다. 디테일한 묘사는 과연 연암은 천재임을 말하고 있다. 타국의 풍습이나 문물에 대한 관심이 많고 술을 좋아하며 사람도 좋아한 연암이 그려지는 대목은 진정한 여행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열하에 도착했으니 다음을 기대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33 말 탄 군뢰 한 쌍을 길나팔을 불게 해서 길잡이로 앞에 내세우고, 다른 한 쌍은 보군으로 맨 앞에 내세워 엉클어진 갈대를 쓸쓸 휘어 제쳐 지나갈 길을 내도록 했다. 나는 말을 탄 채 찼던 칼을 뽑아 갈대 한 꼬치를 베어 보았다. 껍질은 여물고 솔살이 두터워 화살 만들기에는 소용이 닿잖고 붓대로나 쓸 만하였다. 문득 사슴 한 마리가 보리밭 고랑 틈에서 새처럼 놀라 갈대를 뛰어넘어 달아난다.

 

35 높은 둔덕 위에 혼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니, 산수가 맑은데 무연히 열린 벌판에 하늘가를 맞물고 늘어서 수림 틈 사이로 은은히 마을들이 보이는 듯하다. 개 소리, 닭 소리가 금세라도 들려오는 것만 같고 땅은 갈아 제침 직하게 기름졌다. 대동강 서쪽에서 압록강 동쪽까지 이만한 데를 볼 수 없을 만치, 큼직한 고을이라도 자리를 잡을 만한 곳이다. 하지만 두 나라가 함께 이곳을 내버려 두어 아주 빈 터가 되고 말았다.

 

36 이 땅은 이후 백여 년 동안 빈 터로 되어 높은 산, 맑은 물, 쓸쓸한 경치로나 남아 있을 뿐이다.

 

밥알은 번지르하게 기름져 살림이 제일 푼더분해 보였다.

 

모두 아름드리 큰 나무들을 베어 눕혀 날이 새도록 화톳불을 밝혔다.

 

37 반 밤도 못 되어 폭우가 쏟아져 위로는 장막이 새고, 아래로는 풀섶이 축축하여 어데고 피할 곳이 없었다. 이윽고 하늘은 활짝 개 뭇별들은 총총 나지막하게 드리워 손을 내밀면 금방이라도 만져질 것 만 같았다.

 

50 이른바 서방 세계를 둘러본다는 석가여래의 밝은 눈으로 본다면 세계는 모두 평등이라고 한다. 만사가 평등하면 질투도 없을 것이 아닌가?

 

63 열매는 쌍쌍이 꼭지를 맺고 꽃은 피지 않으므로 무화과라 부른다고 한다. 

 

67 기와를 이른 법은 더구나 본답을 만한 데가 많으니, 모양은 동그란 통대를 네 쪽으로 쪼개면 그 한쪽 모양처럼 되어 크기는 두 손바닥쯤 된다. 보통 민가 는 짝기와를 쓰지 않으며 서까래 위에는 산자를 엮지 않고 삿자리를 몇 닢씩 펼 뿐이요, 진흙을 두지 않고 곧장 기와를 인다. 한 장은 엎치고 한 장은 젖히고 암수로 서로 맞아 틈서리는 한 층 한 층 비늘 진 데까지 온통 회로 발라 붙여 때운다. 이러니까 쥐나 새가 뚫거나 위가 무겁고 아래가 허한 폐단이 절로 없게 된다.

 

78 죄다 들었어요. 아무래도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만 못하군요

 

길가에는 무덤이 많이 보이는데 봉분이 뾰족하고 뗏장을 입히지 않았으며, 백양나무들을 곧게 줄을 지어 많이 심었다. 길에서 걸러서 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드물었다. 걸아가는 사람들은 으레 어깨에 이불 뭉치를 메고들 걷는다. 이불이 없는 자는 여관에서 붙여 주지를 않으니, 이는 도적이나 간첩으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안경을 끼고 가는 자는 눈이 나쁜 자일 것이요, 말을 탄 자는 다들 검정 공단 신을 신었고, 걸어서 가는 자는 푸른 무명 신발을 신었는데, 신 바닥은 낡은 헝겊은 몇 십 벌씩 포개어 대고 메투리나 짚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89 성공한 곳에는 두 번 안 가고, 만족을 알아차리는 것이 위태롭지 않으이

 

90 문 앞에서 필, 젓대 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들리기에 뛰어나가보니 결혼 행렬이다. 채색 그림을 그린 사초롱이 여섯 쌍, 푸른 일산 한 쌍, 붉은 일산 한 쌍, 퉁소 한 쌍, 피리 두쌍 중 한 쌍에 가운데는 네 사람이 푸른 덮개 가마 한 틀을 어깨에 맸으니, 사면에는 유리창을 달았고 네 귀에는 비단 색실이 휘늘어졌다. 가마의 허리 복판에는 가마채를 대어 푸른 실을 동아줄로 삼아 가로 틀었고, 가마채의 앞뒤에는 다시 짧은 방망이를 가운데로 꿰어 틀어서 그 양쪽 머리를 넷이 어깨에 메고 여덟 발이 한 걸음이 되어 발을 맞추고 보니 가마는 까딱도 않고 흔들리지 않아 허공에 매달려 가게 되어 그 방법이 썩 묘했다.

 

109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눈에 헛것이 보일 만치 벌어진 은 어마어마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시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아 제 신대로 다니게 마련임을 알았다. 말을 멈추고 사방을 휘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말했다. 한바탕 울 만한 자리로구나! 정 진사가, 천지간에 이런 넓은 시야가 펼쳐지는데 별안간 새삼스레 울 생각을 하다니요? 하기에, 나는 말했다

참 그렇겠네, 그러나 아니거든! 옛날부터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지마는 불과 두어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실 뿐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 나온 듯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찰 만한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거든!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칠정가운데 슬픈 감정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만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다네, 까지껏 기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이 나면 울 수 있고, 까지 껏 즐거우면 울 수 있고, 까지껏 사랑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미우면 울 수 있고, 까지껏 하고 싶으면 울 수 있으니 맺힌 감정을 한번 활짝 푸는 데는 소리쳐 우는 것처럼 더 빠른 방법이 없네.

 

127 눈으로는 고무래정자도 못 알아보면서 입으로는 청산유수다.

 

132 심양은 곧 청조가 처음 일어난 곳으로서 동으로는 영고탑에 닿고 북으로 열하를 누르고 남으로 조선을 어루만지면서 한번 서로 향하자 천하는 감히 꿈틀하지도 못하였다.

 

136 밥은 이미 식어 굳어지고 조바심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기에 장복이와 창대에게 먹으라고 내주고 나는 가게에 들어가 국수 한 그릇, 술 한 병, 삶은 계란 세 개, 오이 한 개를 사먹고 셈을 치르니 모두 마흔두 닢이다.

 

가끔 버드나무 밑에 물 고인 데가 둘러 꺼져 부득이 길바닥으로 빠져나올 때마다 뙤약볕 아래 달아오른 땅바닥으로부터 후끈 치오르는 땅김 바람에 가슴이 대번에 탁탁 막힐 때도 있었다.

 

137 강성이 보인다고 사공이 손짓하자 뱃머리에 솟은 탑은 보는 동안 더 커지네하는 옛 시가 생각난다. 그림을 모르는 자는 시를 모를 것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는 반드시 짙음 새가 있고 원근감이 있다. 오늘 여기서 탑 그림자를 볼 때에 옛 사람이 지은 시가 반드시 그림의 뜻을 잊지 않고 있음을 절실하게 깨닫겠다. 성이 멀고 가까운 것은 다만 탑의 길이로 보아 짐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144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곤 刑部형부 앞으로 지나가니 아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대문 앞에는 나무를 가로 꽂아 둘러 세워 울을 만들고 아무나 마음대로 못 들어가도록 해 두었다. 그러나 나는 외국 사람이랍시고 아무 관청이든지 겁도 허물도 없이 드나들 참인데 더구나 여기만은 문이 열려 있었으므로 일반 관청의 제도를 구경할 겸 문 안으로 썩 들어갔으나,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었다.

 

150 나는 목춘이가 몹시 귀여워서 그와 필담을 하려고 드니, 이생이 손을 내젓는다. 온백고, 목춘 두 사람은 입으로는 봉황새를 읋을 수 있지마는 눈으로는 돼지새끼도 분간 못 한답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       

하니 배관이 있다가

허튼소리가 아닙니다. 귀에는 만 권 장서를 쌓아 놓고도 눈에는 낫 놓고 기역 자도 없답니다. 하늘에는 글 모르는 신선이 없는가 하면 땅에는 말 잘하는 앵무새가 있으니깐요.

 

152 때는 바로 춘삼월이라 양쪽 언덕에 꽃나무와 수림은 한창 우거질 대로 우거졌는데 나그네 몸으로 컴컴한 객창 앞 책상머리에서 쓸쓸한 밤을 지루하게 밝힐 때는 두견소리, 원숭이 울음, 학두루미 눈물, 솔개 웃음, 이것이 빈 강 달 밝은 밤의 풍광이요. 한쪽 언덕에서 바윗돌은 강으로 떨어지고 돌들은 서로 부딪치면서 절로 번개불을 번쩍이는 광경은 여름날 장마철에 보는 광경입니다. 아무리 금방석에 비단 사태가 난다더라도 머리가 세고 똥이 타는 이 노릇이야 어찌 감당을 하겠소?

 

154 운반하기 어려운 무거운 물건들은 거꾸로 국경 지방에서 사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렇고 보니 불경 장사치들은 미리 재지에서 못 쓸 물건을 무역해다가 국경으로 보내고 서로 속임수를 써서 이익을 낚고 있습니다.

 

155 주신 술에 취했고 베푸신 덕으로 배가 부른 셈입니다.

 

158 조금도 잠이 오들 않습니다. 귀한 손님을 모시고 좋은 이야기로 하룻밤을 밝힌다는 것은 참말 일생에 얻기 어려운 좋은 인연인가봅니다. 세상살이가 이렇기만 하다면 촛불 아래 백 날을 마주 앉아도 싫증이 나질 않겠습니다.

 

161 선생 같은 점잖은 분을 만나고 보니 백 사람 부럽잖은 친구를 얻은 것만 같은 터에 어찌 일시라도 속여 넘겨 백 년 믿을 마음을 저버리겠습니까?

 

163 아주 감쪽같이 하자면 붕사 한수석 망사 담반 금사반 들을 가루로 내어 소금물에다 잘 버무려 놓고 붓으로 찍어 고루고루 바르고 그것이 다 마르면 다시 씻어 버리고 또 씻고는 다시 찍어 발라 이러기를 하루 서너 차례씩 하여 땅에다 깊은 구뎅이를 파고는 그 곳에 숯불을 피우되 구뎅이 속에 모닥불 화로처럼 하여 놓고 독한 醋초를 그 위에 뿌리면 구뎅이 속에서 뒤끓고 타다가 말라 버립니다. 이내 그릇을 그 곳에 집어넣고 다시 초 찌꺼기로 두텁게 싸 덮고 그 위에 또다시 빈틈이 없도록 흙으로 두텁게 덮어 두었다가 한 네댓새 만에 끄집어 내보면 각양각색 고물 얼룩이 생깁니다. 다시 댓잎을 태워 그 연기를 쐬면 푸른 빛깔이 더 진하게 되고 다시 밀랍으로 문질러야 합니다. 수은 빛깔을 내고자 할 때는 강철 쇳가루로 문지르고 백랍으로 닦아 문지르면 제자리에서 고물 빛깔을 내게 됩니다. 때로는 일부러 한쪽 귀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릇 몸땡이까지 상처를 내어 바로 商상 周주 秦진 漢한 적의 물건이라고 내놓는 답니다. 참으로 야속한 일이지요.

 

168 더위는 좀 가신 듯하고 달빛은 땅에 가득 찼다.

 

174 사람을 소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자기가 아는 점을 들어 소개해 놓고 보면 으레 자기가 좋아하는 점에만 쏠리고 보니, 한번 높은 안목을 거쳐 참으로 공변된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자기 마음에는 들어도 남에게는 실망을 줄 수가 있습니다.

 

선생은 앞으로 만날 만한 사람은 절로 만나게 될 것이니 무엇 한다고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179 고향 생각이 날 적마다 혼과 마음이야 훨훨 날아갈 것만 싶지요. 장사푼어치를 한다고하늘 끝이나 다름없는 이렇듯 먼 곳에 떨어져 있으니 저녁 자리에도 빈 의자뿐이요, 봄철의 안방도 독수공방, 기러기 편지 소식도 오래 끊어지고 상사의 꿈마저 꾸지 않을 때야 머리가 안 세고 어찌 배겨 내겠습니까? 더구나 달 밝고 바람 맑고 나뭇잎 떨어지고 꽃피는 시절들이 더 견디기 어렵답니다.

 

180 우리네들이야 학식이란 보잘 것 없어 벼슬자리란 꿈 밖의 일이요, 그렇다고 손가락에 피를 내고 얼굴에는 땀을 흘려가면서 오이꽃 같은 귀 밑에 빼빼 마른 목덜미로 알알이 신고하며 농사일로 한평생을 보내는 노릇도 또 못 한답니다.

 

191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득 머리털이 거꾸로 설 만치 분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194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세수하고 머리 빗는 것이 왜 이토록 싫증이 나는지! 지새는 새벽 하늘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주 눈을 깜박일 때 마을 닭들은 번갈아 홰를 쳤다. 몇 리를 못 가서 안개는 자욱이 넓은 들을 먹어 들어 수은 바다처럼 되었다.

 

195 들에 자욱하던 안개가 사라지면서 멀리 보이는 마을 절간 앞에 세운 깃대가 돛대처럼 솟아있었다. 돌이켜 동편 하늘을 바라다볼 때 불빛 구름은 뭉게뭉게 퍼지면서 수레바퀴 같은 붉은 해가 수수밭 속으로부터 반은 솟고 반은 잠겼다가 슬금슬금 둥그렇게 돋아 올라 온 요동벌을 덮는다. 지평선 위로는 가는 말과 오는 수레, 말 없는 나무와 움직이지도 않는 집들이 깃털처럼 늘어선 채 햇발 속에 휘덮여 있었다.

 

201 이윽고 해가 뜨는데 동쪽 하늘의 구름과 안개는 사라지지 않고 어제 해뜰 때보다는 광경이 온통 다르다.

 

202 요동벌 천리 어간은 밀가루나 다름없이 흙이 부드러워 비가 한번 내리면 엿을 녹인 것처럼 아주 풀죽이 되어 길 걷는 사람들이 보통다리나 허리까지 빠지는 것은 예사요, 한쪽 다리를 겨우 뽑으면 한 쪽 다리는 더 깊이 들어가 얼른 다리를 뽑지 못할 때는 땅속에 무슨 빨아 당기는 귀신이나 있는 듯이 온 몸뚱이가 빨려 들어가 사라지면서 빠진 자리조차 흔적이 없어진다고 한다.

 

205 대관절 문상은 어떻게 하는 거냐?

상주 손을 붙잡고는 당신 아버지는 하늘로 올라가셨소.라고만 하시면 됩니다.

 

207 나는 혼자 웬 점방에 들어갔다. 마당에는 시렁을 높다랗게 매고 삿자리로 덮었다가 방금 밑으로부터 줄을 끌어당겨 가렸던 삿자리를 말아 올려 달빛을 받아들이니 가지각색 화초들은 달빛 속에 서로 맞비치고 있었다.

 

211 하늘에는 조각달 높다랗게 걸렸건만, 땅 위에 일 만 가득 등불도 못잖으리

 

221 ! 공자는 240년 동안 사적을 추려 모아 적어서, <춘추>라고 했으니, 이는 240년 동안 숱한 나라들의 외교 군사에 관한 사적을 쓴 책으로서 말하자면 꽃 피고 잎 지고덧없는 인생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방 여기까지 몰아쳐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먹한 점 쿡 찍은 동안은 눈 한 번 깜빡, 숨 한 번 쉬는 동안이요, 눈 한 번 깜빡, 숨 한 번 쉬는 동안은 뒤미처 작은 옛날, 작은 오늘이 되어 버리고 마니 큰 오른큰 옛날은 역시 큰 눈 한 번 깜빡, 큰 숨 한 번 쉬는동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보잘 것 없는 동안에 이름을 내고 공로를 세우겠다고 날뛰는 것이야말로 그아니 서글픈 일이랴.

 

내 일찍이 묘향산에 올라 상원암에서 하룻밤 묵을 때의 일이다. 밤새도록 달은 대낮처럼 밝아, 창을 젖히고 동편을 바라다보니 절 앞에는 허연 안개가 뭉게뭉게 치오른는 것이 달빛에 마치도 수은 바다처럼 보였다. 바다 밑으로부터는 은은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 마치 무슨 코고는 소리처럼 들렸다. 절의 중들은 서로들, 인간 세상에는 방금 야단스러운 뇌성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렷다.하고 있었다. 내가 며칠 지나 산에서 내려와 안주에 닿았을 때는 전날 밤에 이 지방에 뇌성벽력과 함께 큰 비가 내려 평지에도 물은 길 나마 붓고 집들이 떠내려갔더라고 한다. 나는 말고삐를 잡은채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전날 밤에 나는 구름비 밖에서 달을 안고 놀았구나! 묘향산을 태산에 비한다면 자그마한 둔덕에 지나지 못할 것으로, 그 높고 낮은 데 따라 세상의 차이가 이럴진대 더구나 성인이 천하를 굽어봄이랴.

 

저 석가가 설산에서 고행한 것은, 공자의 집안에서 그 안해를 세번씩이나 내쫓은 일이라든가 그 아들 백어가 일찍 죽은 일이라든가 노나라, 위나라로 종적을 숨겨 가면서 쫓겨다닌 사실과 같은 고생살이를 지레 짐작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런 인간살이 고생을 마다하여 세상을 버리고 중이 된 것이다. 이래서 세상 만물도 꼭 그의 눈에는 텅 빈 것으로만 보였다니 이것도 또 한심한 노릇이다.

 

227 오랑캐로 부르는 오늘의 청조는 무엇이든지 중국의 이익이 될 만하고 그것으로써 오래 누릴 수 있는 일인 줄 알기만 할 때는 억지로 빼앗아 와서라도 이를 지켜 냈고, 만약 본래부터 있던 좋은 제도가 백성에게 이롭고 국가에 유용할 대는 비록 그 법이 오랑캐로부터 나왔다손 치더라도 주저 없이 이것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더구나 삼대 이래 현명한 제왕들의 법도와 역대 국가들이 가졌던 고유한 원칙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228 다른 사람이 열가지를 배울 때에 이녁은 백 가지를 배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나라 백성들의 튼튼한 준비 앞에 저들의 굳센 갑옷과 날카로운 병장기가 맥을 쓰지 못하게 될 때에야만 비로소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원래 삼류 인사다. 내가 본 장관을 말하리라.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요, 냄새나는 똥거름이 장관이더라. ?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가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동리 집을 둘러싼 담장 어깨노리 위로는 깨진 기왓장을 두 장씩 마주 붙여 놓아 물결 무늬를 놓기도 하고 네 쪽이 안으로 합하면 동그라미 무늬가 되고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모아 붙이면 옛날 엽전의 구멍 모양을 이룬다. 기와 조각들은 서로 맞물려 알쏭달쏭 뚫린 구멍들이 안팎으로 마주 비치면서 별별 무늬가 다 놓이고 보니, 한번 깨진 기와 쪽을 내버리지 않아 천하의 문채는 벌써 여기 다 있지 않은가? 동리 집들의 문전 뜰에는 형세가 닿잖고 보니 벽돌은 깔 수 없고 오색 빛깔의 유리 기와 쪽과 냇가에서 둥글고 반들반들한 조약돌을 주워다가 얼기설기 서로 맞추어 꽃 무늬, 나무 무늬, 새 무늬 짐승무늬를 놓아 가면서 깔아 놓아 비가 와도 땅이 질 걱정이 없이 만든다. 한 번 자갈과 조약돌을 내버리지 않으니 천하의 명화는 다 여기 있지 않은가.

 

229 똥오줌이란 세상에서도 가장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거름으로 쓰일 때는 금싸락같이도 아끼게 된다. 길에는 버린 재가 없고 말똥을 줍는 자는 오쟁이를 둘러메고 말꼬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이렇게 모은 똥을 거름간에다 쌓아 두는데 혹은 네모 반듯하게, 혹은 팔모가 나게, 혹은 육모가 나게, 혹은 누각 모양으로 만들고 보니 한 번 쌓아 올린 똥거름의 맵시를 보아 천하의 문물 제도는 벌써 여기 버젓이 서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231 눈 아래 질펀하게 들어선 집집마다 뿜어 올리는 연기는 파랗게 허공에서 감돌고, 멀리 보이는 층층탑 한 쌍은 허옇게 번쩍이고 있었다.

 

235 머릿기름, 분 냄새가 코를 찌르는 화류계에서 아주 지쳐난 오입쟁이가 촌가의 밭두렁에서 푼 머리꽂이에 삼베 치마를 두른 촌뜨기 여자를 만날 때는 또 다른 새 맛이 나는 것과 일반인걸!

 

237 사람이 타는 수레는 이름을 태평차라고 한다. 바퀴의 높이는 팔굽까지 닿을 만하다. 서른 가닥 바퀴살이 굴대통에서 뻗어 나갔고 대추나무로 둥글게 테 바퀴를 만들고 나무테 바퀴 위에는 철편을 붙이고 쇠못을 박아 조였다. 바퀴 몸 위에는 서너 사람이 들 만한 둥근 가마틀을 만들어 올리고 푸른 천이나 혹은 공단이나 우단 같은 것으로 휘장을 만들어 늘이기도 하고 더러는 누런 주렴을 늘이고 은으로 단추를 만들어 열고 닫고 한다. 좌우쪽에는 유리창을 붙이고 가마 틀 앞에는 판자를 가로 대고 그 위에 차부가 앉는다. 가마 틀 뒤에는 따르는 하인이 앉고 당나귀 한 마리로 끌게 했다. 먼 길을 갈때는 말이나 노새를 한 마리씩 더 메기도 한다.

 

짐 실은 수레를 대차라고 한다. 바퀴 높이는 태평차와는 조금 다르다.

 

238 태평차는 바퀴가 굴러가게 되었고, 대차는 굴대가 굴러 가도록 되었다.

 

독륜차는 사람이 뒤에서 수레 채를 겨드랑이에 끼고는 밀고 가게 되었다.

 

239 길가에 있는 떡 장수, 과일 장수들은 다들 독륜차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밭 가운데 거름을 실어 나르기에는 썩 편리하다.

 

무릇 수레란 하늘이 낸 물건이로되 다니기는 땅바닥으로 다니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뭍에 다니는 배요, 움직이는 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40 수레를 만들 때 무엇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궤도를 똑같이 해야 된다는 것, 소위 동궤라는 것이다 그러면 동궤란 무엇일까? 즉 두 바퀴 사이의 굴대 길이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수레고 두 바퀴 사이의 척수가 규격에 어긋나지를 않고 보면 수없는 수레들이 자국은 한 자국이 되는 법이니 이것이 소위 동궤라는 것이다

 

240 어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우리 조선은 산협 지대라 수레를 쓰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이런 당토 않은 소리가 어데 있을 것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이용하지 않고 보니 길을 닦지 않고 있는 것이요.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절로 닦일 것이 아닌가?거리가 비좁고 산마루들이 험준하다는 것은 아무 쓸데없는 걱정이다.

 

241 <중용>배와 수레가 닫는 곳엔 서리와 이슬이 떨어지도다.하는 말이 있는데, 수레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안 가는 곳이 없다는 말로서 중국에는 본디 아홉 법 꺾어도는 험한 검각이 잇고 태항산 양장 같은 가파로운 산길이 있건마는 이런 데도 수레를 채찍을 쳐 가면서 빨리 몰아가고 있다.

 

중국이 재물은 풍서풍서하되 한쪽에 몰려 있지를 않고 쉴새없이 흘러 퍼지고 장사를 통하여 이곳 저곳 옮겨지는 것은 모두 수레를 이용하는 탓이다.

 

253 길로 다니면서 파는 소소한 들도부꾼들은 소리를 외쳐서 팔기도 하나 푸른 천 장사들은 손으로 흔들어 소리를 내는 작은 북을 흔들고 다니고, 머리 깎는 이발쟁이들은 두 가닥으로 된 쇠꼬치를 튀겨소리를 내면서 다니고, 기름 장수는 징을 치고 이 밖에도 대쪽을 맞물려 치는 자도 있고 목탁을 치는 자도 있어. 골목골목이 돌아다니면서 두드리는 소리가 그칠 줄을 모르고 본즉 집안에 있던 어린애라도 쉽게 뛰어나가 장수를 부르게 된다. 고함을 질러 사구려!를 외치는 장수는 좀처럼 볼 수 없었으니 무엇을 치는 소리만 듣고서도 벌써 무슨 물건을 가라는지 알아맞히게쯤 되었다.

 

257 새벽길을 떠나다 보니 지는 달은 땅바닥 위에서 불과 두어 자 높이나 떨어져 보이는데 청승맞게도 둥글둥글하다. 계수나무 가지는 뻗을 대로 뻗었는데 옥토끼와 은두껍은 금방도 손으로 만져짐 직하고 펄펄 날리는 항아의 흰 옷자락 속으로 얼룽얼룽 비치는 살결!나는 정진사를 돌아보면서

괴상한 일인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누만!

했더니, 정 진사는 처음에는 그것이 달인 줄 알아듣지 못하고,

아닌 게 아니라 새벽길을 떠나면서 숙참을 나설 때마다 동서남북향방을 가리기가 정말 어렵거든! 하며 다들 함께 웃었다. 조금 있다가 지는 달이 지평선에 맞붙는 것을 보고야 정 진사는 허허 웃었다. 아침노을은 늠실늠실 나무숲을 휩싸 뭉개면서 수없는 봉우리로 뭉게뭉게 피어올라, 용의 둥지를 틀고 봉이 춤을 추는 듯 천리 벌판을 뒤덮는다. 또 정 진사를 돌아보면서, 바로 허여 멀쑥한 장백산이 눈앞에 솟는 것만 같지 않아? 했더니 그렇구먼!

 

287 대체로 해가 돋을 때에 하늘에 구름기가 한 점도 없으면 해 뜨는 구경에는 좋을 성 싶지마는 이럴 때가 해돋이 구경으로서는 제일 몰풍정하다, 그저 둥르렇게 붉은 구리쇠쟁반 한 개가 바다에서 떠오른들 무엇이 가관스러울 것인가?

 

   해가 채 돋기 전에는 반드시 하고많은 구름이 해의 변두리로 모여들어 마치 해돋이 앞장을 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해돋이 뒤를 따라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수천 수만의 수레와 말을 탄 군사가 옹위를 해 모시는 듯, 오색 깃발이 휘날리고 용틀임. 뱀 굽이를 쳐 한바탕 뒤흔든 뒤에야 비로소 장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구름이 너무 많이 끼면 도리어 캄캄하도록 해를 가려 아무것도 볼 수가 없게 된다.

 

307 연도의 분묘들은 반드시 담장을 둘러쌌는데 주위가 수백 보씩은 되고 소나무, 전나무, 버드나무 들을 심되 반드시 줄을 지어 심었다.

 

312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는 중국이 얼마나 큰 줄 모를 것이요. 산해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모를 것이요. 산해관 밖의 장대를 보지 않고는 장수의 위엄이 얼마나 장한지를 모를 것이다.

 

322 종이란 먹빛을 잘 받고 필태를 잘 먹어 들이는 것을 쳐주는 것이지 하필 여물고 질겨 찢어지지 않는다고 쳐줄 것은 못된다.

 

붓이란 조절해 놀리기에 부드럽고 손 놀리는 데 따라 힘이 서로 맞아 나가야만 좋다고 할 수 있다. 굳고 딱딱하고 끝이 뾰족한 것은 쳐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붓은 반드시 호주치라 하여 전부 양털을 쓰고 다른 잡털을 섞지 않는다. 양털은 다른 털에 비하여 가장 보드랍다. 보드랍기 때문에 가장 잘 닳지 않고 종이에 대면 먹이 제 마음대로 놀아 흡사 효자 자식이 부모의 뜻을 지레 알아차리고 받드는 것처럼 된다.

 

351 꼭두새벽에 길을 떠나니 길에서 상여 수레를 만났다. 관 위에는 흰 장닭 한 마리를 놓아 두었다. 닭은 홰를 치면서 울었다. 길에서 연거푸 상여를 만났는데 모두 닭을 올려 놓았다. 이것은 닭이 혼백을 인도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376 범의 집안에서는 홍수나 가물을 모르고 보니 하늘을 원망할 리 없고 덕이고 원수고 다 잊어버리는지라 세상에 미운 것이 없고, 하늘의 마련대로 따라 살다나니 무당이나 의원의 농간에 넘어갈 턱이 없고난 성품에 때라 저 생긴 대로 살다나니 더러운 세상살이 잇속에 병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범이 영툭하고 갸륵하다는 내력이란 말이다.

 

401 의식이 족한 뒤라야 예절을 알게 되는 법이라. 후세에 있어서 그 나라를 부강코저 하는 자가 때로는 각박하다. 덕이 적다는 비평이야 들을 값에 그렇다고 그들의 이룩이 자기 한 몸의 이익만 돌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위태롭고 미약할 때의 마음 쓰는 법이나 일의 공사를 분명히 따져 말한다면 유정유일 정신을 그들에게 함부로 말할 것은 못 된다. 그러나 그 공덕과 이용에서 볼 때는 비록 그 방법이 오랑태로부터 나왔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장점들을 모아서 유정유일로서 표본을 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10 나는 어느 다락집에 올라가 난간을 기대고는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여한이 없을 일이거든!애달프다. 사람들은 늘 제 스스로를 알고자 하나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때로는 아주 위대한 백치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짐짓 미친 행세를 하여 숫제 자기란 것은 없애 버리고 제 몸을 일체 만물이나 다름없이 처하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몸 놀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여유로우리라. 성인들은 이런 길을 취하여 세상을 버리고 숨어 살면서도 답답한 줄을 모르고 홀로 나아가도 겁날 것이 없었다. 공자는 남이 나를 몰라준다 해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닐 까 보냐. 했고 노담은 또 나를 알아주는 자야말로 드물다. 하였으니, 자란 것이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알도록 하고 싶잖다면 의미다. 이러고 보니 더러는 의복을 변복하기도 하고 더러는 형모를 달리하기도 하고 더러는 성명까지 바꾸었으니 이것이 다 성인이나 부처나 현인 철인들이 하는 노릇으로서 그들은 세상을 주물러 놀리면서 천하의 제왕으로서도 이들의 취미와는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있어서 혹시 세상에서 자기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실패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상불 진정에 들어가 본다면 세상에 단 한 사람쯤은 자기를 알아주기를 못내 바라고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요 임금은 평복을 하고 큰 거리에 나갔다가 격양가를 부르는 농부를 만났고, 석가는 아난을 만났고, 태백이 몸에 먹침질을 하고 돌아다닐 때에 중옹이가 있었고,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고 다녔지마는 알아보는 친구를 가졌고, 굴원에게는 어부가 있었고 치이에게는 서자가 있었고 장록에게는 수가자가 있었고 자방에게는 황석공이 있었다.

 

419 청나라가 통일을 한 후 처음으로 열하라고 이름을 붙이고 만리장성 밖에서는 요해지가 되었다. 강희 황제 시대로부터는 언제나 여름철이 되면 황제는 이곳에 두류하여 피서지로 삼았다. 거처하는 궁전은 그리 화려하지를 않고 이름도 피서산장이라고 하여 황제는 이곳에서 독서로 소일을 삼고 사수로 흥취로 여겨 세상 밖에서 한낱 평민의 생활에 취미를 두는 듯했지마는 그 실상인즉, 험악한 자세를 이용하여 몽고의 산멱을 틀어쥐고 국경 밖으로 깊숙하게 자리를 잡아 피서에 이름을 붙이고는 숫제 천자 자신이 오랑케들을 방비하고 있는 셈이다. 원나라 시대처럼 천자는 풀이 무성한 철에는 어정거리면서 장성 밖으로 나갔다가 풀이 마를 무렵에야 남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대체로 천자가 북쪽 변이방에 두류하면서 자주 사냥질을 돌아다니고 본즉 오랑캐 족속들은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 방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천자가 들고 나는 철은 언제나 풀이 무성했다가 마르는 계절인바, 이 행차를 가져다가 피서라고 이름을 붙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428 나는 말 위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으로서 가장 괴로운 노릇은 이별처럼 괴로운 노릇이 없을 터이요, 이별 중에서도 괴로운 이별은 생이별처럼 괴로운 이별이 없구나. 그까짓 죽고 사는 이별쯤이야 괴롭다 말할 거리가 못 될 거시다.

 

429 살아남은 자의 괴로움이란 부모를 따라 죽으려고 한 효자도 있고, 아들이 죽어서 눈이 멀게 된 아비도 있고, 아내가 죽어 너무도 어이가 없어 물동이를 치고 노래를 부른 남편도 있고 임금의 원수를 갚으려고 숯을 먹고 벙어리가 된 충신도 있고, 남편의 시체를 찾으려다가 성이 무너져 치여 죽은 아내도 있었으니 이런 사람들은 다들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제 몸을 희생하였을 뿐 이미 죽은 자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 이러고 보면 죽고 사는 이별 마당에서 죽은 자는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다고 할 것이다.

 

430 세상에 무엇이 괴롭다. 무엇이 괴롭다 해도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는 생이별보다 더한 괴로움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별의 괴로움에는 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대체 어떤 곳이 이별하는 괴로움을 자아낼 만한 곳일까? 집도 아니요, 정자도 아니요, 산도 아니요, 들도 아니다. 그러나 물이란 풍정은 적실히 이별의 괴로움을 자아냄 직한 이 될 것이다. 이별 으로 치는 물이란 대체 어떤 물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커서 강과 바다요, 작아서 도랑과 개굴창만이 물이 아니다. 크건 작건 간에 되돌아올 길이 없이 흘러가는 모든 것이야말로 물일 것이다. 그러니 옛날부터 이별하는 괴로움을 그려 낼 적에는 흔히들 물이 배경으로 나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릉과 소무만이 다정다한한 사람이 아니언마는 그네들의 글에 나오는 애끊는 이별들은 유달리 물을 이별 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 그네들의 이별이 가장 애끊는 이별로 보였던 것이다.

 

431 ? 물의 정취를 나는 알고 있다. 옅도 않고 깊도 않고 잔잔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물결이 바윗돌을 얼싸안은 채 흐느껴 우는 것이 물이었다. 바람도 없고 비도 없고 그늘도 안 들고 볕도 안 나는 음산한 날, 눈에 보이는 강물들이란, 한 번은 무너지고 말 강 위에 놓인 다리, 필경은 죽고 말라 버릴 강둑에 선 나무, 앉고 서고 뒹굴 수 있는 강가의 모래사장, 솟았다 잠겼다 숨바꼭질하는 강 복판의 물새들! 이런 경물 속에 선 사람인즉, 셋도 아니요. 넷도 아닌 단 두 사람이 소리도 없고 말도 없이 마주 설 때야말로 세상에 이런 괴로운 자리가 또 있을 것인가.

 

432 그대를 보내는 이 강둑에서 돌아설 제

      그리운 그대 모습 이로부터 멀어지네

 

     예 보던 그 숲 보고 내가 탄 말 울음 울제

     그대가 탔던 그 배 산굽이로 사라지네

 

438 배에서 내려 하늘을 쳐다보니 새까만 구름장이 덮개덮개 주름을 잡아 독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이따금 구름장 틈서리로 번갯불은 번쩍번쩍 수레소리 북소리인 양 뇌성도 야단스러운데 무렁무렁 틀어오르는 구름장은 검은 용이 허공으로 뛰어나는 것만도 같았다.

 

451 사방을 둘러보아도 벼루 물을 찾을 길이 없기에 성 안에서 술을 사 먹을 적에 술을 몇 잔 더 사서 새벽 술참 삼아 안장 옆구리에 달아 둔 술병을 한목 따라 부어 별빛 아래서 먹을 갈고는 찬 이슬 짬에 앉아 붓을 들어 먹을 덤뻑 찍었다. 봄도, 여름도, 겨울도 아닌 이 철,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아닌 이때, 태백성 정기가 바로 맞아떨어지는 계절, 관 마을 첫닭이 홰를 치려는 이 무렵, 어째서 이 자리가 우연한 자리일까 보냐.

 

455 장님을 보는 사람은 결국 눈이 성한 사람일 것이네, 장님의 위험은 눈이 성한 사람이 보다나니 위험으로 생각되는 것이지. 장님된 자야 위험을 위험인 줄 알 재주가 없을 것 아닌가. 장님이야 보지를 못하는데 위험이고 뭐고 있을 것이 무엇이람.

 

458 여기까지 오는 데는 밤낮없이 나흘 동안 눈 한번 못 붙이고 하인들은 걸을 때나 머무를 때나 모두 선 채로 잠을 잤다. 나 역시 졸음을 견디다 못해서 눈꺼풀은 구름 드리운 듯 무겁고 하품은 조수 밀 듯 와서 때로는 눈을 뻔히 뜨고 보는데도 꿈결 같기만 하고 때로는 남 더러는 말에서 떨어질라 조심시키다가 정작 내 몸은 안장에서 스스로 기울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하느적하느적 아물아물거리고 몸이 짜릿짜릿하게 좋기도 하고 때로는 눈이 게슴츠레해서 보이는 듯 만 듯하여 아기자기한 미묘한 경지 속에 들게 되어 언제고 이른바 취중의 세상 꿈속의 산천만 같았다. 가을매매 소리가 길게 흐늘어지게 들릴 때 공주에는 허깨비가 펄펄 날고 정신이 멍청하기는 선가가 묵상할 적 같고 소스라쳐 깰적에는 참선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듯 팔일난이 삽시간에 지나가고 사백사병이 씻은 듯이 나은 듯하다는 것이 바로 이럴 때를 두고 말함인 듯하다. 비록 고래등 같은 기와집, 분통같이 꾸민 방에 수백 명 미인이 시중을 드는 생활이라 하더라도 바꾸어 주기 아까운 심경이다 자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구들 위에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베개를 베고 두텁지도 않고 얇지도 않은 이불에 깊지도 않고 얕지도 않은 술 몇잔에 취한 채 장주도 아니요, 나비도 아닌 몽롱한 꿈을 꾸는 심경이다.

 

460 여점에 들려 밥을 먹으려니 몸은 녹초가 되어 손에 잡은 숟가락무게는 천 근만 같고 혀 놀리는 것도 백 근 무게는 되는 것만 같은데 상에 가득한 진수성찬이 모두 잠이다. 촛불빛은 무지개만 같고 뻗어난 불빛이 혜성 꼬리처럼 가닥이 져 보였다. 이윽고 청심환 한 개로 소주를 바꾸어 와 한 잔 실컷 먹다나니 술맛도 좋을 뿐 아니라 몇 잔 안 들어 즉시로 푸근하게 취하기에 인차 자리에 나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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