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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9일 10시 27분 등록

열하일기 (中, 下)

박지원 씀 / 리상호 옮김

 

 

1. 저자 소개

지난 주 저자 소개로 대신합니다.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r_review&document_srl=418340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열하일기 중

태학관에 머물면서

p20 “이른바 ‘제비와 기러기가 등을 스쳐 날고, 말과 소가 미처 따르지 못하여 서로 어긋난다.’는 말이 있지마는 오늘이야말로 모두들 인연이 공교롭게도 맞아 이토록 먼 곳에서 나그네 처지로 만나고 보니 역시 또 글 속에서 친해진 분의 자손이로구먼요.”

 

p26 대관절 황제는 나이 많고 황제 자리에 앉은 지가 오래며 권세는 한 손에 틀어잡았고 총명은 쇠하지 않아 혈기는 더욱 왕성하매 세월은 조용해지고 임금의 위세는 날로 더하여 때로는 성정이 난폭하기도 하고 가혹하기도 하여 좋고 나쁜 것을 종잡을 수 없고 보니 조정의 신하들은 무엇이나 눈가림 수로 어물쩍하여 황제의 비위 맞추기 일쑤다. 이번 참에 예부에서 강박하다시피 글을 바치라는 것도 실상은 황제의 뜻을 받은 것이 아니요, 그들이 하는 거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부 예부가 꾸며 낸 장난임에 틀림없다고 한다. 임의 역말을 들으면 왕년에 심양까지 사행이 있었을 적에도 이런 감사문 사단이 있었는데 이번 일도 그것과 틀림없다고 했다.

 

p29~30 담배를 한 대 붙여 물고 뛰어나오자니 표범 우는 소리 같은 개 소리가 장군부로부터 들렸다. 밤번을 서는 조두 소리들은 깊은 산중의 두견새 소리인 양, 나는 마당 한복판을 거닐면서 우르르 뛰어 달려 보기도 하고 점잖게 뽐내어 걸어 보기도 하여 달 그림자를 동무 삼아 한참 놀았다. 명륜당 뒤뜰에 선 늙은 고목은 어두컴컴하게 그늘이 짙을 대로 짙은데, 찬 이슬은 방울방울 맺혀 잎새마다 구슬을 드리운 듯 연주 같은 구슬들은 달빛에 비치어 반짝반짝하였다. 때는 삼경 두 점을 쳤다. 애닮다. 좋은 이 밤 밝은 달 아래, 같이 놀 님이 이토록 없다니. 이럴 녘에 어쩌면 우리 권솔들만 저렇게들 쿨쿨 잘꼬. 도독부 장군님도 잠들었구나, 에라! 나도 방으로 들어가 숫제 베개를 베고 나뒹굴어질거나.

 

p36 “귀국이 자랑할 만한 일을 몇 가지 들어봅시다.”

“우리나라가 비록 바다 한 구석에 붙어 있지마는 네 가지를 자랑할 만합니다. 유교를 숭상하는 것이 첫째요, 홍수가 없는 것이 둘째요, 고기와 소금을 딴 나라에서 가져오지 않는 것이 셋째요, 여자가 개가를 않는 것이 넷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38 “세상이 생긴 지도 이제는 오래되고 보니 훨씬 뛰어난 노릇이 없이는 간대로 이름을 날릴 수 없답니다. 장자가 ‘어찌 한숨을 지으면서 효자 이야기를 하랴.’ 말한 것도 바로 이 까닭이지요.

 

p51 신선은 허리띠를 풀고/ 공경은 웃옷을 끄르네.

 

p57 궁실 그림을 그리는 자가 정교하다 하더라도 궁실은 사면이 있고 또 안과 밖이 있고 또 겹겹이 서 있을 바엔 비록 서양 그림의 정교한 필치로써도 다만 한 면만 그릴 뿐 세 면을 다 그릴 수 없을 것이요, 또 바깥만 그릴 뿐 안은 그릴 수 없을 것이요, 겹겹이 선 전각, 첩첩이 선 정자, 굽이굽이 튼 회랑들은 다만 날아가는 듯한 처마와 지붕만 따서 그릴 뿐, 아로새겨 물린 정교한 세공에 이르러서는 화가로서 그릴 수 없는 것이다. 이는 ㅇ로부터 내려오는 화가들의 천추의 유한으로 공자님도 벌써 이 두 가지를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글은 말을 다 할 수 없고, 그림은 뜻을 다 할 수 없다.” 하였다.

 

p63 숙소로 돌아오니 중국 양반들은 모두들 내가 반선을 만나 본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부러워하면서 입에 침이 없이 그의 도술이 신통한 것을 치켜세웠다.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아첨은 세상에도 못볼 풍조로서 예로부터 세상 인심이 얼룩덜룩하고 좋고 나쁜 것은 모두가 우두머리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65 무대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지마는 깊숙하고도 음침한 것이 꿈속에 보는 음식상같이 맛을 알 수 없었다.

 

p69~73 “달의 몸뚱이는 언제나 둥글어 햇빛을 빙 둘러 받고 보니 이 때문에 지구에서 본 달은 찼다가 기울다가 하는 것이 아닐까요? (중략)

그러면 해와 달은 원래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요, 또 오고 가고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땅이 움직여 돌지를 않고 언제나 한 자리에 박혀 있다고 너무 믿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 아닐까요?

명백한 이론을 찾지 못한즉 이 땅의 춘, 하, 추, 동을 가리켜 그 방위를 따라 ‘논다’고 해 버렸으니, 결국 ‘논다’는 것은 나가고 물러서고 하는 것을 말함이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미 ‘논다’고 할 바엔 차라리 돈다고 함이 어떨까요?

저 착각을 한 자는 말하리다. 땅덩이가 돌 때는 땅 위에 실렸던 일체의 물건들은 엎어지고 자빠지고 기울어져 떨어질 터라고, 만약에 쏟아져 떨어진다면 어느 땅에 떨어질까요? (중략)

얼음 속에는 누에가 살고 불 속에는 쥐가 살고 물 속에는 고기가 살아 가지각색 생물들은 어디나 붙어 있을 곳이 저들도 보아서는 다 땅입니다.만약에 달에도 세계가 있다면 오늘 이 밤에 두 명의 달세계 사람이 난간 머리에 마주 서서 달빛 아닌 땅빛이 차고 기우는 이야기를 아니 한다고 누가 알겠습니까?

 

p73 “사람의 일도 모르는 터에 하늘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본디 수학에 어두운 터 입니다. 비록 칠원옹의 깊은 생각으로도 아득한 우주에 관한 지식은 덮어 두고 해설을 안했지요. 이것은 내가 터득한 지식이 아니라 귀동냥이랍니다. 홍대용이란 친구가 있는데 호는 담헌입니다. 학문을 좋아하되 하나에 얽매이지 않아 일찍이 나와 함께 달구경을 하면서 장난삼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체로 황당하여 종잡기 어려우니 성인의 지혜로도 해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p79 내가 일찍부터 말했지마는 우리 나라가 이토록 가난한 탓은 대체로 목축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까닭이다.

 

p81 무릇 생물들의 성질이란 사람이나 다름없이 고달프면 쉬고 싶고, 답답할 때에는 시원한 데를 찾고 싶고, 구부러든 놈은 펴고 싶고 간지러우면 긁고 싶고 본즉 비록 사람이 먹을 것을 주면 먹는다 하더라도 때로는 제 맘대로 신을 풀기 위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말도 반드시 이따금 굴레와 고삐를 풀어 놓아 물역 같은 시원한 곳에 놀게 하여 답답증을 풀도록 할 것이니 이것이 말하자면 생물의 성질에 따라 그 뜻을 맞추어 준다는 것이다.

 

p82 대체로 목마른 고통은 배고픈 고통보다도 심한 법이다. 우리 나라 말들은 아직껏 찬 물을 안먹이고 있다. 말의 성질인즉 익힌 음식을 제일 싫어하니, 이는 말에게 더운 것은 병이 되기 때문이다. 콩이나 여물죽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먹이를 짜게 하여 물을 켜도록 하기 때문이요, 물을 켜도록 하는 것은 오줌을 잘 누도록 하기 위해서요, 오줌을 잘 누도록 하는 것은 몸에 지닌 열을 열을 풀기 위함이요, 냉수를 먹이는 것은 정갱이를 굳세게 만들고 발굽을 단단하도록 만들기 이해서다. 우리 나라 말들은 삶은 콩과 끓인 죽을 먹고 종일 달리고 나면 벌써 신열을 못 이겨 병이 되고 이래서 한끼라도 죽을 못 먹으면 시들부들 몸을 못 가누고 느림뱅이 걸음을 걸어 길 낭패를 보게 된다. 이것은 모두가 더운 죽 탓이다. 이보다도 군마가 되고 보면 더운 죽을 먹인다는 것은 더욱이 탈이다. 이것을 일러서 말 먹이는 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p92 “내 나이 늙고 보니 이제야 아침 이슬이나 다름없나 보외다. 선생은 방재 좋은 나이로 또다시 황성 걸음이 계실 터이니 응당 오늘 밤 생각을 하실 거외다.”

“달 아래 이별ㅇ르 하고 보니 다른 날 만리 밖에 계신 선생이 그리울 적은 저 달을 보고 선생을 대하듯 하리다. 보아하니 선생은 술도 잘 자시고 또 놀기도 좋아하시는 터인데 부디 몸조심을 하소. 18일은 나도 황경으로 돌아가겠는데 선생은 그 쩍에 귀국하지 않으시거든 부디 한번 우리 집에 들러 주시오. 우리 집은 동단 패루 제 2호동 제 2택인데 대문 위에는 ‘대경’ 편액이 붙었습니다. 거기가 바로 제 집입니다.”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서

p96 나는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여 진사 한 자리도 얻지 못하고 보니 비록 태학에서 글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 이번 참에 뜻밖에도 고국을 떠나 만리 변방에 와서 엿새 동안이라도 태학관에 묵은 것은 마련되었던 운수 같으니, 이것이 어찌 우연한 일일까보냐.

앞으로 천백 년을 두고 몇몇 사람이 또다시 이곳까지 올는지 모르겠지마는 나는 이번 걸음에 뜻하지 않은 여러 곳을 지나오면서 옛 사람들이 먼지를 휘날리며 지나간 수레와 말발굽 자국이 눈에 삼삼한 듯하고 보니, 어허 인간 세상살이가 이토록 앞일을 짐작 못할 만큼 덧없을까?

 

p104 지승 한 마리 안 남기고 다 잡아 절종을 시킨다는 것은 아무래도 옳은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이러고 나면 어디 또 좋은 땅이라도 얻어 갈 자리나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p110 소위 “물이 역류로 흐르는 것을 홍수라고 하는데, 홍수洚水는 곧 홍수洪水다.” 란 것이 이것이다. 그래서 뚫고 파고 째고 트고 하다가 보니 자세는 점점 더 높아져 막으려고도 하지 않은 것이 어느덧 막히고 말았던 것이다. 소위 “곤이 홍수를 막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p115 성인은 주고받는 데 삼가기를 정당한 이유가 없이는 팃검불 하나도 남을 주지 않으며 정당한 이유가 없이는 팃검불 하나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체 팃검불이란 물건은 세상에도 가장 작고, 가장 가벼운 물건으로서 만 가지 물건 속에서도 손으로 꼽을 것이 못 되거늘 어째서 팃검불 하나를 가지고 주고받고 하는 데 무슨 이치를 따지는겠는가? 이같이 성인의 심각한 발언이 있었으니 여기에는 너무 심한 결벽성이 큰 의리에 구애된다는 감이 없지 않지마는 나는 오늘 오미자 한 알을 증험 삼아 성인의 팃검불 하나에 대한 이론이 과연 심한 말이 아님을 알겠다.

이럴 적에는 비록 몇 알 안 되는 오미자일 망정 산더미 같은 화가 될 수 있으니 이렇고 보면 천하에 하찮고 작고 가벼운 물건이라고 핑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춘추 시절에는 종리 땅 여자가 초나라 여자와 뽕나무로 해서 다툰 사단이 드디어 두 나라의 전쟁에까지 이르렀다.

 

p116 나는 학문이 원래 거칠고 옅어 처음부터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고 외밭에서 신발을 고치는’ 조심을 할 줄 몰랐다. 멀쩡한 부랑자의 봉변을 제 스스로 취했고 보니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보냐.

 

p119 흥! 세도란 이토록 믿을 수 없는 것이나 세력이 있는 곳엔 우르르 덤벼들었다가는 눈 한번 굴리는 동안에 때는 가고 일은 식어 어디고 등 닿을 곳이 없을 때는 진흙으로 만든 소가 바닷물에 들어가 풀어지듯, 얼음 산이 볕을 본 듯 녹아 버리고 마니 이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닐까보냐.

 

p123 대체 학문이란 것은 신중히 생각하고 사물을 밝게 분별하고 자세히 묻고 넓게 안다는 것이다. 덕성만을 가지고 함부로 추어올릴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묻고’, ‘배움’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우 임금 같은이가 ‘착한 말을 하는 자에게는 절을 하고 촌음을 아꼈던 것’과 안자의 ‘허물을 반복하지 않으며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 행위’ 쯤으로는 아직도 그 심성이 완전하다고 평할 수 없을 터인바, 이는 그들이 학문하는 극치에서 볼 때 아직도 객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객기를 없애는 데는 반드시 자기를 이기고 옳은 심성에 돌아와야 할 것이다. 자기란 개개인의 사욕이다.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어서 만약 조그마한 사욕이라도 비치게 될 때는 성인으로서는 이것을 도적이나 원수를 대한 것처럼 아주 뽑아 없애고야 만다.

자기를 이긴다는 것도 자기를 이긴 후에야 타고난 심성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이 ‘회복’이란 말은 조금도 부족이 없다는 말로, 일식 월식처럼 다시금 둥글게 회복되는 것이요, 또 잃어버린 물건을 찾음과 같이 한푼쭝도 축이 안 난다는 말이다.

 

p129 무릉 땅 성 안에도 최씨네 술은/ 하늘에야 있을망정 땅 위엔 한 집.

구름과 노는 신선 말 술 마시고/ 흰 구름 잦은 골에 취해 누웠네.

라고 시를 지어 새겼더니 이로부터 술 사러 오는 자가 더 밀려들게 되었다고 한다.

 

경개록

p137 “오랜 벗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낯설기만 하고, 우연히 마주한 이라도 마음이 통하면 오래 사귄 벗과 같다.”

 

황교문답

p150 황교는 서장 지방에서 성행하는 불교의 종파로서 라마교의 별칭이다.

 

p151 다른 나라에 다녀온 자가 흔히 말하기를 “나는 적정을 잘 엿보았느니라.”하기도 하고 “나는 풍속을 잘 보았다.” 하기도 하지마는 나는 꼭이 이런 말을 믿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가서 무슨 길잡이가 있어 갑자기 찾아볼 데가 그리 쉽게 있을 것이낙. 이것이 첫째로 안 될 일이요, 언어가 서로 달라 잠시 동아넹는 충분한 뜻을 통하지 못할 터이니 이것이 둘째로 안 될일이요, 중국과 외국 사람은 이미 입장이 달라, 아무래도 수상한 형적을 남기는 혐의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셋째로 안 될일이요, 말이 옅으면 속 실정을 알지 못할 것이요, 그렇다고 말이 너무 깊이 들어간즉 기휘에 저촉되기 쉬우니 이것이 넷째로 안 될 일이요, 묻지 않을 일을 묻고 본즉 무슨 정탐이나 하는 듯한 자취가 남을 것이니 이것이 다섯째 안 될 일이요, “그 직위에 앉지 않으면 그 정치를 말하지 말라”는 말은 자기 나라에 거주하는 자로서도 지켜야 할 도리인데 하물며 다른 나라일까 보냐. 그 나라에서 제일로 금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 뒤에야 남의 나라에 들어가 말을 붙이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더구나 대국일까 보냐. 이것이 여섯째로 안 될 일이다.

 

p152 더구나 세상은 넓고도 넓어 끝 간 데를 못 보는 터이랴.

 

p154 이렇고 본즉 한 조각 돌덩이로써 천하의 형세를 알아맞힐 수 있을 것인바, 더구나 천하의 괴로운 심정으로서 돌보다 더 큰 것이 있음에랴.

이제 반선 라마에 관계된 이야기 부스럭지를 기록하여 ‘황교문답’이라 하겠다.

 

p156 거울은 글자로 안 쓴 경전이요, 경전이란 구리쇠로 만들지 않은 거울일 것입니다.

 

p162 우리 유학에는 오직 네 가지 과목을 두고 가르쳐 이 네가지 과목을 일관한 도는 다만 한 가지 이치일 뿐이지요. 이것을 배우고 묻는 것이 바로 학문일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유학자들이 함부로 따로 또 과목을 두어 그런 두 가지 다른 명색을 붙이겠습니까?

 

p163 오늘 학자들의 학문은 하늘과 인간을 꿰뚫고 있지마는 실제는 한 고을을 다스릴 줄 모르고 귿르의 ‘이학’은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일체의 자연 현상은 살피고 있지마는 한 가지 소소한 일도 판단을 못 합니다.

 

p164 흡사 물에 빠진 놈처럼 놀고 고서를 파먹고 사는 책벌레를 길러 이번엔 여우나 쥐 같은 소인배로 만드는 즉 고증학 따위로써 방어선을 치고, 남보다 뛰어난 총준들을 억눌러 아주 바보로 만드는 동시에 훈고학으로써 자갈로 물립니다. 때로는 용기를 돋우어 싸우다가도 형세가 불리하게 되면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의 선비입니다. 오늘의 유학자들이야말로 참말 무섭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170 생명 없는 시체가 무슨 죄가 있겠소? 보물을 지녔다는 것이 죄지요.

 

p175 평안할 적에는 위태로운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나온 처사랍니다.

 

p177 도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 가장 공평한 도리이거늘 어찌 ‘우리’라는 자기의 독점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좀처럼 얼씬도 못 하도록 하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우리 도’라는 말이 그리 번듯하고 공정한 칭호 같지는 않습니다. 유교라는 말에서 ‘유’라는 개념은 잘 알았습니다마는 그러나 ‘교’라는 것은 <<중용>>에 이른 대로 ‘도를 닦는 것을 일러서 교라고 한다.’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요? 일러서 문교, 성교니 명교는 모두 성인이 세상을 교화시키는 것을 말한 것이외다.

 

p178~179 인과설이란 다만 어떤 것이 원인이 되면 어떤 것이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비유 컨대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이 원인이면 싹이 트는 것이 결과요, 갈이밭하는 것이 원인이면 수확하는 것이 결과요, 나무를 심는 것도 그럴 것이니 꽃이 원이이면 열매는 결과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서경>>에 이른 대로 ‘도덕을 따르는 것은 길하고 역리를 좇는 것은 흉할 것’이외다. 이것이 바로 우리 도의 인과입니다. 여기서 도덕과 역리는 원인이요, 길흉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길흉 보응설이 부족하다고 평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림자에 메아리처럼 따르고 좇아 부응하는 영험이 이토록 빠를 수야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말하자면 ‘착한 일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게 될 것이요, 착하지 못한 일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내리는 법’이니 우리 도의 인과입니다. 그러나 양경설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자는 ‘반드시 남는 것이 있다’고 하지마는 이 ‘반드시 남는 것’을 대체 누가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불교를 하는자도 처음에 인과를 들어 말한 것을 꽤 투철했지마는 다음에 우리 도에서 좋고 나쁜 일에는 반드시 갚음이 있다는 것을 보고는 슬쩍 윤회설로 대신 채웠으니 실상 우리 도에서 볼 때는 이것을 병집으로 잡는 것입니다.

 

p183 천지는 한 없이 크고 풍속도 지방마다 다르며 사물은 바륵 삐뚠 것이 있으며, 이치도 경우에 따라 달라져 그릇에 담긴 물이 그릇 모양대로 둥글고 모나는 것과 같습니다.

또 덮어놓고 이런 이치가 없다는 것도 일종 편견이요, 또 이런 이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편견일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가 때로는 있을 수도 있는 것이므로 이같이 ‘혹시 있을 수 있는 일’로써 함부로 만 가지 이치에다가 맞추려 하거나 천하의 이목을 돌리려는 것은 더욱 말할 수 없는 편견입니다.

 

p185 세상에 났다고 그리 좋아할 것이 없고 죽는다고 해서 슬플 것도 없이 번갈아 가면서 환생을 하여 억만 년을 변함이 없다고 하며 벼슬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도 모르는 듯, 모르는 것도 깨달은 듯,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도록 혼돈하여 자연의 면모 그대로 지켜 난리나 살벌을 좋아하지 않으며 이 세상을 꿈속같이 여깁니다. 모든 사물을 요망된 것으로 보고, 모든 언어를 거짓으로 보고, 세상에 붙어 사는 것을 허탄한 노릇으로 보고, 사랑이니 정이니 하는 것을 부질 없는 장애로 보아 염불도 아니요, 참선도 아니요, 생각도 없고 근심도 없습니다. 이야말로 세상에도 별천지요, 별난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p197 이참에 내가 열하의 지세를 살펴보니 대체로 천하의 정수리 같아 보였다. 황제가 어정거리면서 북쪽으로 이 지방까지 온 것은 다름이 아니다. 정수리 골통을 깔고 앉아 몽고의 산멱을 틀어잡을 따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몽고는 벌써 매일같이 튀어나와 요동을 지ㅜ고 흔들었을 것이다. 요동이 한번 흔들리면 천하의 왼팔이 끊어지는 것이요, 천하의 왼팔이 끊어지면 하황은 천하의 오른팔로서 한쪽팔만 움직일 수는 없을 터인즉 내가 본 바로는 서번 지방 여러 오랑캐들이 부스스 나오기 시작하여 섬서, 감숙 지방을 엿볼 것이다.

우리 나라는 다해잉 한쪽 바다 구석에 붙어서 이런 판국과는 상관 없다손 치더라도 나는 벌써 머리털이 센지라 앞날을 미처 보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지마는 앞을 30년을 못 가서 세상 일을 걱정할 줄 아는 자가 있다면 응당 내가 오늘 한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이다.

 

반선시말

p213 “국왕의 스승으로 참선하는 이치를 잘 말하는 자란 대체 누구를 가리킨 것입니까?”

순마는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막 나중은 딴 수작을 하고 말았다.

 

p214 여기서 조용히 말하자면 옛날의 제왕들은 상대되는 그로부터 먼저 배운 것이 있은 뒤에야 그를 신하로 삼았으므로 더욱 갸륵하다고 쳐주었고, 천자의 몸으로서 성명 없는 평민을 친구로 사귀되 그것이 자기의 위신에 손상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더욱 크게 되었으나, 뒷날 세상에는 이런 법이 없어졌다. 그런데 홀로 오랑캐 중이라든가 무슨 술법이라든가 삐뚤어진 도라든가 이단에 대해서는 자기 몸을 낮추어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는 이런 일을 내 눈으로 보았다.

 

찰십륜포

p227 중국의 점잖은 인사들로서 반선을 볼 수 없었던 사람은 오히려 우리 사람드렝게 반선이 어떻더냐고 물었다. 이는 모두 이목을 더럽히지 않고자 함인데 우리 사람들은 멋대로 부끄러움도 없이 보고 다녔으니 수치스러운 일이다.

 

행재잡록

p231 어허! 명나라는 우리의 형제 국가이다. 형제 나라가 우리 나라에 주는 선물 같은 것은 그것이 비록 대수롭잖은 물건일지라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듯 그 영광이야말로 전국에 퍼뜨리고 경사야말로 만대를 전할 만할 것이요, 또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몇 줄 되는 글월 한 쪽이라도 높기는 은하수 같고 놀랍기는 우렛소리 같고 때를 맞추어 내리는 비와 같이도 감격스러운 터이다. 이는 무엇 때문일까? 형제 국가인 때문이다. 형제 국가란 무엇인가? 중국을 두고 말함이다. 즉 역대 조정과 임금들이 승인을 받은 나라이다.

 

p233 오랑캐의 성질이란 깊은 골짜기와도 같아서 싫증이 나도록 만족을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p244 내가 열하에 있을 때 예부가 우리 나라에 관계된 일을 거행하는 것을 보고는 천하의 일을 짐장하였다. 황제가 사신에게 어떤 특별한 은혜를 베풀면 예부는 뒤따라 즉시 전주를 하겠다고 글을 올리라고 강박하였다. 이것은 사신의 의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사례를 하고 않는 것은 사신의 자유일 것이다.

 

심세편

p249 중국을 유람하는 자들이 지닌 다섯 가지 망려잉 있다. 지체와 문벌이 높다는 것은 본래 우리 나라 풍속에도 더러운 습관이니, 식자로서는 자기 나라 안에 있을 때라도 양반이란 말을 입 밖에 내기도 부끄러워하는 터에 더구나 변방의 토성쯤 가지고 중국의 묵은 겨레를 업수이 여길 것인가? 이것이 첫째 망령이다. (이어서 다섯 째 망령까지 있음)

 

p252 그 예절을 보아 정치를 알고 그 음악을 듣고 도덕을 알 수 있으니, 이 진리는 백세를 지난 뒤에 백세 이전의 왕을 비교해 보아도 틀리지 않다.

 

p252~253 그러므로 일부러라도 그들의 환심을 사고저 할진대 반드시 마음에 없더라도 대국의 문화를 찬미하여 먼저 그들의 마음을 훕족하게 하고 힘써 중국과 외방은 일체나 다름없다고 함으로써 될 수 있는 대로 혐의쩍은 것을 피하며, 한편으로는 예악에다 문제를 걸어 자신이 고전 아악에 유의를 하는 듯이 하며, 또 한편으로는 역대 사실은 쳐들지언정 최근 사정에 대해서는 따질 것이 아니요, 마음을 겸손하게 머곡 배움을 청하는 태도로 이야기를 유도하여 겉으로는 잘 모르는 듯하여 몹시 답답해하는 태를 보이고 보면, 그들이 눈썹 한번 움직이는 데서도 참과 거짓을 볼 수 있을 것이요, 웃고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 정실을 능히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종이와 먹을 떠나서 그들의 의사를 눈치로 알게 된 방법이다.

 

망양록

p266 악기는 말하자면 골짝과 같고, 소리는 말하자면 바람과 같은 터인데, 골짝을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친다면 바람 자체는 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람에도 거센 바람, 잔잔한 바람, 회오리 바람, 찬 바람의 구별이 있은즉 이로써 본다면 음률에서 예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이는 악기가 고쳐진 것이 아니고 소리가 변한 것일까요?

 

p274 서양 사람들은 다들 역법에 정통하며 그들의 기하학 이치는 정미하고 세밀하기가 짝이 없어 무엇이나 물건을 만드는 데는 다들 이 법을 쓰고 있답니다. 중국에서 가장 낟알을 포개어 크기를 헤아리는 따위는 도리어 조잡한 노릇입니다. 또 그들의 문자는 소리로 뜻을 삼아 새와 짐승의 소리나 바람과 비 소리까지도 귀로 분별치 못하는 것이 없어 혀로써 이를 형용해 낸답니다. 저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의 감정을 모르는 것이 없고 만국의 말을 통한다고 하면서 역시 저대로는 이 양금을 ‘천금’이라 하고 있습니다.

 

p276 또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관대하고 간소하고 온유하고 강직하게 도덕으로 품성을 훈도하고 기운을 고무하여 심령과 총명을 어릴 적부터 일깨웠습니다. 기와 같은 음악에 밝고 이치를 훤히 아는 자가 담당 관리로 있으면서 평소에 교양 받은 자제들을 데리고 이렇다 할 만한 한 시대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당시 임금의 도덕과 정치를 상징하고 백성들의 취향에 맞추었으니 이런 음악을 하느님꼐 바치면 하늘이 즐거워하고 이런 음악을 종묘에 아뢰면 조상들이 감동했습니다. 이러써 교화로 삼아 사방을 움직이면 백성들이 즐거워하여 한 가지 일이라도 무리가 없고 한 가지 물건이라도 억눌림이 없이 하늘과 땅 사이에는 어디나 평화로운 기운이 찰 대로 차서 음악의 지대한 효과는 이토록 대단했던 것입니다.

 

p279 성인이란 것은 응당 천지의 으뜸 기운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으니 음성을 한번 내면 반드시 넓고 크고 화평스러워 음률에 맞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록에도 있되, ‘무릇 소리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거쳐서 난다.’ 하였으니 대체 몸이 극히 귀하고 오랜 수를 누리는 사람은 목소리가 큰 종소리 같고, 내뽑는 힘이 웅장하고 화창하여 때로는 육률의 기본음인 황종률에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척도가 되고 소리가 율이 된다는 것을 두고 말한다면, 우 임금의 언행이 터럭만치도 어긋남이 없고 움직이면 즉시로 법도에 합치된다는 것을 극도로 추어서 말한 것이요, 그 목소리의 청타깅 음률에 맞고 몸뚱이의 길고 짧은 것이 척도에 맞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몸소 세상의 앞장이 되어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도의 표준이 되었고 본즉 절로 억조창생이 법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p290 또 그 당시 세상은 사철 기후가 때를 잃지 않고 소위 ‘바람은 소리를 내지 않고 바다는 물결을 일으키지 않았다.’ 하여 그런 기후가 사시를 맞추었으니 괴이할 것도 없겠습니다. 그런데 뒷세상에 와서 임금이 어질고야 천지 기후도 고르고 생물이 잘 자란다는 이치는 생각도 않고 다만 손가락으로써 율관을 가늠하고 갈대 재를 묻는 법으로써 좋은 기후를 맞고저 했으니, 이는 ‘흰 바탕이 있은 후에야 색칠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격이요, ‘근본은 헤아리지 않고 끝만 가지런히 하려고 든다’는 격이니, 이렇고는 설사 계절에 맞추어 좋은 기운이 뻗친다 하더라도 이런 기운이 어데 속하는 기운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p299 대체로 임금이 되어 음악은 모를 수도 없는 일이요, 그렇다고 또 음악을 알아도 탈인 것 같습니다. 음악을 모른즉 수 문제나 당 태종 같은 이들은 정치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임금들이지만, 비록 부득이 음악을 제정하기에 힘썼다고는 하지마는 그의 근본 취지는 아주 더러웠고 당나라 명황과 송나라 도군과 같은 이들은 본래 음악을 잘 안다고 떠들었으나 천보, 정강의 두 난리를 불러일으킨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대체로 음악의 덕이란 계절 따라 나오는 벌레나 새에 비할 수 있고 음악의 재주란 시정에 비할 수 있고, 음악의 사업이란 역사에 비길 수 있고 음악의 이름이란 시호에 비길 수 있습니다.

 

p299~300 저자에서는 화목을 볼 수 있고 우물터에서는 질서를 볼 수 있습니다. 물건을 서로 교역하는 데 팔고 사는 두 편 뜻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 저자의 도덕이요, 뒤에 물을 길러 온 자가 먼저 온 자를 원망하지 않고 그릇을 벌여 놓아 차례를 기다리다가 제 뜻에 찰 때에 돌아가는 것이 우물터의 도덕입니다. 대체 역사의 본질은 정직하여야 하고, 시호란 것은 잘잘못을 들어 밝히는 것입니다.

 

p301 말하자면 유쾌한 사람이 안 웃을 수 없고 슬픈 자는 안 울 수 없고, 배고픈 자는 밥을 안 욀 수 없고 목마른 자가 물을 안 외칠 수 없어 여기는 허위와 가식이 없고 무리나 부자연이 없습니다. 이같이 마음에 한번 감촉되자 비록 즐거우면 음탕해지고 너무 슬프면 병이 나는 폐가 없지 않지마는 모두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소위 ‘시 삼백 편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심 없는 생각’이란 말이 이것입니다.

 

p303 어진 인물들이 나라를 세우고 대를 물릴 때는 만세를 두고 흔들리지 않을 기초를 닦아 주공이 노나라를 다스리고 강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리듯 했지마는 끄트머리 자손 대에 내려와서 못생긴 인물들이 났으니 어쩌겠습니까? 주공이나 태공은 모두 그것을 미리 말하였습니다. 그 세상도 이미 백세를 전했고 보니 음악 역시 변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풍속에 이르러서는 지방마다 그 풍속이 달라서 백 리만 떨어져도 습관이 다르고 천 리만 떨어지면 풍속이 다르다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치로도 할 수 없고 말로써도 설복할 수 없는 경우라도 음악만이 귀신 같은 조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p304 성인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은 ‘운(運)’입니다. 차기도 하고 이지러지기도 하고 자라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은 하늘의 ‘운’이요, 외롭기도 하고 번창하기도 하는 것은 땅의 ‘운’입니다. 오래되면 변화를 생각하고 묵으면 새것을 찾고 막히면 터뜨리고 싶어하는 것은 ‘운’에 있어서 한 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고기는 사람마다 즐기는 것이지마는 오랫동안 앓는 사람에게 비록 한 가마솥 고깃국이라도 냄새만 맡고도 헛구역이 날 수 있고 비록 풀뿌리와 나무 열매라도 혼연히 입맛에 붙을 수 있습니다. 또 비록 아무리 잘 부르는 노래곡조라도 늘 부르면 듣던 좌중도 자리에서 일어서는 법으로, 오랜 폐단이 생기고도 이를 뜯어 고치지 않으면 이야말로 변통수 없는 교주고슬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어데나 다름없는 사람의 인정입니다.

 

p305 이것은 성인도 세상 운수의 순환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릇 글자가 생긴 지 오래된 뒤 공자가 역사를 정리하여 <<춘추>>를 지은 것은 이야말로 천지 시운의 한 개 커다란 변화인데, 공자도 붇그이한 처사일 것입니다. 공자가 죽고 나자 어중이떠중이 백 가지 학설이 분분하게 떠들고 나와 이런 책들은 무척 많아서 사람마다 저마끔 독창성을 낸다고 하여 조그마한 아이들가지도 처꼉 인성이니 천명이니 큰소리나 치는 경향에 빠져서 육예 같은 학문은 헌 갓이나 다름없이 보았기 때문에 건전한 교육방법은 드디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p311 대체 천지간의 사물이란 형상과 동작과 정리와 환경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 되는바 이로써 천년의 역서를 계산할 수 있으니 이는 수학 기술이란 것입니다.

 

무릇 형체가 있다는 것은 굵직한 흔적을 보임으로써 모두 언어로 형용할 수 있고 문자로 기록할 수 있지마는 형체가 없다는 것은 신비로운 것입니다.(중략) 음계는 수학과 같아서 털끝 사이에서 감돌고 핏줄을 따르다시피 퍼집이다.

 

p313 언어로 사람을 가르칠 때는 세상 물정이 너무 노골화하고, 문자로써 사람을 가르칠 때는 오묘한 이치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음악이란 것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빠르되 가쁘지 않으며, 나타나되 불거지지 않으며, 깊숙하되 충충하지 않으며, 온순하되 강직할 수 있으며, 꼿꼿하되 구부릴 수 있으며, 낮았다 높았다 감격스럽고 흐느끼고 간곡하여 이것이 사람에게 영향을 줄 때는 소름이 끼치도록 두렵기도 하고 벌벌 떨리도록 놀랍기도 하고 갑작스레 없어졌다가 슬그머니 생각나게도 됩니다.

 

p315~316 옛날 사람들은 글자를 두 자씩 포개어 써서 모두 음악 소리의 비결로 삼았는바 바람은 솨솨, 비는 주륵주륵, 사슴은 낄낄, 새는 짹짹, 기러기는 기럭기럭, 여우는 캥캥, 징경이는 깔깔, 벌레는 시룽시룽, 날개는 퍼득퍼득, 개는 컹컹, 방울은 찔렁찔렁, 얼음 찍는 소리는 쿵쿵, 나무 찍는 소리는 쩡쩡, 이것이 모두 소리의 시늉에 따라 음악이 되는 비결일 것입니다.

 

p326 그러므로 여러 왕조가 길고 짧은 것은 그 창업 공적이 많고 적은 데 달렸습니다.

 

p329 마음의 덕성에 합치되고 애정의 원리를 지킬 수 있다.

 

p344 모기령은 평생에 자기를 알아줄 점도, 자기를 죄줄 점도 주자를 공박한 데 있다고 했습니다.

 

곡정필담

p351 “신선 같은 분입니다. 선생은 그와 사귄지가 오래 됐습니가?”

했더니 곡정은,

“미꾸라지와 용입니다. 길이 판이하게 다르지요. 이번 걸음에 와서 사귄지가 한 열흘 남짓합니다.”

하고 다시 말했다.

“공자는 기하학에 정통하시다지요?”

“무엇을 보고 아십니까?”

“머릿방에 있는 기 안찰사가 굉장하게 말합디다. 고려 박 공자는 기하에 정통해서 달 속에는 도 세계가 있어 꼭 이 땅과 비슷하다느니, 땅은 허공에 있어서 꼭 한 개 작은 별이라느니, 땅덩이도 빛이 있어서 달 속에 두루 비친다느니 하셨다구요. 이것은 모두가 이상한 이론으로서 가위 하늘과 땅을 잰다고 할 수 있습니다.”

 

p352 “저도 평생에 혼자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역시 사람을 대해서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합니다. 온 나라 살마들이 깜짝 놀라고 괴상스러이 생각할까 봐 겁이 나서 그렇습니다.

 

p356 “일체 만물은 제 스스로 밝은 몸뚱이는 없는 것이요, 무엇이나 그 본체는 어둡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캄캄한 밤에 거울을 마주 대하면 빡빡하기는 나무나 돌이나 다름없으니, 비록 거울이 빛을 반사할 수 있는 성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이 밝은 몸뚱이를 갖추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햇빛을 빌려온 뒤에야만 밝은 빛을 내는 것이니, 햇빛을 받은 곳에 빛이 나고 반사한 곳에서 되잡아 밝은 그림자가 생깁니다. 물이 밝은 빛에 대한 관계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p358 무릇 물건이 크면 귀신이 붙고 물건이 오래되면 정기가 어리는 법입니다.

 

p359 먼지와 먼지는 서로 의지를 삼아, 먼지가 엉키면 흙이 되고, 먼지가 거친 놈은 모래가 되고, 먼지가 단단한 놈은 돌이 되고, 먼지의 진액은 물이 되고, 먼지가 더우면 불이 되고, 먼지가 엉켜 맺혀서는 쇠가 되고, 먼지가 자라면 나무가 되고, 먼지가 움직이면 바람이 되고, 먼지가 더위에 뜨고 기운이 복받치면 이내 여러 가지 벌레로 화하는바, 오늘 우리 사람이란 곧 이 여러 가지 벌레의 한 종족일 것입니다.

 

p361 “하늘은 원래 모난 물건을 만들어 낸 것이 없습니다.

 

p362 비록 저는 서양 사람의 저서는 보지 못했으나 일찍부터 지구가 둥글다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그 모양은 둥글고, 그 작용인 즉 방정하고, 그 보람인즉 움직이고, 성질로 본다면 고요할 것입니다.

 

p367 제 친구도 기하학 연구에 매우 관심을 가져 천문 도수의 늦고 빠른 것을 계산하는 법을 알고자 했지마는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일찍부터 송나라 경공이 ‘세 마디 말에 형혹성이 물러가고’ ‘처사가 발을 올려놓자 객성이 왕자를 범했다.’ 는 따위 이야기는 역사를 쓰는 자가 억지로 끌어댄 소리라 하여 이를 배척했습니다.

 

p377 ‘내가 매양 옛날 역사를 볼 때에 신하는 아첨을 하고 임금은 교만하였다.

 

p379 안 될 말입니다. 나는 본시 송나라 이종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역시 <<송사>> ‘형법지’를 보면 별나게 사람으로 하여금 심사를 현란케 만듭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학문의 폐단입니다. 대체 예전 시대의 총명하고 영특한 임금으로 말한다면 바로 한나라 무제나 당나라 태종을 예로 들었습니다. ㅅ너생이 말씀한 소위 ‘정자나 주자의 학문을 겸했다면’ 하는 말씀을 말하자면 가설입니다. 이 가설이란 것은 천고의 뜻있는 인사들을 아무렇든 원한을 가지도록 하는 바입니다.

 

p381 사업을 집행하는 것과 사업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옆에서 구경하기는 자신이 직접 당하는 것 보다 훨씬 쉬울 것입니다.

 

p383 ‘가의를 보지 않았을 때는 내가 가의보다 낫다고 생각했지마는 이제는 가의를 따를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문제의 충심에서 나온 말이지 문제가 좀스럽게 자기 스스로 가의와 현명한 것을 비교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필경 큰일을 하기 위해서 자기를 헤아리가 남을 잘 짐작한 것이니, 선대부터 내려오는 장상들과 대신들을 어찌하고 하루아침에 아무런 사업에 경험도 없고 보잘것없는 한 개 서생으로 하여금 그들을 억누르도록 할 것입니까? 조정의 앞자리에서 가의가 가졌던 포부는 벌써 죄다 들었던 터입니다.

 

p384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비해서 말하자면 바둑 두기와 같아서 임금은 바둑을 두는 당국자요, 신하는 옆에 앉은 구경꾼이니, 선생이 말씀하신, 옆에 있는 구경꾼이 바둑 두는 자보다 수가 나은 것 같아 보인다는 말은 옳습니다. 바둑돌을 잡은 자가 잘 판단을 못할 때는 옆 사람의 훈수를 듣지 않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p387 선생의 청탁을 가리지 않는 넓은 도량에 감격할 뿐입니다. 대체로 세상일이란 무엇이나 정도로 하지 않아서는 못 쓰는 법이요, 또 ‘한 자를 구부려서 열 자를 바르게 잡는 법’도 옳지 못할 줄로 생각합니다.

 

p388 대체 세상일이란, 비하자면 양쪽에서 줄다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줄이 끊어지면 줄이 끊어진 자리로부터 짧은 쪽에 있는 자가 먼저 넘어지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습니다. 처음 두 편은 어금지금하기 때문에 세상에 역리와 순리는 있고, 옳고 그른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차지함에 있어서 확실히 성공과 실패가 밝혀진 뒤에는 역리라든가 순리란 말도 도리어 등불 뒤에서 하는 귓속말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p391 “공자는 일년쯤이면 노라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였고, 맹자는 오 년이나 칠 년이면 제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으니, 이는 정치를 하는 방도에서 제나라는 더 쳐주고 등나라는 깔본 것이 아니라, 예와 오늘의 형편이 다르고 크고 작은 형세가 다른 까닭입니다.

 

p399 “이것은 저의 속 결리는 병인데 ‘후우’ 하고 기운을 내뽑는 버릇이 끝내 한숨으로 굳어졌습니다. 평생을 두고 글을 읽어도 세상에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열에 여덟, 아홉이니 어찌 속병이 생기들 않겠습니까?”

 

p399 세상일이란 매양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느냐 못 건느냐 하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논어>>를 읽다가도 ‘공자가 강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가 물을 못 건너는 것은 하늘의 마련이다.’란 구절에 이르러 미상불 세 번 탄식하였고, ‘항우가 오강을 못 건넜다.’는 구절에 와서는 미상불 세 번 탄식했고, ‘종유수가 강물을 건너라고 세 번 외쳤다.’는 구절을 대하고 미상불 세 번 탄식을 하였으니, 이만해도 아홉 번 탄식한 것으로 벌써 가 태부의 여섯 번 탄식보다 많은갑소이다.“

 

p404 앞서 선생이 말씀한 백이, 숙제 전에는 태백과 중옹이 있었고, 백이 숙제 후에는 관숙, 채숙이 있었다고 말쓰맣ㄴ 것은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인지요?

예로부터 의리라고 하는 것은 비하자면 쇠를 녹여서 거푸집에 붓는 것과 같습니다. 쇠가 절로 무슨 물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푸집에 따라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또 조개 껍질을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조개 껍질은 일정한 제 빛이 있겠지마는 보는 자가 바로 보고 옆으로 보는 데 따라 그 빛도 각각 다릅니다.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터지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터지는 것은 다만 물 자체에 달린 문제입니다.

 

p405 세상일이란 거꾸로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p408 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을 너무 좁은 골목으로 몰아넣을 것은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p410 옳습니다. 어질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예절을 지키면서도 무력을 쓸 수 있고, 지혜가 있으면서도 물을 줄 ㅇ라고, 용맹이 있음녀서도 머리를 숙일 줄 알고, 신의가 있으면서도 변화를 할 줄 아는 것을 가리켜 굳세고 참을성 있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성정이 이렇지 않고는 역시 반란을 일으키거나 반란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대체로 나라를 창건하는 자는 갖은 풍상을 겪지 않으면 하늘을 맑게 하고 땅을 평정할 수 없습니다. 천지가 바뀔때는 바람과 서리와 우레와 우박이 없이는 해를 이루지 못합니다. 시월 어간은 곧 천지 자연이 한번 뒤집히는 시절로서 어찌 한번 무서운 변화가 없겠습니까?

 

p412 이것이 아무리 꼬부라진 학자들이 세상에 아첨하는 데 분개하고 썩은 선비들이 함부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따르는 데 결이 나서 하는 말이지마는, 이런 입론을 어찌 어그러진 이론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사람들이 역사상 인물들의 성공과 실패의 자취만을 보고 의리를 구부리고 의리 위에다가 다른 의리를 포개 얹어, 이른바 치켜세울 때는 하늘 꼭대기까지 올려놓고 내려 족칠 때는 땅속까지 파묻음을 개탄한 것입니다. 우리 ㅅ너비들도 역시 제멋대로 노는 습관이 없지 않으니, 치켜세우고 억누르는 버릇이 심한 것도 역시 한탄 ‘종횡’일 뿐입니다.

 

p416 임금과 신하는 거간꾼 장사친로음이요, 아래위 할 것 없이 공리만 따지고 보니, 이는 예나 이제나 할 것 없이 성공과 실패에 있어서 한 개 본보기 총결론입니다. 성공과 실패 이 말은 선비들의 입부리로는 형용을 못 할 글자 말이요, 왕후장상들의 어진 의지를 <<제범>>한 편에 붙여 두었는바, 이야말로 요 임금을 본뜨고 순 임금으로 꾸며 아주 번드레합니다.

우리 선배들이 말하는바 ‘천명(天命)’이란 것은 ‘운수’ 두 글자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기서 운수란 것은 역시 성공과 실패의 결과만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늘 하는 말로, ‘하늘이 임금의 지위를 주고 인심은 자연히 돌아온다.’는 말은 이야말로 엉터리 수작에 불과합니다.

p417 나는 말하기를,

“다만 운수로만 미룬다면 세상에는 무엇이고 손댈 데가 없을 것입니다. 성인들은 천명이란 말을 드물게 말했으니 이는 세상을 위하여 가르침을 세우는 데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등왕각에 바람을 보내주고, 운이 가면 천복비도 벼락을 맞네.’ 한 것처럼 세상일이란 모두 ‘때가 오고 운이 가고’ 하는 것 뿐인갑습니다.”

 

p418 내가,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지마는 일이 되려는 집안에는 그렇지도 않아 후패가 ‘얼음이 굳게 얼었다.’고 거짓말을 했건마는 하늘은 이 거짓말을 그대로 따라 주었고, 지성을 들여 기도를 하더라도 반드시 원대로 들어주는 것이 없건마는 망하려는 집안은 장세걸이 분향을 하면서 하늘에 빌던 그대로 영락없이 들어맞았습니다.

세상에도 가장 정확한 것은 제때에 우는 닭 울음인데, 맹상군은 범의 아가리에서 벗어나려고, 한 사람에게 입을 오므려 닭 울음을 울게 하자 닭이란 닭은 모조리 따라 울음을 울었습니다. 천한에 어김없는 현상으로는 밀물 같은 것이 없겠건만, 송나라 왕조가 더는 견디지 못할 판이고 본즉 전당강의 조수가 사흘을 두고 들지 않았습니다.

흥하고 망하는 판에는 귀신의 조화 실적도 거짓과 진실이 번갈아 이용되며 성실과 휼계가 한목 쓰여 어떤 사람이 천하를 얻을 때에 하늘은 반드시 기꺼이 한 건 아니겠지마는 일부러 공교히 도와 주는 것 같고, 또 어떤 사람이 천하를 잃을 때는 꼭 하늘이 미워한 것은 아니겠지마는 잔인하고 지독하기가 무슨 흉악한 원수나 다름없었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p421 “하늘이 없앤 것인데 누가 다시 일으켜 세우겠습니까?”

 

p425 대체로 세상을 교화하기 위한 언론이란 하는 수 없이 이렁저렁 그렇듯이 꿰어 맞추고 본즉, 제마끔 제 들은 바를 제일이라 하고는 이를 따라서 말을 만드는 것입니다.

 

p428 곡정은 말했다.

“나라를 세우는 원칙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씀인지요?”

“오제는 음악이 각각 다르고, 우왕, 탕왕, 무왕 삼왕은 예절이 각각 다르니 한나라는 충성을 숭상하고 은나라는 질박을 숭상하고 주나라는 문화를 숭상했음과 같은 것입니다.”

“옛날 사람은 천하를 두고 흠집이 없는 금사발에다가 비했지마는 오늘의 금사발은 잘 익은 수박과 같은 것입니다.”

“금 사발은 흠집이 없지마는 수박은 깨지기 쉬운 걸요.”

곡정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외다. 수박이란 겉은 푸르고 속은 누렇고 씨가 많고 맛이 시워하여 말하자면 ‘천하를 천하 속에 간직한 셈’입니다.”

 

p435 나는 말하였다.

“천하의 걱정거리를 먼저 걱정해야만 하는 천자의 지위야말로 참말 괴로운 자리일 것입니다. 한 고조가 환관의 다리를 베고 집 천장을 쳐다보고 누웠을 때야 팔 년 동안 얻은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서리가 내리고 물이 말라드는 늘그막에 돌이켜 지난날을 회상한다면 이가 시릴 만큼 서글펐겠지요. 이때쯤은 응당 세상일이란 아무런 맛도 없었을 것입니다.”

형산은 허허 웃으면서,

“목전에 급급하게 서두는 것은 모두가 늘그만 준비입니다. 누에가 늙으면 절로 고치를 짓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비단옷을 입히고자 목적한 것은 아닙니다.”

 

p440 연암은 이르노라.

내가 서울을 떠나서 여드레 만에 황주까지 왔을 때 그대로 말 위에 앉아서 혼자 생각하기를, 본디 학식이 없는 나로서 기회를 얻어 중국땅에 들어가 만약 중국의 고명한 선비를 만난다면 장차 무엇으로 질문을 들이대어 한번 애를 먹여 볼까 하고는, 드디어 옛날 들은 지식 중에서 땅덩이가 도는 이야기라든가 달세계 이야기를 찾아 내어 매양 고삐를 잡고 안장 위에 앉은 채 졸면서도 무려 수십만 자의 말을 풀어서 가슴속에는 글자 없는 글씨를 쓰고, 허공에 소리 없는 글을 읽어 하루에도 몇 권의 책이 되었다. 말은 비록 동에 닿지 않아도 이치는 역시 따라 붙을 만하였지마는 말타기도 더 피로했고 붓과 벼루도 들 사이가 없었다 .용한 생각도 하룻밤이 지나면 스러져 죽고 말았지마는 이튿날 다시 하늘을 쳐다보고 그려 볼 때는 새로운 생각이 겹쳐 떠올랐다. 이야말로 참말 먼 길에 좋은 길동무가 되고 위로할 거리가 되었다.

 

p441 중국은 곧장 문자가 말이므로 경전이고 사기고 학설이고 문집이고 모두가 입속에서 말로 되는바 이는 기억력이 별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래서 억지로 시문을 지을 때는 벌써 그 정곡을 잃어버리고 글과 말은 판연히 두 가지 물건이 되어 버리는 까닭이다. 우리 나라에서 글을 짓는 자는 알쑹달쑹 뒤틀리기 쉬운 옛날 글자로써 다시 알기 어려운 방언을 한 차례 번역을 하기 때문에 그 글 뜻은 캄캄해지고 말 속은 모호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산장잡기

p448~449 나는 어릴적부터 간이 작고 겁이 많아 때로는 대낮에 빈 방에 들어가거나 밤중에 등불을 만나더라도 미상불 머리끝이 쭈볏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터인데, 금년은 내 나이 마흔넷이건만 무서움을 타기는 어릴 적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오늘 이 한밤중에 홀로 만리장성 밑에 우뚝 서고 보니 달은 지고 물은 울고 바람은 솨솨, 반딧불은 펄펄 날아서 보는 것마다 무엇이나 다 놀랍고 휘둥그레지고 이상야릇하였건만, 나는 갑자기 겁나는 마음이 없어지고 이상하게도 신이 날 대로 나서 팔공산의 풀잎 군사나 북평의 호석까지도 나를 놀래지 못하니, 더욱이 내 자신 다행으로 여겼던 것이다.

(내가 에트나 산에 오를 때 케이블카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원래 이런거 타는거 무서워 하는데, 오늘은 왜 하나도 안 무섭지?” 연암이 느꼈던 그 순간을 나도 느꼈던 것 같다. 갑자기 겁나는 마음이 없어지고 이상하게 신이 날 대로 나는 그 기분! 여행에 빠지면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p450 대체 물소리란 듣기에 달린 것이다.

 

p452 나는 오늘에야 이치를 알았따. 마음의 눈을 감은 자는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될 턱이 없고 귀와 눈을 믿을수록 보고 듣는 힘이 밝아져서 더욱 병통이 되는 것이다. 오늘 내 마부가 발을 말발굽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가고 보니,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 고삐를 늦추어 물에 들어갔다.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다. 한 번만 까딱하면 강물 바닥인지라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마음을 삼으니, 이때야 내 마음속에는 벌써 한 번 떨어질 것은 각오한 바라, 내 귓속에는 드디어 물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이나 물을 건너는 데도 마치 의자 위에서 앉고 눕고 기동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ㅇ낳았다.

 

p453 옛날 우 임금이 강물을 건널 때 누런 용이 배를 등으로 떠밀어 위험한 고비를 당했으나 죽고 사는 판단은 이미 마음속에 결정되었고 본즉 그의 앞에는 용이나 지렁이나 크고 작은 것은 비할 나위도 없었다.

소리와 빛깔은 외계로부터 듣고 보는 데 따르는 것이라 이는 언제나 귀와 눈에 탈이 되어 이렇게도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힘을 잃도록 만든다. 더구나 사람이 한 세상 살아감에 그 험하고 위태함이야 강물보다 더한지라 보고 듣는 것이 즉시로 병이 될 것이 아닌가?

내가 사는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 개굴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가늠해보니 영락없이 맞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로써 어떤 사람이나 자신의 처세술에 능란하여 스스로 총명한 체하는 자들에게 경계하는 바이다.

 

p457 이것은 잠시 동안에 하고 마는 놀음인데도, 기율이 이같이도 엄격하다. 만약에 이런 법으로 군대가 전쟁터로 나간다면 세상에 누가 감히 다칠 것인가? 그러나 천하의 태평은 도덕에 있는 것이요, 규율에만 있는 것이 아닐진대 더구나 이따위 잡극의 규율이 천하의 태평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이랴?

 

p466 내가 열하에서 돌아올 때에 청하에 이르러 거리에서 난쟁이 한 명을 보았는데, 키는 두어 자가량 되고 배는 북처럼 불룩하게 커서 그림에 있는 포대화상 같고, 입과 눈이 모두 낮게 붙었고, 팔뚝도 종아리도 없이 손과 발이 대번에 달린 것 같았다. 담배를 물고 아주 뽐내면서 걷는데 손을 펴서 내두르면서 춤을 추었다. 사람을 보면 제자리에서 허허 웃고 중국 사람으로서는 홀로 머리를 깎지 않고 뒤통수에다가 상투를 틀고 선도건을 썼다. 무명베 도포는 소매가 넓은데, 배통을 활짝 드러내 놓고 상판이 오막조막한 것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괴상하였다.

조물주는 장난을 퍽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이것을 호아포에게 이야기했더니, 황포와 기타 여러 사람들은 다들 이는 하늘이 별종 인간을 내어 인간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요즘 거리에 이런 사람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평생에 괴상한 구경은 열하 있을 때만큼 본 적이 없으나 그 이름 조차 모르는 것이 많고 문자로 형용할 수가 없어 모두 생략하고 적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로구나.

 

p472 세간 사물로서 극히 작은 것으로 겨우 털끝 같은 것이라도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이 어떻게 일일이 다 명령하겠는가. 하늘이란 형체로 말한다면 천이요, 성정으로 말한다면 건이요, 주재하는 면으로 본다면 상제요, 작용으로 말한다면 신이라고 일러 그 이름 붙이는 것이 여러 가지요, 또 부르고 이르는 명색이 너무 친밀하다. 허물이 없이 말하자면 이와 기를 풀무로 삼고 생장과 성쇠를 조물이라고 하여, 하늘을 마치 용한 장이나치에 비하여 망치질, 끌질, 도끼질, 칼질에 쉴 사이가 없다고 본다.

 

p474 (앞부분 참고) 도대체 코끼리는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인데도 그 이치에 있어 모를 것이 이런 터에 더구나 천하 사물이란 코끼리보다도 만 갑절이나 복잡함에랴. 그러므로 성인이 <<주역>>을 지을 때 ‘코끼리 상’자라를 따서 지은 것도 이 코끼리 같은 형상을 보고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연구케 하려는 것이다.

 

요술구경

p495 인간 세상이 꿈결 같은 것은 본디 이같이 거울 속과도 같아서 차고 더운 변천이 이토록 달랐다. 일체 세간의 가지가지 사물이 아침엔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고 어제 부자가 오늘은 가난하고 갑자기 젊었다가 갑자기 늙는 것이 꿈속의 꿈 이야기로서, 바야흐로 죽으면서 살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니,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일 것인가? 세상에 착한 마음을 가진 착한 형제자매들에게 이르노니 허깨비 같은 세상에 꿈 같은 몸뚱이와 거품 같은 황금과 번개 같은 재물로 큰 인연을 맺어서 천지 기수에 따라 잠시 이 세상에 머무를 뿐이거든 원컨대 이 거울을 본으로 삼아 덥다고 나가지 말고 차다고 물러서지 말아 있는 돈을 회사하여 이 가난을 구제할지라.

 

p496 “눈이 있어도 시비를 분별 못하고 참과 거짓을 살피지 못한다면 이는 눈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빈다. 그러나 언제나 요술쟁이에게는 속는 것은 눈이 헛보아 그런 것이 아니라 밝게 본다는 것이 도리어 탈입니다.”

나는 말하였다.

“우리 나라 서화담 선생이란 분이 하루는 길에서 울고 있는 자를 만나 ‘너 왜 울고 있느냐?’ 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제가 세 살에 장님이 되어서 사십 년 동안 장님 노릇을 했습니다. 전일에는 걸음 걸을 때는 발을 의지 삼아 보고, 무엇을 잡을 때는 손을 의지 삼아 보았고, 음성을 듣고는 누구인지 분변을 하여 귀를 의지 삼아 보았고, 냄새를 맡아서 무슨 물건인지 알았은즉 코를 의지 삼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 눈만 가졌지마는 나는 손과 발과 코와 귀가 모두 눈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하필 손, 발, 코, 귀뿐이겠습니까?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낮에는 피로한 것을 보고 물건의 형상과 빛깔은 밤 들어 꿈으로 봅니다. 이래서도 아무런 장애가 없었고 일찍이 의심과 혼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길을 걸어오는 도중에 두 눈이 별안간에 맑아지고 동자막이 절로 열려 천지가 광대하고 산천이 헝클어지고 만물이 눈을 가로막고 별별 의심이 가슴에 복받쳐 손, 발, 코, 귀의 감각은 거꾸로 뒤틀려서 옛날의 정성스런 버릇을 잃어버리고 보니, 우리 집이 어디인지 아득하게 잊어버려 저 혼자는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하더랍니다. 화담 선생이, ‘네가 너의 손, 발, 코, 귀 들에게 물으면 응당 잘 알 것이 아닌가?’ 했더니, ‘내 눈이 이미 밝았고 보니 그것들에게 물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했습니다. 그러자 선생은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으로 갈 것이다.’ 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말해 본다면 눈이란 이같이도 밝은 것을 자랑할 거리가 못 됩니다. 오늘 요술을 구경하는 데도 요술쟁이가 눈속임질을 해서 속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보는 자가 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열하일기 하

피서록

p22 오직 이곳 열하만이 길은 서울과 가깝고 땅은 황야에 자리잡아, 지세가 높고 낮고, 멀고 가까운 거리를 헤아리며 자연과 산천의 기세를 맞추어 소나무를 의지하면 서재가 되고 물을 끈 데는 정자가 되었다 모두가 사람의 힘으로 될 바가 아니요, 꽃다운 벌판을 빌려 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p23 서까래를 새기고 기둥을 단청할 비용이 필요 없고, 숲과 물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담박한 정신을 즐길 수 있다. 고운 물새는 푸른 물결을 희롱하는데 사람을 피하지 아니하고, 사슴들은 석양빛을 띤 채 떼를 지어 출몰한다. 솔개는 날고 고기는 뛰되 제 천성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뿐 먼빛으로 자줏빛 아지랑이에 싸인 아름다운 풍광을 절로 열어 놓았으니, 이것이 피서산장의 경치다.

이는 강희 50년 6월 하순에 쓴 것인데, 강희는 늘그막에 대부분 열하에 있었던 것이다.

 

p33 ‘유하정’이라고 하는 술집에는

부귀와 공명을/ 다 잊어버리고/ 한평생 두고두고/ 술이나 먹을거나.

고운 꽃 삼백 가지/ 울 속에 심어 두어/ 비바람 사철 향기/ 실컷 맡아 보리라.

하고 써 붙였다.

 

p34 또 ‘음취구루’ 바람벽에 써 붙인 글은 먹이 아직도 잘 마르지 않은 양 붙었는데 우민중이나 아극돈의 글씨와 비슷해 보였다.

임금을 섬길 맘은/ 옛날만 못잖건만/ 늘그막 이내 몸은/ 농사가 생계라네.

풀섶 길 소를 따라/ 서쪽 성 밖 나가는 길에/ 주막에 비껴 누워/ 남은 해 보낼거나.

 

p36~37

신종 황제가 ‘푸른 입술’이 무엇이냐고 좌우에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어, 조원로에게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태평광기>>를 보면 어떤 사나이가 이웃 여자가 불 부는 것을 보고 시를 지어서,

숯불을 불다나니/ 붉은 입술 오물오물/ 장작을 때다나니/ 하얀 팔뚝 드러났네.

자욱한 연기 속/ 멀리 뵈는 그 얼굴/ 안개 속에 핀 꽃인 양/ 곱기도 하여라.

하니, 그의 마누라가 있다가 그 남편에게 하는 말이, 당신은 어째서 나한테는 그런 시를 짓지 못하느냐고 했답니다. 그러자 남편이, 당신도 불을 불면 내 응당 본떠 지으리라고 하여 그 마누라가 불 부는 시늉을 했더니 남편이 시를 지어,

숯불을 불다나니/ 푸른 입술 우물우물/ 장작을 때다나니/ 검은 팔뚝 드러났네.

자욱한 연기 속/ 멀리 뵈는 그 얼굴/ 귀신 할미 상판인 양/ 못나기도 하여라.

하였으니 이 야이기는 왕벽의 <<민수연담>>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p38 조한이 지은 시 한수

30년 이래로/ 육도를 배워/ 꽃다운 이내 이름/ 무장으로 빛났네.

난리가 벌어질 젠/ 철갑을 떨쳐 입고/ 아무리 가난해도/ 보검을 팔잖았네.

내 팔뚝 늙었어도/ 시위를 당길 터요./ 이내 눈 어둡잖아 / 진터쯤은 살핀다오.

간밤에 가을 바람/ 뜰 앞에 일다나니/ 옛날 입던 수값옷을/ 대하기도 부끄럽네.

이 시를 읽을 때는 그가 ‘안장 위에 버티고 앉아서 이리저리 둘러보는 용기’를 생각케 합니다.

 

p45 나는 다시 썼다.

책을 들자 눈물은/ 천년 역사 적시고/ 물에 닿은 문인은/ 시름도 한없네.

확사가 엮은 시들/ 시 솜씨는 날리니/ 치청전집 한 권을/ 구해 볼거나.

 

p53 푸른 깃은 정수리/ 무부의 차림으로/ 요양도 천리 길/ 사신 뒤를 따르누나.

중국땅에 들어오자/ 고기 별호 세 번째라/ 예부터 못난 이 몸/ ‘종이 고기’ 배웠거니

(종이 고기 : 책 종이를 먹는 좀을 ‘종이 고기’라고 하는바, 글공부에 열중한 자를 이에 비한다.)

 

p57 비하루飛霞樓

가볍게 뿜는 놀은/ 취한 넋을 깨울 제 / 갈기도 너울너울/ 하늘 말이 달리는 듯

선약을 캐고저/ 유완을 찾을랴니/ 적성의 아침놀에/ 길마저 잃었고나.

 

p58 유춘동留春洞

지는 꽃 손목 잡고/ 손님인 양 만류할새/ 비바람께 부탁하다가/ 핀잔만 맞았구나.

골짝 꽃 꺾어다가/ 화병에 모셔 두니/ 삼백예순 사시절이/ 언제나 봄이로세.

소월대嘯月臺

찢어지듯 밝은 달밤/ 소월대에 홀로서니/ 버들 바재 서리 듣고/ 기러기 떼 적막코야.

외마디 울음소리/ 가을 구름 쪼갤 적/ 만리 허공에는 / 달님 얼굴 내밀었네.

 

p61 봉규가 지은 시

유감有感

맑은 가을 비추는/ 물 위의 달빛/ 회남땅 갈대숲을/ 꿈길에 도네.

풀숲에 비 내릴 제/ 포구는 적막/ 바람에 꺾인 고목/ 강물에 둥실

외로운 배 댈 곳 없이/ 천지는 넓고/ 정처 없는 이내 신세/ 운수 같고야.

한없이도 쓸쓸한/ 아득한 그곳/ 끝없이 먼 길에/ 시름만 나네.

 

p71 꽃 같은 고운 얼굴/ 되땅에 팔렸으니/ 속상한 피리 소리/ 부모 생각 오죽하리.

가엾은 그를 위해 / 천금을 던질/ 세상의 의협 남아/ 없단 말인가.

 

p75 우주는 위도로 나뉘어 있건마는/ 만물은 중심을 생각하고 있도다.

조공하는 예물들은 온 천하로부터/ 산 넘고 물 건너 서울로 찾아드네.

아득한 이내 회포 푸른 물에 막혔건만/ 오랜 세월 중국 위해 부지런을 다했도다.

가도 끝도 무연한 이 땅 다한 그곳/ 아득한 바다 구석 자리를 잡았도다.

산수는 비록 다를지언정/ 의로운 나라라고 부를 만하도다.

사신은 돌아가 풍속을 전하였고/ 사람들은 찾아와서 문물을 본뜬다.

의복과 쓰개는 예절 지킬 줄 알고/ 충성과 신의는 도덕을 내세우네.

성실도 하여라! 하늘이 굽어보리./ 어질기도 하여라! 그 덕행이 외로우랴!

한 깃발 아래 모여 백성을 다스릴새/ 보내 준 후한 선물 그 정성 다함없도다.

송죽같이 푸른 지조 더욱 소중히 하여/ 바람서리 맞아도 늘 변치 말지라.

 

p93 잠이 안 들 때

밤 저물어 즐겨 보는/ 산골짝 구름/ 먼 하늘은 울긋불긋/ 놀빛도 야단이네.

처마를 대해 앉자/ 참새 소리 그치고/ 목침 베고 누우려니/ 모기 떼만 잉잉.

산에 나무 냇가 모래/ 세어 볼 듯 심심할 제/ 하늘에 찬 별들은/ 절로 무늬 놓았네

잠 못 자고 시름 많아/ 병 될 것 없어라./ 이참에 남는 것은/ 주옥 같은 시로세.

 

p94 낮잠을 자면서

낮잠을 자다나니/ 찌는 듯 덥구나./ 만사에 게을러져/ 손 닿기도 싫어라.

읽던 책 채 못 덮어/ 먼지만 케케 앉고/ 벼루에 남은 먹은/ 파리 배만 불리네.

오솔길 지나치는/ 나그네 묻는 말에/ 묵밭 매던 내 마누라/ 짜증만 내누나.

별안간 솟아오른/ 맑은 달빛을/ 해님이 돋은 줄만 / 잘못 알았지.

 

p104 천년 지난 오늘에도/ 항우의 혼은 남아/ 강을 건널 체면 없어/ 형체만 남았구나.

음릉 길을 잃은 것이 / 천추의 한이 되어/ 언제나 길에 서서 / 길잡이 노릇하네.

이 글은 무명씨가 지은 것이라 하여 <<명시선>>에 실렸다.

 

p113 중국은 글자가 곧 말이 되지마는 우리 조선은 말이 먼져요, 글자는 나중이므로 중국과 조선은 이 점이 구별되고 있다. 이는 무슨 말인가 하면 말이 먼저 되고 글자가 나중이고 보면 말은 말대로 글자는 글자대로 따로 놀아 가령 ‘천天’을 읽을 때는 ‘한날 천漢捺天‘이라고 하여 이런 경우에서 글자 외에 또다른 한 개 어려운 어휘를 갖게 된다.

 

p114 “향기 나는 곳에 나비는 저절로 찾아오지요.”

 

p124 머리가 세었다고 / 걱정 말지라./ 천지는 길고 길어/ 다함이 없네.

넓디넓은 요동벌/ 필마로 드니/ 채찍은 한번 치자/ 바람은 만리.

 

p127 넓은 뜻 가진 그 님/ 몸 둘 곳 없어/ 하늘 밑 동쪽 구석/ 살게 되었네.

멀거나 가깝거나/ 차별이 없고/ 문밖을 나서잖아도/ 뜻은 만리 밖.

 

p130 또又

장성이 무너지며/ 나라도 갈렸건만/ 인물은 변함없이/ 그대로라네.

공자묘 뜨락 돌북/ 옛 모습 남았으나/ 덧없는 인간 세상/ 변천은 몇 번인고.

 

p131 외로운 나그네는/ 시름없이 앉아서/ 그리운 님 생각에/ 깊이도 잠겼어라.

 

p143

4

모심은 논배미에/ 물은 가득 찼는데/ 물과 구름 아득하매/ 가을철만 같아라.

이 골짝에 농사짓기/ 가장 좋을시고./ 발 벗은 남방 처녀/ 소 먹일 줄 잘 아누나.

 

구외이문

p150 “아니외다. 이것은 조개 껍질을 둥글게 갈아 만든 것이요, 진주가 아니외다. 조선 진주를 소중히 쳐주는 까닭은 조개 티가 없고 절로 천연스러운 보석 빛깔을 내는 데 있습니다.” 하였다. 이 말이 딴은 이치에 닿는 말 같으나 나는 모를러라. 조선 진주가 어디서 나는지, 또 누가 이것을 캐서 세상에 이렇게 내돌렸는지.

 

p168 임금에게 보고하는 글이란 얼마나 조심해야 할 인인데, 어째서 돈을 낭비해 가면서 허황하고도 맹랑한 이야기들을 사서 복명하는 자료로 삼을 것이랴. 사신들이 뻔질 북경을 드나들면서 백 년을 두고 하는 노릇이란 이렇다.

 

p173 역졸들이나 말꾼들이 배웠다는 중국말이란 모두가 발음이 뒤틀린, 가짜 중국말이다. 이자들은 저희가 하는 말이 저들 자신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말하고 있다.

가장 더러운 냄새를 ‘고려취’라고 하는데 조선 사람들은 목욕을 잘 하지 ㅇ낳아 발 냄새가 흉하다는 것이요,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는 ‘동이’라고 말하는 바, 이는 ‘동이’가 훔쳤다는 의미다.

‘려’ 자 발음은 ‘리’요, ‘동’자 발음은 ‘두’와 ‘등’ 음의 반절인바, 우리 사람들은 이런 줄 잘 모르고는 냄새가 좋지 못할 때는 ‘고려취’라 하고 다른 사람이 물건을 훔쳤다고 의심할 때는 ‘아무개는 동이’라고 해, 마침내 훔친다는 말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p185 우리 나라 서적으로서 중국에 들어가 출판한 것이 매우 드무나 홀로 <<동의보감>> 25권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그 판본은 아주 정묘하였다. 우리 나라 의학 방문이 그리 넓지를 못하고 토산 약재로 진품이 없어 우리 선조 대왕은 태의 허준과 유의인 고옥 정작과 의관 양예수, 김응택, 이명원, 정예남 들에게 명령하여 편찬국을 설치하고 책을 편찬하는데 내부의 의방 5백 권을 내어 참고 자료로 삼도록 하였다.

 

p186 책명에 ‘동의’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나라가 동쪽에 있으므로 ‘의’자 위에 ‘동’자를 붙인 것이다.

‘보감’이란 무슨 뜻일까? 비해 말하면 햇빛이 뚫고 비치는 곳에는 어둠을 헤치고 살을 쪼개고 베듯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 잡으면 환하게 밝아 거울과 같음이다.

 

p187 이러므로 뛰어난 명의는 병을 고치는 데 병이 들어 눕기 전에 고치는 것이요, 병이 다 든 후에 고치지는 않는 것이다. 병이 다 든 후에 고친다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법에서는 아주 하책일 것이다. 그나마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땡땡이 의원에게 병을 내맡긴다면 어찌 병이 나을 것인가?

p193 하늘이 살기를 내면 귀신이 울부짖는 법이요, 땅이 살기를 내면 용과 범이 달아나 숨는 법이요, 사람이 살기를 내면 천지가 뒤집어지는 법입니다. 요순은 도덕이 있으매 온 세상이 조공을 하였고, 우 임금과 탕 임금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니 만국이 손을 잡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또 진 시황은 자주 흉노를 정벌하다가 그의 몸은 썩은 고기가 되었고, 거란은 중원땅을 한번 유린하다가 몸은 소금에 절인 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p196 나는 조 역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나이 젊어 사리를 모르오. 우리 나라 사대부들이 건성으로 <<춘추>>만 떠들고 존왕양이 공담만 해 온 지 백여 년에 중국 인사들인들 어찌 이런 마음이 없겠소? 그러므로 연갱요, 사사정, 증정 같은 따위들이 상서스러운 일을 보고는 재앙이라 하고, 좋은 정치 실적을 악정이라고 무함하여 온 세상을 선동하고 문자로 베껴 전파하여 마치 위급한 형세가 조석에 박두한듯 한 것이지요. 그리하면 우리 역관들은 허탄한 소리에 속아 넘어가 절로 바보 놀음을 하네요. (중략)

 

p207 사람이 젊을 적에는 전정이 멀고 보니 자기는 늙을 날이 없을 듯이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도 노인을 업신여기는 실수를 가끔 한다. 이런 경박한 악소년이나 건방진 자는 흔히 앞날의 복을 받지 못할 것이니 불가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인조 때 찬성 민형남이 나이 일흔이 넘어 손수 과실나무 접을 붙이니 같은 마을에 사는 여러 젊은 명관이 웃으면서,

“공께서는 아직도 백 년 계획을 세우시나요?”

할 때에, 민공은,

“바로 그대들을 위하여 선물로 남길 것이네!”

하였다. 그 후 민공은 아흔네 살이 되어 여러 명관들의 제삿날 과일을 손수 따서 제사에 부조했다고 한다.

 

p221 주인은 본디부터/ 마음이 맑아/ 맑다는 이름으로/ 뒤원 이름 지었네.

때로 자리 만들어/ 바둑 두다가/ 손님 위하여/ 술병을 내네.

한가한 구름은/ 대밭 여울로/ 지는 해는 솔문을/ 비쳤어라.

축대에 올라서/ 달맞이할 새/ 흐르는 달빛이/ 귓속질하네.

 

p225 왕고는 정색을 하면서 말하기를

“위대한 교화력과 도덕이 있는 것을 성인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공자도 ‘내가 어찌 감히’ 하고 말했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성인이라고 하십니까?” 하였다.

 

p230 ‘하포’라고 하는 까닭은 중국 사람이 수놓은 둥근 주머니를 서로들 선사하면서 하포라고 하기 때문인데, 즉 주머니의 이름이다. 승계국은 어떤 모양인지 모르지마는 모두 일년초 꽃이다. 이름은 조선모란이라 하지마는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으니 무슨 까닭일까?

 

p232~233 이것은 한나라 때 속담에, 거인 수재가 글을 모르고 효렴으로 발탁되어 벼슬하는데, 아비가 따로 거처한다는 말과 같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관청 돼지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월나라가 진나라의 여윈 꼴을 본다.”는 말과 같다. 이는 모두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다는 말로 한나라 세상에도 효성과 청렴이 이 같거늘 더구나 뒷날 세상일까 보냐.

 

p238 철문관을 넘어 수십 나라를 거쳐 만여 리를 걸어 설산에서 황제를 보았다. 첫째, 천하를 통일하는 방법은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 데 있다고 대답하였고, 대규모의 사냥을 말려서 말하기를 하늘의 도는 생을 좋아하는 데 있다 하였고, 정치하는 방도를 물으니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라고 대답하였고, 수신하는 도리를 물었더니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고 대답하였고, 죽지 않는 약을 물었더니 위생하는 길은 있지마는 길이 사는 약은 없다고 하였다. 매양 황제가 불러 자리에 나앉으면 황제를 권하는 말은 모두 자애와 효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것이 어찌 도사의 입에서 나오는 유가의 말이 아니라 할 수 있으랴.

 

옥갑야화玉匣夜話

p247 옥갑으로 돌아와서 여러 비장들과 침상을 나란히 하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하였다.

옛날에는 연경의 풍속이 순박하여 역관들에게는 비록 만금이라도 빌려 주고 했으나 지금 저들은 속이는 것이 능사인바, 그 잘못은 미상불 우리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략) 주인은 위로하면서, “대장부가 몸이 없어지는 것이 걱정이지, 돈 없는 것이야 걱정할 게 있나. 지금 죽고 돌아가지 않는다면 처자들을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그대에게 돈 만 냥을 꿔 줄 터이니 5년 동안 식리를 하면 다시 만 냥은 더 얻을 것이네. 그때 가서 본전만 갚으소.” 역관은 돈 만 냥을 얻어 물화를 크게 물화를 크게 무역해 가지고 돌아왔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 사정을 아는 자가 없어서 누구나 그의 재주가 신통하다고 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는 5년 만에 드디어 큰 부자가 되어 즉시로 사역원에 등록된 관적을 삭제하고 다시는 북경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나 한번은 가만히 북경 가는 친구에게 “연경 가서 만약에 아무 주인을 만나 안부를 묻거든 반드시 우리 집에 역병에 몰사당했다고 말하게나.” 하고 부탁하니, 그 친구는 이야기가 너무도 허황하므로 주저하였던바, 그 역관은 만약 그렇게만 하고 돌아오면 꼭 돈 백 냥을 주리라고 약속하였다. (중략)

“하느님 맙소사! 어쩌자고 그런 착한 사람 집에 그 같은 참혹한 재앙을 내렸을꼬!” 하고는 드디어 돈 백냥을 내어 주며 부탁하기를 “그는 처자까지 다 죽었으니 제사 지내 줄 사람도 없을 터라. 그대가 고국에 돌아가거든 나를 위하여 50냥으로는 제물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내주고 50냥으로는 추후로 그의 명복을 비는 재를 올려 주소!”

하고 부탁하였다. (중략) 친구가 돌아왔더니, 참말로 역병에 걸려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몽땅 몰사를 하고 말았다.

 

p256 (허생전)

“자네들이 모르는 말일세. 대체로 남에게 아쉬운 사정을 말하는 자는 언제나 제 의사를 떠벌려 먼저 신의를 자랑하면서도 어디고 그의 얼굴빛은 비굴하고 이야기는 중언부언하는 법이네. 그러나 아까 그 손님은 비록 옷과 신발이 허술하기는 하나 말은 간결하고 눈초리에 뱃심이 나타나고 얼굴에 수줍은 빛이 없으니 이런 이는 재물이 없어도 자족하는 사람일 것이네. 그가 시험해 본다는 일이 필시 작은 일이 아닐 터이니, 나 역시 그 손을 한번 시험해 보겠네. 안 주면 몰라도 돈 만 냥을 이미 줄 바에야 이름은 알아서 무엇 할 것인가?”

 

p257 사공이 있다가,

“사람 없는 빈 섬에 누구와 함께 살 것입니까?”

하니, 허생은,

“덕이 있는 곳에 사람이 붙는 법이거든! 덕이 없음을 걱정할 일이지 사람 없는 걱정이야 할 것 없네!”

하였다.

 

p262 꼭 당신만이 아니라 만 냥을 가진 자라면 내어 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오. 내 짐작으로 내 재주라면 능히 백만 냥은 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마는 운수야 하늘에 있는 것이라 내가 어찌 꼭 알수야 있었겠소? 그러매 나를 부리는 자는 복이 있는 자일 터라 반드시 부유한데 더욱 부유할 것도 역시 하늘 운수일 것이오. 이러고야 어찌 돈을 꾸어 주지 않겠소? 벌써 돈을 꾼 다음에는 돈 임자의 복을 빙자해 장사를 했으므로 손만 대면 성공하게 되었으니 만약에 내 자신의 돈으로 했다면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지 못할 것이오.

 

p265 무릇 대의를 천하에 소리치려고 할진대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사귀어 결탁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요, 남의 나라 치려고 하면서 먼저 간첩을 쓰지 않고는 성공한 자가 없는 법이오. 지금 만주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고 나서 중국과는 친하지 않다고 자인하고 있지마는 조선은 다른 나라보다 앞장서서 그들에게 복종한 까닭에 그들은 조선을 신뢰하고 있소이다.

이런 기회에 옛날 당나라, 원나라 때 모양으로 조선의 자제들을 보내어 유학시키고, 벼슬하게 하고, 상인들이 마음대로 출입하도록 청한다면 조선이 자기들과 친해지는 것을 기꺼이 허락할 것이오. 이렇게 되면 국내의 청년 자제들을 뽑아 머리를 깎고 되복을 입히고, 선비들은 과거를 보이고, 평민들은 강남 지방까지 멀리 장사를 나가도록 하여, 그 나라의 허실을 엿보고 지방의 호걸들과 결탁을 한다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이요, 나라의 치욕을 씻을 수 있을 것이외다.

 

p266~267 그래! 소위 사대부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오랑캐 땅에 나서 자칭 사대부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아래위 입성을 소복으로 한다는 것은 이것이야 상복이 아닌가? 머리를 쥐어 묶어 삐쭉하게 쪼았으니 이거야 남방 오랑캐의 북상투가 아닌가? 무엇이 예법이란 말인가? 번오기는 자기의 사사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자기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은 자기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되복 입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지금 명나라를 위하여 복수를 한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그 머리칼 한오리까지 아끼고 앞으로 장차 전장에 나가 말을 달리고 칼을 내두르고 창을 쓰고 돌을 날릴 궁리를 한다면서도 그놈의 넓은 소매를 그대로 두는 것이 소위 예법이란 말인가?

내가 세 가지 계책을 말하였으되 너는 한 가지도 들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러고도 네 입으로 조정의 신임받는 신하라고 하니, 대체 신임받는 신하 꼴이 이렇단 말인가! 이 죽일 놈 같으니!”

 

황도기략黃圖紀略

p281 그들은 다만 예 싸람의 기록을 의지 삼아 때때로 이것을 옷주머니 속에서 자주 내 보면서 때로는 서로 보고 웃기도 하고 때로는 둘이 마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였으니, 대체로 옛날 기록과 맞추어 보다가 맞을 때도 있고 깜짝 놀라기도 하였으니, 대체로 옛날 기록과 맞추어 보다가 맞을 때도 있고 맞지 않을 때도 있고 본즉, 스스로 기뻐할 적도 있고 또 놀랄 때도 있었던 것이다. 저들은 중국 사람이지마는 보고 들은 것이 서로 다르고 옛 기록이 때로는 이같이 착오와 거짓이 있거늘 하물며 나 같은 외국인일 것이랴.

나도 또 이 때문에 스스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가 처음은 만세산을 만수산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대체 중국 발음으로 ‘만’을 ‘완’이라 하고 ‘세’ 음은 ‘수’와 ‘쇄’의 합음이기 때문에, ‘만수’나 ‘만세’는 음과 뜻이 함께 비슷하고 보매 산 하나를 두고 두 이름을 붙이게 된 줄로 알았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옛 기록을 상고해 보면 과연 같은 산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 구경한 토원산과 경화도가 곧 만세산이었다. 비하자면 사람이 자리에 마주 앉아 얼굴을 보고 이름을 물어서 각각 서로 분간해 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p306 이 사람들은 역서를 잘 만들며 자기 나라의 제도로 집을 지어 사는데 그들의 학설은 부화함과 거짓을 버리고 성실을 귀하게 여겨 하느님을 밝게 섬기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며, 충효와 자애를 의무로 삼고, 허물을 고치고 선을 닦는 것을 입문으로 삼고, 사람이 죽고 사는 큰일에 준비를 갖추어 걱정을 없애는 것을 구경 목적으로 삼고 있다.

 

p308 무릇 그림을 그리는 자가 거죽만 그리고 속을 그릴 수 없음은 자연의 세勢이다. 대체 물건이란 불거지고 우묵하고, 크고 작고, 멀고 가까운 ‘세’가 있다. 그림에 능한 자는 붓대를 대강 몇 차례 놀려 산에는 주름이 없기도 하고, 물에는 파도가 없기도 하고, 나무에는 가지가 없기도 하니, 이것이 소위 ‘뜻을 그린다’는 법이다.

 

p318~319 옛날에 도적 세 명이 함께 남의 무덤을 파서 금을 도적하고는 저들끼리 말하기를, 오늘은 돈도 많이 벌었으나 꽤 곤하니 술이나 한잔 사다가 먹자고 하였다. 그중 한 명이 선뜻 일어서서 술을 사러 갔다. 가는 도중에 이자는 제 스스로 축하하기를,

“하늘이 시키는 좋은 기회로구나. 금을 셋이 나누는 것보다는 독차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 아닌가?”

하고는 음식에 독약을 타 가지고 돌아오자, 남아 있던 두 도적은 갑자기 일어나 이자를 때려 죽였다. 두 도적은 먼저 술을 갈라 먹고는 금을 반분하려고 했는데 얼마 못 되어 함께 무덤 곁에 죽고 말았다.

슬프다! 이 금은 반드시 길 옆에서 굴러다니다가 또다시 딴 사람이 주워 얻게 될 것이요, 이렇게 주워 얻은 사람은 가만히 하늘에 감사를 하면서도 이 금을 무덤 속에서 파냈고 독약을 먹은 자들의 유물이며 또 앞사람 뒷사람을 거쳐 또 몇천, 몇백 명을 죽게 할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데도 세상 사람들은 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어째서 그럴까? <<주역>>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날카로움은 쇠라도 끊는다.” 하였다.

이것은 바로 도적질을 전체하는 말이다. 어째서 그럴 것인가? 끊는다는 말은 가른다는 말이다. 가르는 것은 금일진대 ‘마음을 합치는 것도 잇속’이라는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의리’를 말하지 않고 ‘잇속’이라고 했은즉 ‘불의의 재물’인 것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도적질이 아니고 무엇이랴?

바라건대 천하의 인사들은 돈이 있다 하여 꼭 기뻐할 것도 아니요, 없다고 하여 슬퍼할 것도 아니니, 아무런 까닭 없이 갑자기 돈이 앞에 닥칠 때는 천동처럼 두려워하고 귀신처럼 무서워하여 풀섶에서 뱀을 만난 듯이 머리끝이 삐죽하여 뒤로 물러설 일이다.

 

공자묘를 참배한 감상

p345 명나라 군대가 공자묘에는 군사들을 못 들어가도록 명령하는 것을 보고, 중은 얼핏 공자의 위패를 빌려 전각 속에 두었다. 그 뒤에 중은 다시 얼씬도 못하게 되어 드디어 북평부학으로 되었다가 청나라가 북경으로 천도를 한 후는 순천부학이라 하였다.

 

p352 지금 청나라는 나라를 세운 지는 이미 오래되어 국내가 태평하고 문물과 교육이 혁혁하여 제 스스로 일러 한나라, 당나라보다 더 낫다고 자랑하지마는 오늘 여러 학사들을 돌아보니 열에 여덟, 아홉은 비어 있었다. 더구나 며칠 전에 간신히 석전을 지냈다는데, 대성 문 왼편 극문의 왼쪽 벽에 써 붙여 둔 석전에 참석한 학생 명부를 보면 겨우 4백여 명에 불과하였다. 그것도 모두 만주인과 몽고인뿐이요, 한족은 한 명도 없음은 무슨 까닭일까? (중략) 그러나 여기에서 넉넉히 본받아도 좋은 일은, 이곳 서재와 학사들이 텅텅 비어 있다면 응당 먼지에 파묻히고 잡풀이 돋았을 터인데, 어디고 씻고 닦아 맑게 정돈하지 않은 데가 없어 탁자들은 가지런하고, 문과 창은 밝아 종이를 바른 지는 비록 오래되었으나 하나도 찢어지고 떨어진 데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비록 한 가지 일이지마는 중국 법도의 대체를 알 수 있는 일이다.

 

p362 역사에서 흥하고 망하는 판에는 하늘의 뜻을 단연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요망스러운 재앙과 경사스러운 상서로 나타날 때에는 이를 반드시 알뜰하게 좇기도 하고 힘써 붙들기도 하여 비록 어린아이와 부녀자라도 하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뻔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충신이고 의사들이란 공연히 한 손으로 하늘을 버티다시피 하고 보니 이 어찌 억지 놀음이 아니며 또 어려운 일이 아닐까 보냐.

 

p363 천하를 얻을 수 있는 위엄과 무력이라도 한낱 지사의 절개를 꺾지는 못한다. 이야말로 지사 한 사람이 버티는 절개가 백만 명의 군대보다 강한 것이요, 만대를 통하는 떳떳한 도덕과 규범은 당대에 한 나라를 차지하는 것보다도 더 소중할 것이매 이 역시 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나라를 얻은 임금이 충분한 자신을 가지고 천자의 지위를 얻었다면 이것을 하늘의 명령으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힘으로 얻었다고 볼 것인가? 하늘이 이미 천자의 지위를 명령하였고 자신의 힘을 들이지 않았다면 역시 자신에게 천하의 책임을 맡게 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천하로써 자신의 이해에 이용하라는 것일까? 하늘이 이미 자신으로써 천하에 이익을 주고저 할진대 천하에 이익을 주는 방법은 역시 어떤 원칙이 있을 것이니, 그것은 자신이 하늘의 명령을 받아서 도탄 속에 든 만백성을 구해 낼 따름이다.

그러매 무왕이 주 임금을 정벌한 것은, 무왕이란 개인이 이를 정벌한 것이 아니라 즉 정의를 가지고 무도한 자를 정벌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당히 천하를 차지하고서도 무왕은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대하여 의심이 없었고, 천하에 대하여는 ‘나’를 없애고 ‘도’가 있는 곳을 따라 나아갔을 뿐이었다.

도를 찾아간다는 것은 그것이 천하에 이익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p364 아아! 천하의 흥망이란 운수가 없지 않지마는 전조의 유민으로 문 상승 같은 자가 배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p365 백이의 성격이나 이윤의 책임감, 그것이 곧 선생이 택할 길이다. 여릉의 백 묘쯤 되는 밭을 뗴어 주고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면 녹봉을 주지 않아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흥! 농부의 복색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지망이나 백마를 타고 동으로 가는 의미나 같을 것이다. 예악이란 것은 언제나 사람이 응당 지킬 바 도덕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생의 뜻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어찌 몰랐을까?

 

p369 비록 낙제한 과목이라도 꼬누는 법이 친절하여 작자로 하여금 똑똑히 낙제한 이유를 알도록 하였다. 정성스럽고 간절한 태도는 선생과 제자 사이에서 일깨우고 가르치는 태도 그대로이다. 큰 나라 시험장 제도가 엄격한 점과 고시하는 법이 자세하고도 주의 깊은 점은 과거 보는 자로서 넉넉히 유감이 없도록 해 놓았다.

 

앙엽기

p375 그러나 내가 유람한 곳이란 겨우 백분의 일이나 될까. 때로는 우리 역관들이 말리기도 하고, 때로는 들어가기 힘든 데를 다투어 가면서 모처럼 들어가면 바쁘고 총총하며 그저 시간이 부족하였다. 창건된 역사 같은 것은 비석 같은 것을 상고해 보지 않고는 어느 시대 어느 절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겨우 빗돌 한 개만 읽는 데도 언뜻 몇 시간씩 보내게 되므로 호화스러운 궁전들의 구경도 주마간산이 되고 보니 심신이 함께 피로해지기만 하고, 사지가 맥이 풀려 언제나 꿈에 본 것만 같고, 눈은 신기루나 본 듯 희미하게 거꾸로 기억되며 명승고적은 틀리는 데가 많았다.

돌아와서 기록했던 것을 수습해 보니, 종이쪽이 나비 날개폭이나 될까 하면 글자는 파리 대가리만큼씩 한데, 모두가 그 바쁜 통에 빗돌을 열람하고 대충 베낀 것이다. 드디어 이것을 엮어서 ‘앙엽기’라고 한다. ‘앙엽’이란 말은 옛날 사람이 감 잎사귀에 글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모았다가 기록했다는 고사를 본받아서 한 말이다.

 

p378 슬프다! 충시노가 의사란 나라가 망해 엎어진다 해서 조금이라도 그 간결한 충군 애국심을 늦추지 않고 본즉 진실로 천하 국가를 위하는 근본은 오로지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는 것이다.

만일 대의가 밝지 못하고 보면 비록 영토가 만리나 되더라도 오히려 천하 국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런 대의를 앞세운다면 비록 조각배 속에서라도 천하를 태평케 하는 정치의 원리는 미상불 준비되었다고 볼 것이다. 밥이 없으면 죽고 군사가 없으면 망하지마는, 성인은 오히려 죽고 망한 뒤에라도 신의를 지키고저 했다. 더구나 당시에 있어 문 승상은 밖에서 군사를 맡아보고 등광천은 안에서 군량을 맡아 감독하고 있는 그때이니 만큼, 배 가운데 있는 조정이라도 오히려 법도만은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이다.

 

p390 천경사天慶寺

공상전 복판에는 한 치 나마 되는 금부처 수천만 개를 주렁주렁 쌓아서 큰 부처를 만들었으니, 눈매는 산 사람 같고 이마 주름살이나 옷 주름은 모두 꼬마 부처들을 가로 모로 세우고 눕혀서 마치 그림 붓으로 그린 듯이 만들었다. 이 같은 정성과 기술이라면 건축 이룩에 있어서나 단청이 화려한 데 있어서 무슨 어려움이 있을 것인가.

 

p394 자신들이 몸소 물건을 선택하면서 오가는 데 있어서도 역시 그들의 소박하고 솔직한 데를 볼 수 있었는바 이래서 중국 사람은 저마끔 물건을 감상할 줄 안다.

 

p397 명나라 초굉이 지은 묘비문과 명나라 동기창의 글씨도 세상에서는 다시없는 두가지 명물이라 한다.

 

동란섭필

p419 화신은 방금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으므로 황제는 역시 말하기를,

“화신은 나를 사랑하는구나. 제 집 일은 잊어버리고 내게만 끌어다 바치는구나.”

했다는 것으로 보아 황제는 장차 반드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온 천하를 가지고 있어도 이런 진주 포도가 없었는데 화신은 대체 어디서 이것을 얻었을가?”

화신도 아슬아슬할 일이다.

 

p422 ‘강’과 ‘하’는 맑고 탁한 것으로 구분할 것이다. 내가 압록강을 건널 때 강 넓이는 한강보다 넓을 것이 없으나 물이 맑기는 한강에 비할 만하다. 북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물을 십여 차례나 건너면서 때로는 배로 건너고 때로는 말을 타고 건넜다. 건넜던 물 이름들은 혼하, 요하, 난하, 태자하 등 물은 어디고 누런 흙탕물이었다. 대체로 들녘 물은 탁하고 산협 물은 맑다.

 

p425 <<대당신어>>에,

“당나라 이습예는 성품이 검소하고 독서를 좋아하여 베낀 책이 수만 권이나 되었다. 그는 자제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재물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이토록 가난하다. 그러나 서울에는 황제가 주신 열흘갈이 밭이 있어 밥은 먹을 만하고, 하남 지방에는 뽕나무 천 주를 심어 두어 옷을 입을 수 있고, 책 만 권을 베껴 두었으니 넉넉히 벼슬자리를 구할 만하다. 너희들이 함께 이 세가지 일에 근면하다면 어찌 다른 이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것인가? 하였다.”

했는데, 나 역시 성질이 재물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다. 그러나 평생에 베낀 책을 점검해 보면 불과 열 권도 되지 못하고, 연암 골짝에 손수 심어 둔 뽕나무가 겨우 열두 포기로서 긴 가지라 해도 겨우 어깨노리에나 닿을까. 나는 서글픈 한숨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에 요동벌을 지나오면서 끝없는 뽕밭이 무연히 펼쳐졌음을 보고는 또다시 정신만 얼떨떨해졌다.

 

p441 불교나 노자의 교지는 심성의 근원과, 선악의 감응과, 이기의 근본에 두고 있다. 예로부터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삼

강오륜에 근본을 두었다. 사업상에서 표준한다면 이 두 교리는 예악과 법률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혹 도리와 교화에 방해가 될까 봐 현철한 임금들은 이 교들을 멀리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 두 교가 사람의 본성에 어긋난다고 하여 이를 없앴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다 .

근자에 나에게 은밀히 불교를 독설로 비방하면서 중들을 전부 속인이 되도록 조치하라고 청원하는 자가 있으나, 내가 걱정하는 것은 비록 한 지아비, 한 지어미라도 저들이 생활할 자리를 얻지 못할까 하는 점이다. 지금 그들의 사정도 들어보지 않고 속인으로 만든다면 생활할 자리를 얻지 못하는 자가 수백만 명이 될 뿐만아니라 대체 중들이란 홀아비, 과부 같은 고독한 자들로서 모두가 불쌍한 자들이다.

 

p442 법이 공평하지 못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고 주장하는 이론이 공평하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타이르는 바이다.

 

p447 갑자기 난리를 만나면 남녀 없이 낭패를 하여 찾는 곳이란 심산궁곡의 바위 굴속 같은 데를 찾기가 일쑤다. 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양식을 운반할 수 없어 반드시 먼저 굶어 죽을 터이니 이것이 첫째 어리석음이요, 군사도 못 보고 범이나 산짐승에게 욕을 볼 것이니 이것이 둘째 어리석음이요, 바깥 세상 소문이 끊어지고 보매 갈 곳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셋째 어리석음이요, 나무 수풀과 안개 이슬 틈에서 먼저 병이 들 터이니 이것이 넷째 어리석음이요, 만일에 도적 떼라도 만나면 속절없이 약한 자가 털릴 터이니 이것이 다섯째 어리석음이다.

 

p448 몸을 멀리 풀숲 속에 숨기고 개굴창 속에서 산다는 것은, 차라리 살아서 충신이 되고 죽어서 외로운 귀신이 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p454 나는 역사를 읽을 때 여기까지 와서는 미상불 의분을 참지 못했다. 명나라 중엽에 와서는 조금 군법을 늦추었으나 사정에 따르고 숨겨 끝내 드러내어 표창하지 못했으므로 충신과 의사들의 옳은 행실은 오랫동안 신원을 못하였으니, 실로 불쌍하고 답답한 일이다. 대체 전조를 혁명할 때 우리에게 항거한 자까지도 그들의 충성을 생각하여 특히 표창해 주었는데, 더구나 건문 시대 여러 신하들은 불행히 내란을 당하여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고 자기를 희생하여 의리를 지켰거늘, 어찌 이를 그대로 사라지도록 묻어 둘 것인가?

이들에게도 마땅히 한목으로 시호를 하사하여 어둠을 헤치고 광명한 길을 밝혀야 할 것이다. 정도를 구별하여 시호를 내리는 일은 앞서 지시한 대로 태학사 등에게 맡겨 한목으로 자세히 조사하고 협의를 거쳐 나에게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충성을 장려하고 절개를 숭상하는 나의 지극한 뜻에 맞도록 할 것이다. 그리 알아 실행하라.

 

p461 숭정 말년에 공의 아들과 여백, 여매의 아들들이 조선으로 탈출해 온 것ㅇ느 그 부형들이 조선에서 큰 공로를 세웠고, 본즉, 비단 묵은 은혜를 판 것만이 아니라 역시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제 고장으로 향하고 죽는다는 뜻일 것이다.

 

p474 중국에서는 겨울철 창문살에 종이를 붙일 때 유리 조각을 사용하여 인물과 화초 그림 그린 것을 물린다. 안에서 밖을 볼 때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죄다 보이게 되고, 밖에서 안을 볼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원래 송나라 때 구양초의 ‘어가사’라는 시에 나오는 꽃 창문이다. 연로의 저자에서 채색 그림을 그린 유리를 파는 자가 매우 많은데, 이것이 모두 창문살에 물리는 것이다.

 

p474 명나라는 270년 동안 세 가지 기이한 일이 있었는데, 태조 고 황제는 중으로 몸을 일으켰고, 건문 호아제는 중으로 늙었고, 숭정 황제는 머리를 풀고 나라를 위해 죽었다는 것이다.

 

p480 사람이란 너무 아는 척하여 함부로 책에 서술할 것은 못 된다.

 

 

3. 내가 저자라면

<<열하일기 中>>을 읽을 때는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가 많았다. 하지만 下를 읽을 때는 뽑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유는 사실을 많이 나열했고, 구경가는 곳에 비석들에 새겨진 글을 베껴온 것을 잘 정리 정돈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역사적 가치와 소장 가치는 있지만, 무찔러드는 글귀를 뽑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연암을 따라 중국 열하를 여행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16시간 동안 이야기 한 것을 다 기록해 놨다는 것에 놀랐다. 여행기란 이렇게 써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 자세하고, 자신의 그때 감정 묘사도 탁월하다. 내가 여행을 간다면 연암처럼 기록하고, 그 지방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 과학, 문학, 정치, 역사를 아우르는 지식 및 질문들이 많았기에 적절한 상대를 만났을 때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행기가 아주 풍성하다. 단순한 느낌 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목차와 뼈대는 조금 아쉽다. 특히 下권은 이것저것 다 모아 묶어 놓은 느낌이다. (물론 그렇다고 밝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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