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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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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9일 09시 44분 등록

열하일기(, )

* 박지원 씀, 리상호 옮김, 보리, 2004.11.15

 

1. ‘넓고 깊은 산(저자에 대하여)

연암.JPG

■ 연암 박지원 (1737~1805)

 

박지원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허위의식에 빠진 세태를 비판하였다. 그는 또한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의 선두 주자였다.

 

정치적 불운 속에서 찾은 은둔의 여유, 연암에 정착하다

박지원의 청장년 시절은 그리 유쾌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서울 반송방 야동(지금의 중구 순화동과 의주로 2가 일대)에서 태어나 삼청동 백련봉 아래 이장오라는 인물의 별장에서 세들어 살았고 얼마 뒤에는 백탑 인근으로 이사하였다가 다시 백탑 서쪽 전의감동으로 옮기며 생활해야만 하였다. 그가 20~30대에 [양반전]이나 [예덕선생전]과 같은 세태를 비판하는 작품을 집필하게 된 것도 이런 생활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당시 탑골을 무대로 활동하던 이서구나 이덕무, 유득공 등을 만나 교류한 것이 기쁨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대대로 서울에서 살던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난 박지원이었지만, 그 당대에는 별로 여유로운 삶은 아니었던 듯하다. 한때 생원진사시에서 장원을 하며 촉망받던 재원이었던 박지원은 끝내 과거를 포기하고 1771(영조 47) 황해도 금천의 골짜기인 연암골을 찾고는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였다. 박지원의 호는 여기서 유래하였다. 이같은 박지원의 청장년 시절의 삶은 선조들의 청렴한 삶과 유람을 즐기는 그의 생활관에서 연유한 것이지만, 그밖에도 당시 실력자 홍국영과의 불화도 한 몫을 하였다.

 

박지원이 연암골에 정착하기 직전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유언호는자네는 어쩌자고 홍국영의 비위를 거슬렸나. 자네에게 심히 독을 품고 있으니 무슨 화가 미칠지 모르겠네. 그 자가 자네를 해치려 틈을 엿본지 오래지만 자네가 조정의 벼슬아치가 아니라고 늦추어 온 것 뿐이라네. 이제 복수의 대상이 다 제거되었으니 다음 차례는 자네일 걸세. 자네 이야기만 나오면 그 눈초리가 심히 험악해지니 필시 화를 면하기는 어려울 걸세. 이 일을 어쩌면 좋겠나? 될 수 있는 한 빨리 서울을 떠나게나”(이종묵, [조선의 문화공간]에서 재인용)라고 권하였다는 것이다. 유언호 이외에도 정조의 역작인 [무예도보통지] 편찬 실무를 주관하였던 친구 백동수도 이처럼 권하였다. 사실 당시까지도 이렇다할 정치적 활동이 없었던 박지원이었기에 홍국영과 직접적인 마찰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정조 즉위 초 홍국영을 중심으로 정조의 적대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1776(정조 즉위년) 11월 기장현에 유배된 심종질인 박종악의 활동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때 박종악이 유배된 것은 정조와 홍국영에 의해 1차 제거 대상이었던 홍인한정후겸과 밀착되었다는 이유였다. 이를 통해서 유추해본다면 박지원 가문이 이들과 밀착된 것이 아마도 홍국영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했던 요인이 아닐까 한다.

 

‘북벌’에서북학으로, 열하일기의 집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를 경험한 조선에서는 북벌론이 팽배하였다. 후금, 후일의 청나라 황제에게 조선을 대표하던 국왕 인조의 굴욕적인 항복은 조선의 사림들에게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항복 후 형식적으로는 사대 외교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비를 증감함과 동시에 이른바소중화론을 내세우며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청에 대한 북벌을 준비하였다. 북벌은 한동안 조선의 정치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8세기 중반을 넘기면서 서서히 북벌의 이념은 점차 퇴색해가고 그 자리에 북학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당장이라도 멸망할 것 같은 청나라가 멸망은커녕 오히려 중국의 주인으로 굳건하게 자리잡은 뒤 정치적 안정뿐 아니라 문화적 발전을 이룩해가는 상황과도 관련되었다. 이제 청나라는 정벌해야 할 대상에서 배움의 대상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같은 해 6월 압록강을 건넌 뒤 북경을 거쳐 열하, 그리고 다시 북경을 거쳐 10월말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약 5개월여의 기간 동안 박지원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열하는 건륭황제가 별궁을 건설하면서 북경에 버금가는 청나라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박지원은 사행 기간 동안 청국의 학자를 비롯해 몽골과 티베트 사람까지 접하면서 그들의 학문과 문화를 접하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몇 년의 작업 끝에 그동안 오랑캐로만 치부하였던 청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상을 소개하며 북학론을 개진한 역작 [열하일기]를 발표하였다. [열하일기]는 내용에서뿐 아니라 그 문체에서도 당시로써는 파격적이면서 직접적이고, 해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체반정의 대상이 되다

 

[열하일기]를 발표하면서 주가를 올리던 박지원은 이어 친구인 유언호의 추천으로 선공감 감역에 제수되면서 벼슬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평시서 주부와 사복시 주부, 의금부 도사, 사헌부 감찰, 한성부 판관 등을 거쳐 1791(정조 15) 경상도 안의현감에 제수되었다. 안의현감에 재직하던 1792년 뜻밖의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다름 아닌 규장각 직각 남공철의 서신이었다. 이때 남공철이 편지를 보낸 것은 국왕 정조의 명에 따른 것으로,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문체가 바르지 못하니 이를 반성하라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는 중앙의 조정에서 국왕 정조에 의해 문체반정(文體反正)이 추진되던 시기였다. 문체반정이란 당대 과거시험지를 비롯해 지식인들의 일부 저술에 보이는 문체가 잘못되었다고 하여 그 문체를 단속해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바로 문체반정의 주 표적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후일 김택영(1850∼1927)이 찬술한 [박연암선생전]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열하일기]가 발표되자 이를 얻어 본 국왕 정조는 1792(정조 16) 남공철을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근래 신기한 것만을 따르는 문체의 주범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라고 하면서 남공철로 하여금 편지를 보내도록 해서, 속히 문체의 잘못을 인정하고 순정하게 수정한다면 관직 제수도 마다하지 않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중죄로 다스릴 것이라고 전하도록 한 것이었다. 남공철의 편지를 받은 박지원은 자신의 문체가 잘못되었다는 속죄의 편지를 보냈으며, 이를 받아 본 정조는 그의 문재(文才)를 칭찬하며 더 이상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였다.

 

현장에서 실현된 북학 정신

 

한때 정조의 문체반정 대상이기도 하였던 박지원은 그가 평소 저술에서 강조하였던 북학의 정신을 직접 현장에서 구현하는데 주력하였다. 안의현감으로 재직하던 당시 고을 내 노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어 효의식을 고양시키고, 옥사를 관대하게 처리하였으며, 백성들의 구휼에도 주력하였다. 그는 뿐만 아니라 각종의 수차나 베틀, 물레방아 등을 제작하여 사용하게 하였고, 하풍죽로당이나 연상각, 공작관 등의 중국식 건물을 지었다. 중국 사행길에서 보고 들었으며, 자신이 [열하일기]에 기록한 중국의 실용적인 문명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1796년 안의현감에서 물러나 군직(軍職)을 받고 상경한 박지원은 이후 계산동(오늘날의 종로구 계동 일대)에서 생활하던 중 역시 벽돌로 총계서숙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제용감 주부와 의금부 도사, 의령 령 등을 거쳐 1797년 면천군수에 제수되었다. 면천군수에 재직하던 1799년에는 농서를 구하는 교지에 응하여 농서인 [과농소초]를 지어 올렸다. [과농소초]는 그가 금천의 연암골에서 생활하던 당시 경험에 바탕한 농서로써, 여기에 그가 후일에 찬술한 [한민명전의]를 첨부하여 올린 농서였다. [과농소초]에서 박지원은 중국 농법의 도입 및 재래 농사 기술의 개량을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첨부한 [한민명전의]에서는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한전론(限田論)을 제안해, 심각한 토지 소유의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하였다. 박지원은 결국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허위의식에 빠진 세태를 비판하면서,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의 선두 주자였다고 하겠다.

 

박지원이 후배 박제가의 북학의에 대해서 지은 서문이다. 통렬하다.

 

“우리를 저들과 비교해 본다면 진실로 한 치의 나은 점도 없다. 그럼에도 단지 머리를 깎지 않고 상투를 튼 것만 가지고 스스로 천하에 제일이라고 하면서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산천은 비린내 노린내 천지라 나무라고, 그 인민은 개나 양이라고 욕을 하고, 그 언어는 오랑캐 말이라고 모함하면서, 중국 고유의 훌륭한 법과 아름다운 제도마저 배척해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장차 어디에서 본받아 행하겠는가. …(중략)…남들은 물론 믿지를 않을 것이고 믿지 못하면 당연히 우리에게 화를 낼 것이다. 화를 내는 성품은 편벽된 기운을 타고난 데서 말미암은 것이요, 그 말을 믿지 못하는 원인은 중국의 산천을 비린내 노린내 난다고 나무란 데 있다.”

 

2. ‘熱河日記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열하일기 ,

 

태학관에 머물면서

전편을 이어서 89일 을묘일부터

8 14일 경신일까지 6일 간.

 

□ 기억력이 노둔하고 보니 (p. 23)

 

Ü 늙고 둔해졌다는 말이겠다. 새로운 표현을 봤다.

 

□ 우물에 빠진 모수가 있는가 하면 좌중을 놀라게 한 진공이 있다. (p. 27)

 

Ü 모수와 진공의 고사는 이름은 같고 사람은 다른 경우를 말한다.

 

□ 달이 이토록 좋은 밤에 아니 마시고 무엇하랴, 언뜻 가만히 따라 한 잔 가뜩 부어 마시고는 촛불을 불어 끄고 뛰어 나왔다. (p. 29)

 

Ü 달아오른 밤에 취기에 달아올라 뛰쳐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그 기운.

 

잘 들지 않는 톱으로 나무 켜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두덜두덜 누구를 원망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p. 29)

 

Ü 감정의 소리들, 북조선 언어의 풍경은 이리도 풍요롭다.

 

□ 애닯다. 좋은 이 밤 달 아래, 같이 놀 님이 이토록 없다니 이럴 녘에 어쩌면 우리 권솔들만 저렇게들 쿨쿨 잘꼬. 도독부 장군님도 잠들었구나. 에라! 나도 방으로 들어가 숫제 베개를 베고 나뒹굴어질거나. (p. 30)

 

□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 三拜九印禮 (p. 33)

 

Ü 광해를 폐위한 인조는 죽어가던 왕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청으로부터 삼전도 굴욕을 당한다. 남한산성 천도를 불사하고 항전하였지만 끝내 한 나라의 왕이 치욕을 보인다.

 

□ 우리나라가 비록 바다 한 구석에 붙어 있지마는 네 가지를 자랑할 만합니다. 유교를 숭상하는 것이 첫째요, 홍수가 없는 것이 둘째요, 고기와 소금을 딴 나라에서 가져오지 않는 것이 셋째요, 여자가 개가를 않는 것이 넷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 36)

 

Ü 사실 어느 자랑스러운 건 없다. 나에게는.

 

전족의 내력

남당때 포로로 붙들려 온 장소랑이 송나라 공중에 한번 들어오자 송나라 궁녀들은 서로 다투어 가면서 장소랑의 자그마한 발 맵시를 본떠 저마끔 천으로 꽁꽁 동여 외씨 같은 발 맵시가 아주 풍습이 되고 말았지요. 원나라 시절에는 한족 여자들이 작은 발 맵시로 그들의 표적을 삼았고 명나라 시절에는 이를 법으로 금했으나 시행이 못 되고 보니 오랑캐 여자들이 한족 여자들의 전족을 음탕한 것이라고 비웃는 것은 좀 원통한 일입니다. 이것은 소위 발이 당하는 재액이지요. (p. 40)

 

Ü 중국 여성 아픔의 내력이다.

 

□ 망건 (p. 41)

 

Ü 남자들의 족쇄였던 망건은 명나라때부터 시작되었다.

 

□ 아미리샤 왕 (p. 43)

 

Ü 아메리카를 말한다.

 

□ 소위 상승이라 하는 중은 서번 나라의 승왕으로서 별호는 반선이라 하고 또 장리불이라고도 한다. 중국 사람들이 다 존경하고 믿어 활불이라고 한다. 제 말로는 마흔 두 번째 세상에 태어났는데 전생에는 중국땅에 많이 태어났더라고 하며 나이는 마흔 세 살이다. (p. 46)

 

Ü 황금으로도 된 절을 지어 상승을 수행에 전념하게 한 것은 그곳에 가두어 나오지 못함이다. 청은 서번 나라, 인도 지역의 사상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 신선은 허리띠를 풀고

공경은 웃옷을 끄르네 (p. 51)

 

□ 내가 술을 한꺼번에 따라 단숨에 들이마셔 버리니 여럿이들은 서로 저마끔 얼굴을 쳐다보면서 깜짝들 놀랐다. 아마도 내가 술을 본때있게 마시는 것을 보고 놀랍게 여기는 모양이다. (p. 53)

 

Ü 멋지다. 연암이 이 일 이후 좌중이 그를 지나치게 추앙하고 받들자 그는 등에 식은 땀을 흘린다.

 

□ 술자리 수수께끼로서 대문 앞을 지나도 들른 적이 없었는데 일흔 살에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등에 식은 땀이 흐를 지경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원래 웃을 참지 못하고 사흘을 두고 허리가 휘도록 웃은 일이 있었다. (p. 53)

 

글은 말을 다 할 수 없고 그림은 뜻을 다 할 수 없다. (p. 58)

 

□ 국왕은 평안한가? (p. 61)

 

Ü 황제의 한 마디다. 그의 말 한마디에 세상은 뒤엎어지고 바로 선다. 식은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 이날 밤 달은 찢어지게 밝아 기공과 함께 명륜당으로 나가 난간 아래를 거닐었다. 나는 달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달의 몸뚱이는 언제나 둥글어 햇빛을 빙 둘러 받고 보니 이 때문에 지구에 본 달은 찼다가 기울다가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밤 저 달을 온 세계가 한목으로 본다고 치면 보는 장소에 따라서 달은 살찌고 여위고 깊은 옅음이 있지 않을까요?

해와 땅과 달들은 모두 허공에 둥둥 뜬 별들이 아닐까요? (p. 69)

 

Ü 신곡에서 단테는 달을 언급하며 신의 존재를 설명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달 표면의 검은 자국에 대해 신학적 분석을 내어 놓는다. 위 문장은 그 결론이며 태양은 만물에 고루 비치지만 각자가 받아들이는 아량과 그 조건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태양의 빛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고 설명한다. 결국 만인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모두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거다.

달의 여신은 디아나고 그녀 어미는 라토나다. 신곡 천국편의 첫째 하늘이 월천이다.

 

그런데 연암의 말 대로 참 궁금하다. 어떻게? ? 이 무거운 행성들이 허공에 뜰 수 있는 것일까? 물리학은 그것을 퍼텐셜로 이해하고 있을까.

 

그러면 해와 달은 원래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요, 또 오고 가고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땅이 움직여 돌지를 않고 언제나 한 자리에 박혀 있다고 너무 믿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 아닐까요? 명백한 이론을 찾지 못한 즉 이 땅의 춘, , , 동을 가리켜 그 방위를 따라 논다고 해 버렸으니 결국, 논다는 것은 나가고 물러서고 하는 것을 말함이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미 논다고 할 바엔 차라리 돈다고 함이 어떨까요? (p. 71)

 

만약에 이렇다면 저 허공에 달린 별과 은하는 기운 대로 돌다가 무엇 때문에 떨어져 쏟아지들 않고 그대로 있을까요?

움직이지도 않고 돌지도 않는다면 생명 없는 죽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어째서 썩지도 부서지지도 흩어지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견딜까요? (p. 72)

 

Ü 연암은 신을 이야기 하려는가.

 

만약에 달에도 세계가 있다면 오늘 이 밤에 두 명의 달 세계 사람이 난간 머리에 마주 서서 달빛 아닌 땅 빛이 차고 기우는 이야기를 아니 한다고 누가 알겠습니까? (p. 73)

 

Ü 스케일 보라. 연암의 우주적 시선은 월천을 향하고 있다. 단테의 천국포개어진다. 12세기 단테, 18세기 연암, 21세기 우리는 필멸의 운명을 같이하는 우주적 존재다.

 

□ 홍대용이란 친구가 있는데 호는 담헌입니다. 학문을 좋아하되 하나에 얽매이지 않아 일찍이 나와 함께 달구경을 하면서 장난삼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p. 73)

 

Ü 연암과 홍대용, 홍대용과 다산, 다산과 추사, 추사와 황산

 

□ 실상 내가 연암에 가서 살게 된 것은 일찍부터 목축에 뜻을 두었던 때문이다. 내가 일찍부터 말했지마는 우리나라가 이토록 가난한 탓은 대체로 목축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한 까닭이다. (p. 78)

 

Ü 카우보이 연암.

 

말 등에 실린 짐이 이토록 무겁고 보니 말은 짐을 피하듯이 빨리 안 달릴 수 없이 되어 먹었고 말이 달릴수록 짐이 점점 더 누르기 때문에 말이 죽지 않으면 병든다는 말도 이 까닭이다. (p. 80)

 

Ü 말의 인생을 사는 우리들을 포개어 보자. 이 눈물겨운 생로병사를 상기해 보자. 누르면 눌려지고 밀면 밀리고 차면 채여 버리는 자극에 반응 없는 이 삶을 떠올리자. 땅에 떨어진 빵을 주으려 쏟아지는 발 세례를 견디며 팔을 뻗어내는 거지의 모습을 상상하자. 말의 생과 우리의 생이다.

 

□ 목마른 고통은 배고픈 고통보다 심한 법이다. (p. 82)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서

8 15일 신유일부터 8 20일 병인일까지 6일간

 

천 백 년을 두고 몇몇 사람이 또다시 이곳까지 올는지 모르겠지마는 나는 이번 걸음에 뜻하지 않은 여러 곳을 지나오면서 옛 사람들이 먼지를 휘날리며 지나간 수레와 말발굽 자국이 눈에 삼삼한 듯하고 보니 어허, 인간 세상살이가 이토록 앞일을 짐작 못할 만큼 덧없을까. (p. 97)

 

Ü 연암 사후 20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 글로 여전히 삼삼하고 나는 그를 생각하며 삼삼해진다.

 

□ 대체로 이 관은 옛날부터 전장터로 세상이 한번 흔들흔들하면 백골이 산더미로 쌓이는 곳이다. 이야말로 범 아가리 호북구라고 부를 만도 하다.

너무나 높으면 무너지는 것은 세상 이치일 것이다. (p. 109)

 

Ü 무너지면 다시 세워지리라. 버리면 다시 채워지겠고

 

□ 물이 역류로 흐르는 것을 홍수라고 하는데 홍수는 곧 洪水.

 

Ü 洚水 : 물이 벅차게 흐르는 모습, 물이 넘치는 모습

洪水 : 큰 물

 

□ 소동파의 아우 소철의 시를 새겨 놓았다.

 

헝클어진 산 속에

길도 없다 했더니

오솔길 굽이굽이

개울 끼고 감도네.

 

흥주의 동쪽이요,

봉주 서쪽이건만

꿈 속에 촉도를

찾는 듯만 하여라 (p. 112)

 

너희 나라가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하늘같이 높아 너는 무서울지 몰라도 내사 무서울 것 없다. 관운장이 다시 살아오고 마른 날에 벼락이 떨어져도 무서울 것 없다. (p. 113)

 

Ü 그래, 모두 필멸의 존재다. 무서울 것 무엇 있는가. 쫄지 마라. 어떠한 권위도 존재를 넘어서지 못한다. 비록 세상이 어리석어 너를 권위로 누르더라도 너는 꿋꿋하라.

 

□ 춘추 시절에는 종리땅 여자가 초나라 여자와 뽕나무로 해서 다툰 사단이 드디어 두 나라의 전쟁에까지 이르렀다. 이 일을 서로 비교해 볼 때에 몇 알 오미자는 성인이 말한 한 타의 팃검불보다도 벌써 많다고 할 것이요, 옳고 그른 논쟁은 초나라 여자의 시비에 다름이 없을 것이다 (p. 116)

 

Ü 식은 밥 하나에 훗날 사람을 구하여 보답하고 뜨거운 국물을 주지 않아 훗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 우리나라 작은 배는 거루라 하고 나룻배를 나로라고 하고 큰 배를 만장이라 하고 짐을 실어 나르는 배를 송풍배라 하고 바다로 다니는 배를 당돌이라 하고 상류에 다니는 배를 물웃배라 하고 관서 지방에서는 배를 가리켜 마상이라고 한다. 제도들은 각각 다르지마는 단지 한 글자로 선이라 할 뿐이다. (p. 120)

 

Ü 오늘날 수많은 분화된 배들은 이미 옛말이 있었구나.

 

대체 학문이란 것은 신중히 생각하고 사물을 밝게 분별하고 자세히 묻고 넓게 안다는 것이다. 덕성만을 가지고 함부로 추어올릴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묻고 배움과 연결시킨 것이다. 우 임금 같은 이가 착한 말을 하는 자에게는 절을 하고 촌음을 아꼈던 것과 안자의 허물을 반복하지 않으며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 행위 쯤으로는 아직도 그 심성이 완전하다고 평할 수 없을 터인바, 이는 그들이 학문하는 극치에서 볼 때 아직도 객기가 있기 때문이다. (p. 123)

 

Ü 준열한 자기 검열이다.

 

주막집 버드나무에 말을 매고서 반가운 그대 만나 잔을 나누리 (p. 128)

 

Ü , 이 말을 써먹어야겠다.

 

□ 장일인은 일찍이 최씨네 집 술잔에다가

 

무릉 땅 성 안에도 최씨네 술은

하늘에야 있을망정 땅 위엔 한 집

 

구름과 노는 신선 말 술 마시고

흰 구름 잦은 골에 취해 누웠네 (p. 129)

 

Ü

 

□ 술 먹는 분량은 호들갑스러워 반드시 큰 중발로 이마를 찡그려 가면서 기울인다. 이것은 붓는 것이지 마시는 것이 아니요, 배를 불리자는 것이지 재미를 보자는 것이 아니다. (p. 130)

 

Ü 연암의 술 철학이다.

 

경개록

 

□ 오랜 벗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낯설기만 하고 우연히 마주한 이라도 마음이 통하면 오래 사귄 벗과 같다. (p. 137)

 

황교문답

 

Ü 황교는 서장 지방에서 성행하는 불교의 종파로서 라마교의 별칭이다. 본편에서 박지원은 이 허황한 사교의 내력에 대하여 비상한 호기심으로 그의 자료적인 지식을 섭렵하는 한편 당시 청국 왕조가 이 같은 사교를 정치 도구로 삼아 인근 이족들을 회유함으로써 자기의 봉건 통치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기밀을 폭로하고 있다. (각주)

 

□ 그 직위에 앉지 않으면 그 정치를 말하지 말라. 는 말은 자기 나라에 거주하는 자로서도 지켜야 할 도리인데 하물며 다른 나라일까 보냐 (p. 151)

 

□ 돈과 곡식은 나라의 허실에 관계된 일이요, 군대는 나라의 강약에 관계된 일이요, 산천과 지세는 관문과 요새에 관계되므로 이를 문답하는 것은 좋지 못한 것이다 (p. 152)

 

□ 명목은 피서라고 하지마는 실상은 천자 자신이 변방을 방비하고 있는 것인즉 여기서 몽고의 강한 품을 알 수 있을 것이다. (p. 152)

 

Ü 정치 아닌 것이 없다.

 

거울은 글자로 안 쓴 경전이요, 경전이란 구리쇠로 만들지 않은 거울 (p. 156)

 

Ü 아껴두고 써 먹자. 이 표현.

 

□ 만약에 활불처럼 자기의 전생 일을 알아 전생에는 자기 몸이 아무 데 아무개의 아들이고 이생에서는 이 몸이 아무 데 아무 성 가진 이의 아들이 되었다면 전생의 부모와 금생의 아비, 어미가 오늘도 아무런 탈도 없이 한결같이 자애롭게 역력히 다 알아보고 저마끔 아무개냐고 부를 터이니 이러고야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은혜롭게 생각할 것이며 슬프고 즐거울 것이 어데 있겠소? (p. 159)

 

□ 참말! 신라나 고려 시대에는 양반으로서 비록 똑똑한 사람잊리라도 불교 공부를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나라를 세운 지 4백 년에 양반으로서는 비록 멍텅구리일지라도 익히고 외우는 것이 공자뿐이랍니다. (p. 160)

 

Ü 불교를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가 나빠지는 것은 아닐 것이나 유교의 편협함 만을 내 세워 취한 조선 사회는 분명 퇴보하였음이 맞다. 다양성이나 사회적 포용력은 신라나 고려에 비해서 월등히 떨어졌으며 사고의 체계가 경직화 되어 사회 전체의 진보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 이기 (p. 163)

 

Ü 이기의 문제는 퇴계와 율곡도 한 차례 논쟁을 겪은 바 있다.

퇴계의 이기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가리키는 협의의 개념이었고 율곡의 이기는 사물의 근본법칙인 형이상과 사물의 형질인 형이하를 가리키는 광의의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 단지 황제의 칠순 경절을 경하하기 위하여 왔을 뿐입니다. (p. 166)

 

□ 라마는 무슨 종족인지요? 이것도 몽고의 딴 부족인가요?

아니외다. 라마란 말은 서번 말로 도덕이란 뜻인데 소위 라마라면 모두 중을 말하는 것입니다. (p. 172)

 

天子萬年樹, 장자가 봄이 삼천 년, 가을이 삼천 년이라고 한 나무 (p. 173)

 

□ 또 언젠가 활불은 황제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가 갑자기 남쪽을 향하여 찻물을 뿌렸다고 합니다. 황제가 놀라서 까닭을 물었더니 활불은 방금 칠백 리 밖에 큰 불이 나서 만 호나 되는 집이 불타고 있는 것이 보이기에 비를 좀 내어 주어 불을 잡는 것이라고 공손히 대답하더랍니다. (p. 174)

 

□ 저마끔 (p. 175)

 

Ü저마다’,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말

 

□ 저녁에는 형산을 찾아가서 법왕이 다른 데 태어나는 재주와 윤회설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형산은 말하엿다.

이는 몸을 되바꾸는 것이나 다름없을 뿐이오. 대체로 사람의 육신이란 바람과 비와 덥고 추운 데 치여서 머리털은 하예지고 살갗은 굳고 쭈그러들어 늙지 않을 수 없지요. 말하자면 절로 흙과 물과 바람과 불로 화해 버리지마는 소위 밝은 정신과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은 본래부터 젊거나 늙음이 없고 한 개비 장작불이 다 타면 다른 개비로 불이 옮겨 붙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천리 길을 가는 여행자와 같습니다. 세상에 누구도 먼 길을 간다고 해서 있던 집을 떠메고 가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숙소를 갈아 묵어 가면서 갈 것입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다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묵던 여관에 정이 들어 여기 떨어져 머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p. 182)

 

Ü 이 적절한 비유, 융은 윤회에 대해 어떻게 말했었나.

 

어딘가에서 이미 도달하게 된 의식성의 수준은 내가 보기에는 죽은 자가 도달할 수 있는 인식의 상한을 이룬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지상의 삶이 그토록 큰 의미를 지니며 사람이 죽을 때 저편으로 가져가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 모양이다융은 도달해야 의식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인간은 윤회한다고 믿는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 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 시방 조정의 정치 교화는 위로는 요 임금 시절의 본을 따서 교화가 미치는 데는 모두가 평화스러워 국경 밖의 정세는 항상 조용합니다. 싸우고 죽이고 침략하고 도적질하는 것은 서번의 풍속으로도 꺼리는 바인즉, 역시 황교란 것이 도리어 중국의 갸륵한 교화 정책에 만분의 하나라도 도움이 된다고 하겠지요. (p. 186)

 

Ü 정치를 위한 종교, 연암이 말하려는 핵심이다. 황교는 라마교다.

 

□ 이참에 내가 열하의 지세를 살펴보니 대체로 천하의 정수리 같아 보였다. 황제가 어정거리면서 북쪽으로 이 지방까지 온것은 다름이 아니다. 정수리 골통을 깔고 앉아 몽고의 삼멱을 틀어 잡을 따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몽고는 벌써 매일 같이 튀어나와 요동을 쥐고 흔들었을 것이다. 요동이 한 번 흔들리면 천하의 왼팔이 끊어지는 것이요, 천하의 왼팔이 끊어 지는 것이다. (P. 197)

 

Ü 요동이 그렇게 중요했는가.

 

반선시말 班禪始末

 

□ 서번은 옛날 삼위 땅으로서 순임금이 세 오랑캐를 삼위 땅으로 쫓아 버렸다.는 데가 바로 이 땅입니다. 이 나라는 셋으로 되어 있으니 그 하나는 위라고 하여 달뢰 라마가 있는 옛날의 오사요. (P. 211)

 

□ 반선은 과연 잘난 사람일까? 황금으로 지은 집은 오늘 황제로서도 거처할 수 없는 터에 저 반선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곳에 안연히 거처를 할까? (P. 215)

 

Ü 정치적 고립이다. 황제 치세를 위해 종교는 필요하고 그 영향력이 높아져선 안 되기에 존재를 부인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없애지는 못하는 고육지책이다.

 

찰십륜포 札什倫布

 

□ 막 햇빛에 번쩍이는 금기와를 보고 전각 속에 들어서 보니 집 안은 침침하고 그가 입은 입성은 모두 금실로 짰으므로 살빛은 샛노랗게 되어 마치 황달병 들린 자만 같았다. 대체로 누런 금빛깔로 뚱뚱부어 터질 듯이 꿈틀꿈틀 군지럽게도 살은 많고 뼈는 적어서 맑고 영특한 데가 없고 보니, 비록 까맣게 쳐다볼 만하고 앉은 덩어리가 방에 가득 찼으나 보기에 겁나 보이들 않고 멍청한 것이 무슨 물귀신 화상만 같아 보였다. (P. 221)

 

행재잡록 行在雜錄

 

□ 어허! 명나라는 우리의 형제 국가이다. (P. 231)

 

Ü 아비의 나라가 아니었나. 진 일보다.

 

□ 예부가 장 대사에게 주는 분부

조선에서 온 정사와 부사에게 열하에 와서 예식을 치르도록 하라. (P. 235)

 

Ü 황제의 말은 어찌 보면 같잖고 어찌 보면 기품 있다.

 

□ 길이 공순하면 절로 복을 얻을 것이다. (P. 237)

 

□ 다만, 한때 황제를 기쁘게 할 자료만 필요로 하여 스스로 위를 속이는 죄를 범하고 외국의 멸시를 달게 취하고 있다. (p. 244)

 

Ü 이 모습 자주, 아주 자주 보고 있다. 모든 상하 관계의 조직은 모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세편 審勢編

 

□ 사신에 임명된 자는 응당 관리들과 접견하는 데 일정한 예절이 있는 터인데 공석에서 절하고 읍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걸핏하면 이를 모면코저 하는 것이 드디어 버릇이 되어 (p. 249)

 

Ü 부담이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것이다.

 

□ 그 예절을 보아 정치를 알고 그 음악을 듣고 도덕을 알 수 있으니 이 진리는 백세를 지난 뒤에 백세 이전의 왕을 비교해 보아도 틀리지 않다. (p. 252)

 

□ 십철 十哲 (p. 253)

 

Ü (각주) 공자의 사당에 합사하는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특별 취급을 받는 우수한 열 명의 제자

 

□ 엄계 꽃나무 아래 몇 잔 술을 마시면서 망양록과 곡정필담을 뒤적거리다가 이내 꽃이슬에 붓을 적시어 이 글을 쓰다. (p. 257)

 

망양록 忘羊錄

 

□ 악기는 말하자면 골짝과 같고 소리는 말하자면 바람과 같을 터인데 골짝을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친다면 바람 자체는 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p. 266)

 

Ü 연암은 무생물에게 감정을 넣거나 유사한 다른 무생물을 찾아 비교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잘 들지 않는 톱으로 나무 켜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두덜두덜 누구를 원망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 그 곡조의 정취가 달라지고 듣는 자가 달라지는 데 따라 때로는 음이 격앙하였다가 소침하였다가 하는 변화가 생겨 비로소 음악의 고금이 달라지고 (p. 267)

 

Ü 화음과 음률이 모두 이와 같다. 동서양을 가를 것 없다.

 

□ 소리가 난다는 것은 다 칠정을 거쳐 나는 것입니다. 또 변궁, 변상, 변각, 변치, 변우 소리가 있습니다.

오음에는 선과 악이 있을까요? 궁음같이 넓고 크고 깊고도 우람찬 소리는 선이요, 상음같이 급하고 빠른 소리든지 처음같이 빠른 소리는 전하지 못하다는 말씀이외다. (p. 269)

 

Ü 이 질문을 보아라. 그 답이 있건 없건 맞건 틀리건 상관없다. 이 멋진 질문만 보아라.

 

백성들이 즐거워하여 한 가지 일이라도 무리가 없고 한 가지 물건이라도 억눌림이 없이 하늘과 땅 사이에는 어디나 평화로운 기운이 찰 대로 차서 음악의 지대한 효과는 이토록 대단했던 것입니다. (p. 277)

 

Ü 즐거우라고 태어난 삶이다. 노는데 빠지지 말고 다니면서 생을 즐기자.

 

□ 소소구성 (p. 278)

 

Ü 소소는 순 임금의 풍악으로서 그 풍악이 아홉 번 마치자 봉황이 와서 들었다는 고사 (각주)

 

□ 만약에 정말 오래 사는 이치가 있었다면 은나라, 주나라 부로들이 무엇 때문에 죽었을 것이며 한나라, 당나라 늙은이들은 오늘 어데 있는가? (p. 287)

 

Ü 필멸이다. 오직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는 필사의 존재를 넘어설 수 없다.

 

바람은 소리를 내지 않고 바다는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다. (p. 290)

 

Ü 좋은 표현

 

대체로 음악의 덕이란 계절 따라 나오는 벌레나 새에 비할 수 있고 음악의 재주란 시정에 비할 수 있고 음악의 사업이란 역사에 비길 수 있고 음악의 이름이란 시호에 비길 수 있습니다.

나는 물었다.

벌레와 새란 무슨 뜻일까요?

여치와 쓰르라미는 본래 같은 벌레요, 꾀꼴새와 황조는 원래가 한 새인데, 때에 따라 변화하여 우는 소리가 각각 다르다는 말씀이지요.

시정이란 무슨 뜻인가요?

저자에서는 화목을 볼 수 있고 우물터에서는 질서를 볼 수 있습니다. 물건을 서로 교역하는 데 팔고 사는 두 편 뜻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저자의 도덕이요, 뒤에 물을 길러 온 자가 먼저 온 자를 원망하지 않고 그릇을 벌여 놓아 차례를 기다리다가 제 뜻에 찰때에 돌아가는 것이 우물터의 도덕입니다. 대체 역사의 본질은 정직하여야 하고 시호란 것은 잘잘못을 들어 밝히는 것입니다. (p. 300)

 

Ü 음악의 모습들이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구나.

 

□ 싱싱한 푸른 대는 그대의 모습

듬직한 바윗돌은 그대의 말씀

부채를 펼치고 그대 위해 그릴 제

손목을 잡고 나니 마음은 하나. (p. 300)

 

유쾌한 사람은 안 웃을 수 없고 슬픈 자는 안 울 수 없고 배고픈 자는 밥을 안 욀 수 없고 목마른 자가 물을 안 외칠 수 없어 여기는 허위와 가식이 없고 무리나 부자연이 없습니다. 이같이 마음에 한번 감촉되자 비록 즐거우면 음탕해지고 너무 슬프면 병이 나는 폐가 없지 않지마는 모두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소위 시 삼백 편은 한마디도 말하자면 사심 없는 생각이란 말이 이것입니다. (p. 302)

 

Ü 수사가 사라진 삶. 힘을 뺄 때로 뺀 어깨는 즐거운 이들이다.

 

□ 불교에서 말하는 칠일겁 七日劫이란 말은 우리 유교에서 말하는 500년에 한 번 성인이 난다는 기간으로서 이 기회에 성인이 탄생하면 시운에 잘 따라서 수단껏 보충할 뿐입니다. (p. 304)

 

음악은 황홀한 속에서 활동합니다. 감추면 종용하고 소리를 내면 일매지고 소리가 아름답게 모일 때는 예절에 맞고 소리가 적중하는 것은 활쏘기와 같고 조율하기는 말 몰기와 같고 음을 빌리기는 글자 만드는 법식과 같고 음계는 수학과 같아서 털끝 사이에서 감돌고 핏줄을 따르다시피 퍼집니다. 들려올 때는 어렴풋하게 마중이라도 하고 싶고 사라질 때는 가물가물하여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더듬었자 얻을 것이 없으며 보았자 눈에 뜨이는 것이 없어 사람으로 하여금 뼛골이 살살 녹도록 하고 창자 속이 달콤하도록 하여 가다가도 되돌아서서 못 잊는 것만 같고 끊어졌다 다시 이어 댈 때는 갑자기 딴 생각이라도 내는 듯합니다. (p. 312)

 

Ü 이 멋진 음악의 표현들을 어찌 할까. 음과 소리의 모든 형태는 위와 같이 사물이 되어 표현된다. 연암, 연암하는 이유를 알겠다.

 

옛날에는 대학에서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반드시 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이 곧 학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음이란 것이 소리의 문리라면 육률이란 소리의 뜻일 것입니다. 몸은 각각인데 똑같이 맞는 것은 소리의 덕행이요 잡티 없이 순수하여 뽑아 낸 듯이 드러내는 것을 일러서 아 하다는 것으로 하다는 것은 소리의 광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 314)

 

Ü 보아라, 인간이 인간의 삶을 비로소 살았을 때는 배우고 익히는 것은 춤과 노래였다. 공부하지 못해 미쳐 돌아가는 가는 지금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 잠자리에 들어 눈물을 금치 못하면서도 끝까지 천자의 위엄을 두려워했더라면 (p. 327)

 

Ü (각주)의 고사 내용 참조

 

□ 고려 조정은 본래 거란 때문에 통로를 차단당하고 중국에 통래할 길이 없어 비록 통래는 못 했다 하더라도 송나라와 문화 교류야 감히 앉아서 될 바 아니라 험난한 뱃길 만 리를 꺼리지 않고 고래와 악어를 밟다시피 하면서 (p. 334)

 

□ 목침십자렬 木枕十字裂 (p. 342)

 

곡정필담 鵠汀筆談

 

□ 종이를 서른 장이나 바꾸어 가면서 인시부터 유시가지 무려 열여섯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였는 바 초지를 정리하여 곡정필담이라 한다. (p. 350)

 

Ü 새벽 5시부터 오후 7시까지 (내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과 같다)

 

□ 공자는 기하학에 정통 하시다지요?

기하에 정통해서 달 속에는 또 세계가 있어 꼭 이 땅과 비슷하다느니 땅은 허공에 있어서 꼭 한 개 작은 별이라느니 땅덩이도 빛이 있어서 달 속에 두루 비친다느니 하셨다구요. 이것은 모두가 이상한 이론으로서 가위 하늘과 땅을 잰다고 할 수 있습니다. (p. 351)

 

Ü 이상한 이론이 맞다. 기하학으로는 실체 없는 하늘을 잴 수 있다. 연암은 정확하다. 기하학적 사유구조는 애초부터 관념으로 시작한다. 증명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은 공리로 묶어 버린다. 경험되지 않는 실체 없는 진리들이 난무 한다. 야소의 태어남도 이와 같다. 이데아부터 현재의 신까지 서양을 지배하는 3000년 기하학의 역사는 이와 같다. 연암은 정확하다.

 

□ 청처짐하게 (p. 353)

 

Ü 청처짐하다 : 동작이나 상태가 바싹 조이는 맛이 없이 조금 느슨하다.

 

□ 즉 햇빛을 빌려온 뒤에야만 밝은 빛은 내는 것이니 햇빛을 받는 곳에 빛이 나고 반사한 곳에서 되잡아 밝은 그림자가 생깁니다. 물이 밝은 빛에 대한 관계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이제 땅덩이가 거죽에 둘러싸인 바다는 비유해서 말한다면 큰 유리 거울일 것입니다. (p. 356)

 

Ü 단테는 연암이 말한 이와 같은 행성의 빛은 단테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표현한 바 있다.

 

무릇 물건이 크면 귀신이 붙고 물건이 오래되면 정기가 어리는 법입니다. 늙은 조개가 구슬 빛을 토하여 밤에도 번쩍이는 것은 정기가 모여드는 까닭입니다. 이 땅덩이는 크다고 할 수 있고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어 허공에 박힌 보옥 같은 구슬이고 보매, 한 없이 큰 정기가 응당 절로 밝은 빛을 낼 것입니다. 비해서 사람으로 치면 점잖은 이가 도덕을 닦아 쌓고 보면 자연히 밖으로 꽃다운 영체를 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늘에 가득 찬 저 수 없는 별들을 보면 모두가 몸에서 뿜는 빛이 번쩍이고 있습니다. (p. 358)

 

Ü 그래서 별들은 모두 영물이다. 사람이 깊어지면 굳이 알리려 하지 않아도 세상 모두가 알아내듯이 별들이 빛을 뿜어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체 발광이다.

 

쌓이고 모이고 엉킨 것이 오늘 이 대지가 한 점 작은 먼지의 집적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먼지와 먼지는 서로 의지를 삼아 먼지가 엉키면 흙이 되고 먼지가 거친 놈은 모래가 되고 먼지가 단단한 놈은 돌이 되고, 진액은 물이 되고, 더우면 불이 되고 맺히면 쇠가 되고 자라면 나무, 움직이면 바람, 뜨거워 화하면 벌레, 우리는 벌레의 한 종족 (p. 359)

 

Ü 탈레스는 물, 아낙시만드로스는 질료,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피타고라스는 수,  파르메니데스는 존재. 연암은 먼지. 나는 연암에 한 표. 먼지로 우주를 설명하고 있다.

 

저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지구가 한 바퀴 돌면 하루가 되고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한 달이 되고 해가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일년이 되고 세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1기가 되고 항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1회가 됩니다. (p. 362)

 

Ü 1기는 12, 1회는 1 8백 년.

 

□ 야소는 대진국에 나서 서해 밖에서 교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p. 369)

 

Ü 대진국은 로마제국을 말한다. 야소는 예수다.

 

□ 윤회설을 독신하여 천당 지옥설을 주장하면서 불교를 비방하고 원수처럼 공격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p. 369)

 

Ü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는 순간부터 그 의도는 침략이다. 유일신에 의한 종교적 환각을 토대로 제국을 만들려는 야욕에서 시작했다.

 

□ 선생이 말씀하는 만약에 라든가 설사라는 말들은 비유해서 가정하는 말로서 참말이 아닙니다. (p. 380)

 

Ü 연암은 구체를 좋아한다. 그리고 관념은 싫어한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비해서 말하자면 바둑 두기와 같아서 임금은 바둑을 두는 당국자요. 신하는 옆에 앉은 구경꾼이다. 선생이 말씀하신 옆에 있는 구경꾼이 바둑 두는 자보다 수가 나은 것 같아 보인다는 말은 옳습니다. 바둑돌을 잡은 자가 잘 판단을 못할 때는 옆 사람의 훈수를 듣지 않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p. 384)

 

□ 대체 세상일이란 비하자면 양쪽에서 줄다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줄이 끊어지면 줄이 끊어진 자리로부터 짧은 쪽에 있는 자가 먼저 넘어지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습니다. (p. 389)

 

□ 유학이 나라를 파괴한다는 말이 어째서 유학의 죄겠습니까? 못된 선비들이 유학의 명분을 그저 도적질만 한 까닭이지요. 만약에 참말로 유학을 사용했다면 소위 세상에 밭이란 밭은 모두 정전법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요.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다섯 등급으로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p. 390)

 

Ü 옳다. 대한민국이 자신이 제정한 헌법에 충실한 나라였다면 세계 최고의 민주국가가 되지 않았겠는가.

 

□ 열 자를 바로잡는다 하여 한 자를 구부릴 셈인가. (p. 393)

 

세상일이란 매양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느냐 못 건너느냐 하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논어를 읽다가도 공자가 강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가 물을 못 건너는 것은 하늘의 마련이다. (p. 399)

 

Ü 종이 한 장 차이다. 종이 한 장은 하늘의 심중에 있다.

 

□ 거북 등에 털이나 난 듯, 토끼 머리에 뿔이나 돋은 듯 (p. 409)

 

Ü 호사가들의 이야기

 

□ 나는 말하기를

다만 운수로만 미룬다면 세상에는 무엇이고 손댈 데가 없을 것입니다. 성인들은 천명이란 말을 드물게 말했으니 이는 세상을 위하여 가르침을 세우는 데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등왕각에 바람을 보내주고 운이 가면 가복비도 벼락을 맞네 한 것처럼 세상 일이란 모두 때가 오고 운이 가고 하는 것 뿐인갑습니다. (p. 417)

 

□ 무극이 태극을 낳았다. (p. 427)

 

Ü 유한이 무한을 구축한다.

 

수박이란 겉은 푸르고 속은 누렇고 씨가 많고 맛이 시원하여 말하자면 천하를 천하 속에 간직한 셈입니다. (p. 428)

 

Ü ! 이 표현을 보라. 수박으로 보는 세상이다.

 

붓끝마다 솟는 피는 방울방울 땅을 물들였을 것 입니다. (p. 432)

 

□ 백치는 아교풀로 해와 달을 붙이려네 (p. 437)

 

Ü (각주) 당나라 말기의 시인 사공도의 시구 일부를 인용하여 광음은 빠르고 보니 날이 또 저물어 할 이야기도 다 못 한다는 의미에서 혼자 군소리로 읊은 것이다.

 

□ 사람은 기름으로 촛불 켤 것 있나. 해와 달 두 개 등불 천지를 비췄고야 (p. 438)

 

Ü 등불 놓아두고 달빛 아래 독대하세.

 

□ 만약 중국의 고명한 선비를 만난다면 장차 무엇으로 질문을 들이대어 한번 애를 먹여 볼까 하고는 드디어 옛날 들은 지식 중에서 땅덩이가 도는 이야기라든가 달세계 이야기를 찾아 내어 매양 고삐를 잡고 안장 위에 앉은 채 졸면서도 무려 수십만 자의 말을 풀어서 가슴속에는 글자 없는 글씨를 쓰고 허공에 소리 없는 글을 읽어 하루에도 몇 권의 책이 되었다. (p. 440)

 

Ü 연암은 기대와 고대를 했다. 준비도 많이 했고 반도의 선비로서의 기품을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했다.

 

산장잡기 山莊雜記

 

내 나이 마흔넷이건만 무서움을 타기는 어릴 적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오늘 이 한밤중에 홀로 만리장성 밑에 우뚝 서고 보니 달은 지고 물은 울고 바람은 솨솨 반딧불은 펄펄 날아서 보는 것마다 무엇이나 다 놀랍고 휘둥그래지고 이상야릇하였건만 나는 갑자기 겁나는 마음이 없어지고 이상하게도 신이 날 대로 나서 팔공산의 풀잎 군사나 북평의 호석까지도 나를 놀래지 못하니 더욱이 내 자신 다행으로 여겼던 것이다. (p. 449)

 

Ü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묘비에 자신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했다. 연암은 그것이 충분한가.

 

나는 언젠가 문을 닫고 누워 소리나는 종류에 따라 이를 사물에 비교해 들어 보았다. 깊숙한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듯하니 이는 청아한 취미로 들은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절벽이 무너지는 듯한 것은 분노하는 소리로 들은 것이요. 뭇 개구리가 저마끔 우는 소리는 발칙스러운 것으로써 들은 것이요. 수 없는 대가치가 서로 마주 어울려 내는 듯한 소리는 성난 소리로써 들은 것이요. 벼락 소리, 천둥 소리인 듯한 것은 공포심으로 들은 것이요무엇이나 올바르게 듣지 못하고 더구나 가슴속에 무슨 딴 생각을 먹고 있으면 그것이 귀에서 소리가 되는 것이다. (p. 451)

 

Ü 연암의 특기가 나왔다. 물은 의인화 하고 물에 감정을 녹인다.

 

악기는 말하자면 골짝과 같고 소리는 말하자면 바람과 같을 터

‘잘 들지 않는 톱으로 나무 켜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두덜두덜 누구를 원망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 나는 오늘에야 이치를 알았다. 마음의 눈을 감은 자는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될 턱이 없고 귀와 눈을 믿을수록 보고 듣는 힘이 밝아져서 더욱 병통이 되는 것이다. 오늘 내 마부가 발을 말발굽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가고 보니,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 고삐를 늦추어 물에 들어갔다.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다. 한 번만 까딱하면 강물 바닥인지라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마음을 삼으니 이때야 내 마음속에는 벌써 한 번 떨어질 것을 각오한 바라, 내 귀속에는 드디어 물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이나 물을 건너는 데도 마치 의자 위에서 앉고 눕고 기동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p. 452)

 

Ü 마음으로 행한다

 

소리와 빛깔은 외계로부터 듣고 보는 데 따르는 것이라 이는 언제나 귀와 눈에 탈이 되어 이렇게도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힘을 잃도록 만든다. 더구나 사람이 한 세상 살아감에 그 험하고 위태함이야 강물보다 더 한지라 보고 듣는 것이 즉시로 병이 될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이로써 어떤 사람이나 자신의 처세술에 능란하여 스스로 총명한 체하는 자들에게 경계하는 바이다. (p. 453)

 

Ü 연암의 원투 펀치다. 보이는 것은 밖에 있지만 내가 보는 것이다. ‘눈은 밖을 보지만 밖에 보이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 만일 온 세상이 비를 바랄 때에 이렇게 한 뜨락만 비로 축인다면 이 역시 일은 다 된 일인 성싶다. (p. 455)

 

Ü (각주) 천하가 착한 정치를 가물에 비 바라듯 기다리는 때에 천자의 뜨락에만 비를 내려 무슨 소용인가라는 의미.

 

□ 산도 ()() (p. 464)

 

Ü 산의 도읍이다. 햐 이거 멋진 말인데

 

□ 나는 계찰 같은 지식이 없을 바에는 갑자기 그들의 도덕과 정치에 대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으나 대체로 음악의 성률이 높고 치질러 윗소리가 아랫소리에 어울리지를 않았으며 노래는 맑되 아랫소리는 격하여 너무 드러난다. 중국 땅의 전통적 음악을 나는 벌써 알만하였다. (p. 470)

 

세간 사물로서 극히 작은 것으로 겨우 털끝 같은 것이라도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이 어떻게 일일이 다 명령을 했겠는가. (P. 472)

 

Ü 신의 존재 증명을 연암은 지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연암은 지극히 칸트적 견해에 가깝다. 경험세계에만 적용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은 존재를 무한소급할 수 없다는 견해다. 즉 전지전능의 지적 설계론 Intelligent design theory 에 반하고 있는 중이다. 오존층의 두께가 생물 보호에 어찌 그리 적합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하늘은 그리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감히 묻노니 이를 준 자는 누구일 것인가?

다시 묻겠다. 하늘이 이를 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또다시 묻겠다. 이를 사용하여 물건을 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p. 473)

 

Ü 이 기절할 질문을 보아라. 연암은 만물이 어찌 그리 적합하게 지적으로 설계되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도대체 코끼리는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인데도 그 이치에 있어 모를 것이 이런 터에 더구나 천하 사물이란 코끼리보다도 만 갑절이나 복잡함에랴. 그러므로 성인이 주역을 지을 때 코끼리 () 자를 따서 지은 것도 이 코끼리 같은 형상을 보고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연구케 하려는 것이다. (p. 475)

 

요술구경

 

인간 세상이 꿈결 같은 것은 본디 이같이 거울 속과도 같아서 차고 더운 변천이 이토록 달랐다. 일체 세간의 가지가지 사물이 아침엔 피었다가 저녁엔 시들고 어제 부자가 오늘은 가난하고 갑자기 젊었다가 갑자기 늙는 것이 꿈속의 꿈 이야기로서 바야흐로 죽으면서 살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다.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일 것인가? 세상에 착한 마음을 가진 착한 형제자매들에게 이르노니 허깨비 같은 세상에 꿈 같은 몸뚱이와 거품 같은 황금과 번개 같은 재물로 큰 인연을 맺어서 천지 기수에 따라 잠시 이 세상에 머무를 뿐이거든 원컨대 이 거울을 본으로 삼아 덥다고 나가지 말고 차다고 물러서지 말아 있는 돈을 회사하여 이 가난을 구제할지라. (p. 495)

 

Ü 연암은 결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보아라. ‘바야흐로 죽으면서 살고 있다지금 가진 재물과 권세, 지금 못 가진 가난과 굴욕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네 마음의 거울을 본으로 살아가라는 말이겠다. 연암이여. 내 곁에 있으라.

 

2. ‘熱河日記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피서록

 

□ 진땅과 농땅 (p. 22)

 

Ü 발음이 마음에 든다.

 

□ 소나무를 의지하면 서재가 되고 물을 끈 데는 정자가 되었다. (p. 22)

 

Ü 삶을 이러한 시간들로 이 거듭 채웠으면 한다.

 

서까래를 새기고 기둥을 단청할 비용이 필요 없고, 숲고 물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담박한 정신을 즐길 수 있다. 고운 물새는 푸른 물결을 희롱하는데 사람을 피하지 아니하고 사슴들은 석양빛을 띤 채 떼를 지어 출몰한다. 솔개는 날고 고기는 뛰되 제 천성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뿐 먼빛으로 자줏빛 아지랑이에 싸인 아름다운 풍광을 절로 열어 놓았으니 이것이 피서산장의 경치다.

 

더위를 식히면서 듣고 보고 그 자리에서 마음에 생각난 것을 그대로 적으니 이를 피서록이라 한다. (p. 23)

 

Ü 언제고 이 풍광을 두 눈으로 보리라.

 

부귀와 공명을 / 다 잊어버리고 /

한평생 두고두고 / 술이나 먹을거나 //

고운 꽃 삼백 가지 / 울 속에 심어 두어 /

비바람 사철 향기 / 실컷 맡아 보리라 (p. 33)

 

Ü 그 시절 유하정이라는 술집 바람벽에는 이런 시들이 붙어 있었단다. 기절할 술맛이겠다.

 

□ 신종 황제가 푸른 입술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조원로라는 자가 대답하기를

 

숯불을 불다나니 / 붉은 입술 오물오물 /

장작을 때다나니 / 하얀 팔뚝 드러났네 //

자욱한 연기 속 / 멀리 뵈는 그 얼굴 /

안개 속에 핀 꽃인 양 / 곱기도 하여라

 

하니 그의 마누라가 있다가 그 남편에게 하는 말이, 당신은 어째서 나한테는 그런 시를 짓지 못하느냐고 했답니다. 그러자 남편이 당신도 불을 불면 내 응당 본 떠 지으리라고 하여 그 마누라가 불 부는 시늉을 했더니 남편이 시를 지어

 

숯불을 불다나니 / 푸른 입술 오물오물 /

장작을 때다나니 / 검은 팔뚝 드러났네 //

자욱한 연기 속 / 멀리 뵈는 그 얼굴 /

귀신 할매 상판인 양 / 못나기도 하여라 (p. 36~37)

 

Ü 빵 터졌다. 시적인 코미디

 

□ 전동 살 때 형암이 내 집에 있으면서 지은 시

 

쓸쓸한 가을철을 / 숲이 먼저 짐작컨만 /

더위 추위 잊은 몸 / 바보 되고 말았구나 //

바람벽 고요한 밤 / 뭇 벌레 울음 울 제 /

발 틈으로 새 한 마리 / 엿보기 일쑤러라 //

조촐한 몸 더럽힐까 / 재물은 남이로세 /

글에 미친 놈이라고 / 불러나 주소 //

중국 땅 좋을 시고 / 모두가 부럽구나 //

요봉의 문필이며 / 완정의 시 (p. 42)

 

책을 들자 눈물은 / 천년 역사 적시고 /

물에 닿은 문인은 / 시름도 한없네 //

확사가 엮은 시들 / 시 솜씨는 날리니 /

치정전집 한 권을 / 구해 볼거나. (p. 45)

 

Ü 인간들의 지난 생을 연암도 눈물겨워 했던 모양이다.

 

□ 강녀묘는 산해관 밖에 있는 소위 망부석이다. 왕건의 시에

 

님을 기다리던 그곳 / 강물만 유유하이 /

돌로 화해 버린 그 몸 / 고개도 안 돌리네 //

그날 그날 산머리엔 / 비바람도 푸근할 제 /

가는 손 돌아오면 / 돌마저 말을 하리 (p. 50)

 

Ü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강녀묘를 설명한 적 있다.

 

강녀의 성은 허씨요. 이름은 맹강인데 섬서 동관 사람이다. 범칠랑이란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진나라 장수 몽염이 만리장성을 쌓을 적에 범칠랑은 부역에 끌려나와 일을 하다가 육라산 아래서 죽었다고 한다. 그의 처 맹강은 꿈에 남편의 현몽을 받고 손수 옷을 지어 혼자 천리를 걸어 그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찾아다니다가 이곳에 와서 쉬면서 장성을 바라보고 울다 말고 그만 돌로 화해 버렸다고 한다.

 

□ 이무관은 일찍이 말하기를 고구려는 한서 지리지에 처음으로 나왔는데 그 선조는 금와다. 우리 나라 말로 와를 개구리라 하고 또는 왕마구리라고도 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질박하고 솔직하여 임금의 이름으로 국호를 삼았는바 그 성을 붙여 고구려라 한 것이다. (p. 54)

 

Ü 고구려 이름의 연원이다.

 

□ 감영지

남향 비탈 그림자는 진종일 어늘어늘

그림자와 이내 사이 마주 불러 대답할 듯

미풍이 한들하고 물오리 지나치자

물결은 수도 없이 얼기설기 헝클어지네. (p. 56)

 

Ü 이 환장하는 표현 보라. 그림자에 생명을 투영하고 물의 파동을 사물에 반영한다.

 

□ 소심거

코끝에 희끗하며 / 보기는 보았건만 /

무엇인지 알자 하니 / 콧구멍이 막혔어라 //

찬 꿈속 스며드는 / 그윽이 나는 향기 /

달빛을 희롱하는 / 한 가지 매화러라. (p. 56)

 

Ü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봤다. 옆에서 매화 향기가 불어올 것 같다. 200년 전 시가 독자로 하여금 이런 21세기 4D 기술의 심상을 주고 있다.

 

□ 유춘동

지는 꽃 손목 잡고 손님인 양 만류할새

비바람께 부탁하다가 핀잔만 맞았구나

골짝 꽃 꺽어다가 화병에 모셔 두니

삼백예순 사시절이 언제나 봄이로세 (P. 58)

 

Ü 연암의 원투 펀치가 다시 날아든다. 이번엔 시다.

 

□ 소월대

외마디 울음 소리 가을 구름 쪼갤 적

만리 허공에는 달님 얼굴 내밀었다. (P. 59)

 

有感(유감)

맑은 가을 비추는 물 위의 달빛

회남땅 갈대숲을 꿈길에 도네

풀숲에 비 내릴 제 포구는 적막

바람에 꺾인 고목 강물에 둥실

외로운 배 댈 곳 없어 천지는 넓고

정처 없는 이내 신세 운수 갈고야

한없이도 쓸쓸한 아득한 그곳

끝없이 먼 길에 시름만 나네 (P. 62)

 

Ü 이건 그림이다. 눈을 감아 한 폭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

 

□ 가엾어라 옛 단장 어데로 가고

다 낡은 비단 치마 이 웬일인고

우리 부모 생사를 어디서 알랴

봄바람에 심양 길을 울며 가누나

 

밑에다가 또 이렇게 썼다.

저는 강서 우상경 수재의 처로서 남편은 잡혀 죽고 이제 왕장경에게 팔려 심양으로 가는 길입니다. 무오년 정월 21일 눈물을 뿌려 벽을 씻고 이 글을 쓰옵니다. 다만 바라옵건대 천하에 마음 있는 분은 이 글을 보시고 구원해 주소서 저의 저이는 스물한 살이외다. (P. 71)

 

Ü 열하일기의 가장 큰 가치는 이런 사실감이다. 그때 이런 글 이런 말, 이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현실감이다.

 

□ 이자의 음경이 놀랍게 크다고 하였다. 돌림하여 검열해 보고는 다들 혀를 빼물면서 굉장하더라고 했다. (P. 74)

 

□ 우리 나라 선배들은 매양 중국의 사정에 대하여는 언제나 풍문에 따르고 실정에 어둡다. 우리나라 속담에 무엇이나 물정에 어두운 자를 몽롱춘추라고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춘추를 말하기 좋아하지마는 몽롱하기가 모두 이런 꼴이 많다. 그러니 어째서 만주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p. 79)

 

글짓기에 뜻을 두는 자로서 독서를 많이 못하고 견문이 넓지 못하니 돌아가서 창려의 글 속에 획린해 한 편을 오백 번만 읽으면 작문의 첩경을 마땅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오 (p. 85)

 

□ 적막한 산골 집엔 갓 망건도 소용 없네

늘그막에 하는 노릇 한가롭고야

섬돌 위 양지 볕은 조용도 한데

하늘 밖에 뜬 구름은 산뜻도 하이

푸른 숲 찾아 들어 꾀꼴새 울음 울 제

아롱다롱 고운 꽃 청춘을 보내누나

내 뜻이자 하늘 뜻 어김이 없으리라

타고난 모습대로 살고 크고 자랄거니. (p. 90)

 

Ü 연암의 친구 나걸이라는 자의 시다. 생의 관조가 무르익다.

 

□ 늦잠 자고 일어나니 내 세상이로구나

짧은 노래 길게 읊어 다함이 없네

남 모를 이런 흥취 없었더라면

나그네의 시름을 언제 풀라고 (p. 92)

 

Ü 잠을 길게 자고 난 후 세상과 아직 덜 깬 잠사이의 진공상태를 즐기고 있다.

 

잠이 안 들 때

밤 저물어 즐겨 보는 산골짝 구름

먼 하늘은 울긋불긋 놀빛도 야단이네

처마를 대해 앉자 참새 소리 그치고

목침 베고 누우려니 모기 때만 잉잉

산에 나무 냇가 모래 세어 볼 듯 심심할 제

하늘에 찬 별들은 절로 무늬 놓았네

잘 못 자고 시름 많아 병 될 것 없어라

이 참에 남는 것은 주옥 같은 시로세

 

Ü 잠은 오지 않지만 그 시간을 괴로워 하기 보다는 나는 시를 읽어 풍요롭게 하리라는 말이겠다.

 

낮잠을 자면서

낮잠을 자다나니 찌는 듯 덥구나

만사에 게을러져 손 닿기도 싫어라

읽던 책 채 못 덮어 먼지만 케케 앉고

벼루에 남은 먹은 파리 배만 불리네

오솔길 지나치는 나그네 묻는 말에

묵밭 매던 내 마누라 짜증만 내누나.

별안간 솟아오른 맑은 달빛을

해님이 돋은 줄만 잘못 알았지 (p. 94~95)

 

Ü 마지막 두 문장의 반전이 기막힌다. 시는 시종일관 지루함을 표현하다 느닷없이 해 같은 밝은 달을 솟아낸다. 낮잠을 자다 꿈을 꾼것인가. 대 반전이 아름답다.

 

□ 저 뫼는 높고 높아 구름 함께 사라지고

하늘은 멀고 멀어 달과 함께 외롭고야 (p. 103)

 

□ 평사 신경연은 나이 열두 살에 배천에서 서울로 오는 도중에 길에서 명나라 사신 일행을 만났는데 사신의 역졸이 신경연이 탔던 말을 빼앗았다. 신경연은 매우 곤란하여 걸어서 명나라 사신에게 와서 점심 시간을 틈타 이를 호소했다. 사신은 그의 얼굴이 깨끗하게 생긴 것을 눈여겨보고는 길 위에 선 장승을 가리키면서 네가 저 장승을 보고 글을 지으면 꼭 네 말을 찾아 주마.’ 했더니 신경연이 운자를 청했다. 칙사가 운자를 내주었더니 즉시 시를 지었다.

 

천년 지난 오늘에도 항우의 혼은 남아

강을 건널 체면 없어 형체만 남았구나

음릉 길을 잃은 것이 천추의 한이 되어

언제나 길에 서서 길잡이 노릇하네

 

사신은 깜짝 놀라 감탄하면서 진기한 문방구로 상을 주었다고 한다. 이 글은 무명씨가 지은 것이라 하여 명시선에 실렸다. (p. 104~105)

 

Ü 옛 세계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세계라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글로써 사유의 깊이로서 존대하는 것.

 

□ 남주는 나이 서른에 죽었는데 장사를 치르면서 관을 들다가 너무도 가벼워서 집안 사람들이 관 뚜껑을 열어 보았더니 빈 관이었다고 한다. 관 속에는 글이 쓰여 있었다.

 

바다에는 배 간 자리 찾을 길 없고

산에서는 학 난 자취 볼 수 없어라.

 

그 당시 마을 앞에서 밭을 갈고 있던 농부가 공중에서 풍악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쳐다보았더니 남주가 말을 타고 흰 구름 속에 둥실 떠가더라고 했다. 충주의 진사 남대유는 그의 자손이라고 한다. (p. 107)

 

Ü 나 기절하겠다. 이 표현들을 어찌 할꼬. 써먹어야 한다.

 

□ 장자가 말하기를 말은 목을 매고 소는 코를 꽨다.’ 하였다. (p. 110)

 

푸른 전나무 잎은 고생살이 나머지요

매화꽃은 곱잖아도 향기로 한목 보네

 

하여 글씨는 귀신 솜씨였다. 건륭 을해년 동짓달에 셋째 황자등금거사가 지어 붙인 글은 쌀쌀하였다.

 

헐린 담장 노송 사이 옛 사당에는

남편 여읜 강녀 내력 섧기도 하지

임 만날 길 없으니 높은 절개 보였고

허리에 찬 노리개만 옛 모습 그대로네

돌에 뿌린 눈물 자취 그날의 원한이요

느껴 우는 냇물소리 오늘의 추억일레라

진의정 못둑은 처량도 한데

하염없던 그 눈초리 눈에 삼삼하여라. (p 112~113)

 

□ 중국은 글자 곧 말이 되지마는 우리 조선은 말이 먼저요, 글자가 나중이므로 중국과 조선은 이 점이 구별되고 있다. (p. 113)

 

Ü 내 생각, 의사, 사유를 내 아닌 사람은 어떻게 이해하는가. 내 사유는 문자, 언어의 폭에 가두어져 제한될 텐데 이것이 첫째 장벽이다. 의사 전달 받는 사람도 그 사람의 사유의 깊이에 따라 왜곡 될 것 아닌가. 이것이 두번 째 장벽이다. 왜곡과 오해로 가득한 세상에 자신의 소리를 외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라고 부정하여 무엇 하겠나.

 

□ 어린 아이가 이미 한날이란 무슨 말인지 모를 진대 어떻게 천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궁벽한 곳 사람도 없는 데서 술을 누가 사서 먹는가?

파촉도 관중이지요. (p. 115)

 

□ 배를 타고 아미산으로

비에 쫓긴 송아지는 돌아갈 길 바쁘고

물결에 밀린 갈매기 떼 배 탄 손을 따르네 (p. 117)

 

□ 삼가 연암을 북경으로 보내면서

 

사면은 연나라 산 넓기도 한데

만리라 진나라 성 높기도 하네

채찍을 쳐들고 가는 그 님아

백발을 휘날리며 수고하시네

 

철석 같은 의지론 담헌 님이요

고매한 재덕으론 연암 님일세

이역에도 그 이름 모를 이 없고

드높은 학풍은 서로 이었네 (p. 122~123)

 

머리가 세었다고 걱정 말지라

천지는 길고 길어 다함이 없네

넓디 넓은 요동벌 필마로 드니

채찍을 한번 치자 바람은 만리 (p. 124)

 

□ 압록강 흐르는 물 앞을 가리는데

만리장성 넘을 차비 분주하고야

유유하게 먼 길을 지나는 손님

똑똑히 알괴라 그 누구인지 (p. 125)

 

Ü 송인과 유사하다.

 

비 개인 긴 둑에 풀빛이 고운데               雨歇長堤草色多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마르려나                  大同江水何時盡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나니.           別淚年年添綠波

 

□ 길에서 路上(노상)

 

말을 탄 채 촉도난을 읊어더니만

오늘 아침 이내 몸은 진관에 드네

저녁 구름 푸르스름 어부수를 막았고

아침 숲은 시뻘겋게 조서산을 이었네

글자를 배운 것이 평생 후회로구나

명리를 줄 터이니 한가한 몸 못 바꿀까. (p. 135

 

□ 으리으리 날아갈 듯 추녀 뵈는 담장 밖

쓸쓸한 농가들엔 연장만 남았구나

오랑캐의 종으로 다 내주고 보니

모를러라 그들은 얻은 것이 무엇인지 (p. 136)

 

□ 오조는 강서 사람인데 자는 조남이요 호는 백암이다. 그가 석호를 유람할 때 지은 시는 모두 잘된 시였다.

 

뒤원에 안개 걷히고 누런 햇발 돌아올 적

노 젓는 소리 맞춰 배는 못 가운데로

늘어선 푸른 산은 그림폭을 펴 놓은 양

허공에 우뚝 솟은 탑 한자리 보이네 (p. 141)

 

□ 호수 밖에 뫼있고 뫼 아래 밭이로다

비 올 때나 갤 때나 물빛도 고을시고

내 만약 이곳으로 살 집을 옮긴다면

서쪽 이랑 다 갈고선 배 잡아타고 놀걸 (p. 144)

 

Ü 내 말이

 

()()()()

 

□ 역대에 볼 수 없을 만큼 엄했지마는 역시 국가의 흥패와 존망에 관하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p. 151)

 

□ 왕진의 무덤

지난해 즉 건륭 기해년에 서산에서 왕진의 무덤을 찾게 되어 그 관을 쪼개고 그의 죄목을 열거한 다음 시체를 찢어 조리를 돌리는 책형에 처하였다. 이와 함께 그의 도당의 무덤 20여기를 파헤쳐 시체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p. 153)

Ü 엽기다.

 

□ 조조의 수장

황제는 친히 관우묘에 나와서 소열의 소상 앞에 그 시체를 꿇어앉히고 목을 베었다. 이 일은 천고에 내려오던 귀신과 사람들의 분노를 시원하게 씻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흔 두 개의 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의 의혹을 통쾌하게 부수게 되었다 (p. 155)

 

□ 하짓날 녹각이 빠진다는 것은 주역의 구괘에 해당하는데 이때 음 하나가 새로 생기므로 보음하는 약재가 될 것이요, 동지에 미각이 빠진다는 것은 주역의 복괘에 해당하므로 양 하나가 새로 생기게 되어 보양 하는 약재가 될 것입니다. 쓸모가 현수하게 다르지요. (p. 161)

 

Ü 이건 매우 수학적이다. 과학적이라는 말이다.

(+)하지 (–)녹각 = (-)보음

(-)동지 (-)미각 = (+)보양

 

□ 하란 (p. 163)

Ü 폴란드의 한자 발음

 

□ 돌을 붙이는 등나무 즙

돌 붙이는 아교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이야기인즉 별스럽게 황당하게 들리나 다른 참고가 될까 하여 잠시 기록해 둔다. (p. 169)

 

Ü백치는 아교풀로 해와 달을 붙이려네

이는 당나라 말기의 시인 사공도의 시구 일부를 인용하여 광음은 빠르고 보니 날이 또 저물어 할 이야기도 다 못 한다는 의미에서 혼자 군소리로 읊은 것이다.

 

□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는 동이라고 말하는 바 이는 동이가 훔쳤다는 의미다. 냄새가 좋지 못할 때는 고려취라 하고 다른 사람이 물건을 훔쳤다고 의심할 때는 아무개는 동이라고 해 마침내 훔친다는 말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 삼학사 (p. 178)

 

Ü (각주) 병자년 청군이 침략할 당시 결전을 주장하다가 심양으로 포로로 잡혀가 피살 된 세 명의 애국자.

 

□ 동의보감

우리 나라 서적으로서 중국에 들어가 출판한 것이 매우 드무나 홀로 동의보감 25권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p. 185)

 

Ü 동의보감은 글로벌 밀리언 셀러였구나.

 

□ 보감이란 무슨 뜻일까? 비해 말하면 햇빛이 뚫고 비치는 곳에는 어둠을 헤치고 살을 쪼개고 베듯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 잡으면 환하게 밝아 거울과 같음이다. (p. 186)

 

□ 이러므로 뛰어난 명의는 병을 고치는 데 병이 들어 눕기 전에 고치는 것이요, 병이 다 든 후에 고치지는 않는 것이다. 병이 다 든 후에 고친다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법에서는 아주 하책일 것이다. (p. 187)

 

□ 편작은 말하기를 사람들의 병통은 질병이 많은 것이요 의원의 병통은 치료 방법이 적은 것 (p. 187)

 

□ 심의

학자가 입는 옷으로 흰 배로 만드는데 소매를 넓게 하고 검은 천으로 가를 두른 것. (각주)

삼으로 짠 것은 마포라 하고 모시로 짠 것은 반드시 저포라 하고 솜으로 짠 것은 반드시 면포라고 해야 한다. (p. 190)

 

□ 선의란 어떤 옷인지요?

선의란 좋은 옷입니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들 상상품 좋은 옷 한 벌씩은 가지고 있어 무늬로 귀천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심의란 것은 귀천이나 남녀의 구별이 없고 길흉의 구별도 없이 꼭 같은 복장입니다. 이를 대포로써 만드는 것은 그 검소함을 표시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좋은 옷감이 아니겠습니다. (p. 192)

 

Ü 옷에도 없는 구별이 사람에게 있다. 귀천이 있고 재물, 가치, 생각 들의 차별이 인간의 마음속에는 악마와 같이 있다.

 

□ 나약국의 국서

천하는 천하 인민의 천하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닐 것입니다.

하늘이 살기를 내면 귀신이 울부짖는 법이요 땅이 살기를 내면 용과 범이 달아나 숨는 법이요, 사람이 살기를 내면 천지가 뒤집어지는 법입니다. (p. 193)

 

□ 무릇 전쟁이란 두 편이 다 이기는 법이 있을 수 없고 복이란 두 편에 한목 오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군대를 거두고 전쟁을 중지하고 생령들의 질고를 풀고 군사들의 어려움을 늦추어 줌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p. 194~195)

 

Ü no war

 

□ 불교서적

불경이라고 부른 것들 태반은 위나라 진나라 시대 문인들 손에서 지어진 것이다. (p. 197)

 

공자는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는다. 하였고 노자는 성인은 하나를 지킨다. 하였고 석가는 만 가지 법칙이 하나로 귀착한다고 하였다. 만 가지 법칙이 하나로 귀착한다는 말은 우리 유가에서 이치는 하나이나 만 가지로 달라진다는 말과 미상불 비슷한 뜻이다. (p. 198)

 

Ü 그 하나는 무엇인가. 자신인가. 내면인가. 존재인가. 물인가, 불인가. 먼지인가. 공인가. 뭔가.

 

□ 공자가 주역을 읽는데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p. 205)

 

Ü 韋編三絶(위편삼절)이다. 다산의 과골삼천도 있겠다.

 

□ 주한과 주앙

사람이 젊은 적에는 전정이 멀고 보니 자기는 늙을 날이 없을 듯이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도 노인을 업신여기는 실수를 가끔한다. 이런 경박한 악소년이나 건방진 자는 흔히 앞날의 복을 받지 못할 것이니 불가불 조심해야 할 일이다. (p. 207)

 

□ 글을 내어 이 길을 면하도록 (p. 210)

 

Ü 글을 내어 길을 뚫어 낸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멋진 말이다.

 

□ 사면으로 모여 들어 있는 물을 옹이라 하고 흐르지 않는 것을 노라고도 했다. (p. 213)

 

해인사

합천 가야산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되었다. 이름난 가람이나 큰 절은 흔히 서로 이름을 답습하여 붙이는 수가 많지마는 이것만은 그렇지 않다. 중국에도 해인사가 있다. 우리 나라의 해인사는 천여년 전 고찰인즉 북경 근방에 있는 해인사는 응당 신라 때 창건했던 절보다 뒷일일 것이다. (p. 216)

 

Ü 내 좋아하는 절이다. 자주 가 보기도 하는 절이다. 특히 법회 시간의 웅장함과 이 시대 마지막 남은 남성중창단의 중후한 음성을 듣기 위해 시간을 내어 간다.

 

□ 조선 모란

하포모란은 본초강목에는 일명 조선 모란이라 한다. 이름은 조선모란이라 하지마는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으니 무슨 까닭일까? (p. 230)

 

Ü 모란이야기가 나와 인용한다. 오랜만에 영랑의 시 한 수 읊어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십가소

관청 돼지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월나라가 진나라의 여읜 꼴을 본다.는 말과 같다. 이는 모두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다는 말로 (p. 233) (각주) 서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 원나라의 이학의 극성

사냥을 말려서 말하기를 하늘의 도는 생을 좋아하는 데 있다 하였고 정치하는 방도를 물으니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라고 대답하였고 수신하는 도리를 물었더니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고 대답하였고 죽지 않는 약을 물었더니 위생하는 길은 있지마는 길이 사는 약은 없다고 하였다. (p. 239)

 

Ü 모든 답은 자신이 가지고 있고 자신 안에 있으면 어쩌면 이미 있을 지도 모른다.

 

□ 환향하가 있다. 이곳 물이란 모두 동으로 흐르는 터인데 홀로 이 강만은 서쪽으로 흐른다. 송나라 휘종이 이 물을 지나면 대사막이 가까울 것이다. 나는 어찌 이 강물처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꼬? 하고는 먹지도 않고 갔다. (p. 241)

 

옥갑야화 玉匣(옥갑)夜話(야화)

 

□ 연경 가서 만약에 아무 주인을 만나 안부를 묻거든 반드시 우리 집이 역병에 몰사당했다고 말하게나 하니

벌써 참말로 역병에 걸려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몽땅 몰사하고 말았다 (p. 248)

 

Ü 거짓말 하지 말자. 이것은 시참이다. 정민의 한시미학산책을 보면 시참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예로 든다. 현대판 머피의 법칙이라 하겠다.

 

인간의 잗단 일들 언제나 들쭉날쭉

일마다 어그려져 마땅한 구석 없네.

젊을 땐 집 가난해 아내가 늘 구박하고

늙어 녹이 후해지자 기생이 따르누나.

주룩주룩 비 오는 날 놀러 갈 약속 있고

개었을 땐 언제나 할 일 없어 앉아 있다.

배불러 상 물리면 좋은 고기 생기고

목 헐어 못 마실 때 술자리 벌어지네.

귀한 물건 싸게 팔자 물건 값이 올라가고

묵은 병 낫고 나니 이웃집이 의원이라.

자질구레 맞지 않음 오히려 이 같으니

양주 땅 학 탄 신선 어이 기약하리오.

 

시화에는 시를 보고 그 사람의 출처궁달을 예견하는 삽화들이 뜻밖에 많다. 특히 앞서 무심히 한 말이 뒷날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따로’이라고 한다. 언어의 주술적 힘을 믿어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경계한 것이다.

 

□ 창녀 가운데는 인물에 따라 해웃돈이 차이가 났는데,

나는 참으로 그런 줄 몰랐구나. 오늘 당장에 누이를 속량할 터이니 몸값이 얼마인가?

이천 냥입니다.

홍군은 그 자리에서 돈 2천 냥을 내어 주고 작별하였다. 여자는 수없이 절을 하면서 은혜로 정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갈라졌다..

임진왜란에 석 상서가 군대를 맡고 있으면서 출병을 주장한 것은 석씨가 본디 조선사람과 의리를 맺었던 까닭이라고 한다. (p. 251)

 

Ü 석 상서는 홍군이 속량해준 여인의 남편이다.

 

□ 내가 섬긴 대관들이 많았지마는 국가의 여론을 한 손을 틀어쥠으로써 가계를 삼은 자치고 삼대를 내려가는 집을 보지 못했다. 재물을 헐지 않으면 재앙이 미칠 것이다. (p. 252)

 

Ü 가진자들과 위정자들은 변승업의 이 이야기를 새겨 들어라. 기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론을 틀어 잡고 호도하는 무리들은 더욱 겁내 해야 할 것이다.

 

허생전

그래! 밤낮없이 글을 읽어 배웠다는 것이 고작 어떻게 하겠소? 말 뿐이오? 장인바치질도 못한다. 장사도 못한다. 그러면 도적질이라도 못 할 것이 뭐요? (p. 255)

 

Ü 장인바치 : 물품으로 만드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공인(工人). '바치'는 접미사로 이런 부류의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 남자들 한번쯤 이런 말 들어보았을 것. 이천 년 동안.

 

□ 대체로 남에게 아쉬운 사정을 말하는 자는 언제나 제 의사를 떠벌려 먼저 신의를 자랑하면서도 어디고 그의 얼굴빛은 비굴하고 이야기는 중언부언하는 법이라네 (p. 256)

 

□ 사람 없는 빈 섬에 누구와 함께 살 것입니까? 하니 허생은

덕이 있는 곳에 사람이 붙는 법이거든 덕이 없음을 걱정할 일이지 사람 없는 걱정이야 할 것 없네! (p. 257)

 

□ 은 50만냥을 바다에 던져 놓고는

바다가 마를 때는 가지는 자가 있겠지! 백만 냥이라면 온 나라에서도 용납할 수 없을 터인데 더구나 작은 섬에서랴! 하고 글 아는 자를 모두 함께 배에 태워서 데려 나오고는 이 섬이나마 화근을 끊어야만 하지! (p. 260)

 

Ü 허생은 혹 보살이 아닌가. 열반에 문턱에서 인간 구제를 위해 자발적 열반 보이콧을 했던 보살말이다. 바다 마른다는 저 스케일은 우주적 관점이다. 중국의 문화혁명에 버금가는 자기 검열은 결국 글 알아 생긴 근심과 우환을 스스로 깨달은 뒤다.

 

□ 권커니 잣커니 (p. 261)

 

□ 돈을 꾼 다음에는 돈 임자의 복을 빙자해 장사를 했으므로 손만 대면 성공하게 되었으니 만약에 내 자신의 돈으로 했다면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지 못할 것이오. (p. 263)

 

그래 소위 사대부라는 게 대체 무엇이오. 오랑캐 땅에 나서 자칭 사대부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아래위 입성을 소복으로 한다는 것은 이것이야 상복이 아닌가? 머리를 쥐어 묶어 삐죽하게 쪼았으니 이거야 남방 오랑캐의 북상투가 아닌가. 무엇이 예법이란 말인가? (p. 266)

 

Ü 허생은 일갈한다. 온갖 미사로 떠벌리고 사람들을 예의에 옥죄게 하는 그 잘난 권위도 가져가라.

 

황도기략

Ü 북경의 궁성을 비롯한 명소 고적에 관한 견문기이다.

 

□ 조양문 밖을 곧추 10리 나가면 동교가 되어 해가 여기서 뜬다. 부성문 밖으로 곧추 10리를 나가면 서교가 되어 달 지는 데가 여기다. (p. 275)

 

□ 북경성의 앞은 조정이요 뒤는 저자요 왼쪽은 종묘요 오른쪽은 사직이 있으며 아홉 문이 바르고 아홉 거리가 곧아서 한번 도성이 바르자 천하가 바로잡힘을 볼 수 있었다. (p. 275)

 

□ 유상곡수 (p. 279)

 

Ü 술잔을 물에 띄우고 돌려 가면서 마시도록 한 놀이터 (각주) 경주에도 있다.

 

□ 비록 터럭 끝만 한 범죄 사실이 있더라도 뇌물과 살림을 모조리 몰수하는데 관직만은 박탈하지 않는다. (p. 286)

 

□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 때 모은 책들을 합하여 목록을 편집했는데 전부 43,200여 권이라 하였다. (p. 288)

 

Ü 책 내 나는 그곳을 상상한다.

 

말 털빛은 보기에 정결하고 윤기가 있어 그리 많이 늙어 보이지는 않았으나 다만 눈이 작고 눈곱이 끼었는데 두 눈동자는 말고 푸르러서 말갈 사람 같았다. 두 눈썹은 대여섯 대가 남아 풀기 없이 늘어졌고 귓속이 흰 털이 바깥까지 나와 갈기 같았다. (p. 293)

 

Ü 연암은 묘사의 달인이다. 이 리얼한 묘사를 보면 관찰력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 이자성의 난 (p. 295)

 

Ü 명말 관내 지방, 즉 명나라 내부에서 명조를 반대하여 섬서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킨 사람. 명나라 숭정 17 (1644)에 북경을 함락시키자 명나라 의종 황제는 자살을 했다. 청나라 침략군을 막으러 요동까지 출동했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는 청군에게 쫓겨 관내로 밀려 들어오면서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군을 관내로 끌어들여 청군과 합세하여 이자성을 쳐 물리쳤다. 이 바람에 청군은 힘들지 않게 산해관을 돌파하고 북경을 점령하여 명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각주) 명과 청의 언저리에 이자성이 있었구나.

 

□ 황제가 어디로 거동할 때 반드시 범 우리를 앞장세우고 가다가 못마땅한 생각이 날 때는 황제가 범틀 앞으로 와서 친히 쏘아 죽인다고 한다. (p. 302)

 

Ü 정신병자 아닌가.

 

□ 저들로서는 근본 되는 학문의 이치를 찾아 냈다고 자칭하고 있으나 뜻이 너무 고원하고 이론이 교묘한 데로 쏠려 도리어 하늘을 빙자하여 사람을 속이는 죄를 범하여 제 자신이 절로 의리를 배반하고 윤상을 해치는 구렁으로 빠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p. 306)

 

□ 덕보의 풍금 이야기를 추억하며 서글픈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p. 307)

 

Ü 덕보는 홍대용의 자다.

 

□ 지금 천주당 가운데 바람벽과 천장에 그려져 있는 구름과 인물들은 보통 생각으로는 헤아려 낼 수 업었고 또한 보통 언어 문자로는 형용을 할 수 없었다. 내 눈으로 이것을 보려고 하는데 번개처럼 번쩍이면서 먼저 내 눈을 뽑는 듯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내 가슴속을 꿰뚫고 들여다보는 것이 싫었다. 내 귀로 무엇을 들으려고 하는데 굽어보고 쳐다보고 돌아보는 그들은 먼저 내 귀에 무엇을 속삭였다. 나는 그것이 내가 숨긴 데를 꿰뚫어 맞힐까 봐 부끄러워하였다. 내 입이 장차 무엇을 말하려고 한즉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돌연 우렛소리를 내는 듯하였다. (p. 309)

 

Ü 연암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미켈란젤로인가. 라파엘로인가. 틴토레토인가. 서양의 신이 동양의 사내 앞에 섰다. 동양의 사내는 지금 매우 무참하다. 그림 속 그들이 자신의 내면을 쏘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천지창조를 보는가. 최후의 심판을 보는가?

 

□ 그림에는 한 여자가 무릎에 대여섯 살 된 어린애를 앉혀 두었다 (p. 309)

 

천장을 바라다본즉 수없는 어린애들이 오색구름 속에서 뛰노는데 허공에 주룽주룽 매달려 살결은 만지면 따뜻할 듯하고 팔목이며 종아리는 살이 포동포동 쪘다. 갑자기 구경하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손을 벌리고 떨어지면 받을 듯이 고개를 젖혔다. (p. 310)

 

Ü 연암은 무엇을 느꼈을까. 검정 갓을 쓰고 도포를 휘감은 조선의 사내가 타국에서 야소와 그 어미의 거대한 그림 앞에 맞딱뜨렸을 때 그는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보았을까.

 

□ 주역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날카로움은 쇠라도 끊는다. 하였다. 가르는 것은 금일진대 마음을 합치는 것도 잇속이라는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의리를 말하지 않고 잇속을 이라고 했은 즉 불의의 재물인 것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도적질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무런 까닭 없이 갑자기 돈이 앞에 닥칠 때는 천둥처럼 두려워하고 귀신처럼 무서워하여 풀섶에서 뱀을 만난 듯이 머리 끝이 삐죽하여 뒤로 물러설 일이다. (p. 319)

 

Ü 재물을 겁내하고 무서워해야 한다는 말. 이해한다. 제 자신의 영혼을 그 재물은 맘껏 씹어 먹을 것이다.

 

□ 만불루

여섯 길 되는 관음보살의 변상이 있는데 머리 위에는 부처 만개를 둘러앉히고 손이 천 개 눈이 천개요 발로는 간사한 귀신과 악귀와 흉한 짐승, 독한 뱀 등 요정으로 변화했으나 아직 물성을 얻지 못한 것들을 밟고 있었다. (p. 333)

 

Ü 칼리여신이다.

 

□ 화초포

때마침 가을 국화가 한창이었다. (p. 341)

 

Ü 미당은 국화를 썼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 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눈을 감아 되새길수록 멋진 시다.

 

공자묘를 참배한 감상

 

□ 천, , , , , , , , , , , , , , , , , (p. 350)

 

□ 내가 나이 열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창려와 동파의 석고가를 읽고 그 글을 기이하게 여긴 적이 있었고 석고에 새긴 글 전문을 얻어 볼 수 없음을 한탄했다. 오늘 내손으로 석고를 어루만지면서 입으로 반적의 음훈비를 읽고 보니, 외국 사람으로서 어찌 행운이 아닐까 보냐 (p. 358)

 

□ 문 승상 사당기

역사에서 흥하고 망하는 판에는 하늘의 뜻을 단연코 알 수 있는 것이다.

천하를 얻을 수 있는 위엄과 무력이라도 한낱 지사의 절개를 꺾지는 못한다. 이야말로 지사 한 사람이 버티는 절개가 백만 명의 군대보다도 강한 것이요, 만대를 통하는 떳떳한 도덕과 규범은 당대에 한 나라를 차지하는 것보다도 더 소중할 것이매 이 역시 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p. 363)

 

Ü 필사의 인간이 생을 걸 때 그것보다 더한 용기는 없다.

 

□ 제주도 귤이 바다를 건너오면 강진에서부터 탱자가 된다 (p.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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Ü 앙엽이란 말은 옛날 사람이 감 잎사귀에 글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모았다가 기록했다는 고사를 본받아서 한 말(각주)

 

□ 소진 (p. 380)

 

Ü 합종연횡의 창시자로 6국의 재상을 동시에 지낸 인물이다.

 

□ 법장사

맨 첫 층에는 우리 나라 김창업이 써 놓은 이름이 있고 또 내 친구 홍대용의 이름이 있는데 먹빛이 금방 쓴 듯하였다. 서글프게 거닐다 보니 마음을 털어놓고 마주 이야기라도 할 것만 같았다. (p. 386)

 

Ü 문득 홍대용이라는 사람에 대해 무한한 궁금증이 인다. 연암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그 사람에 대해 말이다.

 

□ 융복사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부리는 하인 한 명 없는 집안의 가난한 선비들일지라도 아직 자기 발로   장터에 나가 막 굴려먹는 장사치들을 상대로 물건 값을 흥정하는 것은 좀스럽고 더러운 일로 치는 터이니 (p. 394)

 

Ü 고쳐지지 않는 그런 권위의식 좀 어떻게 할 수 없는가. 평생 묵직한 표정으로 어설픈 침묵으로만 살 것인가. 어줍잖다.

 

□ 북악왕묘

북앙왕묘는 전각집과 모셔 둔 위패 같은 것이 남묘와 꼭 같고 동쪽은 호수에 닿아 물가에 수없는 버들은 그늘이 짙은데 물가에 노는 손들은 언제나 가득했다. 천계 연간에 위충현이 세운 것이라 한다. (p.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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Ü 본편은 박지원이 열하에 내왕하는 동안 장성 밖 지역에서 들은 기이한 이야기들을 별반 정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수록한 잡록이다.

 

□ 태평어람, 한나라 때 곽리자고란 사람은 조선 사람이다. 새벽에 일어나 배를 타고 노질을 하다가 어떤 정신 잃은 사람 같아 보이는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머리칼을 풀어 흩트리고 술병을 든 채 허둥지둥 물에 뛰어들어 건너려고 하는데 그의 처가 뒤따라와 말리다가 끝내 말리지 목하고 필경 물에 빠져 죽었다. 그 처는 공후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대! 그 강물 건너지 맙시사고

그토록 애태워 당부를 했건만

그대! 필경은 그 강물에 사라졌구나

그대는 어디로! 이 몸은 어쩔꼬

 

노랫소리는 몹시 처량했다. 곡조가 끝나자 그 역시 물에 빠져 죽었다. 자고는 집에 돌아와서 노랫소리를 시늉하여 그의 처 여옥에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여옥은 매우 슬퍼하면서 공후를 끄집어내 그 노랫소리를 본떠서 불렀으니 이것을 공후인이라고 하였다. (p. 414)

 

Ü 우리가 아는 공무도하가다. 백수광부의 처가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이상은은 이를 노래한 적이 있다. 공후는 서양의 하프처럼 생긴 악기다.

 

□ 우리나라 풍속에는 겨울에도 갓을 쓰고 눈 속에도 부채를 놓지 않아 다른 나라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p. 415)

 

Ü 나도 우습다.

 

□ 금강산을 봉래라 하고 제주 한라산을 영주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이라 했다.

천하의 명산이 어찌 여덟에 그칠 것이며 중국의 명산이 어찌 다섯에 그칠 것이며 외지의 명산이 어찌 셋에만 그치랴 (p. 421)

 

Ü axis mundi

 

강과 하는 맑고 탁한 것으로 구분할 것이다. 건넜던 물 이름들은 혼하, 요하, 난하, 태자하, 등 물은 어디고 누런 흙탕물이었다. 대체로 들녘 물은 탁하고 산협 물은 맑다. (P. 422)

 

Ü 바위와 나무들이 쏟아내는 그 청정의 물들은 생명을 살리는 물이다.

 

□ 고려 인삼을 찬미하는 글에 세 가지에 다섯 잎, 양지 볕을 등지로 응달로 향한다. 그를 구하려면 자작나무 밑을 찾으라 (p. 425)

 

Ü 햐안 피부를 한 자작나무는 찾기 쉽다.

 

□ 당나라 이습에는 성품이 검소하고 독서를 좋아하여 베낀 책이 수만 권이나 되었다. (p. 426)

 

Ü 여기 연구원 인생 또 하나 있었다.

 

□ 만력 임짐년 1592에 신종 황제는 군대를 크게 동원하여 우리 나라 국난을 구원하였는바 이 당시 지출한 은이 8백만 냥이라 한다. (p. 436)

 

Ü 조선이 뚫렸다면 8백만 냥이 문제였겠는가. 의리가 아니라 철저한 이해 타산에 의한 결정이다.

 

□ 산해관을 10리 못미쳐 강녀묘가 있다. (p. 440)

 

법이 공평하지 못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고 주장하는 이론이 공평하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타이르는 바이다. (p. 442)

 

Ü 그러나 위정자들과 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공평정대라는 개념을 곱씹어 봐야 한다. 처지가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공평한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맞는지를 항상 물어야 한다.

 

□ 세상이 불행하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하고 본즉 의주와 남한산성은 복지가 되었다. 당시에 피난 간 사람들은 이 두 곳이 아무데도 닿을 길 없는 외딴 성으로 아주 죽을 땅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나라의 어른이 있는 곳에는 천지가 힘을 보태고 뭇 귀신이 보호할 터이매 나라가 보전되면 제 몸은 보전할 터이요 나라가 망하면 제 몸도 죽을 따름일 것이다. (p. 448)

 

□ 영락 임금은 성질이 잔학하여 자기 임의대로 무고한 형벌을 써서 참혹하게 도륙할 때 흡사 오이 넝쿨을 끌어 일으키듯 한 줄에 잇달아 베어 죽였으니 사람의 정리라고는 볼 수 없었다. (p. 454)

 

Ü 정신병자 아닌가.

 

□ 우리나라 합천 해인사 홍류동에 있는 전각 원융각에는 명나라 중군도독 태자태보 이여송이 쓰던 갓과 두루마기와 당시에 지었다는 시 한 편을 보관해 두었다. (p. 460)

 

□ 나라에서 죄인을 사형할 때는 코끼리를 풀어 놓아 사람을 허공에 몇 길 던져 코끼리가 어금니를 쳐들고 받도록 하여 가슴과 배를 꿰뚫어서 시체는 빨리 썩어 버린다고 한다. (p. 467)

 

□ 흑진국 사람, 온갖 물건을 그 앞에 벌여 두고 무엇을 가지려고 하는 보았더니 필경은 본 척도 하지 않다가 여자를 데려다 보였더니 즉시로 흔연히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p. 469)

 

Ü 웃음이 나온다. 계속 나온다.

 

□ 우리나라 서해안 장연, 풍천 해변은 고기잡이를 하는 중국 배들이 휩쓸고 있다. 지금도 중국 배들이 서해안에 오면 지방 하급 이교들이 즉시 해당 지방관에게 보고를 하지마는 실상은 말릴 재주가 없다. (p. 472)

 

Ü 어찌 이리 변한 것이 없는가.

 

□ 사람이란 너무 아는 척하여 함부로 책에 서술할 것은 못 된다. (p.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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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산중에는 의서도 없고 약재도 없으므로 혹 이질이나 학질에 걸리면 무엇이고 가늠 대중으로 치료를 하는데 때로는 맞는 것도 있기에 역시 아래에 붙여 산골에서 쓰는 경험 방문으로 삼았다. (p. 486)

 

□ 허리가 아픈 병을 치료하는 데는 두충을 술에 담갔다가 불에 구워서 말린 후에 가루로 만들 때에 재를 없이 하여 술에 타서 마신다. (p. 487)

 

□ 고기 가시가 목에 걸렸을 때는 개의 침을 먹고 곡식 가시랭이가 목에 걸렸을 때는 거위의 침을 넘기면 즉시 낫는다. (p. 488)

 

□ 구기자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켜고 책을 읽으면 시력을 더 좋게 할 수 있다. (p. 489)

 

Ü 이건 진짜로 한 번 해봐야겠다.

 

후비와 유아에는 두꺼비 껍질과 봉미초를 잘게 갈아서 상매육과 함께 술에 삶아 각각 조금씩 섞어서는 다시 갈아 가지고 가는 베로 짜서 즙을 내어 거위 깃으로 찍어 환부에 바르면 담을 토하고는 즉시 멍울이 사라진다. (p. 489)

 

Ü 후비는 목구멍에 종기가 나거나 막히고 좁아지는 병이고 유아는 편도선 염증.(각주)

 

□ 여자들이 경도로 출혈이 심할 때는 당귀 한 냥쭝, 형개 한 냥쭝을 술 한 종지와 물 한 종지에 달여 마시면 당장에 그친다 (p. 490)

 

□ 절골된 뼈를 잇는 방법으로는 새 기왓장을 불로 달구어 잘 말린 자라 반 냥쭝을 뜨거운 대로 물에 적셔 자연동과 유향, 몰약, 채과자인을 꼭 같이 등분하여 가늘게 가루를 내어 한 푼 반씩 술에 타서 복용하되 상체가 상했을 때는 밥 먹은 뒤에 먹고 하체가 상했을 때는 식전 공복으로 먹는다. (p. 491)

 

Ü 아직 붙지 못하는 내 발목을 생각하면 혹 한다. 그러나 기왓장에서 깬다.

 

□ 어린애들 귀 뒤에 나는 부스럼을 신감이라 하는데 지골피 가루를 내어 굵은 놈은 뜨거운 물에 타서 씻고 가는 놈은 참기름에 섞어 문지른다 (p. 492

 

□ 양기를 돕는 데는 가을 잠자리를 머리와 날개와 다리를 떼어 버리고 아주 곱게 갈아서 쌀뜨물에 반죽을 하여 환을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세 홉을 먹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한 되를 먹으면 노인이 젊은 여자와 장난을 할 수 있다.

 

이상을 기록하여 왕곡정에게 주었다. (p. 501)

 

 

3. ‘눈 앞이 아찔해 지는 일기(내가 저자라면)

연암은 18세기를 온전히 살았다. 서양에서는 대혁명의 시기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가 대혁명을 이끌었고 무신론이 고개를 드는 시기였다. 종의 기원으로 촉발된 사회다윈주의는 사상과 제도의 우생학적 퇴보를 유도했지만 유물론은 뜻하지 않게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에 녹아 들어 사상적 깨침은 진보를 거듭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 때 한반도는 어두웠다. 오랜 왕조의 끝이었으며 전쟁 이후 권위를 잃어버린 기득권들의 당파 싸움에 인민의 삶은 고달팠다. 연암은 그 싸움의 한 중간에서 비켜 서 있으며 지리멸렬한 정치판과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사상은 그 시대 당쟁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온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중국에 갔을 때 그가 이제껏 가지고 있던 사유와 감정을 쏟아낸다. 그것은 열하일기라는 장편 여행기로 녹여졌고 그의 사상과 사유, 정치 철학 등이 모두 망라된 융합적 글쓰기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우선 이 글은 시간의 순서대로 쓰여진 기행문이다. 전통 기행문의 전형이다. 날짜와 지역, 시간, 만난 사람들을 열거하고 경험했던 일들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행의 모습보다도 열하일기의 백미는 그 기행의 순간 순간 연암이 들여다 놓은 그의 사유다. 이별에 슬퍼하고 백성의 삶에 분노하고 불합리에 대해 일갈하고 자연을 섬기며 우주를 이해하려는 그의 사상이다. 책을 읽으며 연암이 그 시대 조선을 이끌었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를 상상한 적이 있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에 더한 상앙, 한비자의 법가 사상과 세종의 위민이 더해져 가슴이 따뜻한 나라가 되지 않았겠는가.

 

내가 쓰려는 산에 대한 글은 연암의 글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라는 동질의 주제가 연암과 나를 연결하고 있었고 사유를 들이려는 노력이 그러했다. 앞으로 남은 2~3권도 주의 깊게 읽어 연암에 나를 녹이고 나에게 연암을 녹여 내 보자.

 

앞으로 나아갈 길은 희미하고 퇴로는 없다. 길은 그리고 미지는 발이 허무는 것이다. 연암은 그의 발로 자신의 미지를 허문 사람이다. 나는 라인홀트 메스너를 좋아한다. 그는 인위적인 산소 공급의 도움 없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14개를 오른 최초의 인간이다. 죽음을 피해가는 기술을 아는 사람이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루트와 길임에도 그는 다른 방법으로 이미 나 있는 길을 미지로 만들어 버렸다. 무엇을 말하는가. 익숙한 중국으로 가는 길을 수 백 년간 사신들이 들고 나던 그 길을 박지원은 미지의 길로 만들어 버린 것과 같지 않겠는가. 이로써 나는 박지원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우주의 먼지를 이야기할 때 아르키메데스와 코페르니쿠스를 보았고 퍼텐셜을 운운하며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 세간의 신학자들이 그의 사상 앞에 무참해진다. 다른 사신들이 중국의 자금성 위용과 웅장한 성곽, 광활하게 펼쳐진 산세들을 이야기할 때, 연암은 깨진 기와를 보고 스파크를 튀어낸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물리적인 제약으로 어쩔 수 없는 건축물과 땅덩어리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라 역설한다. 과연 실사구시, 이용후생의 대가다.

 

우리는 연암을 읽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그의 기행을 기이한 조선의 한 사내의 이야기로 넘겨야 하는가. 열하일기는 갖은 이야기와 잡다한 가십을 열거한 雜記(잡기)로 그저 조금 놀라고 책상 옆에 치워둬야 하는가. 이것은 바이블이다. 200년 전의 사람이 오늘 우리에게 情理(정리)를 이야기하는 것을 잘 읽어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중국)들이 쌓아 놓은 업적이나 물리적 토지의 광막함을 부러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에게 세상에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모든 권위들을 똑바르게 목도하는 것이다. 연암의 시선은 바로 그런 사회에 통렬히 똥침을 놓는 시선이다. 우리는 그 시선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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