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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9일 11시 27분 등록

열하일기 ()

박지원 / 리상호 옮김 / 보리

 

I. 저자에 대하여

 

朴趾源, : 연암 조선 후기의 문호이자 실학자로,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밖에 공작관·무릉도인武陵道人·박유관주인薄遊館主人·성해星海·좌소산인左蘇山人 등의 호를 사용하였다. 『열하일기』를 저술하여 당시 중국의 정세를 살피고, 그 선진 문명을 소개하는 한편, 조선에 대한 심도 있는 내부 비판을 시도하였다. 1786년 음직으로 처음 선공감 감역이라는 벼슬을 지냈으며, 이후 여러 말단 벼슬을 거쳐 1792년 안의 현감에 임명되었고, 1797년 면천 군수가 되었다. 1800년 양양 부사에 승진,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홍대용과 함께 조선의 주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 위에서 이용후생의 실학을 모색했으며, 창조적이고 성찰적인 글쓰기를 통해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이 갖고 있던 미망과 편견, 허위의식과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사유와 미의식의 지평을 몸소 열어 나갔다. 문집으로 『연암집』이 전한다.

 

박지원은 18세기 지성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자, 문체반정의 핵심에 자리하게 된 『열하일기』를 통해 불후의 문장가로 조선의 역사에 남은 인물이다.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라는 코스에서 벗어나 이덕무,...조선 후기의 문호이자 실학자로,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그밖에 공작관·무릉도인武陵道人·박유관주인薄遊館主人·성해星海·좌소산인左蘇山人 등의 호를 사용하였다. 『열하일기』를 저술하여 당시 중국의 정세를 살피고, 그 선진 문명을 소개하는 한편, 조선에 대한 심도 있는 내부 비판을 시도하였다. 1786년 음직으로 처음 선공감 감역이라는 벼슬을 지냈으며, 이후 여러 말단 벼슬을 거쳐 1792년 안의 현감에 임명되었고, 1797년 면천 군수가 되었다. 1800년 양양 부사에 승진,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홍대용과 함께 조선의 주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 위에서 이용후생의 실학을 모색했으며, 창조적이고 성찰적인 글쓰기를 통해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이 갖고 있던 미망과 편견, 허위의식과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사유와 미의식의 지평을 몸소 열어 나갔다. 문집으로 『연암집』이 전한다.

 

박지원은 18세기 지성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자, 문체반정의 핵심에 자리하게 된 『열하일기』를 통해 불후의 문장가로 조선의 역사에 남은 인물이다.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라는 코스에서 벗어나 이덕무, 홍대용, 이서구, 백동수 등과 어울려 수학하였다. 1780년에 삼종형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열하일기』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는 69세에깨끗이 목욕시켜 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운명을 달리했다.

Yes24저자소개

 

 

I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열하일기 중하

 

열하일기 ()

 

태학관에 머물면서

 

P20윤공이 어양 왕사정의 <<지북우담>>이란 책에 그 어른의 시문들이 실려 있지요.

이른바 제비와 기러기가 등을 스쳐 날고, 말과 소가 미처 따르지 못하여 서로 어긋난다.’

는 말이 있지마는 오늘이야말로 모두들 인연이 공교롭게도 맞아 이토록 먼 곳에서 나그

네 처지로 만나고 보니 역시 또 글 속에서 친해진 분의 자손이로구먼요.”

 

P21 “조선 지역의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요?”

기록에는 5천 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 임금 시대와 함께 단군 조선이 있었고 기자 조선은 주나라 무왕 때 봉한 나라요, 위만조선은 진나라 시대에 연나라에서 쫓겨난 무리들이 동쪽으로 몰려 왔던 것 입니다. 모두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 그 지역들은 5천리에 차지 못했습니다. 전조에 와서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통일되어 고려가 되었으니 동서가 천 리, 남북이 3천리 입니다. 중국의 역대 사전에 조선의 민정, 물산, 풍속 등을 기록했지마는 실제 사적과는 많이 다릅니다. 실상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은 오늘날의 조선이 아닙니다. 역사를 쓰는 자가 외국 것은 생략하였기 때문에 옛 기록에만 따르고 있지만는 풍속과 습관도 각 시대마다 제도를 달리하고 있으니 시방의 우리 나라로 본다면 외곬으로 유교를 숭상하여 예약과 문물이 중국을 본받아 예로부터 작은 중국이란 이름까지 듣고 있습니다. 나라를 이룩한 범절이나 식자들의 몸가짐으로 보아 옛날의 조송과 다를 바 없을 것이오.”

 

P24 우리 나라 벼슬하는 양반들이란 타고난 천품이 교를 부려 중국 사람들을 볼 때는 그가        만족이고 한족이고 간에 언제나 멸시하는 버릇과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아주 습성으로 굳어져 그가 어떤 청인인지 또 관직이 무엇인지도 알아줄 리 없이 따뜻하게 맞아 줄 턱이 없을 터이요, 비록 마주 대면을 시키더라도 사람 대접을 않은 터이니, 나로서는 실로 딱한 사정이었다.

 

P25 통관이 임역에게 당신네 나라에서는 부처를 숭상하는지, 또 국내 사찰은 몇 곳이나 되는지 물어 왔다고 수역이 사신에게 아뢰었다. 사신이, 이 말은 통관의 뜻이 아니라 필시 까닭이 있으니, 무어라고 대답해 줘야 좋을지 삼사가 상의하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풍속에는 본래 불교를 숭상하지 않아 사찰은 외읍에나 있고 도성에는 없다고 대답해 보냈다.

 

P27 “우리 나라 선배들이란 나서 죽는 데라야 기껏해 봤다 바다 한 구석을 떠나지 못하여 반딧불같이 사라지고, 아침 버섯처럼 말라 잦아지는 처지에 얼마 되지 않는 시편들이 귀국 같은 큰 나라에 수록되었다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시편들이 귀국 같은 큰 나라에 수록되었다는 것은 다시없는 영광으로 여기는 바이외다. 그러나 우물에 빠진 모수가 있는가 하면 좌중을 놀라게 한 진공이 있다는 것은 좀 곤란한 일입니다.

 

P29 아무리 청인이라고 해도 무지막지하기 짝이 없구나. 그들이 퍼뜨리고 누운 자리는 그대로 옛 성현들을 위해 모셔 제물을 공대하는 탁자가 아니던가. 어째서 감히 이런 데를 함부로 침상으로 삼아 누워 잘 것인가?

이역만리 길에 고생을 함께 하고 숙식을 같이 하여 정은 응당 골육간이나 다름없어서 생사라도 같이 할터인데 한자리에 누워서도 저마끔 딴 꿈을 꾸면서 속 배짱들은 초나라, 월나라 사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P31 이 묘당은 지난 해에 새로 지은 관제묘이다. 겹겹이 깊숙하게 지은 전각이며 굽이굽이 틀어 올린 복도들이며 귀신의 솜씨 같은 조각들이며 금벽색 단청들은 사람의 눈알을 뽑을 듯만 같은데 환관들과 중들이 달려와서 둘러싸고 구경을 한다.

 

P32 우리 사신의 의관은 저들의 모자와 복장에 비하면 호사스럽기가 신선 같아 보였으나 말이 통하지 못하니 서로 인사를 치르고 마주대하는 작태가 어디고 어색하고 서먹서먹하고 뻣뻣하여 저들의 삽삽하고 익숙한 인사성에는 맞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투르고 빡빡한 태도가 절로 점점만 뽑는 것으로 보였다.

 

P33 이윽고 통관은 사신을 인도하여 전각문 밖까지 가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하고 돌아 나왔다.

 

P36 “귀국이 자랑할 만한 일을 몇 가지 들어 봅시다.”

우리 나라가 비록 바다 한 구석에 붙어 있지마는 네 가지를 자랑할 만 합니다. 유교를 숭상하는 것이 첫째요, 홍수가 없는 것이 둘째요, 고기와 소금을 딴 나라에서 가져오지 않는 것이 셋째요, 여자가 개가를 않는 것이 넷째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39 “귀국 부녀자의 의관 제도는 어떻소?” 하고 물었다. 나는 위는 저고리, 아래는 치마를 입는다고 하고 머리 쪽 트는 법이며 원삼, 당의 등속을 책상 위에 대강 그림을 그려 보였더니 두 사람은 함께 좋다고 칭찬을 한다.

 

P44 “황제의 한없는 사랑이야 우리들을 한나라 백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시매 상대가 중국 인사라면 찾아보기에 거리낄 게 없겠지마는 타국 사람에 이르러서는 마음대로 통래할 수 없는 것이 저희들 나라의 법 입니다.”

 

P48 “만약 달 속에 또 한 세계가 있어 달로부터 땅덩이를 바라보는 자가 있다면 역시 우리처럼 난간에 기대고 서서 땅 빛이 달에 가득 찼다고 땅 놀이를 할터이겠지!”

 

P53 대체로 중국 사람들이 술 먹는 법이란 얌전하디 얌전하여 아무리 한여름철이라도 으레 데워 먹는다.

 

P54 궁성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서북쪽을 향해 가노라니 이 일대의 산기슭으로는 궁전이야 사찰들이 뚜렷하게 눈 어란에 들어오는데 어떤 데는 4,5층 누각이 소위 배는 상수로 돌아드니 형산을 아홉 면으로 볼 수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P57 궁실 그림을 그리는 자가 정교하다 하더라도 궁실은 사면이 있고 또 안과 밖이 있고 또 겹겹이 서 있을 바엔 비록 서양 그림의 정교한 필치로써도 다만 한 면만 그릴 뿐 세 면을 다 그릴 수 없을 것이요, 또 바깥만 그릴 뿐 안은 그릴 수 없을 것이요, 겹겹이 선 적각, 첩첩이 선 정자, 굽이굽이 튼 회랑들은 다만 날아가는 듯한 처마와 지붕만 따서 그릴 뿐, 아로새겨 물린 정교한 세공에 이르러서는 화가로서 그릴 수 없는 것이다.

화가들의 천추의 유한으로 공자님도 벌써 이 두 가지를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글은 말을 다 할 수 없고, 그림은 뜻을 다 할 수 없다.” 하였다.

 

P58 우리 나라 안에서는 금이 소용되는 데가 별로 없다. 기껏 쓰이는 곳이 문무관으로 2품 이상이면 금관자나 금띠를 띠는데 이것도 서로들 빌려 쓰기도 하니 늘 만드는 물건이 아니요, 신혼 부녀들의 가락지나 머리꽂이를 만들기는 하나 이것도 그리 많지 못한 물건인 즉 금이 실상은 보잘것없이 천한 터인데 이토록 값이 비싼 까닭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P65 모자 꼭대기에 수정 구슬을 단 자는 호부상서 화신이라고 한다.

 

P68 봉한 비단을 풀고 본즉 색은 누렇고도 약간 붉은빛이 나는데 술과 같았다. 서정관이 말하기를 이 까닭에 이 술을 황봉주라 한다고 했다. 맛을 달아도 아무런 향기가 없고 조금의 술기가 없었다.

 

P73 땅이 둥글다는 이야기는 서양 사람들이 처음 말했지마는 땅덩이가 돈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선생의 이 학설은 이녁이 터득한 학설인가요. 그렇잖으면 어느 선생에게 계승한 학설인지요?

 

P76 곡정의 말을 들으면 악기를 보관해 두기는 매우 까다로워 습기 잇는 곳을 피해야 하고 너무 건조한 데도 나쁘다고 한다. 거문고 위에 묻은 때는 소위 사자학이라고 하며 거문고 줄 위에 묻은 손때는 앵무장이라고 하며, 생황의 부는 구멍에 말라붙은 침은 봉항과라고 하며, 종이나 경에 앉은 파리 똥은 나화상이라고 한다.

 

P78 “가을 병아리를 여러 번 번갈아 씨를 받아 사 오년만 지나면 베개속에서 울음을 우는 꼬마 닭이 되는데 이것을 침계라고 한다네. 말도 역시 종자가 작아들면 맨 나중은 베개 말이 안 되리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P81 무릇 생물들의 성질이란 사람이나 다름없이 고달프면 쉬고 싶고, 답답할 때에는 시원한 데를 찾고 싶고, 구부러든 놈은 펴고 싶고, 간지러우면 긁고 싶고 본즉 비록 사람이 먹을 것을 부면 먹는다 하더라도 때로는 제 맘대로 신을 풀기 위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말도 반드시 이따금 굴레와 고삐를 풀어 놓아 물역 같은 시원한 곳에 놀게 하여 답답증을 풀도록 할 것이니 이것이 말하자면 생물의 성질에 따라 그 뜻을 맞추어 준다는 것이다.

 

P84 낳은 새끼가 신통치 못하거나 털빛도 좋지 못하고 길들이기도 어려울 때는 애비 말은 반드시 불알을 까 버려서 나쁜 종자는 절종시키는 동시에 종자를 덜썩 크도록 하고 길들이기 쉽도록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목장을 관리하는 관직들은 이런 생각은 못 하고 덮어 두고 토산 말로만 종자를 받기 때문에 낳으면 낳을수록 종자는 자꾸만 작아지게 되어 필경은 거름바리, 나무바리 한 짐도 변변히 견뎌내지 못할 만큼 되었다.

 

P85 한 나라의 큰 정책으로는 고려하지 않고 이것을 수치로 여기고 하인들의 손에만 맡겨 두고 있으니, 비록 직책은 감목이라고 하지마는 사람은 벼슬에 있는 사람으로서 목마의 지식이라고는 꼬물도 없다. 이것은 능력이 없다기보다도 배우기를 사리기 때문이니, 이런 것을 들어 관원들이 목마에 무식하다고 하는 것이다.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P97 나는 이번 걸음에 뜻하지 않은 여러 곳을 지나오면서 옛 사람들이 먼지를 휘날리며 지나간 수레와 말발굽 자국이 눈에 삼삼한 듯하고 보니, 어허 인간 세상살이가 이토록 앞일을 짐작 못할 만큼 덧없을까?

 

P104 이런 새외로 말하자면 필시 사냥터로 삼아 응당 날짐승, 길짐승이 많을 터인데 이곳의 여러 산들을 보면 아주 홀딱 벗어져 새나 짐승 한마리 안보이니 수렵으로써 생명이나 다름없이 여기는 되친구들의 사냥거리가 못내 걱정이구나. 짐승 한 마리 안 남기고 다 잡아 절종을 시킨다는 것은 아무래도 옳은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이러고 나면 어디 또 좋은 땅이라도 얻어 갈 자리나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P119 제독은 말이 없고 통관은 고개를 떨구어 강산은 다름이 없는데 인심의 차고 더움이 이토록 다르구나. ! 세도란 이토록 믿을 수 없는 것이나 세력이 있는 곳엔 우르르 덤벼들었다가는 눈 한번 굴리는 동안에 때는 가고 일은 식어 어디고 등 닳을 곳이 없을 때는 진흙으로 만든 소가 바닷물에 들어가 풀어지듯, 얼음 산이 볕을 본 듯 녹아 버리고 마니 이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닐까 보냐.

 

P120 우리 나라에서 작은 배는 거루라 하고 나룻배를 나로라고 하고 큰배를 당돌이라 하고 상류에 다니는 배를 물웃배라 하고 관서 지방에서 배를 가리켜 마상이라고 한다.

 

P123 대체 학문이란 것은 신중히 생각하고 사물을 밝게 분별하고 자세히 묻고 넓게 안다는 것이다. 덕성만을 가지고 함부로 추어올릴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묻고’ ‘배움과 연결시킨 것이다.

자기란 개개인의 사욕이다. 마음을 바로잡는데 있어서 만약 조그마한 사욕이라도 비치게 될 때는 성인으로서는 이것을 도적이나 원수를 대한 것처럼 아주 뽑아 없애고야 만다.

회복이란 말은 조금도 부족이 없다는 말로, 일식이나 월식처럼 다시금 둥글게 회복하는 것이요, 또 잃어버린 물건을 찾음과 같이 한푼쭝도 축이 안 난다는 말이다.

 

P128  주막집 버드나무에 말을 매고서 반가운 그대 만나 잔을 나누리.” 라고 써 붙여 놓았다.

오늘이야말로 말을 술집 수양버들에 매놓고 술을 마시게 되니, 옛날 사람이 지은 시들이 예사롭게 눈에 띄는 일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지마는 사람의 근경을 여실히 표현하여 주고 있었다.

 

P129 대개 고관들이 사퇴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든가, 또는 국내에 이렇다 하는 명사들이 석양 나절이면 구름같이 거마를 몰아들어 밤 가는 줄 모르고 술잔을 들고 시를 읊고 글씨를 평하고 그림을 이야기하다가는 다투어 가면서 자기들의 좋은 시구와 서화들을 남겨 둔 것이다. 이것이 이런 술집의 유행이 되어 일부러 의자, 탁자나 기명 골동들의 사치를 경쟁하여 화초들을 장하게 늘어놓고 일품 가는 좋은 먹이며 종이며 벼루며 붓 등 서화에 필요한 자료는 다 준비해 두고 제공한다.

 

경개록

 

P137 옛날에도 오랜 벗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낯설기만 하고 우연히 마주한 이라도 마음이 통하면 오래 사귄 벗과 같다.”고 했지마는, 한마디 이상 되는 이야기는 다 주워 모아 여기서 경개록이라고 한다.

 

P144 “땅에는 두 임금이 없을 터인데 어째서 임금 한 명이 적다고 할 수 있을까요?” 했다. 까닭인즉 왕일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중국 사람들은 글자 음이 같으면 같은 글자처럼 쓴다.

 

P145 “벼슬은 몇 품이나 되시오?”

수재로 사신을 따라온 길이라 근본 아무런 직분이 없습니다.” 했더니 조공은 급하게 나를 붙들어 앉히면서,

벌써 직무가 없으시니 선생은 내가 존경할 손님이오. 나로서는 손 접대하는 예절이 따로 있으니 선생은 굳이 사양할 필요가 없습니다.”

 

홍교문답

 

P151 다른 나라에 다녀온 자가 흔히 말하기를 나는 적정을 잘 엿보았느니라하기도 하고 나는 풍속을 잘 보았다.” 하기도 하지마는 나는 꼭이 이런 말을 믿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가서 무슨 길잡이가 있어 갑자기 찾아볼 데가 그리 쉽게 있을 것인가, 이것이 첫째로 안 될 일이요, 언어가 서로 달라 잠시 동안에는 충분한 뜻을 통하지 못할 터이니 이것이 둘째로 안될 일이요, 중국과 외국 사람은 이미 입장이 달라, 아무래도 수상한 형적을 남기는 혐의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셋째로 안 될 일이요, 말이 옅으면 속 실정을 알지 못할 것이요, 그렇다고 말이 너무 깊이 들어간즉 기휘에 저촉되기 쉬우니 이것이 다섯째 안 될 일이요, : 그 직위에 앉지 않으면 그 정치를 말하지 말라는 말은 자기 나라에 거주하는 자로서도 지켜야 할 도리인데 하물며 다른 나라일까 보냐. 그 나라에서 제일로 금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 뒤에야 남의 나라에 들어가 말을 붙이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더구나 대국일까 보냐. 이것이 여섯째로 안될 일이다.

 

P155 “보물 거울을 하나 걸어 두었는데 사람이 음탕한 생각을 먹으면 반드시 푸른빛으로 비치고 누구나 탐심이나 도적질할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검정색으로 비치고, 누구나 위험하고 불측스러운 생각을 먹으면 반드시 흰빛으로 비치고, 다만 충효스러운 생각과 전심으로 부처를 공경하는 사람이 오면 붉은빛 아지랑이에 누런 빛깔을 띠고 상서로운 구름과 우담화가 거울 바닥에 감돌게 된답니다. 이 오색 거울 무섭지요.”

귀공 자신이 푸르고 검고 흰, 세 가지 생각이 없다면 뭣 때문에 이 거울이 그렇게 무섭겠소?”

 

P159 만약에 활불처럼 자기의 전생 일을 알아 전생에는 자기 몸이 아무 데 아무개의 아들이고 이생에서는 이 몸이 아무 데 아무 성가진 이의 아들이 되었다면 전생의 부모와 금생의 아비, 어미가 오늘도 아무런 탈도 없이 한결같이 자애롭게 역력히 다 알아보고 저마끔 아무개냐고 부를 터이니, 이러고야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은혜롭게 생각할 것이며 슬프고 즐거울 것이 어데 있겠소?”

 

P162 “유학자들 중에도 도학과 이학의 명색이 다른데 귀국에서는 이런 분간이 있는지요?”

우리 유학에는 오직 네 가지 과목을 두고 가르쳐 이 네가지 과목을 일관한 도는 다만 한 가지 이치일 뿐이지요. 이것을 배우고 묻는 것이 바로 학문일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유학자들이 함부로 따로 또 과목을 두어 그런 두 가지 다른 명색을 붙이겠습니까?”

 

P169  귀국의 무덤 제도는 어떻습니까?”

옛날 예법을 따른다지마는 나라 풍속이 검소한 것을 숭상하여 보물을 함께 묻는 법이 없고 공경 귀인들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장사 치르는 제도는 모두 주자의 <<가례>>를 쓰고 있습니다. 또 땅이 한쪽 구석 벽지에 처하고 보니 난리도 그리 자주 없어서 저절로 그 따위 걱정은 없습니다.”

 참말 좋은 나라 좋은 땅에 즐겁게 나서 즐겁게 죽는 셈이오. 주공이 예법을 만든 것은 만대를 두고 도적의 길을 터놓은 것인갑소. 생명 없는 시체가 무슨 죄가 있겠소? 보물을 지녔다는 것이 죄이지요.”

 

P170 “대체 무덤 속에서 나온 그릇이란 무엇이고 흉스럽고 더럽고 꺼림칙할 터인데 어째서 보물로 치나요?”

참 그렇습니다. 은나라, 주나라 적 그릇들의 해독은 만대를 두고 내려와 후세에 와서 일 좋아하는 자들은 책상 위나 그림 그리는 방이나 위신을 갖추어야 하는 방 치장에는 이런 꺼림칙한 그릇들이 아니고는 벌여놓을 줄 모른답니다. 소위 감상가들은 똑똑하게 이것을 알아 내는 것으로 박식을 삼고 수집가들은 애써 이를 그러모으는 것으로 취미를 삼습니다.”

 

P172‘라마란 말은 서번 말로 도덕이란 뜻인데 소위 라마라면 모두 중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나라나 명나라 시대는 번왕이 몸소 사신이 되어 조공을 바칠 때는 부하를 삼사천 명이나 데리고 국경에 들면 언제나 생기는 것이 많아서 때로는 국경 지방에 그대로 남아 떨어져 돌아가지 않을 적도 있습니다.

 

P173 “신통스러운 나무란 무슨 나무인가요?”

이 나무 이름은 천자만년수라고 하는데 엇갈린 가지와 퍼진 가지가 모두 천자만년이랑 글자 모양으로 되었답니다. 장자가 봄이 삼천 년, 가을이 삼천 년이라고 한 나무로서 어떤 이는 이 나무를 명령이라고 한답니다.

 

P174 초나라에 있었다는 영수와 같아서 온 세상에 향기를 퍼뜨려 이 바람에 만국은 다 같이 평안하고 사철 언제나 꽃이 핀답니다. 꽃잎은 열두 잎인데 꽃봉오리가 처음 터지면 초하루인 것과 달이 처음으로 한쪽 면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되고, 꽃이 하루 한 잎씩 피어 열두 잎이 활짝 다 피면 보름인 것과 달이 처음으로 이지러지기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되고, 꽃이 하루 한 잎씩 말아 들어 꽃 꼬투리가 떨어지면 그믐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명수라고도 하고 또 영수라고도 한답니다.

 

P176 “세상에는 세 가지 교가 있는데 귀국에서는 무슨 교를 가장 숭상하고 있나요?”

중국같이 큰 나라에서 어찌 교가 세 가지만 있겠소? 자기의 도를 행하고 보면 다 교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인간 세상살이가 어찌 유교에 안 닿는 것이 있겠습니까? 유교라고 부르면 벌써 구류의 반열로 물러서게 되니, 우리 교처럼 광대무변한 도를 가지고 도리어 세 가지 교라는 비좁은 틈에 끼어 선비 유자로써 매기고 마니, 이것이 이단을 조장시키는 까닭이 될 것이외다.”

 

P177 세상에는 다만 우리 도가 있을 뿐, 우리 도의 한 끄트머리를 가지고는 저마끔 한 가지 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들같이 도를 배우는 자는 반드시 우리 도라고 할 뿐이지, 유교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우리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자를 대칭해서 부르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상대가 마주 대하게 될 때에는 벌써 우리상대방은 관계가 형성되어 우리라는 일방만이 안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자신을 우리에다 국한 한다면 이야말로 우리상대사이는 불공평하게 될 것입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 가장 공평한 도리이거늘 어찌 우리라는 자기의 독점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좀처럼 얼씬도 못 하도록 하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우리 도라는 말이 그리 번듯하고 공정한 칭호 같지는 않습니다. 유교라는 말에서 라는 개념을 잘 알았습니다마는 그러나 라는 것은 <<중용>>에 이른대로 도를 닦는 것은 일러서 교라고 한다.’는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닐지요?

 

P179     말하자면 <<서경>>에 이른 대로, ‘도덕을 따르는 것은 길하고 역리를 좇는 것은 흉할 것이외다. 이것이 바로 우리 도의 인과입니다. 여기서 도덕과 역리는 원인이요. 길흉은 결과 입니다. 그러나 길흉 보웅설이 부족하다고 평하는자는 말하기를, 그림자와 메아리처럼 따르고 좇아 부웅하는 영험이 이토록 빠를 수야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말하자면 착한 일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게 될 것이요. 착하지 못한 일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내리는 법이니 이는 우리 도의 인과입니다. 그러나 앙경설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자는 반드시 남는 것이 있다고 하지마는 이 반드시 남는 것을 대체 누가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불교를 하는 자도 처음에 인과를 들어 말한 것은 꽤 투철했지마는 다음에 우리 도에서 좋고 나쁜 일에는 반드시 갚음이 있다는 것을 보고 슬쩍 윤회설로 대신 채웠으니 실상 우리 도에서 볼 때는 이것을 병집으로 잡는 것입니다.

 

P180 “시방 법왕이 말하는 다른 사람 몸에 태어난다는 법은 윤회설의 증거나 아닐까요?”

아니외다. 남의 몸에 태어난다는 법은 윤회설과는 다릅니다. 소위 윤회설은, 맹수라도 갑자기 부처님의 생각을 품게 된다면 다음 대에 가서는 좋은 갚음을 받아 착한 사람이 될 것이요. 지금은 사람이더라도 짐승이나 다름없는 행실을 하면 후생에 가서는 나쁜 갚음을 받아 틀림없이 짐승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유하는 말에 불과한 것으로 조잡하고 우둔하고 천박한 말입니다. <<시경>>에도 효자가 끊어지지 않으니, 하늘은 너에게 길이길이 복을 주리라.’ 했으니, 윤회설의 증험이란 정작 이런 것으로서, 법왕이 소위 남의 몸으로 태어난다는 법이야 때 묻고 더러운 옷을 갈아입듯이 아주 자기 몸을 바꾸어 버리는 것 입니다.”

 

P183 고금 천하에 환생이란 법이 없는 바도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 태어나는 수도 역시 없지 않으며 화식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과 장생불로하는 사람 역시 없는 것이 아닙니다. 또 덮어놓고 이런 이치가 없다는 것도 일종 편견이요. 또 이런 이치가 있다고 주장 하는 것도 편견일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가 때로는 있을 수도 있는 것이므로 이같이 혹시 있을 수 있는 일로써 함부로 만 가지 이치에다가 맞추려 하거나 천하의 이목을 돌리려는 것은 더욱 말 할 수 없는 편견입니다.

 

P187 이것은 여지즙 입니다. 여지란 열매는 나무에서 따서 하루만 지나면 대번에 빛깔이고 향내고 변해서 만의 하나도 성할 수 없지요. 그래서 꿀에 담가 두어도 열의 아홉은 빛깔과 맛이 변하기가 일쑤랍니다. 처음 나무에서 딸 적 같으면 입이 열이고 손이 열이라도 그 맛과 향기를 어찌 다 형용을 할 수 있겠나요?

 

반선시말

 

P203 대체 파사팔이 태어난 내력은 이렇다. 토파의 한 여자가 새벽에 물을 길러 갔다가 수건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주워서 몸에 찼더니 수건이 차차 기름덩이로 엉키면서 이상한 향내가 가고, 먹어보니 달콤했다고 한다. 필경 웬 사람이 나와 인도를 하자 감촉되어 낳은 것이 파사팔이니,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성하였다.

원나라 세조가 사막에 있으면서 파사팔이 어려서부터 능히 불교의 경전을 만 권이나 왼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맞아 왔다. 과연 지혜롭고 원만하며 몸에는 전체가 향내요, 걸음은 천신과 같고 목소리는 음률에 맞아서 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부처나 다름없이 보았으니, 당시에 이렇다 하는 인물들도 아무도 따를 수 없었다고 한다. 능히 소리를 맞추어 몽고의 새 문자를 지어 천하에 반포하였으니 황제는 대보법왕이란 호를 주었다고 한다.

 

P204 후일에 신을 맞아 악귀를 누르는 청산압마의 놀이가 생겨 병을 수만 명을 내어 비단 바지, 수놓은 웃옷에 수레나 말에는 깃발을 딛고 비단 일산을 늘이고 모두 금은보옥, 비단, 수단, 능직, 채단으로 꾸며 황성을 둘러싸고 사대문을 거쳐 서번 음악과 중국 음악에 맞추어 의장을 인도하여 궁중으로 신을 맞아들이는데, 이것을 파사팔교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교는 본래의 교지와는 아주 틀려 기괴한 잡귀의 도가 뒤섞이게 되았다.

 

P207 그중에도 오사장 법왕만은 법승들이 서로 대를 이어 스스로 왕이 되어 명나라 중기부터 시작하여 그 이후로 오랫동안 중국으로부터 봉호를 받는 번잡한 수속이 없이, 대법왕과 소법왕 둘이 있어 대법왕이 죽을 떄는 소법왕에게 아무 데 아무네 집에 아이가 나서 이상한 향기가 날 때는 그것이 곧 나이니라.”고 유언을 한다고 한다. 이리하여 대법왕이 죽고 나면 아무 데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한 아이가 태어나게 되고 잘 알아보아 살에서 과연 향내가 풍기면 즉시로 깃발이야 일산이야 옥가마, 금수레를 버젓하게 갖추어 가서 아이를 수건에 싸 맞아 온다. 이것은 파사팔이 향기로운 수건에 감촉되어 난 떄문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양육해서는 소법왕을 삼고 종전의 소법왕이 이번에는 대법왕이 된다고 한다. 오늘의 반선, 즉 대보법왕은 벌써 열네 번쨰 환생한 법왕으로서 원나라, 명나라 연간에 신승이라 하던 중들은 다 그의 전신이라고 한다.

 

P210 유걸의 <<오운비기>>에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여기에는 역대의 좋은 일, 궂은 일과 제왕들이 일찍 죽을 것과 오래 살 것을 죄다 점괘처럼 적어 두었는데 금서가 되어 민간에서는 얻을 수 없고 다만 비장해 둔 것이 한 벌 있을 뿐인데 반선은 어디서 이것을 알아 냈을까요?

 

P213 “서번은 옛날 토번 땅입니다. 장교를 숭상하는데 또한 황교라고도 하는바, 이는 이 나라의 근본 퐁속이고 중이란 이름은 일부러 붙인 이름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이 중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실상은 불교와 판이하게 다릅니다. 현재로 보아 중국의 불교는 없어진 지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했다. 내가 열하에 있을 적에는 비록 조정의 고관들이라도 도리어 나에게 반선의 얼굴 생긴 모습을 묻곤 했다. 대체 황족이나 부마나 조선 사신이 아니면 만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P215 그러나 원나라에서는 반선에게 호를 붙여 황천지하 일인지상 선문대성 지덕진지라고 했다. 여기 일인지상에서 일인은 천자를 가리킨 말이다. 천자는 온 세상이 임금으로 받들고 있는 터에 어쨰서 천자보다 더 높은 자가 있을까 보냐. ‘선문대성 지덕진지는 공자를 가리킨 말이다.

 

찰십륜포

 

P219 찰십륜포는 우두머리 큰 중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서번 말이다.

 

P221 군기대신이 황제를 모실 적에는 누런 옷을 입다가 반선을 모실 적에는 라마 중 입성으로 바꾸어 입는다.

파사팔은 그 어머니가 향내 나는 수건을 삼키고 낳았으므로 반선을 보는 자는 으레 수건을 가지고 보는 것이 예절로 되어 있어 황제도 반선을 볼 때 마다 역시 누런 수건을 가지고 본다고 한다.

 

P227 중국의 점잖은 인사들로서 반선을 볼 수 없었던 사람은 오히려 우리 사람들에게 반선이 어떻더냐고 물었다. 이는 모두 이목을 더럽히지 않고자 함인데 우리 사람들은 멋대로 부끄러움도 없이 보고 다녔으니 수치스러운 일이다.

 

행재잡록

 

P231 명나라는 우리의 형제국가이다. 형제 나라가 우리 나라에 주는 선물 같은 것은 그것이 비록 대수롭잖은 물건일지라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 듯 그 영광이야말로 전국에 퍼뜨리고 경사야말로 만대를 전할 만할 것이요, 또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몇 줄 되는 글월 한 쪽이라도 높기는 은하수 같고 놀랍기는 우렛소리 같고 때를 맞추어 내리는 비와 같이도 감격스러운 터이다. 이는 무엇 때문일까? 형제 국가인 때문이다. 형제 국가란 무엇인가? 중국을 두고 말함이다. 즉 역대 조정과 임금들이 승인을 받은 나라이다.

 

P232 그러나 우리들이 이런 특전을 우대로 생각할 뿐 은혜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걱정으로 여길 뿐 영광으로 삼지 않음은 무슨 까닭일까? 이는 형제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천자가 있는 곳을 행재라 하고 사건을 기록하나, 형제 국가라고 하지 않음은 무엇일까? 이는 중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이 모자라서 저들에게 복종을 하고 보니 이래서 대국이라 하는 것이요. 대국이 힘으로써 우리를 굴복케 할 수 는 있었으나 우리 나라를 처음에 승인한 국가는 아니었다. 오늘 그들의 여러 가지 우대와 공물을 감면해 주라는 명령은 대국의 처지로서는 작은 것을 동정하고 먼 지방을 회유하는 정책에 불과하는 본즉, 비록 한 세대마끔 한 번 공물을 없애 주고 한 해에 한 가지 폐백을 면제하더라도 이는 우대일 뿐 우리가 말하는 은혜는 아니다.

 

심세편

 

P249 중국을 유람하는 자들이 지닌 다섯 가지 망령이 있다. 문벌이 높다는 것은 본래 우리 나라 풍속에서도 더러운 습관이니, 식자로서는 자기 나라 안에 있을 때라도 양반이란 말을 입 밖에 내기도 부끄러워하는 터에 더구나 변방의 토성쯤 가지고 중국의 묵은 겨례를 업수이 여길 것인가? 이것이 첫째 망령이다.

중국의 붉은 모자나 마제수 복장은 한인들만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만인도 역시 이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문물제도에 이르러서는 변두리의 낙후 국가들로서는 당해 낼 수 없고 그들과는 장단을 맞겨둘 수 없다. 그런데 한 줌도 못 되는 상투를 가지고 세상에서 저 혼자 잘난 척하니 이것이 둘째 망령이다.

사신에 임명된 자는 응당 관리들과 접견하는 데 일정한 예절이 있는 터인데 공석에서 절하고 읍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걸핏하면 이를 모면코저 하는 것이 드디어 버릇이 되어 때로 접견 절차가 있으면 무엇이고 아주 간소함만을 주장하고 공손하고 겸손한 태도는 욕으로 알고 있다. 저들이 비록 이것을 책잡지는 않을 망정 어찌 우리들의 무례를 멸시하지 않을 것이랴. 이것이 셋째 망령이다.

공자를 알게 된 때로부터 중국에서 빌려 읽지 않은 글이 없고 역대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죄다 꿈속에서 해몽을 하는 격이건만 과거 공부하던 여가에 익힌, 되지도 못한 시문을 지어 놓고는 갑자기 중국에는 문장가를 볼 수 없다고 큰소리를 하니, 이것이 넷째 망령이다.

중국의 인사들은 강희 이전에는 모두가 명나라의 유민들이었으니 강희 이후는 청나라 황실의 신하요 백성들이니, 당연히 지금 왕조에 충절을 다하고 법제를 준봉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뜻하지 못한 사이에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도 국정을 외국에 누설한다는 것은 당연히 반역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만난 중국 인사들이 요즘 세상이 살기 좋다고 자랑하는 것을 볼 때는 언뜻 말하기를. “<<춘추>> 한 벌 책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매양 연나라, 조나라 거리에는 슬픈 노래를 부르는 인사를 볼 수 없다.” 고 탄식하니 이것이 다섯째 망령이다.

 

P263 옛날 음악과 오늘 음악을 비교하는 음악 이야기를 한참 하다나니 음식 차려 놓은 지가 꽤 오래되었건만 아무도 권하지를 못했다. 아까 차린 음식이 벌써 식었다고 하니, 윤공은 정신을 못 차리고 두서가 없었음을 사과한다. 나는, “옛날 공자는 순 임금이 지은 음악을 듣고 고기 맛을 잊어 버렸다더니, 저는 대아이야기를 얻어 듣는 바람에 벌써 온 마리양을 잊었습니다.” 했더니 윤공은 장과 곡이 한목으로 양을 잃어버린 셈이외다.” 하고는 서로 웃었다. 이에 필답한 것을 정리하여 망양록이라고 한다.

 

망양록

 

P265 “오음이란 실제 명목이요, 육룰이란 가정된 위치일진대 소리가 날 때에 이를 헤아려서 맞는 소리를 율이라 하고 맞지 않는 소리를 율이 아니라고 한다면 음악은 예나 지금이 다를 수가 없을 것이요. 아악, 속악이 없을 것인바 그래도 연대에 따라 음악과 풍류는 달라지고 변천되는 까닭은 무엇 떄문일까요? 혹시 악기를 만드는 데 있어서 옛날과 오늘에 다름이 있어 소리와 율은 여기 따라서 변하는 것인지요?”

대체 목소리는 목구멍과 혀와 입술과 이로부터 나와 그 형상이 각각 다르고 보매, 악기의 음도 역시 여기 따라 다르므로 악기의 음에는 억지로라도 이름을 붙여 소리에 따라 갈라 나누었으니 음의 이름을 분명히 정한 뒤에야만 그 변화를 알아 낼 수 있을 것이요. 그 변화를 알아 낸 후에야만 만 번을 불어 만 가지 음이 나오는, 수없는 다른 음들을 음의 이름에 맞추어 표준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오음이 생긴 까닭일 것입니다. 음을 변화하는 면에서 본다면 하필 오음뿐이겠습니까? 백 가지 음이라고 하여도 좋을 것 입니다. 율이란 법률의 율과 마찬가지 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이미 높고 낮고 맑고 탁하고 굵고 가는 구별이 있을 진대 귀로써 이를 들을 수 있는 한 악기를 만들어 이를 일정하게 고루 잡게 되었으니 비유하자면 문법에는 일정한 차등이 있어 제가끔 법칙에 맞는 것이나 같습니다. 다만 소리가 먼저 나기를 기다려서 이 소리를 맞추어 표준을 삼았으므로 육률은 헛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것입니다.

 

P266 “악기는 말하자면 골짝과 같고, 소리는 말하자면 바람과 같은 터인데, 골짝을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친다면 바람 자체는 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람에도 거센 바람, 잔잔한 바람, 회오리 바람, 찬 바람의 구별이 있은즉 이로써 본다면 음률에서 예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이는 악기가 고쳐진 것이 아니고 소리가 변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이어서 가 되고 가 어울려 이 되고 이 합하여 이 되는데 율에는 간성이 없어도 에는 삐뚤어진 음이 있으니 과연 한 골짝 바람 중에도 기세고 잔잔하고 맴돌고 찬 구별이 있고 새벽과 아침과 낮의 변화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그 곡조의 정취가 달라지고 듣는 자가 달라지는 데 따라 때로는 음이 격양하였다가 소침하였다가 하는 변화가 생겨 비로소 음악의 고금이 달라지고 정성과 음성의 구별이 생기는 것입니다.

 

P269 소리가 난다는 것은 다 칠정을 거쳐 나는 것입니다. 또 변궁, 변상, 변각, 변치, 변우 소리가 있습니다. ‘은 소리에 따라 어울려 사람의 마음에 느끼는바, 바르고 삐뚠 에 따라서 이 움직이고 이 따라 맞고 가 따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오음에는 선과 악이 있을까요?”

궁음같이 넓고 크고 깊고도 우람찬 소리는 선이요, 상음같이 급하고 빠른 소리든지, 치음같이 빠른 소리는 선하지 못하다는 말씀이외다.”

 

P270 오음은 다 바른 소리입니다. 소위 넓고 크고 깊고 우람차고 높고 빠르고 급하다는 것은 다만 여러 가지 소리의 본질을 형용한 데 불과한 것이요. 그 작용인즉 바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궁음도 아니요, 상음도 아니요, 각음도 아니요, 치음도 아니요, 우음도 아닌 간음이란 것이 오음 사이에 있으니, 이것이 즉 간성입니다.

 

P275 “귀국의 거문고는 어떤지요?”

금이나 슬이 다 있습니다. 우리나라 금슬은 중국과 다르고 타는 방법도 역시 다릅니다, 옛날 신라 시대에 이 악기를 만들었더니 검정 학이 와서 춤을 추었다고 하여 이름을 현금이라고도 합니다. 또 가야금이란 것이 있어 큰 거문고의 반을 쪼갠 폭이나 되고 줄은 열두 줄인데 타는 법은 중국의 거문고 타는 모양과 비슷합니다. 담헌은 처음으로 구리쇠줄 양금의 소리를 고르어 가야금에 맞추게 되었는바, 요즘은 금슬을 타는 약사들이 많은 본을 떠서 모두들 현악이고 관악에 맞추고 있습니다.”

 

P279 “기록에도 있되, ‘무릇 소리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거쳐서 난다.’ 하였으니 대체 몸이 극히 귀하고 오랜 수를 누리는 사람은 목소리가 큰 종소리 같고, 내뽑는 힘이 웅장하고 화창하여 때로는 육률의 기본음인 황종률에 맞을 수 있습니다.

 

P293 “춘추 시대에 세상은 비록 어지러웠으나 지나간 옛날이 그리 멀지 않았고, , 한 이래로 비록 큰 난리가 자주 일어났으나 환난은 나라 안에서 있었기 때문에 악공이고 악기고 옮겨 가지 않았고 제도는 그대로 남았으며, 나라를 차지한 자도 창과 칼을 버리고 먼저 악기를 찾았습니다. 그러므로 음악을 맡은 관원들은 세대와 더불어 같이 일어나고 난리가 끝나면 다투어 가면서 악기를 안고 관직에 나와서 아들과 손자에게까지 세업을 전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타고 불며 보고 듣는 것을 배우고 익히게 했습니다.

 

P299 “대체로 임금이 되어 음악은 모를 수도 없는 일이요. 그렇다고 또 음악을 알아도 탈인 것 같습니다. 음악을 모른즉 수 문제나 당 태종 같은 이들은 정치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임금들이지만, 비록 부득이 음악을 제정하기에 힘썼다고 하지마는 그의 근본 취지는 아주 더러웠고 당나라 명황과 송나라 도군 같은 이들은 본래 음악을 잘 안다고 떠들었으나 천보, 정강의 두 난리를 불러일으킨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대체로 음악의 덕이란 계절 따라 나오는 벌레나 새에 비할 수 있고 음악의 재주란 시정에 비할 수 있고, 음악의 사업이란 역사에 비길 수 있고 음악의 이름이란 시호에 비길 수 있습니다.”

 

P301 선궁기조에 관한 법은 제가 본 바를 앞에서 대강 말했지마는 시를 노래하는 데 이르러는 옛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유쾌한 사람은 안 웃을 수 없고 슬픈 자는 안 울 수 없고, 배고픈 자는 밥을 안 욀 수 없고 목마른 자가 물을 안 외칠 수 없어 여기는 허위와 가식이 없고 무리나 부자연이 없습니다. 이같이 마음에 한번 감촉되자 비록 즐거우면 음탕해지고 너무 슬프면 병이 나는 폐가 없지 않지마는 모두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소위 시 삼백 편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심 없는 생각이란 말이 이것입니다.

 

P304 성인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은 입니다. 차기도 하고 이지러지기도 하고 자라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은 하늘의 이요. 외롭기도 하고 번창하기도 하는 것은 땅의 입니다. 오래되면 변화를 생각하고 묵으면 새것을 찾고 막히면 터뜨리고 싶어하는 것은 에 있어서 한 개 기회가 될 것입니다.

 

P309 옛날 세상에는 그저 활쏘기로 자기 마음의 잘잘못을 밝게 하고 채찍으로 편달하여 가르쳤으니, 공자가 말한 학예로써 즐긴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P310 옛날 사람은 실천 궁행에 힘썼고 보니 이런 것은 절로 터득했을 텐대 어찌 열다섯 살 전에는 서둘러서 여섯가지 학과에 관한 글을 배우고, 열다섯 살 후에는 여섯 가지 학과는 집어 던지고는 먼저 자기 몸을 닦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도리를 알아야만 했겠습니까?

 

P311 대체 천지간에 사물이란 형상과 동작과 정리와 환경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무릇 형체가 있다는 것은 굵직한 흔적을 보임으로써 모두 언어로 형용할 수 있고 문자로 기록할 수 있지마는 형체가 없다는 것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P312 공자가 시를 정리하고 예를 바로잡았다는 그것이 곧 약학입니다. 원래 음악의 본질은 시에 속한 것이요, 음악의 이용은 예에 속한 것입니다. 언어로 사람을 가르칠 때는 세상 물정이 너무 노골화하고, 문자로써 사람을 가르칠 떄는 오묘한 이치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음악이란 것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빠르되 기쁘지 않으며 나타나되 불거지지 않으며 깊숙하되 충충하지 않으며 온순하되 강직할 수 있으며 꼿꼿하되 구부릴 수 있으며 낮았다 높았다 감격스럽고 흐느끼고 두렵기도 하고 벌벌 떨리도록 놀랍기도 하고 갑작스레 없어졌다가 슬그머니 생각나게도 됩니다.

 

P315 대체로 음악이란 보법이 없을 수 있으니 귀신이 통할 만치 조화가 붙으면 <<주역>>한권이 보법이라 할수 있을 것이요. 음악이란 것은 비결이 없을 수도 있으니 사물에 따라서 뜻을 붙여 옮기면 우소한 편도 저절로 천지 사이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P318 그리고 또 소리를 눈으로 감상할 것인가, 귀로 감상할 것인가 하는 문체입니다. 학자나 관리들이 그 근본 원리를 따져 음악을 창작하는 원리만 찾아 내려고 헤매다가는 드디어 음률을 눈으로 찾게 되었습니다. 옛날의 성인들은 귀로 익히는 데 힘을 썼으나 오늘의 인사들은 하루아침에 이것을 눈으로 배우려고 하여 실지로 타고 부르고 하는 데는 아무런 공부도 없이 소리와 음률은 그만두고 함부로 책만 읽게 되었습니다.

 

P333 “이야말로 정말 원통하고 애매한 노릇입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을 그리는 것은 아주 오래된 습관이 되었습니다. 21대 역사를 통해서 신라와 고려로 국호를 삼은 상하 수천 년 동안에 아직 한번인들 귀국의 국경을 침범하여 놀래킨 적이 있었던가요? 조선이 한나라의 사절을 죽인 것은 즉 위만조선이요. 기자조선은 아닙니다. 수나라, 당나라에 항거한 자는 고씨의 고구려요, 왕씨의 고려가 아닙니다.

중국의 역사 기록에는 걸핏하면 자를 빼고 변을 없애서 고려라고 통칭하는데, 이것은 왕 씨가 건국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이름입니다. 앞뒤를 거꾸로 놓고 명실이 뒤섞였으니 실로 한심한 일입니다. 우리 나라 삼국 시대에는 신라가 맨 먼저 당나라에 교통하여 뱃길로 중국을 통하면서 문물 제도를 죄다 중국을 본떠 가위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되었습니다.

<<예기>> ‘왕제에는 동방을 라 했는데 는 뿌리를 박는다는 뜻이니, 즉 성품이 어질므로 생명을 좋아해서 만물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남을 말하는 것으로 천성이 유순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중국의 좋은 글을 얻을 때는 반드시 손을 씻고 받들어 읽다시피 하였습니다.

 

P339 ‘소열은 비록 한나라 종실 중산정왕의 후손이라 이르지마는이라고 했습니다. ‘이르지마는이란 말은 참말 듣기에 기가 막히는 말입니다. ‘이르지마는이란 말은 신용 못할 허튼 수작으로 결정을 못 지을 떄 쓰는 말입니다. 누가 이르지마는이라고 했겠습니까?

 

산장잡기

 

P357 제가 말한 달 속 세계란 것은 정말 달 속에 무슨 세계가 있단 말이 아니라 땅빛을 해설하려고 하자니, 땅빛을 어디서고 자리잡고 볼 데가 없기 때문에 달 속에 세계를 차려 본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리를 바꾸어 땅 바퀴를 쳐다본다고 치면 응당 땅 위에서 저 달을 쳐다볼 때에 밝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이미 달 속에 세계가 있다면 응당 절로 산과 물이 있을 것이요, 산과 물이 있다면 응당 절로 불거지고 우묵한 데가 있을 것입니다. 멀리서 서로 바라볼 때는 대지가 비친 그림자를 빌려 오지 않더라도 응당 절로 이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빛을 두고 이러고저러고 하는 말을 제가 망령되게 말하자면 이것은 햇빛을 빌려서 내는 그림자 빛이 아니고 땅 자체가 본래부터 가진 번쩍이는 빛으로 봅니다.

 

P358  아직 월궁에는 한번 못 가 보았으매 달 속 세계가 어떻게 배관이 되었는지 어찌 알 수     가 있겠습니까마는, 다만 우리가 사는 띠끌 세상을 미루어 저 달세계를 한번 상상해 본    다면 저 달세계에도 응당 역시 물질이 있어 쌓이고 모이고 엉킨 것이 오늘 이 대지가 한          점은 먼지의 집적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먼지와 먼지는 서로 의지를 삼아, 먼지가 엉키면 흙이 되고, 먼지가 거친 놈은 모래가 되고, 먼지가 더우면 불이 되고, 먼지가 엉켜 맺혀서는 쇠가 되고, 먼지가 자라면 나무가 되고, 먼지가 움직이면 바람이 되고, 먼지가 더위에 뜨고. 기운이 복받치면 이내 여러 가지 벌레로 화하는바, 오늘 우리 사람이란 곧 이 여러 가지 벌레의 한 종족일 것입니다.

만약에 달세계가 음성으로 이 됐다면 물은 먼지, 눈은 흙이요, 얼음은 나무요, 불은           수정이요, 쇠는 유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361 “우리네 선비들이 근세에 와서 상당히들 땅이 둥글다는 학설을 믿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둥글어 움직이고 땅은 모나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유가에서는 자신의   명맥이나 다름 없는 학설인데 서양 사람들이 이것을 어지럽게 만들어 놓았는바 선생은   어쨰서 이 학설을 좇는지요?”

하늘은 원래 모난 물건을 만들어 낸 것이 없습니다. 비록 모기 다리와 벼룩궁둥이와 빗방울, 눈물 방울 조차 둥글지 않은 물건이 없어 이제 보아 산과 물과 대지와 일월성신이 모두 하늘이 만든 것이건만 아직 모난 별들을 본 적이 없는즉,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의심할게 없습니다.

 

P362 서양 사람들은 다만 땅이 둥글다고만 했고 지구가 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땅덩이가 둥글 수 있음을 알았으나 둥근 물건은 반드시 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저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지구가 한 바퀴 돌면 하루가 되고,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한 달이 되고, 해가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일년이 되고, 세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1기가 되고 항성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1회가 됩니다. 저 고양이의 눈동자를 보더라도 지구가 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양이의 눈동자는 열두 시간에 열두 번 변하고 본즉, 그 한 번 변하는 동안에 지구는 벌써 7천리를 달리는 폭입니다.

 

P367 서양 기술이 중국으로 들어온 후는 중국의 천문 기계는 아주 멍텅구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서양 학술이 보잘것없이 천박하고 비속한 것은 웃을 만 합니다.

 

P370 “서양 학문이 어떻게 불교를 비방할 수 있겠소? 불교 이론이란 모두가 고상하고 오묘합니다. 다만 허다한 비유 이야기가 너무 허탄하고 이렇다 할 귀결이 없으므로 그들이 소위 도를 깨달았다는 것도 결국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P371 땅의 중심이란 우박이 제 몸을 스스로 싼 것과 같고 그 움직이지 않는 것은 수레바퀴에 있어서 굴대 같다는 등 모두가 오묘한 어른들입니다.

 

P385 만약에 이랑 글자 한 자를 지워 버렸을 때는 당장에 요순 같은 임금이 될 것도 같을 것이요, 만약에 자 한 자가 그대로 있다면 누가 감히 그 앞에서 소매춤으로부터 손을 끄집어 내기라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공자가 소정묘를 죽인 것은 임금까지 벌벌 떨도록 한 과도한 위엄이라고 비평까지 받았고, 주공이 낙양에 도읍을 옮기려고 할 때 모반한다는 혐의를 쓴 것도 그 지위에 따라 이런 비평들을 받았던 것입니다.

 

P387 “선생의 청탁을 가리지 않는 넓은 도량에 감격할 뿐입니다. 대체로 세상일이란 무엇이나 정도로 하지 않아서는 못 쓰는 법이요, 한 자를 구부려서 열 자를 바르게 잡는 법도 옳지 못할 줄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처치한다면 모두 다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공자의 문하에서는 삼청동자라도 오패를 부끄럽게 여겼으니, 이렇게만 이론을 세운다면 다시 다른 일이 생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P389 “유학이 나라를 파괴한다는 말이 어째서 유학의 죄겠습니까? 못된 선비들이 유학의 명분을 그저 도적질만 한 까닭이지요. 그래서 세상을 어지럽게 한 것은 유학의 찌꺽지일 것입니다. 만약에 참말로 유학을 사용했다면 소위 세상에 밭이란 밭은 모두 정전법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요,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다섯 등급으로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P391 “공자는 일년쯤이면 노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였고, 맹자는 오 년이나 칠 년이면 제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으니, 이는 정치를 하는 방도에서 제나라는 더 쳐주고 등나라는 깔본 것이 아니라, 예와 오늘의 형편이 다르고 크고 작은 형세가 다른 까닭입니다.

 

P397 ‘이윤과 여상 사이에서 형과 아우를 가릴 수 없다.’ 고 한 것은 옳은 평일 것입니다. 자고 이래로 임금과 신하에 대한 일정한 정평이 있습니다. ‘한 지어미, 한 지아비가 안도할 곳을 얻지 못하면 임금 자신이 구렁 속에 떨어진 듯이 책임을 느낀다. ‘고 하였으니 만일 백성의 임금 된 자가 모두 이런 심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정치를 한다면 애매한 한 사람을 죽이고 한 가지 불의를 행하여 천하를 얻는다 할지라고 그것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P399 “세상일이란 매양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느냐 못 건너느냐 하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논어>>를 읽다가도 공자가 강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가 물을 못 건너는 것은 하늘의 마련이다.’ 란 구절에 이르러 미상불 세 번 탄식하였고, ‘향우가 오강을 못 건넜다.’ 는 구절에 와서는 미상불 세 번 탄식했고, ‘종유수가 강물을 건너라고 세 번 외쳤다.’는 구절을 대하고 미상불 세 번 탄식을 하였으니, 이만해도 아홉 번 탄식한 것으로 벌써 가 태부의 여섯 번 탄식보다 많은갑소이다.”

 

P404 “예로부터 의리라고 하는 것은 비하자면 쇠를 녹여서 거푸집에 붓는 것과 같습니다. 쇠가 절로 무슨 물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푸집에 따라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또 조개 껍질을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조개 껍질은 일정한 채 빛이 있겠지마는 보는 자가 바로 보고 옆으로 보는 데 따라 그 빛도 각각 다릅니다.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터지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터지는 것은 다만 물 자체에 달린 문제입니다.”

 

P412 저는 다만 사람들이 역사상 인물들의 성공과 실패의 자취만을 보고 의리를 구부리고 의리 위에다가 다른 의리를 포개 얹어, 이른바 치켜세울 때는 하늘 꼭대기까지 올려놓고 내려 족칠 때는 땅속까지 파묻음을 개탄한 것입니다.

 

P416 임금과 신하는 거간꾼 장사치놀음이요, 아래위 할 것 없이 공리만 따지고 보니, 이는 예나 이제나 할 것 없이 성공과 실패에 있어서 한 개 본보기 총결론입니다. 성공과 실패 이 말은 선비들의 입부리로는 형용을 못 할 글자 말이요, 왕후장상들의 어진 의리는 <<제범>> 한 편에 붙여 두었는바, 이야말로 요 임금을 본뜨고 순 임금으로 꾸며 아주 번드레 합니다. 우리 선비들이 말하는바 천명이란 것은 운수두 글자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기서 운수란 것은 역시 성공과 실패의 결과만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늘 하는 말로, ‘하늘이 임금의 지위를 주고 인성은 자연히 돌아온다.’는 말은 이야말로 엉터리 수작에 불과합니다.

 

P417 “다만 운수로만 미룬다면 세상에는 무엇이고 손댈 데가 없을 것입니다. 성인들은 천명이란 말을 드물게 말했으니 이는 세상을 위하여 가르침을 세우는 데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등왕각에 바람을 보내주고 운이 가면 천복비도 벼락을 맞네.; 한 것처럼 세상일이란 모두 때가 오고 운이 가고하는 것 뿐인갑습니다.”

 

P425 대체로 세상을 교화하기 위한 언론이란 하는 수 없이 이렁저렁 그렇듯이 꿰어 맞추고 본즉, 제마끔 제 들은 바를 제일이라 하고 이를 따라서 말을 만드는 것입니다.

 

P428“나라를 세우는 원칙이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씀인지요?”

오제는 음악이 각각 다르고, 우왕, 탕왕, 무왕, 삼왕은 예절이 각각 다르니 한나라는 충성을 숭상하고 은나라는 질박을 숭상하고 주나라는 문화를 숭상했음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에 그 원인을 살펴본다면 비록 백제 동안이라도 잘잘못과 이해득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사람은 천하를 두고 흠집이 없는 금사발에다가 비했지마는 오늘의 금사발은 잘 익은 수박과 같을 것입니다.”

 수박이란 겉은 푸르고 속은 누렇고 씨가 많고 맛이 시원하여 말하자면 천하를 천하 속에 간직한 셈입니다.”

 

P429 “백성들이야 제 밭 갈아 제 밥 먹고 제 우물을 파서 제가 먹는 것으로 타고난 본분을 따르는 것이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말은, 요 임금이 평복을 입고 거리에 나가서 들었을 떄 속으로 슬그머니 기뻐했던 점입니다.”

 

P430 예로부터 제왕들은 덕을 요순에 비하면 기뻐하고 진 시황에게 비하면 성을 내지마는 요순을 배운 자가 있음을 눈에 보지는 못했습니다.

 

P435 “천하의 걱정거리를 먼저 걱정해야만 하는 천자의 지위야말로 참말 괴로운 자리일 것입니다. 한 고조가 환관의 다리를 베고 집 천장을 쳐다보고 누웠을 때야 팔 년 동안 얻은 것이 무엇이라 생각했겠습니까? 서리가 내리고 물이 말라드는 늘그막에 돌이켜 지난 날을 회상한다면이가 시릴 만큼 서글펐겠지요. 이때쯤은 웅당 세상일이란 아무런 맛도 없었을 것입니다.”

 

P450 대체 물소리란 듣기에 달린 것이다. 연암 산골 내가 사는 집 문앞에는 큰 개울이 있어서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소낙비가 한번 지나가면 개울물은 갑자기 불어서 언제나 수레 소리, 말 달리는 소리, 대포 소리, 북소리를 듣게 되어 절경에는 아주 귀탈이 날 지경으로 귀에 젖어 버린다. 나는 언젠가 문을 닫고 누워 소리나는 종류에 따라 이를 사물에 비교해 들어 보았다.

 

P451 무엇이나 올바르게 듣지 못하고 더구나 가슴속에 무슨 딴 생각을 먹고 있으면 그것이 귀에서 소리가 되는 것이다.

 

P452 다들 말하기를 요동벌은 넓고 펀펀하기 때문에 물소리가 요란하게 나지 않는다고 하지마는 이는 물소리 속을 모르는 말이다. 요동땅 강물들이 물소리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밤에 건너지 않았던 까닭이다.

마음의 눈을 감은 자는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될 턱이 없고 귀와 눈을 믿을수록 보고 듣는 힘이 밝아져서 더욱 병통이 되는 것이다.

 

P453 소리와 빛깔은 외계로부터 듣고 보는 데 따르는 것이라 이는 언제나 귀와 눈에 달이 되어 이렇게도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힘을 잃도록 만든다. 더구나 사람이 한 세상 살아감에 그 험하고 위태함이야 강물보다 더한지라 보고 듣는 것이 즉시로 명이 될 것이 아닌가?

나는 이로써 어떤 사람이나 자신이 처세술에 능란하여 스스로 총명한 체하는 자들에게 경계하는 바이다.

 

P470 나는 계찰 같은 지식이 없을 바에는 갑자기 그들의 도덕과 정치에 대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으나, 대체로 음악의 성률이 높고 치질러 윗소리가 아랫소리에 어울리지를 않았으며 노래는 맑되 아랫소리는 격하여 너무 드러난다. 중국 땅의 전통적 음악을 나는 벌써 알만 하였다.

 

P471 몸뚱이는 소 같고 꼬리는 나귀 꼬리에다 약대 무릎, 범 발통에 털은 짧은 잿빛이요, 어질어 보이는 모습에 소리는 처량하고 귀는 구름장같이 드리웠고, 눈은 초생달 같고, 두 엄니는 크기가 두 아름은 되고 길이는 발 나마 되겠으며, 코는 엄니보다 걸어 구부리고 펴는 것이 자벌레 같고, 꼬부리기는 굼벵이 같고, 코끝은 누에 꽁무니 같은데 물건을 끼우는 것이 족집게 같아서 두루루 말아 입에 집어넣는다.

 

P472 세간 사물로서 극히 작은 것으로 겨우 털끝 같은 것이라도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이 어떻게 일일이 다 명령을 했겠는가, 하늘이랑 형체로 말한다면 천이요. 성정으로 말한다면 건이요. 주재하는 면으로 본다면 상제요. 작용으로 말한다면 신이라고 일러 그 이름 붙이는 것이 여러 가지요. 또 무르고 이르는 명색이 너무 친밀하다. 허물이 없이 말하자면 이와 기를 풀무로 삼과 생장과 성쇠를 조물이라고 하여, 하늘을 마치 용한 장인바치에 비하여 망치실, 끝질, 도끼질, 칼질에 설 사이가 없다고 본다.

 

P474 도대체 코끼리는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인데도 그 이치에 있어 모를 것이 이런 터에 더구나 천하 사물이란 코끼리보다도 만 갑절이나 복잡함에랴, 그러므로 성인이 <<주역>>을 지을 때 코끼리 상자를 따서 지은것도 이 코끼리 같은 형상을 보고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연구케 하려는 것이다.

 

요술구경

 

P500 요술하는 술법이란 비록 천변만화를 하더라도 겁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천하에 무서울 만한 요술이 있다면 충성을 가장한 큰 역적과 덕행을 가장한 점잔일 것입니다.

호광 같은 정승은 중용으로 요술을 삼고 오대 시대의 품도는 명철한 것으로 요술을 삼았으니, 웃음 속에 칼을 품은 것은 오늘 본 입속으로 환도를 삼키는 것보다도 더 무섭지 않을까요?

 

열하일기 ()

 

피서록

 

P22 강희 황제는 글을 쓰기를, ‘금산에서 물맥이 나와 따뜻한 물줄기는 여러 샘으로 나뉘었는데, 구름 자욱한 산골짝엔 이곳 저곳 맑은 물이 깊게 고였고, 푸른 아지랑이는 반석에 흐르는 물을 감돌새, 어란은 넓고 넓어 풀잎마저 살졌으니, 이런 경치들은 농가에 해될 일이 없구나. 맑은 바람 부는 여름철의 산뜻한 기운은 사람의 몸을 고루 잡아 정양하기에 마침이로다.

 

P23 서까래를 새기고 기둥을 단청할 비용이 필요 없고, 숲과 물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담박한 정신을 즐길 수 있다. 고운 물새는 푸른 물결을 희롱하는데 사람을 피하지 아니하고, 사슴들은 석양 빛을 띤 채 뗴를 지어 출몰한다. 솔개는 날고 고기는 뛰되 제 천성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뿐 먼빛으로 자줏빛 아지랑이에 싸인 아름다운 풍광을 절로 열어 놓았으니, 이것이 피서산장의 경치다.’

 

P25 황제는 각각 비단과 일문인서라고 손수 쓴 현판을 하사하였고, 황태자는 오지금수영금대 백질선주췌일문이란 주련을 하사하였다. 근세에 와서 맑은 행실과 뛰어난 행장을 표창하는 법이 예전 세상보다는 훨씬 더하다고 볼 수 있다.

 

P27 의무려산 꼭대기 / 올라서 보매 / 아득한 구름 바다 / 한눈에 드네.

바윗돌 이끼 위엔 / 발자취도 혐의찍고 / 사람 본 새소리는 / 조용도 하이.

하늘 닿은 고목엔 / 용님마저 갔건만 / 꽃빛도 새로워라 / 봉황새 머무네.

장할손 북두칠성 / 하늘 고인 기둥 되어 / 이 나라 억만년을 / 길이 지키리.

 

P42 쓸쓸한 가을철을 / 숲이 먼저 짐작컨만 / 더위 추위 잊은 이 몸 / 바보 되고 말았구나.

바람벽 고요한 밤 / 뭇 벌레 울음 울 제 / 발 틈으로 새 한 마리 / 엿보기 일쑤러라.

조촐한 몸 더럽힐까 / 재물은 남이로세. / 글에 미친 놈이라고 / 불러나 주소.

중국땅 좋을시고 / 모두가 부럽구나. / 요봉의 문필이며 / 완정의 시.

 

P45 ‘혜풍의 시는 얻기 어려운 시입니다. 과연 조선이 시를 안다는 것은 참말입니다. 다른 작품도 있거든 들려주십시오.’ 하기에, 나는 다시 썼다.

책을 들자 눈물은 / 천년 역사 적시고 / 물에 닿은 문인은 / 시름도 한없네.

확사가 엮은 시들 / 시 솜씨는 날리니 / 치청전집 한 권을 / 구해 볼거나.

 

P54 고려는 원래 고구려에서 딴 이름으로서 자와 변을 없애 버리고 산은 높고 물은 맑다는 의미로 고려라고 했는바, 천자문 중에 있는 금생려수자는 응당 거성으로 읽어야 할 터인데, 중국 사람은 이를 평성으로 읽는다. 수나라, 당나라 시대는 고구려를 모두들 고려라 했으니, 고려란 이름은 그 내력이 오래다.

 

P70 강희 무오년에 강서성 여자 계문란은 오랑캐에게 붙들려 심양으로 팔려 가게 됐다. 가는 길에 진자점에 이르러 바람벽 위에 시를 지어 썼다.

가엾어라 옛 단장 / 어데로 가고 / 다 낡은 비단 치마 / 이 웬일인고.

우리 부모 생사를 / 어디서 알랴. / 봄바람에 심양 길을 / 울며 가누나.

 

P78 옛날 시대 누락된 작품에까지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 있던 것을, 오히려 해외의 여러 나라 인사들이 숨은 것을 캐어 낸 공적을 갖게 되었다. 어찌 이것이 우리들의 다행이 아닐까 보냐.

 

P95 기풍액은 말하기를, 참말 걸작 구절이 많지마는 간혹 율에 맞지 않는 데가 더러 있다고 하였다. 대체로 우리 나라 음운이 중국 음운과는 서로 다르므로 때로 율에 맞지 않는 데가 더러 있다.

 

P108 대체로 나무가 오래되면 귀신이 붙는다는 것으로서 허물어진 절간에 있는 나무 부처 같은 데는 흔히 딴 요물이 따라 붙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유가 말한, 소위 나무와 돌은 요괴스러운 변고가 많다는 것이다.

 

P113 중국은 글자가 곧 말이 되지마는 우리 조선은 말이 먼저요. 글자는 나중이므로 중국과 조선은 이 점이 구별되고 있다. 이는 무슨 말인가 하면 말이 먼저 되고 글자가 나중이고 보면 말은 말대로 글자는 글자대로 따로 놀아 가령 을 읽을 때는 한날 천이라고 하여 이런 경우에는 글자 외에 또다른 한 개 어려운 어휘를 갖게 된다. 어린아이가 이미 한날이란 무슨 말인지 모를진대 어떻게 을 알 수 있을 것인가?

 

P118 우리 나라 시인들이 사물을 표현할 때는 모두가 남의 글에서 빌려 쓸 뿐인데, 정말 눈으로 보고 발로 밟을 수 있었던 이로는 다만 익재 한 사람이다.

 

P133 중국 사람들은 이같이 쓰는 버릇들이 많다. 비단 남의 시를 잘 고칠 뿐만 아니라 그가 말한 을지생이니 정인지의 유풍이란 말은 더구나 배를 틀어쥐게 한다. 우리 나라에는 을지생이란 이름이 없으니 이는 아마 을지문덕을 말하는 것이리라. 을지문덕과 정인지 사이는 수천 년 떨어진 터에 여기서 병칭해서 한목 쓴다는 것은 아마도 을지문덕이 <수서>에 보이고, 정인지가 <고려사>를 지었으므로 유표스럽게 뽑아 쓴 것만 같다.

 

구외이문

 

P149 중국 사람들은 조선 진주를 보물로 여겨 고려 구슬이라고 한다. 빛깔은 담박하며 희기는 옥돌 같다. 요즘 중국 사람들이 모자 앞이마에 한 알씩 박아 두어 모자의 앞뒤를 표시한다. 조선 진주는 8푼쭝 이상이라야 보물로 삼고 있다. 황제가 가진 조선 진주는 7돈쭝이나 되는데 꿈자리가 시끄럽고 가위눌리는 것을 막는 보배로 여긴다.

 

P150 조선 진주를 소중히 쳐주는 까닭은 조개 티가 없고 절로 천연스러운 보석 빛깔을 내는 데 있습니다.

 

P156 의리는 산하처럼 장한지라 천하에 드러내놓고 자랑하고 표창함이 지당할 것입니다.

 

P158 장성 밖 어느 길가에는 양귀비의 당집이 있었는데 안녹산의 소상은 산 사람처럼 요염하고, 안녹산의 상은 뚱뚱하게 생긴 데다가 배를 가리지 않은 채 희떡 드러내놓아 볼썽없이 추악했다고 말했다. 이런 음탕스러운 당집을 헐지 않는 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경계하는 뜻인지?

 

P159 <초사> 한 권은 어떤 사람의 저작인지 알 수 없다. 이야기가 지극히 비통스러운 데가 많아 정사와 함께 읽다가 눈물을 금치 못하였는바, 대체 길이 바빠 이 글을 베끼지도 못했다. 들으니 이 책은 금서에 들기 때문에 세상에 전하는 것은 손으로 베낀 이 사본뿐이라고 하였다.

 

P172 만어로 애막리란 말은 중국말로 묵은 인연이 있다는 말이요. ‘낙물혼이란 말은 중국말로 몰염치하단 말이요. ‘예락하란 말은 만주말로 장사란 말이다.

 

P173 가장 더러운 냄새를 고려취라고 하는데 조선 사람들은 목욕을 잘 하지 않아 발 냄새가 흉하다는 것이요.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는 동이라고 말하는바, 이는 동이가 훔쳤다는 의미다.

 자 발음은 . ‘자 발음은 음의 반절인바, 우리 사람들은 이런 줄 잘 모르고는 냄새가 좋지 못할 때는 고려취라 하고 다른 사람이 물건을 훔쳤다고 의심할 때는 아무개는 동이라고 해, 마침내 훔친다는 말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P185 우리 나라 서적으로서 중국에 들어가 출판한 것이 매우 드무나 홀로 <동의보감> 25권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그 판본은 아주 정묘하였다.

 

P186 ‘보감이란 무슨 뜻일까? 비해 말하면 햇빛이 뚫고 비치는 곳에는 어둠을 헤치고 살을 쪼개고 베듯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 잡으면 환하게 밝아 거울과 같음이다.

 

P187 뛰어난 명의는 병을 고치는 데 병이 들어 눕기 전에 고치는 것이요. 병이 다 든 후에 고치지는 않는 것이다. 병이 다든 후에 고친다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법에서는 아주 하책일 것이다. 그나마 다시 어무것도 모르는 땡땡이 의원에게 병을 대맡긴다면 어찌 병이 나을 것인가? 심한 자로서 이익을 탐내는 자는 본디 병 없는 사람을 상대로 하여 공로를 세우고, 처음으로 의원에 종사하는 자는 심지어 사람을 희생해 가면서 의원 공부를 한다.

 

P193 신은 나약 지방에 있어 도시들이란 불과 수백 리요. 강토는 삼천 리를 넘지 못합니다마는 언제나 이를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폐하로 말하자만 중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만승의 주인이 되어 도성들이 수천 리요. 강토가 수만 리인데도 오히려 부족하다는 욕심을 가지고 매양 남의 강토를 병탐하려 하십니다.

 

P194 덕을 쌓은즉 저와 같고 악의 결과는 이와 같습니다. 여기에서 오는 길흉화복은 뿌리와 가지가 서로 맞닿은 것과 같고 그 신실함은 춘하추동이 제때에 닥침과 같고 그 힘은 뇌성벽력과 같으니 어찌 조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역사를 보면 이 이치에 숭응하는 자라 하여 반드시 생명을 보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이치가 상도에서 어긋남이요. 천도가 뒤틀려 가는 것일 것입니다.

 

P194 무릇 전쟁이란 두 편이 다 이기는 법이 있을 수 없고, 복이란 두 편에 한목 오는 법이 없습니다.

 

P198 공자는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는다.’ 하였고, 노자는 성인은 하나를 지킨다.’ 하였고, 석가는 만 가지 법칙이 하나로 귀착한다.’고 하였다. ‘만 가지 법칙이 하나로 귀착한다.’는 말은 우리 유가에서, ‘이치는 하나이나 만 가지로 달라진다.’는 말과 미상불 미슷한 뜻이다.

 

P206 ‘선비가 효도와 우애를 중하게 여김은 그것으로써 풍속을 돈목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아무런 전쟁도 없는 터에 어찌 복상 중에 있는 자를 관리로 기용할 수야 있을 것인가? 또 혼인이란 길례다. 어찌 상가에서 이것을 거행할 것인가?’

 

P213 옹노란 지명을 알아보니 어양 우북평에 있었다. 내가 앞서 연, 계 길을 들어 어양, 북평으로 나왔으나 오늘은 옹노가 변해 무엇으로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었고, 또 이 땅을 아마도 지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옹노는 또 늪지에 관한 이름으로서 <수경주>에는 사면으로 모여 들어 있는 물을 이라 하고, 흐르지 않는 것을 라고도 했다.

 

P215 <동서양고>를 보면 오대 시대 민땅의 도순검 임원의 여섯째 딸은 진나라 천복 8(943)에 났는데 옹희 4(987) 2 29일에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고 했다. 언제나 붉은 옷을 입고 바다 위로 날아다니기 때문에 동리 사람들이 사당에다 모셨다고 한다.

 

P217 중국의 관등 놀이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하는 놀이로, 14일부터 16일까지 한다. 우리 나라 관등 놀이는 반드시 4 8일에 한다. 이날은 부처의 생신으로 일러 아마도 고려 때 풍속을 그대로 지키는 것만 같다. 석가여래는 정반왕의 태자로 주나나 소왕 24년 갑인년 4 8일에 나서 42년 임신년에 태자 나이 열아홉에 태자의 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다가 목왕 3년 계미년에 이르러 도를 터득했다고 한다.

 

P220 <간재필기>에 보면, ‘방산에 이 현판 돌이 있는데, 길이가 석 자이며 넓이가 일곱자인데 빛깔은 푸르고 윤기가 나서 중조가 이것을 작원으로 끌어올 것을 생각했다. 수레바퀴를 겹으로 하고 말 열 마리를 메워서 인부 백 명이 끌어 이레 만에 비로소 산에서 나와 또 닷새 만에 양향에 닿았다. 길에서 너무도 힘이 들어 드디어 밭둑 사이에 눕혀 놓고 이를 담장으로 둘러싸고 초막으로 위를 덮었는바 왕복하는 편지까지 있어서 한때는 미담으로 전했다.’

 

P232 <대두야담>에 북경에는 열 가지 가소로운 명물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광록시의 찻물, 태의원의 약방문, 신악관의 기도, 무고사의 칼과 창, 영선사의 일터, 양제원의 옷과 양식, 교방사의 할머니, 도찰원의 법규, 국자감의 학당, 한림원의 문장이다.

P235 고려는 예로부터 시서와 예의의 나라로 일컬었는데, 원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자 세조 황제는 은혜로 맺어 대접하는 예절이 유달랐다. 부자가 왕위를 이을새, 모두 부마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P237 동악묘에 한 5리 못미처 황량대라는 곳이 있는데 이는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장안객화>에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면서 일찍이 군사를 이곳에 주둔하고 거짓 창고를 설치하여 상대방을 속였으므로, 세상에서는 이 땅을 거짓말 양식이란 의미는 황량대라 했다 하니,

이 말이 그럴듯하다.

 

P243 부처 앉은 자리를 천 개 연꽃이 둘러싸고 연꽃은 천 개 불상을 둘러쌌다. 천존불 스물네 개와 십팔나한은 모두 우리 나라에서 진상한 것이라고 한다.

 

옥갑야화

 

P247 옥갑으로 돌아와서 여러 비장들과 침상을 나란히 하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하였다. 옛날에는 연경의 풍속이 순박하여 역관들에게는 비록 만금이라도 빌려 주고는 했으나 지금 저들은 속이는 것이 능사인바, 그 잘못은 미상불 우리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P251 옛날은 물건을 매매할 때 포장을 풀고 점검하는 법이 없이 북경서 묶은 짐짝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와 장부와 대조해 보면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고 한다.

 

P257 ‘이 있는 곳에 사람이 붙는 법이거든! 덕이 없음을 걱정할 일이지 사람 없는 걱정이야 할 것없네!’

 

P265 ‘무릇 대의를 천하에 소리치려고 할진대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사귀어 결탁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요. 남의 나라를 치려고 하면서 먼저 간첩을 쓰지 않고는 성공한 자가 없는 법이오.’

 

황도기략

 

P277 백탑사의 부도와 정각들의 황금 호로병 꼭대기는 때로 나무숲 위로 솟아 있고 수풀 저편 멀리 보이는 하늘빛은 푸른데, 맑은 아지랑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푸근스럽게 만들어 마치 늦은 봄 날씨만 같았다.

 

P287 승지가 선생이 듭신다.’ 하고 외치면 각로와 강관들은 고기를 꿰미에 꿰듯이 한 줄로 열을 지어 뒤를 따라 들어와 반을 나누어 자리에 든다. 이때는 여러 가지 대궐에서 쓰는 까다로운 예절을 생략하고 강의하는 신하가 책상에 기대도록 편리를 보아 준다. 요즘에도 강의 좌석에서 이런 예절을 지키는지 모를 일이다.

 

P295 슬프다! 갑신년 이자성의 난리는 천고에 없었던 난리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종묘가 뒤흔들리면서 드디어 애친각라씨 판이 되고 말았으니, 어찌 이 같은 큰 변괴가 없었을 것이랴.

 

P306 저들로서는 근본 되는 학문의 이치를 찾아 냈다고 자칭하고 있으나, 뜻이 너무 고원하고 이론이 교묘한 데로 쏠려 도리어 하늘을 빙자하여 사람을 속이는 죄를 범하여 제 자신이 절로 의리를 배반하고 윤상을 해치는 구렁으로 빠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P308 무릇 그림을 그리는 자가 거죽만 그리고 속을 그릴 수 없음은 자연의 세이다. 대체 물건이란 불거지고 우묵하고, 크고 작고, 멀고 가까운 가 있다. 그림에 능한 자는 붓대를 대강 몇 차례 놀려 산에는 주름이 없기도 하고, 물에는 파도가 없기도 하고, 나무에는 가지가 없기도 하니, 이것이 소위 뜻을 그린다는 법이다.

 

P316 슬프다. 축대 위에 황금은 없어졌건만 지사는 오지 않았구나!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란 본디부터 원수를 맺지 않았지마는 원수를 갚는 자는 무궁한 시간에 다함이 없고 본즉, 이 축대 위에 놓였던 황금도 반드시 그대로 천하에 돌아다닐 것이다.

 

P319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날카로움은 쇠라도 끊는다.

 

P325 개를 먹이는 법은 물건을 공중에 던지면 개가 고개를 젖히고 뛰어 잡아채서 먹게 하고 땅에 떨어지면 먹지 못하게 했다. 따로 똥오줌 누는 데가 있어 우리 안이 정결하고 더럽지 않았다.

 

P327 자광각과 승광전의 자줏빛 기와, 금빛 전각은 숲속에 숨어서 붉은 담장 속에 채색 기와 정각이 높고 낮고 겹겹이 주름 잡혀 있었다. 삼사와 함께 왔을 떄는 마침 석양 나절이라 엷은 아지랑이가  하느작거리는 광경이 더욱 신기하였다.

 

P331 얼음이 얼고 눈이 쌓이면 팔기를 대오로 나누어 쭝방울 차기와 타상 놀이를 하는데, 신바닥에 모두 쇠 이빨을 박아 달리고 쫒는데 편하고 빠르도록 한다. 이때는 천자도 나와 구경을 한다고 한다.

 

P340 점방 안에는 백 가지 새가 울음을 우는데 산장의 창문 앞에서 봄철 아침을 맞는 듯만 같았다. 모두 철사로 만든 작은 조롱에 새 한마리 혹은 두 마리씩 들었다. 두 마리 든 것은 암수다. 새는 모두 우리 나라에도 있는 새들이지마는 그 이름은 알 수 없었다.

 

공자묘를 참배한 감상

 

P347 홍치로 연호를 고치고 나서 황제는 또 태학에 거둥하였다. 이 떄에 <성가임옹록>이란 책을 만들었으니, 황제의 칙지와 장주와 의례에 대한 내왕 문건과 강의, 관직 등이 다 기록되어 있다. 태학의 제도는 이때야 완전히 갖추어졌다.

 

P348 내가 얼마 전에 참배한 열하의 태학은 이 태학을 본뜬 것이다. 지금에 두루 공자묘를 구경하고 명나라 적 옛 제도와 비교하여 생각할 때에 태화전은 비록 조금 모자라는 것 같기는 했으나 제도의 정제된 품은 비슷했다. 뜨락의 넓이라든가 아래체들의 둘레들이 역시 동악묘와 비교할 게 아니었다. 위패는 모두 함 속에 넣어 감실에 모셔 두고 누런 휘장을 드리웠다.

 

P354 역관 조달동을 시켜 여러 비문들을 갈라 베끼도록 하였는데, 다 베낄 수가 없었다. 볼만한 글이 많았는데, 두루 열람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울 뿐이다.

 

P358 내가 나이 열여덟 살 때 처음으로 창려와 동파의 석고가를 읽고 그 글을 기이하게 여긴 적이 있었고, 석고에 새긴 글 전문을 얻어 볼 수 없음을 한탄했다. 오늘 내 손으로 석고를 어루 만지면서 입으로 반적의 음훈비를 읽고 보니, 외국 사람으로서 어찌 행운이 아닐까 보냐.

 

P363 만약에 나라를 얻은 임금이 충분한 자신을 가지고 천자의 지위를 얻었다면 이것을 하늘의 명령으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힘으로 얻었다고 볼 것인가? 하늘이 이미 천자의 지위를 명령하였고 자신의 힘을 들이지 않았다면 역시 자신에게 천하의 책임을 맡게 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천하로써 자신의 이해에 이용하라는 것일까? 하늘이 이미 자신으로써 천하에 이익을 주고저 할진대 천하에 이익을 주는 방법은 역시 어떤 원칙이 있을 것이니, 그것은 자신이 하늘의 명령을 받아서 도탄 속에 든 만백성을 구해 낼 따름이다.

 

P369 비록 낙제한 과목이라도 꼬누는 법이 친절하여 작자로 하여금 똑똑히 낙제한 이유를 알도록 하였다. 정성스럽고 간절한 태도는 선생과 제자 사이에서 일꺠우고 가르치는 태도 그대로이다. 큰 나라 시험장 제도가 엄격한 점과 고시하는 법이 자세하고도 주의 깊은 점은 과거 보는 자로서 넉넉히 유감이 없도록 해 놓았다.

 

앙엽기

 

P376 ‘앙엽이란 말은 옛날 사람이 감 잎사귀에 글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모았다가 기록했다는 고사를 본받아서 한 말이다.

 

P378 슬프다! 충신과 의사란 나라가 망해 엎어진다 해서 조금이라도 그 간결한 충군 애국심을 늦추지 않고 본즉 진실로 천하 국가를 위하는 근본은 오로지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하루라도 없다면 모르겠거니와 하루라도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있다면 이런 과업은 그날 그날의 급선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대의가 밝지 못하고 보면 비록 영토가 만리나 되더라도 오히려 천하 국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P378 성인은 오히려 죽고 망한 뒤에라도 신의를 지키고저 했다.

 

P385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정월 대보름날 밤은 탑을 둘러싸고 불을 켜고는 번갈아 풍악을 잡히면 마치 하늘 위에서 소리가 나는 듯만 같다고 한다.

 

P399 호국사는 도성 사람들이 천불사라고도 하는데, 부처 천개가 있기 때문이다. 또 숭국사라고도 한다. 크고 작은 불전이 열한 군데나 있어 크기는 굉장하나 역시 많이 헐었다.

 

P403 숭복사는 본래 민충사다. 당 태종이 친히 요동을 정벌하고 돌아와 전쟁에서 죽은 장사들을 불쌍히 여겨 이 절을 짓고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두 개 탑이 마주 보고 섰는데, 더러는 안녹산이 세운 것이라고도 하고 혹은 사사명이 세운 것이라고도 한다. 높이는 각각 열 길씩은 된다. 이렇게 두 역적이 세웠음에도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천년 고적으로 삼아 그대로 남아 있다.

 

동란섭필

 

P414 천비는 세속에 전하기를 황하의 신이라고 한다. 지금의 청나라는 칙령으로 황하의 물귀신을 천후에 봉하였다고 한다. 회회 사람들이 이 교에 많이 든다고 한다. 천비란 귀신을 열두 글자로 된 존칭해 부르는 이름이 청나라 사전에 실려 있다.

 

P415 대체로 중국의 여자와 중들과 도사패들은 옛날 제도가 변하지 않고 있다. 우리 나라 의관은 많이들 신라의 옛 제도를 그대로 밟아 왔는데, 신라는 처음으로 중국 제도를 본뜬 것이다.

 

P422 내가 압록상을 건널 때 강 넓이는 한강보다 넓을 것이 없으나 물이 맑기는 한강에 비할 만하다. 북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물을 십여 차례나 건너면서 때로는 배로 건너고 떄로는 말을 타고 건넜다. 건넜던 물 이름들은 혼하, 요하, 난하, 태자하 등 물은 어디고 누런 흙탕물이었다. 대체로 들녘 물은 탁하고 산협 물은 맑다.

 

P423 고려의 학문은 기자로부터 시작되었고, 일본의 학문은 서복으로부터 시작되고, 안남의 학문은 한나라가 군현제도를 세우고 자사를 두어 중국의 문화를 편 데서 시작하였는데, 뒷날 오대 말기에 절도사 오창문의 시기에 와서야 성황을 이루었다.

 

P425 고려 인삼을 찬미하는 글에, ‘세 가지에 다섯 잎, 양지 볕을 등지고 응달로 향한다. 그를 구하여면 자작나무 밑을 찾으라.’는 말이 있다.

 

P428 <송사> 유림전에는 왕백이 말하기를, ‘시 삼백 편이 어째서 모두 공자의 손으로만 추린 것들이랴? 편찬한 시 중에 더러는 민간에서 값 없이 떠돌아다니는 시들을 한나라 선비들이 주워 모아 보태어 편찬한 것도 있을 것이다.’

 

P429 오군의 풍시가 지은 <봉창속록>, ‘취도선은 즉 겹쳐 개는 부채로 영락 연간에 중국에 공물로 들어가 국내에 많이 유행되었다. 소동파는 말하기를, ‘고려의 백송선은 펴면 넓이가 자 나마 되고, 접으면 불과 두 손가락밖에 안 된다고 하였다. 왜인들이 만든 검정대 뼈에 금색으로 부채 면을 칠한 것이 즉 이것이다.’ 하였다.

 

P435 <명산기>에는 쓰기를, 강원도 금강산에 소가 한 군데 이썽, 이름을 관음담이라고 하였다. 소의 언덕 이름을 수건 바위라 하고, 반석 복판에는 오목하게 둘러 꺼진 데가 있어 방아 확처럼 생겼는데, 세상에 전하기는 관음보살이 빨래질한 데라고 했다.

 

P436 서위의 <노사>에는, ‘당나라 시대에 고려는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을 진상하였는데, 이것은 송연에다가 사슴의 아교를 섞어 만든 먹으로서 유미라고 했다.

 

P438 천지가 혼몽하여 한밤중인 것만 같은 이때에 나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의병을 일으켜 백성을 구해 내고자 할새, 반드시 슬기롭고 용맹 있는 인재를 얻어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저 한다.

 

P440 망부석이란 세 글자는 태원 사람 백휘의 글씨요. ‘작여시관넉 자는 내각수찬 하정좌의 글씨요. 이반이 지은 사기는 고병의 글씨이다.

 

P442 법이 공평하지 못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고 주장하는 이론이 공평하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타이르는 바이다.

 

P447 돌로 쌓은 우물이 아니요. 길가에 솟은 샘으로 물줄기는 확을 넘치고 있었다. 물맛은 달고 맑은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다.

 

P454 나는 역사를 읽을 때 여기까지 와서는 미상불 의분을 참지 못했다. 명나라 중엽에 와서는 조금 군법을 늦추었으나 사정에 따르고 숨겨 끝내 드러내어 표창하지 못했으므로 충신과 의사들의 옳은 행실은 오랫동안 신원을 못하였으니, 실로 불쌍하고 답답한 일이다.

 

P456 지금 건륭의 조서를 보면 수지를 배턱하여 말하기를, ‘스스로 깨끗한 듯이 큰소리를 치다가 뻔뻔한 얼굴로 항복을 하고는 거짓 중노릇을 하여 창자도 없었고 수치도 몰랐다.’ 하였으니, 가위 전겸익으로서는 부끄러워 죽을 만한 일이다.

 

P459 조선 사람들이 매양 같은 문자를 가진 꿈이라는 한 마디 말을 전고로 삼아 과거의 시 제목으로 쓰고 있으니 정말 비루한 일이다.

 

P470 해와 달이 벽성에서 마주 만나 함께 밝을 것이요, 다섯 별이 구슬 꿰듯 연달아 영실성 다음으로 돌아드니 그 위치는 취자의 자리에 해당합니다.

 

금료소초

 

P487 산길을 여행하다가 길을 잃을 염려가 있을 때는 향충한 마리를 잡아서 손에 쥐고 가면 길이 분명해진다고 <물류상감지>에 적혀 있다.

 

 

III. 내가 저자라면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배우고 느꼈던 박지원에 대한 나의 생각은 글 잘 쓰는 한량, 혹은 청의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북학파 정도 였다.

열하일기 책을 접한 후,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가 조선과 조선의 백성들을 얼마나 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암기식 교육에 폐해로 다른 관점은 생각지 못하고 북학파 - 청의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이자!” 라고 달달 외웠기 때문에 저자 박지원이 조선을 이토록 생각했노라 고는 알지 못했다. 책 속에서 아쉬웠던 점은 그가 조선을 사랑하고 위한 마음을 고증학에 그치지 말고 실천을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 간간히 책을 보며 떠오른 생각은 과유불급 이였다. 저자가 책을 재미있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는지 책 중간중간 대화 속에 유머요소들을 넣었다. 끝에는 포복절도 할 일이다. 라고 끝맺었다. 포복절도 할 일이라고 하였지만 재미난 부분도 있었지만 조금은 지루했다. 내가 만약 저자였다면 이러한 붕 뜬 느낌을 없애고 불 필요한 부분들을 과감히 편집 해보고 싶다.

역사파트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집중된 독서를 하였지만 고전파트에서는 집중이 흐트러지는 부분이 좀 아쉬웠습니다.

하권의 책 내용을 보면 피서록에서는 열하에서의 인물에 대해 나왔는데 그 당시의 시적 표현을 높이 사고 싶고 두세번 되세길 수 있어서 참 좋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외이문 파트에서는 저자의 별 다른 생각 없이 적어둔 내용을 정리하였지만 뭔가 너무 짤막한 이야기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아쉬웠고 만약 내가 저자라면 짤막한 이야기에 내 생각을 좀 더 세밀하게 정리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옥갑야화는 허생전을 예전에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더 흥미로웠다.

전체적으로 뭔가 각각의 파트 별로 열하일기 아닌 다른 책들을 하나의 책으로 모아둔 느낌을 받았고 각각 줄거리를 만들어 놓았더라면 누구나 좀 더 받아들이기 쉬운 책을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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