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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일 11시 33분 등록
 

논어

공자지음/ 김원중옮김/ 글항아리


저자에 대하여

공자의 연보

**** 출생 기원전 551년 (1세)

공선생이 태어나다. 아버지는 숙량홀이고 어머니는 안징재이다. 조상은 은나라 유민으로 이야기되고, 아버지는 노나라의 하급 무사였다. 73세의 아버지와 신분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어머니 사이에서 야합으로 태어났다.

성은 공(孔)이고 이름은 구(丘)이다. 이름이 구인 것은 고향 마을의 산이름 이구산과 관련이 잇다. 또 공자의 머리 생김새가 층층 계단처럼 짱구여서 구라고 했다고 한다. 어른이 될 무렵 중니(仲尼)라는 자로 불렀다.

공자는 중국사에서 춘추시대를 살았다. 춘추시대는 천자의 나라 주(周)가 정치적 주도권을 잃으면서 제후국들이 각자 생존을 위해 경쟁하던 때였다. 공자의 조국 노나라는 춘추시대의 약소국으로 북쪽 진(晉)나라, 동쪽 제(齊)나라, 남쪽 초(楚), 오(吳)나라의 시달림을 받았다. 국내적으로도 노나라는 제후의 힘이 미약하고 삼가라는 과두정치에 의해정이 좌지우지되었다. 공자의 소망 중의 하나가 무력한 노나라 공실의 권위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어린시절(기원전 549~544년, 3~8세)

공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난지 불과 3년 만에 죽었고, 공자는 아버지의 무덤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홀어머니 슬하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다른 아이처럼 장난을 치고 놀기보다는 제기(祭器)를 가지고 제사를 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논어>를 보면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듯하여 사회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다양한 기술을 익혀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가난이 공자를 큰 인물로 성장하게끔 단련시킨 것이다.


***결혼과 가정생활(기원전 533년, 19세)

송나라 출신의 계관씨와 결혼을 하고 이듬해에 아들 리(鯉)가 태어났다. <논어>를 보면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나중에 제자 공양장에게 시집을 보냈다. 결혼을 즈음해서 노나라에서 창고의 물건을 관장하는 낮은 관직인 위리(委吏)를 시작으로 관직 생활에 나섰다. 24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수학과 구도(기원전 522년 30세)

<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30세에 주나라의 수도 낙읍에 가서 예와 관련한 노자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는 사실이라기보다 학파의 기원을 올려 잡으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야기로 보인다. 공자는 특정한 스승에게 배웠기보다 사람과 사물 그리고 자료를 가리지 않고 배움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학문적 성취를 이루게 되었다.


***강학활동, 제자를 받아들이다.(기원전 517, 35세)

노나라의 정변으로 잠시 이웃 제나라로 갔다가 다시 노나라로 귀국했다. 이를 계기로 공자는 현실 정치에 참여해 사회를 개선하려는 것만큼이나 교육을 통해 세상을 구제하는 데에 관심을 두었다. 이 무렵 공자의 학문적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30세 중반부터 제자를 받아들인다. 이들이 전기 제자에 속한다.


***마지막 정계진출(기원전 500, 52세)

40대에는 주로 강학 활동에 진력하다가 50대에 이르러 노나라의 사회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인물로 주목받았다. 여러 사람들의 추천으로 52세에 사법을 책임지는 사구(司寇)벼슬을 했다. 이 일을 게기로 국정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제나라와 외교적 충돌을 슬기롭게 해결하기도 했다.


****관직 은퇴 후 주국을 떠나 천하를 주유하다(기원전 496, 56세)

제나라가 여성가무단을 노나라에 파견하자 노나라의 국정이 마비될 정도에 이르렀다. 공자는 노나라를 변화시키려는 희망을 접고 관직에서 물러나 자신을 써줄 희망의 나라를 찾아 10여년에 걸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났다. 위나라, 송나라, 진나라, 채나라 등을 차례로 방문해 군주와 실력자를 만나 기회를 였보았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오해와 갈등으로 암살의 위기를 넘기거나 굶어 죽을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공자와 함께 방랑을 한 제자들이 후기 제자에 속한다. 공자의 제자는 전부 3000명으로 고전과 교양의 육예(六藝)에 뛰어난 이가 72명이고, 철학적 성취를 이룬 이가 10명 정도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모든 나라는 지식인을 초대하여 사회제도를 개혁하고 행정조직을 개편해서 부국강병을 국정지표로 삼았다. 지식인들도 국적을 떠나서 자신을 받아줄 군주를 찾아 여행을 다녔는데 이들을 유세객이라 불렀다.

공자는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보다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역설했던 탓에 자신으 기량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귀국과 상실의 연속(기원전 484년, 68세)

제자 염유가 노나라 실력자 계손씨를 위해 공적을 세운 뒤에 그의 노력으로 노나라로 귀국했다. 이 무렵 아내가 죽고 아들 리는 귀국하기 1년 전에 죽었으며, 귀국하고서 2년 뒤에는 자신의 분신은 안연도 세상을 떠난다.


***사망(기원전 479, 73세)

2년 전에 위대한 인물의 출현을 상징하는 기린이 노라나 수도 곡부의 서쪽 교외에서 잡힌 적이 있엇다. 이것이 ‘서수확린’이란 고사인데 공자는 이 일로 세상에서 자신이 역할이 끝났음을 자각하게 된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꿈을 꾸고서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난다.

신정근의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에서 발췌


***공자의 사망 후

공자는 노나라 도성 북쪽의 사수 부근에 매장되었다. 제재들은 모두 3년간 상복을 입엇다. 그들은 3년동안 마음에서 우러나는 슬픔을 다하고 서로 이별을 고하고 헤어졌는데 헤어지면서 통곡하고는 각자 다시 슬픔을 다하였으며, 어던 제자는 다시 머무르기도 했다. 오직 자공만은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모두 6년 동안 있다가 떠났다. 공자의 제자들과 노나라 사람들이 무덤가에 와서 집을 짓고 산 사람들이 100여 가구나 되엇으며 이로 인하여 이곳을 공리(孔里)라고 이름지었다. 노나라에서는 대대로 서로 전하여 새해를 맞을 때마다 공자의 무덤에서 제사를 받들었으며 많은 유생도 공자의 무덤에 모여서 예의를 논하고ㅗ 향음롈ㄹ 행하고 활쏘기를 햇다. 공자의 무덤은 1경(頃)이나 되엇다. 공자가 살던 집과 제자들이 쓰던 내실은 훗날 공자의 묘(廟)로 만들어져 공자가 사용하던 의관과 거문고, 수레, 책 등이 소장되엇는데 그것은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200여년 동안이나 끊어지지 않았다. <사기>의 공자세가 중에서


***공자에 대한 또 다른 시선

13년 이상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니며 벼슬을 구했던 공자는 만년인 68세에 노나라로 돌아와 인재양성에 힘을 쏟아 한 권의 영원한 고전을 남겼다. 그는 주나라로 대표되는 상고 시대를 숭앙햇고, 봉국의 신민으로서의 자세를 늘 견지햇지만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현실에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공자의 입지는 결국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이 만든 패권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인의(仁義)의 휴머니즘으로 이어졌다.

공자는 늘 고독햇다. 자신이 가는 곳을 주나라로 만들겟다는 공자의 포부는 제후들을 만나면서 늘 좌절을 맛보았다. 공자는 현실 정치를 원했지만, 타협하는 식의 참여는 스스로 거부했 기에 제후들의 선택을 받지 못햇다.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은 이러한 공자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의 예제는 지나치게 삶을 속박한다고 비판받았고, 그의 실천은 ‘그것이 되지 않는 것인줄 알면서도 추구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공자는 세상으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했으며 오직 그를 마음 깊이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위안을 받았다. 공자는 자식도 자신보다 앞세웠고 그토록 아낀 수제자 안회와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자로마저 먼저 떠나보냈다.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공자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의 자부심은 다른 데서 온 게 아니라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옛 선현들의 문헌을 보며 그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대가올 미래를 인지해 나간 데서 온 것이엇다. 그는 지식인이엇기에 진정한 호학(好學)의 정신을 보여주었으며 70여명의 제자를 유교무류(有敎無類)라는 원칙에 따라 한 명 한 명 대하며 어떤 때는 날카롭게 꾸짖고 어떤 때는 격려해주고 어떤 때는 한없이 소탈하게 제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의 귀를 기울였던 스승이었다.

   김원중의 <논어>에서 발췌



공자의 주요 제자 3명

***자로(기원전 542~기원전 480)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이다. 자는 자로 또는 계로이다. <논어>에서는 자로의 호칭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노나라 출신으로 공자와 불과 아홉 살 밖에 차이가 안 날만큼 나이가 많아 학파에서 연장자에 속했다. 그이는 용기를 앞세우는 호전적 성향으로 문제가 생기면 앞장서는 해결사 기질이 강했다. 첫만남에서 스승을 폭행하려고 했으나 학파에 들어온 뒤로는 선생의 신변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자로는 위나라의 내분과정에서 사망했는데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며 갓끈을 고쳐 매고 죽은 것으로 유명하다.

<논어>에서 자로는 자주 안연과 비교되지만 공자에게 최고의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 공자와 자로가 만나면 늘 불꽃이 튄다. 공자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안연과 달리 자로는 꼬치고치 캐묻고 공선생의 의견에 반기를 들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했다. 무슨 말을 들으면 몸으로 완전히 익히기 전에는 다른 이야기를 듣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서도 우직했다. 또 자신의 재산을 친구들과 공유하려고 할 만큼 낭만적이며 공산(共産)적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현실주의 노선을 취하고 학문적으로 문서보다는 실천적 경험을 중시했다. 좌충우돌하면서 어렵게 앞으로 나아가는 투사형이지만 무섭기보다는 귀여워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논어>를 읽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 이의 추종자가 된다. <삼국지>의 장비와도 비슷하다. 


****자공(기원전 520~)

성은 단목, 이름은 사이다. 잔ㄴ 자공이다. 위나라 출신으로 공선생보다 31세 아래였다. ,논아>에서 자공으로 많이 나온다. 자공은 공선새에게 자신과 동료의 성취를 비교해 평가해 달라고 요청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동료나 당시 사람들의 장단점에 대한 촌평을 즐겨 했다.

자공은 곡물으 작황을 파악하여 가격의 등락을 예측하고 그 결과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기도 했다. 따라서 오늘날 종합상사를 경영하는 무역상인의 선구자로 보룻 있다. 또 자공은 뛰어난 언술로 오나라의 적대적인 행위대문에 생긴 노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이는 그 시대에서 현실적으로 성공을 하고 존경을 받았으며 공자의 대외적 활동이나 학파의 운영을 맡아 왔다. 이 대문에 동시대의 일부사람들은 학문적 조예와 현실적 수완을 겸비한 자공을 공선생보다 높이 치기도 했다. 그러나 자공은 결코 공자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았고 선생의 사후 6년 동안 상례를 치렀다. 그이는 공상적이라기보다 현실적이며 속물적이라기 보다는 합리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이다.

자공은 현실적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개인적 야망이 아니라 공동체의 번영에 봉사하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그이는 유상(儒商)이라는 말처럼 양심적인 기업가, 합리적인 개혁을 내세우는 인물이었다. 이로서 우리는 공자 학파가 공상적 도덕주의가 아니라 합리적인 현실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의 조자룡과 닮았다.


***안연(기원전 521~기원전 490)

성은 안, 이름은 회이다. 자는 자연인데 성과 함께 안연으로 불리기도 한다. 송나라의 신유학자들이 그이의 인격과 학문을 높이 평가하자 안자란ㄴ 존칭이 생겼다. <논어>에는 회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이는 공선생보다 30세 아래였고 스물아홉 살부터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공자를 만나서 아버지처럼 따랐으나 어려운 가정 환경 탓인지 30대 초반에 죽었다. 그이의 죽음은 공자에게 토제할 수 없는 슬픔만이 아니라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두 사람 사이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분신 같은 관계였으며, 이들의 대화에서는 서로 아기고 염려하는 동성애의 취향이 느껴진다.

안연은 넉넉하지 않는 살림대문에 빈민가에 살았고 먹을 것이 없어 자주 굶었지만 학문을 향한 열정을 버리지 앟았다. 그이는 이웃들의 삶과 다르게 살면서도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안연은 당시의 공자만이 아니라 유학자 집단에서 호학(好學)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그이는 선생의 안내를 오나벽하게 소화해내고 한 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현실의 고통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자기 확신을 견지하는 구도자였다. 이로 인해서 훗날 송나라의 신유학자들이 하나같이 ‘안연을 본받자!’며 자기 삶의 준거(準據) 모델로 삼았다.

   신정근의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에서 발췌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문장들


제 1편 학이(學而)

**<논어>의 첫머리인 이 편에는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론의 핵심이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군자에 대한 논의가 많다.


****삶의 즐거움-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대로 그것을 익히면 이 도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36P)


***교언영색(巧言令色)-1.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자들에겐 인(仁)이 드물구나.”(37P)


###말을 듣기 좋게 하고 그 얼굴빛을 보기 좋게 하면서 남의 비위나 맞추려는 가식적인 행동을 경계하는 말이다. 약삭빠를 정도로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그로 인해 복을 얻기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기 쉽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의 비위를 맞추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이는 인간의 내면을 충실하게 하는 일을 경시하므로 이른바 문질빈빈한 군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은 공자의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이 개념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 혹은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의 의미에서 섰다. 청대의 학자 완원은 ,논어>에 인자가 105번 쓰였다고 밝혔다. 공자는 인의 실천 방법으로 효, 제(悌, 공경할 제), 충, 서(書), 악(樂)을 제시했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지-1.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산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배워도 견고하지 못하다. 충심과 신의를 주로 하고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하지 말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48P)


****절제의 미학- 1.1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일을 처리함에 신속하고 말하는 데는 신중하며, 도가 있는 곳에 나아가 스스로를 바로 잡는다. (그렇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44P)


****가난과 부유함에 대하여-1.15

자공이 물엇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괜찮겠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거움으로 삼고, 부유하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다.”

자공이 물엇다.

“<시경>에서 ‘(칼로)끊듯이, (줄로) 갈듯이, (정으로) 쪼듯이, (숫돌로) 윤을 내듯이’라고 한 것은,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슴하셨다.

“사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겟다. 지나간 것을 알려주었더니 다가올 것을 아는구나.”

###공자는 이 장에서 자신의 가장 부유했던 제자 자공과 부에 대해서 담론했다.

###절차탁마란 고사성어가 나온 문장으로 옥이나 돌을 다듬는 것처럼 사람도 끊임없는 수양과정을 통해야만 비로소 완전한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음을 뜻한다.


***허명을 경계하라-1.1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자기가)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45P)

####세상이 이름이 나는 것은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리라. 공자도 자신을 알아줄 군주를 찾아 오랜 세월 열국을 주유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 말은 공자가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하여 속으로 다짐하곤 했던 말이기도 할 것이다.


제 2편 위정(爲政)

****정치는 덕으로-2.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북극성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다른)모든 별이 함께 그를 떠받들어 도는 것과 같다.”

###덕에 의한 정치와 북극성의 비우가 어떻게 연결되는가? 공선생의 사고에 따르면 북극성은 붙박이별로서 천체의 중심에 잇고, 다른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삼아 도는 양상을 보인다. 여기서 북극성과 다른 별과의 관계는 군주와 다른 사람들(신하와 백성)의 관계에 q;교되고 있다. 북극성은 인력으로 다른 별들이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데 겨이게는 강제나 폭력이 들어있지 않다. 군주가 덕으로 정치를 펼치면 강압과 위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세계의 중심에 있을 수 있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78P>


****시경이란 무엇인가-2.2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의 순수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면 무난하다. 공자는 시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깊이 알앗다.


****나이에 따라 살다-2.4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이 되어서는 자립했으며, 마흔이 되어서는 미혹(迷惑)되지 않았고, 쉰이 되어서는 천명(天命, 하늘의 명)을 알게 되었으며, 예순이 되어서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50P)

###미혹이란 주변의 이런 상황에 흔들림 없이 학문에 전념했다는 사실이다.

천명이란 사물에 드러나는 자연스런 이치 혹은 하늘이 부여한 사명으로 해석한 주의 설이 타당하다. 자기의 역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도대체 무엇을 하 f수 있는지, 무엇을 하도록 운명지어졌는지 등을 하는 것이다. 공자는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스스로의 변화된 상태를 단계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말한 것이지, 타인에게 이러한 삶을 가용한 것이 아니다.


****어리석지 않다-2.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회(안회)와 온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전혀 거스르는 말이 없어 마치 어리석은 것 같았다. 물러간 뒤 그가 홀로 지내는 것을 살펴보니 또한 (내가 해준 말들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회는 어리석지 않다.” (54P)

###안회는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서른 살이 적었다. 안회는 스물아홉에 머리가 하얗게 세더니 일찍 죽었다.


***스승의 자격-2.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54P


####과거는 두 얼굴을 뜻하는 야누스에 어원을 둔 시작의 시점을 통고하며 현재와 관계를 맺는다. 과거는 현재를 구속하여 운신의 폭을 좁히기도 하지만, 현재는 과거에 의존하지 않고 한 걸음도 나아가기가 어렵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94P>


***그릇 같기보다는 -2.1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군자란 종묘의 그릇처럼 일정한 모양과 크기를 갖춘 자가 아니라 세상의 온갖 이치를 두루 알 수 있는 회통하고 유연성을 갖춘 그런 인물이라는 의미다. 말하자면 어느 한 가지에만 치우치지 말고 전인적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자신의 독단만을 고집하는 판단은 군자의 영역이 아니고 소인배의 일이다. 덕을 닦은 군자가 터득한 도리는 모든 일에 통용될 수 있음을 밝힌 말이다.


***배움과 생각-2.1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녹봉을 구하는 자세-2.18

자장이 녹봉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했다.(관직생활을 하는 자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들으면서도 의심나는 것은 남겨두고, 그 나머지 부분을 신중하게 말하면 허물을 적게 할 것이다. 많이 보면서도 미혹된 것을 남겨두고 그 나머지 부분을 신중하게 실행하면 후회를 적게 할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봉은 그 안에 들어있다.” (57P)


제 3편 팔일(八佾)

***팔일무(八佾舞) 가로와 세로 여덟줄로 서서 64명이 추는 춤으로 천자에게만 허용되는 의식이다.


***선후관계-3.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면서 인하지 않으면 예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면서 인하지 않으면 으악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인가?”(65P)

####에가 인간의 성정을 융합하는데 중점을 둔다면 악은 엄숙한 종법과 등급에 중점을 둔다. 둘은 상보적인 관계로 상하관계를 조율하고 종법사회를 유지하는 초석이다. 주나라에서 정저에 이른 예악은 각 조대의 제도사와 맞물리면서 중대한 문화권력으로 작용했다. 패권과 생존을 위해 투쟁햇던 춘추시대에도 각 제후국 사이에는 일정한 수준의 신의 와 예절이 존재했다. 예악은 인의 외재적인 표현일 뿐이고 양자는 서로 표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이 없는 예악은 공연히 형식만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소하고 간소하게-3.4

임방이 예의 근본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대단하구나, 질문이.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는 일사천리로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65P)


****주나라를 따르는 이유-3.1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하와 은)두 왕조를 거울로 삼았으니, 찬란하구나. 그 문화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겟다."( 71P)

###꿈에서조차 주공을 뵐 정도로 공자는 주나라를 마음 깊이 숭모했다. 이 구절은 모든 것을 주나라로 회복하고자 하는 이상을 드러낸 것이다.


****지나간 일-3.21

애공이 재아에게 사(社, 토지를 관장하는 신을 제사 지내는 곳)로 슬 나무에 대해서 물었다. 재아가 답했다.

“하후씨는 소나무를 썻고, 은나라 사람은 잣나무를 썼으며, 주나라 사람은 밤나무를 썼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케 하려는 뜻이라고 합니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이루어진 일은 해명하지 않고 끝마친 일은 따지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은 추궁하지 않는다.”


####고대사회의 공동체 질서 형성의 한 축이었던 사직단, 즉 토지신과 곡식 신의 제단이 있는 사당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하, 은, 주 세나라는 사직단에 각각 다른 나무를 심었다. 애공이 나라마다 심었던 수종이 궁금하여 질문을 하자 재아가 나름대로 풀이를 햇지만 공선생은 그것이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세 나라는 건국의 기틀이 된 지역이 다르므로 토지에 맞는 나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수종의 차이는 특별한 상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토질의 적합성에 따른 현실적 이유에 있을 것이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141P>


****윗사람의 체통-3.2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행함으로서 공경하지 않고, 상을 당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써 그런 사람을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78P)

###최소한의 인간미마저 잃은 사라더러 뭐라고 해야 할까?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벌서 숨이 막히는 듯하다.


제 4편 이인(里仁)


****군자는 인으로 드러난다-4.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그것이 정당하게 얻은 것이 아니면 누려서는 안 된다.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그것이 정당하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벗어나려 해서는 안된다. 군자가 인을 버리고 어디서 명성을 얻겟는가? 군자는 한 끼의 밥을 먹는 시간조차도 인을 어기지 않고, 황망학 다급할 때도 반드시 인에 근거하고 넘어질 때(곤궁과 좌절에 빠졌있을 때)도 반드시 인에 근거한다.” (83P)


***할 것과 하지 말 것-4. 1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천하에 대하여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없고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어서 의로움만을 함께할 뿐이다.” (85P)

###공자는 절대적인 긍정을 취하거나 꼭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일 없이 시대의 추이를 봐가면서 임기웅변하며 살아간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나의 원칙은 간직하고서 말이다.


****덕과 땅, 법도와 은혜-4. 11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 군자는 법도를 생각하고 소인은 은헤를 생각한다.” (86P)

###군자와 소인은 늘 기본적인 마인드가 다르다. 늘 일정하기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고요한 내면에서 깊은 사우가 우러나온다는 것이 이 문장의 핵심이다.


***먼저 노력하라-4.14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수 있는 능력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사람이 알아줄 만하도록 추구하라.” (87P)

###인생에서는 자격을 갖추는 것만큼ㅇ이나 기회를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도 중요하다.

자기 삶의 중심을 말하고 있다. 중심이 서면 뭘 어덯게 할지 분명하지만 중심이 없으면 한없이 일에 그려다닌다. 공선생은 그 중심으로서 진실과 관용을 내세운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169P)


***외롭지 않으려면-4.2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간언의 법칙-4.2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주를 섬기는데 (간언을)일삼으면 곧 모욕을 당하게 되고, 친구 사이에 (간언을)일삼으면 곧 소원해질 것이다.“ (90P)

###임금을 섬기다가 간언하다보면 보늬 아니게 역린을 건드리게 되어 자칫 벼슬을 내놓는 모욕을 당할 수 있으며, 벗과 사귐에 있어 너무 자주 간언하다보면 벗과 소원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이 할 말과 안 할말을 잘 가려서 현명한 처세를 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 임금에게 충심어린 간언을 했다가 벼슬을 내놓는 모욕은 물론이고 극형을 받아 목숨을 잃은 자도 많다. 그리고 친구 사이에 진심어린 충고를 자주 해주다가 그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친구는 친구일 뿐, 내가 아니기 때문에 그가 전체를 보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알려줄 뿐이다.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여 강하게 내세우면 훗날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할 말과 하지 않아야 될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그런데 절친일 때는 이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것이 충고든 사랑이든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


제 5편 공야장(公冶長)

**** 이 편은 인물 품평을 위주로 하고 있다, 공자가 평가한 24인은 공자의 제자가 반을 차지하고 제후국의 명망있는 인물들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앞부분에 해당하는 14장가지가 주로 제자들을 평한 것인데 자로에 대한 혹평이 가장 눈길을 끈다.


****호련이다-5.4

자공이 여쭈었다.

“저는 어덯습니까?”

“너는 그릇이다.”

자공이 여쭈었다.

“어떤 그릇입니까?”

말씀하셨다.

“호련이다.”


###그릇이라는 이 말에는 하나의 기능만을 가진 그릇일 뿐, 도덕과 인의를 목표로 삼는 융통성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비판이 깔려있다. 그런데 자공은 언어에 뛰어났고 외교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했으며 군사력 분야에도 해박했고, 늘 공자를 모시고 다닌 제자였다. 공자가 자공을 이렇게 혹평한 것은 사실은 당시 자공의 활동역량을 고려해 보면 별로 맞지 않는 것이다. 호련(瑚璉)이란 종묘제사 때 기장을 담던 귀중한 옥그릇으로 하나라 때는 ‘호(瑚)’라 부르고 은나라 때는 ‘련(璉)’ 이라 불렀다.


***용기만 있는 자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떠다니려 한다.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도 유(由 자로)일 것이다.”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용기를 좋아하는 데 있어 나를 능가하지만, 재주는 취할 것이 없구나.

###<논어> 전체를 통해 자로만큼 혹평당한 제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문헌을 보면 공자가 자로에게 혹평만 한 것은 아니다. 공자는 자공의 효성을 보고 “자로가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살아계실 때는 힘을 다해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그리움을 다하는 구나.”라고 평했다.


****나도 마찬가지다-5.9

공자께서 자공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회(안회) 중에 누가 더 나으냐?”

자공이 대답했다.

“제가 어찌 감히 회를 바라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아는 정도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보다 못하지. 나와 너는 (그만)못하구나.”

###공자는 자공이 자만심을 가질까 하는 마음에 깨우치려고 질문을 던졌다가, 자공이 자신을 너무 낮추어 얘기하자, 안회보다 못한 대열에 그 자신까지 끌어들인 것은 아닐까.

☆☆☆ 여기서 공자는 제자에게 자신을 돌아보라는 가르침도 주면서 그 가르침에 상처받지 않을까 우려하여 제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을 보게 된다.


**** 재여를 나무라다

재여가 한 낮에 낮잠을 잤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너에 대해 내가 무엇을 탓하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동을 믿게 되었는데, 지금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말을 듣고도 그 행동을 살피게 되엇다. (재여에 대해서도) 이처럼 바뀌었다,”(100P)

###재여는 능력이 뛰어나 공자가 죽고 공자학파를 설립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햇다. 하지만 스승의 생전에는 이런 혹평을 받았다. 한번은 재여가 고대 전설 속의 다섯 제왕인 오제(五帝)의 덕을 묻자 “너는 그것을 물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공자는 참말만 하는 무서운 스승이다.


****자공의 오판

자공이 말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저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바를 저 도한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그런 일은) 네 능력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1P)


****좌구명-5. 2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듣기 좋은 말과 꾸민 얼굴빛과 지나친 공손함은 좌구명이 부끄러워하던 것이고, 구(공자)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원망의 감정을 숨기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은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던 것이고 나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108P)

###사마천의 <사기>에서 ‘태자공자서’에서 “옛날 서백(주나라 문왕)은 유리에 갇혀 있었으므로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진(陳)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라고 했다.


*****안연과 자로의 포부

안연과 자로가 스승을 모시고 있을 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각자 자신의 포부를 말해보지 않겠느냐?”

자로가 말했다.

“수레와 말과 가죽옷을 벗들과 함께 쓰다가 그것들을 망가지게 하더라도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연이 말했다.

“나의 잘한 점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공로를 늘어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의 포부를 듣고자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노인을 편안하게 해주고, 벗들에게는 믿음을 주고, 젊은이들을 품어주고자 한다.”(109P)


***스스로 비판하는 자-5.2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끝났구나! 나는 자신의 잘못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스스로 꾸짖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110P)


제 6편 옹야(雍也)

***공자의 제자들을ㄹ 주로 품평한 편으로 제자들과의 자연스런 대화를 통해 공자 자신의 모습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배우기를 좋아한 안회-6.3

애공이 물었다.

“제자들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셨다.

“안회라는 자가 있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목숨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작 없으니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을 듣지 못했습니다.”

###안연은 공자가 죽기 몇 년 전에 죽었는데, 그의 나이 겨우 41세였다. 다른 문헌에 보면 안회가 31세에 죽었다고 해 부려 10년의 편차가 있다.

공자는 안회의 호학이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본다. 공자는 지식습득보다는 도덕적인 면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자세 등을 호학의 기본정신으로 보고 있다.


***안빈낙도(安貧樂道)-6.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구나. 회여! 한 통의 대나무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도 다른 이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그 줄거움을 바구려 하지 않으니 어질구나, 회여!

###공자가 생각하기에 군자의 즐거움은 천명을 실천하는데 있고, 소인의 즐거움은 욕망을 충족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소인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의시주의 문제에 시달리지만 군자의 즐거움은 이런 형이하학적인 문제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문을 좋아하는 안회는 밥 한그릇과 물 한 표주박을 먹으며 누추한 곳에 살아도 불평하는 기색이 저혀 없이 여전히 즐거워했으므로 이런 평가를 내린 것이다.


*****역부족의 의미

염구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afl 선을 긋고 한계를 짓고 있다.(120P)

###공자의 제자 염구가 자신은 스승의 도를 늘 따라하고 싶어도 끈기가 부족하다며 걱정하자 공자가 다그치면서 한 말이다. 능력의 부족이 아니고 의욕과 집념의 문제라는 것이다. 100리의 절반은 90리라는 말이 잇다. 마무리를 어덯게 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오기가 있어야 함을 공자는 강조하고 있다.


***문질빈빈(文質彬彬)-6.18

빈(彬):빛날 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촌스럽고 꾸밈이 바탕을 이기면 텅 빈 듯하다. 꾸밈과 바탕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고 난 뒤에야 군자인 것이다.” (123P)

###문(文)과 질(質)은 외면과 내면, 현상과 본질, 문화와 자연 등 대조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널리 쓰인다. 문은 어떤 본바탕이나 재료에다 표시를 덧보탬으로써 그 이전과 달라지는 계기를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문은 무늬를 놓다, 표시하다는 첨가와 장식의 의미를 갖는다. 질은 새기는 작업이 일어나는 곳에서 새김을 받아들이는 재료 또는 바탕을 의미했고 훗날 외적인 첨부가 있기 이전의 소박미와 자연미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질과 문은 역사와 정치 영역에서도 쓰이면서 각각 단순한 조직으로 이루어진 사회와 복합적 조직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가리켰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246P)


*****정직한 삶-6.19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정직 때문이니, 굽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은 요행으로 화를 벗어나는 것이다.” (123P)

###속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외줄타기처럼 아찔아찔하게 불행(재앙)을 피해가고 있다.


*****공자의 해명-6.28

공자께서 남자(南子)를 만나시자, 자로가 달가워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맹세를 하며 말슴하셨다.

“내가 예에 어긋나는 부당한 짓을 저질렀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남자는 위나라 령공의 부인으로 당시 국정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울러 그이는 성(性)에 개방적인 태도를 지닌 탓에 국제적으로 스캔들을 일으킨 인물로 유명하다.  남자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미남 송조와 간통하여 꽤 좋지 않은 소문이 났었다.

자로는 공자와  남자의 만남이 불미스러운 소문을 만들까 염려하고 공선생은 맹세까지 해가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공자는 이상실현을 위해 소문에 신경쓰지 않고 거침없는 행보를 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돋보인다.

사마천은 이런 사실을 <사기 > ‘공자세가’에서 적고 있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256P>


****중용의 덕-6.2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이 덕이 되는 데 있어서는 아마도 최고이구나. 사람들 중에 지닌 이가 드문지 오래되었다.”(127P)

###공자가 말하는 최고의 도덕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다소 어리석은 것 같으나 평상적이어서 변함이 없는 그런 경지를 나타낸다.

###극단과 모험의 시대에 중도와 평범성의 진리가 위대하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공자가 중도와 평범의 가치를 역설하는 것은 자신의 시대도 극단이 몰고 간 역사의 상흔이 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257P)


***인(仁)과 성(聖)-6.30

자공이 물었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은덕을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덯습니까? 그를 인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게서 말슴하셧다.

“어찌 인한데서 그칠 일이겠느냐. 반드시 성덕(聖德)일 것이다. 요임금이나 순임금조차도 그렇게 하지 못함을 병으로 여기셧다. 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일으키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면 남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가까운데서 구체적인 예를 찾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인의 실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8P)

###박시제중(博施濟衆)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으며 공자가 말하는 덕치의 이상이다.

인은 자기보다 먼저 남을 이루어주는 것이지만 성은 거기서 더 나아가 모든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공자는 성(聖)을 인보다 더 높은 가치로 보았다.

###인자와 성자: 인은 반드시 사람 사이의 단절, 대립, 반목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인은 반목이 있는 곳에 사랑을, 대립이 있는 곳에 평화를, 단절이 있는 곳에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인은 어떠한 상황과 관계없이 평화를 심고 창출하는 그런 힘이 아니다. 반면에 성은 대립적 상황을 전재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질서와 혜택을 주는 일이다. 인은 사람을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람직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에 기준과 노선을 두고 있다. 반면에 성은 사람을 분류하지 않은 채 모두를 동질적인 상태에 놓고 공동체를  한 단계상승 시키는 활동과 관련이 있다.<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260P>


제 7편 술이(述而)

***이 편에는 학문에 대한 공자의 욕구와 교육관이 잘 나타나 있는데, 짧은 장이 많은 편이고 내용도 비교적 광범위하다.


****창작보다 중요한 것-7.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술하되 짓지는 않고 믿어서 옛것을 좋아하니 남몰래 나를 노팽과 비교해본다.”(132P)

###스승의 역할을 강조한 유명한 구절이다. 스승은 미래에 펼쳐질 일을 파악하여 그것에 대처할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나야 한다. 미래사회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잉어지는 연장선 위에 잇으므로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흐름의 변화를 파악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세계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테고 그에 대한 대처 방안도 정확히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이호고(信而好古)라는 말도 한 것이다.

###공자가 살았던 당시에는 지식인들이라도 자신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사고를 가지지 않았다. 자신은 기껏해야 이미 있던 것을 풀이하거나 몇몇 사례를 엮어서 전달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존재를 뭐라고 했을까? 바로 성인(聖人)이다. ,예기> ‘악기’에 보면 “새롭게 만드는 자를 성인이라 일컫고 풀이하는 자를 밝은 자라 일컫는다‘ 라는 구절이 있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265P)


***네 가지 걱정거리-7.3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덕을 닦지 못한 것, 배운 것을 강습하지 못한 것, 의로운 것을 듣고서도 찾아가지 못한 것, 좋지 않은 것을 고치지 못한 것, 이것이 나의 걱정거리다.” (133p)

***공자의 교육방법-7.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울 때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발휘하도로고 말해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보였을 때, 다른 세 귀퉁이로서 반응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반복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135P)

###일반적인 지식전달보다는 피교육자인 제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는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오늘날의 자기주도 학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를 배우면 다른 것까지도 유추해서 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공자는 제자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고 해서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그 반대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용기와 용맹-7.11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등용되면 나아가고 버려지면 숨는 것, 오직 나와 너만이 이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삼군(三軍)을 거느리신다면 누구와 함게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물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라면 나는 그런 사람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함께할 자는 반드시 일에 임해서는 두려워할 줄 알고 계획을 잘 세워 성공하는 그런 사람이다.”

###공자의 이 대답에는 제자들에 대한 속 깊은 배려가 있다. 먼저 자로의 단점을 지적하고 나서 보충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여 자로와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고 자 한것이다. 지나치게 용감하고 우직했던 자로는 사실 자존심에도 매우 강하여 나중에 전쟁에 연루되자 “군자는 죽을지 언정 갓을 벗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갓끈을 묶으며 죽었다고 사마천은 ,사기>에서 기록하고 있다.

###용(用)과 사(舍)는 진퇴(進退)와 같은 말로 <논어>에 흐르는 큰 강줄기 중의 하나이다. 공선생과 인연은 시대와 긴장성을 유지하면서 현실에 끼어들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무모한 용기를 만용이라 한다. 우리는 용기(勇氣)와 용맹(勇猛)을 혼동하기 쉬운데, 공자는 무모한 용맹을 멀리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구할 수 없는 것-7. 1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富)라는 것이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들고 길을 트는 자라도 나는 또한 할 것이다. 만일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따르겠다.”(138P)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하여 구하여 지는 것이라면 나는 ‘채찍을 드는 천한 일’이라도 하겠다. 하지만 돈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내 마음대로 구하여 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공자는 말한다.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음 편히 살겠다’고 한 것이다. 안빈낙도를 즐기겠다는 의미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너무 ‘돈 돈 돈’하면서 살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돈에 집착해서 돈을 추구하면서 산다고 해서 돈이 네 곁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뜬구름과 같은 것-7.1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거친 밥을 먹고 차가운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그것을 베게로 삼으면 즐거움도 그 속에 있다. 의롭지 못하면서 잘 살고 귀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만 같은 것이다.” (139P)


***자로의 묵묵부답-7.19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 물었는데,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그 분은 사람됨이 분을 일으켜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도를 즐거워하며 근심을 잊어 늙음이 장차 다가오는 것마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공자는 벼슬에 나아가고 싶었고, 봉지(封地)를 받는 그런 위치에 서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런 자리에 두지 않았다. 비록 공자 나이 육십이 넘었지만 그런 욕심을 아주 접은 것은 아니기에 섭공이라는 제후가 관심을 가지고 물었는데도 답하지 못한 자로에게 따지듯이 말하는 것이다.


*****학인의 자부심-7.2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그것을 추구한 사람이다.“(141P)

###공자는 배우기 좋아하는 것과 배우기 좋아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의 지력을 네 가지 등급으로 나누었다. ‘나면서 아는 자가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자가 중상급이고, 곤란을 겪고 나서 배우는 자가 중하급이고, 관란을 겪고 나서도 배우지 않는 자가  하급이다. 공자는 자신이 상급이 아니라고 했으며 다만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점을 인정햇다.


****한결같은 사람-7.26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성인은 내가 만나보지 못하는구나. 군자라도 만나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겟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한 사람은 내가 만나보지 못하는구나.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비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척하며, 곤궁하면서도 부자인 척하니 한결같음을 지닌다는 것이 어렵구나!”(143P)

###성인이란 세상에 질서를 불어넣는 존재이다. 군자는 모범을 창출하여 백성들에게 삶의 답을 제시하는 인물이다. 선인은 타인에게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이인이다. 유항자는 자신이 하기로 한 방향대로 스스로를 쭉 끌어가는 사람이다.

살기가 힘겹고 앞날이 불투명할 때 자신에게 한 줄기 빛과 희망을 던져주는 이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공자는 말하고 있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297P)>

☆☆☆한결같은 사람을 예나 지금이나 찾기가 어려운가 보다. 실리와 이익을 따라 하루아침에 신뢰를 저버리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한결같은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한결같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한결같기를, 세상이 한결같기를 바란다.

그런데 나는 한결같은 사람을 알고 있다. 삼십 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언니인데, 세상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어 마치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같다.

아! 살기가 힘겹고 앞날이 불투명할 때 더욱더 우리에게 한 줄기 빛과 희망을 던져주는 한결같은 이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커지는 것 같다.


****낚시와 사냥-7.27

공자께서는 낚시질을 하셔도 그물질을 하지 않으셨고, 주살질은 하셔도 9둥지에) 잠든 새는 쏘지 않으셨다.(143P)

###공자의 사람 됨됨이를 그리고 있다. 컬러사진보다 흑백사진의 감흥과 닮았다. 표현에는 감정이 하나 들어있지 않지만 읽는 순간 공선생의 생명 사랑의 열기가 뜨겁게 전해온다. 이런 표현기법은 훗날 산수화의 예술정신으로 승화한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297P>


***공자를 찾아온 아이-7.29

호향(마을이름, 분위기가 좋지 않은 마을이라고 함) 사람들은 더불어 말하기 어려웠는데 그곳의 사람이 공자를 뵈러 왔다. 문하생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아가는 자와는 함께 하고 퇴보하려는 자와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삼한가! 사람이 자신을 깨끗이 하여 나아가면 우리는 그의 깨끗함과 함께하면 되지. 그의 지난 일을 붙들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만나기를 꺼리는 사람을 만나는 상황인데도 공자는 주저함이 없다. 오히려 제자들이 쩔쩔 맨다. 공자의 태도가 젊은이들보다 전향적이고 진보적이다. 한 사람의 과거에 매여 현재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선입관을 가지고 만날 때가 많다.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기도 전에 사회에서 떠도는 소문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예도 많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과거를 통해 판단하려고 하는데 그 또한 아니다. 지금 이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


****인은 가까운데 있거늘-7.30

공자께서 말슴하셨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하고자 하기만 하면 인은 바로 나에게 다가온다.” (144P)


***검소와 사치-7.3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치스러우면 불손해지고, 검소하게 되면 고루해진다. 불손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루하라.” (148P)

###돈을 잘 쓰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자신에게 시중을 들기 위해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다 보면 손톱 발톱 하나 까닥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려고 한다. 즉 거만해지는 것이다. 거만하면 주위의 사람이 한둘 떠나기 시작한다. 절약을 하다보면 써야 할 데조차도 돈을 아끼게 된다. 남에게 받으려고 할 뿐 줄줄을 모른다. 쫀쫀하면 주위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쫀쫀한 게 거만한 것보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덜 준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310P)


***공자의 풍도-7.38

공자께서는 온화하면서도 엄숙하셨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셨으며 공손하면서도 편안하셨다. (148P)

###공자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이처럼 공자는 여유가 있엇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다. 또한 외유내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은 온화하면서도 엄격할 땐 엄격해야 하며, 위엄이 있되 지나치지 말아야 하며 항상 거만하지 말고 공손해야 함을 나타내며, 이는 엄격한 자기관리를 통해 터득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제 8편 태백(泰伯)

***이 편에도 예양이나 효, 인, 덕행, 군자의 품격 등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개념이 많이 들어있다. 증자의 문인들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증자와 관련된 언행도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배움의 앞과 뒤-8.1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울 때는 미치지 못할 것처럼 하며, 오히려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듯이 한다.” (159P)


제 9편 자한(子罕)

***이 편은 주로 공자의 덕행에 관한 내용이 많다.


***하지 않은 네 가지-9.4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절대 하지 않으셨다. 근거없는 억측을 하지 앟으셨고, 반드시 하겠대는 게 없으셨으며, 고집을 부리지 않으셨고 나만이 옳다고 하지도 않으셨다. (165P)


***안연의 탄식-9.11

안연이 크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으시고, 파고 들어가 보려고 하면 더욱 견고하시구나. 바라보면 앞에 계시다가 어느새 뒤에 계시다.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들을 이끌어주시고, 문헌으로써 나를 넓혀주시고, 예로서 나를 단속해주시니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가 없다.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면 어떨 때는 자립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우뚝 앞을 가로막고 서 있으니, 비록 따르고 싶어도 어떻게 따라야 할지 모르겠구나.”(168P)


***팔아야지-9.13

자공이 물었다.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궤에 넣어 보관하시겠습니가? 좋은 상인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을 팔아야지! 그것을 팔아야지. 나는 상인을 기다릴 것이다.”

###이 구절은 “선생님은 왜 관직을 얻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하지 않습니까?”로 바꿀 수 있다. 자공은 이 물음을 비우로 대신하고 있다. 아름다운 옥은 공자를 , 궤짝은 은거생활을, 상인은 군주를 각각 상징한다. 공자는 인정해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햇지만 그이만큼 세월을 기다린 이가 있을까!

자공이 공자에게 이상을 펼칠 기회를 찾으려는 노력을 그만두엇느냐 아직도 바라고 있느냐를 묻고 있다. 자공은 스승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비유를 통해서 조심스레 물어보고, 스승은 간단히 답한다.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고 듣는 제자는 한편으로 흥분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슬픔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361P)


***세월은 강물처럼-9.17

공자께서 강가에서 말씀하셨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

####공자가 대자연 속에서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한탄하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자신이 삶의 지침을 끊임없이 흘러가는 저 물결과 겹쳐 본 것이다. 공자가 단순히 푸념조로 이렇게 읊조린 것은 아닐진대, 여기엔 대자연의 변화 속에서 전통에 대한 회복을 주창한 통변(通辯)의식이 스며있지 않을까?


***한 삼태기의 의미-9.1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문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 것과 같으니, 한 삼태기의 흙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두어도 내가 그만둔 것이다. 비유하자면 땅을 고르는 것과 같으니 한 삼태기의 흙을 부어서 나아갈지라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

###학문이란 사소한 방심이라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아울러 공자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므로 학문을 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고통도 자신의 몫이라고 말이다.

####공선생님이 들려주었다. -9-19

“에컨대 흙을 쌓아 산 모양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세. 겨우 한 삼태기 분량의 흙을 채우지 못한 채 일을 그만둔다면 다름 아니라 바로 내가 그만둔 것일뿐일세. 예컨대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일을 생각해보세. 비록 겨우 한 삼태기의 흙을 갖다 부었을 뿐이더라도 일을 진척시켰다면 다름 아니라 바로 내가 앞으로 나아간 것일 뿐일세.”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신정근 번역>


*****오랜만에 들은 칭찬-9.2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낡고 해진 솜옷을 입고 여우나 담비 가죽 옷을 입은 귀한 사람과 나란히 서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유(자로)일 것이다.” 그러나 ’원망하지도 않고 탐을 내지도 않으니,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란 시의 구절을 자로가 죽을 때까지 외우고 다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정도의 도를 어찌 훌륭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느냐?”

###주위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자로의 우직한 삶의 자세가 드러나 잇다. <논어>에서 보면 자로는 행동지향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자로는 눈에 보이는 의복의 현격한 차이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기제를 가지고 있다. 이 점은 차이 앞에 주눅 들어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소시민의 심성과 비교해도 돋보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러한 기개로 무엇을 할까? 즉 기개는 사람의 차이에 위축되지 않고 다른 조건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게 하는 전제로는 충분하지만 적극적으로 무엇을 만들어가야 하는지의 목표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377P>


***소나무와 잣나무처럼-9.2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해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176P)

"저기 저 숲을 보게나.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가장 나중에 시들어 떨어진다네.“ <신정근의 번역>

###예리한 시인의 눈으로 자연의 현상을 관찰한 것이다. 여기서는 날씨와 나무가 모두 비유적인 맥락으로 쓰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나 측백나무를 보았겠지만 이처럼 의미의 울림을 주는 이가 드물었다. <공자시의 유쾌한 논어, 378P)


****지자, 인자, 용자-9.2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인(仁)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177P)

####인간적 나약함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말학 있다. 어려운 게 아니다. 되새겨보면 의미가 마음에서 일어난다. 인의 경우 당신의 마음속에 과도하게 높게 잡은 목표와 심하게 저주하는 적 또는 편견으로 색칠해 놓은 경쟁자를 지워라. 그러면 걱정과 불안의 절반은 줄일 수 있다. 인간인 한 부분과 한계 속에 살아가지만 전체와 보편을 지향하는 해방의 계기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분은 영원히 부분으로 고립될 뿐이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379P)


***그리워한다는 그 말-9.31

“산앵도나무 꽃이 팔랑이다가 뒤집히고 있네. 어찌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으리. 그대의 집이 멀 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리워하지 않는 것일 테지. 무엇이 멀리 있다는 것인가?”(178P)


<시경>에서 시를 읊는다. “산앵두나무의 예쁜 꽃이여, 바람에 날리다 오므리는 구나. 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않으리오. 다만 집이 멀리 떨어져 있네.”

공자가 비평했다.

“아직 참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다. 참으로 생각한다면 과연 극복할 수 없는 먼 거리가 있겠는가?”(신정근번역>

###연인끼리 서로 보고 싶어하면서도 멀리 떨어진 거리를 안타까워하는 시를 공선생이 비평하고 있다. 원래의 시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속담의 고대판이다. 그러나 공자는 물리적 거리가 극복될 수 없는 치명적인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왜 객관적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진정으로 한 사람을 그리워하면 눈으로 담을 수도 있지만 마음으로도 담을 수 있다. 그리고 공간적 시간적 거리가 사람 사이를 멀게 하는 요인이라면 우리에게 역사적 사건과 인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가 그것에 다가가 의미를 캐내는 한 역사는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딸서 거리에 좌절한다면 사랑도 배움도 불가능해지므로 공자가 흥분할 수 밖에 없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381P)


제 10편 향당(鄕黨)

***상당히 독특한 체제의 이 편은 어록집인 <논어>의 체제와 어울리지 않게 호흡이 긴 문장이 많고 문체도 서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친구의 죽음-10.19

벗이 죽었을 때 돌아갈 곳이 없으면 말씀하셨다.

“내 집에 빈소를 차려라.”

###이 말은 단순히 빈소만 차리고 손을 놓겠다는 말이 아니고 공자가 장례를 치러주겠다는 말이다.


제 11편 선진(先進)

****이 편은 인물 품평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다른 편과 차별되는 점은 공자 자신이 제자들을 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가난한 집 출신이 많았다. 리링교수에 다르면 공자의 나이 35세 이전의 제자들 중에는 가난한 집 출신이 많았고, 공자가 제나라와 주나라에 갔다가 다시 고국 노나라로 돌아온 36세 이후부터 54세까지도 염옹과 염구, 안회 등 여전히 가난한 자가 많았다. 위나라 상인 출신으로 돈이 많았던 자공만이 예외일 정도다. 만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고 단지 사마우 정도만이 대귀족이었으니 예외다. 공자는 스스로도 빈천한 출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듯이, 제자들의 출신을 문제삼지 않고 개성을 존중하여 가르침의 방향을 정했다. (196P)


****성찰하는 남용-11.6

남용이 백규(白圭희고 맑은 옥)이라는 시구를 매일 세 번이나 반복하자, 공자는 그 형의 달을 그에게 시집보냈다.(199P)

###삼복백규(三復白圭)의 시 출전 <시경>

백규 위에 있는 흰점은

오히려 갈아 없애버릴 수 있지만,

말의 점은 바로잡을 수 없다.

###남용이 인간관계에서 말조심의 가치를 높이 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곽을 마련하지 않다-11.8

안연이 죽자 안로(안연의 아버지로 공자의 제자였고, 이름은 무요(無繇))가 선생님의 수레를 팔아 그에게 곽(덧곽)을 마련하고자 청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재주가 있든 없든 역시 저마다 자기 자식을 말하기 마련이다. 리(鯉공자의 아들로 공자 나이 49세에 죽음)가 죽었을 때 관만 있엇고 곽은 없었다. 내가 걸어다니고 그를 위해 곽을 만들어주면 될 터인데 그러지 않은 것은 나도 대부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어서 걸어서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의 궁색한 거절 이유만큼이나 안로의 과도한 부탁도 문제일 수 있다. 부모는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장례는 있는 처지대로 치르면 되지 무리를 할 필요가 았을까? 공자는 왜 거절햇나? 그이는 한때나마 노나라의 대사구를 지냈다. 만약 다시 임용이 된다거나 원로로서 입궐해야 할 때 도보로 갈 수는 없지 없은가! 이 말을 하면서 공자는 자신이 아직도 버리지 못한 희망에 뜨끔했을 수 있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421P)


***하늘이시어-11.9

인연이 죽자,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 구나.”(201P)


****상심하다-11.10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곡을 하며 상심하셨다. 모시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상심하시는군요.”

공자께서 말슴하셨다.

“상심한다고? 이 사람을 위해 상심하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 그렇게 하겠느냐?”


***삶과 죽음-11.12

계로(자로)가 귀신 섬기는 것에 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계로가 여쭈었다.

“감히 죽음에 대해 묻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귀신과 사후 세계의 문제를 질문 받고서 공자는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은 채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달리 생각하면 공자는 이 질문들의 번쇄함과 해결 불가능성을 알고서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공자시의 유쾌한 논어, 427P)

☆☆☆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착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정답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죽는 것이 두렵다기 보다 나는 사는 것이 두렵다. 산다는 것 너무 어렵다.

귀신,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 요즈음 불교의 작태이다. 49재는 사찰의 큰 수입원이다. 무당이나 다를 바 없다. 무당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가지고 우매한 사람들을 우롱하듯이, 불교 또한 그러하다. 조상천도니 뭐니 하면서 은근히 두려움을 조장하여 49재, 영가 천도를 하게 만든다. 부처님은 브라만들이 천도제니 뭐니 하면서 동물을 죽여 제사를 지내는 것에 환멸을 느꼈고 그래서 일체의 제사를 금했다. 초기경전 어디 보아도 부처님께서 제사지내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제사를 올려 복을 받고자 하는 이들을 꾸짖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행하면서 부처를 믿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톨릭에서는 불교의 49재를 가져가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아들은 성직자 내지 스님들을 착취계급으로 보고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

***민자건, 염유, 자공을 비교하다

민자건이 곁에서 모실 때는 공손하고 엄숙햇고, 자로는 굳세고 강했으며, 염유와 자공은 자유롭고 편안했다. 공자께서는 즐거워하셨다.

“유(자로)처럼 행동하면 자기 목숨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자로는 결국 위나라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는 저민 고기를 내다버리고 먹지 않았다고 한다.


***자로의 연주-11-15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유(자로)가 거문고를 어찌하여 내 집 문 앞에서 타느냐?”

그 뒤로 문인들이 자로를 공경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대청까지는 올라섰지만 실(室, 방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했다.”

###거친 성격의 자로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을 공자는 듣기조차 싫어했는데, 그 이유인즉 북쪽 변방의 살벌한 소리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 다른 교수법-11.22

자로가 여쭈었다.

“들은 것을 바로 실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부형이 게시면 어떻게 듣는 대로 곧바로 실행할 수 있겠느냐?”

염유가 여쭈었다.

“들은 것을 바로 실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들으면 바로 실행해야 한다.”

공서화가 여쭈었다.

“자로가 ‘들은 것을 바로 실행해야 합니까?’ 라고 여쭈었을 때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부형이 계시다면’이라고 하셨고, 염우가 ‘들은 것을 바로 실행해야 합니까?’라고 여쭈었을 때는 ‘들으면 바로 실행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의아하여 감히 여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염유는 소극적이라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고, 자로는 다른 사람을 이기려 하므로 물러서도록 한 것이다.”


****자로, 욕을 먹다-11.25

자로가 자고를 비읍의 읍재로 삼으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남의 집 자식을 해치려 하는 구나!”

자로가 말대꾸하듯 말씀드렸다.

“백성들이 있고 사직도 있는데, 어찌하여 꼭 책을 읽은 뒤라야 배우는 것이라고 하겟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말재주 있는 사람을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210P)


제 12편 안연(顔淵)

이 편은 공자가 주로 제자들에게 질문에 답한 것이 많은 편이고 다른 사람들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한 문제에 대해 답을 제시한 것도 있다.

공자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가장 구체적인 세목이 무엇인지를 한하나 거론하면서 인을 인간관계론으로 확장하고 있다.


***극기복례와 금기 사항-12.1

안연이 인(仁)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자기를 이겨내고 에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 돌아갈 것이다. 인을 행하는 방법은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어찌 다른사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겠는가?”

인연이 다시 말햇다.

“그 세부적인 항복을 여쭙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거라.”

안연이 말햇다.

“제가 비록 총명하지는 못하지만 이 말씀을 받들겠습니다.” (216P)


***총명함의 의미-12.6

자장이 총명함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서서히 스며드는 참소와 피부에 와 닿는 섬뜩한 무고가 너에게 가해지지 않는다면 총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서히 스며드는 참소와 피부에 와 닿은 섬뜩한 무고가 너에게 가해지지 않는다면 멀리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소는 당하는 사람이 느끼지 못하게 천천히 옥죄는 덫과 가은 것이고, 무고는 없는 죄를 지어내서 사람을 옴짝달짝 못하게 옭아매는 것이다. 참소와 무고는 소인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무기이며 이것은 보통 군자를 겨낭하기 쉽다. 군자라면 마땅히 그러한 것을 예비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권좌에 오른 자가 참소나 무고를 이겨내고 현명한 군주가 되기 위한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임을 마한 것이기도 하다.


***임금은 임금다워야-12.11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나 사물이 명분대로 움직이고 명분에 맞게 존재하려면 모든 일이 제대로 된다고 하였다. 공자는 정치의 근본도 명분을 바로 세ㅔ우는 정명(正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다른 이의 좋은 점을 이루어준다면-12.1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이루게 하고,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이루어주지 않는다.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자율적 인간은 주위 사람들의 아름다운 점을 키워서 이루게 해주고, 나븐 점을 부추기지 않고 없애도록 도와준다. 작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와 반대로 하지.” <신정근번역>

###악역은 인간 세계에서 영원히 추방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어찌보면 한 사람에게서 군자의 속성과 소인의 속성을 뚜렷하게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각각 얼마씩 소인이 잇고 군자가 있다. 어떤 속성이 그 사람의 특성을 규정지을 정도로 좀더 부각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오늘 당신은 군자였는가? 소인이었는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477P)


바람과 풀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만약 도리가 없는 사람을 죽여서 도리가 있는 데로 나아간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셨다.

“선생께서는 정치를 하는데 있어 어찌 살인이라는 방법을 쓰십니까? 선생께서 선해지려 한다면 백성들도 선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은 위로 바람이 불어오면 반드시 눕습니다.” (227P)


****통달과 소문

자장이 여쭈었다.

“선비는 어떻게 해야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무엇이냐? 네가 말하는 통달이라는 것이?”

자자이 대답했다.

“나라 안에서 반드시 소문이 나고 가문 안에서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공자게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소문이지 통달이 아니다. 통달이라는 것은 본바탕이 바르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안색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소문이 있다는 것은 겉으로는 인(仁)을 취하면서도 행동은 인에 어긋나는 것인데도 스스로는 인하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나라 안에서 반드시 소문이 있고 집에서도 반드시 소문이 있는 것이다.”


***번지의 훌륭한 질문-12.21


번지가 무대(기우제를 지내는 제단) 아래에서 공자를 따라서 노닐다가 여쭈었다.

“감히 덕을 숭상하는 것, 사악한 생각을 고쳐 마음을 수양하는 것, 미혹됨을 분별하는 것에 대하여 여줍고자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훌륭한 질문이구나!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ㄹ 나중 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덕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자신의 나쁜 점을 공ㄱ겨하고 다른 사람의 나븐 점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 악한 생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한순간의 분노로 제 자신을 잊고 자신의 부모님에게까지 화가 미치게 된다면 미혹됨이 아니겠느냐?” (228P)

****사람을 사랑하고 아는 것 -12.22

번지가 인(仁)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번지가 지혜로움에 대해 여쭈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가 깨닫지 못햇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바른 사람을 뽑아 비뚤어진 사람 자리에 앉혀 비뚤어진 사람으로 하여금 바르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번지가 물러나와 자하를 만나자 말했다.

“아까 제가 선생님을 뵙고 앎에 대해 여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바른 사람을 뽑아 비뚤어진 사람 자리에 앉혀 비뚤어진 사람으로 하여금 바르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던데 무슨 뜻일까요?”

자하가 말햇다.

“풍부하구나. 그 말씀이 순임금이 천하를 차지하고 나서 여러 사람 중에 뽑아 고요를 등용하니 인(仁)하지 않은 자들이 멀어졌던 것이오. 탕임금이 천하를 차지하고 나서 여러 사람 중에 뽑아 이윤(은나라의 유명한 재상)을 등용하니 인하지 않은 자들이 멀어졌던 것이오.” (229P)


***교우의 도리-12.23

자공이 교우의 도리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심으로 알려줘서 잘 이끌고, 그것을 할 수 없다면 그만두어, 스스로 욕됨을 없게 해야 한다.”


***글로서 벗을 모으다-12.24

증자가 말햇다.

“군자는 글을 통해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해 인을 돕는다.”(230P)


제 13편 자로(子路)

***이 편은 정치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자가 말하는 정치의 기본은 세 가지다. 담당 관리를 세우는 것, 작은 허물을 용서해주는 것,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 등이다. 자로에게 “정치란 명분을 바로 잡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치란 명분-13.3

자로가 여쭈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우대하여 정치를 맡기시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아야겠다.”

자로가 여쭈었다.

“그런 일이 언제 있었습니까? 선생님은 생각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무엇을 바로잡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거칠구나. 자로여.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문으로 남겨두는 법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다. 말이 순조롭지 못함ㄴ 알이 이루어지지 dskg는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날 수 없다.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들어맞지 않게 도니다. 형벌이 들어맞지 않으면 백성들은 팔다리를 둘 데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명할 때는 반드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자신의 말에 대해서는 대충하는 것이 없도록 할 뿐이다.”(235P)


****무용지물-13.5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시경> 삼백 편을 외우고 있다고 해도 정치를 맡겼을 때 통달하지 못하고, 외국에 사신으로 보냈을 때 독자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이 외운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자신이 바른 것이 먼저-13.6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 그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지만, 그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


***정직에 대하여-13.18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 몸가짐이 바른 자가 있으니 그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것을 고발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외해 숨기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지만 정직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

###공자는 문병 가족 중심의 정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기 때문에 심각한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잘못을 은폐해주고 스승과 제자가 그렇게 해주며 같은 조직 내에서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위험한 생각으로 발전할여지가 잇기 때문이다.


****중용의 도와 그 실천-13. 21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중도(中道)를 행하는 사람을 얻어서 함께할 수 없다면, 반드시 뜻이 큰 사람이나 고집스런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뜻이 큰 사람은 진취적이고 고집스런 사람은 하지 않는 바가 있다.”(246P)


****한결같은 덕을 지녀라-13.22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남쪽 사람들의 말에 ‘사람으로서 한결같은 마음이 없다면 무당이나 의사 노릇도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좋은 말이구나. ‘덕을 한결같이 하지 않으면 수치스런 일을 겪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점을 치지 않을 따름이다.” (246P)


**군자와 소인의 차이-13.23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군자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만 부놔뇌동하지는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군자는 남을 자기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조화를 이루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이익을 쫓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행동하지만 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공명정대한 명분이나 사리 판단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에 가까운 것들-13.2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직함, 의연함, 절박함, 어눌함은 인에 가깝다.”-강의목눌(剛毅木訥)

“사람이 나아갈 길이 굳건하고, 한 번 품은 의지력이 흔들림없이 굳세고, 나무처럼 소박하고, 실천의 부담으로 말을 더듬거린다면 그이는 평화의 길로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신정근의 번역)

### 강의목눌(剛毅木訥)은 교언영색(巧言令色)과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공자가 생각하는 인의 개념이 이처럼 좀 둔하고 어눌하며 투박한 면모가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제 14편 헌문(憲文)

****공자는 제자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위주로 하면서 나름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덕과 말, 인과 용기-14. 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바른 말을 하지만,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仁)한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잇지만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한 것은 아니다.” (255P)


****관중을 칭송하다-14.16

자로가 여쭈었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고 소홀이 그를 위해  죽었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습니다.“

도 여쭈었다.

‘인하지 않은 것입니까?“

궁자께서 말씀하셧다.

“환공이 아홉 번이나 제후들을 구합하면서도 군사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이와 같으니 그는 인하다고 할 수 있겠지! 이와 같으니 그는 인하다고 할 수 있겠지!”

###가난했던 소년시절부터 평생토록 변함이 없었던 포숙아(鮑叔牙)와의 깊은 우정은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여 유명하다. 환공(桓公)이 즉위할 무렵 환공의 형인 규(糾)의 편에 섰다가 패전하여 노(魯)나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포숙아의 진언(進言)으로 환공에게 기용되어, 국정(國政)에 참여하게 되었다.

환공을 도와 군사력의 강화, 상업·수공업의 육성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동방이나 중원(中原)의 제후(諸侯)와 9번 회맹(會盟)하여 환공에 대한 제후의 신뢰를 얻게 하였으며, 남쪽에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초(楚)나라를 누르려고 하였다. 저서로 알려진 《관자(管子)》는 후세 사람들에 의하여 가필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출처] 관중 | 두산백과


***관중이 아니었다면-14.17

자공이 여쭈었다.

“관중은 인(仁)하지 않습니까?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는데도 스스로 죽지 못하고 또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만들고 단숨에 천하를 바로 잡았다면 우리는 오늘날까지 그의 은혜를 입고 있다. 관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었을 것이다. 어찌 보통의 남자와 여자가 작은 신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도랑에서 목을 매어 죽어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게 되는 일을 만들겠는가?”(263P)

###갖은 난관을 이겨내고 제 환공을 도와 천하의 패권(覇權 패(覇)으뜸 패, 권(權)저울추 권)을 장악하게 만든 위대한 인물이 도랑에서 목을 매어 죽는다는 것은 아무런 명분도 없고 필부의 하찮은 죽음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부끄러워야 실천한다-14. 2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말에 부끄러움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말을 실천하는 것도 어렵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말을 하고 약속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를 위해 배운다-14. 24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햇는데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한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공부한다. 공부해서 내 안에 가만히 품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널리 써먹어야지. 그런데 나는 이렇게 공부해서 어디에다 써먹지!


***비교는 하지 말라-14.29

자공이 자신보다 나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자공은 현명하구나. 나는 그럴 틈이 없다.”

☆☆☆ 남과 비교할 시간이 있으면 자신의 수양을 위해 공부를 위해 노력하라는 가르침이다.


****자신을 걱정하라-14.30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능력 없음을 걱정하라.”

☆☆☆자신의 능력없음은 모른 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실력만 갖추어진다면 송곳이 호주머니에서 삐져나오듯이 알려지게 마련이다.


***먼저 깨달아야 속지 않는다.-14.3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속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남이 나를 믿지 않을까 걱정하지도 말자. 도리어 또한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구나!”

### 우리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 전에 만난다. 이야기를 통해 만남의 반복을 거쳐 하나씩 제대로 알아가기보다 미리 지레짐작한다. 그리고 나서 편을 가른다. 나중에 오판의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그러는지? 애들 그렇게 조급한지! 시간을 두고 알아가도 늦다고 생각하지 말자. 또 사람을 쉽게 미도 자신과 같을 거라고 속단함으로써 오해가 생긴다. 공자는 반전을 시도한다. 사람을 속단하지 말라고 해놓고, 속임수를 알아차려서 허망한 사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다. 속고 속이는 세태를 두고 한 말일까? <공자씨의 유쾌한 논오, 570P)


***완고함을 미워하다-14.32

미생무가 공자께 말했다.

“구, 그대는 어찌하여 허둥거리는가? 아마도 말재주를 부리려고 하는 것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감히 말재주를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완고함을 미워하는 것이오.”


“공구는 무엇을 한다고 저렇게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니시나? 달콤한 말로 만나는 사람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공자가 밝혔다.

“내가 주제넘게 달콤한 말로 누구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게 아니지. 다만 꽉 막혀있는 현실을 아파하다 보니까 그렇지.”(신정근번역)

###공자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햇고 사회적으로 자신들만의 tjad 고립되어 잇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늘 박수소리에 묻혀있고, 이름이 현수막에 걸려 있을 수 있겠는가? 누가 알아주어서 아니라 제 할 일을 하여 공동체를 좀더 따뜻하게 만들며 묵묵히 살아가는 거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571P>


***천리마인 까닭 -14.33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천리마는 그 힘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덕을 일컫는 것이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이라고 해서 우리는 그 말의 지칠 줄 모르는 힘을 높이 치는 것이 아니라 조련을 통해 그 말의 길들여진 고귀한 자질을 높이 치는 것이다.”(신정근번역)

###천리마가 천리마일 수 있는 것은 이유를 힘이 아니라 자질에서 찾고 있다.


***알아주는 건 하늘 뿐-14.3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자공이 여쭈었다.

“어지 아무도 선생님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 소소한 것들을 배우고 위로는 심오한 이치에 통달했는데 날ㄹ 알아주는 자는 아마도 하늘일 것이다.”(271P)


**피해야 할  네 가지-14.37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현명한 사람은 혼란한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부류는 어지러운 지역을 피하며, 그 다음 부류는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을 피하고, 그 다음은 나쁜 말을 피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이렇게 실천한 사람은 일곱 명이다.”


“현자가 시대와 불화를 겪으면 아예 세상을 등지게 되지. 다음으로 활동하는 곳을 떠나고, 그 다음으로 사람을 피하고 그 다음으로 말을 끊어버리지.”(신정근번역)

###세상을 등지 s가가 겪는 과정을 단계별로 또는 유형별로 나누고 있다.


***경쇠 치는 소리에도 근심이-14.39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석경을 두드리고 계셨다. 삼태기를 메고 공자의 문을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근심하는 구나. 경쇠를 치는 소리여!”

그러고는 얼마 있다가 말했다.

“비루하구나. 쩡쩡거리는 소리여!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따름이니, 물이 깊으면 하의를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옷을 걷어올리고 건너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그러하구나! 어려움이 없겠구나.” (273P)

###정치적 기회를 찾기 위해 세상을 떠돌던 공선생이 숙소에서 경쇠를 두드리는 장면이 그림처럼 영화처럼 펼쳐진다. 이어서 공선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이를 찾아 나서야 하는 점을 이야기하고 숙소를 지나던 과객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지 반대로 가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584P)


제 15편 위령공(衛靈公)

****이 편은 편폭이 짧은 격언이 많다.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공자가 등요되지 못한 현실에서 느끼는 생각들이 단편적이지만 정리가 되어 있다.


***곤궁할 때의 모습-15.2

공자가 진나라에 이르러 양식이 떨어지고, 따르는 자들은 병이 나서 아무도 일어날 수 조차 없었다. 자로가 화가 나서 뵙고 여쭈었다.

“군자도 곤궁해질 때가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곤궁함을 굳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아무 짓이나 한다.”


***학식보다는 일관성을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자공아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잇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가?”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아니다. 나는 하나로 배운 것들을 꿰뚫고 있다.”일관(一貫)


***순임금의 무위 15.5

공자께서 말슴하셧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다스린 이는 아마도 순임금이구나! 무엇을 했었는가? 몸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임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옛날 순임금에게는 왼쪽에 우(禹)가 있고, 오른쪽에는 고요가 있어 자리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천하가 다스려졌다.’는 말이 <대대례> 주언편에 있다.


***잃지 않는다-15.8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더불어 말할 만해도 더불어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인재를 잃게 되고, 더어 말을 하지 못할 만한데도 더불어 말을 한다면 말을 잃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재를 잃고 않고 또 말을 잃지도 않는다.”


***생각과 근심-15.12

공자께서 말씀하셧ㄷ.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이 있다.“ (285P)


***나에게 엄격하라-15.15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자신에 대해서는 엄중하고 다른사람에 대해서는 가볍게 책망하면 원망을 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사소함-15.17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온종일 함께 지내면서 말은 의로운 일을 언급하지 않고, 사소한 지혜를 자랑하는 것만을 좋아한다면 이런 사람은 곤란한 사람이다.”


***파벌-15.22

“군자는 긍지를 갖되 다투지 않고 무리를 이루지만 파벌을 만들지는 않는다.”


***말과 판단-15.23

공자께서 말슴하셨다.

“군자는 말만 듣고서 사람을 등용하지 않고, 그 사람만 보고서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이기에 나빠 보이거나 비천해 보인다고 해서 그의 좋은 말을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88P)


***평생의 실천-15.24

자공이 여쭈었다.

“한 마디 말로 평생동안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서(恕):관용으로 풀이

###도덕적 삶을 위한 원칙으로 관용의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론-15.2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두가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고, 모두가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그릇의 크기-15.34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군자는 작은 일로써 그를 알 수 없지만 큰 일을 맡아 할 수 있고, 소인은 큰일은 맡을 수 없지만 작은 일로 그를 알아볼 수 있다.”


***길이 다르면-15.20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전달력-15.41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말은 정확히 전달하면 그뿐이다.”

###여기에서는 말보다는 외교사령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제 16편 계씨(季氏)

**이 편은 <옹야>편과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할 만큼 정치가 논의의 중심에 온다. 내용상으로는 중국의 전통 유가 문화와 공자 자신의 정치 철학에 관한 것이 많다.


**계손씨의 근심이 아닌 것-16.1

“구(염구)야 군자는 자기가 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구실을 찾아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듣건대 국가를 소유하고 있는 자는 재화가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하며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안정되지 못함을 근심한다. 대개 분배가 고르면 가난한 사람이 없고, 조화로우면 적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며, 안정되면 나라가 기울어질 일이 없다. 이와 같으므로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덕을 닦아 그들을 오게 한다. 이미 그들을 오게 했으면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299P)


***벗의 종류-16.4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유익한 벗이 세 가지이고, 손해가 되는 벗이 세 가지이다. 정직한 사람을 벗하고, a;더운 사람을 사귀며,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이롭다.

아첨 잘하는 사람을 벗하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벗하며,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사귀면 손해다.” (302P)


*****즐거움의 종류-16.5

공자게서 말씀하셧다.

“유익한 즐거움이 세 가지이고, 해로운 즐거움이 세 가지이다. 예악으로 절제하는 것을 즐기는 것, 다른 사람의 장점 말하기를 즐기는 것, 현명한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유익하다. 교만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빈둥거리면서 노는 것을 즐기며 주색에 빠져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면 해롭다.” (302P)


****잘못 모심-16.6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군자를 모실 때 세 가지 잘못이 있으니,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조급함이라고 한다. 말할 때가 되었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을 숨김이라고 한다. 얼굴빛을 보지도 않고 말하는 것을 눈멀음이라고 한다.”(303P)


***군자의 경계-16.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있다. 젊어서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여색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막 왕성해지므로 싸움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사그라졌으므로 탐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303P)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16.1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할 것이 있으니,

볼 때는 분명한가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똑똑하게 들었는가를 생각하고, 안색은 온화한가를 생각하며, 말은 진실 되는지를 생각하고, 일 처리할 때는 경건한가를 생각하고, 의문이 들 때는 물어보아야 할 것을 생각하고, 화가 치밀면 어떤 후환이 생길까를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305P)


***자식과도 거리를 두다-16.13

진항(진자금)이 백어(공자의 아들)에게 물었다.

“당신께서는 또한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것을 들었습니까?”

백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이전에 홀로 서 계시는데 내가 빠른 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 말씀하시기를 ‘시를 배웠느냐?’고 하셔서 ‘아직 배우지 못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랫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물러나 시를 배웠습니다. 다fms 날 또 홀로 서 게시는데, 내가 바른 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 말씀하시기를 ‘예를 배웠느냐’고 물으셔서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남 앞에 설 수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물러나서 예를 배웠습니다. 이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진항은 물러나 기뻐하면서 말햇다.

“하나를 물어서 셋을 얻었으니 시를 들었고, 예를 들었으며, 또 군자가 그의 자식을 멀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06P)


제 17편 양화(陽貨)

***<논어> 전체 20편 가운데 17편부터 20편까지는 결론부에 해당되는데, 특히 이 편은 <술이>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편의 내용 역시 정치적인 담화뿐 아니라 공자의 처세방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ㅇ 수록되어 잇다. 공자의 실제 모습이 가장 잘 담겨있는 이 편에는 공자를 벼슬길로 나오도록 흔드는 권력자 양화, 반란자 필힐 등이 등장한다.


***공산불요에 흔들리다-17.5

공산불요가 비읍을 근거지로 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나서 공자를 부르자, 공자께서 가시려고 했다. 자로가 언짢아하며 말햇다.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이지 어찌하여 꼭 공산씨에게 가려고 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자가 어찌 헛되이 나를 불렀겠느냐? 만약 나를 써주는 사람만 있다면 나는 그곳(노나라의 비읍)을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공산불요는 상당히 사악한 자로 평가가 좋지 않았다. 그런 그를 공자가 만나려고 하니 용감한 자로가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 공자는 시간은 자꾸만 가는데 어디에도 불러주는 곳이 없으니 초조하기만 했을 것이다. 이러다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공부를 펼칠 곳만 있다면 불러주는 이가 어떠한 사람이든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스승을  자로가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필힐이 부르다-17.7

필힐(조나라의 가신)이 부르자 공자께서 가시려고 했다. 자로가 말씀드렸다.

“예전에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자신에게 몸소 나쁜 짓을 한 자에게는 군자는 다가서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필힐은 중모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선생님은 가시려 하시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그래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엇지. 그런데 견고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갈아도 닳지 않는다고 말이다. 희다고 하지 않았더냐? 검게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내가 무슨 썩은 조롱박이더냐? 어찌 매달아 놓기만 하고 물 한 잔 떠서 먹을 수도 없단 말이냐?” (317P)


***시를 배우는 이유-17.9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너희는 어찌하여 아무도 <시詩>를 배우지 않느냐? <시詩>는 화제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사회를 관찰할 수 있고,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사회의 병폐를 원망할 수 있다. 가까이로는 부모를 섬길 수 있고, 멀리로는 임금을 모실 수 있으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기억하게 된다.”


****위선자-17.3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마을의 위선자는 덕을 해치는 자다.”

###공자께서는 비슷하지만 다른 것을 싫어하나니 ‘독보리를 싫어하는 것은 곡식을 더럽힐까 두렵기 때문이고, 말재주 부리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신의를 어지럽힐까 두렵기 때문이고, 정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정악(正樂)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자줏빛을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붉은 빛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향원(鄕愿)을 싫어하는 것은 그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 라고 하셨다.

향원이란 진정한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시세에 영합하면서도 순박한 듯이 행동하는 위선자를 말한다.


****미워한 세 가지-17.1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주색이 붉은 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고, 정나라 음악이 아악(고전음악)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며, 입만 놀리는 사람이 나라를 뒤엎는 것을 미워한다.”(322P)

###제나라의 환공과 노나라의 환공이 자주색을 좋아하여 자주색 옷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을 빗댄 것이다. 공자는 붉은 색이 정색이라고 보았으므로 그런 유행을 싫어한 것이다.


****입을 잠그는 이유-17. 19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공이 말햇다.

“공자께서 말씀을 안 하시면 저희가 어떻게 기록하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란 말이냐? 그래도 네 계절이 운행되고 만물이 생겨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란 말이냐?” (323P)


****스승과 제자의 논쟁-17.21

재아가 여쭈었다.

“3년상은 기간이 너무 깁니다. 군자가 3년동안 옐ㄹ 닦지 dskg는다면 옌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3년동안 음악을 팽개친다면 음악도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없어지면 새 곡식이 올라오며 불씨 얻을 나무도 다시 바꾸는데 1년이면 충분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쌀밥을 먹고 비단 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 편안하겟느냐?”

“편안합니다.”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하거라. 군자는 상을 치르는 기간에 기름진 것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음악을 들어도 즐거움을 모르며 집에 있어도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너는 편안하다고 하니 그렇게 하거라.”

재아가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재아는 인(仁)하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나야만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그러니 3년상은 천하에서 통용되는 상례인 것이다. 재아도 그의 부모로부터 3년동안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공자의 이 말은 죽었을 때 제자들의 행동에서 입증되었다.

“공자는 노나라 도성 북쪽의 사수 부근에 매장되었다. 제재들은 모두 3년간 상복을 입엇다. 그들은 3년동안 마음에서 우러나는 슬픔을 다하고 서로 이별을 고하고 헤어졌는데 헤어지면서 통곡하고는 각자 다시 슬픔을 다하였으며, 어던 제자는 다시 머무르기도 했다. 오직 자공만은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모두 6년 동안 있다가 떠났다. 공자의 제자들과 노나라 사람들이 무덤가에 와서 집을 짓고 산 사람들이 100여 가구나 되엇으며 이로 인하여 이곳을 공리(孔里)라고 이름지었다. 노나라에서는 대대로 서로 전하여 새해를 맞을 때마다 공자의 무덤에서 제사를 받들었으며 많은 유생도 공자의 무덤에 모여서 예의를 논하고ㅗ 향음롈ㄹ 행하고 활쏘기를 햇다. 공자의 무덤은 1경(頃)이나 되엇다. 공자가 살던 집과 제자들이 쓰던 내실은 훗날 공자의 묘(廟)로 만들어져 공자가 사용하던 의관과 거문고, 수레, 책 등이 소장되엇는데 그것은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200여년 동안이나 끊어지지 않았다.

   -<사기>의 공자세가 중에서 -


****의로움-17.23

자로가 여쭈었다.

“군자는 용기를 숭상하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로움을 최상으로 여긴다. 군자에게 용기만 잇고 의로움이 없다면 난을 일으키게 되고, 소인에게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다면 도적이 될 것이다.” (325P)


***이심전심-17.24

자공이 여쭈었다.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슴하셧다.

“미워하는 게 있다. 다른 사람의 나븐 점을 말하는 것을 미워하고,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것을 미워하고, 용감하기만 하고 예의가 없는 사람을 미워하며, 과감하면서 융통성 없는 사람을 미워한다.”

“자공아, 너도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다른 사람의 공적을 훔쳐 아는 것처럼 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겸손하지 못한 것을 용감한 것처럼 하는 사람을 미워하며, 다른 사람의 비밀을 까발리는 것을 솔직한 것처럼 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326P)


***나이 마흔-17.2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끝이다.”

“나이 사십이 되었어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면 그걸로 끝장이다(모든 기회가 닫혀버린다.)”

###나이 사십이 되면 오랜 학습과 준비기간을 거친 뒤 자신의 포부와 기량을 펼치려고 하는 시점이다. 이때 주위 사람들에게 좋지 않는 평가를 받는 다면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일할 수 있겠는가? <공자시의 유쾌한 논어, 710P>


제 18편 미자(微子)

***이 편은 편명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관직을 버리고 재야에 은둔해 사는 은사와 일민들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노나라를 떠나다-18.4

제나라 사람이 여악(춤추고 노래하는 기녀들 혹은 가무단)을 보내왔다. 계환자가 그것을 받아들여 사흘 동안이나 조회를 열지 않았다. 공자는 노나라를 떠났다.


***피인지사와 피세지사-18.6

자저와 걸익이 쟁기질하면서 밭을 갈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그곳을 지나가다가 자로로 하여금 그들에게 나루터를 물어보게 하였다.

장저가 말했다.

“저기 수레고비를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신가?”

자로가 말했다.

“공구입니다.”

장저가 말했다.

“노나라의 공구란 말이오?”

자로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장저가 말했다.

“그 사람은 나루터를 알고 있을 것이오.”

걸익은 자로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자로입니다.”

걸익이 말했다.

“노나라 공구의 자자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걸익이 말했다.

“도도하게 흐르는 물결처럼 천하는 모두 이렇게 흘러가는 법인데, 누가 그것을 바꾸겠소? 그대 도한 사람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어찌 세상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르는 것만 같겠소?”

그러고는 밭 가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자로는 가서 금방 있었전 일을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실망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새나 짐승들과 함께 무리를 이룰 수는 없다.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산단 말인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나는 바꾸는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333P)

###장저와 걸익이란 은자가 공자의 목표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사람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위험을 낳은 사회와 사람으로부터 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은자와 공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은자들은 지금 세상의 변화를 몇 사람의 노력에 의해 만회할 수도 구제할 숟 없는 절망적인 것으로 본다. 사회에 있다가는 어떤 위험스런 상황에빠질지 모르므로 세상을 등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공자는 현실개혁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 희망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지도자를 만나는 데에서부터 싹틀 수 잇다. 그는 일시적인 상황의 유불리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그 한 번으로도 세상을 일으킬 거대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현실의 정치가들에게 버림받고 시대를 등진 사람들에게도 냉대받고, 고통을 겪는 일반 민중들에게도 환대를 받지 못했다. 고독이 서 말이면 술은 몇 동이며, 기다림은 또 얼마나 깊을까? 고독이 깊어가는데도 자신의 세계를 추구해가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자신이 산림에서 짐승을 돌보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을 돌보는 인문주의자라는 자각에서 나온다. 사람이라면 생존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넘어서 인륜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이 자각이 없었더라면 공자는 짐승들이 사는 산림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은둔자의 유혹에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724P)


제 19편 자장(子張)

***이 편은 제자들이 기억력을 되살려 공자의 말을 끄집어내어 기록한 것이다.

사귄다는 것-19.3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벗과 사귀는 것에 대해 묻자 자장이 말했다.

“자하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던가?”

문인이 대답했다.

“자하께서는 괜찮은 사람이면 사귀고, 괜찮지 않은 사람이면 거절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장이 말햇다.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다. 군자는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고 뭇사람을 포용하며 선한 사람을 좋게 여기고, 능력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내가 크게 현명하다면 다른 사람에 비해 무엇인들 포용하지 못하겠는가? 내가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나를 거절할 것이니 내가 어떻게 남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343P)


****날마다, 달마다-19.5

자하가 말햇다.

“나람다 내가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며 달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44P)


***스승이 없었다-19.22

위나라 공손조가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는 어떻게 배웠습니까?”

자공이 공자를 변호하여 말햇다.

“문왕과 무왕의 도가 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남아 있습니다. 현명한 자는 그중에서 큰 것을 기억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그중에서 작은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문왕과 무왕의 도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어찌 배우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어야 했겠습니까?”


***깊이의 차이-19.23

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대부들에게 말했다.

“자공은 공자보다 현명합니다.”

자복경백이 그 말을 자공에게 알려주자. 자공이 말했다.

“궁궐의 담장에 비유한다면 나이 담장은 어깨에 미치므로 집안의 좋은 것을 엿볼 수 있지만 선생님의 담장은 몇 길이므로 그 문을 찾아 들어가지 못하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풍성함을 보지 못합니다. 그 문을 찾은 자도 적으니 선생(숙손무속)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할뜯지 말라-19.24

숙손무숙이 공자를 헐뜯었다. 자공이 말했다.

“그러지 말거라. 공자를 험담할 수 없다. 사람들 가운데 현명한 이들은 구릉과 같아서 오히려 넘을 수 있지만 공자는 해와 달과 같아서 넘어설 수 없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해아 달을 끊으려 해도 어찌 해와 달에 손상이 가겠는가? 대부분 자신이 분수를 알지 못하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351P)


제 20편 요왈(堯曰)

****이 편도 앞 편과 마찬가지로 공자가 세상을 든 후에 지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섯 미덕과 네 가지 악-20.2

자장이 공자께 여쭈었다.

“어떻게 해야 정사에 종사할 수 있습니까?”

“다섯 가지 미덕을 존중하고 네 가지 악을 물리치면 곧 정사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장이 여쭈었다.

“무엇을 다섯 가지 미덕이라고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군자는 은혜를 베풀면서도 낭비하지 않고,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며, 욕망은 잇어도 탐욕은 없고, 느긋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다.”

자자잉 여쭈었다.

“무엇이 은혜를 베풀면서도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까?”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바에 따라서 백성들을 이롭게 하면 이것이 또한 은혜를 베풀면서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수고롭게 할만한 일을 가려서 수고롭게 한다면 또한 누가 원망하겠느냐? 인하고자 하여 인을 이룬다면 또 어찌 탐욕스럽겠느냐? 군자는 많고 적음을 상관하지 않고 작거나 큰 것을 상관하지 ksg으며, 하부로 오만하게 하지 않으니, 이 또한 넉넉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 군자가 그의 의관을 바르게 하고 그의 시선을 높이 함으로써 근엄한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두렵게 한다면 이 또한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

자자잉 여쭈었다.

‘무엇을 네 가지 악한 것이라고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가르쳐주지도 않고 죽이는 것을 잔인하다 하고, 경계하지도 않고 성공을 보려는 것을 포악하다 하며, 명령은 태만히 하고 기한 안에 이루려는 것을 해치는 것이라 하고, 오히려 남에게 주어야 하는데도 출납을 인색하게 하는 것을 째째한 벼슬아치라고 한다.”


***천명, 예 그리고 말-20.3

공자께서 말씀하셧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예를 알지 못하면 자립할 수 없다. 말을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알 수 없다.”

###지도자가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갈 때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자격을 이야기하고 있다.

천명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삶의 조건에 해당된다. 현실세계는 원래 다양한 가능세게들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잇는데 조건과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어떤 것이 가능한 상태에서 현실로 이행되는 기회를 갖는다. 이때 조건이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삶의 기록, 즉 역사가 전체적으로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늘 합리적이며 만족스런 상황으로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특정한 삶의 조건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조건과 기대가 일치되는 이는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고, 일치되지 않는 이는 불행과 비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건과 그 조건의 현실화로 빚어진ㄴ 인간의 행복과 고통을 모른다면 지도자가 되려고 행세할 수 없지 않을까? 지도자가 앞날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갖추고 즐거움을 누리는 이에게 절제를, 고통을 겪는 이에게  희망을 던져주려면 명을 알지 않을 수 없다.

춘추시대의 현실을 움직여갔던 이들은 공자에게 결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낸 현실과 역사가 얼마나 숭고한 지점에 도달했는지 등급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나를 거부한 너의 인생은 몇 점인가? 이것은 결국 공자가 현실에서 기회를 찾지 못햇지만 역사에서 현실의 인물들을 평가함으로써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778P)


내가 저자라면

인류 최고의 고전을 이제야 읽겠되었다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자괴감이 들고 한편으로는 늦어도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논어>라는 책을 이번 기회 말고 두 번 다시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선택할 때 많이 고심했었다.

원전을 그대로 번역한 김원중의 <논어>와 신정근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을 골랐다. 김원중이 번역한 논어는 너무 원전을 살리려고 애쓰다보니 문맥이 어색한 곳도 있었고,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게다가 달아놓은 설명이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사기열전>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에 김원중교수의 책을 선택했는데, 한 권 만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정근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은 원전과는 상관없이 주제별로 묶어놓아서 논어를 처음 읽는 나로서는 선뜻 읽기가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신정근의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를 발견했다. 800페이지가 넘는 두거운 책이라서 부담감이 있지만, 원전을 유려한 문장으로 잘 번역했고, 자신의 생각을 현실과 과거와 버무려서 잘 설명해놓았다. 거기에다 서양철학까지 곁들여 놓아서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면서 논어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하여 내가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었다.

논어라는 책은 읽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다를 수 있음에 놀랐다. 그래서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논어>라는 책의 분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목차라기보다는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그런 느낌이었고, 여기저기서 반복되는 구절도 더러 있었다.

나라면 목차를 어떻게 짤을까?

제자들이 공자와 나눈 대화별로 나누어서 목차를 짜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많은 제자들 중에 자로와 자공만이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렇게 목차를 짤 수 는 없겟다. 그러면 군자의 덕목을 나누어서 목차를 짜면 어떨까? 공자는 군자의 덕목을 인, 의, 예, 지, 덕으로 나누었는데, 대부분이 인과 예에 편중되어 있어 편집에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 <논어>의 목차가 그래도 가장 편집하기 쉬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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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09:37:32 *.59.4.151

성모.사대부집안 세째딸.

추운겨울인데 건강하십시오.교과서와 유교경전, 정사가 기본이 되어야 옳은 사회문화가 정착될 것입니다

요즘 루머로 나도는 괴담비슷한 글들. 공자님 어머니가 무당이었다는 정사 기록은 없습니다. 공자님의 시호는 문선제(文宣帝),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启圣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启圣王夫人)이십니다.무당이라면 중국 고대에 왕이 최고 지위의 무당이었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혁거세왕의 큰아들 남해왕도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나중의 무당격하와는 그 시대가 다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무당이라면 은주시대의 왕의 제사가 일반에게도 널리 퍼져, 왕족.사대부계층의 집에서 제사를 치르게 되어, 전부 무당같이 제사신분이 높아져서 그걸보고 오도한 것일수도 있습니다.은나라왕족의 후손이시나 가난하여, 겨우 벼슬할 수 있는 士계급에서 시작하여, 만인의 스승이 되는 과정을 겪으신 위대한 성인이시자 스승 공자님. 제왕과 만백성의 스승 공자님! 공자님의 아버지가 그 당시 너무 나이가 많아 음양오행론에 비추어 볼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난것으로도 생각되어 생물학적인 야합으로도 서술된 기록도 있으나 성인임금이시자 위대한 스승이라는 존경을 더 중요시하며 객관적으로 기록. 인류는 남자가 경제력이나 능력이 있으면, 어린여자를 얻어 종족을 보존하려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신성한 마음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될게 전혀 없습니다. 공자님 어머니 안징재는 숙량흘의 동료 무사이자 친구였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 같은 士계급끼리의 결혼. 딸만 낳은 아버지가 정상적인 남자로 대를 잇기 위해 늦은 나이에 배필로 얻은 공자님 어머니. 그 당시 중국은 왕이나 士大夫계층이 일부 다처제로 대를 잇는게 아주 자연스러운 사회였습니다.하느님, 성인이나 역사적 인물의 경우, 타국의 침략을 받아 지배자가 바뀔경우 격하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사와 국사, 유교경전, 가톨릭경전, 국내법.국제법, 그리고 정사(正史)로 판단해야 합니다. 혹시 루머로 대중언론에서 세력을 얻은 세력들이 하느님.성인.황제(요순우탕문무주공 포함)들에 대해 오도할까봐 걱정되어서 덧붙입니다. 공자님이 사시던 춘추전국시대에 무당이라면 은주시대 최고제사장인 왕의 제사가 일반에게도 널리 퍼져, 왕족.사대부계층의 집에서 제사를 치르게 되어, 전부 이전왕조 최고 무당같이 제사신분이 높아져서 그걸보고 억측하여 야담을 만들수 있겠습니다. 요순우탕문무주공 및 공자님, 기자조선시대의 왕, 삼한의 왕, 부여 금와왕, 고구려 (고)주몽왕, 신라 (박)혁거세, 신라 남해왕같은 고대의 최고 제사장(최고 무당이자 왕)과 관련되어, 나중의 개념으로 왜곡도 가능하겠다고 우려해봅니다.

@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하신 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하느님(天, 태극과 연계)을 최고신으로 하여 여러 하위신이 계십니다. 유교에서는 하느님(天)을 초월적 절대자로 보고 숭배해왔습니다. 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文宣帝이신 공자님 이전의 요순우탕도 성인임금이심)이시자, 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은주시대에 믿어온 우주만물의 지배자이시자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天)의 초월적 존재를 많은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계승시키시고 가르치신 점입니다.孔子聖蹟圖에 보면 균천강성(鈞天降聖)의 그림이 있습니다.

@ 하느님의 모습을 가지신 공자님.

수천년동안 이어지는 유교의 공자님 숭배를 볼때 공자님은 최고신 하느님과 다른 또 다른 하느님의 모습을 가지셨다고 판단합니다. 유교는 조상신의 위치에서 승천하시어 계절을 주관하시는 오제(五帝)께서 최고신이신 하느님 하위신의 형태로 존재하시는 다신교적 특성이 있어왔습니다. 오제 하느님과 같은 유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전통을 볼 때, 수천년간 제사의 대상이신 공자님은, 공자님을 지상에 내려보내신 균천(鈞天, 중앙의 天이시며 하느님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하느님)의 곁으로 혼이 승천하여 머무시는게 어색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유교의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天生蒸民)하신 이후 균천(鈞天)께서 유일하게 지상에 내려보내신 성자이신 공자님.

@ 공자님의 시호.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공자님은 원래부터 왕이 아니시고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성자로 탄생하시고, 하느님(天)의 기품을 제자들과 제후들에게 가르치시며 인의예지신, 삼강오륜의 덕목을 있게 하신 성인으로 사시다가 사후에 성인임금.성인스승(文宣帝,大成至聖文宣王.至聖先師)의 공식 칭호를 추존받으신 분이십니다. 공자님은 하느님(鈞天)에게 덕을 부여받으신 분입니다.

은나라왕족의 후손이시나 가난하여, 겨우 벼슬할 수 있는 士계급에서 시작하여, 만인의 스승이 되는 과정을 겪으신 위대한 성인이시자 스승 공자님. 제왕과 만백성의 스승 공자님! 공자님의 아버지가 그 당시 너무 나이가 많아 음양오행론에 비추어 볼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난것으로도 생각되어 생물학적인 야합으로도 서술된 기록도 있으나 성인임금이시자 위대한 스승이라는 존경을 더 중요시하며 객관적으로 기록. 인류는 남자가 경제력이나 능력이 있으면, 어린여자를 얻어 종족을 보존하려는 하느님이 부여하신 신성한 마음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될게 전혀 없습니다. 공자님 어머니 안징재는 숙량흘의 동료 무사이자 친구였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 같은 士계급끼리의 결혼.그리고 중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서자차별이 없었습니다. 한국과는 개념이 달라왔습니다. 왕의 경우 그 자손은 누구나 왕족이었는데, 양반의 경우 고려시대와 달리 서자가 적자보다 상당히 차별을 받는게 조선시대 초기이후의 풍속이었습니다. 한국도 갑오개혁이후로는 서자차별이 없어졌고, 해방이후에는 더더욱 법률적으로 서자차별이 없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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