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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1일 04시 19분 등록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2000

 

 

■ 저자에 대하여

 

 그는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이다. 1986년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철학을 담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출간하면서 미국인들의 글씨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 책은 백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면서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었고, 글쓰기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새로운 바이블이 되었다. 아마도 전 세계인들의 글쓰기 붐을 일으킨 주인공일 것이다. 출간된 후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독자들의 열기는 식지 않아서 아직도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를 점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몰라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때로는 강철처럼 단단하게 때로는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등을 두드리며머뭇거리지 말고 펜을 들라고 독려하는 글을 써왔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수업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으며, 이 책을 비롯한 여러 권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그녀의 집필과 강의, 명상 등 인생 전반에 대해 동행취재 하였으며, 2006년에는 밥 딜런의 생애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Tangled Up in Bob'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전 세계 14개 언어로 번역된《Writing Down the Bones》를 비롯하여《Old Friend From Far Away》《Banana Rose》등이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이 25년 간 이어온 선() 체험과 글쓰기를 접목시킨, 혁명적이고도 강력한 글쓰기 노하우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작법론이 아니라, 진정한 창조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를 일깨우는 데까지 이른다. 그녀가 말하는 창의력의 비밀은 글을 첨가하는 것이 아닌 덜어내기의 법칙이다. 글쓰기에 대한 이런 독특한 관점은 오랜 명상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 책을 통해 용맹한 전사처럼, 때로는 깊은 통찰력을 가진 현자처럼 삶과 글쓰기를 관통하는 어떤 진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 내 마음속에 무찔러 드는 글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4 나는 단순한 사실만 나열하거나 재미있는 일화나 적고 마는 작가로 끝나고 싶지는 않았다. 내 가족의 진실을 찾아 내어 작품으로 완성시키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5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용할 수 있는균형 잡힌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6 나에게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룰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것은 내 의도대로 조정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경건하게 라고 대답할 자리에서 아니야, 그건 그런 게 아니었어라고 답하며 끊임없는 걱정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서 더 앞으로 나갔어야만 했다. 이렇게 간단한 진실을 몰랐던 것이다.

 

13 내가 썼던 글 어디에도 나만의 생각이나 감정은 실려 있지 않았다. ‘선생님이 이런 걸 원할 것 같으니까 이렇게 써서 보여드려야지하는 생각뿐이었다.

 

15 이때가 내가 자신의 마음만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최초의 시기였다.

 

15 아뿔싸! 바로 요리에 대한 시였다. ‘아니,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맙소사! 이렇게 평범한 것이 시란 말인가? 내가 매일 하는 그런 일이 시라고? 그때 무언가가 나의 뇌신경망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16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네가 사랑을 믿을 때만이, 사랑이 네가 가야할 길을 이끌어 주는 법이지.” 나는 여기에 조금 덧붙이고 싶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주는 법이지.”

 

17 ‘자신이 마음을 믿고, 자신이 경험한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아무리 반복해도 싫증이 나지 않을 뿐더러 나 자신을 더욱 높은 이해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17 글쓰기를 배우는 길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18 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요구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여러분, 분명하고 아주 솔직하게 써야 해요라는 말만 던져 버린다면 그것은 선생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나는 학생들과 함께 여러 가지 방법의 글쓰기를 시도해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알게 된다. 교과서적인 진도에 따라 세 번째 시간에 이러이러한 것을 배우면, 여러분은 글을 잘 쓰게 될 거예요식으로 수업을 진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8 부디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여러분들이 이 책을 쓰임새 있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첫 마음, 종이와 연필

 

19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22 나는 감정적인 글을 쓸 때는, 적어도 처음에는 직접 손으로 쓴다. 손으로 쓰는 것이 심장의 운동과 더욱 가깝게 연결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긴 이야기를 쓸 때는 주저없이 타자기 앞에 앉는다.

 

24 ‘첫 생각과 만나서 거기서부터 글을 퍼낼 때 당신은 싸움에 나선 전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감정과 에너지의 힘에 질려 겁을 먹을지 모른다. 하지만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생각의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25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야만 저 반대편 심장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들라. 이것이 원칙이다.

 

25~26 글쓰기 원칙

1.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2.     편집할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3.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려고 애쓸 필요 없다.

4.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5.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6.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26 우리의 목표는 첫 생각에 불을 활활 붙여 주는 것, 사회적 체면 또는 내면의 검열관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에너지의 심장부에 도달하는 것, 피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보고 느끼는 것을 쓰는 것이다.

 

26 첫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제일 먼저 번쩍하고 빛을 낸 불씨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불씨는 대개 우리 내부의 검열관에 의해 진화되어 버린다.

 

27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식 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실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글을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없다. 글쓰기를 가로 막던 에고’(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논리적인 메커니즘)라는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 당신은 더 큰 조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7 첫 생각은 참신함 그리고 영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감이 오는 순간이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28 첫 생각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그 동안 겪은 감정과 사건과 정보가 밑바탕이 되어 발산되는 것이기에 엄청난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이것이 바로 첫 생각이 가진 에너지다.

 

28 “그 순간 이후로 온갖 빛깔들이 너무도 생생하고 힘차게 맥박치고 있어요.” 그러자 그녀의 스승이 말했다. “당신이 바로 지금, 현재에 존재할 때, 세상은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

 

멈추지 말고 써라

 

30 티베트 불교 승려인 초감 트룽파는 이런 말을 했다. “무서운 적을 만나게 되더라도 계속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겹겹이 쌓여 있는 마음의 층을 벗겨 내야만 합니다.”

 

30 “바로 이거야! 이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알아. 난 내 목소리를 믿어. 나는 위대한 소설을 쓰고 말 거야!” 이런 생각은 하지 말라.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은 좋다. 하지만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31 그들은 달리기를 위해 매일같이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한다.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글도 쓰면 쓸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31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설 자리가 없어진다.

 

32 글을 쓸 때 나는 시를 쓰고 있어라는 식으로 자신을 제한시키지 말라. 이렇게 자신을 제한 하는 순간 당신은 경직되고 얼어붙는다. 책상을 마주했을 때는 최소한의 제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만 하자. 그저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33 다시 말해 달리는 사람과 자신이 분리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마약 당신의 모든 것이 진정으로 글쓰기에 달려 있다면 거기에는 글을 쓰는 사람도 없고,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생각도 없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글 쓰는 행위만이 글을 쓰고 있게 된다.

 

33 글쓰기 훈련은 당신의 인생 전체를 끌어안을 것이다.

 

34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36 헤밍웨이는 그의 작품 <움직이는 사육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파리에서 미시간 이야기를 썼듯 어쩌면 나는 파리를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진짜 파리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파리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리를 떠난 후에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36 우리의 지각 능력이나 판단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각과 판단력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를 거쳐서 나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을 퇴비를 섞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인생이 남긴 쓰레기더미는 자꾸 쌓여 간다 우리는 그 안에서 특정한 경험들만을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버린 것들을 섞여서 새로운 경험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계란 껍질, 시금치 이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그리고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

 

36 이 비옥한 토양은 우리의 시와 이야기를 꽃 피워 주는 자원이다. 하지만 비옥한 토양은 단시일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월이 필요하다. 유기적으로 이어진 인생의 모든 세부 항목들을 계속 뒤집고 또 뒤집어서 쓸데없는 찌꺼기들을 걸러 내야만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36 똑같은 시간을 주었음에도 남보다 많은 분량의 글을 써내는 학생을 보면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긴 글이라고 해서 우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개 그런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의 재료로서 탐색하고 있는 게 보인다. 이런 학생들이야말로 그저 나도 글을 써 보겠다는 소망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훈련 과정을 충실히 거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37 그들은 고무래로 흙을 파내듯 자신의 마음을 자꾸 써레질해주고, 얕은 개울 같은 생각을 자꾸 뒤집어 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힘든 일이지만, 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 처음에는 낯설고 힘든 일이지만, 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고 해서 신경증적인 위험에 빠진다고 염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는 자기 내면의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그 풍요의 정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37 12월에 접어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제과점인 크로아상 익스프레스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내 앞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장시(長詩) 한 편이 놓여 있었다. 내가 말해야만 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하나의 통일된 실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퇴비에서 한 송이 붉은 튤립이 피어난 순간이었다.

 

38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당신의 작은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하게 만드는 건 위대한 결정자입니다. 당신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 당신 배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 즉 새, 나무, 하늘, , 그 밖의 무수한 생명의 흐름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만 위대한 결정자가 당신을 도와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38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료를 마련해 놓은 다음, 갑자기 당신은 한 순간 별과, 또는 당신 머리 위에 걸려 있는 거실 샹들리에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연대가 이루어지면 당신의 몸이 열리게 되고, 이제는 그 몸이 말을 하게 된다.

 

38 글쓰기에 이런 과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모든 불안을 잠재우고 인내심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경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심지어 자기가 쓰는 글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38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결코 편하게 앉아서 사탕이나 먹으며 살겠다는 핑계거리로 삼지 말라. 우리는 계속해서 비료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비료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우리의 근육이 되어 준다면 우리는 위대한 우주의 조류를 타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39 우리는 현세에서 그 때를 만날 수도 있고, 죽은 후에야 찾아올 수도 있다. 빠르고 늦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계속 써라.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42 나는 내 인생의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나를 지탱하고 키워주고 있다는 믿음만은 늘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나만의 길이 하나 있을 거라는 신념은 놓치지 않았다.

 

42~43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이 노트를 통해 내가 진보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안다. 이 노트는 한 인간의 존재 증명이다.”

 이처럼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습작을 위한 글감 노트 만들기

 

47 다음은 내가 제안하는, 글감 노트를 만들고 활용하는 방법들이다.

1.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성질에 대해 써 보자. 어떻게 쓸까 겁내지 말고 용기있게 무작정 뛰어 들라. 글을 쓰는 시각이 밤이건 낮이건, 또는 방에 커튼이 쳐져 있건 아니건 그런 것에 개의치 말라.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써 내려가라. 10, 15, 30, 시간을 정해 놓고 멈추지 말고 계속 적어 가라.

2.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어 본다. 그러다가 중요한 기억이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면, 바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간다. 멈추지 말라. 계속 적어라. 그 기억이 5분 전에 일어났던 일이건 5년 전 일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당신이 쓰는 행위를 통해 기억으로 다시 살아나게 만들라. 만약 막히면, 다시 기억이 난다라는 첫 구절로 돌아가 계속 적어보라.

3.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주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골라서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글을 써보자.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처럼 생각을 확장시켜야 한다. 다음에는 같은 것을 두고 싫어하는 시각으로 글을 적어보라. 이어서 끝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관계에서 새롭게 글을 써 보자. 

4.     한 가지 색, 예를 들면 분홍색만을 생각하며 15분 동안 산책해 보자. 산책하는 동안 주변의 자연과 사물에서 분홍색을 발견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자. 그리고 이제 노트를 펼치고 그 경험에 대해 15분 동안 적어보라.

5.     오늘 아침 당신의 모습을 적어 보라. 아침 식사로 뭘 먹었는지. 잠에서 깨어날 대 기분이 어땠는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무엇을 보았는지 등등 가능한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긴장을 풀고 당신의 아침을 구성했던 모든 세부 사항을 하나씩 묘사해 보는 것이다.

6.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라. 지금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 그런 다음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을 글로 담는다. 당신의 방 한 구석일 수도 있고, 여름 내내 앉아 쉬던 나무 그루터기일 수도 있고, 동네 맥도날드 가게 식탁일 수도 있다. 그 곳은 주로 어떤 색으로 채워져 있는가?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가? 또 어떤 냄새가 나는가? 읽는 사람이 마치 그 장소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도록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그 장소를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표현 때문이 아니라, 글에 나타나 세부 묘사를 통해 당신이 그 장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해 주어야 한다.

7.     떠남에 대해 써 보자. 내용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이 없으며 단지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혼, 외출, 전학, 실종, 친구의 죽음……, 어떤 것이든 떠남을 위한 소재가 된다.

8.     어린 시설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9.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10.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써 보라.

11.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묘사해 보라.

12.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적어 보라.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은 금물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상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 수영하기

. 하늘에 떠 있는 별

. 당신이 경험했던 가장 무서웠던 일

. 초록빛으로 기억되는 장소

. ()에 대한 의식이 생기게 된 동기 혹은 최초의 성 경험

. 신의 존재나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개인적 체험

.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나 문구

. 육체가 가진 한계와 극복

. 당신이 스승으로 섬기는 인물

13.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아무 쪽이나 펼쳐 마음에 드는 한 줄을 골라 적은 다음, 거기서부터 계속 이어서 글을 써 보자. 골라 낸 구절이 명문이라며, 당신은 이미 무척 높은 수준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므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쓰다가 막히면 첫 줄을 다시 적은 다음 새로 이어서 쓴다. 다시 쓰는 글을 좀 전에 썼던 글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써 본다.

14.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줄무늬 다람쥐인가, 여우인가, 혹은 땅 밑에 사는 두더쥐인가?

 

 이런 요령으로 지금 당장 자신만의 글감 노트를 정리하고 활용해보라. 글쓰기 훈련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53 선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열등감과 자책감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을 학대하는 싸움은 하지 말라.

 

53. 예전에 글이 잘 써지지 않았을 때 나 자신을 달래던 방법들이다.

 1. 한 동안 글 한 줄도 쓰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일주일 후 작품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친구에게 보여 줄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 것이다.

 2. 나는 아침에 일어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아, 나탈리, 너는 오전 10시 전까지는 마음대로 해. 하지만 10시 이후부터는 반드시 펜을 잡고 있어야만 해.”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있을 시간과 장소를 할당하고 제한을 두었다.

 3. 아침에 일어나며,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어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곧장 책상으로 달려가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해버린 것이다.

 4. 작문 교사 일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글을 쓴다는 일은 정말 귀찮아진다. 그런데 집에서 세 구역 떨어진 곳에 직접 구운 맛있는 초코칩 쿠키를 파는 제과점이 있었다. 손님용 식탁도 마련된 이 제과점 주인은 손님이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어도 아무런 눈치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 한 시간쯤 지나면 이렇게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나탈리, 지금 그 크로와상 가게로 가서 딱 한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거야. 그 동안 너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초코칩 쿠키를 두 개는 먹을 수 있잖아.”

맛있는 초코칩 쿠키에 매우 약한 나는 대개 15분 안에 집을 나섰다.    

 5. 나는 한 달에 노트 한 권 정도는 채우려고 애를 쓴다. 글의 질은 따지지 않고 순전히 양만으로 내 직무를 판단한다.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이 명문이든 쓰레기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노트 한 권을 채우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25일 되었을 때 노트가 다섯 장 밖에 채워져 있지 않다면 나는 나머지 5일 동안 전력을 다해 나머지 노트를 꽉 채우고야 만다.

 

편집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57 “당신은 진부해!” 라는 말을, 멀리서 바람에 날리는 흰 빨래 정도로 여기라. 결국 그 빨래는 마를 것이고, 아주 멀리 있는 누군가가 그것을 개서 집으로 가져갈 것이다. 그 동안 당신은 글을 쓰며 그만이다.

 

눈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61 “아이들 책상 밑을 한번 보세요. 바닥이 온통 신발에서 묻어온 흙 때문에 아주 지저분하죠. 정말 좋은 신호예요. 봄이 왔다는 신호니까요.”

 

62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그런 다음 그 속으로 파고들어라.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

 정보가 부족해서 자신이 쓴 글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말라. 내가 엘크톤을 둘러싼 들판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은 그곳의 지리학적인 정보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 들판 속으로 영원히 산책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었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64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당신이 훌륭한 대가를 열 사람이나 만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

 

65 시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맥박이 뛰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언어로 된 생명체다.

 

65 시에 머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갈. 작품 자체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시 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

 

66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66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읽을 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

 

67 스스로 속지 않도록 경계하라. 시시각각 우리는 변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변한다는 사실. 이것처럼 좋은 기회도 없다. 우리는 한 순간에 얼어붙어 있던 자신과 자신의 이상으로부터 빠져 나와 신선하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글 쓰기이다. 글 쓰기는 우리를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67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68 당신은 좋은 시를 쓰고, 그 시에서 떠나라. 당신이 쓴 시를 세상 사람들이 읽게 만들고, 당신은 계속 또 다른 시를 쓰는 것이다.

 

68 그는 지난 6년 동안 매번 똑 같은 시를 낭송하고 다녔기 때문에 아주 염증을 내고 있었다. 그가 쓴 다른 시에서는 이제 더 이상 열정이나 긴장감이 없었고 뜨겁던 시정(詩情)도 보이지 않았다.

 

68 진짜 인생은 글 쓰는 행위에 있는 것이지 같은 작품을 몇 년 동안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것에 있지 않다.

 

68~69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꿈을 꾸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만고불변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 시 한 줄 속에 처박혀 있어도 영원히 만족할 수 있는 영구불변의 진실이란 없다.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과 자신을 지나치게 일치시켜서는 안 된다.

 

69 당신은 또 다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잡아내 글로 옮길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

 

사고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려라

 

71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로 글쓰기에 임해야 한다. “?”라고 끊임없이 묻거나 옷을 고를 때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엄청난 에너지를 종이 위에 쏟아붓도록 해야 하다. ‘이건 글을 쓰기에 좋고, 저것은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써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71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동차를 먹는 사람을 창조해 낼 정도로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만이 개미를 코끼리로 만들고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사람만이 각각의 분리되어 있는 형태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형태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공통된 무언가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72 당신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 개미와 코끼리가 하나라고 믿지 못하면서 그런 글을 쓴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당신의 글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감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73 먼저, 은유를 위한 은유를 하지 말라. 무언가를 은유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평소의 사고 방식에서 한발 물러서서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계속 기록해보라. 이런 연습은 사고를 부드럽게 해 줄 뿐 아니라 창조력을 키워 준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된다. 마음이란 순식간에 위대한 도약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73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은유는 이러한 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종교적이다. 개미와 코끼리 사이에는 어떤 구별도, 분리됨도 없다. 은유의 세계에서는, 안개 낀 저녁에 가로등이 켜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게 된다.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75 그 까닭은 종이 위에 자신의 감정을 풀어 내기도 전에 세상을 향해 어떤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앞질러 나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생각들은 글 쓰는 이를 경직시켜 자유로운 창작을 방해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당신의 감정들을 밖으로 표출되고 싶어한다. 그것이 당신 생각에 방해받기 전에, 솟아나는 감정들을 일단 종이 위에 표현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대로 글을 조절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그때그때 솟아 나오는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가라.

 

75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절대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대로 연출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글쓰기가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당신이 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다가가도록 한다.

 

77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슬로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 가고 있으며, 시작 단계에 있는 당신은 그 음식이 구이가 될지, 바비큐가 될지, 국이 될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강박관념을 탐구하라

 

78 작가란 결국 자신의 강박관념에 대해 쓰게 되어 있다. 자주 출몰해서 괴롭히는 것, 절대 잊을 수 없는 것, 자신의 육체가 풀려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이야기로 엮는다.

 

78 나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괴롭히는 요소들을 적게 한다. 깨어 있는 동안 각자의 강박적 요소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그리고 의식적으로) 얼마나 생각하는지 확인시키기 위해서다.

 

79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당신이 글을 쓸 때마다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 이 강박증의 변두리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낼 수 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번에는 당신을 괴롭히던 강박증에 일부러 에너지를 쏟아 부어보라. 이제 우리는 강박증이 자신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79 내가 가지는 강박증 가운데 하나는 내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다. 어찌나 강박증이 심한지 유태인에 대한 글은 이 정도 썼으면 뙜다고 스스로를 달래야 할 때가 있다. 세상에는 다른 쓸거리들도 얼마든지 많지 않은가. 하지만 가족에 대해서 쓰지 않겠다고 결심할 때마다 나는 또 다른 억압감에 시달린다.

 

80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강박 충동의 조정을 받는다. 강박증은 엄청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 힘ㅇ르 거부하지 말고 이용하라. 글쟁이 친구들 대부분이 글 쓰는 일에 대해 강박증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글에 대한 강박증도 초콜릿에 대한 내 강박증과 똑같이 작용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람들이다.

 

80 카티기리 선사는 말햇다.

가련한 예술가들이여! 그들은 너무나 큰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걸작을 만들어도 결코 만족하지 않죠. 계속 길을 떠나 좀더 다른 것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니까요.”

 

81 예술가로 살기란 절대 쉽지 않다. 예술가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절대 그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예술 작업에 얽매이고 창작에 대한 강박증에 빠지는 것이 술을 마시거나 초콜릿으로 배를 채우는 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81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은 직접 글을 써서 풀어내야 한다. 쓸데없이 술에 취하는 엉뚱한 방식으로 풀려고 하지 말라.

 

세부 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82 “, 아냐, 그 술집을 롱아일랜드에 있었지. 그러니까 뉴저지에 있는 술집으로 변경해서는 안 돼!” 이런 식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상상력의 힘을 빌어 이것을 얼마든지 변경시킬 수 있다. 변경된 상황에다 당신이 실제로 알고 있거나 보았던 것을 세밀하게 묘사해서 이식을 한다면, 그 글에 뛰어난 생동감이 생기며 개연성과 진실성이 배어나게 된다.

 

83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항상 깨어 있는 눈으로 관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너무 인위적으로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래, 나는 결혼식 피로연에 와 있어. 신부는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신랑은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고 있군. 그들은 다진 간요리를 손님들에게 나눠 주고 있어.”

그것보다는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열어 놓고 결혼식을 즐겨라. 당신이 주변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당신이 글을 쓸 때 정말 살아 숨쉬는 듯한 생생한 기억들을 불러낼 수 있다. 웃을 때마다 빨간 립스틱이 묻은 앞니가 보이던 신부 어머니의 모습과 신부의 드레스 자락에서 폴폴 풍기던 향수 냄새까지 전부 당신의 글 속으로 불러 낼 수 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86 세부 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과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 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고, 기억하는 일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가 부둥켜 안아야 할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

 

86 바깥에는 회색빛 찬바람이 불고 잇고, 쇼윈도 안에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번쩍거리며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카페의 오랜지 색 테이블에는 흑인의 아기를 낳아 키우는 금발의 친구와 마주 앉아 있는 나, 표준보다 과체중인 유태인 작가가 있다. 작가의 임무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라고 긍정하는 것이다.

 

케이크를 구우려면

 

88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도 이것과 똑같다. 당신이 소설 한 권을 채울 만한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부룩클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생존해 있고 나는 여자다.” 여기에 당신 마음에서 나오는 열과 에너지를 첨가시켜야 한다.

 

88 아버지는 그냥 단순한 아버지가 아니다. 바로 당신만의 아버지여야 한다. 줄담배를 피우고 스테이크를 먹을 때 지나치게 케첩을 많이 치는 아버지, 당신이 사랑하고 또 증오하는 아버지다. 단지 재료를 섞기만 한 반죽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다. 사랑과 증오라는 감정의 에너지를 가해 세부를 채워 나가야 한다. 하나의 숨 쉬는 생명체로 창조해야 한다.

 

88 삶의 모든 세부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그 강이 탁한 황토 빛으로 둔하게 흐른다고 적는다면 당신의 몸이 그 탁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글쓰기에 깊이 빠져들면 쓰는 사람과 글은 분리되지 않는다.

 

88 “좌선을 할 때 당신은 사라져야만 한다. 좌선이 좌선을 하도록 만들어라.”

이것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당신은 그저 당신 속에서 흐르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내고 있을 뿐이다.

 

89 , 당신이 만약 글을 쓰는 중간중간 자주 시계를 보는 사람이라면, “나는 공책 다섯 장이 다 채워질 때까지, 즉 케이크가 완전히 구워질 때까지 계속 글을 쓰겠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열을 가하다 중단한다면 그것은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89 가끔 이런 이들도 있다. 아무런 재료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열만 믿고 케이크를 구우려는 이들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아무도 그 결과물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세부 묘사가 빠진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대개 이런 허점이 발견된다. 분명히 아주 웅장한 생각과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쓴 글이지만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다.

 

89 그러나 세부 묘사를 사용하면 당신이 느끼는 환희나 슬픔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전달하려면 감정이 어떤 맛인지 정확하게 표현해 준다면, 그것을 맛보고 싶어 하는 미식가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90 “아주 맛있어요. 일품이야!”라는 말에는 에너지가 없다. 어떻게 대단한 것인가? 독자에게 그 대단함의 냄새를 맡게 하라. 바꿔 말해서 세부 묘사를 이용하라. 세부 묘사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다.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

 

91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먼저 첫 번째 인생이 있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는 그런 생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의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다시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다. 이들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모습을 면밀하게 음미한다. 삶을 이루고 재질과 세부 사항을 들여다 본다.

 

92 결국 당신은 돈을 버는 일보다 글을 쓰기 위해 바보가 되는 것도 무릅쓰는 글쟁이의 인생에 더 많이 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들은 결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글을 쓸 시간이 많을 때 나는 아주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반대로 시간에 쫓겨 정작 자신이 원하는 일도 못하고 잇는데 세금고지서가 날아오면 그야말로 거지가 된 기분이다.

 

92 월급쟁이들은 시간과 돈을 맞바꿔, 일한 시간에 대한 보수를 받는다. 그러나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지키고 있으며, 그 시간의 중요성과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벌지 않는다. 이들에게 시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 찾아와 그 땅을 팔라고 하면, 제정신이 있는 작가라면 결코 그 땅을 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땅을 팔면 자동차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게 되면 조용히 안식을 하고 꿈을 꾸는 데 필요한 장소는 사라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92~93 그러므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조금 어수룩한 바보가 되어도 괜찮다. 당신 속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느림보가 들어있다. 그 느림보가 당신이 모든 것을 팔아버리지 모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당신에게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이마에 주룩주룩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며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응시하게 만든다.

 

글쓰기는 육체적인 노동이다

 

95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보라. 작가가 영감을 받고 글을 써 내려가던 순간의 호흡이 생생히 느껴질 것이다.

 

95~96 만약 시인이 배열한 운율 그대로 시를 낭송한다면, 당신은 셸리가 그 시를 썼었던 바로 그

순간, 영감을 받았을 당시의 숨결을 그대로 호흡할 수 있게 된다. 그의 호흡은 너무도 강력해서 150년 지난 오늘날 그 시를 읽는 우리에게도 영감의 전율을 안겨 준다. 그의 호흡을 따라가 보면 어느새 새로운 기운이 넘쳐난다.

 

96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불후의 명작을 완성시키고 싶다면 위스키를 마셔서는 안 된다. 대신에 세익스피어와 테니슨, 기이츠, 네루다, 홉킨스, 밀레이, 휘트먼….. 이들의 글을 소리내어 읽고 또 읽어 당신 몸을 그들의 운율에 맞춰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

 

98 글쓰기 역시 90퍼센트는 듣기에 달려 잇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을 채우고 잇는 내면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자연히 나중에 글을 쓸 때, 당신은 그 내면의 소리를 저절로 분출시킬 수 있게 된다. 내면의 진실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글쓰기에는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없다. 당신은 그저 식탁 건너 편에서 당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곳의 분위기가 내는 소리와 의자와 문이 말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문 너머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도.

 

99 계절이 만들어 내는 음향과 바람에 실려 오고 잇는 온갖 색상의 음향을 받아들여라. 과거와 미래와 현재 당신이 있는 곳에 귀를 열어 두어라. 귀로만 듣지 말고 온몸으로, 당신의 위장과 심장과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들어라.

 

99 듣는 것은 곧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더 깊이 들으려 하면 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아무런 편견 없이 사물이 가는 길을 받아들일 때 그 사물에 대한 진실한 글이 태어난다.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셈이다.

 

99 랍비가 되려는 학생들은 필기 없이 단지 강의를 듣고 수업 내용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처럼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사물의 진실을 읽는이의 마음에 각인시키는 임무를 띠고 있고, 따라서 마음에다 사물에 대한 기록을 해나가는 훈련이 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 “방금 읽거나 쓴 글을 기억해 내서 가능한 한 가장 근접하게 표현해 보세요. 어떤 것이든간에 여러분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것을 기억해 내세요. 제발 그녀가 농장에 대해서 말한 분분이 마음에 들었어요라는 식으로는 말하지 말아요. 그보다 훨씬 상세하게 어떤 것인지 알려 주세요. 예를 들면 들판에 서 있으면 나는 소보다 더 외롭다이렇게요.”

 

100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

100 작품 진행을 하고 있을 때 좋은 작품을 읽는 것은 글에 좋은 영향을 준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근원을 찾아가야 한다. 17세기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 시인인 바쇼는 나무를 알고 싶으면, 나무한테 가라고 말했다.

 

100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시를 읽고, 시를 들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시를 분석함으로써 시로부터 멀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그저 시가 당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게 하라.

 

101 위대한 선승인 도겐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읽고, 쓰라. 당신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조금씩 당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냥 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

 

102 이런 일은 작가가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빠져 버린 나머지 원래 하고자 하던 이야기의 방향을 망각하고 본래의 줄거리에서 멀어져 버렸을 때 일어난다.

 

102 이를테면 레스토랑 풍경을 묘사하려고 하는데 냅킨에 붙은 파리가 자꾸 신경을 건드린다. 그래서 글은 파리에 대한 자세한 묘사로 바뀐다. 파리의 등, 파리의 생각, 파리의 어릴 적 모습, 쇠그물창 사이로 날아가는데 필요한 비행법 등등….. 그러면 작품을 읽던 독자들은 방향을 잃게 된다. 졸음이 오거나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103 또한, 작가 스스로 글의 방향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글을 써 내려가거나, 다루고 있는 글의 소재에 밀착되어 있지 못한 경우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런 부분이 생기면 글의 초점이 흐려지고 결국에는 독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만든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윤곽이 흐릿해지면, 그 틈새로 독자들의 정신은 그 작품이 아닌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고 마는 것이다.

 

103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방황한다면, 독자 역시 방황하게 된다. 식탁 위의 파리는 레스토랑 전체를 묘사하는 일부분은 될 수 있다. 또 방금 주문해서 나온 샌드위치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잇다. 하지만 자세한 묘사와 제멋대로인 방종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다.

 

103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그 목표에 집중해 매달려야 한다. 만약 당신의 마음과 글이 목표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있다면, 원래 돌아가야 할 자리로 부드럽게 잡아당겨야 한다.

 

104 물론 독자들이 파리의 습성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되겠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레스토랑이며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맞은 편에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104 어빙 호훼는 <유태계 미국인 이야기>의 머리말에서 최고의 작품은 감상적인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감상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파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원한다면 파리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파리와 결혼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106 ‘내가 멋지다고 말해 줘요라고 했던 말 뒤에 있는 추한 내 모습을 본 것이다.

작가인 우리는 늘 의지할 것을 찾아다닌다. 동료들로부터, 비평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안심하려 든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나 작품에 대해 보내는 타인의 칭찬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07 바로 지금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아침의 침묵,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하라. 그런 다음 마주 보고 있는 친구가 난 네 작품이 너무 사랑스러워하고 말하면 그 좋은 기분을 그저 간직하면 된다. 대지와 의자가 당신 몸을 쓰러지지 않게 받쳐 준다는 사실을 믿는 것처럼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어라.

 

108 우리는 정직한 지원과 격려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누군가 칭찬을 해 주면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비평하는 소리를 들으면,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결국 자신은 별볼일 없고 진짜 작가도 못 된다는 쓸데없는 믿음만 키워가려 한다.

 

109 그만! 누군가 당신을 칭찬해 준다면, 정말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그런 일이 익숙하지 않고 계면쩍더라도 계속 숨을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것이 이렇게도 좋다는 것을 반드시 느껴 보아야 한다. 작가가 되려면, 자신을 향한 긍정적이고 솔직한 자세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여유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니까.

 

꿈에 대해 써라

 

112 하지만 강박증이 유령처럼 달라붙듯, 우리의 꿈도 계속 앞에서 어른거리는 성질이 있는가 보다. 나는 결국 꿈에 이끌렷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지닌 꿈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향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꿈에 의해 언젠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게 틀린 말이라면 우리는 꿈과 함께 영원히 상상 속을 표류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문장 구조에서 벗어나 사유하라

 

114 우리는 호모사피엔스라는 지나친 우월감에 빠져 있다.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게도 인간 못지 않게 중요한 그들만의 삶이 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117 글쓰기에 관련된 오래된 속담이 하나 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이를 테면 분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무엇이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보여 주라는 뜻이다. 당신 글을 읽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글을 쓰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의 모습을 그냥 보여 주라는 말이다.

 

117 글쓰기는 심리학 논문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에 대해서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마음을 슬픔과 기쁨의 골짜기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119 그렇다. 나는 이야기 바깥에 있었고, 그래서 어느 누구도 이야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이 말은,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은 절대 쓸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 이야기에 당신만의 숨결을 불어넣었는지 확인하라는 뜻이다.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냥 이라고 말하지 말라

 

120 사물에도 인간과 똑같이 이름이 있다. ‘창가의 꽃이 아니라 창가의 제라늄으로 묘사하는 편이 훨씬 좋다. ‘제라늄이라는 단어 하나가 훨씬 구체적이고 생생한 영상을 만들어 내고, 우리가 그 꽃의 존재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게 도와 준다. ‘창가의 제라늄이라는 단어를 읽자마자 우리는 창문 옆의 정경을 눈에 보이듯 그리게 된다. 새빨간 꽃잎, 원형의 초록 잎사귀, 햇빛을 향해 온몸을 세우는 꽃….

 

121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 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를 걷다가, 내가 아는 식물들인 산딸나무나 개나리를 보면 그 장소에 더 나은 친근감을 느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 줄 때 느끼는 기분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명쾌한 증명인 것이다.

 

121 우리들 코앞에 있는 것을 세상에 알려주는 일,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그냥 데이지 꽃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쳐다보고 있는 그 데이지 꽃을 말해야 한다. 꽃의 이름은 물론이고, 어떤 계절의 어느 날인지, 나아가 어느 순간인지까지도 느껴지도록 말해야 한다.

 

122 사람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같이 글쓰기 수업을 받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능한 한 빨리 알아 두라. 그러면 자신이 속해 있는 모임의 성격을 빨리 파악하게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작품 토론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122 사물들 속으로 파고들라. , , 치즈, 트랙터, 자동차, 비행기…... 이 모든 것의 이름을 배우라. 작가는 건축가이자 프랑스 요리사이며, 농부여야 한다. 그리고 동시네, 작가는 이런 것 중 어느 것도 아니어야 한다.

 

몰입하기

 

124 그렇다고 절대 근시안적인 묘사에만 매달려서도 안 된다. 글쓰기에 전념하는 동시에 당신의 의식 한 부분은 하늘색이 어떠한지, 멀리서 윙윙거리는 제초기가 잇다는 사실 정도는 인식할 수 있게 남겨 두어야 한다. 숟가락을 조각하고 있는 그 순간,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에 대해서 단 한 줄이라도 언급해 보라. 이것은 좋은 훈련이 될 것이다.

 

125 이렇게 느린 동작을 하다 보면 사소한 발걸음 하나하나도 온몸과 연결되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공기와 창문, 햇빛의 존재도 느끼게 된다. 만약 바닥이 없다면, 하늘이 없다면, 생명의 원천인 물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관통하고 있다. 계절조차도 우리의 걸음을 지탱하게 해 준다.

 

125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 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평범과 비범은 공존하다

 

127 우리는 세부 묘사를 개미나 파리 같은 것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세부 묘사라는 훌륭한 방법을 우리 스스로 작은 것에만 한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부묘사가, 마음이 우주만큼이나 큰 왕국이라는 것을 표현하거나 뉴멕시코의 높은 언덕들을 나타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거대한 크기를 가진 것과 현실을 벗어난 환상적인 것에도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127 우리는 세부 묘사를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한정시키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글쓰기의 기본이 되는 대상을 단순히 대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 눈에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자연 환경도 오랜 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왔던 호피족 인디언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풍경일 뿐이다. 그들은 매일 눈을 뜸과 동시에 거대한 바위 언덕을 보고 살아왔다.

 

127 기본 정보만을 다룬 묘사는 그 안에 든 비범함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서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기 위해 호피 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곳의 장관을 보고 잇다. 또 뱀춤은 호피 족 사람들에게 아주 깊은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그저 살아 있는 동안 치러지는 연중 행사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세상 사람들이 그렇듯이 뱀춤이 끝나면 인디언들은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저녁을 대접한다.

 

128 만약 우리가 호피 족의 삶과 축제만이 환상적이고 우리의 삶은 평범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글은 무언가가 결핍된 아주 건조한 것이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평범함과 비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열릴 때도 있고 닫힐 때도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세부 묘사는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다라는 식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세부 묘사의 본질이다.

 

128 뱀춤은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세부 동작으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그럴 많나 이유가 있다. 호피 족 사람들은 뱀을 입에 물고 있어야 하니까.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너무도 새롭고 이질적인 광경 때문에 이 사살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환상적으로만 느낀다. 하지만 이 춤 역시 인디언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백 년 동안 반복되어 온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이기도 하다.

 

128 이 사실을 쓰기 위해 우리는 춤을 추는 사람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 눈앞에서 평범함과 비범함이 동시에 불꽃처럼 피어오르게 해야 한다. 모든 사물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깊이 들어가야만 한다. 그 다음에는 세부 묘사가 독자의 눈앞에 그러한 현실을 창조할 것이다.

 

129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 지구를 위해, 텍사스를 위해, 지난 밤 우리의 끼니를 위해 생명을 바친 병아리를 위해, 각자의 어머니를 위해, 고속도로와 나무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친절하게 대할 책임이 있다. 먼저 자신에게 친절할 때에만 세상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130 “찻잔 하나에도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찻잔 또는 바위 언덕, 하늘이나 개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때 그 대상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 대상들에게 선의의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고, 글쓰기를 통해 초월적인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이야기 친구를 만들라

 

131 마음에 맞는 친구에게 당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 알부퀘르크에서 지냈던 시절에 대해서, 친구 케이트와 함께 뉴멕시코 주 아로요 세코에 있는 닭장에서 좌선을 했을 때의 모습에 대해서, 어머니가 매일 아침 코티지 치즈와 토스트를 먹던 모습에 대해서 툭 터놓고 말해보는 것이다.

 

131 친구가 열심히 귀를 기울이게 되면, 당신은 그 이야기에 색을 입히고 싶어질 것이다. 과장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악의가 없는 기가 막힌 거짓말을 보태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진짜 친구라면, 당신이 10년 전 이야기를 조금 각색을 해도 일일이 따지지 않을 것이다.

 

132 “네가 지난 달에 들었던 가장 재미있는 소문이 뭔지 알려줘.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면 꾸며서라도 말해봐.” 뉴욕에 살고 있는 단편 작가 그레이스 팔레이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이야기꾼은 이런 방식으로 인생을 배워 나간다.”

 

132 우리가 글쓰는 방법을 배우는 이유는 누군가를 심판하거나 탐욕과 질투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경탄하고 애착을 가지기 위해서다.

 

133 일상생활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작가들은 새로운 글감을 찾아낸다. 한번은 친구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미쳐 있어.” 그 즈음 미스터리 소설을 쓰던 친구는 당장 이렇게 되물었다. “그 남자가 그여자에게 어떻게 미쳐 있던데? 그가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줘.”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작가는 일반적인 묘사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작가는 어떤 사건에 대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기를 원한다.

 

133 내 친구 개인에게는 정말 비극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정말 멋진 이야깃거리라고 말했다. 친구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글쓰기의 재료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133 말하기는 혼자서 펜과 종이만을 상대로 보내야 하는 길고 긴 창작의 시간에 앞서 하는 준비운동이다. 당신이 수없이 누군가에게 말했던 이야기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그것으로 글쓰기의 많은 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다.

 

작가는 위대한 애인이다.

 

135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늘 자신이 누군가를 모방하려 들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살려 내지 못한다는 걱정을 한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136 글쓰기는 공동체의 산물이다. 일반인들의 믿음과는 정반대로 작가는 절대 불을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고 있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은 완전히 혼자만의 고유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면, 나는 솔직히 아주 화가 난다.

 

136 우리는 앞서 있었던 모든 작가들의 짐을 나르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역사, 이념 그리고 대중 문화 모두를 끌어안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글쓰기 안에 용해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136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수시로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글 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게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일고 또 읽는다.

 

136 자신에게 빠져 나와 다른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는 뜻이다.

 

136 다른 작가가 쓴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것으로 변해 가면, 당신은 글을 쓸 때 그것들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연인들은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137 글쓰기는 다른 작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절대 질투심이 자리 잡아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군가가 대단한 작품을 썼다면,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을 좀더 명료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당신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137 다른 작가들을 나와 분리된존재로 여기지 말라. “그들은 훌륭한데, 나는 형편없어식의 이분법적인 생각도 하지 말라.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의 작품은 좋아지기 힘들다.

 

137 그러므로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라고 말하자. 이 말은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니까 나는 잠시 그들의 경로를 따라 가면서 배우면 돼.” 얼마나 솔직하고 마음 편한 고백인가.

 

137 그러므로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라고 말하자. 이 말은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니까 나는 잠시 그들의 경로를 따라 가면서 배우면 돼.” 얼마나 마음 편한 고백인가.

 

137 다른 작가들과 동지가 되어라. 마음 속에 있는 진실의 한 부분만을 찾아내기 위해 세상을 버리고 자신에게만 틀어박힌 존재가 되는 것보다, 자신을 통해 많은 목소리를 반영시키는 작가들과 동지감을 느끼는 것이 더 낫다.

 

137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어 두 팔로 세계 전체를 담는 글을 써야 한다. 거친 황야에서 홀로 떨어져 글을 쓸 때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같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만이 이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은 자기 본위에서 나온 우월감일 뿐이다.

 

138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함께 도움을 주고받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아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언제까지나 자신만을 의지하고 밀고 나가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서로에 대해서 알아두고,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고 조언한다. 작품을 자신만의 습작노트에 사장시키지 말라. 바깥으로 꺼내 놓아라.

 

138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럽다. 자신만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이유는 없다.

 

현상을 넘어 사물 속으로 파고들라

 

139 나는 학생들에게, 특히 세상 이치에 빠르게 눈을 뜨기 시작하는 6학년 학생들에게 ‘1+1=2’ 라는 논리적 생각을 뒤집으라고 말한다. 1 더하기 1 48이 될 수도 있고, 벤츠 승용차나 애플파이 그리고 푸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을 진정으로 받아들여라.

 

139 자서전을 쓸 때도 엄연한 사실들만 열거해서는 안 된다. “나는 6학년이다. 나는 소년이다. 나는 오와토나에 살고 있다. 나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다.” 이런 글이 아니라 진짜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해주라. “나는 창문에 낀 서리이며, 젊은 늑대의 울부짖음이며, 가느다란 풀잎입니다.” 이것이 훨씬 더 진실하게 들리지 않는가.

 

140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다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 안으로, 거리 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수수 밭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

 

140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초조함에서 벗어나 환희에 도달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온전히 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140 그런 다음 우리는 다시 지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위대한 비전을 갖춘 작품만이 남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또 다시 책 속으로(물론 좋은 책 속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140 그러니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지 발겨 주는 작품을 읽고 또 읽어라.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키우고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거듭 체험하게 된다.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141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도 당신은 작가다. 당신이 작가라는 사실은 언제 어디서든 떨쳐버릴 수 없다. 이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 주변의 모든 것을 사냥해 보자. 동물처럼 자신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야 한다.

 

142 카타기리 선사는 말한다. “당신은 지금이라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바쁘거나 두려움에 빠져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항상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142 작가로서 우리가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든 모습들 거리의 간판, 모퉁이, 소화전, 신문 가판대를 보고 듣고 감지해서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142 어떤 글을 쓰겠다고 게획했을 때 동물처럼 행동해보자.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동물처럼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들을 하나씩 비축해 두자. 어떤 방법이든지 상관없다. 일상의 찌꺼기에서 발굴해내든지, 도서관을 찾아가든지, 정신의 정원으로 나가든지 마음대로 하라.

 

143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 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의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

 

143 손을 멈추지 말고 모든 것을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멈추지 말라. 망설이지 말라. 백일몽을 꾸지 말라. 제한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쓰라.

 

144 나는 내일 다시 글쓰기로 돌아갈 수 있으며, 한 마리 동물이 되어 거리를 쏘다니고 있는 지금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다고,

 

자신을 믿어라

 

145 여성들이 자신이 했던 말에 인증이나 확인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베트남 전쟁은 끔찍해. 그렇지 않아?”라거나, “난 이게 좋은데, 언 요하는 느낌이 들어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지적된 것은 어쩌면, 아무도, 아무튼같은 부정형의 수식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래, 갈게어쩌면 갈지도 몰라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선명한가?

 

146 “글쎄, 웃기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마 그것이 푸른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글은 곤란하다.”이것은 푸른 말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라.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146 비록 우리 인생이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닐지라도, 명확하게 인생을 표현해 보는 것이 좋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이 순간의 나다.”

 

147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질문 하나를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잘된 일이다. 하지만 즉시 더 깊은 단계로 내려가 바로 그 다음 줄에서 그 질문에 답을 해주어야 한다.

내가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건포도 빵 세 개를 먹고, 하늘색을 기억하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147 ‘혹시 내가 만든 질문에 답을 못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은 떨쳐버려라. 글쓰기는 안개에 사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이런 훈련은, 문장을 훨씬 힘차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

 

150~151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 한동안 나는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하얗게 텅 비어서 창문 밖만 멍하니 바라보면서 모든 것과 하나가 되고 싶은 사랑을 느낀적도 있었다. 글을 쓰는 대신 내내 이런 상태로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나의 의식이 점점 개화되고 있는 거야! 이것이 글쓰기보다 훨씬 중요하며, 또 글쓰기의 목적이 바로 이거 아니겠어!”

 

151 이유를 콕 꼬집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카페에서 작업하는 것은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카페의 번잡스러운 환경은 글을 쓰겠다는 충동을 감소시키는 커녕 중추신경을 계속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당신이 집중하고 있는 더 깊고 고요한 부분이 자유롭게 흘러나오도록 유도한다. 모차르트가 작곡을 할 때 아내에게 이야기 책을 읽게 한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155 선승들은 작가의 방은 곧 그 작가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공간이 남는 것이 두려워 모든 구석을 꽉꽉 채워 놓는다. 그것은 우리 마음이 공허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유와 드라마를 만들어 내려는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156 하지만 나는 글쓰기 공간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약간 지저분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은 공간을 볼 때 그 공간의 주인인 작가는 아주 비옥하고 힘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156 그녀에게는 모든 장소가 글을 쓰는 작업실인 셈이다.

 

,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158~159 카타기리 선사는 부부에 대해서 그들은 마주보고 걷는 사이가 아니라 나란히 옆에 서서 걸어가는 사이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제를 향해 접근해야 하는 방식이다. 즉 머리를, 바싹 쳐든 공경적인 태도가 아니라 비스듬히 서서 춤을 추는 것이어야 한다.

 

159 맞은 편 해안에 있는 목적지인 에로티시즘에 도달하려면, 천천히 옷을 벗어야 하며 끈기있게 강을 헤엄쳐 건너야 한다. 헤엄을 치면서 셔츠와 바지를 하나씩 벗기 시작한다면 맞은 편에 있는 목적지에 닿았을 무렵에는 완전히 벌거벗을 수 있게 될 것이다.

 

160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를 다루기가 벅차다면, 이렇게 질문해보라.

 

-       무엇이 당신의 몸을 뜨겁게 만드는가?

-       섹스를 연상시키는 과일의 이름을 아는대로 적어보라.

-       당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

-       당신의 신체 중에서 가장 성적인 곳은 어디인가?

-       당신이 맨처음 성애를 느꼈던 기억은?

 

160 10분 간이다. 위에 있는 것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써 보라. 계속 써라. 손을 멈추지 말라. 수정이나 삭제, 첨가도 하지 말라.

 

자신이 사는 마을을 순례하라

 

161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혀에 돋은 생채기, 팔꿈치의 굳은 살, 새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뉴욕 시의 수많은 쓰레기 트럭들의 종류, 시골 마을에 버려진 낡은 자주빛 전광판 등등,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161 어떤 한 장소에 오래 살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감각이 점점 둔해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잇는 것이 무엇인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흥미롭다. 새로운 장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해준다.

 

162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햄 샌드위치에 존경을 표해 보라.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계속 그 목록을 늘려가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글의 형태와 장르에 상관없이 이 목록에 들어 잇는 것들을 단 한 번 이라도 언급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164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 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164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기차 안에서, 버스 안에서, 허름한 부엌 식탁에서, 기댈 것이라고는 나무 둥치만 있는 숲 속에서, 혼자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사막의 바위 위에 앉아서, 당신 집 앞 모퉁이에 서서, 현관에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165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잇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서와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166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 보라. 당신이 종점이라 생각하는 것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당신은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167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 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 날 수 없다.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167 심지어 당신이 자신을 충분히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자아가 깨졌다고 느낄 대조차도, 조금만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중간에서 멈추지 말라. 이 순간은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나중으로 미룬다면, 지금 작품을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멀리,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삶을 사랑하라

 

171 우리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하얀 종이는 앞에 있는데, 마음은 불확실하고 사고는 연약하기만 하고 감각은 무디고 둔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조절력을 잃어버린 글쓰기, 결과물이 어디에서 나올지 확실치 않은 글쓰기는 무지와 암흑 속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 이렇나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구에는 우리를 깨우쳐 주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이런 두려움의 회오리바람에서부터 진정한 천재의 목소리가 탄생되는 것이다.

 

172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 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172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 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먹히지 말라

 

174 글쓰기에서도 같은 진실이 통한다. 지금 세상에 나온 책들 가운데 출판조차 못했을 뻔한 책이 아마 수천 권도 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계속 가야만 한다는 진실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쓰라! 설령 그 글이 출판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글을 계속해서 쓰라. 훈련은 당신의 글을 점점 더 훌륭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174 의심과 의혹은 고문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달려 심혈을 기울였다면, 그 일은 그것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 인지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준다. 의심은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것이다.

 

175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176 유태교 전통에는 소년이 처음으로 토라(유대교의 율법서)의 맨 첫 자를 읽으면 꿀이나 단 음식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공부를 하면 단 음식을 먹게 될 거라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만드는 학습 유도 방법이다. 글쓰기도 당연히 이래야 한다.

 

176 당신이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버릴 수는 있어도 글쓰기가 당신을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글쓰기 과정은 인생과 생명력의 끊임없는 자원이다. 때때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지리멸렬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면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탈리, 넌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거야. 너는 글을 써야 해.”

 

177 심지어 내가 이른 아침 자동차로 붐비는 고속도로를 묘사하고 있을 때도, 나는 그 혼잡한 도로에 대한 글 속에서 평화로움과 나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이다. 아침이면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177 고어 비달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

 

왜 글을 쓰는가

 

180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쓰고 싶다면, 당신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에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순간이니까.

 

183 글쓰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만약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이유든지, 글쓰는 행위를 부정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깊이 불사르며 글쓰기 속으로 몰입하게 해 줄 것이다.

 

185 나는 사람들이 잊어버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 주기 위해서, 또 한 여성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당신의 입술과 혀에서 나온 말에 형태를 잡아 주기 위해 글을 쓴다. 또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을 당신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살아 있기 위해 노력하며,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그 공간에 구체적인 색과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185 지금 다시 이 글을 쓴다면 아마 전혀 다르게 씌여질 것이다. 우리의 글 속에는, 그것이 쓰여지던 순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의 환경이 모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186 ‘글은 뭐하러 쓰는 거야?’ 식의 닳아빠진 잔소리가 다시 들려오면, 당장 종이를 꺼내 대답을 가득 적어 보라. 하지만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대답은 안 된다.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유가 가능하다. 당신은 문체를 향상시키기 위해, 당신은 얼간이이기 때문에, 당신은 종이 냄새에 미쳤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관통하는 글쓰기

 

187 “감정의 분열에 대해서 써보는 게 어때? 좋지? 그럼 시간은 한 시간이야!”

그곳에 사람이라곤 우리 둘이 전부였기 때문에 우리는 글이 끝나면 각자가 쓴 글을 상대방에게 큰소리로 읽어 주었다. 한 시간 동안 육필로 쓴 글은 언제나 많은 분량이었다.

 

188 케이트와 나에게는 글쓰기, 서로 나누는 것 그리고 우정이 모두 중요해셨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하루 그것도 일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을 통째로 글쓰기를 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 앞길이 막막하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까 생계가 걱정스러운 바로 그런 시절 케이트와 내가 월요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188 명심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잇는 일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 일에 접근해 나가는가 그리고 그일에서 어떤 가치를 얻는가 하는 점이다.

 

189 “나탈리, 너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잇는 거야 저 계단, 너의 집 현관, 자동차, 옥수수밭 그리고 구름하고도 관계를 맺어야 해.”

우리는 모두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케이트와 나는 월요일 온종일 서로 관통하고, 모든 거리, 커피를 관통해서 글을 썼다. 이런 관통하는 글쓰기만이, 흐르는 피가 땅에 스며들 듯 다른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힘이 생긴다.

 

189 나는 글쓰기에 들어가기 전에 10분간 나는……의 친구다. 내 친구는……..”식으로 간단한 마음풀기를 한다. 내 친구로 무생물들의 이름을 적어보는 것이다. 토스터, 책상, 자동차, 고속도로, …… 이 모두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작가로 살아남기

 

191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서, 그리고 작가로서는 강하고 용감하지만 한 인간으로 돌아오면 한없이 무기력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92 카타기리는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매순간 모든 존재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대하고 친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으면서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지는 말라는 뜻이다. 책상에서 시를 치우고 부엌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작가로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193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또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근사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다.

 

자신이 쓴 글에서 떠나라

 

195 위대한 불교 지도자인 초감 트룽파는 사업가가 되려면 우선 먼저 위대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두려움을 떨쳐내야 하며,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잇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즉흥 글쓰기 창구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잇는 기회다 글을 쓰는 동안 모든 것을 집중시켜야 하며, 그 다음에는 아무 미련없이 자기가 쓴 글을 고객에게 넘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빠르게 글을 쓰게 되면 실제로 자기제어가 통하지 않게 된다. 내 경우는 처음에 쓰려고 했던 것보다 항상 더 많은 글을 쓰게 되었다.

 

198 즉흥 글쓰기 창구는 글을 떠나 보내는 데 더없이 좋은 훈련이다.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 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당신은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문학의 형식, 삶의 형식

 

199 어떤 정해진 형식에 맞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 형식으로 적은 글을 많이 읽는 게 최고다. 그 형신만이 가지고 있는 호흡을 눈여겨보라. 맨 첫 문장이 무엇이었나? 어떻게 끝을 맺었는가?  같은 형식의 글을 많이 읽으면 그 형식이 당신의 의식에 저절로 각인이 된다. 그래서 직접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구조에 맞는 글을 쓰게 된다.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

 

206 나는 그들이 한 번쯤은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분별력을 놓아 버린 바보 천치가 되고, 낯선 들판을 헤매는 방랑자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학생들은 나름대로 내 요구를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들을 흔들고 싶었지만 흔들 수 없었다.

 

207 우리 삶에는 반드시 미쳐 버려야 할 시기,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는 당도할 죽음을 향해 가고 잇는 것이며, 이 죽음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7 우리는 스스로를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그 시간조차 알지 못한다.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하기를 바라지만 당장 몇 분 후에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숙명에 대한 깊은 고찰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208 스즈키 선사는 <선심초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을 통제 조정하는 최상의 길은 그들에게 해로운 일을 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스스로 통제력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소와 양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와 양을 탁 트인 황야에 풀어 놓는 것이다.”

글쓰기에서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규칙적인 연습은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209 “매일 글을 쓰라.” 이 규칙대로 실행하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무감으로 했기 때문이다. 규칙만 따지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마음은 다른곳에 두고 단지 규칙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는 것처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없다. 만약 당신의 기본 자세가 이렇다면 당장 글쓰기를 중단하라.

 

210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글이 아닌 다른 일에 몰입시키는 것이다. 아이들과 2주일 내내 놀아 주어도 좋다. 이러는 사이 당신은 당신의 리듬, 즉 언제 글을 쓰고 싶어지고 언제 휴식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될 것이다. 이 리듬은 자신과 더 깊은 관계를 맺도록 도와준다. 이제는 맹목적으로 규칙에 매이지 않게 된다.

 

211 솔직히 나는 개근상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개근상에 성실과 인내라는 미덕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개근상에 내포된 이런 품성은 배워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흑백논리를 적용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211 결석을 하게 만드는 일상의 사건들은 얼마든지 있다. 치과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기르던 개가 죽었기 대문에, 유대교인으로서 주일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또는 미국계 인디언 축제일 때문에, 목구멍이 부어서, 할머니가 찾아왔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이유로 결석할 수도 있는 법이다.

 

212 글쓰기에도 이러한 유동성의 공간이 필요하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쓰면 단어들이 가득 채워진 종이 몇 장은 얻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당신은 우울한 느낌이든, 꿈이든, 희망이든, 진정한 자신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212 만약 오랜 시간에 걸쳐 썼던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글쓰기에 충분히 몰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오직 연습 시간의 경과로만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평생을 연습해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다, 때로는 더 멀리 가기 위해 인생을 변화 시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214 자신의 규칙대로 미리 단정하지 말라. 만약 옥수수 밭에 철조망이 있었다면, 나는 그 철조망의 의미를 분명하게 읽었을 것이다. 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살아 있는 존재와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법규란 남을 다치게 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사려 깊은 사람은 굳이 법규를 들먹이지 않아도 항상 경우에 맞는 일을 하는 법이다.

 

214 모범생이 되기 위한 모범생은 되지 말라. 규칙에 얽매이면 글쓰기에 필요한 진짜 현실이라는 반석을 얻지 못한다. 그냥 옥수수밭으로 들어가라.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난 매일 글을 쓰겠어따위의 규칙으로 자신을 마비시키는 짓은 하지 말라.

 

214 시간이 흘러 다시 규칙을 지키는 착실한사람으로 돌아가겠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실은 말하지 않게 된다. 글쓰기 훈련에 자신을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몰입하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에도 몰입할 수 있다.

 

214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등을 펼 수 없고, 펜을 놓은 다음에야 등을 편다. 글쓰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할 신성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종이에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못하다면 작가로서의 우리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우리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넓어진다. 이런 이유로,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217 어느 순간 당신 앞에는 글쓰기만 버티고 서 있다. 그 이후부터 당신은 하루하루의 기분에 의해 당신의 마음이 좌우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된다.

 

217 만약 글을 쓰기로 결심한 날인데 아이를 치과로 데려가야 한다면, 치과 대기실에서 글을 쓰면 된다. 아니면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꼭 해야 하는 일 밑에 이 거칠고 가련하고 놀라운 글쓰기 훈련이 닿아 있다는 사실만 명심하라.

 

218 결과적으로는 바로 이 방법, 쓰다가 안 쓰다가 하는 것이 나에게는 제일 좋았다. 나는 매주 작업 스케줄에 변화를 주었다. 낮과 밤 모두 시도해 보았다.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이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218 지쳐 있고 자꾸 저항하려 드는 나의 마음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 내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일임을 나는 알고 있다. 때때로 아주 짧은 순간 나는 깨우침의 불꽃을 느끼지만, 그것은 기쁨이나 환희,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매일 접촉하는 것들 안에 함께 서서 계속 글을 쓰는 것만이 내 가슴을 열게 해 준다는 진실이다. 그리고 그 진실이 나로 하여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도록 깊은 부드러움과 다정함을 준다.

 

219 이렇듯, 작가 되려면 아주 깊은 믿음이 따라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깊은 진실이다. 그리고 만약 작가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나머지 인생 동안 가야 할 길이다. 나는 이 사실을 다시 또 다시 기억할 것이다.

 

음식에 대해 써 보라

 

225 고독을 이용하라. 고독의 아픔은 당신에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만들어 줄 것이다. 고독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 고독을, 당신의 더 깊은 곳을 탐사하는 내시경으로 이용하라.

 

스스로에게 넌덜머리가 났을 때

 

227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만 된다면 얼마든지 파격적인 변신을 해도 좋다.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라

 

229 당신이 내면 깊이 들어갈수록 당신은 점점 더 당신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230 습작을 할 때 글의 리듬을 주시해 보라. 거기에는 교회의 예배에서나 들을 법한 가락이나 강렬한 로큰롤 리듬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 모임 만들기

 

233 나는 누구인가? 또 내 글의 원천은 어디인가? 이것을 이해하고 다시 이것을 다른 이들에게 이해시켜 줄 때, 당신이 전달한 것은 비단 당신의 뿌리에 대한 편협한 기록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근원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234 촛불을 켜는 이유는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정말 행복했던 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말하는 거에요.

 

236 “할머니, 우리는 4년 만에 만나 거잖아요.

그녀는 손을 뻗어 배 하나를 따더니 내가 잘 볼 수 이토록 들어 보였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단다. 얘야.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감탄하는 과일 푸딩을 손수 만들어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한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나를 대했습니다.

 

237 그림을 시작할 때는 이야기를 할 때처럼 꾸밈이 없어야 한다. 글을 시작하는 데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면 대호하듯 서 보는 것이 이 도움이 될 것이다.

 

239 이 수업의 특징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쓰고 읽고, 다시 쓰고 읽기 때문에 의식이란 것을 챙길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이며, 어떤 비평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쓸 수 있다는 자유를 얻게 된다.

 

239 다른 사람 작품에 평을 하지 않는 이 방식은 글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겠다는 건강한 욕구를 만들어 준다. 말하고 싶은 에너지를 다음 번 글쓰기에 쏟아 붓는 것이다. 쉬지 않고, 쓰고 읽고 쓰고 읽는 것을 반복하는 이 방법은 내부의 검열관을 잘라 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글로 나타내게 만드는 엄청난 자유를 허용해준다.

 

243 나 혼자서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를 할 때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 찾아온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자신을 열어 보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자신을 벌거벗기고 해체시키는 기분. 하지만 이것도 괜찮으니 받아들이라. 벌거벗은 자만이 어느 것에도 왜곡되지 않는 진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245 누구에게나 정직한 고결함과 세심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해 내는,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의 글이 우수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247 “우리 모두가 부처입니다. 나는 당신이 부처라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내 말이 믿어지지 않겠죠. 당신이 자신이 부처임을 자각할 때, 당신은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248 우리 안에는 누구나 뭔가 천재적인 것이 들어 있으며 그것을 바깥으로 발산시켜야만 한다는 뜻이다. 내면에 잇는 풍요로움을 외부에 있는 작품들로 연결시키는 것 이것이 예술가들이 바라마지 않으면서도 다가서기 힘든, 고요한 평화와 확신감을 얻는 열쇠다.

 

248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좋을 글을 막는 벽을 뚫고 나가 그 글이 바로 나 자신임을 주장할 능력이 있다.”라고 말하라. 이것이 우리가 맨 먼저 떼어 놓아야 할 첫걸음이다. 이것이 우리가 채워나가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고 더불어 우리의 작품도 훌륭할 때, 그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것과 함께 서 있어야 한다.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251 만약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읽었을 대에도 작품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낙담하지 말라. 당신이 쓴 좋은 부분은 이미 당신을 위한 퇴비가 되기 위해 발효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무언가 좋은 것이 되어 밖으로 나올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라.

 

사무라이가 되어 써라

 

253 “만약 그 시에 한 줄이라도 에너지가 있다면, 그 한 줄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 버려도 좋다

 

254 글쓰기를 하다보면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을 뚫고 무언가 선명한 것이 표면ㅇ로 올라올 때가 있다.

 

254 자신이 쓴 글에서 어느 부분이 살아 있고 깨어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글이 계속 타 들어가 환한 빛을 내는 그 지점이 결국 하나의 시와 산문이 된다. 그리고 이 차이는 누구나 알 수 있다.

 

254 완전히 태워버린 것, 첫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만이 모든 사람을 깨우고 모든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다. 누군가 정말 뜨거운 작품을 읽을 때, 그것이 듣는 모든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수업을 하면서 많이 보아왔다.

 

255 자신의 작품을 솔직하게 쳐다보라.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된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죽은 말에 채찍질하는 짓은 멈추라. 다른 글을 쓰라.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다.

 나쁜 글을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단 한 줄만 써도 당신은 유명해질 것이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고쳐쓰기

 

256 자기가 쓴 글을 쓰자마자 다시 읽어 보지는 말라.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기 전에는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리라. 작품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256 읽을 때는 항상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이 사람이 하려는 말은 무엇인가?’ 작품을 처음으로 대하듯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읽자. 건너뛰지 말고 한 페이지씩 차례대로 읽어라. 글을 쓰던 당시에는 아둔하게 느껴졌던 것들도 다시 읽을 때는 나름대로의 패턴과 리듬을 보여 줄지도 모른다. 내가 썼던 습작노트를 다시 읽을 때마다 나는 그 글들이 내가 보고 듣고 느낀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258 의식은 귀찮게 구는 모기떼에 항상 바쁘게 쫓겨 다니기 때문에 우리가 쓴 글이 사실은 굉장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하지만 그날 작업실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나는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만은 의식했던 것 같다. 나는 괴로워하면서도 내내 콧노래를 불렀다.

 

259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 한 달 후 당신은 그 시절 당신이 썼던 노트를 읽으며 그 글의 훌륭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의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 서로를 깨닫고 하나가 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작품이다.

 

259 당신 마음이 들어가 있는 않은 부분은 떼어내라. 하지만 단어를 수정하지는 말라, 왜냐하면 이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믿는 능력을 심원화(心願化)하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259 만약 글을 쓸 때 당신이 진정으로 글 속에 있었다면, 글로써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제는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썼던 언어들을 더 그럴싸한 다른 언어로 고치거나 조작할 필요가 없다. 글쓰기를 벌거벗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시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얻게 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조금은 과장시키거나 공격하는 일 없이 그저 수용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난 행복하지 않아.” 이런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도 하지 말라. 그것이 그때의 감정이었다면 아무 판단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261 원고 수정작업은 새롭게 다시 상상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쓴 글에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 먼저 전체 그림을 다시 본 다음 그것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부 묘사를 첨가하면 된다. 이때도 10, 20분 식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수정에 들어간다. 원래 작품에서 나온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를 다시 써 보자.

 

262 자신이 쓴 글 중에서 좋은 부분은 표시를 해두라. 이것들을 글감 목록에 적어 놓으면 다음 번 다시 글을 쓸 때 그 중 하나를 잡아서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다. 또 표시를 해둔 글은 그 문장에 대한 기억을 강화해 훗날 필요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문장이 떠오르도록 만든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던 별개의 부분들이 뭉쳐져서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놀라운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264 우리는 스즈키 선사가 죽음을 앞두고 내뱉은 난 죽고 싶지 않네라는 말 속에 씁쓸하지만 명료한 진실이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분노나 자기 연민, 자기 비난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는 진실을 수용해야 한다.

 

265 만약 우리가 글쓰기를 통해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계속 작가로 지켜 주는 골인 지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뉴욕이나 뉴저지의 책상 앞에 있지 않고 티베트의 고원에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인생이 눈앞에서 으르렁대고 죽음이 바로 등 뒤에서 쫓아오더라도, 그저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쓰기 위해 언제라도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267 “이 책을 완성하는 데 1 6개월이 걸렸어요. 적어도 절반은 처음 썼을 때 나온 것들이죠. 가장 힘든 싸움은 글 쓰는 행위가 아니었어요. 내가 과연 괜찮은 것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싸우는 게 제일 힘들었죠.”

 

267 마지막 한 달 동안 나는 주말도 휴일도 없이 글을 쓰는 데 매진했다. 나는 한 장씩 완성시킨 다음,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내 속에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어라, 친구를 만나라, 낮잠을 자라고 아우성을 쳐댔지만, 나는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267 우리는 성공이 행복이다라는 등식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성공을 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공은 또 다른 고립감과 실망을 가져온다. 모든 성공이 다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라. 이렇게 큰 감정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제한시키지 말라.

 

268 “만약 그쪽에서 당신 책을 출판하겠다고 하면 아주 잘된 일이지만, 그것에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당신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일입니다. 계속해서 글을 쓰는 데만 정진하십시오.”

 

268 “나탈리, 이 책은 끝났어. 넌 또 다른 책을 쓰게 될 거야.”

 

 

 

 

 

 

■ 내가 저자라면

 

변경연 1년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읽어본 이 책은 처음 느꼈던 감동과 깨우침이 너무도 달랐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내 삶과 글쓰기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뼛속 깊이 다시 와 닿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 나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위로 받지 않을까? 그녀가 커피숍에서 글을 쓰는 모습들, 그녀의 책상이 지저분하다는 사실, 매일 규칙적인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쓰기 싫을 때는 세상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 하나가 되어 보라는 이야기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현재 방황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리해 보았다.

나 자신을 뜨겁게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카메라에 셔터를 누르면 순간이 영원이 된다. 내가 글을 쓰는 행위 또한, 순간에 떠오른 생각들은 나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아름다운 영원으로 기억되게 하고 싶다. 이렇게 영원해지고 싶은 욕구가 글을 쓰게 하고, 나를 뜨겁게 한다.

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원하게 쏟아내기 위해서다. 아직은 길들여진 삶에 익숙해져서 일까? 시원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찜찜함이 남아 있다. 다시 거친 세상으로 홀로 서 있어보자. 광야로 들판으로 나아가 큰 소리로 외쳐보자. 누가 뭐라고 하든 나의 목소리로 시원하게 외쳐보자.

작가에게 야단도 맞았다. 그냥 쓰라고 해서, 규칙적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쓰는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이다. 연구원 생활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과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꾸준히 글 쓰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규칙대로 생활한 모범생이 뿐이었다. ‘진짜 현실’ ‘진짜 나의 모습이 써 내지 못했다. 내 심장의 두근거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매일 글을 쓰는 모범생만 보여주었다. 살아 있는 진실된 나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작가는 말한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쓰고 있는 작품에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지쳐버리는 시기가 찾아오면 파격적인 변신을 하라고 말한다. 머리를 물들이든지 이상한 옷을 입고 거리를 걸어보던지, 평상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앉아서 글을 써보는 것이다.

내가 만약 작가라면, 제목을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라고 정하고 싶다. 글을 쓰면서 위로 받는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의 구성도 현실에 찌들어 사는 나의 삶을 먼저 이야기하고, 글쓰기를 하면서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천천히 변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나를 위로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쓰기를 했을 때, 내면 깊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결국 위로 받으면서 내면은 더욱 성숙해지고,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되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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