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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4일 08시 14분 등록

바람을 담는 집

* 김화영 지음, 문학동네, 1996.07.10

 

1. ‘붓 가리지 않는 명필(저자에 대하여)

김화영.JPG

■ 김화영 (1941 ~ )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했다. 그러나 많은 명필, 뛰어난 작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은 제 자신의 고유 영역이 있기 마련인데 바로 영역 가리기에 해당되겠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시와 같은 산문, 소설 같은 시, 수필 같은 그림, 음악 같은 묘사. 수많은 직유에도 어울림 없고 그렇다고 불편함 없는 그의 글은 붓 가리지 않는 명필이다.

 

세상은 그를 개성적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 어느 유파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으로 문학계에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드러나는 부유한 인텔리 지적 허영은 감출 수 없다. 유려한 문장의 수사와 언어의 마술을 외경으로 바라보되 나는 시대의 특수성을 자발적으로 유리한 그의 부채감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유신과 전제정의 부활이라는 희대의 시대적 상황에 까뮈와 그르니에, 보들레르,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문화적 핵우산에 보호되어 있던 그 시절 말이다. 이런 질문 자체가 외람인줄 알고 있으나 그의 글이 유려한 만큼 내 눈에는 폭정에 대항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어찌되었든

 

1969년 가을. 스물아홉의 김화영은 지중해로 떠난다. 지금처럼 떠나는 일이 손쉬워지고, 소비되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러므로떠난다는 것은 제법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 테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무릅쓰고, ‘우리들의 모든 유익하였던 경험들을 무용하게 하는곳으로 가는 것. 어쩌면떠남은 그의 말처럼 항상 최초의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아래부터는 메마른 그의 프로필이다. 저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겠으나 그의 문장을 자세히 보기 위해 시간을 나눈 셈 친다 이해해주시라. 인터넷 포털에서 발췌한다.

 

1941 6 1일 서울 출생.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엑스앙 프로방스 대학에서 카뮈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4년 『세대』 신인현상문예에 시 과원이 당선되었고,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육성이 가작으로 입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사계』, 68문학』 동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봄밤의 가족(1965), 연가(1966), 유형지의 노래(1968), 나의 청춘문화(1969) 등의 시를 통해 세계의 근원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인간존재를 조명하는 지성적인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조각(彫刻)으로서의 문학-알베르 까뮈의 예술관(1979), 가치의 무게와 노래의 가벼움(1981), 미당 서정주론(19831984) 등의 평론을 발표하였고, 『문학상상력의 연구』(1982), 『미당 서정주의 시에 대하여』(1984), 『공간에 관한 노트』(1987), 『소설의 꽃과 뿌리』(1998) 등의 평론집을 발간하였다.

 

2. ‘바람을 담는 집(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1. 마음속의 풍경

 

□ 객쩍은 (p. 14)

 

Ü 행동이나 말, 생각이 쓸데없고 싱겁다.

 

□ 술추렴 (p. 16)

 

Ü 술값을 여러 사람이 분담하고 술을 마심.

 

냄새와 기억

 

□ 우리는 눈을 감고 잠은 잔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무장해제 당한 몸과 더불어 대부분의 감각기관들이 휴식에 들어간다. 눈은 보기를 그친다. 귀는 반쯤만 듣고 손과 피부는 어렴풋이 느낀다.

 

후각은 가장 직관에 가깝다. 후각은 사건의 핵심으로 존재의 심장으로 행동중추로 곧장 달려가기 때문에 논리적 검증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나는 왜 이 냄새가 이런 느낌을 주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본능적으로 거기에 반응할 뿐이다. 그래서 예컨대 형사가 사건을 수사할 때 논리적 추리에 의존하기에 앞서 어떤 낌새를 느끼면 냄새를 맡았다고 하는 것인가? (p. 21)

 

그러나 사실 그 냄새가 그토록 황홀하고 감미로운 것은 그 냄새의 실체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 없으며 어디엔가 간직해두기에는 더더욱 어렵다는 데 있었다. (p. 23)

 

Ü 냄새 저장. 필요할 때 꺼내어 맡을 수 있는 나만의 냄새. 상상조차 재미나는 냄새를 유발한다.

 

□ 나는 차를 다시 한모금 마셔본다. 그러나 처음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세 번째로 한 모금 더 맛보자 쾌감은 두 번째보다 더 약해졌다. 그제서야 나는 깨닫는다. 내가 찾고 있는 진실은 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 의식 속에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귀를 기울여 본다. 이윽고 첫 번 한 모금을 맛보았을 때의 차 맛을 백지처럼 비워놓은 의식 속에 갖다 놓아본다. (p. 24)

 

Ü 장자가 말하는 무대의 마음을 재생하는 것인가. 의식을 버리고 언어 너머, 고착된 자의식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하여 타자 즉 차와 내가 매개 없이 마주 대하는 것.

 

□ 기적처럼 소생하는 그 본질을 프루스트는 이렇게 표현한다. ‘아득한 과거로부터 어느 것 하나 살아남은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죽고 사물들은 파괴되고 난 다음에 더욱 연약하지만 더욱 생생하고 더욱 비물질적이며 더욱 고집스럽고 더욱 충실하게 냄새와 맛만이 아직도 영혼처럼 오래도록 남아서 그 모든 것들의 폐허 위에서 기억을 되살리고 기다리고 희망을 가지며 거의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그 작은 물방울 위에다가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굽힐 줄 모른 채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p. 25)

 

□ 프루스트는 이런 신비한 기억의 소생과 관련하여 켈트 신앙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들의 잃어버린 사람들의 영혼은 어떤 하등한 존재, 짐승이나 식물이나 생명 없는 물건 속에 갇힌 채 우리들에게는 실제로 사라지고 없는 상태로 있다가 우리가 어느 날 나무 옆으로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 영혼의 감옥이 된 물건을 소유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런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제서야 영혼은 홀연 소스라치면서 우리를 부르고 또 우리는 즉시 그들을 알아보게 되어 마법이 풀리는 것이다. 우리들 덕분에 해방된 영혼들은 죽음을 이겨내고 다시 우리 인간들 가운데 돌아와 살게 된다.’ (p. 26)

 

Ü 글은 감동적이다. 죽은 영혼의 갱생은 인간의 간택에 달려 있다니!

 

사진에 대하여

 

□ 그 해변의 낯선 삶은 지어낸 허구적 존재가 아니다. 그는 분명히 그날 그 순간, 해운대 바닷가, 카메라 렌즈가 겨냥했던 그 모래톱에 서 있었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의 그 순간 거기에 있었음이야말로 사진이 증거하고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이다. (p. 43)

 

□ 그런데 그 순간 이후 사내는 결코 한번도 그 자리, 그 자세, 그 표정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진은 단 한 순간의 반복할 수 없는 개별성과 일회성을 문득 하나의 작은 영원으로 고정시켜 놓은 것이다. 사진은 세상의 모든 사진은 시간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저마다의 섬이다. 내가 사진을 (그 사진이 무슨 사진이건 관계없이) 들여다볼 때 간혹 맛보게 되는 황홀감은 그 섬이 불러일으키는 견고한 고독감이다. (p. 44)

 

Ü 시간의 호박처럼 박제된 언어, 동작, 날씨, 건물, 사람

 

□ 오오, 사진 속에 담겨 있는 저 부동의 빛을 눈여겨본 적이 있는가? 사진이 어떤 풍경, 어떤 얼굴, 어떤 물건의 사실적인 재현이라는 고정 관념을 털어버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진 속에 고여 있는 사진 특유의 빛을 응시해보라. 그 빛은 결코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아니다. 그 빛은 흐르지 않는다. 그 빛은 사진 속의 테두리 밖에 있는 그 무엇도 비추지 않는다. 갇혀 있는, 내 인식이 이를 수 없는 빛. (p. 45)

 

Ü 캬하하하하하하!!!!!!

 

우리가 흘러가는 시간의 물결을 거슬러 영원을 소유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영원이 얼마나 죽음을 닮아 있는가를 섬찟하게 느낀다. (p. 46)

 

□ 삶이여 세계여 이만하면 되었겠는가, 입을 열어다오 하고 묻는다. 그러고는 또 연습에 몰두한다. 지적인 체조와 곡예의 훈련을 해본다. 학교에서는 쉬지 않고 그 정리와 체계화와 구조화의 방식을 가르치고 배운다.

 

그런데 문득 이른 아침 산책길의 지표를 뚫고 나오는 연두색 잡초의 어린 새싹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아니 그 연두색은 심지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수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삭막한 회색으로 덮여 있던 숲길을 떠밀고 솟아오를 뿐이다. 그리고 구슬도 그 구슬을 꿰는 고된 작업도 손쉽게 무시해버리는 것만 같다.

 

그러나 생명에 찬 솟아오름이 구슬을 꿰는 저 수평적이고 산문적인 수고의 가치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연두색이 지표를 떠밀고 솟아오르는 그 순간의 주위에는 투명한 침묵이 가득하다. 지혜의 침묵이다. (p. 49)

 

연두색은 실제로 존재하는 색이 아니라 초록을 향해서 푸르름을 향해서 가고 있는 솟아오르고 있는 화살표의 색채인지도 모른다. 이 솟아오름의 순간 속에서 모든 구슬들은 그 산문적인 무게를 버리면서 하나가 된다. 새삼스럽게 인위적으로 꿰고 어쩌고 할 것도 없다. 연두색은 한줄기로 솟아오를 뿐이다. 이 솟아오름은 시적인 순간이다. 솟아오름은 순간의 통일이다. (p. 50)

 

어떤 향기로부터 피어난 기억

 

□ 전혀 예기치 못했던 어떤 감각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옷의 주인이 잠시 전까지만 해도 입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외투인지라 거기에 깊숙이 배어 있는 체취와 향기는 뜻밖의 작은, 그리고 그 여운이 꽤 오래가는 충격이었다. (p. 53)

 

삶은 가을 하늘의 둥근 사과처럼

 

□ 오솔길을 약간 비켜서 큰 산벚나무가 몇 그루씩 서 있어서 4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나는 여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 아침빛이 청명하고 꽃이 한창인 날은 그 꽃나무 아래서 꽤 오래 머문다.

 

나와 그 꽃나무들과의 밀회의 순간이다.

나는 늘 오직 나만이 그 꽃나무들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황홀하다. (p. 58)

 

Ü 그 나무 이러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잃어버린 사람들의 영혼은 어떤 하등한 존재, 짐승이나 식물이나 생명 없는 물건 속에 갇힌 채 우리들에게는 실제로 사라지고 없는 상태로 있다가 우리가 어느 날 나무 옆으로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 영혼의 감옥이 된 물건을 소유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런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제서야 영혼은 홀연 소스라치면서 우리를 부르고 또 우리는 즉시 그들을 알아보게 되어 마법이 풀리는 것이다. 우리들 덕분에 해방된 영혼들은 죽음을 이겨내고 다시 우리 인간들 가운데 돌아와 살게 된다.’

 

□ 세상에 와서 한낱 착각 같은 봄을 보았던 것인가? 그 아름다움을 두고 나는 산을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꽃들이 빛의 폭죽 터지듯이 만발했는데 어느 날 난데없는 비바람이 몰아쳐 이튿날 아침에 가보면 반 넘어 떨어져버린 것이다. 꽃이 가면 신록이 올 것이다. (p. 59)

 

□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 손쉬운 질문에 사실 우리는 매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몇 번 뒤척이다가 더러는 거뜬하게 더러는 나른하게 일어나 칫솔을 입에 물고 조간 신문을 읽는다. 현관에 배달된 우유와 빵과 커피로 혹은 된장국으로 허둥지둥 아침식사를 하고 월부로 산 자동차에 올라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간다. 사무실에서 부지런히 일한다.

 

물건을 배달하고 관공서에 서류를 제출하고 전화를 걸고 고객을 만난다. 사무실 근처의 단골 식당이나 구내식당에서 점심, 다시 분주한 근무, 그리고 자동차의 물결이 도도한 삶의 바다를 헤엄쳐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과외공부에서 돌아오고 있다. 저녁식사에 이어 텔레비전에 멍한 시선을 비끄러매고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본다. 코미디도 흘러가고 연속방속극도 흘러가고 통기타도 랩뮤직도 흘러가고 5공도 6공도 그 네모난 통 속으로 흘러간다.

 

그 끝없는 흐름의 끝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나 성실하게 절약하여 모은 덕택에 적금도 늘어가고 아파트 평수도 자동차의 배기량도 늘어간다. 자리가 잡힌다. 자리가 올라간다. 잘살게 되었다. 희망도 꿈도 커간다. 이만하면 괜찮다. 안심이다.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

 

누구나 부유하게든 가난하게든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목표도 세운다. 결심도 한다. 억척으로 난관을 극복한다. 여차직하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각박한 세상을 원망만 하면 패배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에서 참으로 만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인적이 없는 오솔길을 호젓이 걸어가는 나 자신과 만나 산길을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노라면 가끔 머리에 떠오르는 말이 있다.

 

하루해의 모양은 길지 않다. 화살이나, 길이나, 인간이 경주처럼 어떤 목적을 향해 가는 긴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문명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향하여 어떤 머나먼 목적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설득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사는 것이며 삶은 우리가 매일같이 항상 하고 있는 일이며 하루의 매 시각 우리가 살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목적을 다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모든 문명된 사람들은 새벽에 혹은 그보다 좀더 늦게 혹은 그보다 훨씬 늦게 요컨대 그들이 일을 시작하는 정해진 시각에 하루가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하루가 그들이 하루 종일이라고 부르는 작업 시간에 걸쳐 있으며 그들이 눈꺼풀을 잠그는 시각에 끝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바로 그들이 날들은 길다고 말한다.

 

아니다. 날들은 둥글다.

산다는 것은 그 밖의 어떤 목적도 없다.

 

Heureux celui des mortels sur la terre qui ont vu ces choses. –

지상에 태어나 이 사물들을 본 필멸의 생명은 행복하여라.

 

Ü 저자는 같은 내용을 행복의 충격이라는 책에서 말한다. ‘해 질 녘이 되면 프로방스에서는 우주가 보인다. 둥근 세계가 보인다. 황혼 녘의 들판은 과일처럼 잘 익은 빵처럼 둥글어진다. 낮에는 늘만을 생각하던 우리가 저녁 시간이면 나에게서 떠나 시선을 멀리 던지기 때문이다.’

 

□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다시 어느 날 아침 그 아름답던 꽃이 지는 것을 본다. 기쁨의 전율이 부서지는 행복의 덧없음과 동시에 가슴을 흔든다. 그 덧없음이 매순간의 귀중함과 그 집중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뒤에 두고 온 세상

온갖 괴로움 마치고

한 장의 수의에 덮여 있다. (p. 63)

 

Ü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에 이런 시가 있다.

 

천황씨가 죽었느냐 인황씨가 죽었느냐

푸른 산 나무마다 온통 소복 입었네.

밝은 날 해님 보고 조문하게 한다면

집집 처마마다 눈물이 뚝뚝 지리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모퉁이 도는 길가의 레코드 상점에서 언뜻 들은 한 소절의 멜로디, 다시는 반복하지 못할 그 순간의 감미로움처럼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사랑하리라. 그 모든 순간들은 둥글다. 내 존재를 다하여 사랑한 순간들은 둥글다. (p. 63)

 

Ü 둥근 삶, 나는 왜이리 그 둥근 원형의 삶이 와 닿지 않는가. 아직 어려서다.

 

□ 오, 살아 있음의 청명한 기쁨이여! 그렇게 둥글어진 다음에야 떨어지리라. (p. 64)

 

축제와 일상

 

□ 아! 저들은 축제를 향해 가고 있구나! (p. 65)

 

Ü 저녁 무렵 예쁘게 차려 입은 연인이 걸어가는 모습, 묵묵히 땅을 보며 넘어가는 석양에도 카라반을 계속하는 원정대열. 그들이 걷는 길은 축제의 길이다.

 

□ 축제는 흥겨운 무질서와 대담한 반칙과 신명이어야 한다. (p. 68)

 

□ 공모의 미소를 던진다. (p. 69)

 

Ü 암묵적 동의를 넘어 소극적 합의를 뜻하겠다.

 

□ 이제는 안방에 틀어박혀 고독한 비디오를 보며 졸고 있다. 축제마저도 통조림이 되어 가정으로 배달된다. 축제가 죽어서 단조로운 일상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p. 69)

 

Ü 극장에 가지고 않고 집안에서 뒹굴며 비디오 본다고 저자는 지청구를 놓는다.

 

□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도 아주머니들이 집단으로 춤을 추고 봄날 등산로 입구에서는 생면부지의 행인을 붙잡고 덩실거렸다. (p. 69)

 

Ü 멋진 풍류다. 나는 이런 풍경들이 나빠보이지 않는다. 외려 따뜻한 어머니들의 상춘을 같이 하고 싶어 진다.

 

□ 일터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과외공부를 가고 어른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흘러가는 시간을 들여다 본다. 갈 곳이 없는 것이다. (p. 69)

 

Ü dry. 메말랐다는 이런 곳에 쓰이는 것이 적합하다.

 

□ 그대는 몇 번이나 가슴 설레는 축제에 갔었던가? 그리고 무엇을 보고 들으며 도취했던가? (p. 70)

 

Ü 축제의 일상화, 일상화된 축제. 축제를 매일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일. 그것이 사는 것.

 

내 가슴속 올리브 밭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기는커녕, 꽃들이 하나씩 시들어 떨어지듯이 그 상태들이 사라져 가도록 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냥 하나의 꽃에서 또다른 꽃으로 달려 갔을 뿐이다. 여행 그 자체밖에는 아무런 다른 목적이 없는 여행들’ –장 그르니에- (p. 72)

 

□ 모롱 부인은 여러 해 전에 정년퇴직했다. 그는 퇴직금으로 생 레미의 자기집 뒤꼍에 있는 올리브 밭을 매입했다. 혹시 다른 사람이 그 밭에다가 집을 지어서 그녀가 일생 동안 바라보며 행복해했던 알피유의 바위산을 가려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p. 74)

 

Ü 이 시와 같은 삶의 선택들이 거듭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낮에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을 최대한 많이 만들 것. 아이들에게는 놀자고만 말할 것. 맥주들었으면 엉덩이를 흔들 것.

 

가을에 다시 만난 두 여인

 

20년 전에는 폭발할 것만 같이 아름답던 그 대학후배들의 눈가에도 이제는 잔주름이 약간 져 있었다. 그들은 20년 긴 세월 동안 어느 봇도랑 깊숙이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맑은 물을 마시러 나온 것일까. (p. 78)

 

Ü 봇도랑막기 놀이를 20년 전보다 아름다운 지금의 후배 모습에 비유하는 저 센스라니.

 

□ 비서인 듯한 앳되고 직업적으로 반들반들하게 닦인 여자 목소리 (p. 80)

 

□ 날이 갈수록 사장님처럼 높으신 분들은 전화 다이얼 같은 건 돌리거나 누를 수 없을 만큼 바빠지거나 멍청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p. 81)

 

편지는 부재 속으로 찾아드는 침묵의 목소리. 그래서 전화와는 달리 편지는 길어져도 수다스럽지 않아 좋다. 그리고 그리운 이의 손길이 쓸고 지나간 그 肉筆(육필)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그리움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p. 82)

 

Ü 히말라야의 두려움을 그리움으로 달래려 틈만 나면 써 내렸던 엽서.

 

이삿짐과 진실

 

□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라는 표현이 우리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그 무방비 상태의 공포감이 그 이삿짐 보따리 근처에는 많게든 적게든 고여 있다.

 

우리의 삶도 같은 것이다. 길든 생활, 익숙한 가족, 친한 친구, 손발이 잘 맞는 일터의 동료, 이 모두가 나와 적당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의 망 속 어느 지점쯤에 나의 주소, 나의 집, 나의 방, 나의 자리가 있다. 그 공간, 그 낯익고 정다운 공간 속에서 자고 깨고 웃고 울고 사랑하고 다툰다. 이 익숙한 공간 속의 안도감을 우리는 습관이라고 부른다. 이 습관은 흔히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속에 볕이 들고 불이 켜진다. 밖의 바람과 비로부터 보호된 우리의 삶과 휴식이 거기에 담긴다. 그런 모든 것은 영원히 그대로 계속될 것 같다. 이 계속성에서 우리는 흔히 행복감 같은 것을 느낀다. (p. 87)

 

Ü 습관에서 탄생하는 행복의 실체 정도 되겠다.

 

□ 삶의 혁명, 갈 곳 없이 거리로 나앉거나 수재민처럼 임시 천막이나 낯선 학교 교실을 빌려 난민생황을 강요 받는 사람도 있다. 사랑하는 부부의 단란하던 삶이 어느 날 문득 바스러져버리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이라는 무대의 허구성을 발견한다. 한때 어떤 철학자들은 이런 것을 부조리의 발견, 혹은 부조리의 각성이라고도 불렀다. 삶이 한갓 연극이고 무대장치였음을 깨닫는다. 인생이 한갓 꿈이었음을 아프게 인식한다. 단순히 가재도구를 트럭에 싣고 다른 장소, 다른 곳으로 가는 숱한 이사의 저 끝에는 마침내 마지막 이사를 해야 할 날이 온다는 것을 보다 절실하게 깨닫기도 한다. 그때는 가지고 갈 이삿짐도 없다. 모든 것을 그냥 다 거기 두고 아주 떠나버리는 것이다. (p. 88)

 

Ü 니체의 파도는 삶의 허구성을 슬프게 역설한다. 파도가 사는 법과 인간의 삶의 방편이 이리도 닮아 있는가. 무섭게 깨닫는다.

 

흡사 누군가를 앞지르기라도 하려는 듯이 마치 가치 있는 가장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 거기에 숨겨져 있기나 한 듯 보인다. 그리고 이제 파도는 다소 천천히 그래도 아직 흥분하여 하얀 거품을 내며 되돌아오고 있다. 실망했는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는가? 실망한 척을 하고 있는가? – 그러나 이미 또 다른 파도가 처음 것보다 더 탐욕스럽고 야만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파도는 산다.’

 

□ 이삿짐은 쓸쓸하고 적막해 보이지만 벌거벗은 삶의 진실을 손가락질해준다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꿈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우리를 헛된 오만으로부터 부질없는 확신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p. 90)

 

한밤의 침묵

 

□ 일이란 항상 밀려 있는 법이다. (p. 92)

Ü 일의 속성이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薄明(박명) 속에서 사물은 제각기 하나씩의 고요한 섬이 된다. 화장을 하지 않은 물건의 즉자적 아름다움, 적대감도 없고 과시욕도 없다. 아주 희귀한 일이긴 하지만 이럴 때 읽으면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 책이나 글들이 있다.

 

그런 책, 그런 글 속에는 여백이 많다. 그 글의 목소리는 나직하며 형용사를 남용하지 않는다. 전해주는 정보 따위는 거의 없고 침묵이 가득하다. 한 문장을 읽고 나면 다음 문장이 시작할 때까지 막막한 모래 언덕이나 인적 없는 늪이나 바람 부는 벌판이 펼쳐진다. 그곳에서는 침묵의 소리가 잘 들린다.

 

그 여백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목소리. 그런 목소리가 그리운 시간이 더러 있다. 이럴 때 글은 음악이 된다. 북이나 첼로나 기타 같은 악기는 그래서 속이 비어 있나 보다. 내가 혹시 만나곤 하는 한밤의 침묵처럼 마음 속 깊이 진동하기 위하여. (p. 93)

 

Ü 무방비로 얻어 맞은 침묵의 언어. 감탄을 연발할 뿐!

 

한국인의 획일성과 인식의 환상

 

□ 이 나라의 고질이 되어가고 있는 이른바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바로 폐쇄된 공간, 폐쇄된 민족의 단일성을 근거로 한 인식의 환상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한다. 상대방이 어느 지방 사람인지 몇 살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출신학교가 어디인지만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 수 있다는 그 인식의 환상에 기대지 않는다면 지역감정의 골이 이토록 깊을 수는 없을 것이다. (p. 98)

 

Ü 미루어 직잠함의 폭력성. 장자는 이렇게 저자와 생각을 같이 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인식의 환상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폭력적으로 변하는 지를 강신주는 장자를 통해 보여준다.

 

장자에 따르면 이렇게 자신의 유한성을 은폐하고 아울러 이런 유한성에 근거해서 모든 타자를 미리 규정하는 것이 사변적 인식이다. 결국, 인식이 무한해 보이는 것은 단지 관념적으로만 그럴 뿐,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타자를 규정하는 나의 인식은 항상 나의 자의식의 동일성에 최종적으로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식을 통해서는 타자에 대한 진정한 앎을 확보할 수 없다고 본다. 유한하고 제약된 존재인 인간이 이런 유한성을 넘어서는 일체의 외부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장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미루어 짐작하는 인간들의 미리제어해야 함을 강조한다.

 

‘미리’라는 말은 구체적인 소통의 사태 이전이라는 의미이자, 동시에 연역적으로 미래에 적용될 것임(외삽, extrapolation)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자와의 구체적인 조우가 없이도 언어와 고착된 자의식에 근거한 사변이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에 대해 미리 염려하고 어떤 사태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어떤 사람에 대해 미리 단정하는 일체의 이미리작동하는 사변이 장자의 해체의 대상이 된다.’ 라고 했다. 곱씹어 볼 일이다.

 

세상은 유유히 살자, 바쁠 것이 없나니

 

□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유별나게 경쟁심이 강한 것 같다. 사물이나 형상을 인식할 때 상대적인 평가를 하는 데 익숙해 있고 등급을 매기기를 좋아한다. 동양최대, 세계최고, 아시아 최강, 하는 식의 최상급에서부터 올림픽 메달 순위까지 등수에 집착한다. 문학작품을 써서 노벨상을 받으면 마치 그날부터 작품 쓰기에는 공인된 세계 일등이라도 된다고 착각한다. 학생들의 성적 또한 그 자체로서 잘하고 못하는 것 이상으로 상대적인 평가로부터 산출되는 석차를 중시하여 자기 아들이 일등을 했다고 자랑하는 부모를 심심치 않게 만나곤 한다. (p. 99)

 

Ü 가슴이 아프지만 나는 그 속에서 깊이 자랐다. 아주 깊었기 때문에 여전히 헤어나기가 힘이 들고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애쓴다.

 

□ 가치는 양이 아니라 질의 세계인 것이다. (p. 100)

 

□ 사람들의 움직임을 물리학에서 말하는 분자들이 이리저리 튕겨다니는 모습 같다고 했다. (p. 101)

 

□ 재산과 목숨을 걸고라도 바쁘자는 것이다. (p. 102)

 

Ü 내 스승님은 바쁘다는 것에 알레르기를 일으키시는 분이다.

 

그들은 언제나 일상적인 일 때문에 바쁘게 사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개혁과 미래를 포기한다.’

 

공연히 바쁘게 보내지 마라. 인생의 시간을 잡동사니들에 다 써버리게 된다.’

 

삶에는 어떤 흥분이 있어야 한다. 일상은 그저 지리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어제 했던 일을 하며 평생을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격랑과 같이 사나운 지금이다. 부지런함은 미덕이지만 무엇을 위한 부지런함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저 바쁜 사람은 위험에 처한 사람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영역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 또한 매우 위험하다. 단순 반복적인 일로 매일을 보내고 있는 사람 역시 위험하다. 그가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지금 중요한 일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늘 바빠야 하는 강박감에서 벗어나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 개인만 성질이 급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국가적으로 급하고 빠르다. 금년 1992년은 프랑스에서 공화국이 최초로 나타난 지 200년이 되는 해다. 1789년 절대왕권을 무너뜨린 프랑스국민이 제1공화국을 수립한 것은 1792년이었다. 그 후 헌법이 여러 번 바뀌어 프랑스는 지금 1958년 이후 제5공화국에 이르렀다. 5개 공화국을 거치는데 프랑스는 200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40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프랑스를 추월하여 벌써 6공화국에 이르렀다. (p. 103)

 

Ü 역사상 가장 파괴적 전진에 우리는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 영혼이 남아 나겠는가?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으면 이상한 시선이 날아들고 멍하니 있거나 침묵을 즐긴다 하면 바보 취급 당하는 나라가 이 나라다. 파괴가 그렇게 진행되고도 아직 파괴할 것들이 남아 있는 모양인지 이 전진은 멈추지 않는다.

 

고향집과 글씨 한 폭, 武山齊

 

□ 내 어린 시절 철자법의 신비가 풀리던 작은 국민학교가 나타난다. (p. 107)

 

Ü 촌스러움. 그것은 현대의 문맥으로 풀어야 할 단어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어찌 촌스러울 수 있는가. 네온과 빌딩으로 둘러쳐진 서로를 비교하여 자존감이 상실된 곳에 사는 그네들이 진정 현대의 문맥으로 촌스러움이 아닌가. 적반하장이다.

 

정의와 어머니

 

프랑스 청년 : 자신이 믿는 정신적 가치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야

- 독일군 장교 : 이제 금방 한 그 따위 말을 한 번만 더 했다가는 당장에 이 총으로 쏴 죽여버리겠다.

- 프랑스 청년 : 나는 이제 금방 이렇게 말했소. 자신이 믿는 정신적 가치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라고 말이오.

- 독일군 장교 : 당신은 이제 막 당신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셈이요.

 

입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이 믿는 진리를 위하여 목숨이라도 바쳐야 한다고 근엄한 윤리를 부르짖으면서 행동으로 가장 먼저 자신의 목숨부터 구하려 하는 위선적 모순에 비한다면 그 프랑스 청년의 모순이야말로 감동적인 모순이다.

 

카뮈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말한 바 있다.

나는 정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정의가 나의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면 나는 어머니의 편을 들겠다.’

 

여기에 카뮈의 인간적인 교훈이 있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는 추상적 윤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날로 더욱 우리들을 억압하는 이 세상을 살면서 다시 한번 뜨거운 열정으로 음미해야 할 사상이 바로 카뮈의 이런 인간관이다. (p. 115)

 

Ü 누가 말했는가. 견딜만한 고통만 주어진다고. 생 거짓이 아닌가. 왜 그 고통은 날로 커져만 가는가. 우리는 견뎌야만 하는가.

 

카뮈의 이방인과 백포도주

 

□ 그러니 메르소, 당신 같은 그런 육신을 지니고 있고 보면, 당신의 유일한 의무는 오로지 사는 것이요 행복해지는 것이랍니다. –카뮈, 행복한 죽음 중에서- (p. 119)

 

사람들이 흔히 생활의 의의를 구하는 그곳, 즉 결혼 출세 등에서 삶을 찾으려고 했던 남자가 돌연 패션잡지의 카탈로그를 읽다가 자신이 스스로의 삶(패션잡지 카달로그에서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바의 삶)에 대하여 얼마나 이방인인가를 깨닫는다. 습관적인 삶으로부터의 각성. (p. 121)

 

□ 뫼르소는 죽음 (meur)과 태양(sault)이라는 카뮈 특유의 긍정과 부정을 균형 있게 종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탁월한 이름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p. 121)

 

□ 만사를 인위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로 설명하지 못하면 어느 것 하나 믿지 못하는 법정의 검사와 판사는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인간의 삶의 여정 저 끝에 필연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은 삶의 의미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무나도 짧아서 아깝기 그지 없는 삶을 작열하는 태양의 빛으로 만든다.

 

이리하여 뫼르소는 우리에게 절망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저 끝에 기다리는 필연적 죽음으로 인하여 더욱 찬란한 값을 지니게 되는 삶의 빛을 가르쳐준다. 부르고뉴의 명산 백포도주 뫼르소는 그래서 한 여름날, 너무나 짧고 행복한 한 여름날, 싸늘한 얼음에 식혀서 마시면 충천하는 태양의 맛이 나는 생명의 술이다. (p. 122)

 

Ü 이방인을 읽어야 한다.

 

화전민의 달변과 침묵

 

□ 문학소년으로서 서정주, 김동리 같은 신을 섬기는 것이 은근한 긍지였었다. (p. 123)

 

Ü 산의 신은 또 어떤가. 엄홍길과 페리체에서 조우하고 허영호와 같이 등반하는 것은 신과 함께한 긍지이지 않았는가.

 

□ 말의 매혹, 말의 신비, 말의 창조력, 말의 광채, 말의 지혜, 그리고 말의 무력함과 무의미. (p. 126)

 

Ü 그래서 침묵을 위해 말은 존재하는 것 같다.

 

오늘에 와서도 나는 속에, 혹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 속에 있는 말들을 마치 나 자신의 것이기나 하듯이 쓰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일을 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스스로에게 온 이 같은 행운을 기뻐할 뿐이다.’ (p. 127)

 

Ü 위의 말은 카뮈가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의 서문에서 한 말이다. 와 닿았다. 나 역시 그러하니.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 되고 무질서가 멈춰버린다.’ (p. 128)

 

Ü 카뮈는 그르니에를 위와 같이 말하였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감기에 걸리며 결석을 하고 그 결석의 체험을 통해서 질서에서 벗어난 불안스러운 인생의 자유를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기를 통해 우리는 자유의 목소리와 최초로 인사를 나눈다. 감기의 신열은, 체온기의 숫자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생의 흔들림을, 빈 의자의 공허를 번호가 등록된 출석부의 사선, 고무 같은 것으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사선의 의미를 가르쳐준다. 그러한 흔들림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도 공장이나 서류나 통계표나 규격이 똑 같은 아이비엠 카드나 제복이나 절망적일 정도로 정확한 법 조목의 문자들로부터 나 자신을 도피시킬 수 있는 생의 부름 소리를 그 유혹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p. 129)

 

Ü 이리 살아야 할 터.

 

2. , 글읽기, 문학

 

, 독서, 교육

 

□ 포위하고 있는 책들의 삼엄한 무게에 눌려 나의 모든 사고 기능이 정지되는 듯하던 고통스런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p. 136)

 

Ü 이 고혹적인 분위기와 지적 공기.

 

□ 고전이란 바로 다시 읽고 또다시 읽는 책, 읽을 때마다 새로워지는 그런 책이 아니겠는가. 부드러운 가죽표지로 정성스럽게 제본을 하고 금박의 제목을 붙인 저 해묵은 책들. 왼쪽 손바닥 위에 책등을 울려놓고 오른쪽 손의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책의 윗부분을 아주 살짝 들어올려서 페이지를 넘기는 책. 손가락에 침칠을 하여 페이지의 오른쪽 한 귀퉁이가 구겨지도록 거칠게 다루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책. 유리를 끼우고 자물쇠로 잠그게 되어 있는 책장 속에 애지중지 간직했다가 대대손손 물려주는 책. (p. 139)

 

Ü 고전의 가치란 이런 것.

 

□ 그들에게 있어서 독서의 흥미란 기쁨이 아니다- 시험의 공포에 의해서 인공적으로 지탱되고 있다. 학생들은 오직 성공하기 위하여 학점을 잘 따기 위하여, 혹은 선생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필요한 것밖에 읽지 않는다. (p. 143)

 

□ 학교에서 글쓰기와 글읽기를 배운다지만 그 배움은 항상 어떤 억압을 동반한다. 시험이란 바로 그 억압의 가시적 형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설도 시험의 대상이 되면 재미가 없다. 소설을 읽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억압의 또다른 형태의 하나가 교과서라는 것이다. 교과서는 독서의 알리바이다. 고과서는 독서를 권장하는 대신 독서를 방해한다. 특히 국어교과서가 그렇다. 잡다한 짧은 글들을 모아 따분한 방식으로 조판한 단 한 권의 책으로 학생들은 그 밖의 모든 독서를 면제받는다 (그러나 시험준비용 연습문제집의 독서만은 치열하게 계속된다) 교과서는 독서의 시작이 아니라 독서의 끝이다. 교과서는 책이 아니라 시험범위다. (p. 144)

 

Ü 수많은 구조적 억압 중에 하나를 또 찾는다. 그랬다. 교과서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 영혼의 어깨를 찍어 누르던 억압기제였다.

 

□ 한 일생의 가장 꽃다운 시절의 시간과 정열의 투자 방법과 방향을 결정하게 되어버린 것이 이 나라의 대학입학시험이다. (p. 145)

 

Ü 따지고 보면 그렇다. 대학입학을 관장하고 실행하는 행정가들이 어떤 변별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주관이나 생각은 과연 수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뽑아낼 것인지에 대한 깊은 철학이 있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 모두는 멍청한 이 나라 교육 행정가들의 희생양이 아닐 수 없다.

 

□ 획일과 폭력적 전체주의적 선택으로 가는 첫걸음. 마음속의 떨림도 사색의 신중한 망설임도 언어의 여운도 허락하지 않는다. 해결에 이르는 고통스럽지만 흥미로운 과정보다는 무한히 연속되는 가치의 스펙트럼보다는 사고의 변증법적 지양보다는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과 그것도 단 한가지만의 결과를 강요한다. (p. 146)

 

Ü 지금 저자는 4지선다형 시험 문제의 천박함을 일갈하는 중이다. 동의한다. 말이 되는가. 4개 중 하나의 답을 고르는 일. 다른 어떤 경우를 수용하지 않는 무식함. 그런 교육에 일찌감치 파탄 나고도 남을 이 나라는 그나마 그 공부를 충실히 따르지 않은 저성적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씻고 자세히 보자. 이 나라를 말아먹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지를. 그들이 증오해 마지 않는 저학력자들인가?

 

□ 쾌락을 가져오는 것은 바로 타자와의 투쟁이다독서가 주는 쾌락은 직접적으로 저자의 의지와 독자의 그것 사이의 대결의 유희와 관련이 있다. 따분한 독서란 아무런 저항도 일으키지 않거나 너무 많은 저항을 일으키는 요컨대 놀지않는 독서이다. (p. 153)

 

Ü 노는 것. 제대로 노는 것. 오래 노는 것. 신나게 노는 것. 매일 노는 것. 같이 노는 것. 이렇게 노는 방법을 아시는가?

 

□ 궁극적으로 동일한 독자에 의한 동일한 텍스트의 모든 재독은 일종의 인용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텍스트를 독자의 새로운 인식과 창조의 콘텍스트 속에 삽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독서란 그러므로 텍스트 속에서 의미론적 총체들을 점 찍어내어 분리시킨 다음 그 총체들을 가치로서 고정시키고 기호로서 재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p. 154)

 

Ü cotext : 맥락, 문맥, 전후 사정. Text : 본문, , 문서, 문서화 : documentation, 인용 : quotaion, an apt quotation (적절한 인용)

 

좋은 책은 누가 만드나

 

□ 책이 있어야 책으로부터 눈을 떼는 것도 가능하다. 세상을 잊은 채 빠져 있던 책에서 고개를 들고 저무는 빛이나 단풍 든 나뭇잎에 떨어지는 초가을의 광채를 그윽히 바라보면 그 깊이가 달라진다. 식자우환일까 먹물의 근성일까. 그래도 좋다. (p. 176)

 

Ü 저자는 천상 먹물? 이다.

 

□ 독자들에게 양서의 판별능력과 왕성하고 조직적인 지적 욕구가 없는 한 오직 지구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신문 방송의 거대광고가 독서 경향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p. 178)

 

Ü 그리하여 베스트셀러는 허구가 된다. 베스트셀러를 쓰려거든 붓을 놓아야 할 터. 치닫지 말자.

 

□ 읽고 다시 읽고 소리 내어 또 읽고 더러는 몇 페이지를 암송하고 싶은 책, 다시 읽을 때마다 그 의미와 목소리와 깊이가 달라지는 책, 그것이 좋은 책, 창조적인 책이다 (p. 178)

 

책이 없는 방, 절간 같은 방

 

□ 내 가버린 뒤도 세월이야 그대로 흐르고 흘러가면 그뿐이오라

나를 안어길으는 山川萬年한 양 그모습 아름다워라. (p. 183)

 

Ü 영랑의 시다.

 

시와 침묵

 

□ 시의 세계로 들어갈 때는 떠들썩한 관광객들처럼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그리고 저 침묵의 심연을 껑충 건너뛰어 들어서는 것임을, 시는 언어의 벼랑 끝에서 문득 마주치는 침묵의 충격임을 나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p. 190)

 

인용과 천천히 읽기

 

□ 나 자신의 것보다는 남에게 발언권을 한동안 넘겨주어 본 것이다. 하기야 독자나 겸손한 평론가의 할 일 중 중요한 몫의 하나가 적절한 대목에서 남에게 발언권을 넘겨주는 사회자나 진행자의 그것일 터이다. 이것이 바로 인용의 기능이다. (p. 193)

 

Ü 발언권이었다. 남에게 너무 많은 발언권을 넘겨버리면 정작 자신은 말을 하지 못한다. 적절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p. 194)

 

Ü 국화꽃 옆에서 미당이 국화를 유심히 관찰하고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벌판을 다시 한번 훑어본 후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힌 후 땅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어가는 그 광경을 상상한다. 그리곤 국화꽃에서 누님의 그 오랜 헌신을 가려내는 사유의 알곡을 상상한다.

 

□ 혼자이기 때문에 주변의 사물과 정경과 분위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p. 196)

 

고향에 가지 못한 추석에 읽는 글

 

□ 그들은 도살장으로 가고 있었다. 나팔 같은 주둥아리에 뜨물 묻은 겨도 없이 작은 눈으로 교통신호등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차가 움직이면 그 허연 살덩어리들이 출렁거리며 한쪽으로 쏠렸다. 끼익끼익하며 비갯덩어리의 비명이 자동차 소음 사이로 잦아들었다. (p. 201)

 

Ü 살찐 돼지들이 차에 실려 도살장으로 가는 풍경이다. 리얼 보다 더 리얼한 묘사.

 

□ 말을 주고받는 속도, 그리고 무엇보다 말과 말 사이에 가득한 침묵과 그 침묵 속에 함축된 심리 (p. 203)

 

□ 바가지 밑을 왼손바닥으로 훔치는 (p. 203)

 

□ 소설 속의 디테일들이야말로 말로 만든 삶, 글로 지어낸 행동에다가 현실의 두께와 무게를 부여한다. 시간의 흐름도 이 같은 디테일로 인하여 추상적으로 건너뛰는 양적 시간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체험적이고 질적인 시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것이 베르그송의 체험적 시간이다. (p. 204)

 

Ü 그렇구나, 이런 디테일의 모습들을 많이 발견하고 글과 말로써 축적해 놓는 것은 뭉텅이로 망각되는 시간들을 구체적인 특정 체험으로 잡아놓는 방편이 되겠다.

 

□ 독자가 어떤 작품을 읽고 이념적으로 눈뜨고 사상적으로 각성하기를 기대하는 작가는 어리석다. 그러나 삶의 무게와 두께가 실려 있는 작품이 독자의 덧없는 생활 속에서 비길 데 없는 한 순간들을 이루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 순간은 단순한 오락의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의 현실 속에서도 무엇인가에 의하여 간접화되어 있는 듯이 느껴져서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던 삶이 돌연 어떤 의미와 영상의 결정체로 변하여 가슴에 직접 닿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가끔 삶의 우연성, 존재의 우발성으로부터 벗어나 어떤 진실의 핵심에 가 닿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를 삶의 저 돌연한 통일성의 순간으로 데려가 주는 것, 그것이 반드시 어떤 엄청난 사상이나 논리는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돌연 뚫리는 수직의 화살 같은 빛이 전에 보이지 않던 삶의 딴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예술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은 사실이나 있는 현실을 그대로 그리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존재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낸다. 예술의 통로를 거쳐서 만나는 삶이 참다운 삶인 것은 그것이 창조된 삶이기 때문이다. 언어로 창조된 그것이 삶이 되는 것은 바로 디테일로 이루어진 두께 덕분이다. (p. 205)

 

Ü 그러나 아무리 두꺼운 창조의 디테일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삶에 비기지는 못한다. ‘누가 너를 빚어냈는지 알려 하지 마라. 너는 대지에 발붙이며 섰고 한계와 조건으로 살게 되었다. 피와 살이 없어진 뒤 무엇으로 되려는지 궁금해 하지 마라. 중요한 건 너의 머리에 햇살이 내리쬐고 너의 육근은 울퉁불퉁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기뻐하는 것, 늙어 흘러내리는 육에 기쁨을 선사하는 것, 유한한 육을 무한으로 확장하는 마음을 누리는 일이다.’

 

문예부흥과 고전

 

□ 언어의 인력에 충동되어 당장이라도 만사 제쳐놓고 읽기 시작하고 싶을 때가 많다 (p. 208)

 

□ 날이 갈수록 수다스러워지고 내용이 부실해지고 동어반복적이 되어간다 (p. 211)

 

현대문학과 나

 

□ 한 인간이 이룩한 작품이란 예술이라는 긴 우회의 길들을 거쳐서 최초로 가슴을 열어 보였던 한두 개의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이미지들을 되찾기 위한 긴 도정에 지나지 않는다 (p. 223)

 

Ü 한 단어를 위해 몇 일 밤을 새는 작가, 거지를 그리기 위해 거지가 되는 미술가, 득음을 위해 눈을 멀게 하는 명창.

 

잃어버린 청춘에 바치는 슬픈 찬가

 

□ 빈 속에 길 잃고 얼어붙은 채

외롭게 무일푼의

열여섯 살 소녀가

꼼짝않고 서 있는

콩코르드 광장

정오 팔월 십오일. (p. 224)

 

Ü 짧은 시, 긴 여운, 다시 침묵. 모두는 vacation이라 떠나버린 파리, 찌르릉거리는 햇빛, 그리고 광장의 소녀.

 

□ 그가 돌아온 한여름의 파리는 그냥 하나의 공간만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그릇 속에 담겨 있는 아니 메어져 있는 어떤 시간이다. 노자가 그랬던가? 사람들은 진흙으로 항아리를 빚어 만들지만 정작 유용한 것은 항아리가 아니라 그 항아리 속의 비어 있는 공간이다. (p. 226)

 

Ü 천 년의 탑과 절이 있는 공간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시간을 흘러 푸르던 단청은 바랬고 웅장하던 탑은 무너졌지만 여전히 남은 그 잔여 앞에 그들의 신념과 영혼은 변하지 않는다.

 

□ 지하철 복도 모퉁이를 돌다가 돌연 맡게 되는 어떤 냄새일 수도 있고 전화번호부 속에서 찾아낸 어떤 전화번호일 수도 있고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방치해둔 어느 방 책상서랍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낡은 선글라스일 수도 있고 책장이 떨어져나간 수첩 속에 기록된 옛날의 어떤 주소일 수도 있고 관광택시 운전수가 즐겨 바르는 화장수 냄새일 수도 있다. (p. 227)

 

Ü 여전히 남아 있는, 변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 지난 이십 년 동안 그 여자는 감속된 속도로 혹은 동면 상태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p. 227)

 

여름 한낮에 찾아 드는 돌연한 공허 (모디아노의 신혼여행)

 

□ 속을 쑤시는 (죽은 김현은 이런 표현을 자주 썼다) (p. 231)

 

Ü 김현, 한국어의 속살에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가까이 파묻혀 있던 한국인.

 

□ 몇 페이지를 읽고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아무 생각 없이 풍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계속하여 읽는 그런 책이다. 아까 어디까지 읽었었던가 하고 확인하다가 그만 처음부터 다시 읽는 책, 그래도 전혀 섭섭하지 않은 책, 문장의 질감을 곰곰이 되씹어보고 그 순간의 억양, 침묵, 망설임, 아쉬움, 그리고 또 침묵을 마음속에 되살리고 싶을 때 읽기 좋은 책이 모디아노의 소설이다. (p. 234)

 

Ü 이렇게 쉽게 상상하게 만든다. 글은 이런 것이다.

 

□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애쓰는 것이다.-시인, 르네 샤르- (P. 238)

 

Ü 이건 좀 눈물겹다.

 

□ 위인이나 명사들의 전기는 많은 경우 외면적인 사실이나 껍질을 드러내 보여주는 허구이기 쉽다. 이름 없는 사람, 수많은 기억과 흔적들이 다 바스러져버려서 허다한 곳이 빈 칸과 어둠으로 남아버린 퍼즐 같은 사람의 생애, 그렇다. 그냥 우리들 각자의 삶, 그렇게 바스러져버린 것이기에 우리들에게는 더욱 아쉽고 귀중하고 더욱 깊은 어둠이 되는 그 삶의 조각을 다시 거둬 맞춰보려는 것이다. (p. 238)

 

Ü 나는 바람에 쓸려갈 덧없는 것들이 눈물겨운 삶을 살아내는 사태를 설명하지 못한다. 저절로 태어나 비루한 생을 살아가는 70억의 각 사태에 대하여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을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 스스로도덧없는 것이 되어서 비에 젖어 쓸려가지 않겠는가. 우리 어깨에는 자신의 전후를 설명해내야만 하는 책임이 각자가 짊어진 운명의 무게만큼 얹혀져 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인이듯 또한,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역사가다.

 

□ 이제 링차 주일이 지나면 장B.의 실종을 알리는 기사가 어느 신문엔가 날 것이다. 아내 아네트는 내 지시에 따라 내가 마지막 브라질 여행중 대자연 속에서 실종된 것이라고 믿도록 만들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나는 실종된 탐험가들의 명단에 오르리라. 아무도 내가 파리 변두리 시문께로 돌아와 묻혀 지낸다는 것을 알지 못하리라.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내 여행의 목적이었다는 것도 알지 못하리라. (P. 241)

 

Ü 매우 흥미롭다. 모디아노의 신혼여행을 읽어보자.

 

40대 후반이 되면 왜 사람들은 증발하는 것일까?

상황이나 무대장치야 아무려면 어떠랴. 어느 날엔가 그런 공허와 회한의 감정이 밀려와 우리를 뒤덮어버린다. 그러고는 썰물처럼 물러나면서 사라진다. 그러나 그 감정은 결국 또다시 거세게 밀려들고야 마는 것이어서 그 여자는 그걸 물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p. 242)

 

Ü 미리 가보지 않으련다. 살다 보면 자연스레 오겠지. 그때 느끼고 그때 대처하고 그때 다시 살아가면 되겠지. 그러나 왜 이리 슬픈가.

 

진리 탐구로서의 문학과 성장소설로서의 비평 (츠베탕 토도로프의 탐구)

 

□ 진짜 삶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삶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온다. , 가치, 진리, 그리고 윤리의 문제를 제기해오는 것이다 (p. 247)

 

Ü 살아지는 대로 살아서는 안될 이유다. 유한한 삶이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가치 없어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여 나와의 관계 맺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애쓰는 것이다.’라고 한 시인, 르네 샤르의 말이 맞아 들어가는 것이겠다.

 

문학이란 그것 자체 속에서 목적을 찾아내는 언어’ –츠베탕 토도로프-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 판단할 권리가 있다는 확인이 종래의 초월적 모색을 대신하면서 이 경향은 미학뿐만 아니라 윤리와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현대는 바로 이러한 개인주의와 상대주의로 특징지어진다.’ (p. 248)

 

□ 텍스트가 말해주는 단 하나의 진실은 바로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접근 불가능하다는 진실이다. (p. 250)

 

진실을 소유하느냐 아니면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느냐 그 양자 중 하나의 선택으로 우리 앞에 열리는 모든 가능성들이 다 바닥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토도로프는 말한다. (p. 252)

 

Ü 혼란스럽다.

 

□ 레싱은 어느 날 신을 만났다. 신은 그에게 말했다. 내 왼손에는 언제나 아직 달성되지 못한 진실의 추구가 담겨 있고 내 오른손에는 마침내 밝혀진 진실이 담겨 있으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신이 그에게 말했다. 레싱은 왼쪽 손의 미완성의 진실의 추구를 택하면서 말했다. ‘신이여, 순수한 진실은 당신의 것입니다.’

 

이처럼 진실을 소유하는 것은 독단론에 빠지거나 스스로를 초월자로 착각하는 오류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진실의 모색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레싱은 말한다. ‘진실은 도덕적인 것도 부도덕한 것도 아니다. 진실은 가치가 아니다. 진실을 열망하고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 태도이다.’ (p. 252)

 

Ü 진실이 있는가. 답이 있는가 말이다. 모든 일에 가치에 윤리에 답이 있었다면 세계는 어떤 식으로 변모했을 것인가.

 

□ 나는 내가 나 스스로와 동일화하면서 읽어본 그 저자들을 분석함으로써 낭만주의를 극복해보려고 노력하는 그 낭만주의자였고 또 지금도 그렇다…(미완성의) 성장 소설에 불과하다.’ 토도로프는 가치와 진실과 윤리를 모색하는 오늘의 토도로프는 바로 진실을 추구하는 중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성장소설을 쓰는 중이다. (p. 253)

 

3. 영화, 미술

 

억누를 수 없는 매혹

 

□ 폭력, 섹스영화의 영향으로 청소년들의 정서가 침해 받는다는 점잖은 어른들의 소박한 심리학을 나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p. 258)

 

Ü 나 또한

 

잃어버린 뒤에야 존재하는 사랑 (장 자크 아노의 戀人)

 

글을 쓰는 손의 살갗으로 변한 스크린을 주목하라. 펜이 되어 백지 위에 깔리는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라. (p. 263)

 

Ü 도대체 이런 심상은 어디에서 가져 오는가.

 

□ 경험이 있고 그 경험에 대한 참담한 인식이 있고 그 인식으로서의 글쓰기가 있고 그 글쓰기를 삶의 현실 속에 살려내는 감정의 고고학과도 같은 목소리가 있다. (p. 264)

 

□ 의학용 내시경 카메라로 특수촬영한 살과 혼의 광활한 춤, 사막을 쓸고 가는 바람의 파도, 내일이 없는 사랑. (p. 267)

 

□ 나는 그 소리와 냄새들 속에서 그의 몸을 애무한다. 한데 모였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바다와도 같았다 (p. 268)

 

Ü 밀회의 순간에 들려오는 소음. 그 소음 마저 밀회하는 감각.

 

너무 지나치지 않게, 그러나 깊숙이 사무치게 (p. 272)

 

스크린의 문법 (사랑을 위하여, dying young을 보고)

 

□ 고급 생고기 요리 (그러나 그것이 과연 생명의 고기일까?)를 먹는다. 그러나 그곳은 야성의 싱싱함과는 거리가 먼 죽음의 세계다. 살균된 세계다. (p. 280)

 

Ü 살균된 개인을 원하는 사회, 표면 처리된 자아만을 요구하는 공동체. 그 속에서 저항하는 개인.

 

바람을 담는 집 (뉴욕에서 온 화가 김원숙의 그림)

 

□ 원초적 몸짓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미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뒤에 자연발생적이 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p. 282)

 

Ü 환동의 경지는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그 환동의 경지에 이른 사람의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수묵, 그것은 조형을 위한 예행연습이라기보다는 시간과 속도, 마음의 흐름의 기록이다. 수묵은 끊임없이 그것이 만들어가는 형태의 사실성 (적어도 부분적으로는)을 부정한다. 따라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나 시냇물이나 사람이기에 앞서 획이며 동작이며 붓의 속도다.

 

붓이 여자의 머리털을 그린 것이 아니라 붓이 달리는 중에 여자의 모습, 여자의 머리털이 생겨난 것이다. (p. 283)

 

□ 역동성은 전염한다. 시냇물이나 바닷물, 도처에 타오르는 불꽃은 모두가 흐르고 달리고 휘몰고 출렁거린다. (p. 284)

 

□ 달리는 획은 어디에선가, 꼭 알맞은 곳에 멈추어야 한다. (p. 285)

 

□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고 그림은 주제와 획과 색채와 마음의 역동성을 담는 집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안과 밖, 내용과 형식, 구속과 해방, 방황과 안정의 긴장 관계를 설정한다. (p. 285)

 

□ 그의 그림은 더도 덜도 아닌 곳, 붓이 꼭 멈추어야 할 곳에서 멈추면서 군더더기 없는 단순성으로 통일되고 있다그러나 이 같은 단순성과 소박함은 극도의 긴장과 내적 통제력의 소산이다김원숙이 겨냥하는 것은 바로 이 단순함 속에 압축되어 있는 규율, 즉 미적 폭발의 잠재력일 것이다. (p. 287)

 

Ü

 

프랑스 설치 미술 8인전 연출’ (1996년 호암미술관)

 

□ 모른다. 변한다. 증거한다. 없지 않다. 띠들이다. 발산한다. 느낀다. 심상치 않다. 가중시킨다.

 

미당 서정주의 걸작 산문시 新婦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니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걸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버렸습니다. (p. 292)

 

Ü 걸작이다!

 

□ 가죽을 벗기고 머리를 잘라내어 내장을 비운 짐승의 통짜 몸뚱이들이 푸줏간의 냉동창고에서처럼 주렁주렁 거꾸로 매달려 있다 (p. 293)

 

Ü 남체 바자르의 푸줏간을 설명하자.

 

□ 분석이란 구성요소들의 해체(분해)인 동시에 결합(재구성)이다.

 

고전적인 의미의 조각에 쓰이는 재료인 대리석이 가루로 파열되어 모래밭이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래밭은 이미 재료의 분석이며 해체다. 그 모래밭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는 관객은 걷는 동작에 의하여 발바닥으로 모래알들을 분리시키기도 하고 결합시키기도 한다. (p. 297)

 

엑상 프로방스와 폴 세잔느의 아틀리에

 

□ 서른 살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p. 300)

 

Ü 능선에서 바위에서 빙벽에서 나는 서른 살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 쥬라기의 지각변동과 함께 석회암이 사납게 구겨지며 이루어진 이 웅장한 바위산은 붉은 석벽의 대지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 같기도 하고 하늘의 구름더미가 무너져 내려앉은 것 같기도 하다. (p. 301)

 

이 늙은 신과 같은 산 (p. 302)

 

Ü 생뜨 빅뚜아르 산

 

중요한 순간은 그가 혼자서 풍경 앞에 마주하고 서는 때이다. 산과의 대면. 이 암산의 돌더미는 시간에 따라 빛을 포착하는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 햇빛의 물결 속에 몸을 적시거나 푸른 하늘 속으로 불쑥 솟아오르거나 반대로 구름 속으로 들어가 바위의 회청색으로부터 산자락의 붉고 보랏빛 나는 흔적에 이르기까지 온갖 채색구름들 속을 지나가는 그 특유의 방식으로 인하여 산과의 대면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진지한 의식이 되는 것이었다.’ (p. 302)

 

Ü 폴 세잔느는 생뜨 빅투아르 산을 바라보며 붓을 놀리고 말했다.

 

빛나는 표피와 생생한 색깔을 가진 둥근 과일인 사과는 과연 볼륨과 공간과 빛과 색채의 문제를 모듈레이션을 통하여 동시에 조절하고자 하는 예술가에게는 이상적인 오브제다. 더군다나 대자연을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축약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사과야말로 문제적 대상 그 자체인 것이다. 그것은 둥글되 완벽한 원구가 아니고 화폭이라는 상상의 공간에 옮겨놓은 그 형태는 결코 그 자체로 원이 아니면서 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p. 306)

 

Ü 사과 예찬

 

□ 사실 옛적의 한적하던 이곳 자연풍광 속으로 오늘은 도시의 잡담이 거침없이 침범해 들어와 있다. (p. 312)

 

시간을 기어이 한 줄로 세워 그 조화를 헝클어놓는 인간의 괴벽을 개탄했던 세잔느가 아니었던가 (p. 316)

 

로댕미술관 비롱 관 (파리 한복판에서 만나는 침묵의 집)

 

침묵이란 소음과 대조를 통해서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그곳의 침묵에는 정말이지 압도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침묵은 귀를 잠재우고 오직 눈으로만 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p. 323)

 

Ü

 

□ 상류사회의 폭넓은 지면을 활용 (p. 326

 

르누아르의 집 레 콜레트’ (삶에 대한 열광의 고전주의)

 

50년대 우리들은 가본 일도 없는 먼 나라의 세계 3대 미항같은 것을 손꼽아 암기하면서 공허하고 배고프던 긴긴 날을 달래었던가 (p. 330)

 

□ 나그네의 마음이 머물어 잠시 쉬는 곳. 그곳에는 침묵과 공간의 넓이와 한가로움이 있어야 한다. (p. 331)

 

그의 핏속에는 불행하게도 언제나 변화를 요구하는 바람기가 담겨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병으로 인해서 더욱 심해졌다 (p. 331)

 

□ 하녀가 끈으로 붓을 비끄러매어주면 (p. 335)

 

□ 나는 인상주의의 궁극에까지 갔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가 색을 칠할 줄도 데생을 할 줄도 모른다는 사실의 확인에 도달했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궁지에 몰린 것이다. –르누아르-(p. 336)

 

Ü 내 언젠가 이런 궁지에 몰릴 것이라 확신한다. 이유가 지금 너무 많은 기름기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찐 살 쉽게 빠지지 않는다. 심한 충격에 혹독한 감량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 궁지에 몰릴 것이다.

 

나는 내 인물들이 그 뒤의 풍경과 한덩어리가 될 때까지 인물들과 부둥켜안고 몸부림친다. 나는 인물이건 나무들이건 밋밋한 것이 되지 말고 살아서 고동치기를 바란다.’ –르누아르-

 

높이 1.1m 1.6m의 대작을 앞에 세워놓고 올리브나무 숲 속에 일부러 지은 야외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불구의 팔십 노인 화가를 상상해보라. “이 두 여자는 신의 가장 탁월한 작품들이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나는 이 걸작을 완성하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 이제 나는 작품이 끝난 줄만 알았다. 단 하나의 획도 덧보탤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은 충고에 능하다. 이제 삼사일만 더 손질하면 회화적 깊이가 생기겠다.”’ 이 무렵 그에게 찾아온 마티스에게 르누아르가 한 말이다. (p. 338)

 

印象主義 인상주의의 고적한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

 

자기가 살고 있는 곳 이외의 장소로 무슨 용무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바라보는 기쁨, 관조의 그윽함, 새로운 공간에서 얻는 쾌락만을 위하여 여행하는 것을 뜻하는 관광에 인간이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p. 341)

 

Ü 관광은 좀스러운 것이다. 편협하고 편리만을 추구하는 현대 인간이 고안한 무식한 여행 방법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관광을 꽤 했다.

 

□ 우리는 관광하는 일에도 노동 못지않게 허둥지둥 바빠져버렸다. 단시일 동안에 보다 더 많은 곳을 찾아가서 구경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처럼 우리를 내몬다. 첫새벽 우리를 따뜻한 침대로부터 몰아내는 요란한 모닝콜, 잠도 덜 깬 채 가져다 먹는 호텔의 뷔페식 아침식사, 허둥지둥 묶어서 호텔 방문 앞에 내놓아야 하는 그 무거운 트렁크, 단체 관광객을 싣고 사정없이 내달리는 버스, 낯선 도시에의 어리둥절한 도착, 그리고 잠시 숨돌릴 참도 없는 궁전과 교회와 박물관 구경, 그리고 한번도 빼놓는 일 없는 백화점과 시장의 쇼핑, 그 결과 기나긴 관광코스의 끝에 남는 것은 참다운 기쁨보다는 주체할 수 없이 쌓인 피곤과 주체할 수 없이 쌓인 기념사진들뿐인 경우가 많다 (p. 342)

 

Ü 고개 숙인다. 부끄럽다.

 

□ 여행은 지식을 쌓거나 견문을 넓히거나 어디어디에 가본 사람들 축에 끼이는준비 작업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짧고 귀중한 내 일생의 한 부분이다. 즉 삶의 연장인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살고 있고 우리의 일생의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그러기에 여행은 가급적 순간순간이 참다운 내것이어야 한다. , 내가 만난 얼굴, 내가 걸어 다닌 거리와 산천, 혹은 나의 전신에 와서 닿는 저 고즈넉한 빛이나 바람, 그것이 주는 행복감 혹은 흥취여야 한다. (p. 343)

 

Ü 무엇은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해라체의 그 거만함과 일방통행을 무지하게 싫어하지만 여행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받아들인다. 그것도 아주 깊이. 내 그렇게 하리라.

 

키 크고 깡마르고 붉은 머리에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상을 풍기는 이 사회주의자는 (p. 346)

 

Ü 인물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백 년 동안 시들지 않는 꽃 (아를르와 생 레미의 고흐를 찾아서)

 

□ 해묵은 돌로 풍경 속에 깊숙이 파묻힌 자연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돈 냄새가 물씬 나는 원색 지붕을 얹어 풍경을 망쳐놓는 것이다 (p. 355)

 

□ 일손을 놓으면 받는 퇴직금이란 바로 이런 데 쓰는 것이구나하고 나는 감탄했다. 일생 동안 모은 돈으로 산이 보이는 경치를 샀으니 (p. 356)

 

Ü 모롱 부인 이야기다. 행복의 충격에서 저자에게 모롱 부인은 말했다. ‘나는 당신이 동양에서 왔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 당신이 젊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의 청춘에 깊은 질투를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소유하는 것이라고 해서 청춘이 흔한 것은 아닙니다. 청춘보다 더 높은 긍지는 없습니다.’

 

□ 감정의 표시가 없는 이 단순하고 절제된 구도 뒤에는 휘몰고 간 질풍노도의 기억이 가라앉아 있다 (p. 357)

 

□ 백 년 전에도 바다는 저렇게 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여름 볕 속에서 웃고 있었을 것이다. (p. 364)

 

□ 별이 뜬 밤은 바로 저 강둑에서 본 마음의 고독과 꿈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어느 폭격으로도 무너지지 않는 프로방스의 태양은 지금도 아를르의 하늘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p. 366)

          

 

3. ‘산문문학의 윗자리(내가 저자라면)

행복에 충격 받아 내쳐 바람을 담는 집을 읽었다. 그의 여러 책 중 무얼 읽을까 하다 바람을 그 제목에 걸어둔 자유스러움에 이 책을 택했다. 묘사 너머의 묘사,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묘사 앞에 내 글이 무참하여 그에 대한 질투가 여간 많지 않을 때 전의는 급격히 가라앉고 패배를 받아들인다. 편해진다. 언젠가 그의 글, 그의 표현 중에서 내 가슴에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조각들을 수습하여 언어라는 기호로 내 사유인양 흘려 낼 것을 예감한다. 까뮈가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 를 인용하며 말했던가

 

오늘에 와서도 나는 속에, 혹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 속에 있는 말들을 마치 나 자신의 것이기나 하듯이 쓰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일을 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스스로에게 온 이 같은 행운을 기뻐할 뿐이다.’

 

그의 두꺼운 수필집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었다는 것이 후회가 된다. 책을 소장하기를 누구보다 좋아하고 책장의 책이 장소가 조금만 달라져도 눈치채는 나에게 그의 책 바람을 담는 집이 내 책장에 없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빈 자리다. 나의 손 때 묻은 그의 책이 다시 보고 싶을 때 언제든 화정글샘도서관에 들러 빼 보리라. 내 육필이 지나가고 내 사유가 스며든 그 책을 말이다.

 

그의 글은 많은 영감을 준다. 예를 들면 그의 핏속에는 불행하게도 언제나 변화를 요구하는 바람기가 담겨 있었는데라는 내면의 묘사에서 시간을 기어이 한 줄로 세워 그 조화를 헝클어놓는 인간의 괴벽같은 통찰의 묘사, ‘이 늙은 신과 같은 산과 같은 장면의 묘사에 이르기까지 그 묘사는 마치 그림을 앞에 놓고 그림을 읽어주는 것과 같은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묘사다.

 

글은 묘사가 팔할이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내가 쓰려는 책은 사진이 주를 이룰 수 있음에도 모든 책에서 사진을 뺄 생각이다. 저자의 글을 읽은 후 사진은 오히려 글의 묘사를 방해하고 문맥과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았다. 사진 없는 여행기, 그 아득한 모험을 이제 나는 저자의 글을 담보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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