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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1일 02시 41분 등록

사기열전 1

사마천 지음/김원중 옮김/민음사

 

1. 저자에 대하여

 

사마천

(p5.'역사서문'에서)

『사기』는 사마천이 사관인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역사서를 집필하라)는 유언을 따르고자 궁형의 치욕을 딛고 저술한 통사체 역사서이다. 전설의 황제시대로부터 한 무제 때까지 2000년을 아우르고 있다.

 

 

(해제에서)

14. 사마천(기원전 145년?~90년?)은 자가 자장子長이며 용문(섬서정 한성시)출신으로 사마담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마담은 한 무제 때 태사령에 임명되었고 도가를 충실히 받들었다.

 

사마천은 20세에 여행을 시작하여 중국 전역을 주로 돌아다녔으며 돌아온 후에 낭중에 올랐다. 무제를 따라 순행하면서 거의 온 나라를 주유했다. 어디를 가든 고적을 탐방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사마담 사후 3년에 사마천은 태사령이 되어 무제를 시종하면서 한실의 장서가 있는 석실금궤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면서 4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태초원년(기원전 104년)에 사기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하던 중 장수 이릉이 흉노와 싸우다가 투항하였는데, 이는 이씨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 뿐 아니라 한나라 조정에 체면을 깍아내린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릉이 어쩔 수없이 투항했다고 여겨 홀로 무제 앞에 나아가 적극적으로 변호하였다. 결국 이일로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사형, 돈 50만전으로 죽음을 면하는 것, 궁형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궁형을 감수하였다. 그로부터 5년후에 다시 무제 곁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는지 20년만에 완성되었다. 그 후 몇 년 후에 사마천은 세상을 떠났다.

 

『사기』의 구성

본기 12편 : 왕조나 군주의 사적을 연대순으로 기록

표 10편 : 연표로서 연원, 서문, 역사에 대한 논평을 기록

서 8편 : 전장제도를 기록하고 있어 문화사나 제도사를 볼 수 있다.

세가 30편 : 봉건 제후들의 나라별 역사(공자와 진섭이 포함된 점이 이채롭다)

열전 70편 :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했던 인물들, 신분을 초월하여 기록.

 

열전의 70편과 세가에 포함된 공자와 진섭을 포함하면 72편이 되며, 세가는 28편이 되어, 별자리 28수와 일치하여 이는 천지와 음양의 수, 진법을 기초하이 구성으로 보인다.

 

사기의 특징은 본기와 열전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먼저 시대순으로 제왕의 언행과 행적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중대한 사건을 서술하고, 제왕이나 제후를 보화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사료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역사의 발전적 흐림과 사물을 본질을 통찰하는 안목을 보여주었기에, 이 책이 오늘날까지도 지혜로운 삶의 지침서로서 왕성한 생명력을 보인다. (p.13) *옮긴이의 말

 

열전 70편에는 각 전의 마지막 부분에 ‘태사공은 말한다’라고 하며, 각 인물을 열전으로 실은 이유와 그 인물을 조사하기 위해 지역을 직접 탐방하며 느꼈던 점, 그 인물들이 고전 속(논어)의 경구와 비교하거나, 혹은 비판을 싣고 있다.

 

사마천은 자신이 입수한 문헌 가운데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들을 먼저 고르고 기기에 평가를 더했다. 독자로 하여금 선을 행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렇지 않은 자는 화를 입게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p20) *옮긴이의 말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p24)

 

『사기 열전』에 적잖은 주관적 서술이 보이는데, 사마천 자신의 사료 비판 능력과 어우러져 탄탄한 역사 서술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사마천의 혼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기 열전』의 서술 방식에는 냉정한 이성과 처절한 열정을 갖고 살아간 시대적 거장들의 숨결이 행간마다 녹아있다.(p.25) *옮긴이의 말

 

사기는 세상에 나오고도 오랫동안 왕실과 역사가들에게 소외된 채 몇 세기를 보내야 했다. 더욱이 한 무제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아버지 경제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신랄하게 비반한 것을 두고 매우 노여워하며 이 두 ‘본기’를 폐기하도록 했다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무제의 영토 확장 정책에 대한 사마천이 신랄한 비판은 사기의 「봉선서」와 「평준서」를 비롯하여 열전 곳곳에서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p25) *옮긴이의 말

 

2.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역자 서문

6. 예나 지금이나 전쟁만큼 큰 죄악은 없다. 그러나 춘추 전국 시대에는 전쟁이 필요악이었다. 전쟁이 소용돌이 한 가운데 속에서는 그 누구도 먼저 평화를 주창할 수 없었다. 모두들 강한 군대를 양성해 부국강병을 꾀하는데 골몰했다.

 

해제

 

17. 『춘추』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사마천의 생각은 부친의 사마담이 견해와 일치되는 것이며,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지난 당시에 공자의 사상을 누군가가 계승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비롯되었다.

 

17. 사마천이 태사령이라는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서 순수하게 개인의 자격으로 저술에 임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17. 사마천은 아버지와 함께 무제 곁에서 절대 권력자의 영토 확장 야욕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또한 무제를 수행하면서 각종 성대한 의전 장면이나 열병의식 및 수렵활동 등을 통해 당시의 시대 정신을 터득하기도 했다.

 

21. 사기 열전의 독특한 인물의 선택, 서술 방식은 역사는 결코 지배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24. 사기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24.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1. 백이열전

 

64. 착한 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

백이와 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했어도 굶어 죽었다. 또한 공자는 제가 일흔 명 중에서 안연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안연은 늘 가난해서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 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춘추시대 말기에 나타난 도적 도척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간을 날로 먹었다. 잔인한 잣을 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하늘에서 내려준 자신의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 이는 도대체 그의 어떠한 덕행에 의한 것인가? 이러한 것들은 그러한 사례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다.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며 즐겁게 살고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데 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가 맨 앞에 나오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마천이 백이숙제를 들어가며 당혹스러워 하는 것만큼 나도 그러하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라는 말을 믿고 싶지만, 때대로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다. 하늘의 이치가 그러하다해도 사람 사는 곳에는 이치를 따르지 않은 것들이 참으로 많다. 사마천은 궁형을 겪고도 역사서를 저술했다. 사마천이 겪은 인생은 하늘의 이치에 맞나? 이 열전만 해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66.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하겠다. 또 ks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좇아 행하겠다.”

 

66. 백이와 숙제는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찬이 있고 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욱더 드러나게 되었다. 안연은 학문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지만 (공자라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행동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 백이열전이 맨 앞에 있는 이유는 ‘공자’를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2. 관, 안 열전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71.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하여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를 놓고 벌인 싸움에 졌을 때, [나와 함께 곁에서 규를 도운] 소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

73. 관중은 이렇게 말하였다.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이 굳게 결속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 즉 예의, 정의, 깨끗함, 부끄러움이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망한다. 수원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나라에서 의논한 정책은 탁상공론이 아니므로 실천하기 쉬웠다. 백성이 바라는 것을 그대로 들어주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은 그들의 듯대로 없애주었다.

* 관중의 정치가 순리에 따르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태사공은 공자의 관중에 대한 평(그는 도량이 좁다)을 들어서 그를 말하고 있다. 군주를 왕도를 실천하게하지 않고 우두머리로서만 이름을 떨치게 했는가하고 비판하고 있다. 관자 뒤에 바로 안자를 들어서 신하의 도리를 말하고 있다.

 

 

3. 노자, 한비 열전

 

 

83. 세상에서 노자의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유가 학문을 멀리하고, 유가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역시 노자의 학문을 내쳤다.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정말 이러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노자는 하지 않은 것(無爲)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용의 비늘을 건드리지 말라)

 

86. 한비는 「세난」 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내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아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87. ‘유세자가 아직 군주에게 두터운 신임과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 버리면 설령 그 주장을 실행하여 공을 세우더라도 군주는 그 덕을 잊을 것이며, 그 주장을 실행하지 않아 실패하게 되면 군주에게 의심을 받을 것이다.’

 

88.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 서는 안 된다.’

 

90. 이웃집 사람과 관기사가 한 말은 모두 옳으나 심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고 가벼운 경우에는 의심을 받았다. 이는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뜻이다.

 

91.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처음에는 현명하다고 칭찬을 받고 나중에는 죄를 입게 되었다. 그것은 군주가 그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2. 신불해와 한비는 모두 책을 지어 후세에 전했으므로 이를 배우는 자가 많다. 나는 다만 한비가 「세난」편을 짓고도 스스로는 재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슬플 뿐이다.

* ‘아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

 

4. 사마 양저 열전

 

5. 손자, 오기 열전

(군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에게는 죽음뿐이다)

109. “군대는 이미 잘 갖추어졌습니다. 왕께서 시험 삼아 내려오셔서 보십시오. 왕께서 그들을 쓰고자 하신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것입니다.”

오나라 왕은 말했다.

“장군은 그만 관사로 돌아가 쉬도록 하시오. 과인은 내려가 보고 싶지 않소.”

손무가 말했다.

“왕께서 한 갓 이론만 좋아하실 뿐 그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합려는 손무의 뛰어난 용병술을 인정하고 마침내 그를 장군으로 임명했다.

* 합려의 애첩을 군령이 서지 않는다하여 목을 베고 군을 통솔한 손무. 그리고 이론과 실제가 다름을 합려에게 설득해 보이는 손무.

 

 

(나라의 보배는 험난한 지형이 아니라 임금의 덕행이다.)

115. 오기는 장수가 되자 신분이 가장 낮은 병사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잠을 잘 때에도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고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을 직접 가지고 다니는 등 병사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116. “예전에 오공께서 우리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가 적진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공이 지금 또 제 자식의 종기를 빨아주었으니 이 아이도 어느 때 어디서 죽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리내어 우는 것입니다.”

문후는 오기가 병사를 다루는 일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청렴하고 공정하여 병사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서하 태수로 삼아 진나라와 한나라에 대항하도록 하였다.

 

(남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유)

117-119. 오기는 서하 태수가 되자 명성이 훨씬 높아졌다. 그런데 위나리에서는 재장 직책을 마련하고 전문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오기는 기분이 언짢아져 전문에게 말했다.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 보고 싶은데 어떻소?”

...

...

 

“이 세 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보다 못한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요?”

전문이 대답했다.

“왕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신하들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백성은 그분을 믿지 못하고 있소. 이런 때에 재상자리를 당신에게 맡기겠소. 아니면 내게 맡기겠소?”

오기는 한참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당신에게 맡기겠소.”

전문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까닭이오.”

오기는 그제야 자기가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얼마전에 누군가를 비판한 것을 떠올리며 이 구절을 읽었다. ‘누구에게 맡기겠소?’라고 물어서 그 대답을 스스로 해보니 그가 훨씬 낫다.

 

(죽은 시체 위에 엎드린 오기)

121. 오기는 달아나다가 도왕의 시신 위에 엎어졌다. 오기를 공격하던 무리가 화살을 쏘아 오기를 죽이자 도왕의 시신에도 화살이 꽂혔다. 도왕이 장례식이 끝나고 태자(숙왕)가 즉위하자, 영윤에게 오기를 죽이려고 왕의 시신에까지 화살을 쏜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하였다. 오기를 쏘아 죽인 일에 연루되어 일족이 모두 죽은 자는 칠십여 집안에 이르렀다.

* 오기는 정말 각박한 사람이구나.

 

121. 태사공은 말한다.

“....

옛말에 ‘실천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계략은 실로 절묘했으나, 그에 앞서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당하는 재앙을 막지 못하였다. 오기는 무후에게 험난한 지형보다 임금의 덕행이 더 낫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그의 행실이 각박하고 인정이 없으므로 목숨을 잃었으니 슬픈 일이구나!”

 

6. 오자서 열전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안고 떠난다.)

127. 비무기는 평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오사의 두 아들은 모두 현명하므로 없애지 않으면 초나라의 두통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아버지를 인질로 잡고 그들을 불러들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초나라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왕은 오사에게 사신을 보내 말했다.

“네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살려주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죽일 것이다.”

그러자 오사가 이렇게 말했다.

“오상은 사람됨이 어질어 내가 부르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오운은 사람됨이 고집스럽고 굴욕을 견딜 수 있어 큰일을 해낼 것입니다. 그는 이곳으로 오면 아버지와 자식이 함께 사로잡힐 줄 알고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오면 네 아버지를 살려주겠지만 오지 않으면 당장 죽여버리겠다.”

오상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자 오운이 말했다.

“초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아버지를 살려 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도망치는 자가 있으면 뒷날의 근심거리가 될까봐 두려워하여 아버지를 볼모로 잡고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가 그곳에 가면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죽게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보탬이 됩니까? 그곳으로 간다면 원수를 갚을 길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병력을 빌려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것이 낫습니다. 함께 죽는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자 오상이 말했다.

“나 여시 그곳으로 가더라도 끝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살기 위해서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았다가 나중에 원수도 갚지 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가려고 한다. 너는 달아나거라. 너는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 죽음을 맞이하겠다.”

 

134-135.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오자서는 소왕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잡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한 뒤에야 그만두었다. 산속으로 달아났던 신포서는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당신의 복수는 너무 지나친 것 같소. 나는 ‘사람이 많으면 한때 하늘도 이길 수 있지만, 일단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깨뜨릴 수도 있다’라고 들었소. 일찍이 평왕의 신하가 되어 평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보이니, 어찌 이보다 더 천리에 어긋난 일이 있겠소?”

그러자 오자서는 말했다.

“나를 대신해서 신포서에게 사과하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천리를 좇을 수 없었소’라고 말해주게.”

 

7. 중니 제자 열전

 

152.(사람의 성격에 따라 조언도 달라야 한다)

자화가 공자의 대답이 다른 것을 의아해 하며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째서 같은 질문에 달리 대답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종묘의 제사 그릇 같은 자공)

159. “선생님께서는 어느 나라로 가시든 반드시 그곳의 정치에 대해서 들으시는데, 그것은 선생님께서 요청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 나라의 군주가 요청한 것입니까?”

자공은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온화하시고 선량하며 공경하고 검소하며 사양하는 미덕을 갖추고 계시므로 그 나라의 군주께서 정치에 관한 말씀을 부탁드린 것입니다. 설사 선생님께서 요청하셨다고 해도 선생님의 요청은 다른 사라들이 요청하는 것과 다릅니다.”

 

168. (한번 움직여 세상이 판도를 새로 짠다)

이처럼 자공은 한번 나가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 나라를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를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 자공의 행적으로 인해 여러 나라가 전쟁에 참가했다.

자공의 말솜씨와 판을 읽어내는 능력에 감탄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못마땅하다.

전쟁을 필요악이라고 저술한 역자의 말을 빌린다면 자공의 행적은 어떠한가? 노나라를 구하기 위해 다섯 나라가 전쟁을 했다. 자공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노나라가 망하고 그 이후에 전쟁이 또 일었겠지만.

 

(사람은 말고 생김새로만 평가하면 안 된다)

174.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였다.”

* 공자는 자신의 실수를 들어 이렇게 전한다.

 

(예와 의를 좋아하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183-184.

번수는 자가 자지이며 공자보다 서른여섯 살 아랫니다. 버지가 곡물 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늙은 농사꾼만 못하다.”

채소 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채소를 심는 늙은이만 못하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번지는 소인이구나.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으며,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만 한다면 사방의 백성이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찾아올 텐데 농사짓는 법을 배워 어디에 쓰겠는가?”

번지가 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知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를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 지란 사람을 아는 것,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

 

187.(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무마시가 이 말을 공자에게 전하니 공자가 말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숨기는 것이 예의이다.”

 

 

8. 상군 열전

 

199. (옛것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202. (새로 만드는 법은 믿음 속에서 꽃필 수 있다)

“이 나무를 북쪽 문으로 옮겨 놓는 자에게는 십 금을 주겠다.”

그러나 백성을 이것을 이상히 여겨 아무도 옮기지 않았다. 다시 이렇ㄱ 말했다.

“이것을 옮기는 자에게는 오십 금을 주겠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옮겨 놓자 즉시 그에게 오십 금을 주어 나라에서 백성을 속이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고 나서 새 법령을 널리 알렸다.

* 이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조금 씁쓸하다. 백성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법령이 잘 시행될지, 지켜질지 믿지 않는다. 법은 좀 멀다.

 

202. (법은 위에서부터 지켜야 한다. )

새로운 법령이 백성에게 시행된 지 일 년 만에 진나라 백성 가운데 도성까지 올라와 새 법령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자가 1000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바로 그 무렵 태자가 법을 어기자 위양은 이렇게 말했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이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법에 다라 태자를 처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군주의 뒤를 이을 태자를 처벌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태자의 태부였던 공자 건의 목을 베고 태사 공손고의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그 다음 날부터 진나라 백성은 모두 새로운 법령을 지켰다.

법령이 시행된 지 십 년이 되자 진나라 백성은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 가지 않으며, 산에는 도적이 없고, 집집마다 풍족하며 사람마다 마음이 넉넉했다.

 

207. (사람의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조량이 대답했다.

“돌이켜 자기 마음 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總)이라 하고, 마음 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합니다. 순 임금도 ‘스스로를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도 순 임금의 도를 따라야 합니다. 제 의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211. 왕은 관리를 보내 상군을 잡아오게 했다. 상군은 달아나 변방 함곡관 부근의 여관에 들려 하였으나, 여관 주인은 그가 상앙임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상군의 법에 의하면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묵게 하면 그 손님과 관계되어 처벌을 받습니다.”

상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법을 만든 폐해가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 상군은 자신이 만들어 시행한 법 때문에 진나라에서 숨어 있을 수 없고, 여관에도 유숙할 수 없었다. 상군은 법가의 사상으로 개혁하여 진나라의 기반을 다졌으나 결국 자신의 법에 의해 인심을 잃고 죽었다.

 

9. 소진 열전

238. (부귀하면 우러러보고 가난하면 업신여긴다.)

이렇게 하여 여섯 나라는 합종하여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고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였다. 소진은 북쪽으로 조나라 왕에게 일의 경과를 보고하러 가는 길에 낙양을 지나게 되었다. 기마와 짐을 실은 수레를 비롯하여 제후들마다 소진을 모실 사자를 보내 주어 전송하는 자가 매우 많이 국왕의 행차에 견줄 만 하였다. 주나라 현왕은 이런 소문을 듣고 두려워 소진이 지나가는 길을 쓸도록 하고 교외까지 사람을 보내 맞아 위로하게 하였다. 소진의 형제와 아내와 형수가 곁눈으로 볼 뿐 감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하니 소진이 웃으면서 형수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전에는 오만하더니 지금은 공손합니까?”

형수는 몸을 굽혀 기어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며 말했다.

“계자의 지위가 귀하고 재물이 매우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이 한 몸도 부귀해지자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면 업신여기는데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만일 나에게 낙양성 주변에 밭이 두 이랑만 있었던들 여섯 나라의 재상의 인수를 찬 수 있었을까?”

* 이런 이야기는 계속 많이 나온다. 이런 게 인간의 기본 속성일까 의심한다. 권력에 머리 숙이고, 가난하면 업수이 여기는 것은 참 오래되고 오래된 속성이다.

 

246.(사람을 속에 원수를 갚는다)

“신이 죽으면 신을 거열형으로 다스려 시장 사람들에게 돌려 보이시고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라고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신을 죽이려던 자를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나라 왕이 그 말대로 하였더니 소진을 죽이려 한 자가 정말 자수해 왔으므로 제나라 왕은 그를 잡아 죽였다. 연나라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나라가 소진 선생을 위해 원수 갚는 방법이 너무 지나치구나.”

* 소진의 사람 됨됨이를 탓할까, 아니면 이 시대에는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을까.

 

 

10. 장의 열전

265.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 뜻을 이루지 못한다)

모두 함께 장의를 붙들어 수백 번 매질을 했으나, 장의가 구슬을 훔쳤다고 말하지 않으므로 풀어 주었다.

장의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아! 당신이 글을 읽어 유세하지 않았던들 어찌 이런 수모를 겪었겠습니까?”

그러자 장의는 자기아내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내 혓바닥이 아직 붙어 있는지 보아 주시오.”

장의의 아내는 웃으면서 말했다.

“혀는 붙어 있네요.”

장의가 말했다.

“그럼 됐소.”

 

(오른팔을 잘리면 싸울 수 없다)

291. “..... 왕께서 합종을 신뢰하는 것은 소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제후들을 현혹시켜 옳은 것을 그리다고 하고 그런 것을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제나라를 등지려다가 저잣거리에서 거열형으로 다스려지는 결과를 자초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의 힘으로 천하가 하나로 묶일 수 없음은 명백한 일입니다. ....”

* 소진은 자신을 죽이려 한 사람에게 복수하려고 자신이 죽은 후에 거열형을 한 뒤 저잣거리에 내 보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결과가 이러하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가 나쁜 짓을 해서 형벌을 받은 것으로 사람들이 말한다. ‘소진의 방법이 지나치다’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295. (무왕과 틈이 벌어진 장의)

진나라 무왕은 태자 때부터 장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임금이 되지 시하 대부분이 장의를 헐뜯었다.

....

제후들은 장의와 무왕 사이에 틈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연횡 약속을 어기고 다시 합종하였다.

* 왕이 신하를 달가워하지 않으니(편애하니) 왕은 신하의 힘을 제대로 얻지 못한다. 그래서 왕은 약해진다.

 

298. (사람 됨됨이는 그 주위 사람이 제대로 안다)

“예전에 오자서는 그 임금에게 충성하였기 때문에 온 천하가 그를 자기 신하로 삼으려고 서로 다투었고, 증삼은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였기 때문에 온 천하가 그를 자식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노비가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팔리면 좋은 노비입니다. 소박 맞고 쫒 겨 온 여자가 그 마을에서 다시 결혼한다면 좋은 아내입니다. 지금 신이 자기 임금에게 충성스럽지 않다면 초나라도 어떻게 신을 충성스럽다고 여기겠습니까? 충성을 다해도 버림받으려 하는데 신이 초나라로 가지 않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혜왕은 그 말을 옳다고 여기고 그 뒤부터 그를 잘 대우하였다.

* 진진과 진나라 혜왕의 대화

 

302. 진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찍이 왕께 변장자라는 이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일을 들려드린 사람이 있었습니까?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려고 하자 묵고 있던 여관의 심부름하는 아이가 말리면서 ‘호랑이 두 마리가 소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먹어봐서 맛이 좋으면 분명히 서로 다툴 것입니다. 다투게 되면 반드시 싸울 테고 서로 싸우게 되면 큰 놈은 상처를 입고 작은 놈은 죽을 것입니다. 상처 입은 놈을 찔러 죽이면 한꺼번에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았다는 명성을 얻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변장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서 기다렸습니다. 조금 있으니 정말 두 호랑이가 싸워서 큰 놈은 상처를 입고 작은 놈은 죽었습니다. 이때 변장자가 상처 입은 놈을 찔러 죽이니 한 번에 호랑이 두 마리를 잡는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싸움을 벌인 지 한 해가 넘도록 해결이 나지 않았다면 큰 나라는 타격을 입고 작은 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타격입은 나라를 치면 한꺼번에 둘을 얻는 이득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것과 같은 일입니다. 신이 왕께 바치는 계책과 초나라 왕을 위해 바치는 계책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혜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그러고는 결국 화해시키지 않았다. 정말 큰 나라는 타격을 입고 작은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에 진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크게 쳐부쉈다. 이것은 모두 진진의 계책에서 나왔다.

 

305. 태사공은 말한다.

“삼진(三晉)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주장하여 진(秦)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체로 모두 삼진 사람이다.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더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11. 저리자, 감무열전

 

314. (아들이 살인했다는 말을 듣고 북을 내던진 어머니)

옛날 효자로 유명한 증삼이 비읍에 있을 때 일입니다. 노나라 사람 가운데 증삼과 이름과 성이 똑같은 자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조금 뒤 또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조금 뒤 또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역시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 또다시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하자 그 어머니는 베 짜던 북을 내던지고는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진 증삼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세 사람이나 그를 의심하자 정말인가 싶어 겁을 먹었습니다. 지금 신은 증삼처럼 어질지 못하고 왕께서 신을 믿는 마음도 증삼의 어머니가 아들을 믿는 마음만 못합니다. 또한 신을 의심하는 자가 어디 세 사람뿐이겠습니까? 신은 왕께서 북을 내던진 증삼의 어민처럼 신을 의심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323. 감무의 스승인 사거는 하채의 문지기로 크게는 임금을 섬기지 못하고 작게는 가정도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럭저럭 되는대로 사는미천한 신분이면서 청렴하지 않은 것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감무는 그런 인물을 묵묵히 따르고 스승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혜왕, 명철한 무왕, 변론에 뛰어난 자의까지도 잘 섬기고 여러 관직을 맡으면서도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감무는 참으로 현명한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감무를 진나라 재상으로 추천해서는 안됩니다. 진나라에 현명한 재상이 있으면 초나라에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12. 양후열전

337. 『주서周書』에 ‘천명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요행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포자와 싸워 이겨 현 여덟 개를 얻는 것은 병사가 정예로워서도 아니요 계략이 교묘해서도 아니고 하늘이 큰 행운을 내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또 망묠르 싸움에서 져 달아나게 하고 북택으로 침입하여 대량을 치고 있읍니다만, 이것도 하늘이 내려 준 행운이 늘 자기 곁에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3. 백기, 왕전 열전

 

349. 장군 조괄은 직접 정예군을 이끌고 맨 앞에 나가 싸웠으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마침내 조괄의 군사가 패배하니 병졸 40만 명이 무안군에게 항복했다. 이때 무안군은 이렇게 말했다.

“전에 진나라가 상당을 점령한 일이 있었는데 상당 백성은 진나라로 귀속되기를 싫어허여 조나라로 돌아갔다. 조나라 병사들은 마음을 잘 바꾸기 때문에 모두 죽여버리지 않으면 뒤에 반란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

백기는 사람들을 속여 모조리 산 채로 땅 속에 묻어 죽이고, 남은 어린아이 240명만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머리가 베이거나 포로로 사로잡힌 자가 이때를 전후로 하여 45만명이나 되었다. 조나라 사람들은 두려워 벌벌 떨었다.

 

352. “백기는 사는 곳을 옮겨 가면서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고 뼈 있는 말을 했소.”

진나라 왕은 곧 사자를 보내 무안군에게 칼을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무안군은 칼을 받아들고 자신의 목을 찌르려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잠시 동안 그렇게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 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그러고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진나라 소왕 50년 11월의 일이다. 그는 죽었지만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니므로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겨 마을이 모두 제사를 지내주었다.

 

14. 맹자, 순경 열전

 

363.(사욕은 혼란의 시작이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일찍이 『맹자』라는 책을 읽다가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 책 읽기를 멈추고 ‘아! 이익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로구나.’라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라고 했던 것이다. 천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긱을 좋아하는 데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추씨 성을 가진 세 학자)

366. 추연의 학설은 다 이런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 결론을 요약하면 반드시 인의와 절약과 검소, 군주와 신하, 위와 아래, 육친(부, 모, 형, 제, 처, 자식)사이의 일로 귀착되는데 그 시작은 너무 크고 넘친다. 왕후와 귀인들은 추연을 학설을 처음 들었을 때는 몹시 놀라 감화되는 듯하나 그 뒤로는 실행할 수는 없었다.

* 이론과 실행은 너무나 다른 것인가 보다. 실행이 얼마나 어려운가.

 

15. 맹상군열전

 

377-378.(사람의 운명은 어디로부터 받는가?)

전영에게는 아들이 사십여 명 있었다. 그 중 천한 첩이 낳은 문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5월 5일에 태어났다. 처음에 전영은 첩에게 아이를 키우지 말라고 했지만 첩은 몰래 거두어 길렀다. 문이 장성하자 그 어머니는 문의 형제들을 통해 문과 전영을 만나게 했다. 그러자 전영이 문의 어머니에게 고함을 쳤다.

“내 너에게 이 아이를 버리라고 했는데 감히 키운 것은 무엇 때문이냐?”

문이 머리를 조아리며 어머니 대신 말했다.

“아버님게서 5월에 태어난 아들을 키우지 못하게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영이 대답했다.

“5월에 태어난 아들은 키가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롭다고 하기 때문이다.”

문이 또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을 하늘로부터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으로부터 받습니까?”

전영이 대답하지 않자 문이 다시 말했다.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서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그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380. 문이 말했다.

“...... 제가 듣건대 장수의 가문에는 반드시 장수가 잇고, 재상의 가문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 아버님께서는 정권을 잡고 제나라 재상이 되어 지금까지 위왕, 선왕, 민왕을 섬겼습니다. 그동안 제나라 땅은 넓어지지 않았는데 아버님 자신은 천만 금이나 되는 부를 쌓았으며, 그러고도 문하에는 어진 사람 한 명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장수의 가문에는 반드시 장수가 있고, 재상의 가문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버님의 후궁들은 아름다룬 비단옷을 질질 끌고 다니지만 선비들은 짧은 바지 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하인들과 첩들은 쌀밥과 고기를 실컷 먹고도 남아돌지만 선비들은 쌀겨나 술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버님께서는 쌓아둔 것이 남아돌지만 더욱 많이 쌓아두려고만 할 뿐 나라의 힘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은 잊고 계십니다. 저는 이 점이 이상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전영은 문을 높이 사 집안일을 돌보게 하고 빈객 접대하는 일을 맡겼다.

 

381. 하루는 맹상군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밤참을 대접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불빛을 가린 탓에 방안이 어두웠다. 손님은 자신의 음식이 맹상군의 것과 다른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어둡게 한 줄 알고 기분이 상해서 식사를 하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 맹상군이 일어서서 몸소 자신의 밥그릇을 손님의 것과 비교해 보이자 손님은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 때문에 선비들이 맹상군에게 많이 모여들었다. 맹상군이 손님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잘 대우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맹상군과 친하다고 생각했다.

 

381.

“오늘 아침 저는 밖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무 인형과 흙 인형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무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허물어질 거야’라고 말하지 흙인형이 ‘나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허물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하늘에서 배가 내리면 너는 어디까지 떠내려가야 할지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굳이 가려고 하시니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은 흙 인형의 비웃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 흙인형과 나무인형의 비유가 좋아서 옮겨 적다. 맹상군에게 소대가 말하다.

 

383. 처음 맹상군이 좀도둑과 닭욺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을 빈객으로 삼았을 때, 다른 빈객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이 두사람이 그를 구하였다. 그 뒤 빈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속 깊이 맹상군을 따르게 되었다.

* 사람들이 맹상군을 따르게 된 일화가 몇 개 소개되고 있다.

 

384. 맹상군이 일행과 함께 조나라를 지나자 조나라 평원군을 맹상군을 빈객으로 대접했다 조나라 사람들은 맹상군의 사람됨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있던 터라 몰려나와서 그를 보았는데,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가지 설공(맹상군)은 키가 훤칠한 대장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훅 불면 날아갈 듯한 왜소한 사내로구나?”

맹상군이 이 말을 듣고 화를 내자 그와 함께 길을 가던 빈객들이 수레에서 뛰어내려 칼을 빼서 수백 명을 베어 죽이고, 마침내 현 하나를 없애 버린 뒤에 떠났다.

* 맹상군은 참 잔인한 사람이었구나.

 

(군주가 이익에 눈멀면 백성은 떠난다)

391-392. 맹상군은 풍환을 불러 이일을 부탁했다. “빈객들은 내 어리석음을 모르고 다행히 몸을 맡긴 분이 3000명이나 됩니다. 봉읍의 조세 수입만으로는 도저히 빈객을 대접할 수 없어서 설 땅 사람들에게 이자를 얻으려고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설 땅에서는 해마다 조세가 들어오지 않고 백성 대부분이 이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빈객들에게 식사마저 접대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책임지고 돈을 받아주십시오.”

 

392. 약속한 날이 되지 소를 잡고 술자리를 열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가지고 온 차용증서를 전처럼 맞추어 보고 나서 이자를 낼 수 있는 자에게는 원금과 이자를 갚을 날을 정하고, 가난해서 이자를 낼 수 없는 자에게는 그 증서를 받아서 불살라 버리고 이렇게 말했다.

“맹상군께서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 준 까닭은 돈이 없는 가난한 백성도 본업에 힘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이자를 요구한 까닭은 빈객들을 접대할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부유한 사람에게는 같을 날을 정해 드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차용증서를 불태워 버리도록 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껏 마시고 드십시오. 이런 군주가 있는데 어찌 그 뜻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393. 풍환이 대답했다.

“그렇게 했습니다. 술과 소를 많이 마련하지 않고는 돈 빌린 사람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알 수 없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용증서를 십 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갈 분이라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을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격려하고 군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차용증서를 불살라 받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당신은 의심나는 부분이 있습니까?”

맹상군은 손뼉을 치면서 칭찬하고 고마워했다.

* 맹상군은 정말 사람을 많이 두웠구나. 풍환같은 사람을 곁에 두고 돈을 받아 달라고 해서 다행이다.

 

397. “나는 언제나 빈객들을 좋아하여 그들을 대접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힘썼소. 빈객이 3000명이나 있었음은 선생도 아는 바요. 그러나 빈객들은 내가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자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고 떠나가 나를 돌봐 주는 사람이 없었소. 이제 선생의 힘으로 다시 재상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다른 빈객들은 무슨 낯으로 다시 나를 볼 수 있겠소. 만약 다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을 보이겠소.”

풍환은 이 말을 듣고 말고삐를 매어 놓고 수레에서 내려와 절을 했다. 맹상군도 수레에서 내려와 마주 절하고 말했다.

“선생께서는 빈객들 대신 사과하는 것이오?”

“빈객들 대신 사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선생은 이런 원리를 아십니까? 살아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이들이 오는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

* 지위가 낮아졌을 때 흩어졌던 빈객들에게 환멸을 느낀 맹상군. 이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풍환.

예전에 구본형 선생님께서는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빈객들이 거의 대부분 맹상군을 떠나갈 때, 풍환은 맹상군을 위와 같이 설득했다. 그러나 그런 이치를 아는 사람 풍환은 맹상군을 떠나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한 답은 바로 얻지 못하셨다 하셨다. 그리고 사기열전의 다른 이야기를 읽는 동안 관계의 열쇠를 찾았다고 하셨다. 이익에 따라 모였다 흩어졌다가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끈이 있다 하셨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의리를 지키고 있다. 그 의리는 무엇인가?

 

398.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일찍이 설 땅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 풍속은 마을에 난폭하고 사나운 젊은이가 아주 많아 [맹자의 고향인] 추나라나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의 풍속과는 사뭇 달랐다. 그 까닭을 물으니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들과 간사한 자들을 불러들여 설 땅으로 들어온 자가 6만여 가나 되기 때문이오.’라고 했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맹상군은 빈객을 좋아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했는데, 그 소문은 헛도니 것만은 아니구니!”

* 자신의 능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풍속이 거칠다.

* 시골에는 시골의 에너지가 있고, 마천루가 있는 도시에는 도시 나름의 에너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느껴보고 싶다. 서울의 곳곳을 다녀보면 동네마다 분위기가 엄청 다름을 느낀다. 그 분위기라는 게 그 지역의 기운일지도 모르겠다.

 

16. 평원군, 우경 열전

 

404. (애첩을 죽여 신의를 지킨다)

사인들이 조금씩 떠나가더니 떠난 자가 절반이 넘었다. 평원군이 이를 이상히 여겨 말했다.

“나는 여러분을 예우하는데 크게 실수한 적이 없거늘 어째서 떠나가는 자가 이처럼 많소?”

문하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당신이 절름발이를 비웃은 자를 죽이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비들은 당신이 여색을 좋아하고 선비를 하찮게 여기는 인물로 생각하여 떠나는 것입니다.”

평원군은 절름발이를 비웃은 애첩의 목을 베고, 직접 문 앞까지 가서 절름발이에게 그 목을 내 주면서 사과했다. 그 뒤 문하에 다시 선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나는 왜 이런 대목에 밑줄을 그어 둘까? 태사공이 치욕을 당했다가 그것을 딛고 일어서 사람을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듯이, 혹시 나도 나와 비슷한 어떤 것이 끌리는 건가?

 

406. (세치 혀가 백만명보다 강하다)

평원군이 말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빈객으로 삼 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모수가 말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417. 누완이 조나라 왕에게 말하였다.

“공보문백이 노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병들어죽자 그 죽음을 슬퍼하여 규방에서 스롤 목숨을 끊은 여자가 둘 있었습니다. 문백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도 소리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문백의 유모가 아들이 죽었는데 소리내어 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하니 어머니는 공자는 어진 사람인데 노라라에서 쫒겨났을 때 내 아들은 쫒겨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아들이 죽으니 그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가 둘이나 있소 이와 같이 된 것은 반드시 덕 있는 사람에게는 정을 주지 않고 부인들에게는 다정했기 때문이오, 그래서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면 어진 어머니라고 하겠지만, 아내의 입에서 나오면 반드시 질투심이 많은 여자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은 같지만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의 마음도 바뀝니다. 지금 신은 진나라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주지 마십시오.’라고 말씀드린다면 그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고 ‘주시시오’라고 말씀드린다면 왕께서는 신이 진나라를 위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이것이 두려워서 감히 대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이 대왕을 위하여 계책을 말씀드린다면 주는 편이 낫습니다.”

*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입장도 설명하여, 자신이 하는 말에 오해가 없도록 한다.

그래야 그 계책이 시행될 테니까. 계책을 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느냐 마느냐 또한 중요하다.

 

421 태사공이 말한다. “평원군은 새가 하늘 높이 날 듯이 혼탁한 세상에서 벗어나 재능과 지혜가 있는 공자였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이치를 알지는 못했다. 속담에 ‘이익에 사로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라고 하였다. 평원군은 풍정의 그릇된 말에 빠져 조나라 장평의 사십여만 병사를 산 채로 매장되게 하고 한단을 거의 멸망시킬 뻔 했다. 우경이 사태를헤아리고 상황을 추측하여 조나라를 위해 꾀한 계획들은 얼마나 주도면밀했던가? 그러나 위제의 불행을 차마 볼 수 없어 결국 대량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우경에게 고통과 근심이 없었다면 책을 지어 후세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17. 위공자 열전

428. “조나라 왕은 사냥을 할 뿐 침략한 것이 아닙니다.”

위나라 왕은 매우 놀라 물었다.

“공자는 어떻게 그것을 알았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의 빈객 중에 조나라 왕의 은밀한 일까지 정탐할 수 있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조나라 왕이 하는 일마다 하나하나 신에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신은 이번 일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왕은 공자가 어질고 능력 있음을 꺼려 그에게 나랏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

* 왕은 왜 그를 꺼려하는가? 난 이런 대목을 보면 의문이 든다. 왕은 덕으로 세워지지 않고 세습으로 되어서 그런건가? 사기열전에는 왕이 신하를 경계하는 것이 많이 나온다.

430.(숨어사는 선비 후영과 주해)

“...... 다른 곳에 들를 수 없었을 텐데도 공자께서는 제 청을 받아들여 주해에게 들러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자의 이름을 높여 드리기 위하여 일부러 오랫동안 공자의 수례를 시장 가운데 세워 두고 친구에게 들러 공자의 태도를 살펴보았더니 공자께서는 더욱더 공손했습니다. 시장 사람은 모두 저를 소인이라 하고, 공자를 덕행이 있으며 선비에게 몸을 낮추는 분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제가 들러 만났던 백정 주해는 어진 사람입니다만 세상에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푸줏간 사이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

 

434.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 주지 마라)

공자는 주해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주해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시장에서 칼을 휘둘러 짐승을 잡는 백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께서 몸소 자주 찾아 주셨습니다. 일일이 답례하지 않은 까닭은 하찮은 예의 같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공자께서 위급한 처지에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제가 목숨을 바칠 때입니다.”

* 나는 이런 의리를 잘 모르겠다. 책을 계속 읽다보면 이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겠지만, 이편만을 봐서는 모르겠다.

 

436. (잊으면 안되는 일과 잊어야 할 일)

빈객 중 한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 “세상일에는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 입장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지만 위나라 입장에서 보면 틀림없이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 공로가 있다고 하시니, 이는 공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441.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대량의 옛 터를 지나다가 이문이라는 곳을 물어서 찾아보니 성의 동쪽 문이었다. 천하의 여러 공자(맹상군, 평원군, 춘신군, 신릉군)가 선비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신릉군만이 깊은 산과 계곡에 숨어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신분이 낮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부끄럼게 여기지 않은 것은 일리가 있다. 그의 명성이 제후들 사이에서 으뜸이었던 것도 결코 헛소문만은 아니었다. 한나라 고조도 대량을 지날 때마다 백성이 신릉군을 제사하게 하고, 그 제사를 끊이지 않게 했다.”

 

18. 춘신군 열전

 

460.(복과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이원은 당신이 있으면 자신이 권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을 원수로 생각하고 오래 전부터 죽음을 각오한 병사들을 기르고 있습니다. 초나라 왕이 죽으면 이원은 반드시 궁궐로 돌아가 권력을 잡고 당신을 죽여서 입을 막을 것입니다. 이것이 생각지도 않은 재앙입니다.”

춘신군이 물었다. “뜻밖의 인사란 누구요?”

주영이 대답했다.

“당신께서는 저를 낭중에 임명하십시오. 초나라 왕이 죽으면 이원은 틀림없이 먼저 궁궐로 들어갈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위하여 이원을 죽이겠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재앙을 막아낼 수 있는 뜻밖의 인사입니다.”

 

461. 태사공은 말했다

“내가 초나라에 가서 춘신군의 옛 성과 궁실을 보니 정말 웅장하고 화려했다. 처음에 춘신군이 진나라 소왕을 설득하고 몸을 던져 초나라 태자를 돌아오게 한 것은 얼마나 뛰어난 지혜였던가? 그런데 마지막에 이원에게 당한 일은 늙어서 사리 판단이 어두워진 탓이리라.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두고 한 말일까?”

 

19. 범저, 채택 열전

472-473.(제후의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

진나라 왕이 다시 무릎을 꿇고 물었다.

“선생께서는 무엇을 과인에게 가르쳐 주겠소?”

범저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글세요.”

이렇게 하기를 세 차례 되풀이 하자, 진나라 왕은 무릎을 굻은 채 말했다.

“선생께서는 끝내 과인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오?”

범저가 대답했다.

“....... 신은 지금 다른 나라에서 온 나그네로 왕과 사이기 가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황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모두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뿐이며, 또한 왕의 가까운 혈욱에 관한 이야기이도 합니다. 어러석은 신은 충성을 다하고 싶지만 아직 왕의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왕께서 세 차례나 물으셔도 신이 선뜻 대답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형벌을 받는 게 두려워서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왕 앞에서 말씀드리고 내일 뒤에서 죽데 되더라고 굳이 피아지 않겠습니다. .....”

* 왕에게 간언을 할 때는 죽음을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구나. 앞에 나서서 남이 신하된 자는 삿된 것이 끼어들면 안되는구나.

 

502. 제가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 네 사람이 화를 입었는데도 당신은 어찌 그것을 이어받으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어째서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되돌려 어진 사람에게 물려주도록 하고 물러나 바위 밑에서 냇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지 않습니까?

 

504.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한비자가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진실로 옳은 말이다. 범저와 채택은 세상에서 말하는 뛰어난 변사로서 어떤 경우에도 자유자재로 변론할 수 있는 유세가였다. 그러나 각국의 제후에게 유세하여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은 그들의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한 나라들의 힘이 약하고 작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두루 돌아다닌 끝에 진나라로 들어가자 잇달아 경상이 되고 공을 천하에 떨친 것은 참으로 진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의 강하고 약한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선비에게는 역시 우연히 때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 두 사람 못지않은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면 어째 떨치고 일어날 수가 있었겠는가?”

 

20. 악의 열전

 

21. 염파, 인상여 열전

 

532. 염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나라 장군이 되어 성의 요새나 들에서 적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인상여는 겨우 혀와 입만을 놀렸을 뿐인데 지위가 나보다 높다. 또 상여는 본래 미천한 출신이니, 나는 부끄러워서 차마 그의 밑에 있을 수 없다. 내가 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모욕을 주리라”

상여는 이 말을 듣고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상여는 조회가 있을 때마다 늘 병을 핑계 삼아 염파와 서열을 다투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출할 때도 머릴 염파가 보이면 수레를 끌어 숨어버리기도 했다.

 

532-533. 상여가 말했다.

“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강한 진나가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랄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염파는 이 말을 듣고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서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비천한 저는 상경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

* 인상여의 현명함

 

545. 태사공은 말한다.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받고 기둥을 노려볼 때라든지 진나라 와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선비 중에 어떤 이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상여가 한 번 용기를 내자 그 위세가 상대편 나라까지 떨쳤고, 물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하니 그 이름은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22. 전단 열전

 

550. (기묘한 계책으로 적의 허를 찔러라)

얼마 뒤 연나라 소왕이 죽고 혜왕이 자리에 올랐으나, 혜왕은 악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단은 이 사실을 알고 연나라에 첩자를 보내 이러한 소문을 퍼뜨렸다.

“제나라 왕은 이미 죽었고 함락되지 못한 성은 이제 두 곳뿐이다. 악의는 벌을 받을까 두려워 감히 돌아오지 못하면서 제나라를 친다는 명분을 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을 질질 끌어 자신이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한다. 그러나 제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즉묵을 공격하기를 잠시 늦추어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제나라 사람들은 다른 장군이 와서 즉묵을 쑥밭으로 만들까봐 걱정할 뿐이다.”

*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쫒는다는 헛소문만 퍼뜨리면 그것이 왜 그렇게 잘 받아들여지는지 놀랍다. 모든 의심의 바탕에는 이익을 쫓는 행위가 자연스럽다는 공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 혜왕과 악의의 사이처럼, 왕과 신하 사이가 나쁜 것은 나라에 정말 도움이 안 된다.

 

554. 태사공은 말한다. “용병의 도는 정공법으로 쌍고, 기이한 계책으로 허를 찔러 이기는 것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기이한 계책을 무궁무진하게 낸다. 기이한 계책과 정공법이 서로 어우러져 쓰이는 것은 마치 끝이 없는 둥근 고리 같다. 대체로 기이한 병법은 처음에는 처녀처럼 약하게 보여 적군이 얕잡아 보고 문을 열어두게 하지만 나중에는 그물을 벗어난 토끼처럼 날래져서 적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이는 전단의 용법법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23. 노중련, 추양 열전

 

579. 태사공은 말한다.

“노중련은 지향하는 뜻이 대의에 맞지는 않았지만 벼슬도 지위도 없는 처지에서 자신의 뜻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실천하며 제후들에게 굽히는 일이 없었으며, 당대에 자신의 언변을 떨치며 대신들의 권력을 꺾은 점이 훌륭하다. 추양은 말하는 태도가 공손하지는 않았지만 사물을 비유해가며 그 실례를 하나하나 든 점에서 비장함이 있었고, 또 절개를 굽히지 않고 강직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이 열전에 덧붙였다.”

24. 굴원, 가생 열전

 

586. ‘이소’란 ‘걱정스러운 일을 만난다.’라는 뜻이다.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자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굴원은 도리에 맞게 행동하도 충성을 다하여 지혜를 다하여 군주를 섬겼지만 헐뜯는 사람의 이간질로 곤궁해졋다고 할 수 있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니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굴원이 스스로 「이소」를 지은 것은 이처럼 분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하는 통신의 효과가 예나 지금이나 잘 나타나는 것은 무엇일까?

600.

저 작은 못이나 도랑이

어찌 배를 삼킬 만한 물고기를 받아들일 수 있으랴?

강과 호수를 가로지르는 큰 물고기도

정녕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제압당하는구나!

 

25. 여불위 열전

 

613-614. 자초는 진나라 태자의 많은 서자 중 하나 사람으로 제후 나라의 볼모이므로 수레와 말과 재물이 넉넉하지 않고 생활이 어려워 실의에 빠져 있었다. 여불위가 한단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그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이렇게 말했다.

“이 진귀한 재물은 사 둘 만하다.”

그리고 자초를 찾아가서 말했다.

“나는 당신의 가문을 크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

...

“제 가문은 당신 가문에 기대어 커질 것입니다.”

 

621. 태사공은 말한다.

“여불위는 노애와 더불어 존귀할 때 봉토를 받아 문신후로 불렸다. 어떤 사람이 노애를 고발하였을 때 노애도 그 소문을 들었다. 진시황이 측근의 신하들을 통해 확보한 증거를 아직 발표하지 않았을 때이다. 진시황이 옹 땅으로 가서 교사를 지내려 하자 노애는 재앙이 닥칠까 두려워 무리와 음모를 꾸미고, 태후의 도장을 도용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년궁에서 반기를 들었다. 진시황은 관리를 보내 노애를 치고, 노애가 싸움터에서 져 달아나자 끝까지 쫒아가 호치에서 목을 베고 그이 일족을 모두 죽였다. 그리고 여불위도 이 일로 말미암아 재척당했다. 공자가 말한 ‘소문(聞)’이라는 것은 아마 여불위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26. 자객 열전

 

626. (비수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환공이 화를 내며 그 약속을 어기려고 하니 관중이 이렇게 말했다.

“약속을 어기면 안 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신다면 제후들의 신뢰를 잃고 천하 각국의 지지를 잃게 됩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땅을 돌려주시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서 환공은 마침내 노나라로부터 빼앗은 땅을 돌려주게 되었다.

* 노나라의 조말이란 사람이 환공을 비수로 위협하여 약조를 받아내었고, 환공은 그 약조를 지켰다.

 

632. (충신은 지조를 위해 죽는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지 않았는가? 지백이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지만, 그대는 그들을 위해 원수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지백에게 예물을 바쳐 그의 신하가 되었네. 이네 지백도 죽었는데 그대는 유독 무슨 까닭으로 지백을 위해 이토록 끈질지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가?”

예양이 말했다.

“저는 범씨와 중항씨를 섬긴 일이 있습니다. 범씨와 중항씨는 모두 저를 보통사람으로 대접하였으므로 저도 보통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보답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백은 저를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대우하였으므로 저도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

“오늘일로 신은 죽어 마당하나 모쪼록 당신의 옷을 얻어 그것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도록 해 주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이것은 신이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은 것뿐입니다!”

....

예양은 칼을 뽑아 들고 세 번을 뛰어올라 그 옷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이것으로 나는 지백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러고는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예양이 죽던 날, 조나라의 뜻 있는 선비들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 ‘은혜를 입다’라는 게 무엇인가?

나에게 밥을 준 사람은 많은 데, 나는 그 중에 어떤 이를 특별히 생각한다. 내가 쌀집오바를 이야기할 때, 그에게 은혜를 입었다라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대체 어떤 것이길래 ‘은혜를 입었다’라는 표현을 쓰는지 그가 의아해했다. 어떤 사람과 만나면 몸과 마음이 모두 그의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의 뜻을 이루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가 없는 세상에서도 그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

내겐 그런 사람이 둘 있다.

 

27. 이사 열전

 

661.(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 있다.)

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이다. 그는 젊을 때 군에서 지위가 낮은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는 쥐들은 쌓아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진다니.....?

 

669-670. 시황제는 그 제안을 옳다고 여겨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몰수하고 모든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천하에 그 누구도 옛것을 끌어들여 지금 세상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

이사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나! 나는 순자가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들었다. 나는 상채에서 태어난 평민이며 시골 마을의 백성일 뿐인데, 주상께서는 내가 아둔하고 재능이 없는 줄도 모르고 뽑아서 오늘날 이 지위까지 오르게 하셨다.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가 없고 부귀도 극에 달했다고 할 만하다. 만물은 극에 달하면 쇠하거늘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구나.”

* 이사는 자신이나 ‘진나라’가 쉽게 쇠할지 알았을까? 진은 정말 빨리 쇠했다. 진시황제 때부터 제대로 된 선비를 가려서 쓰지 못해서 선비가 종실을 받쳐줄 수 없었을 것이다.

 

675. 이사말했다.

“.......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는 저마다 자기 직책을 지킬 따름이오. 당신은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나에게 죄를 짓도록 할 셈이오?”

조고 말했다.

“제가 듣건대 성인은 변하여 정해진 태도가 없으며, 변화에 따르고 시대에 호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고 귀착하는 바를 안다고 합니다. 사물이란 본래 이런 것입니다. 어찌 변하지 않는 고정된 법칙이 있겠습니까? 이제 천하의 대권은 호해에게 달려 있으며, 저는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체로 밖에서 안을 제어하는 것을 혹惑이라고하고, 아래에서 위를 제어하는 것을 적賊이라고 합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잎과 꽃이 떨어지고,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게 되면 만물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필연의 법칙입니다. 당신은 어째서 판단이 더디십니까?”

* 조고는 말 잘하는 나쁜 신하이다. 공자께서 관리 되었을 때에 그 지역의 공자를 주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공자는 아는 것이 많아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일을 꾸미는데 앞장서는 이런 인물은 죽어 마땅하다하였다. 지금 조고의 말에 이사가 넘어가니 조고는 정말 자신이 아는 것들을 죄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고 있다. 조고가 말한 것은 맞으나, 그중에 중요한 것이 빠졌다. 사람이 사는 것에는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

결국은 조고가 진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 장자 부소를 두고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막내 왕자를 대권을 잇게 했다.

사기 강의에서 들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막내 왕자가 대권을 이으면서 피바람이 이는 것이 많이 나온다. 막내를 귀워여하고 내리사랑이라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히 있는 일인 것 같다.’

 

677. 세 사람(막내아들 호해, 이사, 환관 조고)은 공모하여 시황제의 조서를 받은 것처럼 꾸미고, 승상은 시황의 아들 호해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또 맏아들 부소에게 내린 편지를 이렇게 고쳤다.

 

680. 2세 황제는 조고의 말을 옳다고 여겨 법률을 다시 제정하고, 신하와 공자들 중에 죄를 짖는 자가 있다면 조고에게 맡겨 조사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대신 몽의 등을 물러나게 하고, 공자 열두 명을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죽이고, 공주 열 명을 두에서 기둥에 묶어 놓고 창으로 찔러 죽였으며, 그들의 재산은 모두 거둬들였는데 여기에 연루된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 행제간의 정이란 뭔가? 권력이란 뭔가?

휴머니티가 없는 사람이 제대로 통치할 수 있나?

이 대목을 읽으면서 형제간에 불화로 제국을 쪼개갖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모습이 떠올랐고, 또 우리 집안이 형제간에 어울리지 못하고 다투던 것이 떠올랐다.

 

682. (제 몸조차 이롭게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리랴)

이사는 여러 번 2세 황제가 한가한 틈을 타 간언하려 했지만 2세 황제는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이사를 문책하며 말했다.

“..... 나는 한바로부터 들을 말이 있는데‘요 임금이 천하를 차지했을 때 당의 높이는 세 자이고 서까래는 자르지 않고 통나무 그대로였으며 지붕을 덮은 참억새풀은 처마에 늘어져도 자르지 않았다. 나그네가 머무는 집도 이보다 검소할 수는 없다. 겨울에는 사슴 가죽으로 지은 옷을 입고 여름에는 칡으로 만든 베옷을 입으며, 거친 현미밥에 명아주잎과 콩잎을 끓인 국을 질그릇에 담아 먹고 마셨다. 문지기가 입고 먹는 것도 이보다 검소할 수는 없다. 우 임금은 용문산을 뚫어 대하까지 통하게 하고 구하를 열어 통하게 하고 구곡에 둑을 둘러쌓아 막혔던 물길을 터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했다. 우 임금은 이러한 일을 하느라 넓적다리의 잔털이 다 닳아 없어지고 종아리의 털까지 없어졌다. 손과 발는 못이 박히고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렸다. 그러나 결국 객사하여 회계산에 묻혔다. 노예의 수고로움도 이보다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귀중하다는 것은 자기 몸을 괴롭히고 정신을 피로하게 하고, 몸은 나그네가 머무는 집 같은 곳에 두고, 입은 문지기와 같은 음식을 먹고, 손은 노예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것은 어리석은 자가 힘스는 일이지 현명한 사람이 힘쓸 일이 아니다. 어진 사람이 천하를 소유하게 되면 오로지 천하를 자기에게 맞도록 할 뿐이다. 이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중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이른바 어진 사람은 반드시 천하를 평안하게 하여 모든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 지금 제 몸조차 이롭게 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고 했소. 그래서 짐은 내 뜻대로 욕심을 넓혀서 길이 천하를 가지고 재해가 없기를 바라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 2번째 황제 하는 말을 찬찬히 보니, 선대의 어진 왕을 본받겠다는 말은 아니하고 자신이 몸 편한 것을 먼저 구한다.

 

684. ‘한비자도 “하찮은 베 조각이나 비단 조각은 도둑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가져가지만 좋은 황금 2000냥은 도척도 훔쳐가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찮은 이익을 중시하는 마음이 깊고 도척의 욕심이 얕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도척의 행위가 2000냥이나 되는 귀중한 황금을 가벼이 여겨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가져가면 반드시 처벌을 받기 도척도 2000냥이나 되는 황금을 집어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일반 사람들도 하찮은 물건이라도 훔치게 됩니다. ....’

* 이사가 2세 황제의 비위를 맞추어 지어 바친 글 중에 일부.

이러한 일로 형벌이 과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형벌을 받고 죽어갔다.

자건거 안장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신고해야 하는가 마는가로 고민을 잠깐 했었다. 신고하는 것은 그 뒤로 이어지는 일들을 예상하면 그것들은 무척 귀찮은 일이었다. 자동차를 훔쳐가면 반드시 처벌을 받고, 자전거 안장을 훔쳐가는 가는 것은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 도둑이 흔하다면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그런데, 여기 책에서처럼 형벌이 너무나 지나치게 과하면 어찌하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대체 어느 지점이 제대로 법도가 서고 그것이 지켜지는 선인가?

 

 

692. 조고가 이사를 심문했다. 이사는 붙잡혀 묶인 채 감옥에 갇혀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아, 슬프구나 도리를 모르는 구주를 위하여 무슨 계책을 세울수 있겠는가? 옛날 하나라 걸왕은 관용봉을 죽이고, 은나라 주왕은 왕자 비간을 죽이고, 오나라 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총명하지 않을까마는 죽음을 면치 못한 것은 충성을 다한 군주가 도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내 지혜는 세 사람만 못하고 2세 황제의 무도함은 걸왕, 주왕, 부차보다도 더하니 내가 충성하였기 때문에 죽는 것은 당연하다. 장차 2세 황제의 다스림이 어찌 어지럽지 않으랴.

지난날 그는 자기 형제를 죽이고 스스로 섰으며 충신을 죽이고 미천한 사람을 존중하며, 아방궁을 짓느라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내가 간언하지 않은 게 아니라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로 옛날 훌륭한 왕들은 음식에 절제가 있었고, 수레나 물건에도 정해진 수가 있었으며, 궁실을 짓는데도 한도가 있었다. 명령을 내려 어떤 일을 하는 경우에도 비용만 들고 백성에게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은 금하여 오랫동안 평안하게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형제에게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고도 그 허물을 반성할 줄 모르고, 충신을 죽이고도 다가올 재앙을 생각하지 않으며, 궁궐을 크게 짓느라 천하 백성에게 나쁜 일이 실행되니 천하의 백성은 복종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반역자가 벌써 천하의 절반을 차지했는데도 2세 황제는 아직 깨닫지 못하며 조고를 보좌로 삼고 있으니, 나는 반드시 도적이 함양에 들어오고 고라니와 사슴이 조정에서 노는 꼴을 보게 되겠구나.”

 

696. (사슴을 말이라고 한다)

이사가 죽고 2세 황제가 조고를 중승상으로 삼자, 크든 작든 모든 일은 조고가 결정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이 무거운 줄을 알고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2세 황제가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사슴이지?”

좌우에 있던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말입니다.”

2세 황제는 놀라서 스스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태복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그러자 태복은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봄가을로 교사 지낼 때 종묘 귀신을 모시면서 재계가 석연치 못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덕을 많이 쌓아 재계를 충분히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2세 황제는 상림원으로 들어가 재계하는 척하고는 실제로는 날마다 새를 잡고 짐승을 사냥하면서 놀았다.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상림원으로 들어오자 2세 황제가 활을 쏘아 그를 죽였다.

 

698. 태사공은 말한다.

“이사는 여염집에서 태어나 제후들에게 유세하다가 진나라도 들어가서 진나라 왕을 섬겼다. 열국 사이에 틈이 생긴 기회를 타서 시황제를 도와 마침내 진나라의 제업을 이루게 했다. 이사는 상공의 지위에 올랐으므로 높은 자리에 등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는 육경의 본뜻을 잘 알면서도 공명정대하게 정치를 하여 군주의 결점을 메워 주려 힘쓰지 않고, 높은 작위와 봉록을 누리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군주에게 아첨하고 좇으며 구차하게 비위를 맟추기만 했다. 조칙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였으며, 조고의 간사한 의견을 따라 적자를 폐하고 첩의 자식을 제위에 오르게 했다. 제후들이 이미 뒤돌아선 뒤에야 비로소 군주에게 충고하려 했으니 때가 너무 늦었구나! 세상 사람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은 주공이나 소공과 어깨를 겨울만 하였을 것이다.”

* 이사의 생을 간략하게 묘사하고, 이사에 행동에 대한 비판하는 글이어서 여기에 옮겼다.

태사공의 말대로 이 책에 실린 앞쪽이 사건이 없다면 뒤쪽만 보자면 이사는 조고에게 모함을 받거나 군신을 바르게 인도하는 인간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르겠다.

 

28. 몽염 열전

 

710.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내 죄는 죽어야 마땅하다. 임조에서 요동까지 장성을 만여리나 쌓았으니 이 공사 도중에 어찌 지맥을 끊어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내 죄로구나. 그러고는 약을 먹고 죽었다.

 

711.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북쪽 변방 지역에 갔다가 지름길로 돌아왔다. 길을 가면서 몽염이 진나라를 위해 쌓은 장성의 요새를 보니, 산악을 깎고 계곡을 메워 지름길을 통하게 했으니 진실로 백성의 힘을 가벼이 여긴 것이 분명하다. 진나라가 처음 제후를 멸망시켰을 때 천하의 민심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전쟁의 상처도 채 가라앉지 않았는데, 몽염은 이름 있는 장수로서 이러한 때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늙은이를 모시고 고아를 돌보며 모든 벽성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히 간언하지 않고 도리어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들 형제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찌 지맥을 끊은 탓으로 돌리랴.”

 

29. 장이, 진여 열전

 

738. (지조있는 신하가 왕을 구한다)

태사공은 말한다.

“장이와 진여는 어진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그들의 빈객과 종들까지도 천하의 준걸 아닌 이가 없어서 제각기 살고 있는 나라에서 경상의 자리를 얻었다. 장이와 진여가 처음에 빈궁할 때에는 서로 죽음을 무릅쓰고 신의를 지켰으니, 어찌 서로 돌아보고 의심하는일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나라를 움켜쥐고 권력을 다투게 되자 마침내 서로를 멸망시켰다. 예전에는 서로 앙모하여 신뢰함에 성의를 다하더니 나중에는 서로 배반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였으니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들이 권세와 이익만 쫒앗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비록 명예가 높고 빈객이 많았다 해도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태백이나 연릉의 계자와는 상황이 서로 다르다고 하겠다.”

 

30. 위표, 팽월 열전

 

31. 경포 열전

 

755. (왜 낮은 계책을 쓸까)

여흠후 등공이 본래 초나라 영윤이던 자를 불러 이 일을 물으니, 영윤이 말했다.

“영포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당연합니다.”

등공이 말했다.

“황상께서는땅을 떼어 주어 영포를 왕으로 삼고 작위를 나누어 주어 존귀한 신분이 되게 했소. 남면하여 만승의 군구자 되었는데 반란을 일으키는 까닭이 무엇이오?”

영윤이 말했다.

“황상께서는 지난해에 팽월을 죽이고 그 전해에는 한신을 죽였습니다. 팽월과 한신과 영포 세 사삼은 같은 공을 세워 한 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봐 반란을 일으켰을 뿐입니다.”

 

770. 태사공은 말한다.

“......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하곤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은 될 수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지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재앙은 사랑하던 여자에게서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

 

32. 회음후 열전

 

775.(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다)

한신이 성 아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무명 빨래를 하던 아낙네들 가운데 한 아낙이 한신이 굶주린 것을 알고 밥을 주었는데 빨래를 다할 때까지 수십 일 동안을 그렇게 했다. 한신이 기뻐하며 아낙에게 말했다.

“내 언젠가는 이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소.”

그랬더니 아낙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제 힘으로 살아가지도 못하기에 내가 젊은이를 가엾게 여겨 밥을 드렸을 뿐인데 어찌 보답을 바라겠소?”

회음의 백성 중에서 한신을 업신여기는 한 젊은이가 한신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키는 커서 칼을 잘도 차고 다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겁쟁이일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서 한신을 모욕하면 말했다.

“네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이때 한신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갔다. 이 일로 해서 시장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779.(소하가 달아난 한신을 쫒아간 까닭)

“왕께서는 본래 오만하여 예를 차리지 않으십니다. 지금 대장을 임명하는데 어린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하시니 이것이 바로 한신을 떠나게 한 까닭입니다. 왕께서 그를 대장으로 삼으시려면 좋은 날을 택하여 재계하고 단장을 설치하여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한라아 왕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여러 장수는 모두 기뻐하며 저마다 자신이 대장이 될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한신이 대장으로 임영되자 군대가 모두 놀랐다.

788. (싸움에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하지 않는다.)

“병법에는 ‘산과 언덕을 오른W고으로 하여 등지고 물과 못을 앞으로 하여 왼쪽에 두라.’고 했는데, 오늘 장군께서는 저희에게 오리어 물을 증지고 진을 치게 하면서 ‘조나라를 무찌른 뒤 다 같이 모여 실컷 먹자.라고 하시기에 저희는 속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마침애 이겼습니다. 이것은 무슨 전술입니까?”

한신이 대답했다.

“이것도 병법에 있는데 여러분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오. 병법에는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릴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있잖소? 내가 평소부터 사대부를 길들여 따르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한 것과 같으니, 그 형세가 죽을 땅에 두어 저마다 자신을 위하여 싸우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을 준다면 모두 달아날 텐데 어떻게 이들을 쓸 수 있겠소?”

* 한신은 시장바닥에서 터득한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다.

 

789. 한신이 말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현인 백리해가 우라나라 살 때는 우나라가 망하였으나, 진나라에 있자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는 어리석은 사람이다가 진나라에 가니까 지혜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군주가) 그를 등용했는지 등용하지 않았는지, 또 그의 말을 받아들였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에 달렸을 뿐입니다. 만일 성안군이 당신의 계책을 들었더라면 나 같은 사람은 이미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안군이 당신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모실 수 잇게 되었을 뿐입니다.”

 

801.(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한신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왕은 나를 정성껏 대접해 주었습니다. 자기 수레로 나를 태워 주고, 자기 옷을 나에게 입혀 주며, 자기가 먹을 것을 나에게 먹여 주었습니다. 내가 듣건대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이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이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해 죽는다’라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괴통이 말했다.

“당신께서는 스스로 한나라 왕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업적을 세우려고 하십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것입니다. ...... 상산왕과 성안군은 천하에 둘도 없이 친한 사이였는데 결국 서로 잡아먹으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우환이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 대부 종과 범려는 멸망해 가는 월나라를 존속키시고 월나라 왕 구천을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지만 자신은 죽었습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게 마련입니다. (당신과 한나라 왕의 관계는) 교분으로 보면 장이가 성안군이 친한 것에 미치지 못하고, 충성과 믿음으로 보면 대부 종가 범려가 구천에게 한 것보다 못합니다. 이 두 가지 일은 거울로 삼을 만합니다. 원컨대 당신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

또 제가 듣건대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만드는 자는 그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

* 결국 한신은 괴통의 충고를 듣지 않았고, 괴통은 미친척하고 무당이 되었고, 한신은 죽게 된다.

 

804. 그러나 한신은 망설이면서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했다. 또 자신이 공이 많으니 한나라가 끝내 제나라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괴통의 제안을 거절했다. 괴통은 한신이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자, 얼마 안 가서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 무당이 되었다.

 

806.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훌륭한 활을 치운다.)

한신은 스스로 죄가 없다고 여겨 고조를 만나려고 하면서도 사로잡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한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종이매의 목을 잘라 황제를 뵈면 황제께서 반드시 기뻐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신이 종리매를 만나 상의하자, 종리매는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가 초나라를 쳐서 빼앗지 않는 까닭은 내가 당신 밑에 있기 때문이오, 만일 당신이 나를 잡아 자진해서 한나라에 잘 보이려고 한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죽겠소. 그러나 당신도 뒤따라 망할 것이오.”

그러고는 한신에게 호통을 쳤다.

“당신은 훌륭한 인물이 아니오.”

그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은 그이 목을 가지고 진으로 가서 고조를 만났다. 그러자 고자는 무사를 시켜 한신을 묶게 하고 뒷수레에 실었다. 한신이 이렇게 말했다.

“정말 사라들의 말에 ‘날래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모두 치워 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삼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811.태사공은 말한다.

“.....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33. 한신, 노관 열전

 

34. 전담 열전

 

843. (평민에서 일어나 번갈아 왕이 된 세 형제, 치욕스런 삶을 사느니 차리라 죽음을 택한다)

“아, 역시 까닭이 있었구나! 한낱 평민에서 몸을 일으켜 세 형제가 번갈아 왕이 되었으니 어찌 어질지 않겠는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두 빈객을 도위로 삼고 군졸 2000명을 뽑아 왕의 예를 갖추어 전횡을 장사하였다.

그러나 장례가 끝나자마자, 두 빈객은 무덤 곁에 구덩이를 파고 모두 스스로 목을 베고 거꾸로 처박혀 전횡을 따라 죽었다. 고제는 이 소식을 듣고 몹시 놀라며 전횡의 빈객이 모두 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그 나머지 500명이 여전히 바다 가운데에 있다고 들었으므로 사신을 불러 오게 했다. 사신이 그곳에 이르러 전횡의 죽음을 알리자 모두 목숨을 끊었다. 이로서 전횡 형제가 선비들의 마음을 얻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5. 번, 역, 등, 관 열전

 

869.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풍현과 패현으로 가서 진나라 때부터 살아온 그곳 노인들을 찾아 소하, 조참, 번쾌, 등공의 옛집과 그들의 평소 사람됨을 물어보았는데 세상에 전해지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이 칼을 휘두르고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 어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가듯이 한 나라 고조를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내리게 될 줄 알았겠는가? 나는 번타광과 교분이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고조의 공신들이 처음 일어날 때 상황을 이와 같이 들려 주었다.

 

3. 내가 저자라면

 

1. 역자 서문은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도움이 된 것들

1) 사기열전에 언급된 인물들이 춘추전국시대와 한나라 초기의 사람들이라는 점에 대한 설명이 도움이 되었다. 전쟁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그리고 전쟁을 치르기 위해 혹은 막기 위해 당대의 유세가들이 어떤 방편을 썼는지에 대한 이해가 열전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2) 몇몇 열전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

자객열전, 회음후 열전, 화식열전, 편작 창공열전, 조선 열전 등을 언급하면서 각 열전을 어떤 것을 염두해 두고 읽어야 할지 설명한다.

 

2. 해제는 정말 중요하다. 책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2-1) 사기 열전 70편을 읽기 전에 먼저 여기에서 <열전>이 <사기> 전체 구성에서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구성에 대한 것을 알수 있었으며,

2-2) ‘사성 사마천은 누구인가?’ 부분은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견디고 이 책을 저술한 것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또한 사마천이 천문학 분야에 일을 하면서 자료에 접근하기 쉽다는 이유로 역사책을 저술한 사마천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2-3) ‘사마천의 사기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부분은 책을 읽은 가이드가 되었던 동시에 방해물이 되기도 했다.

‘발분의식의 소산’이라든가 「백이열전」에서의 동류의식에 대한 설명은 사마천의 역사 서술을 작게 보게 만들었다. 공자의‘『춘추』 정신의 계승’이라는 측면은 언급했기에 책을 읽는 동안 ‘태사공은 말한다’라는 부분에 집중해서 보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논어』를 떠올려 보거나 공자의 일화를 떠올려 보았다.

‘사마천은 자신이 입수한 문헌 가운데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들을 먼저 고르고 거기에 평가를 더했다.’(p20)라는 부분이 있다. 이 문구를 기억하면서 <백이숙제열전>이 왜 앞에 배치되었는지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공자가 언급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부분을 읽는 동안 이들이 역사적으로 앞서서 라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다. 가이드가 되기도 했지만, 한쪽의 시각만으로 보게 한 점도 있다 하겠다.

 

3. ‘태사공은 말한다.’

각각의 열전은 그 인물이 한 일이나 겪은 일 혹은 성격을 나타내는 일화를 적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태사공은 말한다.’라는 부분에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구성은 에피소드에서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한 후에 그에 대한 평을 하고 있는 것이어서, 인물에 대한 성격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것보다는 객관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성은 후에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에피소드가 있는 후에 ‘시인은 노래한다’라고 하며 인물이 겪은 사건과 그것에 의미를 노래하고 있다. 구본형사부님이 사기열전을 옆에 두고 즐겨 보았다는 것을 떠올랐다.

 

4. 태사공이 인물에 대해서 평한 것이나, 그 인물을 이 열전에 소개한 것에 대해서 의문이 많다. 지금과는 상황이 다른 전쟁이 최고로 중요시되는 춘추전국시대라는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이 인물들의 행위를 본받아야 할지, 반면선생으로 삼아야 할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불교 수업시간에 배운 말로 바꾸자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 할 수 있는데, 열전의 인물들이 ‘이상한 놈’들이 많다. 이들을 사마천이 왜 실었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겠다. 이들은 그 시대에 이름을 알려진 주요 인물이기도 하겠지만, 제각각이 각각의 한계를 갖고 있기도 하다. 사마천이 이들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을 얼마나 따라야하는지 의문이 드는 인물들(내 기준으로 분류했을 때 ‘이상한 놈’들)이 많다.

 

5. 각각의 열전에 주를 이루는 인물이 다른 열전에서는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 나와서 한 사건을 여러 시각으로 보게 한다. 전쟁 하나를 두고도 이편과 저편의 입장에서 볼 수 있어서 먼저 했던 가치 판단을 다시 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6. 인물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문헌이 중심이 되다보니 서신의 내용이 긴 부분이 많았다. 이야기를 전하는 입장에서보다는 문헌을 중시한 것 같다.

유세하는 사람들의 설득부분과 서신 부분 또한 문어적인 부분이 많이 드러났다. 유세를 할 때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하는지 궁금했다. 이것은 말을 글로 옮겨적어 두느라 이렇게 구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건을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전개될 때는 이해하기 쉽고 좋았는데, 서신내용은 읽을 때는 주의를 하게되었다. 유세객들이 먼저 좋은 말로, 옛 성현의 말을 앞부분에 인용하거나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각자 자신의 이익이나 제 나라의 이익을 위해 그런 유세를 한다는 것을 잊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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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1 09:16:50 *.216.38.13

와.... 정화씨....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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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09:01:55 *.131.89.236

에고 선배님, 무슨 말씀을.

한주에 다 읽기는 벅차요. 예전엔 어찌했는지 몰라요, 2주동안 했어요.

안돌아가는 머리 쓰니라 .... 죽을뻔 했어요.ㅋㅋㅋㅋ

2권은 어찌하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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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10:39:14 *.216.38.13

맞아요. 예전에는 다들 어떻게 했는지... 정말 그러네요.

에릭 홉스봄 <미완의 시대>하고 <관자>를 한 주에 다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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