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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3일 06시 01분 등록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9기 연구원 5주차(13.6.3)

신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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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소개 : 조셉캠벨 & 빌 모이어스

원명 Joseph Campbell

1904 3 26일 뉴욕 출생

1925년 콜럼비아 대학교 졸업

1927년 콜럼비아 대학교 영문학 석사과정 수료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194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발표

1959~1967 <신의 가면> 1~4 권 집필

1987 10 31일 호놀룰루에서 사망

조셉 캠벨(Joseph Campbell.1904.3.26∼1987.10.30)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 뉴욕 주 화이트플레인스 출생.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민담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맨하탄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즐겨 찾았다. 그 중 특히 박물관 한켠에 있는 토템 기둥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자신이 어렸을 적 즐겨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담과 아서 왕에 나오는 많은 주제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캠벨은 콜롬비아 대학을 비롯한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특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선 중세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였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이후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의 교수가 된 뒤 신화의 원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신화적 인물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영웅을 중심으로 한 그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다. 또한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4)을 펴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유명하며, <신화의 힘>,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야생 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호놀룰루에서 세상을 떠났다

   캠벨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로마가톨릭 신앙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관련서를 탐독했다. 다트머스 대학에서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했지만, 나중에 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겨서 중세 영문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1927년 캠벨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 이후 2년 동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공부한다. 1929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문학 대신 인도 철학과 미술 쪽으로 공부를 계속하려 하지만, 대학 측의 반대로 결국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난다. 때마침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불황을 맞이한 상황에서, 캠벨은 이후 5년 가까이 칩거하며 독서와 사색, 그리고 습작에 몰두한다.

   1934년에 캠벨은 미국의 명문 여자대학인 새러 로렌스 칼리지에 문학 담당 교수로 부임하고, 1972년 퇴직할 때까지 38년 동안 재직한다. 그리고 그 와중인 1938년에는 제자였던 현대무용가 진 에드먼과 결혼한다.

   캠벨은 어려서부터의 관심사였던 인류학과 민속학을 바탕으로, 비교종교학과 분석심리학 등의 이론을 이용하여 신화와 종교 연구를 지속해 명성을 얻는다. 그의 대표작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1949)은 세계 각지의 신화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영웅의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주저인 4부작 <신의 가면>(1959-1968)을 비롯하여 <신화와 함께 하는 삶>(1972), <신화의 이미지>(1974), 그리고 최후의 역작인 총 2 5권의 <세계신화지도>(1983-1989) 등을 펴냈다.

   하지만 조지프 캠벨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PBS 방송국에서 제작한 대담 프로그램신화의 힘’(1988)이었다. 그의 생애 막바지에 제작되어 결국 사후에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 캠벨은 저명한 방송인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을 통해 신화가 현대에 지니는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토대로 한 대담집은 오늘날까지도 신화에 관한 가장 훌륭한 개론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조지프 캠벨은 1987 10 30,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후에 아내인 진은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조지프 캠벨 재단을 설립하고, 캠벨의 유고와 대담, 그리고 강의록 등을 정리, 출간하고 있다.

 

원명 : Bill Moyers

1934 65

소속 정당 : 민주당

저널리스트, 시사평론가, 저술가, 각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

미 언론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민주당성향의 진보주의자, 방송계의 퓰리쳐상이라 불리는 피버디상을 10, 에미상을 30회 이상 수상한 경력이 있다. F 케네디 행정부와 린든 B. 존슨 행정부 시절엔 정계에 투신해 백악관 공보비서관을 맡기도 했다. 1986신화의 힘이라는 6시간짜리 대담형식의 tv 프로그램에서 조셉캠벨과 신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조셉캠벨을 잘 이해하고 있는 팬이자 친구인 것으로 보인다.

 

신화의 힘

1. “모든 고통의 씨앗은 가장 중요한 인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간의 유한성이랍니다.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 이것을 부인할 도리는 없는 것이지요.” (8)

2. (왜 하필이면 신화 같은 게 필요하냐) 부서진 질그릇 부스러기가 문화 인류학의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듯이 신화 따위의 잔재가 우리의 믿음이라는 내면적 체계의 벽 에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10)

3. 캠베은 재판관의 위치를 사회학적 용어가 아닌 신화학적 용어로 설명해낸다.  재판관이라는 위치가 단순한 직업적 역할만을 상징한다면 그 사람들은 굳이 검은 법복을 입을 필요 없이 회색 양복을 입고도 재판정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강제력 이상의 어떤 힘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장의 권능이 의례화 하고 신화화 하는 것이다. 캠벨은 종교와 전쟁에서 사랑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 삶의 양태를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10)

4. 캠베은 언젠가, 인류는 자기의 내부에 식인종적이고, 색정적인 열정을 지니고 있는데도 이러한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탄한 바 있다. 그는 이러한 열정을 인류의 전염병이라고 불렀다. (10)

5. 고명한 구도자와 영웅은 다른 점이 많은데, 그 다른 점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구도자는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도를 닦지만 영웅은 사회의 구원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점이다.(12)

6. 운명은 앞서서 뜻 있는 자를 인도하지, 뜻 있는 자의 멱살을 잡아 끄는 것은 아니라오.”(14)

7. “목사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말로써 사람을 믿음에 이르게 하려고 애쓴다는 것이오. 자기가 보았던 빛을 신도들에게 넌지시 보여주기만 하면 될텐데 말이오.”(14)

8 (캠벨)은 자기의 작업이 관류하는 중심 사상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임을 인정한바 있다. (15)

9. 빌모이어스는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이러한 작업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군요.” (캠벨)은 대답한다. “아니지, 그게 아니오. 살아 있음의 경험을 찾는 것이지요.”

10. (요한복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1.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의 이름과 신의 이미지는 가면일 뿐이다. 이 가면은 곧, 우리의 언어와 기술로는 정의가 불가능한 궁극적 실체를 뜻한다. 신화 역시 신의 가면이다.

12.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은유)이다.

13. “우리는 이 순간에도, 우리의 외적인 자연에 관한 지식은 물론 내적인 신비에 관한 지식을 겨냥한, 인류 정신의 가장 위대한 도약에 참여하고 있다.”(20)

14. 서부극이 사실은 그 이야기를 고대의 이야기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점, 우리가 주일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가 사실은 고도로 영적인 모험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던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 필멸의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 하느님이라는 궁극적인 실체를 깨치지 위해 악전고투하는 이야기와 동일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20)

15. 그는, 신화란 우리 심층의 영적 잠재력에 이르는 실마리이며, 신화야말로 우리를 기쁨과 환상, 심지어는 황홀의 세계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믿는 한편, 우리를 그 세계로 불러들이기를 좋아했다.

16. “글쎄요, 우리에게 종교적 이념 같은 게 있는 것 같지 않군요. 신학도 없고요. 우리는 춤을 출 뿐이지요.” 그렇다. 캠벨도 춤을 추었다. 우주의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었을 뿐이다. (21)

연구원 지원, 준비, 현재의 과정까지 스스로 은연 중에 생각하는 개념이 있다. ‘춤추듯 글쓰기열손가락이 춤을 추듯이 자유롭게, 고정관념, 남의 시선, 글의 질 등 이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춤을 추는 듯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란 생각…… 캠벨도 결국 자신의 천복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춤을 출 수 있었다.

1. 신화와 현대 세계

17.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27)

18. 토니오는 작가는 진실에 진실해야 한다고 씁니다. 그런데 토니오는 진실에 진실하면서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왜냐, 인간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19. (모이어스) 신화라는 것은 우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해온 진리에 대한 모색, 의미에 대한 모색, 의미 있음에 대한 모색을 뼈대로 하는 이야기 입니다.

20. 결혼이 무엇이냐 하면 결혼하는 두 사람 사이의 영적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31)

21. (또하나의 자기)에 대해 캠벨 왈)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이거다, 하고 오는 게 있어요. 그러면 사람의 내면에 있는 어떤 존재가, 이게 바로 그것이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22. 사람은 결혼을 하면 바로 이러한 관계 속에 들어갑니다. 결혼한 사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33)

21. 결혼의 첫번째 단계를 자연이 부여한 불가사의한 충동에 따라 두 젊은이가 결혼하는 단계이지요…… 젊은이들의 결혼은 어느 대목에 이르면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드는데, 이것이 내가 바로 연금술적 단계라고 이름 붙인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둘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이 단계에서 부부는 내가 앞서 말한 희생의 의미를 서로 아름답게 깨닫게 됩니다.

22. 사춘기 의례가 필요한 까닭이 거기에 있지요. 원시 사회에서는 이빨을 쪼아낸다거나 몸에 상처를 낸다거나 할례 割禮를 베풀거나 하는 사춘기 의례가 있었어요. 이러한 의례를 거치면 어린이의 몸은 더 이상 어린이의 몸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37)

23. (로마 카톨릭 가정의 아이에 대한 교육과, 카톨릭 가정의 아이에 대해 언급하며) 1년내내 계속되는 의례가 가변적인 존재의 불변하는 핵 같은 것을 어린아이의 마음속에다 새겨놓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에게 죄악이라는 것은 그러한 조화의 관계에서 이탈하는 행위이지요. (39)

24.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 상태가 되는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41)

25 .(그러나) 왕이나 여왕에 대하여 반응할 때 우리는 그들의 인격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 이들이  지닌 신화적인 역할에 따라 반응합니다.

26.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삶의 모습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50년 전에는 온당했던 것이 지금은 온당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어요. 과거에는 미덕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악덕이 되었고요. 과거에는 우리가 악덕이라고 하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필요악이 되어 잇는 경우도 수없이 볼 수 있어요.(43)

27. 신화는 영적인 의식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47)

28.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인간은 어머어마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현몽하고 있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나는 이 원형적인 꿈 세계의 문턱에 이를 때마다 거기 이르렀다는 것을 압니다. 신화는 나에게 절망의 위기, 혹은 기쁨은 순가, 실패 혹은 성공의 순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신화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48)

29. 제 막내아들 녀석이 <스타워즈>를 스무 번 아니면 서른 번쯤 본 것을 알고는, 제가 너 그 영화를 왜 그렇게 많이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녀석 대답니, “이유는 아빠가 평생 <구약성서>를 읽는 것과 같지, .” 였습니다. 그러니까 제 아들은 새로운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겁니다.(54)

신화는 인류 원형의 꿈이자 인간 성질의 모든 것 좋은 것, 나쁜 것, 더러운 것, 추악한 것 등 이라는 가면을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이고, 은유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거짓말일 수 있다. 따라서, 삶의 환경이 바뀌고 인간의 성향이 조금씩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신화를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30. <스타워즈>는 기계가 지배하는 상태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묻지요. “기계가 인간성을 마모시킬 것이냐, 아니면 기계가 인간을 섬길 것이냐.”(54)

31. 인도의 칼리여신

피투성이의 여신 칼리는 원래 벵골 지방(인도 북동부)에서 숭배되었던 토착 여신이다. 그후 시간이 흐르면서 두르가와 관련이 깊은 신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칼리는 예로부터 풍요의 신으로서 사람들에게 수확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대가로 소 같은 산 제물을 요구했다. 소와 관련해서는 두르가 여신이 물소로 변신한 악마를 물리친 적이 있다. 이 두 여신은 소를 통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도 모른다. 칼리는 잔혹한 여신으로서, 순수한 전사 두르가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언제나 피를 요구하며, 산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는 무서운 신이다. 옛부터 인도에서는 이 여신에게 산 제물을 바치는 전통이 있었다. 주로 동물이 산 제물이 되었지만, 때로는 인간을 바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칼리는 유난히 빨간색을 좋아해서 그녀에게 바치는 꽃도 반드시 빨간색만 허락된다고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32. 아일랜드를 보세요. 17세기에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한 무리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아일랜드로 들어갔습니다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수인 카톨릭의 문을 열지 못합니다. (58)

33. 신화의 뼈대가 되는 모티프는 같아요. 옛날부터 그래왔어요. 우리의 신화학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은 자기가 사회의 어떤 동아리에 속해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지요. (60)

34. 신은 인간의 삶과 우주의 기능하는(개인의 육신과 자연에 기능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 혹은 가치 체계의  화신입니다. 신화는 인류 안에 있는 영적 잠재력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기운을 북돋우는 힘은 이 세계의 생명을 북돋우기도 하지요.(61)

35. 그런데 성서적 전승은 사회 지향적 신화학입니다. 여기서 자연은 쫓겨납니다. (……) 그러나 자연이 악마로 간주되는 순간부터 사람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대신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긴장과 불안이 조성되면서, 삼림을 베어내고 토인을 몰살시키는 등의 일이 일어납니다. 여기에 이르면 사람은 자연과 헤어집니다.(62)

36. 미 합중국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아니라 이성을 바탕으로 세워진 최초의 국가이다.

37. (미 합중국 국장의 이야기) 피라미드를 자세히 보면 몸체에 구획이 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 13개입니다. 그리고 맨 아래쪽에 로마 숫자가 씌어 있습니다. 물론 1776년을 나타냅니다. , 1, 7 7  6을 보태면 어떻게 되가요? 21. 이성의 시대를 나타내는 숫자 아닌가요? 13이라는 숫자는 변용과 재생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는 열두 사도와 곧 죽어서 넘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12궁도 역시 12궁과 태양으로 이루어 있지 않던가요>? 국장을 제정한 양반들은 13이라는 숫자가 부활과 재생과 새 생명을 상징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서, 이걸 여러 모로 아주 적절하게 사용했습니다.(68)

38.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도 , 즉 초월적인 존재에서 하나가 나오고, 이 하나에서 둘이 나오며, 이 둘에서 셋이 나오고, 이 셋에서 우주 만물이 비롯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39. 이성은 생각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사물에 관해서 생각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성이 작용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73)

40. 개인은 자기 삶과 관계된 신화의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야 합니다. 신화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기능을 지닙니다. 첫째는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입니다. 두 번째 기능은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기능은 사회적 기능입니다. …… 신화의 기능 중에서 우리 세계를 가장 폭넓게 지배하고 있는 기능은 바로 이 사회적 기능입니다. 시대착오적이지요. (75)

41. 미래를 생각하는 신화 중에서 가치 있는 신화는 어떤 도시, 어떤 동아리에 관한 신화가 아니라 이 땅에 관한 신화입니다. 모든 인류가 사는 이 땅에 관한 신화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신화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질문 앞에 내밀 수 있는 나의 중심 사상입니다.(77)

2. 내면으로의 여행

42. 신화에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에 빛이 나온다는 겁니다.(83)

43 신화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이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이 빛이 나온다는 겁니다.(86)

44. 신화는  우리 몸의 서로 갈등하는 각 기관의  에너지가 상징적인 이미지, 은유적인 이미지로 현현한 것이지요.(86)

45. (꿈꾸는 시간이란) 잠들어서, 우리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영원한 삶의 조건과, 그 조건과 관련된 우리 현세적 삶의 현장을 꿈꾸는 시간을 말하지요.(87)

46. 프로이트는 더할 나위없이 상세한 꿈도 실제로는 가장 상세할 수는 없다는 말을 했어요. 꿈은 우리 자신에 대한 영적인 정보가 무진장하게 발현되는 현장입니다.(87)

47. 꿈은 우리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입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개인이 꾸미는 사적인 신화인 꿈이 그 사회의 꿈인 신화와 일치한다면, 그 사람은 그 사회와 무난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앞에서 기다리는 캄캄한 숲 속에서 한바탕 모험을 해야 합니다.(89)

48. 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 …… 삶의 요체 중 하나가 바로 생명이 생명을 먹는, 다시 말해서 스스로를 먹는 행위 아닌가요? 생명은 생명을 먹습니다.

49. 생명력은 뱀으로 하여금 허물을 벗게 합니다. 흡사 달이 그 그늘을 벗듯이 말이지요. 다이 다시 차기 위해서 그늘을 벗듯, 뱀은 거듭나기 위해서 그 허물을 벗지요. 이 양자는 대응하는 상징입니다. 때로 뱀은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동그라미 꼴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삶의 이미지이지요. 삶 역시 한 세대에서 이울면서 다음 세대로 넘겨져 거듭납니다. 뱀은 끊임없이 죽고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영원한 에너지와 의식을 상징합니다. 끊임없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삶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문득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뱀 역시 삶에 대한 놀라움과 섬뜩함 같은 이미지를 지닙니다. (96)

50. 결국 여자가 이 세상에다 삶을 일군 겁니다. 이브는 이 속세의 어머니 입니다.(98)

51. (타락의 책임을 왜 여자가 지게 된 겁니까?) 여성은 삶을 상징하거든요. 남자는 여성을 통해야만 삶의 장으로 나올 수 있어요.  따라서 대극하는 것과 고통이 있는 이 세상으로 우리를 나오게 한 것은 여성이 셈이지요.(100)

52.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금제에 불복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지요.(106)

53.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의 삶의 과정에서 억압된 트라우마(정신적 상흔) 경험의 덩어리 입니다. 다시 말해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적인 무의식으로서 생리적인 것입니다만, 융이 말하는 무의식은 원형은 생물학적입니다. 생리적 원리는 생물학적인 원리에 견주면 2차 적인 것입니다.(107)

 54. (기도와 인도의 인사법) 손바닥을 서로 붙이는 것은, 내 안에 잇는 신이 상대방 안에 있는 신을 알아본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만물에 신이 깃들여 있다고 믿으니까요. 인도 사람의 집에 손님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손님신으로 대접받는답니다.(109)

55. 나는 신화를 예술의 여신인 뮤즈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바로 신화가 예술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시의 영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거죠. 삶이 시 같고, 우리는 바로 이 시의 세계에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은 신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113)

56. 내가 라고 하는 것은 언어로 된 것이 아니고 행위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는 행위를 초월한 어떤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접하면 우리 자신이 우주적인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

시처럼 살고 싶어하셨던 구본형 선생님의 삶은 말 그대로 행위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삶이 이었다. 그와 더불어 은은한 은유와 향기도 있었다.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시처럼 살고 싶다고 했던 말을……

57.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실로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안다는 것은 실은 모른다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이다.”(114)]

기본이 부족한 나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저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알고자하는 노력을 안할 것이고, 모른다고 생각하는 자는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알게되는 것이 아닐까……

58. 종교라는 것은 제2의 자궁 같은 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삶이라는 극도로 복잡한 것을 우리 안에서 익게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익으면 스스로 동기도 유발시킬 수 있고, 스스로 행동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죄악이라는 관념은 우리를 평생 처참하게 만들어버립니다.(115)

59. 은유라는 것은 드러내기는 드러내면서도 사실 본뜻은 다른 데 있는 표현법입니다……. 만일에 은유를 은유로 보지 않고 문자 그대로를 가리키는 거라 생각하는 것은 음식점에 가서 메뉴를 달라고 한 뒤, 그 메뉴에 비프스테이크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 페이지를 씹어먹는 것이나 같지요.(116)

60. “예수가 승천했다는 말을 은유적 코노테이션(내포된 의미)의 문맥에서 읽는다면, 예수가 사실은 내면화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가 들어간 곳은 외계가 아니고 내부의 세계인 겁니다. 그는 모든 존재가 비롯되는 곳으로 들어간 겁니다.(117)

61. 내면의 세계는 외면의 세계와 접하는 우리의 요구와 희망과 에너지와 구조와 가능성이 반영된 세계입니다.(117)

62. ‘영혼의 자리는 외면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가 만나는 자리인 것입니다.(노발리스)(118)

63. 칸트는, 우리의 모든 경험은 시공에 한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경험은 어떤 공간 안에서, 어떤 시간대에 생기는 것이지요.(126)

64.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경험을 한정시키는 감각 능력을 형성시킵니다. 우리의 감각은 시공의 장에 갇히고, 우리의 마음은 생각의 범주라는 틀에 갇힙니다. 그러나 우리가  접촉하려고 하는 궁극적인 존재(이것은 사물이 아닙니다) 는 갇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을 하려고 함으로써 가둘 뿐입니다(126)]

65. 무엇이든 궁극적인 실재는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범주를 초월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있느냐, 없느냐는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127)

66. 인생은 슬픈 것이다. 이것은 석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사실 그렇지요. 세속성(상실하고, 상실하고, 상실하는 것으로 인한 슬픔의 원인)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의도가 이러한 것이었으니까요.(134)

67. “나무 위의 새 두 마리가 앉아 있다. 아주 약삭빠른 녀석들이다. 그런데 한 마리는 그 나무의 과실을 먹는데, 다른 한 마리는 먹지 않고 관찰만 한다.” , 나무의 과실을 먹는 새를 그 과실을 죽이고 있지요. 그러나 관찰만 하는 새는 필경은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136)

68. 영원이라는 것은 뒤에 오는 것이 아니에요 영원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닙니다. 아니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세속적인 생각을 끊는 바로 지금의 이 자리에 있습니다. 천국의 개념이라는 문제로 보면, 거기에서 지복을 누리면서 영원이라는 것을 생각에도 두지 않게 됩니다. 영원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느님의 지복 직관에서 끊임없이 복락을 누린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선악의 분별이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만물의 영원을 경험하면 어떻습니까? 그 경험에는 인생의 그런 기능이 있어요.(139)

3. 태초의 이야기꾼들

69. 신화와 의례는 마음을 몸에다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삶을 자연에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141)

70. 그렇지요. 인간의 발달 단계는 고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 세상의 질서와, 복종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식에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에 설지요. 그러나 성숙하면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가 책임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지요. 이 문턱을 넘지 못하면 신경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내것처럼 사는 시절이 지나면, 이윽고 세상을 남에게 양보해야 하는 때가 옵니다. (142)

71. 사람은 죽임을 통하여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이러한 행위와 관계 있는 죄의식이 있지요. 매장에도 친구는 죽었지만 다른 곳에서 계속해서 살 것이라는 의식이 반영됩니다.(145)

72. 짐승이 화살에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면, 사냥꾼(부시맨)은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않는다는 식의 자기 희생적인 금제를 지킵니다. 그 동물의 죽음에 대해 일종의 신비에의 참여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는 까닭은 그 짐승의 죽음은 자기네들로 인한 것이고, 또 그 짐승의 고기가 자기네드의 음식이 될 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일종의 동일시, 신화적인 동일시가 개입합니다. 따라서 죽임이라는 것은 단순한 살육이 아닌 의례행위가 됩니다…... 그러니까 사냥은 의례인 것이지요.(47)

73. (들소들의 기원에 관한 전설-민네하하라는 인디언 처녀는 양식부족에 시달리는 종족을 위해 들소에 대해 무심코 던진 말로 들소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민네하하를 구하러 가지면 결국 들소들에게 치어 죽고 만다. 민네하하는 들소들에게 요청을 해, 아버지를 살리는 주술을 하고 아버지는 환생한다. 그러자 들소 하는 말…)

왜 우리를 위해서는 이렇게 해주지 않았는가? 우리가 들소춤을 가르쳐줄 터이니, 우리 일족을 죽이거든 그 들소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다오. 그러면 우리가 다시 살아나게 될 테니.”

이는 바로 그 의례를 통해 삶이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155)

74.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75. 의례의 마당은 신화가 드러나는 마당입니다. 의례에 참가한다는 것은 곧 신화에 참가하는 것이지요. (162)

76. 하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초경을 치른 여자에게도 입문 의례가 있었다고 해요. 조그만 오두막 안에서 며칠 동안 명상을 하면서 여자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기간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냥 앉아 있는 겁니다. 그러면 한 몫의 여자가 되는 거지요. 여자라는 게 뭡니까? 생명을 나르는 수레 아닙니까? 생명이 여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면 여자는 이 생명을 낳고 먹여서 기릅니다. 여자의 힘은 대지의 여신이 지닌 힘과 동일시 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해야 하는 일은 이것을 깨닫는 일입니다.(164)

77. 독일에는 상당히 로맨틱한 데가 있는 묵은 표현이 있습니다.  다스 폴크 디히테트(das vlk dichtet)’라는 건데, 이것은 전통 문화의 관념과 시는 모두 민중에게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문화와 관념과 시는 민중에 의해, 민중간의 상호작용, 작용 반작용, 물음과 답,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민중 안에서 이루어진다.

78. 샤면은 남자든 여자든 소년기 후반, 혹은 청년기 초반에 심각한 심리적 격동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완전히 내면화해버린 사람입니다. 이 격동은 일종의 정신분열증적 해리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샤먼의 무의식은 늘 열려 있습니다.(168)

79. “귀신을 몰아낸답시고 그대 안에 있는 가장 귀한 존재를 몰아내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런 말을 한 사람이 니체 였지요, 아마? (173)

80. 블랙 엘크(수우족의 인디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세계의 중심에 있는 가장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내가 본 환상은 다른 것이 아니다.  성스럽게 바라본 세계의 모습이다.” 그가 세계의 중심이 있는 성스러운 산이라고 한 것은 사우드 다코타에 있는 하아네이 봉우리입니다. 이어서 그가 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산은 도처에 있다.”(173)

81. 세계의 중심에 있는 산은 바로 악시스 문디(axis mumdi, 세계의 축)’를 말합니다.(174)

82. 수많은 철학자에 의해 되풀이된 신에 관한 정의가 있습니다. 신은, 중심은 도처에 있으나 주변은 없는 이해 가능한 구체라고 정의하는 그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의 해답이 될 수 있는 놀라운 신화적 자각일 수 있습니다. (175)

83. 우리가 곧 중심에 있는 산이고, 이 중심에 있는 산은 도처에 있는 것입니다.(175)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며,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나인……. 내 안에 신이 있고, 신 안에 내가 있는이런 뜻인가?!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4. 희생과 천복

84. 사는 곳을 성화시키는,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85, (성소性巢의미에 대해서)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에게 절대 필요불가결한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날 조간에 어떤 기사가 실려 있는지도 모르고,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남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남이 나에게 무엇은 빚졌는지 모르는 그런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인지, 장차 무엇일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여백이야 말로 창조의 포란실 입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성소로 삼게 되는 순간부터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179)

⇒ 과거와 달리, 경제가 발전하고 평균학력이 높아지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모든 것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졌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지고, 분야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졌으며, 일과 생활의 경계도 무너졌다. 경제 체감속도는 빨라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모든 기업은 자신의 핵심역량 플러스 알파가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학력과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게 되었고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 구분이 없어졌다. 증감현실, e-mail, SNS, 노트북,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스마트기술로 인해 일과 개인의 삶의 분리가 힘들어졌다. 퇴근 후에도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고, 급한 E-MAIL로 일을 해결해야 할 수도 있다. 직장에서도 SNS와 문자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고 수다를 떨 수도 있다. 스마트 폰을 이용해 스리슬쩍 인터넷뉴스를 보아도 되고 심지어는 야구중계를 보아도 된다…… 이렇게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자신의 색깔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아졌다. 자신이 놓여있는 그곳,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요구하는 속도에 맞춰가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옳은 길인지 아닌지도 모른채 그렇게 달려가고 있다. 계속되는 과속으로 엔진이 뜨겁게 달아오르듯이 우리의 뇌는 과부하가 걸리고 멀티태스킹으로 인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때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현대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단절된 하얀 여백과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누구이고 지금 제대로된 곳에서, 제대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어떤 존재의 개입도 없는 여백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86. 정신이라는 것은 삶의 향연입니다. 그것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189)

87.( 신성 해석에 대하여….. )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아주 멋진 방법이랍니다. 방에서 앉아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190)

88. 구세주 성격을 지닌 주인공의 죽음과 부활은 이런 전설의 공통적인 모티프로 등장하지요. 가령 옥수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그래요. 소년의 꿈속에서 나타나는 잘생긴 젊은이는, 죽어서 소년이 속한 민족에게 옥수수를 주지요? 옥수수는 그의 주검에서 자라나니까요. 생명으로 솟아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했던 거죠. 태어나게 하기 위한 죽음, 죽기 위한 태어남, 이 두 패턴이 요즘 내 관심을 끄는군요. 현존하는 모든 세대는 다음 세대가 오게 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답니다.(201)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아버지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성기를 싹뚝 잘라내고 왕으로 등극한다. 자신도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크로노스는 낳은 자식드을 모초리 먹어치우려 한다. 막내아들 제우스는 어머니 레아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고 결국 아버지 크로노스를 지하 타르타로스에 가두게 된다. 어제는 오늘에게 자리는 내주고,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들에게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89. (뉴기니아의 식인 신화에 대해서……) 삶의 모습 자체는, 반드시 삶의 행위를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거지요. ……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을 떠났지요? 바로 그의 육신에서 영적인 양식이 나옵니다.(203)

90. 희생에 대한 옛 관념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확연하게 달라요. 마야 인디언은 의례의 마당에서 농구 경기 비슷한 시합을 합니다. 승패가 결정되겠지요? 그러면 이긴 팀의 주장은 진 팀의 주장에 의해 그 자리에서 제물로 희생됩니다. 목을 잘리는 거지요. 삶에서 승리한 자만이 제물이 될수 있다…… 이제 바로 희생과 관련된 옛날의 관념입니다.(206)

91. (쇼펜하우어) ‘우리라고 하는 존재가 사실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 ‘우리라는 것은 한 생명의 두 측면이라는 깨달음이다.(211)

92. 영웅이란 자신의 물리적인 삶을 이러한 진리 인식의 질서에다 바친 사람을 말합니다.(211)

93. 보살은 자비의 원리를 상징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치유의 원리에 다름 아닙니다.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자비가 있기 때문에 계속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보살은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불사를 획득한 존재이면서도 자진해서 이 세상의 슬픔에 참가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자진해서 이 세상에 참가한다는 것은,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212)

94. 종교 집단의 구성원이 되는 사람들은 이따금 앞길을 가로 막는 미로는 만나고는 하지요. 이 미로는 앞길을 막는 존재인 동시에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신화의 궁극적인 비밀입니다. 삶의 미로를 뚫고 지나가면 삶의 영적인 가치를 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입니다.(217)

95. (싱클레어 루이스의 바비트의 마지막 구절) “나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 천복 天福 의 부재를 의미함. (221)

96.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대로 가거라.(222)

97. 우리는 늘 이와 비슷한 것, 천복이 들어온 것과 같은 조그만 직관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걸잡는 겁니다. 그걸 잡으면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바닥으로 그걸 인식할 도리밖에는 없어요.(223)

98. 아이를 잘 알아야 하고, 아이에게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기 천복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든지 낯빛이 달라지든지 하지요. 삶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서 열립니다.(224)

99. 천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는 것이군요. (227)

100.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101.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227)

5. 영웅의 모험

102.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229)

103. 전장에서 전자한 병사와 출산 때 죽은 어머니는 똑같이 최고천(가장 높은 하늘의 층)에 배정받지요, 말하지만 출산은 영웅적인 행적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니까요. (231)

103.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기 적음이니라.”(233)

104.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234)

105. ‘통찰의 탐색(vision quest)’라고 불어도 좋은 특정한 신화 유형이 있어요. 통찰의 탐색은 홍익(弘益)탐색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자신이 속하던 세계를 떠나, 더 깊은 세계, 혹은 먼 세계, 혹은 더 높은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지요. 바로 여기에서 영웅은 원래 살던 세계에서 의식하지 못하던 것, 혹은 의식에서 빠져 있는 것과 만납니다……. , 그것을 만난 상태로 그곳에 머물 것인가., 세계로 하여금 그것을 포기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홍익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원래의 세계로 귀환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237)

106. (풍차에 돌격하는 돈키호테에 대해) 영웅은, 영적인 필요에 더 이상 반응하지 못하는 딱딱해진 세계와의 싸움에서 진이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240)

107. 벼랑이지요. 벼랑 이쪽에 있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벼랑 아래에 있는 것은 인간에게서 탐구 가능한 범위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벼랑은 이 양자가 만나는 곳이지요. (244)

108. 동화는 어린이들의 신화예요. 각 나이에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신화가 있어요. 나이를 먹게 되면 튼튼한 신화가 필요해집니다.

109. 내가 그 책(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쓴지 40여년이 지나면서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적인 삶의 양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가령 예를 들면 예수를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시대 정신의 극단으로 갑니다.  현세의 문턱을 넘어 40일간 광야를 헤매지요. 바로 이 광야에서 예수를 세 가지 유혹, 즉 경제적인 유혹과 정치적인 유혹 그리고 영적 과시에 대한 유혹을 받지요. 서기 30년 당시에 그랬듯이 지금도 위 삶에 유효할 것 같지 않나요? (255~256)

110. 신화는 시예요. 시적 언어는 대단히 유동적인 것이에요.(259)

그런데 종교는 시를 산문으로 바꾸지요.   하느님은 글자 그대로 저기에 있다. 이거야 마로 글자 그대로 하느님 말씀이다.  저 위에 계신 하느님께 가까워지려면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식이지요..(259)

111. 교육적인 묘기 : 플라톤은 어느 책에선가 영혼은 원 같다고 했어요. (아래의 그림을 보시면) 자아가 우리의 중심은 아니잖아요? 자아를 나타내는 사각형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나타내는 점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지 않아요? 우리는 자아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쇼를 연출하는 줄로 알지만, 아니에요. 결국 쇼를 연출하는 것은 우리의 무의식인 것이죠. (261)

112. (우리가 잘 모르는 진짜 자기를 만나는 방법)은 신화 자체, 또는 영적인 지도자나 스승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자기가 다루고 있는 문제와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싶은 책을 이용해서 배우는 겁니다. (263)

113. 좋은 스승은 충고를 할 뿐 명령은 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 필요한 말을 한마디씩 던지면서 스스로가 알아내도록 힌트를 줄 분입니다.(263)

114. <스타워즈>의 등장인물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현대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진짜 괴물 같은 힘을 상징합니다…… 다스베이더는 자기 인간성을 완전히 발달시키지 못했던 거지요. 그는 로봇입니다. 그는 자기의 뜻에 따라 사는게 아니라, 자기에게 강요되어 있는 조직의 뜻에 따라 사는 관료였던 것입니다.(265)

115. 영웅이 모험의 소명을 받고, 여행을 떠나 시련을 겪고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승리를 얻은 뒤 사회의 홍익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돌아온다……(267)

116. 의식은 우리 인간 존재의 부수적인 기관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식이 우리의 존재를 통제하게 하면 안 됩니다. 의식은 기가 한풀 꺾인 상태에서 우리 인간성을 섬겨야 하는 존재이지,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해도 좋은 존재는 아닌 것이지요. 의식을 통제하게 될 대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같은 인간이 생깁니다. (270)

117.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괴물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우리를 사로잡되, 우리 심층에 있는 것을 거머집니다.(272)

118.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 따라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272)

119. 우리가 욕망하는 것, 우리가 믿으려 하는 것, 우리가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사랑하려는 것,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게 바로 자아랍니다.(273)

120. 스승이 할 수 있는 것은 암시입니다. 스승 되는 사람은 등대와 같지요. “이 너머에는 암초가 있으니까 키를 똑바로 잡아라, 저 너머에는 해협이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등대와 같지요.(276)

121.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인생은 전처럼 다시 즐거워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278)

122. 낙타는 무릎을 꿇고, “내게 짐을 실으라고 말합니다. 책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과 수업을 받아야 하는 복종의 시절이 있는 법입니다. 낙타가 무릎을 꿇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283)

123. 청년기는 자기 발견의 시대, 사자로 변모하는 시기입니다. 이 청년기에는 법률이 적용되기는 하되, 강압적인그대의 미래복종시키는 방향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갖게 하는 방향이 적용됩니다.(284)

124.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가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은 딱 하나뿐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지요.(286)

125.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126. 여자가 물 속에 있었다는 것은, 결혼을 통하여 여자가 합리적, 의식적인 세계에서 무의식의 강박 충동의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에요.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수중 여행 모티프는 거의 다 이런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지요. 결국 개성이, 의지로 통제가 가능한 영역에서 초개성적인 충동의 영역으로 함몰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것은 개인에 따라 통제가 가능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290)

127. 부처가 된 석가는 고통에서 헤어날 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말하는 피난처가 바로 니르바나 (涅槃)인데, 이 열반은 천국 같은 어떤 이 아니라, 욕망과 고통을 해탈한 마음의 심리적 상태를 말하지요.(296)

128. (조셉 캠벨의 신화학적인 깨달음). 고통의 원인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그 고통을 비롯되게 했다. …… ‘아모르 파티(Amour Fati)’라는 건데, ‘운명에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운명이 곧 우리 삶이니 사랑하라는 겁니다. (297)

130.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에요. 신화는 시, 신화는 메타포일 뿐이에요. 신화가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라는 말은 신화를 정말 잘 나타낸 말입니다. 이게 왜 버금이냐 하면, 궁극적인 것은 결국 언어로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03)

131.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지요……영웅의 모험, 즉 살아 있음의 모험이지요.(303)

6. 조화여신의 은혜

132. (스타워즈와 많은 신화에 어머니 탐색이 없는 이유는……) 어머니는 여기에 있으니까요.

133. 여신 숭배는 주로 농경 문화, 농경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즉 대지와 아주 밀접합니다. 대지가 식물을 낳듯 인류의 여성은 인간을 낳지요. 대지가 그 식물을 기르듯 인류의 여성도 인간을 기릅니다. 따라서 여성이 지니는 마력은 대지가 지니는 마력과 같은 것이지요.(308)

134. (감사기도와 달리) 신화를 보면 사람들은 먹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기꺼이 희생됨으로써 우리의 먹거리가 되어준 그 동물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되어 있지요. (318)

135. 정신의 발전단계 (인도 관념체계) : 직장 (直腸) – 끊임없이 먹는 것. / 성기 (性器) – 생식 충동의 실현 / 배꼽높이 의지력의 중심, 자기 통제와 자기 성취, (부정적으로는 정복과 파괴) / 가슴 자비로운 마음(동물적 => 인간적으로의 이동) (318~319)

136. 예수는 마리아라는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마리아의 처녀성은 복원된다. 즉 예수는 영적으로 태어난 것이다. 두번째 탄생은 중심인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322)

137. 오시리스의 죽음은 나일강의 연례적인 범람과 상징적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땅은 바로 이 나일강의 범람을 통해 한 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비옥해집니다. 그러니까 오시리스는 자기의 시체를 썩힘으로써 그 땅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요.(324)

138. 여성은 생명에 형상을 부여했기 때문에 <베다>시대의 남성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었던 거지요. 이 세상 만물의 존재가 비롯된 곳은 남성과 여성이 분화되지 않은 곳, 그러니까 성 너머에 있어요. 그곳은 존재와 비존재를 초월해 있어요. 그러니까 존재하는 곳인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332)

139. 우리는 어떤 경우에는, 참여하지 않으면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 없어요.

140. 어머니가 자식에게 본성을 부여한다면, 아버지는 자식에게 사회적인 성격을 부여합니다. 말하자면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할 것이냐를 가르치는 것이지요.(334)

141. 여신은 우리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곧 여신의 몸이기도 합니다. 우주와 우리가 별개가 아니라 결국은 가능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신화인 것입니다.(336)

142. 우리와 이 광막한 우주는 하나라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변화에 참가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337)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143.(에로스적사랑과 아가페적 사랑과 달리) 아모르적 사랑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는 사랑입니다. 이 아모르적 사랑은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듯 눈과 눈이 만나는 데서 싹트지요. 말하자면 개인 대 개인의 사적인 경험인 것입니다. 

144. 리비도는 삶의 충동입니다. 가슴에서 나온 것이지요.

145.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에서……) 진정한 결혼은, 상대에게서 동일성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 진정한 결혼은 사랑, 즉 아모르의 영적인 충돌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345)

146. “죽음이라니…… 이 사랑의 고통 말이오?” (트리스탄이 이졸데의 유모에게 하는 말)((346)

147. 바그너는 자기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런 말을 하지요?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내 세상만 가지 수 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349)

148. 중세기사가 섬기던 다섯가지 미덕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군요. 첫째는 절제, 둘째는 용기, 셋째는 사랑, 넷째는 충성, 다섯째는 예의바름입니다.

149. 만일에 한 남성이 여성을 바랄 경우 여성은 바로 기선을 잡아버립니다. 여성이 자기 몸을 기꺼이 내놓는 걸 기술적인 용어로 메르시(merci)’라고 하지요.

150. 황무지의 거죽은실 제성을 표상하지 못합니다. 황무지 사람들은 죽은 삶을 살기 때문에, “나는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았다.”, 이런말을 합니다. (357)

151. 성배는 참삶을 살은 것, 또는 깨달은 것을 표상합니다. 결국 인간 의식의 가장 고귀한 영적 잠재성의 성취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358)

152. 토마스 만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존재인 것은 바로 인산에서 물질과 정신이 만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358)

153. 성배는, 자기의 의지력으로 사는 삶, 자기 충동의 체계로 사는 참 삶을 상징합니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등의 대극 사이로 난 길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 참 삶인 것입니다. (359)

154.(성배의 전설에서 청년 파르지발이 스승과 아내에 대해 얘기하다가 하는 말) “싫습니다. 저는 아내를 벌겠습니다. 주어지는 아내를 싫습니다.” 이게 바로 유럽의 시작(개인주의가 꽃 피는 유럽)이지요.(359)

155. 결혼은 평생의 약속입니다. 평생의 약속이니까 우리 삶의 가장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지요. 만일에 결혼을 하고도 그 결혼을 가장 큰 관심사로 치지 않는 사람은 결혼한 사람이 아니지요.

8. 영원의 가면

156.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바로 이 신화 이미지를 명상함은 우리 내부에 있는 이 잠재력을 촉발하는 겁니다.(375)

157.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참여하고 있는 순간에 이 사람은 이미 존재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깨닫고 있는 겁니다. 자연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날마다 이런 경험을 하지요. 즉 인간의 차원보다는 훨씬 위대한 무엇을 인식하면서 살아간다는 겁니다.(375)

158. 신은 그러니까 에너지를 나르는 수레인 것이지요(376)

159. 내게는 삶의 경이에 대한 경험이 있어요. 내게는 사랑에 대한 경험이 있어요. 나에게는 증오의 경험도 있고, 남의 턱주가리를 부셔놓고 싶다는 악의의 경험도 있어요. 상징의 이미지화()와 관련된 관점에서 복 때,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서 기능하는 서로 다른 힘들입니다. 동양인들이라면 이것을, 즉 경이와 사랑과 증오를, 각기 다른 신들이 야기한 감정 상태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377)

160.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느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부의한 자에 내리심이라..”

161. 남의 삶에서 의 삶을 인식하는 것, ‘와 남든 둘이지만 살고 있는 삶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겠지요(삶의 본원에 대하여…..)(387)

162. () 원은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에 원의 상징을 정밀하게 검토하는 일이 곧 우리의 자아를 분석하는 일이라고……

163. 우리는 수메르로부터 기본 사방과 360동의 방위각이 들어 있는 원을 물려받았습니다. 수메르의 공식적인 1년은 360일입니다. 물론 5일간의 성일이 더 있습니다만, 수메르인은 이것을 1년에 가산하지 않습니다.  이 닷새는 시간의 장에 속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 닷새는 그들의 삶에 천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온갖 의례에 쓰여집니다.

164. 원은, 한편으로는 전체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원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요……따라서 원은 바로 시간의 장과 공간의 장에서 완결된 완전성을 상징하는 겁니다. (390)

165. 결혼반지가 무엇을 상징하는지……’상징(sym-bol)’둘을 서로 엮는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반쪽과 또 하나의 반쪽이 서로 엮이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결혼 반지는, 우리는 원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391)

아무리 사랑한다 하여도 결혼하여 하나되기까지는 남은 전 인생이 필요한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수 많은 희로애락의  순간을 거쳐,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166. (신화들이 시공간과 문화권이 다른데도 똑 같은 이미저리가 떠오르는 것에 대해……) 우리의 정신 안에는 인류의 공통되는 어떤 힘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자세한 데까지 같을 수가 없어요. (393)

167. 삶의 시작에는 두려움도 없고 욕망도 없어요. 그냥 시작되는 것일 뿐이에요. 그러다 존재하게 되니까 여기에서 두려움과 욕망이 시작되는 겁니다. 두려움과 욕망을 버리고, 우리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 한 점으로 돌아가보세요. 이 한 점이 바로 요체랍니다.(394)

168. (마슬로프의 절정경험과 제임스 조이스의 에피파니에 대해……) 절정경험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 실재하는 어느 한 순간에 하는 경험. 존재의 조화와 나 자신의 관계를 경험하는 순간이 바로 이순간.(399)

169. 에피파니는 그 대상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미학적 체험은 그저 그렇게 대상을 바라보는 경험이어야 합니다. 그저 바라보고, 작품을 느끼고, 부분과 부분의 관계, 부분과 전체 그리고 전체와 각 부분의 관계를 깨닫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작품이 지녀야 하는 필수적인 미학적 요인입니다. 예술가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우연한 리듬에 감동을 받을 때 우리는 여기에서 빛을 경험합니다. 이 때 우리는 미학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에피파니 입니다.(399)

170. 천국은 끝나지 않는 시간입니다. 끝나지 않는 시간과 영원은 시간 너머에 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미 영원을 나타낼 수 없어요. 이 현세적인 고통과 말썽이 오고 가고 하는 곳은 영원이라고 하는 심오한 경험 저 너머에 있어요. (405)

171. (언어가 우리의 체험을 다 드러내기 부족한 것에 대해) 그래서 시 가 있는 거지요. 시의 언어는 꿰뚫는 언어입니다. 시에서, 정확하게 선택된 언어는 언어 자체를 훨씬 뛰어넘는 암시 효과와 함의의 효과를 지닙니다. 이런 효과를 지니는 시를 통해서야 우리는 저 광휘, 저 에피파니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에피파니는 정수 精髓를 통해야 드러납니다. (411)

172. 우리의 인생도 우리 안에 있되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의지에 의해 구성되고 계획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지는 우리 모르게 그 특정인을 중요한 인물로 인식하고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게 아니냐는 겁니다. ….. 쇼펜하우어는 우리 인생은 한 사람이 꾸는 큰 꿈, 꿈속에 나오는 인물이 또 꿈을 꾸는, 말하자면 규모가 방대한 꿈이 아니겠다는 결혼을 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그 본질상 우주의 의지라고 할 수 있는 한 개인 의지의 동기 부여에 따라, 만사가 만사와 빈틈없이 연결되지 않느냐는 겁니다. (412)

173. (쇼펜하우어의 생각과 비슷하게) 인드라의 그물은 실과 보석으로 짜여진 그물입니다. 즉 실과 실이 만나는 곳마다 보석이 달려 있는데, 각 보석에는 다른 보석이 비칩이다. 이것은, 어떤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많은 사건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412)

무엇하나 연결되지 아니한게 없고  서로 영향을 주지 아니한게 없다.

174. 나는 인생에 목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인생은, 확대 재생산하고 존재를 계속하려는 충동을 지닌 원형질로 이루어져 있다는게 내 생각입니다.(412)

175.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다. 여행 그 자체이다…… 카를프리트그라프 뒤르크하임은, “여행을 하고 있는데, 그 목적지가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때가 있다. 이때, 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여행임을 깨닫는 수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있어요. (413)

176. 괴테는, ‘만물은 메타포라고 말했습니다. 무상한 것은 모두 은유적인 해석의 대상입니다.

178. ‘(AUM)’, 우리 귀가 들을 수 있는, 만상이 체현하는 우주 에너지의 소리입니다. 태어남, 존재하게 되기, 사멸하여 온 곳으로 되돌아감, ‘은 사대 四大음절이라고 합니다. A,U,M….. 셋밖에 없는데  또 한음절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끝나고 또 한이 시작되기까지 그 밑에 깔리는 침묵입니다. (415)

오랜 침묵의 시간,  자기성찰의 시간을 통해 진짜 자기를 찾을 수 있다.

179.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서 필멸하는 측면과 영생하는 측면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관한 체험에서 나는, 그 체험에는 현세적인 관계의 체험 이상의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물론, 관계의 본질에 대한, 다분이 감정이 이입된 상태에서 했던 사고가 내 깨달음을 가능케 한 순간들이 있었지요. 나는 그런 순간들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내게는 그런 순간들이 곧 에피파니의 순간이요. 계시의 순간이요. 광명의 순간입니다.(415)

180. 그래서 절정의 순간은 이 언어 밖에 있는 것, 이 한마디, “……”, 이 한마디 밖에 할 수 없는 데 있는 것이지요.(415)

말이 필요하겠는가, 자신이 진정 원하고 즐길 수 있는 그 무엇, 그 순간…… 천복을 경험하는 그 에우다이모니아의 순간은 그저 감탄으로 채워질 수 밖에…… “…..” ‘”!!!!!!” “~~~~!”, “Yes~~~~~” 와 같이 말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신화의 힘 <목차>

옮긴이의 말

빌 모이어스의 서문

1. 신화와 현대 세계

2. 내면으로의 여행

3. 태초의 이야기꾼들

4. 희생과 천복(天福)

5. 영웅의 모험

6. 조화여신(造化女神)의 지혜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8. 영원의 가면

 

* 가장 감동적인 장절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하늘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땅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우리에게,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이상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맑은 대기와 찬란한 물빛이 우리 것이 아닌 터에 어떻게 그걸 사겠다는 것일는지요? ……

우리는 나무 껍질 속을 흐르는 수액을 우리 혈관을 흐르는 피로 압니다. 우리는 이 땅의 일부요, 이 땅은 우리의 일부올시다. 향긋한 꽃은 우리의 누이올시다. , 사슴, 독수리…..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형제올시다. 험한 산봉우리, 수액, 망아지의 체온, 사람…… 이 모두가 형제올시다. ……

우리는, 땅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 세상 만물이 우리가 핏줄에 얽혀 있듯 그렇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사람이 생명의 피륙을 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그 피륙의 한 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사람이 그 피륙에 하는 것은 곧 저에게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이 땅을,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사랑하듯 사랑합니다. 그러니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주시오. 우리가 보살폈듯이 보살펴주시오. 그대들의 것이 될 때 이 땅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그대들 마음속에 간직해주시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이 땅을 잘 간직하면서,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 이 땅을 사랑해주시오.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이듯, 그대들도 이 땅의 일부올시다. 이 지구는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이것은 그대들에게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한 분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홍인종이 되었든 백인종이 되었든 인간은 헤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는 결국 형제인 것입니다.

: 자연과 인간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려하지만 결국 자연이 인간을 소유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명석한 두뇌로 기술을 계발하고 자연을 계발해나아가고 있다. 결국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 과도함이 자연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많은 부작용들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멸종생물들의 증가, 식량난, 식수난…… 자연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끊이지 않은 인간의 욕심 앞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봐야할 것이다.

인디언 추장이 마지막에 말하는 하나님은 한 분 뿐이다. 이는 모든 신은 동일하나, 시공간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다른 모습으로 보여진다는 조셉캠벨의 의견이 통하는 듯 하다.

 

 

* 내가 저자라면.

신화의 힘 1988, Public Affairs Television 에서 제작 방영된 대담형식의 조셈캠벨과 신화의 힘을 글로 옮겨놓은 책이다.  대담형식이라 빌모이어스와 조셉캠벨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이를 청중으로 바라보는 느낌도 있다. 흔히들 신화의 힘은 신화에 대한 휼륭한 개론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현대 세계에서 신화가 지니는 의미부터,  \내면의 여행,  과거의 신화와 이야기들, 천복이 무엇인지, 영웅의 모험(영웅의 여정)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영웅이란 무엇인지. 여신에 대해서, 신화 속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영원이란 등등. 생의 전반에 걸쳐서 있는 요소들에 대해 신화가 어떻게 연계될 수 있는지는 보여주는, 괜찮은 구성이자 책으로 보인다. 

다만,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현 시대, 즉 허공에 뜬구름을 잡는듯한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매력있게 다가올 수 없는 이 시대에, 25년전인 1988 tv 대담내용을 옮긴 책이니 오래되어 보이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절판되어 나오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신화의 힘은 신화에 대한 개론서로 역할을 한다고들 말하지만, 다루는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고 이는 평생을 신화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 조셉캠벨의 내공, 지적수준을 감안하면 상당히 넓고 깊은 내용들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꽤 많았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 스타워즈, 인디언 신화, 니체,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등등, 수없이 많이 인용되고 언급되는 주요인물과 개념, 작품들에 대한 주석이 있으면 더 휼륭한 개론서 역할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울러, 대담형식을 취해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보니, 책으로 접하기에는 왠지 모르게 어색한 분위기 (예를 들면 빌모이어스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질문을 하는 듯한 느낌) 가 흐르기도 한다. 일단 tv대담을 책으로 옮긴 태생적 한계가 있긴 하였지만, 대담형식이 아닌, 대담의 주제와 뼈대를 추려서 대담형식이 아닌, 주제애 대해 서술하는 일반적인 형태를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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