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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8일 20시 25분 등록

<일상의 황홀>, 구본형 지음, 을유문화사, 2004, 272

 

1.     저자에 대하여

 

구본형은 변화경영전문가이다. 현재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자으로 강연과 칼럼,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 IBM에서 근무하면서 경영혁신의 기획과 실무를 총괄했고, IBM본사의 말콤 볼드리지 국제 평가관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조직의 경영혁신과 성과를 컨설팅했다.

그가 하는 일은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 일이다. 어제에 갇히지 않고 오늘다운 생각과 행동을 시도하고 모색할 수 있도록 조직과 개인을 돕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그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이상 주변적 인물로 남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세계를 찾아 떠나는 날이며, 그 세상의 중심 인물로서 새로운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날이다. ‘오늘 하루는 위대한 전환의 가능성으로 가득한 자기 혁명의 현장이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저서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90년대의 책), <낯선 곳에서의 아침>, <월드클래스를 향하여>, <떠남과 만남>, <사자같인 젊은 놈들>, <내가 직업이다>,<-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등이 있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www.bhgoo.com/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 및 목차

 

책을 열고 감사하는 글

: 사소한 하루란 없다.

여름 : 내게로 돌아오는 여행

가을 : 변화, 그 특별한 유혹

겨울 : 길에서 배운다

짧은 후기

 

3월부터 2월까지 봄여름가을겨울 순으로, 날짜를 먼저 쓰고 일기형식처럼 보이지만 일기는 아닌 글로 진행이 되고 있다. 개인적인 일상이 포함이 되면서 그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 또는 화두를 중심으로 걸러서 쓰고 있다.

 

이런 글을 학년도 개념으로 움직이는 교사의 교실일기를 쓰는 좋은 틀인 듯 하다. 그런데 1학기, 2학기 이렇게 안하고 봄여름가을겨울 이렇게 하면 좋겠다.   

 

 

2)   장점 및 보완점 평설

 

장점 첫째, 봄여름가을겨울 1년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동안, 그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주제가 잘 버무져 있다. 무엇보다도 단명하고 사라지고 변해가는 하루가 잘 담겨져 특별하고 유일한 하루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주제별로 체계적인 글을 다루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일상도 이렇게 아름다울 건가? 또는 나도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저자의 일상과 버무려졌으므로 그 생각, 의미부여가 초래된 원 사건, 또는 원 재료를 보여준다. 그래서 더 정답다.

 

보완점 이라기 보담은 이 책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한 가지 든다. 이 책은 3월부터 2월까지 계절로 나뉘어 날짜를 머리에 이고 있다. 이건 익숙한 얼굴이다. 바로 일기다. 그런데 이 글은 일기는 아니다. 애초부터 보여지는 걸 염두에 두고 일기체를 빌려 쓴 글이다. 그런데 마치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진성성을 기대하게 된다. 이런 면이 좀 혼동스러웠다. 그렇다. 이 글은 그의 일기가 아니다. 일기를 토대로 한 자아경영에 대한 글이다. 깜빡 속을 뻔 햇다. 그런데 물결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매일매일이 다르고 특별한 날들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기록의 방법을 사용했다는 그의 집필의도는 성공적으로 실현되었다.      

 

 

3)   감동적인 장절 50여 개

 

(1)   하루를 기록하는 일의 의미를 밝히는 글들을 읽으며 나도 나의 하루를 기록하고 싶어진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글이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기록한다면 기록 자체가 실험이고 유한한 생명,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찬가일 수도 있겠다.  

 

5 기록은 사라져 가는 것을 붙잡아줍니다. 그것은 초혼의 주술이며 시간을 머물게 하는 마술입니다. 그러나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사라져 가는 일상이 아니라 똑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지겨움입니다.

초혼의 주술, 시간을 머물게 하는 마술을 나도 부려보고 싶어진다.

 

5 살바도르 달리가 늘 똑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맹목적 습관을 공격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듯나는 물결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일 달라지는 변화와 특별함을 즐기기 위해 기록을 남깁니다. 나는 그것들을 기록함으로써 하루가 다른 하루와 달리 그 하루로 이미 특별했던 것을 즐깁니다.

학교에서의 일상도 이렇게 써놓으면 좋겠다. 이 책은 3월부터 2월까지, 딱 학년도 개념으로 진행된다. 그게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이기도 하다. 교사에게 세월은 학기 단위로 가고, 언제나 3월에 새해가 시작된다. 나의 생체시계는 3월부터 시작된다. 김학원씨의 책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가장 와 닿은 것은 그가 그 직을 하는 동안 편집자일기를 날마다 썼다는 점이다. 내 아버지는 농사일기를 매일 써오고 계시다. 나는 교사 13년차인데, 아니다. 복지관까지 치면 더 된다. 그런데도 매일 교실일기를 쓰지는 않았다. 과연 매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저 문장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달라지는 변화와 특별함을 즐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5 내 기록의 일관성을 지키는 유일한 법칙은 하루를 기록하면서 그 하루 속의 생각과 행동 속에, ‘사람이 살고 있었는 지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 속에 구현되는 내 생각 내 행동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원칙, 그러니까 원칙 중의 원칙입니다. 내 마음이 사람이 떠난 빈 집이 되지 않도록 마당을 쓸고, 꽃을 심고, 굴뚝에 연기가 나게 하고, 붉은 고추를 햇볕에 내다 널고, 달빛이 창문을 넘어 방안 가득하도록 하루를 쓰고 싶습니다. 내 하루 속에 사람이 살아 있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형태는 하루의 기록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빈집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나는 어쩐 이유에선지 사람을 잘 모른다.

 

6 사람이 살고 있었던 날은 황홀한 일상이었습니다. 황홀한 하루, 그것들이 모야 내 삶을 별처럼 빛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잘 사는 것처럼 멋있는 예술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것처럼 훌륭한 자기경영은 없습니다.

 

41 일상의 끈을 놓치지 말 것, 그것이 현실이니까.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것, 그것이 실천으로서의 변화니까.

하루를 잘 보낼 것, 그것이 삶이니까.

하루 속에서 늘 나의 삶을 건져낼 것, 그리하여 를 완성할 것

, 그러나 이것은 신의 은총이니 단지 간절함으로 기원할 것.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갈 것, 아무것도 아니었던 때. 신인이었던 때로 돌아갈 것. 늘 신인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단지 자신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슬퍼할 것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장이다.

변경연에서겠지. 그 문장의 원전이 여기구나.

 

2 17

259 오늘은 오늘 하루를 스케치해 보는 거예요. 우리는 이것을 인생의 어느 하루프로그램이라고 부릅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처럼 될 수도 있고, 내 이야기가 천일야화중의 한 이야기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쨎든 김아무개 이 아무개의 하루가 세상 속의 어늘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이지요.

기록되는 것은 오늘의 사건, 느낌, 행동, 생각 등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점점이 모여 인생을 이루는데, 오늘의 기록은 그 점 하나에 대한 미시적 화대지요. 어떻게 기술하느냐는 당신의 개인사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당신의 시각과 취향에 달려 있어요. 깨어나서 잠들 때까지 모두를 적어두는 사실주의적 기풍을 따라도 좋고, 특징적인 것만 추려 뼈대를 이어도 좋아요. 시간의 흐름을 다라 연대기처럼 적어도 좋고, 그저 마음의 흐름을 따라가도 좋아요. 어쨎든 그게 오늘의 당신이고 그 연합이 당신의 인생이니까요.

시각과 취향, 이걸 하나 가지고 나도 기록을 하고 싶어진다.

그는 변화경영 전문가, 또는 변화경영사상가, 변화경영시인,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름=화두를 놓치지 낳는다. 내게는 이게 뭘까?  

 

좋은 일들은 그것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에밀리 디킨슨

 

짧은 후기

 

271 오늘 내가 싸워야 하는 것은 어제의 생각과 어제의 행위입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을 점령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어제는 어제로서 등을 보이고 유유히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흘려 버리는 좋은 방법은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넘쳐흘러야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저수지는 채우기 위해 막고 가둡니다. 그것이 저수지가 자신을 채우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흘러 들어온 물줄기에 욕심을 내고 가두어 막아 흘러 나가지 못하게 하면 고여 있는 물이 되고 맙니다. 고인 물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썩음과 독입니다. 이것은 하루의 중독과 붕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 방울을 받으면 한 방울을 흘려 보내야 합니다.

저수지, 웅덩이도 좋은 메타포다.

 

좋은 샘은 늘 넘쳐흐릅니다. 스스로 솟구치며 어제 채운 것을 비워내기 때문에 언제고 생명을 가진 것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싱싱한 하루를 만드는 비법입니다. 세상과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물줄기에 의존하여 내 수문을 잠가 채우면 저수지가 되고 맙니다. 내면적 솟구침이 넘쳐흐르도록 놓아 두면 비로소 샘물이 됩니다. 하루는 샘물이 자신을 채우고 넘쳐 흐르게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역시 샘물입니다. 넘쳐흐르는 하루는 가진 샘물입니다.

샘물도 상징, 또는 자가성장의 좋은 메타포다.

 

(2)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나는 유심히 보았다. 부러웠다.

 

5 5

85 낮에 둘째아이와 함께 평창동 집 구경을 갔습니다. 우리는 집을 구하는 사람처럼 복덕방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20년 후 집사기라고 부릅니다. 그애는 예쁜 집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연한 방문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을 살짝 엿보기로 했습니다. 자꾸 보아야 좋은 집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자꾸 보아야 스스로 20년 후 살 집에 대한 명료한 자신의 그림을 가지게 될 것이니까요.

 

올해 어버이날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커다란 민어를 두 마리 샀습니다음식에는 어떤 추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 추억 속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물론 술도 한 잔 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보다 많이 드셨습니다.

이렇게 추억으로 접속하는 일상의 이야기가 어떤 발견, 깨달음을 물고 나오는 식의 글이 나는 좋다. 이것이야말로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고,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일테다. 

 

5 27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와 집으로 오니 우리집 덩굴장미가 한창 화려합니다. 마치 해가 수평선 위로 반쯤 떠오른 듯 합니다. ‘절정은 절정을 기대할 때 더욱 화려합니다. 핀 꽃은 싱싱하여 달콤하고 아직 피지 않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다투어 개화를 기다리고 있는 이 배치가 바로 절정을 예감하게 합니다.

아내는 내가 돌아오는 날 작은 항아리 속에 붉게 익어 가는 커다란 수국 몇 송이와 노란색 붓꽃 몇 송이를 꽂아 현관에 놓아 두었습니다. 떠나 있는 동안 우리집 수국도 붉게 익었고 붓꽃도 몇송이 더 피었습니다. 거실로 들어서자 바깥 계단을 오르며 감탄했던 그 절정을 향한 장미꽃을 한 다발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나를 위해 커다란 화병 가득 붉은 장미를 꽂아 두었습니다. 집은 참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일기장에 이렇게 써 두었습니다. …집이 일상과 함께 그곳에 그대로 있어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여행은 비감하지 않고 즐거운 것이다. 우리는 질서에 지쳐 나그네가 되고 자유에 지쳐 귀환한다.  

나는 이 장면이 매우 마음에 든다. 집 안에 덩굴장미와 수국, 붓꽃이 자라고 있다는 게 우선 마음에 든다. 나도 내 집에 심어기르고 싶은 식물이다. 4월에는 상사화, 목련이나 살구꽃, 황매화, 라일락이 피고, 5월에는 목련과 작약, 덩굴장미, 불두화와 붓꽃이 피고, 6월에는 소박한 접시꽃이 피어나고, 7월에는 능소화가 자라나고여행을 떠난 배우자가 돌아오는 날 다른 배우자가 (배우자는 애인이어도 좋겠지) 단지 그를 기쁘게 하려는 목적 하나로 단지에 꽃을 꺾어 꽂아두는 식의 환영을 해보거나 받고 싶어진다. 하고 싶은 건가? 받고 싶은건가? 어느쪽도 좋겠다. 그 장면에서는 사랑과 환영과 기쁨이 피어날 것이므로.

 

6 12

135 아내의 친구들이 몇 명 찾아와 놀다 갔습니다. 손님이 온다 하여 아침부터 집 바깥 몇 군데 지저분한 것을 치우고 청소를 했습니다. 나무 밑에 쓸어 놓아두었던 묵은 낙엽들을 한 군데 모아 태우고, 저 혼자 웃자라 삐죽하게 뻗어 나온 나뭇가지를 가지런히 잘라 주었습니다. 손님이 오면 집안이 조금 깨끗해집니다.

점심 때 그들이 도착했습니다. 볕이 따가왔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맑은 날이었습니다. 준비해온 맛있는 것을 먹고, 시원한 맥주도 한잔씩 하고, 사온 케잌을 커피와 함께 나누어 먹으며 쉬지 않고 웃고 떠들고 합니다. 남자들보다 재미있게 놉니다. 간혹 나를 놀려먹기도 하다가 저녁때 갔습니다.

친구들을 가끔 초대해서 먹고 마시고 시간을 보내야겠다. 청소도 깨끗이 하고서. 후식용 케잌이나 과일을 가지고 지인이 놀러오면 정말 재미있겠다.

 

7 16

159 이 집은 제가 오랫동안 찾아오던 그런 집입니다. 실제로 북한산에 왔다가 시간이 나면 이 동네 복덕방들을 다니며 이 집 저 집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했었지요. 그리고 이 집을 보고 마음에 들어 사게 되었습니다. 살던 집을 팔고 퇴직금을 털어 넣어 좀 고친 후 18년 만에 비로소 아파트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 집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아내도 이 집을 좋아합니다. 처에게 어제 휴가를 떠나겠느냐고 했더니 여기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다고 어딜 가겠느냐고 그럽니다. 집에서 맛있는 것 먹으며 둥실거리면 그게 휴가라는 겁니다.

좋은 공간은 하루를 다르게 합니다. 아침에 밭에서 채소를 따다 식탁에 놓고, 낮에 잠시 밭과 정원을 가꾸고, 저녁엔 틀이나 데크에 나와 달과 함께 술을 한잔 할 수 있습니다. 늘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고, 사계가 지나가는 한복판에서 그 변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하루가 바뀌니 비로소 인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하루를 개편하지 못하면 본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살고 싶은 집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는 행운아다.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그런 꿈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할까? 그런 또 다시 책임을 나에게서 다른 데로 보내는 것이 된다.

 

나는 지금 집이 마음에 든다. 이 집은 전세고 좁지만 내가 꿈꾸는 그것을 다 가지고 있다. 텃밭과정원은 베란다 텃밭(고추모종 5포기와 4포기의 치커리, 3포기의 깻잎 모종이 다다)과 베란다 정원(모든 식물이 화분에 담겨있다)으로 실현되었다. 산으로 향하는 달릴 로드와 산책로가 있다. 남산공원. 아 하나가 없군. 부침개를 부쳐놓고, 수제비를 떠놓고 부를 지인이 없네. 일단 이웃과 사귀면 되지. 그리고 가까이의 지인을 초대해 보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달리고 산책하는 로드를, 도서관을 이용을 해야겠지. 가족과 같이 살고 싶어한 그의 꿈은 아마 이루어질 거다. 그것 덕분에 나는 우리는 서로가 자기 자신이 되도록 돕고, 각자 자기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다는 구절을 건졌다. 그와 나는 우리가 사는 집에서 아이들이 자라길 소원한다. 현재 생활에서 크게 불만이 없다. 단 내가 지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좀 더 일찍 나가기만 하면 될텐데. 그리고 칼퇴근해서 돌아와 산책이든 달리기든을 나가면 좋을텐데.

 

8 3

모처럼 둘째딸과 데이트를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우리는 같이 놀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원한 버스를 타고 로댕미술관에서 오노 요코를 만났습니다그리고 조금 걸어와 시립미술관 전시 매장에서 예쁜 자동연필을 두 자루 사고, 정동길을 거쳐 광화문 교보문고로 걸어왔습니다. 교보빌딩 2층에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약간의 사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의 데이트니까요.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 풀과 색연필을 샀습니다. 다리가 아플 만하여 스타벅스에서 프라푸치노를 한잔씩 마셨습니다. 나는 스타벅스를 싫어하지만 내 딸아이는 좋아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이유는 시끄러워서이고, 내 딸이 좋아하는 이유는 왁자지껄 신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싫어하고 같은 이유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새로 산 연필로 낙서를 하며 놀았습니다. 오늘 우리를 그렸고, 어제 우리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내일 우리를 그렸습니다. 마지막 프라푸치노 방울이 빨대 끝을 벗어나면서 쪽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처와 딸아이는 미사를 보러 갔습니다. 나는 집에서 책을 보았습니다. 아주 좋은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내일 또 살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행복한 일상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아빠와 딸이, 또는 엄마와 아들()이 이런 데이트를 한 달에 한 번씩만 해도 참 좋겠다. 쓸쓸하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잃어버렸다. 대학에 가야하기 때문에, 또 다른 이유들로 인해. 가족을 위해 일하고 희생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정작 가족과는 시간을 별로 보내지 않는다. 그저 일하고 그저 시간을 보낸다. 가족은 화두다.

 

200 춘천에서 화천에 이르는 약 40킬러미터는 참으로 아름다운 길입니다. 강물이 댐에 이르러 넓은 호반을 이루는 길을 구비구비 돌아가면 한국의 산천이 참으로 고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파로호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강둑 언저리에서 5천원을 주고 걸죽한 어죽 한 그릇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 폭 그림 같다. 이 길은 경춘선 전철이 있어 무척 쉬운 길이 되었다. 그런데도 쉽게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200 올 가을엔 가고 싶은 길을 따라 아내와 함께 갈 곳도 정하지 않고 길이 우리를 이끄는 대로 강 따라 단풍 따라 마음껏 돌아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이 길 저 길 샛길도 꽤 가보게 되었습니다. 길은 샛길이 정답습니다.

배우자와 이런 탐험을 하는 게 부럽다.

배우자와 함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대도 부러웠을까?

 

200 우리가 만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 마음속 길들 깊이 들어가 본 적이 얼마나 되는 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저 겉돌다 그게 그 사람이려니 짐작하고 넘겨짚은 일이 많았습니다. 사람들 각자는 모두 가보지 못한 길이고, 인생마다 사연이 있는 것이니, 많은 길들을 가 본 후에야 고만고만한 길들이 다 다른 골목임을 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렇다. 나는 그 길을 걸어보지 않는다. 슬쩍 지나치기만 한다. 사람에 대한 이 두려움, 무관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2 2

243 자다 깼는데 느닷없이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그녀는 우연히 날 찾아왔고, 우연은 이내 운명이 되었습니다. 둘의 운명이 얽히고 설킨 길을 웃고 싸우고 또한 즐기며 걸어왔습니다.

부부는 자다가 이불 속에서 방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 떨어져 그 소리를 못 견디고, 어떤 사람들은 발끝으로 슬그머니 이불을 조금 들춰 줍니다. 중간에 헤어지는 사람들과 죽을 때까지 같이 가는 사람들의 차이는 겨우 이런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참담한 불균형이 아니라면, 부조화는 우리로 하여금 안팎으로 대화가 진행되도록 도와주거든요.

정떨어진다고 퉁을 주는 것과 이불을 슬쩍 들춰주는 건 차이가 있다. 나도 말없이 들춰주어야겠다.

 

(3)   빈둥거림, 느려터짐 같은 것에 대해서도 무익함의 유익함처럼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이 내게는 대단히 새로와서 매번 눈에 도드라졌다. 그가 혼자서도 하루를 즐기는 방식 중 이것도 포함을 시켜서 그냥 받아들이는 모습이 좋다.

 

3 11

27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책을 보았습니다. 봄날의 잠 기운에 몽롱해져 하루 종일 쉬듯이 책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가 봅니다. 죽은 다음에나 이 흔들림이 그치는 것인 것 봅니다.

죽은 뒤에나 이 흔들림, 출렁거림이 그친다니..우짜지? 할 수 없지.

 

6 16

140 새벽에 깨어 잠시 작업하고 오전 내내 잠을 잤습니다. ..오늘은 내게 굼벵이의 날입니다. 천천히 느릿느릿 꿈틀꿈틀 통통한 게으른 무위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침대 위에 베개 위의 자다 깨다 누워서 두세 페이지 읽다 툭 하고 책을 떨어뜨리는 더운 날 마룻바닥에 누워 둥실대는 그런 날이군요.

좋다. 나는 늘보딸이 별명이다. 엄마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무늘보처럼 느려터져서 그렇다. 모든 동작이 느긋하다 못해 꾸물꾸물해서 아버지가 굼벵이 같다고 놀리는데 좋다고 말하는 딸처럼 못했다. 

 

7 4

153 아침에 산에 다녀와 목욕을 했습니다. 아직 머리털의 물이 채 마르기 전에 책상에 앉아 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하루였습니다.

산에 가고 싶다.

 

163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나는 뜰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때부터 어둠이 내리기까지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언젠가부터 가만히 혼자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나를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고 간혹 말입니다.

나도 노을이 질 때 어딘가 스팟에서 노을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7시남산이면 어떨까?

융의 자서전에서는 해 뜰 때 태양의 사원에 참예한다는 말이 있었다. 해 뜰 때 의자를 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지. 나도 두 사람의 할일업음을 따라하고 싶다.  

 

101

하루 종일 책을 보았습니다. 비 오는 날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것은 대단히 멋진 일입니다. 책 속에는 재미있는 생각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 도대체 이 사람들은 이런 생각들을 어디서 가져올까 신기해 집니다. 

 

204 “그대가 만약 나무라면 어떤 나무라고 생각합니까?”

바바라 월터스라는 방송인은 유명 인사와의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마지막에 꼭 이 질문을 던졌다는군요.

이것에 대해서는 대답을 해보고 싶다. 나는 언제나 이 질문을 나에게 해 오고 있었다. 재미있겠다.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겠다. 또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되고 싶기도 하다.

내가 죽었을 때 화장을 해서는 늘 가는 산행친구들의 손에 들려서 산길에 뿌려지길 소원했다.

그래서 다음해에 진달래로 소나무로, 떡갈나무로, 굴참나무 잎으로 되살아 오겠다고.

그럼 나는 진달래일까? 소나무일까? 아니면 꿀밤나무일까?

 

 

1 26

235 당장 먹고 사는 일을 떠난 호사지만 문화란 먹고 사는 일을 넘어선 삶 즐기기니까요. 조금 먹고도 아주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바로 문화거든요. 멋은 돈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문화를 삶 즐기기로 정의하다니, 간명하다. 더 멋지고 간단한 말은

언제나 이것은 ’ ‘할 일다음으로 미루어졌다.

언제나 다음 스케줄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대학을 가야하고, 대학을 간 다음에는 취직을 해야하고, 그 다음에는 결혼을 해야하고, 그 다음에는 아이를 낳아야 하고

그 놈의 마음의 여유는 도대체 언제 생긴다는 것일까?

나는 하루하루를 나답게 살고 싶다.

이번에 식물들을 사오면서 이런 점이 많이 실현되고 있다. 그리 많은 돈이 든 건 아니다.

프로이트는 일하고 사랑하고 놀 수 있으면 건강하다고 했단다. 그럼 나답게 놀고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놀 수 있으면 최고일텐데

 

(4)   그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도 그 풍경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었다. 나는 언제나 여행한 사람들의 블로그나 써핑하고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모습만 숭앙하면서 여행은 나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로 취급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3 25

39 여수와 광양을 다녀왔습니다. 매화는 지고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꽃과 꽃 사이를 다녀온 셈입니다. 그러나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의 그 참을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벚꽃들이 자욱한 분홍으로 아치를 이룬 칠불사 쌍계사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면서 봄날의 황홀한 들뜸을 즐겼습니다.

이맘때 나도 이 곳을 여행하고 싶다. 이제 올해부터 봄꽃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주례선생님 부부는 우리에게 몇 가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나 좋을 대로 결혼기념일 즈음에는 부부만 여행을 가라. 생일을 챙겨라정도를 기억해두었다. 어쩌다 보니, 연구원 수료하고, 그리고 학교에서 대목인 3월을 피해서 날짜를 잡느라 4월 첫주가 되었다. 그 날은 부활절 바로 다음 주였다. 그러니 봄꽃들의 귀환을, 땅의 부활을 나는 매년 목격하고 간증할 수 있으리라. 그 때는 반드시 여행을 떠나 있으리라. 나는 먼저 남도 봄꽃 여행을 생각했다. 섬진강가가 그리 아름답다는데 나는 여지껏 가보지 못했다. 술 마시고 걸으리라. 그리고 겨울에는 비껴갔던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가리라. 사랑을 잃은 뒤라 아니라 사랑을 품은 채 가고 싶다. 그 늙은 꽃나무 아래 오래 앉아 십우도를 생각하리라.

 

담양호반을 끼고 가마골로 빠지는 길 옆 호숫가에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물가에 붙어 아름다운 조망이 가능한 쉴 만한 곳입니다. 날씨 좋은 날 한두 시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차를 마시며 햇빛이 부서지는 호반 수면 위의 찬란한 눈부심을 즐길 만합니다. 우린 그 호반의 주위에 있는 어느 음식점에서 시래기를 넣고 고추장을 치대 듬뿍 매운 맛을 낸 메기찜을 먹고 이곳에서 잠시 그 풍광을 즐겼습니다. 그 곳에 앉아 호수를 스쳐 오는 바람과 햇빛을 즐겼습니다. 즐길 수 있는 오늘이 어찌 그리 예쁜지요.

이 여행은 여름 즈음인가 보다. 동행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날 좋은 호숫가에서 아무 할 일없이 그 풍경을 즐기기 위해 머물러 멈출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문화충격이다. 왜냐하면 여행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하는, 또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호사라고 생각을 해서다. 그런데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책을 읽는 것, 음악을 듣는 것, 그리고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던가? 여행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내 부모와 가정환경에서 유래된 가풍이리라. 그런데 그분들도 이제 오동도에 가고, 다른 여행을 즐기신다. 자식 키우고 먹고 살기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은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일상 속에서 행복을 선택하는 연습. 아티스트 데이트를 해얄 텐데이것 조차 또 다른 할 일, 요구로 인식이 된다.

 

난 유치해지는군요.

 

그대가 죽어가고 있을 때

그 동안 이렇게 살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것이다.

지금 부디 그 소원대로 살아가기를

그게 정말 그가 보낸 편지라면 그를 징검다리 삼아 아버지에게로 가야한다.’ 미루면 반드시 피눈물 흘리리라. 아쉬움을 상쇄할 방법이 없으리라. 어찌하나 나의 분노와 등돌림에 대해 어찌하나?

 

그대가 이별할 때

그동안 이렇게 사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질 것이다.

지금 부디 그 마음으로 사랑하기를

내가 죽어가고 있을 때 아쉬운 게 뭘까? 나는 그 아이가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한다. 그녀도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려워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떠나도 아쉽지 않도록 해얄 것 같다. 아이와 바다에 가는 일, 아이를 위해 아버지, 엄마, 형제가 모두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 아이의 병이나 상태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이를 아이로만 보는 일, 그래서 그들이 아이에게 집중하기 보담 그들의 우선순위를 가지는 일, 부부가 함께 단 1박이라도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일, 엄마가 다른 아이의 행사에 가는 일뭘까? 나는 그 아이의 눈이 멀어버리기 전에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 그러지 못하고 일상에 매몰되어 뭔가 시도를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밉다. 

 

 

(5)   글쓰는 작가, 강연가로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아름다운 것에 밑줄을 그었다. 

 

3 7

20 새벽은 하루 중에서 가장 탐험이 덜 된 시간인 듯 합니다. 새벽에 깨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7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나를 만나는 은밀한 회동은 늘 새벽에 이루어졌습니다. 새벽은 내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와 같습니다. 아직 어두운 것은 어제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새벽은 내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 오늘의 낮을 품고 있습니다. 하루가 날마다 새로운 이유입니다.

새벽에 대한 서술, 아가에 가까운 고백, 찬가가 나올 때마다 나는 정신없이 밑줄을 긋는다.

나도 저런 새벽푸른빛에 깨어서 나와 회동하길 언제나 욕망하고 기원한다.

 

34 책을 읽다 좋은 글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좋은 글이란 벌써 내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 벌써 들어와 있지만 미처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는 순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이미 낯익은 것이기 때문에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 내는 작가의 재주에 경탄하지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표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내 속에 있던 것을 그 작가의 글이 건드렸다니! 놀랍다.

 

34 나는 가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소설 속에 숨으면 부끄러운 일을 미화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그저 마음이 흐르는 대로 문화와 문명의 한계를 넘어 강물처럼 쓸 수 있을 텐데요. 나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쓸 수 있으니까요. 문명과 문화로부터, 그 의도된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 그게 소설의 장점입니다. 마음 속에서 열정이 살아납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 통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왜 가끔 소설을 쓰고 싶은 지를 알았습니다. 자유로운 글쓰기기 때문입니다. 상상 속에서 현실의 제약과 덫에 걸리지 않고 살 수 있으니까요. 허구처럼 신나게 살 수 있으니까요. 자유, 자유니까요.

소설쓰기가 이렇단 말이지? 소설이 자유라니,  소설 뒤로 숨을 수 있다니 혹한다.

나도 소설을 쓰게 될까? 나더러 팔팔이 동기분 중 몇 분은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나는 소설이 내게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하는 중이다.

 

39 지나간 40 10년에 대한 이야기를 <>라는 책으로 펴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앞으로 50 10년을 지금 그려보니 봄처럼 어지럽고 긴장됩니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이 책 나도 가지고 있다.

<, 구본형의 변화이야기>가 같은 책이라고 들었다. 아닌가?

나는 연구원과정에서 지원서를 보내고 그 지원서를 늘여 쓰는 과정에서 한번 인생을 글로 쓰는 경험을 했다. 40대의 초입에 서서 40 10년을 그려보아 그게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구나.     

 

4 5

54 도토리와 호박 이야기는, 북한산에 진달래가 만발한 날 가벼운 산행을 했는데, 마침 호박구덩이 옆을 지나다 동행한 분이 웃자고 한 말이랍니다. 이왕 웃자고 한 말이니 오쇼 라즈니쉬가 행한 <벽암록> 강의 속에 삽입된 우스갯소리를 더 해보고 싶군요.

오쇼가 웃긴 얘기를 많이 했나? 웃음에 대한 그의 특별한 철학이 있나

가족세우기 웤샆에서는 아침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춤을 춘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땀을 흘릴 만큼 춤을 추면서 소리도 좀 지르고 앉아서 명상을 한다. 그리고 우스개소리를 몇 개 듣는다. 그런 다음에 시작했다. 이 과정을 수업에 응용하면 어떨까? 수업보다는 학급의 하루 일과에.

 

4 6

57 나는 그동안 내가 느끼고 체득한 것 중에서 그가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을 몇 개 추려 조언해 주었습니다.

마흔이 될 때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시간을 털어 자신에게 투자하라. 마흔이 넘어 믿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돈을 남기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남기도록 하라.

지금을 활용하라. 지금 현장에서 겪고 있는 일들은 관찰하고 기록하고 정리하라. 이것이 배움이다. 일에 마음을 쏟지 않으면 20년을 해도 일의 핵심을 파악하기 어렵다. 배움은 여러 가지를 연결하는 연습이고, 이윽고 현실과 꿈을 연결하는 자신의 방식을 익혀가는 것이다.

차별화하고 또 차별화하라, 다른 사람들이 가는 큰 길로 가지 마라. 다른 것이 쓸모를 결정하고, 가장 자기다운 것이 가장 큰 쓸모임을 명심하라.

꿈꿔라. 꿈이 없으면 미래는 빈 것이다. 잡힐 듯이 꿈꾸는 사람들만이 그 꿈과 닮아가게 된다.”

 

점점 더 젊은이들이 좋아집니다. 내가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도와줍니다. 그들이 내 일의 의미를 만들어줍니다. 나의 본업은 그들이 자기다워지는 것을 돕는 일입니다. 자기다워질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들이 어제보다 고운 사람들이 되는 것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내 일을 아주 잘 한 것이 됩니다.

나의 직업의 의미는 한 단어로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이 직업과 나의 정체성이 따로 놀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 야매스럽다. 나의 직업에서의 행태는

 

66 밭일은 머리를 비우기 위한 것입니다.

작가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신체활동 영역을 일상에 넣어야 한다고 줄리아카메론이 말했다. 자전거타기든, 달리기든

 

66 땅과 생명을 대하게 될 때, 그것이 수양의 방식임을 알았습니다.

 

4 16

67 그 후에 나는 내가 청중 중의 한 사람과 절실한 교감의 상태에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나는 한 사람을 위한 강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혹은 그녀의 고뇌와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라건데 그 한 사람이 그곳에 있는 사람 모두일 수 있는 행운을 바랍니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강연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소수를 데리고 하는 특수교사의 수업에서도 이것이 가능한, 합당한 목표일까? 5명 중 1명과 절실한 교감의 상태에 있으려고 하는 것?

 

4 20

72 낮에 잠시 신문사의 기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내 책을 몇 권 정성스럽게 읽은 분입니다글쓰기와 관련하여 가지고 있는 내 생각을 몇 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우선 마음 속에 간절히 쓰고 싶은 것이 있어야 표현에 힘이 실립니다.언젠가 나도 변화 경영에 대한 좋은 책을 써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오래된 준비였던 셈입니다. 첫 책인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쓸 때 그런 간절함을 절박했습니다.

나는 어떤 간절함이 있지? 현재로서는 이 결혼을 파토내지 않고, 나와 상대, 주변의 여러 사람을 불행하지 않게 하고 싶지. 오래된 간절함이지.

 

둘째는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많이 읽어야 많이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언어와 자신만의 표현방식이 형성됩니다. 첫번째 책을 낼 때까지 한 번도 글다운 글을 써보지 못했지만 책을 쓰는 것에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그동안 책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나는 많이 부족하다. 1년차에도 북리뷰는 언제나 날림이었다. 원인조차 모르겠다. 1 1 1칼럼을 2년차, 3년차를 밀어가다보면 틀이 잡히리라. 사람이 바뀌는데는 3년 정도는 필요하다고 했다. 아니 변화의 기틀을 잡는데는 3년 뭔가 좀 변한다 싶은 확진을 받으려면 10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1 1 1칼럼, 1 1문장 이 한 구호만 놓치지 않고 흘러가도 좋으리라.

스투키를 바라보며 다짐한다. 저 식물은 나에게 푸른 불꽃의 상징이다. 그가 나에게 되라고 했던푸른 불꽃 모두가 성실한 속도와 보폭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모범을 보이기 바랍니다.’의 상징이다. 나는 작년에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노력할 거다. 엄마 콩나물 시루 옆에서 나를 응원한다. 사막에서 자라서 밤에만 기공을 열어 숨을 쉬며 자기 생명을 연장해 가는 선인장과 식물이다. ()는 내가 새벽에 일어나 새벽푸른빛 속에서 안전기지를 건설할 때 나를 동행한다. 그건 그()의 생존조건이다. 나에게 산소를 준다. 생긴 모양이 뱀, 또는 불꽃처럼 생겼다. 나는 푸른 불꽃이다.

 

셋째는 많이 써보아야 합니다. 매년 책 한 권을 낼 수 있는 것은 책 자체가 실험이고 배움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불완전한 책을 내는 것이 바로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1년 동안 내가 배우고 생각하고 익힌 것을 정리하여 표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학습방법입니다. 내게 책은 어떤 주제에 대한 1년 동안의 사유를 기록한 한 권의 정리노트인 셈입니다.

그는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권했던 계경을 쓰면서 닭키우기를 자기 삶에서 이미 실행을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는 의미가 바로 배움, 학습의 과정이라고 한다.

나는 첫 책의 주제로 신화를 꼽았다. 이것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거쳐 불완전한 책을 내고 다음 포인트로 계속 전진해 가는 거로구나. 졸업논문을 그해에 끝장 내듯이 나는 집중해서 올해 안에 끝장을 내고 싶다. 마무리하고 싶다. 불완전한 책을 낸다는 말이 멋지다. 안도감을 준다.  이건 책을 내는 것도 그렇지만 현장연구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실험이고 배움의 과정으로서 올해는 텃밭놀이부와 자폐성장애 학생들에게 1년간 집중을 하고 결과물은 부족한 대로 묶어서 내면 되는 거다. 온전한, 잘된 결과물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하루키가 이번 달은 착실하게 달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착실하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만나는 선배님들 모두가 내게 조언한다. 올해 안에 첫 책을 써내라고. 미루면 할 수 없다고. 미루기 대장인 나는 그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도 해오던 습관 때문에 자꾸 떠밀린다. 시절이 바뀌어서 다른 주제가 나오더라도 올해 이런 주제를 끝장을 내어본 경험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다. 6, 여름으로 들어선다. 완벽주의가 문제다. 이것이 모든 낭패를 자초하는 흉물스런 장애다.    

 

넷째는 영원히 초보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간혹 책 몇 권을 내고 그 분야의 중견이 되어 버린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배움에는 중견이란 말은 없습니다. 늘 초보만이 있을 뿐입니다. 잊을 때마다 매번 붙들어 세워야 하는 것이 초심입니다.

제일 나쁜 저자가 첫 책으로 책을 마감하는 저자라 했다. 1년에 한 권씩의 책을 낸다는 자기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렇게 실천했다는 건 그()가 멈추는 이가 아니라 항상 길 떠나고 도전하고 배우는 이라는 반증이다. 초산 이후에는 다산이 가능해야 할텐데. 이것이 가능하도록 하루를 재편해서 습관을 만들어 가야할테지.  

 

글쓰는 것 역시 세상을 사는 것이며, 다른 일을 할 때와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6 2

118 자기를 가꾼다는 것은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지 않은 군더더기들을 쳐내고 덜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치장 전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 군살을 버리고, 군더더기를 버리는 일이 우선하겠다.

아니 그 일 모두가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다.

내가 첫 새벽에 하고 싶은 일이다.

첫 새벽의 가장 신성하고 소중한 시간을 들여 하고 싶은 일이다.

버리고 나면 많은 에너지가 생기는 듯 하다. 쓰레기를 버릴 때도, 똥을 버릴 때도.  

 

164 내 생각으로는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직업인은 결코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결국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한 자신의 견해거든요.

이 말을 뒤집으면 철학을 가지고 있는 모든 직업인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렷다.

예술가 또는 수행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143 전문화는 자신의 기쁨을 위해 해야 합니다. 공자가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하냐라고 말한 것은 학습의 즐거움이며 그 즐거움의 주체는 바로 자신입니다. 누구를 위한 이익을 목적으로 수련하기 이전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일 때 평생 변치 않고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일을 하고, 그 일에서 나온 돈으로 밥을 얻는 직업에서 기술을 가지려면 그것은 나의 기쁨에 기반해야 한다. 필살기가 기쁨에 기반해야 한다는 말.  

 

11 27

211 강연을 하다가 섬광처럼 내가 하는 일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명쾌한 듯 보였지만 어딘지 미진한 대목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쏘시개 불꽃 (an unexpected sparkle toward a destiny)

 

내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잠시 우연한 쏘시개 불꽃이 되는 일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길을 갈 때는 내면의 등불을 밝히고 가야 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등불이나 등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여행은 우리 속으로의 여행이니까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오직 자신을 태우는 스스로의 등불로 길을 밝혀야 합니다. 막막할 때, 어딘가 주저앉아 있을 때, 우연히, 자신의 안에서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는 나에게도 불씨를 빌려주었다. 이제 스스로 타올라야 하는 거구나. 스스로 등불을 밝히고 내 길을 가야 하는 거구나.

내가 하는 일의 정체도 이런 식으로, 강연가이며 저술가인 그가 강연을 하다가 섬광처럼 알게 되듯이 내가 하는 일을 계속 하는 과정에서 알아지기를 기원한다. 그는 계속 강연을 하고 글을 썼기 때문에 이런 순간을 선물처럼 맞이하게 되었다 .나 역시 이런 깨달음의 순간이 오자면 질에 상관없이 계속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6)   그의 가슴에 들어온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

 

4 8

61 얼굴은 아주 여성스럽게 생겼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미인은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녀와 잠시 같이 있으면 그 순간이 환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녀에게서는 기쁨 같은 것이 번져 나왔어요. 하루를 즐길 수 있는 힘 같은 것을 타고난 듯 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녀를 만나서 아주 좋았습니다. 그녀는 나를 초대하여 강연을 맡긴 회사의 교육 담당자였지요. 그녀를 보면서 사람의 매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기다움에 넘쳐나는 사람들의 매력에 대해 생각해보다 나도 매력이 있는 사람인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난 아마 내 속으로 깊이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나 보이는 나다운 것들밖에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난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철철 넘쳐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은 어떤지요? 어느 때 당신은 아름다운지요?

모든 사람들은 자기다와지는 순간이 있다. 이럴 때 아름답다. 환하다. 나도 이런 순간이 가끔은 있다. 나의 자기다움을 살고 있다면 나는 나름대로의 매력을 발산하게 될거다. 나는 새벽기도와 이분정근, 그리고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단군의 후예 프로그램 덕분에 1년간 그리 살 수 있을 때 그러했다.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또 오쇼 춤명상에서 춤을 1시간 추고 났을 때, 그리고 달리기를 하고 났을 때, 절을 한 후 명상을 하고 났을 때, 나무 많은 길을 걸을 때, 그리고 내가 까불락거려도 좋을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 그러하다. 그런 시간을 많이 만들면 좋겠구나. 그리고 춤 추는 스퀘어 하나를 갖고자 했던 나의 소원을 이루면 어떨건가? 모리씨가 수요일마다 가졌던 그 스퀘어. 일을 너무 벌리는 듯도 하군. 산에도 가야하고 말이지. (어느새 산이 의무가 되어버린-_-)

 

 

3.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책을 열고 감사하는 글

 

5 기록은 사라져 가는 것을 붙잡아줍니다. 그것은 초혼의 주술이며 시간을 머물게 하는 마술입니다. 그러나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사라져 가는 일상이 아니라 똑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지겨움입니다.

 

5 살바도르 달리가 늘 똑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맹목적 습관을 공격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듯나는 물결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일 달라지는 변화와 특별함을 즐기기 위해 기록을 남깁니다. 나는 그것들을 기록함으로써 하루가 다른 하루와 달리 그 하루로 이미 특별했던 것을 즐깁니다.

학교에서의 일상도 이렇게 써놓으면 좋겠다. 이 책은 3월부터 2월까지, 딱 학년도 개념으로 진행된다. 그게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이기도 하다. 교사에게 세월은 학기 단위로 가고, 언제나 3월에 새해가 시작된다. 나의 생체시계는 3월부터 시작된다. 김학원씨의 책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가장 와 닿은 것은 그가 그 직을 하는 동안 편집자일기를 날마다 썼다는 점이다. 내 아버지는 농사일기를 매일 써오고 계시다. 나는 교사 13년차인데, 아니다. 복지관까지 치면 더 된다. 그런데도 매일 교실일기를 쓰지는 않았다. 과연 매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저 문장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달라지는 변화와 특별함을 즐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나는 내가 죽을 때 조금씩 다른 하루들을 무수한 카드처럼 펼치며 그 각각의 카드의 특별함에 감흥하고 싶습니다.

 

5 내 기록의 일관성을 지키는 유일한 법칙은 하루를 기록하면서 그 하루 속의 생각과 행동 속에, ‘사람이 살고 있었는 지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 속에 구현되는 내 생각 내 행동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원칙, 그러니까 원칙 중의 원칙입니다. 내 마음이 사람이 떠난 빈 집이 되지 않도록 마당을 쓸고, 꽃을 심고, 굴뚝에 연기가 나게 하고, 붉은 고추를 햇볕에 내다 널고, 달빛이 창문을 넘어 방안 가득하도록 하루를 쓰고 싶습니다. 내 하루 속에 사람이 살아 있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형태는 하루의 기록일 수 밖에 없습니다.

 

6 사람이 살고 있었던 날은 황홀한 일상이었습니다. 황홀한 하루, 그것들이 모야 내 삶을 별처럼 빛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잘 사는 것처럼 멋있는 예술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것처럼 훌륭한 자기경영은 없습니다.

 

7 이 책을 계기로 나는 더욱 자주 하루를 기록하여 내 삶의 기록이 되게 하려 합니다. 기록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고 잊혀져 가는 것들을 있게 함으로써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곧 내 삶의 모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 많은 하루들 안에 나는 내 안에 사람이 살아 있던 날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성장이고 훌륭한 자기경영이기 때문입니다.

 

 

 

16 이내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 비와는 달리 나뭇가지나 지붕 이에 쌓여 있는 눈은 자신의 과거를 그냥 흘려 보내지 못하고 모아 놓습니다. 똑같이 물로 되어 있는 것들이 모양을 달리하면서 하는 짓도 다릅니다.

 

16 북한산 언덕에 사는 나는 눈이 오면 눈 속에서 꽤 오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언덕길 눈을 치우고 가파른 곳에는 염화 칼슘을 깔아둡니다. 상명대 언덕길은 하교하는 학생들의 놀이터가 됩니다.

그가 아프고 나서 그 언덕길의 눈을 치우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젠을 신고 출근을 해야 했다고. 여기 살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 두 사람이 주말에 빌라 계단을 쓸고 닦고 난간 먼지를 훔쳐내면 좋겠다. 나는 늘 동네에 꽃을 가꾸고 싶었다.

 

17 젊어서 참 잘할 수 있는 것을 놓치면 나이 들어 그때 그 기분으로 그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그때를 참 잘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이 마음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3 6

 

18 춘설이 난분분합니다. 봄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19 누군가가 신의 선물은 늘 어려움과 문제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선물이 크면 클수록 그 선물을 싼 고통과 문제라는 포장지도 그만큼 더 크답니다.

 

19 우리에게는 유사욕망이라는 것이 있어요. 르네 지라르라는 사람이 주장하는 유명한 가정이지요. 다른 주체가 어떤 대상을 갈망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똑같이 욕망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이유는 혹시 이런 유사 욕망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질문으로 끝이 나는 이 문장을 보면 이 책이 순수한 일기가 아니라, 홈페이지에 일주일에 2~3번 보내는 용도, 그러니까 처음부터 공개용으로 씌어진 게 아닐까? 그래서 일기와는 성격이 다른 글이 아닐까 생각된다.

 

3 7

20 새벽은 하루 중에서 가장 탐험이 덜 된 시간인 듯 합니다. 새벽에 깨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7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나를 만나는 은밀한 회동은 늘 새벽에 이루어졌습니다. 새벽은 내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와 같습니다. 아직 어두운 것은 어제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새벽은 내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 오늘의 낮을 품고 있습니다. 하루가 날마다 새로운 이유입니다.

 

20 당신이 거기 그 모습으로 있다는 것 때문에 삶이 허물어지지 않는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기에도 우린 모자르니까요.

 

3 8

21 변화는 꿈과 현실 사이의 거리이며, 불행을 인식한 사람들의 주제입니다. 지금 있는 곳과 가야 할 곳을 아는 사람들만이 그 괴리를 줄이려고 애를 씁니다.

 

24 아내와 함께 영화 빅 피쉬를 보았습니다. 상상한다는 것은 훌륭한 것입니다. 지금은 대부분 병원에서 태어납니다. 누구나에게 그 탄생의 과정은 대동소이합니다. 엄마가 아파하고 그러다가 수술을 하거나 힘을 끙 주면 쑥 하고 나오게 됩니다. 그 탄생에 특별한 탄생 신화를 부여하면 아름다워집니다. 거짓이어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어 인생을 살도록 아주 힘찬 주술적 축하를 해주는 것이지요. 죽을 때 역시 대부분 병원의 침대에 누워 눈을 감게 됩니다. 그러나 상상 속에서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전송을 받으며 흐르는 강물의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다시 물 속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자유롭게 다른 생을 살게 된다고 상상하며 숨을 거두는 것 역시 아름답습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어 삼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고 온갖 아름다운 장면들로 인생을 채워가며 산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모든 것이 사실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다 허구도 아닙니다. 현실이라는 실로 꿈을 수놓는 것이 인생이지요.

 

3 11

27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책을 보았습니다. 봄날의 잠 기운에 몽롱해져 하루 종일 쉬듯이 책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가 봅니다. 죽은 다음에나 이 흔들림이 그치는 것인 것 봅니다.

죽은 뒤에나 이 흔들림, 출렁거림이 그친다니..우짜지? 할 수 없지.

 

3 22

33 한 사회가 따뜻한 공존의 공간이 되는 데는 그 구성원 개인들의 작은 친절과 배려가 켜켜이 쌓여야 합니다. 잘 알고 있으면서 지키지 못해 부끄럽고 결구 이 정도의 사회 속에서 그 각박함을 더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반성문을 작성하고, 손들고 구석에 조금 서 있어야겠습니다.

 

3 23

34 책을 읽다 좋은 글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좋은 글이란 벌써 내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 벌써 들어와 있지만 미처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는 순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이미 낯익은 것이기 때문에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 내는 작가의 재주에 경탄하지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표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34 살며 느끼고 이해한 것만큼만 우리는 알아낼 수 있습니다. 독서의 깊이는 삶의 깊이와 같습니다.

 

34 나는 가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소설 속에 숨으면 부끄러운 일을 미화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그저 마음이 흐르는 대로 문화와 문명의 한계를 넘어 강물처럼 쓸 수 있을 텐데요. 나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쓸 수 있으니까요. 문명과 문화로부터, 그 의도된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 그게 소설의 장점입니다. 마음 속에서 열정이 살아납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 통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왜 가끔 소설을 쓰고 싶은 지를 알았습니다. 자유로운 글쓰기기 때문입니다. 상상 속에서 현실의 제약과 덫에 걸리지 않고 살 수 있으니까요. 허구처럼 신나게 살 수 있으니까요. 자유, 자유니까요.

소설쓰기가 이렇단 말이지?

 

38 강물이 늘 넘실대며 변함없이 흐르지만 한 지점을 지나는 강물은 늘 새로운 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강물 전체를 보면 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흐릅니다.

나는 내 인생이 그렇기를 바랍니다. 늘 새로운 물이 흐르는 변함없는 강물 같기를 말입니다. 고여 있는 물은 결코 강물이 되지 못합니다.

 

3 25

39 여수와 광양을 다녀왔습니다. 매화는 지고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꽃과 꽃 사이를 다녀온 셈입니다. 그러나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의 그 참을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벚꽃들이 자욱한 분홍으로 아치를 이룬 칠불사 쌍계사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면서 봄날의 황홀한 들뜸을 즐겼습니다.

이맘때 나도 이 곳을 여행하고 싶다. 이제 올해부터 봄꽃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39 문득 10년 뒤에 써야할 책의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39 지나간 40 10년에 대한 이야기를 <>라는 책으로 펴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앞으로 50 10년을 지금 그려보니 봄처럼 어지럽고 긴장됩니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이 책 나도 가지고 있다.

<, 구본형의 변화이야기>가 같은 책이라고 들었다. 아닌가?

나는 연구원과정에서 지원서를 보내고 그 지원서를 늘여 쓰는 과정에서 한번 인생을 글로 쓰는 경험을 했다. 40대의 초입에 서서 40 10년을 그려보아 그게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구나.     

 

40 10년이 지난 후 나처럼 제 삶을 살고 싶어하는, 나를 참 잘 이해해주는 후배들 몇 명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마 난 50 10년을 잘 산 것일 것입니다.

 

41 일상의 끈을 놓치지 말 것, 그것이 현실이니까.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것, 그것이 실천으로서의 변화니까.

하루를 잘 보낼 것, 그것이 삶이니까.

하루 속에서 늘 나의 삶을 건져낼 것, 그리하여 를 완성할 것

, 그러나 이것은 신의 은총이니 단지 간절함으로 기원할 것.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갈 것, 아무것도 아니었던 때. 신인이었던 때로 돌아갈 것. 늘 신인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단지 자신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슬퍼할 것

 

3 27

41 오후 1시 햇빛 쏟아지는 광화문 거리 교보빌딩 앞에서 한 젊은이를 픽업하였습니다. 그는 매번 10분쯤 늦습니다. 다른 일을 하는 양을 지켜보면 게으른 사람은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약속 시간에는 늘 늦습니다. 무한한 시간의 흐름 중간 어디를 끊어, 바로 그때, 시간 맞춰 그 자리에 나오는 것이 생소한 모양입니다. 그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뭉텅뭉텅 썰거나 대충 한 움큼씩 집어넣는 손맛 요리법 같은지도 모릅니다. 딱 맞춰 나타나는 것보다는 대략 그 시간대에 나타나면 된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나도 이 젊은이와 비슷하다. 남들이 미쳐버릴라 한다. 

 

41 우리는 삼청동에서 노란 기장이 든 보리밥을 비벼먹고 북악 스카이웨이를 타고 봄볕이 초여름처럼 따갑게 차창 안으로 밀려드는 길을 구비구비 흘러내리다 구기터널을 지나 구파발 쪽으로 향했습니다. 꽃가에에서 이태리봉숭아 꽃을 샀습니다. 플라스틱 작은 화분 두 개를 헐어 하얀 도자기 화분에 옮겨 담아 청년에게 주고 잘 키워보라 했습니다. 나머지 15개의 화분은 커다란 박사에 담아 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서울을 벗어나 고양에 있는 중남미문화원으로 갔습니다. 햇빛과 해바라기와 태양으로 가득한 중남미 유물들을 마치 그곳에 간 여행자들처럼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이 부분을 왜 타이핑을 하고 있을까? 이 장면의 주인공이 되고 싶기 때문이지. 질투는 나의 힘!

 

3 29

43 눈이 부시게 빛나는 날 결혼식이 있어 서산에 갔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렇게 인생을 시작하고, 하객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 만난 때가 아주 오래 전이었음을 나누라며, 좀더 자주 보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집니다. 아마도 가장 빨리 다시 만나는 때는 그러나 누군가의 아이들의 결혼식을 하거나 누군가의 부모가 돌아가신 때가 될 것입니다. 우연히 맺어진 핏줄의 인연은 같이 태어난 동네를 넘어 도시로 농촌으로 또 바다 건너로 삶의 공간들이 확장되면서 겨우 결혼식과 장례식 때나 손을 잡고 얼굴을 보게 합니다.

 

4 1

45 드디어 뜰 앞의 목련이 터졌습니다. 식당 앞 창 밖을으로 밥 먹을 때마다 겨울부터 내내 기다리던 그 목련이 이제사 피었습니다. 다른 집 목련은 봄만 되면 빨리도 피더니 우리집 목련은 군대간 아들처럼 오래 기다리게 합니다. 기다림은 한 사람에 관한 것이고 하나의 사물에 관한 것인 것 봅니다. 기다림은 때가 되어야만 풀어집니다.

 

45 오늘은 햇빛이 좋아 포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바람이 좀 많이 불지만 꽃향기를 실ㄹ어 나르는 바람일 뿐입니다.

 

4 2

47 어제 만난 어떤 부부는 북한 산 밑에 자리가 세 개 밖에 없는 코딱지만한 카페를 열어놓고 거기서 먹고 자고 벌고 삽니다. 벽에는 장식품이 아닌 그들의 유일한 재산인 배낭과 물통과 모자들이 걸려 있습니다. 이 부부는 간혹 히말라야 속에 들어가 몇 주씩 있다 옵니다. 배낭에 싸가지고 간 마른 음식들과 현지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음식을 먹으면서 씻을 것도 없고 갈아입을 것도 없이 그렇게 삽니다. 아마 거기서 그렇게 살아보았기 때문에 여기서도 가난을 가난으로 느끼지 못하며 그렇게 갈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식기세척기도 평면 TV도 없습니다. 아이도 없고 조그만 강아지 하나 데리고 웃고 떠들며 바람처럼 삽니다. 빵 사러 갈 때도 산길로 구비구비 돌아갑니다.

 

4 4

51 겨울이 되어 본체만체 놔두면 그 다음해 초봄에 벌써 씩씩하게 언 땅을 박차고 뛰어나옵니다. 작지만 칼끝처럼 용맹스럽습니다. 처는 아침이면 가위를 들고 나가 부추를 조금 잘라다 청국장 끓일 때도 한 주먹 넣고, 샐러드에도 짧게 잘라 위에 뿌려둡니다. 멋도 있고 약간 매큼한 맛도 싱그럽습니다. 용감한 것들, 팔팔하게 생을 즐기는 것들이 죽어서도 가장 훌륭한 먹거리가 됩니다.

 

4 5

54 도토리와 호박 이야기는, 북한산에 진달래가 만발한 날 가벼운 산행을 했는데, 마침 호박구덩이 옆을 지나다 동행한 분이 웃자고 한 말이랍니다. 이왕 웃자고 한 말이니 오쇼 라즈니쉬가 행한 <벽암록> 강의 속에 삽입된 우스갯소리를 더 해보고 싶군요.

오쇼가 웃긴 얘기를 많이 했나? 웃음에 대한 그의 특별한 철학이 있나

가족세우기 웤샆에서는 아침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춤을 춘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땀을 흘릴 만큼 춤을 추면서 소리도 좀 지르고 앉아서 명상을 한다. 그리고 우스개소리를 몇 개 듣는다. 그런 다음에 시작했다. 이 과정을 수업에 응용하면 어떨까? 수업보다는 학급의 하루 일과에.

 

4 6

57 나는 그동안 내가 느끼고 체득한 것 중에서 그가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을 몇 개 추려 조언해 주었습니다.

마흔이 될 때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시간을 털어 자신에게 투자하라. 마흔이 넘어 믿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돈을 남기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남기도록 하라.

지금을 활용하라. 지금 현장에서 겪고 있는 일들은 관찰하고 기록하고 정리하라. 이것이 배움이다. 일에 마음을 쏟지 않으면 20년을 해도 일의 핵심을 파악하기 어렵다. 배움은 여러가지를 연습하는 연습이고, 이윽고 현실과 꿈을 연결하는 자신의 방식을 익혀가는 것이다.

차별화하고 또 차별화하라, 다른 사람들이 가는 큰 길로 가지 마라. 다른 것이 쓸모를 결정하고, 가장 자기다운 것이 가장 큰 쓸모임을 명심하라.

꿈꿔라. 꿈이 없으면 미래는 빈 것이다. 잡힐 듯이 꿈꾸는 사람들만이 그 꿈과 닮아가게 된다.”

 

점점 더 젊은이들이 좋아집니다. 내가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도와줍니다. 그들이 내 일의 의미를 만들어줍니다. 나의 본업은 그들이 자기다워지는 것을 돕는 일입니다. 자기다워질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들이 어제보다 고운 사람들이 되는 것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내 일을 아주 잘 한 것이 됩니다.

 

4 7

59 뜰 앞의 목련이 지기 시작합니다. 눈이 부시게 희색이더니 일주일 사이에 코끼리 어금니처럼 늙어 한 잎 한 잎 떨어져 눕습니다. 동백은 꽃송이째 뚝뚝 떨어집니다. 목련은 아홉 개의 꽃잎이 한 장씩 툭툭 떨어집니다. 서로 맞대어 의지하던 꽃잎들은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우르르 함락하듯 너도나도 뛰어내립니다. 이제 이삼 일 지나면 꽃이 가득하던 가지에 연두색 잎들이 밀고 나오고 우리는 무성한 여름으로 달려갑니다.

목련을 이리 자세히 본 적이 한 번도 없구나.

  

4 8

61 얼굴은 아주 여성스럽게 생겼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미인은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녀와 잠시 같이 있으면 그 순간이 환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녀에게서는 기쁨 같은 것이 번져 나왔어요. 하루를 즐길 수 있는 힘 같은 것을 타고난 듯 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녀를 만나서 아주 좋았습니다. 그녀는 나를 토대하여 강연을 맡긴 회사의 교육 담당자였지요. 그녀를 보면서 사람의 매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기다움에 넘쳐나는 사람들의 매력에 대해 생각해보다 나도 매력이 있는 사람인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난 아마 내 속으로 깊이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나 보이는 나다운 것들밖에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난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철철 넘쳐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은 어떤지요? 어느 때 당신은 아름다운지요?

 

4 12

62 그 광경을 보며 씁쓸했습니다. 이웃의 친절은 사라지고 고객에 대한 직원의 친절만 남게 된 것은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일상 속에 깊이 침투된 상업주의의 힘은 아닌가 염려되었습니다.

사랑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가 전화상담원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이라면 서글프다.

 

66 밭일은 머리를 비우기 위한 것입니다.

작가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신체활동 영역을 일상에 넣어야 한다고 줄리아카메론이 말했다. 자전거타기든, 달리기든

 

66 땅과 생명을 대하게 될 때, 그것이 수양의 방식임을 알았습니다.

 

4 16

67 그 후에 나는 내가 청중 중의 한 사람과 절실한 교감의 상태에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나는 한 사람을 위한 강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혹은 그녀의 고뇌와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라건데 그 한 사람이 그곳에 있는 사람 모두일 수 있는 행운을 바랍니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강연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소수를 데리고 하는 특수교사의 수업에서도 이것이 가능한, 합당한 목표일까? 5명 중 1명과 절실한 교감의 상태에 있으려고 하는 것?

 

68 나는 그들을 잠시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불행한 사람만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8 그래서 목표를 바꾸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도와줄 수 있은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어도 좋다.”

 

4 17

69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긴 장발의 기타리스트의 목소리가 호소력이 있습니다.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데 참 성실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무엇을 하든 성실하다는 것이 멀리 나아가게 합니다.

 

4 20

72 낮에 잠시 신문사의 기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내 책을 몇 권 정성스럽게 읽은 분입니다글쓰기와 관련하여 가지고 있는 내 생각을 몇 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우선 마음 속에 간절히 쓰고 싶은 것이 있어야 표현에 힘이 실립니다.언젠가 나도 변화 경영에 대한 좋은 책을 써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오래된 준비였던 셈입니다. 첫 책인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쓸 때 그런 간절함을 절박했습니다.

나는 어떤 간절함이 있지? 현재로서는 이 결혼을 파토내지 않고, 나와 상대, 주변의 여러 사람을 불행하지 않게 하고 싶지. 오래된 간절함이지.

 

둘째는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많이 읽어야 많이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언어와 자신만의 표현방식이 형성됩니다. 첫번째 책을 낼 때까지 한 번도 글다운 글을 써보지 못했지만 책을 쓰는 것에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그동안 책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나는 많이 부족하다. 1년차에도 북리뷰는 언제나 날림이었다. 원인조차 모르겠다.

 

셋째는 많이 써보아야 합니다. 매년 책 한 권을 낼 수 있는 것은 책 자체가 실험이고 배움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불완전한 책을 내는 것이 바로 내가 가장 잘 배우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1년 동안 내가 배우고 생각하고 익힌 것을 정리하여 표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학습방법입니다. 내게 책은 어떤 주제에 대한 1년 동안의 사유를 기록한 한 권의 정리노트인 셈입니다.

 

넷째는 영원히 초보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간혹 책 몇 권을 내고 그 분야의 중견이 되어 버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배움에는 중견이란 말은 없습니다. 늘 초보만이 있을 뿐입니다. 잊을 때마다 매번 붙들어 세워야 하는 것이 초심입니다.

 

글쓰는 것 역시 세상을 사는 것이며, 다른 일을 할 때와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4 21

74 앞으로 10년이 관건일 것입니다. 특색을 만들어 내는 도시와 지방은 풍요로워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지방은 궁핍을 떨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특색이 없는 곳을 여행하고 싶은 여행자가 없듯이 자신이 아닌 자신을 좋아하는 삶의 여행자도 없습니다.

 

75 담양호반을 끼고 가마골로 빠지는 길 옆 호숫가에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물가에 붙어 아름다운 조망이 가능한 쉴 만한 곳입니다. 날씨 좋은 날 한두 시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차를 마시며 햇빛이 부서지는 호반 수면 위의 찬란한 눈부심을 즐길 만합니다. 우린 그 호반의 주위에 있는 어느 음식점에서 시래기를 넣고 고추장을 치대 듬뿍 매운 맛을 낸 메기찜을 먹고 이곳에서 잠시 그 풍광을 즐겼습니다. 그 곳에 앉아 호수를 스쳐 오는 바람과 햇빛을 즐겼습니다. 즐길 수 있는 오늘이 어찌 그리 예쁜지요.

 

난 유치해지는군요.

 

그대가 죽어가고 있을 때

그동안 이렇게 살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것이다.

지금 부디 그 소원대로 살아가기를

 

그대가 이별할 때

그동안 이렇게 사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질 것이다.

지금 부디 그 마음으로 사랑하기를 (크리스천, F. 겔러트)

 

4 29

78 청송읍은 마침 장날이라 하여 기대하고 둘러보았으나 재미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청송다운 것들은 자급자족하는 것 같았습니다. 청송에 없는 잡다한 공산품들과 생선들만 거래되는 듯하여 장은 외지인에게는 퍼져 앉아 나그네답게 떡 한 조각, 국수 한 그릇, 국밥 한 사발 먹는 떠들썩하고 흥겨운 맛이 없었습니다. 장다운 흥취는 없고 생업만 남은 공간을 보며 그 무미건조함에 얼른 떠나고 싶었습니다.

 

5 5

85 낮에 둘째아이와 함께 평창동 집 구경을 갔습니다. 우리는 집을 구하는 사람처럼 복덕방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20년 후 집사기라고 부릅니다. 그애는 예쁜 집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연한 방문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을 살짝 엿보기로 했습니다. 자꾸 보아야 좋은 집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자꾸 보아야 스스로 20년 후 살 집에 대한 명료한 자신의 그림을 가지게 될 것이니까요.

집은 인생과 비교해 볼 수도 있습니다. 집 자체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경우 집을 사는 것은 동네를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동네에 해당하는 것이 출신 학교, 직업, 소속 집단 같은 것입니다. 집이 들어앉은 터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신의 인생 철학입니다. 동남향에서 남쪽으로 약간 더 틀어 앉아서 툭 트인 시야를 가지고 있는 집이 훌륭하듯 가장 중요한 것이 세상과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선입니다. 집이 얼마나 예쁘게 지어졌는가는 자기 자신을 재료로 얼마나 아름다운 축조물을 만들어 냈는가를 상징합니다.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곳곳을 배려하여 만들어 놓은 건축은 우리를 경탄케 합니다. 훌륭한사람의 일생이 우리를 감탄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집 안에 놓인 가구들과 집기들은 우리의 하루하루를 의미합니다. 깨끗하게 정돈된 식기와 집기들, 우아한 가구, 멋진 그림, 귀여운 액세서리, 그리고 책으로 가득한 책장들은 우리가 아침점심저녁 밤을 보내는 방식들입니다. 집의 내부 풍경은 결국 먹고, 즐기고, 일하고, 자는 우리의 일상이니까요.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그 주인을 닮아 있다징기즈칸이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그도 인생을 집을 통해 읽어낸 것은 아닐까요? 집 없이 떠도는 유목민에게 집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요?...잘 알 수 없지만 떠도는 영혼들이 가장 그리워한 것은 아니러니컬하게도 집이었을 것 같군요. 돌아갈 곳이 없는 나그네처럼 고달픈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5 8

95 제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장모님이 한 분 남아 계십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분이었지요. 요리 솜씨가 아주 뛰어난 분이기도 합니다. 장인어른이 살아계실 때는 날씨가 더워지면 장모님은 늘 민어 매운탕을 끓여드렸고, 우리고 함께 먹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로는 더 이상 끓이지 않으시거군요. 올해 어버이날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커다란 민어를 두 마리 샀습니다음식에는 어떤 추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 추억 속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물론 술도 한 잔 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보다 많이 드셨습니다.

이렇게 추억으로 접속하는 일상의 이야기가 어떤 발견, 깨달음을 물고 나오는 식의 글이 나는 좋다. 이것이야말로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고,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일테다. 

 

5 12

96 주자와 그 제자들의 문답집인 <주자어류>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공자는 제자 안회를 매우 사랑했는데, 그를 평하여 묵식심융이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묵묵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스미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주자는 이 말 중에서 ()자가 제일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란 눈이 햇빛 따사로운 곳에 있는 것과 같답니다. 만약 어떤 배움이 마음 속에서 그처럼 녹아내리지 않는다면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그냥 남아 있는 것이니 어떻게 밖으로 드러날 수 있냐는 것이지요. 바싹 마르지 않고 어떻게 스미게 할 수 있을까? 안회는 아마 배움에 바싹 마른 사람이었던 모양이지요. 온몸으로 스미게 하여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던 모양이지요.

 

97 마음이 들어 있지 않는 상품은 그래서 미워합니다. 좋은 제품은 좋은 마음만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불량 물조리개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5 13

책을 읽다가 어떤 초상화가가 한 말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적어 두었습니다.

초상화를 그릴 때몇 가지 공통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은 초상화가 실제 인물과 달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 버려야 한다. 실제 인물과 비슷해 보이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생명력이 없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는 것이다. 인물의 생명은 정밀 묘사보다는 그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을 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초상화의 매력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초상화 그리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그리는 선 하나하나가 실물과 닮기를 원한다. 그들은 주로 윤곽부터 그린 다음 그 안을 채워 나간다. 즉 밖에서부터 안으로 그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말 초상화는 그 반대로 그려야 한다.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그려야 한다. 왜냐하면 안만 제대로 그려지면 밖은 저절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나는 천재들의 얼굴에서 그의 천재성을 말해주는 특징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찾아낸 것은 공존할 수 없는 특징들, 장난기와 진지함, 낙관성과 두려움, 자유와 책임 등이 그들의 얼굴에 공존하고 있었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러한 특징들을 통해 천재들의 미묘한 의식이 조금씩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내 초상화의 초점은 그들의 영혼이다. 사실 나는 우리가 그들을 보는 방법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 세계를 보는 방법에 점점 매료되었다.”  

 

5 14

101 그래도 죽기 전에 한 달 정도는 생과 정리하고 작별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죽음과 함께하는 한 달간의 여행을 통해 살면서 못다한 생각들과 사연들과 위로들을 축복처럼 남기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나? 한달 정도 아픈 것은 좋다. 너무 오랫동안 고통스러우면 모두가 고생이다. 어제 그녀는 고통이 심한 걸 지켜보아야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101 다른 먼 여행을 혼자 떠나야 하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남겨두고, 다시 빈 가방을 들고 떠날 채비를 하면, 또 다른 여행이 기대될 것도 같습니다.

 

5 16

103 스스로 살아라, 스스로 살아 번성해라, 누구에게도 선택 받지 말고, 스스로 살아 아름다워져라.

(잡초를 뽑아내며 하는 생각, 나라면 잡초는 역시 어릴 때 잡아야 하는 구나. 정도.

 

5 18

104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러나 과거에 대한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 해석의 힘입니다.

 

5 19

105 아침에 안개가 많이 끼었습니다. 해가 떠오르는데 마치 달처럼 얌전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달보다 더 붉은 기가 강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글거리는 작열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5 24

110 돌아오는 길에 한 모퉁이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분홍색 얇은 스웨터를 걸치고 홀로 눈물짓고 있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이곳은 아마 그녀의 사랑이 그 노란꽃처럼 익어 갔던 그런 곳이었나 봅니다. 사랑 외에는 그 시간에 그렇게 여인을 울게 하는 것은 없으니까요.

 

5 25

112 욕망을 주었으면 재능도 주었어야 한다는 말은 이 갈등의 한가운데 있는 핵심적인 말입니다.

생각해보게 합니다. 신이 깨끗하고 의젓하고 경건한 인물을 자신의 사자로 삼았다면 더 불공평한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살리에르에게 음악을 이해하고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면 이미 충분히 많이 준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완벽한 인간은 이미 신의 음성을 듣기에는 너무 사회화된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사회적 유아, 그들이 오히려 오염되지 않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5 27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와 집으로 오니 우리집 덩굴장미가 한창 화려합니다. 마치 해가 수평선 위로 반쯤 떠오른 듯 합니다. ‘절정은 절정을 기대할 때 더욱 화려합니다. 핀 꽃은 싱싱하여 달콤하고 아직 피지 않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다투어 개화를 기다리고 있는 이 배치가 바로 절정을 예감하게 합니다.

아내는 내가 돌아오는 날 작은 항아리 속에 붉게 익어 가는 커다란 수국 몇 송이와 노란색 붓꽃 몇 송이를 꽂아 현관에 놓아 두었습니다. 떠나 있는 동안 우리집 수국도 붉게 익었고 붓꽃도 몇송이 더 피었습니다. 거실로 들어서자 바깥 계단을 오르며 감탄했던 그 절정을 향한 장미꽃을 한 다발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나를 위해 커다란 화병 가득 붉은 장미를 꽂아 두었습니다. 집은 참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일기장에 이렇게 써 두었습니다. …집이 일상과 함께 그곳에 그대로 있어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여행은 비감하지 않고 즐거운 것이다. 우리는 질서에 지쳐 나그네가 되고 자유에 지쳐 귀환한다.  

 

5 30

115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중년이 되고, 익명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당신을 보아 주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자유로운 것이다. (도리스 레싱)

 

 

여름

 

6 2

118 자기를 가꾼다는 것은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지 않은 군더더기들을 쳐내고 덜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6 3

120 고등학교 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했던 것처럼, 대학에서조차 취업을 위해 공부하지 말라 했습니다. 젊어서 돈 벌 생각하지 말고 젊어서 번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 했습니다. 학벌과 자격증에 매이지 말라 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매이는 것이라 했습니다. 자신을 한 권의 책으로 생각하라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 했습니다. 스스로 작은 역사가 되고 문명이 되라 했습니다. 내 속에 숨어 있는 위대한 것들을 찾아가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이 말이 좋다.

 

 

121 내게 장자는 세상의 상처로부터 피해 숨을 수 있는 깊고 현묘한 동굴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쉬고 위로 받고 힘을 다시 얻어낼 수 있었다.

장자가 그러하단 말인가?

 

6 8

126 눈부신 것을 볼 때는 안개 속에 있어야 합니다. 살면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눈부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통 때는 우리를 미망에 빠뜨리는 안개와 같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라는 것은 그동안 너무도 빛나는 주제였기에 잘 들여다 볼 수 없었는 지 모릅니다.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를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6 12

135 아내의 친구들이 몇 명 찾아와 놀다 갔습니다. 손님이 온다하여 아침부터 집 바깥 몇 군데 지저분한 것을 치우고 청소를 했습니다. 나무 밑에 쓸어놓아두었던 묵은 낙엽들을 한 군데 모아 태우고, 저 혼자 웃자라 삐죽하게 뻗어나온 나뭇가지를 가지런히 잘라 주었습니다. 손님이 오면 집안이 조금 깨끗해집니다.

점심 때 그들이 도착했습니다. 볕이 따가왔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맑은 날이었습니다. 준비해온 맛있는 것을 먹고, 시원한 맥주도 한잔씩 하고, 사온 케잌을 커피와 함께 나우어 먹으며 쉬지 않고 웃고 떠들고 합니다. 남자들보다 재미있게 놉니다. 간혹 나를 놀려먹기도 하다가 저녁때 갔습니다.

 

6 16

140 새벽에 깨어 잠시 작업하고 오전 내내 잠을 잤습니다. ..오늘은 내게 굼벵이의 날입니다. 천천히 느릿느릿 꿈틀꿈틀 통통한 게으른 무위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침대 위에 베개 위의 자다 깨다 누워서 두세 페이지 읽다 툭 하고 책을 떨어뜨리는 더운 날 마룻바닥에 누워 둥실대는 그런 날이군요.

좋다. 나는 늘보딸이 별명이다. 엄마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무늘보처럼 느려터져서 그렇다. 모든 동작이 느긋하다 못해 꾸물꾸물해서 아버지가 굼벵이 같다고 놀리는데 좋다고 말하는 딸처럼 못했다. 

 

6 17

142 나는 21세기의 세계화라는 특징을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한 모델로서 13세기 몽골 제국에 대한 특징을 몇 가지 소개해 주었습니다. 13세기에 존재한 21세기의 모델에 대한 하나의 가상적 연결인 셈입니다. 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특징으로 열린 세계, 테크놀로지 헤게모니, 그리고 스피드를 들었습니다.

열린 세계는 공존과 상생의 개념입니다. 광대한 제국 전체에 안전하게 형성된 자유 무역과 단일 화폐,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의 공존은 13세기 대원 제국 당시 가능했던 한 모델이었습니다.

 

테크놀로지 헤게모니는 전문화와 탤런트의 계발을 전제로 한 수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몽골의 군사력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어려서 걸음마를 배우는 것과 동시에 말타는 것을 배웠던 사람들입니다. 말고 사람은 하나였고, 그들에게 전쟁은 직업이었고 말 잔등은 직장이었습니다.

 

143 전문화는 자신의 기쁨을 위해 해야 합니다. 공자가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하냐라고 말한 것은 학습의 즐거움이며 그 즐거움의 주체는 바로 자신입니다. 누구를 위한 이익을 목적으로 수련하기 이전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일 때 평생 변치 않고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143 스피드는 최고의 장점이자 스트레스입니다.

 

144 이제는 하루 사이 두 개의 패어다임 속에서 살아야 할 지도 몰라요. 사업은 빠르게, 가족과는 느린 세계를 즐긴다는 것이지요. 가능할까요? 두 개의 분열된자아로 하루를 산다는 것이?

 

6 19

146 운명의 힘을 결정하는 첫번째 기상요소는 이라는 환상적 에너지일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에너지이니까요.

 

두번째 요소는 타고난 기질, 재능, 취향 같은 선천적인 것들의 콤비네이션일 것 같습니다.

 

세번째 요소는 자신에 대한 애정일 것입니다. 자신의 힘과 삶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중요하겠지요. 이것은 아마 자신의 중심으로 스스로가 가진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태풍의 눈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애정 없이는 모든 힘들이 거대한 결집력을 잃고 산산이 뿔뿔이 흩터지고 말 것입니다.

 

네번째 요소는 기상도가 지도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려면 운명이라는 태풍의 시간적 전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를 어떤 모습으로 지나가 될까? 바로 이 질문에 답을 해 줄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나에 대한 연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스스로의 과거를 기록하고 자신의 문명의 성격을 규정하고 앞으로의 성취를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원을 결집시키는 운명의 로드매핑을 나에 대한 학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네가지 요소를 가지고 내 운명의 기상도를 그려보니 나는 어디서 발원하여 어디를 향하는 얼마나 커다란 태풍이며, 시시각각 내 위치가 파악되는 에너지라는 것을 알 수 있어 보이네요. 지나온 인생과 앞으로의 인생의 개략적 모습이 아주 인상적으로 보이는군요.

여름 태풍의 기상도를 가지고 이런 걸 떠올린다. 그는 아마도 화두에 골똘했던 사람이었나 보다. 내게는 이런 게 무엇일까? 무엇이 내 생을 관통하는 주된 관심일까? 써보면 알게 되리라. 

  

6 28

148 혼자서 심심하게 살아야 생각이 맑아지고 그림을 그리게 된다. 심심해서 몸이 뒤틀려야 그림이나 그려볼까 하는 새로운 생각에 잠기게 된다. 재미있게 지내고 나면 구역질이 난다. 나는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절박한 예술가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항상 영영 결핍에 시달린다. (김점선)

 

7 4

153 아침에 산에 다녀와 목욕을 했습니다. 아직 머리털의 물이 채 마르기 전에 책상에 앉아 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하루였습니다.

 

153 아침에는 돌구를 데리고 산에 갑니다. 이제 두 살 난 수캐는 산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수없이 킁킁거리고, 줄 끝에 날 매달고 질주하고, 뽀족한 곳이 나오면 잊지 않고 물총을 쏘듯 가볍게 쉬를 쏴 줍니다. 점잖은 짓은 아니지요. 그러나 나는 길들지 않은 이런 야성을 즐깁니다. 집에 있을 때는 세상이 다 지루하고 그저 그렇더니 산에만 오면 눈빛이 살아납니다. 그 개를 보고 있으면 열중하고 몰입하는 모습을 늘 즐길 수 있습니다. 주인에 대한 친화적 제스처는 사라집니다. 꼬리를 하늘로 치켜세우고 뒷다리의 근육이 팽팽해지고 머리는 언제나 미지의 공간을 지켜보고 뾰족한 귀는 안테나처럼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코를 실룩거리고 혀는 길게 빠져 나와 심장의 박동을 따라 춤을 춥니다. 털 하나까지 살아 있는 듯 합니다. 그때 그 털을 쓰다듬을 수 있다는 것이 개 키우는 맛입니다.

 

7 16

159 이 집은 제가 오랫동안 찾아오던 그런 집입니다. 실제로 북한산에 왔다가 시간이 나면 이 동네 복덕방들을 다니며 이 집 저 집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했었지요. 그리고 이 집을 보고 마음에 들어 사게 되었습니다. 살던 집을 팔고 퇴직금을 털어 넣어 좀 고친 후 18년 만에 비로소 아파트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 집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아내도 이 집을 좋아합니다. 처에게 어제 휴가를 떠나겠느냐고 했더니 여기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다고 어딜 가겠느냐고 그럽니다. 집에서 맛있는 것 먹으며 둥실거리면 그게 휴가라는 겁니다.

좋은 공간은 하루를 다르게 합니다. 아침에 밭에서 채소를 따다 식탁에 놓고, 낮에 잠시 밭과 정원을 가꾸고, 저녁엔 틀이나 데크에 나와 달과 함께 술을 한잔 할 수 있습니다. 늘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고, 사계가 지나가는 한복판에서 그 변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하루가 바뀌니 비로소 인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하루를 개편하지 못하면 본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7 19

163 변화경영 강사는 강사가 관객이 되어 그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좋은 강연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관객이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어 돌아보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별로 화려한 작업은 아닙니다. 어쩌면 수술을 하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것이 바로 관객 스스로가 문화의 창조자가 되도록 돕는 일입니다. 결국 자신을 재료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니까요.

 

163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나는 뜰에 의자를 놓고 안장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때부터 어둠이 내리기까지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언젠가부터 가만히 혼자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나를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고 간혹 말입니다.

 

164 내 생각으로는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직업인은 결코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결국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한 자신의 견해거든요.

 

165 철학책을 읽는 것은 철학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을 알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철학을 만들고 가다듬고 정리하고 부수고 재편하는 평생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걸 저는 변화라고 부르지만요. 생각이 자라지 않는 변화는 그래서 본질적일 수 없습니다.

 

165 역사는 사례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내게 있어 역사는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삶과 현실에 대한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다. …역사란 시간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다..결론적으로 나는 스스로를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윌 듀랜트)

 

8 3

모처럼 둘째딸과 데이트를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우리는 같이 놀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원한 버스를 타고 로댕미술관에서 오노 요코를 만났습니다그리고 조금 걸어와 시립미술관 전시 매장에서 예쁜 자동연필을 두 자루 사고, 정동길을 거쳐 광화문 교보문고로 걸어왔습니다. 교보빌딩 2층에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약간의 사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의 데이트니까요.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 풀과 색연필을 샀습니다. 다리가 아플 만하여 스타벅스에서 프라푸치노를 한잔씩 마셨습니다. 나는 스타벅스를 싫어하지만 내 딸아이는 좋아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이유는 시끄러워서이고, 내 딸이 좋아하는 이유는 왁자지껄 신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싫어하고 같은 이유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새로 산 연필로 낙서를 하며 놀았습니다. 오늘 우리를 그렸고, 어제 우리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내일 우리를 그렸습니다. 마지막 프라푸치노 방울이 빨대 끝을 벗어나면서 쪽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처와 딸아이는 미사를 보러 갔습니다. 나는 집에서 책을 보았습니다. 아주 좋은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내일 또 살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8 31

181 봄엔 산꽃을 보는 것이 일품입니다. 그리고 가을엔 물이 예쁜니다. 가을이 되면 물은 여름의 투명함을 버리고 깊어집니다. 물이 깊어지는 것을 묘사하기에는 내 필력이 따르지 못합니다. 물색이 어두워지며 신비해지는데, 아주 깊은 자연의 영혼이 담긴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여인의 맑은 눈매를 가을물아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지금 생각하면 간혹 그런 눈을 갖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순간에, 영혼이 맑아지는 어떤 순간에 우리들의 눈이 그렇게 보일 때가 있더군요.

 

가을

 

 

184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다시 연달아 두 번 보았습니다.

 

184 비극은 눈물로 장례를 치르지만, 죽음은 결국 그가 누구의 소유도 아님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는 한 마리 들소였고, 푸른 해변 위를 나는 새였으며 바람이었습니다.

 

9 4

185 가을은 다음 세대를 위한 뒷바라지처럼 열매 위에서만 빛납니다. 잎이 져야 비로소 열매가 빛납니다.

 

10 1

하루 종일 책을 보았습니다. 비 오는 날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것은 대단히 멋진 일입니다. 책 속에는 재미있는 생각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 도대체 이 사람들은 이런 생각들을 어디서 가져올까 신기해 집니다. 

 

10 10

195 그러나 부모됨은 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믿음을 가지고 오래 기다려 주어야 하는 가슴 아픈 역할이기도 합니다. 걱정마라, 얘야, 다 잘 될 것이다.

 

10 24

200 춘천에서 화천에 이르는 약 40킬러미터는 참으로 아름다운 길입니다. 강물이 댐에 이르러 넓은 호반을 이루는 길을 구비구비 돌아가면 한국의 산천이 참으로 고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파로호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강둑 언저리에서 5천원을 주고 걸죽한 어죽 한 그릇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200 올 가을엔 가고 싶은 길을 따라 아내와 함께 갈 곳도 정하지 않고 길이 우리를 이끄는 대로 강 따라 단풍 따라 마음껏 돌아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이 길 저 길 샛길도 꽤 가보게 되었습니다. 길은 샛길이 정답습니다.

 

200 우리가 만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 마음속 길들 깊이 들어가 본 적이 얼마나 되는 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저 겉돌다 그게 그 사람이려니 짐작하고 넘겨짚은 일이 많았습니다. 사람들 각자는 모두 가보지 못한 길이고, 인생마다 사연이 있는 것이니, 많은 길들을 가 본 후에야 고만고만한 길들이 다 다른 골목임을 알 것 같습니다.

 

203 요즘엔 감이 제 철입니다. 맛도 있고 값도 쌉니다.

 

204 “그대가 만약 나무라면 어떤 나무라고 생각합니까?”

바바라 월터스라는 방송인은 유명 인사와의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마지막에 꼭 이 질문을 던졌다는군요.

 

11 27

211 강연을 하다가 섬광처럼 내가 하는 일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명쾌한 듯 보였지만 어딘지 미진한 대목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쏘시개 불꽃 (an unexpected sparkle toward a destiny)

 

내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잠시 우연한 쏘시개 불꽃이 되는 일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길을 갈 때는 내면의 등불을 밝히고 가야 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등불이나 등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여행은 우리 속으로의 여행이니까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오직 자신을 태우는 스스로의 등불로 길을 밝혀야 합니다. 막막할 때, 어딘가 주저앉아 있을 때, 우연히, 자신의 안에서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는 나에게도 불씨를 빌려주었다. 이제 스스로 타올라야 하는 거구나. 스스로 등불을 밝히고 내 길을 가야하는 거구나.

 

겨울

 

1 6

221 그는 매우 못생겼다고 합니다. 그가 공자의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공자는 그의 외모를 보고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이라 여겼다는군요. 그러나 자우는 가르침을 받은 뒤 물러나 덕행을 쌓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후에 자우는 제후들 사이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따르는 제자들만 300명에 이르렀답니다. 공자가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생김새만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나는 자우에게 실수하고 말았다.”

 

230 참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군요. 강연 중에 하도 그 얼굴이 평화롭고 유쾌하게 빛나서 눈길이 쏠리는 것을 피할 수 없던 한 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할머니는 여든다섯 되셨다고 합니다. 나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기도하는 자의 마음을 바꿀 뿐이다.’ 쇠렌 키에르케고르

 

1 24

233 오랜 여정을 거쳐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보통의 여행이지요. 목적지에 도착하면 여행도 끝나는 것이구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행 자체가 목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1 26

235 당장 먹고 사는 일을 떠난 호사지만 문화란 먹고사는 일을 넘어선 삶 즐기기니까요. 조금 먹고도 아주 잘살수 있다는 것을 알게하는 것이 바로 문화거든요. 멋은 돈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1 28

238 하루종일 영화를 보다 책을 보다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빈둥대기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룸펜처럼 느려터진 꼴을 하면 나는 현실로부터 멀어집니다. 이윽고 나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239 오늘 하루는 조지오 망가넬리의 말처럼 무익함 속에서 유익함을 엿본 하루였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것에서 생명을 얻고, 유익한 일을 하면서 탈진한다. 유익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는 파멸하고 죽게 될 것이다.”

이게 가끔 쉬기도 해야겠지의 뜻인가?  

 

2 1

242 저는 끊임없이 의미를 찾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책을 쓸 수 있습닏. 그러다 보니 너무 진지해보이지요. 늘 진지한 사람은 지루하잖아요. 진실을 전달하는 방법이 늘 진지해서도 안되구요. 그래서 우선 많이 웃으려고 합니다. 남을 웃길 수는 없으니까 남이 우스운 말을 하면 많이 웃으려고 합니다.

 

242 나는 가끔 내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사람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면 조금 나아질 것 같기도 합니다.

 

2 2

243 자다 깼는데 느닷없이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그녀는 우연히 날 찾아왔고, 우연은 이내 운명이 되었습니다. 둘의 운명이 얽히고 설킨 길을 웃고 싸우고 또한 즐기며 걸어왔습니다.

부부는 자다가 이불 속에서 방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 떨어져 그 소리를 못 견디고, 어떤 사람들은 발끝으로 슬그머니 이불을 조금 들춰 줍니다. 중간에 헤어지는 사람들과 죽을 때까지 같이 가는 사람들의 차이는 겨우 이런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참담한 불균형이 아니라면, 부조화는 우리로 하여금 안팎으로 대화가 진행되도록 도와주거든요.

 

2 14

255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미래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미래란 창조하는 것이지 적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변화란 새로운 모색이고 실험이니까요.

 

2 17

259 오늘은 오늘 하루를 스케치해 보는 거예요. 우리는 이것을 인생의 어느 하루프로그램이라고 부릅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처럼 될 수도 있고, 내 이야기가 천일야화중의 한 이야기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쨎든 김아무개 이 아무개의 하루가 세상 속의 어늘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이지요.

기록되는 것은 오늘의 사건, 느낌, 행동, 생각 등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점점이 모여 인생을 이루는데, 오늘의 기록은 그 점 하나에 대한 미시적 화대지요. 어떻게 기술하느냐는 당신의 개인사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당신의 시각과 취향에 달려 있어요. 깨어나서 잠들 때까지 모두를 적어두는 사실주의적 기풍을 따라도 좋고, 특징적인 것만 추려 뼈대를 이어도 좋아요. 시간의 흐름을 다라 연대기처럼 적어도 좋고, 그저 마음의 흐름을 따라가도 좋아요. 어쨎든 그게 오늘의 당신이고 그 연합이 당신의 인생이니까요.

 

좋은 일들은 그것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에밀리 디킨슨

 

짧은 후기

 

271 오늘 내가 싸워야 하는 것은 어제의 생각과 어제의 행위입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을 점령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어제는 어제로서 등을 보이고 유유히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흘려 버리는 좋은 방법은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넘쳐흘러야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저수지는 채우기 위해 막고 가둡니다. 그것이 저수지가 자신을 채우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흘러 들어온 물줄기에 욕심을 내고 가두어 막아 흘러 나가지 못하게 하면 고여 있는 물이 되고 맙니다. 고인 물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썩음과 독입니다. 이것은 하루의 중독과 붕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 방울을 받으면 한 방울을 흘려 보내야 합니다.

 

좋은 샘은 늘 넘쳐흐릅니다. 스스로 솟구치며 어제 채운 것을 비워내기 때문에 언제고 생명을 가진 것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싱싱한 하루를 만드는 비법입니다. 세상과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물줄기에 의존하여 내 수문을 잠가 채우면 저수지가 되고 맙니다. 내면적 솟구침이 넘쳐흐르도록 놓아 두면 비로소 샘물이 됩니다. 하루는 샘물이 자신을 채우고 넘쳐 흐르게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역시 샘물입니다. 넘쳐흐르는 하루는 가진 샘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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