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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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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0일 07시 19분 등록
2. 내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P11, 그 환희 속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건강이였다.

P11, 나는 우리가 신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신들은 우리를 향해 열 걸음을 다가서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11, 영웅의 여정은 탄생에 비유되어 왔다. 처음에는 안전한 장송에서 따뜻하고 아늑한 상태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신호가 오고, 그것이 점점 강력해지면,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P12, "너희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못한다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P20,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이든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이다.

P21,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임무는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P22, 지옥이란 말라붙은 삶이다.

P23, 파괴가 있는 다음에 창조가 있다.

P24, 우리 자신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근거한 것이다.

P26, 경외심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P27, 여러분이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여러분은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
결국 유머 감각이 여러분을 구원하리라.

P28, 여러분의 진정한 의무는
공동체로부터 멀리 떠나
여러분만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P35, 여러분은 반드시
희열을 느끼고 돌아와
그것을 통합시켜야 한다.

P35, 귀환은
어디에서나
광휘를 목격하는 것이다.

P45, 여러분이 오로지 사랑 때문에 결혼한다면
그 결혼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P46, 배우자를 찾을 때,
만약 여러분의 직관이 훌륭한 경우,
적임자를 찾을 것이다. 만약 훌륭하지 못하다면,
계속해서 잘못된 사람만 발견하게 될 것이다.

P53, 사랑이 멀리 있으면
삶도 멀리 있다.

사랑은 정확히 삶만큼 강력하다.

P66, 결혼은 연애가 아니라 시련이다.
그것은 종교적 훈련, 성찬식, 또 다른 삶에 참여하는 은총이다.

P67, 여러분 두 사람이 반드시 함께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중세의 관념인 고결한 마음은 딱 그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P69, 내 생각에 결혼이란 상대방을 책임지고 사랑함으로써 상대방과 진정한 일체가 되는 것이다.

P73, 결혼이란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게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그 관계됨에 희생시키는 것이다.

P90,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P101, 기억하라. 파르치팔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던 대로 행했기 때문에 일을 오히려 망치고 말았다는 사실을.

P112, 여러분이 떠나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이다.

P113, 여러분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여러분은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며, 밤바다로 출항을 개시하는 셈이다.

P118, 여러분은 용기가 있는가? 여러분이 숲에 들어갔다가 되돌아오려고 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P123, 변화하는 살마은 거의 누구든지 옛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P137, 참가자들은 각자의 마지막 보물을 포기하는 순간 '모크샤', 즉 '해방'을 실제로 경험했다.

P137, 싸움이나 짜증은 무식한 자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후회는 때늦은 각성일 뿐이다.

P140,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P142, 온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인 것이다.
-오비디우스

P149, 내가 보기에 죽음 이후의 삶에 관한 생각은 나쁜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 생각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여기, 즉 여러분이 살아 있는 이 유일무이한 순간을 음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149, 여러분으로선 차라리 지금, 바로 여기서 행복한 편이 더 낫다.

P149, 영원한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지금, 여러분 안에, 여기 있기 때문이다.

P167, "가장 좋은 것은 말할 수가 없다."
-하인리히 침머

P170, 이른바
정통파 공동체의 기능이란
곧 신비주의자를 고문해 죽이는 것이다.
그것으 바로 이들의 목표이다.

P171, 삶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삶의 절반은 기쁨이고 절반은 슬픔이다. 기쁨과 함께 슬픔도 받아들여야 한다.

P171,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

P176, 여러분의 신은 여러분 자신의 의식 수준의 현시다. 천국에 있는 모든 것이나 지옥에 있는 모든 것이 여러분 속에 들어 있다.
-우리는 신화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현실의 메타포를 잘 활용해봐야 한다.

P176, 여러분의 꿈을 글로 적어 보라.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화다

P177,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P177, 여러분이 세상 속에서 움직이면서 영적 삶을 지니는 비결은 언제든지 모든 것에 들어 있는 아움 소리를 드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한다면 모든 것이 변화될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성취와 달성을, 그리고 여러분이 찾던 보물을 찾기 위해 더 이상 어디로 갈 필요가 없다. 그것은 여기 있다. 그것은 모든 곳에 있다.

P179, 이 신호는 사회적으로 특수하다. 하지만 이 신호가 유발하고 통제하는 자극은 자연, 생리, 본능의 것이다.

P187, 여러분의 삶에 있어 크나큰 중요성을 지니게 될 사람을 만날 때에는, 그 첫 만남에서부터 장차 뭔가 벌어질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매우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189, 상징이, 우리의 사고를 인도하는 곳은, 두뇌에 속하지 않는 영역이지만, 두뇌는 충분히 그곳을 이끌 수 있다.

P190, "진리란 곧 유용한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

P192, 여러분은 차라리 불완전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감수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망므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P193, 여러분 자신이 더 작아질수록, 여러분은 더 많은 숭고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P193, 예술의 목표는 그 대상에 있어서의 완벽성이다.

P205, 두려움과 욕망에 의해
위협을 당할 때에는
자아를 놓아 버려라.

P207, 종교는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방법과 수단을 가르친다.

P210, 그 의식적 측면만 보더라도 공산주의는 종교로서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으며, 더군다나 그 특성 자체가 성서로부터 비롯됐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는 선이 있고 또 악이 있으며, 우리는 선을 위해 싸우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모두가 공산주의자가 되어 올바르게 되리라는 것이다.

P215, 지옥이란 여러분의 삶의 경험의 구체화이며 여러분이 집착하는 곳, 바로 황무지다.

P216, 기쁨이 있는 장소를 찾으라.
그러면 기쁨이 고통을 태워 버릴 것이다.

P219, 영웅의 여정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이다. 즉 여러분 자신을 찾는 것이다.

P220, 여러분은 아래로 뽀죡한 삼각형을 두 가지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하나는 장애물로, 또 하나는 여러분이 향상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말이다.

P222,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노력해야 할 일은 바로 의식을 확장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과 사랑이 보다 더 크고 더 큰 지평을 얻게 하는 것이다.

P228, 회개란 여러분이 그 죄츨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진정으로, 진정으로 뉘우치는 것을 말한다.

P230, 여러분의 자신의 삶에
권위자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성숙하게 된다.

P231, 여러분이 숭배하는 신이
여러분에게 어울리는 신이다.

P232, 부족에게 신들은
힘을 의인화한 것이었다.
나중에 가서는,
그것들이 힘의 원천이 되었다.

이 세계의 모든 신들은
힘이 아니라 은유다.

P236, 여러분이 만약 세상 속에 거하는 하나님을 보고 싶다면, 바로 인간 속에서 찾으면 된다.
-하나님에 관한 모든 관념은 이른바 인간 속에 실제로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특성에 관한, 역사적으로 조건화된 이미지일 뿐이니까.

P237, 즉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상상의 존재의 이미지에 투사된 것은 사실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이미지는 사실상 그때그때 인간이 처한 조건이 반영된 거울 속 이미지라는 것이다.

P238, 이 세상에는 초월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있음을 알라. 그러고 나서는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단지 모든 곳에 있는 광휘를 묵도하라.

P239, 교회는 어디까지나 은유적인 사건들을 마치 역사적 사실처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무도 그것을 전혀 믿지 않으므로 교황은 이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P242,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이 세계의 고통과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 와중에 신성한 존재의 광휘를 간파하는 것이다.

P243,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힘,
그가 아버지에게 간 것, 성령,
이 모두는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어떤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할 일이었다.

영웅의 죽음과 부활은
오래된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기를
위한 모델이다.

P247,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

P255, 바울로는 사실 그 젊고 영감에 넘치는 유대인 라바비가 극적으로 피살된 것이야말로 그리스의 교훈극 영웅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연기로 해독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P256, 하지만 그 종교를 포기함으로써, 그 너머로 나아감으로써 얻게 되는 어떤 강력한 힘도 있게 마련이다.
-즉 여러분이 만약 그 상징들의 의미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대신 은유로 읽는 방법을 배운다면

P258,  여러분의 성스러운 공간은
여러분이 자신의 모습을
거듭거듭 찾을 수 있는 장소다.

P259, 내 생각에 성스러운 공간을 고안하는 좋은 방법은 그것을 놀이터로 삼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마치 놀이 같다면, 여러분은 거기 열중하게 된다.

P260, 어른이 되고 나면,
여러분은 자기 삶을 움직이는 힘을
반드시 재발견해야 한다.

P262,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때,
그때부터 일이 시작된다.

P263, 일상적인 삶 가운데에서 여러분은 결코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 성배 성을 방문하려면 여러분은 반드시 성스러운 공간을 가져야만 한다.

P264, 성스러운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징적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즉 영적 삶이 가능하고,
여러분 주위의 만사가
영의 고양을 이야기하는 곳 말이다.

P265, 성스러움이란 주위의 대상과의 은유적 관련성이다.

P265, 성스러운 공간에서는
무슨 일을 하건 간에
그 주위는
은유가 된다.

P266, 성스러운 공간은 초월에 대해 투명한 공간이며, 그러한 공간 안에 있는 만물은 명상을 위한 기반을 제공한다.

P271, 사회의 이상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신비주의자의 길이다.

P274,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신을 죽여야 한다.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모든 고정관념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

P278, 슬픔을 본질이라고 인식하라
시간이 있는 곳에는 슬픔도 있게 마련이니.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없앨 수는 없지만,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는 있다.

P283, "이제 여러분은 불교도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계속해서 명상하십시오. 즉각저거인 깨달음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정신은 천천히 깨달음을 향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방법에만 집착하지는 마십시오. 명상을 하는 중에 여러분의 의식이 확장되고 변화되면, 그때 가서 여러분은 모든 길들이 타당한 길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P288, 진정한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대립자의 쌍들의 너머까지
반드시 나아가야만 한다.

P290, 스리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깨달음을 찾으려는 자라면
마치 머리에 불붙은 사람이
연못을 찾는 것과 같은 간절함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P294, 붓다는 완전한 의식에 대해
눈이 열린 사람을 말한다.

P295, 하지만 여러분이 자기 안의 그리스도의 층위에 있는 스스로에게 도달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기독교인이 아닌 셈이다.

P295, 여러분의 종교는 여러분에게 뭐라고 말하는가?
유대인이나 카톨릭신자가 되는 법을 말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되는 법을 말하는가?

P297,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영을 경험하고
또 영과 의사소통한다.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영 속에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영을 완전히 추구하는 사람은
삶의 목표가 곧 죽음임을 안다.

P299, 심리학적 변화란 이처럼 이전까지만 해도 애써 견뎌 내야 했던 것을 이제는 알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P300, 모든 종교 훈련의 목표는 심리학적 변화다.

P305, 여러분의 힘을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더 낮은 체계에 헌신하도록 한다.

P310, 지혜와 어리석음은
사실상 똑같다.
두 가지 모두 세상의 견해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P320, 남성의 기능은 행동하는 것이다.
여성의 기능은 존재하는 것이다.
여성은 '그것'이다. 여성은 어머니 지구이다.

P329, 문학을 통틀어 여성의 모험을 다룬 작품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여성은 이미 '그것'이며, 여성에게 있어서의 유일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자각하느냐뿐이기 때문이다.

P329, 남성은 반드시 행해야만 한다.
남성은 반드시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의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 길은 곧 고통의 길이다.
여성은 그저 있기만 하면 된다.

P338, 주요한 여성의 힘과 미덕이 바로 공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이기적 고립의 결여, 다시 말해 참여에의 포용이다.

P338, 우리 모두의 존재 기반이기도 한 보편적 공통성에 대한 포용성이 바로 공감이다. 자발적 감정을 인식하고, 포용하고, 나아가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여성의 힘이다.

P342, 그 모두가 사랑일 때,
세상 모두는 반드시 사랑이어야만 한다.
무엇도 방해해서는 안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P346, 마야란
초월을 세계로 전환시키는
힘이다.

P348, 예술의 첫 번째 기능은 내가 일찍이 신화의 첫 번째 기능이라고 명명한 것과 정확히 똑같다. 즉 경험하는 마음으로 하여금 동산 문의 수문장들을 지나쳐 그 안에 위치한 깨달은 삶의 나무까지 데려가는 것이다.

P349, 예술은 곧 변몬의 경험이다.

P351, 삶의 목표는 환희다.
예술은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P358, "예술은 자연과 나란히 하는 조화다.

P358, 예술가의 의도가 '자연과 나란히 하는 조화'를 도모하는 것이라면 그 조화는 여럴분의 내부에 있는 뭔가와 공명하고, 여러분을 심미적으로 심취시키고, 여러분은 그렇게 큰 '아하'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의 기능이란 유형적이고 가시적인 세계의 소진 가능한 것을 열어 젖힘으로써, 그것들을 통해 광휘가 환히 비치게 하는 것이다.

P369, 거기에는 힘을 위한 예술이 있었다. 바로 그것의 배치 자체가 그 예술이었다. 그곳과 다른 모든 사람이 관계하는 방식이 그러했다. 여러분이 설교대 위에 서 보지 않은 한, 여러분은 자신에게 어떤 ㅎ미이 있는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P370, 예술가란 예술 작품을 완성한 사람이지, 단순히 완성하려는 의도를 품었다고 해서 예술가라고 할 수는 없다.

P370, 예술가라는 말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용도는 곧 두 극단으로서, (a) 일에 유능한 사람, (b) 미술 분야의 예술가이다.

P371, 행동에 있어서는 가령 여러분이 의도하는 바가 단순히 행동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유능하게 행동하려는 것인지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

P372, 예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오랜 속담이 있다. "우선 모든 규칙을 배운 다음, 그 규칙을 모두 잊어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규칙들이 순수한 행동 속으로 녹아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P374, 창의적 행동은
뭔가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산출하는 것이다.

P374, 예술가가 되려고 시도하면서도, 그 기예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결코 예술가가 될 수 없다.

P376, 춤이란
생명 그 자체의
지고한 상징이다.

P377, 예술은
우리를 스스로의 얽힘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한 쌍의 날개다.

P378, 성스러운 춤은 신들을 위한 것이지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니다.

P379, 신들의 힘은 자연 속에 있는, 그리고 여러분의 본성 속에 있는 힘이 의인화된 것이다. 여러분이 그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 여러분은 놀이를 하게 된다. 이것이 예술 작품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사실 예배이기 때문이다.

P381, 승진을 받아들이지 마라. 기본 수입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위에 더 많은 무더기를 얹어 놓지는 마라. 왜냐하면 여러분은 자신의 직업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작업에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P382, 이는 마치 훈련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여러분은 훈련에 돌입할때 시간을 설정해 놓으며, 그것은 거룩한 시간이다. 여러분의 예술에 대해서도 똑같이 해야 한다. 즉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을 여러분의 예술에 바치고, 그것을 시종일관 지켜야 한다.

P383, 글쓰기에 있어서는
일단 나오는 말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말이 나오도록 내버려 둬라.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
하는 비판적 요소는 그냥 놓아 버려라.

P385, 우선 글을 쓰도록 하라.
비평가는 잊고 그저 쓰기만 하라.
비판적 요소를 끌어안고 문장을 다듬는 것은
그다음에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P385, 여러분의 주장에 대해 공감할 만한 사람을 떠올린 다음,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라. 특정한 사람을 마음에 둔다는 것은 더 이상의 관객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기 전까지는 크나큰 촉진제가 된다.

P390, "명성이란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명성의 불빛은 빨리 지나가게 마련이어서, 어떤 사람은 3분 동안 그 속에 있을 수 있고, 또 30분 동안 있을 수도 있고, 또 전혀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성이란 예술가들의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상업예술가들만 그런 말을 한다.

P390, 영적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여러분은 세속적인 것도 얕보지 못할 것이다.

P397, 내가 아는 예술가치고 돈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돈을 추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다른 어딘가에 있었다.

P399, 따라서 우리는 성스러운 공간을 예술로 가득 채워야 한다.

P402, 여러분이 만약
선과 악을 구분할 경우,
여러분은 예술을 잃는 셈이다.

예술은 도덕 너머로 나아간다.

여러분의 공감의 범위가
곧 여러분의 예술의 범위다.

P403, 조이스의 비법은 어디에서나 상징을 보는 것이다.

P404, 일단 여러분이 상징을 이해하게 되면,
여러분 역시 어디에서나 상징을 볼 수 있으리라.

P404, 신들의 현시는 편재하고 있건만,
우리의 눈이 열리지 않아 못 볼 뿐이다.

상징은 우리의 눈을 열어 준다.

P405, 때로는 상징조차도 우리의 눈을
열어 주지 않고, 오히려 닫아 버린다.

우리가 상징을 구체화하면
우리는 거기 집착하게 된다.

P406, 뱀과 달은 모두 옛것에 대해서 죽고,
각자의 그늘을 벗어던지고 다시 태어난다.

P409, 신화의 신들은 우리 주위의 자연 속에 있는
에너지들을 의인화한 것이다.

P411, 겉으로는 다로따로인 듯
보이는 사물들도
근본적으로는 하나에 불과하다.

P413,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

P413,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P415, 귀환은 어디에서나
광휘를 목격하는 것이다.

P420, 신화의 첫 번째 기능은
여러분이 있는 장소를 신성화하는 것이다.

P421, 새로운 신화는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신화는 일종의 시다.

P422, 또 인류에게 말한다. 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마라
모든 이를 알고 싶은 나는 신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다.


P425, 여러분이 모든 것을 원한다면,
신들은 그것을 주리라.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P426, 새로운 신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주관적 의미'에서 보자면 오래되고, 영원하고, 끊임없는 신화이ㅕ, 기억되는 과거나 투사되는 미래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현재의 견지에서 시적으로 갱신되는 신화이다. 이는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즉 특정한 '민족들'의 아첨에 호소하는 것이 아닐, 개인들이 스스로에 대해 지식을 각성할 수 있게 호소하는 신화인 것이다. 즉 개인이 스스로를 이 아름다운 행성 표면의 특정한 장소를 얻기 위해 싸우는 자아로서뿐만 아니라 거대한 정신의 중심으로서 각성하도록 호소하는 신화인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
들어가는 말.
캠벨 사상의 정수, 그 아름다운 내면과의 마주침

도입의 단계
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의식의 첫 번째 단계
현세에서의 삶

의식의 두 번째 단계
깨달음을 향한 길

의식의 세 번째 단계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

이 책은 기존 캠벨의 강의를 들었던 다이앤 K. 오스본의 필기 내용과 기존 캠벨 저서의 인용문을 발췌한 일종의 선집이다. 따라서 이 책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캠벨의 사상과 그 작가관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받았던 부분은 캠벨의 폭넓은 지식의 양이다. 수많은 신화와 인생의 다양한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모든 것에 확고한 주관을 가질 수 있는 것 역시 그의 방대한 지식 때문일 것이다.

책의 목차는 전체적인 책의 구성과 큰 연관을 가지기 힘들었다. 책의 목차처럼 내용이 점점 의식의 확장에 focus를 맞춘 것 같지는 않다. 신화에 대한 개론서적인 특징과 캠벨의 이야기를 엮여서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러한 특징이 반영된 것 같다. 책의 목차가 시선을 충분히 끌었긴 하지만 실제 내용이 책의 목차와 큰 관련이 없던 것은 아쉼움이 남는다.

책을 읽고 가장 궁금했던 것은 캠벨이 2013년의 우리나라 기독교, 혹은 종교를 보고서 무슨 말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다. <신화와 인생>에서 그는 어떤 종교도 우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크리스천 집안에서 자랐지만 책을 집필하는 무렵에는 어떤 종교에도 몸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그가 현재의 종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너무나 궁금하고, 또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의 문제점에 대해 좋은 해결책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살아 있다면 말이다.

좋았던 장절
예술가 단상.
예술가에 대한 그의 생각에 대해 많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예술가가 되어 보겠다고 겉멋만 들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예술가는 예술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 성취를 이룬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더욱 노력했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과 함께 아직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지금은 하루하루 밥벌이에 지친 직장인이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예술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천복을 따르는 삶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못한 것. 캠벨의 책에서 다시 한번 읽으니 깨달음이 생겼다. 또 '천복'이라는 좋은 단어를 알게 된 것도 기쁘다. 지금까지 모호하게 '하고 싶은 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천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더욱 직관적이며 쉽게 발음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웠던 장절
책 하나를 관통하는 흐름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 책의 구성 자체가 작가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책이 아니라 그의 기존 책들과 강의자료등을 편집한 일종의 선집이기 때문이다. 알고 있었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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