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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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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0일 16시 15분 등록

,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10년마다 자신의 삶을 결산하는 자아경영 프로젝트-

(구본형, Humanist, 2004.03.29)

 

1. ‘깊고 푸른 삶(저자에 대하여)

 

■ 구본형

 

구본형.JPG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프롤로그

 

□ 이 책은 놀이며 유희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고 욕망에 대한 절제다. 못 가본 삶에 대한 질투. 그 동안 배운 학습의 노트며 읽었던 책들의 주석이다. 자전적 소설이고 소설적 자전이다. 지나간 삶에 대한 파괴고, 앞으로 살 삶에 대한 창조다. 나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보려는 실험이다. (p. 12)

 

□ 나는 조직이 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 67)

 

□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방황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메이 사턴 (may sarton), ‘나 이제 내가 되었네중에서-

 

Ü 이것은 깨달음이다.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쫄지 않을 만큼 자신을 잘 알아 믿는 것이다. 자유로 가는 첫 번째 교두보다.

 

그저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애쓰다 아파트 한 채를 남기고 일흔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라고 기록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p. 102)

 

□ 이탁오라는 사람이 한 말,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p. 108)

 

Ü 내 친구 구본형~~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속에 서식하는 그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들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p. 138)

 

Ü 어찌 이리 공명할까.

 

□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p. 140)

 

□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곽박의 시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 라고 했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p. 143)

 

□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바보들이기도 하다. 모든 꽃들은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난다. (p. 144)

 

Ü 의연하게, 두려워하지 않고, 피어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이다.

 

□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가 나는 스며든다. 초록빛 풀밭에, 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물살에 나는 깃든다, 죽지 않는 모든 것에. 나는 곧 생명이므로.’

 

Ü 온갖 것에 스며드셨기를

 

□ 나무와 나는 어쩌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나는 땅에서 하늘로 간다. 몸이 땅에서 나와 영혼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듯, 땅을 움켜쥐고 온몸을 던져 하늘을 향해 자란다. 나의 모든 힘은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온다. 어두운 곳은 언제나 비옥한 토지였다. 나의 내면은 땅과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렵고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가치가 뒤섞여 있고 뜨거운 용암으로 가득하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 무궁무진한 자산은 땅이다. 나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p. 147)

 

Ü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 무궁무진한 자산은 내 자신이다.

 

죽음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나무의 멋이다. 가장 장엄한 문명의 단편이 장례이듯이 낙엽은 죽음조차 아름다운 삶의 과정으로 창조해낸다. 나무는 해마다 한 해의 삶을 기록한다. 한 겹의 나이만큼 줄기에 그 흔적을 남기고 두꺼워지고 키가 더 자라게 된다. 나무는 매년 죽는다. 이 상징적 의식이 나무가 자라는 방법이다. (p. 149)

 

Ü 나무의 삶을 이처럼 통찰한 이도 드물지 않겠는가.

 

□ 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고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며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로댕의 말을 잊지 마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어떤 것은 실종되고 어떤 것은 시멘트 같은 마음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아주 많은 낭비를 즐긴다. 이것이 자연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이유다. 따라서 1년에 적어도 한 권은 책을 써라. 이것이 열심히 일을 한 기준이다. 세상을 향해 많은 시그널을 보내야 누군가 대답하게 된다.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늘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나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육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내라. (P. 153~154)

 

Ü 1년에 책 한 권, 열심히 일한 기준. 이 독특한 기준을 가지고 살게 된다면살게 되면좋을 것이다. 나는 이리 살 수 있을까. 이리 살 수 있나? 나에게도 좋은 삶이오는가.

 

섬유질이 형성되고 모든 기관에 생명이 부여되는 순간에 나타난 최초의 맥박 그 자체가 죽음의 근원이다. 신체조직들이 채 형성되기도 전에 이미 그 조직들이 들어가 묻힐 무덤이 마련되는 것이다.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또한 생명은 죽음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죽음 없이는 생명도 없다. 마치 변하지 않는 것 없이는 변하는 것도 없고 어두움 없이는 밝음도 없는 것과 같다. 어두움은 늘 생명이 자신을 준비하는 참으로 비옥한 토양이다.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썩는 것들만이 자신을 땅에 버릴 수 있다. 땅에 버려져야 무엇이 될 수 있다.

 

1980년대 말 호비츠 (Robert H. Horvitz)는 세포의 죽음은 성장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끝내도록 내장된 프로그램 때문이라고 가정했다. 삶을 해체시킬 프로그램, 즉 자살 프로그램 말이다. 그것은 세포가 손쓸 수 없이 많아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좋은 브레이크는 좋은 엑셀러레이터만큼 중요한 것이다.

 

모든 세포의 1차적 꿈은 두 개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p. 162~163)

 

□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무르익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또 다른 성장을 이루어야 할 바로 그때가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쓴 후에 남의 것을 탐할 수는 없겠지요. (p. 164)

 

Ü 제퍼슨이 존 애덤스에게 보낸 편지 속에 우리가 죽어야 할 이유를 설명한 말이다. 쿠마라스와미의 말과 일맥 한다.

 

□ 철학은 의학을 선도한다. 생각이 늘 기술을 선도한다. (p. 164)

 

□ 문명은 인류가 여성화되는 과정이었다. 문명의 역사 대부분의 주인공은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화려하고 빛나는 존재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지면 윌 듀런트의 지적대로 남성은 자궁, 즉 인간이라는 종족의 주류인 여성에게 조공을 바치는 존재였다. 여자는 가축을 길들였고 마지막으로 남자를 길들였다. (p. 165)

 

Ü 내 피에 흐르는 남성, 아무 때나 음식을 탐하고 성욕을 발산하고 싸움질 해대는 남성을 여성이 억압한다는 이야기인가. 나에게 남성이 우세한가 여성이 우세한가. 나는 여성이 우세한 문명화된 남성인가. 여성은 나에게 얼만큼 존재하는가. 누군가 나를 남자라고 하는 말하는 것은 옳은가. 맞는 말인가. 내가 남자고 너는 여자라는 것은 진리인가. 우리가 말하는 진리라 하는 것은 이토록 허망하고 근거 없다.

 

□ 부모는 최초로 만나는 문명이다. 거역하면 패륜이 된다. 학교와 종교는 그 다음에 만나는 문명이다. 사회적 가치관을 만들어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여론, 그리고 법은 문명이 정한 행동을 넘어서는 것을 제약하는 통제선이다. 이 선은 대체로 굵고 선명하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모호한 구멍이 뚫려 있기도 하고 간혹 희미한 곳도 있다. 인생은 그 속에서 이루어진다. (p. 166)

 

□ 그러므로 여전히 욕심스러운 나이 듦은 과다한 욕망에 차 여전히 두 개가 되고 싶은 세포, 즉 암과 같다. 생명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p. 168)

 

□ 나이 먹음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릴케처럼 말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신이여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삶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삶에 걸맞은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p. 177)

 

Ü 그리하여 당신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길에서

 

□ 나는 지금 과거의 한 사건과 미래의 한 사건 사이에 있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물론 미래의 일은 반드시 일어날지 아닐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이 매우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는 추억이고 하나는 꿈이다.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마흔아홉이 되어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니 실제로 일어난 것과 상상 속에 존재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모두 한 줌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30년 혹은 40년을 더 산들 그때 돌아보면 역시 인생은 한 줌의 꿈에 불과할 것이다. 때로는 즐거움으로 때로는 막막한 슬픔으로 남았던 그 사건들이 다 지나가 흩어진 꽃잎 같은 꿈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직 살 시간이 남아 있을 때는 과거의 일들이 추억으로 현실과 이어지는 원인으로 남아 있다고 인식하겠지만 마지막 숨은 이런 모든 것들 역시 한 순간에 일어난 찰나의 것들임을 증명해 줄 것이다. 원인도 결과도 없이, 느닷없는 장면들의 중첩으로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든 일들 역시 과거만큼 분명한 꿈이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비현실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일 뿐이다. 나는 꿈을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은 꿈꾸었기 때문에 언젠가 그 절실함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은 아니다. 열심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성공학자들의 말을 나는 조롱한다. (p. 182)

 

□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과거시제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과거시제로 쓰는 순간 내게 이미 일어난 일이 된다. (p. 184)

 

내 인생의 결말, 그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꿈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꿈꾸지 못한 것들만이 내 인생이 아니다. 꿈꾸지 못한 것 가운데 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된다.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바라는 그 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회의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 꿈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다만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일을 지금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p. 185~186)

 

Ü 그가 바라본 꿈에 대한 이 혜안으로 여러 사람이 그에게 부채를 안고 있다. 그의 꿈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그들이다. 나도 그들 중 하나겠지.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하나는 이미 깨어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꿀 꿈이다. 둘 다 지금이라는 현실을 속박한다. 혹은 지금을 구원해준다. 때때로 그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p. 186)

 

□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p. 187)

 

Ü 다음 10년을 상상하자. 즐겁게 10가지 장면들과 함께

 

□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 190)

 

□ 걸어온 것에도 길은 없고

걸어야 할 것에도 길은 없다.

그렇지만

걸어온 것과 걸어야 할 것 없이는

길 또한 없다. –나가르주나 (대승불교의 스님)- (p. 191)

 

Ü 사는 행위 자체가 길을 만드는 일이다.

 

□ 그러나 정말 내 인생은 그 책들이 아니라 그 책에서 표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내 하루하루였다.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이것이 정말 하루하루의 진짜 인생이었다. (p. 192)

 

□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먹고 살 수도 있지만, 정갈하고 아름답게 먹고 살 수도 있다. 먹고 나면 다 똥이 되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식탁을 차리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p. 193)

 

□ 여든이 되어 물어보자. 삶이 나에게 요구한 것, 즉 내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었을까? (p. 194)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1년에 한 번쯤 흔들의자에 앉아 마치 다 산 것처럼 인생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해 질 수 있다.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p. 196~197)

 

□ 아, 내가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질 내 삶의 발자국이고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꿈과 추억이다. 누구에게나 맞는 객관적인 삶의 의미란 없다. 나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삶, 이 유일무이한 구체성이 바로 내 삶이고 따라서 그 의미 역시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다. (p. 197)

 

□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p. 198)

 

, 공간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터지는 것이 바로 꽃이다. 민감한 시인들은 그래서 꽃 터지는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p. 210)

 

□ 유사한 욕망들로 점령된 밭을 묵정밭이라고 하고 그 밭의 소유자를 게으른 농부라고 말한다. 키우려고 한 것 외에는 모두 잡초다. 이것이 기준이다. 나는 왜 하나의 욕망이 그렇게 중요한지, 동시에 왜 다른 욕망들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지, 뜨거운 날 잡초를 뽑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하나의 욕망가장 나다운 내가 되는 것, 그저 생긴 대로 자라 가장 아름다운 내가 되는 것. 내가 만일 소나무라면 아름다운 소나무로 자라는 것. 만일 느티나무라면 아주 정정한 느티나무가 되는 것. 이것이 내 욕망이었다. (p. 215)

 

□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아니다.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가! (p. 216)

 

□ 벚꽃의 상징성과 의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p. 218)

 

Ü 산화의 사회적 상징성에 대해 강유원은 주제라는 책을 통해 잘 표현해 놓았다. P. 163에 있다.

 

학습

 

□ 책을 통해서만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책을 짓눌러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일당들. 머리를 종이 위에 처박고 있는 일당들. 부디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시라. –니체- (p. 229)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칼릴 지브란- (p. 230)

 

Ü 두려움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다.

 

□ 문화는 한가한 사람들의 작품이다.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고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먹이를 나르는 개미처럼 한없이 움직이게 한다. 경제라는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이 된 것처럼 낮도 밤도 없이 움직이기만 한다. 똑같이. 이 지겨운 반복적 소모를 일한다라고 부른다. 니체는 노동은 최고의 경찰이라고 말했다. (p. 235)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p. 240)

 

Ü 그것이 교육이다.

 

□ 나는 살고 싶다. 삶만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p. 242)

 

Ü 인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크고 훌륭한 프로젝트다.

 

□ 학습은 어느 순간 이질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삶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고 소설이 아니고 철학이 아니고 경영도 아니고 이윽고 삶도 아니다. (p. 243)

 

□ 이성의 작은 촛불을 끄지 않고는 대우주의 별빛을 볼 수 없다. 가까운 작은 산이 먼 큰 산을 가리고 있듯이 작은 지식은 늘 큰 지혜를 가리고 있다. ‘어둠이 가장 짙을 때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 –노자-

 

□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과 나의 것을 접속하여 사생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들뢰즈의 취미였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니체의 뒤를 덮쳐 사생아를 만들어내려고 하니까 어느새 니체가 자신을 덮치더라.’고 했다. 그는 철학이란 개념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p. 246~247)

 

Ü 나만의 개념, 세상을 보는 나만의 시선, 방식, 관점. 생긴 대로 살기 위한 첫 걸음.

 

삶을 살면서 삶 속에 녹아버렸으면탐닉하고 오직 삶이 되어 삶 속에서 노닐 수 있었으면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 마침내 삶이 되었으면. (p. 249)

 

□ 내게 배움이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혹은 자기 경영은 가능할까? (p. 249)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려면, 내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어야 한다. (p. 251)

 

Ü 살아지는 삶은 나 이외의 어떤 사람에게도 의미를 줄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의미 없는 삶은 스스로에게도 의미 없는 삶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살아지는 삶을 끊어내야 함!!!

 

□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p. 254)

 

도전이란 매번 다른 실패를 딛고 나일 수밖에 없는 길로 운명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p. 256)

 

Ü 도전에 대한 정의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p. 263)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요건이다. (p. 263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이다. (p. 264)

 

□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믿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모방의 또 하나의 요령은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다.’라는 노회한 충고를 기억하는 것이다. 많이 보고 많이 감동하는 것은 사업이든 글쓰기든 훌륭한 성과를 내기 위한 근면한 배움의 요결이다. (p. 266)

 

□ 한 사회가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그 안에 키워내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훌륭한 사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p. 267)

 

Ü 사는 게 다 똑같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각자의 삶의 방식의 프로세스가 유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내면의 감정, 감동, 생각, 사고, 사유, 관점, 사건, 시선, 느낌은 모두 다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p. 269)

 

□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 (p. 271)

 

□ 어느 날 길거리에서 광약을 파는 시커먼 아저씨가 주먹 속에 든 화투짝의 패를 눈 깜짝할 사이에 바꾸어 놓을 때 구경꾼들은 놀랐다. 그리고 그 비결을 배우려고 했다. 그 비법을 알고 나면 우리는 이내 실망한다. 그 마술이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 광약 파는 아저씨처럼 멋지게 해내려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 지겨운 연습, 그것이 내 목을 조른다. 어디에도 마술같이, 노력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을 바꾸어주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p. 275)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유일한 자만이 최고로서 칭송 받을 자격이 있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한 길을 가기에도 숨이 차다. 다른 것들을 넘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일만 해도 저녁에 이미 탈진한다.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길은 신의 쪽지, 즉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만이 유일함의 원천이다. 자신을 활용하지 않고는 유일함에 도달할 수 없다.

 

스스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구곡양장의 길을 따라 여러 번 삼고초려의 극진함을 보여야 한다. 인물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만에 하나 자기 스스로를 얻을 수 있다면 천하에 자신을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다. (p. 277)

 

Ü 삶의 진실, 자신을 찾는 과정, 자신을 찾기 위한 삼고초려.

 

□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p. 278)

 

□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분노를 자극했다. 나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분노를 키웠다. (p.279)

 

□ 나는 말보다는 문가가 지니는 조용한 설득력을 더 좋아했다. 그들이 남겨놓은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를 즐기곤 했다. 나는 그들을 읽는다기 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사유를 기초로 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좋았다. (p. 280)

 

Ü 이건 들뢰즈가 철학 하는 방법이다. 한 사람을 잡아 겁탈하듯 자신을 재생산해 내는 방법 말이다. 비록 니체에게는 실패한 방법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는 영웅, 자기 자신의 영웅은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지키고 이끌어간다.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영웅, 이들이 바로 유일한 자들이다. 자신의 소우주를 가지고 있는 작은 왕자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우리는 유일함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비범한 사람으로 자신을 안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위대한 이야기로 전환된다. (p. 281)

 

일단 숙달하면 일탈한다. 불온한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p. 281)

 

Ü 이 쉽지 않은 그러나 삶이 숨겨놓은 유일한 재미인 일탈을 즐기는 것.

 

□ 내가 쓰는 글은 짧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감동이라는 껍질에 싸여 있는 씨앗이다. 그것은 적대감이라는 위액과 소화액에 녹아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발아할 수 있는 장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피와 영혼과 정신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환상과 내면의 열정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내 글은 강렬한 유혹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생각하고 버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또 모든 생각을 한다. (p. 283)

 

Ü 글 읽고 쓰는 자의 일.

 

□ 자신의 목에 감긴 밧줄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당기는 행위가 쏟아냄이 들어옴을 초과하는 지식 유출을 방관하는 행위다. (p. 284)

 

Ü 꾸준히 배우고 멈춤 없이 익혀야 한다. 과거의 지식은 늘 현재에 쓰이거나 혹은 무용화 됨으로써 폐기된다.

 

□ 다양한 관점의 논리적 반격이나 감정적 적대감의 방탄 벽을 뚫고 상대를 설득시킨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p. 289)

 

Ü ,, 그 표현 참.

 

□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아요. 내 음악으로 관객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 그런 허영 없이는 무엇으로 움직이겠어요? 팬들의 사랑이 없으면 끝이에요. 부인할 수 없어요. 관객의 갈채를 받지 못하는 나를 상상할 수 없어요. 아티스트들은 그래서 항상 젊어야 하고 섹시해야 하고 신선해야 해요. 시들지 않는 에버그린 같은 것이지요. 무대에 설 때마다 떨리고 흥분돼요. 연애하는 것과 비슷해요. 관객과의 데이트 말이에요. 거기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무대에 서면 관객들이 다 보여요. 넥타이 색깔까지 다 보여요. 누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싫어요. 귀 뿐만 아니라 눈까지 나를 응시해 주기를 바라요. 무대에서만 나는 살아 있어요. (p. 293)

 

Ü 성악가 조수미의 말이다.

 

□ 내가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만 깨닫게 돼도 우리는 금방 불행해진다.

 

변화는 달콤한 과정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 속에는 늘 피의 냄새가 난다. (p. 299)

 

Ü 여기 김수영의 시가 하나 있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리지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이 글은 문득 장자의 붕새를 떠올리게 한다. 자유에 대한 조건의 매커니즘.

 

□ 정신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새롭게 닦아놓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인간은 모두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밀리면 정신적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다른 것을 잘하지 못할 때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는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때 자신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p. 303)

 

□ 환한 대낮에 자신의 성기를 온 세상에 활짝 펼쳐 보인다. 이 대담함이 식물의 생존과 번영의 비법이다. (p. 305)

 

Ü 예리한 관찰이다.

 

□ 그 날 잠에서 깨어나자 아름다운 충동이 거부할 수 없이 나를 덮쳤다.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임무는 나를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그것이 물결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이세상에서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창조는 바로 그 물결처럼 내 발로 일어서는 것이었다. 나의 하루, 나의 역사, 이것이 바로 그 물결이었다. 이제 누구도 내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계획이었다.

내 일을 찾을 것이고 매일 그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햇빛같이 눈부신 생각이었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이 생각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날 나는 그 무수한 반복 속에서 차마 실천하지 못했던 그 특별한 삶을 획책했다. 그리고 그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부드러운 소리를 들었다. (p. 310)

 

□ 나로부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삶을 방기한 것이다.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며 유일한 미래였다. (p. 314)

 

찾아본다 모든 것은 실험이다. 나를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험이고 탐험이다. (p. 315)

 

□ 어느 하루도 무의미한 하루는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시도 자체가 삶이기 때문이다. (p. 316)

 

Ü 천 번의 시도를 하더라도 천 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

 

□ 지칠 때까지 일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에 대해 늘 아니오라고 말할 자세가 되어 있다. 일은 늘 내일 해도 좋은 것이다. 일이란 놓치면 다시 튀어오르는 공 같은 것이다. 나는 삶이 일종의 예술이길 바란다. 나의 일상은 안정과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p. 317)

 

현실이란 결국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라. 나의 의견,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라. (p. 319)

 

□ 비잔티움 제국의 시작. (p. 319~321)

 

Ü 너무 길어 이 묘사를 모두 옮겨 적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묘사를 스승으로부터 이스탄불 시장 뒷길 빵집 앞의 작은 아주 작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에스프레쏘를 나누어 마시며 들었다. 그 장면과 그의 음성이 그립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이야기를 모두 했다.

재용아, 이 도시가 어떻게 건설 됐는지 아니? 들어봐그리고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몰락하는 로마 대신 새로운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할 때의 장면을 이야기했다. 그립다.

 

이렇게 늘 그립기만 할 거다. 남들에게 피곤하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고 내가 피곤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남들을 피해 다니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렇게 조심 조심 살아서 나에게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그렇게 사는 것이 더 피곤하게 사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그런 것이냐. 이제 부대낄 때가 되지 않았더냐. 생각해 보아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든든한 밥그릇 하나 챙겨두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 쩨쩨함의 끝을 묻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 지 물어보고 싶었다. (p. 321)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p. 324)

 

Ü 이 통렬한 삶에 대한 관찰을 보아라.

 

□ 돈이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을 타락이라 부른다. (p. 324)

 

Ü 아이와 노는 게 귀찮아 몇 만원씩 하는 장난감을 사주고야 마는 나는 이미 아비의 자격을 잃어버린 타락한 부모다.

 

□ 언젠가 한번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스스로 설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깨끗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햇빛 가득한 산을 넘고 들을 건너 아름다운 인생 하나를 건설해야 했다. 아름다운 그 날 하루를 내 삶의 국경일로 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p. 325)

 

3. ‘(내가 저자라면)

 

봄에 그를 보내고 여름에 이르렀다. 짜증스러운 더위가 전에 없이 부담이다. 나는 쓰지 않았고 읽지 않았다. 그가 있었다면 매일 썼을 것이고 매일 읽어 내렸을 내가 아니었겠는가. 이런 나의 모습이 무지하게 불만이다. 지난 4월 그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자리에 기어코 내 한자리 앉아 보고자 서울 길에 올랐다. 그 길에서 나는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었다. 이후 한 동안 책을 쳐다 보지 않다가 얼마 전부터 이 책을 펴고 밑 줄 그은 부분을 다시 받아 적기 시작했다. 지난하고 쓰레기 같은 날들을 그냥 흘러 보내는 것이 삶의 한 부분을 죽여버리는 어마어마한 일임을 다시 그를 통해 깨달아 보고자 했다. 그러나 없었다. 이제 나는 그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 배워서도 안 된다. 이제는 오로지 나라는 인간에게 집착했다가 외면했다가 연구했다가 놀다가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야 하는 숙제를 부여 받았을 뿐이다. 그가 주었다. 아니다 내가 스스로 부여 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그의 가치가 있다. 인류 최고의 이 질문을 부여하는 법을 나는 그로 인해 배웠다. 이 배움은 일동만수의 경락을 짚어 내는 그의 통찰에 힘입은 바 크다.

 

메마른 글의 논조를 태연하게 유지하는 것이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이제는 촌스럽게 울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리움과 슬픔과 아픔 그 언저리에 아직 나는 있다. 조금은 더 징징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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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1 06:53:23 *.153.23.18

오! 재용의 빨간 리뷰! 아이 미스 유

 

신화 읽는 시간

역사 읽는 시간

문학 읽는 시간 전에 우리는

그를 읽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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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1 09:55:17 *.51.145.193

새삼 부끄럽습니다. 두어 달을 줄창 허송하다가 이제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책과 글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덕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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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1 10:50:02 *.175.250.219

나도 반갑다. 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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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1 11:15:43 *.175.250.219

재용아...조금 더 울어도 되고 징징거려도 된다. 너는 원래 촌스럽다.

아닌척 하지말고....

 

아이와 노는 것이 귀챦아서 몇만원하는 장난감을 사주는 아빠. 괜챦다.

장난감 사주고 싶어도 몇만원짜리 못사주는 아빠도 있는데...뭘 그러냐!!!

총회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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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2 11:00:44 *.51.145.193

맞아요~ 돈없어서 타락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아직 저는 자기검열의 차원이 저급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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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2 07:48:25 *.152.83.4

이 책을 첨 읽었을 때가 2004년 봄이 지나가는 여름초입이었을겁니다.

 

<마흔의 나이에 세상과 부딪쳐 실패하고 도망가는 내 삶이 초라해>

많이 울었지요...

그 공명이 지금 <자로>가 되게 만든 것 같아요.

 

때묻은 그 책은 가장 아끼는 분에게 주었어요.

그분도 그 때의 저처럼, 지금의 그대처럼 다시 서고 싶어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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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2 11:03:15 *.51.145.193

감사합니다. 이 책은 제가 도망치려 할 때 다시 붙잡아 줄 것으로 믿습니다.

언젠가 자로님의 '세상과 부딪친 일'을 밤새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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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3 23:03:48 *.148.183.178

머가 언젠가냐 재용아 담주 9기 수업 마치고 마실가서 밥먹고 술마시고 실컷 이야기 하거라.

나도 너 반갑고 나도 저 책 한번 읽어 봐야 겠다.  담주 토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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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3 21:52:23 *.34.227.139

죽음으로 우리의 영혼 뿌리에까지 더 깊이 스며들었기에 이제 우리는 더 우뚝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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