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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6일 02시 14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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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

 

조셉 캠벨은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여러나라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신화를 활용하여 인간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려는 그의 노력 때문이였다. 그래서 그의 책들은 단순히 신화의 이야기에만 focus를 두지 않는다. 그는 신화에 나타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들에게 모험을 떠나라고 말한다. 승리의 여정을 도전하게 하는 힘을 준다.

 

그는 1904, 미국 뉴욕의 화이트플레인스에서 태어난다. 전쟁으로 3,00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딱 10년 전이다. 그의 집안은 엄격한 카톨릭 집안이였다. 어린 시절 그는 카톨릭 집안의 문화에서 배우고 자란다. 하지만 그는 신학자가 되지 않았다. 아마 캠벨이 신학자가 되지 않은 것은 타고난 비판적 사고와 호기심 때문이였을 것이다. 내가 캠벨이 말하는 신화와 종교에 대해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은 이때문이였다. 그는 극단에 치우지치 않는다. 카톨릭 문화 안에서 종교에 대하여 충분히 비판적 사고를 했고, 또한 문화 안에서 종교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는 어둠이다. 어둠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래서 캠벨은 말한다. 신화와 종교는 은유로 이루어져 있다.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충격적이다. 내가 캠벨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의 소리를 들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캠벨은 여러나라의 방대한 신화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특히 융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정신분석학적인 차원에서 신화를 이해하는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그가 깨달은 것은 여러 나라의 신화에서 나타나는 공통점, 그리고 그 공통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다가 세기를 대표하는 신화학자가 되었던 것일까? 캠벨은 어린 시절 인디언 민담에 큰 감명을 받는다. 그가 자주가는 뉴욕 맨허튼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본 인디언 토템 기둥과 가면의 영향이였다. 그는 그 조형물의 아우라에 감동 받게 되고 그 쪽 방면의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적인 것에 대한 충분한 내적 동기가 있었다. 그의 집안과 문화의 영향이였다. 인디언 조형물은 준비가 되어있던 어린 캠벨을 깨운 것이다. 어린 시절 본 포스터에 감동받아 현대 무용의 대가가 된 마사 그레이엄처럼 그 역시 그 시점을 계기로 신화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다. 영문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인디언 민담과 아서왕의 주제들이 일치함을 알게 되고 이때부터 세계 전역의 신화들을 두루 공부하게 된다. 1927,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와 뮌헨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한다. 그가 공부했던 다른 나라의 언어들은 다른나라의 신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2년의 수료과정을 끝내고 1929, 콜롬비아 대학으로 돌아온 그는 기존에 전공했던 영문학 대신 인도철학과 미술쪽으로 공부한다. 하지만 학교의 반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가 대공항에 빠지게 된다. 하루아침에 공장이 문을 닥고 돈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지금까지 정답이라고 믿었던 자유주의가 한순간에 재앙이 되어 버린 것이다.

 

캠벨은 이 기간에 숲으로 들어간다. 구본형의 <깊은 인생>에서 보면 캠벨은 이 기간동안 다양한 책을 읽으며 자신을 신화학자로 명성을 높이는 방대한 지식을 쌓는 기간이라고 말한다. 10년의 수련과정을 5년만에 끝마쳐 버릴 정도록 집요하고 집중력 있는 훈련을 한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그와 관련된 다른 책들을 모조리 읽는 독서법은 독서에 대해 하나의 큰 깨우침을 준다. 캠벨은 이러한 독서 방법을 통해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즘 캘리포니아에서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한다. 에드 리켓츠를 통해 생물학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우리 인류의 공통점, 우리의 기원을 타고 올라가는 이야기, 다윈의 진화론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도를 한다. 그가 왜 그렇게 신화들의 공통점. 그가 말하는 인류 날것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캠벨은 문화와 환경으로 다른 삶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신화에 대해 공부한다. 그리고 인류의 공통 요소를 신화 이야기에서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처음이 되는 그 시점의 인류의 근원을 신화를 통해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문화와 인종으로 나누어지기 전의 우리 공통의 조상의 이야기. 즉 신화는 인류의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1934, 뉴욕의 명문 여대인 사라 로렌스 대학의 문학 담당 교수로 임명되었고 38년 동안 재직한다. 이 기간동안 신화의 영웅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의 강의록등을 다룬 <신화와 인생>을 보면 그의 강의는 신화 이야기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꿈을 줄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천복을 따르는 삶을 강조한 것 역시 이것 때문이였으리라. 그리고 1938년에는 제자였던 현대무용가 진 에드먼과 결혼한다. 그리고 그 후에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949>, <신의 가면, 1959~1968, 4부작>, <신화와 함께 하는 삶, 1972>, <신화의 이미지, 1974>, <세계 신화지도, 1983~1989>등의 책을 출간하여 대중에게 신화를 알기 쉽게 전파한다.

 

하와이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자신의 의식의 장소로 두었던 것을 자랑했던 캠벨은 1987 10 3, 하와이 호놀루루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의 아내는 조지 캠벨 제단을 설립하고 그의 유고와 대담 강의록 등을 정리하고 출간하면서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그의 신화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은 여러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단순한 신화학자가 아닌 위대한 신화학자로 우리들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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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신화는 변화 무쌍한 듯하지만 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의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14,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인간의 신화에는 끊임없이 살이 붙어왔고, 이러한 신화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살아있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14, 시간을 초월한 이 환상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의 어느 심연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신화는 왜 어느 곳에서 채집된 것이든 그 다양한 의상 아래로는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까? 신화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15, 정신분석학자들의 대담하고도 획기적인 저술은 신화학도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자료하다. … 프로이트와 융과 그 후계자들은 영웅과 신화의 행적이 현대로 계승되었음을 여지없이 증명해 내었기 때문이다.

 

19,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혹은 벌건 대낮에, 아니면 정신 착란을 이용하여 갖가지 부질없는 몽상과 기이한 상념과 공포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허상을 마음으로 올려보낸다.

 

23,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29,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다.

 

33,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33, 따라서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 두번째 엄숙한 과업과 행위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재생의 삶에 대해 그가 배운 바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34, 우리는 어둡고 궂은 길을 가야 마침내 평화의 강, 혹은 우리 영혼의 목적지로 통하는 탄탄대로를 발견하게 되는 모양이지요.

 

37, 아무리 맹세하고 서원해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내부의 소명도 외부의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다.

 

3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란 이 얼마나 하찮은 물건인가! 그러나 이나마 없으면 미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 희망도 없는 모험과 다름 없는 것이 아닌가.

 

38,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귕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3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40,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배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게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42, 하늘의 신화가 삶의 발자국을 뒤로 남기고 밤의 문턱에 설 준비가 된 노인의 것이듯, 동화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나라의 것이며, 현실로부터 보호받고 있기는 하나 조만간에 거덜날 운명에 놓여 있다. … 동화, 신화, 그리고 영혼의 신곡에 나오는 해피앤딩은 모순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비극의 초절성으로 읽히어야 한다. … 따라서 이 양자는 양자를 서로 보듬고 서로를 엮는, 단일한 신화적 주제와 경험을 나누는 용어다. 비극과 희극은, 삶을 계시하는 전체성을 본질로 공유하며 죄악과 죽음의 오염으로부터 정화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사랑해야 하는 하강과 상승인 것이다.

 

44,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45,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50, 영웅의 모험은 위에서 말한 핵 단위의 패턴, 다시 말하면,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52, 대게 동화 속의 영웅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소우주적 승리를 거두고, 신화의 영웅은 세계사적, 대우주적 승리를 거두는 게 보통이다. 또 전자는 자신이 압제하던 상대를 이겨내는 데 그치는 반면, 후자는 모험을 통하여 자기가 속한 사회 전체의 소생에 필요한 수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모하멧, 예수, 부처는 위에서 말한 우주적인 영웅

 

53, 저잣거리에 나도는 이야기는 영웅의 행위를 주로 물리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고급 종교에서는 영웅의 행적이 도덕적이어야 한다.

 

54, 우주 발생적 순환은 모든 나라의 신성한 문헌에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고, 그것은 영웅의 모험에 새롭고 흥미로운 전기를 부여한다. … 이런 시작에서 보면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55, 위대한 영웅은 위대한 행적을 통해, 이 다양한 얼굴이 사실은 하나임을 알고, 또 남들에게 알리게 된다.

 

60, 한 문화가 신화 안에서 인간 존재의 면면이나 그 문화의 면면을 키워나갈 때, 그 문화는 상징적인 암시와 함께 싱싱하게 살아난다.

 

62,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르기를, <신에게는 모든 것이 공정하고 선하고, 정당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을 그르다고 하고, 어떤 것은 옳다고 한다>고 했다. … 신화도 위대한 영웅을 위대한 도덕가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미덕 역시, 최고의 직관 앞에서는 케케묵은 훈장의 읊조림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 초월적인 힘은, 이 몯느 것을 통하여 모든 것 안에 사는 자, 모든 것 안에서 훌륭한 자, 모든 것 안에서 우리의 섬김이 타당한 자에게 감득되는 것이다.

 

62,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65, 신화는 비극적인 자세를 신경질적인 것으로, 도덕적인 판단을 근시안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 무자비함은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고통에 의해서는 손상되지 않는 끈질긴 힘의 그림자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언질로 균형을 회복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란 무자비하면서도 공포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 요컨대 제때에 나고 죽는, 자기 중심적이며 투쟁하는 자아를 응시하는 탁월한 정체 불명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71,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는 극히 드문 것이긴 하지만 뜻밖의 세계를 드러내고,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매우 깊다.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72, 이러한 소명을 받는 장소로 전형적인 곳은 깊은 숲속, 큰 나무 아래, 샘가. 운명의 힘을 전하는 전령관은 혐오감을 주는, 참으로 하찮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77, 꿈에서든, 신화에서든 갑자기 한 사람 생애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단계를 암시하면서 이런 모험에 등장하는 인물은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분위기를 갖는다.

 

81, 다른 데 주의를 지붖ㅇ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소명에 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 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87, 따라서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계시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의적인 내향성은 창조적인 정신의 고전적인 방편 중의 하나이고, 이를 효율적인 장치로 응용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인격이 이 새로운 힘을 흡수하고 통합할 수 있으면 당사자는 자기 의식의 초인간적인 단계 및 완전한 통제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

 

96,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대자연은 항상 위대한 임무를 지원한다. 영웅의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105, 자신을 안내하고 자신을 도와줄 운명을 인격화함으로써 영웅은 모험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이윽고 한 단계 어려운 영역의 입구에서 <관문의 수호자>를 만나기에 이른다.

 

107, 미지의 땅(황야, 밀림, 심해, 타향 등)은 무의식의 내용물이 자유롭게 투사되는 무대다.

 

112, 이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그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 부담을 안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 앞에서는 위험은 그 꼬리를 감추고 만다.

 

120, 태양 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123, 여기서는 영웅이 외부로의 관문, 즉 가시적 세계의 한게를 넘는 대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 비유적으로 보아, 신전으로 들어가는 것과, 고래의 입을 향한 영웅의 돌진은 같은 모험인 셈이다. 즉 회화적 언어로 말하면 둘 다 생의 구심화 행위, 거듭나는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28,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록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신화와 모험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루는 부분도 바로 이 국면이다.

 

132, 우리는 모든 원시 종족에서 주술사가 사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주술사가 신경증적, 혹은 정신병적이거나, 아니면 그의 주술이 신경증이나 정신병과 같은 메카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확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주술사는 그 사회 성인들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상징적 환상 체계를 출몰시키는 역활을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주술사란, 이러한 유아적 놀이를 주도하고, 공통의 근심거리를 밝혀내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방에서 성공하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잡귀와 대리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143,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뜻밖에도 그 자신의 자아)를 동화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143, 이제 영웅은 용을 죽여야 하고 몇 번이고 위험한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 동안 영웅은 몇 차례의 예비적인 승리를 거두고, 일시적이긴 하나 무아의 경지를 체험하며, 이상향을 엿보게 된다.

 

145, 잠자는 여성은 미인의 본보기 중의 본보기며,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든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 목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며, 누이며, 애인이며, 신부이기도 하다. 세상에 유혹하는 것, 기쁨을 약속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잠자는 여성이 지향하는 존재의 예조에 해당한다.

 

152, 여신은 또 때가 되면 죽는 모든 것의 죽음이기도 하다. 나서 사춘기, 성년기, 장년기를 거쳐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전 존재의 순환은 여신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진다. 여신은 자궁이며, 무덤이며, 제 새끼를 먹는 돼지다.

 

153, 여신은 향상 영웅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약속할 수 있지만 영웅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 여신은 그를 유혹하고, 인도하고, 그의 발목에 채인 족쇄를 깨뜨리게 한다. 그리고 만일 영웅의 능력이 여신에 미치면 이 양자, 즉 아는 존재와 알려지는 존재는 갖가지 제약에서 해방된다. 여성은 감각적인 모험의 정점으로 영웅을 인도하는 안내자다.

 

154, 여신은 열등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식한 눈으로 보면 범용하고 추악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157, 여신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 단계다. 이 사랑의 은혜는 바로 우리 삶이 누리는 영원성의 그릇과 같은 것이다.

 

159, 싸움이나 자증은 무식한 자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후회는 때늦은 각성일 뿐이다.

 

160, 도깨비들이란, 자기 인간성의 미해결 수수께끼가 투영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개인이 자기 삶을 파악하는 징후인 것이다.

 

160, 참으로 까다롭고 재미있는 것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의식적 견해가 실제의 현실적 삶과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 우리 친구들에게 내재해 있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기 방어적이고, 악취가 나고, 탐욕적이고 음탕한 흥분 상태, 즉 우리 조직 세포의 본질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행하는 것에는 어차피 육욕의 냄새가 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외 없이 낭패의 순간을 경험한다. 삶 사는 행위, 삶의 구조, 특히 삶의 괄목할 만한 ㅅ아징인 여성은 더없이 순수한 영혼을 차마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171, 영웅이, 조력자인 여성에게서 희망과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다. 여성의 마법 덕분에 영웅은, 자아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는 아버지의 무서운 입문 의식 경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177, 자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이 부모의 이야기는, 입문이 잘못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예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 …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알든 모르든, 그리고 사회의 지위가 어떻든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 어머니가 그때까지 <> <>을 표상하고 있었듯이, 지금부터는 아버지가 그 역활을 맡는다.

 

192,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를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196, <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상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해탈의 상태이며, 영우들이 됨으로써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상태다. …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라고 하는 존재, 그의 형상, 혹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이다.

 

200, 신화는 창조의 신비를 상징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영우너성이 시간성으로 발전하고, 하나가 둘에 이어 다수로 분열하며, 둘의 재결합으로 새 생명의 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이미지는, 우주 발생적 순환의 시작에 해당하는데, 영웅의 모험이 막바지에 도달하여 낙원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신의 형상은 다시 나타나고, 지혜는 다시 원상으로 회복된다.

 

204, 위대한 아버지 뱀의 부름은 아이를 놀라게 했고, 어머니는 아이의 보호자였다. 그러나 이윽고 아버지가 왔다. 그는 미지의 신비로 아이를 인도하는 안내자이자, 비의의 전수자였다. 어머니와 누리던 유아기라는 아이의 낙원에 침입한 아버지는 원형적인 것이다. 이때부터 아이에게 있어서 평생토록 모든 적은 아버지를 상징한다.

 

208,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라는 구절을 보아 그렇다. 전문 성직자들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구세주의 십자가는 한 국가의 깃발이라기보다는 민주적인 상징이다.

 

211, 우리는 모두 보살 이미지의 그림자다. 우리 내부의 고통은 바로 저 신적인 존재다. 우리와 저 보호자인 아버지는 한목이다. 이것은 구원의 통찰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우리 보호자닝 아버지다. 그러니 이 무지하고, 유한하고, 자위적이고, 고통받는 육신이 다른 육신()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에도 그 적 또한 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도깨비는 우리 기를 꺾지만, 유능한 후보자인 영웅은 <사나이답게> 입문한다. 보라, 그 도깨비가 바로 아버지였다. 우리는 그의 안에 있고, 그는 우리 안에 있다.

 

214,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적으로 빗나간 욕망과 적의 때문에 비현실적인 공포와 애증의 이중 감정에 시달리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기술이다. … 그러나 종교적인 가르침의 목적은 개인을 일반적인 미망의 상태로 되돌려놓는 것이 아니라 그 미망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종교는 욕망, <에로스>와 적의 즉 <죽음>을 바로잡는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 유명한 불교의 팔정도의 가르침에 따라 충동을 뿌리째 <꺼버리는> 방법을 통해서 그 목적을 달성한다.

 

223, 그래서 남성과 여성 양자가 번갈아 찰나와 영원으로 마음 속에 그려져야 한다. 말하자면 이 양자는 같은 것이고, 각자가 그둘이며, 이원적인 형상으로 보이는 것은 환상 때문이지만 이것이 또한 깨달ㅇ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226, 여기에서 이 모험이 쉽게 끝났다는 것은 이 주인공이 초인간이며, 원래가 왕의 재목이었음을 뜻하고 있다. 영웅이 모험을 쉽게 끝내는 예는, 여러 동화나 육화한 신의 행위에 관한 전설에 자주 등장한다. 보통 영웅 같으면 모진 신련을 겪을 터인데도 선택된 자는 별 방해도 받지 않고, 또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

 

235, 문학적이고 감상적인 신학의 분위기에서와는 달리, 익살은 철두철미 신화적인 것의 심금석이다. 우상으로서의 신들의 존재는 존재 그 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연출하는 유쾌한 신화는 그들 수준의 마음과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나 그 배후의 무에 이르게 한다. 이 무의 경지에서 보면 산엄한 신학적 교리는 교육적인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237, 그러나 신들은 지나치게 잔혹하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럴 경우 영웅은 그 불로불사의 영약을 손에 넣기 위해 속임수를 써야 한다. 포르메테우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최고 신이라도 심술궂고, 생사 여탈권을 쥔 도깨리보 나타난다. 딸서 이 신을 속이거나 죽이거나 이 신과 화해하는 영웅은 구세주로 칭송을 받는 것이다.

 

248,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것과 다름아니다. <천상적인 것이 도다.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유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

 

248, 신도에게 내리는 은혜는 그 신도의 처지와 그가 발원한 소망에 준하여 내려진다. 은총이란, 특수한 경우의 발원에 내려지는 삶의 에너지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신의 은총을 입고 있는 영웅이 완전한 깨달음의 은총을 구한다면 몰라도 그가 장수의 은혜와, 이웃을 시해할 무기, 혹은 자식의 건강 등을 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249,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든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250, 생명의 원천은 개인의 핵이며, 인간은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찾아낸다. – 말하자면 인간이 자기 내부의 뚜껑을 열어젖힐 수 있을때 그렇다.

 

253, 근원을 투시함으로써, 혹은 남성이나 여성, 인간이나 동물로 화신환 자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영웅의 임무가 수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 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한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261, 영웅의 도망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은 뒤에 남은 다른 사물들이 영웅 대신 댑답하여 추격을 지연시키는 수법이다.

 

263, 심연의 권능에는, 섣불리 도전하면 안 된다. 도양에서는, 엄격한 지도와 감독 없이 심리적으로 해이해진 상태에서의 요가 수련은 몹시 위험하다고 가르친다. 수련자의 명상은 그 발전 단계에 따라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수련자의 상상력은 데바타에 의해 각급 단계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정신을 수련한 다음에야 수련자에게는 홀로 초월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이 온다.

 

269, 두 세계의 상호 관계를 불가능하게 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소한 실수, 즉 인간의 약점이라는, 사소하나 치명적인 증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소한 일만 피하면,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 도망에 실패하는 신화는 우리에게 있어서 비극이지만, 성공하는 신화는 신용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단일 신화가 완성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적인 실패나 초인간적인 성공이 아닌, 인간적인 성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귀환의 문턱에 도사리고 있는 위기가 중요한 문제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69, 영웅은 외부의 지원을 빌려 초자연적 모험에서 귀환하는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이 세계가 합세하여 그를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외부 세계가 이렇게 하는 것은, 지칠대로 지친 영웅에게, 힘겹게 도달한 지복의 땅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280, 영웅은 의식을 잃고 무의식의 상태에서 원래 그가 살던 세계로 되살아난다. <불가사의한 도망>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 … 외부로부터 구조를 받든, 내적 충동에 따라 살아나든, 신들의 안내를 받든, 영웅에게는 오래 잊고 있던 곳으로 애써 얻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가야 할 단계가 남는다. 뿐만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재생의 영약을 가지고 돌아가 원래 속해 있던 사회와 맞서면서 그들의 까다로운 신문과 서릿발 같은 증오와 맞서야 한다.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는 선한 사람들까지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282, 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첫번째 문제는, 성취의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겪은 이후에 덧없는 기쁨과 슬픔, 삶의 범용과 소란한 외설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문제다. 왜 그런 세상으로 되돌아와야 할까?

 

291, 자기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 귀환한 영웅은 세계의 충격을 견디어야 한다.

 

291, 그는 깨어 있는 채로 깊은 잠이라는 천복의 은혜를 체험했고, 믿어지지 않는 모험이라는 튼튼한 액막이를 지니고 빛의 세계로 귀환했기 때문에 일상의 엄연한 환멸에 직면하고도 자기 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294, 덧ㅇ벗는 만남과 헤어짐,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사랑의 고통이 아닌가. 한 영혼이 제 운명을 저주하고, 운명의 장난에 저항할 때 그의 고통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위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 대응하는 것은 감정이 아닌 힘이다.

 

294, 카마르 알 자만의 기나긴 이야기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운명이 일상의 삶으로 구체화되는 완만하면서도 놀라운 역사다. 그러나 이 운명이 모든 이에게 다 구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안으로 뛰어들어 이를 체험하고, 반지를 얻어 다시 현실로 귀환한 영웅에게만 가능하다.

 

305,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불과하다. 상징은, 그 언급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 <진로>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징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의 성격, 혹은 일련의 성격을 최종적인 의미로 읽거나 해석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징을 투명하게 닦아 우리에게 오는 진리의 빛이 이에 가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307, 자기는 선한 자를 대표하고 있다는 간주하고, 죄악을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부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본질에 이르기까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킨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P316, 영웅의 모험

 

317,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와 손상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신화나 옛 이야기의 윤곽은 원래 애매한 법이다. 고대의 흔적은 배제되거나 무시되는 게 보통이다. 유입되는 신화는, 이를 유입하는 지방의 풍경과 관습과 신앙에 따라 윤색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틀거리가 빗나가게 되기도 한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들이 무수히 재연되다 보면 고위적이든, 우연히든 와전과 전위가 불가피하다.

 

319, 문화가 신화 시대의 서점에서 현실적 시점으로 옮겨옴에 따라 낡은 이미지는 감지되거나 증명되기 어려워진다. 헬레니즘 시기의 그리스와 로마 제국 시대의 고대의 신들은 단순한 시민들의 수호신, 집안의 애완물, 문학의 소재 정도로 전락했다. … 중국에서는, 오늘날 신화라고 치부하는 이야기들이 고작 이러저러한 행적으로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그 사회의 인사치레를 통하여 국지적인 신으로 추앙받는 정치가들의 아들 딸들 이야기가 고작이다.

 

319, 전기나 역사나 과학으로 읽힐 때 신화의 명은 거기에서 다한다. 왕성하게 살아 있는 이미지들이 옛날 다른 하늘 아래서 있었던 까마득한 사실들로 전락하는 것이다. 한 문화가 자기네 신화를 이런 식으로 번역할 때 그들의 삶은 고갈되고 그들의 사원은 박물관이 되며, 과거와 미래의 끈은 끟어지고 만다. 이러한 오류는 성경이나, 많은 기독교 의식에 대해서도 자행되어 왔다. … 이러한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체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빈사 상태에 빠진 성화는 그 영원히 인간적인 의미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322, 신화적 상징은 그 함축적인 의미 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 즉 수천 년에 걸친 영혼의 모험을 유추에 의해 표상해 온 만큼 그 대응 관계의 전 체계를 섣불리 펼쳐보이기 이전에 그것이 지닌 모든 함축적 의미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325,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 신화의 상징 체계가 지닌 심리학적 의미를 감지해 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가 있는 이후, 신화가 꿈의 내용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꿈이란 정신 역동의 증후라는 사실에는 별 의혹의 여지가 남지 않았다. … 동화와 신화의 패턴 및 논리가 꿈의 패턴 및 논리와 일치한다는 발견과 더불어 오랫동안 의혹의 대상이 되어왔던 고대적 인간의 기괴한 환상은 극적으로 현대인 의식의 표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26, 신화 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되어온 심리학이다. … 여기에 하나의 투시경으로 소개하는 예화들은 동양과 서양, 미개인 및 문명인, 현대 및 고대의 수수께끼에 관해 지금까지 묻혀 있던 사실을 밝혀준다. 그 전경은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이를 읽고, 그 일정한 패턴을 연구하고, 그 다양성을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 인간의 운명을 조형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 사적, 공적인 삶을 주관해 나갈 그 무서운 힘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326, 그러나 이러한 자료의 가치를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화가 꿈과 정확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화와 꿈은 같은 근원에서 유래하고 그 문법도 동일하다. 그러나 이 신화가 수면의 산물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이 양자는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신화의 패턴은 의식적으로 통제된다. 그리고 신화는 전통적인 지혜를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회화적 언어로 기능한다.

 

327, 이러한 상징적 심상들은 인간의 삶을 버티고 철학, , 그리고 예술의 영감을 자극해 왔다. 노자, 부처, 조로아스터, 그리스도 혹은 모하메드에 의해 거론된 전승적 상징 덕분에 우리는 암윽이 아닌 깨어 있는 의식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우리에게 전승된 신화학적 표상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는 이러한 표상들이 무의식의 징추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신적 원리의 통제되고 의도된 진술임을 이해해야 한다.

 

330, 따라서 신, 혹은 신들은 편의적인 방편, 즉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을 잘 나타내고 또 그것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는 하나, 신 혹은 신들 자체는 어디까지나 편이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과 형식을 통하여 이 세계의 얼개를 설명하는 성질이 부여되어 있을 뿐, 이들은 결국 세계를 설명하는 팡변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신들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깨우며, 우리 마음을 겨냥할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32,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337, 동양 철학의 기본 개념은 이러한 회화적 양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화가 원래 철학적 공식의 설명인지, 아니면 철학이 신화로부터의 추출물인지 지금으로서는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신화가 지금부터 아득히 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며, 이 점은 철학도 마찬가지다. 신화를 창조하고 이를 보배로이 가꾸어 전승시킨 옛 현인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339, 신화는 이 순환 속에 머문다. 그러나 신화는 이 순환을 침묵에 둘러싸인 형태, 순환과 침묵이 서로 삼투하는 형태로 드러낸다. 신화는 존재하는 원자 안팎에 충만해 있는 침묵의 계시록이다. 신화는, 고도로 세련된 형상화 작업을 통하여 마음과 가슴을, 모든 존재를 채우고 둘러싸고 잇는 궁극적 신비로 향하게 하는 풍향계다.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보여도 신화 체계는 마음을, 가시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비현현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342,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이 원리다. 창조 신화는, 모든 피조물읜 그들이 모태가 된 불멸의 존재와 닿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파멸 의식과 함께 고루 퍼져 있다. 모든 피조물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나 필경은 극점에 이르러 파멸하고 그리고 회귀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신화는 비극적이다.

 

365, 신화에는, 창조된 세계가 우리의 짐작과 다른 예가 얼마든지 등장한다.

 

396, 유출은 이제 그 극점에 이르렀고, 의식의 장은 이제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전에는 사상의 실체가 보였지만 이제는 그 부수 효과만 인류의 눈, 작고 현실적인 동공의 초점 앞에 모일 뿐이다. 따라서 이제 우주 발생적 순환은, 보이지 않게 된 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갖춘 영웅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세계의 숙명은 바로 이 영웅들을 통해 실현된다. … 형이상학은 선사학에 자리를 물린다. 이 선사학은, 처음에는 모호하고 불분명하나 차츰 그 형태가 자세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웅은 점차 우화적인 성격을 일탈하다가 다양한 지방적 전승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전설은 기록되는 시대라는 빛의 세계를 받게 된다.

 

400, 초기 우두사신의 문화 영웅은 자연계의 창조 능력을 타고났다. 그의 형상이 초자연적인 것은 바로 그의 이런 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적인 영웅은, 후세 인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하강>해야 한다. … 그러나 전설을 만든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위대한 영우들을 단순한 인간에 국한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들을 제한하는 지평을 넘어갔다가, 보통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는 신념과 용기로 선약을 얻어 돌아오는 인간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이러한 관점은 영웅이란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지워진다는 관점과 일치한다. … 가령 예수는, 엄격한 고행과 명상으로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하면, 인간의 모습을 취한 하강한 신이라고 믿어질 수도 있다. 전자의 견해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와 같은 초월적 구원을 경험하기 위해 그의 행적을 글자 그대로 훙내내는 수가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견해를 따를 경우, 예수라는 영웅은 글자 그대로 본이 되는 전형이라기보다는 묵상해야 할 하나의 상징이다.

 

434, 지금까지 우리는, 영웅의 모험에서 아비지의 시험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아왔다.

 

458,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거울에 비추어볼 수 있는 육체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내재하는 왕으로서다. 크린슈나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모든 피조물의 가슴 안에 있는 실재다.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이것은 바로 개인이 소멸되는 순간, 사자의 머리맡에서 둘려주는 기도다. 즉 개인은, 생전에 자기 가슴에 반영되어 있던,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447, 신화의 해석에는 최종적인 체계가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런 것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신화 체계는 <진실만 말하는 고대의 해신> 프로테우스와 같다. … 신화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고 했고, 퀼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된다.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 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479, 개인의 전체성은, 개별적인 구성 인자로서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개인은 한 구성 요소일 수 있을 뿐이다. 개인은 이 집단으로부터 삶의 기술, 사유의 바탕인 언어, 삶의 자양인 이상을 빚졌다. 그의 육체를 이루는 유전자도 그 사회의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개인의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마할 뿐이다. … 출생, 세계, 결혼, 장례, 취임 등의 종족적인 제의는, 개인의 삶의 위기 및 행위를 표준적이고 비개인적 형식으로 바꾸는 역활을 한다. 이러한 제의는 개인의 정체를 그 자신에게 보여준다. 인격체로서의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사로서, 신부로서, 과부로서, 성직자로서, 추장으로서의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제의를 통하여, 개인이 속하는 사회는 원형적 무대에서 옛 현인의 가르침을 시연할 수 있다. … 이러한 초개인을 수렴하려는 비전의 확대를 통해, 애기은 이전보다 더 고상해지고, 풍부해졌으며, 또 충분한 보호를 받고 있다.  이제 인간의 시야는 넓어졌다. 맡는 역활이 비록 하찮다고 하더라도 개인은 이 인간의 아름다운 축제의 이미지에서 자기 역활이 바로 자기의 본질이었음을 깨닫는다.

 

483,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개인의 민주적 이상,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발명, 과학적인 연구 방법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변형시킨 나머지 저 유서 깊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상징의 우주는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 그것은, 현대의 영웅 이야기, 인류가 성숙하기에 이르기까지의 신기한 이야기다. 전승의 굴레인 과거의 마력은 확실하고 강력한 타격을 받아 산산조각이 되었다. 신화라고 하는 꿈의 집은 이제 무너지고 없다. 마음은 깨어 있는 의식 쪽으로만 열려 있다. 현대인은,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새벽의 태양이 어머니 밤의 자궁을 빠져나오듯이, 현대인은 고대의 무지로부터 빠져나왔다.

 

483, 이제 신들에겐, 망원경과 현미경에 의한 탐색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때 신들이 섬김을 받던, 그런 사회도 이제는 없다. … 그러므로,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신화 체계가 위대한 조정 수단으로 통용되던 비교적 안전되어 있던 시대 사람들이 안고 있던 문제와는 정반대되는 문제인 것이다. 그 당시엔, 모든 의미는 집단적인 것에, 위대한 익명의 형식에 귀착되었으며 스스로를 드러내는 개인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오늘날 집단 속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계도 그렇다. 도든 것은 개인에 귀착된다. 그러나 여기에 의미란 완전히 무의식적이다. 인간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485, 오늘날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세계적 종교도 일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 이러한 종교들도, 전전과 자화자찬의 도구로서, 갖가지 도당짓기의 요인과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국가의 보편적인 승리는 모든 종교 조직을 부수적인, 필경은 무익한 위치로 끌어내려, 오늘날에는 종교적 무언극이 일요일 아침에 벌이는, 경건한 체하는 종교 놀음에서 더도덜도 아니게 되고 말았다.

 

486,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상징이 보이게 됨에 따라, 이 상징이 지구의 갖가지 요소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한 민족 특유의 생활 환경, 인종, 그리고 전통이 유효한 형식으로 화해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갖가지 상징을 통해 동일한 구원이 계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고, 또 알아야 한다.

 

487, 오늘날에는 이 모든 비의가 그 힘을 잃었다. 이 비의의 상징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심성의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 모든 존재가 섬기고, 인간 자신도 그 앞에서 무릎을 굻어 마땅한 우주적 법칙이라는 관념도 고대 점성술에 나타난 초보적인 상징의 무대로 넘어간 지 오래며, 이제는 물리적인 용어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이다.

 

487, 동물의 세계도 아니고, 식물의 세계도 아니고, 천체의 기적도 아닌, 이제는 오직 인간만이 결정적인 수수께끼다. …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인 현대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된다.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489, <명저>라고 일컬어지는 책이 무슨 해독을 끼치는 바 있을가만, 역자는 나름의 가닭이 있어서 <명저의 해독>이란 말을 더러 은밀히 생각에 울린다. 이른바 <명저>에 걸려 있는 고압의 전하가, 여유로운 정신으로 사상을 대하여야 할, 그러나까 사싱이 덜 여문 독자와의 만남에서 예사롭지 않은 방전 현상을 일으키고, 이 방전 현상의 체엄이 독자로 하여금 그 감독의 여신으로만 사물을 파악하게 하는 편집증적 색안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492, 다른 이들의 믿음, 다른 이들의 종교라면 듣도 보도 않고 흰 눈을 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주체로운 종교 정신을 곧추세우는 데 밑바탕 삼을 수 있다면, 남의 집도 좀 기웃거려 보는 데 인색해서야 되겠느냐는 뜻에서다.

 

 

 

 

.내가 저자라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방대한 신화에 대한 지식과 통찰이 있지 않고서는 감히 이런 책을 쓸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책의 저자가 된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리해서라도 상상한다. 상상력은 위대하고 착각은 잠시 날 신화학자로 만들어 준다.

먼저 이 책의 목차를 확인해 보자.

 

프롤로그 원질신화

 

1부 영웅의 모험

1장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2 소명의 거부

3 초자연적인 조력

4 첫 관문의 통과

5 고래의 배

 

2장 입문

1 시련의 길

2 여신과의 만남

3 유혹자로서의 여성

4 아버지와의 화해

5 신격화

6 홍익

 

3장 귀환

1 귀환의 거부

2 불가사의한 탈출

3 외부로부터의 구조

4 귀환 관문의 통과

5 두 세계의 스승

6 삶의 자유

 

4장 열쇠

 

 

2부 영웅의 모험

1장 유출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2 우주의 순환

3 허공에서 공간

4 공간의 내부에서 생명

5 하나에서 여럿으로

6 창조의 민화

 

2장 처녀의 잉태

1 어머니 우주

2 운명적 모태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4 미혼모의 민화

 

3장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3 전사로서의 영웅

4 애인으로서의 영웅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6 구세주로서의 영웅

7 성직자로서의 영웅

8 영웅의 죽음

 

4장 소멸

1 소주주의 끝

2 대우주의 끝

 

에필로그

 

이 책은 목차에서 보듯이 캠벨은 이 책에서 신화속 영웅의 이야기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웅의 모험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당하고 있다. 1부에서 영웅의 모험에 대해 설명하고 2부에서 더욱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신화 속 영웅 이야기를 예시로 들음으로써 독자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요즘 시대의 신화와 종교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부분에 대해 저자 자신의 견해는 탁월했다. 하지만 해결책을 좀 더 자세히 제시해주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이 책은 그런 주제가 아니였으니깐.

 

흥미로웠던 부분

시나리오에 대해서 잠깐 공부했던 적이 있는데, 캠벨의 말한 영웅의 모험담 이야기가 현대의 시나리오 스토리라인과 너무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 본연의 날 것의 이야기. 그래서 신화의 이야기와 영화가 재밌었던 것일까?

 

비교적 캠벨의 초창기 작품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캠벨은 신화 속 영웅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캠벨은 이 책에서 여러 나라의 신화 속 영웅의 모험담을 통해 하나의 공통적 스토라리라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영웅은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공동체에서 쫗겨난다. 그는 모험을 하면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방해자와 조력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을 해결하게 되고, 승리해서 얻은 전리품을 집단에 가져온다. 집단은 영웅을 기리고, 전리품은 집단을 한단계 성숙시킨다

 

캠벨은 이러한 서사구조를 여러 나라의 신화 속 영웅 이야기에 들어 있는 공통적인 구조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신화 속 영웅의 모험담에만 속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시나리오에서는 이러한 이야기 구조가 아주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다. 기승전결과 함께 시나리오를 이루는 핵심이기도 하다. 형식을 파괴하고 파격을 추구하는 현대 문학적인 시나리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이를 따른다.

 

주인공이 있다. 그는 적대자에 의해 평화롭던 그의 일상이 파괴당한다. 주인공은 일상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의 평화를 파괴하는 적대자와 주인공을 외롭게 하는 방해자들이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거나 극적인 반전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극이 후반부로 돌입되면서 주인공은 발전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또한 그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나타난다. 사건을 해결하고 주인공은 다시 평화를 찾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대부분의 영화에 무리없이 적용할 수 있다.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는 인터뷰를 통해 캠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한번 <스타워즈>의 시나리오를 떠올려 보자.

 

루크는 다스베이더에 의해 평화를 위협받고 그의 적대자 다스베이더를 제거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모험의 과정은 흥미롭지만 수많은 방해자들에 의해 여러번의 고비를 겪는다. 루크는 조력자인 요다의 도움을 얻고 포스를 통해 다스베이더를 물리치고 평화를 찾게 된다.”

 

<스타워즈>의 이야기 구조는 캠벨이 말한 영웅의 모험의 구조와 닮아 있다. 아니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영화들 역시 비슷비슷하다. 모험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사랑 영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모험은 떠나지 않지만 주인공은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이를 회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왜냐구? 그렇지 않으면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으니깐. 영화는 재밌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대대로 읽혀야 하는 신화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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