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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6일 03시 04분 등록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9기 연구원 8주차(13.6.24.DS)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조셉캠벨,민음사,2004)”

 

 

 

1. 저자소개

돈을 좇지 않았다. 사회적 명성을 좇지 않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품게 된 씨앗, 그 씨앗을 가슴깊숙이 조용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그 씨앗을 키우기 시작했다. 씨앗에서 뿌리가 자라고 새순이 돋았다. 그는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신화라는 씨앗을 키우기 위해 그 자양분인 책을 끊임없이 읽었다. 책 살 돈이 없었지만, 신께서 도우셨는지 후불(수년뒤)로 그에게 책을 빌려준 서점주인이 있었다. 마음껏 읽었다. 매일매일 읽었다. 자신의 꿈이 담겨져 있는 씨앗이 죽지 않도록 끊임없이 읽었다. 다 읽고 세상에 나왔을 때 그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세상과 사람들에게 도움을 수 있었다. 그도 또 한 명의 영웅이었다.. “

원명 Joseph Campbell

1904 3 26일 뉴욕 출생

1925년 콜럼비아 대학교 졸업

1927년 콜럼비아 대학교 영문학 석사과정 수료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194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발표

1959~1967 <신의 가면> 1~4 권 집필

1987 10 31일 호놀룰루에서 사망

조셉 캠벨(Joseph Campbell.1904.3.26∼1987.10.30)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 뉴욕 주 화이트플레인스 출생.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민담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맨하탄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즐겨 찾았다. 그 중 특히 박물관 한켠에 있는 토템 기둥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자신이 어렸을 적 즐겨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담과 아서 왕에 나오는 많은 주제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캠벨은 콜롬비아 대학을 비롯한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특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선 중세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였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이후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의 교수가 된 뒤 신화의 원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신화적 인물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영웅을 중심으로 한 그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다. 또한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4)을 펴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유명하며, <신화의 힘>,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야생 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호놀룰루에서 세상을 떠났다

   캠벨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로마가톨릭 신앙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관련서를 탐독했다. 다트머스 대학에서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했지만, 나중에 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겨서 중세 영문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1927년 캠벨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 이후 2년 동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공부한다. 1929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문학 대신 인도 철학과 미술 쪽으로 공부를 계속하려 하지만, 대학 측의 반대로 결국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난다. 때마침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불황을 맞이한 상황에서, 캠벨은 이후 5년 가까이 칩거하며 독서와 사색, 그리고 습작에 몰두한다.

   1934년에 캠벨은 미국의 명문 여자대학인 새러 로렌스 칼리지에 문학 담당 교수로 부임하고, 1972년 퇴직할 때까지 38년 동안 재직한다. 그리고 그 와중인 1938년에는 제자였던 현대무용가 진 에드먼과 결혼한다.

   캠벨은 어려서부터의 관심사였던 인류학과 민속학을 바탕으로, 비교종교학과 분석심리학 등의 이론을 이용하여 신화와 종교 연구를 지속해 명성을 얻는다. 그의 대표작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1949)은 세계 각지의 신화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영웅의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주저인 4부작 <신의 가면>(1959-1968)을 비롯하여 <신화와 함께 하는 삶>(1972), <신화의 이미지>(1974), 그리고 최후의 역작인 총 2 5권의 <세계신화지도>(1983-1989) 등을 펴냈다.

   하지만 조지프 캠벨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PBS 방송국에서 제작한 대담 프로그램신화의 힘’(1988)이었다. 그의 생애 막바지에 제작되어 결국 사후에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 캠벨은 저명한 방송인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을 통해 신화가 현대에 지니는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토대로 한 대담집은 오늘날까지도 신화에 관한 가장 훌륭한 개론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조지프 캠벨은 1987 10 30,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후에 아내인 진은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조지프 캠벨 재단을 설립하고, 캠벨의 유고와 대담, 그리고 강의록 등을 정리, 출간했다.

 

 

2.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종교 교의에 녹아 들어 있는 진리는 대개가 변형된 데다 체계적으로 위장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진리로 알아보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아이를 상대로 갓난아기는 황새가 물어다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황과 흡사하다. 우리가 이 큰 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우리는 상징으로 분식된 진리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이는 알아 듣지 못한다. 아이는 우리가 말하는 내용 중 변형된 부분만을 알아듣고는 속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른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과 면역성이 종종 이러한 부정적 인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진리의 상징적 분식을 피하고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맞추어 사건의 진상을 알게 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5)

, 변화 무쌍한 듯하지만 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의 일정한 패턴을 따라고 있다는 것이다.(13)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종교, 철학,예술 선사 인류 및 유사 인류의 사회적 양식, 과학과 기술의 으뜸가는 발견, 바닥째 흔들어 수면을 엎어버리는 꾸, 신화의 불가사의한 고리…… 모두가 이 은밀한 통로를 지나 인류의 문화로 현현한 것들이다.(14)

놀라운 것은, 심원한 창조적 중심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특징적인 효과가 아이들 놀이방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동화책에도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한 방울의 바닷물이 바다의 본질을 고스란히 대표하고, 하나의 벼룩 알에 생명의 신비가 두루 깃들여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이는 신화학의 상징은 꾸며낸 것도 아니고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을 수도, 발명할 수도, 억압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14)

인간이 가진 심성 중에 가장 끈질기게 남는 성향은, 동물 중에서도 인간이가장 오랫동안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16)

불해한 아버지는 다른 현실로부터, 자궁 안에서와 똑같은상태로 재현된 이 지상의 천국을 침범한 최초의 틈입자다.(17)

다행스러운 것은, 정신 신경증 환자가 아닌 한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성적 충동을 분리시키고, 아버지에 대한 질투를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18)

인간이라는 왕국에서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비교적 깔끔하고 비좁은 처소의 바닥 밑으로는 뜻밖에도 알라딘의 동굴이 뚫려 있다. (19)

참으로 놀라운 것은, 상당수의 제의적 시련과 이미지가, 정신 분석을 의뢰한 환자가 유아기 고착 상태를 떨치고 미래를 향해 발돋움을 시작하는 순간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22)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29)

영웅이 첫단계에서 하는 일은, 하찮은 세상이라는 무대로부터 진정항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심성의 인과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앉는 일이다.(30)

원형심상 : 신화의 구성물인 동시에 무의식에 기원을 둔 토착적, 개인적 산물로서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는 집단적 성격의 형태나 이미지. 이는 융의 말처럼 그의 독창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니체, 루돌프 바스티안, 프란츠 보아스, 제임스 프레이저 등이 이 원형 심상에 대해 언급했었다.(31)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33)

따라서,(영웅의) 두번째 엄숙한 과업과 행위는(토인비가 주장하고, 인류의 모든 신화가 보여 주듯이)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재생의 삶에 대해 그가 배운 바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33)

아무리 맹세하고 서원해도 절망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람이란, 내부의 소명도 외부의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다.(37)

다이달로스는….. 단순하고, 용기에 차 있으며, 진리가 우리는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영웅이다.(38)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39)

그리스의 비극과 마찬가지로 현대 소설도 의절의 비의를 찬양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 속에 있는 인생이다. 해피 엔딩은 허위 진술로 경멸을 당하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보아온 한, 이 세계에는 하나의 종말, 즉 죽음, 붕괴, 의절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던 형태가 사위어감에 따라 일어나는 우리 마음의 십자가가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39)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아무것도 죽지는 않는다. 영혼은 여기 저기를 방황하다 마음에 드는 뼈대를 취한다…… 따라서 한번 존재한 것은 다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존재하게 되니, 모든 운행의 주기는 반복한다. (43)

인간은 죽음을 먹는다. 오늘 아침에 먹은 많은 것들, , 무김치, 참치…… 밭에서 파릇파릇하게 자라난 식물을 먹고 저 먼 바다는 자유롭게 활보하고 유영하던 다랑어…… 그 것들이 내 몸속에 있다. 나는 그것을 먹고 생활하며 오늘도 내가 해야할 바를 하고 생각하며 산다. 그렇게 수십년을 살다가 나는 어느덧 죽음을 맞이한다. 나의 육신은 땅속에 파묻힐 것이다.  더 이상 증식하거나 돌아가지 않는, 즉 멈추어 버린 나의 정신과 육체는 부패되기 시작한다. 미생물들이 내 몸에 달라붙어 육신의 소멸에 도움을 주며 그들 또한 자라게 된다. 나의 부패한 육신은 거름이 대고 대지와 함께 한다. 하는 대지의 신 가이아에게 흡수된다. 대지의 신 가이아가 탄생시키는 수많은 신들은 어찌보면 나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대지의 신이 다스리는 수많은 생물들, 수 많은 곤충들 느물느물 기어가는 지렁이 땅속에 살고 있는 곤충들. 땅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뿌리내 몸에서 나온 진액은 나무의 뿌리는 타고 나무의 몸통과 잎파리로 올라간다. 몸통은 더 두꺼워지고 잎파리를 더 푸르스름해지면서 커진다. 그 커진 입파리를 광합성을 한다. 그리고 나무는 산소를 공급한다. 나의 일부분일지 모르는 말로 할 수 있는 그 산소들은 세계 도처에 퍼져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들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결국 나의 죽음은 수많은 다른 삶들과 만나게 된다. 나로 인해 그들이 살고 그들로 인해 내가 산다.

이 몸뚱이는 죽어 없어지지만 이 몸 속에 와 계시는 실재 self 는 영원하며, 불멸이며, 무한이니라.(43)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ㄴㄴ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공포는 눈앞에 여전히 보이고, 고뇌의 울부짖음은 여전히 귀에 들리나, 삶은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복되지 않는 힘의 자각으로 다시 생기를 얻는다……. 시간은 영광의 승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세계는 더할나위 없이 천사적인, 더할나위없이 단조롭고 요정의 노래처럼 매혹적인 하늘의 노래를 부른다. 행복한 가정이 다 그렇듯이, 소생한 신화와 세계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44)

,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 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45)

중요한 것은 Buddhahood, 즉 정각은 말로써는 전할 수 없고 오직 정각에의 방법만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48)

영웅의 모험은 다시 말하면,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50)

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번 세계의 몸 속으로 흘러들게 하는데 있다.(55)

즉 에드슈는 중심, 즉 세계의 축(Axis Mundi), 혹은 세계의 배꼽의 화신이었다.(63)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는 극히 드문 것이긴 하지만 뜻밖의 세계를 드러내고,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71)

프로이트는, 불안한 순간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될 때의 고통(탄생하는 순간의 숨이 막히고, 피가 응어리지는 등의)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73)

변형의 때가 무르익은 정신은 끊임없이 이런 전령관을 산출하는데 아래에 소개하는 두 사람의 꿈이 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76)

꿈에서든, 신화에서든 갑자기 한 사람의 생애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단계를 암시하면서 이런 모험에 등장하는 인물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분위기를 갖는다.(77)

이 신화적 여행의 첫 단계(우리는 이를 <모험에의 소명>으로 불렀다.), 운명이 영웅을 불렀고, 영웅의 영적 중심이 그가 속한 사회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80)

주저한다고 다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많은 비밀을 여축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비밀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제시일 수도 있다.(87)

창조적인 예술가 역시…… 자신의 재창조 작업에서 시작, 이념적으로 자아를 구축한다.(88)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테세우스가 미궁의 모험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것은 단테의 작품에서 베아트리체와 성모라는 여성의 모습으로,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그레첸 트로이아의 헬렌, 그리고 성모로 나타나는 영웅의 보호령이다. (96)

영웅이 빠져드는 환각은 곧 안식처이며, 낙원의 평화에 대한 약속이다.(96)

나는, 미지의 종국으로 떠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내가 그곳에 이르는 순간, 내가 불필요하게 되는 순간, 나를 갈가리 찢는 데는 한 입자의 원자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인류가 힘을 모두 합치더라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나폴레옹, 97)

드물지 않게 초자연적인 외부 조력자는 형태상 남성으로 나타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이러한 안내자는 헤르메스와 메르쿠리우스이고, 에집트에서는 토트(따오기 비슷한 신)이며, 기독교 문화권에선 성령이다.(97)

괴테에서는 파우스트에서 남성 안내자로 메피스토펠레스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 경우처럼 사자적, 혹은 메르쿠리우스적 인물의 위험한 측면이 강조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단테에서는 베르길리우스가 이 역할을 맡는다……. 보호자인 동시에 위험한 적이며 모성적이기도 하고 부성적이기도 한 이 후련과 방향제시의 초자연적 원리는 그 내부에서 무의식의 모든 다의성을 통합한다.(98)

영혼을 닫은 자들에게도 초자연적인 안내자가 오는 경우가 있다.(100)

그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삶을 거부하던 카마르 알 자만의 운명은 의식적인 의지의 협력이 없이도 완성되기 시작했다.(105)

자신을 안내하고 자신을 도와줄 운명을 인격화함으로써 영웅은 모험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이윽고 한 단계 어려운 영역의 입구에서 관문의 수호자를 만나기에 이른다……. 이 수호자 뒤로는 어둠이며, 미지의 세계이며, 위험이다. 부모의 감시 밖이 아이들에겐 위험지역이고, 사회의 보호 밖이 구성원들에게는 위험 지역인 것과 마찬가지다. (105)

미지의 땅(황야, 밀림, 심해, 타향 등)은 무의식의 내용물이 자유롭게 투사되는 무대다. 근친 상간 리비도libido와 부친 살해의 데스트루도 destrudo, 거기에서 폭력의 위협과 가공의 위험한 환희를 암시하는 형태로, 도깨비는 물론, 신비스러운 정도로 매혹적이고 향수를 유발할 정도로 아름다운 세이레네스(사이렌)으로 개인과 사회에 다시 투사된다.

그는 대머리에다 배는 장구배, 뺨은 불룩 튀어 나와 있고 초록색 옷과 갈대 모자차림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아주 잘생긴 청년이나, 마을에서 익히 아는 명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108)

아르카디아의 판은, 마을 경계 밖의 무방비 구역에서 사는 위험한 존재 중 가장 유명한 고전적 실례로 알려져 있다. …… 판은, 실수로 자기 영역을 침범한 인간을 괴롭히는데 이때 인간이 판에 대해 갖는 감정은, 당황, 공포, 그리고 엄청난 경악 같은 것이다. (110)

꿈 속에서, 나는 신비스러운 정원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정원 앞에는 경비병이 있어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들어가려는 내 팔을 잡고… “정신 차려!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래”(110)

⇒ 슈테켈 박사의 지적에 따르면 경비병은 의식 또는 도덕의 총화와 의식내엑 존재하는 제약을 상징한다. …… ‘ 내가 보기엔 경비병은 내적자아(inter-ego)일 뿐이다. 의식은 위험한 소망이나 비도덕적인 행위의 틈입을 미리 막는 구실을 한다. 꿈에 나타나는 경비병, 경찰관, 관리는 대체로 이런 의미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112)

그러나, 이 뱀, 즉 메(mae)는 참으로 무서운 존재다. 섬 사람들은 이 뱀은 자기를 본 사람의 친척으로 변한다고 믿는다. 자기 생활권이라는 벽에서 한 발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영웅은 반드시 이런 괴물(몹시 위험하면서도 때로는 마법의 권능을 베푸는)과 만나야 한다. (112)

도깨비는 태자의 도착에 즈음해서 제 몸을 키웠는데, 키는 종려나무만 해고, 머리는 종형의 뾰족탑이 있는 큰 집만 했으며 눈은 바라문이 탁발하는 바루, 두 개의 송곳니는 굵은 기둥을 방불케 했다. 도깨비의 입은 매의 부리 같았고, 배는 흉터로 덮여 있는 데다 손발은 푸르뎅뎅했다.(116)

⇒ 도깨비, 나에게는 잊혀진지 오래된 존재이다. 어릴적 전설의 고향이나 어린이 동화책에서 보았던 무섭지만은 않은 캐릭터. 살다보면 동심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이가 있으니, 아이의 동심으로 나 또한 어릴 적 무섭고도 귀여웠던 동심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깨비여, 왜 내가 두려워하겠는가? 태어나면 어차피 한번은 죽게 되어 있는데, 두려워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더구나 내 뱃속에는 벼락이라는 무기가 하나 더 있다. 그대가 나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벼락은 삭이지 못할 것이다. 이 벼락은 그대 뱃속에서 그대를 갈가리 찢어 필경은 그대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결국 그대가 나를 먹으면 우리 둘 다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118)

⇒ 벼락 varja, 속세의 허망한 현실을 분쇄하는 부처의 영적인 힘(불멸의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화에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상징의 하나이다.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웅은 그 관문을 지키는 세력을 정복하거나, 그 세력과 화해하는 대신, 그 미지의 힘에 빨려들어 겉보기엔 죽은 것으로 나타나고는 한다.(121)

세계 도처에서 채집되는 이러한 모티프는, 관문의 통과가 자기적멸의 형태를 취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 이러한 모티프란, 아일랜드 영웅 핀 맥쿨이 정체불명의 괴물에 삼켜지는 것이나 빨간두건의 소녀가 늑대에게 삼켜지는 것, 헤라클래스가 바다괴물을 입으로 들어가는 것등을 말한다.

여기서는 영웅이 외부로의 관문, 즉 가시적 세계의 한계를 넘는 대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신전 안, 고래의 배, 세계라는 한정된 공간 건너 위, 아래로 보이는 천상적 공간은 결국 하나다. …… 그는 뱀이 허물로 싸여 있듯이 이 신전을 허물로 삼는다. 신전 안에서 신도는, 시간적으로 이미 죽어 있는 세계의 자궁, 세계의 배꼽, 지상의 낙원으로 돌아갔다는 암시를 받는 수도 있다……. 신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러한 괴수들을 그저 괴물로만 본다….. 즉 회화적 언어로 말하면 둘 다 생의 구심화 행위, 거듭나는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23)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아난다 쿠마라스와미)(124)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신화와 모험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루는 부분도 바로 이 국면이다.(128)

우리는 모든 원시 종족에서 주술사가 사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주술사가 신경증적, 혹은 정신병적이거나 아니면 그의 주술이 신경증이나 정신병과 같은 메커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확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인간의 무리는 집단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는 두고 있는 것이다.(132)

따라서, 주술사는, 그 사회 성인들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상징적 환상 체계를 출몰시키는 역할을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133)

신이든 여신이든, 남자든 여자든, 신화의 등장인물이든 꿈을 꾸는 사람이든,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를 동화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143)

잠자는 여성은 미인의 본보기 중의본보기며,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든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 목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며, 누이며, 애인이며, 신부이기도 하다.(145)

왜 찾아왔을까? 그녀의 존재가 바로 완전성이라는 약속의 화신이며, 조직화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오랜 방황을 끝낸 영혼의 안식이며, 한때 인류가 맛보았다가 언젠가 다시 맛볼 은혜이기 때문이며, 위안과 자양, 그리고 우리가 아득한 옛날에 그 사랑을 받던(좋은) 어머니(젊고 아름다운) 이기 때문이다. (148)

아르테미스(디아나)가 젊은 사냥꾼 악타이온을 철저하게 파멸시킨 예는 정신과 육체의 차단된 욕망의 상징 안에 얼마나 엄청난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지 확연히 보여준다.(148)

어머니에 대한 어린아이, 주위의 물질 세계에 대한 성인의 자세에는 밀접하고도 노골적인 상응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150)

중세와 현대 인도의 탄트라 경전에서는 여신의 거처를 마니-드비파, 즉 보석의 섬이라고 부른다.(151)

여신은 또 때가 되면 죽는 모든 것의 죽음이기도 하다. 나서 사춘기, 성년기, 장년기를 거쳐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전 존재의 순환은 여신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진다. 여신은 자궁이며, 무덤이며, 제 새끼를 먹는 돼지다.(152)

여신의 네 팔은 우주적 권능을 상징했다. 즉 위 왼손에는 피 묻은 칼을 들고 있었고 그 아래의 손은 참혹하게 잘린 인도의 머리터럭을 거머쥐고 있으며, 위의 오른손으로는 <두려워하지 말라> 고 손짓하고 있었고, 그 아래 손으로는 은혜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의 몸에 걸린 목걸이는 인간의 머리는 꽨 것이었고, 치나는 인간의 팔을 짜맞춘 것이었다. 긴 혀는 피를 찾아 낼름거렸다. 이 여신은 다름아닌, 절대 절멸의 공포와, 비인격적이지만 모성적인 평화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우주적인 권능, 우주의 전체성, 대립물의 조화였다. 시간의 강이 사람의 흐름으로 바뀌면 여신은 순식간에 창조하고, 보존하고, 파괴한다. 이 여신의 이름은 검은 존재 the Black One>, 즉 말리 Kali.(152)

새들이 초록빛 숲 그늘에 깃들이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속에 깃들인다. 이치로 보면 사랑 이전에온유한 마음이 없었고, 온유한 마음 이전에 사랑도 없었다.(156)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159)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 우리 친구들에게 내재해 있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기방어적이고, 악취가 나고, 탐욕적이고 음탕한 흥분 상태, 즉 우리 조직 세포의 본질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이를 윤색하고, 회칠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름에 빠진 파리, 우리가 먹을 국에 빠진 머리카락을 누군가 다른 불유쾌한 사람의 허물로 돌려 버리려고 한다.(160)

오이디포스, 햄릿의 부정적 흥분 상태가 영혼을 유혹하고 있는 동안은 세계, 육체, 그리고 특히 여성은 더 이상 승리의 상징이 아닌 패배의 상징 노릇을 한다. 금욕적, 청교도적,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윤리 체제는 즉시 극단적인 모든 신화 이미지로 변용된다.(162)

(화해를 통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당사자는 아버지가 자비로우며, 이 자비를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의 중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신의 족쇄 바깥으로 이동하고, 믿음의 중심이 이동하면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사라진다.(171)

자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이 부모의 이야기는, 입문이 잘못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 한 아이가 자라, 어머니 품속의 목적인 자장가를 떠나 어른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될 때 이 아기는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알든 모르든, 그리고 사회의 지위가 어떻든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 어머니가 그 때까지 선과 악을 표상하고 있었듯이, 지금부터는 아버지가 그 역할을 맡는다.(177)

죽음을 당했다 부활한 디오뉘소스의 비문이기도 한 이 <디튀람보스>라는 말을, 그리스인들은 <두 문을 지난 사람>, 즉 재생의 무서운 관문을 통과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이해했다.(185)

아프리카의 다른 해안 지방에서 전해지는, 싸움 뿥이기가 취미인 장난꾸러기 신 에드슈 이야기도 기억하고 있다. 키아짐바와 에드슈는 무서운 형상을 한 같은 신의의 다른 얼굴이다. 이 단일한 신은 모순되는 개념, 즉 선 악, 생과 사, 고통과 쾌락, 증여와 박탈을 두루 지니고 있다. 태양의 문이라는 사람이 그렇듯이, 이 신 역시 쌍쌍의 대립물의 원천이다.(190)

창조의 역설, 영원으로부터의 시간이라는 양식의 도래는 아버지가 지니는 근원적인 비밀이다.(192)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업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히 가시를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 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192)

아들이 아버지를 알 나이가 되면 시련의 고뇌가 이미 그의 내부에 태동해 있다.(194)

즉 그는 인간으로 이 땅에 살다가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 이 순간만 넘어서면, 이름붙여지고 경계지어진 우주의 헛된 망상을 초월한 공의 무량 세계가 열린다)에 이를 작파해 버리고, 모든 중생을 정각에 이르게 한 연후에야 공에 들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196)

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상태: 신적인 상태.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해탈의 상태이며, 영웅들이 됨으로써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상태다.(197)

보살의 양성구유적 성격, 즉 남성인 관세음과 여성은 관음의 성격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거시다. 신이 남성과 여성의 성격을 두루 갖추는 에는, 신화의 세계에서는 그리 생소하지 않다. …..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르마프로디토스(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자식) 뿐만 아니라 사랑의 신 에로스(플라톤에 따르면 으뜸 신’)도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갖춘 신이었다.(199)

이 신화는 창조의 신비를 상징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영원성이 시간성으로 발전하고, 하나가 둘에 이어 다수로 분열하며, 둘의 재결합으로 새 생명의 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200)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할례 다음해에, 완전한 남성이 되고자 하는 입문자는 두번째의 제의적 수술을 받는다. 이 두번째 수술은 절개 수술이다(성기의 밑부분을 요도 속까지 절개하여 흉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 흉터는 <페니스 자궁>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남성의 질을 상징한다. 영웅은 의식을 통하여 남성이상의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다. (203)

이 피(흉터를 다시 찢고 뽑아내는 피), 여자의 질에서 나온 월경혈, 남자의 정액, 그리고 오줌과 물과 남성의 유두에서 나온 젖을 동시에 상징한다. 피가 흘러내린다는 것은 곧 피를 흘린 아버지가 삶의 원천과 자양을 내부에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그들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세계의 샘은 동일한 것이다.(203)

우리는 모두 보살 이미지의 그림자다. 우리 내부의 고통은 바로 저 신적인 존재다. 우리와 저 보호자인 아버지는 한 몸이다. 이것은 구원의 통찰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우리 보호자인 아버지다. 그러니 이 무지하고, 유한하고, 자위적이고, 고통받는 육신이 다른 육신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에도 그 적 또한 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도깨비는 우리 기를 꺾지만, 유능한 후보자인 영웅은 <사나이답게> 입문한다. 보라, 그 도깨비가 바로 아버지였다. 우리는 그의 안에 있고, 그는 우리 안에 있다. (211)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란 여신과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다.(213)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적으로 빗나간 욕망과 적의 때문에 비현실적인 공포와 애증의 이중 감정에 시달리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기술이다.(214)

, 어둠, 당잔, 환영, 이슬, 거품, , 성광, 그리고 구름. 이런 것들을 마땅히 보이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215)

형상은 빝 것이며, 빈 것은 형상이다. 빈 것은 형상과 다르지 않고 형상은 빈 것과 다르지 않다. 형상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빈 것이며, 빈 것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형상이다. 관념, 이름, 개념 그리고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216)

의도적인 미완성 공간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촉발하는 공간이다.

⇒ 글을 쓰는데 있어, 너무 친절한 설명을 한다거나 논리 정연하면 이해를 시키는데는 좋을지 모르나 호기심과 관심을 유발하는데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조금 불친절하지만 퍼즐을 맞추듯, 글을 쓰는 연습을 하게 되면 꽤나 흥미로운 글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독자가 참여하는 독서…. 가능하겠지?

나무, 바위, , , 이 모든 것은 살아 있다. 이러한 무정물은 우리는 보고 있고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안다. 우리에게 의지할 것이 없을 때, 문득 그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 바로 이러한 무정물들이다.(222)

보살 신화의 세번째 경이로움은, 첫번째 경이로움(양성적인 형상)이 두번째 경이로움(찰나와 영원의 동일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신적인 차원의 언어로 일컬을 때 시간의 세계란 곧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이다. 아버지에 의해 끼쳐진 생명은 그 안에서 어머니의 어둠과 아버지의 빛으로 합성된다.(223)

마차를 모는 이가 두 개의 바차 바퀴를 내려다보듯, 그는 밤과 낮,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 그리고 모든 대립물의 쌍을 내려다본다.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넘어 신을 아는 이는 바로 신에게로 간다(225)

문학적이고 감상적인 신학의 분위기에서와는 달리, 익살은 철두철미 신화적인 것의 시금석이다.(236)

그러나 그(길가메쉬)가 잠들어 있을 동안 뱀이 그 풀의 향내를 맡고 다가와 풀을 물어가 버렸다. 이 풀을 먹은 뱀은 권능으로 허물을 벗고 젊음을 되찾았다. (244)

만물은 나아가고, 일어나고, 되돌아온다. 나무는 꽃을 피우나 오직 뿌리로 되돌아가기 위함이다.(248)

생명의 원천은 개인의 핵이며, 인간은 자기 내부에서 그걸 찾아낸다.(250)

영웅의 임무가 수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253)

마법의 장애물이 신비스러운 것이면 신비스러운 것일수록, 영웅의 도피가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이 탈출과 저지의 양상은 그만큼 복잡해진다.(257)

영웅의 도망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은 뒤에 남은 사물들이 영웅 대신 대답하여 추격을 지연시키는 수법니다……영웅이 도망치는 대목에서 또 하나 자주 등장하는 방법은, 도망치는 영웅이 끊임없이 장애물을 던져 추격을 지연시키는 수법이다. (261~262)

그리스의 풍자극 알케스티스에서도 주인공은 황천에서 귀환하지만 초인간적인 힘에 의한 것이어서 그 뒷맛은 개운치 않다. 도망에 실패하는 신화는 우리에게 있어서 비극이지만, 성공하는 신화는 신용하기가 어렵다.(269)

거울과 칼과 나무의 의미는 분명하다. 여신의 모습을 반영시켜, 비현현의 은거 상태에서 밖으로 이끌어낸 거울은 세계, 곧 반영된 형상의 장을 상징한다. 거울을 통하여 신은 자신의 영광을 보고 기뻐하는데 이 기쁨은 현현 혹은 창조의 행위를 유발시키는 자극제가 된다. 칼은 벼락에 해당한다. 나무는, 열매는 맺고 소원을 성취시킨다는 의미에서 <세계의 축>이다.

엔릴은 수메르의 천신, 난다는 달의 신, 엔키는 물의 신 및 지혜의 신이다.

영웅은 의식을 잃고 무의식 상태에서 원래 그가 살던 세계로 되살아난다. 불가사의한 도망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280)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281)

빛이 있는 세상의 언어로, 언어가 무용한 저 암흑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수많은 실패의 사례가, 이 삶을 확정하는 관문의 통과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증하고 있다. 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첫번째 문제는, 성취의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겪은 이후에 덧없는 기쁨과 슬픔, 삶의 범용과 소란한 외설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문제다. 왜 그런 세상으로 되돌아와야 할까?(282)

천국에서의 1년은 신화에서의 백 년에 해당한다는 등식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다.백년이라는 주기는 전체성을 의미한다. 360도라는 원의 중심각도 전체성을 뜻한다.(288)

⇒ 결국 구(sphere) 또한 전체성을 의미한다????

자기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 귀환한 영웅은 세계의 충격을 견디어야 한다.(291)

마이무나가 발로 땅을 굴렀다. 그러나 애꾸눈, 곱사등에다 피부가 꼭 두꺼비 등처럼 생긴 도깨비 하나가 나타났다. 그의 한쪽 눈의 안구는 얼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도깨비의 머리에는 일곱 개의 뿔이 달려 있었고, 네 가닥으로 땋은 머리카락은 발치에 치렁거렸으며, 손은 쇠스랑 같고, 다리는 돛대 같았다.(292)

덧없는 만남과 헤어짐,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사랑의 고통 아닌가. 한 영혼이 제 운명을 저주하고, 운명의 장난에 저항할 때 그의 고통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위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 대응하는 것은 감정이 아닌 힘이다.(294)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at-one-ment), (자기화해 self-atonement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말하지만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306)

자기 삶을 영위하려면 죄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참으로 구역질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세상의 예외적인 존재로서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고 허위적인 자기 이미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본질에 이르기까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307)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307)

영웅은 생성된 것의 투사가 아니라, 생성되는 것의 투사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는 것이다> 그는 시간 속의 엄연한 불변성을, 존재의 영속성으로 오해하지 않는다. 변화가 영속성을 파괴할 때도, 다음 순간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313)

영웅은 길을 안내할 그림자 같은 부정적인 존재를 만난다. 영웅은 이를 퇴치하거나 이 권능을 지닌 존재와 화해하여 산 채로 암흑의 왕국으로 들어가거나, 적대자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 이 문턱을 넘어선 영웅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친숙한 힘에 이끌려 이 세계를 여행하는데, 경우에 따라 위협을 받기도 하고(시련),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조력자) 신화적인 영역의 바닥에 다다르면, 영웅은 절대한 시험을 당하고, 그 시험을 이긴 보상을 받는다. (317)

유입되는 신화는, 이를 유입하는 지방의 풍경과 관습과 신앙에 따라 윤색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틀거리가 빗나가게 되기도 한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들이 무수히 재연되다 보면, 고위적이든, 우연이든 와전과 전위가 불가피하다

⇒ 그리스신화의 제우스가 수 많은 여신들과 바람을 피는 것 또한 그리스 시대의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일 볼 수 있다.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 빈사 상태에 빠진 성화는 그 영원한 인간적인 의미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320)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322)

세례에 대한 일반의 해석은 <원죄를 씻는 의식>으로 되어 있다. , 재생이라는 측면보다는 정화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 신화적 상징은 그 함축적인 의미 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 즉 수천 년에 걸친 영혼의 모험을 유추에 의해 표상해 온 만큼 그 대응 관계의 전 체계를 섣불리 펼쳐 보이기 이전에 그것이 지닌 모든 함축적 의미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322)

신화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되어 온 심리학이다.(325)

이 세계의 가시적인 모든 구성물(사물과 존재)은 편재하는 힘에 의한 결과라고 가르친다. 즉 이 힘은 모든 구성물의 생성원리이고, 그들이 이 세상에 현현해 있을 동안 그들을 지탱하고, 그들을 채우며, 궁극적으로 그들이 돌아갈 귀소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에서는 에너지라고 부르고 (중략) 정신분석가들은 심성에 나타나는 이 존재를 <리비도>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우주적 현현이 바로 우주 자체의 구조며 우주의 변화인 것이다. (330)

정신분석학자들은 천국, 지옥, 신화적 시대, 올륌포스 산 및 그 밖의 신들의 거처는 모두 무의식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현대 심리학적 해석 체계의 열쇠는 바로 <형이상학적 영역= 무의식>이라는 등식이다. (331)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332)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의식의 어둠으로부터 깨어 있는 시간대로 흘러나오는 생명력의 질서 정연한 흐름에 달려 있듯이, 신화에서도 우주 질서의 연속성은 근원으로부터의 통제된 힘의 흐름이 있어야 가능하다. 신이란, 이 흐름을 통제하는 법칙의 상징적 구현체.(333)

우주의 발생적 순환에 의해 설명되는 철학적 공식이란, 존재의 세단계를 통한 의식의 순환을 말한다. 그 첫 단계는 깨어나는 체험의 단계, 즉 태양의 조명을 받고, 만물에 공통된 외계 우주의 험난하고 총체적인 사시들을 인식하는 단계다. 두번째 단계는 꿈의 체험의 단계, 즉 꿈을 꾸는 당사자와는 본질상 동일한 개인적 내부 세계의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를 인식하는 단계이다. 세번째 단계는 깊은 잠에 빠지는 단계, 꿈을 꾸지 않는 지복의 단계다.(338)

보이지 않고, 말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추정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다. 의식 상태에 있는 만물이 공유하는, 자기 인식의 본질. 현상계는 이 안에서 소멸한다. 이는 평화요, 행복이요, <둘이 아닌 것>이다.(339)

신화는, 존재하는 원자 안팎에 충만해 있는 침묵의 계시록이다. 신화는, 고도로 세련된 형상화 작업을 통하여 마음과 가슴을, 모든 존재를 채우고 둘러싸고 있는 궁극적 신비로 향하게 하는 풍향계다. (340)

우주의 끝을 헤아리고, 그 끝이 곧 시작임을 아는 자라야 현자라고 불릴 만하다.”(토마스 아퀴나스)(342)

모든 피조물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나 필경은 극점에 이르러 파멸하고 그리고 회귀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신화는 비극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참 존재를, 파멸하는 형상이 아닌 다시 태어나는 불멸의 존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신화 체계는 그리 비극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화 체계의 문법을 숙지하고 나면 비극적이란 표현은 천만부당하게 느껴진다. 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존재는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꿈으로 존재한다.(342)

우주알의 이미지는 많은 나라의 신화체계에 등장한다. 이 우주란은 그리스의 밀교, 이집트, 핀란드, 불교 문화권, 그리고 일본의 신화 체계에도 등장한다.(352)

우주란의 껍질은 공간에 떠 있는 세계의 뼈대료, 그 안에 있는 풍부한 생식력은 식을 줄 모르는 자연계 생명력의 역동성을 나타낸다.(353)

우주에 있어서는 개체이든 창조적인 어버이든 그 영속적인 근본은 하나이며 따라서 동일하다. 그래서 이 신화에서는 조물주를 자아라고 부른 것이다.(356)

신화 소에서는 부동하는 원동력, 즉 살아 있는 전능자가 관심의 중심으로 떠오를 때마다 우주의 조형에 대한 초자연적인 자발성이 뒤따른다.(358)

신화 체계의 양식은, 노인이 어떠어떠한 일을 했다는 식으로 극명하게 말해버릴 수는 없다.(369)

민간 신화들은 초자연적 발산물이 공간적 형식을 취해 돌입해 들어오는 순간에만 창조 설화를 흡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신화들은 인간의 상황을 평가한다는 본질적인 점에 있어서 위대한 신화들과 차이가 없다.(373)

우주적 여신은 여러가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인가에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창조의 결과란 다양하고 복잡한 데다, 창조된 세계의 관점에서 경험할 때면 상호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어머니는 동시에 죽음의 어머니다. 이 어머니는 기근과 질병이라는 추악한 마귀 가면을 쓴다. (380)

신화는 어느 곳에든, 갖가지 얼굴로 존재한다. (389)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내적인 신성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400)

숙명적인 아기는 기나긴 암흑의 기간을 견디어야 했다. 이 기간은 극히 위험하고,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며, 치욕을 당하는 기간이다. 그는 자기 내부로 깊이, 혹은 미지의 세계인 외부로 던져졌다. 어느 경우든 그를 당혹하게 하는 것은 미지의 암흑이다. 이곳은 의외의 존재, 자비로운 동시에 심술궂은 존재의 영역이다. 천사가 나타나기도 하고, 아기를 도와주는 동물, 어부, 사냥꾼, 할머니, 혹은 농부가 나타나기도 한다. 동물들 사이에서 자라거나, 혹은 지그프리트처럼 생명의 나무 뿌리를 파먹는 땅 귀신 사이에서 자라거나, 혹 작은 방에서 혼자 자라면서 이 어린 세상의 신참자는, 헤아리고 이름 붙여질 수 있는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권능이 있음을 배운다. (410)

폭군은 자만한다. 그리고 자만은 바로 폭군이 파멸하는 씨앗이다. 폭군은, 자기 힘을 자기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만한다. 따라서 그는 그림자를 본질로 오인하는 광대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422)

영웅의 행적은 순간의 결정화에 대한 끊임없는 파괴 행위다. 이야기는 순환한다. 신화의 초점은 발전하는 단계에 모인다. 변모, 유동성, 일정하지 않은 무게는, 살아 있는 신의 특징이다. 한 시대의 위대한 형상은 부서지고, 토막 나고, 이윽고 흩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요컨대 도깨비, 폭군은 불길한 사상의 옹호자이며, 영웅은 창조적인 삶의 옹호자다. (422)

신부의 침대에 드는 전제 조건으로 제시되는 어려운 임무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영웅 신화에도 등장하는 모티프다. 이러한 패턴의 이야기에서 쳐녀의 부모는, 영웅을 구속하는 족쇄 역할로 등장한다.(431)

그러나,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이러한 영웅이 되려면 보다 깊은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심장한 개념의 작용의 결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영웅의 상징이 명검이라면 두 번째 영웅의 상징은, 권위의 훈장, 혹은 율법서다. 첫 번째 영웅의 특징적인 모험이 신부(=)를 얻는 것이라면, 두 번째 영웅의 특징적 모험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곧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다. (432)

폭군인 아버지를 제거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구세주적 인물은(오이디포스처럼) 그 아버지의 운명에 한걸음 다가선다. … 아들은 아버지를 시해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은 원초적인 혼돈 속으로 해소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 종말 그리고 재개의 비밀이다(442)

<죽음은 하나인가, 여럿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그가 거기에 있는 한 그는 하나지만, 여기 자식들 안에 있을 때는 여럿이다.> (441)

삶의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영웅의 유형이 있다. 즉 성자, 고행자, 출가자 로서의 영웅이다.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엄격하게 '자아'를 통제하고, 소리와 빛과 맛 같은 색에 집착하지 않고, 애증을 버리고, 고독 안에서 살고, 소식하고, 말과 몸과 마음을 삼가고, 명상과 정신 집중에 전심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힘쓰고, 이기심과 권세, 자만심과 색욕, 분노와 편견을 떨치고, 마음 안에서 정일을 얻고,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능히 불멸의 존재에 값 하는 사람이라 일러 무방하다. (443)

영웅은 잠을 자다가도 운명의 때가 되면 일어난다. 그는 다른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있다. (449)

나는 모든 피조물의 가슴 안에 있는 실재다. 나는 모든 존재이 시작이며, 끝이다.”(458)

인간은 모든 단계의 삶을 경험하고, 마침내 우주적 알이란 벽을 깨뜨릴 수 있게 된다. 단테의 신곤은 이 단계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옥편>은 육신의 욕망과 행위에 얽매인 영혼의 참담함을, <정화편>은 육신의 경험이 영혼의 경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천국편>은 정신적 자각의 단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462)

신화 체계는 현대의 석학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 했고, 뮐러는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라고 했고,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이라고 했으며,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이라고 했고,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 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된다.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 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478)

삶의 양태에서, 개인은 인간의 전체 이미지의 단편이며 일그러진 형상일 수밖에 없다. …… 더구나살면서 맡는 역할상 개인은 다시 기술자, 상인, 하인, 혹은 도둑, 성직자, 지도자, 아내, 수녀, 혹은 매춘부로 전문화한다. 개인은 이 모두 일 수 없다. 따라서, 개인의 전체성은 개별적인 구성인자로서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개인은 한 구성 요소일 수 있을 뿐이다. 개인은 이 집단으로부터 삶의 기술, 사유의 바탕인 언어, 삶의 자양인 이상을 빚졌다. 그의 육체를 이루는 유전자도 그 사회의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개인이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미할 뿐이다.(479)

다른 길도 있다. 즉 사회적인 의무와 대중적 제의와는 정반대로 향하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481)

오늘날 집단 속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계도 그렇다. 모든 것은 개인에 귀착된다. Rfjsk 여기서 의미란 완전히 무의식적이다. 인간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어떤 동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의 심성의,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의 교류 통로는 단절되고, 우리는 둘로 찢기고 말았다.(484)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 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구세주의 십자가를 지는 일)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488)

시인적 본성은 심리학적 관심과 무관하지 않고, 심리학적 관심은 신화에의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토마스만)(490)

 

3. 내가 저자라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차례

 

머리말

 

<프롤로그 원질신화>

신화의 꿈 / 비극과 희극/ 영웅과 신/. 세계의 배꼽

 

<1부 영웅의 모험>

 

1장 출발 /영웅에의 소명 / 소명의 거부 / 초자연적인 조력/ 첫 관문의 통과/ 고래의 배

 

2장 입문

시련의 길/ 여신과의 만남/ 유혹자로서의 여성/ 아버지와의 화해/ 신격화/ 홍익

 

3장 귀환

귀환의 거부/ 불가사의한 탈출/ 외부로부터의 구조/ 귀환 관문의 통과/ 두 세계의 스승/ 삶의 자유

 

4장 열쇠

 

<2부 영웅의 모험>

 

1장 유출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우주의 순환/ 허공에서 공간/ 공간의 내부에서 생명/ 하나에서 여럿으로/ 창조의 민화

 

2장 처녀의 잉태

어머니 우주/ 운명적 모태/ 구세주를 낳는 자궁/ 미혼모의 민화

 

3장 영웅의 변모

최초의 영웅과 인간/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 전사로서의 영웅/ 애인으로서의 영웅/ 황재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구세주로서의 영웅/ 성자로서의 영웅/ 영웅의 죽음

 

4장 소멸

소우주의 끝 / 대우주의 끝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변신 자재자/ 신화, 제의, 명상이 기능 / 오늘날의 영웅

 

 

 

* 나에겐 어려운 책이었다. 신화를 접할 때도 그랬고, 레이스때 접했던 책(법의 정신)도 그랬지만, 일단 내용이 방대하면 집중하기 어려운 편이다. 나 개인에 국한되는 이야기인지, 다른 사람들도 해당되는 사항인지 확실하지 않다. 얘기했던 것처럼, 다루는 내용이 방대하거나 용어가 어렵거나, 또는 개인적으로 심적인 여유가 없을 때 주변이 산만해지고 집중을 잘 못하는 것 같다. 버릴 것 버리고 취할 것 취하는 스타일의 독서를 하는 편도 아니어서 독서과정이 더디기만 하고 그런 시간이 더 하면 더할수록 지치게 된다. 이 책은 앞으로 두번에서 세번정도는 더 읽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셉캠벨의 전작들, 신화와 힘, 신화와 인생은 신화, 인생, 영웅, 종교 등에 대해 개괄적으로 다양하게 다르고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영웅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웅이 어떤 계기로 여정을 떠나게 되는지, 어떤 장벽들을 만나고 이겨내는지, 다시금 돌아오는 과정이 왜 그리도 어려운지, 조력자들은 누구인지…… 이러한 영웅의 여정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사이사이 많은 이야기(신화,종교,꿈 등)들을 포진시켜놓았다.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다 적절히 배치시킨 것은 괜찮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이 토막으로 조각나 주제에 적절히 예시를 들어주려 하다보니 꽤나 많은 이야기들이 꽤나 산재해 있다. 산만하고 복잡하다. 특히 대중에게 낯설은 인도, 수메르 원주민 이야기등을 가져오니 그 용어 또한 쉽게 와닿지 않는다. 어찌보면 신화에 대해 공부하는 전공자나 또는 극히 드문(?!) 관심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중이 많이 찾을 만한 내용과 소재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영웅을 원한다. 영웅은 난세에 탄생하니 전반적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제는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사족).

이러한 영웅에 대한 대중들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줄 영웅이야기는 없을까?! 개봉만 하면 수백만을 돌파하는 영화들이 있다. 바로 히어로물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만해도 몇 편인가. ‘아이언맨3’, ‘맨오브스틸(슈퍼맨)’ ‘어벤져스’, ‘배트맨 다크나이트등등. 대중이 관심은 오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용어가 어려운 타 문화권의 신들이 아니다. 비록 고전과 전승되는 이야기들의 의미는 따로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겠지만, 이는 대중의 마음과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굳이 영웅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면 이 책은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 또는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내가 책을 쓴다면, 나는 신화에 대해, 그리고 영웅의 여정에 대해 쉽게 풀어쓴 책을 쓸 것이다. 주요 소재는 아마도 영화에서 가져올 것 같다. ‘히어로물은 가볍다고?!’ 최근의 히어로물은 상당히 무겁고 철학적이다. 영웅이자만 대중과 섞일 수 없어 고뇌하는 배트맨, 심연에서 허우적대다가 꼬마아이(어린시절의 자신을 대변하는)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하게 되는 아이언맨,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방황하고 고민하는 슈퍼맨(맨오브스틸). 이러한 이야기들의 원형은 아마도 신화일 것이다. , 일본발 애니메이션, 즉 재패니메이션은 어떤가. 필요 이상으로 지극히 철학적이지 않은가. 영화라 하여 과거처럼 그저 가벼운 klling time 용이 아니다. 최신 히어로물 영화는 다른 신화들과 비슷한 신화, 즉 원질신화에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현대적인 영웅이야기들을 토대로 이와 같은 책을 쓸 수 있겠다.

다만, 주의할 점은 이런 현대 히어로물을 다룬 책은 예상외로 많을지도 모른다. 그 책들을 먼저 읽고 나만이 추구할 수 있는 차별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필수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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