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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2일 10시 10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저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민음사(2007년 출판), 이희재 번역.
제목: 미완의 시대(Interesting Times, A Twentieth-Centur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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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책을 마주할 때 목차를 보기보다는 책 표지를 관찰한다. 특히 저자의 사진이 직접실린 자서전은 표지에서 많은 것을 드러내고 있다. 에릭 홉스봄. 굵은 능선의 금발 머리에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주름살. 외모에 자신없는 듯 책으로 반쯤 가린 얼굴. 고집스럽고 장난스러운 뿔태안경 너머로, 미완의 시대에 대한 연민을 가득 담은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미완의 시대’는 그의 눈빛만으로도 가장 별스럽고 끔찍한 세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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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많은 역저들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인물이었다. 역사에 관한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을 썼으며 이 밖에 <노동하는 인간>, <산업과 제국>, <원초적 반란자들>, <극단의 시대>, <노동의 세기, 실패한 프로젝트>,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등을 집필하였다. 그는 1917년 이집트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아버지와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영국계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님을 여위고 소년가장역할을 떠맡아야 했던 그는, 힘든 마음을 품고 별스러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살았다. 직업혁명가를 꿈꾸었지만 자신한테는 맞지 않는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얻고 역사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90세로 최고의 마르크스 역사가로 손꼽히며, 교수로 활동하면서 세계각지를 돌며 강의와 강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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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은 자신이 몸으로 겪어낸 별스러운 이 시대를 몸 밖으로 빠져나와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는 20세기에 가장 위력을 떨친 악마의 하나는 정치적 '열정’이라고 말하면서, 이 말처럼 20세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홉스봄이 그런 열정의 핵심을 꿰찬 것이 바로 공산주의였다. 그는 1990년대 초반까지 구십평생을 공산주의자로 활동하였다. 1930년대는 당에 인생을 걸었고 모든 것을 바쳤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구십년의 공산주의 활동은 실천 그 자체였다. 그의 실천 열망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도 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의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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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를 인식하는 것, 즉 자기 몸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바깥에 서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것은 에릭 홉스봄이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았음에도 ‘유대인 아닌 유대인’으로 자유롭게 살았다고 이야기하는데서 엿볼 수 있다. 유대인이 박해를 받은 ‘희생자’ 의식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독립된 영토를 가지고 모여 사는 것에 대하여 인류 전체에게도, 유대인 스스로에게도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하였다. 히틀러의 태동을 직접 몸으로 겪어낸 그였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밖으로 나와 객관적으로 사실을 바라 보았다. 그 힘은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눈빛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연성은 어린시절 세계의 중심지를 누비고 다니면서 철새처럼 별스러운 시대를 살아낸 경험이 바탕이 되어졌다. 그는 그 상황을 삶의 비관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개인으로서는 고달팠지만 역사가로서는 각별한 자산이라고 회상한 그의 말처럼, 관찰자와 외부자로서 살아야 하는 고독한 숙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삶이, 역사가로서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 계기로 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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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은 1955년부터 째즈에 깊게 관여하기 시작했다. 홉스봅은 자신이 째즈에 빠져들던 시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첫사랑을 느낄만한 열여섯 아니면 열일곱 살 무렵에 나는 이렇게 음악의 계시를 받았다. 내 경우에는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 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 였다’. 그는 대학교수와 재즈 평론가를 구별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10년 동안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을 썼다. 하지만 그에게 재즈와의 첫사랑은 단지 절대 감정으로만 남지 않았고 실천으로 이어졌다. 1958년 노팅힐 인종폭동이 벌어지고 나서 영국에서 벌어진 초창기 반인종주의 운동의 하나인 “인종 화합을 위한 스타 운동”에 재즈를 통해서 관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문화와 역사를 함께 가는 존재로 바라보았고 역사와 음악을 비교하여 살아온 시대를 설명하였다. 재즈와 록음악을 구세대 좌파와 1960년대의 신세대 좌파 사이의 움직임으로 바라보면서, 1960년 문화운동 시대에 호흡을 같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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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은 혁명은 정치적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혁명가들은 국내가 되었든 해외가 되었든 낡은 정치 체제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정치 체제로 바꾸어서 새롭고 더 나은 사회를 세우거나 그 밑바탕을 깔아 놓아야 한다고. 여기에서 그는 변화를 넘어선 변혁의 열쇠를 가지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그 열쇠는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또한 목표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목표를 찾아 나서는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성배를 영영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배가 아니라 성배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아서 왕의 말이 옳지 않은가?” 성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공산주의자로 자신의 원칙을 가지고 별나고 끔직한 20세기를 경험해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변혁의 주체로 바라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2. 마음을 울리는 글귀

내가 얻으려는 것은 역사적 이해이지 동의나 승인, 연민이 아니다.(11)

특히 나처럼 직관과 우연에 힘입어 주제를 선택한 다음 나중에 가서 조리정연하게 내용을 엮는 역사가의 경우에는 더더욱,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 다시 말해서 자기 몸 안에있으면서도 동시에 바깥에 설 줄 아는 능력이 이성을 신뢰하고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능력 다음으로 중요하다(13)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또 우리가 기댔고 얽혀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개개인의 삶에만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에 빛을 던진다.(27)

‘유대인 아닌 유대인’으로 자유롭게 살았다.(54)

나는 조상들이 믿었던 종교의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심정적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한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연대를 요구하는 작지만 호전적이고 문화적으로 낙후했으며 정치적으로 공격 일변도로 나아가는 민족국가에는 더더욱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54)

나치의 대학살에 기대어, 유대인은 사상 유례가 없는 박해를 받은 집단이라고 세계 양심에 호소하는 ‘희생자’의식에 나까지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는 겨레의 휘장을 달지도 않고 나라의 깃발을 휘날리지도 않는다.(54)

내가 그 일원으로 태어난 종족이 ‘선택’받았거나 특별한 민족이라는 주장이 조금이라도 정당하다면 그들이 인류를 위해 이룩한 괄목할만한 업적 덕분이라고 생각한다.(54)

그리고 만일 우리가 사고 실험을 통해서 헤르츨의 염원이 이루어져서 모든 유대인이 유대인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자식에게만 완전한 시민권을 주는 독립된 영토를 가진 작은 나라 안에 모여 산다면 그것은 인류 전체에게도, 유대인 스스로에게도 안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55)

10대 때 어머니의 시를 읽고 내가 그레틀 이모한테 별로라고 이야기했더니 이모가 펄쩍 뛰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속여서는 안된다고 그때부터 생각한 모양이다.(77)

어머니는 신앙이 없었고 유대인이라는 사실에도 그저 무덤덤했다. 단순한 부정도 얼마든지 정체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의 태도에 어정쩡하다면서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머리가 여물어서 반성하는 능력을 갖게 되기 전에는 정치 참여를 미루는 것이 좋다고 넌지시 유도한 것도 어머니였고 나이가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도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솔직했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를 믿었다.(78)

병원에 침대에 앉아서 성숙을 준비하던 나와 죽음을 준비하던 어머니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지금도 생각난다. 어머니는 살고 싶어 했다.(79)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 세기의 4분의 3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인 지질학적 퇴적물을 벗겨내 그 속에 묻혀 있던 낯선 사람을 드러내거나 찾아내서 다시 뜯어맞추는 것을 뜻한다. 이 너무나 멀고 낯설어 보이는 아이를 되돌아 보고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나는 만약 그 아이가 다른 시대에 살았더라면 지적 활동에 종사했으리라는 예측은 누구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103)

이모는 그곳에서 평생의 꿈을 이루었다. 헛간과 광을 개조하여 ‘올드 비엔나 카페’라는 자기만의 성을 만든 것이다. 늙어서도 도전적인 붉은 머리 빛깔을 잃지 않았던 이모는 1975년 여든 두 살을 일기로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138)

첫사랑을 느낄만한 열여섯 아니면 열일곱 살 무렵에 나는 이렇게 음악의 계시를 받았다. 내 경우에는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외모가 워낙 자신이 없다 보니 나는 보나 마나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육체적 관능과 성욕을 억눌렀다.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 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 였다.(140)

“사회주의 국가는 묵은 관습의 단점은 없애되 장점은 살려 나가는 새로운 사회주의 관습을 만들어내야 마땅하고 또 만들어낼 것이다.”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규칙이 없는 사회를 염원하면서 반란과 혁명에 뛰어들었던 여느 운동가들과 달리 보수당 성향의 공산주의자 기질이이때부터 싹텄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143)

나는 삼촌처럼 되기 싫었다. 아니, 삼촌의 자기연민, 금세 달아올랐다 식어버리는 불안한 성격, 불같이 화를 냈다가는 감정에 호소하는 감성성의 표출이 당혹스러웠고 한심스러웠다. 화를 내는 것은 그만큼 무력하다는 뜻이었고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도와달라는 뜻이었다.(144)

삼촌에게 촬영장은 인간이 창조와 만나는 자리였다.(147)

내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사회 안에서 예술가와 예술(사실은 문학)이 차지하는 역할과 성격, 마르크스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부 구조는 어떻게 토대와 연관되는가?”하는 주제였다.(167)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를 꼼꼼히 분석하여 그 바탕 위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점쳤다. 모든 정황, 모든 연결고리와 관계를 빠짐없이 고려하여 자본주의 문확을 꼼꼼히 분석하면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열일곱 살 때 나 스스로에게 던졌던 역사적 질문은 내가 역사가로서 나의 연구 방향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167)

에릭 존 어니스트 홉스바움. 호리호리하고 젓가락 같고 구부정하고 못생기고 머리는 금발인 열여덟 살 반 먹은 녀석, 이해력이 빠르고 피상적이지만 일반 상식이 대단히 많고 이론적이고 보편적인 영역에서 남다른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거드름을 피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데 문제는 본인도 이것을 믿기 때문에 그만큼 더 위험하고 또 때로는 먹혀들 때가 있다는 것. 사랑에 빠지는 적은 없고 욕정을 승화하는 데 상당한 재주가 있어 보이는데, 자주 그런 건 아니지만 자연이나 예술을 감상하면서 맛보는 희열로 표현되기도 함. 도덕심은 전혀 없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쳤음. 어떤 사람은 그를 몸시 역겨워하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우습게 봄. 혁명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아직까지는 신통한 지도력을 보이지 못했음. 작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룔를 주무를 수 있는 역량과 끈기가 모자람. 태산을 옮겼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만 하지 신념은 없음. 허영과 자만에 빠져 있음. 겁이 많음. 자연을 정말로 사랑함. 독일어를 까먹고 있음.(169)


결국 나는 내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직업혁명가’의 길은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얻고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면서 먹고 살 방도를 찾기로 한 발 물러섰다. 1968년의 거센 학생 운동 열풍 이후에 유행했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정도는 아니었지만.(191)

사회주의 클럽은 상당수의 학부생 서클이 갖지 못한 확실한 장점이 있어다. 여자만 들어갈 수 있는 거턴칼리지와 뉴넘칼리지의 여학생이 회원중에 많았다는 점이었다. 여학생의 정치 의식은 남학생만큼이나 진지했지만 남학생처럼 딱딱하지는 않았다.(199)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줄기차고 꿋꿋하게 희망과 확신을 잃지 않고 뛰었다. 우리는 한 경기 한 경기에 전력을 쏟아 붓는 축구선수들처럼 똘똘 뭉쳐서 위기를 하나하나 돌파해 나갔다.(200)

우리가 살았던 1930년대는 올바른 가치를 내결고 악의 무리와 정면 대결을 벌였던 시절이다. 우리는그것을 즐겼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일에 대해서 예전의 우리와 똑같은 문제 의식을 느끼면서도 우리하고는 달리 자기들의 이분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또 거기서 좌절감을 느끼지만 우리는 불행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골고루 감정과 열의를 쏟아 부었다”아니 공적 영역을 굳이 나누려고 애쓰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우리는 이런 노래도 불렀다.

공산주의가 우리 세대의 가장 똑똑한 남녀는 왜 그렇게 많이 빨아들였는가 하는 물음과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의 역사에서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20세기에 가장 위력을 떨친 악마의 하나는 정치적 '열정’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처럼 20세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 그리고 그런 열정의 핵심을 꿰찬 것이 공산주의였다.(215)

여기서 공과 사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217)

권력은 어김없이 개인을 부패시킨다고 단언 할 수는 없지만 부패한 권력은 떨치기 어려운 유혹인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전쟁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권력은 개인의 자격으로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일을 우리가 하게 만들고 또 그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219)

공산당은 낭만과 거리가 먼 세계였다. 낭만은커녕 조직과 반복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그것은 ‘결정은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과 ‘당론’이라는 두 가지 원칙으로 굴러갔다.(224)

죽어가는 당원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이 당과 스탈린과 동지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당에 인생을 걸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당에 바쳤다. 그 대가로 우리는 당으로부터 승리한다는 확신과 형제애를 경험할 수 있었다.(226)

우리가 투표할 내용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공식 당론을 거듭 정당화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인내지도’는 이런 절차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였다.(227)

나는 가장 치밀한 혁명가도 “그런 이상주의 내지는 ‘실현 불가능한 기대’를 품고 있으므로 사회주의 세상이 왔다고 해서 모든 걱정과 슬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실연과 상심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무리 생각이 트인 사람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고 썼다.(230)

젊은 유대인이 적지 않았던 것은 유대인이 겪는 고통이 아무리 컸어도 그것은 온 세상에 만연한 억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231)

우리는 성배를 영영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배가 아니라 성배를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아서 왕의 말은 옳지 않은가? 성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홉스봅은 스스로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명망 높은학자의 삶은 드라마로 가득 찬 것이 아니다. 설령 드라마라 하더라도 그것은 관직에 몸 담았던 사람의 삶과 마찬가지로 그 안에 직접 뛰어들었던 사람들에게나 흥미를 끌 수 있을 내용이다.(363)

재즈는 연예 산업의 일부라는 것을 두발 하면 잔소리지만 재즈는 “특정한 음악 형실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두드러진 단면”이기도 하다.(369)

그가 만들거나 매만지려고 했던 것은 건물이 아니라 석공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과 손길이 닿은 자연, 전망, 상징과 기념물이 하나로 어우러진 공간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사람들의 소우주였다. 클러프가 생각한 환경은 “아름다운”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387-8)

1960년대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늘 겉돌았다는 사실뿐이다.(416)

1960년대에 제3세계는 혁명의 희망을 제1세계에게 다시 심어주었다. 국제사회를 열광시킨 두 주역은 쿠바와 베트남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것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듯이 약자가 최강자를 상대로 따낸 승리라는 데서 더 큰 뜻이 있었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게릴라”라는 말은 세계 변혁의 열쇠로 인식되었다. (419)

거창한 표현과 우주적 기대로 가득 찬 먹구름이 일상의 비로 돌변하는 순간 환희와 정치, 진짜 힘과 꽃의 힘, 말과 행동의 차이는 다시금 확연해졌다. 여호수아가 나팔을 힘차게 불어 예리코 성을 무너뜨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구약의 기록일뿐 현실은 그랬을리 만무하다. 젊은이들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427)


20세기 후반의 역사에서 일어난 정말로 기념비적인 사건은 이념도 아니고 학생들의 대학 점거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작업복이었던 청바지의 힘찬 진군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어디까지나 원칙의 문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젊은 옷을 안 입기로 결심했고 또 실제로 안 입었다. 1960년대를 산 역사가에게 그것은 불리한 조건이었다. 국외자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1960년대에 대해 쓴 것은 청바지를 한번도 입은 적인 없는 자서전 집필자가 딱 쓸 수 있는 내용이다.(432)

거의 반 세기 동안 이어진 세계 핵전쟁에 대한 악몽을 종식시킨 것도 고르바초프였고 동유럽에서 소련의 위성국가들을 순순히 풀어준 것도 고르바초프였다. 베를린 장벽을 허문 주인공은 사실은 고르바초프였다. 수많은 서방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고르바초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앞으로도 간직할 것이고 그가 도덕적으로 정당했다는 생각도 잊지 않을 것이다. (457)

대부분의 역사가는 아무리 먼 과거를 다룬다 하여도 과거를 탐구하다 보면 결국 현재와 눈앞의 사안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또 현재와 눈앞의 사안을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역사를 이해 한다는 것은 전문가에게 만이 아니라 시민에게도 중요하다.(461)

역사가 길고 짧고를 떠나 국가와 체제, 정체성을 추구하는 집단, 냉전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수면 아래 은폐되어 있었던 힘들이 역사에 가하는 정치적 압력은 유례없이 강해지고 있고 현대 언론도 장사속으로 역사를 전에 없이 키워주고 있다. 진짜로 있었던 과거가 아니라 자기 목적에 부합되는 과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고 날조되는 역사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는 위대한 역사신화의 시대다. 역사 전문가들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481)

가르치기와 글쓰기의 핵심은 모두 소통이다. 두가지를 모두 즐기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절해고도에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누가 읽을지도 모를 글을 책처럼 생긴 병에 담아서 드넓은 바다로 띄워 보내야 하는 막막한 처지에서 벗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488>

역사책을 쓴다는 것은 한 나라의 정치와 세계의 정치에 깊이 발을 들여 놓는다는 것인데 정치와 역사를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497)

나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식으로 삶이 풀려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부질없고 어리석기조차 하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508)

이 대작과의 첫 만남을 내가 도저히 잊지 못하는 까닭은 관능미가 아니라 이 뛰어난 화가가 일시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겨누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속된 말로 “까놓고 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올랭피아다. 누군가가 나를 프랑스로 개종시켜야 한다면 그 적임자는 바로 마네였다.(512)

아름다운 곳에서 우정을 안겨주었고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가 얼마나 놀라운 창조력을 지닌 나라인가를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청춘을 넘기면 보통 사람은 웬만해서는 살아 있다는 데서 순수한 희열을 맛보기가 어렵지만 이탈리아는 그 드문 기쁨의 순간을 열어주었다. 이탈리아는 또 역사가로서 탐구해 볼 만한 주제를 안겨주었다. 이탈리아 독자들도 내 책에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었다.(578)

말을 타는 사람이 느끼는 공포를 말도 알아차리는 것처럼 사람도 상대방이 열등한 존재로 대접받으리라고 지레 짐작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안다. 지배 계급과 정복자는 이렇게 알아서 기는 의식을 늘 이용해먹었다. 전쟁 전에 내가 사귄 ‘식민지’ 친구들은 자신들이 열등하다고생각하지 않았다.(592)

이제 미국은 세계 질서의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누가 세계를 위협하는지도 자기 혼자서 정의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은 누구든지 잠재적으로 현실적으로도 적으로 여겨졌다.(662)

세계에 어느 때보다도 역사가가, 특히 의심 많은 역사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663)

우리 세대의 경우와는 달리 공적 세계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규정짓는 사건들의 시간적 계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잘해야 머리로 이해하는 주제가 될 뿐이고 잘못하면 “우리 시대 이전”에 벌어진 잡다한 사건들의 일부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내 또래의 역사가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다르게 보았던 과거의 중요한 지점, 그 또 다른 나라로 가는 여행의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 거기서 살아 보았기 때문이다.(664)

20세기를 80년 넘게 살다 보면 정치 권력과 제국, 제도가 얼마나 가변적인가를 저절로 배운다. ‘미국의세기’가 끝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는 그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빗나간 예상은 아니리라.(665)

그 기분이 어떤가 하는 것은 오직 우리만이 말해줄 수 있다. 되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우리는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라고.(666)

역사는 우리식의 종교 전쟁에서 비롯되는 격정, 감정, 이념, 공포에서만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위험한 ‘일체감’이라는 유혹도 멀리해야 한다. 역사에 필요한 것은 기동성과 넓은 영토를 내려다보고 살필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자기의 뿌리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다.(667)

“머리가 모르는 가슴의 사연”
아무리 덩치가 크다하더라도 일체감을 느끼는 집단은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그 집단의 입맛에만 맞도록 달라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과거 역시 그런 식으로 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669)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672)

3. 내가 저자라면

’미완의 시대‘는 자서전이라기 보다는 역사서에 가깝다. 이 책은 모두 20장으로 되어져 있다. 프롤로그에서 16장까지는 홉스 봄 개인사가 정치와 맞물려 전개되고, 17-8장에서는 역사가로서의 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 19장에서 20장까지는 그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나라와 도시들의 이야기이다. 자서전의 형태를 빌려 자신의 개인역사와 사회역사를 균형 있게 서술한 구도는 신선했다. 그리고 그의 기록습관으로 다져진 엄청난 정보와 보편주의 역사관은 한세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가 펼쳐 보인 지도는 표지에 적힌, 가장 별스럽고 흥미로운 20세기의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가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지도였다. 물론 홉스봄의 말처럼 그 안에 직접 뛰어들었던 사람들에게나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일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 시대를 몸으로 겪어 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렵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홉스 봄은 개인의 역사 또한 어떤 연민이나 자기 감정 없이 정직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사랑에 빠지는 적은 없고 욕정을 승화하는 데 상당한 재주가 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그의 책은 가을의 낙엽을 떠오르게 했다. 화려한 색깔로 나의 시선을 잡아끌지만 직접가서 만져보면 너무 건조하여 무서지는 낙엽들처럼 생기가 없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억울하게 상처받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지만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는 가슴으로 다가오는 글이 절실하기도 했다.

사진속의 그의 눈빛에는 분명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과 연민이 가득하다. 석기시대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부러워 석시 시대의 망치를 그럴듯하게 만든 기억이나 고백수첩, 환상 모험 소설과 공상 소설을 통한 공명의 경험, 죽음을 준비하던 어머니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장면등 책 속에는 그의 아이 같은 모습과 감성이 묻어나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새 역사가로서의 홉스봄으로 돌아가버린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버지와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영국계 유대인으로 태어나 일찍 부모님을 여위고 소년가장역할을 떠맡아야 했던 그.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별스러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세월. 직업혁명가를 꿈꾸었지만 자신한테는 맞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고 역사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그때, 공산주의자로 수십년을 자신의 원칙안에서 살아온 그의 삶속에서. 끔찍한 전쟁과 인권유린이 벌어진 역동적인 20세기의 역사속에서 얼마나 무수한 감정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을까.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홉스 봄에게 물어 보았다. 그래서 ‘시방 당신의 느낌은?’

앞뒤 뒤적이며 어렵게 읽어낸 ‘미완의 시대’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혹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역사에 대해서 엄청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홉스봄의 말처럼 또 다른 나라로 가는 여행의 길잡이 노릇을 혹독하게 해주었다. 나라면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냈을까 생각해 보면, 굉장한 열혈 투사가 됐거나 수용소 독가스실에서 소리소문 없이 죽어 갔을거라는 상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것 또한 수많은 영화와 책이 전해준 하나의 단편일 것이다. 상상력을 자부하는 나지만 ‘미완의 시대’를 읽고 나서는 아주 솔직히 어떤 것도 상상하기 힘들다. 기회가 된다면 20세기의 흐름을 하나 하나 이해하고 느껴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져보고 싶다. 그리고 그 시대 한국의 역사와 어떤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설사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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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12 18:24:57 *.72.153.12
소라씨 저자에 대한 글 너무나 명쾌하다. 어려운 책 읽다가 이 글 보니 내가 다 시원~하네. 두꺼운 책 시원하게 요약했네, 너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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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2 23:01:28 *.140.145.63
소라님.. 저자의 사진에 대한 인상평이 새롭네요..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바라본 에릭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느낌으로
는 아쉬움이 느껴지는군요..

위 한정화님 말씀대로 명쾌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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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7.03.13 12:22:36 *.111.247.32
기찬님. 전 기찬님의 답글 정성에 정말 놀라고 있어요.
한사람 한사람을 바라보고 표현해주시는 마음이
정말 감동적인데요.
그런 에너지는 또 어디서 나오시나요?
고마워요. 기찬님^^ (2007-03-1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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