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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1일 23시 28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이제껏 살아오면서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사가’란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특별히 역사학이란 학문에 대해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지나간 과거에는 연연해하지 않는 성격 탓에 이미 엎질러진 물과도 같은 과거를 연구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해서 말이다.

하지만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자라온 환경과 어린 시절의 배경을 알아야 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조금이라도 예측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지나 온 20세기를 들여다볼 필요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2007년 3월의 어느 봄날, 내 손에 쥐어진 “Interesting Times”[미완의 시대]라는 책 한 권을 통해서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과연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이 역사가의 생각과 가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볼 수 있을까 싶어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그의 약력 이외에 내가 접할 수 있는 다른 자료들을 조금 찾아봤다.

그는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1999년도에 출판된 “The New Century”란 책 서두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가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 자체보다는 사건들이 일어날 확률에 더 중점을 두고 연구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얼마만큼 사건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 이다” 에릭 홉스봄이 “Interesting Time”[미완의 시대]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어딘지 모르게 상당히 객관적이고, 역사 속의 사건들에 대해 극단적 감정 없이 거리감을 두고 써 내려갔던 이유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인용문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을 꼽으라는 기자의 말에 과연 이 역사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난 어김없이 남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거창하고 신선한 답변을 하려 노력했을 텐데 에릭 홉스봄은 이렇게 대답했다. “한 어머니와 그의 품에 안긴 자식들”이라고. 인간의 다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어머니’라는 그의 말에, 난 그가 고아로서 자라야만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봤다. 유명한 역사가로 성공한 그의 인생의 끝자락에서 그는 아주 평범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노벨 평화상 100주년 심포지엄이 개최됐던 2001년 12월의 어느 날, 노르웨이의 오슬로 어느 호텔에서 에릭 홉스봄은 “20세기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연설을 통해 그다지 평화롭지만은 않은 미래를 예측했고, “The New Century”에서도 책의 머리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래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는 않다” 라고.


<마음에 들어온 인용문과 그에 관한 나의 짤막한 견해>

에릭 홉스봄 왈:
“과거는 또 다른 나라지만, 거기서 한때 살았던 사람들에게 흔적을 남겼다. 과거를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스스로 깨우치기에는 너무 어렸던 사람에게도, 또 워낙 역사와는 담을 쌓고 살아가도록 구조화된 문명 안에서 살다 보니 과거에 대해서 ‘하찮은 퀴즈’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과거는 흔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또 우리가 기댔고 얽혀 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개개인의 삶에만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에 빛을 던진다” (p. 27)

오윤 왈: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은 힘들었던 경험들이 훗날 많은 도움이 되었다거나, 결국 오늘날의 내가 있기까지 참으로 필요했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한다. 그 일을 겪어야만 했던 그 당시에는 잘 모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마치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말이다. 바닷가의 모레사장을 걷다 보면 내가 지나간 뒤에 언제나 발자국이 생기는 것처럼, 또는 눈이 소복이 쌓인 길거리에 내가 지나간 뒤 내 발자국 모양대로 움푹 페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발자국을 따라 다른 이들이 고대로 걸어오기도 하고, 아니면 그 발자국을 따라 안내 받기도 한다는 것. 홉스봄이 말하는 지도와 빛이란 이런 이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에릭 홉스봄 왈: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 세기의 4분의3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인 지질학적 퇴적물을 벗겨내 그 속에 묻혀 있던 낯선 사람을 드러내거나 찾아내서 다시 뜯어 맞추는 것을 뜻한다” (p. 103)
“물론 자서전을 쓰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가 더 멋있고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처럼 꾸미면서 거기에 걸맞게 인생의 줄거리를 바꾸는 사람은 레더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p. 115)

오윤 왈:
“시중에 출판된 많은 자서전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불굴의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구나ㅡ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데 크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요소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자신도 공감할 수 있는 무엇, 평범하게 여겨지는 나란 사람도 특별해질 수 있다는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발견하고 싶어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란 본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동물이라 자신을 영웅시 하고픈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왕이면 진실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나를 알리는 것보다 남들이 먼저 나를 알아주는 우리 모두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서전이라는 것은 굳이 특별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특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릭 홉스봄 왈:
“에릭 존 어니스트 홉스바움. 호리호리하고 젓가락 같고 구부정하고 못생기고 머리는 금발인 열여덟 살 반 먹은 녀석. 이해력이 빠르고 피상적이지만 일반 상식이 대단히 많고 이론적이고 보편적인 영역에서 남다른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거드름을 피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데 문제는 본인도 이것을 믿기 때문에 그만큼 더 위험하고 또 때로는 먹혀들 때가 있다는 것. 사랑에 빠지는 적은 없고 욕정을 승화하는 데 상당한 재주가 있어 보이는데, 자주 그런 건 아니지만 자연이나 예술을 감상하면서 맛보는 희열로 표현되기도 함. 도덕심은 전혀 없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쳤음. 어떤 사람은 그를 몹시 역겨워하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우습게 봄. 혁명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아직까지는 신통한 지도력을 보이지 못했음. 작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자료를 주무를 수 있는 역량과 끈기가 모자람. 태산을 옮겼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만 하지 신념은 없음. 허영과 자만에 빠져 있음. 자연을 정말로 사랑함. 독일어를 까먹고 있음” (p. 168-169)

오윤 왈: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의 고등학생이 쓴 자신에 대한 묘사치고는 상당히 객관적이고 정이 묻어있지 않다. 좋게 말하면 냉철하고, 나쁘게 말하면 냉소적이기까지 하다고 해야 할까. 만약 나에게 나 자신에 대한 묘사를 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오윤; 영문 명 Rachel. 크지 않은 키임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잘 다져진 몸매에 외모는 중상 정도.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남들과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싶어하고, 쉽게 실증을 내는 경향이 있기도 함.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진심이 아닌 말은 죽어도 못하는 성격임. 어떤 사람은 나를 닮고 싶어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시기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부담스러워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나를 제대로 잘 알지 못함. 식탐이 많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남들이 보기에 거만하고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 있어 겸손해지려 부단히 노력 중.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눈물 흘리는 여린 순수함도 아직 간직하고 있음. 불어를 까먹고 있음. 그러면서 문득, 구본형 소장님께서 ‘사람에게서 구하라’ 강연회 때 받은 질문에 대해 하신 답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에릭 홉스봄 왈:
“공산주의가 우리 세대의 가장 똑똑한 남녀를 왜 그렇게 많이 빨아들였는가 하는 물음과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의 역사에서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p. 215)

오윤 왈:
“정말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주제가 아닐까 싶다. 공산주의란 무조건 나쁜 것이다라는 인식이 팽배한 환경에서 자란 나로서는 사실 공산주의라고 하면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취지와 이념 자체에는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산주의라는 어감 자체가 주는 편견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만약 다른 단어를 사용했다면 내가 느끼는 거부감이 줄어들었을 지도 모를 노릇이고. 21세기에 그 형태는 다르지만 아직도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단일민족 국가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의무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의 짧은 생각이지만, 에릭 홉스봄 세대의 똑똑한 남녀들이 공산주의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 이념이 그 당시에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채워주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을 거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너무나도 불안한 시대였기에 말이다”

에릭 홉스봄 왈:
“…이념을 잃어버리는 아픔과 이념에 매달리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다”
(p. 337)
“하지만 역사가가 아니라 자서전을 쓰는 사람으로 돌아와서 말한다면 개인적 감정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공산당원이라는 멍에를 벗어 던진다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더 잘나갈 것이다. 은근슬쩍 빠져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냉전의 한복판에서 그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공산주의 자로 성공함으로써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자부심이 잘났다는 것은 아니지만 못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 (p. 357)

오윤 왈:
“자기 잇속 챙기느라 요리조리 잔머리 굴리지 않고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위해 아무리 사회적으로 불리하다 하더라도 끝까지 지조를 지키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특히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정치적 파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내가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도대체 얼마나 큰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세상이 뭐라고 하건 나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뻔뻔스러움 정도쯤 지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존심 때문이건 오기이건 간에 너저분한 자기 합리화보다는 훨씬 낫다고 판단되기에. 최근 나는 나의 상사로부터 political game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우울함에 젖어 있었는데, 자신의 가치관을 끝까지 지켜낸 에릭 홉스봄을 보며 어딘지 모르게 위안을 얻는다”

에릭 홉스봄 왈:
“혁명과 섹스에 어떤 관련성이 있다면 그것은 부정적 관련성이라고 나는 썼다. 지배자는 노예와 빈민의 성적자유를 부추김으로써 그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거론하면서 마약도 또 하나의 통치 수단으로 거론했던 것 같다” (p. 414)

오윤 왈:
“Aldus Huxley의 [A Brave New World]가 비록 픽션이기는 하지만, 워낙 ‘신세계’란 곳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어서 이 책을 읽은 지 십 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난 몇 가지 부분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로운 계급이 생기고 성적으로 타락할 정도로 타락해 모든 사람들이 서로 성관계를 맺으며 soma라는 마약이 일종의 간식처럼 되어버린 신세계. 아주 가끔씩은 실제로 ‘멋진 신세계’를 향해 우리 모두 수렴하고 있지는 않을까 기우에 젖어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인간에게는 희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마술가루가 있다는 것을 에릭 홉스봄도 알고 있었으리라”

에릭 홉스봄 왈:
“1960년대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늘 겉돌았다는 사실뿐이다”
“겉모습은 달라도 우리 세대는 모두 1960년대에는 국외자로 머물렀다” (p. 416)
“나처럼 체질적으로 비관주의가 몸에 밴 중년의 공산주의자는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하도 실망을 많이 겪어서 국제 혁명의 격랑에 휩싸였다고 믿었던 젊은이들의 무한한 낙관주의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p. 419)

오윤 왈:
“그래도 1960년대에 그가 많은 저서 활동을 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느꼈던 실망감에 대한 위로를 글로 승화시켰던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은 가장 힘들 때 제일 많이 성숙하게 마련이니까. 오히려 국외자로 머물렀기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관점을 갖게 됐을지 누가 알겠는가”

에릭 홉스봄 왈:
“나처럼 지명도가 떨어지는 사람도 할 일은 무척 많았다” (p. 433)

오윤 왈: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지명도가 꼭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에릭 홉스봄 왈:
“제가 보기에 지식인의 삶은 판에 박힌 강단보다는 예술가의 삶에 더 가까운 면이 있습니다. 지적 활동의 형식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안겨준 활동은 사회학자라는 직업이었습니다. 사회학자 자리에 ‘역사가’만 집어넣으면 나는 이 말에 백 번 동의한다” (p. 483)
“나는 정말이지 즐겁고 편안하게 살았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 아내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같이 다닐 때가 많았는데 우리의 여행은 일과 발견과 휴가와 색다른 경험과 오랜 우정이 하나로 녹아 든 것이었다. 아무리 가난에 찌들어 살고 늘 재앙과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웃을 줄도 알고 적어도 농담도 던질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로 나는 재미있게 살았다. 영웅적인 행동이나 시련은 없었고 위험도 공포도 없는 전문직 종사자의 삶이었다” (p. 507)

오윤 왈: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에릭 홉스봄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진정 헛되이 산 삶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삶은 사는 그 순간 순간에는 재미보다는 걱정과 근심이었을지언정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봤을 때 참으로 재미있게 산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가 좋아 보인다.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항상 재미라는 요소가 가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나도 먼 훗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는 참으로 재미있게 살았다’라고 말하고 싶으니까”

에릭 홉스봄 왈:
“가르치기와 글쓰기의 핵은 모두 소통이다. 두 가지를 모두 즐기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p. 488)

오윤 왈:
“문득, 이 대목에서 구본형 소장님이야말로 복 받으신 분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에릭 홉스봄 왈: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p. 508)

오윤 왈:
“세상을 바꾸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뀌겠거니”

에릭 홉스봄 왈:
“폴로: 생지옥은 미래형이 아닙니다. 그것이 존재한다면 이미 여기 있습니다. 같이 살아 있는 데서 만들어지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지옥입니다. 그것을 견디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길을 사람들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을 받아들이고 지옥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요. 지옥이 거기 있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을 때까지요. 두 번째 길은 위험한데 늘 깨어있어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지옥의 한복판에서 지옥이 아닌 것을 찾고 알아보고 그것이 이어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주는 것입니다” (p. 584)

오윤 왈:
“난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어느 것이 과연 맞는 길인지를. 어느 조직에서든 어느 사회에서든 묻히거나 안주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쳐 오고 있지만 말이다.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리는 것은 쉬워도, 우물 안에서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오려는 몸부림은 쉽지 않으니까”

에릭 홉스봄 왈:
“나이는 역사적 관점이라는 것을 만들어주지만 나의 인생은 그것 말고도 내가 또 하나의 관점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은 거리라는 관점이다” (p. 666-667)
“우주 쪽으로 슬며시 비껴서 있다. 사진가에게도 역사가에게도 그것은 바람직한 자세다. 인생의 대부분을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다” (p. 668)

오윤 왈:
“이것은 책 제목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에릭 홉스봄의 관점이 아닐까 싶다. 번역본은 [미완의 시대]라는 제목을 붙여줬지만, 원제목은 Interesting Times 이다. 즉, 흥미로운 시대라는 말이지만 interesting 이란 형용사를 잘 분석해 보면 주관적인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거리가 느껴지는 말이다. 닿을 듯 말듯한 가까움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무튼, 그 어떤 불특정 다수가 이 책을 집더라도 극단적인 끌림이나 거부감은 없는 그런”

에릭 홉스봄 왈:
“… 머리가 모르는 가슴의 사연…” (p. 669)

오윤 왈:
“내가 이 책에 대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에릭 홉스봄이란 인간의 가슴으로 쓴 역사를 엿보고 싶다”

에릭 홉스봄 왈: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p. 672)

오윤 왈:
“그래도 홉스봄은 세상을 향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평생 국외자로 살아온 실망감에 젖어있다 할지라도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남다른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좋아지길 바라고 있다.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구본형 소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성격이 아닐까 싶다. 어제보다 오늘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산다면 그 노력들이 모여 어쩌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저자라면>

나는 에릭 홉스봄이 아니다. 그러니 이 책의 독자로서가 아니라 저자로서 평설 하라면 당연히 나는 그와는 다른 작품을 썼을 것이다. 그도 역사학자이기 전에 감정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이다. 역사와 관련된 내용이라면 다른 저서들을 통해 이미 많이 집필됐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렇다면 이 책은 성격상 자서전인 만큼 ‘가슴과 감정의 사연’을 중심으로 써내려 갔으면 더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학자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냥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어렸을 적 겪었던 말 못할 사연들과 가족에 얽힌 에피소드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재미 있는 삶을 살게 했는지에 대한 묘사가 아쉽다.

하지만, 어쩌면 에릭 홉스봄은 이런 부족함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다시 머리말로 돌아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썼는지 다시 읽어보았다. 역사적 이해를 얻어내기 위해 쓴 자서전이라 본인의 가족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란 솔직함이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그리고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는 몰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는데, 그런 부분은 과감하게 빼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 좀 덜 두꺼운 책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앞뒤 면과도 같아서 단점을 뒤집으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자서전이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흘러갈 위험이 있지만, 역사가 특유의 객관성 덕분에 독자로 하여금 그런 데서 오는 거부감은 느낄 수 없었다. 유명한 역사가이지만, 자신을 영웅시하지 않는 그 솔직함이 책의 두께와 아리송한 내용이 주는 부담감을 상쇄해주기 때문이다.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듯, 완벽한 책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단지, 완벽한 의도만 있을 뿐이다.
IP *.6.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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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2 23:26:43 *.140.145.63
오윤님.. 님의 자기다움이 철철 넘쳐흐르는 리뷰 잘 봤습니다.
저자왈 오윤왈 논법은 매우 흥미롭기도 하고 님에 대해서 좀 더
알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네요..

저한테 좋은 뜻으로 찍히셨습니다.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많은 분들의 리뷰를 섭렵하다 보니 제가 이미 다 읽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네요..

저도 공감한표 "에릭 홉스봄이란 인간의 가슴으로 쓴 역사를 엿보고 싶다” 이런 방식으로 썼다면 제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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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13 01:59:40 *.72.153.12
오윤님, 독특한 형식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폴로: 생지옥....'
“공산주의가 우리 세대의 가장 똑똑한 남녀를 왜 그렇게 많이 빨아들였는가 하는 물음과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의 역사에서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한정화 왈: 내 주변에서는 나를 향해 끊임없이 깨어잊으라고, 그리고, 자신의 것을 세상과 나누라고 말하는 좌측으로 많이 기운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여러차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난한 자의 눈으로 읽는 성서'라는 책을 읽고 토론을 하게 하는 선배를 만났고, 세상에 깨어 있으라고 일부러 내 손금을 '정치에 관심이 많군.'이라고 거짓으로 읽어주는 선배를 만났고, '진정한 기독교신자는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하는 목사님을 만났다. 내게 그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 사람들이 내게 해주는 말을 건성으로 들을 수 없었다.
프로필 이미지
2007.03.17 19:10:33 *.129.52.2
기찬님,

제 글 끝까지 읽어주시고 코멘트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단순히 마음에 들어온 글귀를 나열하는 것보다는
이왕이면 왜 내 마음에 들어왔는지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그런 논법을 썼습니다.

좋은 뜻으로 찍힘 당한 이상, 더욱더 마음으로 글을 써야겠네요..
프로필 이미지
2007.03.17 19:15:18 *.129.52.2
정화님,

제가 잘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시는 분인가봐요ㅡ
다른 사람의 의사소통 방식에 맞추어주시는 것을 보면...

적어주신 코멘트, 결코 건성으로 읽을 수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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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3 에릭홉스봄의 [1] 최정희 2007.03.12 1949
4342 『미완의 시대』를 읽고 [1] 이희석 2007.03.12 2191
4341 미완으로 마칠뻔한 '미완의 시대를 읽고' [1] 정양수 2007.03.12 2038
4340 미완의 시대 - 자서전 속의 역사 [4] 김민선 2007.03.12 1973
4339 미완의 시대 [5] [1] 정선이 2007.03.13 2155
4338 미완의 시대: 늘 깨어서 가야할 길 [4] 한정화 2007.03.14 1872
4337 사람에게서 구하라 / 구본형 하루 2007.03.14 2124
4336 미완의 시대, '흥미로운'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3] 신종윤 2007.03.14 1952
4335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2] 신재동 2007.03.15 1881
4334 [코리아니티] 달인이 찾은 Corea [1] 송창용 2007.03.16 2295
4333 (002)코리아니티 경영 [2] 최영훈 2007.03.16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