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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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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8일 23시 21분 등록
< 인용문 >

1. 서 론

서양인들은 범주화에 지대한 간심을 가지고 있고, 범주를 알게 되면 어떤 사물이 속하는 특정 범주를 지배하는 규칙을 사용하여 그 사물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문제해결 과정에 형식논리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반하여 동양인들은 사물들을 전체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매우 복잡한 곳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관련 요인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문제해결에서 형식논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내는 차이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즉, 특정한 사회적 행위들은 특정한 세계관을 가져오고, 그 세계관은 특정한 사고 과정을 유발하며, 그 사고 과정은 역으로 원래의 사회적 행위들과 세계관을 다시 강화시킨다. 이런 항상성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 사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2. 동양의 도와 서양의 삼단 논법

그리스 인들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즉, 자신의 삶은 스스로 주관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을 ‘독특한 특성과 목표를 가진 상호 개별적인 존재’로 파악했다. 이러한 그리스 문화는 자연스레 논쟁의 문화를 꽃피웠다. 그리고 자유와 개성만큼이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중시되었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이 특정 상황에 구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였다면,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은 ‘특정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이었다. 초기 유교 신봉자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과 그 속에서 부여되는 역할들의 총체일 뿐, 결코 독립된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의 정체성은 역할에 따라 결정되므로 역할이 바뀌면 정체성도 당연히 바뀐다. 즉, 완전히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또한 주변 환경을 자신에 맞추어 바꾸기보다는 자신을 주변 환경에 맞추도록 수양하는 일을 중시했다. 중국인의 일상에서 개인의 권리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권리 중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을 인간관계를 해치는 위험한 요소로 간주했다.

그리스인들은 늘 세상의 본질에 관심이 있었다. 그들이 습관적으로 행한 작업 중 하나는 사물의 속성을 분석하고, 그 추상화된 속성에 의거하여 사물을 범주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쉽게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보았다는 데 있다.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직선적’ 사고와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집착했다. 우주는 원칙적으로 단순하고 파악가능한 곳이었다. 그들은 우주가 ‘입자’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철학자의 과제는 사물의 속성들을 파악하고 이에 기초하여 범주화하여 그 보편적인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중국인에게 세상을 늘 변하며 모순으로 가득 찬 곳이다. 따라서 어떤 일의 경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반대 경우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음양의 원리란 ‘서로 반대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힘’,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의 관계이다. 유교에서 중요한 행위규범인 중요의 도란 절대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 것이며ㅡ 서로 대립되는 의견이나 사람들에게도 제각각 일리가 있다고 믿으라는 가르침이다. 유교, 도교, 불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holism)'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 경향 때문에 중국인들은 어떤 대상을 전체 맥락에서 따로 떼어내어 분석하는 일에 거부감을 느꼈다.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사를 개인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불가능했다.

무언가를 구부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펼쳐야 하고
무언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강화시켜야 하며
무언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풍성하게 하여야 하고
무언가를 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주어야 한다.
- 도덕경 중에서 -

3.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

동양적 사고에서 바라본 개인은, 항상 어떤 구체적인 맥락 속에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사회적 상황에서 인간을 분리시켜 그의 행위나 속성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동양의 사고 방식에서는 매우 낯선 일일 수밖에 없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이러한 차이를 ‘저맥락(low context)’ 사회와 ‘고맥락(high context)' 사회의 구분을 통해 설명했다. 서양에서 개인은 맥락에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인 행위자로 이 상황에서 저 상황으로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 중국어에는 영어의 ‘individualism'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의 자기 개념의 차이는 자신을 얼마나 독특한 존재로 보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발견된다. 미국인들은 항상 남의 눈에 띄고 싶어 하나 한국인들은 늘 남들 정도만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미국인이나 캐나다인은 자신들이 많은 영역에서 ‘평균 이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동양인들은 자신을 평균 이하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인들은 인간관계 속에 조화롭게 적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지만, 서양인들은 개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동양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남들과 마찰 없이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지만, 서양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도록 가르친다. 서양의 부모들은 자녀가 스스로 일을 선택하고 결정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동양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녀의 일을 자신들이 결정하려 한다. 사물의 속성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훈련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독립적인 행동을 하도록 교육받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훈련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미리 예측하도록 교육받는다.

동양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호의존적 단서들을 통해 끊임없이 상호의존적인 사람이 되도록 유도(점화, priming)되고 있고, 서양인들은 독립적 단서들을 통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늘 점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면 독립적 단서에 노출되기 때문에 독립적인 방법으로 사고하게 되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지내게 되면 상호의존적 단서에 점화되어 상호의존적인 방법으로 사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일본도 물론 체면을 중시하지만 조직과 관련된 체면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가족의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과는 다르다.

4.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흥미롭게도 동양인들은 자신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자신을 통제해줄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믿을 때 더 행복감을 느꼈다. 서양인들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가 중요하지만, 동양인에게는 누군가와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일체감이 중요한 것이다. 동양인들은 진보보다는 ‘회귀’를 추구하고,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중용’을 추구한다. 그리고 동양의 유토피아는 ‘과거’에 존재하며, 인간의 소망은 ‘현재 상태에서 과거의 완전한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다. 동양인들은 일이 어떤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오고 있다면 그것은 곧 정반대 방향으로 바뀔 것임을 암시한다고 믿는다.

5.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미국 대학생들은 살인자의 개인적 속성에 중요성을 더 많이 부여한 반면, 중국 학생들은 상황적 변수를 더 중요시했다. 한국인들은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미국인들은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는 반응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였다. 동양인들은 ‘기본적 귀인 오류’를 덜 범하게 된다. 그 오류란 행동을 유도한 ‘상황의 힘’을 무시하고 행동의 주원인을 ‘성격’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말한다.

6.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야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범주는 명사에 의해 표현되고 관계는 동사에 의해 표현된다. 타동사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두 사물과 그 사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행위를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동양의 언어는 ‘맥락’에 주로 의존한다. 동양어의 단어는 대개 다중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7.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

묵가의 사상에서 발견되는 서구적 측면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양적 지향점을 강하게 유지하였다. 즉, 다른 중국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명제의 진실성과 도덕성을 구분 짓지 않았는데, 이는 논리학의 발전에 있어서 치명적인 실수였다. 동양인들은 오감에서 비롯되는 감각적 증거와 상식을 신뢰하여 스스로의 경험에 위배되는 주장은 수용하려 들지 않았다. 미국 학생들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 속담들을 더 선호한 반면, 중국 학생들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속담들을 선호했다.

8.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 그 기원은?

개인의 자유, 개성, 객관적인 사고를 강조했던 그리스 문화의 특성은 그리스의 독특한 정치 형태, 즉 도시 국가 형태의 정치 구조와 공회 정치에 기인한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해안가라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무역을 중요한 산업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농업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덜 필요로 한다. 고대 중국인들과 달리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남들과의 화목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보다 더 많은 영역에서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가축 칠 곳을 계획하고 새로운 상품을 팔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반면 고대 중국에서는 문화적 동질성이 매우 강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는 촌락 생활은 조화와 화목을 중시하는 행위 규범을 만들어냈다. 불협화음을 없애고 서로 간에 합의점을 찾는, 즉 중용의 도를 찾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농경민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화목한 생활이었다. 특히, 쌀농사의 경우에는 공동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사람들 간의 화목은 관개 공사의 경우에 특별히 더 중요하다. 결국 고대 중국인과 그리스인이 상이한 형이상학적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은 중국인들은 주변 환경과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인 반면 그리스인들은 사물 자체에 주의를 돌렸기 때문이다.

9. 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

- 동양의 사고를 기준으로 본 서양식 사고의 문제점 -
①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고 논리적 접근법만을 강조
② 서양인들은 행동의 배후에 ‘다른 많은 이유’가 아니라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어서 행동을 설명할 때 그 행동이 ‘내부적 이유’로 일어났다고 설명하거나 아니면 ‘외부적 이유’로 발생했다고 설명하는 양자택일의 방식을 취한다.
③ 서양인들은 동양인에 비해 기본적 귀인 오류를 잘 범한다.

- 서양의 사고를 기준으로 본 동양식 사고의 문제점 -
① 모순에 대하여 덜 민감한 사고방식 때문에 과학적인 사고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
② 논쟁을 통하여 진리가 발견되고 유용한 가설들이 세워질 수 있는 서양식 사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논쟁을 배척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폐쇄적이다.
③ 과학에서는 ‘모든 것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라는 생각보다는 단순한 모델을 가정하는 것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훨씬 용이함.

10. 에필로그

상호의존적 점화를 거친 참가자들은 예상대로 보다 ‘장의존적인’ 패턴을 보였고, 독립적인 점화를 거친 참가자들은 보다 ‘장독립적인’ 패턴을 보였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존재 양식이 사고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주 극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에는 동양인처럼 행동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양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문명의 미래에 대한 예측
1) 동양이 서구화될 것이다.
2) 차이는 계속될 것이다.
3)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수렴될 것이다.


< 책을 읽고 나서 >

인간만이 번식이나 생존적인 이유 외에도 종교나 이념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를 가지고 여지없이 원시적인 폭력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오랜 시간동안 ‘다르다는 것’을 ‘틀린 것’으로 동일시하고 힘으로 그 차이를 일치시키려는 무모함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다. 지난 세기 인류는 세계대전을 포함한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인류공멸의 위기를 느꼈다. 어느 때보다 자성의 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났건만 전쟁의 포연은 멈출 기미가 없다.

인간의 전쟁이 더욱 추악해 보이는 것은 겉으로는 인류공영의 가치를 부르짖고 있는 데 있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폭력성을 부정하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깊게 드리워진 폭력성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를 순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있다. ‘나는 절대선이고 너는 절대악!’ 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존재하는 곳은 늘 폭력이 싹을 튼다. 생각, 종교, 인종, 이념, 문화 등이 다를 수 있고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다원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공멸로부터의 유일한 해법이다.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경계해야할 세력은 결국 테러집단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폭력성과 획일성인 것이다.

사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 이해의 폭은 그 차이만큼이나 넓었다. 지난 역사동안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거나 우열로 갈라놓아 빚어진 갈등과 분열을 생각해보면 이 책은 그 시도만으로 통합의 힘이 담겨있다. 게다가 자칫하면 추상적인 이야기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주제를 수많은 실험들과 관찰들을 토대로 펼쳐 보임으로써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문화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동일한 방법으로 지각하고 추론한다고 보았던 전형적인 보편주의자인 저자가 중국인 학생을 통해 문화의 차이에 따른 사고습관의 차이를 입증하며 문화 상대주의자로 변모하는 과정을 솔직히 드러낸 것도 신선했다. 그리고 동서양으로 지나치게 단순화시키지 않고 우리를 이미 이중문화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어떤 환경 속에서 점화(priming)를 받느냐에 따라 사고패턴이 달라짐을 보여준 것은 돋보이는 발상이었다.

저자의 주장처럼 상호보완 관계에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수렴되어 접점을 찾아갈 것임을 나 역시 지지한다. 책을 덮고 나서 최재천 교수가 21세기 인간형으로 제시하였던 공생인(共生人, Homo symbius) 개념을 떠올린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책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 대한 공존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카테고리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어야 할 부분이다. 가깝게는 개인과 개인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공존, 나아가서는 가족과 가족, 집단과 집단, 지역과 지역, 남과 북의 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똑 같이 적용되어야할 지혜인 셈이다.


< 책을 읽고 아쉬웠던 부분 >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니스벳 교수는 서양식 사고방식에 대해 조금 더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동양의 상호의존적 관계형태가 서양의 독립적 관계형태보다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저자 스스로 중용의 위치를 점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더 강한 비판적 사고로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호의존성’속에 들어 있는 긍정적인 측면은 충분히 언급한 반면 위험요소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호의존성이 집단적 폐쇄성 속에서 이루어지면 심한 배타성과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결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났고 님비현상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일본의 국수적 민족주의, 중국과 북한의 인권문제 등은 배타적인 집단주의의 폐해의 대표적 예이다. 그러한 측면에 대한 고찰이 다소 아쉬웠다.

나는 오히려 여기에서도 종종 언급되었지만 유럽의 사고방식이 실험과 함께 좀 더 풍부하게 소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실험결과를 보면 묘하게 그들은 동아시아와 미국의 평균적인 사고를 보여주는 듯하다.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럽은 점차 국가와 민족간의 장벽이 약화되어져가며 또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다. 유럽인의 생각이 양대 문화의 수렴의 결과는 아니겠지만 오히려 미국보다 더 서양적 사고의 본류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미국이 서양적 사고를 대표하는 것처럼 줄곧 기술되는 것이 조금 거슬렸다. 미국과 유럽의 차이에 대한 생태적, 문화적, 경제적, 종교적인 해석도 빠져있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이건 나의 지나친 욕심이지만 실험이나 관찰 외에도 좀 더 많은 문화, 예술, 역사, 종교 등을 동서양으로 나누어 비교분석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는 다학제간의 일이고 보다 많은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겠지만 이번 책을 능가하는 후속 작업이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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