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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6일 23시 51분 등록
- 케네스 데이비스 지음/ 이순호 옮김-

< 인용문 >

1. 서문
미국의 초기 교과서에는 건국의 아버지들 코에 난 사마귀까지도 깨끗이 손질이 돼 있었다. 노예제도도 그럴듯하게 윤색이 돼 있었다. 진실의 겉모습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우리의 역사인식은 흔히 신화와 오해로 왜곡되거나 상처를 받거나 절단이 나버리곤 한다. 미국에는 늘 정신질환을 앓는 이모 사진을 가족 앨범에서 떼어내려는, 요컨대 과거의 어두운 부분은 지우려는 경향이 있었다. 주류 영화와 공영 텔레비전은 여전히 과장된 신화나 개조된 역사물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신화의 이면에 뜻 깊은 사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진실은 늘 선전(propaganda)보다 흥미롭다.

역사의 핵심은 권력 쟁취를 위한 영원한 투쟁이라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을 갖지 못한 자 사이의 투쟁은 미국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발전들은 위로부터 이루어진 예가 드물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을 지도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나라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그냥 이끌려가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힘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때로는 한 사람의 힘이 강력한 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역사 이야기에는 보통 이면적인 것 혹은 적어도 인간적인 면이 있게 마련이다. 오랜 시간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는 영웅들이 순순하고 오점 없는 인간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역사의 가장 위대한 영웅들도 알고 보면 똑같은 인간이고, 때로는 모순으로 가득 찬 결점 투성이의 인간일 수도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인간애와 모순과 결점을 지닌 이들이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다는 사실 때문에 이들에게 매혹된다.

2. 위대한 신세계
콜럼버스는 정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까? 최선의 답은 ‘꼭 발견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발견 비슷한 것을 했다고는 할 수 있다’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진정한 발견자들은, 유럽이 아직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곳에서 사회문화적 토대를 닦고 있던 이른바 인디언들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들은 아시아에서 신세계까지 걸어서 왔다. 유럽거주 유태인들에 대한 히틀러의 학살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원주민 인구의 90퍼센트를 학살한 것으로 보이는 유럽인들의 인디언 근절 계획 역시 철저한 계획 아래서 이루어졌다. 그 모든 근절 행위는 진보, 문명,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제임스포트는 신세계에 지어진 최초의 영국인 영구 정착지였다. 제임스타운은 신세계에 용감히 맞선 영웅적인 이주민들의 거류지, 즉 ‘미국의 탄생지’로 오랫동안 기념되었다. 이주민들의 하루하루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제임스 타운에서 ‘하우스 오브 버지시스’가 최초로 열린 그 다음해에 영국을 출발한 메이플라워호의 필그림들(Pilgrims)이 아메리카 대륙 제2의 영구 정착민이 되기 위해 도착했다. 이들은 칼뱅의 교리를 따르는 청교도들이었다.

3. 독립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라
미국이란 나라는 영국의 어설픈 식민지 경영, 경제적 현실, 계몽주의라는 심오한 철학 그리고 역사적 필연성이 모두 합쳐져 탄생한 것이다. 보스턴 학살사건과 보스턴 차 사건이 터진 이후로 식민지와 영국은 더욱 강경하게 맞서게 되었다. 1775년 5월에 열린 제 2차 대륙회의는 급진파가 주도하여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신예들이 새롭게 부상하였다. 하지만 최종적인 독립은 여전히 너무 극단적인 일로 보였다. 토머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서는 수정되어 1776년 7월 4일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4. 국가의 성장: 헌법 제정에서 '명백한 운명'까지
메사추세츠 셰이스의 반란은 미국 전역에 무장 폭동으로 확산되지 않은 비교적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그로 인해 미국의 새로운 지배층은 상당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연합규약보다는 좀더 강력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미국의 주들은 외국군의 침략은커녕 지방 반란 하나 제대로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 워싱턴이 헌법제정회의 의장직을 맡았고 넉달 동안 헌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헌법 아래 200년을 살아서인지 미국인들은 이제 그 헌법을 입법의 귀재들이 만든 이념과 이상이 완벽하게 구현된 헌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헌법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헌법 역시, 정치적 이상과 정치적 편의의 조화를 꾀하며 고도의 협상을 거쳐 어렵게 타협안을 도출해내는 정치의 소산물이었다. 인구에 따른 대표의 수와 노예제도 때문에 협상은 자주 교착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비판은 하되 정당한 것은 정당하게 평가해 주어야 한다. 각 지역의 대표들은 이성의 힘을 고양시키고 전제군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정부 형태를 만들려고 노력한 17, 18세기의 고귀한 이상인 계몽주의의 성과를 헌법에 구현해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재산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래야만 읽고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고 여겼다.

18세기의 미국은 기독교도가 주류를 이룬 압도적인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군중을 덮고 있는 커다란 장막 같은 것이어서 그 안의 사람들은 획일적인 신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부 프로테스탄트들은 청교도들이 등을 돌린 성공회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과학과 이성이 교회와 국왕을 압도하는 계몽의 시대가 펼쳐졌다. 뉴턴을 비롯한 과학자들의 연구가 당대의 믿음에 혼란을 일으키며 정치 속으로 물밀 듯이 흘러 들어왔다. 결론적으로 말해 건국의 아버지들이 개인적으로 믿었던 종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열정적으로 받아들인 원대한 개념이다. 종교를 가질 권리 못지않게 종교를 갖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특정 종교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들은 만장일치로 반대 입장을 표했다. 프랭클린의 생각에는 정부는 국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5. 그리고 격변: 남북전쟁과 재건
역사는 가정과 회상의 끊임없는 흐름인 것이다. 남북 전쟁은 왜 일어나야만 했는가? 피할 방도는 없었는가? 북부는 남부를 왜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는가? 남북전쟁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전반기의 미국을 하나의 나라로 볼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분리되 나라로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다. 미국 북부는 도시화와 산업혁명을 겪으며 급속한 현대화 과정을 밟고 있었으며 남부 주들은 버지니아의 상류층 대농장주들이 건국에 일익을 담당하던 시절인 제퍼슨 시대의 경제구조, 즉 노예위주의 농업 경제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전쟁의 원인을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면 남부인들은 정치, 노예 그 밖의 다른 어떤 문제들에서도 삶의 방식에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관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두 인종은 신체적으로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사회정치적으로 두 인종이 평등하게 사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 링컨 -
‘나는 이 죄 많은 나라의 범죄는 오직 피로써만 씻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존 브라운 -

6. 팽창하는 제국: 서부 개척시대에서 제 1차 세계대전까지
남북전쟁이 종료된 시점부터 20세기에 들어서는 35년 동안 미국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농업국에서 광대한 땅을 보유한 산업 제국으로 변모하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1918년 1차 대전이 끝나는 시점에 이르자 세계 1등국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철도 보급철강 산업의 구축, 유전 개발과 같은 산업 개발이 재빨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룩한 진보는 마크 트웨인과 워너가 그 시대를 다룬 책의 제목을 <황금빛 시대>라고 붙였듯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천박하고 지저분한 그런 진보였다.

이 나라는 이제 갓 100년이 지났을 뿐이다. 따라서 오디세이도, 용을 죽이는 성 게오르게도 프로메테우스도 없었다. 고대의 영웅은 물론 신화 하나 변변히 없는 미국으로서는 없는 영웅이라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이른바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들이다. 미국인들에게 카우보이는 완벽한 개인주의적 삶을 추구하고 인디언의 야만적 공격을 막아내는 용감무쌍한 소몰이꾼이었다. 이 인위적인 서부 개척 스토리는 아메리카의 일리아드가 되었다. 19세기야 말로 전례 없이 거대한 부와 힘을 축적하고 보유한 민간인 천재가 정치적 천재의 기세를 꺾은 시대였다. 부의 집중현상이 가장 심화된 양상을 보인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7. 봄에서 파산으로, 파산에서 다시 봄으로 : 재즈 에이지와 대공황에서 히로시마까지
미국은 늘 복잡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는 것에 골몰해왔다. 이 멋진 땅에 인디언이 웬 말이냐고? 쫓아버리면 되지. 텍사스를 갖고 싶다고?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는 거야. 범죄문제? 사형 제도를 다시 도입하면 되지. 나라의 도덕적 실책은 학교 기도식에서 바로잡아주면 되고, 인종차별 문제는 학생들을 바쁘게 만들면 해결되는 것이다. 정치가들이 제시하는 해답은 늘 너무도 간단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광범위한 해법들이 의도한 방향대로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에서 음주를 중지시킨 수정헌법은 계획대로라면 20세기 초의 사회적 불안정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해답이 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수정헌법은 복잡한 문제에는 복잡한 해결이 필요하고,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사적인 도덕성이나 습관을 다른 사람이 법률로 정하려 하는 것을 못 참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거대한 기념비적 사건이 되고 말았다.

대공황에 대한 루스벨트 정책의 핵심인 뉴딜 정책은 미국적 삶의 방식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온 혁명이었다. 그는 ‘노변담화’ 방식을 이용하여 은행이 돌아가는 원리를 미국 국민들에게 설명해주었다. 노변담화는 대중을 교화하고, 두려움을 없애주고,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나라에 대한 확신과 낙관주의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그가 고안한 라디오 연설 형식이었다. 뉴딜정책은 일시적인 경제 부양책으로 단순화시킬 문제가 아니라 미국사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일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작은 연방정부를 국민의 삶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정부로 변모시킨 일대 혁명이었다. 루스벨트는 ‘무엇이든 시도하고 본다.’는 그의 방식대로 또 다시 새로운 계획들을 추진했다. 그의 공헌은 단순히 입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에 있을 것이다. 역사를 인격의 문제로까지 확대 적용한다면 미국에 분명 루스벨트만한 역량을 지닌 인물을 없었다. 그는 여러 결점과 모순점을 지니 인간이었지만 나라 경제와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면 인종차별주의와 군국주의가 득세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8. 공산주의, 봉쇄 그리고 냉전
1945년에 전쟁은 끝났고 병사들은 귀환했다. 세계의 일등 국가가 된 미국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바야흐로 ‘미국의 세기’가 전성기를 맞고 있는 듯했다. 트루먼 독트린에서 이야기하는 ‘봉쇄(containment)'의 중추적 개념은 소련의 압력이 느껴지는 곳이면 어디든 미국의 힘을 이용하여 소련의 압력에 대항하는 것을 말한다. 좌파 비판가들은 유럽 부흥 계획으로 알려진 마셜 플랜을 미국의 이타주의만으로는 보지 않았다. 이를 유럽의 자본주의 재건을 위한 계산된 냉전 계략, 그러니까 미국의 경제 지배를 위한 자본주의의 확대로 바라보았다. 간단히 말하면 미국의 산업기계가 토해놓는 시장으로서의 유럽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핵폭탄의 공포는 인간의 우주 진출이라는 현실과 지속적으로 불어오는 편집증적인 반공산주의 열풍과 합쳐져 이른바 과대 망상적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며, 1950년대의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로 활짝 꽃을 피웠다. 달에 대한 고대인의 탐색정신은 늘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 외부에 대한 호기심, 창조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연관돼 있었다. 그리고 스푸트니크와 우주 경쟁 시대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마법과 같은 기술에 불굴의 용기와 결단력만 더해진다면 인간 정신의 극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9. 횃불은 지나갔다: 캐밀롯에서 할리우드까지
위대한 사회는 인간이 자연과 새롭게 접촉할 수 있는 곳입니다. 창조 그 자체에 감사하고, 그 감사함에 보답하기 위해 인종에 대한 이해를 배가시키는 사회입니다. 소유한 물건의 수보다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의 질에 더 관심을 갖는 사회입니다.
-린든 B. 존슨 1964. 5월 연설 중에서-

미국이 대통령에게 바라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설교이다. 미국은 격려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미국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다만 ‘두려움 그 자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코치를 원한다. 미국은 환희의 트럼펫 소리를 듣기를 원한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레인건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레이건에 의한 신 보수연합은 당시 미국이 안고 있던 문제를 수십 년에 걸친 진보주의 민주당의 잘못된 경제, 사회정책이 야기한 폐해로 규정했다. 레이건 정책의 이론적 토대는 ‘공급 중시의 경제’에 있었다. 레이건 숭배자들은 나라의 분위기 쇄신, 최고 70퍼센트에 달하던 한계 세율의 인하, 미국의 정치 지형을 성공적으로 바꿔놓은 그가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마땅히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평자들은 엄청난 국가 부채의 발생, 이란 콘트라 사건에서 드러나 외교 정책의 과실, 소련과 싸우는 아프카니스탄 반군을 지원한 근시안적인 정책을 그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았다.

10. 악의 제국에서 악의 축으로
새로 생겨나는 미국의 가정은 갈수록 줄어, 전체 가구 중 기혼 부부 가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반수를 조금 웃돌 정도가 되었다. 미국 제2의 일반화된 삶의 형식인 독신자 가정은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상으로 부쩍 늘었다. 편모(혹은 미혼모) 가구 수도 전체 가구의 12퍼센트를 차지했고, 미혼 남성 비율도 4퍼센트로 증가했다. 동거 가구도 전체가구의 5퍼센트에 이르렀다. 인구변화의 또 다른 특징은 미국이 점차 노령화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변화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동 빈곤이 여전히 미국의 가장 실패한 정책의 하나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공식적인 미국 아동 빈곤율은 16퍼센트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아 사망율이 쿠바보다 조금 높은 세계 33위를 차지하고 있고 14퍼센트의 아이들이 보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소수 민족에 대한 소득과 교육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백인과 소수 민족 사이의 격차는 계속 크게 벌어지고 있다.

11. 옮긴이의 말
우리가 미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이 같은 불안감, 요컨대 동맹국이면서 외세일 수도 있다는 역사적 불안감이 혼재돼 있다. 학습된 두려움이 은연중에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원정 출산을 떠나고 한쪽에서는 미군 장갑차에 치인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를 1년 넘게 벌이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중성의 결과일 수 있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미국에는 맥도널드와 코카콜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교도 정신과 독립혁명의 정신도 살아 있다. 총기 사고와 마약만 판치는 나라가 아니다. 단돈 100달러를 횡령한 주 정부 공무원 부정 사건이 지방 방송국의 뉴스로 등장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다민족 다문화의 복잡한 나라이고 복잡한 만큼이나 거대하고 정교한 시스템으로 오차 없이 움직이는 나라이다.

세계화가 모든 이들의 화두가 되어 있는 지금, 껍데기와 허울뿐인 세계화가 아닌 내용이 꽉 찬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미국을 알아야 하고 그 점에서 이 책은 최고의 안내서가 될 것이다.

< 소감 >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다.
-미국 독립 선언문 중에서 -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탄생의 역사부터 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독립선언문을 읽어보면 책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의아한 것이 어떻게 많은 노예를 거느리면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쓸 수 있었냐는 것이다. 물론 노예는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해치는 정부라면 얼마든지 뒤엎을 수 있음을 명시한 대목이다. 당시의 시대를 떠올리면 그러한 발상이 가지고 있는 진보성에 놀라면서 오늘날의 세계정세 속에서 비추어 보면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자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해치는 세력(그 세력의 이름은 끝없이 바뀌어 지금은 악의 축이라 불리우고 있다)이 있다면 미국은 기꺼이 힘으로 뒤엎는다는 작금의 힘의 논리가 그 선언문 속에 그대로 담겨있다고 느껴진다. 너무 과민반응일까?

미국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이중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고 ‘다중적’이다. 호감만큼이나 반감이 강하고 친근감이상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 두려움의 정체는 마땅한 견제세력이 없는 가운데 독보적으로 막강한 미국의 물리력 때문만은 아니다. 짧은 시간동안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통합하여 이루어 놓은 학문적 토양과 문화적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 때문에 느끼는 것만도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우리 힘으로는 우리를 지킬 수 없다.’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학습된 무기력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늘 애처롭고 불안하다.

가까이서 미국인을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일종의 유대인과 같은 선민의식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유대인의 우월감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에 의해 선택된 데 대한 것이라면 미국인은 자신만의 힘으로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지켜왔다는 일종의 성취감 같은 성질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편협적인 내 느낌일 뿐이다. 그런데 갈수록 그 성취감의 도가 지나치는 것 같아 이제는 ‘나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일종의 ‘전지전능감’ 같은 자아도취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미국의 역사를 개인으로 비유해 보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많은 성취와 자원이 담겨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파괴시키고도 남을 강한 공격성이 느껴진다. 미국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 외부세력의 간섭 없이 그들만의 힘으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 왔고 여러 인종과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공존의 균형을 찾아나간 것처럼 세계의 여러 국가와 문화의 차이를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만의 가치와 이익만을 관철시키려는 획일적이고 팽창위주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물론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게 그것을 바라기보다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을 견제해나갈 힘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지배체제를 다극화시키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이다.

난 미국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갈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소극적이었고 어쩌면 피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나니 미국을 한번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아쉬운 점 >

저자의 의도처럼 재미있고 쉽게 읽히는 역사 서적이 된 것 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렇다보니 역사적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재미와 깊이를 한 바구니에 다 담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많은 역사 서적에 대한 불만이지만 간단한 지도라도 첨부되었으면 참 좋겠다. 물론 스스로 찾아보아도 되지만 본문의 내용 중에서 지도가 덧붙여 있다면 훨씬 공간적인 감각을 가지고 역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방대한 역사를 요약해서 보여주려면 연대표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 같다. 욕심이겠지만 연대표 정도 부록으로 실어주는 센스가 있었다면 더 좋았으리라.

덧붙이자면 미국의 건국사가 피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다소 정치와 전쟁 위주의 기술에 편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은 정치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세계의 문화산업을 지배하는 강국이기도 하다. 시대 상황에 맞게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흐름도 덧붙였다면 더더욱 맛깔스러웠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위대한 신세계’로 표현되는 아메리카 대륙의 첫 발견자는 콜럼버스를 위시한 유럽의 탐험가가 아닌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간 인디언이라고 못을 박으면서 미국의 태생적 원죄를 질책한다. 그리고 마을을 구하는 보안관의 이미지처럼 미화되어 있고 윤색되어 있는 미국의 역사에 가려진 환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렇듯 스스로의 치부도 당당히 드러낼 수 있고 그런 서적이 150만부 팔렸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국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서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반성이라기 보다는 그것마저도 자랑같이 여겨지는 구석이 있다면 너무 속 좁은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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