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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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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8일 02시 12분 등록
가자, 아메리카로! (리오 휴버만 지음, 박정원 옮김, 비봉출판사, 2001)
We, the People.. by Leo Huberman

<제1부: The Dream of America>

제1장. 가자, 아메리카로!

그렇게 그들은 왔다. 자의로 오는 사람들이나 타의로 보내지는 사람들이나, 이민은 1600년대 초에 몇 안 되는 사람들로 시작되어 몇 백으로, 이어서 몇 천으로, 그러다가 300년이 지난 후에는 단위를 10만으로 해서 그 숫자를 파악해야만 했다. 1907년에는 한 해 동안에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1903년에서 1913년에 이르는 동안에는 “시계가 밤낮으로 매 시간을 알릴 때마다(10년 전체의 평균을 낸다면)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한 여타 지역에서 출생한 외국인들이 100명씩 미합중국의 해안가에 발을 들여 놓았다.”

제2장. 새 출발

영국인, 네덜란드인,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프랑스인, 독일인, 스웨덴인은 끝내 그곳을 정복했다. 그러나 그 댓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신세계를 향해 어려운 여행을 감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신세계를 보기도 전에 죽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와서 보았다. 그리고 죽었다.
유럽인들은 어느 정도 그들이 익숙해져 있던 형상대로 이 땅을 조각했다. 그러나 이 땅의 자연이 그 모습을 결정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 무언가를 행하고 있는 동안, 이 땅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행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새로운 민족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 미국인으로!

제3장. 모든 인간은 평등한가?

그 모든 분쟁에서 서로 대립된 양극은 실상 어느 곳에서나 같았다. 즉, 동부의 비교적 오래된 연안지역 정착지의 상류 계급과, 날로 성장하고 있던 서부지역의 변방 개척민들 간의 투쟁이었다. 과도한 세금, 부당한 세금, 토지소유권에 관한 문제, 그런 것들이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무장공격이 일어났다. 부자 상인들과 지주들은 그들의 소수 상류계급 지배라는 구세계 사상이 인간의 평등이라는 신세계 사상을 부르짖는 미국 변경 개척민들에 의해 도전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장기간의 어렵고 치열한 싸움이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싸움은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제4장. 당밀과 차(茶)

1776년 1월 10일, 토마스 페인은 「상식(Common Sense)」이라는 팜플렛을 발간했다.
“미국의 조국은 영국이 아니고 유럽이다. …… 올바른 또는 합리적인 모든 것이 분리를 요구한다. 학살된 이들의 피가, 자연의 흐느낌 소리가 외치고 있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라고. 전능하신 분께서 영국과 미국을 두신 거리만 보더라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위에 군림한다는 것이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었음을 자연이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 우리 자신의 정부를 갖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다. ……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망설일 이유가 무엇인가? 제국으로부터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파멸뿐이다. …… 우리의 문제를 가장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개적이고 확고부동한 독립의 선언이다.”
1776년 7월 4일, 의회는 독립선언문을 채택했다. “미 합중국”이 탄생한 것이다.

제5장. 더 완전한 연방을 이루기 위하여

새로운 연방은 강력한 중앙정부로 등장했다. 그들은 “미 합중국 헌법(the Constitution of the U.S.)"을 작성했다. 많은 문제점들과 기타 논의사항들에 관해 대표들은 긴 시간동안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에 관해서만은 실제적으로 대표 전원이 일치된 의견이었다. - 민중이, 말하자면 재산이 별로 없거나 전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힘을 갖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헌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미 합중국 국민은(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더 완전한 연방을 이루기 위하여(in order to form a more perfect union)" 만일 이 헌법이 국민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미국 연방은 이름뿐만이 아닌 진정한 ‘미 합중국’이 될 수 있었다.

제6장. 총 하나, 도끼 하나

그리고 옥수수 한 자루. 그것이 무기였다. 치열한 전쟁 - 용기가 필요했으며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 남았던 싸움에서. 그 전쟁은 다른 예사 전쟁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한편에는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미지의 황야가 있는 보다 스릴 넘치는 전쟁이었다.
황야와의 투쟁이 개척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투쟁은 그들에게 자립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었다. 황야와의 투쟁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는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을 믿었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믿었다. 개척자는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가 누구인가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배웠다. 서부에서 그들은 모두 평등했다. 누구든 자기 일에 성공한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평등할 수 있었다.
“길을 비켜 주십시오. 우리는 국민의 대표들입니다.”
“당신들이 비켜 가시오. 우리는 국민이오.”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배짱을 가졌던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믿고 있었고 어느 누구에게도 머리를 굽히려 들지 않았다. 그는 평등과 자유를 믿고 있었다. 그는 자주적이었고, 강한 자존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고, 두려움을 몰랐으며, 지칠 줄 모르는 부지런함과 성공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갖고 있었다. 황야에서의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제7장. 이상하고 다채로운 변경-그 마지막

서부의 첨단에서 일하던 사냥꾼, 덫사냥꾼들은 길을 찾아내는 사람들이었고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거칠고 위험했으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워 알고 있었다. 그들은 힘들고 외로운 생활을 사랑할 줄 알았다. 문명이 제공하는 생활방식을 내던지고 인디언의 차림새와 관습과 태도를 닮으려 했다. 말과 짐 싣는 가축 두 마리, 총과 탄약, 덫과 칼, 커피포트, 프라이팬, 담요, 알코올과 잎담배, 이것만 있으면 강인한 덫사냥꾼들은 산에서 1년간 생활할 수 있었다.
‘대평원’으로의 이동은 계속되었다. 1890년, 최초로 대서양과 태평양이 각 주(州)로 채워져 연결되었다. 변경의 종말이 온 것이다.

제8장. 공업의 북부

사람이란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는 큰 변화를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법이다. 1808년부터 1814년까지 미국의 공업제품 수입은 차차 감소되었다. 이제 미국은 스스로 공업제품을 제조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영국과 기타 유럽국가 들로부터 수입되던 제품들이 전쟁으로 인해 차단되었으므로, 무역업자와 상인들은 무역에서 축적한 자본을 공장과 기계에 투자했다. 남아돌아가는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문제는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항상 절박한 문제가 된다. 산업혁명은 이제 미국에 도래했다. 1860년까지 동북부 지방은 미국의 공업 중심지로서의 토대를 굳혔다. 이 지방은 공업에 이상적인 곳이었다. 이곳에는 대규모의 사업을 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있었다.

제9장. 농업의 남부

흑인 노예들이 배에 실려 최초로 이 나라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1619년이었다. 1690년까지 남부에는 백인 계약노동자들이 흑인 노예들보다 수적으로 더 많았다. 18세기 말에 이르자 흑인 노예가 훨씬 더 많아졌다. 노예 노동력의 사용은 남부의 플랜테이션 제도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남부의 노예 소유자들이 쌀, 잎담배, 사탕수수를 재배했던 것은 북부의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손에는 잘 팔리는 작물과, 다른 한 손에는 그 작물을 재배하는 특수한 노동력을 갖고 있었다. 자연적인 귀결로 여기에 플랜테이션 제도가 발전되었다.

제10장. 땅 주인과 돈 주인의 싸움

국가의 명칭은 미 합중국 이었으나, 그것은 이름뿐으로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북부와 남부는 일과 사고방식, 생활이 서로 달랐다. 북부에서는 소규모의 농업, 해운업, 발전하는 공업이 있었고, 그 모두를 백인 자유노동에 의존하고 있었다. 남부에서는 흑인 노예노동에 의한 유일 작물의 농업이 있었다. 두 지역의 생활은 모든 면이 달랐으므로 서로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권력층으로 부상하고 있던 북부의 상인, 제조업자, 은행가계급은 남부의 지주계급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분쟁은 60년 이상 계속되었고, 종국에는 ‘남북전쟁(the Civil War)'으로 끝을 내렸다. 남부는 폐허가 되었다.

제11장. 자원 인력 기계 돈

산업혁명은 1865년 이전에도 이미 인류의 생활방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변화들이 경이적인 속도로 일어나게 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로부터 현재까지의 기간 동안이다. 1860년까지 정부는 대체로 남부의 지주들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었다. 그러나 1865년 남부지주들의 몰락과 함께 개선한 북부의 자본가들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삼림, 평야, 산들은 이제 비장의 보물들을 내놓게끔 다루어질 수 있었다 - 북부 자본가들의 손으로.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던 용감한 기업가들이었다. 그들은 수익을 줄만한 상황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상상력과, 그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지(機智)를 가진 빈틈없는 책략가들이었다. 그들은 이상가(理想家)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현실적이었고 맹렬한 장사꾼들이었다. 더 많은 수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망은 어떠한 것으로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천연자원과 노동력과 자본을 합성하여 현대의 미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미국을 개발했다. 때로는 정당한 방법으로, 때로는 부정한 방법으로 그들은 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 국가의 부(富)가 점점 그들 소수의 손 안으로 집중되었다. 그들의 힘도 그들의 부와 함께 자랐다. 그들은 미국의 진정한 지배자들이 되었다.

제12장. 더 많은 자원 인력 기계 돈

1880년대까지는, 영민한 기업가들은 서로 경쟁했다. 1880년대 이후, 그들은 서로 단결했다. 그들은 큰 이윤을 얻는 길이 그들의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일체의 생산물을 장악하는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01년, 조강제조업체였던 카네기 회사는 국내 최대의 강철 완제품 제조회사들을 합병하여 국내 최초의 10억 달러대 회사인 미국강철회사(United States Steel Corporation)를 설립했다. 다른 회사들 역시 그와 비슷하게, 작은 도토리나무가 거대한 떡갈나무로 커나가듯 성장했다. 존 D. 록펠러의 스탠다드 석유회사(Standard Oil Company)는 석유사업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오직 승리만을 위한 경쟁이었다. 1904년에 이르러서 스탠다드 석유회사는 미국 내의 등용(燈用)정유의 86%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주식회사의 규모 증대가 세력의 증대를 의미했으며, 그것은 심히 불안한 것이었다.

제13장.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노동자 계급은 그들의 노동조합을 통해서 자본가와 싸웠다. 그들은 일선에서 작업을 담당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철도업무 종사자, 석탄과 철을 채굴하던 광부, 대도시를 건설하던 근로자, 공장에서 기계를 운전하던 산업근로자 등이 그들이었다. 그것은 빈 말(言)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다이나마이트, 폭탄, 기관총 등이 흔히 사용되었다. 양쪽 모두에 살상이 행해졌다. 그것은 무서운 투쟁이었다.
재산이 1위였고 인간의 생명은 2위였다. 그것이 마찰의 한 원인이었다. 산업혁명은 노동자의 운명을 자본가의 손에 맡기도록 만들었다. 고용주는 공장과 값비싼 기계를 갖고 있었다. 근로자는 더 이상 자기가 먹을 양식을 생산하거나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다른 길이 없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배를 주릴 수밖에 없었다. 근로자들은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저항하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단결하여 노동조합을 구성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길고 격렬한 투쟁에서 미국 법원은 가진 자의 편이었다.

제14장. 무일푼에서 백만장자로

50년 동안 대심원은 미국의 주식회사에 특별한 면책권을 주었다. 그것은 법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른 어떤 자본주의 국가의 기업도 누릴 수 없었던 특별한 면책권이었다. 통제로부터의 해방은 모자에서 다른 무엇을 꺼내는, 늘상 있어왔던, 마술사의 묘기에 의해서 기업에 주어졌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들었을 때, 미국은 이미 세계 제일의 공업국이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29년 후,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도 감히 따라갈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앞질러 있었다. 최초의 이주민 정착 시절에서 1929년까지의 300년간은 경제적 확장의 시대였다. 이 땅의 국민들이 소유할 수 있었던 상품과 용역이 끊임없이 증가되었던 시대였다. 생활수준의 꾸준한 상승은 1920년대에 이르러 유례없는 번영의 시대를 맞아 그 절정에 달했다. 그 3백년간의 대 변모는 옛날 통속소설 작가의 환영을 받았을 스릴 만점의 성공담이 될 것이다. 그는 아마도 이 이야기에 “무일푼에서 백만장자로”라는 걸맞는 제목을 붙였으리라.

<제2부: The Dream of America>

제15장. 백만장자에서 무일푼으로

1930~32년의 무서운 불황의 시기에, 세계 최대의 부국은 ‘병든 나라’였다. 미국의 어디에서나 빈곤을 읽을 수 있었다. 근로자, 농민, 전문직 종사자, 모든 사람들이 불황에 허덕이고 있었다. 1929년의 공황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화폐제도, 투기, 부의 분배, 기술의 진보, 변경의 사라짐,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 등, 그리고 그 외에 경제학자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조작해 낸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려는 것들은 모두 핵심을 벗어난 얘기들이다. 왜냐하면, 그런 설명들은 병의 갖가지 증상들을 병 자체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앓고 있던 질병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였다. 그리고 부자의 문전에는 거지 나사로가 함께 살고 있었다. 기아와 궁핍이 영국, 프랑스, 독일의 공업 중심지에 존재하듯 미국의 공업 중심지에도 존재했다.

제16장. 아무도 굶주리게 할 수는 없다

1932년 11월 8일, 미국 국민은 미 합중국의 대통령으로 프랭클린 D.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를 선출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 정책”은 하나의 혁명이라 불렸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혁명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념으로는 혁명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혁명이 아니었다. 뉴딜 정책은 관념의 혁명이었다.

제17장. 다시 일자리를 주기 위해

정부의 지출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정부의 지출은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었다. 정부의 지출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소비의 회복”을 가져왔다. 정부의 지출이 감소되었을 때는 회복세도 감소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정부의 지출은 그들에게 일자리와 돈과 식량과 의복과 잠자리와 그리고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부자들은 볼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정부의 지출이 나라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었다. 문제는 정부가 돈을 빌려서 어디에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부가 빌린 돈을 생산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한, 파산의 위험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18장. 판매자도 주의하라

구호와 경제 회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의 악화된 상태를 치료하는 것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당면했던 과제들 중의 일부에 불과했다. 애초에 그러한 사태를 몰고 온 근원적인 폐해를 제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세계 제일의 부국에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있던 것보다 더 형편없는 빈민굴이 있었다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미 국민의 ⅓이 불량한 주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빈민굴은 어디에나 있었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불결하고 불건강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개혁이 필요했다. 빈민굴 정리사업은 인간 생명의 구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덜 중요하긴 하지만 똑같이 사실이었던 것은, 그것이 돈의 절약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빈민굴은 질병과 범죄의 온상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철거되고 있지는 않았다.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오직 한 걸음만이 옮겨졌을 뿐이었다.

제19장. 세계적인 무법상태의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

1933년 이후의 세계정세는 1918년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했고 어수선했다. 전쟁은 더 이상 지난날의 흐려진 기억도, 먼 앞날의 막연한 불안도 아니었다. 1933년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는 악한 이웃들의 세계였다. 그들은 필사적인 경제적 경쟁으로 뛰어들었고,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소수를 박해했으며, 서로 대적하여 군비(軍備)를 쌓았고, 서로간의 조약을 위반했고, 약소국가에 침략을 범했던 이웃들이었다. 그들은 세계를 재분할할 목적으로 세계를 급속히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던 이웃들이었다. 전쟁을 피하고 평화의 굳건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단지 선린의 유대관계를 역설하는 것 이상이 필요했다.
미국 자신은 확실히 침략자가 아니었다. 미국의 지배적인 관심사는 평화의 유지와 수출무역의 확장이었다.

제20장. 일자리와 평화

1938년 4월 29일,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의회에 보내는 교서에서 미국민에게, 그들의 자유와 정체(政體)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에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민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였다.
일자리와 평화의 문제는 우리의 독점구조와 이윤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가 독점자본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독점자본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아니면 국민 자신의 복지를 위해 국민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민중은 뉴딜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들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오늘날, 그들은 그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경제적, 정치적 활동은 배가되어야 한다. 그들은 일자리와 평화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은 얻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투쟁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일자리와 평화는 이윤(利潤)만을 위한 생산제도가 아닌, 사용(使用)을 위한 생산제도 하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

1947년도 판의 번역본인 이 책은 꽤 분량이 있음에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미국인들이 그들의 식민지 시대의 조상을 닮아 유익하지 않은 법들은 아직도 계속 무시하고 있다는, 그것이 전통적인 관습이라고 꼬집는 대목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무엇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멀고 먼 낯선 땅에 정착하기를 꿈꾸게 했을까? 그들은 그 꿈을 이룬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부제: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의 글 일부를 옮기는 것으로 나의 느낌을 대신하겠다.

워싱턴의 얼굴 흰 대추장이 우리에게 우정의 인사와 안부를 전해 왔다. 무척 친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는 우리의 우정이 그다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의 부족은 숫자가 많다. 마치 초원을 뒤덮은 풀과 같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적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드문드문 서 있는 들판의 나무들처럼.

위대하고 훌륭한 백인 추장은 아울러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무 불편 없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덧붙였다. 실로 자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은 더 이상 그에게서 존경받을 아무런 권리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제안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이제 넓은 땅이 필요 없을 테니까.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가 조개들 널린 바닥을 뒤덮듯, 우리 부족이 모든 대지를 뒤덮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오래전에 떠나갔고, 우리의 위대했던 부족들도 잊혀져 갔다. 우리가 다 사라진다 해도 나는 슬퍼하지 않으리라. 얼굴 흰 형제들이 이 대지를 다 차지한다 해도 나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으리라.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며, 우리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니까.

우리의 젊은이들이 얼굴 흰 사람들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화를 내면서 자신들의 얼굴에 검은 물감을 칠했을 때, 그들의 가슴 역시 검게 변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종종 더할 나위 없이 난폭해져서, 우리 늙은이들도 그들을 말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희망을 갖자.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과 얼굴 흰 형제들 사이의 적대감이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기를. 서로를 적대시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기만 할 뿐,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젊은 전사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미 자식을 잃은 우리 늙은이들은 잘 알고 있다. 싸움을 통해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에서 솟아오르는 수액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따라서 워싱턴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겠다고 한 제의는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의 누이와 형제와 우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대추장이 우리의 삶의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땅을 손에 넣기 위해 한밤중에 찾아온 낯선 자다. 대지는 그의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는 대지를 정복한 다음 그곳으로 이주한다. 그는 대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어머니인 대지와 맏형인 하늘을 물건처럼 취급한다. 결국 그의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 치워 사막으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아무리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의 방식은 당신들의 방식과는 다르다. 우리가 대지를 팔아야 한다면,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그 공기 또한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임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공기이며, 모든 아침마다 우리가 맞이하는 것도 그 공기다. 바람은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과 마지막 숨을 주었다. 그 바람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을 불어다 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들들에게도 일어난다. 사람이 삶의 거미줄을 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역시 한 올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가 거미줄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조상들의 육신과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대지를 존중하게 해야 한다. 대지가 풍요로울 때 우리의 삶도 풍요롭다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사람이 땅을 파헤치는 것은 곧 그들 자신의 삶도 파헤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안다. 대지는 인간에 속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에 속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안다.

이 대지 위에 자기 혼자라고 할 만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을과 도시의 거리들이 밤이 되어 고요해지면 당신들은 황량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이 아름다운 대지를 사랑하는 우리 부족의 숨결이 모든 곳에 가득하다. 얼굴 흰 사람들은 결코 고독하지 않으리라. 죽은 자라고 해서 아무런 힘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 당신들은 사라져 가는 우리 부족에게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그들은 단지 세상의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지금 내가 ‘죽은 자’라고 말했던가? 그렇지 않다.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미타쿠예 오야신 -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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