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45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6월 17일 02시 40분 등록



생활에게

 

이병률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나는 집에 있으면서 절반의 나를 내보낸다

밭에 내보내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고

먼 데로 장가를 보내기도 한다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그리하여 더군다나 아무것도 아니라면 좀 살 만하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살아가는 힘을 구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고 기억도 아닌

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

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이러니 정작 내가 사는 일은 쥐나 쫓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절반으로 나눠 살기 어려울 때는

내가 하나가 아니라 차라리 둘이어서

 

하나를 구석지로 몰고 몰아

잔인하게 붙잡을 수도 있을 터이니

 

시집『찬란』,이병률, 문학과지성사, 2010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4 [시인은 말한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슌타로 정야 2021.11.22 2718
243 [시인은 말한다] 너에게 보낸다 / 나태주 file 정야 2020.09.21 2525
242 [시인은 말한다] 새출발 / 오보영 file 정야 2019.07.05 2403
241 [시인은 말한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정야 2022.01.03 2161
240 [시인은 말한다]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file 정야 2020.10.05 2160
239 [리멤버 구사부] 나를 마케팅하는 법 정야 2021.12.13 2135
238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정야 2021.12.13 2135
237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정야 2021.12.20 2129
236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정야 2021.09.27 2116
235 [시인은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file 정야 2019.04.08 2115
234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정야 2021.11.15 2106
233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정야 2021.10.11 2102
232 [시인은 말한다]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file 정야 2019.09.23 2067
231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2045
230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정야 2021.12.31 2035
229 [시인은 말한다] 은는이가 / 정끝별 정야 2021.09.06 2033
228 [시인은 말한다] 그대에게 물 한잔 / 박철 file 정야 2020.11.16 2032
227 [시인은 말한다] 친밀감의 이해 / 허준 file 정야 2020.11.02 2023
226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2005
225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정야 2022.02.28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