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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7일 03시 11분 등록

[무인도]

                                      김형술

 

  수심 깊이 물휘돌이 거느린 깎아지른 벼랑으로 서서 쪽배 한 잎 허락지 않는 네 무언의 거부는 두려움이다. 두려워 소름 돋는 아름다움이다. 몸속 한 모금의 물, 한 포기의 풀마저 버리기 위해 만난 안개와 태양을 어느 가슴이 헤아릴 수 있을까. 헤아려 어느 물너울에 새길까.

  수평선은 절대권력이다. 산 것들의 노래와 울음, 노회한 시간들의 기호와 상징, 그 어느 것도 가로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달려가는 저 완강한 직선을 너는 꺾어놓는다. 무심히, 문득 멈춰 세운다. 방점, 깃발, 음표, 표지판... 누구도 규정짓지 못하는 너는 아무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니므로 자유, 누구도 침범도 규정도 불가능한 완벽한

  언어를 버려서 너는 언어다. 사방 드넓게 열린 언어만이 사나운 바람을 길들이지 않는다. 수면과 구름 사이 제멋대로 오가며 바람은 함부로 발자국을 남기지만 너는 여전히 요지부동, 점점 꽃씨 같은 별들이 흩뿌리는 생생한 날것의 눈빛에도 흔들리지 않는, 세상의 중심 깊숙이 내린 너의 뿌리는 어둡고 차고 향기로울 터.

  어떤 뭍의 비유도 범접하지 못하는 묵언의 자존 하나가 거기 있다. 떠나고 또 떠나서 아주 멀리.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 강건한 빈 마음으로 서 있는 듯 떠다니는 듯.

 

김형술 시집 『무기와 악기』, 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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