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70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1년 10월 25일 01시 20분 등록



작은 것을 위하여



 이기철


굴뚝새들은 조그맣게 산다


강아지풀 속이나 탱자나무 숲 속에 살면서도 그들은 즐겁고


물여뀌 잎새 위에서도 그들은 깃을 묻고 잠들 줄 안다


작은 빗방울 일부러 피하지 않고


숯더미 같은 것도 부리로 쪼으며 발톱으로 어루만진다


인가에서 울려오는 차임벨 소리에 놀란 눈을 뜨고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에 가슴은 떨리지만


밤과 느릅나무 잎새와 어둠 속의 별빛을 바라보며


그들은 조용한 화해와 순응의 하룻밤을 새우고


짧은 꿈속에 저들의 생애의 몇 토막 이야기를 묻는다


아카시아꽃을 떨어뜨리고 불어온 바람이 깃털 속에 박히고


박하꽃 피운 바람이 부리 끝에 와 머무는 밤에도


그들의 하루는 어둠 속에서 깨어나 또 다른 날빛을 맞으며


가을로 간다


여름이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들녘 끝에 개비름꽃 한 점 피웠다 지우듯이


가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산기슭 싸리나무 끝에


굴뚝새들의 단음의 노래를 리본처럼 달아둔다


인간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인간 다음에 이 지상에 남을 것들을 위하여


굴뚝새들은 오리나무 뿌리 뻗는 황토 기슭에


그들의 꿈과 노래를 보석처럼 묻어 둔다


 


이기철 시집, 『전쟁과 평화』, 문학과지성사, 1985






IP *.37.189.7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4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정야 2022.02.28 458
243 [시인은 말한다]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정야 2022.02.03 481
242 [리멤버 구사부] 내 삶의 아름다운 10대 풍광 정야 2022.01.24 459
241 [시인은 말한다] 길 / 신경림 정야 2022.01.17 472
240 [리멤버 구사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정야 2022.01.10 521
239 [시인은 말한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정야 2022.01.03 709
238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정야 2021.12.31 587
237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정야 2021.12.20 715
236 [리멤버 구사부] 나를 마케팅하는 법 정야 2021.12.13 755
235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정야 2021.12.13 661
234 [리멤버 구사부] 나보다 더한 그리움으로 정야 2021.12.13 583
233 [시인은 말한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슌타로 정야 2021.11.22 748
232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정야 2021.11.15 685
231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정야 2021.11.15 799
230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정야 2021.11.01 660
»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706
228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정야 2021.10.18 657
227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정야 2021.10.11 711
226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649
225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정야 2021.09.27 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