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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4일 02시 08분 등록



노자가 떠나던 길에 도덕경을 써주게 된 전설*

 

   베르톨트 브레히트

 

1.

노자가 나이 칠순이 되어 노쇠하였을 때

물러가 쉬고 싶은 생각이 이 스승을 사로잡았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는 선이 다시 약화되고

악이 다시 득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

그리고 필요한 것을 챙겨 짐을 꾸렸다.

아주 작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몇 개 되었다.

이를테면 그가 저녁이면 언제나 피우던 담뱃대,

그가 언제나 읽던 작은 책.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흰 빵 조금.

 

3.

산맥 속으로 길이 접어들자

그는 다시 한번 산골짜기의 경관이 즐거워 모든 것을 잊었다.

이 노인을 태우고 가는 황소도 신선한 풀을 씹으며 좋아했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4.

그런데 넷째 날 한 암문(岩門)에 이르자 세리(稅吏) 한 사람이 그의 길을 막았다.

"세금을 부과할 귀중품은 없습니까?"

"없소" 황소를 몰고 가는 동자가 말했다.

"이 분은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신 스승이셔요"

이렇게 하여 통관절차는 끝났다.

 

5.

그러나 그 사나이는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또 물었다. "이 분에게 무엇을 좀 얻어들은 것이 있느냐?"

동자가 말했다.

"흐르는 부드러운 물이 시간이 가면 단단한 돌을 이기는 법이니라."**

강한 것이 유()한 것에게 진다는 뜻을 당신은 아시겠지요."

 

6.

저물어 가는 햇빛을 허송하지 않으려고 동자는 이제 황소를 몰았다.

그리하여 셋이서 한 그루 검은 소나무 옆을 돌아 사라지려 할 때

갑자기 그 사나이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여보시오, 어이! 잠깐만 서시오!"

 

7.

"그 물이 어떻게 됐다는 겁니까, 노인장"

노인이 멈추어 섰다. "그것이 당신에게 흥미가 있소?"

사나이는 말했다. "나는 한갓 세리에 지나지 않지만 누가 누구에게 이긴다는 것인지,

그것이 나의 흥미를 끕니다. 당신이 그것을 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8.

“나에게 그것을 써 주십시오! 이 동자더러 받아쓰도록 해주십시오!

그런 것을 혼자서 가지고 가버리면 안됩니다.

저기 우리 집에 종이와 먹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도 있습니다. 나는 저기 삽니다.

, 이만한 약속이면 되겠습니까?”

 

9.

어깨 너머로 노인은 그 사나이를 내려다보았다.

기워 입은 웃옷에 맨발. 이마에는 주름살이 딱 한 개.

아 노인에게 다가선 그는 어느모로 보나 승자(勝者)는 아니었다.

노인은 중얼거렸다. "당신도 흥미가 있다고?"

 

10.

이 겸손한 청을 거절하기에 노인은 너무 늙은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그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묻는 사람은 대답을 얻기 마련이지."

동자도 말했다. "벌써 날씨도 차가와지는데요."

"좋다, 잠깐 머물렀다 가자."

 

11.

그 현인(賢人)은 타고 있던 황소의 등에서 내려 이레 동안 둘이서 기록했다.

그 세리는 식사를 갖다 주었고

(이 기간 동안은 내내 밀수꾼들에게도 아주 목소리를 낮추어 욕을 했다.)

그리하여 일은 끝났다.

 

12.

어느 날 아침 세리에게 동자는 여든 한 장()의 기록을 건네 주었다.

약간의 노자(路資)에 감사하면서

그들은 그 소나무를 돌아 암문으로 들어갔다.

말해보라, 사람이 이보다 더 겸손할 수 있는가?

 

13.

그러나 그 이름이 책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이 현인만 찬양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현인으로부터는 그의 지혜를 빼앗아 내야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 세리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그가 바로 노자에게 지혜를 달라고 간청했었던 것이다.

 

----------------------------

* 노자는 주()나라에서 오래 살다가 주나라의 덕()이 시드는 것을 보고 그곳을 떠나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관령인 윤희의 간청으로 도와 덕의 학설 5천여 마디를 기록하여 남긴 것이 81장으로 된 도덕경이라고 한다.

** 도덕경 제78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광규 역, 한마당,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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