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200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은는이가
정끝별
당신은 당신 뒤에 ‘이(가)’를 붙이기 좋아하고
나는 내 뒤에 ‘은(는)’을 붙이기 좋아한다
당신은 내‘가’ 하며 힘을 빼 한 발 물러서고
나는 나‘는’ 하며 힘을 넣어 한 발 앞선다
강‘이’ 하면서 강을 따라 출렁출렁 달려가고
강‘은’ 하면서 달려가는 강을 불러세우듯
구름이나 바람에게도 그러하고
산‘이’ 하면서 산을 풀어놓고
산‘은’ 하면서 산을 주저앉히듯
꽃과 나무와 꿈과 마음에게도 그러하다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
안 보면서 보는 당신은 ‘이(가)’로 세상과 놀고
보면서 안 보는 나는 ‘은(는)’으로 세상을 잰다
당신의 혀끝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이고
내 혀끝은 가까이 닿으려는 구심력이다
그러니 입술이여, 두 혀를 섞어다오
비문(非文)의 사랑을 완성해다오
정끝별 시집, 『은는이가』, 문학동네, 2014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4 | [시인은 말한다] 벽 / 정호승 | 정야 | 2019.02.11 | 1938 |
223 |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 정야 | 2022.02.28 | 1937 |
222 |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 정야 | 2021.10.25 | 1937 |
221 | [시인은 말한다] 영원 / 백은선 | 정야 | 2021.07.12 | 1937 |
220 |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 정야 | 2021.11.15 | 1935 |
219 |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 정야 | 2021.11.01 | 1929 |
218 | [시인은 말한다] 봄밤 / 김수영 | 정야 | 2019.05.20 | 1916 |
217 |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 정야 | 2021.10.18 | 1899 |
216 | [시인은 말한다] 함께 있다는 것 / 법정 | 정야 | 2021.08.09 | 1896 |
215 | [리멤버 구사부] 도토리의 꿈 | 정야 | 2021.08.30 | 1859 |
214 | [시인은 말한다] 직소폭포 / 김진경 | 정야 | 2021.08.23 | 1838 |
213 | [리멤버 구사부] 매일 같은 시각 한가지에 집중하라 [1] | 정야 | 2017.07.21 | 1813 |
212 | [시인은 말한다] 길 / 신경림 | 정야 | 2022.01.17 | 1808 |
211 | [리멤버 구사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 정야 | 2022.01.10 | 1806 |
210 | [리멤버 구사부]오늘, 눈부신 하루를 맞은 당신에게 [2] | 정야 | 2017.01.09 | 1787 |
209 | [시인은 말한다]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 정야 | 2022.02.03 | 1786 |
208 | [리멤버 구사부] 내 삶의 아름다운 10대 풍광 | 정야 | 2022.01.24 | 1779 |
207 | [리멤버 구사부]삶은 죽음을 먹는 것 | 정야 | 2017.10.28 | 1763 |
206 | [리멤버 구사부] 나보다 더한 그리움으로 | 정야 | 2021.12.13 | 1748 |
205 |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 정야 | 2020.01.13 | 16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