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67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오래 말하는 사이
신달자
너와 나의 깊은 왕래를 말로 해왔다
오래 말 주고받았지만
아직 목마르고
오늘도 우리의 말은 지붕을 지나 바다를 지나
바람 속을 오가며 진행 중이다
종일 말 주고 준 만큼 더 말을 받는다
말과 말이 섞여 비가 되고 바람이 되고
때때로 계절 없이 눈 내리기도 한다
말로 살림을 차린 우리
말로 고층 집을 지은 우리
말로 예닐곱 아이를 낳은 우리
그럼에도 우리 사이 왠지 너무 가볍고 헐렁하다
가슴에선 가끔 무너지는 소리 들린다
말할수록 간절한 것들
뭉쳐 돌이 되어 서로 부딪친다
돌밭 넓다
살은 달아나고 뼈는 우두둑 일어서는
우리들의 고단한 대화
허방을 꽉 메우는 진정한 말의
비밀 번호를 우리는 서로 모른다
진정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은폐의 늪 그 위에
침묵의 연꽃 개화를 볼 수 있을까
단 한 마디만 피게 할 수 있을까
단 한마디의 독을 마시고
나란히 누울 수 있을까
신달자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 믿음사, 2004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4 | [리멤버 구사부] 매일 같은 시각 한가지에 집중하라 [1] | 정야 | 2017.07.21 | 1685 |
223 |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 정야 | 2021.12.13 | 1682 |
» |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 정야 | 2021.11.15 | 1678 |
221 |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 정야 | 2021.09.27 | 1665 |
220 | [리멤버 구사부]삶은 죽음을 먹는 것 | 정야 | 2017.10.28 | 1652 |
219 |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 정야 | 2021.10.11 | 1644 |
218 | [리멤버 구사부]오늘, 눈부신 하루를 맞은 당신에게 [2] | 정야 | 2017.01.09 | 1635 |
217 |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 정야 | 2021.10.11 | 1581 |
216 |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 정야 | 2021.10.25 | 1572 |
215 |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 정야 | 2021.12.31 | 1571 |
214 |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 정야 | 2021.11.15 | 1566 |
213 |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 정야 | 2022.02.28 | 1565 |
212 |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 정야 | 2020.01.13 | 1554 |
211 |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 정야 | 2021.11.01 | 1547 |
210 |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 정야 | 2020.11.09 | 1532 |
209 |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 정야 | 2021.10.18 | 1530 |
208 | [시인은 말한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 정야 | 2020.11.30 | 1527 |
207 |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 정야 | 2020.07.20 | 1507 |
206 | [시인은 말한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 | 정야 | 2021.01.25 | 1490 |
205 |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 정야 | 2020.08.10 | 14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