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99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껍질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고두현 시집『늦게 온 소포』,민음사, 200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4 |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 | 정야 | 2020.01.13 | 1049 |
223 | [리멤버 구사부] 숙련의 '멋' | 정야 | 2021.08.02 | 1048 |
222 |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 | 정야 | 2020.11.09 | 1048 |
221 | [시인은 말한다] 픔 / 김은지 | 정야 | 2020.12.28 | 1037 |
220 |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 ![]() | 정야 | 2019.02.25 | 1034 |
219 |
[시인은 말한다] 친밀감의 이해 / 허준 ![]() | 정야 | 2020.11.02 | 1032 |
218 |
[시인은 말한다] 낯선 곳 / 고은 ![]() | 정야 | 2020.06.15 | 1020 |
217 | [리멤버 구사부] 내가 담아낼 인생 | 정야 | 2017.11.07 | 1016 |
216 |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 | 정야 | 2020.07.20 | 1015 |
215 | [리멤버 구사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라 [1] | 정야 | 2017.06.20 | 1006 |
214 |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 | 정야 | 2020.08.10 | 1001 |
213 | [리멤버 구사부]인생이라는 미로, 운명을 사랑하라 | 정야 | 2017.10.04 | 997 |
212 | [리멤버 구사부] 좋은 얼굴 | 정야 | 2021.09.13 | 996 |
» |
[시인은 말한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 | 정야 | 2019.01.28 | 993 |
210 | [리멤버 구사부] 자신의 이중성을 인정하라 | 정야 | 2017.10.09 | 994 |
209 | [리멤버 구사부] 도토리의 꿈 | 정야 | 2021.08.30 | 992 |
208 | [리멤버 구사부] 괜찮은 사람 되기 | 정야 | 2021.07.26 | 991 |
207 | [시인은 말한다] 나무들 / 필립 라킨 | 정야 | 2021.05.03 | 980 |
206 |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 정야 | 2019.05.20 | 976 |
205 | [리멤버 구사부] 가장 전문가다운 전문가란 | 정야 | 2017.11.16 | 9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