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04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상처적 체질
류근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찍
『상처적 체질』,류근, 문학과지성사, 2010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4 | [리멤버 구사부] 좋은 얼굴 | 정야 | 2021.09.13 | 1174 |
223 | [시인은 말한다] 은는이가 / 정끝별 | 정야 | 2021.09.06 | 1444 |
222 | [리멤버 구사부] 도토리의 꿈 | 정야 | 2021.08.30 | 1315 |
221 | [시인은 말한다] 직소폭포 / 김진경 | 정야 | 2021.08.23 | 1337 |
220 | [리멤버 구사부] 필살기 법칙 | 정야 | 2021.08.16 | 1183 |
219 | [시인은 말한다] 함께 있다는 것 / 법정 | 정야 | 2021.08.09 | 1364 |
218 | [리멤버 구사부] 숙련의 '멋' | 정야 | 2021.08.02 | 1201 |
217 | [시인은 말한다] 여름의 시작 / 마츠오 바쇼 | 정야 | 2021.07.26 | 1167 |
216 | [리멤버 구사부] 괜찮은 사람 되기 | 정야 | 2021.07.26 | 1182 |
215 | [시인은 말한다] 영원 / 백은선 | 정야 | 2021.07.12 | 1396 |
214 | [리멤버 구사부] 자신의 삶을 소설처럼 | 정야 | 2021.07.12 | 1033 |
213 | [시인은 말한다] 송산서원에서 묻다 / 문인수 | 정야 | 2021.07.12 | 1142 |
212 | [리멤버 구사부] 불현듯 깨닫게 | 정야 | 2021.06.21 | 1024 |
211 | [시인은 말한다] 노자가 떠나던 길에 도덕경을 써주게 된 전설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정야 | 2021.06.14 | 1173 |
210 | [리멤버 구사부] 치열한 자기혁명 | 정야 | 2021.06.14 | 998 |
209 | [시인은 말한다] 다례茶禮를 올리는 밤의 높이 / 박산하 | 정야 | 2021.05.31 | 1127 |
208 | [리멤버 구사부] 지금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 정야 | 2021.05.24 | 1127 |
207 | [시인은 말하다] 꿈 / 염명순 | 정야 | 2021.05.17 | 1063 |
206 | [리멤버 구사부] 스스로 안으로부터 문을 열고 | 정야 | 2021.05.10 | 1105 |
205 | [시인은 말한다] 나무들 / 필립 라킨 | 정야 | 2021.05.03 | 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