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30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복효근
새들이 겨울 응달에
제 심장만 한 난로를 지핀다
두 마리 서너 마리 때로는 떼로 몰리다 보니
새의 난로는 사뭇 따숩다
새들이 하는 일이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꽃눈 잎눈 만드는 것을 잊거나
두레박질을 게을리 하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일,
너무 추워서 옹크리다가
눈꽃 얼음꽃이 제 꽃인 줄 알고
제 꽃의 향기와 색깔을 잊는 일 없도록
나무들의 잠 속에 때맞춰 새소리를 섞어주는 일,
얼어붙은 것들의 이마를 한 번씩
콕콕 부리로 건드려주는 일,
고드름 맺힌 나무들의 손목을 한 번씩 잡아주는 일,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천지의 나뭇가지가 대들보며 서까래다
어디에 상량을 얹고
어디에 문패를 걸겠는가
순례지에서 만난 수녀들이 부르는 서로의 세례명처럼
새들은 서로의 소리가 제 둥지다
소리의 둥지가 따뜻하다
이 아침 감나무에 물까치 떼 왔다 갔을 뿐인데
귀 언저리에 난로 지핀 듯 화안하다
복효근 시집,『따뜻한 외면』, 복효근, 2013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04 |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 정야 | 2020.08.10 | 1486 |
203 | [시인은 말한다] 나무들 / 필립 라킨 | 정야 | 2021.05.03 | 1484 |
202 | [시인은 말한다] 간절 / 이재무 | 정야 | 2021.03.08 | 1480 |
201 | [리멤버 구사부] 관계의 맛 | 정야 | 2020.10.26 | 1479 |
200 | [시인은 말한다] 눈풀꽃 / 루이스 글릭 | 정야 | 2020.10.19 | 1474 |
199 | [리멤버 구사부] 나를 혁명하자 | 정야 | 2021.01.04 | 1473 |
198 | [리멤버 구사부] 잃어버린 열정을 찾아서 | 정야 | 2020.12.07 | 1470 |
197 | [시인은 말한다]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 허수경 | 정야 | 2019.12.30 | 1469 |
196 | [리멤버 구사부] 스스로의 역사가 [3] | 정야 | 2020.08.31 | 1468 |
195 | [리멤버 구사부] 고독의 인연 | 정야 | 2020.08.18 | 1466 |
194 | [시인은 말한다]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따라가는 삶의 사소한 선택들 혹은 소금과 별들의 순환 이동 경로 / 박정대 | 정야 | 2020.07.27 | 1463 |
193 | [시인은 말한다] 첫 꿈 / 빌리 콜린스 | 정야 | 2019.10.21 | 1463 |
192 | [시인은 말한다]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 | 정야 | 2021.04.05 | 1459 |
191 | [리멤버 구사부] 괜찮은 사람 되기 | 정야 | 2021.07.26 | 1455 |
190 | [리멤버 구사부] 필살기 법칙 | 정야 | 2021.08.16 | 1450 |
189 | [시인은 말한다] 난독증 / 여태천 | 정야 | 2020.07.13 | 1447 |
188 | [리멤버 구사부] 숙련의 '멋' | 정야 | 2021.08.02 | 1441 |
187 | [시인은 말한다] 노자가 떠나던 길에 도덕경을 써주게 된 전설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정야 | 2021.06.14 | 1441 |
186 | [리멤버 구사부] 좋은 얼굴 | 정야 | 2021.09.13 | 1440 |
185 | [리멤버 구사부]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 정야 | 2020.12.21 | 14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