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96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1년 11월 15일 00시 33분 등록




오래 말하는 사이


                       신달자


 

너와 나의 깊은 왕래를 말로 해왔다


오래 말 주고받았지만


아직 목마르고


오늘도 우리의 말은 지붕을 지나 바다를 지나


바람 속을 오가며 진행 중이다


종일 말 주고 준 만큼 더 말을 받는다


말과 말이 섞여 비가 되고 바람이 되고


때때로 계절 없이 눈 내리기도 한다


말로 살림을 차린 우리


말로 고층 집을 지은 우리


말로 예닐곱 아이를 낳은 우리


그럼에도 우리 사이 왠지 너무 가볍고 헐렁하다


가슴에선 가끔 무너지는 소리 들린다


말할수록 간절한 것들


뭉쳐 돌이 되어 서로 부딪친다


돌밭 넓다


살은 달아나고 뼈는 우두둑 일어서는


우리들의 고단한 대화


허방을 꽉 메우는 진정한 말의


비밀 번호를 우리는 서로 모른다


진정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은폐의 늪 그 위에


침묵의 연꽃 개화를 볼 수 있을까


단 한 마디만 피게 할 수 있을까


단 한마디의 독을 마시고


나란히 누울 수 있을까


 


신달자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 믿음사, 2004


 


IP *.37.189.7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4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file 정야 2020.11.09 1639
203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file 정야 2020.07.20 1613
202 [시인은 말한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file 정야 2020.11.30 1609
201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file 정야 2020.08.10 1580
200 [시인은 말한다] 간절 / 이재무 정야 2021.03.08 1577
199 [시인은 말한다] 낯선 곳 / 고은 file 정야 2020.06.15 1574
198 [리멤버 구사부] 관계의 맛 file 정야 2020.10.26 1573
197 [시인은 말한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 정야 2021.01.25 1572
196 [시인은 말한다]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따라가는 삶의 사소한 선택들 혹은 소금과 별들의 순환 이동 경로 / 박정대 file 정야 2020.07.27 1567
195 [리멤버 구사부] 나를 혁명하자 file 정야 2021.01.04 1566
194 [시인은 말한다] 첫 꿈 / 빌리 콜린스 file 정야 2019.10.21 1561
193 [리멤버 구사부] 고독의 인연 file 정야 2020.08.18 1559
192 [시인은 말한다]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 허수경 file 정야 2019.12.30 1559
191 [리멤버 구사부] 잃어버린 열정을 찾아서 file 정야 2020.12.07 1558
190 [시인은 말한다] 눈풀꽃 / 루이스 글릭 file 정야 2020.10.19 1558
189 [시인은 말한다]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 정야 2021.04.05 1547
188 [리멤버 구사부] 스스로의 역사가 file [3] 정야 2020.08.31 1542
187 [시인은 말한다] 대추 한 알 / 장석주 file 정야 2020.08.24 1540
186 [시인은 말한다] 나무들 / 필립 라킨 정야 2021.05.03 1538
185 [시인은 말한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정야 2021.03.22 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