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77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오늘, 쉰이 되었다
이면우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 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 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이면우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 2011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04 | [시인은 말한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 정야 | 2020.11.30 | 1864 |
203 |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 정야 | 2020.01.13 | 1853 |
202 |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 정야 | 2020.07.20 | 1838 |
201 | [시인은 말한다] 간절 / 이재무 | 정야 | 2021.03.08 | 1826 |
200 | [시인은 말한다] 잃는 것과 얻은 것 / 헨리 왜즈워스 롱펠로 | 정야 | 2019.07.15 | 1825 |
199 | [리멤버 구사부] 관계의 맛 | 정야 | 2020.10.26 | 1818 |
198 | [리멤버 구사부] 나를 혁명하자 | 정야 | 2021.01.04 | 1816 |
197 | [시인은 말한다] 낯선 곳 / 고은 | 정야 | 2020.06.15 | 1811 |
196 | [시인은 말한다]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 허수경 | 정야 | 2019.12.30 | 1808 |
195 |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 정야 | 2020.08.10 | 1807 |
194 | [시인은 말한다]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따라가는 삶의 사소한 선택들 혹은 소금과 별들의 순환 이동 경로 / 박정대 | 정야 | 2020.07.27 | 1802 |
193 | [시인은 말한다] 푸픈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 / 배한봉 | 정야 | 2019.08.26 | 1802 |
192 | [시인은 말한다] 눈풀꽃 / 루이스 글릭 | 정야 | 2020.10.19 | 1800 |
191 | [시인은 말한다] 난독증 / 여태천 | 정야 | 2020.07.13 | 1800 |
190 | [시인은 말한다] 첫 꿈 / 빌리 콜린스 | 정야 | 2019.10.21 | 1796 |
189 | [시인은 말한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 | 정야 | 2021.01.25 | 1790 |
188 |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 | 정야 | 2019.02.25 | 1790 |
187 | [리멤버 구사부] 좋은 얼굴 | 정야 | 2021.09.13 | 1788 |
186 | [시인은 말한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 정야 | 2021.03.22 | 1779 |
185 |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 정야 | 2019.05.20 | 17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