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70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0년 9월 28일 03시 11분 등록



추석날 아침이 되면 긴 팔 옷을 입고 차례를 지낸다. 가을은 과실이 빛나는 계절이다. 온갖 종류의 과실을 차례상에 올리는 이유도 잎의 시절은 가고 과실의 시절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무의 울창함은 사라지고 남겨야 할 씨앗이 중요해지는 시절이기도 하다.

간혹 마흔이 저물 때쯤이면 사람들은 우리의 시대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아이들이 커지고, 우리는 작아진다.

형님 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는 동안 큰아이가 운전을 했다. 큰아이가 운전을 하면 작은아이는 앞자리에 탄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뒷자리로 옮겨 앉는다.

우린 점잖게 뒷자리에 앉아 젊은 아이의 운전 솜씨에 몸을 맡긴다. 아슬아슬한 자동차의 물결 속을 신이 나서 달려간다. 아이 엄마는 간혹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나는 속으로만 지른다.

자동차의 뒷자리에 앉으면 나는 몇 살을 더 먹곤 한다. 점잖게 앉아 젊은이들이 세상을 이끄는 것을 가슴 졸이며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 늘 앞자리를 선호한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휴머니스트, 181p


KakaoTalk_20200928_025402419.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4 [시인은 말한다] 난독증 / 여태천 file 정야 2020.07.13 1364
183 [시인은 말한다] 늙은 마르크스 / 김광규 정야 2019.06.17 1363
182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1361
181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1360
180 [시인은 말한다] 다례茶禮를 올리는 밤의 높이 / 박산하 정야 2021.05.31 1355
179 [시인은 말한다]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 파블로 네루다 file 정야 2020.06.01 1354
178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정야 2021.12.31 1352
177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정야 2021.11.15 1347
176 [시인은 말한다]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file 정야 2019.01.28 1345
175 [리멤버 구사부] 스스로 안으로부터 문을 열고 정야 2021.05.10 1344
174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정야 2021.11.01 1339
173 [시인은 말한다] 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정야 2019.05.20 1333
172 [리멥버 구사부]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라 [1] 정야 2017.07.14 1332
171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정야 2022.02.28 1330
170 [시인은 말한다] 송산서원에서 묻다 / 문인수 정야 2021.07.12 1329
169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정야 2021.10.18 1326
168 [시인은 말한다] 발작 / 황지우 file 정야 2020.05.18 1326
167 [시인은 말한다] 잎 . 눈[雪] . 바람 속에서 / 기형도 file 정야 2020.12.14 1320
166 [시인은 말한다] 수면 / 권혁웅 file 정야 2020.06.29 1320
165 [리멤버 구사부] 머리카락에 별을 잔뜩 달고 file 정야 2020.05.25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