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29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복효근
새들이 겨울 응달에
제 심장만 한 난로를 지핀다
두 마리 서너 마리 때로는 떼로 몰리다 보니
새의 난로는 사뭇 따숩다
새들이 하는 일이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꽃눈 잎눈 만드는 것을 잊거나
두레박질을 게을리 하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일,
너무 추워서 옹크리다가
눈꽃 얼음꽃이 제 꽃인 줄 알고
제 꽃의 향기와 색깔을 잊는 일 없도록
나무들의 잠 속에 때맞춰 새소리를 섞어주는 일,
얼어붙은 것들의 이마를 한 번씩
콕콕 부리로 건드려주는 일,
고드름 맺힌 나무들의 손목을 한 번씩 잡아주는 일,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천지의 나뭇가지가 대들보며 서까래다
어디에 상량을 얹고
어디에 문패를 걸겠는가
순례지에서 만난 수녀들이 부르는 서로의 세례명처럼
새들은 서로의 소리가 제 둥지다
소리의 둥지가 따뜻하다
이 아침 감나무에 물까치 떼 왔다 갔을 뿐인데
귀 언저리에 난로 지핀 듯 화안하다
복효근 시집,『따뜻한 외면』, 복효근, 2013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44 | [리멤버 구사부] 정면으로 살아내기 | 정야 | 2019.10.14 | 1332 |
143 | [리멤버 구사부] 한 달의 단식 | 정야 | 2019.09.02 | 1330 |
142 | [리멤버 구사부] 사랑하는 법 | 정야 | 2020.08.03 | 1329 |
141 | [리멤버 구사부] 양파장수처럼 | 정야 | 2019.08.20 | 1329 |
140 | [시인은 말한다] 무인도 / 김형술 | 정야 | 2020.09.07 | 1328 |
139 | [리멤버 구사부] 워라밸 | 정야 | 2020.09.14 | 1326 |
138 | [리멤버 구사부] 가장 전문가다운 전문가란 | 정야 | 2017.11.16 | 1326 |
137 | [시인은 말한다] 현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정야 | 2019.07.29 | 1324 |
136 | [리멤버 구사부] 나눈다는 것 | 정야 | 2020.01.20 | 1322 |
135 | [리멤버 구사부] 내가 담아낼 인생 | 정야 | 2017.11.07 | 1318 |
134 | [시인은 말한다] 별 / 이상국 | 정야 | 2019.09.23 | 1313 |
133 | [리멤버 구사부] 자신의 이중성을 인정하라 | 정야 | 2017.10.09 | 1307 |
132 | [리멤버 구사부] 치열한 자기혁명 | 정야 | 2021.06.14 | 1306 |
131 | [시인은 말하다] 꿈 / 염명순 | 정야 | 2021.05.17 | 1305 |
130 | [시인은 말한다] 생활에게 / 이병률 | 정야 | 2019.06.17 | 1302 |
129 | [시인은 말한다] 통속 / 정끝별 | 정야 | 2020.02.24 | 1299 |
128 | [리멤버 구사부]인생이라는 미로, 운명을 사랑하라 | 정야 | 2017.10.04 | 1299 |
» | [시인은 말한다]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 정야 | 2020.02.10 | 1295 |
126 | [리멤버 구사부] 불현듯 깨닫게 | 정야 | 2021.06.21 | 1295 |
125 | [리멤버 구사부] 행복한 일상적 삶 | 정야 | 2020.06.08 | 12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