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25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이근화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 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사랑한 개가 있고 나를 몰라보는 개가 있어
하얗게 비듬을 떨어뜨리며 먼저 죽어가는 개를 위해
뜨거운 수프를 끓이기, 안녕 겨울
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
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
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
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
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직 건너 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 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
그러나 내 인생의 1부는 끝났다 나는 2부의 시작이 마음에 들어
많은 가게들을 드나들어야지 새로 태어난 손금들을 따라가야지
좀 더 근엄하게 내 인생의 2부를 알리고 싶어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인생!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되고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일월부터 다시 계획해야지 바구니와 빵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접시 위의 물은 마를 줄 모르네
물고기들과 꼬리를 맞대고 노란 별들의 세계로 가서
물고기 나무를 심어야겠다
*
3부의 수프는 식었고 당신의 입술로 흘러드는 포도주도
사실이 아니야 그렇지만 인생의 3부에서 다시 말할래
나는 내 인생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아들도 딸도 가짜지만 내 말은 거짓이 아니야
튼튼한 꼬리를 가지고 도끼처럼 나무를 오르는 물고기들
주렁주렁 물고기가 열리는 나무 아래서
내 인생의 1부와 2부를 깨닫고
3부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내 인생!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싹둑 잘려 나가고
훨씬 밝아진 인생의 3부를 보고 있어
나는 드디어 꼬리 치며 웃기 시작했다
『세계의 문학』2006년 가을호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24 | [리멤버 구사부] 도약, 그 시적 장면 | 정야 | 2019.03.04 | 1067 |
123 | [시인은 말한다] 삶은 계란 / 백우선 | 정야 | 2019.01.21 | 1066 |
122 | [시인은 말한다] 내가 아는 그는 / 류시화 | 정야 | 2020.04.06 | 1065 |
121 | [시인은 말한다] 통속 / 정끝별 | 정야 | 2020.02.24 | 1061 |
120 | [시인은 말한다]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 정야 | 2019.04.22 | 1060 |
119 | [시인은 말한다] 의자 / 이정록 | 정야 | 2020.05.04 | 1058 |
118 | [리멤버 구사부] 묘비명 | 정야 | 2020.04.13 | 1053 |
117 | [리멤버 구사부] 변화의 이중성 | 정야 | 2020.05.11 | 1052 |
116 | [리멤버 구사부] 나눈다는 것 | 정야 | 2020.01.20 | 1052 |
115 | [시인은 말한다] 심봤다 / 이홍섭 | 정야 | 2020.03.23 | 1046 |
114 | [리멤버 구사부] 바라건대 | 정야 | 2019.07.22 | 1042 |
113 | [시인은 말한다] 꿈꾸는 사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정야 | 2019.03.11 | 1038 |
112 | [리멤버 구사부]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 정야 | 2017.12.26 | 1038 |
111 | [시인은 말한다]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 정야 | 2020.02.10 | 1037 |
110 | [리멤버 구사부] 어울리는 사랑 | 정야 | 2019.02.07 | 1036 |
109 | [리멤버 구사부] 오늘을 실천하라, 내일 죽을 것처럼 | 정야 | 2019.05.27 | 1035 |
108 | [리멤버 구사부] 흐르는 강물처럼 | 정야 | 2017.10.30 | 1032 |
107 | [리멤버 구사부] 죽음 앞에서 | 정야 | 2019.04.15 | 1031 |
106 | [리멤버 구사부]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꿈과 추억이다 | 정야 | 2017.10.04 | 1030 |
105 | [리멤버 구사부] '나의 날'을 만들어라. | 정야 | 2017.10.04 | 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