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30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복효근
새들이 겨울 응달에
제 심장만 한 난로를 지핀다
두 마리 서너 마리 때로는 떼로 몰리다 보니
새의 난로는 사뭇 따숩다
새들이 하는 일이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꽃눈 잎눈 만드는 것을 잊거나
두레박질을 게을리 하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일,
너무 추워서 옹크리다가
눈꽃 얼음꽃이 제 꽃인 줄 알고
제 꽃의 향기와 색깔을 잊는 일 없도록
나무들의 잠 속에 때맞춰 새소리를 섞어주는 일,
얼어붙은 것들의 이마를 한 번씩
콕콕 부리로 건드려주는 일,
고드름 맺힌 나무들의 손목을 한 번씩 잡아주는 일,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천지의 나뭇가지가 대들보며 서까래다
어디에 상량을 얹고
어디에 문패를 걸겠는가
순례지에서 만난 수녀들이 부르는 서로의 세례명처럼
새들은 서로의 소리가 제 둥지다
소리의 둥지가 따뜻하다
이 아침 감나무에 물까치 떼 왔다 갔을 뿐인데
귀 언저리에 난로 지핀 듯 화안하다
복효근 시집,『따뜻한 외면』, 복효근, 2013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24 | [리멤버 구사부] 정면으로 살아내기 | 정야 | 2019.10.14 | 1334 |
123 | [시인은 말한다] 타이어에 못을 뽑고 / 복효근 | 정야 | 2019.10.14 | 1208 |
122 | [리멤버 구사부] 변화의 기술 | 정야 | 2019.10.14 | 1078 |
121 | [시인은 말한다]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 정야 | 2019.09.23 | 1866 |
120 | [리멤버 구사부] 아름다운 일생길 | 정야 | 2019.09.23 | 1162 |
119 | [시인은 말한다] 별 / 이상국 | 정야 | 2019.09.23 | 1318 |
118 | [리멤버 구사부] 한 달의 단식 | 정야 | 2019.09.02 | 1333 |
117 | [시인은 말한다] 푸픈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 / 배한봉 | 정야 | 2019.08.26 | 1430 |
116 | [리멤버 구사부] 양파장수처럼 | 정야 | 2019.08.20 | 1331 |
115 | [시인은 말한다] 자유 / 김남주 | 정야 | 2019.08.20 | 1341 |
114 | [리멤버 구사부] 품질 기준 | 정야 | 2019.08.05 | 1124 |
113 | [시인은 말한다] 현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정야 | 2019.07.29 | 1329 |
112 | [리멤버 구사부] 바라건대 | 정야 | 2019.07.22 | 1276 |
111 | [시인은 말한다] 잃는 것과 얻은 것 / 헨리 왜즈워스 롱펠로 | 정야 | 2019.07.15 | 1427 |
110 | [리멤버 구사부] 지금이 적당한 때 | 정야 | 2019.07.08 | 1146 |
109 | [시인은 말한다] 새출발 / 오보영 | 정야 | 2019.07.05 | 2204 |
108 | [리멤버 구사부] 비범함 | 정야 | 2019.07.05 | 1123 |
107 | [시인은 말한다] 늙은 마르크스 / 김광규 | 정야 | 2019.06.17 | 1418 |
106 | [리멤버 구사부] 우정 | 정야 | 2019.06.17 | 1117 |
105 | [시인은 말한다] 생활에게 / 이병률 | 정야 | 2019.06.17 | 1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