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61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1년 12월 20일 00시 26분 등록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이병률



 

원하지 않는 일에도 운율은 있다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병에 걸린다면

노란색을 아무 색으로도 알지 못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임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아픔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그리하여 그렇게 눈을 감아도

당신이 내 눈 속에 살지 못한다면

 

당신이 돌아다니지 못한다면

 

어느 낯선 골목 안쪽 햇빛 아래에

쌓인 눈이 녹고 있다면

그런데도 많은 부분이 더 녹아야 한다면

 

눈의 주인이 애타게 눈을 기다리던 당신이라면

 

삶의 구석구석까지를 돌보는 일도 고단할 터인데

당신이 눈까지 만들어야 한다면

 

눈을 편애하는 당신에게도 수고와 미안은 있다

구불구불한 길이 좋은 당신

감정과 열정이 희미해진 당신

 

너무 바싹 말라 있거나 독이 올라 있는 몸 상태를 돌보느라

당신 사정이 더 참담해진다면

 

당신이 누웠던 자리를 정리하다가 비늘을 보았다

잔잔히 당신이 떠날 수 있다는 가정에도 운율은 있다


 

 

이병률 시집『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2020


IP *.37.189.7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시인은 말한다] 어떤 나이에 대한 걱정 / 이병률 정야 2021.12.20 1610
223 [시인은 말한다]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 정야 2022.01.03 1610
222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정야 2021.09.27 1608
221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정야 2021.11.15 1607
220 [시인은 말한다]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정야 2021.12.13 1606
219 [리멤버 구사부]오늘, 눈부신 하루를 맞은 당신에게 [2] 정야 2017.01.09 1605
218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정야 2021.10.11 1559
217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file 정야 2020.01.13 1515
216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file 정야 2020.11.09 1509
215 [시인은 말한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file 정야 2020.11.30 1499
214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1495
213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1494
212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file 정야 2020.07.20 1489
211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정야 2021.12.31 1486
210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정야 2021.11.15 1483
209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정야 2022.02.28 1477
208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정야 2021.11.01 1476
207 [시인은 말한다] 낯선 곳 / 고은 file 정야 2020.06.15 1469
206 [시인은 말한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 정야 2021.01.25 1467
205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file 정야 2020.08.10 1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