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추모

리멤버

구본형

  • 정야
  • 조회 수 154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0년 11월 30일 03시 37분 등록



밖에 더 많다


이문재


내 안에도 많지만

바깥에도 많다.


현금보다 카드가 더 많은 지갑도 나다.

삼 년 전 포스터가 들어 있는 가죽 가방도 나다.

이사할 때 테이프로 봉해둔 책상 맨 아래 서랍

패스트푸드가 썩고 있는 냉장고 속도 다 나다.

바깥에 내가 더 많다.


내가 먹는 것은 벌써부터 나였다

내가 믿어온 것도 나였고

내가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도 나였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안데스 소금호수

바이칼 마른풀로 된 섬

샹그릴라를 에돌아가는 차마고도도 나다.

먼 곳에 내가 더 많다.


그때 힘이 없어

용서를 빌지 못한 그 사람도 아직 나다.

그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한 그 사람도 여전히 나다.

돌에 새기지 못해 잊어버린

그 많은 은혜도 다 나다.


아직도

내가 낯설어 하는 내가 더 있다.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4

20201126_234307.jpg


IP *.174.136.4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4 [시인은 말한다] 오래 말하는 사이 / 신달자 정야 2021.11.15 1738
223 [시인은 말한다] 제도 / 김승희 정야 2021.09.27 1737
222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의 깨달음 / 박재화 정야 2021.10.11 1728
221 [시인은 말한다] 직소폭포 / 김진경 정야 2021.08.23 1719
220 [리멤버 구사부] 매일 같은 시각 한가지에 집중하라 [1] 정야 2017.07.21 1718
219 [리멤버 구사부]삶은 죽음을 먹는 것 정야 2017.10.28 1677
218 [리멤버 구사부]오늘, 눈부신 하루를 맞은 당신에게 [2] 정야 2017.01.09 1661
217 [리멤버 구사부] 실재와 가상 정야 2021.12.31 1650
216 [시인은 말한다] 작은 것을 위하여 / 이기철 정야 2021.10.25 1644
215 [리멤버 구사부]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정야 2021.10.11 1642
214 [리멤버 구사부] 삶에 대한 자각 정야 2021.11.15 1641
213 [리멤버 구사부]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정야 2022.02.28 1624
212 [리멤버 구사부] 삶의 긍정, 그것은 이렇다 정야 2021.11.01 1618
211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정야 2021.10.18 1580
210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file 정야 2020.01.13 1574
209 [리멤버 구사부] 자기 설득 file 정야 2020.11.09 1561
» [시인은 말한다] 밖에 더 많다 / 이문재 file 정야 2020.11.30 1546
207 [리멤버 구사부]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file 정야 2020.07.20 1526
206 [시인은 말한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 정야 2021.01.25 1511
205 [시인은 말한다] 따뜻한 외면 / 복효근 file 정야 2020.08.10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