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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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여러분들이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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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3일 02시 5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변화경영연구원에서 조셉 캠벨의 저서가 항상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의무감 없이 선뜻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닌 편이라 몇 번 시도하다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흔히 소개되듯 막연히
신화학자 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화와 인생>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그를 신화학자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쩐지 저자의 면모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에겐 그가 자신의 길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걸어가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도를 추구한 구도자 로 보인다. 성배를 향한 삶이었다는 그의 말이 해탈이나 득도를 위해 수행하는 수행승과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무엇이 차이가 있을까?

그에게 신화구전설화, 종교,제례나 의례는 모두 그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그 어떤 상징과 은유를 담고 있는 풍부한 자원이었다. 내용은 익히 기억하지만 그 상징이 내포하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서양의 신화에 대한 해석, 전문적 식견이 없으면 어떤 방식으로 바라봐야 할지 난해한 인도종교원시불교에 대한 적절한 비유를 구사한 해설 등에서 서구적 분석이나 묘사의 분위기를 남기면서도 그 상징의 핵심적 의미가 잘 전달되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아우르고 있는 광범위한 범위, 물론 조셉 캠벨의 선집성격에 그 원인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철학의 배경이 되는 방대하고 깊이 있는 탐구는 정말 나 자신도 본받고 싶고, 국내의 저자들도 닮았으면 하는 면이었다.

 예술에 대해 논하면서 C.P.스노의 태도, 다시 말해 과학 지식, 즉 삶의 수학적인 측면 은 자발적인 인문학적 행동에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간다는 태도가 적절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등을 보면 말이다.

종교와 과학에 대한 선입견과 섣부름이 서로를 배격하고, 예술과 세속적 삶이 서로를 질타하는 상황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그와 같은 대가들의 묵직한 한마디를 내가 스무살 대학생 일 때 알게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주변의 다른 이들에 비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며, 그러기에 지금 이렇게 연구원으로 지원하며 글도 올리고 있지만 이십 대의 나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삶의 상징들을 이해하고 너 만의 길을 가라 라고 얘기해 준 이가 있었나? 하며 기억을 더듬어 본다.

길을 시작할 땐 무진장 막연해 보이지만 타인에게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나 만의 삶이라고 말해주는 그에게서 지금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그가 삶을 살아간 구체적인 방식과 그 과정에서 철학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만한 견지를 세워 나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면에서 그렇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매력 있는 영혼이다.  나도 나중에 그런 얘기를 듣고 싶다.

그런 한편으로 그 자신도 역시 언제 스스로가 닫혀버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고비를 어찌어찌해서 벗어났다는 솔직한 고백을 읽을 때에는 똑같은 인간으로서의 모습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셉 캠벨의 다른 책들, 그리고 조셉 캠벨이 그토록이나 탄복해 마지 않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 그리고 그가 서구의 영적 지도자로 꼽았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든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21페이지

전사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 라고 하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해 라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라.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23페이지

현재의 형상에만 매달리면,

우리는 다음의 형상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서

오믈렛을 만들 수 있겠는가.

 

파괴가 있은 다음에 창조가 있다.

 

33페이지

영적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여러분은 세속적인 것도 얕보지 않을 것이다.

 

36페이지

스리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깨달음을 찾으려는 자라면

마치 머리에 불붙은 사람이

연못을 찾는 것과 같은 간절함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56페이지-57페이지

신화학이란 특정한 시대,

특정한 문화에서 인간 영혼의

경험,행동,성취에 관한 은유를

간직한 이미지들이 조합된 것이다.

 

노년은 어린이의 세대에 이미 내재된 것이다. 어린이의 노년은 일찌감치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여러분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아직 꼬마임을, 그리고 자신의 옛 경험이란 이제 겨우 시작된 것들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인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77페이지

쇼펜하우어는 (……) 그러한 행동이 자신과 그 타인이 사실은 하나라는 진리를 본능적으로 인식한 데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타인과 별개라는 이차적인 자아의식 때문에 행동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토대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더 크고 더 참된 진리를 직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생존은 삶의 두 번째 법칙이다.

첫번째 법칙은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것이다.

  

83페이지

삶의 에너지로서 경험되는 돈은 실제로 명상이나 다름없으며, 그것을 축적하는 대신 흘려보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는 한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돈에 몰두한 삶으로부터 뭔가 아름다운 것이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매우 놀라웠다.

 

89페이지

자유는 의사결정을 수반하는 것이고, 각각의 결정은 운명적인 결정이다. 여러분의 내부에 있는 시스템이 열망하는 것과 딱 맞아 떨어지는 어떤 것을 외부 세계에서 발견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완벽한 삶을 산 것 같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내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맞춰 나타나 주었다. 내가 그 당시에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5년 동안 직업도 없이 지낼 수 있는 삶이었다. 그게 가장 절실했다.

 

90페이지

따라서 내 지론은,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면 만사가 여러분에게 (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ㅏ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다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100페이지-101페이지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보기에는 방랑이란 것이 매우 기이한 삶의 형태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과학적 사고방식에 의거하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미리부터 어떤 전망을 내놓게 마련이다. 하지만 방랑을 하는 동안 여러분은 일종의 신비로울 정도의 유기적인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다. 다음 번에 어디가 자라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나뭇가지는 이쪽으로 자랄 수도 있고, 그 다음 에는 저쪽으로 자랄 수도 있으며, 그러고 나서는 또 다른 쪽으로 자랄 수도 있다. 나무를 제멋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고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가하지만 않으면, 나중에 가서 여러분은 그것이 하나의 유기적 발전 과정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104페이지

무엇이 여러분을 영적 성취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가? 나는 내 삶이 언제 중심에서 멀어지는지를 잘 알고 있다. 바로 내 삶의 진정한 중심잡기로부터 나를 탈선시키는 어떤 업적이나 시스템과의 관계에 내가 과도하게 집착할 때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언제 정도를 걷고 있는지 알고 있다. 내 속에 가진 것 중에서도 최고로 여겨지는 것들과 만사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때이다.

 성배 전설에서 말하는 황무지란 뭔가 (의례적으로) 마땅히 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또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땅이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과연 무엇이 그런 황무지인가? 나는 무엇이 나 자신에게 그런 황무지가 될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연구주제에 대한 학술적 접근이라든가, 나에 대해서나 내 저술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는 사람과의 결혼일 것이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야말로 황무지일 것이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 역시 내게는 황무지이다. 이것은 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이 내게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껏 나 자신의 소망에서 비롯된 충동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온갖 종류의 행동에 관해서는 강한 혐오감을 느끼는 것을 일종의 지침으로 삼아 왔다.

 

105페이지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런 느낌이 없을 경우, 여러분은 그저 삶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살아가는 셈이다. 여러분이 (의례적으로) 마땅히 어떻게 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바와 정반대되는 행동이 바로 공감이다. 성배를 발견하는 사람은 그 장소에 온 사람인 동시에 공감의 삶을 사는 사람을 상징한다.  공감의 역동성을 자신의 동기로 삼는 사람만이 성배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나와 너의 동일성에 관한 자연스러운 인식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성배의 중심이다.

 

106-107페이지

갤러해드경의 이야기

이 놀라운 이야기에서는 어떤 기사가 다른 기사의 자취를 발견하고 상대방이 이미 성배에 도달했을지 모른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하면, 그 기사는 결국 완전히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결국 모든 삶은 전체의 실현, 즉 자아의 실현이다. 때문에 그 현실을 개성화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삶은 그것을 실현하는 각각의 운반자에 매여 있으며, 운반자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운반자는 개별적인 운명과 목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것을 실현했을 때에야 비로소 삶을 이해할 수 있다.

  

108페이지

영혼에게 뒤집어 씌워 날지 못하게 하는 그물이라도 또 다른 사람, 즉 자신의 한가운데(중심)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향후의 모험을 위해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옷이 된다.

 

111페이지

영웅의 여정은 항상 부름으로 시작된다. 인도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아라. 너는 지금 잠든 땅에 있다. 깨어나라. 여행을 떠나라. 저곳에 너의 의식의 또한 너의 존재의 온전한 측면이 있건만, 아직 한 번도 손댄 적이 없었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그냥 머물 것이냐? 아니, 그렇게 하는 건 너에게 충분치가 않다. 그렇게 해서 여정이 시작된다.

 

113페이지

여러분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여러분은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며, 밤바다로 출항을 개시하는 셈이다. 그 와중에 부딪치는 바위며, 좁은 관문이며, 그와 유사한 것들, 다시 말해서 예와 아니오, 즉 대립자의 쌍을 나타내는 것들을 지나가야만 한다. 이 세계를 둘러싼 벽들이 잠시나마 확 트이는 듯한 순간이 있을 것이며, 여러분은 (그 벽을) 꿰뚫어보는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면 뛰어 오르라! 가라! 문들은 대개 너무나도 빨리 닫혀 버리기 때문에, 여러분이 탄 말의 꼬리를 잘라 먹기 일쑤다. 여러분은 손발이 잘릴 수도, 가진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

 

114-115페이지

첫 번째는 성스런 결혼

두 번째는 아버지와의 화해

세 번째는 신격화, 나는 만물을 있게 하는 존재다 라는 깨달음

네 번째는 불사약 빼앗기

 

116페이지

가장 큰 문제는 생명을

황무지로 도로 가져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진정성 없이 살아가는 곳으로.

그 선물을 도로 가져와서, 그것을 합리적이니 삼 속에 통합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오히려 지하로 내려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여러분이 반드시 가지고 돌아와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세계에 결여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걸 가지러 간 것이다 또한 그것이 결여됨으로써 이 세계는 그것을 가져야 할 필요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120페이지

융은 일생의 곡선이 딱 반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그 중 전반은 관계의 시간이며, 나머지 후반은 자기 안의 삶의 감각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122페이지

전형적으로 중년은 달성의 기간이 아니라 깨달음의 기간이며, 또한 성취의 기간이 되어야 마땅하다. 니체가 구분한 단계에 따르면, 낙타는 짐을 잔뜩 싣고 나면 제 발로 일어나 사막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사자로 변신한다. 사자의 임무는 너는 할지니 라는 이름의 용을 죽이는 것이다. 이 자기발견의 사자가 용을 죽이고 나면, 용 속에 묶여 있던 모든 에너지는 이제 여러분의 것이 된다.

 

128페이지

의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여러분에게 알려 준다.

식사 전에 드리는 감사기도는

지금 먹게 될 음식이 한때는

살아 있었던 것임을 여러분에게 일깨워 준다.

 

134페이지

이처럼 소년은 남자임을 드러내야만 한다. 반면 소녀는 여자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삶이 그녀를 압도하는 것이다.

남자는 이와 비견할 만한 경험을 전혀 갖지 못한다. 대부분의 남성 입문 제의가 그토록 목력적인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자는 자신이 더 이상은 어린 소년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140페이지

시애틀 추장은 이른바 우주와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를 잘 보여 주는 훌륭한 글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족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내가 왜 탄식해야 하는가? 만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고, 백인 역시 결국 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마음 편히 느낄 수 있다.

 

141페이지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죽는 것은 반드시 태어난다.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 () 모든 사람의 육체 안에 사는 절대자아는 결코 죽지 않는다. () 그것은 무기로도 베지 못한다. 그것은 불로도 태우지 못한다. 그것은 물로도 적시지 못한다. 그것은 바람으로도 말리지 못한다.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자아는 영원히 한결같다. () 모든 육체 안에 사는 절대자아는 죽을 수 없다. 그러니 어떤 피조물을 위해 슬퍼하지 말라. - <바가바드 기타>

 

150페이지

죽음에 대한 저항은

여러분이 죽고 나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151페이지

여러분이 만약 누군가 죽어 가는 사람을 돌보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조만간 신체에서 벗어나게 될 의식과 자기 스스로를 동일시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는 일생의 온갖 것들을 벗어 버리게 된다. 마침내 우리는 스스로를 의식과 동일시하고, 우리의 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의

중심 사상은

집착없는 공감이다.

 

따라서 여러분이 공감을 느끼고 있는 누군가의 죽음을 고통으로 느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의 집착은 그 관계에 있어 일시적인 국면이다. 오히려 여러분의 공감이 바로 영원한 국면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모든 것이 상실되고 나서도 결코 상실되지 않는 어떤 것과 스스로를 동일시함으로써, 그 상실감을 상쇄시킬 수 있다. 그 상실되지 않는 어떤 것이란 바로 여러분의 몸과 모든 것을 형성하는 의식이다. 분화되지 않은 의식으로의 돌아감이야말로 귀환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이며, 여러분이 알 수 있는 최대한이다. 그 나머지는 모든 의식적 지식을 초월하는 것이다.

 

156-157페이지

호흡과 감정이 연관되어 있다는 개념이 담겨 있다. 뭔가에 충격을 받으면 여러분의 호흡은 달라진다. 분노나 어떤 열정으로 가득한 경우 여러분의 호흡은 달라진다. 쉬고 있으면 여러분의 호흡은 변화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목표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규칙적으로 호흡하게 하는 것, 마음을 조용하고 잔잔하게 하는 것이다.

 

167-170페이지

인도에서 기원한 재미있는 동물 우화

새끼를 배고 오래 굶주린 암 호랑이 한 마리가 염소 떼에게 덤벼 들었는데, 어찌나 용을 쓰며 달려들었던지 그만 새끼를 낳아 버리고 어미는 죽어 버렸다.

 염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나중에 그 목초지로 돌아왔는데, 가만 보니 갓 태어난 새끼 호랑이와 죽은 어미 호랑이가 있었다. 어버이로서의 본능이 강했던 염소들은 그 불쌍한 새끼 호랑이를 대신 키웠고, 그리하여 그 호랑이는 자기가 마치 염소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호랑이는 매애애 하고 우는 법을 배웠다. 풀을 뜯어먹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풀이 호랑이에게 좋을리 없었으므로, 그 녀석은 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비리비리하게 생긴 녀석이 되고 말았다.

 새끼 호랑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어디서 큰 수컷 호랑이가 나타나 덤벼드는 바람에 염소 떼가 사방팔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호랑이이긴 해도 아직 어렸던 이 녀석은 도망도 못 가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큰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야, 너 지금 이 염소들하고 같이 사는 거야 매애애애.. 새끼 호랑이가 대답했다. 그러자 큰 호랑이는 벌컥 화를 냈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히피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고 나타난 아들놈의 모습을 본 아버지가 울화통을 터뜨리듯 말이다. 큰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를 몇 번 철썩철썩 때려 주었지만, 새끼 호랑이는 여전히 멍청하게 매애애 소리를 내면서 풀만 씹어 먹을 뿐이었다. 그러자 큰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를 끌고 잔잔한 연못으로 갔다.

 (잔잔한 연못이란 인도에서 흔히 요가라는 관념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된다. 요가의 첫 번째 잠언은 다음과 같다. 요가는 마음의 자발적인 활동을 의도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새끼 호랑이는 연못을 바라봄으로써 난생처음으로 자기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큰 호랑이는 자기 얼굴을 그 옆에 갖다 대고는 말했다. 이것 봐, 네 얼굴도 내 얼굴이랑 비슷하지. 넌 염소가 아니야. 나하고 똑 같은 호랑이라고. 그러니 나하고 똑같이 되어야지.

 이것이 구루가 하는 일이다. 내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나하고 똑같이 되거라. 이는 혼자 하는 수행과는 정반대의 방법인 것이다.

 그리하여 새끼 호랑이는 그 메시지를 이해했다. 큰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를 데리고 자기 굴로 갔다. 그 안에는 최근에 잡은 영양 고기가 남아 있었다. 그 피투성이 고기를 한 입 베어 물면서 큰 호랑이가 말했다. 마음껏 먹어 봐. 그러자 새끼 호랑이는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저는 채식주의자인데요. 헛소리 하지 말고! 큰 호랑이가 이렇게 말하며, 고기토막을 하나 집어서 새끼 호랑이의 목구멍 속에 쿡 찔러 넣었다. 새끼 호랑이는 숨이 막혀 캑캑거렸다. 문헌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진정한 가르침 앞에서 모든 사람이 그러하게 마련이듯이.

 진정한 가르침과 마주하며 캑캑거리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끼 호랑이는 그것을 자기 핏속에, 자기 몸 속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이 그에게 올바른 먹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올바론 본성을 건드려 주었기 대문이다. 새끼 호랑이는 무의식적으로 진짜 호랑이다운 기지개를 켰다. 난생처음으로. 새끼 호랑이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호랑이 기본 포효 제 1번이었다. 큰 호랑이가 말했다. 그거야. 이젠 너도 제대로 된 거야. 이제 숲으로 들어가서 호랑이다운 먹이를 찾아 먹자!

 

물론 여기서의 교훈은 바로 우리 모두가 염소처럼 살아가는 호랑이라는 것이다. 오른쪽 길, 즉 사회적 부문은 우리가 염소로서의 성격을 배양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신화 은유로 이해해야 적절할 듯한 는 여러분이 호랑이로서의 자기 얼굴을 인식하게끔 인도해 줄 것이다.

 

170페이지-171페이지

이른바

정통파 공동체의 기능이란

곧 신비주의자를 고문해 죽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들의 목표다.

 

계시. 이는 우리를 보디사트바의 방법 즉 영원에 근거하되 시간의 장 속에서 움직이는 자의 방법 의 마지막 공식으로 이끌어 간다. 시간의 장은 곧 슬픔의 장이다. 모든 삶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정말 그렇다.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 여러분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173페이지

융은 1909년에 이르러서야 신화와 꿈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

 

186페이지

에너지,의식

나는 이 두가지 단어가 결국 똑 같은 것을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즉 하나뿐인 참뜻의 두 가지 측면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을 점점 확신하게 된다. 의식에는 분화와 운동이라는 성향도 함축적으로 들어 있으며, 나로선 문득 어쩌면 우리가 에너지라고 간주하는 것 역시 의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à .. 그럴 수 있을 듯. 신선한 생각.

 

187페이지

나는 이 세상에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의식의 수준이 있으며, 두뇌란 그것을 끌어들이는 (기능이) 매우 제한적인 기계에 불과하다고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시간이란 감각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장차 일어날 일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감이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 크나큰 중요성을 지니게 될 사람을 만날 때에는, 그 첫만남에서부터 장차 뭔가 벌어질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매우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89페이지

나는 명상이란 것을 하지 않았다. 명상으로 인해 내가 지금 노 젓고 있는 이 배의 진로를 지연시키는 갖가지 것들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그리고 그 목적지게 도달하기 위한 의도적인 차단이었다. 결국 나는 그 목적지에 도달했고, 그 사실을 안다. 심령 체험이 항상 이런 종류의 차원을 낳는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 각자는 단지 나름대로의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진정한 기술은 여러분이 운하를 건너기 위해 사용하는 배의 구조를 잘 아는 것 뿐이다.

 

201페이지

분명한 사실은, 만약 이것들로부터 어떤 가치를 뽑아내야만 한다면 (나 역시 이런 이야기의 원초적이고 본래적인 생각은 이와 유사한 어떤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 육체들이 간 곳은 외부 우주가 아니라 내부 우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런 은유적인 여정에 의해 암시되는 바는 영혼에 있어서의 마음의 귀환이다.

 

209페이지

토템, 종족, 인종에 대한 숭배, 그리고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종교는 미움을 사랑으로 억제하는 것의 심리학적 문제에 대해 오로지 부분적인 해결책만을 표상한다. 즉 이것들은 오로지 부분적으로만 입문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 속에서는 자아가 절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아가 더욱 증대한다. 오로지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대신, 개인은 자신의 사회 전체에 대해 헌신하게 된다. 그 와중에 세계의 나머지 (즉 그대까지만 해도 인류의 더 큰 부분)는 그의 동정과 보호의 영역 바깥에 남겨지는데, 왜냐하면 그곳은 그의 하나님이 보호하는 영역 바깥쪽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사랑과 미움이라는 두 가지 원칙의 극적인 분리가 일어나는데, 이는 역사의 여러 페이지가 매우 풍부하게 보여주는 바와 같다. 즉 광신자는 자기 마음을 청결히 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오히려 세상을 청결히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216페이지

내 생각에 성령에 반대하는 죄는 바로 절망이다. 성령은 여러분이 깨닫도록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며, 절망은 아무것도 나올 수 없도록 하는 느낌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지옥이다.

 

219페이지

영웅의 여정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이다. 즉 여러분 자신을 찾는 것이다.

 

222페이지

악마라는 말은 결국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224페이지

여러분은 그 상징이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나면 여러분도 만족스러운 설명을 얻게 될 것이다. 상징은 원래의 용도를 회복하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그것을 기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즉 여러분은 그것을 장애물로 여기는 대신에, 오히려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으로 여러분을 안내하는 무언가로 여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핵심이다.

그것이 바로 아래로 뾰족한 삼각형이다. 그것은 장애물이거나 아니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장일 수 있다.

 

243페이지

영웅의 죽음과 부활은

오래된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기를

위한 모델이다

 

247페이지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진실은 우리가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시대적인 종교에 대해 거듭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물의 질서에 대해 태어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지형선도 없다. 우리는 신비스러운 미래 속으로 자유낙하를 한다.

 

250페이지

영지주의는 서구에서

불교에 상응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화를

영지주의적으로 읽으면

보편적인 뜻을 지니게 된다.

 

262페이지 - 263페이지

성스러운 공간은 속세로부터 완전히 밀폐 봉인되어 있다. 여러분이 그런 공간 안에 들어가면, 그 밀봉된 곳으로는 아무것도 통과할 수가 없다. 여러분은 날짜나 시간이 주는 자극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는 영원의 장소에 있게 되는 것이다. 명상을 할 때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즉 여러분 스스로를 봉인하는 것이다. 명상의 자세는 봉인하는 자세이며, 규칙적인 호흡은 여러분의 내부로 향한 탐험을 더욱 북돋운다. 이 세게는 봉인되고, 여러분은 독립적인 실체가 되는 것이다.

.. 그렇게 하는 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여러분이 장차 내적 삶을 지니려 한다면 그것은 절대 필수인 셈이다. 그것이 제공하는 바는 여러분 안에 있는 영원한 것이 시간의 장으로부터 해방되는 여유 공간이다.

천국 이란 바로 여러분 안에 있는 밀폐 봉인된 공간을 말한다.

 

278페이지

여러분은 행동 상으로는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지만, 자기 행동을 향한 욕망으로부터, 행동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또한 행동의 결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여러분의 삶의 사건들로부터 비롯되는 이런 열정으로부터의 심리학적 해방이 곧 니르바나.

 

282페이지

보디사트바는 가르침을 전할 때 자신의 말을 듣는 자들과 같은 모습을 취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각자의 내면에 있는 지혜의 자아에게 전해져 그 자아를 깨우고 삶으로 불러낸다.

 

283페이지

달라이 라마가 한 말은 대략 이러했다. 이제 여러분은 불교도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계속해서 명상하십시오. 즉각적인 깨달음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정신은 천천히 깨달음을 향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방법에만 집착하지는 마십시오. 명상을 하는 중에 여러분의 의식이 확장되고 변화되면, 그때 가서 여러분은 모든 길들이 타당한 길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05페이지

여러분의 힘들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더 낮은 체계에 헌신하도록 한다.

 

309페이지 310 페이지

두 가지 의식의 국면 즉 다양성의 국면과 초월성의 국면 을 동시에 마음속에 지니고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기 위해 라마크리슈나가 종종 언급했던 것이다.

아무렴, 코끼리 역시 하나님이지. 하지만 너는 왜 그 코끼리의 머리 위에서 비키라고 소리치는 하나님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게냐?

 

지혜와 어리석음은

사실상 똑같다.

두 가지 모두 세상의 견해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346페이지

마야란

초월을 세계로 전환시키는

힘이다.

1.       차단하는 힘

2.       투사하는 힘

3.       드러내 보이는 힘

 

370페이지

예술가란 예술의 유능한 시행자

 

373페이지

이 모든 것을 흡수하고 난 다음에야, 여러분은 이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되어, 그 모두를 깨뜨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C.P.스노의 태도, 다시 말해 과학 지식, 즉 삶의 수학적인 측면 은 자발적인 인문학적 행동에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간다는 태도가 적절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다.

 

383페이지

글쓰기에 있어서는

일단 나오는 말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말이 나오도록 내버려 둬라.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

하는 비판적 요소는 그냥 놓아 버려라.

 

384페이지-385페이지

나는 항상 나 자신이 부딪치는 바위를 지나가야 하고, 그 바위는 이제 곧 닫혀버릴 참인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 압도되어 버리기 전에 어찌어찌 거기서 벗어나곤 했다. 이것은 매우 기이한 과정이다. 말 그대로 문을 계속 붙잡아 열어 두고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부정적인 것들이야 계속해서 나타나겠지만, 여러분이 일찍이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하려면 그 문을 계속 열어 두어야 한다. 여러분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비판을 미루어 두어야 한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문장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런 일을 해야 한다. 비판을 미루어두는 것은 이른바 너는 할지니 라는 용을 죽이는 것이다. 그 놈을 죽여 버려라.

 

404페이지

일단 여러분이 상징을 이해하게 되면,

여러분 역시 어디에서나 상징을 볼 수 있으리라.

 

426페이지

신화는, 또는 달리 말해서, 신화와 종교는 위대한 시이며, 그와 같이 인식할 경우에는 십중팔구 사물과 사건을 관통해서 서로 완전하며 전체인 어떤 존재 또는 영원의 현재를 가리킨다. 이런 기능에 있어서 모든 신화, 모든 위대한 시, 모든 신비주의적 전통은 합치한다. 그리고 한 문명 내에서 이런 영감을 주는 환상이 효과적으로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 영역 내의 모든 것과 모든 피조물은 살아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전반적으로 조셉 캠벨 선집으로 그의 여러 저작들 중 핵심적인 부분을  발췌하고 그에 대한 설명과 그에 적절한 댓구를 이루는 일화들을 같이 소개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책의 도입부에서 시적으로 표현된 엄선된 글귀들이 있고, 그 다음으로 현세에서의 삶, 깨달음을 향한 길,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 등의 3장으로 주제를 나눠 담았다.

1 [현세에서의 삶]에서는 아담과 이브의 신화를 얘기하며 남과 여의 운명, 사랑, 결혼, 자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미, 돈의 의미,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와 하고싶은일을 하기 위한 용기, 그에 덧붙인 자신의 젋은시절 이야기와 파르치팔의 성배 이야기, 세계의 종말론, 자살, 죽음 등을 다루었다.

2 [깨달음을 향한 길]에서는 기독교의 은유를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그 상징을 보편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것들, 불교의 해석, 힌두교에 대한 이해 및 차크라의 의미, 마야의 3가지 힘 등을 소개한다. 또한 깨달음을 향한 그 다양한 길에 녹아 있는 보편적 의미를 알려주며, 그것을 나의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 자기만의 성역을 만들고 그곳에서 내면에 집중하는 것을 생활화함으로써 가장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순간을 누리라고 말한다.

3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 에서는 삶을 성스럽게 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한 의미를 밝힌다. 특히 본인에게 예술이었던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작가가 슬럼프를 맞았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다른 예술인들이 사는 모습 등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3장 뒷부분의 여러가지 캠벨의 인용문이 실려있는 몇 쪽 분량은 설명이 부족한 듯 여겨지는 것이 아쉽다. 역시 캠벨의 진면목을 한 권의 책으로 축약해서 담아내기엔 조금 모자라는 면이 있었던 듯 보인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책 첫머리의 차례를 읽어보면 얼추 모양새가 짜여진 듯 여겨지나, 도입부분의 시적인 글귀는 캠벨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가 처음 접하기엔 조금 뜬금없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각 장 별로 소소한 소주제로 구분이 되었더라면 나중에 보고 싶은 주제를 쉽게 찾을 수 있거나 책 전체가 담고 있는 여러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례로, 깨달음에 대한 2장의 내용은 차크라, 요가, 인도종교, 기독교, 원시불교, , 동물이야기 등 책의 절반을 차지 할만큼 많은 분량이지만, 전혀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담은 소설처럼 쭉 흘러가는 흐름도 아니고 다른 의미로 순차적인 배열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신화와 종교의 은유에 대한 그의 해석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내 경험에도, 그냥 가만 있으면 편할 텐데 왜 주인공은 꼭 계시를 받아서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러 먼 길을 떠나야 하는지 어린 마음에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왜 바닷길은 꼭 그 바위산 사이를 지나야 하는지, 그리고 그 바위산은 왜 어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닫히는지?

영웅의 여정이 태어나서 내 식으로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며,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을 참여하는 것과 내 내면으로의 귀환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게 되어 놀라웠다. 왜 그 전에는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또 하나, 성소로서 예배당이나 교회가 가지는 의미와 그것을 일상에서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만든 성소에서 내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을 생활화 해야 한다는 것 역시 하루 2시간 글쓰기에 자신을 할애하라는 구본형 선생님의 얘기와 맥락이 겹쳐졌다.

사실 연구원 2차 레이스를 하게 된 이번 2월 몇 주간에 갑자기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을 내기가 물리적으로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저녁 9시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을 읽은 것을 정리하며 이것저것 글을 쓰는 동안 어느새 의식이 명료해지고 기분이 살짝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그랬다. 시간이 많고 한가할 때 글을 쓸 때는 그런 느낌이 당연한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이 행위가 심신을 쩔게 하던 일상을 잊게 하고 스스로가 명쾌해지는 느낌이 들자,

 ! 이것이 성소에서 내가 나 자신으로 귀환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 그 경험인가? 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자신만을 위해 하루 중 몇 시간을 유보해두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것을 철학적인 경지까지 맥락을 연결 지워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리고 책 전반적으로 군데군데의 예화를 보면서는 자기 생긴 대로 사는 삶, 내 희열을 따라 사는 내 삶의 방식이 한 때 너무 나만의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가 했던 마음을 많이 희석하게 해 주었다.  내 스스로는 황무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려 노력한다고 여기지만, 아직도 의식의 많은 부분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에 굴레의 덫이 느껴질 때가 많다.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읽으며 그 균형점을 스스로 찾아 내 스스로가 평안해지는 시점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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