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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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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일 11시 56분 등록

구해언, 아빠 구본형과 함께, 예지, 2018

 

구본형선생님의 둘째딸 해언 씨가 책을 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4년 후 집을 팔게 되면서(두 딸은 결혼하고 사모님 혼자 그 큰 집을 관리하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아빠와 그 곳에서 살았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당신과 둘째딸이 닮았고(사색적이고 담백한 느낌이), 사모님과 큰딸이 비슷하다고(똑소리나는 자기주장이나 화려함 같은쓰신 적이 있다. 과연 책의 곳곳에서 선생님의 분위기와 흡사한 것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기획 파트를 맡고 있는 직장인 7년차로, 일이 많을 때는 몸이 힘들고 일이 적을 때는 마음이 힘들다고 한다가끔 회사 출입문에서 ID 카드가 잘 읽히지 않으면 벌써 잘린 건가라는 농담 섞인 속마음이 튀어나온다니, 상시적인 불안을 안고 사는 이 시대의 직장인들 마음을 짐작해 본다. 이제껏 평범한 능력치를 갖고 살아왔으며, 모임에서는 주로 관객의 역할을 한다는 토로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능력과 비교 되어 책 속의 천재들을 미워할 정도로 인간적인 갈등을 품고 있는 저자는 그러나 차츰 단단한 자긍심을 찾아나간다. 그 과정에 누구보다 애틋했던 아빠의 사랑과, 자신을 재료로 실험하며 진화해 나갔던 작가 아빠의 궤적이 커다란 의지가 되어준 것은 물론이다. 마침내 저자가 " 성장은 승리보다 더 귀중하다. 성장은 모든 사람 앞에 평등하다" 썼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31세에 이미 만만치않은 성찰을 선보이는 저자가  "선비처럼 힘껏 배워서 늘 푸르고 고운 사람"이 될 것이 믿어진다.

 

      

구선생님께 해언이가 글을 잘 써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구샘을 닮았으면 인문성이 발달한 것도 당연할 터,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쉬는 시간 10분이 무료해서 철학선생님을 찾아가 직접 쓴 글의 피드백을 받곤 했단다. 안그래도 오래된 책을 좋아해 오다 구샘이 돌아가신 다음 해 10기 연구원 활동을 했으니 공부의 골격도 잡혔을 것이다. 때로 앓을 정도로 일의 균형을 잡느라 애쓰며잘 살아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저녁에 글을 쓰는 직장인으로서 저자는 구샘의 제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 처럼 평범하지만 자기다운 삶에 대한 뜨거운 갈망을 품고, 글쓰기로 그 무기를 삼는 이가 구샘의 가장 정통적인 독자요,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책은 아빠와의 추억을 간직하는 딸의 기록이자,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을 스승의 가르침을 새겨보는 제자의 학습록이 된다. 구샘은 늘 편지를 쓰셨다고 한다. 저자가 대학생이던 시절 외국인학생을 2주간 인솔하고 여행하는 프로젝트를 제대로 못해 속상해한 적이 있었나보다

 


진행미숙의 끝판왕을 보였다고 술회하는 것을 보면 꽤 힘들었던 것 같은데 그 때 구샘이 주신 편지를 그 때는 편지와 현실의 간극이 너무도 커서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119) 그러나 이후 회사에서 팀플레이를 할 때는 그 말씀을 응용하여 자신의 방법을 찾아 나간다.

 

 

구샘께서 43세 때 무심히 반복되는 일상에 쐐기를 박고 구본형으로 거듭나게 된 출발점인 지리산 단식 때 쓴 편지를 읽으며 살짝 소름이 돋았다. (140)

 

 

아빠는 아빠의 세계 속에서 매일 조금씩나아지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게 될 때, 내 삶이 괜찮은 생이었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단다. 1997819

 

 

구샘은 18년을 하루같이 자신의 다짐을 실천하셨고, 마지막 순간 큰 따님에게 딸아, 내 삶은 그런대로 아름다웠다고 하셨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말하는대로이루어진 삶을 사신 것이고, 그럴 수 있었던 비밀은 한결같음이었던 것이다.

 

 

차분하게 힘을 좍 빼고 쓴 글이 아름답다. “아빠 특유의 설렁설렁한 느린 걸음같은 표현에서 나도 구샘이 보이는 것 같아 웃픈심경이 된다저자는 자신이 또래보다 거의 전방위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성격이라고 하지만, 전방위적으로 다 잘할 필요는 없다. 우선 돌아가신 분을 책쓰기로 추모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특별하고 유일한 일이니까 말이다그건 사모님이나 큰 따님도 못 하고 오직 둘째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쓰는 것을 좋아하고 지난 일을 가만히 돌아보며 배우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아주 특별한 몸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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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을 어찌나 소중하게 안고 있는지, 딸은 또 어찌나 수줍게 웃고 있는지 표지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본다. 둘째딸이 꽃봉오리가 터질 때 나무가 아프지 않을까?’하고 물어보았을 때 구샘이 얼마나 좋아하셨을지 상상해 본다. 그런 발상은 이 바닥 사람이 반응하는 포인트니까.

 

 

구샘은 아니, 오히려 엄청 시원할 거야라고 대답해 주셨다고. 꽃이 핀다는 것은 조급해하지 않고 제가 나와야 할 때를 아는 자연스러움의 절정이요, 커다란 기지개를 하듯 나무에게도 즐거운 일일 것이니 저자가 덜 조바심내고 덜 불안해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리라 믿는다. 그건 구본형을 아빠로 둔 둘째딸의 축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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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특히 아름다웠던 부분>


장미꽃이 핀 곳은 더 이상 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으로의 초대였고, 환영의 인사였다.

느티나무와 강아지는 우리 집의 첫 장면이다.

 

너무 좋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면 진도는 나가지 않고 시간만 까먹는다. 글을 쓰는 대부분의 시간은 잘 쓰고 싶은 마음과 글감, 메시지 사이의 오솔길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사람을 살아있게 하고, 일상을 전혀 새로운 날로 바꾸어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증거가 필요한 존재다. , 꿈을 이루기 위한 한 번의 행동에는 유통기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까지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멋진 계획이 나의 현실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저주이자 희망이다. 괴산에서 만난 멋진 구름 바다를 타고 여름을 뜨겁게 보내, 나의 뭉게구름을 만나면 좋겠다.


릴케는 모든 질문의 답이 자기 자신 안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계속 질문해서 끝내 답을 찾아내는 것이 긴 글쓰기 과정이라는 것을 그는 알려 주려 했다. 답을 바로 찾을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살면서 질문을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언젠가 그 답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과거의 아빠가 보낸 편지를 다시 읽는다. 이제는 아빠의 편지이면서 어쩐지 미래의 내가 보낸 편지같이 느껴진다. 지금은 까마득해도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오고 있는 미래의 나에게서 온,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편지를 다시 읽어 본다.

성장은 승리보다 더 귀중하다. 성장은 모든 사람 앞에 평등하다.

 

 

 

* 이 글을 쓴 한명석은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2기 연구원으로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카페에서 http://cafe.naver.com/writingsutra

글쓰기 훈련을 하며 책쓰기수업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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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0 05:04:02 *.126.41.237

구본형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따님이시군요.

집을 파셨다는 구절을 보고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눈이 많이 오면 아래에 차를 두고 올라가셨다는 이야기

그 마을에 살고 싶을 때 마다 동네를 찾아가셨다는 이야기 등등

참 많은 사연을 들려주셨거든요. 따님이야기 사모님 이야기도 해주셨고요

또 연구원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도 객식구로 따라가기도했어요.

숨결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요


이렇게 선생님의 사연과 연구원님들의 열정을 접할 수 있었던 까닭은요 

KBS 라디오 엄길청의 성공시대 12부작 드라마 <구본형편>을 제가 썼기 때문이죠

(선생님의 결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지금도 얼굴이 뜨겁습니다) 


선생님이 가신 후에도 변화경영 연구소가 이렇게나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여전히 '사람'을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음에 감사하고 또 존경스럽습니다..

한명석 쌤 좋은글로 새벽을 열어갈 수 있음에 참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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