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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1일 17시 10분 등록

제가 양식을 착각하여 처음에 올렸던 부분은 "1.저자에 대하여" 부분 만입니다(이 부분은 처음과 동일). 뒤에 요구되는 양식 2. 3.을 추가하였습니다.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핸디캡 달게 받겠습니다. 앞으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 3배만큼만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역사의 발명가, 헤로도토스

 

1. 저자에 대하여

 

만약, 현대의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역사학자가 창세기의 시간 근처로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는 현대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신은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봤습니다.” 라거나, “아직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낼만큼 진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록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문자를 발명한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일을 기술하는 것이 곧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사에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이게 다 신들 때문이다.” 라는 기술은 신의 이야기, 즉 신화이다. 인간의 이야기인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훗날의 일이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달걀을 책상 위에 세우는 것보다 힘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였다. 감히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B.C.484~425)는 최초의 역사서를 저술한 인물이다. 그는 B.C.484년 그리스에서 태어났고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적어도 서양의 역사는) 창세기가 아닌 B.C.484년 언저리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역사의 어원(historiae, 원래 탐구라는 뜻)의 창시자이기도 하니, 키케로가 말한대로 소위 “역사의 아버지”라는 호칭의 유일무이한 적격자이다. 모든 분야가 세분화된 현세대의 취향 때문에 우리는 헤로도토스를 단순히 역사라는 학문의 범주 안에서만 생각한다. 즉, “과거를 기술하는 일”의 발전 과정 위에서 헤로도토스를 시발 위치 의 한 점으로 표시하곤 평가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헤로도토스가 이룬 인식의 전환은 ‘호메로스에서 헤로도토스의 전환’ 정도로만 평가된다. 가령, “그는 호메로스와 달리 과거를 기술함에 있어서 신의 개입을 최대한 걷어내고 인간의 인과관계로 이해하였으며, 객관성을 확립한 것에 의의를 두었다. 또한, 기존의 운문에서 탈피하여 역사를 기술하기 쉬운 산문으로 전환하였다.” 정도의 평가가 바로 그러하다. 그러나 이는 일차원적인 판단이다.

 

헤로도토스의 의의는 이보다 더 다차원상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는 애초부터 역사가로 태어날 운명이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을 연구하거나, 피타고라스처럼 수학을 연구하거나, 혹은 히포크라테스처럼 의학을 연구할 수도 있었다. 그 당시 그리스 사상의 특징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변적인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존경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가치의 역발상을 이루어내었다. 그는 수를 다룰 때 쓰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방식을 과거를 기술하는 데 사용하는 것에 가치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일생을 그 가치를 위해 살았으며, 이것이 바로 역사라는 장르의 시발점이 되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패러다임의 전환은 항상 번영하는 중앙이 아니라 소외받는 변방에서 시작한다. 그가 태어난 할리카르나소스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으며, 많은 민족이 융화되어 살았기에 민족적 편견에서 자유로웠다. 청년이 된 헤로도토스는 아버지와 함께 지역 참주였던 리그다미스 2세의 독재에 항거하다가 가족이 모두 사모스섬으로 망명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후에 리그다미스 2세 정권의 몰락 후 본거지로 돌아올 기회를 얻었으나 모함과 모략 때문에 그는 다시 밖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에 많은 지역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역사>를 기술하는 바탕이 되었다. 즉,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유배문학이라 불릴 만하다. 헤로도토스의 청장년 시기는 고단하였으나 덕분에 그는 중앙의 가치체계로부터 자유로웠으며, 독보적으로 견문을 확장시킬 천운을 잡았던 것이다.

 

그리스 본토의 지식인들이 중요시한 수학과 과학은 불변하는 듯이 보였지만, 순수과학은 뉴튼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양자역학과 초끈으로 이어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였고,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여겨졌던 수학도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이후 완벽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으니, 이런 인생의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그렇다면 헤로도토스는 왜 역사를 썼을까?

 

어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아야 한다. 위치 상, 여러 문화가 겹치는 지리적 조건, 시기 상으로는 페르시아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헤로도토스는 혼혈적 태생을 안고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페르시아 전쟁에 참여한 참전용사들로부터 전쟁 무용담을 들으며, 경이로움에 눈을 반짝이는 헤로도토스를 상상할 수 있다. 그는 호메로스를 좋아하여 즐겨 읽었고 막연히 자신도 앞으로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청년이 되었을 때, 독재에 항거하여 혁명을 꿈꾸었으나 실패하여 쓸쓸히 망명길에 오르는 그의 뒷모습도 보인다. 명문가의 자제로서 품었던 정치적 야망이 한풀 꺾이는 순간이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의 반, 타의 반 세계를 유랑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종전된 상태이고 이제 더 이상 전쟁을 위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승전국인 그리스의 철학적 번영과 자유는 고무적이었으며, 이상을 꿈꾸던 헤로도토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는 B.C. 447-443년에 아테네에 머물면서 광장에서 자신의 작품 - 즉, 후에 <역사> 지필의 초석이 된 여행 기록들 - 을 사람들에게 낭독해주고 댓가로 10 탈렌트를 받았다. 헤로도토스를 잇는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 헤로도토스가 올림피아에서 사람들에게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바로 그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한다. 어린 투키디데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이 틀림없는 그 모습을 우리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헤로도토스가 무심한 듯, 자신의 저술을 읽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 진귀한 이야기에 호기심을 품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변방의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와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스가 전투의 기세를 잡을 때면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오고, 낭독 중간에는 사람들 간에 날개 달린 뱀의 존재 유무에 대한 토론도 벌어진다. 그렇게 광장은 사람들의 지적 희열로 물들어 갔다.

 

이것은 헤로도토스에게 한낮 밥벌이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 해주는 것이 무척 즐거웠고, 탐구의 희열로 한껏 상기된 청중들의 얼굴을 본 후에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불현듯, 어릴 적 꿈이 떠올랐다. 자신이 페르시아 전쟁 참정용사들의 무릎 언저리에서 청해들었던 전쟁 이야기의 기쁨, 그것을 제대로 연구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후세대에게도 후의 후세대에게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아테네에서 사귄 친구 페리클레스와 소포클레스의 격려에 힘입어 페르시아 전쟁사를 제대로 탐구해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다시 <역사>를 쓰기 위한 여행길을 나섰다. 이 때부터 그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기를 위한 여행이 아니었으며, 오로지 역사서를 위한 탐구에 목적이 있었다. 그 후, 여행에서 돌아와 B.C. 443년 경 남부 이탈리아인 투리에 정착하여 이 곳에서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그리하여 B.C. 427년 경 약 6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헤로도토스의 삶은 실로 역사서를 쓰기 위해 산 인생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헤로도토스가 단지 <역사>를 썼다는 것만으로는, 이 역사서가 2500년이라는 가공할만한 시간의 장벽을 뚫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 당시, 정말로 역사서를 쓴 것은 헤로도토스 단 한 사람뿐이었을까? 그의 작업이 실로 위대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우리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들만 기억하기 때문에 헤로도토스 이외에 역사를 기술한 사료들이 또 있었으리라고 상식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다른 사료들과 달리 현시대까지 생존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버트런트 러셀에게서 일말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러셀은 자신의 저서에서 역사의 가치는 교훈에 있는 것도, 교양에 있는 것도 아니며 즐거움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음악, 미술, 시와 같이 역사도 즐길 수 없다면 효용 가치 역시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다시 헤로도토스 시절을 상상해보자. 대량으로 찍어내는 출판문화가 없던 시절, 오로지 책은 필사해야만 전승되는 시절이다. 이 막대한 노동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책만 살아남는다. 가치를 인정받는 책은 필사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2500년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책이 재미있기까지 하다면, 그리하여 읽고자 하는 사람의 수요가 많다면 책은 훨씬 많이 필사된다. 이 경우, 책이 보관되어 있던 일부 도서관이 전쟁으로 불타거나 장마로 책이 손상되고 세월의 풍파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도 일부는 보존될 가능성이 다른 책보다 월등히 높아진다.

 

그렇다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어째서 재미있었을까?

 

헤로도토스가 음유시인들처럼 모든 수사적 기법을 동원하여 독자의 즐거움을 배가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법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의지에 따라 선택되는데, 헤로도토스는 어떤 도덕률이나 편견의 제한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그는 전쟁의 발발 원인이 되었던 궁정의 야사라든지, 정쟁, 음모, 다툼, 그리고 정의와 사랑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수집하고 정리하여 그 어떤 소설보다도 기가 막히고 극적인 역사를 탄생시켰다. 사실 허구보다 재미있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 아니던가.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일부 후대 역사가들로부터, “재미를 위해 허구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책의 생존핵심전략이었던 “재미”는, 바로 그의 다음 세대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로부터 “재미만 추구한다”는 이유로 비판받았고 이런 수모는 역사의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끊이지 않았다. 즉, 오히려 너무 재미있어서 역사적 가치면에서 탈락될 위기를 겪기도 한 것이다. 또한 “허구”들을 다룬 역사책이라는 점을 한계로 지적받기도 하였다.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구전과 신화들까지 모두 기록한 것이 바로 사실에 입각해야만 인정되는 역사서의 기준에 미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결코 재미를 위해 허구로 점철된 역사서를 쓴 것이 아니다. 그는 과거 사실 그 자체가 흥미롭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구전되면서 과장된 이야기들 사이에서 그는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관의 역할을 하였다. 재판관이 정의의 손을 들어주듯이, 그 역시 언제나 사실로 추정되는 쪽의 손을 들어주되, 열린 마음의 역사가답게 “거짓의 역사”도 말살시키지 않았다. 아예 지워버리는 대신, 기록하고 비판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거짓된 구전 역시 그 당시 인간들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역사의 범주를 보다 더 포괄적으로 보자면, 신화나 허구 그 자체는 역사가 아니지만, “이러한 신화가 그 당시 있었다.”라거나, “이런 말이 구전되어 내려오는데 믿기는 어렵다.”라는 기술은 역사가 된다. 헤로도토스는 바로 그런 역사를 놓치지 않았다.

 

사실에 발을 딛고 있지 않으면 역사가 아니지만, 사실이라는 이데아를 역사라는 현실에 그대로 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의 특징은 사실에 있다기보다 진실에 있다. 진실이 역사의 조건이라면, 열린 마음은 “위대한” 역사의 조건이다. 역사철학의 변화에 따라 비판의 초점은 달라질 수 있지만, 헤로도토스가 위대한 역사가로서 필요한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가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근원이자 발명가로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헤로도토스 역사>(박현태 옮김, 동서문화사)를 읽고 거기에서 마음에 드는 글귀와 그에 대한 나의 부족한 사견을 덧붙였다. 가능한한 페이지 순서대로 정리하였으며, 깨닫게 하는 바가 비슷한 부분은 함께 모아서 정리하였다.

 

역사를 읽으면서, 나는 글귀를 역사학을 비롯하여 문학, 윤리학, 경제학, 수학, 생물학 등등의 다양한 프리즘을 대보았다. 역사는 다양한 효용의 탈을 바꿔 쓰는 요정과도 같아서, 역사서를 읽으면서 깨닫고 느끼는 것 역시 산만하고 통일성이 없다. 그러나 다양한 사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부끄럽지만 느닷없이 연상되는 모든 사념들을 차별하지 않고 글로 옮겨 보았다. 이런 태도 역시, 헤로도토스의 열린 사관과 닮아있다고 믿고 싶다. 옴니버스식 설정이므로 혹시 호기심을 느낀 독자가 생긴다면 두서없이 읽어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p.15

여기까지가 페르시아인과 페니키아인이 전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이 경과가 과연 그대로였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논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리스인에 대한 악업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인물,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그 인물의 이름을 여기에 들고, 이어 사람들이 사는 나라들(고을들)에 대해서 그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하나하나 논해가면서 이야기를 해나가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때 강대했던 나라들이 대부분 이제는 약소해지고, 내가 살았던 시대에 강대했던 나라도 한때는 약소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운은 결코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치를 알고 있는 나는, 큰 나라이든 작은 나라이든 똑같이 밝혀 다루어가려고 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역사서로, 현 시대의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로 설명되는 오리엔탈리즘의 시초이다. 동양과 서양 문명의 충돌은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인류의 화제였고 문명의 비빔을 일궈냈다. 그 충돌과 융합의 과정 속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었다. 폴 벤느는 자신의 저서,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에서 역사는 거의 두 가지 의의로 수렴한다고 하였다. 하나는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쓰는 도입부에서 나라들의 흥망성쇠는 가변적이므로 똑같이 역사에 남겨 경중을 평등하게 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의 역사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열린 마음”은 이러한 역사가의 철학에 기반한 것이었다.

 

 

 

여자의 꾀

 

p.18

“기게스여, 지금 그대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어느 것을 택하는가는 그대의 선택에 맡기겠다. 하나는 칸디울레스를 죽이고 나와 리디아 왕국을 그대가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다. 앞으로는 칸다울레스가 하라는 대로 해서 그대가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볼 수 없도록 말이다. 이와 같은 일을 꾸민 그분이나 나의 살결을 보는 용서할 수 없을 짓을 저지른 그대, 둘 중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역사서의 거의 처음 부분에서 언급함으로써, 흥미와 집중도를 끌어올린다. 더불어 한 왕좌의 시작을 전혀 미화시키려는 의도 없이, 그 원인이 여자 문제가 연관된 야사에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헤로도토스가 역사를 기록하는 자로서 가지는 절대 권력 앞에서 겸손하고 솔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얼핏 보면 칸디울레스의 왕비가 기게스에게 한 제안은 납득하기가 힘들다. 왕비는 기게스에게 두 가지 제안을 하는데 하나는 즉시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역을 꾀하여 왕이 되게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안은 이해가 되지만, 기가 막힌 것은 두 번째 안이다. 더군다나 기게스가 두 번째 안을 선택할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으므로, 왕비는 기게스에게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라고 부추긴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특이한 제안에 흥미를 느꼈다. 혹시 원래 왕비가 기게스에게 아무도 모르게 연정을 품어왔던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게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은 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무리이다. 왕비는 자신에게 불경죄를 저지른 남편과 그의 부하 기게스를 용서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한 나라의 왕이었다면 기게스에게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목을 베었을 것이며, 장군이었다면 왕에게 반역을 꾀하는 것이 정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여자였고 그의 남편은 왕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반만 복수하기로 했다. 왕이 죽거나 기게스가 죽게 하는 것이다. 만약 기게스를 죽이기로 했다면, 그녀는 왕에게 기게스에 대한 모함을 하면 된다. 그러나 효과가 불확실하고 왕에게는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왕을 죽이기로 했다면, 기게스에게 피할 수 없는 덧을 놓아 시킬 수도 있으며 후에 기게스가 왕에 추대된다고 하더라도 그는 왕비의 지시대로 기존의 왕을 죽인 사람이기 때문에 왕비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 즉, 남은 왕에 대한 왕비의 통제권이 더욱 강력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소기의 목적인 복수를 이뤄냈다. 참으로 경탄할 만하다.

 

 

p.113

이 여왕은 다음과 같은 장난을 꾸며낸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도시에서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은 문 위에 자기 묘를 만들게 한 것이다. 묘는 바로 문 위에 있는데 이 묘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기게 하였다.

 

‘나 이후의 바빌론 왕으로서 돈에 궁한 사람이 있으면 이 묘를 열고 원하는 대로 돈을 가져라. 그러나 궁하지 않은데 함부로 열지 말 것, 흉사가 있을 것이다.“

 

이 묘는 다레이오스의 지배가 될 때까지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다레이오스는 이 문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재보가 들어 있고 열라는 문구까지 있는데 그 재보를 취하지 않는 것도 꺼림칙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이 문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이 문을 지날 때 시체가 바로 머리 위에 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를 열어보니 재보는 없고 있는 것이란 시체와 다음과 같은 문구뿐이었다.

 

‘네가 한없이 탐욕스럽고 이익을 쫓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아니라면 죽은 자의 관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빌론의 여왕 니토크리스는 헤로도토스에게 총명한 지도자로 평가된다. 칸디울레스의 왕비처럼, 니토크리스가 자신의 묘를 두고 친 장난 역시 생각해볼 점이 있다. 왜 그녀는 묘 안에 재화를 넣어두지 않았을까? 실제로 가난한 자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그녀의 묘를 열어보았다가 망자로부터 농락만 당한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묘는 궁한 사람에 의해 열리는 것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자에 의하여 열릴 것임을. 당시 묘에 재물을 함께 묻는 것이 생소한 풍경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왕이 토벌꾼을 글로서 경계하지 않았어도 이미 그녀는 자신의 묘가 온전하지 못할 것임을 직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사후에도 자신을 괴롭히는 괘씸한 자들을 골려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유쾌한 호걸임에 틀림없다.

 

 

 

가장 행복한 사람

 

p.27-28

"왕께서 막대한 부를 가지시고, 많은 백성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물으신 일에 대해서, 왕께서 좋은 생애를 마치셨다는 것을 아실 때까지는 저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유복한 사람이라도, 만사가 잘 되어가는 평생을 끝마칠 수 있는 행운을 만나지 않는 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보다도 행복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돈이 썩을 정도로 있어도 불행한 사람이 많은가 하면, 재산은 없어도 좋은 운을 만난 사람 또한 많습니다. ...(중략)... 인간은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지언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p.59

(화형대의) 장작 위에 선 크로이소스는 이토록 비운에 직면하면서도, 문득 솔론이 한 말이 생각났다. “인간은 살아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크로이소스 왕은 한 때 자신이 가장 부강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 누구도 부러운 것이 없다고 여겨질 때, 현자인 솔론을 불러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응당 자신이 답으로 나오길 기다렸으나 솔론은 위와 같은 답변을 내려 왕을 무안하게 하였다. 훗날, 자신이 페르시아 왕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자 크로이소스는 솔론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그의 말을 깨닫게 된다.

죽기 전까지는 그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수 없다는 개념은 의외로 신선하다. 죽음은 곧 사고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죽은 후의 평가가 무엇이든 그리 중요할 것이 못된다. 즉,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면서 전전긍긍해봤자 우리는 결코 그 개념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묵묵히 주어진 상황 안에서 하루하루를 신념으로 살아갈 뿐이다. 현재의 빈부와 운이 있고 없음이 절대적인 평가의 잣대가 될 수 없다.

처음에 현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던 자만하던 영웅이, 훗날 자신이 몸으로 직접 그 진리의 쓴 맛을 깨닫고 뉘우치고 참회한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는 늘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사실에 입각한 역사가 문학적 가치를 획득한 중요한 구절이다.

 

 

 

죽음의 무게

 

p.73

이렇게 말하고 나서 소치기는 덮었던 것을 벗기고 아이를 보였다. 아내는 크고 잘생긴 갓난아이를 보자 남편의 무릎에 매달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버리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신탁에 의해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아이를 죽이려 하였으나, 결국 기적적으로 살아나 운명대로 기존의 왕을 처단하고 새로운 왕이 된다는 오이디푸스적 이야기이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것은 아이가 살아난 방법에 있다. 어기면 바로 사형을 면할 수 없는 왕명이 내려졌다. 반드시 시행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죽여야 하는 갓난 아이를 본 여자는 마음이 미어진다. 자신이 갓 사산한 자신의 아이에 대한 연민이 고스란히 이 아이에게 실린다. 아내는 남편에게 무릎을 꿇고 매달린다. 그리고 자신과는 전혀 이해관계도 없는 한 아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헤로도토스 역사서에서 가장 인간적인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p.87

지금 말한 매우 좋은 풍습과 더불어, 또 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아무리 국왕이라도 단 한 번의 죄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다는 것, 그 밖에 일반 페르시아인도 자기 하인에게 한 번만의 과실로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적국인 페르시아의 문물과 문화도 소중하게 기록하였다. 역사가가 역사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그는 페르시아에도 매우 좋은 풍습이 있다고 거침없이 기록하였다. 그가 “좋은 풍습”이라고 칭한 것 중에는 페르시아인의 사람 생명에 대한 인격적 처사가 있다. 아무리 절대 권력의 국왕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나라의 수준은 사람의 목숨값에 달려있지 않겠는가? 타인의 생명과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고, 헤로도토스는 적국과 아국을 따지지 않고 그 가치를 순수하게 인정해주었다.

 

 

 

도덕의 상대성

 

p.127

마사게타이에서는 살아있을 수 있는 연령의 제한은 특별히 없지만, 매우 높은 연령에 이르면 연고자들이 모여 그 남자를 죽이고, 그와 함께 가축도 죽여 고기를 삶아서 다 같이 먹는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가장 행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병사한 사람은 먹지 않고 땅 속에 묻어, 죽음을 당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불쌍하게 생각한다.

 

이 부분을 보면 얼핏 우리 나라의 유언비어같은 역사인 고려장이 떠오른다. 먹을 것이 부족하여 말 그대로 굶어죽는 상황이 되어 인구 사이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고려장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간에 이는 매우 슬픈 일이며 실제로 어버이를 지게에 지고 산에 오르는 자식들도 필요악이라 생각하지 즐겁게 등산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어떤 문화권에서는 이렇게 죽는 것을 행복한 것이라 여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사람들에게 살해된 후 잡아먹히는 행위는 매우 높은 연령까지 살았다는 것의 방증이므로 한 편으로 “호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집 앞에 모여든 마을 청년들 앞에서 “어서 오시게나, 내 오늘을 기다렸다네. 어서 나를 죽여주게. 이제 사는 게 너무 지겹다네.”라고 말할 어르신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세상의 삼대 거짓말 중 하나가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헤로도토스가 기록한대로 그 과도한 다양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시간을 초월한 과학이성

 

p.134-135

내 생각에는 이집트도 이와 비슷한 만이 있었을 것이다. ...(중략)... 그 근거는 내가 실제로 본 것으로, 먼저 이집트가 인접 지역에 비해서 바다로 돌출되어 있다는 것, 산속에서 조개류를 볼 수 있고, 또 땅 표면에 염분이 솟아나와 그 때문에 피라미드가 부당할 정도라는 것, 이집트에서 모래가 있는 곳은 앞서 말한 멤피스 이남의 산악지대 뿐이라는 것, 그 토질이 인접하는 아라비아와도 리비아와도 시리아와도 비슷하지 않다는 것 등이다.

 

헤로도토스는 역사가이면서도 동시에 훌륭한 지리학자로 평가된다. 그가 이집트가 지리학적으로 만이었을 것이라는 가설 아래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들을 찬찬히 읽다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현대 지리학에서 가장 큰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불릴만한 “판게아 설”을 주창한 과학자와 헤로도토스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연구력을 가지고 있다. 판게아 설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이 블록처럼 맞아 들어간다는 사실을 시작으로, 산속의 조개류를 발견하는 사소하지만 희한한 근거들을 토대로 탄생하였다. 만약 헤로도토스에게 지구본이 있었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빠르고 명확하게 판게아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의 과학적 사고 능력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p.159-160

여기까지가 테베의 사제로부터 내가 들은 이야기인데, 도도네의 무녀들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검은 비둘기 두 마리가 이집트의 테베를 날아올라 한 마리는 리비아로, 또 한 마리는 자기들에게로 왔다고 한다. 비둘기는 떡갈나무 가지 끝에 앉자 인간의 언어로, 이 땅에 제우스의 신탁소를 세워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중략)... 또 도도네 사람들이 이 여자들을 비둘기라고 한 것은, 그들의 귀에는 이국인인 그녀들의 말이 마치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얼마 뒤 그 비둘기가 인간의 말을 했다고 하는 것은, 그 여자가 하는 말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비둘기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비둘기가 검었다는 것은 여자가 이집트인이었다는 의미이다. 이집트의 테베에서 행하는 신탁의 바업은 도도네에서 행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희생 가축으로 점을 치는 기술도 이집트로부터 건너온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자칫 신화로 둔갑할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역사적 사실로 낱낱이 해체하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후세대 역사가들은 흔히 헤로도토스가 인간사에서 신의 개입을 떨쳐내긴 하였으나, 신탁과 운명론을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함으로써 완전한 이별을 고한 것은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가혹한 평가이다. 음악을 예로 들자면, 세상에 온통 “고전주의 음악”만이 존재하던 시절에 자유로운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후의 “낭만주의 음악”의 계기가 되었던 베토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베토벤을 시대 안에서 평가해야 한다. 베토벤의 음악을 두고 “그러나 고전주의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라고 평가한다는 것이 가당한 일일까? 헤로도토스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믿지 못할 “역사”들과 신화들 속에서 자라고 자료를 수집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현대의 종교철학자보다 더욱 철저하게 신화를 붕괴시켰는지 읽어보라. 그는 자신의 역사서를 통해 그리스인의 천재적인 과학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는 그리스 정신의 영웅이다.

 

 

p.197

이 소와 거대한 목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도 있다. 미케리노스는 자기 딸에게 연정을 품고 억지로 범하고 말았다. 그 뒤 딸은 슬픔을 못이겨 목을 매어 죽었다. 미케리노스는 딸을 이 소 안에 묻었는데, 딸의 어머니는 딸을 아버지 손에 넘김 시녀들의 팔을 잘라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그녀들의 상이 생전과 마찬가지로 팔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이야기는 전혀 허튼 소리로, 특히 거상의 팔에 대한 이야기는 엉터리이다. 상이 팔을 잃은 것은 오랜 세월 동안에 썩었기 때문이란 것은 나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으로, 실제로 그 팔은 내가 살던 시대까지도 나의 발밑에 떨어져 있는 것을 잘 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흉흉한 이야기를 더욱 잘 믿는다. 이 상황은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훌륭한 왕이었던 미케리노스를 시기한 몇몇 무리가 있었다. 혹은 그저 작화증 환자였는지도 모른다. 시녀의 모습을 한 상의 팔이 없는 것을 보고 그들은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내었다. 왜 그들이 이런 짓을 하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처럼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시대에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들이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 당시에도 이런 일은 가능했을 것이다. 얼마나 재미있는 이양기인가? 고매한 줄만 알았던 왕이, 모든 이의 존경을 받던 왕이 사실은 자신의 딸을 범한 파렴치범이라는 소문은 그 세계에선 둘도 없는 이야깃거리이자 스캔들이다. 입에서 입으로 순식간에 허구의 소문이 퍼진다. 그리고 결국 모든 이가 알게 되면, 허구는 사실이 된다. 집단의 힘이 믿음이 되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가 이러한 집단 선택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고증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와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왕의 품성과 정황으로 보아 “전혀 허튼 소리”라고 일축시킨다. 그리고 거상은 사실 썩을 수 있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먼저 분리되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팔들은 어디로 갔을까? 헤로도토스는 고개를 내려 팔이 떨어졌을 법한 아래를 살핀다. 아니나 다를까 팔의 흔적이 있다. 믿기 위해 믿는 사람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을 헤로도토스는 열린 눈으로 관찰해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훌륭한 역사가의 자세가 아닐까?

 

 

 

이집트의 고양이

 

p.163-164

이집트에는 가축의 수가 많은데 ...(중략)... 그 정도로 고양이는 모성애가 강한 동물인 것이다. 불이 일어났을 때에는 세상없이 기괴한 일이 고양이에게 일어난다. 이집트인은 불 끄는 일은 제쳐두고 간격을 두고 서서 고양이를 지킨다. 그래도 고양이들은 사람 사이를 빠져나가 불속으로 뛰어들고 만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집트인은 몹시 슬퍼하여 그 죽음을 애도한다. 고양이가 자연사했을 경우 그 집 가족은 모두 눈썹만 민다. 개의 경우는 머리를 비롯한 온몸의 털을 민다.

 

독자는 같은 책을 읽어도 전혀 다른 부분에서 가슴이 움직인다. 다른 사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감동의 포인트가 다른 이에게는 지독히도 깊고 뭉클하다. 나에게는 바로 이 부분이 그러하였다.

이집트에서 고양이를 신성시한 것은 상식이다. 우리는 이집트 벽화에 그려진 고양이 얼굴의 신들을 자주 본다. 약간 무섭고 기괴한 느낌이다. 마치 어떤 주술이라도 상징하는 것 같다. 인디애나 존스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그러나 사실 이집트와 고양이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간단한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가축으로서 고양이를 사랑했다.

나는 고양이를 매우 좋아한다. 그들은 가장 많은 편견을 받는 동물이었고 덕분에 핍박도 많이 받았지만 결코 도도함을 잃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정을 주는 사람 친구에게는 무한한 깊은 정을 줄줄 아는 동물이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화재 속에서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모습을 신화학자는 다르게 해석할지도 모르겠다.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신성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행동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면을 보아야 한다. 가축인 고양이를 아끼고 보호하기 위해 신성한 위치를 준 것이지, 신성하기 때문에 보호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집에서 정을 나눈 개와 고양이가 죽으면 그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사람에 대한 장례를 치를 때와 비슷하게 몸의 털을 민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집트인들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나라의 수준을 보는 여러 척도 중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목숨값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척도도 있다. 그 사회가 얼마나 동물을 존중하느냐 - 라는 지표이다.

 

 

뿌린대로 거둔다.

 

p.77

아스키아게스는 하르파고스의 아들이 오자 그를 죽이고 손발을 잘라, 고기를 굽거나 삶거나 s해서 요리를 만든 뒤 연회가 시작되는 것을 기다렸다. ...(중략)... 하르파고스가 덮개를 벗기자 그 아래에는 자기 아들 시체의 나머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본 하르파고스는 놀란 기색도 없이 태연히 앉아 있었다. 아스티아게스가 먹은 고기는 무슨 짐승의 고기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하르파고스는 안다고 대답한 다음, 왕께서 하시는 일은 그 어떤 일도 만족한다고 말하였다. 하르파고스는 남은 고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유해를 모아 묻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p.87

포로가 된 아스티아게스에게로 하르파고스가 와서 보기 좋게 나무랐다. 그는 이전에 아스티아게스가 자기에게 친 아들의 살코기를 먹게 한 그 연회에 대해 언급하고, 국왕의 몸에서 노예의 처지로 떨어지니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다.

 

왕인 아스키아게스는 내가 들어본 중 가장 지독한 방법으로 사람을 괴롭힌 사람이다. 벌하고자 하는 이의 무고한 어린 아들을 죽여 그 고기를 아버지에게 먹이게 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의 아버지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을까? 너무 괴로워서 회피하고 싶어질 정도다.

가장 대중적인 속담으로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두려운 제왕이라 하더라도 두려움으로 획득되는 힘에는 한계가 있다. 즉, 참을 수 있는 역치가 있는 것이다. 하르파고스는 연회에 들어서는 그 순간까지 평생토록 아스키아게스 왕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그러나 자신이 먹은 고기가 실은 죽은 아들의 것임을 깨닫는 순간, 그의 심장은 두려움보다 더 무섭게 식어버렸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는 복수의 화신이 되었고, 다행히 성공하였다. 즉, 사람에게 원한을키운 자는 반드시 그 원한의 칼날에 당하기 마련이다.

 

 

p.245

이와 같은 행동을 보고 리디아인 크로이소스는 왕에게 간언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이시여, 매사를 혈기에 쫓기고 충동에 몰려 하시지 말고 자제하여 자신을 억제하셔야 합니다. 앞을 내다보는 것은 매우 좋은 일로, 선견지명이야말로 현자의 덕입니다. 전하께서는 그다지 죄가 없는 자신의 백성을 잡아서 죽이고, 나이가 차지 않은 아이들의 생명까지도 빼앗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시면 이윽고 페르시아 국민은 전하에게 모반을 꾸미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도, 제가 부왕이신 키루스 왕으로부터, 무엇이든지 유익하다고 생각하면 전하에게 자주 간언하고 충고해 드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연장된 인생을 산다는 기분으로 페르시아의 왕과 지내게 된 크로이소스는 그 누구보다 허심탄회한 직언을 왕에게 할 수 있었다. 즉,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뿌린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왕이 되는 가장 신사적인 방법

 

p.274

“이것은 요컨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자유는 도대체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누가 주는가요, 민중으로부터인가, 과두제로부터인가, 그렇지 않으면 독제제로부터인가. 따라서 내 견해는, 우리는 단 한 인물에 의해서 자유의 몸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이 체제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은 별도로 치고라도 이 훌륭한 조상 전래의 관습을 파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그러한 일을 해서 좋았던 적은 없었소.“

...(중략)...그래서 일곱 명 중 남은 여섯 사람은 가장 공정한 방법으로 왕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서 협의하였다.

 

새롭게 즉위한 왕이 왕의 친아들인 줄 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을 깨닫고, 나라의 지도자들은 가짜왕을 축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새롭게 나라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의논을 하였다. 위의 부분은 의논 결과 왕정을 선택하기로 하였으며 왕을 뽑기 위해 가장 공정한 방법을 선택하여 최종적으로 무혈 정권 교체를 이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왕정을 지지하는 논리가 내 마음에 그닥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논리와 근거로 남을 설득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정치체제를 선택하는 명분은 국민의 자유에 있다. 실로 이상적인 모습니다.

인류의 가장 최근의 역사까지 숨가쁘게 달려와 보아도,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 그리고 정권을 잡기 위해서 가장 치사하고 더럽고 야비한 방법들이 동원되어 온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나마도 우리는 악몽 같던 세계 대전이 있던 19세기를 겨우겨우 넘긴 후, 이제는 더 적은 독재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적은 차별과 더 많은 존중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자화자찬하며 이제야 드디어 <역사의 종말>이 왔다고 보지 않는가? 그러나 2500년 전의 지도자들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시간의 흐름은 필연적으로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상의 현실화하고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더욱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역사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선택

 

p.291

"전하께 말씀드리옵니다만, 신의 뜻이 계시면 저는 다른 남편도 맞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아들을 잃어도 또 아들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 세상에 없는 지금, 또 한 사람의 형제를 가질 수는 도저히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온 가족이 처형당하는 고통을 겪게 된 한 여인이 있다. 그녀가 머리를 땅에 짖으며 너무 슬퍼하자 주변 사람들은 측은지심에 눈물짓는다. 이 여인의 소식을 들은 왕은 조금 마음이 불편해져서 선택적으로 한 사람만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이 여인은 자신의 남편도, 아들도 아닌 자신의 형제를 구해달라고 하였다. 놀란 왕이 그 이유를 묻자 그 여인은 위와 같이 대답한 것이다.

당신은 설득력을 느끼는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국의 가치관이라면 응당 자신의 아이를 구할 것 같다. 아이를 구한다고 하면 아이의 아버지도 수긍할 것이며, 그녀의 형제들도 자신들보다 어린 조카를 응당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 문제는 막상 닥친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내가 놀란 이유는, 그녀의 선택이 DNA의 전달 전략으로 가장 탁월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아들을 구한다면 여인의 유전자는 아들에게 1/2이 전달되었기 때문에 1/2을 구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자신의 형제를 구하게 되면, 형제는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그 정도를 낮게 잡아서 1/N이라고 하자. 여인이 말한대로 여인은 새롭게 아들을 낳을 수 있다. 아들 하나를 잃었기 때문에 원한다면 한 명을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아들 한 명의 손실은 감정적 손실임에는 틀림없으나 유전적 손실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만약 자신이 실의에 빠졌거나 기회를 잃어 더 이상 자식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구한 형제가 번성하면, 자신과 공유하는 그 1/N의 유전자는 계속 후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 남편은 여기서 아무런 이득도 되지 못한다.

DNA를 최대한 전달하고자 하는 생명체의 특성은 다양한 생물군의 행동양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가령, DNA의 세대별 분율 계산은 왜 벌들이 한 마리의 여왕벌과 여러 마리의 수벌, 그리고 일벌로 사회가 조직되는지도 설명해줄 수 있다. 2500년 전의 역사 사료에 있는 한 여인의 가련한 사연은 이처럼 현대의 생명과학의 근거자료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나라를 구한 호의

 

p.302

그가(실로손) 불타는 듯한 빨간 외투를 입고 멤피의 광장에 있을 때였다. 당시에 캄비세스의 친위대에 있으면서 그다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다레이오스가 그 모습을 보고, 그 외투를 갖고 싶어서 그에게로 접근하여 돈을 주고 사려고 하였다. 다레이오스가 외투에 대단한 집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실로손은 어떤 영감으로 움직였다고나 할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것은 그 어떤 값으로도 팔 생각은 없으나,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면 그냥 드리겠습니다.”

...(중략)... 실로손은 페르시아의 왕이 된 인물이 이전에 자기가 이집트에서 원했던 대로 외투를 주었던 바로 그 사람임을 안 것이다.

...(중략)... (다레이오스의 말) “오, 내가 아직 아무런 힘이 없었던 시절에 선물을 주었던 사람이란 말인가? 참 세상에도 드문 마음씨가 넓은 사람이었지. 그때 그대가 준 것은 작은 것이었지만 그 호의는 현재 내가 그 누군가로부터 막대한 선물을 받은 경우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대가 히스타스베스의 아들 다레이오스에게 친절을 베툰 데 대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그 때의 답례로서 헤아일 수 없을 정도의 금은을 주리라.”

그러나 실로손은 이에 대해서 말하였다.

“왕이시여, 저는 금이나 은도 소용없습니다. 제발 조국 사모스를 저의 손에 되돌려주십시오. 사모스는, 형 폴리크로테스가 오로이테스의 손에 살해되어 세상을 떠난 지금, 우리가 부리고 있었던 노예의 수중에 들어가 있습니다. 제발 이 사모스를 유혈의 참극도 일어나지 않고 시민을 노예로 삼는 일도 없이 저에게 주십시오.”

 

실로손은 과거에 전혀 연고가 없는 다레이오스에게 자신의 외투를 선뜻 양보함으로써 자신의 조국을 돌려받았다. 사람이 인생을 사는 처세술로서, 우리는 늘상 윗사람에게 잘하는 전략을 구상하곤 한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이 전략들은 꽤나 성공적이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투자 대비 효율이 가장 큰 처세는 바로 타인을 위한 무조건적 배려와 이해이다. 이미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섬기고 받들어 주며 달콤한 미사여구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레이오스가 말했듯이,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베풀었던 외투 한 벌이 자신이 왕이 되었을 때 선물하는 금은보화보다 더욱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는 감동의 경험을 선물해 준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존중해주고 그보다 더 낮은 데 서며, 작지만 상대에게는 소중할지 모르는 것들을 선뜻 양보하는 것이 바로 그리 짧지 않은 삶에서 반드시 언젠가는 천운을 잡게 하는 최고의 처세술이다.

 

 

 

한 편의 서정시와 같은 역사적 풍경

 

p.328

트리키아와 파이오니아의 여인들은 이와 같은 관습을 지키는데, 한편 델로스로와 죽은 북극인 처녀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델로스의 소녀와 소년도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 바치는 것이다. 시집을 가기 전의 소녀들은 한타래의 머리카락을 잘라 이를 실감개에 감아서 묘에 바친다 - 묘는 아르테미스의 신전으로 가면 왼쪽에 있고 그 위에 올리브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다. 또 델로스의 소년들도 푸른 풀줄기에 머리카락을 감아서 묘에 바친다.

 

그냥 마냥 보기 좋은 풍경이 있고, 마냥 읽기 좋은 시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구절을 통해 마냥 좋은 역사의 한 장면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2012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트리키아와 파이오니아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지역의 여인들의 사소한 관습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보라. 어린 소녀들이 자신들이 정성스레 길러온 머리카락을 가만히 잘라 실감개에 귀엽게 감는다. 왜 자르고 감았는가? 자신처럼 수줍은 영혼이었을 죽은 처녀들의 묘에 바치기 위해서. 나는, 헤로도토스가 포착해내고 글로 써낸 이 장면에서 진정으로 그의 문학적 자질을 깨달았다. 더불어 이토록 아름답지만 800여쪽의 역사책에서는 너무도 사소한 부분을 맑은 언어로 번역해 낸 박현태 역자에게도 큰 공을 돌리고 싶다. “한타래”라는 표현이나 “푸른 풀줄기”라는 시각과 청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아름다운 문구 덕에 나는 순간 기원전 그리스 변방 어느 아름다운 묘지로 떠날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랑

 

p.362-364

아마존을 스키타이어로는 오이오르파타라 하고,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사내를 죽이는 자들’이란 뜻이다. ...(중략)... 싸움이 끝나고 사체를 처리할 때 비로소 그들이 여자임을 알게 된 것이다. 거기에서 스키타이인은 상의를 해 앞으로는 결코 아마존족을 죽이지 않기로 하고, 가장 나이가 젊은 청년을 죽은 아마존족의 수와 비슷하게 뽑아 그녀들에게 보내기로 정했다. ...(중략)... 정오쯤 되면 아마존족은 언제나 아래와 같은 일을 했다. 한 사람 내지 두 사람씩 흩어져 서로 멀리 떨어져서 용변을 보는 것이다. 스키타이인은 이를 알고 그 흉내를 냈다. ...(중략)...

“우리는 도저히 당신네 나라의 여자들과 함께 살 수가 없어요. 우리와 당신네 나라의 여자들은 습관이 달라요. 우리는 활을 당기고 창을 던지며 말을 탈 줄은 아는데 여자가 하는 일은 배우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신네 나라의 여자들은 지금 말한 것과 같은 일은 어느 것 하나 못하지만, 그 대신 사냥을 하지 않고 달리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언제나 수레 안에서 여자들이 해야 할 일에 열중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도저히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만일 당신네가 우리를 아내로 삼고 싶다면, 그리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기 원한다면 부모에게로 가서 재산의 분배를 받으세요. 그런 다음에 또 이곳에 와서 우리끼리만 살아요.”

사내들은 납득을 해 여자가 말한 대로 따랐다.

 

헤로도토스는 명실상부하게 사실을 중요시하는 철저한 역사가였지만, 이 부분에서는 조금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말도 안통하던 아마존 여인들이 스키타이인의 풍습을 이해하고 자신들과 비교할 수 있었을까? 스키타이인이 분배받은 재산의 가치는 아마존에서도 환원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러나 이 구절에서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의문이 아니라 감동이다. 전혀 다름 문화에서 자라난 스키타이인 남자와 아마존의 여자.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열대 우림 속에서도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풋풋한 감성의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남자는 여자들이 속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불결하다거나 관조한다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들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방식을 따라해보았다. 이것이 바로 연대의식의 시작이다. 사랑은 싹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신들에게 아내가 되어줄 것을 부탁하자 걱정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였다. 그들 나라의 여자와 자신들은 다르다고. 여자들은 자신들이 변하기를 강요하는 대신, 남자들에게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 올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들은 따랐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 위해 스키타이의 남자들이 내린 결단은 참으로 위대하다.

 

 

 

공수래 공수거

 

p.513

"어차피 이 땅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또 우리는 이 땅을 정복하지도 못할 것이다. 일찍이 내 땅이었던 곳은 내 치아가 차지하고 있다.“

 

이 말은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략하기 전, 대장이 받았던 신탁의 내용을 달리 해석하게 되면서 결국 전쟁의 신이 그리스를 향해 미소 짓는다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이런 다양한 문학적 기법이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하게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문맥에서 잘라내어 가만히 음미해보자. 마치 한시의 한 시구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마지막 문장의 “치아”라는 단어에서는 모던한 파격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인가 쉽사리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페르시아 군인이 말한 이 땅은 자신들이 점령하려고 하는 그리스인의 땅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넓게 보면 인간이 살기 위해 발붙이고 있는 이 땅 그 자체를 의미한다. 내 것인 줄 알고 내 것이 될 줄 알았던 자연이 갑작스러운 기시감으로 다가올 때, 당신은 이방인이 되고 쑥스러운 침략자가 된다. 우리는 치아로 상징되는 마르고 작은 사체가 되어서만 비로소 자연에 편입된다.

위의 말을 내뱉은 사람은 심한 재채기를 하다가 자신의 흔들거리던 치아가 툭 빠져버릴 만큼 나이가 든 어르신이다. 곧 자연의 부름이 있을 것임을 피부로 알고 있는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야망의 원정길을 힘겹게 올랐다. 그러다 모래무덤 위에서 자신의 치아를 잃어버리고 황망히 찾다가 문득, 자신의 처지를 처연하게 직시하게 된다. 재채기로 읽은 이빨이나 찾아다니는 모습이라니... 인생의 허망함이 가슴에 알싸하게 퍼져온다. 나는 무엇을 더 얻기 위해 이 머나먼 타국의 땅에서 헤매고 있는 것일까? 노군인은 갑자기 정복욕을 상실한다. 그리고 치아를 찾는 것을 그만둔다. 인간의 생은 결국 공수래 공수거가 아니던가? 페르시아 전쟁의 어느 한 곳, 한 시점에서 어떤 한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만에 대한 심판

 

p.539

“이렇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충분히 고려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럽게 생각하여 계획을 잘 세운 자는 설사 일이 생각대로 잘 진행되지 않고 불운 탓으로 그 계획이 좌절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섣부른 계획만으로 실행한 자는, 일이 운좋게 성사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주운 것이나 같기 때문에 준비가 충분치 못했음을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동물 중에서 신의 번개에 맞아 죽는 것은 오직 눈에 띄게 큰 것들 뿐입니다. 신께서는 그렇게 해서 그들이 지나치게 우쭐거리지 않도록 하십니다(작은 동물은 신께 불손한 행위를 조금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집이나 나무들도 번개를 맞는 것은 언제나 가장 큰 것들 뿐으로, 뛰어난 것을 깎아내리는 것이 신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대군이 얼마 안 되는 군대에게 패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예컨대 신께서 대부대의 위세를 질투하여 병사들의 마음에 공포감을 불어넣거나 천둥을 울려 위협하시면, 아무리 대군이라 할지라도 여지없이 궤멸되고 맙니다. 신께서는 그분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교만한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무슨 일이든 성급히 일을 처리하면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로 우리는 커다란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참고 견디는 데 복이 있습니다. 그러한 복덕은 곧 나타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깨닫게 됩니다.

 

페르시아군은 그리스군보다 훨씬 큰 군대를 가지고 있었기에 페르시아 왕은 자만하여 전쟁 준비를 쉽게 생각하였다. 그런 왕에게 충언을 하는 부하의 말 중, 그 비유의 탁월함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번개는 오로지 눈에 띄게 큰 동물에게 내린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첫째 해석에서, 큰 동물은 규모가 큰 페르시아군을 상징한다. 마치 군대가 신이 보기에 교만할 정도로 크기 때문에 노여워 한 신이 페르시아군을 전쟁에서 지게 한다. 마치 신탁과도 같다. 전쟁을 앞둔 왕이 막상 훌륭한 전투력을 믿고 마음을 놓고 있는 와중에, 이런 재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필히, 역사가의 복선 중 하나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두 번째 해석에서, 큰 동물은 페르시아왕의 교만을 상징한다. 많은 군대를 믿은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둔 그리스인과 같은 절실함이 없다. 교만은 실패의 전단계이다. 첼리스트 장한나는 “만족하는 순간, 내리막길이다.”라고 하였다. 손가락의 모양이 변형될 정도로 악기를 갈고 닦는 음악가들은 바로 자만의 싹을 잘라냄으로서 정신을 다듬는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남보다 더 연습하지 않으면 아마추어에 머무른다. 아무리 많은 병사가 있어도 전략을 구상하고 적을 분석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뜻밖에” 질 수 있는 변수들을 우후죽순 키우는 셈이다. 상황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알고 나를 알고 전쟁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고 견디며, 신중히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페르시아 전쟁의 결과를 알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현명한 자, 그리고 조언을 받아들이는 자

 

p.543

"전하, 제 생각으로는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유익한 조언을 하는 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 가치는 똑같다고 봅니다.“

 

의학계에는 중요한 격언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의사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에 관한 것이다. A급 의사는 말 그대로 의술과 인격이 모두 뛰어난 최고의 의사다. C급 의사는 의술도 뛰어나지 않으면서 환자를 위해 뭘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의사다. 그렇다면 B급 의사는 무엇일까? 자신 없는 환자를 A급 환자에게 보낼 줄 아는 의사다. 의사가 겸손해야 환자를 살릴 수 있듯이, 사람이 겸손하여 다른 이의 진심어린 충고를 감사히 받아들일 줄 안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의 인생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왕과 군인과 평균 수명

 

p.557

그러자 크세르크세스는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누구 한 사람 100살까지 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절로 슬퍼지는구려. 사람의 목숨이란 얼마나 덧없이 짧은 것이오!”

 

왕이 자신의 사열하는 군대를 보고 흡족해다가 급작 눈물을 떨구며 한 말이다. 왕이 자신의 군대를 보면서 한 말! 당시 인구의 평균 수명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말 역사에는 100살이라도 되어 있었을까? 왕이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을 위해 전장에서 칼받이가 되어야 하는 저 군인들은 분명, 100살이든 50살이든 왕보다 오래 살기는 힘들 것이다. 군대의 사열을 보며, 그들이 전장에서 잃을 허무한 생명이 미안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그 많은 사람을 보고도 왕은 자신의 유한한 생을 투사하여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슬퍼 운 것이다.

 

 

도전하라.

 

p.559

"아르타바노스여, 그대가 한 말은 하나같이 다 옳소. 하지만 그렇게 무엇이든 두려워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모두 다 고려하지 마시오. 어떤 사항에 대해 온갖 가능성을 일일이 따진다면 결국 아무 일도 못하게 될 것이오. 오히려 만사를 대담하게 결행하고 염려되는 위험을 반쯤은 감수하는 편이, 사전에 온갖 위험을 피하기 위해 행동을 회피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오. 그대가 다른 자들의 의견에 일일이 반대할 때 그 주장이 확실히 옳음을 증명할 수 없다면, 그대의 반론 또한 그대와 견해를 달리하는 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틀린 것일지도 모르오. 어느 쪽 주장이 옳은가 그 가능성은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오. 그러므로 성공은 기꺼이 결행하는 자에게 주어지게 마련이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뭇거리며 몸을 사리는 자에게는 다가오지 않소.“

 

물개가 무서워서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펭귄은 모두 굶어 죽는다.

 

 

 

불확실의 과학

 

p.560

"일의 초반에는 결말을 모두 꿰뚫어 볼 수 없다는 옛말이 진리임을 아무쪼록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뉴튼의 고전 물리는 모든 것을 예측 가능할 것 같았으나, 이제 세상은 확률로 설명할 때 더욱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에 봉착하였다. 뉴튼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을 때, “우주의 원리는 단 한번 세울 수 있다.”고 말하며 뉴튼이 이 기회를 선점한 것을 부러워하던 한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바로 위의 것이다.

 

 

 

그들은 싸울 것입니다.

 

p.578

"다른 그리스인 모두가 전하의 뜻에 따르게 된다 하더라도 스파르타인만은 반드시 전하께 맞서 전쟁을 벌이리라는 것입니다. 병력 면에서 대체 그 들이 어느 정도이기에 그렇게 나올 것 같은가 하고 묻지 마십시오. 예컨대 1천의 병력을 가지고 출격할 수 있을 때에는 그 1천명을 가지고 싸울 것이며, 또한 1천보다 적든 많든 상관 않고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명연설가였던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공포하는 대국민 연설을 직접 하였다. 그의 조금 상기되었지만 왠지 모를 비장감이 감도는 목소리로 그는 오늘 아침 막 주요 국가 참모들과 의논을 끝내고 전쟁을 위한 대열 정비를 끝냈음을 알렸다. 이제 정말 전쟁이다. 처칠은 숨죽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라디오 앞에 모인 전국민에게 지도자의 말을 전하였다. “우리는 육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것은 승리,입니다.”

‘우리는 싸운다’는 말을 반복 사용한 그의 연설문에서, 처칠은 말의 반복 때마다 의지와 확신을 느낄 수 있다. 싸우고, 싸우고, 싸울 것이라는데 이 말을 들은 국민 어느 누가 감동하지 않겠는가? 데마라토스는 페르시아의 수만 군대에 맞설 스파르타인들에 대해 동일한 설명을 한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싸우고, 싸우고, 싸울 것입니다.” 2차 대전 때의 영국군도, 기원전 페르시아 전쟁의 스파르타인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연합군의 승리는 처칠이 외친 “Victory"의 감동만큼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거의 불가능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던 스파르타인들은 어땠을까? 데마라토스는 말한다. 묻지 말라고. 스파르타인들의 용맹은 병력의 규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병력을 묻지 말아라. 왜냐하면 그들은 스파르타인이기 때문이다.

이 이방인의 설명에서, 나는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외침 속에서 굳건히 가족을 지켜낸 스파르타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무모함이 아니다. 내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형으로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그 고매한 희생 정신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들은 싸우고, 싸우고, 싸우는 용기가 있었기에 그 정신이 오늘날까지도 청명하게 살아서 그 가족과 후예들을 지켜주고 있다.

 

 

 

스파르타군의 머리카락은 소중하다.

 

p.629

"그들은 생사를 건 모험을 시도하기 전에 머리칼을 손질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이 전쟁 전에 머리를 다듬는 모습을 보고 크세르크세스가 의아해하자 데마라토스가 설명하면서. 왜 머리를 손질할까? 죽을 때 단정하게 죽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오히려 느긋해 보이는 여유에서 오히려 비장감을 읽을 수 있다. 독특한 심상이다.

 

 

 

그늘이라는 단어의 효용

 

p.637

"트라키스에서 온 손님이여, 그대는 우리에게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었소. 메디아군이 태양을 가려 준다면 우리는 그늘에서 싸울 수 있지 않겠소.“

 

테르모필라이 전투를 영화로 한 <300>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 말이 순위권이 아닐까? 이 말은, <그늘>이라는 단어가 전장의 모든 의미로 환원된 인류 최초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아직도 영화에서 디에네케스가 화살의 그늘을 말하며 치켜든 방패 아래에서 동료들과 호기롭게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숫자에 담긴 함의

 

p.637

페르시아 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자들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명이 새겨져 있다.

 

일찍이 이 땅에서 300만 명의 군대와 맞서 싸운

펠로폰네소스 4000의 병사

 

단순하게 300만과 4천의 숫자만으로 이토록 뭉클한 함의를 담아낼 수 있을까?

 

 

 

전쟁을 위합 협상법

 

p.607

"시라쿠사이의 왕이시여, 저희를 전하께 파견한 그리스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휘관이 아닙니다. 그리스가 바라는 것은 군대입니다.“

 

페르시아를 물리칠 연합군을 편성하기 위해 모인 각국 대표들이 계속 지휘권을 두고 싸우자, 아테네의 사자가 한 말이다. 그는 의견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아주 명쾌한 말을 던진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각자에게 거울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생활에 협상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지만 전쟁터만큼 협상의 기술이 절실한 곳은 드물 것이다. 와튼 스쿨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협상의 기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 아테네의 사자가 사용한 기법은 <표준의 사용>이다. 표준이란 각 개인이나 단체가 스스로 정한 원칙을 말한다. 각자가 표방한 표준을 재확인시킴으로서 개인과 단체가 표준을 이탈했을 때, 매우 효과적인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스는 현재 자신들의 생명줄을 죄어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합심하여 물리쳐야 한다. 연합군을 결성하는 것 역시, 거대한 페르시아 군대를 이기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서로는 지휘권 여부를 두고 감정의 골을 깊게 패고는 결국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자신의 군대는 철수시키겠다는 강경한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 때, 아테네의 사자는 표준을 환기시킨다. 잊었는가? 우리는 군대를 모으기 위해서 온 것이지 지휘관을 뽑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네.

 

 

 

빨라서도 안되고 늦어서도 안된다.

 

p.666

지휘관들이 모이자, 에우리비아데스가 소집 취지를 설명하기도 전에 테미스토클레스는 성급함을 참지 못하고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코린토스 부대의 지휘관이었던 오키토스의 아들 아데이만토스가 연설을 가로막으려 이렇게 말했다.

“테미스토클레스여, 경기에서도 출발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뛰어나가면 채찍으로 얻어맞소.”

테미스토클레스도 이에 지지 않고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그러나 신호에 뒤늦는 자는 명예로운 승리의 관을 쓸 수 없소.”

 

닌텐도의 회장은 자신의 비즈니스 성공 비결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변화하는 것을 좀 더 빨리 눈치채는 것이다.”

 

너무 빨리 세상에 나와 인정받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린 사상, 상품, 예술은 그 당시 인정받지 못하고 사장되거나 먼 훗날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흐름의 앞에 서지 않으면 이미 후발주자로 밀려나 과거 위에 앉은 들러리가 되고 만다. 특히 이윤 창출이 목표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멋지게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항상 파도와 함께 가야 한다. 만약 비즈니스 서적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절히 응용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문구라고 생각된다.

 

 

 

현명함과 순수함 사이

 

p.760

"전하, 어찌 제게 그런 곤혹스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내는 제게 자식을 낳아 길러 주었고, 그 중 딸 하나는 전하의 뜻에 따라 전하의 아드님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아내는 제 모든 것입니다. 그런 아내와 헤어지고 따님과 결혼하라니요? 왕이시여, 제가 따님을 맞이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주신 것은 실로 명예로운 일이지만, 지금 명하신 두 가지 일은 모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하께선 제발 제게 무리한 일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따님에게는 저에 못지 않은 다른 훌륭한 사윗감이 나타날 것이오니, 아내와 그대로 살게 해주십시오.“

 

망나니 같은 크세르크세스를 군주로 둔 덕에 일가족이 몰살당한 어처구니 없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다.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의 신하인 마시스테스의 아내와 딸에게 차례로 욕정을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한 나머지, 왕비의 질투를 사서 신하의 아내를 죽이는 일을 하게 되었다. 크세르크세스가 마시스테스에게 자신의 딸을 새로운 아내로 줄터이니 지금의 아내를 떠날 것을 요구하자 깜짝 놀란 마시스테스가 자신의 군주에게 읊소한 내용이 바로 위의 것이다. 나의 아내는 나의 자식을 나아 길러주었고, 무엇보다도 제 아내는 나의 모든 것이라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그러나 마시스테스는 군주의 인품을 잘못 판단했다. 그는 진심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시스테스의 간청을 자신의 명령에 대한 거부로 이해한 크세르크세스는 그의 아내를 처참한 몰골로 난도질했다. 그런 아내를 보고 마시스테스는 얼마나 울었을까? 그는 죽지 못한 아내와 남은 식솔들을 데리고 망명길에 오르기로 하였다. 훗날을 도모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는 이마저도 경계하여 도망치는 신하의 가족들을 길 위에서 모두 죽여버렸다.

마시스테스는 왕의 명령대로 왕의 딸과 결혼해야 했을까? 이렇게 되었다면, 그의 아내는 왕비에 의해 살해당했겠지만 남은 가족들은 살릴 수 있었다. 다만, 남은 인생 동안 굴욕과 분노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만약 마시스테스가 왕의 진위를 파악하였더라면 좀 더 다른 계책을 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령, 왕비가 시기하는 저의 아내가 문제라면 죽었다고 가장하여 장례를 치르게 한 후, 나의 가족은 원래 가고자 했던 고향으로 조용히 돌아가겠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어쩌면 조금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비는 끝까지 아내의 목을 확인하고 싶어했을 것이고, 결국 결말은 비슷하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시스테스가 진실을 호소하는 전략을 썼든, 영리하게 계략을 써서 사건을 피하려 했든 간에, 잘못은 마시스테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처럼 화목하고 평화롭던 가족이 폭군의 한낮 농짓거리를 위해 쓰이다가 반항 한 번 못하고 아스라진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상상한다. 모든 약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위해 묵념하고 싶게 하는 대목이다.

 

 

 

페르시아 전쟁사를 마무리하며.

 

p.764

부드러운 땅에서는 부드러운 인간이 나오듯이, 훌륭한 작물과 전쟁에 강한 남자는 그러한 땅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페르시아인들은 자신들 생각이 키루스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키루스 앞에서 물러나왔다 .그들은 이렇게 비옥한 땅을 일구며 다른 나라에 예속되느니보다 척박한 땅에 살며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 구문은 헤로도토스 역사의 마지막 구문이다. 그리스를 차례차례 정복해오던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가 치러낸 페르시아 전쟁. 헤로도토스는 제국의 군대로부터 승리를 쟁취한 그리스와 아테네를 높게 평가하였지만, 결국 그의 역사서는 페르시아가 주인공인 책이다. 그러므로 페르시아에 대한 역사가의 담담한 소견으로 역사책을 끝내는 것은 책의 통일성에 방점을 찍는다. 헤로도토스는 적국이었던 페르시아를 섣불리 평가하지 않는다. 그는 왜 페르시아는 그러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뛰어난 지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의 두뇌로 담백하게 말한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서 강한 자로 태어나 통치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고. 일필휘지와 같은 명문장이다. 헤로도토스는 아마도 역사의 저술을 마무리해가면서 책의 마지막을 무엇으로 닫을지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그가 최종 선택한 이 문구의 향기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왠지 페르시아의 조금은 거친 벌판에서부터 야생의 풀내음이 코 끝을 무찔러드는 것 같지 않은가?

 

 

 

 

 

 

 

 

 

 

 

 

 

 

 

 

 

 

 

 

3. 내가 저자라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가능한 과거의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이 지당하다. 원형이 존재해야 아형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형에 유일하게 손댈 권리를 가진 저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역사>는 알렉산드리아 이후의 교정본을 그대로 읽어도 별 문제 없이 읽힌다. 그러면 된 것일까?

 

만약 내가 지금 2512살 먹은 헤로도토스라면 어떨까? 서적의 판권도 내가 가지고 있고, 전 세계로부터 인쇄비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인쇄비가 쥐꼬리만하다. 황망히 대형 문고에 가보니 자신의 저서와 경쟁해야 하는 책들 수 만권이 새까맣게 진열되어 있다. 아찔해진 정신을 겨우 가누고 자신의 책에 대해 점원에게 물어보니,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절판되었으므로 따로 주문”을 해달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면 이건 이제 자존심의 문제이다. 열린 마음의 헤로도토스는 점원에게 분명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책이 잘 팔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잘 팔리는 책이란, 결국 독자가 선택하는 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헤로도토스)가 할 일은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독자는 책의 표지를 본다. 제목이 <헤로도토스 역사>이다. 그러나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역사책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책의 제목은 <페르시아 전쟁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독자는 책의 맨 첫페이지를 펴든다. 거기에는 목차가 있다.

 

제 1권 클레이오 - 전설시대의 동서 항쟁, 리디아의 옛 역사, 크로이소스와 솔론...

제 2권 에우테르페

......

 

독자는 클레이오와 에우테르페가 뭔지를 모른다. 단 0.2초 바라보고 못 읽을 책이라고 판단한다. 과제 때문에 읽어야 하는 불운한 학생들도 이 말이 역대 왕의 이름 정도라고 생각한다. 후에, 이 용어들이 역사와 별 상관없는 님프들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면 황당하지 않을까? 소제목들은 알고 보면 나름 의미가 있지만 이미 대목차부터 암호화되어 있기 때문에 체계를 판단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운 좋게도 다른 독자는 목차를 보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백지에 글자가 많은 첫페이지를 펼쳐들었다. 초반부터 흥미진진한 전개로 집중도가 확 올라간다.

 

우여곡절 끝에 페르시아의 왕이 된 키루스가 신탁을 오해하면서 절묘하게 죽고 그 뒤를 이어 캄비세스가 왕위에 오른다. 캄비세스는 더 나아가 이집트 원정을 강행하는데, 이집트는 지리가 어떻고 풍속이 어떻고... 이집트의 역사는 어떻고...

 

이 쯤 되자 독자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이집트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겠는데, 도대체 이집트는 언제 정벌하러 가나? 이미 초반에 느꼈던 흥은 어느덧 식어버렸고 심지어 무엇 때문에 즐거웠는지도 잊어버렸다. 독자는 몇 번 책을 뒤적뒤적 하다가는 가만히 책을 가판대에 내려놓고 사라진다. 책에서 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했다는 말은, 이집트의 국토에 대한 설명이 시작한지 94페이지 만에 나온다.

 

베스트셀러의 광고 문구 중 가장 흔한 문구는 무엇일까? 아마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재미!” 아닐까?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이야기의 흐름이 늘어지거나 화제가 전환되면 독자는 서점에서 책을 놓아버린다(안 산다). <역사>는 방대한 지리학, 인류학적 사료가 중요한 미덕이지만 책 안에서 산발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종 방향으로 이어지는 역사(즉, 이야기)와 횡 방향의 단면연구는 과감하게 분리하고 꼭 필요한 서술일 때만 배합시켜야 한다. 그리고 역주와 각주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정보를 제공한다. 지리학, 인류학 부분으로 분류한 페이지는 색지를 달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독자는 책을 첫페이지부터 뒷페이지로 차례차례 읽는다. 특히 역사책이라면 종적 진행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는 이야기만을 읽고 싶어도 책의 중간 중간에 포진된 지리학과 인류학 부분을 차마 건너띄지 못한다.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설사 해당 부분을 자의적으로 건너띄고 읽기로 마음 먹는다 하더라도 다음 스토리를 찾기까지 애를 먹는다. 그러나 페이지의 색깔을 달리 하면 독자는 분리된 이 부분은 나중에 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계속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초반에 언급한 목차의 문제도 이와 통한다. 종과 횡의 성질을 구분하여 목차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사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방대한 양에 비해 구성의 유기성과 합리성이 뛰어난 편이다. 그러므로 글의 원본에는 거의 손상을 주지 않고 조립을 재구성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페르시아 전쟁사(예)

 

1.클레이오 -> 리디아 원정/리디아에 대하여

2.에우테르페 -> 이집트 원정/이집트에 대하여

3.탈레이아 -> 그리스의 항쟁(사모스, 스파르타), 바빌론 원정/바빌론에 대하여

4.멜포메네 -> 스키타이 원정/스키타이에 대하여, 리비아 원정/리비아에 대하여

 

5.테릅시코레

6.에라토

7.폴림니아

8.우라니아

9.칼리오페

---->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라이 전투, 각종 해전...)

 

이런 식으로 목차만 정리해도, 애초에 헤로도토스가 원했던 이야기의 극적 구조를 잘 파악할 수 있다. 즉, 동쪽부터 페르시아 왕국이 서서히 그리스와 그 변방을 정복해오는 것을 목차만으로도 알 수 있다. 헤로도토스는 800쪽 분량의 저작에서 기승전결의 구성을 극명하게 잘 활용하였다. 더욱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 각 글묶음의 소제목 앞에 지도를 첨부하여, 당시 페르시아가 그리스 지역을 어디까지 정복하였는지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점진적으로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전운도 검고 거대하게 변모해간다. 마지막 목차의 글 앞에 놓여진 지도에는 그리스의 턱 아래까지 진격한 페르시아의 점령터가 짙게 칠해져있다. 당연히 그리스인들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주고받는 결의가 더욱 비장하게 읽힐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때문에 그리스의 승리는 더욱 감동적이다. 목차의 기승전결을 잘 파악하고 뚜벅뚜벅 하나 하나 짚으며 따라온 독자는 2500년전의 그리스인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공유하게 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결국 거대한 위협이었던 페르시아를 자유와 용기로 표방되는 그리스인들이 잘 이겨낸 영광의 역사를 다룬 것이다. 헤로도토스 역시 바로 이점 때문에 당시의 이야기를 역사로 남기고 싶어했다. 그러나 내가 헤로도토스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는 책의 주인공을 그리스가 아닌 페르시아로 두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줄거리를 단 한 줄로 요약하자면, <페르시아는 그리스 지역을 차례차례 정복해나갔으나, 결국 그리스와의 전쟁에서는 이기지 못했다.>이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저술의 마지막을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 키루스를 회상하면서, 어째서 페르시아가 자신들의 지역을 정복해왔는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 한 줄로 매듭을 지었다. 실로 결말 중의 백미라 할만하다. 흥망성쇠의 역사 안에서 거칠 것 없이 성장하며 에게해 근방까지 호령하던 페르시아, 그러나 책의 말미에서 그리스의 정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 얼마나 무상한 역사란 말인가. 그리고 페이드 인 되는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키루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역사가는 60 인생을 바친 역사서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 말 한마디에 진한 여운을 느끼며 독자는 책을 덮는다.

 

그들은 이렇게 비옥한 땅을 일구며 다른 나라에 예속되느니보다 척박한 땅에 살며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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