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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9일 05시 05분 등록


헤로도토스 역사


헤로도토스지음/ 박현태옮김/  동서문화사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헤로도토스와의 인터뷰

“<역사>라는 방대한 책을 저술하여 후세에 남겨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역사>는 당대의 역사를 총망라한 ‘역사서의 정수’입니다. 당시 존재하던 20여개 국의 민족과 생활모습, 사회상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 고대 사회를 엿볼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이기에 서양역사학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참고)밀레토스 지방에서 그리스어로 탐구라는 뜻을 지닌 히스토리아(historia)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5세기에 헤로도토스에 의해 정점에 도달했다. 헤로도토스 이래로 탐구라는 단어가 ‘역사’의 어원이 되면서 ‘역사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니, 헤로도토스의 탐구정신이 역사학을 낳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출생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herodotus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이 한창이던 BC484년에 이오니아(Ionia)인의 도시 할리카르나소스에서 출생했소.

-할리카르나소스는 지금 터키의 보드룸입니다. 할리카르소스는 어떤 도시였나요?

herodotus 그리스사람들은 소아시아 해안의 중간지대를 이오니아지방이라 불렀어요. 할리카르소스는 그리스인이 해외로 진출해서 건립한 식민도시로 이오니아의 색채가 강한 도시였어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를 배출한 밀레토스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입니다.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를 배출한 에페소스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아요. 식민도시의 특정상 할리키르나소스에는 그리스인과 현지인 등 많은 민족이 융화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저는 민족적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지요. 이러한 배경이 나를 키웠다고도 할 수 있어요.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herodotus 아버지 이름은 릭세스, 어머니 이름은 도리오였고, 우리 집안은 할리카르나소스에서 명망 있는 집안이었지요. 그리고 당시의 유명한 서사시인이었던 파니아시스는 사촌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높은 수준의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란 것 같습니다.

herodotus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학문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좋아했어요. 호메로스에 대한 탐구는 <역사>를 집필하는데 든든한 기초학문이 되어주었지요.

-청년이 된 후 참주 리그다미스2세의 독재를 반대하다 추방되어 사모스섬으로 망명하였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씀 좀 해주세요.

Herodotus 사모스섬에서 상당한 기간을 지냈지요. 사모스섬에서는 시인 호메로스의 언어인 이오니아방언을 배웠어요. 그래서 <역사>를 이오니아어로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를 집필하게 된 동기와 그 과정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Herodotus 저는 어려서부터 전쟁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여러 전쟁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그러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모스에서 귀국한 후 이탈리아 투리오로 이주할 때까지 10여 년간 몇 차례에 걸쳐서 여행했어요. 소아시아를 비롯하여 그리스본토지역, 아테네, 이집트, 동쪽으로는 바빌론과 수사, 서족으로는 리비아의 키레네, 바르케, 남쪽으로는 시에네(오늘날의 이스완), 북쪽으로는 올비아, 크리미아반도, 우크라이나까지 여행했어요. 정말 대장정이었지요. 저는 여행을 하면서 각 지역의 명승고적지를 둘러보고, 지형과 풍속을 조사하고, 민간에서 내려오는 전설이나 구전을 채집하고 역사적사건을 조사하는 등 아주 세세하게 기록을 해두었지요. 이러한 기록들이 <역사>를 저술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인이나 이방인이 이룩한 위대하고 놀라운 갖가지 업적’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 저술하게 되었지요.

-저희들도 세심한 자료수집과 꼼꼼한 기록을 하는 습관을 들이고 배워야겠습니다.

-<역사>책을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9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권마다 아홉 명의 뮤즈이름이 붙여진 것이 궁금합니다.

Herodotus <역사>는 훗날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이 아홉 권으로 재편집한 것으로 당시의 관례에 따라 각권에 학예의 여신인 뮤즈 아홉 명의 이름을 붙였지요. 제 의도는 아닙니다. 뮤즈는 그리스의 문예와 학술을 관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입니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서 <역사>의 구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Herodotus <역사>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기원전 499년부터 480년까지의 전쟁을 체게적으로 서술한 전반부와 페르시아제국의 성장과 조직, 지리와 사회구조 및 역사를 기록한 후반부로 나눌 수 있어요. 제 1권에서 메디아와 카루스의 성장에 관해 , 크로이소스와 소아시아, 바빌론의풍습과 전쟁을 다루었어요. 2권에서는 이집트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고요, 4권에서는 스키타이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었어요.  제 7~9권은 <역사>서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데,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원정에 관한 내용입니다.

-델포이의 신탁에 관해서 31군데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평소 신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델포이의 여사제인 파티아는 계수나무 잎을 씹은 후 환각상태에서 아폴로신의 신탁을 전했다고 하기도 하고, 신전 아래서 올라오는 이산화탄소를 흡입한 환각상태에서 신탁을 내렸다고 해서 좀 신빙성이 없다고 봅니다.

Herodotus 도도네에 있는 제우스의 신탁소를 방문하여 그곳의 무녀들로부터 그리스신들에 대한 숭배의 역사에 대해서 배웠어요. 저는 델포이 신탁소에서  ‘지나친 번영은 위험하다’ 그리고 ‘조상이 범한 죄는 자손이 갚게 된다’는 두 가지 법칙을 배웠어요. 이것은 제 역사관이기도 합니다. 파티아들이 환각상태에서 했는지 그런 것은 모르겠지만, 그들의 신탁이 틀린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판가름 나기도 하지요.

-예, 선생님말씀을 들으니 인생의 많은 부분을 여행을 하면서 보냈기에 위험한 일도 여러 번 당했을 것이고 종교의 힘에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테네를 매우 좋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테네의 매력에 대해 짧게 언급해주세요.

Herodotus 저는 독재를 매우 싫어합니다. 독재에 반대하다 사모스섬으로 망명을 가기도 했잖아요.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해야만 했어요. 아테네는 독재하에 있을 때는 강대국이 되지 못했지만,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고 나서는 그리스의 강대국이 되었지요. 아테네의 높은 문화수준과 민주주의를 좋아합니다. 저는 페르시아전쟁을 민주정치와 독재정치간의 대립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테네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반면에 페르시아시민들은 독재정치 탓에 발전을 억압당했어요.

-<역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지요?

Herodotus 저는 소아시아의 그리스인이었지만 무조건 그리스를 찬양하거나 편들지 않았어요. 민족적 편견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지켜나갈 수 있었고, 그것이 <역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비석이나 돌에 새겨진 기록과 예언에 관한 기록들 그리고 기존의 역사서 등 방대한 자료들을 참고로 해서 저술했습니다.

-그리스 식민도시인 이탈리아 투리오이에서 머물렀던 것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Herodotus 친구 페리클래스의 권유로 이탈리아 투리오이 식민도시 개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후 이곳이 좋아 뿌리를 내렸습니다. 투리오이에서 <역사>를 완성했어요.

- 헤로도토스선생님 긴 인터뷰 감사합니다.


 헤로도토스는 투리오이의 시민이 되어 BC420년까지 살다가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투리오이에 있는 헤로도토스의 무덤 비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락세스의 아들 헤로도토스, 여기에 잠들다. 그는 이오니아어로 역사를 기록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도리스인의 땅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모함을 받아 고국을 떠났다. 이제 투리오이는 그의 제 2의 고향이 되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로도토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역사>를 읽다보면 저술의 방대한 양에 대해 놀란다. 그리고 방대한 정보들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행을 통하여 직접 채집한 것이 대부분인 점을 감안할 때 그는 지구 최초의 특파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헤로도토스가 발로 뛰어서 정보를 수집한 것에 대해 존경을 보내고, 방대한 분량의 글을 써나갔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여행이 즐겁다고 하지만 고대의 열악한 교통 환경을 생각하면 고행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었을 것이며, 때로는 강도나 불량패들을 만나 고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스파이로 몰려 곤욕을 치루었을 수도 있다. 헤로도토스는 이러한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1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여행을 하였고 드디어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 그의 불굴의 정신, 도전의 정신에 뜨거운 찬탄을 보낸다. 불굴의 도전정신만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음을 헤로도토스는 보여주었다.  

  페르시아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 헤로도토스는 태어났지만, 전쟁장면을 묘사한 것을 보면 너무나 리얼하게 표현해 놓았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또한 그 자리에서 녹취해서 적은 것처럼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그는 정보를 수집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그의 풍부한 어휘력과 뛰어난 묘사력은 <역사>를 빛내주는 날개역할을 하였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즈음에도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책을 쓴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헤로도토스는 인생의 최대 목표로 연대기식의 <역사>책을 한 권 써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오랜 기간동안 차근차근 준비했을 것 같다. 그러한 노력덕분에 지금  최고의 찬사를 듣고 있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키케로로부터 ‘역사의 아버지’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가리켜  ‘고대 사회를 엿볼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고  또  ‘서양역사의 기초를 이룩한 책’이라는 찬탄을 듣는다. 지금 지하에 있는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알고 있을까?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들


제 1권 클레이오

***크로이소스와 솔론(24페이지)

솔론은 아테네 시민의 요청에 따라 법률을 제정한 뒤 여러나라를 구경한다는 명목아래 10년동안의 예정으로 외국여행 길에 올랐다. 솔론은 사르디스의 ‘크로이소스왕’에게도 모습을 나타냈다. 크로이소스왕의 명령을 받은 시종이 그를 보물창고로 안내하여 호화로운 제보를 모두 그에게 보여주었다. 왕은 솔론에게 말했다.

“아테네의 손님이여, 그대의 소문은 이 나라에도 우레처럼 들리고 있소. 그대가 현자라는 것은 물론  지식을 구하여 널리 세상을 구경하신다는 것도 들었소. 그래서 그대에게 곡 묻고 싶은 것이 잇는데, 그대는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소?”

크로이소스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자부하고 이렇게 물었다.

“크로이소스 왕이시여, 왕께서는 저에게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물어보고 계십니다. 저는 신이란 질투심이 많고 인간을 난처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아야 하고, 겪고 싶지 않는 일도 겪어야 합니다. 인간의 일생을 가령 70년이라고 하면, 70년을 날수로 고치면 윤달은 없다 치고라도 2만5200일이 됩니다. 만약에 사계절의 추이를 달력에 맞추기 위하여 1년 걸러 한 달을 연장한다면 70년 동안에 35개월의 윤달이 들어가게 되고 이것을 날로 환산하면 1050일이 됩니다. 그런데 이 70년, 합계 2만6250일 중 하루라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엇습니다. 그렇다면 크로이소스 왕이시여, 인간의 생애는 모두가 우연입니다.

☆☆☆‘인간의 생애는 모두가 우연이다.’ 과연 우리의 생애가 우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일까? 우연과 필연과 노력과 의지와 행운이 가미된 것이 우리의 생이 아닐까 싶다. 우연이라는 것도 낱낱이 따지고 보면 내가 뿌린 씨앗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왕께서 막대한 부를 가지시고 많은 백성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물으신 일에 대해서 왕께서 좋은 생애를 마치셨다는 것을 아실 때가지는 저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아무리 유복한 사람이라도 만사가 잘 되어가는 평생을 끝마칠 수 있는 행운을 만나지 않는 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보다도 행복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는 없습니다. 돈이 썩을 정도로 있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산은 없어도 좋은 운을 만난 사람 또한 많습니다. 매우 부유하지만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행운이 있는 사람에 비해서 딱 두 가지 이점을 갖는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운이 있는 사람은 불행한 부자보다도 많은 점에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전자는 욕망을 충족하거나 들이닥친 큰 재난을 견디어낼 수 있는 점에서는 다른 쪽보다도 유리할 것입니다.

  몸에 결함이 없고 병을 모르고 불행한 일도 당하지 않고 자식 복이 있고 모습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게다가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왕께서 바라시는 인물 즉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지 언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개개인이 완전히 자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없는 법인데, 될 수 있는대로 부족한 것이 적은 상태로 지낼 수가 있고, 게다가 보람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마땅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에 대해서나 그것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그 결말을 끝까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에 의해 울타리 너머로 행복을 잠깐 보았으나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웰다잉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내가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리고 있다고 해서 우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오늘 우쭐했다가 내일은 추락할 수 도 있으니, 자만하지 말라고 한다. 어떤 일을 하던 끝이 좋아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크로이소스와 신탁(32페이지)

크로이소스는 곧 그리스 및 리비아에 잇는 여러 신탁소에 사자를 보내어 신탁을 받게 하였다. 델포이를 위시하여 포키스의 아바이, 도도네(그리스의 서부 에페이로스 지방의 도시, 제우스의 신탁소가 있어 유명)암피아라오스(해몽으로 유명), 트로포니오스의 신탁소, 밀레토스의 브란키다이(브란키다이란 밀레토스 부근의 디디마의 아폴론을 섬긴 신관의 가문, 아폴론의 신탁을 다루었음)에게도 사자가 파견되었다.

 크로이소스는 신탁을 구하되, 크로이소스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물으라고 했다. 그중 델포이의 무녀는 장단단(長短短) 육각운의 가락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안다. 전 모래의 수도, 바다의 넓이도,

벙어리의 마음을 깨달으며, 말하지 않는 자의 소리를 듣는다.

껍질이 딱딱한 거북이 냄새가 나는구나.

청동 솥에서 산양 고기와 함께 끓고 있는 거북이의 냄새가

그 아래에 청동이 깔리고, 또 그 위에도 청동이 있구나.


크로이소스는 (정확하게 맞춘 델포이의 신탁을 위하여)막대한 희생을 바쳐서 델포이 신의 은총을 얻으려고 했다.

모든 종류의 동물 3000마리를 도살하고, 거대한 장작으로 산더미를 쌓아서 금은을 박은 침상, 황금제 접시, 자줏빛 의상, 내복류를 태웠다. 이와 같은 희생을 바침으로써 더욱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던 것이다.

***크로이소스왕은 델포이의 아폴론신을 숭배하며 많은 보물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왕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그 원인을 델포이의 무녀와 식자들은 특유의 신학이론에 기초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나친 번영은 위험하다’즉 ‘교만한 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상이 범한 죄는 자손이 갚게 된다’는 두 가지 법칙이다. (784페이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이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교만하지 마라.’ 신은 결코 교만한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겸손한 자를 예뻐하고 보살펴 주고 싶어한다. 이것은 곧 우주의 법칙이기도 하다.

페르시아의 풍속

***페르시아인은 하늘 전체를 제우스(페르시아의 주신 아후라마즈다)라 했고, 높은 산에 올라가 제우스(아후라 마즈다)에게 희생을 지내는 것이 그들의 풍습이었다. 또 그들은 해, 달, 땅, 불, 물에게도 제사 지낸다.

그들은 제단도 설치하지 않고 불도 피우지 않는다. 또 술을 따르는 의식도 없고 피리도 불지 않고 화환도 착용하지 않는다.  어떤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할 때에는 도금양잎새를 둘러서 쓰고 그 신 이름을 외운다. 자기 개인을 위한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페르시아 온 국민과 국왕의 축복을 기원한다.  자기도 페르시아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희생동물은 잘게 썰어 삶은 뒤, 될 수 있는 대로 부드러운 풀-대개의 경우 클로버-을 아래에 깔고 그 위에 모두 얹는다. 이러한 준비가 갖추어지면 마고스(페르시아의 세습적 신관 계급의 호칭)가 한 사람 와서 기도의 주문을 외운다. 신에 대한 제사는 마고스없이는 하지 않는 것이 관습이다. 그리고 제주는 고기를 내리고 그 뒤는 자기가 좋을 대로 처리를 하게 된다.(85페이지)

***페르시아에서는 그 어떤 날보다도 자기의 생일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날에는 다른 날보다도 많은 식사를 내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부자는 소, 말, 낙타, 노새 등을 화덕에 통째로 구워 잔치에 내놓고 가난한 사람은 작은 가축을 사용한다. 페르시아인은 주식은 얼마 먹지 않으나 디저트는 넉넉하게 그리고 한꺼번에 내는 것이 아니고 연이어 나온다. (86페이지)

***세계에서 페르시아인 만큼 외국의 풍습을 도입하는 민족은 없다. 메디아의 의상이 자기 나라 것보다 아름답다고 해서 그것을 입고 전쟁에서는 이집트서 가슴 갑옷을 착용한다. 또 갖가지 향락을 배워서는 여기에 빠지게 되는데 그리스인으로부터 배워서 소년과 계간(鷄姦)을 하는 것도 그 좋은 예이다. 또 페르시아인은 누구나 많은 정처(正妻)를 거느리고 또 다수의 첩을 사들인다.(87페이지)

☆☆☆ 열린 사고를 가진 자 만이 앞서갈  수 있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데 만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것과 융화시켜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남의 것을 무턱대고 추종하는 자는 발전이 없지만, 융화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자를 우리는 ‘창조자’라고 한다.

소아시아의 그리스 여러 도시

***이오니아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하나가 아니라 네 개의 방언으로 나뉘어 있다. 이오니아의 여러 도시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는 밀레토스이고 이어 미우스, 프리에네가 있는데 이들 도시는 모두 카리아 지방에 있어서 서로 같은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다음에 리디아에 있는 도시는 에페소스, 콜로폰, 레베도스, 이들은 서로 같은 말을 쓴다.(90페이지)

***이오니아의 여러 도시 중에서 밀레토스는 페르시아와 협정을 맺고 있었으므로 위험을 느끼지도 않고 또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겁을 먹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90페이지)

☆☆☆ 철학의 도시 밀레토스는 이러한 평온이 유지되었기에 많은 철학자를 배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바빌론 정복

***키루스는 대륙을 모두 자기 지배하에 두자, 이번에는 아시리아로 향하엿다. 아시라이에는 큰 도시가 수없이 많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가장 굳건한 요새를 자랑하는 도시는 바빌론이다. 거대하기도 하지만, 비할 데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정비된 도시이기도 하다. 우선 물이 가득 차있는 깊고 넓은 해자가 도시 주위에 있고 이어 높은 성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바빌론시내는 둘로 나뉘어 있엇다. 도시 한가운데로 유프라테스강이 흘러 도시를 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강은 아르메니아에서 시작되는 깊고 흐름이 빠른 큰 강으로 ‘홍해’에 흘러들고 있다.

도시는 3층집과 4층집이 빈틈없이 이어져 있고 그것이 곧은 도로로 구획되어 있다. 도로는 어느 것이나 곧지만 옆으로 뻗어 강에 이르는 길도 마찬가지이다. 강변의 담에는 거리마다 작은 문이 있다. 즉 옆길의 수만큼 작은 문이 있는 것이다. 이들 작은 문도 청동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를 지나 강으로 빠져나갈 수가 있다.(109페이지)

이 성벽은 말하자면 갑옷과 같은 것인데, 그 안쪽에 또 하나의 벽이 들러져 있다. 도시의 두 구역에는 각기 그 중앙에 울타리가 쳐져 잇는데 한쪽은 장대하고 견고한 벽을 두른 왕궁이고, 다른 한쪽은 청동으로 문을 만든 제우스벨로스(제우스를 뜻한다)신전이다.

성역중앙에는 튼튼한 탑이 세어져 있다. 탑은 8층에 이르고 있다. 탑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탑 바깥쪽에 탑을 돌아 나선형 통로가 나 있다. 계단을 중간까지 올라가면 층계참이 나오고 거기에 휴식용의자가 놓여있다. 맨 꼭대기 탑에는 커다란 신전이 있고, 이 신전 안에 아름다운 깔개를 장식한 침상 의자가 있고, 그 옆에 황금탁자가 놓여있다. 신상과 같은 것은 여기에 안치해 놓지 않는다. 도 밤에는 여기에는 토착민 여자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자지 않는다. 그 여자는 이 신(아폴론)의 사제를 맡아보는 칼데아인의 말에 의하면 신이 모든 여자 중에서 선출한 사람이라고 한다. 신이 친히 이 신전에 와 그 침상에서 쉰다고 한다. (109페이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도 이와 같은 신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와 심성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바빌론의 신역에는 하이의 신전이 또 하나 있다. 여기에는 제우스벨의 거대한 황금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옆에는 커다란 황금테이블이 있는데 발판이나 의자도 황금으로 만들었다. 이 신전 외에 황금 제단이 있고, 그 박에 또 하나의 큰 제단이 있어 여기에는 성장한 가축이 제물로 바쳐진다. 황금제단에서는 아직 젖을 떼지 않는 어린 짐승 이외에는 바쳐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 대제단에서는 해마다 신의 제례 때 1000달란톤(26톤)의 유향을 피우도록 되어있다. (110페이지)

***바빌론의 여왕 중 한사람인 세미라미스는, 오늘날에도 널려 알려진 ‘공중정원’을 그녀가 만들었다고 전한다.(111페이지)

***니트크리스여왕은 다음과 같은 장난을 꾸며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도시에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은 문 위에 자기 묘를 만들게 한 것이다. 묘는 바로 문 위에 있는데, 이 묘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기게 하였다.

“나 이후의 바빌론 왕으로서 돈에 궁한 사람이 있으면 이 묘를 열고 원하는 대로 돈을 가져라. 그러나 궁하지 않은데, 함부로 열지 말 것, 흉사(凶事)가 있을 것이다.”

이 묘는 다레이오스의 지배가 될 때까지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묘를 열어보니 재보는 없고, 있는 것이란 시체와 다음과 같은 문구뿐이었다.

“네가 한없이 탐욕스럽고 이익을 쫓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아니라면 죽은 자의 관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다.”(113페이지)

☆☆☆니트크리스여왕은 매정하다. 관 뚜껑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고통에 사로잡혔을 것이며 얼마나 많이 괴로워했을지 그 사람의 고뇌를 헤아렸다면 적어도 관속에 금수저 한 벌 정도는 넣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죽은 자의 관을 열 정도로 비열하고 탐욕스럽다고 꾸짖기 전에 말이다. 여왕이라 배고픔의 고통을 가난의 고통을 몰라서 그런 장난을 쳤을 게다. 

바빌론의 국토와 풍습

***바빌론지방은 곡물의 산출 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아는 지역 중에서 최고이다. 무화과나무, 포도, 올리브 등 곡물이외의 과수지배는 여기에서는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곡물의 생산에 가장 알맞은 땅이라고 하는 것은, 그 수확량이 평균 파종량의 200배, 최대풍작 때에는 300배에 이르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가 있다. 기름은 참깨에서 짠 것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 평야 곳곳에는 대추야자가 자라고 있고, 그 열매로는 음식이나 술, 꿀을 만든다.(117페이지)

***그들의 복장을 보면 우선 발까지 닿은 긴 삼베 속옷을 입는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털내의 한 장을 겹쳐 입고 가벼운 윗옷을 그 위에 걸친다. 머리는 길게 길러 머리끈으로 매고 온 몸에 향유를 바른다. 또 각자가 도장과 직접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 지팡이에는 반드시 시과나 장미, 백합, 매 등 기타 여러가지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 나라에서는 모양이 없는 지팡이는 갖지 않는 풍습이 있는 것이다.(118페이지)

***이 나라의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벌꿀에 절여서 매장하는데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식은 이집트와 매우 흡사하다. (매장에 벌꿀을 사용하는 것은 시체를 보다 잘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를 비롯한 각 지방에서 널리 행해졌다. 벌꿀 대신에 밀랍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119페이지

***바빌론인의 풍습 중에서 가장 파렴치한 것은 다음과 같은 풍습이다. 이 나라의 여자는 누구나 평생에 한 번은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앉아서 낯모른 남자와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아프로디테의 신전 안으로 들어가 끈(여신과의 연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일이 끝나면 끈을 풀었다) 머리 둘레에 관(冠)처럼 감고 앉는다. 새로 오는 여자도 있고 떠나는 여자도 있어 그 수는 대단하다. 여자들 사이를 모든 방향으로 통하는 통로가 줄로 구분이 되어있고 여기에 온 남자들은 이 통로를 지나가면서 여자를 물색하는 것이다.

한 번 여기에 앉은 이상 여자는 자기 무릎에 돈을 던져주는 남자와 신전 밖에서 관계를 갖지 않는 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돈을 던진 남자는 “밀리타여신의 이름으로 상대해주기를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아시리아인은 아프로디테를 밀리타라고 (벨의 아내라는 듯이다)부르고 있다.

금액은 얼마라도 좋다. 결코 퇴짜 맞을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이 돈은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거절해서도 안된다. 여자는 돈을 던진 최초의 남자를 따르되 결코 거절하는 일은 없다. 남자와 관계를 맺으면 여자는 여신에 대한 봉사를 다한 것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뒤에는 아무리 천만금을 주더라도 그 여자를 마음대로 할 수 는 없다.

용모가 뛰어난 여자는 곧 돌아갈 수가 있으나 못생긴 여자는 오랫동안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계속 기다려야 한다. 3년이나 4년 동안 남아있는 여자도 몇 사람 있다. 키프로스(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지였다)에도 몇 군데에 이와 비슷한 풍습이 있다. -신성한 매음이었다. (120페이지)

☆☆☆여신을 위한, 여신을 달래기 위한 풍습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왜 이런 풍습을 도입했는지 궁금하다. 신의 이름으로 매음을 장려하는 바빌론의 풍습, 그 이면에는 여성 혹은 남성,  그 어느 쪽을 위한 것이었을까?

마사게타이원정(124페이지)

*** 인간의 운명은 수레바퀴와 같은 것으로 빙빙 돌면서 같은 사람이 언제까지나 행운을 얻는 것을 허용하지 않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마사게타이의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 성적 욕망을 품으면 그 여자가 사는 마차 앞에 화살을 담아 두는 통을 걸어놓고 그 여자와 관계를 갖는 것이다.

마사게타이에서는 살아있을 수 있는 연령의 제한은 특별히 없지만, 매우 높은 연령에 이르면 연고자들이 모여 그 남자를 죽이고 그와 함께 가축도 죽여 고기를 삶아서 다 같이 먹는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가장 행복한 것으로 되어있다. 병사한 사람은 먹지 않고 땅 속에 묻어 죽음을 당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불쌍하게 여긴다.


2권 에우테르페

이집트의 국토

***인간계에 한정해서 그들이 하는 말 중 일치하는 것은, 1년이라는 단위를 발명한 것과 1년을 계절에 따라 열두 부분으로 나눈 것은 이집트인이 최초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별을 관찰하여 발견했다고 말하였다. 나는 달력을 계산하는 방법은 이집트인 쪽이 그리스인보다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리스인은 계절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격년으로 윤달을 1개월 삽입하는데 이집트에서는 30일 한 달을 12개월 동안 계산하고 그 정수 외에 1년에 5일을 더함으로써 계절의 순환이 달력과 일치해서 운행하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달력은 태음력으로 솔론에 의해서 처음으로 정비되었다고 함. 이집트의 달력은 처음부터 태양력을 채용하였음)131페이지

*** 열두 신의 호칭을 정한 것도 이집트인이 처음이고, 그리스인은 이집트인으로부터 그것을 배웠다고 한다. 또 신들의 재단이나 신상이나 신전을 세우는 것도, 돌에 모양(상형문자를 뜻함)을 조각하는 것도 이집트인이 창시한 것이라고 한다. (131페이지)

이집트의 풍습

***사제는 이틀에 한 번 온 몸의 털을 깎는데, 이것은 신에게 봉사하는 몸에 이나 그 밖의 불결한 것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사제는 아마로 만든 옷만 입고 파피루스로 만든 신만 신는다. 그 이외의 옷이나 신발은 착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들은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 각각 두 번식 냉수욕을 한다. 이외에 사제가 지키는 계율을 말하자면 무수히 많다.(148페이지)

***디오니소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의 이름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들어갔다. (157페이지)

*** 이집트에서 가장 성대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르테미스를 위하여 부바스티스라고 하는 도시에 모여서 하는 축제이다.

남녀가 함께 배로 가는데, 어느 거룻배에나 많은 남녀가 탄다. 캐스터네츠를 손에 들고 소리를 내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남자 중에는 배로 가는 동안 피리를 부는 사람도 있다. 나머지 남녀는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춘다. 어딘가의 도시가 보이면 배를 물가에 대고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 몇몇 여자들이 박자를 맞추고 있으면 다른 여자들은 큰 소리로 그 도시의 여자들에게 말을 걸어 그녀들을 놀리고 춤을 추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일어서서 옷을 걷어 올리는 여자도 있다. 강변에 있는 도시를 지날 때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부바스티스에 도착하면 성대하게 희생을 바쳐 축제를 축하한다. 이 축제에서 소비되는 포도주의 양은 1년의 나머지 기간동안에 소비되는 포도주의 양을 웃돈다. (161페이지)

***이집트에서는 이름이 있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의 집 여자들은 모두 머리 또는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유해는 집 안에 남겨둔 채 속살을 드러내고 옷은 띠로 묶고 유방을 노출시켜 자기 가슴을 치면서 대열을 지어 시내를 천천히 걷는다. 죽은 자의 인척들도 모두 그녀들과 동행한다. 한편 남자들고 옷을 벗고 가슴을 치며 슬픔을 나타낸다. 그것이 끝나면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장서로 운반해간다. (170페이지)

***이집트에는 미라 가공을 직업으로 삼고 개업을 하고 있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장인이 있다. 장인들의 유체가 운반되어 오면 그림물감을 가지고 실물과 비슷한 목제(木製) 미라의 견본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가장 정교한 세공, 세공이 조잡하고 값이싼 것이 두 번째, 세 번째는 값이 가장 산 것, 하는 식으로 견본이 제시된다. 미라장인은 어떤 모양으로 미라를 만들어주면 좋은지 의뢰자의 희망을 묻는다.

가장 비싼 미라를 만드는 방법- 먼저 굽은 연장으로 콧구멍에서 뇌수를 꺼내는데, 이때 약품도 주입한다. 그러고 나서 예리한 에티오피아 돌로 옆구리를 따라 절개하여 장기를 모두 꺼내고 꺼낸 장기는 야자유로 깨끗이 씻은 뒤 다시 갈아서 으깬 향료로 깨끗이 한다. 이에 맷돌에 간 순수한 몰약과 육계(肉桂) 그리고 유향 이외의 향료를 복강에 쟁이고 봉합한다. 그러고 나서 이것을 천연소다에 담가서 70일간 놓아둔다. 70일이 지나면 유체를 씻어 고급 아마포를 잘라서 만든 붕대로 전신을 감고 그 위에 이집트인이 보통 아교 대신에 사용하는 고무를 바른다. 이 일이 끝나면 근친이 미라를 받아 사람보양의 나무 상자에 넣고 상자를 담은 뒤 장실(葬室)안의 벽 쪽에 똑바로 세워서 안치한다. (171페이지)

***인간의 영혼은 불멸이며 육체가 죽으면 차례로 태어나는 다른 동물의 체내로 들어가서 머문다는 설을 처음으로 주창한 것도 이집트인이다. 영혼은 육지에서 사는 것, 바다에 사는 것, 그리고 하늘을 나는 것, 이런 식으로 모든 동물의 몸을 한 바퀴 돌고나서 다시 태어나는 인간의 체내로 들어와 3000년으로 영혼의 일순(一巡)이 끝난다고 한다. (193페이지)


***프산메티코스의 통치와 그의 후계자(209페이지)

12명의 왕은 협정을 지켜 공정하게 행동해 왔다. 그렇게 얼마동안의 세월이 지난 날 그들이 헤파이토스 신전에서 희생을 바칠 때의 일이다. 제례 마지막 날에 헌주(獻酒)하기로 되어 있엇는데, 이를 위해 사제장은 왕들이 언제나 헌주에 썼던 황금잔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수를 잘못 세어 12사람이 있는 곳에 11개 밖에 가지고 오지 않았다. 12명의 마지막에 있던

프산메티코스는 자기 잔이 없었기 때문에 청동투구를 벗어서 내밀어 그것으로 헌주를 끝마쳤다. 투구는 다른 여러 왕도 언제나 쓰고 있었고 이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프산메티코스가 투구를 잔 대신에 내민 것은 아무런 뜻도 없었던 것인데 다른 여러 왕들은 마음 속으로 그의 행위에 앞서 그들이 받은 신탁이 생각났다. 그들 중에서 청동 잔으로 헌주를 한 사람이 이집트의 왕이 되리라는 신탁을 기억에 되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상의를 한 결과 프산메티코스는 아무런 뜻이 없이 그렇게 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로부터 권력의 태반을 박탈하고 나서 소택지로 추방했다. 프산메티코스는 억울함에 휩싸여 자기를 쫓아낸 그들에게 보복할 결심을 했다. 그리하여 이집트에서는 가장 확실한 신탁을 내린다고 하는 부토시의 신탁소에 사자를 보냈더니, 청동의 남자들이 바다로부터 나타날 때 복수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탁이 있었다.

☆☆☆모든 일은 우연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오늘 나에게 우연으로 내 곁에 왔지만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우연이 운명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에피소드이다.

프산메티코스는 청동인간이 자기를 구원하러 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얼마 뒤 약탈을 목적으로 바다로 나간 이오니아인과 카리아인의 한 떼가 이집트로 표착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프산메티코스에게로 알리러 간 한 이집트인은 이전에 청동무장을 한 사람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청동인간들이 바다로부터 와서 평야를 우린하고 있다고 보고 한 것이다. 신탁이 실현되었음을 깨달은 프산메티코스는 이오니아인과 카리아인과 친교를 맺고 많은 포상을 약속하며 자기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자, 자기를 따르는 이집트인과 이 원군을 이끌고 왕들을 타도했다.

***아마시스(218페이지)

아프리에스를 타도한 뒤 아마시스가 왕위에 올랐다. 처음에 이집트인은 본디 평민으로서 이름있는 집안의 출신이 아닌 아마시스를 얕잡아보고 그다지 경의를 나타내지 않았다. 아마시스는 성급하게 일을 서둘지 않고 현명한 방법으로 이집트인의 민심을 수중에 넣었다. 아마시스가 소장한 수많은 제보 중에 발을 씻는 데에 사용하는 황금으로 만든 대야가 있었다. 아마시스 자신도 그와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도 언제나 이 대야로 발을 씻었다. 아마시스는 이 대야를 녹인 것으로 신상(神像)을 만들어 도시의 가장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장소에 안치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집트인은 이 신상을 크게 숭상하며 절했던 것이다. 도시사람들의 행동을 안 아마시스는 이집트인을 불러모아 신상은 발을 씻는 대야로 만들었다는 것, 이전에 그들이 그 속에 토하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발을 넣고 씻었던 것을 지금은 매우 숭상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진상을 폭로해 보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자기의 경우도 이 대야와 마찬가지로 이전에는 평민이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왕이므로 자기를 중히 여기고 숭배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문득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의 많은 부분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을 향해서 쫓아가고 있는 것 같다. 크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작고 소박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점점 소외되어가는 느낌이다. 눈에 보이는 그 너머의 세상을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한다. 대중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만이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아마시스는 정무를 집행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아침동안에 광장에 사람들이 나올 무렵까지는 그에게로 올라온 정무를 열심히 처리하지만 그 이후는 술을 마시고 함께 자리한 상대를 놀리면서 하찮은 일로 시간을 보냈다. 왕과 친한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에 대해 마음아파하자, 아마시스는 이렇게 말했다.

“활을 가진 자는 이것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 당기지만, 사용하고 나면 늦추어 둔다. 활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당긴 상태로 두면 부러져서 막상 필요할 때 쓸모가 없게 된다. 인간이 취할 자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근엄해야 한다는 데에만 마음을 쓰고 때로는 편안한 마음으로 논다는 기분이 없다면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어지러워지거나 멍청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 우리 마음을 항상 긴장 속에 두면 활처럼 부러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긴장하되 평온 속에 있는, 평온 속에서 긴장을 잃어버리지 않는 그런 마음을 쓸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것이 마음의 여유인가.

제 3권 탈레이아

사모스와 스파르타의 항쟁

***스파르타는 사모스를 공략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 아이아케스의 아들로서 혁명을 일으켜 사모스의 정권을 잡은 폴리크라테스를 공격한 것이다. 폴리크라테스는 이집트왕 아마시스와 우호관계를 맺고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그리하여 단시일 안에 폴리크라테스의 위협은 급속히 증대하여 이오니아를 비롯한 그 밖의 그리스에도 널리 그 이름이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군대를 내보내는 곳은 어디서든지 그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만한 일은 밀레토스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 원조하러 온 레스보스군과 해전을 벌여 격파한 일로 사모스의 성벽을 둘러싼 모든 해자는 이 사움에서 포로가 된 레스보스인들이 포로로 있는 동안에 판 것이다.

이집트의 아마시스왕은 폴리크라테스의 행운이 여전히 커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모든 일에 행운의 혜택을 받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공하는 경우가 있으면 실패하는 일도 하는 것처럼 운과 불운을 교대로 맛보면서 평생을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매사에 행운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고 끝난 예를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행운을 만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하실 것을 권하는 바입니다.

그대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하여 잃으면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하셔서 그것을 결코 인간의 눈에 띄는 일이 벗도록 버리십시오.”

 이 편지를 읽은 폴리크라테스는 제물 중에서 잃으면 가장 서운한 것이 무엇일가 찾아보았다. 그가 평소에 손가락에 끼고 있던 도장이 달린 반지였다. 이 반지를 버릴 결심으로 큰 바다로 나아가서 던져버렸다. 그리고 나서 배를 되돌려 집으로 돌아가 불행을 절실히 맛보고 있었다.

5일 후 한 어부가 대어를 잡아 이것을 폴리크라테스에게 바쳤다. 요리사들이 생선의 배를 가르자 그 속에 예의 도장이 달린 반지가 들어있었다. 요리사들은 크게 기뻐하며 반지를 왕에게 드리고 그것을 발견한 경위를 이야기했다.(247페이지)

***아마시스는 사람의 몸에 일어나기로 정해진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나게 못하며 또 폴리크라테스가 모든 일에 행운을 만나 버린 것까지 되찾을 정도라면 행복하게 그 끝을 맺을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사모스에 사자를 보내어 우호관계를 파기한다는 뜻을 통고했다. (250페이지)

***폴리크라테스는 “친구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 것보다도 빼앗았다가 그것을 돌려주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248페이지)

캄비세스의 죽음과 다레이오스의 등극

***“책임도 지지 않고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독재제가 어떻게 질서있는 나라의 세계가 될 수 있단 말이오?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조차도 한 번 군주의 자리에 앉으면 이전의 마음은 잊어버리고 마오. 현재의 영화로 교만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인데, 여기에 도 질투심이라는 것이 있소. 이 두 가지 약점 때문에 독재라는 갖은 악덕을 멈에 지니는 것이오. 다시 말해 그에게 갖가지 비행이 생기는 것은 하나는 영화에 싫증이 나서 교만한 마음을 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질투심이 저지른 결과요. 그는 적당히 칭찬하면 부족하다 화를 내고, 귀히 받들면 아첨꾼이라 해서 기분이 상했다 하니 말이오.”(272페이지)

***주권을 민중에게 맡기라고 하는 것은 최선의 견해라고 말할 수 없소. 아무런 쓸모가 없는 대중만큼 우열(愚劣)하고 교활한 자는 없소. 독재자의 학정을 벗어나려고 광폭한 민중의 손에 빠지는 일 따위는 절대로 참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니오. 한쪽은 일을 행할 때 행하는 까닭을 스스로 알지만, 다른 쪽은 그와 같은 자각조차도 없소. 무엇이 정당한가를 배운 일도 없고 스스로 깨닫는 능력이 없는 자가 어떻게 그와 같은 자각을 할 수 있겠소? 마치 세차게 흐르는 강물과도 같아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턱대고 나라 일을 밀고 갈 뿐이오.(273페이지)

***왕위 계승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정하였다. 모두가 말을 성 밖으로 멀리 타고 나가 일출과 함께 최초로 운 말의 부인이 왕위에 오른다는 것이었다.

디레이오스에게는 오이바레스라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마부가 있었다. 마부는 디레이오스의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는 디레이오스의 말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암말을 한 마리 성 밖으로 끌어내서 말뚝에 매고, 이어 디레이오스의 말을 그곳으로 끌고 가  이 말근처를 여러차례 돌리고 나서 교미하도록 풀어주었다.

날이 샐 무렵 여섯 사람은 약속대로 말을 타고 나타났다. 모두가 성 밖으로 나가서 전날 밤 암말이 매어졌던 장소에 가까이 이르자, 디레이오스의 말은 그곳으로 다가가서 울었다. 그리고 말의 울음과 동시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린 것이다. 마찌 짜기라도 하듯이 이렇게 연이어 디레이오스에게 일어난 이 천변은 그의 왕위를 부동의 것으로 만들었다.(275페이지)


디레이오스가 한 일은 돌로 만든 부조상을 세운 것이었다. 그 말을 탄 인물상 조각에 이렇게 비명을 새겼다.

“히스타스페스의 아들 다레이오스, 말과 마부의 공적으로 페르시아의 왕위를 얻었노라.” (277페이지)

☆☆☆다레이오스는 매우 현명한 마부를 두었기에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사람을 잘 부리고 잘 쓰는 것도 그 사람만의 탁월한 능력이다. 성공한 이들은 모두 이런 사람을 잘 보는 탁월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세종대왕, 영조, 정조 등 현명한 군주들은 사람을 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도 그들의 어마어마한 독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남보다 탁월하고자 원하는가, 그러면 ‘목숨 걸고 책을 읽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인타프레네스와 오로이테스(294페이지)

플라크라테스는 점술가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간정하게 만류했음에도 직접 현지에 갈 준비를 했는데, 그의 달이 이러한 꿈을 꾸었다. 아버지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제우스가 몸을 씻기고 태양신이 기름을 발라주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딸은 갖은 수단을 다하여 폴리크라테스가 오로이테스에게로 가는 것을 단념하게 하려고 했으나 마침내 아버지는 50노선에 올랐다.

마그네시아에 도착한 폴리크라테스는 비명횡사했는데 그것은 그의 인물이나 고매한 뜻에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최후였다. 몸이 높이 매달린 폴리크라테스는 딸이 꾼 꿈을 그대로 실현된 꼴이 되었다. 비를 맞으면 제우스가 씻기는 것이 되고 햇볕으로 몸에서 수분이 발산되는 것은 곧 태양신이 기름을 발라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294페이지)


제 4권 멜포메네

스키타이의 고대사

***스키타이의 말에 따르면 자신들은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새로운 민족이고 그 처음은 아래와 같았다고 한다. 사람이 살지 않던 그들의 국가에 맨 처음 타르기타오스란 이름의 사내가 태어났다. 이 타르기타오스의 부모는 아무튼 제우스와 보리스테네스강의 딸이었다고 한다. 이 타르기타오스에게서 리폭사이스, 아르폭사이스, 그리고 막내아들인 콜락사이스 세 아들이 태어났다. 이 세 사람이 지배하던 시대에 하늘에서 황금으로 된 기물-쟁기의 멍에, 전쟁용 도끼, 술잔-이 스키타이의 땅에 떨어졌다. 맏형이 이를 발견해 그것을 집으려고 다가가자 그 황금이 불타기 시작햇다. 이렇게 해서 황금의 기물은 불타서 두 형을 접근하지 못하게 했는데, 세 번째에 막내가 가까이 가자 불은 거졌다. 막내가 그것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오자, 두 형은 막내에게 왕권을 모두 넘기는데 동의하였다.

♣ 쟁기의 멍에, 전쟁용 도끼, 술잔은 이란계 사회의 세 계급을 상징한다. 술잔은 제사계급, 도기는 무사계급, 쟁기와 멍에는 농민계급을 상징한다. (315페이지)

***초대의 왕 타르기타오스로부터 다레이오스의 스키타이 원정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모두 합해 1000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 황금기물은 역대왕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해바다 성대하게 산 제물을 바쳐 신처럼 받들어 모시고 있다. 제례 때 야외에서 이 황금기물을 지키는 자가 잠들었을 경우 그자가 1년 이내에 죽는다는 전설이 스키타이에게 전해 내려오고 이싸. 그 때문에 이 역할을 맡은 자에게는 그가 말을 타고 하루종일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의 토지가 부여되었다고 한다.(315페이지)


스키타이의 풍습

***스키타이인이 믿는 신은 다음과 같다. 가장 숭배하는 것이 헤스티아(화덕의 신)이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게에(땅의 신)인데 그들은 게에를 제우스의 아내로 여긴다. 그리고 아폴론, 우라니아 아프로디테(천상의 아프로디테), 헤라클레스, 아레스가 있다. 위의 여러 신은 스키타이 모든 민족이 숭배하며 이른바 왕족 스키타이인은 포세이돈에게도 희생물을 바친다. 신상이나 제단, 신전은 만들지 않는 것이 관습인데 알레스만은 별도이다. (340페이지)

***한 해에 한 번 각 구의 장관은 그 관할구에서 물을 탄 술 항아리를 준비한다. 이 술은 스키타이인 가운데 전장에서 적을 무찌른 공이 있는 자만이 마신다. 그와 같은 무공이 없는 자는 이 술을 마시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치욕을 참으면서 떨어져 앉는다. 스키타이인에게는 이것이 최대의 오욕인 것이다. 도 특히 많은 적을 무찌른 자는 한 번에 두 잔의 술을 받고 이것을 단숨에 들이켠다. (340페이지)

***스키타이에는 많은 점술가가 있는데, 그들은 많은 버들가지를 사용해 다음과 같이 점을 본다. 먼저 커다란 나뭇단을 가져오면 땅에 풀어놓고 하나하나 늘어놓으면서 주문을 외운다. 주문을 계속 외우면서 다시 나뭇가지를 모으고 또 다시 하나하나 늘어놓는다. 이 복점술은 스키타이 고래의 전통적인 것인데 앞에서 말한 ‘남자이면서 여자같고, 여자이면서 남자같은’ 에나레에스(예언을 직업으로 삼는 특수한 씨족)들은 아프로디테로부터 전수된 것으로 자칭하는 방법으로 점을 본다. 보리수의 껍질을 셋으로 잘라 이것을 손가락에 감거나 풀거나 하면서 예언을 하는 것이다.(343페이지)

***스키타이인은 누군가와 서약을 교환할 때에는 아래와 같이 한다. 흙으로 빚은 큰 잔에 술을 붓고 여기에 서약을 교환하는 당사자의 피를 섞는다. 피는 송곳으로 찌르든가 작은 칼로 째거나 해서 몸에 작은 상처를 내 흘린다. 그런 다음 단검과 화살과 전투용 도끼, 창을 잔 속에 담근다. 그렇게 해둔다음 긴 기원의 구절을 외우고 난 뒤, 서약을 교환하는 자분만 아니라 수행한 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들이 잔에 든 것을 마신다. (344페이지)

**왕릉은 보리스테네스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지점에 해당하는 게로이인의 국토 내에 있다. 스키타이의 왕이 죽으면 이 토지에 사각형의 큰구덩이를 판다. 그러고는 유해를 운구할 채비를 갖추는데, 유해는 온 몸에 납을 바르고 복강을 째 내장을 끄집어낸 다음 여기에 으깬 금방동사니와 향료, 퍼슬리의 씨앗, 아니스 등을 가득 채우고 다시 꿰맨다. 그리고 유해를 수레로 다른 민족의 나라로 운구한다. 운구된 유해를 인수한 나라에서는 왕족 스키타이인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한다. 즉 귀의 일부를 잘라내고 두 발을 둥글게 깎는다. 그리고 두 팔에 칼자국을 낸 다음 이마와 코를 잡아 뜯고 왼손을 화살로 꿰뚫는 것이다. 유해를 운구해 속국을 모두 한 바퀴 돌면 속령 가운데 가장 말단에 있는 왕릉의 소재지인 게로이인의 나라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유해를 묘에 안치한 다음 유해 양측에 창을 세우고 위에 나무를 건넨다음 그 위에 멍석을 덮는다. 묘 안의 넓게 비어있는 부분에는 죽은 왕의 후중 중 한 사람을 목 졸라 죽여서 장사를 지내고 여기에 진배(進拜)하는자, 요리사, 마부, 시종, 안내역, 말과 더불어 모든 물품 가운데서 고른 일부와 황금잔도 함께 묻는다. 은제나 청동제 술잔은 사용하지 않는다. 외와 같은 의식을 마친 다음 모두가 거대한 무덤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 해가 지나면 또 아래와 같은 의식을 행한다. 죽은 왕을 모셨던 나머지 시종들 가운데 왕을 가장 가까이 모셨던 자-이들은 모두 왕이 직접 시종으로 봉사하도록 명한 순수한 스키타이인이다. 스키타이에는 돈을 주고 산 노예는 없다. -50명과 가장 우수한 말 50필을 교살하고 내장을 끄집어내 깨끗이 씻어낸 다음 왕겨를 채워 꿰맨다..... 교살된 50명의 청년 시종의 유해를 각각 말에 태우는데, 그들 하나하나는 미리 등뼈에 따라서 목까지 곧은 봉을 관통시켜 둔다. 이와 같이 말을 탄 사람은 묘 둘레에 세워둔 다음 모두가 그곳을 떠난다. (344페이지)

☆☆☆ 북방민족의 순장제도가 이렇게 끔찍하게 치루어졌음을 이제야 알았다.

다레이오스의 원정

***다레이오스는 트라키아를 지나 케르소네소스의 세스토스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자신들은 배를 타고 아시아로 건너갔는데 유럽에는 페르시아인 메가바조스를 총사령관으로 남겨두었다. 이 메가바조스는 일찍이 다레이오스가 페르시아인이 줄지어 있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해 크게 그 면목을 세워준 적이 있는 인물이다.

다레이오스가 석류의 열매를 먹으려고 첫 번째 열매를 쪼갰을 때, 동생인 아르타바노스가 석류열매 속에 있는 씨앗의 수만큼 있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다레이오스는 “그리스를 정복하는 것보다도 그 씨앗의 수만큼 메가조바스가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374페이지)

***다레이오스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스키타이의 제왕은 이 사정을 알자 사자를 보내 다레이오스에게 선물로 참새, 쥐, 개구리, 그리고 다섯 개의 화살을 전했다. 페르시아인은 이와 같은 선물을 가지고 온 자에게 선물을 보낸 저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페르시아인에게 지혜가 있다면 선물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고스를 타도한 7인의 한 사람인 고브리아스의 견해는 이러했다.

“페르시아인이여, 그대들은 새가 되어 하늘에 날아오르거나, 쥐가 되어 땅속에 파고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또 개구리가 되어 호수에 뛰어들지 않는 한 반드시 이 화살에 맞아 무사히 귀국하지 못할 것이다.”

다레이오스는 고브리아스의 말을 듣고 퇴각의 뜻을 굳혔다.

“제 생각에는 늘 우리가 하던 것처럼 해가 지면 곧 바로 불을 피우고 병사 중에서 가장 약한 자만을 남겨둔 채 스키타이인이 다리를 파괴하기 위해 이스트로강으로 향하기 전에 또 이오니아인들이 무언가 우리를 파멸로 이끌 어떤 결단을 내리기 전에 철수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370페이지)


제 5권 테릅시코레

트라키아 및 마케도니아 공략

*** 트라키아인은 세계에서 인도인에 이어 가장 큰 민족이다. 생각하건대 만일 이 민족을 한 사람이 통치하거나 모든 민족이 결속하거나 한다면 이에 맞설 적은 없고 온 세계의 민족 가운데서 최강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우소이족의 풍습은 다른 트라키아인과 대체로 같은데, 아이가 태어났을 때와 사람이 죽었을 때에 아래와 같은 행동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은 그 아이 주위에 둘러앉아 인간에게 일어나는 온갖 불행을 모두 헤아리고 이 아이도 태어난 이상 이와 같은 수많은 고난을 격어야 한다면서 탄식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 수많은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더없는 행복의 경지로 들어간 것이라고 해서 기쁨 속에 땅에 묻는 것이다. (405페이지)

***크레스토나이오이족 북쪽에 사는 부족의 풍속은 아래와 같다. 여기에서는 사내가 모두 많은 아내를 거느린다. 그런데 남편이 죽으면 어느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아내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또 죽은 사내의 친구들도 이 일에 끼어든다. 그리고 거기에서 뽑히는 영예를 얻은 여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부족민으로부터 찬양을 받고,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족의 손에 의해 남편의 묘 위에서 인후(咽喉)가 째여져 남편과 함께 매장된다. 한편 남은 아내들은 자신들의 불운을 탄식한다.-그녀들에게 이처럼 치욕적인 일은 없는 것이다. (405페이지)


아테네와 아이기나

***아테네는 보이오티아군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보이오티아군을 습격해 많은 병력을 살해했으며, 700명을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같은 날 아테네군은 해협을 건너 에우보이아에 침입, 칼키스도 공격해 이를 격파하고 여기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이 싸움에서 사로잡은 자에게는 족쇄를 채워서 감금했다. 나중에 돈을 받고 포로들을 석방했는데, 그들에게 채웠던 족쇄는 아크로폴리스에 걸어두었다.  석방금의 10분의 1로 청동제 사두마 전차를 아테네에 봉납했다. 이 전차는 아크로폴리스의 성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놓여 잇는데, 여기에는 아래와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아테네의 아들들이 싸움에서 보이오티아의 칼키스 족을 토벌해 그들을 족쇄에 채우고      옥에 가두어 그 오만함을 응징하고 그 전리품의 10분의 1로 전차를 만들어 팔라스님에      게 봉납한다.’

이렇게 해서 아테네는 강대해졌으며, 자유평등이 단순히 한 가지 점뿐만 아니라 모든 점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아테네가 독재하에 있을 때에는 주변의 어느 국가도 전력면에서 능가할 수가 없었는데 독재자로부터 해방되자 단연 타국을 제압해 최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압제 하에 있을 때는 독재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해 일부러 비겁한 행동을 했으나 자유롭게 된 뒤로는 저마다 자신을 위해 의욕을 불태운 것이 명확해 진 것이다. (440페이지)

☆☆☆아테네의 자유와 평등도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린 가운데 얻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차이점을 콕 집어서 설명해놓았다. ‘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기 싫어하는 그 마음을 잘 표현해 놓았다.


제 6권 에라토

히스티아이오스의 활약

***페르시아군은 해전에서 이오니아군을 격파하자 바다와 육지에서 밀레토스를 포위한 다음 성벽을 파 무너뜨리고 또 온갖 공격용 무기를 구사해 아리스타고라스의 반란 이래 6년 만에 결국 밀레토스를 완전히 공략했다. 페르시아군은 모든 시민을 노옐 삼았으며 이 수난은 공교롭게도 일찍이 밀레토스에 내려졌던 신탁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제야말로 밀레토스여, 너희 수많은 악행을 꾸민 자들아

너희는 많은 자들의 먹이가 되고 좋은 상품이 되며

또한 너희 아내들은 수많은 장발족의 발을 씻게 되리라.

그리고 디디마에 있는 내 신전은 이국인에게 맡겨질 것이다.


바로 이 신탁이 밀레토스인에게 닥쳐온 것이다. 대부분의 사내는 장발을 기르고 있는 페르시아인에 의해서 살해되고, 여자들은 노예 신세가 되고 디디마의 성역은 신전이나 신탁소나 약탈과 방화의 화를 당했다. 이렇게 해서 밀레토스의 시민은 밀레토스의 도시에서 말살되고 말았다........아테네인은 밀레토스의 함락을 몹시 슬퍼하고 유감의 뜻을 여러 기회에 표명했다. (471페이지)


스파르타의 정정(政情)

***스파르타의 왕에게 부여되고 있는 특권은 아래와 같다. 먼저 두 성직이 있는제, 제우스 라케다이몬과 제우스 우리니오스(천상의 제우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왕이 원하는 대로 어느 나라에 대해서나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스파르타시민 누구도 이를 막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만일 이 금기를 깨면 부정한 자로 저주를 받아 국외로 추방된다. 또 출전할 때 왕은 군대의 선두에 서고 전장에서 철수 할 때에는 최후까지 남아야 한다. 출전 중에는 100명의 선발된 병사가 왕의 호위를 맡는다. 출전에 앞서 행하여지는 희생식에서는 왕이 원하는 만큼의 짐승을 도살해도 좋고 도살된 모든 짐승의 가죽과 등살은 왕이 받는다.

평상시에는 아래와 같은 특권이 부여된다. 국비에 의한 희생식이 행해질 때 왕이 첫 번째로 연회석에 자리를 잡고 향응도 왕부터 시작하며 두 왕에게는 어느 음식이나 다른 회식자의 두 배의 양이 제공된다. 왕은 헌주를 할 때에도 최초로 잔을 받을 권리가 있고, 또 희생 짐승의 가죽이 주어진다. 새 달이 시작되는 첫째 날과 매월 7일에는 아폴론신전에 제를 올리기 위해 두 왕에게는 저마다 성숙한 희생 짐승 한 마리와 밀가루 그리고 리코니아 되로 포도주 4분의 1이 지급된다. 또 온갖 종류의 경기때 왕은 맨 앞줄의 특별석에서 관람할 수가 있다. 그리고 시민 가운데 자유롭게 외인접대관(국내에서 외국인을 접대하는 직책)을 임용할 수가 있고, 각자 두 사람씩 ‘피티오이’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피티오이’란 델포이로 계시를 받기 위해 가는 관리로 이 관리직에 있는 자에게는 왕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신탁은 왕이 보관하는데 피티오이도 이에 관여하게 된다.

스파르타에서 왕이 서거했을 때 행하는 풍습은 아시아에 사는 이국민의 그것과 같다. 스파르타의 왕이 서거하면 순수한 스파르타 시민 외에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전역에서 일정 수의 거주민(정복된 원주민)을 강제적으로 장레식에 참가시킨다. 그들과 국가노예, 스파르타 시민 등, 수천에 이르는 조문객이 모이면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 이마를 부딪고 통곡을 한다. 그때 하는 말은 정해져 있는데, “이번에 서거한 왕이 역대 왕 가운데서 가장 훌륭했다”는 것이다. 왕이 전사했을 경우에는 왕을 닮은 상을 만들어 이를 훌륭하게 만든 관에 눕히고 장례를 치른다. 장례가 끝나면 아고라의 기능은 정지되고 관리선거를 위한 화합도 개최되지 않으면 이 기간동안 모든 국민은 상복을 입는다.

왕이 사망해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면 신왕은 즉위와 함께 스파르타 시민 가운데 몇 사람이건 그가 왕 또는 국고에 지고 있는 부채를 면제한다.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에서도 새롭게 즉위한 왕은 모든 도시에 대해서 체납하고 있는 공세를 면제하는 것이다.(487~489페이지)

☆☆☆21세기의 눈으로 보니 스파르타왕이라고 해서 대단한 권력을 누렸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왕의 권력 중 “출전할 때 왕은 군대의 선두에 서고 전장에서 철수 할 때에는 최후까지 남아야 한다”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철수할 때에는 가장 마지막에 철수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왜 왕의 권력이 되는 것일까?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아리스톤은 두 아내를 맞아들엿는데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아이가 없는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 번째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그때의 사정은 다음과 같다.

아리스톤에게는 시민 가운데 누구보다도 각별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아내는 스파르타에서는 비길데 없이 빼어난 미인이었다. 그런데 어려서는 아주 못났으나 나중에는 최고의 미인이 된 사연이 있는 여인이었다. 이 여인이 아직 얼릴 적에 부유한 집안의 아이로 태어났으나 못생겼고 게다가 부모까지도 딸의 용모에 걱정을 하는 등 이런저런 사정을 알던 그녀의 유모가 아래와 같은 일을 생각해냈다.

유모는 매일 아이를 데리고 헬레네신전에 참배를 한 것이다. 이 신전은 테라프네 란 곳에 있었고 포이보스(아폴론)신전 위쪽에 있다. 유모는 이 신전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 신상 앞에 세우고 부디 이 아이의 못생긴 용모를 거두어달라고 여신에게 기원했다. 어느 날 신전에서 돌아오는데 유모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여인은 유모에게 팔에 안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유모는 아이를 안고 있다고 대답했다. 여인은 아이를 보여달라고 말했는데, 유모는 거절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말라는 아이 부모의 엄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디 보여달라는 여인의 보려는 열성에 져서 유모는 결국 아이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인은 아이 이마에 손을 얹고 이 아이는 머지않아 스파르타에서 둘도 없는 미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날부터 아이의 용모가 몰라보게 확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윽고 아이는 적령기에 이르자 곧 알케이토스의 아들 아게토스의 아내가 되었다. (490페이지)

☆☆☆신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일을 할 때 한 번 결정을 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될까 안될까’ 의심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보면 하늘도 감동하고, 우주도 감동을 하여 무한한 에너지를 나에게 모아주는 것이다. 기도도 그렇다고 한다. 난 기도를 믿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란 우주의 마음인데, 간절히 기도하면 우주의 에너지가 나에게로 몰려와 나의 간절함을 이루게 해 준다”고 했다. 이 구절을 읽고 나니 내 잣대로 ‘된다 안된다’고 결론내지 말고 무조건 뛰어들어서 열심히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다.

***스파르타 에피키데스의 아들 글라우코스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정의심에서는 스파르타에 사는 그 어느 누구도 그에게 미치지 못했다. 어느 날 밀레토스의 사내가 스파르타로 와서 글라우스를 만났다.

“저는 밀레토스인인데 당신의 정의로운 덕에 의지해 부탁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리스 본토는 말할 것도 없고 이오니아에서 조차 당신은 정의로운 분으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이오니아는 옛날부터 위험한 곳이나 펠로폰네소스는 안정되어 있으며 또 재산이란 결코 한 사람의 수중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여 저의 모든 재산의 반을 화폐로 바꾸어 당신께 맡기는 것이 좋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신에게 맡기면 돈은 안전하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부디 그 돈을 맡아주시고 이 증표의 반쪽을 지니고 계셨다가 여기에 맞는 나머지 반쪽을 가지고 와서 반환을 요구하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 돈을 되돌려 주십시오.”

글라우스는 그 돈을 사내가 말한 조건으로 떠맡게 되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니고 돈을 맡긴 사내의 아들이 되돌려 달라고 찾아왔다. 그런데 글라우스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거부했다.

“만일 확실하게 맡긴 것이라면 정직하게 돌려 줄 것이고 또 만일 내가 돈을 맡은 사실이 없다면 그리스법에 따라 그대들과 대결하겠소. 그리고 이 일은 앞으로 3개월 이내에 어떻게든 결말을 짓기로 하겠소.”

밀레토스의 사내들은 사기를 당한 것으로 보고 불운을 탓하면서 떠났는데, 한 편 글라우코스는 계시를 받기 위해 델포이로 향했다. 맹세를 깨고 돈을 빼앗아도 좋은지 물었는데 델포이의 무녀는 그를 꾸짖었다.


에피키데스의 아들 글라우코스여, 그와 같은 맹세로

다툼에 이겨 돈을 빼앗으면 당장은 좋으리라.

진실한 맹세를 하는 자도 면치 못하는 죽음, 맹세하고 싶으면 하라.

하지만 맹세의 신에게는 팔다리도 없는 아드님이 계셔

그 아드님은 질풍처럼 죄 지은 자를 뒤쫓아

그 일족, 그 가문을 완전히 없애기까지는 멈추지 않으리니

진실한 맹세를 하는 자는 그 일족의 운이

언젠가는 트일 날이 있음을 알라.


이 말을 들은 글라우코스는 그와 같은 일을 물은 죄의 용서를 빌었는데 무녀는 신을 시험하는 것과 죄를 짓는 것은 같다고 대답했다. 글라우코스는 밀레토스에서 자기를 찾아온 자들을 불러오게 해 돈을 돌려주었다. 오늘날 글라우코스의 자손은 한 사람도 없고 또 그의 저택으로 인정되는 집도 하나도 남아있지 않소. 글라우코스 일족은 스파르타에서 멸족이 되고 만 것이오. (503~504페이지)


마라톤전투

마라톤에 포진한 아테네군의 진형에는 아래와 같은 특이점이 있었다. 아테네군은 전선의 너비를 페르시아군과 똑같이 펼쳤는데, 그 중앙부는 불과 서넉 줄만을 배치해 아테네군의 가장 큰 약점이 여기에 있었다. 다만 양 날개는 충분한 병력을 투입해 강력했다.

  진형배치도 끝나고 희생의 괘도 길조를 보였기 때문에 아테네군은 진격의 신호와 함께 구보로 페르시아군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두 군의 간격은 8스타디온을 밑돌지 않았다. 페르시아군은 아테네군이 구보로 육박해오는 것을 보고 맞아 사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수도 적은데다가 기병도 궁병(弓兵)도 없이 구보로 공격해 오는 아테네 병사들을 보고 욕설을 퍼부었다.

“미쳤군, 완전히 미쳤어.”

그러나 한 덩어리가 되어 페르시아 진내로 돌입한 뒤의 아테네군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활약상을 보엿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한 구보로 적에게 공격을 시도한 것은 아테네인이 처음이고 또 페르시아풍의 옷차림이나 그 옷차림을 한 사람을 보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던 것도 아테네인이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인이란 말만 들어도 몸서리 치게 두려워했던 것이다.

마라톤의 사움은 장시간에 걸쳐서 계속되었다. 전선의 중앙부에는 이 방면에 페르시아병사와 사카이인을 배치한 페르시아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들이 적을 격파하면서 내륙으로 추격하는 한편 양 날개에서는 아테네군과 플라타이아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승리한 아테네 프라타이 두 군은 패주하는 적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를 합쳐서 중앙을 돌파한 적군을 돌격해 결국 승리는 아테네군에게 돌아갔다. 마라톤전투에서 전사자의 수는 페르시아쪽이 6400명, 아테네는 192명이었다. (516~ 517페이지)

☆☆☆허술한 진형으로 전투에서 이겼다는 것에 주목한다. 전투는 무기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전투에 임하는 군인의 정신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테네인들의 준비되지 않은 듯한 자세에 페르시아인들은 이미 승리를 장담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내고 전투에 패배한 것이라 생각한다.


제 7권 폴림니아

크세르크세스의 원정준비

***충분히 고려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무엇보다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계획을 잘 세운 자는 설사 일이 생각대로 잘 진행되지 않고 불운 탓으로 그 계호기이 좌절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기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섣부른 계획만으로 실행한 자는 일이 운좋게 성사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주운 것이나 같기 때문에 준비가 충실치 못했음을 부끄러워 할 것이다.(539페이지)

***전하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동물 중에서 신의 번개에 맞아 죽는 것은 오직 눈에 띄게 큰 것들 뿐입니다. 신께서는 그렇게 해서 그들이 지나치게 우쭐거리지 않도록 하십니다. (작은 동물은 신께 불손한 행위를 조금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집이나 나무들도 번개를 맞는 것은 언제나 가장 큰 것들뿐으로 뛰어난 것을 깎아내리는 것이 신의 듯이기 때문입니다. 신께서는 그분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교만한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하십니다.(539페이지)

☆☆☆ 신은 교만한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조금 더 가졌다고, 조금 더 누린다고 해서 우쭐대지 마라. 신은 기억했다가 언젠가는 박탈해 버린다. 신이란 곧 우주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성급히 일을 처리하면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로 우리는 커다란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참고 견디는데 복이 있습니다. 그러한 복덕은 곧 나타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깨닫게 됩니다.(539페이지)

☆☆☆ 인내심은 우리를 성공의 길로 이끄는 중요한 요소임을 새삼 알게 됩니다.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유익한 조언을 하는 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 가치는 똑같다고 봅니다. 전하께서는 이 두 가지 덕성을 모두 갖추고 계신데도 나쁜 자들이 전하 곁에 있기 때문에 그 덕성이 가리워졌던 것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세상에서 말하는 데로 본디 바다는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쓸모 있지만 불어오는 질풍이 그러한 바다의 본성을 감추는 것과 같습니다.(543페이지)

***다리를 놓도록 명령받은 자들은 아비도스를 기점으로 이 곶을 향해 다리 두 개를 설치하였는데 그 하나는 페니키아인이 백색 아마제 밧줄을 사용하여 설치하였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인이 파피루스제 밧줄을 사용하여 설치하였다. 아비도스에서 해안가지의 거리는 7스타디온이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 다리가 개통되지마자 폭풍이 불어와 막 완성된 다리가 모두 파괴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크세르크세스는 헬레스폰토스에게 크게 노하여 가신들에게 바다에 300대의 채찍형을 가하고 또한 족쇄 한쌍을 바다 속으로 던져넣으라고 명했다.

 “이 짜고 쓴 물 놈아, 너의 주인님께서 네게 이런 벌을 내리셨다. 너의 주인님께서는 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으셨는데, 네놈 쪽에서 먼저 주인님께 활을 당겼기 때문이다. 크세르크세스왕께서는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너를 건너가실 것이다. 그리고 물론 네놈에게 공물을 바치는 자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크세르크세스는 헬레스폰토스에 대해 이러한 벌을 가하라고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헬레스폰토스 다리 공사 책임자의 목을 자르게 했다. (551페이지)

☆☆☆중국의 진시황과 너무나 흡사한 왕이다. 진시왕도 강을 건너야 하는데 방해를 받자 강주변의 나무들을 몽땅 베어버렸다. 저 너른 바다에게도 이렇게 보복을 하는데 사람에게 가하는 패악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헬레스폰토스 도착과 바다를 건너다

“전하! 방금 전에는 자신의 행운을 스스로 축복하시는 듯하더니 지금은 눈물을 흘리시다니요.”

그러자 크세르크세스는 이렇게 말햇다.

“저렇게 사람이 많은 데도 누구 한 사람 100살까지 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퍼지는 구려. 사람의 목숨이란 얼마나 덧없이 짧은 것이오.!”

아르타바노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부딪히게 되는 것 중에는 그보다 훨씬 더 슬픈 일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이렇게 짧은 인생이지만 삶보다는 죽음을 원하는 일이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에 걸쳐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런 일을 겪지 않을 만큼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행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자에게는 이 짧은 인생마저 너무 긴 듯 느껴질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이 괴로운 나머지 죽음이 인간이 가장 원하는 도피처가 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에게 인생의 감미로움을 맛보게 해주신 신의 마음속에 실은 악의가 숨겨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557페이지)

☆☆☆ 삶보다는 죽음을 원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는 그의 솔직한 말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행복을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고, 자신에게도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무덤덤하게 물맛같이 사는 것도 사실은 힘들다. 아무 일없음에서 인생의 참맛을 느껴보는 것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 어느 때보다도 행복이라는 말이 넘치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지 않은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르타바노스여, 그대가 한 말은 하나같이 다 옳소. 하지만 그렇게 무엇이든 두려워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모두 다 고려하지 마시오. 어떤 사항에 대해 온갖 가능성을 일일이 따진다면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오. 오히려 만사를 대담하게 결행하고 염려되는 위험을 반쯤은 감수하는 편이 사전에 위험을 피하기 위해 행동을 회피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오.

 어느 쪽 주장이 옳은가 그 가능성은 반반이오.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확실한 것을 알 수 있겠소? 나는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오. 그러므로 성공은 기거이 결행하는 자에게 주어지게 마련이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뭇거리며 몸을 사리는 자에게는 다가오지 않소.

우리 페르시아의 국력이 어떻게 신장되어 왔는지 생각해 보시오. 잘 알다시피 만일 선대의 제왕들께서 그대와 똑같은 생각을 하셨다면 우리 국력은 이 정도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나 선왕께서는 과감히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페르시아의 세력을 여기까지 번영시킬 수 있으셨소. 위대한 업적은 위대한 모험으로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오. (559페이지)

☆☆☆ 시도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시도하는 것이 훨씬 낫다. 실패하더라도 실패한 경험치는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다음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소가 될 것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아테네가 그리스의 구세주였다고 말해도 진실을 벗어난 말은 아니다. 아테네가 어느 쪽에 가담하는 가에 따라 운명의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가 결정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스의 자유를 보존하는 길을 선택하고 페르시아에 아직 굴복하지 않은 모든 그리스를 일깨워 신을 본받아 페르시아 왕을 격퇴한 것이야말로 바로 이 아테네인이었다. 델포이에 내려진 아테네인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무서운 신탁조차도 아테네로 하여금 그리스를 포기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끝까지 머물며 자신들의 나라로 오는 적과 담대히 맞서 이를 격퇴시켰던 것이다. (594페이지)

***크레타인은 그리스인들이 원조를 요청하러 오자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각 도시 공동으로 델포이에 신탁사절을 보내 그리스를 원조하는 것이 자국에 유리한지 어떤지 신의 뜻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자 델포이의 무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어리석은 자들아, 나희는 일직이 미노스가 너희가 메넬라오스를 원조한데 분노하여 너희에게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에 아직도 만족치 못하고 불복하느냐? 카미코스에서 비명횡사한 자신을 위해 너희가 보복하고자 했을 때 그리스인들은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너희는 이국의 남자가 납치한 스파르타 여자를 위해 그들을 돕지 않았느냐?”

사절이 이와 같은 신탁을 받아오자 크레타인은 그리스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것은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의 행방을 찾아 오늘날 시켈리아라 불리고 있는 시카니아에 갔다가 비명횡사를 당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크레타에서 도망친 다이달로스를 쫓아 시켈리아로 온 미노스왕은 카미코스왕인 시카니아인 코카로스 곁에서 다이달로스를 발견했지만 속아서 목욕하다가 코카로스의 딸들에게 살해됐다.) (611~612페이지)

☆☆☆ 무녀들의 신탁을 통해서 그들의 지적수준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역사와 세계정세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자들이다.

***그리스군이 둘로 나뉘어 서둘러 출격하는 동안 델포이인은 자국과 그리스전역의 안부를 우려하여 신탁을 구했다. 그랬더니 사방의 바람에게 기원하라는 신탁을 내렸다. 바람이 그리스의 유력한 동맹자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델포이인은 이 신탁을 끝까지 자유를 위해 사우기로 결심한 그리스 모든 도시에 전했다. 델포이인은 이 신탁의 고사를 존중하여 오늘날에도 역시 사방의 바람에 제사를 지내며 은총을 기원하고 있다.

날이 밝자 그때까지 쾌청하고 바람도 잠잠했던 날씨가 돌변하여 바다가 용솟음치기 시작하고 격심한 폭풍과 맹렬한 동풍-이 부근의 주민들이 ‘헬레스폰토스바람’ 이라고 부르는-이 페르시아 함대에 몰아쳐왔다. 실로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폭풍이었다.

아테네인의 계시를 받아 ‘북풍(보레아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의 전설에 따르면 ‘북풍’의 아내는 엘렉테우스의 달인 오레이티이아라는 아티카여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테네인은 북풍을 자신들의 의형제라고 여기고, 희생물을 바치며 북풍과 오레이티이아에게 자신들을 도와 일찍이 아토스 난바다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페르시아의 함대를 쳐부숴 달라고 기원했다. 아테네인은 이전에는 물론 이때에도 자신들을 도와 그러한 일을 해준 것이 바로 북풍이었다고 주장한다. 아테네인은 귀국한 뒤 일리소스 강변에 북풍을 모신 신전을 건설했다. (617, 621페이지)

☆☆☆ 델포이의 신탁 중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이 부분에서 델포이의 파티아(무녀)를 신뢰하게 된다. 그 전의 신탁은 전부 뜬구름 잡는 것 같았다.

***그들은(스파르타군) 생사를 건 모험을 시도하기 전에 머리칼을 손질하는 관습이 있다. 크세르크세스는 소수의 병력으로 어떻게 자신의 군대와 싸울 수 있겠느냐고 거듭 물었다. 스파르타인은 전투 경험이 없는 적들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를 잘 알았다. 그들이 사용한 전법 중 특기할만한 것은 적에게 등을 보이며 언뜻 패주하는 듯이 집단을 이루며 후퇴하는 것이다. 페르시아군은 적이 도주하자 함성과 말굽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추격해 갔다. 그러면 스파르타군은 적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적을 공격했다. 이 후퇴전술을 이용하여 스파르타군은 수많은 페르시아 병사를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스타르타군 또한 많은 전사자를 냈다. 페르시아 군은 전문 탈취를 시도하여 차례로 부대를 번갈아 가며 투입하고 기다 모든 전법을 구사하면서 공격을 감행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630페이지)


제 8권 우라니아

아테네점령과 그리스의 해전준비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다른 한 부대가 안내자와 함께 파르나소스 산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델포이의 신역으로 향했다. 델포이 신전을 약탈하고 제보를 크세르크세스에게 헌납하기 위해서였다. 크세르크세스는 알리아테스의 아들 크로이소스가 봉납했던 물품에 가장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델포이인은 이 소식을 듣자 크게 당황하고 공포에 떨면서 신보(神寶)를 지하에 묻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하는지에 관해 시의 뜻을 물었다. 그러나 신은 자신의 재물은 자신이 지킬 수 있으니 신보에 손을 대지 말라고 답했다. 그러자 델포이인은 이번에는 자신들의 목숨을 구할 방도를 생각했다. 그리하여 처자식들은 바다 건너 아카이아 지방으로 보내고 그들 자신은 대부분 파르나소스 봉우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가재는 코리키온 동굴로 옮겨놓았다. 이렇게 하여 델포이인은 겨우 60명의 주민과 신탁사제만 남겨놓고 모두 도시를 떠났던 것이다.

이미 페르시아군이 가까이 다가와 성역에서 바라다 보이는 지점까지 왔을 때의 일인데, 이대 갑자기 신탁사제는 -어더한 인간도 손을 댈 수 없는 성스런 무기가 어느 틈에 본전 안에서 나와 신전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는 도시에 남아있던 델포이인들에게 이 기이한 현상을 알리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다. 페르시아군이 공격을 가하려고 아테네 프로나이아 신전 부근까지 왔을 때 하늘에서 돌연 벼락이 그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려왔고 파르나소스의 두 바위산이 페르시아군 위로 무너져 내려 수많은 병사를 압사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프로나이나 신전 안에서는 성난 소리와 함성이 울려 나왔다.  이러한 괴변이 거듭해서 일어나자 페르시아군은 공포에 떨며 달아났다. 그것을 본 델포이인은 추격하여 많은 페르시아군을 살해했다. (657~658페이지)

***“왕이시여, 훌륭한 인간은 못난 종을, 못난 인간은 훌륭한 종을 거느리게 마련이라는 것을 명심해 두시기 바랍니다. 전하께서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시지만 못난 종들을 거느리고 계십니다. 이들은 바로 전하께서 아군이라 생각하고 계시는 이집트인, 키프로스인, 킬리키아인, 팜필리아인 들입니다. 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리입니다!”(671페이지)

*** 이 알렉산드로스부터 헤아려 7대째의 조상에 해당하는 페르디카스는 다음과 같이 해서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손에 넣은 인물이다. 그 옛날 아르고스국으로부터 테메노스의 후예에 해당하는 세 형재, 가우아네스 아에로포스 페르디카스가 일리리아인 나라로 도망쳐 왔다. 그리고 가장 나이가 어린 페르디카스는 그 밖의 작은 가축들을 사육하며 일했다. 옛날에는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가도 가난했기 때문에 왕비가 직접 집안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빵을 구울 때마다 나이 어린 페르디카스의 방이 저절로 보통 크기의 두 배로 부풀었다. 언제나 같은 일이 일어나 왕비가 그것을 남편에게 알리자, 그것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전조라는 생각이 왕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하여 세형제를 불러낸 다음 이 나라에서 떠나라고 명령했다. 세 형제는 마땅히 받아야 할 품삯을 받으면 곧바로 떠나겠다고 말했다. 품삯이야기를 듣자 왕은 화가 벌컥 일어 때마침 굴뚝으로부터 햇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에게 상응하는 품삯으로 이것을 주겠다.”

가우아네스와 아에로포스는 이 말을 듣자 어리둥절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막내가 이 말을 받았다.

“왕이시여, 내리시는 것을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는 때마침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칼로 방 안 마루에 비치고 있는 햇빛을 세 번 되풀이해 자르고는 햇빛을 품속에 집어넣는 시늉을 하고 두 형과 떠났다.

☆☆☆ 생각지도 못했던 페르디카스의 행동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그는 햇빛이 아닌 왕실의 에너지를 호주머니에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시당한 것에 대해 독한 포부를 호주머니에 담아왔을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그들은 레바이아를 떠나갔다. 한편 왕의 곁에 있던 한 사람이 소년이 한 행동은 심상치 않다고 왕에게 고했다. 이 말을 듣고 격노한 왕은 삼형제를 살해하도록 기마병에게 추격을 명했다. 그런데 이 지방에는 앞서 아르고스에서 도망 온 강이 있는데 테메노스가 출신의 삼형제가 이 강을 건넌 뒤 강물이 급격히 불어나 추격하는 기마대가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삼형제는 마케도니아의 다른 지역에 이르러 미다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 근처에 자리잡고 살았다. 그들은 이 땅을 차지하자 곧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마케도니아의 다른 지역을 정복하여 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페르디카스는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다.(703페이지)


제 9권 카리오페

플라타이아 포진

***페르시아 병사들은 스파르타군의 긴 자루를 잡고 부러뜨렸다. 페르시아군은 용기와 힘은 뒤떨어지지 않았지만 무장이 견고하지 못한 데다가 훈련이 미숙했고 전술에도 매우 약했다. 그들은 혼자 또는 10인 안팎 병사들이 한 무리가 되어 스파르타군 속으로 돌진해서 사우다가 쓰러졌다. 페르시아군은 플라타이아에서 스파르타군에게 격파되어 패주하자, 뿔뿔이 흩어져 그 진지 및 앞서 테베 지구에 세워 두었던 목조요새로 숨어들어갔다. 싸움은 이와 같이 끝났다. (738페이지)

☆☆☆ 페르시아군인들의 장비가 허술함에 놀랐다. 영토확장에 대한 야욕이 넘치는 만큼 병기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에 대해 크세르크세스에 대해 실망했다. 스타르타군에 대한 찬탄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세상은 전쟁터,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고 나가야 한다.

플라타이아 전투

***그리스군은 금품을 다 모으자 그 10분의 1을 떼내어 이것으로 황금제 솥을 만들어 봉납했다. 이 솥은 제단 가까이, 청동으로 제조된 세 마리의 뱀 위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올림피아 신들에게 제물로 올리는 음식값에서 얼마를 떼내어 이것으로 10페키스 높이 청동 제우스 상(像)을 만들어 헌납하고, 또한 지협의 신에 대해서는 6페키스 높이 포세이돈 청동상을 만들어 바쳤다.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각각 수훈에 다라 분배했는데, 그것들은 페르시아인들의 첩과 금은을 비롯한 귀중품 및 가축류였다. (746페이지)

***아르템바레스라는 사람이 키루스왕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었다.

“제우스신께서 페르시아인에게.... 아시아의 패권을 부여하려 하시니 이 좁고 거친 땅을 떠나 보다 비옥한 땅으로 이주하는 것이 어덯겠습니까? 우리나라 가까이에도 멀리에도 많은 땅이 있으니만큼, 그 하나를 손에 넣으면 우리는 더욱더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배자 위치에 잇는 민족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아시아 전역에 군림하고 있는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언제 도 오겠습니까?”

키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은 것, 다만 그렇게 할 경우에는 자신들이 더 이상 지배자가 되지 못하고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게 될 수도 잇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부드러운 땅에서는 부드러운 인간이 나오듯이, 훌륭한 작물과 전쟁에 강한 남자는 그러한 당에서 나오지 않는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자신들 생각이 키루스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키루스 앞에서 물러 나왔다. 그들은 이렇게 비옥한 땅을 일구며 다른 나라에 예속되느니보다 척박한 땅에 살며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764페이지)

☆☆☆ ‘지나친 번영은 위험하다’ 국가든 개인이든 지나친 과욕은 일을 망치게 마련이다. 헤로도투스 또한 이것을 후세인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부드러운 땅에서는 부드러운 인간이 나오듯이, 훌륭한 작물과 전쟁에 강한 남자는 그러한 땅에서 나오지 않는다.

***<역사>의 주제가 된 페르시아전쟁 때에는 여걸 아르테미스 1세가 할리카르나소스에 군림하며 근처의 섬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 이미 청년기에 접어든 아들을 제쳐두고 스스로 참주가 되어 군함 다섯 척을 이끌고 크세르크세스왕의 원정에 참가했다. 그리고 살라미스해전 이전에 그녀는 서둘러 해전을 벌이기보다 육군이 펠로폰네소스로 진군하면 그리스 함대가 분열되어 각각 자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뛰어난 전략을 제시했다. 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앗지만 해전이 벌어지자 행운이 뒤따라 그녀의 함대만 크게 활약햇다. 그것을 본 크세르크세스왕은 “우리 군의 남자들은 여자가 되고 여자들은 남자가 되었다”고 평했다. (774페이지)





3. ‘내가 저자라면’

자신이 이 책의 저자가 되어 이 책의 목차와 전체적 뼈대를 논하고,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그리고 보완점을 평설할 것

나의 생각

☆☆☆책을 9권으로 나눈 것은 헤로도토스의 뜻이 아닌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이 아홉 권으로 재편집한 것이다. 목차는 독자들이 한 눈에 어떤 책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목차를 좀더 정리해서 나누었으면 좋겠다.

  제1권은, 크로이소스의 성장과 파멸, 메디아의 역사와 키루스의 성장배경, 페르시아의 지리와 풍속, 바빌론의 국토와 풍습 , 소아시아의 여러 나라, 이렇게 소제목을 달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 20여개 국의 지리와 풍속, 왕들의 탄생과 성장과정, 전쟁준비와 전쟁터의 생생한 묘사, 중요인물에 대한 에피소드 혹은 중요사건에 대해 자세한 묘사 등 참으로 방대하게 저술했다.  방대한 것을 좀더 독자들이 알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감동적인 장절-

☆☆☆델포이의 무녀들이 내린 신탁을 상세하게 서술한 것이 재미있다. 그들의 신탁은 장단단(長短短) 육각운의 가락으로 읊조린다. 무녀의 신탁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 내용이 시적(詩的)이면서 몇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두루뭉실한 것이 일종의 책임회피 같다. 나라의 사활이 달린 전쟁에는 신탁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고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델포이의 무녀들은 교육을 받지 않은 50대 여자들이었다고 한다. 무녀는 환각상태에서 몸을 떨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노래를 부르고 성소의 사제는 그것을 의뢰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시의 형식으로 전달하며 해석해주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녀의 언어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사제가 시를 읊는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이 사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책을 위해서.

1.

이미 그들은 던져졌다

넓게 퍼진 그물 속으로

달 밝은 밤, 다랑어 떼가 뛰어들리라.

  이 신탁을 들은 페이시스트로스는 그 진의를 깨달았다. 그는 신탁의 뜻대로 군을 진격시켰다.

☆☆☆ 나는 시적인 언어로 예언을 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2. 

그리스군이 둘로 나뉘어 서둘러 출격하는 동안 델포이인은 자국과 그리스전역의 안부를 우려하여 신탁을 구했다. 그랬더니 ‘사방의 바람에게 기원하라’는 신탁을 내렸다. ‘바람이 그리스의 유력한 동맹자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델포이인은 이 신탁을 끝까지 자유를 위해 사우기로 결심한 그리스 모든 도시에 전했다. 델포이인은 이 신탁의 고사를 존중하여 오늘날에도 역시 사방의 바람에 제사를 지내며 은총을 기원하고 있다.

날이 밝자 그때까지 쾌청하고 바람도 잠잠했던 날씨가 돌변하여 바다가 용솟음치기 시작하고 격심한 폭풍과 맹렬한 동풍-이 부근의 주민들이 ‘헬레스폰토스바람’ 이라고 부르는-이 페르시아 함대에 몰아쳐왔다. 실로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폭풍이었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델포이신전의 무녀 혹은 사제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그들에게도 신을 대신할 만큼의 뛰어난 예언력이 있음을 알았다.


3. 크레타인은 그리스인들이 원조를 요청하러 오자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각 도시 공동으로 델포이에 신탁사절을 보내 그리스를 원조하는 것이 자국에 유리한지 어떤지 신의 뜻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자 델포이의 무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어리석은 자들아, 나희는 일찍이 미노스가 너희가 메넬라오스를 원조한데 분노하여 너희에게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에 아직도 만족치 못하고 불복하느냐? 카미코스에서 비명횡사한 자신을 위해 너희가 보복하고자 했을 때 그리스인들은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너희는 이국의 남자가 납치한 스파르타 여자를 위해 그들을 돕지 않았느냐?”

사절이 이와 같은 신탁을 받아오자 크레타인은 그리스의 요청을 거절했다.

☆☆☆신탁의 내용을 보면 오래 전의 역사적인 사건까지 다 기억했다가 신탁을 내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는 신탁이라기보다는 의뢰자를 꾸짖고 있다. 역시 무녀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보완하고 싶은 것들

☆☆☆왕들의 통치이념에 대해 그다지 언급한 부분이 없다. 고대의 왕들도 나름 통치이념과 철학이 있었을 텐데. 고대에도 왕들은 현자를 스승으로 두고서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알렉산드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두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헤로도토스가 조사하기에는 너무 힘든 부분이었을까?

  1.

  크로이소스왕과 아테네의 현자 솔론의 만남이 나온다. 왕은 솔론에게 “그대는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소?”묻는다. 크로이소스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자부하고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솔론의 답은 왕의 기대를 저버렸다.

   “왕께서 막대한 부를 가지시고 많은 백성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물으신 일에 대해서 왕께서 좋은 생애를 마치셨다는 것을 아실 때가지는 저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아무리 유복한 사람이라도 만사가 잘 되어가는 평생을 끝마칠 수 있는 행운을 만나지 않는 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보다도 행복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는 없습니다.”

 나는 이 책에서 크로이소스와 솔론의 만남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이러한 철학적인 부분이 <역사>에는 부족한 것 같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철저하게 철학자들을 배제하였다. 책이 너무 방대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까?  왕들의 통치이념을 알았다면 고대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더 쉽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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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2.19 17:32:16 *.85.249.182

사부님께서 읽어보시기 힘드실까봐 첨부도 했습니다.  내용은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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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8기 지적레이스 1주차/ 정나라] 헤로도도토스 역사 [2] 터닝포인트 2012.02.20 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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