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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5일 10시 52분 등록
알도와 떠도는 사원

어디선가 저자와 저자의 이 책을 놓고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나는 속으로 "어이쿠~ 또 시작이다. 이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세상 모든 선전문구가 다 과장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덮는 순간 이 책의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러면서 내게 반문했다. 왜?라고.

그런것 같다. 한국인들이 동서고금의 방대한 분야의 지식을 배경으로 판타지 소설을 유치하지 않게 쓰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어쩌면 또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아직까지 이 분야의 책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나의 한계일수도..).

팩션이라고 부르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대개의 역사지식소설이나 어느 정도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의 경우는 의례 외국작가의 책에 손이 먼저 가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번 저자의 "기적의 양피지"를 읽고, 이 저자가 쓴거라면 혹시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집어든 철학 판타지,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진정 기대이상이었다.

알도는 한국인 뇌공학 박사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15살 소년.
아버지가 계시는 인도의 연구소로 방학 동안 방문하였다가, 그 곳에 도착해서야 아버지가 납치된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제8의 영역, 즉 영계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이다.

대개 지식소설이 그러하듯, 이 책의 경우도 또 하나의 스토리 라인이 펼쳐지면서 어느 시점에 가서 합쳐지는데, "나칼의 서"를 찾아 영생의 비밀을 얻고자 하는 탈란 박사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길게 이야기하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일 것 같다. 이 책의 묘미 중의 하나가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에 있으니 말이다.

그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스토리 전개를 받치고 있는 방대한 분야의 지식이다.
소개는 철학 판타지라고 하지만, 비단 철학뿐만이 아니라 생명공학, 컴퓨터 공학에 이어 심지어 수학이나 기타 많은 과학적 지식들이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지식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매우 흡족할 만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다만, 아주 가끔은 지식에 대한 설명이 조금 딱딱하게 전개되면서 소설의 "흥"을 살짝 머뭇거리게 만드는 장면도 한두번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렇게 다양한 지식과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을 접목하여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주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알도, 진정한 태양의 사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랫동안 떠돌고 있어. 하지만 동시에 진리와 정의와 사랑 그리고 용기가 존재하는 모든 곳, 그 아름다운 곳에는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태양의 문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태양의 황금사원으로 향하는 문이 말이다 (451)."

"태양의 사원.."
이 소설 전체를 꿰뚫는 대표적인 상징이 될 것 같다.
동서고금 수많은 인간들이 얻고자 했던 영생의 길 말이다.

그런 그곳을 오랜 세월 철학세계에 빠져 살고 있는 저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실행에 옮기는 바로 그곳에 태양의 사원을 향하는 문이 열린다고 한다. 작가이기에 앞서 철학자로서의 저자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이 부분이 내겐 특히 울림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얼핏 철학이라 하면 우리들의 일상과는 어딘가 동떨어진 형이상학적인 매우 어려운 고난이의 문제가 연상되고는 한다. 그런 독자들에게 저자가 말하는 철학은 다름아닌 "인류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 한다.

"행동으로 옮기는 삶.."
고매한 정신적 학문의 저자가 말하는 것치고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가 주장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것도 사실 우리가 모르지 않는 것들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나 진정 무엇을 위한 과학이고, 무엇을 위한 철학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책이었다.
머리에 세상 모든 지식을 다 담고 있으면 무엇할까. 내 하루에 그 지식들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행하는 근간이 사랑이고 배려이고 함께 사는 공동의 선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인간과 컴퓨터 혹은 인간과 동물이 다를바가 무엇이냐 되묻는 저자이다.

어렵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가끔은 잠시 길을 멈추고 한두번 주변 환경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풍광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 길을 떠날 필요가 있는 소설이다.

"사막에서 더위보다도 더 참기 어려운 것은 끝없는 단조로움이었다 (278)."
"낙타를 타고 왔어도 꼬박 하루해가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279)."

소설 중 최고의 은유를 담고 있는 두 문장인 것 같다.

사막 여행을 어렵게 하는 것은 비단 겉으로 드러나는 더위가 아닐 것이다.
일상의 지리함.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고는 결코 사막을 건널 수 없으리..

그 지리함을 단축시키기 위해 낙타를 타지만 어쩐 일인지 결국 소요된 시간은 똑같다.
단기적 안목으로 타인과의 경쟁에서 앞서간다 생각할지 몰라도, 결국 도달하는 시간은 같을 수 있을진대 말이다..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젠 정말이지 저자의 또 다른 책,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 읽고 싶어졌다.
저자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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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유대인들의 비서인 "하가다"를 지키기 위한 오백년에 이은 이야기
역사를 바탕으로 유대, 이슬람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반목과 공존을 그린 역사추리소설
제럴딘 브룩스의 "피플 오브 더 북" 책 리뷰: http://blog.daum.net/alysapark

 



IP *.9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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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09:21:46 *.237.209.28
머리에 세상 모든 지식을 다 담고 있으면 무엇할까. 내 하루에 그 지식들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식소설, 매력있는 장르가 분명하죠?
언젠간 꼭 도전해 보고 싶은...   ^^
그 날을 위해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만이라도 알뜰히 활용할 줄 아는 호환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거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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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12:40:50 *.98.16.15
그칭? 어렵겠지만 매력적인 분야인 것 같아.
묙이라면 함 도전해볼만한것같아^^

맞어맞어. 오늘 하루 차곡차곡 쌓아가며 순환사이클을 만들어가다보면
언젠가는 터져나올거야. 멋진 작품말이야.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 그래서 더욱 박묙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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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louboutin
2011.08.16 12:29:52 *.117.8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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