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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2일 20시 34분 등록
나는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가끔 청춘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난 단호히 "아니오"라고 답하고는 했다. 지금만큼이라도 세상을 알고 돌아간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청춘은 너무 아파서 싫다는게 나의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한편 나이드는 것 역시 늘 두려웠다. 대놓고 꺼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늘어가는 잔주름 앞에 문득 놀라며, 여기서 더 나이드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어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바보같은 일이었다. 청춘보다 지금이 낫다면, 똑같은 이유로 지금보다 60대가 나을수도 있을텐데 "나이듬= 외모의 처량함"처럼 생각하며 애써 그 시기만큼은 피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평상시 너무도 좋아하는 통찰자에 가까운 경영구루 영국의 찰스 핸디가 60대 여성에 대한 책을 내었다고 한다.

'어라? 이건 뭐지? 아무리 핸디라고는 하지만 60대 여성 이야기는 쫌 너무 거리감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핸디에 대한 믿음으로 집어든 책. 그러나 핸디는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물론 핸디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대다수 평범한 60대 여성들의 삶에서 이토록 빛나는 이야기를 끄집내어 나와같은 인생 후배에게 등불을 밝혀주는 건 역시나 핸디의 통찰력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그토록 두려웠던 나이듬이 이젠 그 시대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음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젊은 여성을 보면서 저 여성처럼 되고 싶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외모가 아닌, 시간을 주무르고 싶다 (49)."

누가 한 말일까? 다름 아닌 열정의 화신, 아니타 로딕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역시 아니타 로딕이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여 그 삶이 더욱 열정으로 빛나는 아니타 로딕이어서인지, 아니면 세계적인 코스메틱 브랜드 회장이었던 그녀가 외모가 아닌 시간을 강조한 것이 더 다가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여성들이 (현대 사회는 심지어 남성들도) 나이를 들어가는 것에 있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어쩌면 "외모의 노화"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느 프랑스 여류작가가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주름지게 늙어가는 것은 두려워!'라고 한 말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여배우 안나 마냐니가 "내 주름살을 수정하지 말아요. 오래 걸려 만들어진 거니까! (21)" 라는 말은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불러 일으켰다. 어쩐지 외모의 아름다움을 넘어 막강동안까지를 강요하는 거대한 광고 앞에 주눅든 내가 기를 펼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무엇이 60대 여성들을 당당하게 만드는 것일까? 몇몇 유명인사들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와 같은 평범한 29명의 60대 영국여성들이 60대가 그 어느 시기보다 충만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열쇠는 과연 무엇일까?

"인생이 이 단계에서는 성공이란 것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엔 어땟는지 몰라도 이제는 더 이상 명예나 부가 성공의 잣대가 되지 못한다. 60세가 넘으면 세간의 평가나 기준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14~5)"

다름아닌 찰스 핸디의 아내이자, 이 책을 함께 작업한 엘리자베스 핸디의 말이다. 과연 그 남편에 그 아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핸디의 또 다른 작품 "코끼리와 벼룩"을 보면, 한편 핸디가 오늘날의 핸디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생각을 하는 현명한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엘리자베스 핸디 역시 젊어선 아이를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일에만 여념이 없다가 50세가 되어 사진 관련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50세에 말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진관련 작업을 시작한 것이 60세라고 한다.

나는 위의 엘리자베스 핸디 말을 성공뿐만이 아니라 "행복의 정의"로 바꾸어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외적인 성공만 추구하기보다는 내적으로 자기다움을 찾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어린 모습으로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평범하지만 특별한 29명의 인생 선배들은 하나같이 "자기답게 나이들어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그렇지만 한가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어떻게 부침많은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자기다움을 세우고, 표현해가며 살 수 있을까?

"누구나 평생 숙제처럼 안고 가야 할 가족과의 사별, 배신, 실망, 환멸, 슬픔, 피치 못할 위기를 겪으며 60세에 이른다. 여기에는 애통, 고뇌, 분노, 씁쓸함, 아픔이 동반된다. 나 역시 내 몫의 감정들을 모두 겪었다. ... 이런 부침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잘 모르고 있던 내 안의 강인함과 회복력, 끈기를 발견했다 (73)."

정답일 것 같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누구나 각자의 몫만큼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그 말은 진리에 가깝다는 것쯤을 이해할 나이는 된 것 같다. 그러니까 자기다움을 찾고, 행복과 충만한 삶을 누리는 이들이 어려움이 없어서 저절로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니라는 거. 내겐 참 필요한 말이었던 것 같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장해물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왜 내게는..'이라는 원망부터 불쑥 올라오고는 하니 말이다. '왜 내게는'는 아니라, '내게도'라고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성숙한 삶을 향한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 아닐까..하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얻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삶은 녹록치 않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금방 다시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해지 일쑤이다. 어떻게 해야 자신감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자신감을 좀 더 젊은 시절에 얻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자신감을 의지대로 얻기는 어렵다. 그것은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끈질긴 결의로 현실과 부딪쳐 무언가를 이뤄 나가는 과정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116~7)."

그녀들 중 누군가는 가슴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고, 그녀들 중 누군가는 인공심장을 달고 있다.
그녀들 중 누군가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으로부터 젊은 여자와 새로운 삶을 살겠노라는 통보를 받고, 그녀들 중 누군가는 강제퇴직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도 삶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해서 얻어지는 것이 바로 "자신감"이라고 한다.
아마도 단순히 자신감을 넘어 그야말로 인생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오는 "내공"이자 "저력"이 아닐런지..

내게 물었다. 어려움 앞에 회피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냐고.
그거면 되는 거라고. 사람들 모두 자신만의 몫을 짊어지듯이, 나 또한 내 몫의 어려움이 있지만
끈기있게 삶에 들러붙어 대처하다보면 나 또한 인생 자체를 좀 더 유연하게, 보다 부드러이 살아갈
내적 생명력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거라고..

"지금 내겐 하나의 인공 고관절과 절단된 두 가슴이 있으며, 안경 도수는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석양을 향해 탱고를 추며 나아가고, 내 속에서는 소설 하나가 익어 간다. 나는 치유 수행을 하고, 글쓰기 연구 모임에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가르치고, 살사 레슨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내 수명이 길건 짧건, 오늘 하루하루를 최고의 날로 만들고 싶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45)."

어느 문학가의 문장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자신의 60여년 세월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알레그라 테일러의 이 말은 내게 깊숙이 들어왔다..

"다음 번엔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60세가 되고 보니 이제는 세상이 내게 던져 주는 그 어떤 일에도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다 (249)."

나도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쉰다섯의 나이에 남극탐방 작가가 되어 남극으로 향하는 쇄빙선에 오르는 메러디스 후퍼처럼, 여성의 삶은 나이가 들수록 장미의 잎은 떨어지고 진정 중요한 것만 남는데 그것이 바로 본연의 섹시미인데 다름아닌 내적 성숙이라고 표현하는 폴린 비위크처럼, 나도 60이 되면 세상 그 어떤 일에도 충분히 준비가 되는 그런 자아이고 싶다.

다행히 이 책의 29명 인생 선배들이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60대라는 나이가 마냥 두렵고 슬픈 시간이 아닌, 그때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삶의 모든 것들을 한데 버무려
어쩌면 진정으로 향기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임을 알려준 책, 찰스 핸디의 "나는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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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애니어그램을 통한 내적탐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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