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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8일 12시 15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에이미 추아 (Amy Chua) :

필리핀에서 이민 온 중국계 미국인 2세로 현재 예일 대학교 법학 교수이다.1987년 하버드대학교에서 국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제 경영과 인종 갈등, 국제 관계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어린 시절 미국 중서부에서 자라면서도 집에서는 중국말을 써야 했고, 퇴근하여 들어오시는아버지의 구두를 벗겨드리고 실내화를 가져드려야 했다. 또한 항상 완벽한 성적표를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미국 국적을 얻은 날을 자랑스러운 날로 기억한다. 미국 이민자로서 그녀 곁에 있는 모순들은 중국과 미국 그리고 세계,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고민하고, 알아가고 연구하여 그녀만의 세계관을 정립하게 되었고, 이 후 <불타는 세계> <제국의 미래>를 저술하게 되었다. 이 두 책의 서문의 제목은 그녀만의 세계관과 통찰을 잘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 ‘불타는 세계의 서문 : 세계화와 민족적 증오심

* ‘제국의 미래의 서문 : 세계 제패의 비결

 

2003년에 출간한 <불타는 세계>세계화가 어떻게 전세계의 민족 갈등을 심화시켰는지분석한 책으로, 세계화는 태생적으로 폭탄을 잉태할 수밖에 없으며 '불타는 세계'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미국식 세계화 전략에 이의를 제기, 대안도 모색한다. 이 책은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2003년 올해의 책이 되었다.

 

저자에 대하여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석학은 1) 우선 방대한 지식을 연구하되 정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2) 단순한 정리 뿐 아니라 그 지식에서 자신 만의 통찰력으로 원리 또는 이론을 뽑아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석학 = 지식 + 지혜> 이며 지식과 지혜는 석학의 필수요소라는 것을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저자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불타는 세계의 서평을 읽는 중 어느 독자가 한마디로 압축한 많은 정보, 그러나 빈약한 결론이다. <제국의 미래> 역시 문제 제기나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모은 자료의 정리, 자료의 흐름, 자료의 분석은 모두 훌륭했지만 결론, 즉 뒷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두 책 모두 남들과 다른 시각과 세계관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과 제기한 문제 자체는 매우 훌륭한 통찰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한 사회는 어떤 경로를 거쳐서 단순한 대국이 아니라 세계적인 패권을 휘두르는 강국이 되는 걸까? 한 사회가 그런 패권을 손에 넣었다면, 무엇이 그 패권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과거 초강대국들의 성장과 몰락 과정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들이 들어있다. 이 교훈들은 미국과 과거의 초강대국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21세기에도 커다란 함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p7)

 

역사상 존재했던 세계 초강대국들은 서로 상당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적어도 해당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인 우위에 오르기까지 하나같이 대단히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나라들이었다. 모든 초강대국들에게 관용은 패권을 장악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제국의 쇠퇴는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그리고 인종적,종교적,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촉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쇠퇴의 씨앗을 뿌린 것 역시 관용이었다는 점이다 ( p 7)

 

한 사회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인종, 종교, 배경을 따지지 않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만 한다. 이것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제국으로부터 대몽골제국, 그리고 대영제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초강대국들이 해온 일들이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의지해온 것이 바로 관용이었다 (p9)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관용은 인종, 종교, 민족, 언어 등 여러면에서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일컫는 것이다 (p10)

 

요컨대 이 책의 핵심적인 개념은 상대적인관용이다. 세계적인 패권을 다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회가 절대적인, 영원불변의 기준으로 볼 때 관용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더 관용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p11)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관용이 세계 제패의 필수조건이라는 것, 그리고 역으로 말하면, 불관용은 초강대국의 쇠퇴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p12)

 

그러나 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든 민주주의국가 건설이라는 사용했든 이들 저술가들이 하나같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역사이다. 지금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비록 새로운 형태이기는 하지만, ‘제국의 연륜만큼이나 오랜 연륜을 가진 문제, 즉 과거의 세계적인 패권 국가들 대부분을 무너뜨린 근본적인 문제이다. 나는 더 적절한 용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 문제를 접착제라고 부를 것이다. (p17)

 

역사를 돌이켜보면, 초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외국 주민들의 충성, 그것까지는 아니라도 하다못해 묵인이라도 확보할 방법을 찾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이것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군사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p20)

 

미국은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서의 역할자유와 민주주의의 횃불이라는 역할이 서로 충돌하면서 광범위한 반미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의 수십억 인구를 마주보고 있다. 대부분 가난한 그들은 미국인이 되고는 싶지만 미국의 지배를 받기는 싫어한다.그들은 귀로는 미국이 자유를 상징한다는 말을 무수히 듣지만, 현실에서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모습을 볼 뿐이다 (p21)

 

역사, 제국을 만나다.(p21)

2,500 년간, 역사상의 모든 초강대국은 하나같이 똑 같은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해왔다. 그 한가지는 자국의 성장에 연료를 공급했던 관용을 유지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자국의 지배를 받는 민족들에게서 충성심, 아니면 하다못해 묵인이라도 확보할 수 있는 공통의 결속력을 형성하는 문제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해외에서 세계적인 패권을 확인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이 두 가지 문제들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참으로 모순 된 이야기 같지만,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중단하는 것뿐이다. (p25)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날의 역사학자들 대부분은 키루스가 사용했던 관용 정책은 원칙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전략과 편법에 의한 것이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루스는 해당 지역의 신을 포용함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고, 해당 지역의 전통과 관습을 존중함으로써 피정복민의 저항과 반란 가능성을 줄였다. (p 44)

 

아케메네스 왕조는 다리우스 대제 체제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다리우스는 약 40년간 동안 통치하면서, 페르시아의 영토를 인도까지 넓히고 그리스에 발판을 강화했으며 동류럽까지 손길을 뻗었다. (p45)  다리우스는 왕위에 있는 동안 문화적, 종교적 측면에서의 관용이라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전통을 존속시키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제국의 다언어 문화를 존중했다. 또한 해당 지역의 종교 예식과 신을 대단히 존중하고 각 지역의 사회구조를 대부분 그대로 두었다.(p47-48)

제국을 이루는 다양한 민족으로부터 최고의 인력을 동원하는 것은 다리우스만이 아닌 아케메네스 왕조의 모든 제왕들이 보여준 특정적인 전략이었다. (p 49)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관용이야말로 아케메네스 왕조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단을 꾸릴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이었다는 점이다 (p 49)

아케메네스 왕조의 관용은 현대적인 의미의 평등과는 거리가 먼것이었다. 그러나 아케메네스 왕조가 200년 동안 전례 없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관용 정책 덕분이었다. (p 52)

 

아케메네스 왕조가 권력을 확실하게 과시하기 위해서 썼던 전략은 피정복민을 균질화하고 페르시아화하는 전략이 아니라, 민족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제국이 가진 막대한 다양성을 보존하고 통합하고 개발하는 전략이었다. (p54)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제국은 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제패했던 강국이었다. (p54)

 

키루스와 다리우스가 방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관용이 후일에 싹틀 불관용의 씨앗을 뿌려놓았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의 패권 국가였던 아케메니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그 후 세계를 제패했던 강대국들이 직면했던 것과 똑 같은 문제에 직면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p 58)제국의 이질적인 민족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관념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은 결국 지배력을 잃게 되었다 (p 59)

 

기원전 324년 세계의 패권은 페르시아인의 손에서 그리스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알렉산드로는 그리스 혹은 마케도니아의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통치자였다. 그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쌓아올린 업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관용이었다.(p65)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전쟁 조직에 지나지 않았지만, 로마제목은 하나의 관념idea였다 (p68)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70년부터 서기 192년까지가 로마 문명의 정점기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팍스 로마나 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가 이어지고,스코틀랜드 남부에서 서아프리카의 농경 지역에 이르는 로마의 여러 속주들 사이에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다 (p 70)

 

로마제국은 관용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냈다. 1790년 미국 헌법의 기초자 중 한 사람인 대법원 판사 제임스 윌슨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자국의 힘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주민들이 자진해서 로마로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윌슨은 로마가 전략적으로 채택했던 관용이야말로 제국을 확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보았다.(p73)

 

로마 사람들은 이들 다양한 야만인들을 모조리 제국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은 야만인들의 재능을 활용하고 그들이 로마 내에서 신분 상승 할 수 있게 했으며 대부분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했다. 로마제국의 가장 흥미로운 면모는 사람들이 로마제국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p 86)로마인들은 유용하다는 판단이 서기만 하면 서슴없이 다른 민족들의 전통과 지식, 관습을 받아들였다. (p88) 로마 문명은 하나의 문화적인 용광로였으므로, 각 지역의 지도 계층은 엄청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p88)

 

주목해야할 점은, 로마는 그리스 로마 문화를 성공적으로 수출하면서도 각 지역의 언어나 전통을 말살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로마 문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로마 시민권이라는 유혹이었다. (p 88) 피부색은 물론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시민권을 부여하는 정책은 로마의 문화와 가치관을 확산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다른 민족들을 동화시키는 것이었다. (p91)

 

로마 사람들은 다른 문화권의 전통을 존중하는 문화 상대론자들은 아니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출신 민족과 인종은 로마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국으로 흘러드는 새로운 민족들의 끝없는 대열을 통합시키고 동화시키는 로마의 적극성과 능력, 이것이야말로 로마가 위대한 제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p93)

 

그러나 지나친 다양성은 로마 쇠퇴의 부분적인 원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고약한 문제는 전성기가 지난 로마에서 종교적 박해와 인종적 불관용이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기독교는 새롭게 시작된 불관용 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기독교는 처음에는 불관용 정책의 표적이었고, 나중에는 불관용 정책의 주요한 원천이었다. (p100)

로마 몰락의 원인은 로마가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치명적인 불관용 정책을 펼침으로써 제국의 다양한 주민들을 성공적으로 통합시켜왔던 동화 및 통합 전략을 훼손시킨 데 있다. (p102)

 

중국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당 왕조는 야만인의 피가 섞인 조상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에 의해 창건되었으면서도, 세계주의,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중국 역사상 최대의 대외 개방이라는 두드러진 특징을 보였다 (p 114)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합쳐지면서, 이방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영향력에 대해 중국 역사상 가장 관용적인 왕조가 탄생했다. 이런 관용적이 태도를 인격적으로 구현했던 인물은 바로 당의 두 번째 황제인 태종이었다.(p 117) 태종의 꿈은 중국의 황제이자 돌궐족의 칸으로서 중국인과 야만인을 동시에 다스리면서, 중국인과 야만인이 동등한 자격을 가지는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p118)

 

명황은 모든 나라의 궁중 예법이 똑같을 수는 없다면서 필요한 절차를 생략하라고 명령하는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했다. (p129) 실제로 일부 역사학자들은 중국이 유럽의 지배에 저항할 수 없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청 황제들의 서구에 대한 무지를 꼽는다. (p 134)

 

고대 로마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의 경우도 그랬지만, 관용은 당 제국의 엄청난 영토 확장과 영향력 강화에 필수적인 요소였던 동시에 제국쇠퇴의 씨앗이었다. 참으로 모순 된 일이지만, 당의 몰락은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부여받은 한 외국인의 반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p135) 당 제국이 쇠퇴의 길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불관용이 시작되었다. 한가지 문제는, 당 제국이 야만인들과 중국인들을 한데 묶어줄 공통된 정치적, 언어적, 문화적 접착제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p136) 결국 세계적인 제국을 세우려던 태종의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p 140)

 

칭기즈칸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거나, 당대의 통치자들과 비교해보아도 대단히 관용적인 정책을 취했다. 유럽인들이 이교도들을 말뚝에 묶어 불에 태우고 있을 때, 칭기즈칸은 만인에 대한 종교의 자유를 공표했다. (p146) 몽골족이 세계의 패권을 손에 넣고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잔혹함이 아니라 인종적, 종교적 관용에 있었다. (p 147)

 

노년이 되자 칭기즈칸은 세계를 통일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들에게 마음속에 목표를 새겨두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생은 물론 자기 인생도 제대로 경영 할 수 없다고 말했다.(p 167)

 

몽골 군대에는 선진적인 이슬람권과 중국의 기술을 흡수하여 제작한, 유럽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가공할 무기가 있었다.(p169) 몽골의 공격을 받자, 기독교권인 유럽에서는 극심한 불관용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유럽의 분열과 불관용은 몽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p171)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단순한 유목민 무리에게 굴복한 것이 아니라 중국, 중앙아시아, 러시아, 카프카스, 그리고 이란의 통합된 인적, 재정적, 물질적, 기술적 자원에 굴복한 것이었다. (p 174) 몽골군대는 기독교의 십자군들이 200년 이상 이루지 못했던 칼리프 타도를 단 2년만에 이루어냈다. (p 175)

 

뿐만 아니라 쿠빌라이는 최고의인종적 관용을 베풀었다.(p181) 그는 할아버지와는 딴판으로, 뛰어난 기략과 군사적 추진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훨씬 자비로웠다. (p186) 쿠빌라이의 할아버지는 마음속으로는 늘 초원의 유목민이었지만, 쿠빌라이는 단일한 세계를 추구하며 세계화를 추진했다. (p 187)그러나 제국이 쇠퇴하면서 몽골이 지배하던 지역 어디에서나 일관된 특징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공식적으로는 물론 평범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불관용, 특히 종교적 불관용이 전면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러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선페스트의 만연을 들 수 있다. (p188)날이 갈수록 뿔뿔이 갈라지는 이들 왕국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접착제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p 191)

 

상대적인 관용 덕분에 스페인이 거둔 수확은 영토 팽창과 제국의 성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세의 스페인은 마지못한 것이기는 했지만 유대교들에게 문화를 개방한 덕분에 엄청난 재정적 수익을 거두었다. (p199) 100년 후 스페인이 신세계를 향한 최초의 탐험에 나설 때 자금을 댄 것은 바로 이들 유대교도 금융업자들이었다. (p200)

 

1478년 교황의 교서에 따라 스페인에 이단 심문소가 설치되면서 상대적인 관용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p200) 스페인 황실은 공식적으로 불관용 정책으로 선회했는데, 이것은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성장할 꿈을 품고 있던 제국으로서는 대단히 어리석은 행동이었다.(p201)

이단 심문소의 무수한 재판과 고문은 엄청난 비용을 소모했지만, 증오와 편집증만 빚어냈을 뿐 지식이나 부는 일체 창출하지 못했다. 오히려 광신주의가 고개를 들 때마다 인적자본, 금융자본,그리고 사회자본이라는 가장 귀중한 자원들을 파괴하거나 몰아냈다. (p 205)

 

관용은 세계 제패에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p 206)

 

신은, 군주의 노예가 되어 옳든 그르든 무조건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백성들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서 군주를 창조했다. (p 217)

작은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쫓겨난 진취적인 사람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 덕분에 17세기에 이르러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었다. (p 218) 네덜란드의 제국주의에 연료를 공급한 것은 칼뱅주의가 아니라 이윤 추구였다. (p 229) 네덜란드는 영토의 팽창이 아니라 상업의 팽창을 꿈꾸었다. (p 241)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잔인한 종교 박해 때문에 1492년부턴 1715년 사이에 숙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주를 감행했다. 200년 후에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네덜란드는 관용 정책을 통해 유럽에서 박해를 받아 추방된, 재능 있는 사람들을 유인했다. 이런 관용 정책은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집단 가운데 일부를 좁은 네덜란드로 끌어들여,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어내고, 부의 측면에서 대륙의 경쟁자들을 크게 앞지르게 만들었다. 네덜란드는 이 부를 이용해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p 242) 네덜란드의 관용 정책상은 사실상 국내정책이었다 .네덜란드가 국경 내에서 펼쳤던 주목할 만한 종교적 관용 정책은 해외 식민지에서의 인종적 혹은 민족적 관용으로 변형되지 못했다. 그 일에 성공한 것은 영국이었다. (p245)

 

진취적인 이슬람교 개종자들이 거의 무제한으로까지 출세할 수 있는 오스만제국의 상황은 기독교 국가인 스페인의 상황과는 몹시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의 전략적인 관용은 지금은 누구나 익숙해 있는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몹시 전근대적인 것이었다 (p 253) ‘피부색을 따지지 않고개종자들을 포용하는 오스만 제국의 관용 정책 덕분에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협조적인 피지배민들의 규모가 확대되었고, 농사를 직서나 군대에서 복무할 인구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재능 있는 개인들로 구성된 핵심 세력이 형성되었다 (p255)

 

명 왕조는 세계 제패의 꿈을 꾸지 않았다.  1424년 이후 명의 황제들은 해군을 해체하고 외국과의 무역과 외국의 사상을 거부하면서 병적이라고 할 만큼 폐쇄적인 태도를 취했다. 중국은 1600년 무렵에는 기술적,군사적, 상업적으로 유럽에 크게 뒤처지게 되었다. (p261)

명이 쇄국으로 돌아서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락제가 죽은 뒤, 몽골이 다시 군대를 모아 중국을 침입한 데 있었다. (p265)

 

관용정책으로 선회하지 않았다면, 무굴제국은 그처럼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없었고 눈부신 문화발전도 이루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무굴제국이 쇠퇴했던 시기에는 인도역사에서 손꼽힐 정도로 잔혹한 인종적, 종교적 박해가 만연했다. (p268)

 

아우랑제브의 불관용은 제국에 재앙을 몰고왔다. 결정적인 사건은 힌두교도들에 대한 박해로 상업이 위축된 것이다. (p275) 인도는 아우랑제브가 뿌려놓은 증오심과 갈등 때문에 영국의 분열정복 전략의 희생양이 되었고, 아대륙을 차지했던 이슬람교 제국의 위치에서 유럽 제국의 왕관에 박힌 한 알의 보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독실한 아우랑제브는 아마 자신이 무엇을 유산으로 남겼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임종에 즈음하여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나는 홀로 왔다가 이제 이방인으로 떠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끔찍한 죄를 저질러온 내게 어떤 징벌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렵다” (p 277)

 

1689년 영국의회는 권리장전관용법을 통과시켰다. 이 덕분에, 유대교도, 위그노교도,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스코틀랜드인, 이 세 개의 집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영국 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 들은 금융혁명과 산업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영국은 이를 토대로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비상했다. (p280)

 

현대 세계에서 관용의 의미는 계속 달라지고 있다. 고대 제국들은 훌륭한 말이나 노새를 부리는 것처럼 우수한 집단들과 인재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순전히 수단적인 의미의 관용을 베풀었다. 이런 관용으로는 자유, 평등, 자치라는 현대적인 이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영국의 역사는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의 패권 국가가 현대의 계몽주의적인의미에서 참된 관용을 베푸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오늘의 세계적인 초강대국, 그것도 과거에 몸소 식민지의 처지를 경험했던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합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일이다. (p281)

 

한마디로, 영국은 프랑스보다 훨씬 쉽게 돈을 구할 수 있었다. (p 283)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위그노교도들이 영국에 끼친 가장 큰 공헌은 금융과 관련한 것이었다. (p 288) 잉글랜드의 정치인들은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식민지 관련 업무를 맡기자는 전략적인 결정을 내렸다 (p 293) 주목해야 할 사실은, 스코틀랜드인들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추진한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p 295) 요컨대 스코틀랜드인, 유대교도, 위그노교도와 같은 비잉글랜드인 집단의 재능과 자본을 이용하여 대영제국이 손에 넣은 이득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p 297)

19세기 대영제국의 관용은 단순한 전략적인 계산을 넘어선 것이었다. 영국은 매우 놀라운 수준으로 계몽주의적인 관용의 개념을 채택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p 298)

 

이처럼 노예무역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침으로써 영국은 주요 경쟁국인 프랑스뿐 아니라, 과거 식민지였던 미국에 대해서도 도덕적인 우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대영제국은 세계의 패권을 손에 넣은 바로 그 시기에 수백만 파운드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나라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 p299)

 

아앨랜드 사람들은 대영제국에서 스코틀랜드나 웨일스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 주요한 이유는 종교에 있었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대영제국이 아일랜드를 상실하게 된 것은 관용이 너무 부족해서, 그리고 적절한 대응이 너무 늦어서였다. (p 300) 지금도 카톨릭교도는 영국 왕위에 오를수 없다 (p305)

 

아일랜드인 대다수가 스스로를 영국인으로 여기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유색인들이 거주하는 영국의 식민지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p 305) 영국인들은 인도뿐 아니라 유색인들이 사는 모든 영토에서 스스로 공언했던 계몽적인 관용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다. (p306) 한마디로 영국이 인도를 상시라게 된 것은, 아일랜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관용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p 319)

간디는 나는 영국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대등한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p327)

 

우리는 미래로 발을 들여놓기 전에 먼저 과거를 살펴보아야 한다. (p 331)

미국이 인종적 차원과 민족적 차원에서 역사상 손꼽히는 관용적인 사회가 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후의 일이었다.미국의 지위가 이렇게 상승하게 된 것은 미국이 끊임없이 다양한 집단들의 활력과 재능을 유인하고, 보상하고, 흡입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후일에는 경쟁국과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후일에는 경쟁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수많은 인재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 발전과 기술혁신을 창출했고, 이것을 토대로 유례없는 최고의 부와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했다. (p333)

 

상업은 종교적 관용을 촉진하는 강력한 기폭제였다. (p 335) 순회선교자들은 지금의 텔레반젤리스트(televangelist)와 마찬가지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상품을 선전하고 판매하는 매스마케팅 사업가였다. (p336)

 

아마도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종교의 자유는 집권자가 내리는 은전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워싱턴의 주장이었을 것이다 (p340) 그러나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흑인 노예들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p341)

 

유럽의 무수한 두뇌 유출덕분에 19세기의 미국은 기술의 벽지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산업국가로 변모하게 되었다.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만든 주요한 요인은 상대적인 개방성과 다원주의였다. 유럽의 국가들은 미국과 같은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었다.(p 347)

19세기에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종교적 반감, 문화적 배타주의, 사회적 경직성, 언어의 차이를 비롯한 여러 장벽들 때문에, 가난하지만 진취적인 유럽인들은 조국을 떠나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이와는 달리 미국은 종교적 다원주의,사회적 유동성, 언어적 다원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유럽인들의 온갖 경험에서 비롯한 재능과 진취적인 동기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이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미국에서는 기회가 하늘 끝까지 열려있었다. (p 347)

 

전쟁은 여러 면에서 미국의 유례없는 경제 발전에 엄청난 연료를 공급했다. (p 357) 관용은 여러 측면에서 미국이 초강국으로서의 지위를 갖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p 357)

대부분 유대인이었던 과학자들의 미국 이주는 인재들이 가장 대규모로 유입된 사례였다. (p 358)

 

미국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누렸던 경제 호황에 직접 연료를 공급한 것은 바로 두가지 혁명적인 발전이었다. 하나는 마이크로칩의 발견이라는 기술분야의 혁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벤처 자본주의라는 금융 분야의 혁명이었다. (p 367)

미국의 벤처자본주의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배경을 가졌든, 가나하든, 부자든, 백인이든 소수 집단이든, 본토박이든 이민자이든 가리지 않고, 젊은 과학자들과 발명가들, 그리고 기업가들에게 품은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엄청난 유인을 제공했던 관용 정책 덕분이다. (p370)

 

그로브는 열정과 명석함, 그리고 섬세함으로 모든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p370)

미국의 기술적, 경제적 패권은 군사적 우위로 직접 연결되고 있다.(p373) 다시 말해서 미국이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부상한 데에는 첨단 기술 경쟁에서의 승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 과학 기술은 미국에게 등을 돌렸다. (p 374)

 

인종적 순수성, 인종 청소, 또는 종교적 광신을 토대로 세계적인 패권 국가로 부상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나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 대단히 편협했던 이 두 정권은 엄청난 권력을 손에 넣고 세계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추축국들의 급속한 부상은 극단적 불관용이 무서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런 불관용을 토대로 한 사회는 세계의 패권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p 376)

 

일부 사람들은 베르사유조약으로 독일에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혹한 조건을 부과한 것은 현명한 조치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영국 대표단의 자문이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그 조약에는 다음번 전쟁을 불러올 씨앗이 들어있다는 불길한 예언을 했다.(p379)

 

나치독일은 모든 것을 게르만 민족의 인종적 우월성이라는 렌즈를 보고 판단했다. (p382) 칭기즈칸은 피정복민 가운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들이려고 애썼지만, 히틀러는 그런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p 383)

 

일본이 공영권 전역에 대해 견지했던 정책은 불관용 그 자체였다. 일본은 나치와 마찬가지로, 피정복민들의 환심을 사는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p 392) 불관용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인종적 우월성과 인종 청소 따위의 이데올로기들은 청소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그들로부터 귀중한 인적 자본을 확보하는 데에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충성심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관용이다. (p 399)

 

중국, 유럽연합, 인도는 하나같이 독특한 방식의 전략적인 관용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p 401)

그들은 모두 자신들을 중국인이라고 여긴다. (p 407) 중국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이민자 사회와는 거리가 먼 사회이다. (p 414) 중국은 민족이라는 이름의 카드를 적절히 이용하여 해외 중국인들의 자부심과 충성심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p 415)

그러나 나의 논지에 따른다면, 중국은 초강대국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은 세계 일류의 인재들을 끌어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의해 세계를 제패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된다. (p418) 중국으로서는 단순한 강국이 되는 것이 어울릴지 모른다. (p419)

 

유럽연합은 새로운 유형의 각종 자유와 경제적 유인책을 동원하여 나라들을 유인하고 있다. (p 422) 유럽연합의 관용은 원칙적으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한 관용이다. (p 424)

이제 유럽의 관용은 이슬람교라는 잠재적인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p 428)

유럽연합이 이슬람교를 쉽게 용인하지 못하는 것은 동화에 저항하고 폭력에 수긍하는 이슬람교 극단주의자들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불관용은 현재 모든 서구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유럽의 경우 이슬람 공동체의 고립화때문에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있다. (p429)

 

유럽연합은 외관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가장 귀중한 인적 자본을 세게 전역에서 유인하여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p430)

 

인도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인도 국민의 생활수준은 세계 주요 나라들의 생활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p436) 인도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해야 할 사항은 바로 인도가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인도라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도 민주주의 국가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관용의 승리를 의미한다 (p437)

 

그러나 종교 폭동이라는 요괴를 이끌고 다니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갈등은 계속부글거리고 있다. 간디와 네루가 옹호했던 포용주의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관용적인 사회인지, 만일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사회로 남아있을지는 단언 할 수 없다 (p 439,440) 

 

그러나 인도는 미래를 낙관할 만할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인도는 다음번 경제성장을 이끌 준비가 된 학위 보유자들을 대거 확보하고 있다. (p440)

 

초강대국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p441)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정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이다. 우리는 과거 초강대국들의 성장과 몰락에서 미국과 미국 이전의 패권국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반영하고 있는 여러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초강대국의 의미는 수백 년에 걸쳐서 서서히 근본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가장 단순한 관점에서 보면, 정복으로부터 교역으로, 침략으로부터 이주로, 전제정치로부터 민주정치로 변모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변모에도 불구하고, 모든 초강대국들은 반드시 한가지 근본적인 문제, 즉 내가 접착제라고 표현했던 문제에 직면한다. 세계 제패의 본질이 변화된 오늘날에도 미국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던 접착제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p 449)

 

미국의 결정적인 힘은 17세기 네덜란드 연방공화국과 마찬가지로 군사력에 있지 않고 부에 있다 .부를 창조하는 가장 큰 동력은 약탈과 몰수가 아니라 교역과 혁신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p 454)

 

다시 말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국이 처해있는 곤경이다. (p 457)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들에게 자국의 관용의 제도를 전파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p 461) 특히 몹시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미국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선망과 존경심, 한편으로는 깊은 증오심과 경멸감이 뒤섞인 몹시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p 463)

 

내가 반대하는 것은 미국 제국을 건설하는 것, 즉 다른 나라들의 정권을 변화시키고 미국식 제도를 강제하는 일에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쓰는 것이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세계의 패권을 지키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니는 것 또한 다른 나라 사이에서 미국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뿐이다. (p 467) 미국은 200년 넘게 지켜왔던 공식을 따라가는 편이 훨씬 낫다 (p 467)

 

21세기 미국의 이민정책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숙련도와 훈련도, 그리고 노하우를 갖춘 이민자들을 찾아내고 끌어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유인 전략을 추구해야한다. (p 471)

 

과거에 번영을 누렸던 초강대국들은 하나같이 해당 지역 지도층의 협조를 구하고 그들을 등용하는 등 이들 지도층에게 초강대국의 성공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초강대국에 속해 있다는 귀속감을 제공했다. 이런 접착제가 바로 초강대국의 강성과 장수의 비결이었다. (p473)

 

이 책의 논지에 따르면 , 미국은 제국을 건설하는 자멸적인 모험을 피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나라의 협력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 세계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p 474)

 

미국인들은 이러한 새로운 다지주의를 굴복이 아니라 기회로 여겨야 한다.(p475)

 

이 책은 그 무엇보다도 미국의 관용에 바치는 책이다. 미국은 여러 가지 결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나의 부모님을 이끌어온 나라, 그리고 나의 가족이 번영하고 우리 방식대로 변화하면서 미국인이 될 수 있게 해준 나라이다. (p 483)

 

 

 

 

 

[내가 저자라면]

 

책은 세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1. 한 사회는 어떻게 (단순한 대국이 아니라) 세계적인 패권을 휘두르는 강국이 되는가?

2. 그 패권을 손에 넣은 한 사회는, 무엇에 의해 무너지는가?

3. 미국은 제국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푸는 공식으로는
역사가 있다. 역사 속 초강대국들의 성장과 몰락에서 얻은 교훈으로 1,2번의 답을 찾고 , 이를 토대로 3번 답을 제시한다.

각 문항의 정답은 다음과 같다.

1. 상대적인 관용 (상대적으로 보다 관용적인 정책은 세계 제패의 필수이다)

2. 불관용, 그리고 하나로 묶어줄 접착제가 없는 관용.

3. 미국은 제국을 건설하는 자멸적인 모험을 피하고

관용과 (인재 유인 전략과 같은) 접착제를 토대로 한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

 

똑같은 시험 문제를 보고도 각자 다른 답을 써내는 것처럼, 같은 역사를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키워드를 뽑아낸다. ‘관용은 내가 한번도 역사에서 뽑아내지 못했던 키워드였고, 그래서 굉장히 신선한 관점에서 이 책을 볼 수 있었다. 이 키워드의 등장을 알리는 문제 제기 또한 충분히 흥미로웠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내용이 좀 많기는 했지만) 이 키워드에 맞아 떨어지는 순간을 만날 때마다 작은 쾌감을 느끼게 했다. 역사와도 많이 친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응용되어 들어온 내용은 다음 세가지가 있다.

1. 내 안에도 쇄국정책, 불관용이 있는지 봐야 한다. 이는 나라 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2. 우리나라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쇄국정책이 아쉽다.
   리
더의 결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아니, 리더가 더 중요하다.

3. 이 책을 이원복 교수님이 그리신다면?

 

내가 이 책의 저자라면, 이 말로 뒷심을 발휘했을 것이다.

미국이여, 웹 2.0 시대에 걸맞는 브랜드 관리를 하라!

(참고로 나는 마케터이다.) 그리고 이런 편지를 썼을 것이다.


미국, 그대는 스타. 사람들은 당신을 선망하면서도 질투한다.

당신 주변에는 언제나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니고, 당신이 하는 작은 행동, 언행 하나는 크게 보도된다. 기자는 미디어를 통해, 일반인들은 웹을 통해. 당신은 쉽게 노출되고 때로 과장 되어 알려진다.

그대는 조심하라. 그대는 겸손하라. 혹여 고대 제국들이 겉으로는 관용 정책을 펴고 뒤에서는 반하는 행동을 했더라도 그 때는 그 꿍꿍이를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무엇 하나 숨길 수 없는 시대이다. 그대의 작은 교만은 웹을 통해 얼마든지 알려지고 때로 과장되어 그대의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을 입힐 것이다.

그 누구도 모멸하지 마라. 과거의 사람들은 정보가 제한되어있어 그들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고 귀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고급 정보에도 쉽게 액세스 할 수 있는 웹 2.0 시대. 사람들의 머리는 트였다. 그들의 의식은 성숙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그 비밀을 알고 있다. 그 누구의 마음에도 상처를 주지 마라. 아무도 차별하지 마라. 함부로 말하지 말라. 그대가 하는 행동은 더욱 과장되기 쉽다. 그대는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기 때문에.

스타는 피곤하다. 그러나 스타인 당신도, 스타를 선망하면서도 증오하는 그들도 모두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대는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라. 진정으로 그들을 대하라.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그 바람대로 행동하라. 그것은 전해질 것이나 가식적인 것과 숨기려고 하는 것과 전략적인 일시적 관용은 곧 들통날 것이다. 세상에 모두 까발려 질것이다.

그러니 모두 까발려져도 두려움이 없을 진심을 품어라.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 가길 소망하라. 당신의 진심이 전해질 모든 인프라는 구축됐다. 관중들도 준비됐다. 그러니 진심을 선택하라. 그것이 당신을 위한 브랜드 관리의 정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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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8 22:33:36 *.234.77.175
오홋! 내가 저자라면 상큼한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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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9.03.08 23:35:52 *.168.109.134
박안나 님의 글은 참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배워야될 점이기도 하겠구요.
4주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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